섦[별과 달과 바람의 노래] -15

우주선

김설미향(그림책 작가)

 

아무 의미없는 것이 의미가 있을 때가 있고
의미있는 것이 의미 없을 때가 있고
비어 있는 것을 채워야 할 때가 있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다.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할 때가 있고
알고 있어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고
보여도 보지 못할 때가 있다.
보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을 때가 있고
믿고 싶은대로 볼 때가 있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볼 때가 있고
보고 있지만 보고 싶은 것만 볼 때가 있다.
열려 있으면서 닫혀 있기도 하고
닫혀 있으면서 열리기도 하는
무한대로 영원할 것처럼 영원하지 않다.

2016-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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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대와철학2016-4-25 우주선 copy

 

작가 노트

눈은 어쩌면 오감 중에 가장 빠르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각기관일 것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현상에 대해 문을 금방 닫기도 하고 열기도 합니다.
우리의 눈은 낯설음에 대해 이해의 속도가 더뎌질 때 조금 더 빠르게 정보를 인식하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의 체계를 어떤 틀에 끼워 맞춰 그 현상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을 볼 때
자동기술법처럼,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세계를 기록하듯이 무의식적 지각을 통해 감각을 이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시각적인 정보를 받아들이는데 느끼는 감각은 수많은 사건과 경험의 반복적인 습관을 통해
정보를 이해하는 속도와 양적 수도 달라질 것입니다.
그림을 말로 설명하는 것, 사진을 글로 표현하는 것, 시를 말로 글로 표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 입니다.
시각화한 사물을 읽는다는 것은 낯설고 어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시각적으로 익숙한 것은
낯설음에서 익숙함의 반복된 학습의 과정을 통해 정보 인식의 확장이 가능해져 곧 익숙함에 이른 것이라고 봅니다.

관객은 때로는 경험하지 못한 시각적 단편들과 때로는 익숙한 단편들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할 것이며
타인의 낯선 세계의 정보를 받아들임으로써 관객은 자신의 우주안에 정보의 회로를 새롭게 구성하고 재해석하는 단계의 과정을 거쳐
창의적인 상상력과 다양한 세계로 확장하는 힘을 만들어 곧 낯선 경험을 익숙함의 과정으로 만들 것입니다.

제가 표현하는 작업은 때로는 낯설기도 하고 때로는 경험하지 못한 시각적 현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삶에서 순간적인 찰나와 영속적인 부분의 차이이며
사람이 감지하는 모든 사물의 시간의 순간성과 영속성에 대한 시간차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항상 지나가던 곳이거나 관심있게 보아야 보이는 것들, 자세히 관찰해야 보이는 것들,
그러한 공간, 물질, 현상에 대해 생명을 불어넣는 차근차근 한 과정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저것이 무엇일까? 도대체 모르겠는데? 하는 생각과 같이 시각적인 작업에 대해
관객은 그 자체를 모호한 상태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눈에 읽히는대로 읽을 수도 있고
다양한 다른 현상으로 이해할 수도 있으며,그 이해하는 방식 자체가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해석의 과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섦[별과 달과 바람의 노래] -14

눈 내리는 마을

김설미향(그림책 작가)

 

상상의 동물을 만나는 그 곳에는
불꽃놀이 환영이 일어나고
벼슬이 있는 발이 큰 닭은 분주하게 흔들흔들  기뻐하고 있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강아지는 훨훨 날고 있고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고양이는 파릇파릇 걷고 있고
상상의 콧 노래를 부르는 멋진 코끼리는 날개짓을 하고 있고
신나게 물 뿌리는 망아지는 꾸벅꾸벅 졸고 있다.
흰 드레스를 입은 신부는 뽀득뽀드득하게 앉아
구두에 반짝반짝 유리알 빛을 내고 있다.

푸른 빛이 있는 나무가지 사이로
복슬복슬 흰 눈이 내리고 있는 마을에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모두가 열띤 침묵의 춤을 춘다.

2016-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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섦[별과 달과 바람의 노래]-13

바람

김설미향(그림책 작가)

 

지속적이지도 않고

영속적이지도 않은

잠깐의 시간을

영원하듯 바라보는 곳에

빛나는 겨울의 끝에

서있는 바람은

하얀 눈꽃에 꽃씨를 실어

하얗게 몽글몽글 터트린다.

