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 탐험(19)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 탐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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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정호 (방송통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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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 3에서는 부르크하르트의 『그리스 문화사』제8장 “Zur Philosophie, Wissenschaft und Redekunst”(Gesammelte Werke, Band VII, s. 275-421)의 내용을 수회에 걸쳐 발췌 요약하는 방식으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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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3 : 부르크하르트의 『그리스 문화사』: 그리스 철학과 과학의 지성사적 기원과 의미

 

2. 신화와의 결별

나. 피타고라스와 영혼불멸 신앙

보다 엄밀함을 요구하는 시대가 다가오자 그에 대적하는 신화의 필사적인 저항이 이루어졌는데 그러한 몸부림이 가장 집약적으로 잘 나타나 있는 인물이 바로 저 위대한 피타고라스(Pythagoras)이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이미 윤회전생을 통해 아에탈리다스, 에우포르보스, 헤르모티모스, 퓌로스 등 네 사람의 삶을 살았고, 서로 다른 지역에 동시에 나타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쨌건 역사적 인물로서 피타고라스는 기원전 570년경 사모스에서 태어난 것이 분명하고 성년이 된 후 기원전 530년경 이탈리아의 크로톤(Kroton)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가르침을 펴다가 혁명이 일어나 그의 신도들이 처절하게 추방되기 3년 전인 기원전 497년에 사망했다. 그가 이집트를 다녀왔다는 것은 틀림없이 믿을 만한 사실이다. 제26왕조 치하였던 당시 이집트에는 그리스의 식민 도시 나우크라티스(Naukratis)가 있었기 때문에 여행이 특별히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단순한 왕래정도가 아니라 가장 진정한 이집트인, 즉 신관과 관계를 맺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여러 가지 번거로움이 따랐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그들과 교유하면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헤로도토스(II, 81)도 전하고 있듯이 이른바 오르페우스(Orpheus)교와 박코스(Bakchos)교의 신도들이란 사실 이집트인들과 피타고라스학파 사람들이었으며 그럴 정도로 피타고라스적 본질과 이집트적 본질은 아주 닮아 있었고 오르페우스교의 행사와 피타고라스학파의 행사 또한 서로 혼동될 만큼 비슷했다. 한편, 피타고라스가 바빌론에 갔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인도와는 어떤 식으로건 접촉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의 영혼 윤회설(metempsychos)에는 오히려 이집트적인 것보다는 인도적인 색채가 보다 강하게 배어있다.

피타고라스(기원전 582-497)

그런데 피타고라스가 그리스인에게 전해준 것으로서 주목해야할 것은 이 영혼 윤회설 내부의 금욕사상과 결합된 그의 새로운 종교와 윤리학이다. 그는 철학자이기보다는 오히려 종교 개혁가였고 생존의 고뇌가 이전보다 훨씬 무겁게 느껴졌던 시대에 살고 있었으며, 이 지상에서의 삶이란 전생에서 범한 죄과에 대한 속죄의 과정으로서 감내해야 할?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이 속죄 상태가 끝난 후에는, 테오그니스(Theognis)가 생각하듯 침묵의 돌이 되어 무덤 가운데에 눕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정화의 순서를 밟은 다음, 내세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로 다시 윤회전생(輪回轉生)한다고 생각했다. 신비로 가득 찬 의식을 통해 정화되고 전 생애에 걸쳐 신성한 의식을 추호의 소홀함이 없이 수행해낸 경건한 사람만이 종국에 가서 영원한 생성과 소멸의 쇠사슬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이러한 희망을 기치로 내세워 그 교단을 이끌어 간 것이다. 그 역시 오르페우스 교도와 마찬가지로 육체는 영혼의 묘지 혹은 감옥이며 고귀한 영혼은 천상 세계에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 여겼다. 피타고라스가, 영혼이 여러 육체를 거치는 지상에서의 편력을 모두 끝낸 후에는 그 보답으로서 지상적 존재를 마감하는 것이 허락된다고 가르쳤거나, 마지막으로 그 영혼은 신격의 하나로 영입되었을 것(어쨌든 이것은 플라톤의 희망이었고, 앞서 엠페도클레스도 이러한 희망을 품고 있었지만) 이라고 가르쳤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영혼불멸과 일치하는 것은 후자 쪽의 생각이지만, 영혼이 “벌로서” 육체에 갇혀 있다는 생각은 논리적으로, 영혼이 보다 크고 잦은 비참함에 빠지지 않으려면 신이 영혼을 구제해 줄 때까지 육체 안에서 잘 참고 견뎌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피타고라스학파가 교인들에게 자살을 금하고 “노령의 죽음”을 맞이하도록 엄하게 가르쳤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의 마음속에 과거가 어떻게 비쳐졌는지 또 그 경우 어떠한 것이 친근성을 가지고 그에게 전생과 관련한 신호를 보낸 것인지에 대해서는 우리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나 전생에서 4번이나 생존했다고 하는 그의 기억에 관한 전승들은 하나같이 동물들 안에 인간의 영혼이 있다는 것을 너무도 사실인 것처럼 그리고 있다. 예를 들어, 그는 오래 동안 다우니아의 숫곰과 대화를 나누었고 그와 친근했던 한필의 황소는 아주 나이가 많아질 때까지 타렌툼의 어느 신전에서 신세를 지고 있었다는 등등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피타고라스가 영혼 윤회설을 고대인들이 믿고 있었던 것처럼 오르페우스 교도로부터 배웠는지 아니면 반대로 오르페우스 교도 쪽이 피타고라스로부터 그 교설을 배운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아마 영혼 윤회의 사상은 어디에선가 도래하여 당시 사람들의 생각에 확실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딱히 이 사상을 거부하려는 사람도 없었던 듯하다. 어쨌든 불사의 신앙이 새롭게 요구되거나 그곳에로의 비약이 필요할 경우, 그리스인은 즉시 피타고라스를 상기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 중에서 피타고라스학파와 별도로, 영혼이 인간이나 동물이나 식물 등으로 윤회전생을 거듭하는 것을 그야말로 영혼이 받는 벌이라고 명확하게 가르친 사람은 아그리겐툼(시칠리아)의 엠페도클레스(Empedokles, 기원전 444년경)였다. 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전해지고 있다. “나는 이미 소녀였으며 또 소년이었고, 새끼양이며 새이었고 바다 속 물고기였다.”

수학의 나라. 특히 기하학의 나라인 이집트로부터 피타고라스는 가장 중요한 이득으로서 수학적 지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의 학문의 과학적 일면은 여기에 유래하고 있는 것이다. 즉 그의 가르침은 “수학과 음악 연구의 발단을 포함하고 있었고 이 연구가 후에 피타고라스 철학의 성격을 본질적으로 규정함으로써 수학적, 음악적인 우주의 구성에 도달 할 수 있었으며 또 오르페우스교의 교설과 달리 기괴한 신학에 미혹되는 일도 없었던 것이다.” (E. Rohde) 물론 그리스인이 생각했던 수의 이론이 매우 광범위한 문제영역을 가지고 있고 그 이론들 중 얼마만큼이 피타고라스와 연관되어 있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도 증언하고 있듯이 엠페도클레스, 데모크리토스 같은 사람들보다 이전 시대에 이미 피타고라스가 수학을 자기 학설의 핵심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피타고라스는 아주 의도적으로 수의 영역에 다양한 다른 것들을 한꺼번에 끌어들이고 있다. 그에게 수라는 것은 여러 가지 힘의 비유이며, 수의 비례나 비율 또한 여러가지 사상의 비유로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마도 그는 1과 다, 짝수와 홀수, 신성한 수 10과의 관계 속에서 신성한 4개의 수(1+2+3+4=10) 등과 같은 것들에 각각 사상을 결부시켜 청강자들을 갑자기 숭고함에로(ins Erhabene) 끌어 들였을 것이다. 또 이 학설에는 도덕적인 면과 함께 미학적인 면도 있었다. 즉 원은 가장 아름다운 평면이며, 구는 가장 아름다운 물체라는 설명함으로써 대지에 구의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러한 견해는 대지가 타원형 또는 원반으로 여기고 있었던 당시로서는 대단히 놀라운 것이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소리는 여러 가지 수 또는 그 역이라고도 설명함으로써 이미 수를 음악의 기초로 파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물질적 원소들을 특정의 기하학적 도형들과 결부시키고 있었다. 윤리적, 지적, 물질적 세계를 이와 같이 수의 형태로 설명하는 것은 당대의 모든 그리스적 삶에 깊은 영향을 주었고 이러한 경향은 후대의 사람들에게도 전해져 기하학과 산술은 이후 그리스의 모든 지식을 해명하는 손잡이(labai)가 되었다.

라파엘의부분화 – 음악이론을 기술하는 피타고라스

하지만 이상의 것들은 모두 이 세계 전체를 학문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기초에 불과했다. 다름 아니라 피타고라스의 학설에서 처음으로 지구가 우주 체계의 중심으로부터 배제되었다는 것이야말로 그들에게 불후의 명성을 가져다 준 획기적인 주장이라 할 것이다. 처음에는 대지성(對地星, Gegenerde, 태양계 행성을 열 개로 하기 위해 지구의 뒤에 있다고 상정한 행성)이라든지 중심불(천체가 그 둘레를 수학적 법칙에 따라 회전하는 우주의 중심)이 있다는 망상에 빠져 있었긴 해도 그들은 결국 지구가 그 중심축 주위를 회전하고 있다는 생각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피타고라스 학설에 돌려야 할 영예가 또 있다. 그들은 처음으로 심리학적 구분법을 사용하여 인간의 영혼을 인지력, 정열, 이성의 세 가지로 나누어 이 중 인지력과 정열은 동물도 가지고 있지만 이성은 인간만이 소유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한편, 이 학설이 단순한 철학이었다면 여성은 거론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피타고라스학파의 활동에 관한 전승에서 우리는 여러 명의 여성 피타고라스 교도들을 발견한다. 예를 들어 피타고라스의 아내 테아노(Theano)와 그의 딸 다모(Damo) 등 일단의 여성들은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최고 수준의 학문적 문제에 활발한 관심과 능력을 보이고 있었다. 아무려나 양성의 평등을 가장 고귀한 의미에서 최초로 확립해 낸 것은 피타고라스학파의 영혼 윤회의 학설이었다. 피타고라스는 여성을 남성과 더불어 영혼 윤회과정에서 태어나는 동격의 사람으로 여겼고 윤회에 의해 태어날 다음 세대 사람들의 어머니로서 존경하고 있었다.

피타고라스의 인품은 신화적 전승 통해서 추측하건대 매우 엄숙하고 아폴론적이었음에 틀림없다. 훌륭한 용모에 흰 의복을 걸치고 그는 여러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위풍당당하게 나타났다. 그러면서도 언행에서는 온화하고 친근한 정이 빛나고 있었다. 그는 처음에 몇 안 되는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전했지만 이내 많은 사람들이 주위에 모여 들었다, 그리고 이윽고 하나의 마을 전체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의 가르침은 주도면밀한 계획 하에 이루어졌다. 그의 학생들은 처음 5년간 스승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이것은 아마 일종의 예비 과정의 경우 수준 높은 제자들이 그를 대신하여 가르쳤던 것으로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제자들 사이에서 스승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무슨 일이든 “스승께서 그렇게 말씀하였다“는 말로 언표된 이상 그 이상의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기록의 형태로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어떤 교설을 전할 때마다 ”내가 호흡하고 있는 공기에 맹세코, 내가 마시는 물에 맹세코, 내가 말하는 일에 논박을 더하는 것을 나는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신도들에게 침묵과 명상과 내면의 집중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뛰어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려고 했다. 그의 학설은 함부로 공개되어서는 안 될 비밀이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종교적 비의와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었고 영혼의 윤회와 피타고라스적인 윤리는 공공연하게 가르쳐지고 있었다. 물론 일부 과학적 지식들은 비밀스럽게 전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피타고라스가 그러한 지식들이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는 그러한 지식들을 신중하게 극히 서서히 전수하는 것이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학설이 와전되거나 왜곡되는 것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 학파는 매우 독특하게도 가르침을 전수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상징적이거나 장중한 성격을 띠지 않을 수 없었다.

피타고라스는 이러한 학설을 주창하면서 신들에 대한 믿음을 반대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이단은 아니었다. 그러나 전통적인 종교가 그를 만족시킨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종교로는 우주의 비밀을 밝힐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신들 또한 무엇보다도 호메로스의에서 그려지듯 여러 가지 불성실한 상태로부터 결코 벗어나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에게 남아 있던 것은 혐오라고 하는 항의 밖에 없었다. 그는 지하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벌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하나로서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이름을 들었다. 하지만 그가 신들을 얼마나 깊이 숭배하고 공경했음은 신께 바치는 기도에 대한 그의 훌륭한 태도만 보더라도 잘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자신에게 어떤 선물을 달라고 기도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았다. 그는 선물의 선택을 철저히 신들에게 맡겼다.

피타고라스는 자신의 영혼 윤회설 때문에 크로톤과 메타폰티온(Metapontion)에서 종래의 장중하고 화려한 사망자 숭배나 이것과 결부된 대량의 무속 및 유령 관련 미신들과 충돌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와 같은 상황에 직면해서 고도의 정화적인 기능을 완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그는 당시 그리스 본토의 상당수의 제사들보다 훨씬 은밀한 성격의 제사방식을 가져와 그것을 수행했다. 영혼 윤회설은 이미 복잡한 학설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비의적 제사방식까지 함께 들여온 것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 윤회설과 결합된 새롭고도 고상한 윤리가 어떠한 내용의 것이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일 것이다. 이 교설은 옛 부터 육식을 피하고 채식주의를 받들어 왔는데 그렇게 한 이유들 중 하나는 이전에 인간이었던 영혼이 동물의 모습으로 동물의 생활을 감내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렇듯 기원전 4세기의 피타고라스학파에서는 절제와 관련한 수많은 규범들과 관습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한 것들에 대한 준수여부가 사후에 더 좋은 것을 요구할 권리까지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특별한 의복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들이 수행한 금욕은 오르페우스 교도의 그것보다 훨씬 밝고, 투명한 것이었다. 그것은 부패한 양심을 용서받기 위한 금욕이 아니고, 청정한 사람들이 청정한 삶 그대로를 유지하기 위한 금욕이었던 것이다. 그 유일한 목적은 단지 한층 더 고상한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보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피타고라스적 생활의 진수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약속은 성실하게 지키되 서약은 가능한 한 하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거짓 서약이 창궐했던 당시로서는 이것은 실로 이채롭다할만한 특색이다.

