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철연의 추억 : 나와 한철연’ – 연효숙 편 [나와 한철연] ①

이 코너는 2023년 1월 12일(목) 서교동 소재 한철연 강의실에서 거행된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신년회 2부 행사에서 ‘나의 과거의 한철연, 미래의 한철연’이란 주제로 진행한 발표회를 계기로 구성되었다. 이 코너에 게재되는 글들은 ‘내’가 처음 한철연에 들어오게 된 계기와 활동을 돌아보면서 한 개인이 철학 전공자로서 거친 여정뿐만 아니라 한철연이라는 철학 학회의 지난 활동을 되살피는 내용이 될 것이다. 80년대 이후 한국에서 철학함이 무엇이었는지 그 역사의 일부에 자리했던 옛 한철연과 지금의 한철연, 그리고 앞으로 한철연을 생각하며 지금 철학함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한철연의 추억 : 나와 한철연

연효숙(연세대)

 

나는 2023년 1월 12일(목)에 열리는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이하 한철연)의 신년회 때 세대별 4인 주자들(70년대 세대, 80년대 세대, 90년대 세대, 2000년 이후 세대)의 릴레이 간담회 기획(각 사람이 10분씩 발표)을 현남숙 연구협력위원장으로부터 부탁받았다. 처음에는 이 신년회 간담회 4인 기획이 노년 세대(60세 이상) 회원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줄 알고 좀 주춤거렸다가, 세대별 기획이라는 말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고 흥미로운 기획이라 생각하여 흔쾌히 수락하였다. 주제는 ‘과거의 한철연, 미래의 한철연’. 이 주제야 새로울 것이 없었지만, 세대별로 한다는 것이 새로운 시도였고, 또 간담회 형식이니 자유롭게 생각나는대로 말하면 되는 것이어서 부담이 없었다. 그렇게 한철연 신년회 간담회는 4인의 발표로 끝이 났다. 이어서 송상용 선생님, 김교빈 선생님의 추억담도 있었고 회식이 이어졌다.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내가 말한 ‘한철연의 나, 나의 한철연’ 내용은 제대로 기억된 것이었을까? 부분부분 끊기는 희미한 그 시절의 기억을 가다듬다 보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 4인 릴레이 간담회를 한철연 웹진 <ⓔ 시대와 철학>에 한번 남겨 보면 어떨까 싶은 마음이 생겼다. 마침 진보성 웹진 편집주간이 4인 간담회를 정리하고 있는데 내용을 확인해 달라고 하였다. 나는 망설이다가 내 계획, 즉 직접 내가 이 기억의 내용을 쓰는 것은 어떨까? 또 이 기획을 4인 기획으로 이어서 쓰고, 더 나아가 자유롭게 이어서 다른 사람들이 쓰면 어떨까? 이렇게 제안했다. 논문 형식의 딱딱한 기록이 아닌, 우리들 각각이 기억하는 그 시절의 기억을 에세이 형식, 르포 형식으로 가볍지만 진솔하게 써 내려 가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집단 기억’의 형식으로 한철연 34년의 역사(1989년부터 2023년까지)를 각각의 기억의 편린 속에서 끄집어내어 콜라주 형식으로 갖다 붙인다면, 그렇게 찢어 붙인 조각 조각들이 우리 시대 한철연의 다면적인 기억이자 추억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작정을 하고 나는 신년회 때 했던 이야기들, 기억들에 덧붙여서 1세대 한철연 회원으로서 추억을 회상해 보고자 한다. 이 기억은 온전히 나의 개인적인 기억이며, 그에 대한 감상은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가끔 그 기억에 대한 사실(팩트)이 다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자료적 기억만이 소중하고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또 이러한 릴레이 기록이 후일에 또 다른 한철연의 기록들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1. 한철연 탄생의 추억

나는 78학번으로 70년대 학번 후반 주자이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은 서슬이 퍼런 박정희 독재 정권의 유신 말기로, 캠퍼스에는 알 수 없는 억압과 침묵의 공기가 무겁게 맴돌았다. 1979년 10월 29일 가을에 역사상 초유의 대통령 저격 사건이 일어났고, 믿을 수 없는 속보는 빨리 퍼져 나갔다. 80년 서울의 봄, 광주 항쟁 등 그때 대학생들은 누구나가 다 반정부 데모에 동참했고, 매캐한 최루 가스의 냄새는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다가 소련의 붕괴와 해체, 그리고 진보 진영의 암흑 시절에 나는 당시 한국헤겔학회의 일원이었다. 1988년 가을쯤 광화문에서 헤겔학회 소장파들(유헌식, 이종철, 나)과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 사회철학연구실(사철연)의 소장파들(이상훈, 서도식 등)이 양쪽에 다 참여했던 우기동, 양운덕의 매개로 광화문 계단에서 만났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나는 마르크스 등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했고, 칸트, 헤겔 공부를 하면서 어렴풋이 마르크스에 대해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무엇을 논의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고, 두 단체 회동 시 장소였던 계단의 모습이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고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 있다. 세세한 논의 내용은 기억에 없고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계단에서 오르락내리락하며 얘기했던 그 기억은 나만의 기억일까. 암튼 그 후 두 단체의 통합을 위한 모임은 몇 차례 더 있었다. 그 시절에 대해서는 이병창, 우기동, 이종철, 김교빈 선생님과 전화 통화를 통해 어렴풋이 윤곽을 잡을 수 있었다. 적지 않은 두 단체 회원들이 마석이었던가 어딘가 교외로 나가 통합에 관한 논의를 더 했었는데, 그중 단체의 작명에 관한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다. 이병창은 ‘사상’이라는 말을 꼭 집어넣어야 한다고 했고(이병창, 나의 기억 동일), 이종철은 ‘실천’이 꼭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우기동 기억).

