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사유하기 (4) : 영화적 시점

글: 이지영(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시각예술인 영화의 가장 큰 특수성은 일단 ‘보여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이어져 나오는 물음은 누가 무엇을 어떻게 보여주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동일한 대상이나 사태라 하더라도 ‘누가’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보여지는 ‘무엇’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무엇’은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가시적인 ‘누가’와 ‘어떻게’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어릴적 다녔던 초등학교 운동장을 떠올려보자. 어른이 된 지금 그곳을 가면 기억 속의 그곳이 아니라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어린 나의 눈에는 그토록 넓었던 운동장은 사실 아담한 크기의 운동장일 뿐이다. 운동장이라는 대상의 크기는 동일한데도 어린아이의 눈으로 보는지 혹은 어른의 눈으로 보는지에 따라 다른 크기의 대상으로 나타나고, 단지 대상의 크기만이 아니라 그 의미까지도 다르게 나타난다. 만일 어른 눈에는 아담하지만, 아이에게는 거대한 어떤 장소를 영화가 보여주려고 한다면 어떻게 표현할까. 아마도 아이의 눈높이 혹은 그보다 더 낮은 앵글을 선택할 것이고, 광각렌즈처럼 공간의 깊이감을 강조하는 렌즈를 사용하여 실제 장소보다 더 넓어보이게 촬영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대상이 완전히 동일한 크기와 앵글로 보이더라도 의미는 달라질 수도 있다. 영화 처음에 누군가의 시점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바다를 보여주고, 이야기가 진행된 이후에 동일한 이미지가 다시 등장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더이상 동일한 의미를 지닌 이미지는 아니다. 결국 영화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무엇’은 언제나 누군가가 특정한 방식으로 바라본 무엇이다. 따라서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이미지는 누군가의 특정한 시점과 관점을 전제하고 있다. 달리 표현하면 영화의 시점 문제는 지각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그렇다면 영화적 시점-지각 문제는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사람들은 흔히 영화에서의 시점을 (누군가의 시점으로 귀속되는) 주관적 쇼트와 (누구의 시점으로도 귀속되지 않는) 객관적 쇼트로 구분한다. 예를 들어, 영화의 초반에 사건이 일어나게 될 뉴욕 도심의 빌딩숲을 보여주는 설정쇼트 (사건이 일어날 배경 장소를 먼저 보여주는 ‘소위’ 객관적인 배경 제시 쇼트) 를 생각해보자. 일단 이는 누구의 시점으로도 귀속되는 장면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쇼트를 흔히 객관적 쇼트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그런데 이어지는 쇼트에서 건물의 옥상에 있는 누군가가 그 빌딩숲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면, 앞의 객관적 쇼트는 주관적 시점 쇼트로 순식간에 위상이 변한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한 인물이 어떤 건물을 바라보는 쇼트에 이어, 건물을 빙 둘러가며 보여주는 쇼트가 이어진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건물을 보여주는 쇼트를 앞 쇼트의 인물에게 귀속된 주관적 시점 쇼트라고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건물을 보여주는 쇼트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화면 안으로 앞 쇼트의 인물이 들어오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기존의 구분법에 의하면 이 쇼트는 주관적이었다가 객관적인 쇼트로 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하지만 보여주는 자를 보여준다고 이 쇼트가 그리 객관적이라고 말하기도 쉽지 않다)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자면, 술에 취해 혼자 걸어가는 남자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마치 카메라가 술취한 남자의 시점인 듯 비틀거리며 술취한 남자 본인을 보여줄 때, 이 경우는 주관적 시점 쇼트와 객관적 쇼트가 압축(contraction)되어 있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의 경우 1인칭과 3인칭 시점은 문법적으로도 명확히 구분되며 그 위치를 쉽사리 변경할 수 없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객관적 쇼트와 주관적 쇼트의 구분을 확정짓는 것이 곤란한 경우가 빈번하게 나타난다. 만일 이런 일이 예외적인 예술영화에만 등장한다면 상황은 좀 다를 수 있겠지만, 이런 상황은 일반적인 서사 영화는 물론 심지어 관습적인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빈번히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영화적 지각의 성격을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주관과 객관을 계속해서 오고간다? 이에 대해 들뢰즈는 영화적 지각을 ‘반-주관적 이미지(image mi-subjective)’라고 부른 장 미트리의 견해를 받아들인다. 카메라는 인물 속으로 완전히 동화되지도(주관적 시점), 그렇다고 인물과 완전히 구분되는 바깥에 있는 것(객관적 시점)도 아닌 영화와 함께 있는 공존재(Mitsein)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객관적으로 보이는 쇼트라 하더라도 실은 (주관적인)카메라가 그것을 보여주며 함께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고, 아주 주관적으로 보이는 쇼트라 하더라도 그 인물의 시점으로 온전히 종속될 수 없기 때문에 객관적인 성격을 일정 정도 담보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공존재로서의 반주관적 성격이 영화적 지각의 고유한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영화 ‘히든’의 인트로영화적 지각의 반주관적 특성을 통해 영화의 긴장감과 주제를 아주 극명히 드러내주는 사례로 미하엘 하네케(Michael Haneke)의 <히든 Hidden>(2005)이라는 영화를 들고 싶다. 고정 카메라로 조용한 중산층 주택가 골목을 비추는 영상 위로 오프닝 타이틀이 뜬다. 카메라의 움직임도, 사건도 등장하지 않고 오래도록 같은 장면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관객들은 이 오프닝 장면을 설정쇼트 정도로 생각하게 된다. 즉 누군가의 시점에 의한 장면이 아니라 그저 객관적으로 주택가 골목을 비춰주는 장면으로 말이다. 영상의 변화조차 없이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있을 때, 외화면 사운드로 남자와 여자의 대화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때까지도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알 수가 없다. 잠시 후 화면 중간에 가로줄의 노이즈가 발생한다. (컴퓨터 모니터로 다운받은 영화 파일을 보고 있던 필자로서는 ‘다운받은 파일이 잘못 되었나?’하는 의아한 시선으로 화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관객들은 다운받은 파일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감시카메라로 찍은 영상을 주인공 부부에게 보냈으며, 가로줄 노이즈가 만들어진 영상 속의 골목길 풍경은 감시카메라의 시선이자 주인공 부부가 보고 있는 화면을 리와인드하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객관적인 설정쇼트라고 의심없이 믿고 있던 관객들이 뒷통수를 크게 한대 얻어맞는 순간이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히든>의 시점은 마치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Las Meninas>에서 화가의 시선과 왕과 왕비의 시선 그리고 관람객의 시선이 그림 바깥의 한 점, 즉 그림 외부의 관람객의 공간으로 연장된 그림 내부의 소실점과 등장인물들의 시선이 교차하는 점에서 중첩되고 교환되는 것과 유사한 구조를 형성한다.(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미쉘 푸코(Michel Foucault)의 <말과 사물> 1장을 참고하라. 내용도 길지 않으며 재미있는 분석이다.) 벨라스케스의 이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림 내부의 공간(가시적 공간)을 그림 바깥의 공간(비가시적 공간)으로 연장하여 그 안에서 교환되는 시선의 작용과 소실점의 의미 등을 이해해야만 하는 것처럼, 하네케의 <히든> 역시 영화 내부의 디제시스 공간(영화의 서사로 형성된 이야기 공간)만으로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숨겨진(hidden) 의미들을 파악할 수 없다. 결국 비가시적으로 숨겨진 의미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관객의 시선까지 연루시키는 영화적 시선의 교호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를 파악해야만 한다.

오프닝 장면 이후, 이와 유사한 장면이 또 등장한다. 이번엔 아니겠지 하는 순간 이 기대 역시 여지없이 배반당한다. 이런 식의 시선의 장난에 몇번을 속은 관객들은 이제 그냥 보여주는 ‘소위’ 객관적인 쇼트가 나와도 불안해진다. 매 장면마다 이것이 누구의 시선인지를 긴장하며 살피게 된다. 결국 조마 조마하는 심정으로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도 관객들은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끝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다.
영화 ‘히든’의 한 장면 사실 영화의 엔딩크레딧까지 유심히 보는 관객은 매우 극소수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하네케의 이러한 장치 또한 의미심장하다. 이를테면 영화 속 디제시스 공간이 이 영화가 제시하는 전체 공간이 아니며, 엔딩크레딧과 함께 영화는 끝나도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진짜 사건은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이 영화는 스크린을 뛰쳐나와 자신을 둘러싼 현실과 긴밀한 연관 속에 놓일 수밖에 없는 구조를 보여준다. (일반적인 장르 영화나 오락 영화의 경우, ‘영화는 영화’일 뿐이고 영화가 끝나면 영화 속 사건이나 인물의 삶도 끝난다. 우리는 더 이상 그들에 대해 관심이 없다. 그저 두어시간 즐거웠으면 그뿐이다.) 하네케의 <히든>은 영화와 그것을 둘러싼 현실 사이의 명확했던 경계선을 뭉개버린다. <히든>에서는 주관적 쇼트/객관적 쇼트, 가해자/피해자, 영화/현실, 상상적인 것/실제적인 것의 모든 식별가능했던 경계들을 넘나들며, 각각의 이질적인 목소리들이 서로의 차이를 무화시키지 않은 채 함께 웅성거리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매우 불편한 마음으로! 바로 이러한 사태를 들뢰즈는 자유간접화법(discours indirect libre)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들뢰즈는 이 자유간접화법이 앞서 설명했던 영화적 지각의 반주관적 성격의 대응물이라는 파졸리니(P. P. Pasolini)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히든>이라는 차갑고, 불편한 영화의 우회로를 돌아, 다시 영화적 지각의 반주관적 성격으로 되돌아왔다. 파졸리니는 언어학자 바흐찐(M. Bakhtin)의 자유간접화법에 대한 논의를 받아들여, 이것이야말로 자연적 대상에서는 찾을 수 없는 영화적 지각의 반주관적 성격의 대응물이라고 주장한다. 이질적인 주체들의 차별화, 이질적 목소리들의 혼재 등으로 설명되는 자유간접화법에 대해 살펴보기 전에, 먼저 직접화법과 간접화법부터 살펴보자. 아마도 중학교 영어시간에 배웠으리라 짐작되는 매우 쉬운 문법이다. 예를 들어, 직접화법은 He said, “I will go to the beach tomorrow”.와 같은 방식으로 두 개의 분명히 구분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 문장을 간접화법으로 바꿔보자. He said that he would go to the beach the next day.로 바뀐다. 문장부호를 없애주면서 관계대명사 that으로 연결하고, 주절과 종속절의 주어와 시제를 일치시키면, “내일 해변에 가겠다”고 외치던 생생한 목소리는 사라지고 보고자의 목소리라는 하나의 체계로 목소리들은 균질화된다. 바로 이 간접화법에서 주절을 생략하면, 자유간접화법이 된다. He would go to the beach the next day. 이 자유간접화법에서는 보고자의 뚜렷한 위치가 생략되고, 보고되는 자의 목소리가 간접화법에 비해 두드러진다. 하지만 직접화법에서 나타났던 생생한 보고되는 자의 목소리와는 다르다. 자유간접화법에서는 두 언술행위의 주체들 간의 단순한 뒤섞임이나 균등함은 존재하지 않고, 이질적이면서 상관적인 두 주체 간의 차별화만이 존재한다. 목소리들이 동질적이거나 균형을 이루는 것과는 거리가 먼 다성적인(polyphonic) 관계라 할 수 있다.

영어 문법에서 다시 영화로 되돌아오자. 이 이질적인 다성적 목소리에 해당되는 것이 바로 명확히 식별해낼 수 없는 주관적 시점/객관적 시점의 문제가 되며, 이 모든 시점과 더불어 존재하는 카메라의 시점이다. 그래서 영화에서 자유간접화법이 드러나는 방식은 다양해진다. 주관과 객관이 식별불가능하게 혼재된 영화적 지각 자체도 자유간접적이고, 카메라의 존재를 관객에게 느끼게 하는 방식 역시 자유간접적이다. 카메라의 존재를 느끼게 만드는 방식은 안토니오니(M. Antonioni)나 고다르(J. L. Godard)처럼 카메라가 인물과 서사를 따라가지 않고 마치 자신도 하나의 등장인물인양 강박적인(obsessive) 방식으로 버티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을 관객으로 하여금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파졸리니가 많이 보여줬던 방식으로 서사의 구성에서 주절과 삽입절의 위계질서를 페기하는 방식들을 들 수도 있다. 우리는 서사에서 주절과 삽입절에 해당되는 것을 구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라비안 나이트>라는 이야기의 경우, 세라자데 공주가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밤마다 이야기를 하는 것이 주절에 해당되고, 공주가 이야기하는 ‘이야기들’이 삽입절에 해당된다. 그런데 파졸리니의 영화 <아라비안 나이트>에는 세라자데 공주가 아예 등장하지 않음으로써 주절의 확고한 위치 자체가 성립되지 않으며, 이야기되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이야기….등으로 이어지면서, 중심과 주변의 위계질서는 더이상 유지되지 않고 여러 이질적인 이야기들이 불균등한 방식으로 혼재된다. 카메라의 움직임, 서사의 구성 뿐만 아니라, 영화의 자유간접화법은 영화와 현실의 관계로까지 확장된다. 허구와 실제의 구분이 유지되지 않는 새로운 이야기의 형식에 대한 논의에서도 영화작가는 이제 더이상 창조자라기보다는 이 이질적인 목소리들을 배치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담지자로 역할이 변경된다. (이 새로운 이야기의 형식에 대해서는 이후 연재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므로 이번 호에서는 이쯤만 언급하도록 하겠다.)

