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철학을 대하는 관점들
– 2026. 03. 20. 춘분(春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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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유의 한계와 영토의 경계: 삶의 유한성
철학 또는 일반화하여 학문에는 국경이 없다고들 한다. 그럼에도 학문들의 역사에 서 변역(變易)의 과정을 보면 철학자 또는 제반 학자들에게 국경이 있는 것 같다. 파스퇴르(1822-1895)는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국경이 있다”고 했다. 파스퇴르의 표현은 프랑스와 프러시아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하고, 패전국의 학자로서 독일에 불려가 발표를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라 하는데, 그 과학자는 자신이 소속한 공동체에서 연구 방식이, 공동체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독일이 의학과 생리학에서 화학적 관심으로 기술적 생산에 관심이었다면, 프랑스는 자연에서 삶의 조화와 연관 있는 생명과 의학에 관심이었다. 생물학에 대한 관심의 방향과 자연에 대한 태도는 단지 의학에서만 있었던 것이라기보다, 철학적으로 칸트에서 과학의 관념론과 도덕의 이상론에 치중하였다면, 이에 반하여 콩트에서는 자연의 조직화, 인간사회의 조직화에서 실증적 사건들에 관심을 기우렸다.
서양사에 국가관의 성립은 베스트팔렌 조약(1648)이후, 국제법과 주권국의 지위를 규정하며, 각 나라에서 국가체제를 형성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왕정국가에서, 인민 또는 주민을 토대로 한 자주국가의 성립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나폴레옹이 유럽을 통합하려는 전쟁의 영향에서 나왔다 한다. 이 전쟁이 국민의 자주의식을 일깨웠고(피히테), 소위 말하는 근대국가가 성립한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학문의 유럽화 이외에 각국에서 개별학문의 발달도 이루어진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에게 알려진, 프랑스철학, 영국철학, 독일철학 등이 자리를 잡는다. 특히 철학에서 이 세 나라의 학문의 독자성과 영토성이 자리 잡으면서, 스페인, 이탈리아는 프랑스와 더불어 라틴계로, 프러시아 이후에 동유럽은 독일계에 속하며, 미국의 독립으로 영국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 국가이지만 학문과 문화에서 영미 철학이라 불리는 계열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브레이어 철학사(1934)이후, 즉 서양의 양차대전 이후에는, 학문들의 경향성과 더불어, 거의 자기 나라의 방법과 방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경향성은 서양이 동양 삼국에 미친 영향에서도 드러난다. 이 나라들과 연관들이 역사적 깊이와 상대적 교환에 따라서, 일본은 앵글로색슨에 깊은 영향을 입고, 중국은 유럽과의 교류에서 긴 역사만큼이나 유럽 대륙 전체와 깊은 연관이 있었으며, 이차대전 이후에 사회주의의 영향이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어쩌면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이중적 관점이 있으며, 풍토상 추가령지구대를 가르는 문화적 창안의 차이만큼이나, 이중적 관점으로 경향과 방향을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삶의 터전에서 경계란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생각하는 또는 상상하는 의식은 경계를 넘어서 거의 무한하게 확장한다. 이런 점에서 경계는 임시적이고 한정적이다. 이런 경계를 넘어서 사유하는 방식은 인간이 처한 여러 어려움들에, 고통이든 비참이든, 처한 상황들을 벗어나기 위하여, 그리고 좀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노력에서 생겨나는 어려움이다. 난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학문이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철학의 시작은 고대 지중해의 그리스인들의 삶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 어려움들의 해소를 위해, 철학이 시작하기 이전에는 그리스 연극을 통해서 상황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방식을 보여주려 했다. 신화를 빌어서 신들이 개입하듯이, 한 방식으로 외적인 신(deus ex machina)을 불러들여 해결하려 하였다. 이런 해결방식에 꼭 개인에 속하지 않더라도, 민중들은 신들에 의해 또는 누군가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고 믿고 살아갔다. 그러나 그런 외적인 힘 또는 신에 의한 해결이 인간 자신의 숙명이라면, 신이 명령한 숙명을 따라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해결이 생각을 깊이 하는 이들에게는 해결이 아니라, 어쩌면 해결의 회피이며, 숙명에 맞대결하려는 의지가 없는 나약한 존재로 여길 수 있었다. 