라파엘로,

피타고라스가 지방의 여러 도시들을 찾아가면 그가 가르치기 위해서 온 것은 아니라 치유하기 위해 왔다고 하는 소문이 퍼졌다. 남부 이탈리아의 그리스인 도시에서는 부와 사치가 지나쳐 이른바 명문가 사람들은 전쟁이나 군대, 경기와 관련한 일 즉 넓은 의미에서 승부를 위한 삶을 살고 있었는데 피타고라스는 그들이 추구하는 승부욕과 명예욕은 결국 그들 자신을 예속 상태에 빠트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부와 승부를 쫓는 삶을 경멸했다. 그래서 그의 제자들은 이 비범한 스승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자신들의 소유물을 하나로 모아 숭고하고도 엄숙한, 종교적 기운으로 가득 찬 공동체를 꾸려 재산을 공유하며 생활하였다. 한편 그는 정치적 개혁자로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그것은 피타고라스 사후 아주 후대의 세속적 피타고라스 교도들이 행한 실제적인 정치적 활동 때문에 생긴 견해일 뿐 그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아니다. 또 다른 피타고라스 교도들은 오르페우스 교도들과 손을 잡아 고행을 앞세운 미신적인 단체를 결성하기도 하였다. 가장 믿을 만한 증인으로서 플라톤은 최소한 실천철학과 관련해서는 피타고라스를 사생활 영역에서 독특한 형태의 종교 의식을 창시한 사람 정도로 말하고 있을 뿐, 솔론과 카론다스와 같은 정치가 내지 입법가들과는 분명하게 구별하고 있다.

대체로 피타고라스학파 사람들은 극히 중요한 몇 개의 사안과 관련하여 다른 그리스인들과는 애초부터 다른 집단으로 여겨졌다. 그리스의 폴리스에서는 매우 독특하게도 스승이 그것을 요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정치가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그리스인들의 삶은 모두 이 폴리스에 종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타고라스는 사모스로부터 와서 이 폴리스의 이러한 정치적 제도와 행태를 접하고는 줄곧 이의를 제기했다. 그가 크로톤에서 메타폰티온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고 또 그의 말년의 짧은 전성기 이후 그리고 그가 죽은 지 몇 년 후 그의 신봉자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가혹한 박해를 받아 급기야 그들 대부분이 추방을 당하거나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된 사정 또한 아마도 수학과 관련한 그의 방정하고도 엄격한 태도와 가르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피타고라스학파가 고대 그리스에서 종교적이고 윤리적이며 과학적이기도 한 가장 초기의 완전하고도 자유로운 단체였다는 사실은 이 학파가 누려야할 영원한 명예일 것이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친밀하게 서로 결속된 하나의 공동체적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오니아학파나 엘레아학파와 다르다. 실제로 피타고라스학파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우정과 연대감으로 서로를 헌신적으로 도왔고 학파에 속한 사람들이 사망했을 경우 그 사람이 개인적인 안면이 있건 없건 장지가 멀건 가깝건 간에 상관없이 문상을 가 장례를 도왔다고도 전해진다. 이 학파의 영향이 스승이 사망한 이후 2세기 이상 유지되었다는 점도 매우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피타고라스가 이러한 영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그 자신의 삶 자체가 하나의 위대한 종교적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2. 신화와의 결별. 다. 자연철학의 등장. 다음에 계속 )

여성의 관점에서 차이의 경제와 대안도시를 생각한다[지금, 경제를 다시 생각한다]-②

여성의 관점에서 차이의 경제와 대안도시를 생각한다/13강-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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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재(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연구소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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깁슨-그래함에 따르면 자본주의 경제는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거래, 임금이 지불되는 노동, 잉여노동을 자본가가 취하는 자본주의적 기업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제한적인 개념이다. 이러한 규정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우리의 일상에서 수행되는 경제활동 중 하나일 뿐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자본주의를 이렇게 제한적으로 규정하게 되면 우리는 자본주의 외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순수 자본주의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상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대안적 시장이나 비시장적 거래가 존재하며, 대안적 지급이나 미지급으로 노동을 수행하는 경우도 많다. 대안적 기업이나 비자본주의적 기업 등과 같은 비자본주의적 기업들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자본주의적 경제형식 아래 두 칸에 나열된 다양하고 풍부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을 보라. 깁슨-그래함에 의하면 시장거래가 아닌 윤리적 공정 거래나 협동조합 방식의 교환, 개인적 선물이나 국가적 배분과 같은 비-시장적 유통은 비자본주의적 경제이다. 화폐교환이나 임노동과 관계없는 품앗이나 자원봉사 혹은 대안적 지불 형태도 자본주의 경제를 벗어난 경제적 활동이다. 그리고 사회적 기업이나 공동체 사업 그리고 자영업 역시 생산된 잉여가치의 분배에 있어서 자본주의와는 다른 원칙을 갖는다는 점에서 비자본주의적 기업이다. 이들은 자본주의적이라기보다 봉건적, 노예적, 독립적 혹은 공동체적 원리에 따라 작동하며 이 원리는 또한 성, 인종, 제도 여타의 규범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이지 않다고 해서 경제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경제형식들일 뿐이다,

깁슨-그래함의 모델에 따라 앞서 제시한 조씨와 같은 여성의 활동을 분석해 보면 그녀가 다층적인 차원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삶은 비자본주의적 경제활동들로 점철되어 있다. 봉건적 가족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녀의 가사노동, 친인척 돌보기는 비지불 노동이지만 사용가치를 생산한다. 그녀는 봉건적 가족 관계 내에서만 경제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공동체적 관계 안에서 학교에 봉사활동을 하며, 아이 돌봐준 이웃의 아이들에게 과외지도를 한다. 이러한 봉사활동, 품앗이, 호혜적 노동은 교환가치를 생산하는 비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이다. 그녀는 사적인 관계 내에서 순수 비자본주의적인 경제활동만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녀가 일주일에 네 번 정도 하는 프랑스어 과외지도는 화폐를 통해 매개되는 임금노동이라는 점에서 부분적으로 자본주의적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노동이 순수 자본주의적인 것은 아니다. 그녀는 지하시장에서 노동하며 자영업자로서 자신의 잉여노동을 자신에게 배분한다는 점에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에도 연루되어 있다.

이로써 분명해 지는 것은 조씨가 경제와 분리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풍부한 경제적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 활동은 한 가지 혹은 두 가지의 본질적 경제체제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경제형식들과 다층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녀는 다양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활동에 참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풀어야할 문제는 그녀가 수행하는 경제적 활동이 어떻게 대안적 잠재성을 갖는가이다. 만약 우리가 기존의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를 강력한 경제형식으로, 비자본주의를 나약한 경제형식으로 간주한다면, 조씨의 비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은 언젠가 자본주의에 의해 침투되고 식민화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깁슨-그래함은 어떤 전략에 따라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의 긍정적 가능성을 주장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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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경제적 차이의 담론과 중층결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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깁슨-그래함이 사용하는 전략은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그녀들은 비자본주의뿐 아니라 자본주의마저도 복수화함으로써 본질로서의 자본주의가 가졌던 막강한 힘을 탈각시킨다. 이것이 바로 본질주의에서 경제적 차이로의 전회이다. 다른 한 편으로 그녀들은 이러한 경제적 차이의 담론을 바탕으로 중층결정론을 주장한다. 다양한 경제 형식들 중 어떤 하나가 본질로 설정될 수 없으므로 이제 경제는 다양한 형식들이 상호교차하는 가운데 중층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우선 첫 번째의 전략부터 살펴보자. 앞서 설명했듯이 깁슨-그래함은 기존의 이론과 달리 우리 사회가 다양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으며 이것은 전체 경제형식의 50%이상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이미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경제양식이라고 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그러나 깁슨-그래함은 이에서 머물지 않는다. 깁슨-그래함은 다양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을 재소환하는 것을 넘어서 자본주의마저도 복수화시킨다. 그녀들은 여성주의적 관점을 한 발 더 밀고나가 여성 정체성이 다양하다면 남성 정체성 역시 다양하게 이해될 때 대칭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다양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이 있다면 자본주의적 경제 형식 역시 다양하다고 주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깁슨-그래함은 자본주의 역시 하나의 통일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논증한다. 자본주의는 하나의 형태학으로 파악될 수 있는 통일된 형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들에 따르면 실제로 우리가 전형적으로 자본주의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금융부문도 전적으로 자본주의적이지 않다. 가령 개인투자관리사와 같은 자영업자는 자신의 잉여노동을 스스로 전유한다는 점에서 비자본주의적인 특성과 절합되어 있고, 자유로운 사업대출 분야의 성장은 많은 비자본주의적 기업 특히 자영업 활동의 신장에 기여했다. 그녀들에 따르면 주어진 정의를 매끈하게 따르는 그런 순수한 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은 생각보다 적다. 자본주의는 우리가 말해왔던 것처럼 매끈하거나 통일적이지 않다.

이렇게 자본주의마저 복수화하는 전략은 깁슨-그래함의 경제적 차이의 담론을 급진화시킨다. 이제 그녀들의 정치 경제학 내에서 모든 요소들을 관통하거나 지배하는 통일된 단일자로서의 본질은 없다. 알튀세르의 말처럼 모든 사건은 그 순간에 존재하는 모든 조건들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지 하나의 본질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깁슨-그래함의 두 번째 전략이다. 이 전략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본질로서의 위상을 잃게 됨에 따라 그 강력한 힘도 잃게 된다. 그것은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괴물이 아니라 여러 가지 경제형식 중 하나일 뿐이다. 이로써 경제 영역은 다양한 경제 형식들이 절합하고 혼종되는 장소가 되며, 여기서 다양한 차이들의 성격과 방향을 총체적으로 규정하는 중심은 없다. 새로운 언어 속에서 자본주의는 더 이상 강력하거나 통일적인 영웅 혹은 최후의 승리자가 아니다. 경제적 차이의 언어 속에서 자본주의는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과의 절합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해 온 하나의 경제형식일 뿐이다.

반대로 비자본주의는 더 이상 무력한 경제형식이 아니다. 깁슨-그래함에 따르면 비자본주의는 생각보다 우리의 일상에 널리 퍼져 있으며 고유의 힘을 통해 자본주의를 변형시키고 탈구시키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다양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은 정복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무력한 혹은 낡은 경제가 아니다. 오히려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은 우리가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세계에서조차 자본주의적 경제형식 이상으로 존재해 왔으며, 유령처럼 늘 자본주의의 주변을 맴도는, 결코 제거되지 않는 힘들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기존의 언어 속에서 자본주의에 대해 겁을 먹거나 분노할 필요가 없다. 그 대신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늘 우리 곁에 있었던 다양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을 적극적으로 발전시키고 그 힘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껏 말해왔던 방식의” 자본주의에 종말을 고하는 여성주의적 정치경제학의 언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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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의 대안적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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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1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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깁슨-그래함의 차이의 경제학 속에서 조씨의 비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은 사소하지 않다. 그녀의 가부장적, 공동체적 경제활동은 자본주의적 경제에 의해 먹혀들어갈 수밖에 없는 나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자본주의 앞에 떨지 않아도 된다. 자본주의는 이제 괴물이 아니라 다양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과 절합되는 하나의 경제요소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깁슨-그래함의 청사진은 객관주의자들의 강한 저항에 부딪히곤 하였다. 정치경제학이 대상으로 해야 하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며, 강력한 자본주의는 객관적 사실이라고 믿는 객관주의자들은 담론을 달리한다고 해서 객관적 세계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반론에 대해 깁슨-그래함은 두 가지의 방식으로 대응한다. 한 편으로는 그녀들은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의 사례들을 발굴하고자 하였으며, 다른 한 편으로는 이러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을 확장시키려는 실천을 통해 담론이 세계를 구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가령 깁슨-그래함은 호주 탄광촌의 광부 부인들의 사례를 통해 여성들이 어떻게 가부장적 착취에 대응하면서 동시에 자본주의의 논리에 대항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 사례에 따르면 탄광회사는 광부들에게 더 많은 임금을 주는 조건으로 불규칙적인 교대근무의 조건을 제시했는데 광부의 부인들은 그러한 조건이 가내의 착취를 더욱 심화시킨다는 이유로 그 제안을 거절했다. 가내의 생산적 노동자로서 광부의 부인들은 자신의 봉건적 착취에 대항했을 뿐 아니라 그러한 힘을 바탕으로 자본주의적 논리의 확대에도 저항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밖에도 깁슨-그래함은 잉여의 공동 분배를 지향하는 협동조합 활동이나 상호 호혜적 노동이 만들어 내는 공동체 경제의 형성에도 주목하면서 이러한 경제형식들을 적극적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였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깁슨-그래함이 제시하는 사례들이 발견될 수 있는가? 오래 동안 우리는 사회의 전체 영역에 자본주의가 침투하고 있다는 각본에 매달려 왔다. 많은 비판이론들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보여주는 데 열중해왔다. 그러나 비판이 강하게 고조될수록 자본주의는 괴물과도 같은 형상을 드러냈으며 그 괴물은 어떤 저항에 의해서도 극복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여성의 경제활동은 침범되고 강간될 수밖에 없는 나약한 것으로만 그려졌다는 것이다. 이제 관점을 바꾸어 깁슨-그래함의 언어 속에서 여성의 경제활동을 다시 보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가?

우리 역시 여성의 비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이 가진 잠재력을 발굴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미국 쇠고기 수입반대를 위해 많은 여성들이 거리로 나섰던 사건을 생각해 보자. 그들은 가족들의 밥상을 위해 신자유주의적 논리의 확산에 저항했다. 그들의 저항은 가족 내에서의 그녀의 생산적 경제활동에 기반하여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여러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품앗이의 사례들도 주목할 만하다. 과천에서 만들어진 지역 공동체에서 수행되고 있는 대부분의 품앗이 활동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녀들은 한 시간 단위로 자신의 노동을 책정하고 서로의 노동을 교환한다. 내 아이를 한 시간 맡기는 대신 머리 염색을 한 시간 해주거나 과외지도를 한 시간 해 주는 식이다. 여기서 노동의 가치는 자본주의적 시장의 가치체계에 따르지 않는다. 모든 노동은 공평하며 돈이 없어도 일상의 많은 생활이 가능하다.