결국 영화에서 시점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은 영화가 누구의 목소리에 중심적인 지위를 주는지를 파악해보는 일이고, 더불어 카메라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영화가 중심적 지위를 부여하는 인물이 세계와 다른 인물들과 맺고 있는 관계를 살피는 것은 영화가 무엇을 중심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사유하는 것이 된다. 또한 카메라가 자신을 숨기며 말을 하는지 혹은 자신을 드러내며 말을 하는지 역시 영화가 영화속 세계에 어떤 방식으로 관여하고 있는지를 드러내준다.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예로, 카메라가 자신의 존재를 가능한 숨기려고 노력하는 경우 영화는 마치 자신이 객관적이고 투명한 보고자처럼 시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반대의 경우로 브레히트가 말하는 ‘소격효과(Verfremdungseffekt)’의 영화적 버전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방식의 영화가 주장하는 바를 거칠게 말한다면, 영화는 누군가의 시선에서 해석되고 만들어진, 절대 투명하거나 객관적이지 않은 것임을 카메라가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이는 (가시적인) 영화가 (비가시적인) 현실과 맺고 있는 관계를 사유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영화는 그것이 투명성을 주장하든 아니든간에 현실과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 직접적으로 현실에 대해 발언을 해야지만 영화와 현실이 관계맺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관계없는 척한다 하더라도 영화는 현실과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왜곡되었든 간에 관계를 맺고 있을 수밖에 없다. 바로 그 영화와 현실의 관계를 사유하게 해주는 것이 영화적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5

김남우(정암학당)

[에라스무스는 군주들과 귀족들과, 이어 교황들과 추기경들과 주교들을 비판한다. 그들은 주어진 본연의 과업을 남들에게 맡겨두고 자신들은 어리석은 행동만을 일삼는다.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연재에서는 교황들과 추기경들과 주교들에 대한 비판을 이어갈 예정이다.]
우신 Stultitia이렇게 여러분은 내 생각에 어느 정도 나 우신에게 신세를 지고 있는 수사들의 부류들에 관하여, 이들이 예배에 있어서 웃지 못 할 여러 가지 것들과 고함소리를 가지고 일종의 독재 권력을 사람들 사이에서 행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바오로와 안토니오라고 믿습니다. 이제 나는 이렇게 내가 베푼 은공을 모른 체하는 배은망덕한 배우 나부랭이, 경건함을 가장하는 불경한 위선자들에 관해서는 그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제는 군주들과 궁정 귀족들에 관해 몇 가지 언급하겠습니다. 이들은 타고난 혈통에 어울린다 싶게 탁 터놓고 솔직 담백하게 나 우신을 숭배합니다. 콩알 반쪽만큼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들의 삶을 무엇보다 시답지 못한 것으로 기피할 것입니다. 군주의 자리에 앉는 것으로 인해 어깨에 엄청나게 커다란 짐을 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모두가, 배신과 부친 살해를 저지르면서까지 권력을 얻으려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군주의 자리란 곧 사적인 것이 아닌 공적인 업무를 수행함이며, 국가의 공익 이외에는 어느 것도 생각하지 않음이며, 법률의 제정자이며 승인자로서 법률에서 손톱만치도 벗어나지 않음이며, 모든 공직자들과 행정관들이 청렴결백하게끔 이끌어 감이며, 행운별처럼 도덕적 탁월함으로 인민에게 커다란 안녕을 가져다줄 수도 있고 불운의 행성처럼 심각한 불행을 가져다줄 수 있는 자로서 만인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자리이며, 필부의 과오처럼 그의 잘못을 장차 아무도 모르게 깊이 숨길 수 없는 자리이며, 아주 조금이나마 정직함을 잃으면 그 결과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에게 회복 불가능한 역병을 초래하는 자리이며, 군주의 운명에 동반하는 많은 것이 그를 정의로부터 끌어내릴 것이기 때문에 설령 속임수에 의해서라도 쾌락과 방종과 아첨과 사치 등에 빠지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고 더욱 염려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마지막으로 반역과 원한과 전쟁과 폭력은 말고라도 제 아무리 사소한 잘못일지라도 죗값을 치르게 하시며 행사한 권력만큼 이를 더욱 엄중히 따져 물으실 왕 중 왕에게 두려움을 가져야 할 자리가 군주의 자리입니다. 내 말하노니, 이런 것들과 이런 종류의 많은 것들을 생각한다면, 물론 이를 생각할 수 있을 만큼 현명하다면 말이지만, 결코 군주 된 자는 잠과 식사를 즐겁고 유쾌하게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군주들은 나 우신의 도움을 받아 모든 근심걱정을 신들에게 맡겨 두고 염려와 고민을 치워 둔 채, 영혼에 불쾌감이 들지 않도록 듣기 좋은 말만을 하는 자들에게 귀를 기울입니다. 이들은 열심히 사냥하고, 명마를 사육하고, 행정과 군인 요직을 판매하고, 백성들의 주머니를 털어 자신의 금고를 채울 새로운 방법을 매일매일 고안하고, 제 아무리 불공정한 일이지라도 명목을 바꾸어 공정하게 포장하는 것으로 자신들이 군주의 본분을 충실하게 수행하였다고 믿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백성들의 마음을 제 편으로 얻기 위해 백성들에게 아첨하는데도 힘을 기울입니다. 여러분은 그려 보기 바랍니다. 법률적 지식은 전무하고,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흡사 적대자이고, 개인적인 유익만을 추구하고, 쾌락에 흠뻑 젖어 학문과 자유와 진리를 혐오하고, 국가의 안녕은 전혀 생각하지 않으며 오로지 모든 것을 자신의 욕망과 편리에 따라 측량하는 인간들을 말입니다. 더불어 이들이, 관련된 모든 덕목을 하나로 묶어 상징하는 황금 목걸이를 걸고 있으며, 모든 영웅적 용기에 있어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음을 뜻하는 진귀한 보석 왕관을 쓰고 있으며, 정의와 어느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공정을 상징하는 왕홀을 쥐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국가에 대한 어떤 극진한 헌신을 뜻하는 자줏빛 용포를 입고 있는 모습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오늘날 군주들이 이런 장식물들에 비추어 자신들의 삶을 돌아본다면, 내 생각에 이들은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행여 익살스러운 해설자가 나타나 이런 모든 비극적 의복을 조롱하지 않을까 염려할 것입니다.

그럼 궁정 귀족들은 어떻습니까? 이들 대부분은 더할 수 없을 만큼 알랑거리며 비굴하고 어리석고 천박합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자신들이 모든 일에 있어 제일 앞서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다만 한 가지 겸손을 보이며 양보하는 것이 있는바, 금붙이며 보석들이며 자줏빛 관복 등 덕과 지혜를 상징하는 장신구들로 몸을 휘감은 반면 정작 덕과 지혜의 연마 자체는 남들에게 양보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군주를 ‘주인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위가 주었음에, 군주에게 몇 마디 인사를 건넬 수 있음에, 군주를 부르며 ‘근엄하시고 존엄하시고 위대하신’ 등의 굉장한 호칭을 줄줄이 엮어 넣을 줄 앎에, 이런 낯간지러운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함에, 이런 아부를 멋들어지게 해냄에 즐거워합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궁정 귀족 된 자들이 갖추어야 할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들의 삶을 좀 더 가까이에서 자세히 살펴본다면, 여러분은 이들이 진정한 파이아케스 사람들 혹은 페넬로페의 청혼자들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자세한 것은 나보다 메아리의 여신이 더 잘 전달해 줄 것입니다. 이들은 벌건 대낮까지 잠을 자는데, 사제들을 고용하여 침대 옆에 대기시켜 놓았다가 침대에 누운 채로 재빠르게 예배를 마치고 나서 곧 조반을 먹는데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곧 점심 식사가 이어집니다. 그리고는 주사위 놀이, 장기 놀이, 점치기, 어릿광대, 익살꾼, 매춘부, 색정 희롱, 음담패설 등이 이어집니다. 그 사이 한두 번의 간식이 있습니다. 다시 이어 저녁 식사, 그리고 술잔치가 유피테르에게 맹세코 한 판 이상 벌어집니다. 이런 방식으로 이들은 이런 삶에 물리지도 않는지 몇 시간, 며칠, 몇 달, 몇 년, 몇 백 년이고 이렇게 살아갑니다. 나 우신조차도 때로 이들이 허풍 허세를 칠 때면 역겨움을 느낄 정도인바, 귀족 여인들은 하나같이 모두 치맛자락을 남들보다 길게 늘어뜨릴수록 더욱 신적으로 보인다고 믿는가 하면, 귀족 사내들은 그들의 유피테르와 남들보다 가까운 사이로 보일 수 있도록 다른 사람들을 팔꿈치로 밀쳐 내며, 목에 걸고 있는 목걸이가 남들보다 무거울수록 더욱 스스로 대견해합니다. 그래 봐야 결국 돈 자랑에 힘자랑하는 것밖에 안 되는데도 말입니다.

왕정 귀족들의 모습에 열심으로 도전하는 혹은 거의 능가하는 자들로 교황들과 추기경들과 주교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외관을 가까이 자세히 살펴볼 것 같으면 이렇습니다. 줄무늬 장식이 있고 눈처럼 흰 것이 인상적인 복장은 한 점의 과오가 없는 삶을 의미하며, 쌍으로 모자뿔을 세우고 그 꼭지에 매듭 하나를 매어 둔 주교관은 이를 테면 구약과 신약에 대한 공히 절대적인 지식을 상징하며, 손을 두루 감싸고 있는 주교 장갑은 인간 세속 어떤 일에도 손대지 않으며 오로지 성사만을 주관하는 정결함을 나타내며, 지팡이는 그들에게 맡겨진 양 떼를 지극한 정성으로 돌보며 깨어 있음을 가리키며, 앞에 내세운 십자가는 분명코 모든 인간적 욕망을 이겨 냈음을 웅변합니다. 만약 이들 가운데 누군가가 자신의 복장과 기구가 갖는 이런 의미들을 음미해 보았다면, 내 말하노니, 그의 삶은 온통 두려움과 불안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들은 스스로의 만족에만 매달려 매사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나머지 모든 과업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혹은 거느린 수사들에게나 혹은 소위 보좌 사제들에게 맡겨 둔 상태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호칭 가운데 ‘주교’가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의식하지 못하며, 주교란 수고하고 돌보고 간수하는 자임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돈을 긁어모으는 일에 관하여 그들은 ‘주교직’을 아주 정확히 수행하는바, ‘눈먼 파수를 보지’ 않습니다.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탐험 (6)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탐험 (6)

글: 이정호 교수(방송통신대)
주제 1: 그리스인의 사랑

 

3. 고대 그리스인의 동성애 – 소년 사랑(2)

부상을 당한 파트로클로스(수염이 난 사람)의 팔에 붕대를 감아주고 있는 아킬레우스. 여기서는 플라톤의「향연」에서 파이드로스가 지적한 것처럼 파트로클로스가 에라스테스로 그려지고 있다.(트로이아 지방에서 발굴된 도기 그림)

기묘하게도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는 소년사랑을 암시하는 내용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일리아스」에 나오는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우정이 소년사랑으로 비쳐지는 것도 후대 작가들이 그렇게 다시 그렸기 때문이다. 호메로스 작품에 소년사랑이 없다는 사실은 우리들을 매우 당혹스럽게 만든다. 호메로스 시대에는 소년사랑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럴 경우 우리는 소년사랑이 호메로스 이후에 아주 폭발적으로 발달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런데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은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당시의 생활상을 다 그리고 있지도 않을 뿐더러, 표현기법의 측면에서도 두리 뭉실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그 최종적인 형태를 드러낸 것이 소아시아의 이오니아 지방인 것을 고려한다면 소년사랑과 관련해서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플라톤의 「향연」(182D)을 보면 연설에 참여한 파우사니아스가 엘리스 지방과 보이오티아 지방에서는 소년사랑에 대해 너그럽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이오니아 지방에서는 그것을 추한 일로 받아들여졌다고 단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제도상으로는 스파르타가 지배하고 있었던 펠로폰네소스의 도리스 지방에서 소년사랑이 유래했다는 점이다.

아리스토게이톤과 하르모디오스의 조각상(나폴리 고고학 박물관 소장)

한편, 소년사랑으로 고양된 뜨거운 열정이 참주를 타도하는 영웅적인 기개로 나타난 경우도 있었다. 「사랑에 관해서(Erotikos)」라는 책을 쓴 폰토스의 헤라클레이데스(Herakleides ; 기원전 4세기의 플라톤-피타고라스학파 철학자)는 그러한 경우에 속하는 가장 유명한 사람들로서, 페이시스트라토스(Peisistratos) 가문 출신 참주 힙파르코스(Hippparchos)를 살해한 하르모디오스(Harmodios)와 아리스토게이톤(Aristogeiton)을 들고 있다.(헤로도토스「역사(Historiae)」5·55 이하를 참조). 그래서 아테네 사람들은 그 두 사람을 기념해 조각상도 만들었고 향연이 베풀어질 때면 종종 그들의 행위가 정치적 해방을 가져다 준 영웅적 행위로 찬미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투퀴디데스 -그는 페이시스트라토스 가문의 통치에 대해 일부 호의적인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는 그것을 순전히 사사로운 연애사건으로만(dia er?tik?n xyntychian) 적고 있다. 아리스토게이톤은 연하의 하르모디오스의 에라스테스 즉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참주 힙파르코스가 하르모디오스를 열렬히 쫓아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자 아리스토게이톤은 결국 그가 권세를 이용해 자기의 애인을 빼앗아 갈 것이라고 여겨 힙파르코스를 살해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6·54)

또, 헤라클레이데스는 앞서 말한 책에서 위와 같은 영웅적인 태도의 예를 하나 더 들고 있다. 카리톤(Chariton)은 참주 팔라리스(Phalaris)가 자신이 사랑하는 소년 멜라닙포스(Melanippos)에게 가한 모욕에 분노하여 보복을 시도 한다. 그러나 보복은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게 된다. 그러나 카리톤은 고문을 받으면서도 의연하게 연인 멜라닙포스의 이름을 발설하지 않는다. 하지만 멜라닙포스는 카리톤을 구하려고, 자발적으로 자신이 그의 에로메노스임을 털어놓는다. 참주는 이러한 멜라닙포스의 행동에 크게 감동하여 두 사람 모두를 사면해준다. 에로스에 의해 고양된 사랑과 우정의 연대감이 얼마나 크고 견고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은 이 밖에도 부지기수이다. 그야말로 어느 시대이건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amor vincit omnia).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의 계보를 더듬어 가면, 영웅적인 것뿐만 아니라 슬프고 애절한 이야기도 적지 않다. 「그리스 안내기(Peri?g?sis t?s Hellados)」를 쓴 파우사니아스(Pausanias)는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의 입구에 세워진 에로스의 제단 비석글 하나를 전해주고 있다.(1·30·1). 아테네의 거류외인(metoikos)이었던 티마고라스(Timagoras)는 멜레스(Meles)라는 소년을 너무 사랑했지만, 티마고라스는 멜레스에게 사랑을 얻지 못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가파른 절벽 위에 서 있었을 때, 멜레스는 “만약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이 절벽에 뛰어내릴 수도 있어요?”라고 물었다. 티마고라스는 그 말을 듣고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멜레스는 그것에 몹시 충격을 받아 몸져 누워 있다가 얼마 후 자신도 그 절벽으로 가 몸을 던졌다.

물론 소년사랑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양태들 속에는 부드러운 울림도 있다. 우선 기원전 5세기경에 앗티카 지방에서는 디오뉘소스 축제의 행렬에서 미소년들에게 바쳐질 상아로 된 하프가 되고 싶다고 하는 어떤 한 남자의 노래가 향연자리에서 많이 불려 졌다고 한다. 물론 이 노래의 둘째 절에서는 맑고 깨끗한 마음을 가진 여인이 몸에 걸치는 순금의 액세서리가 되고 싶다는 내용도 이어지고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팔라틴 선집(Athologia Phalatina)」에는 플라톤의 시 몇 편이 들어 있긴 하지만 그것들은 거의 위작임이 분명하고, 다만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3, 29-32)가 아리스팁포스(Aristippos)의 저작에서 인용하고 있는 8편의 시는 진위여부를 두고 문헌학자들의 관심거리가 되어 왔다. 그 가운데에는 플라톤이 친구 디온(Dion)을 추억하며 “아, 나의 마음을 사랑으로 미치게 만든(ekm?nas) 디온이여”라고 노래한 구절이 들어 있다. 물론 플라톤이 동성애를 비난하고 있다는 점에서 플라톤과 디온의 관계를 억측할 필요는 없겠지만 당시 유명 인물들을 비방하기로 이름 난 아리스팁포스(철학자 아리스팁포스는 아니다)로서는 아마 우리의 생각과는 달랐을 것이다. 그래서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인용한 시들 가운데에는 노골적으로 에로틱한 내용을 담은 6편이 포함되어 있고 그곳에는 소크라테스 주변 사람들의 이름도 눈에 띤다. 이 시들은 많은 논쟁 끝에 문헌학적인 측면에서 발터 루드비히(Walther Ludwig)의 주장이 제기된 이후 위작 쪽으로 기울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 연구 결과 때문에 그 시들을 읽는 기쁨까지 손상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시에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더할 나위 없는 상냥함과 그리움이 가득 담겨 있다

 

별을 쳐다보는 너야말로 나의 별

아, 넓은 밤하늘이라도

되고 싶구나. 그 수많은 눈으로

너를 볼 수 있을 테니까.

 

앞에서 말한 「팔라틴 선집」에 실린 이른바 플라톤의 시들에도 비록 여인을 향해 경박하게 쓰인 것이긴 하지만 위와 비슷한 구도를 담은 시가 실려 있다.(5·83과 84)

 

아, 산들바람이라도 되었으면.

그대가 햇살을 받으며 걸을 때

그대는 바람이 되어 날리는 나를

부드럽게 가슴에 맞아 줄 테니까

아, 진홍색 장미라도 되었으면.