그렇게 1988년은 흘러가고, 1989년 3월 25일 두 단체는 통합하여 ‘한국철학사상연구회’라는 이름으로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창립총회를 했다. 나도 이 창립총회의 기억은 분명히 있다. 이때 이정호 선생님이 큰 역할을 한 것 아닌가 짐작되며, 선생님과 전화 통화를 해서 확인도 했다. 그리고 창립총회의 사진을 이정호 선생님이 가지고 있으며 내게 보내 준다고 했다. 이렇게 창립총회가 있기까지 두 단체의 통합 과정에 대한 나의 한철연 가장 초기의 장면과 기억이 이제는 아련하고 어렴풋한 ‘한철연의 추억’으로 흐릿하게나마 남아 있다. 아마 내가 더 나이가 든다면 이 장면들은 더욱더 빛바랜 사진인냥 재생도 복원도 어려운 채로 흩어져 버릴지도 모르겠다.

1988년경 광화문 일대(민방위 훈련 중) / 사진출처: 영화 <칠수와 만수>(1988)

 

  1. 학회지의 추억

2023년 올해 따져 보니 내가 한철연과 함께한 세월은 34년째이다. 한철연이 1989년에 공식 출범했는데, 양 단체가 완전히 한철연 속으로 해체되어 융합되어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한국헤겔학회는 이미 임석진 선생님을 중심으로 몇몇 노장파 회원들(이을호, 이병창, 설헌영 등)이 활동을 하고 있었고, 사회철학연구실은 주로 서울대 철학과 72학번(이규성, 이훈, 이영철, 이정호, 이병창, 김수중 등)이 먼저 활동했다(고 들었다). 통합 이후 사회철학연구실은 한철연에 흡수 통합되었고, 한국헤겔학회는 지금도 여전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학회지의 경우, 한국헤겔학회는 1984년에 『헤겔연구』제1호가 나왔으며, 사회철학연구실의 학회지에 대한 사정은 내가 잘 모르겠다. 한철연을 중심으로 하자면, 『시대와 철학』이 무크지 형식으로 1988년, 1989년에 천지출판사에서 나왔고, 이 책 두권은 아마 서교동 태복빌딩에 보관되어 있겠지만 나는 갖고 있지 않다. 한철연의 공식 학회지 『시대와 철학』 제1호는 1990년에 천지출판사에서 발간되었고, 이 책은 나도 갖고 있다. 한철연 20여 년간의 『시대와 철학』 그리고 회원들의 학술활동과 관련된 자세한 논의는 2009년 한철연 2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되고 『시대와 철학』제20권 3호에 실린 박영균의 「철학 없는 시대 또는 시대 없는 철학」의 논문을 참조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한철연 회원들의 20년간의 주요 학술활동 성과에 대해서는 이철승의 「‘임중(任重)’의 시대정신 발현과 ‘도원(道遠)’의 ‘우리철학’ 정립 문제」와 이정은의 「사회 변혁을 위한 철학적 논의들」의 논문들을 참조하면 될 것이다.

『시대와 철학』 제1호 1990.6.30. 발행 / 사진출처: 연효숙 회원

 

  1. 연구실의 추억

한철연의 역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추억은 연구실에 대한 기억이다. 다른 무수한 학회들과 달리 한철연은 고유의 연구 공간인 연구실이 있었다. 이 연구실에서 분과별로 세미나하고, 기조부(이병수, 박영균, 송석현 활동)의 초청으로 외부 강연을 들었던 기억이 여전히 선명하다. 나는 1989년 당시 과천에 살고 있었는데, 처음 한철연의 연구실인 낙성대 연구실까지는 남태령 고개만 넘으면 되는 가까운 거리였기 때문에, 한층 더 친근감이 갔다. 그러다가 1994년에 ‘논리교육연구실’이 발족되고, 이때부터 신촌, 홍대 연구실 시절이 열리게 되었다. 한철연이 ‘논술 사업’에 참여해야 하느냐 마느냐로 엄청난 논쟁이 있었을 당시 나는 무슨 사정 때문이었는지 참여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1996년 학위를 마친 후에 나는 홍대 산울림 소극장 근처에 있었던 ‘논리연구실’에 조광제, 우기동, 홍건영 선생님과 함께 상근하게 되었다. 학위를 마친 후 딱히 장래가 보장되는 자리가 내게 없었기 때문에 이 제안을 별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다. 한동안 한철연 회원들은 논술 첨삭 노동에 매진하면서, 자신의 역량을 자의반 타의반 발휘했다. 이때가 아마도 한철연 역사상, 경제적으로는 비교적 여유 있는, 그러나 연구 역량이 거의 발휘되지 못한 시절이 아닌가 기억된다. 그러다가 한샘의 재정난으로 1999년 한철연의 논술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이후 제2의 낙성대 연구실로 이사 가면서, 다시 연구실 분위기는 차분해졌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몇 년 후에 윤구병 선생님의 제안으로 현재 서교동의 태복빌딩 3층으로 이사 왔고, 이순웅 당시 연구협력위원장의 열성적 제안으로 한 번의 리모델링을 거쳐 깔끔하게 환골탈태해진 현재의 연구실이 탄생하게 되었다.

 

  1. 분과활동의 추억

한철연과 내가 함께한 세월은 다른 초창기 회원들과 마찬가지로 34년이다. 늘 한철연에 내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한철연은 늘 그 자리에 굳건히 있었다. 나는 한철연에 들락날락하며 밀착했다가 거리를 두었다가 하곤 했었다. 한철연에서 내가 소속감을 가장 잘 느낄 수 있었던 활동은 역시 분과 활동이었다. 창립 초기에 내가 기억하고 참여했던 분과는 대표적으로 ‘변증법 분과’였다. 어느 여름에는 명지산으로 분과 엠티를 당일치기로 갔다 왔던 기억도 있다. 이 분과 소속으로 현재까지 한철연에 열심히 나오는 회원은 이병창 선생님밖에 없는 것 같다. 그 이후에 나는 문화변증법 분과에도 소속이 되었었다. 유감스럽게도 이 두 분과는 현재 사라지고 없다.