이런 고뇌에서 몇몇 현자들은 숙명 또는 필연에 대해 진솔하게 대면하고 해결하려고 했다. 그들은 이런 필연이 당연히 인간의 유한성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살아가는 기간 동안에 스스로 풀 수 있는 문제들과 풀 수 없는 문제들 사이에 구별해야 한다는 것도 사유할 줄 알았다.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를 거치면서, 도구뿐만 아니라 인류가 스스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인류가 도구를 돌의 사용으로부터 시작하여 구리를 발견하고 주석을 섞어서 돌보다 더 단단한 도구인 청동을 사용하고, 이로서 농업과 삶의 양식이 조금씩 바뀌었다고 한다. 그리고 철기의 도래는 인류의 생산력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청동과 철의 사용을 통하여 동일한 도구의 제작에서, 추정하기로 동일성 또는 동일반복의 방식에서, 단위(통일성)를 설정하는 생각을 할 기회를 가졌다고 한다. 철학자의 사유의 발전적 과정이 지중해가 중심이 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고, 게다가 청동기와 철기의 문화가 사유의 일반화 과정을 겪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물론 중국과 동북아시아도 비슷한 시기에 청동과 철기를 통한 동일성의 단위를 설정할 수 있는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시기가 기원 6세기 전후라고 한다. 이런 시기에 지리적 경계와 사유의 한계가 영토에서 삶의 경계를 갖는 것은, 일정 영토에서 비슷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운반 도구의 미비함에서 온 것이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마치 동일반복과 같이 여기는 동일한 도구의 거푸집을 통한 생산이 사물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는데 도움이 있었을 것으로 여긴다.
물론 천문학에서 하늘의 별자리들이 매년 동일한 자리에 있다는 것이 먼저이다. 그럼에도 하늘의 별자리는 운행하고 또한 무한 반복하기에 대상화가 인간의 삶의 범위를 벗어나서 단위설정이 어려웠으리라. 이에 비해 하여, 도구의 제작에서 한계와 반복이 인간의 사고 정립에 도움이 되었으리라. 어쩌면 거꾸로 하늘에 영원성을 두고, 지상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인간의 열망과 욕망이 진지하게 자연(하늘과 땅)에 대해 규칙 또는 법칙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이런 한계(limite)를 넘어서려는 노력과 인간의 유한한(fini)의 자각(또는 한탄) 속에서 경계를 넘으려는 의지와 생명의 유한성을 극복하려는 욕망에서, 일반적으로 삶에서 고통과 비참을 해소하려는 노력과 함께 사유의 방법과 기술을 제시하려 할 것이다. 학문은 이런 의미에서 근대적 표현으로 경계가 없으나, 유한한 삶의 개인은 어느 터전 위에서 산다는 점에서 경계 속에 있었다. (58N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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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문은 하나(통일성)에서 출발하는가?
학문에서는 항상 문제제기가 있다고 하며, 화두가 있다고들 한다. 서양철학에서 한편 기원 또는 원인, 다른 한편 원리 또는 법칙을 탐구한다고 한다. 이런 문제제기에는 상상(사유)하는 의식과 사고(추리)하는 지성 사이에서 생겨나는 것 같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이 양자 사이에 참여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기원이든 원리든 사유하는 또는 추리하는 인간이가 있어야 할 것이다. 마치 천지인에서처럼 사람이 관여한다.
우선 기원을 생각한다는 측면에서, 기원이 있기나 한가? 인간은 자신의 깊이를 모르기에 사물들 대하면서 자연에서부터라고 생각할 것이다. 인간은 그 자연에서 어떤 순환과 변화에서 일정한 규칙이 있을 것으로 여긴다. 그럼에도 그 자연을 움직이는 어떤 힘 또는 신들이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을 하였던 것 같다. 이런 점에서 서양의 사유에서는 한편으로 신들의 이야기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 자연의 변화에서 질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신들의 이야기와 자연을 대상으로 삼아서 신들처럼 또는 정령들처럼 자연에 첨가하는 어떤 힘을 부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태들 때문에 인간이 생각하기로는, 신들과 정령들이라는 대상을 사유의 대상으로 만들었듯이, 자연에서도 자연의 변화의 질서, 질서의 기원 또는 원인에 대한 대상(또는 단위)을 상상으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초기 발상에서 보아, 자연, 신들, 인간이라는 삼원성이 이루어질 것이고 우리 표현으로 천지인으로 표현할 수 있으리라.