그대의 손이 나를 꺾어

그대의 눈 같은 젖가슴에

소중한 보석처럼 끼어 놓을 테니까

 

또, 장난스런 사랑을 노래하는 「아나크레온풍 시선집(Anacreonteen)」 가운데에는 사랑하는 여인이 끊임없이 자기에게 눈길을 주도록 그녀의 거울이 되고 싶다고 노래하는 한 남자의 시도 실려 있다.(22·5).

에라스테스와 에로메노스(도기 그림)

지금까지 우리는 소년사랑에 대해 소년사랑이 드러내는 다양한 양태들 중에서 다소 대비적인 것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해왔다. 하지만 수많은 양태를 가진 소년사랑들 각각에 대해 도덕적 가치를 논한다거나 어디까지가 육체적인 탐닉이고 어디까지가 정신적인 사랑인지를 구별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 군사 공동체 내에서 소년사랑이 가지고 있는 헌신과 교육의 측면은 그 구별 자체를 더욱 애매하게 만든다. 이를테면 고대 그리스에서 크레타섬은 소년사랑의 풍속의 발상지로서의 명성을 엘리스 지방과 분담하고 있었는데 스트라본(Strabon)은 다음과 같은 기묘한 크레타의 풍습을 전하고 있다(「지리지(Geographica)」10·483). 사랑하는 사람, 즉 에라스테스는 주변 사람들의 승인을 얻어 젊은 소년 에로메노스를 유괴한 다음 서로 2개월간의 집단생활을 보낸 후, 소년을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면서 성대한 잔치를 베풀고 갑옷 한 벌을 주었다는 것이다. 소년 사랑이 주로 군사교육의 수단이었음을 명시적으로 증언하고 있는 스파르타와는 달리 크레타의 소년사랑에 관해서는 별 증거가 없어 추측에 불과한 것이긴 하지만 이러한 풍속의 기원이 군사·전쟁 지향의 사회에서 있었던 것임은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참고로 아리스토텔레스는 한때 크레타 섬에서 동성애가 인구과잉 억제책으로 법제화된 적이 있다고 전하고 있다.「정치학」2·1272a). 에라스테스와 에로메노스들 끼리 긴밀하게 묶여진 이른바 “테바이의 신성 부대”(hieros Lochos t?n Th?b?n)는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이 점을 증언하고 있는 대표적인 경우이다.

무장한 한 쌍의 테바이 신성부대 병사

 

기원전 371년 레욱트라에서 스파르타가 마케도니아에게 운명적인 패배를 당했을 때도, 펠로피다스(Pelopidas)가 인솔하는 이 “신성 부대”가 전투의 최전선에 서 있었고, 338년 그리스가 존망을 걸고 싸운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도 그들은 마지막 한 명까지 사력을 다해 싸웠다. 플루타르코스는 이 전투가 끝난 다음에 마케도니아 왕 필립포스 2세가 전장을 시찰하면서 신성부대 150쌍의 병사 300명 모두가 서로 꼭 안고 죽어 있는 것을 보고 감격해 하는 장면을 전하고 있다. (「펠로피다스」183) 마케도니아왕은 그들 모두가 사랑하는 사람과 소년들임을 알고 눈물을 흘리며 다음과 같이 외쳤다고 한다. “이 사람들이 무엇인가 수치스러운 일을 했다거나 혹은 당했다고 잘못 추측하는 자들은 반드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플루타르코스는 이들에 대한 보고를 통해 테바이 신성부대의 순결성을 부각시키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생존 중에도 아무런 수치스러운 일 없이 순결한 사랑만을 나누었을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플루타르코스 이외의 고대의 저작가들이 보이오티아 지방에 도착해서 전하고 있는 다른 증언들을 보면 그들의 관계에서도 여전히 관능적 쾌락이 넘실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이 동성애 부대에 붙여진 “신성한(hieros)”이라는 형용사는 그 자체로 소년사랑이 가지고 있는 애매하고도 복잡한 특성을 보여주는 매우 함축적인 표현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는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 사이에 어떠한 성적인 색조도 발견되고 있지 않지만, 후대에 이르러서는 그들의 관계를 육체적 사랑까지 수반하는 연인 사이로 그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랑 역시 신성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를테면 아이스퀼로스가 쓴 「뮈르미돈 사람(Myrmidones)」에서는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의 열렬한 에라스테스로 등장한다. 플라톤의 「향연」(180A)에서 파이드로스는 아이스퀼로스가 그들의 진짜 관계 (즉, 파트로클로스가 에라스테스, 아킬레우스가 소년 에로메노스)를 뒤바꾸어 놓았다고 비난하고 있지만. 아이스퀼로스는 그 작품 가운데 한 장면에서 아킬레우스가 쓰러진 파트로클로스를 끌어안고 비통하게 울부짖으며 한탄하는 모습을 아래와 같이 그리고 잇다.(135 f. N. 228 f. M.)

 

그대는 허벅지의 맑고 깨끗한 성역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랐구나.

수천 번 입맞춤을 했거늘 아무런 은혜도 모르는 너.

 

또,

여기서 함께 숙영한 것이랑

나와 하나가 된 그 경건한 허벅지를

 

보다시피 아이스퀼로스는 호메로스와 달리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사랑을 아주 농밀하게 그리고 있다. 그런데 아이스퀼로스는 흥미롭게도 그 농밀한 사랑을 표현하는 문맥에서 마치 훗날 신성부대에 붙여질 수식어를 미리 준비라도 해주듯이 매우 종교적인 성격이 강한 어휘를 끌어 들이고 있다. 이를테면 우선 첫 번째 인용 단편에서는 허벅지를 설명하는 sebas hagnon이 눈에 띤다. sebas는 외경의 대상을 가리키지만, 이 명사는 자주 종교적인 영역에서 hieros와 함께 바야흐로 “외경스러움”, “신성함“으로 번역되는 말이다. ”순수한, 맑고 깨끗한, 성스러운“을 의미하는 hagnon이라는 형용사도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동시대의 작가 에우리피데스의 「힙폴뤼토스(Hippolytos)」(1003)에서도 그런 용례가 나온다. 그곳에서 힙폴뤼토스는 더럽혀지지 않은 자신의 몸(demas)을 사랑(관능적 쾌락)으로부터 벗어난 hagnon한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또, 둘째 단편에서도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의 허벅지와 하나된 것(homilia)을 경건하다(eusebes)고 표현하고 있다. 이때 eusebes라는 말의 의미는 sebas라는 명사와 친족 관계에 있는 말로서 신성한 것에 대한 외경심을 포함하고 있는 말이다.

그러면 아이스퀼로스(기원전 525?-456)나 에우리피데스(기원전 484-406)는 왜 육체적 관계를 동반하는 동성 사이의 사랑을 표현하면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종교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그 해답을 바로 그들의 뒷시대를 살았던 플라톤(기원전 428-348)에게서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플라톤의 「향연」을 읽다보면 초반에는 소년 사랑을 중심으로 에로스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이내 에로스가 성적 열망을 넘어서 마치 사다리를 타고 오르듯 점차 진리를 추구하는 고양된 정신으로 승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이스퀼로스는 당대의 소년 사랑을 노래하면서 이미 소년사랑 속에 들어 있는 그러한 정신적 요소를 강조하려고 한 것일까 아니면 한편으로 그것을 훨씬 넘어선 플라톤적인 에로스에로의 승화를 꿈꾸었던 것일까? 아무려나 우리는 이렇게 해서 이제 플라톤의 에로스론, 이른바 “플라토닉 러브”에 다가서게 된다.

(다음에 “4. 플라톤의 에로스” 계속)

인사드립니다

사이트 구성이 색달라서 영 어색합니다만

암튼 인사는 해야 될 거 같아서 용기를 내었습니다.

오늘 신규가입 한 김옥렬(남,58세,경기 안성)입니다.

남 얘기 같던 철학이라는 단어를 정식으로 사용하는 사이트에 오기는 처음 입니다.

언감생심 이 나이에 무슨 철학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겁을 상실한 채 귀만 가지고 왔습니다.

좋은 말씀은 새겨 듣고,

다양한 생각들에 대해 지혜로운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듣고, 배우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4)

김남우 (정암학당)

[우신은 삶의 행복이 사태의 올바른 인식이 아니라, 허상에 달렸다고 주장한다. 거짓과 아부와 허상 등은 모두 어리석음에게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아도취는 자기 자신을 위무하는 것에 다름 아니며,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것을 해주는 경우에 이것을 ‘아부’라 합니다. 오늘날 아부를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지만, 그래도 아부는 사태 자체보다는 언어에 현혹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힘을 발휘합니다. 사람들은 아부와 진실함이 서로 모순되기 때문에 도저히 가까울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말 못하는 짐승들을 예로 살펴보자면 그런 것도 아닙니다. 개처럼 착 달라붙으면서도 진실한 짐승은 또 어디 있습니까? 다람쥐처럼 알랑거리며 사람들에게 진실한 동물은 또 무엇입니까? 설마 포학한 사자들이나 야성의 호랑이들 혹은 거친 표범들이 인간 삶에 더욱 유익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테니 말입니다. 물론 전적으로 해악을 끼치는 아부도 있는바, 이로써 몇몇 악의적인 냉소주의자들은 상대방을 파멸로 이끌기 위해 가련한 사람들을 유인합니다. 하지만 나 우신을 따르는 아부는 호의적이며 선량하여, 아부와 반대되는 직언, 혹은 호라티우스의 말처럼 우악하고 신랄하고 귀 따가운 사설보다는 훨씬 덕에 가깝다 하겠습니다.1) 이런 아부는 낙담한 영혼을 일으켜 세우며, 어둡고 우울한 사람에게 활기를 주며, 풀죽어 늘어진 몸에게 자극을 주며, 멍청하게 넋이 나간 인간을 일깨우며, 병에 지친 육신에게 고통을 덜어 주며, 감사납고 매몰찬 인사를 나긋나긋하게 녹이며, 사랑으로 인연을 맺어 주며 맺어 준 사랑을 붙잡아 둡니다. 또 어린 학생들이 책을 붙잡고 공부하도록 부추기며, 노년을 는실난실 들뜨게 하며, 송덕을 가장하여 심사 불편이 없게 군주들을 훈계하여 가르칩니다. 정리하면 아부는 누구나 스스로에게 흡족하고 기뻐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인바, 이는 행복의 한 부분 혹은 행복의 요체라 하겠습니다. ‘노새끼리 서로 가려운 데를 긁어 주는 것’보다 제격인 일이 있겠습니까? 아부가 존경받는 웅변술의 큰 부분을 차지하며, 의학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며 시학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주장하지 못할까 마는, 아무튼 아부는 인간 삶 전체를 달콤하게 하는 꿀이며, 살맛을 북돋는 양념입니다.

사람들은 거짓에 속는 것이 불행한 일이라 합니다만, 실은 거짓에 속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불행입니다. 인간 행복이 사태의 진상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엄청난 착각입니다. 행복은 허상에 달렸습니다. 인간 만사는 변화무쌍하고 황홀난측하여, 철학자들 가운데 가장 덜 오만하다 할 나의 아카데미아 학파 사람들이 옳게 판단하였던바,2) 무엇 하나 제대로 분명히 사태를 파악하기란 아예 무망한 일이며, 설혹 무언가 사태의 실마리가 보였다 한들 이는 드물지 않게 즐거운 인생에 오히려 성가실 뿐입니다. 더군다나 인간의 영혼은 진상보다는 차라리 거짓에 끌리기 쉽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 이에 대한 명백한 증거를 요구한다 치면, 교회의 설교시간을 보기 바랍니다. 설교자가 심각한 말씀을 전하려고 하면, 사람들은 모두 꾸벅거리며, 하품하며 싫증을 냅니다. 사제의 사설 ― 아니 설교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내가 실수했습니다 ― 에 흔히 있는 일인바 꼬부랑할망구의 옛날이야기가 피어오르면, 사람들은 모두 눈을 번쩍 뜨고 허리를 피며 입을 벌립니다. 심지어 성인이 이야기를 술술 재미지게 풀어내거나 솔깃하게 지어 낸다면, 이에 대한 예로 여러분은 게오르기우스 혹은 크리스토포루스 혹은 바르바라 등의 성인들을 떠올릴 수 있을 터인데, 사람들은 이 성자를 베드로 혹은 바오로 혹은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경건하게 경배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것은 지금 말길에서 벗어나는 것이니 이쯤 합시다.

그러니 행복에로의 접근은 얼마나 적은 비용으로 가능합니까? 사태의 진실을 파악해야 한다면 이것은 대단한 수고를 지불해야 하는 일이며, 문법과 같이 하찮은 일조차도 값싼 것은 없습니다만, 거짓은 제일 쉬운 일인바 가진 허상만큼 혹은 가진 허상보다 훨씬 큰 행복에 이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소금에 절여 삭힌 고기를 먹으며, 어지간한 사람도 그 역겨운 냄새를 견딜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마치 천상의 음식이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묻거니와 이 사람의 행복은 무엇에 달린 것입니까? 반대로 어떤 사람이 별미라 할 상어알 젓을 메스꺼워한다면, 이 사람의 행복은 무엇에 달린 것입니까? 또 만일 무지막지하게 못생긴 아내를 보면서 마치 베누스 여신과 경합을 벌일 만큼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남편이 있다면 이는 진실로 아름다운 아내를 가진 것과 진배없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만일 주홍과 노랑으로 아무렇게나 그려놓은 그림을 쳐다보며 경탄을 금치 못하여 아펠레스 혹은 제욱시스의3) 그림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실제 저 유명한 화가들의 위대한 그림을 비싼 돈을 치르고 구입하고도 그림 감상에서 그저 엇비슷한 정도의 쾌락을 얻는 사람보다 훨씬 행복하다고 할 것입니다. 나는 나와 같은 이름을 쓰는 이를 알고 있습니다.4) 그는 새로 얻은 부인에게 선물로 인조 보석을 선물하면서, 청산유수와 같은 말솜씨를 발휘하여 그 보석이 천연의 진품 보석이며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한 것이라고 믿게 만들었습니다. 내 묻거니와, 그런 보석으로 눈과 영혼을 충분히 배부르게 먹이고, 가짜 보석을 마치 굉장한 보물인 양 감추고 아낀다면 가짜든 진짜든 여인에게는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남편은 아내의 착각을 이용하여 비용을 아꼈으며, 많은 돈을 주고 사들인 선물로 아내를 감동시킬 때와 마찬가지로 아내를 자신에게 붙들어 두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습니다. 또한 플라톤의 동굴에 묶여 있는 사람들은 온갖 다양한 사물의 그림자와 모상에 경탄을 금치 못하며, 진상이 무엇인지 알기를 원하지 않으며 지금 그대로 만족한다고 할 때, 동굴로부터 탈출하여 세상 온갖 사물들의 진상을 알게 된 현자와 이들은 어떤 차이가 있다고 여러분은 생각합니까? 루키아노스가 이야기한 부자 뮈킬로스가 만일 영원히 황금의 꿈을 꿀 수 있었다면, 그는 결코 다른 행복을 바라지 않았을 것입니다.

차이가 전혀 없으며,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나는 차라리 허상에 빠진 어리석은 쪽을 선택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먼저 허상을 선택한 경우가 훨씬 비용이 들지 않는 것이 분명한 즉, 다만 그렇게 생각하고 믿어 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는 허상의 억견은 대다수의 사람들과 함께 나눈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소유이든지 함께 누릴 사람들이 없다면 하나도 즐거울 수 없는 법입니다. 그러나 지혜는 설령 있다 한들 매우 소수에게만 국한되어 있음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수백 년 동안 희랍인들을 현자로 다만 일곱 명을 헤아리고 있을 뿐입니다. 물론 칠현인을 자세히 파고들면, 아니면 내 목숨을 내놓겠는바, 그들 가운데는 얼치기 현자가 끼어 있으며, 혹은 그들 가운데 3분의 1 정도만 현인인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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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라티우스 <서간시> 1, 18, 6행

2)여기서 ‘오만한 태도’와 관련하여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 21d이하 (최명관 역, 종로서적, 1981, 47쪽)을 보라. “오오 아테네 시민 여러분, 저는 다음과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그 사람은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지자라고 여겨지고 있고 자기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저는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에게, 당신은 지자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분명히 알게 하려고 힘썼습니다.”