그리고 내가 한철연에서 동지들과 함께 만들고 가장 애썼던 분과는 ‘여성과철학 분과’였다. 내가 박사학위를 받은 후 1996년에 만들어졌다. 김세서리아, 이정은 등과 의기투합해서 여성과철학 분과를 만들었고, 이때부터 지금까지 여성과철학 분과는 한철연을 27년 이상 굳건히 지킨 분과라고 자부할 수 있다. 물론 내가 이 분과에 한 번도 결석 없이 참여한 것은 아니었고, ‘여성주의’가 우리 사회에서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어떤 직감 때문에 좀 멀리한 시절도 간혹 있었다. 그러나 여성과철학 분과를 멀리하면 나에게는 특이한 금단 현상이 나타나 얼마간 휴식 후에 다시 복귀하고는 했다. 한철연이 친정집이라면, 여성과철학 분과는 친정엄마와 같은 존재였다. 이후 많은 후배들이 여성과철학 분과에 나처럼 들락날락하며 꽤 적지 않은 성과를 내었다. 지금 나는 여성과철학 분과를 지키는 창립 멤버이자 뒷방 늙은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흐뭇한 기분이다. 최근에는 3-4년 전에 만들어진 ‘근현대 삶 사회 분과’(이른바 복덕방 분과)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김교빈 분과장님과 더불어 한철연 초창기 멤버들의 집합소가 됐지만, 이후 20년은 더 가자 했는데,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가는 분과가 되길 희망한다.

2017년 11월 25일(토) 여성과철학 분과가 진행한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17년 가을 제53회 정기학술대회 광경 / 사진출처: 전호근 회원 facebook계정

 

  1. 한철연 속 나의 궤적

나는 한철연의 창립 멤버이자, 은퇴하지 않는 회원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은퇴하지 않을 결심’을 했었던 것 같다. 아무리 퇴물처럼 보여도 굳건히 지키는 어느 사찰의 은행나무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 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한철연에서 쓴 감투는 여성과철학 분과의 첫 번째 분과장이다. 이 감투는 꽤 오래갔고 장기집권을 했다. 그러다가 분과장을 김세서리아에게 물려 주고 나는 평회원으로 자유롭게 세미나에 참여했다. 한편 논리교육연구실에 발탁되어 상근연구원(유급)으로 2년여를 지냈고, 그 후 서교동 연구실 시절로 이사 한 후에는 한철연에 잘 나가지 않았다. 어느 토요일 오후 낮잠을 자고 있는데, 느닷없이 이순웅 위원장의 전화가 나를 깨웠다. 걱정 반 불안 반 마음으로 ‘혹시 내가 무슨 잘못을? 실수한 것?’이라고 자기 검열하면서 이순웅 위원장을 만나러 갔다. 그 자리에서 느닷없이 나는 차기 연구협력위원장 자리를 덜컥 제안받았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뜻밖의 제안에 나는 당황했고, 망설임과 거절 사이에서 고민했다. 이순웅 위원장이 두 번째 왔을 때 나는 삼고초려는 아니지만 결국 그 자리를 수락하고 말았다. 나는 연구협력위원회의 부장 감투도 한 번 쓰지 않고 낙하산 위원장이 되고 말았다. 이게 옳은 결정인가? 하는 많은 망설임도 있었지만, 이 2년 동안의 경험은 내 인생에서 한철연과 맺은 두 번째 소중한 인연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 후 편집위원장 그리고 회장까지 나는 감투를 쓰게 되었고, 흥겨운 마음으로 그 직책들을 수행하였다. 어찌 보면 나는 한철연의 고위직 감투에서 여성으로서는 첫 번째라는 수식어를 몰고 다닌 셈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여기에 여러 가지 함의가 있음은 다들 잘 아실 것 같다.

한철연은 늙어가고 있다. 후배들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학문 후속 세대 문제는 큰 짐으로 남아 있다. 또 한철연의 끝나지 않은 정체성 논의는 한철연의 건강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위안 삼아 본다. 21세기 인문학 위기 속에서 한철연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추신, 이 글을 쓰는 데에는 이정호, 김교빈, 이병창, 서유석, 이종철, 우기동, 문성원, 김세서리아 선생님과의 전화 통화 등 큰 도움이 있었음을 밝혀 둔다.)


 

[강좌안내] 한철연 회원 출강 안내 <빼앗긴 법치주의 - 정치철학적 고찰>

2023년 겨울방학을 맞아 한철연 회원들의 특강 소식을 알립니다.
지금 사회 분위기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흥미롭게 다가갈 주제인 것 같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아래 해당 포스터와 링크를 참고하세요~

말과활 아카데미 연속 기획강좌1
<빼앗긴 법치주의 – 정치철학적 고찰>
일시: 1/27 – 2/24(금) 저녁 7시 30분
1/27 김성우: 빼앗긴 자유, 도둑맞은 공정
2/03 한길석: 참을 수 없는 ‘법치‘의 얄팍함
2/10 한상원: 법/권리의 주체는 누구인가? – 법치국가 담론이 놓치고 있는 것들
2/17 김종곤: 법률적 권력과 국가권력
2/24 전주희: 노동법은 어떻게 노동권을 허물었는가

♦ 수강신청: https://wp.me/pa0lZX-1Ir

♦ 강의 안내문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22년 가을 제63회 정기 학술대회(12월 3일) 알림

학사상구회 2022년 가을 제63회 정기 학술대회(12월 3일)

 

2022년 12월 3일 () 12:30 부터

성균관대학교 인문사회과학 캠퍼스(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3호암관에서

63회 한국철학사상 연구회 가을 정기 학술 대회가 개최됩니다.

