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 서다 – 촛불의 승리 그리고 박정희 시대의 종언 [길 위의 우리 철학] – 1

 

박영미

 

1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루쉰의 「고향」중에서)

 

광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함께 분노를 외치고 희망을 노래했다. 그들의 분노와 희망은 길을 만들었다. 그 길은 현재로부터 미래를 여는 것이었으며 또한 과거로부터 현재로 이어진 것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광장의 촛불 속에서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진 길을 기억했고, 현재에서 미래로 열릴 길을 만들었다. 우리에게 광장은 그렇게 ‘길’이 되었다.

 

(국민일보)

 

2

광화문 광장에는 두 개의 동상이 일렬로 서 있다. 하나는 이순신, 다른 하나는 세종대왕. 나는 촛불 광장의 한 가운데 우뚝 서 있었던 이순신 동상을 보면 오늘의 박근혜와 어제의 박정희가 오버랩 된다. 광장의 동상이 오늘의 박근혜가 곧 어제의 박정희임을 보여주는 상징물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후 집권한 박정희는 1968년 광화문 앞 세종로에 6미터가 넘는 이순신 동상을 세운다. 정권의 정당성을 설득해야 하는 박정희에게는 뛰어난 무장이자 임진왜란의 영웅인 이순신의 이미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 해 12월에는 <국민교육헌장>이 반포된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되살려 안으로는 자주 독립에 힘쓰고, 밖으로는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로 시작되는 <국민교육헌장>은 1994년에 폐지될 때까지 누구나 반드시 읽고 외어야 하는 주문(?)이었다. 박정희는 이 주문을 공포하고 관련 교육을 강화했다. 이는 국가가 국민의 정신을 개조하고 통제한다는 국가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순신 동상의 건립과 <국민교육헌장>의 공포는 이미 계획된 ‘10월 유신’을 위한 포석이었다. 박정희는 1969년 3선 개헌과 1972년 10월 헌법효력의 일부 정지, 국회해산, 정당활동 금지를 내용을 한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후 직선제가 아닌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는 ‘유신헌법’을 제정하면서 장기집권의 토대를 마련한다. 바로 이 시기 <국민교육헌장>의 초안을 기초하고, 대통령 특별보좌관을 5년간 수행하면서 10월 유신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박정희의 국가주의를 철학적으로 뒷받침한 사람이 박종홍(1903~1976)이었다.

 

박종홍은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한 후 활동했던 서양철학 1세대로, 서양철학 1세대 중에서 드물게 전통철학의 현대적 계승이 필요함을 인식했으며, 서양철학과 전통철학이 결합된 ‘우리철학’을 모색한 철학자였다. 또한 경성제대부터 서울대학교까지 철학과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면서 한국 강단철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박종홍이 학문 생애 전체를 통해 노력한 ‘우리철학’의 모색은 의도의 선의여부와 상관없이 결국 국가권력과 결탁되며 일그러졌다.

 

그가 주장한 ‘부정성-주체의 자각-창조’의 논리는 전통철학과 결합하여 ‘천명-주체의 자각-참여’로 해석되었고, 다시 <국민교육현장>에서 ‘역사적 사명-민족적 자각-민족중흥’으로 구체화되었다. 더 나아가 천명과 역사적 사명은 ‘국가’로, 주체와 민족적 자각은 ‘국민정신’으로, 참여와 민족중흥은 ‘근대화’로 바꿔도 무방해지게 되었다. 따라서 ‘부정성’은 역사적 사명이 된 절대적인 국가에게 자리를 내어주었고, ‘주체의 자각’은 교육과 지도로 내면화된 국민의 정신으로 전락하였으며, ‘창조’는 개발 반공 민주 애국 애족을 내용으로 하는 편협한 근대화로 축소되었다.(『처음 읽는 한국현대철학』, 300쪽)

 

지난 4년간 박근혜 정권이 보여줬던 국가의 모습은 이렇게 박정희가 꿈꾸고 계획했던 국가의 다름 아니었다. 따라서 박근혜의 탄핵과 구속을 ‘박정희 시대의 종언’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그들 부녀의 불온한 꿈을 저지했다는 의미에서는 타당할 수 있다. 그러나 박정희 사후 30년이 지나 다시 박근혜가 선택(?)되었던 것을 상기한다면 ‘박정희 시대의 종언’은 성급한 희망일 수 있다. 박정희 시대는 한 개인의 권력욕과 이를 도운 철학이 우리의 정신을 지배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진정한 ‘박정희 시대의 종언’은 절대 국가가 아닌 민주적 가치와 절차를 갖춘 국가, 복종하는 국민이 아닌 언제나 깨어있는 시민, 국가의 강요된 목표가 아닌 개인들의 바람과 꿈을 사회의 목표로 만들기 위한 쉼 없는 노력으로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3

