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탐험 (4)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탐험 (4)
이정호(방송통신대 교수)
주제 1: 그리스인의 사랑
2. 아프로디테(2)
아프로디테의 힘이 erga gamoio 즉 성적인 결합과 관련한 일에서 분명하고도 위력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은 「호메로스 찬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곳에는 아프로디테를 찬양하는 노래가 2편 실려 있는데, 그 중 긴 쪽은 가장 오래된 작품군에 속하는 것으로서 일찍이 기원전 7세기 이오니아 지방에서 불렸다.
아무려나 제우스는 제멋대로 사랑의 불길을 일으키는 아프로디테에게 진절머리가 나 버렸다. 그래서 제우스는 감당하기 힘든 그러한 사랑의 불길을 아프로디테 스스로도 한번 겪어 보도록 그 자신, 이 여신이 하는 일에 손을 댄다. 제우스는 우선 이다(Ida)산에서 소를 방목하고 있는 안키세스(Anchises)에 대해 격렬한 연정을 품도록 그녀의 마음속에 사랑을 이식했다. 그래서 파포스에 있었던 아프로디테는 우아한 여신들로 하여금 자신을 목욕시키고 향유를 발라 아름답게 몸치장하게 한 후, 스스로 이다산으로 달려가 안키세스를 뇌쇄시켜 그와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아이네이아스를 낳는다. 그런데 아프로디테의 이다산행은 동물의 발정과 관련한 중요한 모티브와 묶여져 있다. 그녀가 이다산을 향해갈 때 늑대와 사자, 곰, 표범 등 산속에 있는 온갖 짐승들이 여신을 수행했는데, 여신은 그것을 아주 기뻐하여 그 짐승들에게 생식에의 충동을 불러 일으켰고 짐승들은 크게 발정하여 모두들 그늘 깊은 곳에 들어가 교미를 했다. 이런 연고로 아프로디테는 이다산의 대모신으로서 모든 동물들의 강대한 여주인(potnia t?r?n)이 된 것이다.
이 여신의 위세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뻗어 있는지는 아이스퀼로스의 작품 「탄원하는 여인들(Hiketides)」속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아직 아르카익적인 것에 뿌리를 두고 그것을 토대로 성장한 시인이었던 만큼 그의 증언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그가 3부작으로 계획한 작품 중 첫 편(나머지 두 편은 소실)에 해당하는 그 작품은 아이귑토스(Aigyptos)의 아들들의 난폭한 구혼을 피해 달아나는 다나오스(Danaos)의 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작중에서 시인은 여인들이 도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말하고 있지는 않다. 극의 전반부에서는 그 주된 이유가 구혼자들에 대한 딸들의 혐오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후반부에 가서는 아예 결혼 자체를 피하려는 것이 그 이유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상은 위대한 생명력으로서의 아프로디테에 관한 사람들의 의견이 두 개로 나누어지는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다나오스의 딸들이 아르고스에 도착하자 시녀들이 마을 입구에서 그녀들을 맞이하고 다나오스는 다음과 같이 탄식하듯 퀴프리스(Kypris 아프로디테의 다른 이름)의 힘을 언급하고 있다.
과일도 다 익은 것은 자신을 지키기가 결코 쉽지 않다.
짐승들과 사람들이 건드리니까. 왜 안 그렇겠니?
즙이 많은 과일을 먹어 보라고 온갖 길짐승들과
날짐승들을 퀴프리스가 초청하여, 과일들이
그대로 남아 있지 못하도록 식욕을 돋우니 말이다.
(997-1002)
다나오스의 딸들은 강제로 결혼하게 되는 것을 변함없이 거부하고 있지만, 처녀신인 아르테미스에게 비호를 청하는 아래의 탄원 속에는 분명 결혼 자체에 대한 혐오가 포함되어 있다.
정결하신 아르테미스여, 굽어 살피소서
이 일행을 가련히 여기시어 퀴테레이아(Kythereia 아프로디테의 별칭)가
우리를 결혼침상에 들도록 강요하지 않게 해 주소서
차라리 이 고통이 죽음으로 끝나기를
(1030-33)
그러자 시녀들의 제2의 코러스는 우회적인 표현으로 이것에 대답한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퀴프리스를 생각하는 것이
즐거워요. 그녀는 헤라와 권세가 같고
제우스에 가장 가까워요. 변덕스런
여신이지만 그녀는 진지한 의식에 의해
경배를 받고 있어요. 동경,
무슨 요구를 하든 거절할 수 없는 설득이
사랑스런 어머니인 그녀와 함께 하지요.