그럼에도 신들의 대상화에서 최고신을 만들거나 신들의 위계를 또는 대부분의 종교에서 해석하듯이 신들의 위상들과 역량들을 구별하는 여러 신적 지위를 부여하여 대상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비해 자연에 대해서는 신들처럼 대상화하기보다 자연의 운행에서 기원과 원인에서 찾으려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생각하면서 기원과 원리를 구별하고서, 기원에 대해서 의식하는 차원을, 원리에 대해서 추리하는 차원을 부여하고서, 두 대상 사이에 있을 법한 차이를 찾으려 했을 것이다. 삶의 양식이 점점 다양화되어 감에 따라, 탐색의 방식도 달라질 것이다. 원리의 탐구를 추론의 전개에서 극한에서 한정 지으려 할 것인데, 이에 비해 기원의 탐색에서 알 수 없는 기나긴 과정의 시초를 한정 짓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생각하는 추리는 무한히 전개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고, 자연은 우리의 경험상으로 제한된 세계에 머문다고 여겼다. 이점에서 하늘이 닫혀 있다고 하지만 무한한(infini) 운동의 귀결을 찾으려할 것이고, 자연은 한정된 영역에 있지만 무한정한(illimite) 움직임으로 여긴다. 이로서 인간은 사유의 무한성과 삶의 한정성 사이에 대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무한한 우주와 유한한 자연이라는 생각이 우선 자리 잡으리라. 그럼에도 인간은 우주의 무한과 삶의 터전에서 한정성이라는 이원성을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무한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고 하늘의 뚜껑 안에서 영속적인 운행에서 영원이란 원리를 생각하였고, 지상에서 무수한 변화들에서도 그 기원에는 원리와 맞먹는 원인이 있을 것이라 여기고 이를 찾고자 하였다. 무한에서 영원이라는 통일성(l’unité)을 탐색하듯이, 변화들 속에서도 불변하는 단위(l’unité)를 찾으려 한다. 이 두 통일성 또는 단위는 용어상 같이 보이지만, 같을 수도 없고 또한 같이 나아갈 수도 없음에도, 사유 속에서 같이 또는 연대하여 관련이 있거나 상응할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인간은 화두로서 제기된 문제에서, 하나의 전체가 있을 것이라고 여기고 그 전체에서 부분들이 나왔을 것이라고 여겼으나, 사유하는 또는 의식하는 인식은 둘 사이의 심연 같은 깊은 간격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심연을 들여다보기보다, 하나의 원인 또는 원리로부터 나온 두 방향, 두 성질, 두 형식, 둘이상의 계열들 사이에서 차이를 봉합하여 하나의 전체로서 통일성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늘과 땅은 모두 합하여 하나이지 둘이 아닐 것이고, 인간이 사유하고 의식하는 두 갈래의 길에서도 인간(사유)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주하나와 인간하나가 같은 기원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어쩌면 우주와 자연을 생각하던 현자는 인간의 사유의 두 갈래인 지성과 감성이 하늘과 땅의 대비적 사유, 또는 투영적 사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탐구에서 하늘과 땅, 기원과 원리 등을 구별하고 싶지 않았던 현자는 세계가 하나이듯이 인간이 생각하는 방식도 하나라고 여기는 것이 편했을 것이다. 이 하나 또는 전체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물어 들어가는 현자는 두 갈래의 방향과 경향에서 길을 잃을까 어찌할 바를 몰랐을 것 같다. 지자는 추리하여 통일성을 부여할 수 있는 원리를 구하고 싶었고, 어쩌면 현자는 자연의 변화 과정 속에서 기원을 찾으면 통일성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여겼다. 이쯤에서 원리와 기원을 구별하는 방식에 대해, 대조하고 비교하며 이리저리 이야기를 옮겨 다녀서 혼돈을 가져온다고 하는데 대해, 변명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하늘과 땅, 원리와 기원에 대한 확연한 구별로부터 학문이 출발한 것이 아니다. 인간이 자연에 대한 이해와 지적 수준이 낮았을 때, 구별이 쉽지도 않았고, 구별을 하는 방법도 몰랐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모든 인류의 역사에서 지역마다 다를지라도, 그리고 자연을 대하는 기술적 방식에 따라, 신화들의 시대가 시기적으로 다르고, 또한 생각하는 두 가지 또는 세 가지 – 그리고 20세기에는 여러 가지 다양체로 – 방식의 단초를 갖는 사유방식도 달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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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문에서 대상(또는 상태)에 대한 탐색으로 체계를 갖출 수 있을까?