3)아펠레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궁정화가였다. 제욱시스는 기원전 425년 이전에 아테네를 찾은 화가로서 소크라테스 등과 교류하였다. 남부 이탈리아 크로톤의 헤라 신전에 헬레네의 초상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4)아마도 토머스 모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ME 133쪽 참조).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탐험 (5)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탐험 (5)

글: 이정호 (방송통신대 교수)
주제 1: 그리스인의 사랑

 

3. 고대 그리스인의 동성애 ? 소년사랑(1)

고대 그리스인들의 사랑을 이야기하면 보통 동성애를 많이 떠올린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인들의 동성애는 우리가 오늘날 생각하는 동성애와 거리가 멀다. 오늘날의 동성애는 성인 남자들끼리 혹은 여자들끼리의 사랑이지만 고대 그리스의 동성애는 주로 어른 남자와 소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형태의 동성애는 개념적으로 당시에 불려 졌던 그대로 소년사랑(paiderastia)으로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 이러한 양태의 동성애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성추행에 해당하는 아주 혐오스러운 것으로 비쳐지겠지만 고대 그리스 사회 특히 귀족들의 생활 속에서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던 일상적인 현상의 하나였다.

그렇다고 이러한 소년사랑이 고대 그리스의 수많은 도시국가들 전체에서 그리고 전 시대에 걸쳐 하나같이 존재했었던 것은 아니다. 아마도 소년사랑은 그리스의 초기 정착사가 보여주듯이 가장 강력했던 전시 동원 체제를 갖추고 있었던 스파르타에서 늘 전쟁에 대비해야 하는 남성 중심의 집단생활 속에서 남성들 간의 명예를 얻기 위한 경쟁적 욕구, 공동생활을 통해 드러나는 남성들 간의 교감 등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하였을 것이고 그 후 점차 아테네 등으로 퍼져 나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까닭에 고대 그리스의 소년사랑은 성인 귀족들의 소년들에 대한 교육과정과 맞물리면서 특이하게도 발생 당시부터 일단 겉으로는 전시를 대비한 교육적 동성애의 면모를 띠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관계 또한 기본적으로 쌍방 간에 욕정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었다. 나이든 성인 남자가 주도권을 쥐고 교육을 수반한 덕과 사랑을 베풀고 그에 따른 성적 쾌락을 얻으며, 젊은 소년은 나이든 쪽의 경험과 덕을 배우고 그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그에 따른 ‘호의에 찬 친분’(philia)과 후원을 얻는 것이 통상적인 소년사랑의 양태였다. 그래서 그들을 부를 때 나이든 쪽은 “사랑하는 자, 에라스테스(erast?s)”라고 부르고 소년은 “사랑받는 자, 에로메노스(er?menos) 또는 파이디카(paidika)”라고 불렀다.

서로 입을 맞추고 있는 에라스테스와 에로메노스. (도기그림, 루브르 박물관 소장)

이렇게 그들의 관계는 뚜렷한 구별이 있었다. 요컨대 사랑을 하는 건 나이든 성인 남성 쪽이다. 이처럼 “능동적인 성역할과 수동적인 성역할” 간의 구별은 성에 관한 고대 그리스적 사고의 일반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이 관계는 한시적인 것이었으며 이런 한시적인 관계가 끝난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이성애로 진전하였다. 고대 그리스의 동성애가 갖는 이러한 고유한 특징 때문에 고대 그리스에서는 동성애를 하면서 이성애를 병행하는 것 또한 이상한 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동성애는 용맹한 전사로서의 항시적인 젊음을 꿈꾸는 에라스테스의 열망과 성인 어른의 경험과 덕망을 배워 훌륭한 전사로서 성장하기를 원하는 어린 에로메노스의 욕구가 결합하여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에로메노스의 젊음이 종결되는 시기 즉 수염이 나는 시기에 이르면 자연스럽게 관계는 종결되고, 성인 남자는 이성애로 진행하고 소년은 성장하면서 점차 또 다른 에라스테스가 된다. 소년에 대해 사랑하는 쪽은 30-40세 의 성인어른으로서 여성과 결혼한 기혼자 일 수도 있고 나중에 결혼할 수도 있다. 소년이 수염이 난 후에도 동성애를 지속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고, 플라톤의 「향연(Symposion)」에 나오는 파우사니아스와 아가톤 처럼 평생을 두고 동성애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는 오히려 바람직스럽지 않은 일로 여겨졌다.

그리고 염두에 두어야할 것은 현대와는 달리 고전기 그리스 사회에서 남자와 여자의 구혼과 그에 따른 결혼은 낭만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기본적으로 전시동원체제인 사회에서 남자들은 여성들과 엄격하게 분리된 생활을 해왔고 혼기에 이르면 순전히 부모들이 정해준 14세 정도의 어린 여성과 결혼을 했으며, 결혼 생활에서도 남성과 여성의 역할 분리는 엄격하게 유지되고 활동 공간 또한 나뉘어져 있어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결혼한 부부로서의 행복한 생활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결혼한 여성의 임무는 기본적으로 출산과 가사, 아이들을 기르는 것이 기본적인 임무였고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 연유로 고전기 고대 그리스에서 ‘낭만적 사랑’은 자유인 신분의 성인 남자들과 정부(情婦 hetaira)들 간에, 또는 그들의 남자 상대자들 간에(그렇게 흔하지는 않지만) 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이른바 사랑에 대한 감정은 자유인 신분의 남자들 사이의 동성애, 즉 성인 어른과 소년 사이의 동성애 관계에서 주로 표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도 일반인 모두에게 허용된 것은 아니었고 명예로운 전사로서 성장해가길 욕망하는 일부 귀족 계층에 국한된 것으로서 이른바 그들만의 성(性)의 고급 영역이었다. 남성들의 생활은 기본적으로 훌륭한 전사로서 성장해야한다는 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에 그에 따른 환경적 조건에 따라 남성들 간의 성애가 더욱 조장되는 측면이 있었다. 특히 알몸으로 이루어지는 김나지움에서의 레슬링은 빛나는 젊음들끼리 육체의 아름다움을 관조하고 서로 접촉하는 대표적인 귀족 남성들의 특권적 경기이자 훈련과정이었다. 게다가「향연」에서 보여지듯 남성들만의 심포지온 자리에서 술을 나누며 교유하고 토론하는 것 또한 그러한 훌륭한 전사이자 책임 있는 귀족으로서 커가길 욕구하는 그들만의 상호 교육과정이자 동시에 그들만의 특권적 오락이었다. 요컨대 고전기 아테네에서 그리고 일반적으로 고대 그리스에서, 운동경기, 전투, 정치, 철학, 수사술과 같은 높은 신분의 활동들은 자유인 신분의 남성들의 특권이자 의무로서 오로지 그들에게만 국한되어 있었다. 물론 여성 특유의 활동들이 지니는 가치가 때때로 인정되기는 했지만, ‘덕(aret?)’과 ‘행복(eudaimonia)’에 대한 고대 그리스적인 개념은 남성들의 이러한 고급 활동들에 집중되었다. 이것은 그런 활동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 간의 성적 관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하고 나아가 휼륭한 전사가 되기 위한 기본과정으로 합리화되는 기본 근거가 되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향연」에서 일부 연설가들은 소년사랑과 ‘덕’의 연관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귀족적인 취향이 페리클레스 시대에 이르러 대중일반에게도 광범위하게 유포되면서 플라톤의 「향연」에서도 나타나듯이 소년사랑의 문란상이 사회문제로 크게 부각되었고 그에 대한 비판과 법적인 통제 장치가 강화되기 시작하였다. 「향연」에서 파우사니아스가 말하는 천상의 에로스와 범속의 에로스의 구분도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일 것이다. 기원전 4세기 마침내 고대 그리스 사회가 종말을 고하게 되면서 이러한 소년사랑의 관습은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지만, 고대 그리스의 소년사랑에 대한 관심이나 그것을 다루는 글들은 장르에 관계없이 그 후에도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 내용 또한 도덕적인 분노를 표명한 것으로부터 혹은 비정상인 호기심이나 그 탐미적인 아름다움에 침이 마르도록 찬사를 보내는 것까지 천차만별한 양태로 나타났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의 소년사랑에 대해 어떤 관심과 시선을 갖든 간에 아래의 두 가지 사실만은 누구나 다 하나같이 인정하고 있다. 하나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소년사랑은 그리스인의 생활, 특히 귀족들의 생활에서 상당한 정도까지 퍼져 있었던 일상적 현상이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듯이 소년사랑 역시 아주 추악할 정도로 타락한 형태로부터, 통상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소년사랑의 모습을 포함하여 대단히 고상하고 순수한 정신적 관계를 갖는 형태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고 넓은 스펙트럼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소년사랑에 대한 그와 같은 다양한 양태들 중 일부를 관련 고전들을 통해 간략히 일별해보기로 하자.

우선, 비록 극의 내용이긴 하지만 아리스토파네스의 「새(Ornithes)」의 한 장면은 아테네 사람들이 소년사랑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일상적 의식의 한 단면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그곳에서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인 에우엘피데스(Euelpides)는 사람들이 안락하게 살고 있고, 소년사랑 또한 매우 번성해 있는 게으름뱅이들의 천국을 몽상하고 있다. 그곳에서 아름다운 소년을 아들로 둔 어떤 사람이 자기 아들이 한 성인 귀족에 의해 사랑의 상대로 선택되지 않은 것에 모욕을 느끼고 다음과 같이 비난을 퍼붓는 장면이 나온다.(139-142).

그래? 스틸보니데스, 너 참 잘 났다.
내 아들이 목욕을 하고 나서 김나지온을 나오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인사도, 입맞춤도, 어디 데려갈 생각도 하지 않고,
한번 안아주지도 않는군. 당신 참 고루한 친구시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플라톤의 「법률」제1권(636C)을 보면 관능적인 소년사랑에 대해 매우 엄격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플라톤의 비난 섞인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연로한 플라톤은 등장인물 ‘아테네인’의 입을 통해 남성과 남성 또는 여성과 여성 사이의 사랑 일체를 ‘자연에 어긋난’(para physin)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곳에서 플라톤은 미소년 가뉘메데스(Ganym?d?s : 트로이아 트로스왕의 미남 아들인 가뉘메데스는 그 미모 때문에 올륌포스로 납치되어 제우스에게 술을 따르는 작부(酌夫: oinokheus)가 되었다. 호메로스 「일리아스」20. 231-5 참고)를 인용하면서 크레타인들이 동성 간의 성적 쾌락을 공공연하게 비호하기 위해 마치 제우스가 소년 사랑이나 한 것처럼 그를 끌어 들이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하긴 테오그니스(Theognis)가 편찬한 책에 포함되어 있는 짧은 비가(elegeia) (1345-50)를 보면 그것을 쓴 작가 자신 스스로 소년사랑을 기쁨의 원천으로 삼고 있다고 고백하면서 크레타인들 처럼 자신의 경우를 아름다운 가뉘메데스를 납치한 제우스를 들어 미화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전설적인 입법자 뤼크루고스(Lykurgos)가 정한 스파르타 법률에 대한 보고들은 소년사랑과 관련한 아주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 스파르타의 법률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는 소년을 육성할 책임을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고대의 저작가들은 소년사랑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제도적 성격 때문에 소년사랑이 포함하고 있는 관능적 측면을 어떻게든 배제시키려고 애를 썼다. 예를 들어 크세노폰(Xenophon)은 사랑하는 사람과 소년 사이에서 관능적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부모가 자신의 아이들과 혹은 형제들끼리 서로 음행을 저지르는 것과 다름이 없는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겨졌다고 단언하고 있다(「라케다이몬의 정치체제(de rep. Laced.)」2· 13). 그리고 플루타르코스는 소년사랑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인 측면을 강조하여, 소년사랑에 대한 규정을 어기고 잘못을 범한 자는 일생 동안 공적인 권리가 박탈되었다고 말하고 있다(「뤼크루고스의 생애」17 이하, 「라케다이몬의 정치체제」7). 후대의 소피스트로서 플라톤주의자인 튀로스(Tyros)의 막시모스(Maximos : 기원후 2세기)는 이것을 한층 더 이상화하여 스파르타의 남성은 단지 미소년을 아름다운 조각을 사랑하듯이 사랑한 것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스파르타의 법률이나 그에 대한 견해들이 소년사랑에 대한 실제 행태들과 크게 달랐으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물론 소년사랑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규정에 따라 도덕적인 절제를 보여주고 있는 사례들 또한 발견된다. 스파르타왕 아게실라오스(Agesilaos)는 스피트리다테스(Spithridates)의 아름다운 젊은 아들을 사랑했지만, 그 소년이 공적인 자리에서 자신에게 키스 하려고 했을 때 소년을 밀쳐 냈고, 어떻게든 사람들이 보는 자리에서 소년과 단둘이 있는 경우를 극력 피했다.(크세노폰 「아게실라오스」5·4) 그런가 하면 자기가 에라스테스로 받아들이지 않은 자가 설사 권력자일지라도 그에 대한 신체적 봉사를 굴욕적인 것으로 생각한 어느 미소년의 이야기도 전해진다. 플루타르코스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데메트리오스의 생애」24) 용병 대장 데메트리오스(Demetrios)는 아테네에 머물면서 마치 폭군이나 된 것처럼 창녀나 소년들을 강제로 불러들여 무질서한 성적 쾌락에 빠져 있었다. 그는 데모클레스(Demokles)라는 미소년에게도 욕망을 느껴 사랑을 구했지만 데모클레스는 그것을 단호히 거부하고 몸의 안전을 위해서 몰래 피신해 있었다. 그러나 방탕한 데메트리오스는 데모클레스가 어느 사설 목욕탕에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그곳으로 가서 그를 겁탈하려고 하자, 데모클레스는 달리 도망갈 길이 없다고 여기고 뜨거운 물이 끓고 있는 가마솥의 뚜껑을 열고 그 안으로 뛰어 들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이밖에 소년들이 김나지움 즉 레슬링 경기장에서 알몸으로 경기를 하게 하는 관습 자체가 소년사랑을 확대시킨 큰 원인 중 하나로 생각하는 글도 플라톤의 「법률(Nomoi)」(1· 636)을 비롯해서 키케로의 「투스쿨룸 대화(Tusc.)」(4·33)에 이르기까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키케로는 앞의 책에서 엔니우스(Ennius)가 쓴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몸을 노출 하는 것은 추행의 시작이다”라고 하는 시행을 찬사를 담아 인용하고 있다. 물론 레슬링 훈련이 미소년들의 육체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어른 남성들의 관음증을 충족시키려고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소년사랑을 비난하고 있는 플라톤은 수호자 계급이 되기 위해서는 하물며 여성들도 옷을 벗고 남성들과 체육 훈련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국가」5권 452a, b). 분명 소년사랑의 발생 배경에는 그것과는 다른 원인들이 있었을 것이다. 서두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소년사랑의 맹아는 일찍이 남성 중심의 전시 동원 체제를 항시적으로 유지하고 있었던 그리스 민족 대이동의 시대에서 부터 구해져야 할 것이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 사회는 여느 고대 사회 못지않게 역사 이래 극히 남성 중심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플라톤이 이상국가에서 여성도 남성과 성향에 있어 동류의 존재이고 남성과 마찬가지로 능히 수호자 계급이 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은 (「국가」5권 456a, b) 당시로서는 매우 놀랍고 대담한 생각이었지만, 두말할 나위 없이 플라톤 시대에서도 여전히 여성의 역할은 오로지 가사와 아이들의 양육에만 한정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고대 그리스의 성인 남자들은 이러한 상황이 초래한 욕구 불만 때문에 헤타이라나 소년들에게서 성적 욕망을 해소하려고 했던 것일까?