이렇듯 경제적 차이의 담론을 채택하게 되면 여성의 경제활동은 나약하거나 사소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대안으로 나타난다. 앞서 제시했던 조씨의 경제활동은 봉건적 혹은 자본주의적 착취에 무력한 부정적 활동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잉태하는 공동체적 활동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볼 것인가? 자본주의를 경제의 유일하고도 막강한 형식으로 보면서 여성의 비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을 폄하할 것인가, 아니면 경제적 차이의 담론을 받아들이고 이와 함께 비자본주의적 경제의 실천을 의식적으로 감행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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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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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행동 양태와 습관[철학을다시 쓴다]-⑫

인간의 행동 양태와 습관[철학을다시 쓴다]-⑫

 

윤구병(도서출판 보리 대표)

 

* 이 글은 보리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임을 알립니다.

 
 

전에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보통 때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묻지 않죠? 상황이 바뀔 때, 또는 긴급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될 때, 미래를 예측하기 힘들고 현재까지 대응해왔던 방식으로 미래의 사태에 대비하기 어려울 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습니다.

농촌의 한 마을 공동체가 우주 전체가 돼서, 거기서 태어나고 자라고 늙어 죽어 뒷산에 묻히는, 시간이 지혜의 함수가 되는 삶 속에서는 이런 질문이 나오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슬기롭게 살아오면서 가뭄도 겪고 큰물도 겪고 관혼상제 등 여러 다양한 삶의 경험을 통해서 어떤 일에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를 아는 어른들이 살길을 일러주고, 구태여 젊은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묻지 않아도 되도록 만들어 줍니다.

시간이 지혜의 함수가 되는 농경공동체에서뿐만 아니라, 공간적인 경험 확장이 지혜의 함수가 되는 유목사회에서도 떼 지어 다니면서 목축을 하거나 부족한 목축지를 두고 각축전을 벌이게 될 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장 강인한 사람이 앞장서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해 주기 때문에 여기서도 이런 질문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런 질문이 나오는 곳은 도시사회인데, 특히 개개인이 자기 삶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에 부딪힌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나옵니다.

도시사회라 하더라도 상황과 체제가 안정되어 있을 때는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이 독재에 의해 강제된 상황이든 민주적인 합의에 의해서 서로 용인하는 그런 상황에서든 그 상황이 안정되어 있다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나오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강당 안을 걷는데, 이 강당 바닥은 평탄하기 때문에 왼팔과 오른팔의 움직이는 각도가 어떤지, 보폭이 어떤지에 대해서 전혀 관심을 쏟지 않습니다. 평탄한 길에서 제 동작은 자동화됩니다. 보폭과 팔이 움직이는 각도가 가장 편하고 효율적인 상태로 조정이 됩니다. 우리 신체 동작의 자동화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걸을 때 머리로 어깨 각과 왼팔의 움직이는 각을 몇 도로 하지? 왼손은 이런데 오른손은 몇 도로 하지? 이렇게 계속해서 거기에 집착하면, 강박관념 때문에 우리 두뇌는 아무 구실도 하지 못하기 쉽습니다. 때문에 동작을 자동화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깜깜한 밤길을 걷는다든지 깎아지른 벼랑을 타고 산에 오르게 될 때는 보폭 하나하나, 손동작 하나하나에 일일이 신경을 쓰게 됩니다. ‘주의’(attention)가 이렇게 집중되는데, 이렇게 새로운 사태에 직면해 있을 때만, 우리 몸동작을 어떻게 해야 이 새로운 상황에 제대로 대처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숙고를 하게 되고, 그 때문에 그때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자기 내면에서 솟아오르게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의 의식은 잠들고, 자동화 상태에서 우리의 신체 동작은 기계화됩니다. 외적인 강제가 엄청나게 심해서 도무지 다른 길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 조성될 때나, 그런 체제에 있을 때도 우리 의식은 짓눌리고 동작은 최소한으로 바뀌면서 자동화가 됩니다. 이 때 자동화되는 의식의 반응과 행동이 가장 무섭습니다. 비극적인 상황이죠. 동작에서 자동화는 개인의 행동에서 습관으로 나타납니다. 어떤 삶에 길들여진다는 말이죠. 상황이나 체제가 완고하게 오랫동안 변하지 않을 때, 사고라든지 우리의 행동양태가 그것에 길들어서 습관이 형성됩니다. 그리고 집단화된 습관은 ‘관습’으로 고착됩니다.

그렇지 않을 때도 있죠. 모든 것이 외부적인 요인으로 해결이 될 때도 거기에 젖어서 길들여지고 우리의 습관이 거기서 형성됩니다. 사회적으로 더 큰 범위에서 보면 관습이 형성되죠. 그리고 그 관습은 윤리나 도덕으로 나타납니다. 법의 형태로도 나타나죠. 그런데 법은 강제화되는 것이기 때문에 관습이나 윤리 도덕보다도 가변성이 더 큽니다. 잘못된 체제에서 우리가 그 체제를 뒷받침하는 도덕률을 익히고 윤리적인 규범을 내면화하는 것이 가장 큰 비극적 상황입니다.

제가 처음에 말씀 드렸죠? 있을 것이 있고, 없을 것이 없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고, 있을 것이 없고, 없을 것이 있는 세상이 나쁜 세상이다. 우리가 없을 것이 있는 세상, 그러니까 억압, 불평등, 증오, 전쟁, 이기심, 탐욕들이 만연된 세상에서 ‘세상은 그럴 수밖에 없는 거니까, 여기에 적응해서 내 살 길을 찾자.’ 이렇게 길들여지고 그 상황이나 체제에서 자기 자신을 순응시켜 행동을 굳혀가서 행동 패턴이라든지 사유방식을 특권화시키고 그것이 한 사회 전체를 지배해 증오와 이기심, 탐욕이 들끓는 사회의 모든 제도와 체제를 받아들이게 될 때, 희망이 없는 거죠? 나쁜 세상에 물든다는 것은 우리의 비판적인 성찰을 마비시킨다는 점에서 대단히 절망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없을 것, 없어야 할 것, 있을 것, 있어야 할 것은 현재의 시제가 아니라 미래의 시제로 표현됩니다. 있는 것을 있다고, 없는 것을 없다고 말하는 것은 ‘참말’이고 정직한 증언이지만, 미래의 삶과 연결되는, ‘당위’라고 하는 것, ‘윤리 규범’, ‘도덕’이라고 하는 것은 미래의 삶에 대한 전망이 바로 서지 않으면 족쇄나 올가미가 되기 십상입니다. 과거의 굳어진 가치관을 기초로 해 그 과거와 현실이 바뀌지 않고 미래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판단 아래에서 없을 것이 분명히 있는데도 그것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마비된 의식이 우리의 행동을 마비시키고, 없어야 할 것이 가득 찬 이 세상에 주저앉히는 것이죠. 이런 점에서 우리 행동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어떤 식으로 길들여지는가, 그것이 장기적으로 어떤 습관을 형성하게 되고 한 사회에서 관습으로 굳어지는가에 대해서 깊이 성찰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대로 농경사회에서 어른들이 자연과 관계 속에서 경험을 얻고 그것을 내면화해서 하나의 관습으로, 윤리관이나 가치관, 도덕률로 굳히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유목사회에서도 그 위험은 크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도시사회는 어떻게 보면 흡혈귀들이 대낮에도 설치는 ‘식인사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 혹시 <델리카트슨>이라는 영화 본 적 있습니까? 식량을 돈으로 쓰고, 사람고기를 먹죠. 겉으로 드러나지만 않을 뿐이지 모든 도시사회는 ‘식인사회’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고 사는 사회입니다. 여기에 대한 아무런 근본적인 성찰이 없이 자기가 처한 상황과, 어떤 체제 속에 사느냐에 따라서 자기 정체성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지요? 그러죠? 일종의 변형, 변환(Metamorphosis)인데 자동화나, 습관, 윤리, 도덕의 형성 과정을 잘 꿰뚫어보려면 고도의 비판의식과 창조적인 지성이 필요합니다. 비판의식이 왜 필요하냐면, 없어야 할 것이 있을 때, ‘이건 없어야 할 것인데, 없애야 하는데’ 하는 처방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비판의식은 행동으로 나타날 때는 파괴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기존 질서를 파괴하거나 기존 도덕률, 기존 가치관을 거부하기도 하고, 현실적인 파괴 활동으로 나타나기도 하죠.

출처: rororo.net

9.11테러가 일어난 게 언제였죠? 군산복합체의 상징인 세계무역센터 건물, 미국 국방성 건물을 테러리스트들이 공격했죠. 세계에서 제일 센 나라가 어디지요? 제가 우리 학생들한테 물어봤더니 미국이 제일 세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쳐요. 그래서 제가 ‘이 바보들아, 미국이 왜 젤 세냐? 아프가니스탄이 제일 세지’라고 말한 뒤에 아프가니스탄이 제일 센 이유를 말했죠. 세계에서 가장 국민소득이 낮은데다가 어찌나 외교 역량이 부족한지 파키스탄 하나와만 국교를 맺고 있고, 미국이 무서워서 나머지 나라들은 모두 국교를 단절한 나라인 아프가니스탄에, 군사가 오만 명 정도밖에 안 되는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려고 미국이 혼자 쳐들어가기 무서워서 예순 여섯 나라를 줄 세워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아프가니스탄은 그 전에 강력한 소련군이 와서 탈레반을 소탕하려고 쑥대밭을 만들었는데도 버텨냈어요. 그렇다고 외교 역량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어서, 한때 미국 돈 받아 소련하고 맞장 떠서 살아남았죠. 그런데 현재 상황은 어떻습니까? 미국을 비롯한 힘센 연합군들이 곤경에 빠져 있지요? 그러니 아프가니스탄이 최고로 센 나라 아닙니까?

제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일어났을 때 삼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고 어디에 썼는데 아무도 믿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지금 세계 삼차대전은 진행 중입니다. 여러분 믿지 않죠? 일차 세계대전과 이차 세계대전이 국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식민지를 뺏으려고 싸운 전쟁이라는 고정관념이 그대로 우리 뇌리에 박혀 있기 때문에 삼차대전도 국가들 사이에서 땅뺏기로 나타날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성격이 달라졌습니다. WTO 체제도 세계대전의 한 형태인데, 이제는 완성된 금융독점자본에게 국경은 의미가 없습니다. 미국은 아직까지 오사마 빈라덴 같은 테러리스트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 전쟁의 책임을 돌리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엔 제삼차대전의 형태는 내란입니다. 저는 전쟁이 내란 형태로 전개되는 것이 인류를 위해서 큰 다행이라고 봅니다. 왜 그러냐면 옛날처럼 국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편갈라서 싸운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럼 인류를 몇 천 번 몰살시키고도 남을 만한 핵무기가 가동될 것입니다. 그런데 나라 안에서 전쟁이 벌어지게 되면 핵무기는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됩니다. 적과 아군이 뒤섞여 있으니까 자기나라 안에서 핵무기를 터뜨릴 수는 없죠. 그래서 이제 비로소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가 국가라는 단위를 중심에 놓고 ‘애국심’을 내세워 서로 결탁해 다른 나라의 자기 형제들에게 총을 겨누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왔다고 보면 됩니다. 세계 이차대전이 벌어지게 될 때 사해동포주의를 부르짖고 국제 연대를 주장했던 사람들이 결국엔 ‘애국심’에 불타서 동료들의 가슴에다 총을 겨누었죠. 이제는 적어도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국내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자기를 노예화시키고 착취해야 살 수 있는 계급이 누구고 자기가 연대해야 할 계급이 누구냐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전선을 넓혀갈 수 있습니다.

그 모범을 9.11테러가 보여줬는데 이 사람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과 맞장뜨자고 하는데, 그건 뻔하죠. 석유욕심 때문에 그러는 거죠. 제가 이런 말을 하면 곧 잡혀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쨌든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제3장 화폐 또는 상품 유통[자본론강독]-10

제3장 화폐 또는 상품 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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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참석 : 김선이, 김성심, 나태영, 옥철, 신재경

정리 : 옥철

제2절 유통수단(p.133~158)

화폐, 즉 금은 모든 상품들의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공통적인 가치 척도로서의 기능을 가지는데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유통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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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상품의 변태