한국 근현대사상의 비판과 재구성을 대주제로연구 영역의 확장과 성과의 축적이 기대되는 이번 학술 대회에 회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2022년 제63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가을 정기 학술대회

○주제: 한국 근현대사상의 비판과 재구성

○주최: 사단법인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주관: 성균관대학교 교양기초교육연구소 

 후원: 한국연구재단

○장소: 인문사회과학캠퍼스(서울) 호암관 3층 50307호(세션1), 50308호(세션2)

○시간: 2022년 12월 3일(토) 오후 12시 30분

○프로그램(아래 포스터 참조)

※성균관대학교 인문사회과학 캠퍼스 호암관 오시는 길:

https://hakbu.skku.edu/hakbu/intro/location01.do (첨부파일 참조)

※셔틀버스 이용 안내:

https://www.skku.edu/skku/campus/support/welfare_12.do?mode=hView&srId=34

지하철 4호선 혜화역 4번 출구로 나오셔서 도보로 오시거나
좀더 편하게 오시려면 지하철 4호선 혜화역 1번 출구로 나오셔서
셔틀버스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셔틀버스: 토요일 07:00∼19:00 운행, 교내 정류장명 “농구장”→호암관)

★지정 주차 구역: 600주년기념관 지하국제관 지하 (D구역)


[신간 안내] 『자연과 공생하는 유토피아 – 셸링, 블로흐, 아나키즘의 생태사유』(조영준 지음 | 역락 | 2022년 9월 8일 발간) [한철연소식]

『자연과 공생하는 유토피아 – 셸링, 블로흐, 아나키즘의 생태사유』(조영준 지음 | 역락 | 2022년 9월 8일 발간)

 

셸링 철학을 전공하고 한철연에서 오랫동안 활동하신 조영준 회원이 신간을 펴냈습니다. 저자는 이미 한철연 월례발표와 학술모임 자리를 통해 셸링 철학과 관련한 생태학적 견해를 꾸준히 제출한 바 있습니다. 그간의 연구 역량을 이 한 권의 책에 담아냈습니다. 환경문제를 비롯하여 인간과 지구가 위기에 봉착한 지금 시기에 필독할 책이 아닐까 합니다. 한철연 회원과 관심 있는 여러분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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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일반 독자가 환경문제를 좀 더 깊이 있으면서도 사회실천적 차원에서 총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내용을 서술하였다. 이 책은 생태위기의 원인과 해법을 형이상학적 근거 없이 단지 현상적으로 설명하거나, 그 이론적 쟁점들을 개괄적으로 소개하는 환경이론서와는 다르다.

저자는 근 30년 동안 지구의 환경과 생태위기 문제를 공부하고 그 해결책을 고민하면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여러 저술 작업과 함께 환경단체에서 실천적 활동을 해왔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한 가지 체득한 것은 사람들이 환경문제에 대한 자신만의 확고한 가치관과 신념이 없이는 생태위기를 자신의 절박한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실생활에서 반환경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저자가 이 저술을 기획하면서 무엇보다 중시한 점은 사람들이 자연이나 환경문제를 바라볼 때 인식론적인 전환을 할 수 있는 철학적 근거를 제공하자는 생각이었다. 여기서 최선의 출발점이 된 사상은 자연 개념에 있어서 “주체로서의 자연”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셸링의 자연철학’과 그 연장선에서 인간과 자연을 매개하는 ‘블로흐의 기술철학’ 그리고 환경문제의 실천적 해법으로서 국가주의적 패러다임을 비판하며 지역공동체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생태아나키즘’이었다.

  출처: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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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독일 시인이며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시 「추방(Exil) 3」에 나오는 시구절은 오늘날 생태위기에 직면한 인류의 처지를 비유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왜 이성을 가진 존재로 자부하는 인간이 대파국으로 치닫는 이런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것일까? 지금 우리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구 환경의 위기를 알리는 징후는 점점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 수질과 토양 오염, 생물종 감소 등은 이를 잘 증명하고 있으며, 특히 최근 전 세계적인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및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같은 환경재해는 얼마나 많은 생명이 한꺼번에 희생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 따라서 점차 심화되고 있는 생태위기의 문제는 곧 생명위기의 문제로서 민주, 성장, 분배, 평등 등 전통적 과제보다 더 중요한 21세기 인류의 최대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아무리 우리가 인공지능(AI) 기술로 상징되는 최첨단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더라도, 문명화된 삶의 토대인 지구의 환경문제 해결 없이는 인류에게 희망이 없어 보인다. 2019년 <타임>지 올해의 인물과 노벨 평화상 후보로 선정된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의 작은 외침이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듯이, 생태위기의 문제는 지금까지 인류에게 닥친 문제 중 가장 근본적이고 심각한 문제로서 우리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에 대한 대책과 해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타고 있는 문명의 호화유람선 ‘타이타닉’ 호가 좌초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연보호, 소비절약 등 실천적인 환경운동이 활발해야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서 다양한 연구와 기술개발 등 이론적 접근도 중요하다.

사실 환경공학, 환경정치학, 환경경제학 등 환경문제에 대한 여러 학문적인 접근방식이 있지만, 이들은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기술적, 정치적, 경제적 대응 방안으로서 개별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산업화 과정의 끊임없는 성장과 개발의 결과인 지구의 환경문제는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무엇보다 총괄적인 차원에서 개별적인 문제들을 전체적으로 바라보고 정당화할 수 있는 통일적인 이론, 즉 생태철학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국내의 많은 연구자가 ‘환경철학’ 또는 ‘생태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철학 논문이나 저서를 출간하였지만, 알고 보면 이는 대부분 환경 또는 생태에 관한 형이상학적 고찰이 아니라 영미권 중심의 ‘환경윤리학’에 해당한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태도 문제를 주로 다루는 환경윤리학은 그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자연 또는 물질에 대한 심도 있는 형이상학적 연구가 부족하고, 또 환경문제를 사회실천적 차원에서 고찰하는 정치‧사회철학적 논의도 아니다.