그 시간에 잠깐을 붙잡거나

또는 긴 시간에 오래를 붙들거나

영원한 것은 없다.

있다가 오고 없다가 오는

잠깐의 바람은

상상과 현실을 오가며

하얗게 피어 검게 그을려가는

하얀 목련에

바람 주머니를 넣어

영원한 사랑을

크게 꿈꾸고 있을지 모른다.

 

2016-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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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대와철학2016-2-25 바람

 

섦[별과 달과 바람의 노래]-12

 

김설미향(그림책 작가)

 

수 많은 별들 가운데 빛나는 수는 하나이다.

하나의 수와 하나의 수는 이어져 길이되고

길은 공간에 수를 채우고 채워진 벽에

수 많은 사람 안에 띄우는 수의 수는 붉은 심장이 된다.

빼어난 수는 수 안의 수 아닌 수의 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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섦[별과 달과 바람의 노래]-11

 

 김설미향(그림책 작가)

 

사각거리는 빛은 꿈을 담고

흥얼거리는 빛은 우리의 마음을 잠식한다.

고요하고 고요한 침묵의 방은 어둠을 헤치고

새롭게 뜨는 태양을 향해 또 다른 나의 모습을 갈구한다.

빛은 소리없이 우리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어온다.

하얀 빛은 똑하고 물보라를 일으키고

어둠은 사랑스럽게 빛에 의해 더더욱 찬란해져 빛으로 빛난다.

쉽게 내어주는 우리의 시간은 어둠과 빛의 무지개빛 공기로

가득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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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대와철학2015-12 꿈

섦[별과 달과 바람의 노래]-10

재밌는 상상

 

 김설미향(그림책 작가)

 

 

나의 머리는 나무 그늘 아래 바람을 훔치는 기타가 되고

나의 검은 상상은 희망으로 넘치는 목이 기다란 술병이 되고

나의 두 다리는 바다를 항해하는 검은 고래의 꼬리가 되고

나의 얼굴은 영원한 우주를 무한히 헤엄치는 비행기가 되고

나의 입은 복슬복슬 먹이를 찾는 절실하지도 않은 부리가 되고

그렇게 절실하고도 절실하지도 않은 나의 두 눈에 반짝이는 우주를 반짝반짝 담는다.

우리는 무엇을 닮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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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대와철학2015-11 재밌는 상상

 

섦[별과 달과 바람의 노래]-9

가을과 겨울의 중간 사이

 

 김설미향(그림책 작가)

 

가을과 겨울의 중간 사이

삶은 깊은 것도 얕은 것도 아닌 중간 사이다.

깊어질 것 같은 가을 위에 어느 사이 옅어지는 겨울이 하나둘씩 쌓이고

우리의  추상의 모호함은 눈 위에 소복히 쌓인다.

소리없는 외침의 갈망은 어디로 가는지 알수 없는 발자국을 남기고

남겨진 발자국 위에 흰  북소리가 덮는다.

표현할 수 없는 공기를 가두어 공기라고 하고

온데 간데 없는 흔적은 흔적조차 없는데 흔적이라고 하고

우리는  바람 사이로 흩어지는 가을과 겨울의 중간 사이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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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대와철학2015-10-김설미향

섦[별과 달과 바람의 노래]-8

영혼

 

 김설미향(그림책 작가)

 

만질수도 없고 기억할 수도 없는

머나먼 고향의 길을 찾아가는

검은 새의 바람은 향기롭다.

자신이길 거부하는 날개짓은 고요하여

여전히 태양을 향해가는 식지 않은 열정으로

암흑속에 가물가물 춤을 추고 있다.

영원히 지지않는 깃털은

가볍게 흐르는 그의 생명을 불어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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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대와철학2015-10

 

[서평]고조선 역사가 없으면 한국사도 없다: 윤내현이 쓴 『고조선연구』

‘고조선 역사가 없으면 한국사도 없다.’ – 신채호 선생

:윤내현이 쓴 『고조선연구』

 

나태영(한철연 회원)

 

이 책은 900쪽이 넘는 책이다. 그런데도 현재 고등학교 『한국사』 고조선 부분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다. 『한국사』 고조선 부분은 4쪽에 불과하다. 고조선 관련 참고도서는 통사 몇 권에 불과하다. 왜 이리 되었을까? 바로 지금 주류 강단사학자들이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내현은 원래 중국 상고사 공부를 했다. 공부하다가 고조선 관련 사료를 자주 보게 되었다. 현재 주류 사학자들이 받아 들이는 내용이 크게 잘못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류 사학계에 자극을 주려고 『한국고대사 신론』이란 책을 출판했다. 하지만 주류 사학계는 그가 제기한 문제를 귀담아 듣지 않고 그를 미친 놈 취급했다. 이런 까닭으로 중국상고사 전문가 윤내현은 한국상고사 곧 고조선 전문가가 되었다.
 