인간이 삶의 터전에서 자기의 영토가 주어져있다는 것을 자각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지구라는 영토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과 세상을 떠난다는 것 사이에 차이는, 사유방식의 차이보다 엄청났을 것이다. 그리스인들이 말하는 코스모스는 하늘아래 땅위에 삶의 세상이다. 즉 코스모스가 곧 이 세계이다. 이 세계는 무엇으로 되어 있는가를 생각하는 관점에서 철학이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 이전에는 세계가 신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상상했을 것이고, 그것을 믿는 것이 삶의 고통과 고뇌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여겼을 것이다. 삶에서 필수적인 요소들에 관한 이야기는 전승되고, 그 만큼 세계의 사물에 대한 일반화와 용어들이 정초되어 갔을 것이다.
한편 세계 속에서 삶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삶의 영역에서 도구의 제작과 생산 그리고 소비에 관한한 교환이 있듯이, 다른 한편 인간들 사이에 제도 안에서 소통의 덕목으로서 도덕과 신앙도 갖추어 갈 것이다. 자연과 제도에서 자연은 필연적임에도 제도는 필연적이라기보다 필요조건에 가깝다. 사유하는 대상으로서 하늘과 땅, 다음으로 자연과 제도에는 각각이 내속하는 체계가 다른 것이 아닐까? 인간이 하늘과 땅의 연대 이래로, 종교의 시대를 지나,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는 대상으로 여길 때, 원인과 원리는 하나에서 출발한 것이라기보다, 인간이 대상 또는 체계를 다루는 방식에서 인간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늘이라는 뚜껑아래 우주(코스모스)가 하나라는 것에서, 뚜껑이 열리고 머나먼 성좌들을 포함하는 우주가 하나라고 여기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이 후자의 하나라는 것은 생각하는 오성(지성)이 무한히 넓혀간다는 것이다. 이 만큼이나 자연에서 길이도 길게 갈 수 있고, 이런 두 가지의 상대성이 같은 사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기도 한다. 원인과 원리는 같은가? 고대 그리스인들이 아르케라고 할 때 자연의 원인(시작)을 탐색했을까? 자연의 원리(사유의 공리)를 탐색했을까? – 이런 구별은 우주발생론과 우주론, 시간론과 공간론의 차히로 여길 것이다. – 이런 차이의 구별은 근대에서 데카르트가 “방법”이라고 설명하면서 탐구의 길을 열었다. 둘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통일적 정신이 있고, 대상에 따라 또는 상황에 따라 적용과 응용의 방식에 차이일 뿐이라고 담론을 전개하고 싶었으리라. 하나라는 일반화를 넘어서 추상화 속에 개념(또는 관념)을 설정한다는 것이 인간의 오만과 탐욕(욕망이 아니다)이 들어있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나가 먼저 있을까라는 탐색은 화두에서보다 선문답의 여러 논쟁거리에 있었듯이, 서양 철학사에 어떤 갈래의 논쟁들이든 어떤 방향들의 합의들이든 하나로 합일된다고 하는 것 속에는 종교적 신앙이 들어있다. 이를 변증법의 하나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어왔다. 왜 이 신앙을 플라톤은 추측(피스티스)라 부르고 싶어했을까, 그리고 이런 추리를 원인론(인과론이 아니다)에서 보면, 한 원인이 동일한 결과를 내놓지 않는다는 점에서 회의주의가 이미 고대로부터 있어왔다. 훔이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론은 자연의 발생이 아니라 인간의 사변적 추리 방식의 일부라고 본 것은 방법적 탐색이었다.
