‘그들만의 철학’이 아닌 ‘우리 모두의 철학’을 위하여! [평이의 궁시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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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아이였을 때, 이런 질문을 할 때가 있었네.

왜 나는 나이고 너가 아닌 거지? 왜 나는 여기에 있고 거기에는 없는 거지?

시간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그리고 공간의 끝은 어디에 있는 거지?

태양 아래서의 삶이란 단순한 꿈에 불과한 건 아닐까?

내가 보고, 듣고, 냄새 맡은 것은 단지 이 세계에 앞서 존재하는 어떤 다른 세계에 대한 환영에 불과한 건 아닐까?

악마가 실제로 존재하는 걸까? 그리고 정말로 악한 사람들이 있기나 한 걸까?

그리고 도대체 어떻게 내가 생기기 전에는 나라고 하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거지?

또 어떻게 나라고 하는 사람이 그 언젠가는 더 이상 그러한 나일 수 없다는 게 있을 수 있지?

– 빔 벤더스의 영화, <욕망의 날개Wings of Desire(1987)>, 한국 개봉이름 <베를린 천사의 시> 중에서.

베를린합성

우리 모두는 어린아이였을 때, 다들 철학자였다. 온통 새롭고 낯선 주변의 세계를 접하면서 끊임없이 물음을 쏟아내던 그 시절을 회상해 낼 수 있다면, 아마도 한번쯤은 저런 질문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던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처음으로 모국어라는 그 어렵고 낯선 장애물을 스스로 극복하면서 비로소 깨치게 된 언어의 힘으로 우리는 모두 세상에 대해 질문하던 철학자였던 셈이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철학은 어떻게 다가오는가? 어렵고 낯선 단어들, 추상적이고 일상의 삶과는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그 수많은 언어의 유희들. 나와는 그저 상관없는 전문 철학자들의 말잔치. 물론 때론 그들의 말잔치가 가끔은 흥미를 끈다. 철학교수들이 쉽게 풀어내는 인문학 강좌 열풍에 이끌려 열심히 그들의 말씀(?)에도 귀 기울여 본다. 그럼에도 어렵다. 이해하기도 어렵고 더구나 내 삶의 문제들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더더욱 알 수 없다.

사실 인문학, 특히 철학은 이런 식으로 누군가의 강의와 말씀에만 기대려 할 때, 역설적으로 사라져 버릴 수밖에 없다. 우리 스스로가 살면서 이 세상에 대해, 이 사회에 대해 품게 된 수많은 질문들, 또 그 질문들을 던졌던 자신의 지적인 능력 자체를 망각한다면, 철학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저 전문가에 기대어 자신의 삶에 대한 어떤 해법만을 기대하는 무기력하고 자신의 지적 능력을 무시하는 그런 대중으로 전락할 뿐이다.

우리는 ‘모두가 지적으로 평등하며 다만 그 동등한 지적 능력을 어떻게 발현시키는가에 따라 달라질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물론 당연히 머릿속에 반론이 떠오를 것이다. 어떻게 우리가 지적으로 평등하냐고. 사람들은 모두 태어날 때부터 서로 다른 특성과 능력을 부여받기에 똑똑한 사람도 있고 멍청한 사람도 있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그렇기에 좀 더 똑똑한 지식인들이 멍청한 대중들을 계몽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정말 우리는 똑똑한 사람과 멍청한 사람으로 구별되어 태어나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똑똑한 사람들이 우리 같은 다소 멍청한 대중들을 이끌고 지배하면 되는 게 아닐까? 똑똑한 전문 정치인이 우리의 삶과 정치를 좌우하고, 똑똑한 전문가들이 이 사회를 잘 꾸려가는 게 당연한 일이지 않을까?

바로 이런 생각이 모든 위계의 원천이다. 유식한 자와 무식한 자, 전문 정치인과 대중, 전문 철학자와 대중으로 끊임없이 사회적인 위계를 생산하고, 그런 위계에 따라 사회적 삶과 정치가 좌우되는 세상. 이런 세상이야말로 우리가 보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잘 안다. 우리 스스로 지적인 능력을 발현하며 모국어를 터득했고, 또 그런 자신의 능력으로 무언가를 배워왔다는 사실을. 단지 치열한 생존의 무게에 갇혀 다른 곳을 보지 못하고 살아왔을 뿐,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의 지적 능력을 발휘해 왔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우리가 발현시킨 그 능력들을 좀 더 넓은 영역으로 확장시킨다면 그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점도 말이다.

정치가 그들만의 일이 아니듯, 철학도 일부 전문가들만의 영역은 아니다. 물론 철학자로서, 연구자로서 평생을 바치는 소수는 늘 필요하고 소중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세상을 계몽하는 선구자일 수는 없다. 이제는 누군가의 계몽이 필요한 시대가 아니라,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해방하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 철학 역시도 이제는 단순히 철학의 대중화가 아니라, 우리 대중 모두가 스스로 철학할 수 있는 그런 무엇이 되어야 한다. 그들만의 철학이 아닌 우리 모두의 철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