지금 남아 있는 우리나라 역사 책 중에서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서 고조선이라는 이름이 맨 처음 사용되었다. 일연은 단군조선만을 고조선이라고 부르고 있다. 따라서 혼란을 피하기 위해 고조선은 단군조선에 대한 이름으로만 사용하는 것이 옳다.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을 고조선과 똑같이 보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 기자조선은 고조선의 서쪽 변경지대인 난하 하류 동부유역만을 차지했다. 위만조선은 고조선의 서쪽 변경지대인 난하에서 대릉하에 이르는 지역만을 차지했다.
 

고조선 나라 수명이 서기전 2333년〜서기전 108년까지라고 말한다. 위만조선이 서기전 108년에 망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다. 옳지 않다. 위만조선이 망할 때도 고조선은 훨씬 더 넓은 영토를 차지하며 나라를 유지하고 있었다. 위만조선의 영토는 난하에서 대릉하까지였다. 고조선은 서기전 108년이 아니라 서기전 100년 전후까지 유지된 나라이다. 고조선은 위만조선이 망한 서기전 108년부터 고조선 제후국이었던 부여가 독립국이 된 시기 사이에 망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동부여가 독립국이 되었던 해는 서기전 59년이다. 따라서 고조선이 망한 시기는 서기전 108년〜서기전 59년으로 봐야 할 것이다.
 

1. 여섯 가지 조선 윤내현 선생님은 중국 역사 기록물에 나오는 조선을 여섯 가지로 나눌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1) 고(단군)조선
(2) 고조선 안에 있는 고조선 직할국(진국: 단군왕검께서 직접 다스린 땅, 지금의 요하부터 청천강 까지, 대조영이 발해 세울 때 진국이라 나라 이름 지은 것은 고조선 직할국 진국을 이었다고 볼 수 있다.)
(3) 기자조선(난하 동부유역)
(4) 위만조선(난하〜대릉하)
(5) 한사군의 낙랑군 조선현(난하 동부유역: 『한서漢書』 「지리지」 <낙랑군> ‘조선현’조를 보면 조선현에 대해서 동한의 학자 응소가 이리 주석을 달았다. ‘무왕은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 낙랑군의 조선현에 주 무왕이 기자를 봉했다는 것이다. 기자가 조선으로 망명한 시기는 서주 초인 서기전 12세기 말 즈음이었고 한사군이 설치된 것은 서기전 108년이었다. 따라서 한사군의 낙랑군 조선현은 기자가 망명했던 곳이라는 뜻이다. 기자조선 영토는 난하 동부유역이었다. 따라서 한사군 낙랑군 조선현은 난하 동부유역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당나라 역사 책『진서 晉書』 「지리지」 <낙랑군> ‘조선’조에 ‘(조선현)은 서주가 기자를 봉했던 땅이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6) 고조선이 무너진 뒤 단군 일부 후손들이 살았던 지역(『후한서』「동이열전」 <고구려전>에 ‘고구려는 요동의 동쪽 1천 리 떨어진 곳에 있는데 남쪽은 조선, 예맥, 동쪽은 옥저, 북쪽은 부여와 맞닿아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기록은 동한시대에 고구려 남쪽에 조선이 있었음을 알려 준다. 이 조선은 고구려와 국경이 맞닿아 있고 그 남쪽에 있었다. 때문에 그 위치나 영토 넓이로 봐서 고조선과 다른 조선임이 확실하다.) 중국 역사 기록물을 읽을 때 조선이 몇 번째 조선인지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고조선 관련 유물/ 출처: www.koreaikultura.hu

고조선 관련 유물/ 출처: www.koreaikultura.hu


 
세 가지 요동(遼東)
 