(다음에 소년사랑 (2) 계속)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탐험 (4)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탐험 (4)

이정호(방송통신대 교수)
주제 1: 그리스인의 사랑

 

2. 아프로디테(2)

아프로디테의 힘이 erga gamoio 즉 성적인 결합과 관련한 일에서 분명하고도 위력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은 「호메로스 찬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곳에는 아프로디테를 찬양하는 노래가 2편 실려 있는데, 그 중 긴 쪽은 가장 오래된 작품군에 속하는 것으로서 일찍이 기원전 7세기 이오니아 지방에서 불렸다.

아무려나 제우스는 제멋대로 사랑의 불길을 일으키는 아프로디테에게 진절머리가 나 버렸다. 그래서 제우스는 감당하기 힘든 그러한 사랑의 불길을 아프로디테 스스로도 한번 겪어 보도록 그 자신, 이 여신이 하는 일에 손을 댄다. 제우스는 우선 이다(Ida)산에서 소를 방목하고 있는 안키세스(Anchises)에 대해 격렬한 연정을 품도록 그녀의 마음속에 사랑을 이식했다. 그래서 파포스에 있었던 아프로디테는 우아한 여신들로 하여금 자신을 목욕시키고 향유를 발라 아름답게 몸치장하게 한 후, 스스로 이다산으로 달려가 안키세스를 뇌쇄시켜 그와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아이네이아스를 낳는다. 그런데 아프로디테의 이다산행은 동물의 발정과 관련한 중요한 모티브와 묶여져 있다. 그녀가 이다산을 향해갈 때 늑대와 사자, 곰, 표범 등 산속에 있는 온갖 짐승들이 여신을 수행했는데, 여신은 그것을 아주 기뻐하여 그 짐승들에게 생식에의 충동을 불러 일으켰고 짐승들은 크게 발정하여 모두들 그늘 깊은 곳에 들어가 교미를 했다. 이런 연고로 아프로디테는 이다산의 대모신으로서 모든 동물들의 강대한 여주인(potnia t?r?n)이 된 것이다.

이 여신의 위세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뻗어 있는지는 아이스퀼로스의 작품 「탄원하는 여인들(Hiketides)」속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아직 아르카익적인 것에 뿌리를 두고 그것을 토대로 성장한 시인이었던 만큼 그의 증언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그가 3부작으로 계획한 작품 중 첫 편(나머지 두 편은 소실)에 해당하는 그 작품은 아이귑토스(Aigyptos)의 아들들의 난폭한 구혼을 피해 달아나는 다나오스(Danaos)의 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작중에서 시인은 여인들이 도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말하고 있지는 않다. 극의 전반부에서는 그 주된 이유가 구혼자들에 대한 딸들의 혐오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후반부에 가서는 아예 결혼 자체를 피하려는 것이 그 이유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상은 위대한 생명력으로서의 아프로디테에 관한 사람들의 의견이 두 개로 나누어지는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다나오스의 딸들이 아르고스에 도착하자 시녀들이 마을 입구에서 그녀들을 맞이하고 다나오스는 다음과 같이 탄식하듯 퀴프리스(Kypris 아프로디테의 다른 이름)의 힘을 언급하고 있다.

 

과일도 다 익은 것은 자신을 지키기가 결코 쉽지 않다.

짐승들과 사람들이 건드리니까. 왜 안 그렇겠니?

즙이 많은 과일을 먹어 보라고 온갖 길짐승들과

날짐승들을 퀴프리스가 초청하여, 과일들이

그대로 남아 있지 못하도록 식욕을 돋우니 말이다.

(997-1002)

 

아이귑토스 구혼자들을 피해 도망가는 다나오스의 딸들(Danaiden, Jan Frans Deboever 작)

다나오스의 딸들은 강제로 결혼하게 되는 것을 변함없이 거부하고 있지만, 처녀신인 아르테미스에게 비호를 청하는 아래의 탄원 속에는 분명 결혼 자체에 대한 혐오가 포함되어 있다.

 

정결하신 아르테미스여, 굽어 살피소서

이 일행을 가련히 여기시어 퀴테레이아(Kythereia 아프로디테의 별칭)가

우리를 결혼침상에 들도록 강요하지 않게 해 주소서

차라리 이 고통이 죽음으로 끝나기를

(1030-33)

그러자 시녀들의 제2의 코러스는 우회적인 표현으로 이것에 대답한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퀴프리스를 생각하는 것이

즐거워요. 그녀는 헤라와 권세가 같고

제우스에 가장 가까워요. 변덕스런

여신이지만 그녀는 진지한 의식에 의해

경배를 받고 있어요. 동경,

무슨 요구를 하든 거절할 수 없는 설득이

사랑스런 어머니인 그녀와 함께 하지요.

아프로디테는 화합에게도, 사랑의 신들의

속삭임에도 역할을 주었지요

(1034-1042 이상 천병희 역 참고)

 

아프로디테가 건넨 마법의 띠를 두르고 제우스를 유혹하는 헤라 (작가 미상)

다나오스의 탄식과 달리 시녀들의 코러스는 반대로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시녀들의 코러스는 남자와의 성적 결합을 여인의 궁극적 성취로 이끄는 아프로디테의 위세를 재현하는 것으로 결혼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오히려 아프로디테를 무시하는 휘브리스(Hybris)임을 일러준다. 그리고 이것은 아이스퀼로스가 3부작을 어떻게 끝맺음할 지를 충분히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3부작의 나머지 두 작품인「아이귑토스의 아들들」과 「다나오스의 딸들」은 전해지고 있지 않아 그 내용을 자세히는 알 수는 없지만, 일부 남아있는 몇 가지 단편들을 보면 최소한 그 결말의 윤곽정도는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즉, 두 번째 작품인 「아이귑토스의 아들들」에서는 딸들을 지키는 아르고스인과 그들을 추적하는 아이귑토스의 아들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고 결국 다나오스의 딸들은 그들과 마지못해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신혼 첫날밤 딸들은 다나오스의 명령에 따라 가증스러운 남편들을 살해하고 만다. 그러나 결혼에서 벗어나려는 그들의 행로가 이것으로 막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세 번째 작품인 「다나오스의 딸들」에 이르면 이후 다나오스의 딸들은 모두 살인의 죄로 재판에 회부되는데 이 때 아프로디테가 나타나 그녀들을 도와주어 그녀들은 살인죄에서 벗어나지만, 그 후 그녀들은 결국 아프로디테에 의해 그토록 피하고자 했던 결혼으로 다시 이끌리고 만다. 물론 남편을 죽인 다나오스의 딸들이 저승에 가서 독에 물을 채우는 벌을 받는다는 다른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결국 그녀들의 새로운 결혼이 이 3부작의 결말이라고 한다면 여전히 이 작품에서도 딸들의 하나같은 탄원에 아랑곳함이 없이 아프로디테의 위세가 전혀 흔들림 없이 완벽하게 관철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아이스퀼로스의 다른 작품 「결박된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desmotes)」를 보면(865) 다나오스의 딸 중 휘페르메스트라(Hypermestra)만은 다른 딸과 달리 다나오스의 명령을 거역하여 남편을 살해하지 않은 죄로 별도의 재판을 받게 되는데, 이때에도 사랑(himeros)을 위해 살해를 거부한 휘페르메스트라를 적극 비호하는 과정에서 아프로디테의 위세가 드러난다. 현재 남아 있는 단편(fr. 44 N)을 보고 있노라면 아마도 아프로디테 여신은 휘페르메스트라의 행동을 하늘과 대지의 결합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우주적 사랑(Eros)을 표현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같다. 아프로디테는 그 자리에서 휘페르메스트라를 비호하며 만물을 정복하는 사랑의 힘을 아래와 같이 언급하고 있다.

 

신성한 하늘은 대지와 가까이 사랑하기를 갈망하여

결혼의 서약을 맺고 대지를 취할 수 있었다.

가로 놓인 하늘에서 큰 비가 쏟아져,

대지는 만물을 잉태하여 인간들을 위해

양이 먹는 풀과 데메테르가 지배하는 풍부한 곡물을 낳는다.

또 과일나무 열매들도 구름과 비가 인연을 맺어

영근 것들. 그 모든 것들 가운데 나 파라이티아(paraitia)가 있다

(단편 44 N)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아프로디테가 자신을 paraitia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이다. paratia는 ‘원인이되 한 쪽을 맡고 있는 원인’이라는 의미이다. 그녀에게 결코 ‘전적으로 독자적인 원인’을 의미하는 panaitia라는 이름이 붙여질 수는 없다. 그 말은 제우스에게 사용될 수 있는 말이고(「아가멤논」1486행), 굳이 사랑과 관련한 경우라면 에로스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이것은 아프로디테의 위세가 비록 드높긴 해도 전적으로 주도적일 수는 없음을 보여준다. 아프로디테는 위대한 생성을 이끄는 에로스의 공동 참가자로서 그녀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성적 결합을 통해 쾌락과 희열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들의 “신성한 결혼”(hieros gamos)에 담겨 있는 아프로디테적 의미를 간단히 음미해보기로 하자. 하늘과 대지의 신성한 결혼은 오랜 역사에 걸쳐 널리 알려진 신화이다. 에우리피데스가 그 없어진 비극 「크뤼십포스(Chrysippos)」에서 성스러운 결혼의 관념을 채택할 때, 그것은 꽤 독단적이긴 하지만 교훈적으로 들린다.

 

위대한 힘을 가진 대지(Gaia)와 제우스의 하늘(Ait?r)

하늘은 신들과 인간들의 아버지,

대지는 부슬부슬 방울져 떨어지는 빗방울을

받아들여 가사적인 것들을 낳는다,

목장의 풀들과 여러 종의 짐승들을.

(단편839N)

 

이러한 “신성한 결혼”의 관념은 로마의 시인 웨르길리우스(Vergilius)의 「농경시(Georgica)」에서도 보여진다.

 

그 때, 전능하신 아버지 하늘은 열매를 맺게 하는 비와 함께

기쁨을 가득 채운 아내인 대지의 품에 몸을 담갔다. 그리고

커다란 하늘은 광대한 대지의 몸과 결합하여 모든 생물을 낳아 길렀다.

이후 길이 없을 정도로 초목이 번성하고, 새들의 노랫소리 울려 퍼져

번식기에는 소 떼가 짝 짖기에 여념이 없고

밭에서는 곡식이 영근다.

(2.325-31)

 

또 아이헨도르프(Eichendorff)의 시에서도 신성한 결혼에 대한 태고적 신앙의 시적 여운이 가득 담겨 있다.

 

마치 하늘이 대지에

살짝 입맞춤을 하듯이

대지 또한 꽃그늘 옅은 햇살 속에서

마냥 하늘을 꿈꾸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호메로스의 시는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이오니아풍으로 쓰여져 있다. 그의 시 가운데 지금까지 언급해온 종류의 관념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그러나 비록 “신성한 결혼”은 아닐지라도 가장 위대한 신들이 나눈 사랑의 한 때를 그린 장면이 몇 개 남아 있다. 헤라가 아프로디테에게 부탁하여 마법의 띠(kestos himas)를 받은 후, 헤라가 벌이고 있는 「일리아스」제14권의 장면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그곳에서 헤라는 자신의 계략대로 침대에 누워 제우스의 팔에 안겨 있는데, 그 때 대지와 하늘이 두 위대한 신의 성적 결합에 참가하여 마치 그들의 신성한 결혼을 보여 주는듯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그러자 그들 밑에서 신성한 대지가 이슬을 머금은 클로버며

크로커스며 히야신스 같은 싱그러운 새 풀들을 두껍고 부드럽게

돋아나게 하니 이것이 그들을 땅 위로 높이 들어 올려주었다

그 속에 그들이 누워 아름다운 황금 구름을 두르니

그 구름에서 반짝이는 이슬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347-51. 천병희 역 참고)

 

우라노스의 생식기를 거세하는 크로노스 ( Palazzo vecchio ? Florence 소장 )

시인은 하늘과 대지의 결합이라고 하는 오래된 관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이용해서 신들의 목가적인 사랑의 한 때를 위와 같이 그려낼 수 있었을 것이다. 앞에서 우리는 아프로디테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주 생성에 관한 신화를 잠간 언급했는데 그 때 가이아(Gaia, 대지)와 우라노스(Ouranos, 하늘)의 결합은 우주 생성 이래 최초의 ‘신성한 결혼’답게 그에 상응하는 극렬한 성적 결합의 면모를 보여준다. 우라노스는 에로스의 힘을 얻어 너무도 열렬하게 가이아 온 몸을 한 치도 남김없이 꼭 맞게 덮치듯 끌어안고 있어서, 가이아는 우라노스에 가려 햇살 한 가닥조차 접할 수 없을 정도였고, 그들 사이에 태어난 자식들 또한 지상에 나오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채 모두 가이아 속에 묻혀 지내야했다. 그래서 누군가 그들을 떼어내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피조물이 성장할 수 있도록 빛과 공간을 되돌려 주는 것이 필요했다. 결국 가이아는 숨 막힐 듯한 괴로움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스스로 회색의 쇳물을 내서 그것으로 갈고리형 둥근 낫(harp?)을 만들어 자식인 크로노스(Kronos 시간)로 하여금 우라노스의 생식기를 절단하게 만든다. 이로써 하늘과 땅의 분리가 이루어지고 이른바 최초의 세상이 열린다. 그러나 크로노스는 아버지를 위해한 자신에게 미칠 후환이 두려워 자식들을 모두 삼켜버렸고 그 바람에 빛과 공간은 다시 열렸으나 아직 신들의 삶의 터전과 세상의 질서는 생겨날 수 가 없었다. 그러자 마침내 크로노스의 아들 제우스가 어머니 레아의 도움을 받아 크로노스를 물리치고 형제들을 구해 비로소 올림포스 신들의 세계, 최초의 질서를 창조해낸다.

그런데 대지가 하늘에서 풀려나고 올륌포스 주신들에 의해 최초의 세상, 최초의 질서가 확립되어 가는 그 시간, 잘려진 우라노스의 생식기는 바다를 떠돌다가 퀴프로스섬에 이르러 그 불사의 살점에서 거품이 생기면서 아프로디테를 탄생시킨다. 우라노스의 거세를 통해 열린 세상에 아프로디테가 우라노스의 분신이자 자식으로 태어나 마치 복수라도 하듯이 그 이후에 태어난 신들의 자손 모두에게 떨쳐버릴 수 없는 관능의 씨앗을 심어 놓는 순간이다. 인간의 관능적 사랑이 갖는 희열과 멍에, 생식과 파멸의 뿌리 깊은 이중성은 이렇게 생겨난 것이다.

(그리스인의 사랑 중 “소년사랑”을 주제로 다음에 계속)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3)

번역자 : 김남우 (정암학당)

[세상 모든 것이 자신의 공로임을 입증하고 난 이후 우신은 철학자들의 예상되는 반론에 대하여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학문은 인류의 본성에 어긋나는 것이지만, 기왕의 여러 학문들 가운데 여러 사람들로부터 가장 환영받는 학문은 인류의 본성에 제일 가까운 것인 바, 어리석음에 제일 가까운 것들이다.]