필자는 이런 배경에서 일반 독자가 환경문제를 좀 더 깊이 있으면서도 사회실천적 차원에서 총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내용을 서술하였다. 따라서 이 책은 생태위기의 원인과 해법을 형이상학적 근거 없이 단지 현상적으로 설명하거나, 그 이론적 쟁점들을 개괄적으로 소개하는 환경이론서와는 다르다. 필자는 근 30년 동안 지구의 환경과 생태위기 문제를 공부하고 그 해결책을 고민하면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여러 저술 작업과 함께 환경단체에서 실천적 활동을 해왔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한가지 체득한 것은 사람들이 환경문제에 대한 자신만의 확고한 가치관과 신념이 없이는 생태위기를 자신의 절박한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실생활에서 반환경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필자가 이 저술을 기획하면서 무엇보다 중시한 점은 사람들이 자연이나 환경문제를 바라볼 때 인식론적인 전환을 할 수 있는 철학적 근거를 제공하자는 생각이었다. 여기서 최선의 출발점이 된 사상은 자연 개념에 있어서 “주체로서의 자연”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셸링의 자연철학’과 그 연장선에서 인간과 자연을 매개하는 ‘블로흐의 기술철학’ 그리고 환경문제의 실천적 해법으로서 국가주의적 패러다임을 비판하며 지역공동체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생태아나키즘’이었다.

특히 셸링의 자연철학은 자연에 대한 풍부한 형이상학적 논의와 생태위기 극복을 위한 탁월한 상상력을 제공하지만, 그동안 한국에서 옳게 연구되지 않았고 이해되지도 않았다. 또 셸링의 충실한 계승자로서 블로흐의 철학도 그의 종교철학을 제외하고, 자연철학과 기술철학은 아직 미개척의 영역에 속한다. 아나키즘 또한 20세기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마르크스주의 운동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지만,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전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으며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 특히 국가중심적 산업체제에 따른 심각한 환경파괴의 대안으로서 생태아나키즘은 새롭게 조명되고 있으며,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뜨겁게 논의되는 ‘탈성장사회론’과도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필자는 이러한 맥락에서 책의 주요 내용인 셸링, 블로흐, 아나키즘을 사유의 기반으로 하여 자연에 관해 근원적으로 고찰하면서 생태위기의 문제를 풀어가고자 한다. 따라서 내용 서술의 핵심은 인간을 진보의 중심에 놓는 낡은 틀에서 벗어나 자연과 생태계를 포괄하는 새로운 진보담론으로 나아가기 위해, 셸링의 자연철학과 블로흐의 기술철학 그리고 생태아나키즘을 중심으로 어떻게 인간이 자연과 공생하고 연대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대안 사회모델을 모색하는 데 있다.

내용의 주요 구성은 다음과 같다.

1장은 이 책의 서론으로서, 현대문명의 위기를 인류의 절박한 생태 위기를 통해 설명하고 그 대안으로 생태학적 세계관으로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함을 서술하고 있다.

2장에서는 근대 사회의 세계관을 대표하는 베이컨과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자연관이 자연을 지배대상으로 간주함으로써 오늘날의 생태위기에 정신적 원인을 제공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3장~6장은 셸링의 자연철학에 해당하는 부분으로서,

3장에서는 기계론적 자연관에 반하여 자연을 살아있는 주체로 파악하는 셸링의 자연 개념을 그 생산성에 주목하여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4장에서는 셸링 유기체 개념의 본질과 특징을 통해 그의 자연관이 오늘날 생태학적 세계관과 상통하는 ‘유기체적-전체론적 자연관’임을 제시한다.

5장에서는 셸링에서 ‘정신과 자연의 동일성’ 및 ‘자유와 자연의 결합’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통일되고 공생할 수 있음을 설명한다.

6장에서는 셸링에서 자연의 주체성 개념이 인간 주체의 좁은 범위를 벗어나 자연 전체의 근저에 놓이는 ‘근원적 주체성’일 뿐만 아니라 자연 전체로 확장되는 ‘포괄적 주체성’임을 설명하고, 또 이를 통해 모든 존재의 평등이 실현됨으로 인해 생태위기를 극복할 지평이 열림을 제시한다.

7장은 블로흐의 기술철학에 해당하는 부분으로서, 여기서 그가 실천적 관점에서 인간 주체와 자연 주체를 매개하는 제휴기술을 통해 인간과 자연을 소외시키는 시민주의(자본주의) 기술을 극복하고 양자를 평화롭게 화합할 수 있는 ‘기술 유토피아’를 제시하고 있음을 서술한다.

8장은 이 책의 결론 부분으로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산업체제 및 국가주의적 패러다임을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 사회를 모색하는데, 여기서 생태아나키즘이 강조하는 ‘지역성에 근거한 자율적 생태공동체’가 우리가 지향하는 생태유토피아임을 제시한다.

 

  출처: 역락출판사 홈페이지


  저자 조영준

경북대학교 철학과 강의교수

경북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대학교에서 철학, 사회학, 중국학을 공부하였으며, 카셀대학교에서 셸링 자연철학으로 박사학위(2006)를 받았다. 저서로는 Natur als Subjekt. Schellings Naturphilosophie und ihre okologische Bedeutung (Saarbrucken, 2008), 『생태와 대안의 로컬리티』(공저, 2017: 환경부 우수환경도서)가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 「생태위기의 대안으로서 셸링 자연철학」, 「셸링 유기체론의 생태학적 함의」, 「인간과 자연의 통일, 그리고 생태학적 상상력」, 「블로흐의 유토피아론에 대한 자연철학적 고찰」, 「성장지상주의와 탈성장사회」 등이 있다. 제18회 대한철학회 학술상을 받았으며, 현재 생태·환경문제를 사회철학의 관점에서 천착하며 국가와 자본을 극복할 수 있는 생태유토피아를 모색하는 『지속 가능한 생태유토피아』(한국연구재단 저술출판지원사업)를 연구과제로 수행하고 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22년 봄 제62회 정기 학술대회 알림

회원 여러분께

안녕하십니까. 곧 거행될 한철연 2022년 봄 제62회 정기 정기 학술대회에 대해 알립니다.