데카르트와 흄을 거치면서 방법적 논의는, 즉 인간의 사유가 대상으로 삼는 자연이든, 사유의 이미지든, 그 대상화와 일반화에 규칙이 무엇이었는지, 또는 그 규칙이 합당한 또는 공리에 맞는 체계인지를 다시 물어보게 될 것이다. 탐색도 인간의 지성이 하고, 탐구도 인간의 지성이 한다. 이 지성은 무엇을 하는가? 지성이라는 이 인식의 역량이 하나 또는 우주의 통일성을 알고나 담론을 전개하는가? 소크라테스처럼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고 할 때, 이데 대해 극작가들은 유일신앙자들의 공리처럼 받드는 것은 ‘신만이 안다’였다. 유명론을 지나면서, 신이 이름뿐이고 상징 또는 기호, 기표일뿐이라고 해도 신은 존재한다고 하고 실재한다고 착각한다. 이것이 인간의 만든 일반화의 오류이다. 벩송 표현으로 선전제 미해결의 오류, 악순환의 오류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인식 역량의 한계를 빌미삼아, 인간의 사유의 추론에는 부분들의 정합성이 있을 뿐이고, 하나의 통일성이 따로 있다면서, 관념 또는 이념을 이상으로 받들었다. 선문답에서 한쪽이 한 갈래에서 답을 찾거나 문제제기를 하면, 다른 쪽이 다른 갈래를 제시하는 사유확장의 길을 열었다면, 이에 비해 화두란 시원와 원인을 물어 들어가기에 의식의 시간성(인연연기) 속에 빠지기도 한다. 즉, 선문답의 이중성에 빠지지 않기 위해 한쪽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신이 없으니깐) 원리, 공리, 정리로부터 체계에서 찾으려 한다. 다른 한쪽은 지구의 지층과 더불어 시간여행을 하기도 하면 기원과 원인에 대해 탐색하려고 하는 시도가 늦게서야 나올 것이다. 탐색에서 방향과 방법, 자연에서 계열과 경향, 여러 갈래의 발산을 탐구하려는 노력, 탐구의 길은 찾는 노력은 세기를 기다려야 했다. (58LN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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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사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를 대하는 관점 : 탐구 방식과 방향
인간에게서 의식의 확장과 활동이 이중성이라고 할 때, 근세 철학에서처럼 추리하는 사유(사유실체)와 길이의 인식(연장실체)라고 한다. 이런 사유에는 인간의 의식과 자연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에 온 것이리라. 그럼에도 근세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탐색은 그리 넓게 전개되지 못하고, 이해하는 능력으로서 오성이든 지성이든, 그 당대 지식을 토대로 한 역량에 한정되어 있었다. 자의식의 발현은 신에서 벗어난다는 것이었지만, 자연을 있는 그대로 대하는 탐구 방식으로 잘 이루지기에 이르지 않았던 것 같다.
인식의 역량에 대한 탐구와 더불어 자연의 자치와 자율성을 이해하려든 것은 인간이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기도 하였지만, 자연을 인간의 도구로 삼는데 치중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그 자연은 인간이 생각해온 것과 달리, 자연 스스로 발생과 생장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은 빛이 자연의 발현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도 자연의 산물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조차 불경스러운 종교적 지배에서 벗어나기란 쉬운 것이 아니었다.
자연의 도구로서 빛은 여러 가지 중에서 두 가지 방향에서 인간을 깨우치기 시작했다. 한편 우주의 광활함을 빛을 통해서, 말하자면 망원경을 통해서 탐구할 수 있고, 다른 한편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사물의 미세함을 현미경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이 두 계열의 체계가 사유실체와 연장실체처럼 이해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탐구의 방법에서 대상의 ‘만들어진’측면의 차이보다 ‘만들어가는’ 과정의 차히를 달리 보아야한다는 생각이 표면위로 떠올랐다. 그럼에도 지식의 체계는 기원과 원인에서 계열의 과정들을 보기보다 원리와 공리에 정합한 체계를 더 중요시 했다. – 후자의 관점은 AI에까지 이른다.