이쯤 되면 철학자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라 나는 생각합니다. 어리석음을 부여잡고 깨닫지 못하고 잘못 알고 속으며 무지 가운데 살아가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그들은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이란 원래 그런 존재입니다. 철학자들이 왜 이것을 불행이라고 부르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태어나 그렇게 양육되고 그렇게 가르쳐졌으니, 이것은 모두의 공통된 처지입니다. 새처럼 날지 못하기 때문에, 여타 가축들처럼 네 발로 걷지 못하기 때문에, 황소처럼 뿔로 무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류가 불행다고 말한다면 모를까, 인류에게 주어진 본성을 불행하다 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런 식의 논리라면 아름답긴 하지만 문법을 모르며 과자를 즐길 수 없기 때문에 말은 불행하다, 씨름에 도움이 못되기 때문에 황소는 불행하다 할 것입니다. 말의 입장에서 문법을 모른다고 해서 전혀 불행할 것이 없는 것처럼, 인간의 입장에서 어리석음은 하등 불행일 수 없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천품인 까닭입니다.

그런데도 입씨름에 달통한 그들은 주작부언, 인간에게는 특별히 학문적 능력이 주어졌으며, 이에 힘입어 자연이 부여하지 않은 것일지라도 쟁취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자연이 모기는 물론이려니와 들풀과 들꽃을 만들면서는 정신을 바짝 차렸건만 유독 인간을 만들 차례에는 졸다 실수하여 결국 인간에게 학문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식으로, 그들은 마치 이를 사태의 진상인 양 설레발칩니다. 하지만 학문은 인류에게 분노한 신 테우트에 의해 만들어져 결국 인간들에게 끔찍한 파멸을 초래하였을 뿐 행복에 기여한 바가 없는 물건이며,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어떤 현명한 왕이 솜씨 있게도 글자의 발명에 반대하였던 것처럼, 행복을 위해 발명되었다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을 이루는데 방해가 되는 물건에 지나지 않습니다. 학문은 인간 삶을 좀먹으며 기어 다니는 여러 병폐들 가운데 하나인데, 인간에게 모든 해악을 초래한 못된 정령들이 또한 학문을 창출하였는바, 못된 정령을 가리키는 희랍어 ‘다이몬’은 ‘현자’를 의미합니다. 어떤 학문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다만 자연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고 있었던 시절, 그 소박했던 때를 황금시대라 하겠습니다. 당시 모두가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의사소통 말고는 언어로 달리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던 때에 도대체 문법학이 왜 필요했겠습니까? 서로 의견을 달리하여 다툴 일이 없던 때에 도대체 논리학은 무슨 소용이 있었겠습니까? 누구도 타인과 협상을 벌일 문제가 없던 때에 수사학은 무슨 아랑곳이며, 진정 부도덕이 존재하고야 이를 다스릴 선량한 법률이 생겨나는 법이거늘 하물며 법학은 있었겠습니까? 당시 사람들은 경건하였기로 불경한 호기심에 이끌려 자연의 비밀을, 천문의 조화와 운동과 영향을, 사물의 숨겨진 원리를 찾아낼 엄두도 내지 않았으며, 필멸의 인간이 주제에 걸맞지 않게 현명해지려고 하는 것은 저주받을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하늘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묻는 탐구의 광기가 아직 마음속에 자리 잡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서서히 황금시대의 순수함이 사라져 감에 따라 내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못된 정령들이 학문을 만들어 냈으나, 처음에는 학문 분야는 많지 않았고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를 배웠을 뿐입니다. 그런데 바뷜로니아 사람들의 점성술과 희랍 사람들의 백해무익한 경박함이 이를 600여개로 늘려 인생이 짊어진 십자가의 형벌만을 보태어 놓았습니다. 실제 문법 하나만으로도 인간에게 끊임없이 가해지는 형극의 고통은 충분하고도 넘치는데 말입니다.

아무튼 이런 학문들 가운데 그래도 가능한 한 대중적 상식에 접근한 것일수록, 그러니까 어리석음에 가까운 것일수록 더욱 큰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하여 신학자들은 밥벌이가 없어 굶주리며, 과학자들은 추위에 떨며, 천문학자들은 남우세를 받으며, 논리학자들은 업신여김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 오로지 의사만이 만군 (萬軍)의 가치를 누립니다.1) 더욱이 의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무식하고 무모하며 경솔할수록 명성이 높으며, 훈장을 단 고관대작들조차 그에게 큼직한 명예를 수여합니다. 오늘날 어중이떠중이 아무나 펼쳐 보이는 의학이란 수사학과 다를 바 없는 아첨술의 작은 분과에 지나지 않습니다.2)

두 번째 자리는 법률가들에게 주어져 있습니다만, 어찌 보면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도 남습니다. 법률가라는 직업은, 철학자들이 대개 동의하여 조롱하는 것처럼, 이런 말을 내 입에 올리긴 싫지만, 멍청한 당나귀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당나귀들의 처결에 따라 크고 작은 문제들이 결정되고 그에 따라 그들의 재산이 점차 자라납니다. 그사이 신과 관련된 온갖 문서들을 샅샅이 파고들어 꼼꼼히 읽어보는 신학자는 콩을 쪼개 먹으며 벼룩과 이를 상대로 생사의 전쟁을 치러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렇게 어리석음과의 친연성이 큰 학문일수록 그만큼 만고에 복되고 복되다고 하니, 따라서 일체 학문과의 거래를 끊고 다만 자연이 이끄는 대로 따르는 사람들은 그 가운데 제일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자연은 인간이 주제넘게 범하지 않는 한, 오로지 스스로 완전합니다. 자연은 인공을 기피하며, 따라서 일체 학문적 위해를 입지 않은 것은 그만큼 행복합니다. 그렇다면 묻거니와, 여러분은 학문이라는 것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자연 이외의 누구도 따르지 않는 동물들이 나머지 다른 동물들보다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신체적으로 모든 감각들이 전혀 주어진 것은 아니지만 꿀벌은 누구보다 행복하고 놀라운 삶을 살지 않습니까? 어떤 건축가가 있어 이들이 만들어 놓은 것과 유사한 건물을 세울 수 있으며, 어떤 철학자가 있어 이들이 이룩한 국가를 건설할 수 있습니까? 반대로 말은 인간적 정서에 가까이 서 있으며 인간들의 공동생활에 익숙해짐으로 해서 인간들이 겪는 재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종종 창피를 당하는바, 경주에 참여해서는 ‘늘어진 배를 질질 끌고’ 전투에 참여해서는 승리를 찾아 헤매다 크게 상처를 입고 쓰러져 말 탄 사람과 함께 ‘입으로 대지를 깨물게’ 됩니다.3) 늑대이빨을 한 재갈, 가시 돋은 박차, 감옥과 같은 마구간, 가죽채찍, 작대기, 고삐, 마부 등, 말이 사나운 인간들을 흉내 내어 무참히 적들에게 복수하려다가 스스로 뒤집어 쓴 굴종의 비극을 내가 일일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무엇보다 바람직한 삶은 파리와 새의 삶이라 하겠습니다. 이들은 인간이 놓은 덫에 걸리지 않는 동안이나마 짧은 삶을 살면서도 오로지 자연에 따라 살아갑니다. 새장에 갇혀 인간의 언어와 소리를 배운 새가 타고난 빛나는 목소리를 잃게 되는 것은 놀라울 것도 없습니다. 어떤 경우든지 자연이 창조한 것은 학문적 가공이 꾸며놓은 것보다는 모든 측면에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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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메로스 <일리아스> 제 11권 514행과 플라톤, <향연> 214b에 인용되어 있다.

2)플라톤 <고르기아스> 463a이하에서 소크라테스는 수사학을 아첨술과 함께 거짓된 학문으로 여겼다.

3)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 제 11권 418행 이하. 베르길리우스는 전투에서 쓰러져 죽는 것을 ‘대지를 이빨로 / 입으로 깨물다’라고 표현하였다. 이는 호메로스에서도 마찬가지로 등장한다.

영화로 사유하기 (3) : 쇼트(shot)

글: 이지영(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모든 문제는 언제나 사람들이 쇼트 혹은 쇼트들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를 아는데에 있다”는 파스칼 보니체르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번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일단 이 문장의 의미는, 영화에서 모든 중요한 물음은 언제나 쇼트와 관련되며 그렇기 때문에 쇼트(들)을 이해하는 것이 영화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에 중요하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쇼트를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카메라의 움직임, 쇼트의 크기, 길이 등을 파악한다는 것인가? 만일 그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건 누구든 측정하고 관찰하면 알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카메라 움직임, 쇼트의 크기와 길이 그리고 앵글 등을 파악하는 것은 영화 이해에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들을 안다고 영화가 쇼트를 다루는 방식을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 특정한 움직임과 크기, 길이, 앵글을 가진 쇼트가 특정 영화의 특정 부분에 등장해야 했는지 이유를 알아야 쇼트를 다루는 방식을 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대체 ‘쇼트를 다룬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또한 그것이 영화에서 어떤 중요성과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이 물음에 답하기에 앞서, ‘쇼트’가 무엇인지부터 이야기하고자 한다. 쇼트가 무엇인지에 대해 정당한 개념 규정을 할 수 있다면 아마도 쇼트를 다룬다는 말의 의미가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쇼트’라는 용어를 들었을 때, 우리는 대체로 그것이 무엇을 지시하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영화와 관련된 모든 곳에서 너무나도 익숙하게 사용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개념에 대해 정말 우리는 익숙한만큼 잘 알고 있을까? 영화 이론가, 영화사가, 영화 편집인, 영화 감독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은 영화학의 기본 단위를 쇼트로 정하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쇼트는 같은 개념도 아니며, 따라서 같은 기본 단위도 아니다. 프랑크 베버의 <영화미학용어사전>에 의하면, 쇼트란 카메라가 작동되는 순간부터 멈추는 순간까지 한 장면이나 사물을 연속적으로 촬영한 것이다. 이 정의는 연속적으로 촬영된 필름의 시간적 길이인 ‘테이크(take)’ 개념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렇게 정의내릴 경우 ‘미디엄 쇼트’, ‘롱 쇼트’, ‘클로즈 쇼트’ 등은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 된다. 이런 구분은 ‘하나의 쇼트는 주요한 등장인물들이 같은 프레임화와 각도하에서 카메라와의 거리에 따라 기록된 짧은 장면’이라는 <라루스 영화사전>에 제시된 공간적 정의로서의 쇼트 개념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일단 두 개의 개념 정의만 비교해 봐도 쇼트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정의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경우에 따라 두 가지 정의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은 채 적용해 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면 두 가지 개념 정의를 잘 결합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대답부터 하자면 ‘아니다’이다. 두 가지 개념 정의를 결합하면, ‘등장인물들이 같은 프레임화와 각도, 그리고 동일한 카메라와의 거리를 유지한 채 연속적으로 촬영된 필름 단편’ 정도가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쇼트인가? 물론 이 정의에 부합되는 쇼트들도 있다. 하지만 이에 부합되지 않는 수많은 사례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보자. 대체로 사람의 얼굴만 화면에 포착되었을 경우 클로즈 쇼트라고 부른다. 하지만 고다르의 영화 <그녀의 삶을 살다 Vivre sa Vie>의 한 장면처럼 얼굴이 아주 작게 화면의 하단에만 등장하고 화면의 다른 부분은 텅 비어 있다면 이 쇼트를 무엇이라고 부를 것인가. 혹은 책상 위의 유리잔의 클로즈업으로 시작하여 카메라가 끊김없이 이동을 하여 미디엄 쇼트, 롱 쇼트 크기로 각기 다른 대상들을 포착할 경우, 이를 무슨 쇼트라고 부를 것인가. 이런 사태에 대해 영화 이론가 앙드레 바쟁은 ‘쁠랑세깡스(plan-sequence, sequence shot)’라고 불렀고, 이에 대해 장 미트리는 시간적 개념과 공간적 개념을 뒤섞은 말도 안되는 개념이라며 비판했던 사례 역시 쇼트 개념을 정의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 외에도 수많은 사례들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몇몇 사례들만으로도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통용되어 오던 쇼트에 대한 개념 규정들이 타당하지 않음을 알 수 있으며, 쇼트에 대한 시공간적 개념 규정들을 조합하는 것 역시 충분한 개념 규정이 아님을 알 수 있게 된다. 영화에는 이렇게 구체적으로 명명하기 곤란한 쇼트들이 빈번히 나타난다. 또한 새로운 방식의 쇼트의 등장이 새로운 영화의 등장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래서 이러한 사건들이 영화의 역사에서 비정상적 상황이 아니라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대체 쇼트 개념은 무어란 말인가. 어쩌면 고정된 의미로 쇼트를 정의하려는 시도 자체가 ‘불가능한 임무 mission impossible’는 아니었을까. 혹은 쇼트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잘못 제기된 물음은 아니었을까.

쇼트 개념 정의에 대해 이렇게 비관적인 전망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쇼트를 촬영상의 기술적인 요소들만을 가지고 정의하고자 했기 때문일 수 있다. 물론 쇼트란 카메라가 그 앞에 있는 대상들을 촬영한 필름 단편임은 분명하지만,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쇼트는 단순히 카메라를 통해 만들어진 특정한 크기와 길이를 가진 필름 단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에게 제시되는 영화 전체의 부분들로서의 쇼트이다. 영화를 촬영된 단편들의 집합의 측면에서 접근할 것인지 아니면 영화를 어떤 흐름을 가지는 하나의 전체로 접근할 것인지에 따라, 쇼트 개념의 이해에 접근하는 방식도 달라질 것이다.

들뢰즈는 움직이는 이미지들로 관객에게 주어진 영화 전체라는 관점에서 쇼트에 접근한다. 아무리 정적인 영화라 하더라도 움직이지 않는 영화는 없다. 대상의 커다란 움직임이나 카메라의 움직임이 없다 하더라도 아주 미세한 눈빛의 떨림이나 미묘한 빛의 움직임이라도 있다. 다시 말해 영화는 관객에게 운동으로서의 이미지, 즉 ‘운동-이미지’를 준다. 이 ‘운동-이미지’라는 개념은 베르그손의 철학을 바탕으로 들뢰즈가 제안한 개념이다. 운동-이미지 개념 자체를 모두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 더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영화에서 쇼트를 정의하기 위해 사용된 맥락에서의 이 개념의 의미는 베르그손과 들뢰즈의 철학에 대한 선지식이 없더라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무엇인가가 운동한다는 것은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일정 정도의 지속을 함축하는 것이다. 즉 운동한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이 이미 전제되어 있는 것이고, 모두가 알다시피 영화는 특정한 길이의 시간을 전제하고 있다. 그것이 런닝타임이든 아니면 디제시스적 이야기의 시간이든 혹은 그것과 함께 호흡하는 관객의 시간이든 아니면 시간 자체에 대한 사유이든간에 말이다. 그래서 운동은 이러한 시간의 한 부분이지만, 이 부분은 시간의 흐름에서 무 자르듯 잘라내어질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인위적으로는 나누어질 수도 없고 굳이 나눈다면 그 본성이 변화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성격을 가진 부분이다. 예를 들어, 좋아하는 음악의 제일 좋아하는 부분을 컷팅하여 핸드폰 벨소리로 지정했던 경험을 떠올려보자. 처음엔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좋아하는 음악이 울리니까 좋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지겨워지고 듣기 싫어졌던 경험은 아마 누구나 해봤을 것 같다. 분명 좋아했던 음악인데 왜일까. 우리가 어떤 음악의 어떤 부분을 좋아했던 이유는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앞뒤 음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 부분이 마음에 충격과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운동과 지속하는 전체와의 관계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음악에서 어떤 부분이 다른 부분들과의 차이와 변화를 표현함으로써 의미를 갖는 것과 마찬가지로, 운동-이미지란 지속하는 전체의 어떤 변화를 표현하며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운동이 무엇이며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지속하는 전체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들뢰즈는 쇼트를 운동-이미지라고 말한다. 운동-이미지로서의 쇼트는 데쿠파주(d?coupage: ‘오려내기’라는 의미의 용어로서, 시나리오를 분석하여 촬영대본으로 옮기는 과정을 의미한다. 영화 전체의 시나리오가 전제된 상태에서 쇼트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를지시하는 것으로서,, 프레이밍뿐만 아니라 한 쇼트의 지속 시간, 미장센 등이 포함된 개념이다. 그러므로 데쿠파주에 따라 각 쇼트가 구성되고 촬영된다. 이런 맥락에서 데쿠파주는 단순한 커팅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에 의해 한정된 것으로서, ‘닫힌 체계에서 집합의 요소들 혹은 부분들 사이에서 세워지는 운동 규정’이다. 운동은 대상들 사이의 상대적인 이동 운동이지만 동시에 이 운동은 지속하는 전체의 절대적 변화를 표현한다. 이 두 측면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관계에 있으며, 쇼트는 지속하는 ‘전체의 움직이는 단면(coupe mobile d’un tout)’으로서 전체의 변화를 표현하는데, 이 변화는 집합의 부분들 사이의 위치변경과 같은 상대적 변화를 통해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한 쇼트 안에서의 대상들의 위치변화를 통해 시각적으로 나타나는 운동은 영화 전체의 질적 변화의 흐름을 드러내어 표현해 주어야 한다. 만일 어떤 쇼트가 이러한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잘못 만들어진 쓸데없는 쇼트이고, 편집에서 삭제되어야 할 쇼트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쇼트는 프레임(닫힌 집합)과 몽타주(열린 전체)를 매개하는 것이라는 정의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쇼트는 이러한 추상적 정의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 두 측면을 끊임없이 오가는 운동을 통해서 자신의 구체적인 의미를 발견한다. 쇼트는 집합을 구성하는 대상들에 따라 지속을 하부 지속으로 나누면서 동시에 이러한 하부 지속들을 하나의 지속 안으로 재통합한다.