이번 학술대회는 2022년 6월 11일 토요일 오후 1시에 이화여대 포스코관 161호에서

《코로나19 시대와 그 이후》라는 주제와 더불어 《이규성 선생님 추모학술제》를 같이 진행할 예정입니다.

온라인(Zoom)으로도 동시진행할 예정하오니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22년 봄 제62회 정기 학술대회

주제: 코로나19 시대와 그 이후 및 이규성 선생님 추모학술제

장소: 이화여대 포스코관 161호 (온라인 동시진행)

시간: 2022년 6월 11일 (토) 오후 1시

Zoom  ID: 812 1485 2828 / 암호: 1234

 


 

[회원동정] 제30회 열암철학상에 (고)이규성 선생님의 저서 선정, 수상(2022년 3월 26일)

조금 늦게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지난 2022년 3월 26일(토) 18시에 건국대학교 새천년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2022 한국철학회 정기학술대회(온오프라인 병행) 자리에서 한철연 회원으로 오랫동안 활동하셨던 (고)이규성 선생님(이화여대 철학과)의 저서 두 권이 제30회 열암철학상에 선정되어 수상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수상작은 아래와 같습니다.

ㅇ 제30회 열암철학상 수상작

  • 『중국현대철학사론: 획득과 상실의 역사』(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2020.6.30.)
  • 『한국현대철학사론: 세계상실과 자유의 이념』(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12.11.5.)
  • 저자: 이규성(전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교수)

작고하신지 1주기가 되어가는 시기에 열암학술상 수상이 한 시대를 관통한 동양철학자로서 고인의 학술을 평가하는 본격적인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앞으로 한철연 회원들을 비롯하여 많은 연구자들의 후속 연구와 평가가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사)한국철학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http://hanchul.org/34/11013507

 

[강좌안내] 한철연 회원 출연 강의 시청 안내 [근현대 한국의 풍경 – 한국의 생명사상을 찾아서]

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학연구소 인문한국플러스(HK+)사업단에서 진행하는
지역인문학센터 온라인 강의 [근현대 한국의 풍경 – 한국의 생명사상을 찾아서]에
한철연 회원(이종철, 조배준, 최종덕) 선생님들이 출연하여 강의를 진행합니다.

한국현대철학의 중요한 인물 유영모, 함석헌, 장일순에 대해 알기 쉽고 친절한 내용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주제에 관심있는 회원 및 여러분들께 한번 시청하시길 권합니다.

아래 링크로 들어가시면 강의를 볼 수 있습니다.
https://cmks.yonsei.ac.kr/system/xbd/board.php?bo_table=onlinelecture&sca=3

 

경로는 아래 캡쳐화면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제8회 소송학술상] 「슈티르너의 ‘변신'(Metamorphose) 비판의 의미」 – 박종성 회원 / ‘『시대와 철학』 제31권 3호’ 수록 논문

안녕하세요, 웹진 〈(e)시대와 철학〉편집주간입니다.

 

지난 2021년 12월 4일 낮에 (사)한국철학사상연구회[한철연] 2021년 가을 제61회 정기 학술대회가 줌(zoom) 온라인으로 열렸습니다.

이날 발표와 논평 이후 제8회 소송학술상 시상이 있었습니다.

소송학술상은 소송 송상용 선생님(한림대 명예교수)의 뜻을 이어 한철연 소장 학자들의 학술을 평가하고 고양하기 위해 한철연에서 간행하는 학술지 『시대와 철학』에 최근 2년 동안 수록된 논문 중 우수 논문 한 편을 선정하여 한철연 회원에게 2년에 한 번 수여하는 학술상입니다.

제8회 소송학술상은 박종성 회원이 수상하였습니다.

수상 논문은 

‘「슈티르너의 ‘변신'(Metamorphose) 비판의 의미」 – 박종성 회원 / ‘(『시대와 철학』 제31권 3호’ 수록 논문)입니다.

 

시상은 한철연 김교빈 이사장이 했고, 연효숙 회장이 축사를 전했습니다.

 

박종성 회원 소감

“예 반갑습니다. 일단 너무 감사하구요(웃음), 모르겠습니다. 더 좋은 논문 쓰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더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참고로 상패와 함께 박종성 회원에게 전달한 꽃다발은 연효숙 회장이 발품을 팔아서 직접 구한, 오래오래 잘 시들지 않는 꽃이라고 합니다.^^

축하드립니다.

한국에서 막스 슈티르너(Max Stirner, 1806~1856) 연구를 개척하는 선생님의 행보에 회원 모두 관심과 격려의 박수를 드립니다~

 

 

 


슈티르너 연구자인 박종성은 “슈티르너의 ‘유일자'(der Einzige) 개념에 대한 비판적 고찰”(2014)이라는 제목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지금은 슈티르너의 『유일자와 그의 소유(Der Einzige und sein Eigentum)』(1845) 번역에 힘쓰고 있다.