탐구의 방법이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마치 빛들이 무한한 방향으로 발산하듯이, “빛들 세기(18세기)”를 지나면서 여러 갈래로 등장한다. 그 갈래들이 각각의 체계 안에서 한정된 방식으로 정합성을 지니기 위한 노력을 할 때, 통일성과 완전성이 먼저라는 정합적 체계를 지닌 이들은 한계안의 가설들 사이의 불일치를 비판하면서, 체계정합성이 먼저이고 전체이며, 그 전체의 부분으로서 개별학문들이 성립하고 또는 통일성에 속하는 종속체계를 갖는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철학사에서는 아테네에서 융성할 때이래로, 이오이나학파와 엘레아학파 사이의 불협화음은 죽 이어져왔다. 이런 사유과정 안에서 우주론 또는 우주발생론, 공간 중심과 지속 중심, 정지에서 또는 운동에서 등에 대한 담론들이 전개되었지만, 사유의 대상으로서 개념과 관념을 우선시하는 경우에 속하는 우주론과 공간론이 철학적 사고의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통일성과 완전성 아래 체계의 정합성이 탐구 방법으로써 자연의 안으로 그리고 생명의 안으로 들어갔을 때, 생명과 삶에 대한 문제들은 전혀 다른 양상들을 보여주기 시작하였고, 이런 의미에서 자연의 조직학으로서 자연조직학(physis + logos, 생리학), 삶의 터전에서 사회조직학(socio + logos, 사회학)이라는 다른 탐구방식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영혼조직학으로 영혼학/심리학(psyche + logos)에서 인간의 의식은 우주론으로 다루기보다 우주 발생론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기억과 유전을 벩송이 제기하였다.
인간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자연의 자율성과 자발성에서 또는 지구와 우주의 움직임에서 생겨나온 것이라 한다. 그럼에도 인간의 오만과 독단은 이 자연에서 기원과 원인을 탐구하기보다, 생활의 편리와 제도의 습관 속에서 원리와 공리가 있고 법칙에 맞게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하는 이들이 더 많다. 탐구의 방향을 달리하는 생각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사적인 탐욕만이 아니라, 체제 속에서 패거리들의 세뇌교육에도 있다. 그래서 탐구의 역량을 세우는 철학 교육은, AI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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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사에서 시대적 구별
인간이 살아가면서 고통과 비참을 벗어나려는 노력은, 구석기 수십만년 동안에 돌에 의한 도구의 제작을 서서히 발전시켰고, 그리고 구리와 청동을 거쳐서 철기로 도구를 제작하면서 자연에 대한 어떤 자신감을 가졌을 것이다. 이 자신감에서 자연 안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하는 제도(나중에는 체제라는 이름으로 국가)를 만들었을 것이다.
도구 제작에서 동일한 물건들 동일하게 반복하여 만들 수 있는 방법, 게다가 주물에서 거푸집을 만들었다는 것은 인간의 삶의 양식을 바꾸어 놓았다. 삶의 양식의 전승만큼이나 입말소통(소리 교환이든 상업이든)과 문자화는 과거의 전승을 슬기롭게 이어갔다. 이로서 인간이 세계에 대한 탐색에서 탐구하는 길로서 부분적이지만 의식 체계라는 것을 만들고 문자로 이어갔을 것이다.
탐구에서 대표적으로 우주론과 우주발생론이 구별을 느끼기 시작하기 이전에, 인류는 자연과 투쟁 또는 다른 동물과 투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 먼저였을 것이다. 이런 시대를 자연의 시대라고 해서 행복했던 공동체라고 말하는 역사가들은 이제는 없을 것이다. 차라리 인간이 해결하지 못한 어려움들을 안고 사는 시기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난한 과제를 풀어온 것은 인간의 노력 덕분이다.
알려진 대로 원시 공동체, 고대 노예제, 중세 장원제, 근대 산업화, 현대 국가체제라는 일반적 개념화 도식은 체제의 성립을 중심으로 나열한 것이리라. 맑스주의자가 말하는 농노제에서 산업화 자본가시대, 프롤레타리아의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이행을 제시한 것도 역사의 변천을 생산도구와 그 소유에 방식 맞게 설명하려는 한 도식일 것이다.
철학사에서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신화에서 벗어나 자연의 이법을 탐구하는 시대, 신의 교리 아래 통일성의 시대, 그리고 인간의 자의식의 발현으로 이법의 탐구시대, 그리고 “빛들 세기”를 거쳐서, 19세기 개별학문들의 발달과 체제로서 사회와 국가에 담론이 있었고, 생산력을 소유한 자본가들의 국가가 되면서 식민지 개척에서 전쟁을 일으킨 제국주의 시대를 거쳐서, 금융이 지배하는 제국의 시대였다. 그 제국이 전지구를 지배하려고 새로운 도구 인 정보기술과 인공지능을 발달을 추구하고 있다. – 도구/무기의 양면성만큼이나 인간의 욕망/탐욕이 내속해 있다.