아프로디테는 화합에게도, 사랑의 신들의
속삭임에도 역할을 주었지요
(1034-1042 이상 천병희 역 참고)
다나오스의 탄식과 달리 시녀들의 코러스는 반대로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시녀들의 코러스는 남자와의 성적 결합을 여인의 궁극적 성취로 이끄는 아프로디테의 위세를 재현하는 것으로 결혼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오히려 아프로디테를 무시하는 휘브리스(Hybris)임을 일러준다. 그리고 이것은 아이스퀼로스가 3부작을 어떻게 끝맺음할 지를 충분히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3부작의 나머지 두 작품인「아이귑토스의 아들들」과 「다나오스의 딸들」은 전해지고 있지 않아 그 내용을 자세히는 알 수는 없지만, 일부 남아있는 몇 가지 단편들을 보면 최소한 그 결말의 윤곽정도는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즉, 두 번째 작품인 「아이귑토스의 아들들」에서는 딸들을 지키는 아르고스인과 그들을 추적하는 아이귑토스의 아들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고 결국 다나오스의 딸들은 그들과 마지못해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신혼 첫날밤 딸들은 다나오스의 명령에 따라 가증스러운 남편들을 살해하고 만다. 그러나 결혼에서 벗어나려는 그들의 행로가 이것으로 막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세 번째 작품인 「다나오스의 딸들」에 이르면 이후 다나오스의 딸들은 모두 살인의 죄로 재판에 회부되는데 이 때 아프로디테가 나타나 그녀들을 도와주어 그녀들은 살인죄에서 벗어나지만, 그 후 그녀들은 결국 아프로디테에 의해 그토록 피하고자 했던 결혼으로 다시 이끌리고 만다. 물론 남편을 죽인 다나오스의 딸들이 저승에 가서 독에 물을 채우는 벌을 받는다는 다른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결국 그녀들의 새로운 결혼이 이 3부작의 결말이라고 한다면 여전히 이 작품에서도 딸들의 하나같은 탄원에 아랑곳함이 없이 아프로디테의 위세가 전혀 흔들림 없이 완벽하게 관철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아이스퀼로스의 다른 작품 「결박된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desmotes)」를 보면(865) 다나오스의 딸 중 휘페르메스트라(Hypermestra)만은 다른 딸과 달리 다나오스의 명령을 거역하여 남편을 살해하지 않은 죄로 별도의 재판을 받게 되는데, 이때에도 사랑(himeros)을 위해 살해를 거부한 휘페르메스트라를 적극 비호하는 과정에서 아프로디테의 위세가 드러난다. 현재 남아 있는 단편(fr. 44 N)을 보고 있노라면 아마도 아프로디테 여신은 휘페르메스트라의 행동을 하늘과 대지의 결합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우주적 사랑(Eros)을 표현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같다. 아프로디테는 그 자리에서 휘페르메스트라를 비호하며 만물을 정복하는 사랑의 힘을 아래와 같이 언급하고 있다.
신성한 하늘은 대지와 가까이 사랑하기를 갈망하여
결혼의 서약을 맺고 대지를 취할 수 있었다.
가로 놓인 하늘에서 큰 비가 쏟아져,
대지는 만물을 잉태하여 인간들을 위해
양이 먹는 풀과 데메테르가 지배하는 풍부한 곡물을 낳는다.
또 과일나무 열매들도 구름과 비가 인연을 맺어
영근 것들. 그 모든 것들 가운데 나 파라이티아(paraitia)가 있다
(단편 44 N)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아프로디테가 자신을 paraitia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이다. paratia는 ‘원인이되 한 쪽을 맡고 있는 원인’이라는 의미이다. 그녀에게 결코 ‘전적으로 독자적인 원인’을 의미하는 panaitia라는 이름이 붙여질 수는 없다. 그 말은 제우스에게 사용될 수 있는 말이고(「아가멤논」1486행), 굳이 사랑과 관련한 경우라면 에로스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이것은 아프로디테의 위세가 비록 드높긴 해도 전적으로 주도적일 수는 없음을 보여준다. 아프로디테는 위대한 생성을 이끄는 에로스의 공동 참가자로서 그녀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성적 결합을 통해 쾌락과 희열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들의 “신성한 결혼”(hieros gamos)에 담겨 있는 아프로디테적 의미를 간단히 음미해보기로 하자. 하늘과 대지의 신성한 결혼은 오랜 역사에 걸쳐 널리 알려진 신화이다. 에우리피데스가 그 없어진 비극 「크뤼십포스(Chrysippos)」에서 성스러운 결혼의 관념을 채택할 때, 그것은 꽤 독단적이긴 하지만 교훈적으로 들린다.
위대한 힘을 가진 대지(Gaia)와 제우스의 하늘(Ait?r)
하늘은 신들과 인간들의 아버지,
대지는 부슬부슬 방울져 떨어지는 빗방울을
받아들여 가사적인 것들을 낳는다,
목장의 풀들과 여러 종의 짐승들을.
(단편839N)
이러한 “신성한 결혼”의 관념은 로마의 시인 웨르길리우스(Vergilius)의 「농경시(Georgica)」에서도 보여진다.