그런데 집합의 차원과 전체 지속의 차원을 끊임없이 오가면서 부분들을 전체의 지속에로 결합시키는 운동의 역할을 하는 것은 ‘의식(conscience)’이라고 들뢰즈는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의식은 우리가 이미지들 중 일부분을 지각할 때 개입되고 또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곁에 수없이 펼쳐진 이미지들 중 우리는 부분만을 지각한다. 지각에서 작동되고 있는 선택과 배제는 나의 필요나 관심 혹은 기억 등 주관적인 요소의 개입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여기에서 주관적 요소의 개입은 단순히 부과되는 어떤 것이 아니다. 이미지들 중 일부분을 선택할 때 나의 지각에 의해 형성된 어떤 절단면이 형성되며, 그렇게 선택되어 베어내어지는 지각된 물질의 면이 물질적 우주 전체에서 분리되는 바로 그 순간 지각하는 의식도 발생한다.(여기에서 절단면이 쁠랑plan, 즉 쇼트이다. 프랑스어에서 쁠랑은 영어의 shot, plan, plain 등으로 번역되며, 그림에서 전경, 중경, 후경을 구분해서 말할 때의 경(景)에 해당된다.) 물질에 내재적으로 함축되어 있던 의식은 지각의 순간에 현실화되어 나타나며, 그 의식은 나의 몸을 꼭지점으로 둥글게 말려 들어가며 우리 의식의 내면을 형성한다. 들뢰즈에 따르면 물질 역시 우주 전체의 지속에 약하게나마 참여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물질에는 의식이 내재적으로 함축되어 있는데, 특정한 방식으로 지각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물질의 흐름 중 일부를 나의 몸을 중심으로 하는 범위로 한정하며 나를 중심으로 휘말려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나의 지속과 대상의 지속이 만나 특정한 지속의 흐름이 형성되며, 특정한 리듬을 가진 지각된 물질 세계의 부분이 바로 쁠랑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즉 쁠랑이란 나의 의식의 지속과 대상의 지속의 만남에서 생성되는 특정한 지속의 리듬이고 그로부터 의식이 출현하는 것이다. 이 의식은 전체의 지속과 부분으로서의 쁠랑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면서, 나눔과 통합의 역할을 한다. 이 부분, 즉 의식으로서의 쁠랑(쇼트)의 의미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나와 세계가 만나는 지점으로 말이다.

들뢰즈는 영화에서 이러한 나눔과 통합의 운동을 하는 의식이란 감독도 주인공도 아닌 카메라라고 말한다. 감독이 아닌 카메라가 영화적 의식이라는 말이 쉽게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아무리 사람이 카메라를 작동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지각과 카메라의 지각은 다르다. 들뢰즈에 의하면, 인간의 자연적 지각에서는 시선의 정지, 정박, 고정된 점 또는 분리된 시점 등이 개입하지만, 카메라를 통한 영화의 지각은 정지들마저도 통합하는 오로지 즉자적인 진동일 뿐인 단 하나의 운동으로 연속적으로 작동한다. 인간의 지각이 나의 몸을 중심으로 만곡된 거의 순간적인 쁠랑들의 집합인데 비해, 영화의 지각은 지속적인 중심점의 재설정으로 인하여 연속적인 재중심화가 이루어지며 이는 탈중심화에 이르게 된다. 결국 감독이 미리 계산하여 쇼트를 구성한다 하더라도, 인간과 카메라의 지각 중심의 차이로 인해 카메라를 통해 포착된 쇼트는 주관적 구성물의 범위를 넘어설 수밖에 없다. 벤야민이 이야기하는 ‘시각적 무의식’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보다 쉬울 것이다. 인간의 시각에서는 마치 무의식의 영역처럼 신체적 한계, 감정, 이데올로기 등에 의해 억압되어 보이지 않던 시각적 무의식의 영역이 카메라를 통해서는 드러난다는 점을 떠올려본다면 들뢰즈의 영화적 지각이 인간의 지각과 다르다는 점이 좀 더 이해될 것이다.

카메라를 중심으로 데쿠파주된 움직이는 쇼트는 마치 의식처럼 영화 전체의 지속을 하부 지속으로 나누고 그것을 다시 영화 전체로 재통합시키는 운동을 통해 영화 전체의 변화를 부분 속에서 표현한다. 그러므로 이 부분들은 영화 전체와 공명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이해는 쇼트가 무엇인지의 문제 제기에 대한 대답을 가능하게 해준다. 영화들은 저마다 서로 다른 대상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개별 영화들마다 다른 방식의 쇼트가 나타나게 된다. 그렇다면 전체와 공명하며 대상들의 리듬을 포착해내는 쇼트가 영화의 분석단위로 등장할 때, 우리는 어떤 기준에 따라 쇼트를 정의내릴 수 있을 것인가. 들뢰즈는 ‘운동의 통일성’이 바로 쇼트를 규정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고 말한다. 쇼트의 통일성은 자신이 포함하고 있는 다양체에 의거하여 변이하지만, 동시에 그 상관적 다양체의 통일성이기도 하다. 결국 물리적으로 커트된 필름 단편 혹은 카메라와 피사체 사이의 거리 등과 같은 기술적인 기준들은 더 이상 유효한 것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들뢰즈에 의하면 쇼트에 대한 기술적 개념 규정을 벗어나는 모든 쇼트들까지도 우리가 쇼트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운동의 통일성 때문이며, 그는 운동의 통일성을 갖추고 있는 네 가지 경우를 예로 들고 있다. 첫째, 각도나 시점의 변화가 있다 하더라도 카메라가 하나의 연속적 운동을 하는 경우이다. 여기에서는 카메라의 연속적 운동이 쇼트의 통일성을 보장해주는 경우를 의미한다. 둘째, 물리적으로는 구분된다 하더라도 쇼트들의 연결이 갖는 속성에 의해 쇼트들이 완벽한 통일성을 가질 수 있다. 물리적으로는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쇼트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통일적인 운동을 보여주고 있다면 이 경우 여러 개의 쇼트로 나누어 보아야 할 이유가 없다. 유명한 예로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에서 카메라가 집의 담을 넘어 지붕의 천창으로 진행하다가 마치 창문을 뚫고 실내의 여자에게 다가가는 경우 두 개의 필름 단편은 하나의 완벽히 통일된 운동을 보여준다. 셋째, 시야심도(profondeur de champ)를 가진 쁠랑-세캉스의 경우이다. 이 경우는 그저 하나의 쇼트로 여겨질 경우도 있으나, 들뢰즈와 보니체르는 물리적인 쇼트들의 연결만이 몽타주가 아니라 한 화면 내에서 면들의 중첩이 깊이로 포개어져 있는 경우 역시 쇼트들의 연결로 이해하고 있다. 잘라 붙인 쇼트들의 수평적인 연결이 아니라, 한 화면 내에 수직적으로 쇼트들이 중첩되어 연결되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 단지 공간의 깊이감이 깊게 나타나 있다고 이 중첩된 면들이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지속의 가느다란 실에 의해 전경-중경-후경이 운동의 통일성으로 연결되었을 경우 하나의 쇼트로 파악할 수 있다. <시민 케인>에 많이 등장하는 심도 깊은 쇼트들이 그 예이다. ‘화면영역의 깊이는 세계로 열려진 지평선이 아니라 쇼트들의 배열’이라는 보니체르의 언급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넷째, 평면적인 쁠랑-세캉스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이는 모든 공간적인 쇼트들이 여러 프레이밍을 통과하는 재화면잡기를 통해 구성되는 다양체로서, 이 경우 쇼트의 통일성은 완전한 평면성으로 나타난다. 마치 흐르는 듯 매끄러운 유형의 운동에 의해 이루어진다.

들뢰즈는 이렇게 네 가지 유형의 ‘운동의 통일성’을 제시하고 있으나, 이 목록은 결코 완결된 목록이 아니다. 운동의 통일성만 제시해 줄 수 있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유형의 쇼트들을 추가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이 모든 경우에서 쇼트란 운동의 통일성의 차원에서 고찰되고 있다는 점이다. 쇼트의 통일성은 단지 물리적으로 커트되지 않았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물리적으로 나누어진 쇼트들의 연결로 이루어진 경우도 운동의 통일성이 있을 경우에는 하나의 쇼트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몽타주는 쇼트들을 잘라서 이어붙인 것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시야심도에 대한 설명에서 언급했듯이 수직적으로 화면 영역 안에 중첩되어 제시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쇼트와 몽타주는 실천적으로 분명하게 구분되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참조하면서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개념으로서 이러한 쇼트와 몽타주에는 이미 프레임이 전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프레임-쇼트-몽타주는 모두 지속하는 전체의 변화를 표현하는 운동 이미지의 두 경향성과의 관계에서 파악되어야 하는 것이므로 이 세 개념을 기술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그저 추상적인 차원에서만 의미가 있을 뿐 구체적으로 의미를 가지는 구분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쇼트가 구체적인 의미를 가진 영화 미학적 단위로 성립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결국 다양체로서의 운동 이미지가 부분 및 전체와 맺는 관계 그리고 이 다양체가 가지는 운동의 통일성이라 할 수 있다.

쇼트를 운동의 통일성의 관점에서 파악하게 되면, 서명과도 같은 특정한 운동의 스타일을 통해 작품이나 작가를 분석해야 한다는 들뢰즈의 주장이 보다 분명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쇼트의 운동은 전체와 부분 사이를 오가며 분할과 통합을 행하는 영화적 의식이므로 쇼트를 분석하게 되면 전체가 부분 속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영화를 그러한 방식으로 분석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 단위로서의 쇼트는 단순히 기술적인 것일 수 없다. 영화 전체를 이해하기 위한 미학적 단위로서의 쇼트는 전체의 변화를 표현하는 운동의 관점에서 규정되어야만 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운동의 통일성에 따라 쇼트를 규정하는 것은 영화 분석을 위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개념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운동의 통일성이라는 구체적인 기준을 통해 재정의된 쇼트 개념은 영화 분석의 중요한 기본 단위로서 의미를 갖게 된다. 또한 쇼트란 영화가 자신이 보여주고자 하는 대상을 어떠한 흐름을 가진 것으로 파악했는지를 포착한 방식이기도 하다. 결국 영화가 어떤 방식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사유하고 있는지, 그 사유의 궤적을 이해하게 해 준다. 특히나 다른 시각 예술들이 성취해 낼 수 없었던 운동의 흐름과 운동의 단편들을 통해, 카메라-의식이 그것이 속해있는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쇼트를 통해 나타난다는 것은 쇼트야말로 영화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이면서 동시에 영화적 특수성을 통한 사유방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가끔 영화를 보다가 마주치는 마음에 드는 장면들을 핸드폰이나 노트북 바탕화면에 깔기 위해, 장면을 정지화면으로 캡춰하는 경우가 있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정말 그토록 아름답던 장면의 느낌이 확 죽어버리는 경우들이 있다. 처음엔 내가 잘못된 지점을 캡춰해서 그런걸까 의심하면서 여기저기 다시 캡춰해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유가 뭘까. 빠른 움직임을 보여주는 영화의 경우 당연히 움직임과 정지는 너무 다르니까 그렇겠지라고 이해가 되지만, 실은 내가 캡춰하려 했던 영화들은 빠른 속도감은 커녕 나뭇잎만 흔들리거나 움직이는 사람도 등장하지 않는 상당히 정적인 영화들이었다. 영화를 보다가 어떤 장면이 너무 좋다고 느낀 것은 단순히 훌륭한 미장센 때문만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화면에 등장하는 어떤 대상 그리고 카메라를 통해 그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총체적으로 감동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영화를 통해 특정한 시간 속에서 어떤 대상과 같이 호흡하고, 움직이고, 바라보고, 느끼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일 것이다. 쇼트는 바로 그러한 대상의 흐름을 절단해서 우리에게 주는 것이기 때문에 정지화면으로는 그 움직임과 시간의 느낌들을 결코 전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옆의 사진은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단편 영화 <엉클분미께 보내는 편지 A Letter to Uncle Boonmee>의 한 장면이다. 너무나도 멋진 장면이었는데, 정지화면으로 캡춰한 순간 그 호흡, 빛, 공기가 다 사라져버렸다. 이 장면의 호흡은 영화를 직접 봐야지만 알 수 있다. (온라인 상영관 주소 : http://www.animateprojects.org/films/by_date/2009/a_letter_to)

영화의 역사를 훑어보면 알 수 있듯, 영화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라고 할 수 있는 쇼트는 기술적인 규정들로 한정될 수 없는 변화무쌍한 생명력을 지니며 나타나곤 했다. 새로운 쇼트의 등장에 뒤늦게 이론가들은 쇼트 개념을 무엇이라고 규정해야 할지를 놓고 논쟁하곤 했다. 하지만 이런 논쟁들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새로운 쇼트들은 계속해서 출현했다. 이제 보니체르의 “모든 문제는 언제나 사람들이 쇼트 혹은 쇼트들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를 아는데에 있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윤곽이 그려진다. 결국 영화를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영화가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고 사유했는지를 쇼트들이 다루어진 방식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영화적으로 사유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쇼트가 무엇이며 각 영화마다 쇼트가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파악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영화적 사유의 궤적을 파악하는 것이리라.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탐험 (3)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탐험 (3)

이정호(방송대)

주제 1: 그리스인의 사랑

 

2. 아프로디테(1)

우리는 지금까지 에로스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 이제 사랑과 관련한 두 번째 위대한 신 아프로디테(Aphrodite)에 대해 살펴보자. 이 여신의 영역은 「일리아스」제5권에(428행 이하)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제우스는 분수도 모르고 지상의 전투에 간여했다가 손에 상처를 입은 귀여운 딸 아프로디테를 위로하며 이렇게 상냥하게 말을 건넨다.

내 딸아 전쟁에 관한 일은 네 소관이 아니란다. 너는

욕정 가득한(himeroenta) erga gamoio나 맡아 보아라, 전쟁에 관한

모든 일은 아레스와 아테네가 염려할 테니.