그럼에도 자연이 실체로서 인정되었고, 자연에 자치성과 자율성을 인정하였던 18세기에 인간의 의식의 다양한 발현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 시대의 한계로서 겨우 물리학이 개별학문의 지위를 얻고, 사회의 조직화에서 인간의 역할이 이미 전제된 원리와 체제가 먼저가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자치적이고 자율적인 조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빛들세기”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 자발성을 가지고 계몽되었다는 것 이상의 것이었다. – 자연에 대해 책임을 통감할 때이다.
시대의 구별로서 연대순의 세기의 구분이 발전과정의 변역의 단계를 표시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과정을 인식하는 데 쉬운 한 방편이었다. 그런데 철학사를 보는 입장들은 거의 정해져 있지만 약간의 차이들을 갖는다. 서양에서 철학사적 관점을 갖는 것은 12세기에 평결론자들이 등장하면서, 과거를 비추어보는 통감(通鑑)의 관점, 거울에 ‘비추어 보다’는 사변(la spéculation)이 등장하였다. 꽁트는 사변의 역사를 간단하게 중세까지의 종교의 시대, 근대 사유의 발전을 형이상학의 시대, 그리고 대혁명 이후에 삶의 터전에 대한 실증의 시대라고 한다. 어쩌면 꽁트는 인간이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시대를 거쳐서, 학문의 대상으로서 사물을 다루는 방식으로 전향했다가, 새로운 조직화의 사회에서 사건들의 연관들을 다루는 시대를 말했을 것이다.
우리는 진리와 거짓을 다루는 앵글로색슨의 진리론을 우선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마치 러셀의 철학사처럼, 그들은 진위 구별을 잘 다루려는 것이 철학사이라고 한다. 이런 생각은 원리와 공리가 지식의 과제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일 것이다. 기원과 원인에 대한 탐구와 교육이 필요하다. 벩송이 말하듯이 삶이 먼저이고 사색하는 것은 다음이다. 그럼에도 의식의 변화는 인류의 변역(變易)과정에서 죽 이어져 왔다. 벩송은 그리스에서 뿐만이 아니라 사유를 시작한 이래 하늘(즉 상층)이 먼저였다는 것이다. 이 상층이 신이든, 영혼이든, 또는 하늘의 운행이든, 움직이면서도 동일성을 유지하고, 인간 삶에 비해 영원한 것으로 여기는 것을 탐색하고 탐구하는 길을 만들려고 했다는 것이다.
상층의 이해에서 또는 해석에서부터 지구의 표면을 이해하는 방식이 고대인들의 사유방식이라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럴듯한 이야기이다. 해와 달, 그리고 수많은 별들에서 12성좌의 동일한 자리로 되돌아옴의 운동이 먼저였다. 그 상층의 운동이 지구상에도 동시성으로 이루어지고, 각각의 운동은 상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갈릴레이에 의해서, 벩송이 보기에, 상층에서 표면으로 내려왔다고 하다. 그리고 자연학 또는 물리학의 발전이 자연조직학으로 발전하면서, 19세기에 자연의 내부로 그리고 사물의 내부로 지식체계를 만들어갔다는 것이다. 상층(외부)에서 표면으로, 표면에서 심층(내부)으로 이행이라는 것이다
시대구분의 방법들과 달리 의식 활동의 변화를 세 부분으로 나눈 것은 흥미롭다. 그리고 벩송이 이런 관점을 제시하고(1907) 난 뒤, 1920년대에 정신분석학은 초자아, 자아, 이드라는 3원성을 구별하였다. 그런데 들뢰즈가 좀더 심도 있게 구별하면서, 상층에서 표면으로 사고가 있고, 심층에서 표면으로 사유가 있으며, 양편이 만나는 표면에서 이중적 시뮬라크르들(모방체들)이 있다고 한다. 이런 상층, 표면의 이중성, 심층의 구도는 우선 보기에 존재론적이지 자연론적이 아니다. 그런데 자연론 또는 우주발생론에서 보면, 의식은 여전히 심층에서 소용돌이치면서 생성과 발현을 실행하고 있고 표면에서 여러 갈래로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모방체들이라 할 수 있다. 이 발생에서 표면의 모방체들은 과거의 기억의 영향을 받는다.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모습을 만들 것인가? 기억의 공감과 자연과 공명을 신의 외적 영향으로 착각하는 쪽이 있다. 이들이 상징계라는 힘을 지닌 체계를 설명하고 있다.