그 때, 전능하신 아버지 하늘은 열매를 맺게 하는 비와 함께
기쁨을 가득 채운 아내인 대지의 품에 몸을 담갔다. 그리고
커다란 하늘은 광대한 대지의 몸과 결합하여 모든 생물을 낳아 길렀다.
이후 길이 없을 정도로 초목이 번성하고, 새들의 노랫소리 울려 퍼져
번식기에는 소 떼가 짝 짖기에 여념이 없고
밭에서는 곡식이 영근다.
(2.325-31)
또 아이헨도르프(Eichendorff)의 시에서도 신성한 결혼에 대한 태고적 신앙의 시적 여운이 가득 담겨 있다.
마치 하늘이 대지에
살짝 입맞춤을 하듯이
대지 또한 꽃그늘 옅은 햇살 속에서
마냥 하늘을 꿈꾸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호메로스의 시는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이오니아풍으로 쓰여져 있다. 그의 시 가운데 지금까지 언급해온 종류의 관념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그러나 비록 “신성한 결혼”은 아닐지라도 가장 위대한 신들이 나눈 사랑의 한 때를 그린 장면이 몇 개 남아 있다. 헤라가 아프로디테에게 부탁하여 마법의 띠(kestos himas)를 받은 후, 헤라가 벌이고 있는 「일리아스」제14권의 장면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그곳에서 헤라는 자신의 계략대로 침대에 누워 제우스의 팔에 안겨 있는데, 그 때 대지와 하늘이 두 위대한 신의 성적 결합에 참가하여 마치 그들의 신성한 결혼을 보여 주는듯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그러자 그들 밑에서 신성한 대지가 이슬을 머금은 클로버며
크로커스며 히야신스 같은 싱그러운 새 풀들을 두껍고 부드럽게
돋아나게 하니 이것이 그들을 땅 위로 높이 들어 올려주었다
그 속에 그들이 누워 아름다운 황금 구름을 두르니
그 구름에서 반짝이는 이슬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347-51. 천병희 역 참고)
시인은 하늘과 대지의 결합이라고 하는 오래된 관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이용해서 신들의 목가적인 사랑의 한 때를 위와 같이 그려낼 수 있었을 것이다. 앞에서 우리는 아프로디테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주 생성에 관한 신화를 잠간 언급했는데 그 때 가이아(Gaia, 대지)와 우라노스(Ouranos, 하늘)의 결합은 우주 생성 이래 최초의 ‘신성한 결혼’답게 그에 상응하는 극렬한 성적 결합의 면모를 보여준다. 우라노스는 에로스의 힘을 얻어 너무도 열렬하게 가이아 온 몸을 한 치도 남김없이 꼭 맞게 덮치듯 끌어안고 있어서, 가이아는 우라노스에 가려 햇살 한 가닥조차 접할 수 없을 정도였고, 그들 사이에 태어난 자식들 또한 지상에 나오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채 모두 가이아 속에 묻혀 지내야했다. 그래서 누군가 그들을 떼어내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피조물이 성장할 수 있도록 빛과 공간을 되돌려 주는 것이 필요했다. 결국 가이아는 숨 막힐 듯한 괴로움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스스로 회색의 쇳물을 내서 그것으로 갈고리형 둥근 낫(harp?)을 만들어 자식인 크로노스(Kronos 시간)로 하여금 우라노스의 생식기를 절단하게 만든다. 이로써 하늘과 땅의 분리가 이루어지고 이른바 최초의 세상이 열린다. 그러나 크로노스는 아버지를 위해한 자신에게 미칠 후환이 두려워 자식들을 모두 삼켜버렸고 그 바람에 빛과 공간은 다시 열렸으나 아직 신들의 삶의 터전과 세상의 질서는 생겨날 수 가 없었다. 그러자 마침내 크로노스의 아들 제우스가 어머니 레아의 도움을 받아 크로노스를 물리치고 형제들을 구해 비로소 올림포스 신들의 세계, 최초의 질서를 창조해낸다.
그런데 대지가 하늘에서 풀려나고 올륌포스 주신들에 의해 최초의 세상, 최초의 질서가 확립되어 가는 그 시간, 잘려진 우라노스의 생식기는 바다를 떠돌다가 퀴프로스섬에 이르러 그 불사의 살점에서 거품이 생기면서 아프로디테를 탄생시킨다. 우라노스의 거세를 통해 열린 세상에 아프로디테가 우라노스의 분신이자 자식으로 태어나 마치 복수라도 하듯이 그 이후에 태어난 신들의 자손 모두에게 떨쳐버릴 수 없는 관능의 씨앗을 심어 놓는 순간이다. 인간의 관능적 사랑이 갖는 희열과 멍에, 생식과 파멸의 뿌리 깊은 이중성은 이렇게 생겨난 것이다.
(그리스인의 사랑 중 “소년사랑”을 주제로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