 

1. 아프로디테와 아레스, 아프로디테가 케스토스 히마스를 걸치고 있다. 폼페이 벽화 AD 1세기경. 나폴리 고고학박물관 소장

여기서 erga gamoio를 “혼사(婚事)”라고 번역할 경우 그것은 본래의 의미를 곡해하는 것이다. 아프로디테는 결혼의 신이 아니다. 보통 gamos(gamoio는 gamos의 소유격)는 ‘결혼’의 의미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전적으로 아프로디테 여신의 영역 즉 “성적 결합(die geschlechtiche Vereinigung)”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딧세이아」의 한 구절은 그것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22. 444 이하). 오뒷세우스는 그 부분에서 구혼자(mn?st?r 오뒷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에게 결혼을 강요한 이타케의 불한당들)들과 음란한 짓을 저지른 부정한 하녀들을 끌고 가 죽음으로 죄값을 치루게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날이 긴 칼로 한 명도 남김없이 그들을 찔러 죽여라. 구혼자들이 하자는 대로 은밀하게 몸을 섞으면서 느꼈던 ‘아프로디테’를 그들이 잊을 때까지” 여기에서 여신의 이름이 의미하고 있는 것은 단적으로 성적인 쾌락이고 그것이야말로 사실 이 여신의 고유한 관심 영역이다. 그리고 “아프로티데의 일”의 의미를 갖는 아프로디시아(aphrodisia)라는 말 역시 오직 양성간의 성적인 결합에 한정하여 쓰이는 말이다.

여신의 세력범위가 매우 명료하게 드러나는 예는 「일리아스」의 또 다른 한 장면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14. 214 이하) 헤라(Hera)는 제우스를 잠자리로 끌어들여 트로이아 성벽 아래에서 벌어지는 전투로부터 제우스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놓으려 하지만 이 결혼의 여신은 사랑을 유혹하는 데는 별로 자신이 없다. 그래서 그녀는 아프로디테에게 남성을 욕정에 빠트리게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기를 청하고 아프로디테는 그것을 받아들여 이른바 “아프로디테의 띠”라고 불리우는 케스토스 히마스(kestos himas)를 헤라에게 건네준다. 이러한 끈을 걸친 예로서는, 바빌로니아의 수메르인과 아카드인의 도시 키슈(Kish)와 고대 페르시아의 수도 수사(Susa)에서 출토된 기원전 3000년경의 풍요의 여신의 나체상과, 폼페이의 벽화에 정부 아레스(Ares)와 함께 그려진 유명한 아프로디테의 그림이 있다. 이 끈에는 영험이 확실한 마법의 무늬가 자수(刺繡)되어 있었다(kestos라는 형용사는 그것을 가리킨다). “그 안에는 애정(philot?s)과 욕정(himeros) 그리고 아무리 사려 깊은 자일지라도 그 마음을 호리는 사랑의 밀어(oaristus)와 유혹(parphasis)이 깃들어 있었다”(14. 216-7) 헤시오도스도 아프로디테의 몫으로 정해진 명예로 처녀의 밀어(partheniou oaros), 미소(meid?ma), 속임수(exapat?), 달콤한 희열(glykeros terpsis), 애정, 상냥함(meilichios)을 들고 있다.(「신들의 계보」205)

이처럼 아프로디테와 에로스는 비록 중첩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분명하게 구별된다. 에로스가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침투된 갈망이라면, 아프로디테는 그 갈망의 한 구현으로서 욕정에 불타는 erga gamoio 즉 ‘성적 결합’을 의미한다. 에로스는 플라톤의 「향연(symposion)」에서처럼 정신적인 것에로의 상승을 이끄는 힘으로 승화되기도 하지만, 아프로디테를 사랑의 정신화와 연계 짓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곧 살펴보겠지만 이 두 개의 신격이 가리키는 영역은 상당부분 실질적으로 중첩이 되어 나타난다. 아프로디테 역시 활동하는 영역으로 보자면 따로 제한되어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2. 아프로디테(비너스)의 탄생, 퀴프로스섬에 닿은 아프로디테. 보티첼리 1485년, 피렌체 우피치 박물관 소장

많은 신들이 그렇듯이 아프로디테도 처음부터 그리스의 신은 아니었다. 그녀는 소아시아 남쪽 퀴프로스섬의 신으로서 퀴프리스(Kypris)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고, 타키투스(Tacitus)에 의하면 그녀는 퀴프리스 신앙의 중심지였던 파포스(Paphos)에서 우상으로서 숭배되고 있었고 원추형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역사(Historiae)」2·12) 이와 비슷한 예는 페니키아의 화폐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그 화폐에 원추형의 모습으로 새겨진 뷔블로스의 아스타르테(Astarte)신 역시 고대 셈족의 풍요와 생식의 여신이었다. 이것 또한 아프로디테가 오리엔트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여겨지는 주된 이유들 중의 하나이다. 물론 그리스 원주민들이 대모신(Große Mutter)으로 섬기던 여신들 중 한 명이 아프로디테의 원형이라는 주장도 있긴 하지만 그것 또한 아프로디테의 숭배에 오리엔트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리스의 주요 신들이 여명기 지중해를 둘러싼 여러 지역의 문화들이 융합해서 생긴 결과라는 사실에 충분히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아무튼 아프로디테와 에로스는 개념상 서로 매우 가깝고 중첩되는 부분도 많아서 양자는 차츰 밀접하게 관계를 갖게 되었다. 호메로스는 아프로디테를 제우스와 디오네(Dione)의 딸로 그리고 있지만 헤시오도스는 「신들의 계보」에서 그녀의 탄생을 크로노스가 우라노스를 거세하는 왕위 계승 신화와 연결 짓고 있다. 그것은 하늘과 땅의 분리라는 측면에서 그와 유사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힛타이트 신화를 떠올리기도 하지만, 「신들의 계보」에서 아프로디테는 크로노스에 의해 낫으로 잘려진 우라노스의 생식기가 오랫동안 바다를 떠다니다 불사의 살점 때문에 생긴 거품으로부터 태어났다고 그려지고 있다. 헤시오도스는 이 부분에서 아프로디테가 남근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를 들어 아프로티테를 ‘남근을 좋아하는 신'(philommedea)이라고도 불렀다. 탄생 후 아프로디테는 퀴프로스섬에 닿아 아리따운 여신의 모습으로 밖으로 걸어 나오는데 그녀가 땅에 발을 딛자마자 모든 것들의 생식욕구를 지배하는 여신답게 여신의 날씬한 발밑에는 사방으로 풀이 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렇게 그녀가 태어나서부터 신들의 종족에게 갈 때까지 그녀와 동행하고 있는 신들이 곧 에로스와 애욕의 신 히메로스(Himeros)이다. (「신들의 계보」187-202).

에로스와 아프로디테는 제사에서도 종종 일체화되었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북쪽에서 기원전 5세기 때의 신전이 발굴되었는데 신전에 새겨진 증언에 의하면 이 신전은 그들 두 신에게 바쳐진 것이다. 에로스와 아프로디테의 동행은 파르테논 신전의 동쪽 프리즈(Ostfries)에 조각된 신들의 모임에서도 나타난다. 그곳에서는 발랄한 아름다움에 빛나는 알몸 소년의 모습을 한 에로스가 아프로디테의 무릎위에 앉아 있다.

시인들이 뮈케나이의 여러 가지 호사스런 궁정 생활의 특색을 도입하여 올륌포스 신들을 시가로 그려냈을 때, 아프로디테 역시 확고한 지위를 갖는 신으로 그려졌다. 이 여신을 포함해서 올륌포스신들은 인간들처럼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면모도 풍기면서 제멋대로 행동하곤 하지만 그 신들 모두는 자주 상궤를 넘어서는 힘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항상 위대하다. 아프로디테는 이다(Ida)산상에서 벌어진 미모경연(Sch?nheitswettstreit)에서 파리스(Paris)가 자신에게 황금 사과를 건네 준 것을 잊지 않고 있다. 그래서 아프로디테는 그 보답으로 파리스에게 헬레네(Hel?ne)를 안겨 주고 그 후로도 줄곧 파리스를 돌봐 주고 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제3권에서는 연적사이인 메넬라오스(Menelaos)와 파리스의 결투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만약 아프로디테가 수세에 몰린 파리스를 노골적으로 가로채 짙은 안개로 감싸 향기로 가득 찬 그의 방으로 끌고 가지 않았다면, 그는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프로디테의 호의는 그 정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녀는 양모를 빗질 하는 노파의 모습으로 변장하여 마치 중매쟁이처럼 향기로운 옷자락을 흔들며 헬레네를 파리스와 함께 잠자리를 같이 하도록 유혹한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시에 담겨진 이 장면은 고뇌에 찬 한 여인의 정신적 깊이를 아주 잘 표현해주고 있다. 헬레네는 이미 자신이 남편 메넬라오스와 조국에 저지른 잘못을 알고 그것을 오랫동안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유혹하는 노파가 다름 아닌 아프로디테인 것을 알아차리자 이내 정부인 파리스의 잠자리로 이끌고 가려는 그녀의 제의를 야멸차게 거절한다.

3. 아프로디테와 아레스(비너스와 마르스) 보티첼리 1483, 런던국립미술관 소장

“아프로디테님! 당신이나 그를 위하여 애태우며 지켜주세요. 그러시면 언젠가는 그가 당신을 아내나 노예로 삼을 날이 올 거에요. 아무튼 나는 그리 가서 그의 시중을 들지 않겠어요. 그랬다간 모든 트로이아 여인들이 나를 욕할 거에요. 그렇잖아도 나는 마음이 한없이 괴로워요” 그러자 아프로디테는 크게 격분하여 그녀를 거칠게 몰아 부친다. “나를 자극하지 마라, 무모한 여인이여! 내가 성내는 날에는 너를 버릴 것이며, 지금 내가 너를 격렬하게 사랑하고 있는 그 만큼 너를 미워하게 될 것이고, 너는 트로이아인들과 아카이오이족 양쪽으로부터 미움을 받아 비참한 운명을 맞게 될 것이다” (「일리아스」408-417) 올륌포스신들의 전횡은 요컨대 협박(Drohung)에 있다. 이 무서운 협박에 헬레네는 이내 겁을 먹고 어쩔 수 없이 하얀 면사포로 얼굴을 가리고 트로이아 여인들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여신의 뒤를 따라 파리스에게 간다. 이 장면에서 만큼 협박이 극적이고도 효과적으로 표현된 예는 그리스 문학 전체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 음울하고 무서운 장면 뒤에는 그로테스크하게 펼쳐지는 또 하나의 상황을 보며 환호하는 이오니아 정신이 가득 넘쳐난다. 방안에서는 아프로디테의 의도대로 파리스와 헬레네가 호사로운 침대에 누워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있고, 밖에서는 메넬라오스가 불구대천의 적인 파리스의 빈 투구만을 손에 쥔 채, 파리스를 찾기 위해 야수처럼 무리들 사이를 미친 듯이 뛰어 다니고 있는 것이다.

「오뒷세이아」 제4권에는 텔레마코스(Telemachos)가 아버지 오뒷세우스를 찾아 가는 길에 스파르타 궁정에 들렀다가 다시 메넬라오스에게 돌아와 그의 아내이자 정숙한 주부로서 살아가고 있는 헬레네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흥미롭게도 그리스 서사시의 등장인물들은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그것을 언제라도 신들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 헬레네도 그 장면에서 트로이아에 몰래 잠입한 오뒷세우스를 자기가 숨겨주고 뒷바라지까지 했노라고 변명조 섞인 자랑을 늘어놓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오뒷세우스 그분이 트로이아 사람들을 죽이자….나는 마음이 흐뭇했어요. 내 마음은 벌써 오래전에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돌아서 있었고, 아프로디테님이 그 때 나에게 불어넣은 미혹(at?), 그러니까 내 딸과 우리 부부의 침실과 그리고 지혜로나 외모로나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내 남편을 버리고, 사랑하는 조국을 뒤로 한 채 저 땅으로 달려가면서 가졌던 그 미혹들을 지금은 후회하고 있거든요”(260-264). 이에 메넬라오스는 언제 헬레네가 파리스와 놀아났던가 싶은 말투로 “부인, 그대가 한 말은 모두 도리에 맞는(kata moiran) 말이오”라고 말하면서 흐뭇해하고 있다.

아프로디테는 그녀 자신이 결코 결혼의 신이 아님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오뒷세이아」의 제8권에서 음유시인 데모도코스(Demodokos)가 노래하고 있는 것은 이 여신의 부정한 행동이다. 그녀는 헤파이스토스(Hephaistos)와 결혼했다. 그녀의 남편인 헤파이스토스는 쇠를 다루는 기술에서는 따를 자가 없는 대가이지만 신체적으로는 절름발이 장애자였다. 그런데 그가 집을 떠나 있던 어느 날 당당한 체구의 전쟁의 신 아레스가 아프로디테를 찾아와 갖은 선물을 주며 그녀를 유혹하고 마침내 잠자리를 같이 한다. 헬리오스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들은 헤파이스토스는 화가 나서 침대 기둥 주위와 위로 도망칠 수 없는 올가미를 거미줄처럼 둘러쳐 놓았고 결국 아레스와 아프로디테는 여느 때나 다름없이 몰래 잠자리를 같이 하려다 그 올가미에 걸려든다. 이 소식을 들은 헤파이스토스는 노여움으로 가득하여 집으로 돌아와 그 가소로운 광경을 보라고 신들을 모두 불러 모은다. 그러자 부끄러워 집에 남은 여신들을 빼고 많은 신들이 그곳에 몰려와 그 광경을 보고서는 모두 웃음을 금치 못한다. 이 기묘한 장면을 읽어가면서 어떤 독자들은 어떻게 하면 신들의 노래에서 그 추잡함을 거두어 내고 읽을 것인가를 고민할지도 모르지만 이어지는 신들의 대화를 듣고 나면 고민 자체가 금새 무색해진다. 우선,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아폴론(Apollon)은 남동생인 헤르메스(Hermes)에게 너는 이와 같이 강력한 사슬에 묶여 꼼짝 못한다 하더라도 침대위에서 황금의 아프로디테와 함께 자고 싶으냐고 묻는다. 그러자 헤르메스는 지체 없이 “그랬으면 오죽 좋겠소!”라고 말하면서 “설사 이 보다 3배 이상의 많은 사슬들이 나를 감고있다 해도 그리고 신들과 모든 여신들이 들여다본다 하더라도 나는 황금의 아프로디테 옆에 눕고 싶소이다”라고 대답한다. (266-342). 그러자 많은 신들이 다 그 말에 웃음을 터트린다. 그러나 그러한 광경 앞에서 유독 포세이돈만은 웃지 않고 헤파이스토스에게 아레스가 신들 앞에서 합당한 벌금을 낼 것이고 자기가 그것을 보증할테니 아레스를 풀어주도록 간청한다. 결국 헤파이스토스는 포세이돈의 간청을 받아 들여 그들을 풀어주고 아레스와 아프로디테는 군말 없이 반대방향으로 헤어져 자기들이 살던 곳, 즉 아레스는 트라키아로, 아프로디테는 그녀의 성역인 퀴프로스섬 파포스로 돌아간다. 퀴프로스섬의 우아의 여신들인 카리테스(Charites)들은 돌아온 아프로디테를 정성껏 목욕 시키고 영생하는 신들의 살갗을 뒤덮고 있는 불멸의 기름(elaion)을 발라주고 휘황찬란하고 사랑스런 옷을 입힌다. 이와 같이 데모도코스의 노래는 신들의 속내는 물론 관능의 신 아프로디테 여신 또한 그 황홀한 광채를 털끝만큼이라도 손상하지 않은 채 온전히 그 자리에 있음을 다시금 드러내면서 끝이 난다.

신화 속에 나타난 신들과 인간들의 이러한 모습들 모두 고대인들의 삶의 반영으로서 신화가 표상하고 있는 뿌리 깊은 인간 본성의 중층적 층위들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2. 아프로티데(2)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