어떤 한 상품의 형태변환 또는 변태는 언제나 두 종류의 상품[즉, 보통상품과 화폐 상품]의 교환에서 이루어진다(상품의 유통). 이러한 교환과정은 상품을 상품과 화폐라는 두 개의 요소로 분화시키는데, 이 두 개의 요소는 상품에 내재하는 사용가치와 가치 사이의 대립을 표현하는 외적 대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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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립에서 사용가치로서의 상품들이 교환가치로서의 화폐와 대립한다. 다른 한편, 이 대립의 어느 쪽도 상품이며 따라서 사용가치와 가치의 통일체다. 상품의 교환과정은 대립적이면서 동시에 상호보완적인 두 개의 변태-상품의 화폐로의 전환과, 화페로부터 상품으로의 재전환-에 의해 수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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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변태의 두 계기는 직포자의 상이한 거래 행위[즉, 상품을 화폐와 교환하는 판매와 화폐를 상품과 교환하는 구매]임과 동시에 두 행위의 통일[구매를 위한 판매]이다. 상품의 교환과정은 다음과 같은 형태변환을 하면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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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C) -화폐(M) – 상품(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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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자는 자기의 상품을 금과 바꾸며 구매자는 자기의 금을 상품과 바꾼다. 상품은 무엇과 교환되는가? 그 자신의 가치가 취하는 일반적 모습과 교환된다. 그리고 금은 무엇과 교환되는가? 그 자신의 사용가치의 하나의 특수한 모습과 교환된다. 어째서 금은 아마포에 대해 화폐로 대립하는가? 2원이라는 아마포의 가격, 즉 아마포의 화폐 명칭이 벌서 화폐로서의 금에 대한 아마포의 관계를 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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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이 그 본래의 상품형태를 벗어버리는 것은 상품의 판매에 의해 완수된다. 다시 말해, 그 상품의 사용가치가 [그 상품의 가격에 오직 상상적으로만 표현되어 있는] 금을 현실적으로 자기 측에 끌어오는 그 순간에 완수된다. 그러므로 상품 가격의 실현[즉, 상품의 단순한 관념적인 가치형태의 실현]은 동시에 역으로 화폐의 단순한 관념적인 사용가치의 실현이며 상품의 화폐로의 전환은 동시에 화폐의 상품으로의 전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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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나의 과정은 이면적(二面的)인 과정으로서, 상품 소유자의 측에서는 판매이고 반대의 극이 화폐소유자의 측에서는 구매이다. 바꾸어 말해 판매는 구매이며, C-M은 동시에 M-C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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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상품의 변태계열이 그리는 순환은 다른 상품들의 여러 순환과 뗄 수 없을 정도로 뒤엉켜 있다. 이러한 과정 전체가 상품유통을 구성한다. 상품유통은 형태에서뿐 아니라 본질에서도 직접적 생산물교환과는 구별된다. 상품유통에서 우리들은 한편으로는 상품교환이 어떻게 직접적인 생산물교환의 개인적 및 지방적 한계를 타파하고 인간노동의 물질대사를 발전시키는가를 보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상품교환이 어떻게 완전히 당사자들의 통제밖에 있는 자연발생적인 사회적 연결망을 발전시키는가를 보게 된다.(J.S.밀에 대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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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과정은 직접적 생산물교환과 같이 사용가치의 장소나 소유자를 바꾸는 것에 의해 소멸하지 않는다. 화폐는 한 상품의 변태계열로부터 마지막으로 탈락한다고 하더라도 소멸하지는 않는다. 화폐는 언제나 상품들이 비워준 장소에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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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와 구매는 대극적으로 대립 하고 있는 두 인물, 즉 상품소유자와 화폐소유자 사이의 교환관계로서는 하나의 동일한 행위이다. 그러나 판매와 구매는 동일한 인물의 행동으로서는 대극적으로 서로 대립하는 두 개의 행위다. 그러므로 판매와 구매의 동일성은 만약 상품이 유통이라는 연금술사의 증류기 속에 투입된 뒤 화폐의 모습으로 다시 빠져나오지 않는다면 [즉, 상품소유자에 의해 판매되지 못하며 따라서 화폐소유자에 의해 구매되지 않는다면] 그러한 상품은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 동일성은 다음과 같은 사실[즉, 만약 이 과정(C-M)이 완성된다면 그 상품은 더 이상의 변태를 중단하고 장단간의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사실]도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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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은 물물교환에 존재하는 [자기 생산물의 양도와 타인 생산물의 취득 사이의] 직접적 동일성을 판매와 구매라는 대립적 행위로 분열시킴으로써 물물교환의 시간적, 장소적, 개인적 한계를 타파한다. 서로 독립적이고 대립적인 과정들이 하나의 내적 통일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또한 그 과정들의 내적 통일이 외적 대립을 통해 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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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과정은 서로 보완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적으로 독립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이 두 과정의 외적 독립화가 일정한 점에 도달하면 그 내적 통일은 공황이라는 형태를 통해 폭력적으로 관철된다. 상품에는 다음과 같은 대립과 모순이 내재한다. 사용가치와 가치의 대립, 사적 노동이 동시에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노동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모순, 특수한 구체적 노동이 동시에 추상적 일반적 노동으로서만 계산된다는 모순, 물건의 인격화와 인격의 물건화 사이의 대립, 상품에 내재하는 이러한 대립과 모순이 한 상품의 변태의 대립적인 국면들에서 자기를 드러내고 자기의 운동형태를 전개한다. 따라서 이러한 형태들은 공황의 가능성을, 그러나 오직 가능성만을 암시하고 있다.(고전파 경제학자인 세이는 “공급이 수요를 창조한다.”고 하면서 공황의 불가능성을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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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화폐의 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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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유통이 화폐에 직접 부여하는 운동형태는 화폐가 출발점으로부터 끊임없이 멀어져간다는 것. 화폐가 어떤 상품소유자의 수중으로부터 다른 상품소유자의 수중으로 옮겨간다는 것이다. 이 과정이 화폐의 유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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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운동의 일면성과 연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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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운동의 일면성이란 “화폐는 구매수단으로서 언제나 구매자 측에 있다.”를 의미하고 화폐의 연속성이란 상품이 “유통과정에서 탈락되어 소비로 들어”가는 것과는 달리 “화폐는 유통수단으로서는 언제나 유통분야에 머물러 있고 언제나 그 속에서 돌아다니고”있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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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유통에 필요한 화폐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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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의 연속성으로 말미암아 “유통영역이 얼마만큼의 화폐를 흡수하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상품유통에 필요한 화폐량은 “이미 상품들의 가격총액에 의하여 규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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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화폐는 상품들의 가격총액으로 이미 관념상 표현되어 있는 금 총액을 현실적으로 나타내는데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두 개의 총액이 동일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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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가격총액이 필요한 화폐량이 된다. 그러나 이는 모든 상품이 “동시에 상이한 장소에서 판매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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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밀, 아마포, 성경책, 위스키가 “동시에 상이한 장소에서 판매된다.”고 할 때 모든 상품가격이 2원이라고 가정한다면 필요한 화폐량은 8원이 된다. 그러나 “순차적으로” 상품을 유통시키게 될 경우는 2원이면 된다. 이는 2원이 4회 유통된 것으로 이 “유통횟수에 의하여 화폐총량은 상품의 가격총액과 화폐의 유통속도에 의해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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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수량설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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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수량설이란 “상품가격은 유통수단의 양에 의하여 규정되며 유통수단의 양은 또한 한 나라에 존재하는 귀금속의 양에 의하여 규정된다고 생각하는 환상”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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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수량설의 가설은 다음과 같다. “상품은 가격을 가지지 않고 유통과정에 들어가며 또 화폐는 가격을 가지지 않고 유통과정에 들어가서 거기에서 잡다한 상품집단의 일정한 부분이 귀금속 더미의 일정한 부부노가 교환된다.” 이를 맑스가 “엉터리 가설”이라고 한 것은 상품의 가격은 화폐로 표현되는데 화폐의 가격은 상품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순환론에 빠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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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수단의 양의 변동은…유통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기능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척도로서의 화폐의 기능에 기인하는 것이다.” “화폐가 가치척도로서 기능하기 시작할 때 그리고 그것이 가격을 결정하기 위하여 사용될 때에는 화폐의 가치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 즉, “금(또는 은, 요컨대 화폐 재료)이 일정한 가치를 가지는 상품으로 유통영역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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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7세기 유럽의 상품가격 폭등의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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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수량설은 상품가격의 폭등은 당시 라틴아메리카에서 다량의 금이 유입되었기 때문이라 설명하면서 “유통수단의 양이 가격을 규정한다는 견해”를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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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맑스는 이러한 주장의 “소박성”을 비판한다. “이 세가지 요인, 즉 가격의 운동, 유통상품의 양, 그리고 끝으로 화폐의 유통속도는 각각 다른 방향으로, 다른 비율로 변동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실현되어야 할 가격총액과 따라서 이것에 의하여 제약되는 유통수단의 양도 역시 이 세 개 요인의 수많은 조합의 결과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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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폭등에 대한 맑스의 설명은 먼저 귀금속 광산의 대량 발견으로 귀금속 생산의 사회적 노동가치가 떨어져 상품가격이 상대적으로 올랐다는 것이고 둘째로 “화폐조각은 말하자면 다른 화폐조각을 위하여 연대 책임을 지게 된다.”는 것으로 “유통분야는 오직 금의 일정한 양만을 흡수할 수 있을 뿐”으로 유통 횟수가 증가하거나 유통량이 늘어나면 “다른 화폐조각은 유통부문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만다.” 즉, 귀금속의 유입량이 그대로 유통량을 증가시키는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 상품가격 상승의 원인은 귀금속 가치의 하락이지 귀금속의 증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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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주화, 가격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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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의 주화형태는 유통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기능으로부터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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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과정에서 주화의 옷을 입은 금은 마모의 과정을 거쳐 “명목적 무게와 실질적 무게가 점차 서로 분리되는 과정이 시작된다.” 이러한 마모는 “소규모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영역에서” 두드러지게 된다. 결국은 “주화기능은 사실상 그것들의 중량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된다.” 그러므로 “상대적으로 무가치한 물건, 예컨대 지폐가 금을 대신하여 주화로서 기능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지폐는 아무런 가치를 갖지 않고 단지 가치의 상징으로만 기능한다. “지폐는 금 또는 화폐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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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폐의 과잉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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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폐의 발행은 실제로 유통되었을 금량(또는 은량)을 지폐가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범위로 제한되어야 한다.” “지폐가 자기의 한도(곧, 실제로 유통하였을 같은 명칭의 금주화의 량)을 초과한다면 지폐의 신용이 일반적으로 손상될 위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지폐는 상품유통의 내재적 법칙에 의하여 규정되는 금량만을 대표하게 될 것이다.” 즉, 지폐가 적정수준보다 2배로 늘어난다면 이전에 1원의 가격표시는 동일한 가치가 2원의 가격으로 표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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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철학>에 연재되었던 “철학자 구보 씨의 세상 생각” 전격 출간[ⓔ시대와철학 알림]

?〈ⓔ시대와철학〉에 연재되었던

?”철학자 구보 씨의 세상 생각” 이 드디어 책으로 묶여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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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원 선생님(부산대) 특유의 기지와 재치로 〈ⓔ시대와철학〉에 연재되었던 철학적 세상읽기는?꾸준히?많은 조회수를 기록하였다. 2년 여에 걸쳐 연재된 “철학자 구보씨의 세상 생각”은 정치, 경제, 문화 등 인간 세상 전반에 관한 철학적 성찰을 이해하기 쉬운 대화형식의 문체로 이어나갔다. 때로는 세상을 꾸짖기도 하고 때로는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바라보는 반성의 자세를 보여주기도 한 구보씨는 어찌보면 오랜만에 만난 친구같기도하고 선생님 같기도 하지만 늘 세상을 바로보는 방법을 보여주려 노력하였다.

 

 

‘있음과 없음’의 시간과 공간[철학을다시 쓴다]-⑪

‘있음과 없음’의 시간과 공간[철학을다시 쓴다]-⑪

 

윤구병(도서출판 보리 대표)

 

* 이 글은 보리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임을 알립니다.

 
 

대체로 마르크스 이래로 서구 스콜라철학을 형이상학으로 보아서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이 유행하는데, 형이상학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존재론과 우주 삼라만상을 이루는, 가장 작은 것에서부터 가장 큰 것까지 일관해서 꿰뚫어보려고 하는 노력에서부터 원인학(aitiology), 왜 왜 하고 끊임없이 물어보는 학문의 전통이 생기는데 이것도 형이상학의 한 갈래입니다.

제가 전에 ‘테트락티스’(tetraktys)라고 해서 10을 완전수라고 보았던 피타고라스학파의 전통에 대해서 잠깐 언급을 했죠? 피타고라스 전통에 따르면 한계가 하나인 것을 점이라고 보고 한계가 둘이 있는 것을 선이라고 봤죠. 그리고 한계가 세 개가 있는 것을 면이라고 그러고. 가장 작은 수의 한계선을 가지고 구현할 수 있는 면이 삼각형이죠, 그 다음에 네 개가 있는 것은 입체, 정사면체, 이렇게 1+2+3+4=10인데, 우주 삼라만상은 한계가 하나가 있거나, 둘이 있거나, 셋이 있거나, 넷이 있거나 한 것으로 전부 구성이 되어 있다, 이런 이야기를 피타고라스학파들이 했죠.

“여기서 하나 물어보겠습니다. 있는 것은 한계가 몇 개입니까?”

“…….”

“하나입니다. 끝이 하나인 것은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보여요.”

“보여요? 보이는 것은 면 아니면 안 보입니다. 선도 안 보입니다. 안 보이죠? 가장 큰 하나도 안 보이고 가장 작은 하나도 안 보인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있음’은 안 보인다. 왜냐? 한계가 하나이기 때문에. 그러면 없음은 어떻습니까? 한계가 없으니까 안 보입니다. 한계가 하나인 것도 안 보이고, 한계가 없는 것도 안 보입니다.

그래서 헤겔은 <대논리학> 같은 책에서 ‘있음’(임석진이 ‘순수유’로 번역한 das reine Sein을 우리말로 하면 그냥 ‘있음’입니다.)과 ‘없음’(이것도 임석진이 ‘순수무’로 옮긴 das reine Nichts의 우리말 표현이지요.)은 개념으로만 있지, 가시적이지 않고 정의를 받아들이지도 않는 점에서 똑같은 것이다, 차이가 없다라고 이야기했는데, 바로 이런 특성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있음’과 ‘없음’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아라, 그러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있는 것’과 ‘없는 것’인데 그것은 개별화된 존재, 개별화된 무, 이런 것들, 여럿으로 흩어져 있는 ‘존재’와 여럿으로 흩어져 있는 ‘무’를 ‘있는 것’/ ‘없는 것’이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있는 것도 있음의 성격에 참여하는 한, 하나로 있게 되고, 따라서 그것은 규정할 수 없는 것이 되고, 없는 것은 없음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한, 끝이, 한계가 없기 때문에 규정할 수 없는 측면을 지니게 된다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가 보고 만지고 귀로 듣고 오감을 통해서 파악할 수 있는 이 세계는 가시적인, 볼 수 있는 세계인데, 시각정보가 우리에게 전해지는 삶의 정보 가운데 80% 이상을 차지한다, 그러죠? 그런데 우리가 입체를 볼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오성 수준에서는 입체를 인지하고요, 감각 수준에서는 입체를 인지하지 못합니다.”