[신간 안내] 『단기 20세기-중국 혁명과 정치의 논리』(왕후이 지음, 송인재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7월 12일 발간)

진관타오(金觀濤), 왕단(王丹), 쉬지린(许纪霖), 자오팅양(赵汀阳) 등 중국 현대 사상가들의 책을 활발히 번역해왔고 한철연 한국현대철학분과에서 활동 중인 송인재 회원이 얼마 전 왕후이(汪暉)의 책 『단기 20세기』를 옮겨 썼습니다. ‘중국 혁명과 정치의 논리’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아시아는 세계다』(2011), 『절망에 반항하라(왕후이의 루쉰 읽기)』(2014) 이후 송인재 회원의 세 번째 왕후이 저서 번역서가 되겠네요. 역자는 중국 ‘신좌파’의 이론적 리더 왕후이의 사상을 10가지 키워드로 잘 알 수 있게 정리한 『왕후이』(2018)를 집필하기도 했는데, 이번에 번역한 왕후이의 책은 중국의 20세기를 근원적으로 재사유한 그의 사상적 역작으로 그 내용이 기대됩니다. 이 책의 출간 이후 역자의 중국, 또는 동아시아 현대 사상에 대한 논의가 어떻게 전개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역자의 후기(옮긴이 말) 중 일부를 통해 이 책을 미리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후기를 보내주신 역자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역자 후기

 

    이 책은 왕후이가 2000년부터 2018년까지 ‘20세기 중국’을 주제로 집필한 논문, 강연 및 발표원고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대다수는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쓴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2010년 『아시아는 세계다』(원제 亞洲視野)에서 ‘트랜스시스템사회’ 개념을 제안한 이후 형성된 왕후이의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000년(6장)과 2004년(5장)에 발표한 원고도 수록되었음은 왕후이의 문제의식이 오랜 기간 이어져왔음을 보여준다. 한국어판에는 저자의 요청으로 홍콩 옥스퍼드판이 출판된 이후 2017년과 2018년에 집필한 원고를 서문과 1장으로 삽입해서 책 전체를 아우르는 문제의식을 선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취지는 제목인 ‘단기 20세기: 중국 혁명과 정치의 논리’에 압축되어 있다. 일단 논의 대상이 되는 시기는 20세기다. 여기에 단기를 붙임으로써 사전적 의미에 따라 기계적으로 100년을 단위로 이루어지는 ‘세기’의 시대 구분을 거부한다. 단기로 규정한 중국의 20세기는 1911년 무렵부터 1976년까지다. 이 두 해에는 각각 신해혁명이 발발했고 문화대혁명이 끝났다. ‘혁명’은 이 시기의 시세를 규정하는 개념이다. ‘정치’는 단기 세기를 혁명의 시대로 만드는 역사적 행위다. 더 나아가 ‘정치’는 저자가 단기로 규정한 20세기 중국을 조망하는 작업에 의미와 생명력을 부여할 규범적 행위로도 자리 잡는다. 중국은 혁명의 시세가 발생한 장소이면서 국경 내에만 한정된 장소가 아니라 세계체제의 지정학이 전개되는 장소이자 20세기의 시세와 행위를 사유하는 장소다. 따라서 이 책은 시간과 장소를 미리 설정하고 해당 시기의 사전을 서술한 편년사가 아니다. 세기, 중국, 혁명, 정치의 의미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서 성찰하고 재정의하며 새로운 논리를 제시하는 사상서다. 대표적으로 저자는 세기 자체가 20세기 중국에도 이물이고 그 자체가 그 이전 시대부터 적용된 개념이 아니라 20세기의 발명품이라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세기는 정확히 그 의미가 20세기만 적용된다. 이러한 세기/20세기는 그 자신을 이전 시대와 구분하고 새로움으로 스스로를 정의한 한 ‘근대’와 성격이 같다.

    제목에는 없지만 저자의 문제의식을 대변하는 핵심 개념은 ‘문화’다. 책에서 저자는 문화와 정치의 연관을 수차례 강조한다. 여기서 ‘문화’는 20세기 중국의 정치 행위의 성격을 규정하는 속성이자 정치적 실천의 목표이고 앞으로 정치의 생동감을 유지·강화하는 동력이다. 역사적으로 단기 20세기의 초반과 후반에 ‘신문화운동’과 ‘문화대혁명’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기표만 같을 뿐이다. 둘에서의 문화는 성격도 다르고 저자의 취지도 여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 대신 20세기 중국에서 문화는 20세기의 새로운 중국을 만들려는 행위 전체를 대변한다. 따라서 문화는 20세기 중국 혁명의 논리가 혁명을 구성하는 좁은 의미의 정치, 국가, 정부, 계급의 권력 행위를 뛰어넘는다. 왕후이는 그러한 사유의 근거와 자원을 1910년대 문화논전과 1960년대의 대중노선 등에서 광범위하게 찾는다. 이렇게 문화가 개입한 정치에서는 청년 문제, 여성 해방, 노동과 노동자, 언어와 문자, 도시와 농촌 등의 문제가 ‘문화’의 범주로 들어와서 정치를 창조의 영역으로 만드는 정치화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정치화를 이루고 발전시키는 현실의 동력은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실천의 경험이 남긴 대중노선과 대중운동이다. 왕후이는 2012년에 『문화종횡』의 ‘문화 자각’ 특집에 발표한 글에서 문화적 자각을 ‘현재의 발전모델과 이데올로기에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세계의 서막을 여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문화 자각의 대상은 현재 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주의적 발전모델, 신자유주의다. 따라서 왕후이는 일관되게 ‘문화’를 현실에 개입하고 현실을 변화시키는 동력으로 사유한다. 이런 논리에서 ‘문화’는 정치, 경제로의 종속에서 해방되고 오히려 이들 영역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소하고 긍정적 진로를 구축하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문화를 정치에 활력을 불어넣는 영역으로 사유하는 동안 기존 관념에서 정치의 주된 행위와 계기, 행위자로 여겨진 요소들은 비판받는다. 그것은 바로 정당, 국가 그리고 본질주의적으로 경직된 계급이다. 이들 기존의 정치적 요소가 범한 잘못을 왕후이는 탈정치화라고 지목한다. 탈정치화란 “정치활동을 구성하는 전제와 토대인 주체의 자유와 능동성에 대한 부정”이고 “특정한 역사적 조건 아래서 정치 주체의 가치, 조직구조, 지도권의 해체, 특정한 정치를 구성하는 대결 관계를 전면적으로 없애거나 이 대결 관계를 비정치적인 허구적 관계 속에 놓는 현상”이다. 탈정치화도 정치 형식의 일종이지만 문화와 상호작용하며 활력을 띠는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20세기 중국에서 탈정치화의 사례는 광범위하게 지적된다. 문화대혁명에서 파벌투쟁으로 변질된 대중운동, 개인숭배, 문혁 종결 이후 중국의 1960년대에 대한 부정과 외면, 개혁개방기 중국 사회 구조의 줄기를 이룬 현대화, 시장화, 세계화, 발전, 성장, 소강小康, 민주 등 개념들, 혁명과의 고별, 신자유주의 국면에서 노동자·농민계급 주체의 소멸, 국가와 그 주권 형태의 전변, 정당정치의 쇠락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흔히 정치행위의 핵심으로 간주되는 파벌투쟁과 이것에 잠식된 문화대혁명을 탈정치화의 사례로 지목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정치에 대한 왕후이의 독특한 해석에서 비롯한다.