변하고 있는, 자연과 인간, 시대의 변화인 변역(變易)이 행진하면서 미래를 잠식하고 있다. 이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누구도 모른다. 그럼에도 지나온 과정의 자연과 인간의 지층과 기억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상참여할 수 있다. 이 예상참여에서 지구와 인간사회에 해악을 끼치지 않는 방식을 찾는 것이 인류의 과제일 것이다. 이 방법의 탐구의 도구의 발달에서 주어지기보다, 영혼과 인성의 정립에서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철학은 여전히 소중하다. 자연 속에 인간, 그 인간이라는 도구가 무엇인지를 성찰해야 한다. (59N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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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누리 소통의 시대 인민은 자연의 산물임을 안다. 자연은 스스로 분출하고 발산하는 자발성을 지니고 있고, 인간은 그 자발성의 일부에 참여하고(또는 플라톤의 용어로 나누어가지고) 살아간다. 자연의 발현에, 요즘 언어로 생태계의 변역(變易)에 책임을 지는 것도 인간이다. 이오니아학파 이래로 자연의 기원과 원인에 대한 탐구에서 아테네에서 퀴니코스-스토아가 세계(코스모스)의 영혼에 합일하는 인간의 영혼에 대한 화두를 제시했다.
인간의 영혼에 대한 탐구가 자의식의 발현을 거쳐서 자연을 책임지는 자세에 대해 자각하는 것이 19세기 후반의 영혼(심리)학이었고, 그 영혼학을 삼원성 또는 3원의 중첩조합으로서 8가지 사실들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를 프로이트-라깡주의자들이 상징계, 상상계, 실재계로 해석하였지만, 러셀은 이원성의 벤다이아그램으로부터 배경[비존재]이 따로 있음을 알았고, 확장하여 숙고해보면 3원성, 4원성, 5원성으로 행렬로서 설명해보아도 무(여집합)와 같은 비존재가 파라독사의 원인처럼 생긴다. 항상 순열에서는 표면 위로 드러나는 경우의 수 이외에 보이지 않지(invisible)만 없다고 할 수 없는 여백(공집합 φ)이 있다. 이 공집합도 수(경우)들 중의 하나다 라고 해야 파라독사에 대한 해명이 된다. 없는 것은 없다. 빈자리는 있는 것이다.
이로서 서양은 다시 동양의 미학에서 그림 속에 붓이 닿지 않는 여백의 미라고 하기도 하고, 불교의 색즉시공의 공이라고도 한다. 이 공집합과 같은 없는 것 같으면서 있었고 있어왔고 현재도 있는 것이 백성, 대중, 인민이다. 이 인민이 21세기 누리소통의 시대에 표면위로 올라온 것이다. 그 인민의 함성, 인민의 이미지(광장이든 영상이든), 인민의 응원봉이 표출과 발산을 드러냈다. 바디우가 존재의 함성이라고 하였지만, 존재가 아니라 현존, 들뢰즈에서는 심층의 함성, 기억의 함성, 인민의 함성이다. – 이번에 검찰개혁에 대해, 유시민과 김어준이 행한 것은 민주당 안에서 당원의 함성의 발현인 셈이다. –
자연과 함께 공명하며 인간이 서로 공감하는 시대를 여는 것은, 트럼프의 명령이 아니라 인민 열망일 것이다. 자연의 발현과 더불어 자연을 책임질 사유가 도래하였다. 이런 국면 또는 광경 중의 하나로서, 들뢰즈가 표현하는 얼굴의 등장이 어쩌면 춘분 다음날 광화문 광장에서, 방탄소년단(BTS)과 공감하며, 입말의 목소리, 얼굴과 몸짓을 드러내는 이미지가 빛처럼 널리 퍼져 홍익인간을 알려줄 수도 있을 것이다. (59NKJ) (59NLG) (59NKJ) (8:10, 59NLA) (8:41 59NLA)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철학의 세계』(2023),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