“그렇죠, 그것입니다. 우리 시각은 감각 기관이니까, 통각의 능력은 따로 빼고 우리 시각은 평면만 볼 수 있을 뿐이다, 겉만. 한계, 갓, 끝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에서 최소 한계는 셋이다, 끝이 세 개인 경우, 삼각형으로 이 우주를 모두 구성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모든 것이 인식의 영역 속에 들어올 수 있다는 가설이 생기는 겁니다. 알 수 없는 것은 하나도 없게 된다, 모든 걸 알 수 있게 된다, 말하자면 우주 삼라만상에 대한 측정 가능성이 열리는 것입니다. 피타고라스학파한테 큰 재난이 무엇이었습니까? 루트2(√)의 발견이었죠? 피타고라스학파에서 이것은 무규정성이 드러나는 측면인데, 무규정성은 피타고라스학파에서 가장 큰 재난이어서 극구 추방해야 할 것이고, 우주 삼라만상이 수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전부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것이 실제로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이 밝혀지는 것은 기본을 이루고 있는 세계관을 허물어뜨리는 사태였기 때문에 오랫동안 비밀로 감추려고 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 동그라미는 제가 엊그제 봤던 달입니다. 요즘 달이 큰데, 이것을 가시적인 원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가시적인 원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우리가 원을 볼 수 있습니까? 못 보죠? 원 비슷한 특수한 형태는 시각화해서 볼 수 있지만 원 그 자체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원을 어떻게 해서 알 수 있을까요? 한 점으로부터 같은 거리에 있는, 서로 무한하게 이어져 있는 점들을 원이라고 합니다. 현대 수학자들이 원주율을 계산을 하는데 몇 조 단위까지 계산을 해냈다, 나는 암산으로 해냈다, 나는 슈퍼컴퓨터로 해냈다, 하는 이런 수치 모음을 책으로 내면 숫자만 계속해서 기록한 책이 수천, 수만 권이 될 것입니다. 왜 이 짓을 하고 있죠?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서로 유명한 수학자라고 뽐내고 그러죠? 미분/적분을 대수학 영역이라 그럽니까? 해석학! 뉴턴이 무한의 영역을 수학적으로 극복하겠다고 나서서 미분/적분을 개발했죠. 그런데 미분/적분은 어떻습니까? 전부 한정된 수치의 영역으로 무한의 영역을 수렴해낼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이었죠. 그런데 정작 수렴이 되나요? 수렴이 안 된다는 게 ‘파이(π)’ 계산에서 나타나죠?

실제로 유한의 영역과 무한의 영역은 우리의 삶 속에 끊임없이 공존을 하고 있는데, 무한의 영역을 그대로 방치하다 보면 수리체계에서부터 재는 것과 연관되는, 말하자면 ‘매트릭스’로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한정되고, 그에 따라 우리의 인지 영역은 그만큼 좁아집니다. (여러분 매트릭스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아시죠? 잰다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좌, 우, 아래, 위로 행렬지어지는 것, 재는 거죠?) 우리는 지금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죠? 그런데 운동은 디지털 세계에서가 아니고, 아날로그 세계에서 일어납니다. 무규정성이 전제되어야 운동이 제대로 이해됩니다. 아까 제가 두 당구알을 가지고 이야기했는데 두 당구알이 접촉을 할 때, 그 사이에 접촉면을 매개하고 있는 점이라는 것은 빨간 당구알에도 속해 있지 않고, 하얀 당구알에도 속해 있지 않고, 늘 왔다갔다 요동치고, 진동한다, 이 ‘바이브레이션’(vibration)이라는 말은 대단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베르그송에서도 중요한 개념이고 들뢰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앙리 베르그송(1859~1941)


 

우선 플라톤 이야기를 다시 합시다. 플라톤에서는 우주를 구성하는 요소가 셋입니다. demiourgos라고 하는 우주를 빚어내는 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주를 폐쇄된 공간으로 만들 때 본떠야 하는 이데아(idea), ‘형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다음은 ‘기그노메논’(gignomenon),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휠레’(hyle), ‘질료’라고 그럽니다만, 이 기그노메논이라는 말은 ‘된다’는 말에서 나온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식으로 재해석을 한다면 데미우르고스는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른 것들은 움직이게 하는 것으로 ‘순수 형상’이라 하기도 하고, ‘움직이지 않으면서 움직이게 하는 것’(kinoun akineton), ‘원동자’(原動者), 그렇게 재정리가 됩니다만, ‘휠레’는 그리스에서 목재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배도 만들고, 집도 만들려고 켜놓은 나무라는 뜻에서 나왔는데 이것을 우리나라 철학책에서 ‘질료’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끔직한 번역이죠.)

이제 우리가 보고 있는 삼라만상은 ‘질료’와 ‘형상’의 결합이고,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표면에 나타난 형상이라는데, 플라톤에 따르면 형상은 우리가 가시적으로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형상의 세계는 우리가 볼 수 없는 허무로 둘러싸인 다른 곳에 가 있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전부 형상을 본뜬 가상들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삼각형 그 자체는 볼 수가 없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특수하게 그려진 몇 센티미터, 둔각이라든지 예각이라든지 등변 삼각형이라든지 이런 삼각형의 특수형태인 것과 마찬가지로 형상 그 자체는 볼 수 없고, 형상이 투영된 것들만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데미우르고스가 이 우주를 만들 때 삼각형으로 만듭니다.

근대물리학자나 현대 물리학자들이 계속해서 쪼개고 쪼개서 면으로 나타나는 ‘끝’을 늘리고, 우주 자체를 삼각형으로 분할하여 입체를 평면으로 환원시킬 수 있다면, 우주 삼라만상을 다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해서 끝없는 환원작업에 몰두하고 있는데, 이들로 하여금 이렇게 끊임없는 ‘분석’과 ‘분해’를 하도록 부추긴 사람이 바로 플라톤입니다. 평면으로 우주를 구성했으니까, 해체하면 다시 평면으로 환원될 수 있을 것이다, 정사면체, 정육면체, 정십이면체, 정이십면체 이렇게 점점 원에 가깝게……. 뉴턴에 따르면 미적분을 통해 조그만 삼각형들을 계속해서 무한히 더해감으로써 원주율 계산에 도달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한 원동력이 바로 플라톤주의 전통에서 나옵니다.

그렇게 해서 여러 종류의 환원론이 나오는데 데미우르고스가 맡은 역할이 무엇이냐면, 삼각형을 수학적으로, ‘산술중항’과, ‘조화중항’이라는 것을, 어떤 띠는 산술중항을 중심으로 만들고, 어떤 띠는 조화중항을 중심으로 만들어서 밖에는 정지의 띠를 두르고, 안에는 운동하는 띠를 둘러서 이 우주를 구성해 낸다, 우주의 겉은 정지의 띠를 가지고 만들었기 때문에 변하지 않고, 안에는 끊임없이 운동이 이루어지는 천체가 있다, 거기에는 항성이 있고, 행성이 있고, 우주의 바깥 띠에서 가장 먼 중심에는 지구가 있다고 플라톤은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지구는 불변하는 띠에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우주 중심에 있다는 것은 불변하는 ‘형상’과 불변하는 띠에서 가장 먼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세계 이해와는 완전히 거꾸로입니다. 지구는 플라톤에 따르면, 데미우르고스의 힘이 가장 적게 미치는 곳이다, 그리고 형상의 세계에서부터도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다, 그러기 때문에 가장 불완전한 곳이다, 가장 변화가 다양하고, 가장 불완전한 천체다라는 가정을 깔고 나갑니다. 인간을 예로 들 때 인간의 신체부위 가운데 가장 완전한 것이 뭡니까? 옛날부터 인도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원을 완전한 세계의 시각적인 표현이라고 보았습니다. 입체로 보면 구(球)가 가장 완전한 것이고, 사람에게 구와 가장 닮은 곳이 있다면 머리다, 사람에게 머리만 있으면 그나마 완전한 세계를 더 직관으로 파악할 수 있고, 훨씬 더 좋겠죠. 요즘에도 신체의 다른 부위는 다 절단해 버리고 머리만 남겨서 세계를 지배하는 인물이 영화에 나오고 하죠.

실제로 플라톤은 참 재미있는 예를 듭니다. 머리가 굴러다니면서 운동을 하게 되면 가장 완벽한 운동을 할 수 있을 텐데 왜 머리만 있지 않고 손과 발, 몸 같은 것이 생겨나는가? 플라톤은 이 지구가 불완전하게 생겨먹은 것이어서 완전한 구가 아니고 더러운 구덩이도 있기 때문에, 굴러다니다가 구덩이에 빠지면 다시 나올 길이 없다, 그래서 손발을 달아서 기어 나오도록 만들었는데 이것이 완전한 운동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었다, 그러니까 육체노동, 몸을 움직여서 무엇을 하는 것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이 우화 비슷한 형태로 드러나는 겁니다. 피타고라스학파도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지요?

어쨌든 이렇게 해서 세 개의 요소가 다 있는데 ‘기그노메논’(됨)에 Demiourgos가 숫자들을 부여해서 질서를 줍니다. 질서를 부여하는데 스스로 질서를 주는 게 아니라 ‘이데아’들을 보고, 그 ‘이데아’를 본떠서 ‘됨’의 운동이 아무렇게나 제멋대로 되지 않도록 이끌어 삼라만상을 구성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해서 완전히 폐쇄된 세계가 나타납니다. 우주 자체는 ‘하나’이고 불변하는 것인데, 우주 내부에서만 변화들이 있게 되는 세계로 상정하고 맨 위에는 전체로서 ‘하나’로 가장 큰 ‘있음’이 있고, ‘있음’의 중심에는 ‘없음’에 가장 가까운 혼란스럽고 변화무쌍한 지구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플라톤의 세계관은 대체로 보아 비관적인 세계관입니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이 ‘거대이론’이 근대 물리학을 거쳐 현대 물리학으로 오게 되면서, 여러 가지 위장된 형태로 나타납니다. 통일된 우주가 빅뱅에 의해 터지면 무한 공간으로 흩어져나갈 건데 그러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로 블랙홀을 상정하는 것입니다. 천체의 순환이 반복되듯이 펑 터지고, 다시 수렴되고 하는 일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전부 가설이지요. 그리고 이 가설체계는 인간 정신의 산물입니다. 인간이 모든 우주 삼라만상의 변화를 두뇌 속에서 단순한 운동, 등질적인 공간운동과 시간운동으로 환원시키면서 드러나는 현상입니다. 인간의 두뇌는 서로 닮는다고 그랬죠? 인간의 두뇌가 이론적으로 그럴 듯한 가설들을 판박이 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우주를 그럴 듯하게 머리 속에서 빚어내면 다른 사람들이 그럴싸하게 여겨 그 가설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유클리드 기하학을 대전제로 깔고 나가느냐, 아니면 리만 기하학을 대전제로 깔고 나가느냐, 그 밖의 여러 경우에 따라 인간의 두뇌가 그 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등질적인 공간, 등질적인 시간이 실재하는 공간이고 실재하는 시간이냐? 풀잎한테 물어보고 지렁이에게 물어봐야 할지도 모릅니다.

‘니네 그렇게 어리석니? 사람은 머리가 좋아서 이렇게 모든 것을 등질적인 시공간으로 환원해서 해석하는데 너희들 눈에는 안 보이고 너희들 머리로는 생각할 수 없으니까, 니네들은 지렁이고 니네들은 풀잎이지?’
이렇게 물으면 지렁이나 풀잎의 입에서는 어떤 말이 나올까요?

‘함과 됨’, ‘있음과 없음’의 연관성[철학을다시 쓴다]-⑩

‘함과 됨’, ‘있음과 없음’의 연관성[철학을다시 쓴다]-⑩

 

윤구병(도서출판 보리 대표)

 

* 이 글은 보리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임을 알립니다.

 
 

오늘은 대단히 어려운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는데, 먼저 유클리드 기하학과, 리만(Riemann) 기하학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공간의 성격에 연관되는 것인데, 닫힌 공간이냐 열린 공간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열린 공간에 대해서 맨 처음 이야기한 사람은 원자론자들이었습니다. 로이키푸스에서부터 데모크리토스, 에피쿠로스, 루크레티우스를 잇는 원자론자들이 열린 공간을 생각했고, 이 사람들은 이 우주는 공간과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는 그 안에 빈 틈, 공간이 하나도 있지 않으므로,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것 ‘아토마’(atoma)이다, (템네인(temnein)이라는 그리스어가 있는데, 그것은 가른다, 쪼갠다라는 말입니다.) 아토마의 ‘아’는 부정사로서 ‘아톰’(atom)은 쪼갤 수 없는 것,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것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은 ‘있음’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 또는 ‘있는 것’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러니까 ‘있음’과 ‘있는 것’이 갈라지는 지점이 있는데, 그것이 지닌 성격을 원자론자들은 원자라고 불렀다.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것이다로 이해하면 됩니다.

파르메니데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지요. ‘있는 것’ 또는 ‘있음’(einai)을 구(球)처럼 생겼고, 모든 것이 달라붙어서 하나로 되어 있고, 분할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것을 파르메니데스는 ‘있는 것은 하나’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이 ‘하나’를 무한히 작은 것들로 쪼개서 무한한 공간 속에서 흩뿌려놓은 사람들이 원자론자들입니다. 그리고 원자론자들은 그렇게 이야기하죠. 이 우주 속에서 원자의 수도 무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도 무한하고, 공간도 무한하다. 그런데 고대 원자론자들의 원자와 공간의 성격은 각각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성격을 그대로 지니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제가 ‘함’과 ‘됨’이 어떻게 다르냐고 이야기 했을 때 한분이 그런 말씀을 하셨죠. 함은 능동성이 강조되는 말이고, 됨은 수동성이 강조되는 말이다. 그렇습니다. ‘됨’은 수용성, 받아들임, 외부에서 어떤 작용이 있을 때, 거기에 대해서 반작용을 하지 않고 그 작용을 받아들이는 측면입니다. ‘함’은 작용을 하는 측면이죠. 여기에서 이런 문제를 먼저 짚고 넘어갑시다. 우리가 ‘대상’이라고 부를 때, 불란서말로 ‘오브제’(objet), 영어로 ‘오브젝트’(object), 독일로 ‘게겐슈탄트’(Gegenstand)라고 그러는데, ‘오브제’, ‘오브젝트’라는 말은 ‘오브’(ob) ‘이케레’(icere)라는 라틴어에서 나왔습니다. ‘가로막고 있다’라는 뜻입니다. ‘게겐슈탄트’라는 독일말은 라틴어가 어원인 불어와 영어의 독일식 직역입니다. ‘맞서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맞서 있는 것은 어떤 작용에 대해서 반작용을 합니다. 그러니까 세상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 있는 저 학생은 내 시선을 가로막아서 저하고 맞서 있고 버티고 서 있는, 내 시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됩니다. 저는 이 학생 뒤에 있는 다른 학생을 보고 싶은데 말이죠. 이렇게 장애물이 되는 것, 제 시선에 대해서 반작용을 하는 것이죠.