고대 요동의 위치를 올바르게 알아야 고조선 서쪽 국경선을 올바르게 알 수 있다. 고대인들에게 요동이 어느 곳이었는지 그 이후 요동이 어찌 옮겨졌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 중국 기록물에 나오는 조선을 여섯 가지로 구분해 봐야 하듯이 요동에 대해서도 한 가지가 아니라 세 가지로 구분해 봐야 한다. 앞으로 한국 상고사 책 읽을 때 요동이라는 땅 이름이 나오면 주의 깊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1) 난하로부터 동쪽 지역
(2) 요하로부터 동쪽지역
(3) 중국 행정구역 요동군

 
(1) 난하로부터 동쪽 지역
 
고대의 요동은 지금의 난하로부터 동쪽 지역이었다. 지금의 북경에서 동북쪽으로 위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고대에 요수(지금의 난하)라는 강 이름이 먼저 생기고 그 강 이름을 기준으로 하여 요동이라는 말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고대 중국인들은 그들 영토의 동쪽 끝을 극동(極東: 동쪽 맨 끝 땅)이라는 뜻으로 요동이라 불렀다. 요(遼)라는 한자를 한자사전에서 찾아보면 첫 번째 뜻이 ‘멀다’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그들 영토에서 멀리 떨어진 동쪽 땅을 요동(遼東)이라 불렀다. 요동은 그 대부분이 중국 영토에 포함되지 않은 지역이었다.
 
(2) 요하로부터 동쪽지역
 
오늘날의 요동은 지금의 요하(遼河)로부터 동쪽지역을 말한다. 이것은 요동이라는 땅 이름이 동쪽으로 옮겨갔음을 뜻한다. 요수(遼水)도 두 가지가 있다. 전국(전쟁나라)시대, 진제국시대와 서한 초기까지는 요수가 지금의 난하였다. 동한시대(23년)부터 요수는 지금의 요하(遼河)이다. 따라서 동한시대 이전에 요동은 난하로부터 동쪽지역이었다. 동한시대부터 요동은 지금의 요하로부터 동쪽 지역이다.
 
(3) 중국 행정구역 요동군
 
『후한서』「동이열전」과 진수가 쓴 『삼국지』「오환선비동이전(烏丸鮮卑東吏傳)」의 <고구려전>에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고구려는 요동의 동쪽 천리 떨어진 곳에 있는데 남쪽은 조선과 예맥, 동쪽은 옥저, 북쪽은 부여와 맞닿아 있었다.’
동한시대 이후 고구려는 지금의 요동지역에 있었는데 고구려가 요동으로부터 천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는 이 기록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 기록에서 요동은 중국 행정구역인 요동군을 말하는 것이다. 서한 무제 때에 서한 영토가 넓어짐에 따라 요수라는 강 이름과 난하로부터 동쪽 지역이었던 요동이 동쪽으로 옮겨갔다. 지금의 요하로부터 오른쪽 지역으로 옮겨간 것이다. 하지만 행정구역인 요동군은 지금의 난하 유역에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고구려는 지금의 요하로부터 동쪽 지역이었던 요동에 있었지만 중국의 행정구역인 요동군으로부터는 동쪽으로 천리 떨어진 곳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나오는 조선은 고조선 무너진 뒤 고조선 왕족 포함 일부 세력이 살던 나라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진(秦)나라와 한(漢)나라의 행정구역이었던 요동군은 난하 하류유역 일부에 불과했다. 『한서(漢書)』 「장진왕주전(傳)」에는 번쾌가 노관의 반란을 평정했다는 기록이 있다. 상곡군, 우북평군, 요동군, 어양군을 평정하고 장성에 이르렀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은 요동군이 장성 안의 중국 영토였음을 말해 준다. 이 장성은 진시황제 때 쌓은 장성이다. 이 장성은 서쪽으로부터 지금의 난하를 가로질러 갈석산에 이르렀다. 따라서 요동군은 장성 안 쪽, 즉 갈석산 서쪽의 난하 유역에 있었다. 위만조선과 국경이 맞닿아 있었다.
 
여섯 가지 조선과 세 가지 요동을 구별할 수 있으면 21세기 한국상고사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섦[별과 달과 바람의 노래]-7

 

김설미향(그림책 작가)

나를 매끄러운 지렁이의 틈사이라 불러도 좋고

나를 볼록해진 손가락이라 불러도 좋고

나를 한켠에 저릿하게 비어있는 이불이라 불러도 좋고

나를 가슴에 비어있는 노래라 불러도 좋다

그래서 텅 빈 나는 다시 채우는 빈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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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_이시대와철학2015-8 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