우리는 과거로부터 미래로 열려진 길 위에서 시선을 미래보다는 과거에 두고자 한다. 우리철학, 한국근현대철학은 역사의 길을 뚜벅뚜벅 걸으면서 때로는 열려 있지 않은 길을 만들려고 노력했고, 때로는 잘못된 방향으로 길을 바꾸기도 했다. 이렇게 역사 속에서 분투했던 우리철학은 오랫동안 잊혀 있었고 이제는 이에 대한 정리와 성찰이 필요하다. 그 노력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잘못에 대한 냉철한 비판이 없다면 철학에서의 ‘종언’은 요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첫 걸음은 한국근현대철학을 소개한 책 『처음 읽는 한국현대철학』(동녘, 2015)의 출간이었다.

 

 

블로그진 ‘길 위의 우리철학’은 한국현대철학을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는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한국현대철학분과’에서 만든다. ‘길’은 과거로부터의 역사이기도 하고, 오늘의 삶이기도 하고, 미래로 열린 희망이기도 하다. 그 위에 서서 우리는 언제나 어느 길이 더 나은 길인지, 바른 길인지 생각하고 선택한다. 그렇게 ‘길’은 지향志向이기도 하고, 그래서 철학이기도 하다. 한국현대철학분과는 앞으로 월 2회 블로그진을 통해 우리철학이 서 있었던 길, 우리철학이 만들었던 길을 이야기 하려고 한다.

 

…여기서부터 역사이다
역사란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부터
미래의 험악으로부터
내가 가는 현재 전체와
그 뒤의 미지까지
그 뒤의 어둠까지이다
어둠이란
빛의 결핍일 뿐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고은의 「길」 중에서)

 

기고자: 박영미(한국철학사상연구회, 한양대) 

중국 청대 대진의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7세기이후 동아시아 철학의 변화와 교류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는 한국현대철학과 중국현대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 다음에는 “박은식”(이지)에 대한 글이 이어집니다.

 

공동체의 수호자 [나인당케의 단상들]

지난 주말 광화문에 모인 20만명의 사람들에게 어떤 동기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은 왜 그곳에 모인 것일까?

분명 그들에게도 개인적인 욕구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그들은 자신의 개인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데 사용할 것이다. 예컨대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 그 시간에 취준생은 취직준비를 더 할 수 있었을 것이고, TV를 좋아하는 사람은 무한도전을 보면서 맥주 한 잔을 들이킬 수 있었을 것이고, 연인이 있는 사람은 놀이공원이나 극장에 가서 데이트를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 모인 20만 명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황금같은 주말 오후를 공동체를 위해 사용했다.

그들의 동기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고전 맑스주의에서 말하는 계급적 이해관계? 아니 그들은 동일한 집단과 계급도 아니었다. 정치권의 부패를 본 후의 즉자적인 분노?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정서를 분노라고 단정짓긴 힘들다. 시위 참여자들의 밝은 표정, SNS 곳곳에 그들이 남긴 후기들을 읽어보면 그들의 정서는 분노라는 감정의 표출보다는 새로운 종류의 자신감이었다.

나는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의 동기를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그것은 ‘국가’에 대한 맹목적 충성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에서, 자신이 속한 ‘정치적 공동체’에 대한 사랑, 그리고 위기에 처한 그 공동체를 구제하기 위하여 자신을 헌신할 수 있는 자세를 의미하는 것 같다. 어쩌면 이것이 마키아벨리가 말한 ‘공화주의적 인민의 덕성’, 스피노자가 말한 ‘정념(정동?)’, 혹은 헤겔이 말한 ‘정치적 신념'(물론 헤겔은 이것을 애국심과 동일한 것으로 불렀다만, 만약 우리가 그의 철학에서 국가주의적 요소를 빼고 재해석을 해본다면), 혹은 발리바르가 말한 ‘시빌리테’가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주말에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해 시위현장에 모여 촛불을 드는 시민들은 정치적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자들로서, (아마도 ‘애국자’라는 단어와는 완전히 다른 의미에서) ‘공동체의 수호자’라고 불려도 좋을 것이다. 마치 페르시아의 황제 다리우스 1세가 이끄는 수십만 병력에 맞서 스스로 갑옷으로 무장하고 마라톤 평원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여 공동체를 수호한 아테네의 시민들처럼, 그들은 공동체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나설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들은 진정한 주권은 국가원수가 아닌 광장(아고라)의 힘에서 나온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람들, 권력을 실현하는 demos인 것이다. 주류 정치권과 재벌, 언론이 그토록 부패해 있음에도, 이토록 공동체를 위해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는 수많은 demos를 보유한 것은 우리에겐 하나의 축복이자, 어둠 속의 빛과 같은 희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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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5일 광화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