“반작용의 능력을 무화시키는 방식이 있습니다. 지금 제가 보고 있는 이 책상 표면만 보면 원목처럼 보이는데, 이것이 진짜 원목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여러 방법이 있겠죠. 두들겨서 소리를 듣는 방법도 있고, 옆과 앞을 살펴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렇게 해도 이것이 원목인지 아닌지 확인이 안 되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잘라 봐요.”

“네, 잘라 봐야죠. 그런데 자르려는데 이 책상이 반항을 한다, 그럼 어떻게 하죠?”

“자를 수 없죠.”

“자를 수가 없죠. 그렇죠? 색은 원목색인데 금강석이다, 그래서 이걸 자를 수가 없다, 그러면 이것이 나무인지 금강석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물질에는 저항하는 임계점이 있죠. 모든 물질들은 저항하는 임계점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리학자들은 계속해서 쪼개고, 쪼개고 쪼개서 원자 이하인 아원자 수준으로 계속해서 쪼개서 소립자, 그것도 쪼개서 그 결을 보고 이것이 어떤 물질인지, 어떤 특성을 가졌는지, 어떤 운동을 하는지를 알아내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쪼개면 당장에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우리가 이 사물을 어떻게 인식을 합니까? 이 사물의 겉을 보고 우리가 인식을 합니다. 갓, 겉, 끝, 어원으로 보면 전부 같은 말입니다. 이 사물과 사물이 아닌 것이 만나는 지점에서 이 사물을 우리가 이해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앞을 보고, 옆을 보고 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되도록 많은 겉을, 표면적을 살핀다는 소리죠. 그런데도 잘 알 수가 없어, 가르고 쪼갠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안에 숨어 있는 새로운 겉을 들어낸다는 것이죠? 자꾸 쪼개서 표면적을 늘린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삼차원 세계를 이차원으로 전부 환원할 수 있다면 모든 결들이 자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 내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깊이 있는 사물을 깊이 없는 것으로, 삼차원 공간을 이차원 공간으로 환원시키게 되면, 이 모든 물리 현상을 이해할 수 있고, 물리현상이 이해된다면 화학, 생물학, 사회, 역사, 인간현상까지도 전부 단순한, 이런저런 것들의 복합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거기에서 출발을 합니다.

이 출발 지점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그리스철학에 있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엮어낸 우주론은 둘로 갈라집니다. 그 주인공 가운데 하나는 원자론자들, 또 하나는 플라톤입니다. 원자론자들이 열린 우주, 개방된 공간을 그렸다면, 플라톤은 닫힌 우주, 폐쇄된 공간을 그립니다. 이것이 현대물리학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바뀌지 않고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두 가지 ‘거대이론’(Grand Theory)입니다. 이 우주를 열렸다고 보느냐 닫혔다고 보느냐죠. 유클리드는 원자론자적인 전통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열린 공간, 등질적인 공간을 상정하고 기하학 이론을 전개합니다.

그렇지만 로바쳅스키(Lobachevskii)나 리만의 경우는 공간을 달리 봅니다. 휜 공간, 그것이 조금 성격이 다르지만 닫힌 공간으로 보느냐, 아니면 닫힌 것인지 열린 것인지 구별하기는 힘들어도 공간 자체가 휘어 있는 것으로 보이냐, 평행으로 보이느냐 하는 점에서 유클리드와 견해가 다릅니다. 그런데 대단히 이상하지 않습니까? 공간은 ‘없는 것’에서 나오는 건데, 이것이 휘어있다는 말이 무슨 말이죠? ‘없는 것’은 ‘휘어있다’? 공간은 모든 것을 다 수용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어떤 것에도 저항하지 않고 모든 것을 다 수용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없는 것’뿐이지요? ‘있는 것’은 대상이 됩니다. 맞서고, 저항을 합니다. ‘없는 것’만이 어떤 작용에도 반작용하지 않고 순수 수동성을 띠게 됩니다. 공간이 원자한테 저항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공간의 특성이 ‘없는 것’에서 생겨난 것이라는 뜻입니다. ‘공간’은 ‘없는 것’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면 ‘있는 것’은 뭐냐? ‘원자’만 있다, 데모크리토스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로바쳅스키(Lobachevskii, 1792~1856) 초상화 , 레프 크류코프 작(1843)


 

‘있는 것’을 상정하고, ‘없는 것’을 상정하게 될 때, 거기서 운동이 나올 수 있는지 없는지 한번 살펴봅시다. ‘함’이 됐든 ‘됨’이 됐든 한쪽은 능동적인 운동의 양태이고, 한쪽은 수동적인 운동의 양태인데 ‘있는 것’과 ‘없는 것’ 안에 운동을 포함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 없는지를 한번 살펴봅시다.

*있음 (있는 것)
*없음 (없는 것)

운동은 변하죠. 바뀌는 것을 뜻하죠? 변하는데, 이 ‘바뀜’을 두 가지로 갈라볼 수 있겠죠, 한쪽은 없는 것에서 무언가 새로 생겨나서 있게 되는 것, 또 한쪽은 있는 것이 사라져서 없어지는 것, 보통 상식으로 이 두 가지 운동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운동이 ‘없음’에 맞닥뜨리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하강운동을 ‘없음’ 아래로도 할 수 있을까요? 없죠. 말하자면 ‘없음’은 운동도 없는 정지지점을 나타내는 거죠. 거긴 운동이고 뭐고 다 없다, 우리가 ‘운동’과 ‘정지’로 어떤 변화를 규정하자면 없는 것에 이르러서 하강운동은 멈춘다, 상승운동은? 있는 것 이상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까? 없죠. 있는 것 이상으로 올라간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있는 것의 한계를 넘어서서 없는 것으로 돌아선다는 것이죠.

‘있음’과 ‘없음’, 또는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운동이 이루어질 수 있는, 상승운동과 하강운동이 이루어질 수 있는 두 한계지점입니다. 이 한계 안에서 운동이 이루어집니다. 지난번에 제가 당구공을 예로 들어 이야기했던 것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있음’이 여럿으로 있다면, 여럿의 최소 단위가 뭐라 그랬죠? 둘, 둘이 여럿의 최소 단위죠. 만일에 ‘있는 것’이 둘로 있다고 치자. 그럼 이것을 ‘있는 것 기역’(ㄱ), ‘있는 것 니은’(ㄴ)으로 나눌 수 있는데, 여기에서 ‘있는 것 기역’(ㄱ)과 ‘있는 것 니은’(ㄴ)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둘을 나누는 경계선이 있어야 할 것 아니냐, 그런데 이 경계선이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하고 물었을 때, ‘있는 것’이라 하면 ‘있는 것 기역’(ㄱ)과 ‘있는 것 니은’(ㄴ)은 달라붙는다, ‘없는 것’이라고 보면 ‘없는 것’은 그 자체 규정상 없으므로 ‘ㄱ’과 ‘ㄴ’은 하나로 달라붙을 수밖에 없죠. 그래서 ‘있는 것’은 ‘하나’라고 이야기했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있는 것이 없다’고 ‘있는 것’이 부정돼버리면, 부분 부분 부정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도 없다’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랬죠. 통째로 부정이 돼서 ‘있는 것은 하나다.’, 그때 제가 여러분들한테 동의를 얻어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일동 웃음.)

‘있는 것’은 ‘하나’이기 때문에 다(多)와 운동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설명하려면 ‘있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있는 것’ 하나만 놓고 가버리면 ‘없는 것’이 다 사라져 버린다. ‘원자’와 ‘공간’으로 나누든 ‘질료’와 ‘형상’으로 놓든 어떤 방식으로든지 두 개를 놓고 나가야 하는데, 최초의 두 개는 뭐냐? ‘있음’과 ‘없음.’ 이게 최초의 두 개인데 있음과 없음이 서로 관계 맺을 필연적인 이유가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있음과 없음이 서로 관계 맺을 필연적인 이유가 없기 때문에 있음과 없음이 접촉하고 있다는 것은 ‘우연’이다, 있음과 없음이 접촉할 이유가 조금도 없다, 왜 이 우주에 원자가 있어야 하고, 거기에 대응해서 또 공간이 있어야 되는지 아무도 거기에 대해서는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그냥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원자론이 데모크리토스에 이르는 기간 동안 왜 ‘있음’과 ‘없음’이, ‘원자’와 ‘공간’이 우주를 설명하는 기본 개념으로 설정되었느냐, 동시에 공존하게 되느냐 물었을 때 그 대답은 ‘우연’이다, ‘필연’이다, 어쩔 수 없다, 설명할 수가 없다, 이렇게 이야기가 헛돌고 말문이 막히는 것입니다.

제1편, 제3장 화폐 또는 상품유통-[자본론강독]⑨

제1편, 제3장 화폐 또는 상품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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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참석 : 이재유, 김선이, 김성심, 신재길, 신준하, 옥철

정리 : 신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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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의 논의에서 금은 화폐상품으로 간주한다.

금은 모든 상품에 대해 질적으로 동일하고 양적으로 비교 가능한 가치표현의 재료로 즉 가치의 일반적인 척도로 기능한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것은 단위 측정의 근거가 금이 화폐라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주지하고 있는 사실, 모든 상품에 내재한 공통적 속성 ?상품에 대상화된 인간노동-으로부터 비롯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금이라는 하나의 특수한 상품이 대표적인, 공통적인 가치척도인 화폐로 전환 될 수 있는 것이며, 우리는 가치척도로의 화폐를 가치척도의 필연적인 현상 형태로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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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http://www.silverdoctors.com

화폐가 가치척도로 기능함에 따라 늘어서 있던 상품의 행렬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금이라는 화폐와 상품의 비교만이 남는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상대적 가치형태는 단순한 또는 개별적인 상대적 가치형태의 모습을 띠고 전개되며, 상대적 가치표현은 화폐상품의 독특한 상대적 가치형태의 모습으로 전환된다. 그 가치형태의 모습은 ‘상품의 가격’이라는 형태로 사회에 출현한다. 다만, 화폐에는 가격을 매길 수 없다. 화폐가 다른 상품들을 상대로 통일적인 상대적 가치형태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등가물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동어반복적 관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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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화폐와 가격의 문제에 대해 고려해 본다. 중요한 것은 상품의 가격 또는 화페 형태는 상품의 가치형태 일반과 마찬가지로 현실에 물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관념적이고 개념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지점이다. 가치는 상품에 내재하며, 그것을 가치척도로 재고자 할 때 관념적인 금과의 상상된 관계에 의해 표현된다. 상품의 주인이 자신의 상품가치에 가격이라는 형태를 부여한다 할지라도, 아직 그의 상품이 금으로 전환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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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상품의 가치는 여러 크기의 상상적 금량이라는 동일한 명칭의 양으로 전환된다. 다만 상품의 가치를 배제한 채, 척도로의 가격이라는 사회적 형태만을 고려한다면 가격의 문제는 “화폐 재료”로부터 비롯한다. 즉, 특정상품의 가치는 동일한 양의 노동량을 포함하는 상상 속의 화폐상품의 양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에 따라 논리적으로 유통되는 화폐상품의 재질이 복수일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하나의 상품만이 가치척도로의 지위를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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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의 가치척도가 가치척도의 기능과 모순된다는 것이다. 이제 금이 가치척도로의 견고한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정된 금량을 가치들의 도량 단위로 삼을 필요가 있다. 나아가 도량 단위는 세부적으로 분할된 도량표준으로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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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지금까지 고찰한 화폐의 기능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인간노동의 사회적 화신으로 가치를 측정하는 가치척도로의 기능이며 또 하나는 고정된 무게라는 속성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금의 양을 측정하는 도량표준으로의 기능이다. 맑스가 보기에 화폐 형태를 고려할 때 우리는 이 두 기능을 분리해서 사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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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가 도량표준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도량을 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노동생산물로의 금 역시 잠재적으로 가변적인데 이는 금이 가치척도가 되는데 있어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금의 가치가 변동하더라도(가치가 전환된 형태인) 여러 가치의 금량 사이의 관계는 언제나 동일하기 때문이다. 상품가격이 오른다면, 그것은 나머지 요소들은 고정된 상태에서 상품가치가 올랐거나 화폐 가치가 떨어진 것이고 상품가격이 떨어진다면 그것은 상품가치가 내렸거나 화폐가치가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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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 가치가 변해도 도량표준으로의 기능을 수행하는데 문제는 없는 셈이다. 한 가지 고려할 것은 문화적, 관습적 요소들에 의해서 화폐의 명칭이 그 무게 명칭으로부터 분리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결국 도량표준의 화폐명칭은 실제 무게와 동일하지 않더라도 그러한 이름을 획득하고 법률에 의해 규제된다. 이제 1쿼터의 밀은 1온수의 금과 가치가 같다“고 표현하지 않고 ”3파운드 17실링“의 가치가 있다고 표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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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3파운드 17실링”이란 것은 그러한 가격을 가진 상품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사물의 명칭은 사물의 성질과 관련성을 가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화폐의 명칭들에서 우리는 상품의 가치 관계의 흔적들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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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은 상품에 대상화되어 있는 노동의 화폐명칭이기는 하지만 그 외현된 이름으로부터 가치관계의 논의를 시작할 수는 없다. 나아가 화폐 형태와 상품 사이의 관계를 단순한 상대적 가치형태와 그것의 등가형태의 표현으로 간주하기도 어렵다. 즉, 가격이라는 형태는 상품의 가치와 더불어 수요/공급 등의 사회적 조건들에 의해 변화되어 출현하기에 상품가치량의 지표로의 가격은 상품과 화폐 교환비율의 지표이나 그 역의 관계는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노동생산성이 동일한 이상 사회적 노동시간이 동일하다면 그 상품의 가치량은 동일하게 상품에 내재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가격으로 사회적으로 외화된 형태로 출현할 때는 사회적 조건이 그 거울 관계를 왜곡시킨다. 결국, 가격과 가치량 사이의 양적 불일치의 가능성은 필연적으로 가격 형태에 내재하는 것으로 이 질적 모순은 거의 언제나 존재한다. 가격형태만을 가지지 가치가 없는 것(양심, 명예), 상상적 가격형태(미개간지) 등은 이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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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상품이 그 가치를 고려할 때, 현실의 물질적 형태에서 벗어나 상상의 금과 비교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때의 금은 관념적인, 상상적인 금이지만, 주인이 상품에 가격이라는 형태를 부여하길 원한다면, 상품이 등가물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상상의 금은 실제의 금으로 대체되어 출현해야 한다. 사실상 관념적 가치 척도에는 hard cash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상상의 금이 현실의 금으로 전환되는 순간, 노동생산물이라는 가치 형태가 그것이 그대로 반영되기 보다 필연적으로 변형되어 ‘가격’이라는 모습을 가진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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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관점에서 차이의 경제와 대안도시를 생각한다[자본주의를 다시 생각한다]-②

여성의 관점에서 차이의 경제와 대안도시를 생각한다[자본주의를 다시 생각한다]-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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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재(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연구소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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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오늘의 문예비평』 2012 여름 85호에 실었던 논문 「페미니즘 정치경제학의 새로운 가능성 탐색」의 제목을 변경하고 문장을 약간 다듬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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깁슨-그래함에 따르면 자본주의 경제는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거래, 임금이 지불되는 노동, 잉여노동을 자본가가 취하는 자본주의적 기업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제한적인 개념이다. 이러한 규정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우리의 일상에서 수행되는 경제활동 중 하나일 뿐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자본주의를 이렇게 제한적으로 규정하게 되면 우리는 자본주의 외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순수 자본주의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상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대안적 시장이나 비시장적 거래가 존재하며, 대안적 지급이나 미지급으로 노동을 수행하는 경우도 많다. 대안적 기업이나 비자본주의적 기업 등과 같은 비자본주의적 기업들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자본주의적 경제형식 아래 두 칸에 나열된 다양하고 풍부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을 보라. 깁슨-그래함에 의하면 시장거래가 아닌 윤리적 공정 거래나 협동조합 방식의 교환, 개인적 선물이나 국가적 배분과 같은 비-시장적 유통은 비자본주의적 경제이다. 화폐교환이나 임노동과 관계없는 품앗이나 자원봉사 혹은 대안적 지불 형태도 자본주의 경제를 벗어난 경제적 활동이다. 그리고 사회적 기업이나 공동체 사업 그리고 자영업 역시 생산된 잉여가치의 분배에 있어서 자본주의와는 다른 원칙을 갖는다는 점에서 비자본주의적 기업이다. 이들은 자본주의적이라기보다 봉건적, 노예적, 독립적 혹은 공동체적 원리에 따라 작동하며 이 원리는 또한 성, 인종, 제도 여타의 규범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이지 않다고 해서 경제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경제형식들일 뿐이다,

깁슨-그래함의 모델에 따라 앞서 제시한 조씨와 같은 여성의 활동을 분석해 보면 그녀가 다층적인 차원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삶은 비자본주의적 경제활동들로 점철되어 있다. 봉건적 가족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녀의 가사노동, 친인척 돌보기는 비지불 노동이지만 사용가치를 생산한다. 그녀는 봉건적 가족 관계 내에서만 경제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공동체적 관계 안에서 학교에 봉사활동을 하며, 아이 돌봐준 이웃의 아이들에게 과외지도를 한다. 이러한 봉사활동, 품앗이, 호혜적 노동은 교환가치를 생산하는 비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이다. 그녀는 사적인 관계 내에서 순수 비자본주의적인 경제활동만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녀가 일주일에 네 번 정도 하는 프랑스어 과외지도는 화폐를 통해 매개되는 임금노동이라는 점에서 부분적으로 자본주의적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노동이 순수 자본주의적인 것은 아니다. 그녀는 지하시장에서 노동하며 자영업자로서 자신의 잉여노동을 자신에게 배분한다는 점에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에도 연루되어 있다.

이로써 분명해 지는 것은 조씨가 경제와 분리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풍부한 경제적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 활동은 한 가지 혹은 두 가지의 본질적 경제체제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경제형식들과 다층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녀는 다양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활동에 참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풀어야할 문제는 그녀가 수행하는 경제적 활동이 어떻게 대안적 잠재성을 갖는가이다. 만약 우리가 기존의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를 강력한 경제형식으로, 비자본주의를 나약한 경제형식으로 간주한다면, 조씨의 비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은 언젠가 자본주의에 의해 침투되고 식민화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깁슨-그래함은 어떤 전략에 따라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의 긍정적 가능성을 주장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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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경제적 차이의 담론과 중층결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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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http://left21.com/article/12757

깁슨-그래함이 사용하는 전략은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그녀들은 비자본주의뿐 아니라 자본주의마저도 복수화함으로써 본질로서의 자본주의가 가졌던 막강한 힘을 탈각시킨다. 이것이 바로 본질주의에서 경제적 차이로의 전회이다. 다른 한 편으로 그녀들은 이러한 경제적 차이의 담론을 바탕으로 중층결정론을 주장한다. 다양한 경제 형식들 중 어떤 하나가 본질로 설정될 수 없으므로 이제 경제는 다양한 형식들이 상호교차하는 가운데 중층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우선 첫 번째의 전략부터 살펴보자. 앞서 설명했듯이 깁슨-그래함은 기존의 이론과 달리 우리 사회가 다양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으며 이것은 전체 경제형식의 50%이상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이미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경제양식이라고 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그러나 깁슨-그래함은 이에서 머물지 않는다. 깁슨-그래함은 다양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을 재소환하는 것을 넘어서 자본주의마저도 복수화시킨다. 그녀들은 여성주의적 관점을 한 발 더 밀고나가 여성 정체성이 다양하다면 남성 정체성 역시 다양하게 이해될 때 대칭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다양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이 있다면 자본주의적 경제 형식 역시 다양하다고 주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깁슨-그래함은 자본주의 역시 하나의 통일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논증한다. 자본주의는 하나의 형태학으로 파악될 수 있는 통일된 형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들에 따르면 실제로 우리가 전형적으로 자본주의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금융부문도 전적으로 자본주의적이지 않다. 가령 개인투자관리사와 같은 자영업자는 자신의 잉여노동을 스스로 전유한다는 점에서 비자본주의적인 특성과 절합되어 있고, 자유로운 사업대출 분야의 성장은 많은 비자본주의적 기업 특히 자영업 활동의 신장에 기여했다. 그녀들에 따르면 주어진 정의를 매끈하게 따르는 그런 순수한 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은 생각보다 적다. 자본주의는 우리가 말해왔던 것처럼 매끈하거나 통일적이지 않다.

이렇게 자본주의마저 복수화하는 전략은 깁슨-그래함의 경제적 차이의 담론을 급진화시킨다. 이제 그녀들의 정치 경제학 내에서 모든 요소들을 관통하거나 지배하는 통일된 단일자로서의 본질은 없다. 알튀세르의 말처럼 모든 사건은 그 순간에 존재하는 모든 조건들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지 하나의 본질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깁슨-그래함의 두 번째 전략이다. 이 전략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본질로서의 위상을 잃게 됨에 따라 그 강력한 힘도 잃게 된다. 그것은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괴물이 아니라 여러 가지 경제형식 중 하나일 뿐이다. 이로써 경제 영역은 다양한 경제 형식들이 절합하고 혼종되는 장소가 되며, 여기서 다양한 차이들의 성격과 방향을 총체적으로 규정하는 중심은 없다. 새로운 언어 속에서 자본주의는 더 이상 강력하거나 통일적인 영웅 혹은 최후의 승리자가 아니다. 경제적 차이의 언어 속에서 자본주의는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과의 절합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해 온 하나의 경제형식일 뿐이다.

반대로 비자본주의는 더 이상 무력한 경제형식이 아니다. 깁슨-그래함에 따르면 비자본주의는 생각보다 우리의 일상에 널리 퍼져 있으며 고유의 힘을 통해 자본주의를 변형시키고 탈구시키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다양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은 정복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무력한 혹은 낡은 경제가 아니다. 오히려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은 우리가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세계에서조차 자본주의적 경제형식 이상으로 존재해 왔으며, 유령처럼 늘 자본주의의 주변을 맴도는, 결코 제거되지 않는 힘들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기존의 언어 속에서 자본주의에 대해 겁을 먹거나 분노할 필요가 없다. 그 대신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늘 우리 곁에 있었던 다양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을 적극적으로 발전시키고 그 힘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껏 말해왔던 방식의” 자본주의에 종말을 고하는 여성주의적 정치경제학의 언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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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의 대안적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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깁슨-그래함의 차이의 경제학 속에서 조씨의 비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은 사소하지 않다. 그녀의 가부장적, 공동체적 경제활동은 자본주의적 경제에 의해 먹혀들어갈 수밖에 없는 나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자본주의 앞에 떨지 않아도 된다. 자본주의는 이제 괴물이 아니라 다양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과 절합되는 하나의 경제요소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깁슨-그래함의 청사진은 객관주의자들의 강한 저항에 부딪히곤 하였다. 정치경제학이 대상으로 해야 하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며, 강력한 자본주의는 객관적 사실이라고 믿는 객관주의자들은 담론을 달리한다고 해서 객관적 세계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반론에 대해 깁슨-그래함은 두 가지의 방식으로 대응한다. 한 편으로는 그녀들은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의 사례들을 발굴하고자 하였으며, 다른 한 편으로는 이러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을 확장시키려는 실천을 통해 담론이 세계를 구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가령 깁슨-그래함은 호주 탄광촌의 광부 부인들의 사례를 통해 여성들이 어떻게 가부장적 착취에 대응하면서 동시에 자본주의의 논리에 대항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 사례에 따르면 탄광회사는 광부들에게 더 많은 임금을 주는 조건으로 불규칙적인 교대근무의 조건을 제시했는데 광부의 부인들은 그러한 조건이 가내의 착취를 더욱 심화시킨다는 이유로 그 제안을 거절했다. 가내의 생산적 노동자로서 광부의 부인들은 자신의 봉건적 착취에 대항했을 뿐 아니라 그러한 힘을 바탕으로 자본주의적 논리의 확대에도 저항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밖에도 깁슨-그래함은 잉여의 공동 분배를 지향하는 협동조합 활동이나 상호 호혜적 노동이 만들어 내는 공동체 경제의 형성에도 주목하면서 이러한 경제형식들을 적극적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였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깁슨-그래함이 제시하는 사례들이 발견될 수 있는가? 오래 동안 우리는 사회의 전체 영역에 자본주의가 침투하고 있다는 각본에 매달려 왔다. 많은 비판이론들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보여주는 데 열중해왔다. 그러나 비판이 강하게 고조될수록 자본주의는 괴물과도 같은 형상을 드러냈으며 그 괴물은 어떤 저항에 의해서도 극복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여성의 경제활동은 침범되고 강간될 수밖에 없는 나약한 것으로만 그려졌다는 것이다. 이제 관점을 바꾸어 깁슨-그래함의 언어 속에서 여성의 경제활동을 다시 보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가?

우리 역시 여성의 비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이 가진 잠재력을 발굴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미국 쇠고기 수입반대를 위해 많은 여성들이 거리로 나섰던 사건을 생각해 보자. 그들은 가족들의 밥상을 위해 신자유주의적 논리의 확산에 저항했다. 그들의 저항은 가족 내에서의 그녀의 생산적 경제활동에 기반하여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여러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품앗이의 사례들도 주목할 만하다. 과천에서 만들어진 지역 공동체에서 수행되고 있는 대부분의 품앗이 활동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녀들은 한 시간 단위로 자신의 노동을 책정하고 서로의 노동을 교환한다. 내 아이를 한 시간 맡기는 대신 머리 염색을 한 시간 해주거나 과외지도를 한 시간 해 주는 식이다. 여기서 노동의 가치는 자본주의적 시장의 가치체계에 따르지 않는다. 모든 노동은 공평하며 돈이 없어도 일상의 많은 생활이 가능하다.

이렇듯 경제적 차이의 담론을 채택하게 되면 여성의 경제활동은 나약하거나 사소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대안으로 나타난다. 앞서 제시했던 조씨의 경제활동은 봉건적 혹은 자본주의적 착취에 무력한 부정적 활동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잉태하는 공동체적 활동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볼 것인가? 자본주의를 경제의 유일하고도 막강한 형식으로 보면서 여성의 비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을 폄하할 것인가, 아니면 경제적 차이의 담론을 받아들이고 이와 함께 비자본주의적 경제의 실천을 의식적으로 감행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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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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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관점에서 차이의 경제와 대안도시를 생각한다[지금, 경제를 다시 생각한다]-①

여성의 관점에서 차이의 경제와 대안도시를 생각한다/13강-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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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재(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연구소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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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오늘의 문예비평』 2012 여름 85호에 실었던 논문 「페미니즘 정치경제학의 새로운 가능성 탐색」의 제목을 변경하고 문장을 약간 다듬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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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제언어가 지워버린 여성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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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씨는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를 학교까지 차로 데려다 준다. 그녀는 결혼 후 남편과 함께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외국유학을 갔었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양육의 문제로 학업을 포기해야 했다. 귀국 후에는 전업주부로 가사와 양육을 도맡고 있지만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주일에 네 번 정도 학생들에게 프랑스어 과외지도를 하기도 한다. 그밖에도 아이의 학교에서 급식을 나누어주는 자원봉사도 한다. 남편은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했지만 아직 형편이 어려운 시간강사이다. 일하러 갈 때면 그녀는 이웃에 아이를 맡긴다. 대신 이웃의 아이들에게 영어나 프랑스어를 가르쳐 준다. 부모/시부모가 아플 때 간병을 담당하는 것은 항상 그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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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조씨의 이야기는 결코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주의를 둘러보면 조씨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여성들은 흔하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여성들의 활동은 주류 경제학자들의 관심 대상이 아니다. 공식적인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GDP든 GNP든 어떤 경제적 용어도 조씨가 수행하는 종류의 노동을 생산 활동으로 고려하지 않는다. 통상 그녀가 수행하는 대부분의 활동은 화폐의 거래나 공식적 시장과는 상관이 없기에 노동이나 경제활동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그것은 사적인 행위일 뿐이다. 화폐교환이 이루어지는 과외지도 역시 공식적 시장거래가 아니라는 점에서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그렇다면 조씨가 수행하는 가사노동과 양육, 과외지도, 자원봉사, 품앗이, 간병은 생산 노동이라고, 경제활동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인가? 그것은 아무런 가치도, 아무런 사회적 의미도 갖지 못하는 사적인 활동일 뿐인가? 조씨의 노동을 경제와 관계없는 사적인 활동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은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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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사, 경제/비경제의 이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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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것은 근대 자본주의의 형성과 함께 굳어진 공/사 구분법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사회학자들은 근대 자본주의의 성립과 더불어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 경제적 영역과 비경제적 영역이 더욱 분명하게 구분되었다고 주장해왔다. 이들에 따르면 봉건시대에 가정은 사회적 신분과 유산이 계승되는 장소라는 점에서 경제활동의 공간이었으며 여기서 공/사, 경제/비경제의 이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성립과 더불어 경제는 자본주의적 시장 중심의 임노동 영역으로, 가정은 시장중심의 경제관계 밖에 존재하는 친밀성, 인간관계, 사랑의 영역으로, 즉 사적인 영역으로 분리되었다. 이제 자본주의의 사회에서 개인의 경제관계는 친밀관계로부터 분리된다. 경제적 활동은 오직 자본주의적 시장에서 노동을 사고파는 행위와만 연관되며, 가정은 경제활동이나 이해관계와는 동떨어진 숭고한 친밀성의 영역이 된다. 즉 가정에서의 활동은 노동이기보다 사랑의 표현이며, 가족, 이웃의 관계는 이해관계 중심의 경제적 관계이기보다는 규범적 태도가 중시되는 인간관계로 간주된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자본주의를 비판했던 맑스주의 정치경제학 담론에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가령 맑스주의적 페미니스트들의 논의를 살펴보자. 한편으로 그들은 강력한 자본주의가 여성의 가내 노동 및 친밀관계를 자기존립의 기반으로 이용하고 있음을 비판하였다.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은 시장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이런 점에서 가정 내에서의 여성의 활동은 강력한 자본주의의 논리에 종속된 것으로 혹은 자본주의를 유지시키는 지지물로 파악될 수 있다고 보았다. 다른 한 편으로 맑스주의적 페미니스트들은 가정을 소비의 공간으로 분석함으로써 어떻게 가정이 자본주의에 의해 식민화되는지를 분석하기도 하였다.

물론 이러한 맑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적 분석은 강력한 자본주의 경제가 어떻게 사적인 인간관계 나아가 사회적인 것을 송두리째 집어삼키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이 모든 비판의 근저에는 가정 내에서의 활동이 공식적인 경제활동과는 분리된 사적인 것이라는 전제가 여전히 깔려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담론에는 가정에서의 활동이 생산 활동이라기보다는 생산 활동을 보조하는 재생산 혹은 소비활동이며, 이 활동마저도 자본주의라는 강력한 경제 원리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수동적인 것이라는 전제를 포함한다.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자들은 결국 이러한 전제들로 인해 자본주의적 시장 밖에 존재하는 여성의 정체성을 독자적으로 파악할 수 없게 된다. 사적인 관계에서 노동을 수행하는 여성들은 경제적 생산자로서의 지위를 갖지 않는 수동적 대상이기에 그녀들의 정체성은 공식적 자본주의 시장에서 맺고 있는 남편의 계급과 관련하여 정의되곤 하였다.

만약 이분법을 전제로 하는 맑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의 논리를 조씨의 사례를 분석하는 데 적용해 보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우선 조씨의 다양한 활동은 경제적 활동이라기보다는 친밀성의 표현이다. 그녀는 사랑의 이름으로, 친밀성의 이름으로, 아이를 위해, 남편을 위해, 부모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적인 관계에서의 이러한 희생의 결과는 결국 자본주의를 공고하게 하는 데 이바지 한다. 그녀의 애정 어린 봉사와 희생으로 남편의 노동력은 재생산되며, 아이는 미래의 노동력이 된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경제적 생산자가 아니다. 그녀가 경제적 활동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오직 노동력의 재생산자로서 혹은 소비자로서일 뿐이다. 그녀는 경제적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자본주의 경제에 대항할 어떠한 대안적 생산의 힘도 갖지 못한다. 그녀는 자본주의에 의해 이용되고 침탈되는 수동적 대상일 뿐이다.

결국 공/사, 경제/비경제의 이분법은 조씨와 같은 여성을 경제의 언어에서 지우거나 경제에 종속된 수동적 존재로 강등시킨다. 이분법을 고수한 채 여성을 사적인 영역으로, 비경제의 영역으로 감금하는 한, 여성이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활동은 비존재처럼 취급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친밀 관계 내에서의 여성 활동은 비경제적 활동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었는가? 이분법 안에서 경제는 어떻게 정의되기에 조씨와 같은 여성의 활동을 노동으로, 경제활동으로 규정해 줄 수 없었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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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자본주의적 경제활동만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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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http://blog.daum.net/yyy8525/124

여기서 우리는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던 경제에 대한 관념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흥미롭게도 좌파에게든 우파에게든 경제체제란 곧 자본주의를 일컫는 말이었다. 깁슨-그래함(Gibson-Graham)이 분명하게 지적했듯 주류 경제학자들뿐 아니라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자들에게도 경제적 분석의 대상은 곧 자본주의였고 이런 의미에서 자본주의는 경제의 유일한 그리고 본질적인 형식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바로 이러한 자본중심적 경제일원론으로 인해 여성의 일상적 활동은 경제 언어에서 지워져버린 것이다.

이러한 경제일원론의 문제점을 처음으로 간파했던 것은 바로 사회주의 여성주의자 크리스틴 델피(Christine Delphy)였다. 델피는 논문 「주요한 적」(1980)에서 결혼 내에서 가사노동은 남편의 임금과 함께 가족 생존에 기여하는 중요한 요소인데도 불구하고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혹은 상품생산과 관계없다는 이유로 “비생산적”인 것으로 혹은 “가치가 없는 것으로” 취급되었다고 진단한다.(Christine Delphy, “The Main Enemy”, in Feminist Issues, Summer 1980, p. 26.) 가사 노동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모두를 생산함에도 불구하고 가족 개개인의 고유한 필요를 만족시키는 개인적인 것으로만 여겨지기 때문에 그 노동에 대한 지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델피는 레오나드와 함께 저술한 1992년의 논문 「가족적 착취: 현대 서구 사회에서의 결혼에 대한 새로운 분석」에서 가내 생산을 하나의 독자적인 생산양식으로 이론화하고 이를 자본주의와 다른 경제 모델로 제시함으로써 경제 일원주의에 도전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즉 델피는 “이중 체제론(dual systems theory)”으로 알려진 입장을 개진하면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이외에도 가부장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가내 생산 양식(domestic mode of production)”(Christine Delphy and D. Leonard, “Familiar Exploitation: a new analysis of marriage”, in Contemporary Western Societies, Cambridge: Polity Press, 1992를 참고하시오.)이 있음을 분명히 했던 것이다. 델피의 모델에 따르면 가사노동은 단순히 자본주의적 노동자를 “재생산”하는 부차적인 체제가 아니라 독자적 관계 즉 가부장적 관계에 따르는 “생산” 양식이다. 이제 사회는 자본주의에 의해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두 가지의 경제적인 것에 영향을 받는 전체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델피의 이중 체제론에 따라 앞서 제시한 조씨의 사례를 분석해 보자. 분명한 것은 조씨의 가정 내 노동을 순수 사적인 것 혹은 비경제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방식이 여기서 폐기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조씨의 노동은 생산노동으로 파악될 수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시장에서의 거래를 전제로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것은 아니지만 엄연히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생산하는 또 하나의 생산 활동이다. 조씨가 가족을 위해서 수행하는 가사노동은 사용가치를 생산하며, 아이를 돌봐주는 대가로 이웃의 아이들에게 수행하는 영어, 프랑스어 과외지도는 교환가치를 생산한다. 따라서 그녀는 가내 생산자로서의 자신의 위상을 의식하는 한 자신의 노동이 착취될 때 저항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제 그녀는 자신이 학업을 포기하고 나아가 자신의 잉여노동을 착취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가부장적 가내생산양식의 모순 때문인 것으로 파악하고 이 모순에 저항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중 체제론”은 여전히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델피는 가부장적 생산관계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양자는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설명하지 못했다. 만약 델피가 자본주의를 여전히 강력한 경제형식으로 전제하고 있다면, 어떻게 가부장적 가내생산양식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부터 자율적일 수 있는가? 어떻게 가내생산양식은 자본주의에 의한 식민화를 벗어날 수 있는가? 뿐만 아니라 델피는 경제 이원론의 언어를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가령 당시 자본중심적 경제학에 정향된 경제 일원론자들은 여전히 가내 생산양식을 자본 연관적 이론형식을 통해 설명할 것을 그녀에게 요구했는데 그러한 요구 앞에서 델피는 어려움을 가졌다. 예를 들어 그녀는 가내 생산양식 역시 자본의 생산양식과 마찬가지로 위기의 경향을 갖는 경제시스템으로 설명해야한다는 요구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즉 그녀는 자본주의와 다른 경제형식이 있다는 생각에는 도달하였지만 이 다른 형식을 표현할 수 있는 적극적인 언어를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비판가들의 반론에 효과적으로 대답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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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의 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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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자본주의적 경제형식과는 다른 경제형식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이 형식들이 자본주의와는 다른 언어를 갖는다는 것을 분명히 해 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한 경제형식들이 자본주의의 논리에 의해 식민화되지 않을 수 있을 만큼의 내재적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일상에서의 여성의 활동을 생산적 경제활동으로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만들어야하며 여성의 경제활동이 가지고 있는 생산적, 대안적 힘의 가능성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가능성을 이론화할 것인가?

여기서 필자는 J. K. 깁슨-그래함(Gibson-Graham, 깁슨ㅡ그래함은 캐서린 깁슨(Katherin Gibson)과 줄리 그래함(Julie Graham)이 함께 만든 공동의 필명이다.)이 제안하는 새로운 페미니즘 정치경제학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깁슨-그래함은 그 누구보다도 경제일원론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자본주의를 유일한 경제형식으로 전제하는 정치경제학 이론들이 가정경제와 같은 자본주의와 다른 경제형식들을 이론의 전면에서 배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였다. 남근중심적(phallocentric) 담론이 남근을 인간을 대표하는 유일한 기표로 간주하면서 남근과 다른 모든 것들을 타자로, 결핍으로 배제해왔듯이 말이다. 따라서 그녀들은 이제 타자로 배제되어왔던 여성의 관점에서 새로운 정치경제학의 언어를 만들어내고자 한다. 그녀들은 새로운 정치경제학의 언어 속에서 여성의 경제활동을 이론화하고자 할 뿐 아니라 이러한 활동이 갖고 있는 긍정적 잠재력을 발굴하고자 한다.

깁슨-그래함의 이러한 작업은 델피의 이중 체제론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한 편으로 그녀들은 델피가 가내 생산양식과 같은 자본주의와는 다른 경제형식에 주목했다는 사실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그녀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델피가 또 다른 본질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델피의 모델에 따르면 개인의 정체성은 자본주의 혹은 가부장제라는 두 개의 체제로 환원되어 설명되기 때문이다. 가령 자본주의 밖에 존재하는 한 여성은 가내 생산양식이라는 또 하나의 본질에 따라 파악된다. 그러나 깁슨-그래함이 보기에 여성들은 가족 관계 뿐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비자본주의적 관계들에 연루되어 있다. 여성들은 전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자본주의적 관계 안에 있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깁슨-그래함은 여성을 가부장적 관계 안에서 하나의 통일된 정체성을 갖는 존재로 보는 델피의 방식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여성주의가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여성은 통일체로서의 “대문자 여성(Woman)”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깁슨-그래함이 “여성”을 어떻게 이해하고자 하는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깁슨-그래함에 따르면 여성의 타자성은 하나의 타자가 아니라 타자들이다. 즉 여성의 타자성은 항상 복수이다. 버틀러가 분명하게 주지시켰다시피, “여성”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수행성의 결과일 뿐이지 그 자체가 어떤 하나의 본질에 의해 정의될 수 있는 통일적 실체가 아니다. 이리가레가 여성을 “두 입술”로 비유했던 것도 여성이 단 하나의 매끈한 형태를 갖는 남근과는 다른, 그 자체의 내적 차이를 갖는 여성들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은 어떤 내용적 동일성을 갖는 하나의 타자가 아니라 타자들 그 자체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성주의적 관점은 단수로서의 여성을 넘어 다양한 타자들의 관점에서 기존의 이론을 재구성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깁슨-그래함은 복수적 타자의 관점을 여성주의적 정치경제학의 핵심으로 삼고자 한다. 깁슨-그래함은 여성주의적 관점을 도입함으로써 여성을 가내 생산 양식과 같은 어떤 하나의 타자성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과 관련하여 다층적으로 분석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아래의 <표1>을 통해 그녀들이 제시하고 있는 다양한 경제형식들을 살펴보자(ibid. p. xiii. 이 표는 가로가 아니라, 세로줄 아래위로 읽는 것이다. 예컨대 비자본주의적 활동도 시장지향적일 수 있다.)

거래

노동

기업

시장

임금

자본주의

대안적 시장

공공재의 판매

윤리적 “공정무역” 시장

지역유통체계

대안 통화

지하시장

협동조합형 교환

물물교환

비공식시장

대안적 지급

자영업

협동조합

기식노동

호혜적 노동

현물지급

복지급여형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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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적 자본주의 기업

국영기업

녹색자본가

사회적 책임 기업

비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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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시장

가계 흐름

선물

토착적인 교환

국가 할당

국가 전유

이삭줍기

수렵, 어업, 채취

절도, 밀렵

미지급

가사노동

친인척 돌보기

마을 노동

자원활동

자기재충전형 노동

노예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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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본주의적

공동체적

독립적

봉건적

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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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