  앞서 말했듯 탈정치화를 초래한 주범은 기존 정치 영역의 핵심 요소들이다. 그중에서 왕후이는 정당과 국가를 지목한다. 그 이유는 정당운동이 사회적 관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국가, 정부와 거의 동일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회 형식과 정치 형식의 탈구는 ‘대표성의 균열’로 개념화한다. 이는 선거를 기반으로 한 서구의 정당과 노동자 정치를 표방한 중국 모두에 해당한다. 대표성 구현 대신 국가 권력 획득에만 관심을 두고 국가와 정부의 메커니즘이 정당정치를 점차 잠식하는 현상을 ‘정당의 국가화’라 정의한다. 그리고 중국의 정치적 특징으로 지목되는 ‘당-국 체제’가 실질적으로는 ‘국-당 체제’라고 비판한다. 이를 극복하는 방안으로는 재정치화와 포스트 정당정치를 제안한다. 재정치화는 문화와 정치가 결합하면서 그 싹을 틔우고 정치 공간과 정치 생활을 활성화함으로써 구현된다. 그 과정에서는 현대 자본주의 내부의 모순과 불균형에 관한 재분석이 필연적으로 동반된다. 이처럼 재정치화 논의는 정치 개념과 중국 현대사에 대한 재해석을 수반한다.

    왕후이는 평등 개념을 재정치화 논의의 논제로 추가한다. 여기서는 기존의 평등 개념을 기회, 분배, 기본능력의 평등으로 구분하고, 이 개념들이 모두 자본 논리의 ‘물화’ 경향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뒤이어 평등 개념을 재구성할 수 있는 사상 자원으로 장타이옌의 ‘제물평등’을 제안한다. 제물평등은 불교 유식학과 장자 제물론을 활용해서 형성된 평등관이다. 제물평등의 핵심 가치는 사물의 기계적 균일화를 지양하고 차이를 기계적으로 없애는 것이 아닌 사물 각자의 차이 그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사물의 독특성과 독립성을 전제로 하고 이를 그대로 보전할 것을 지향한다. 또한 제물평등의 범위는 인류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 대신 인간을 자연사의 내부에서 관찰해서 인간과 사물의 일방적 통제 관계를 해소한다. 이러한 제물평등을 실현한 현실적 계기로는 인류와 사물의 동등한 관계를 지향하고 발전주의에 대항하는 생태주의, 차이평등을 실현하는 민족·지역 자치가 거론된다. 제물평등의 차이평등을 실현할 사회체제로는 왕후이가 예전에 제안한 트랜스시스템사회가 제시된다. (본문 969~974쪽)

 

    왕후이는 위와 같이 20세기를 사상 대상으로 삼아 혁명시대의 역사적·사상적 유산을 점검하고 능동성과 주체성을 갖춘 정치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지향을 드러낸다. 정치성의 복원을 위한 사상적 상상력은 19세기에 서구에서 들여온 서구사상을 참조하면서도 그 범위를 뛰어넘은 근현대 사상의 유산에서 가져온다. 이는 1980년대부터 왕후이가 그 사유의 싹을 틔운 근대에 맞서는 근대의 이념과 연관된다. 신자유주의 체제 비판은 1990년대부터 이어진 정치적 문제의식의 연장이다. 현대 중국의 역사적 기억 위에서 제국주의, 냉전, 신자유주의 세계체제를 성찰하는 작업은 아시아 역사를 통해 세계 역사의 문제를 포착하고 그 역사상을 재구성하고 21세기 신제국 질서와 논리를 극복하고자 한 『아시아는 세계다』의 문제의식을 잇는다. 이 책에서는 세계사 속에서 중국 역사가 갖는 독특한 성격과 의미를 좀더 부각시킨다. 20세기 중국의 정치와 혁명의 경험은 신자유주의, 서구의 19세기식 사상과 체제를 초월하는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사유를 거쳐 왕후이는 중국의 단기 20세기가 홉스봄의 단기 20세기와 다르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홉스봄의 단기 20세기는 양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치며 일련의 실패로 구축된다. 반면 중국의 단기 20세기는 자신의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기 위해 분투한 시기로 능동적 정치성의 유산을 남긴 시기다. 굳이 유럽과 비교하자면 19세기에 비견되는 ‘독립되어 있고 명명하기 어려운 시대’다. 이런 맥락에서 왕후이는 “20세기의 문화적·정치적 유산을 다시 거론하는 것은 단순히 이미 철 지난 실천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품은 보편성이나 미래의 잠재력을 발굴하는 것”이라며 자신의 사상작업의 의미를 밝힌다. (본문 975~976쪽)

 

 

    한중수교 이후 중국에 대한 한국인의 부정적 정서는 현재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최근 몇몇 기관에서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는 반중정서가 막연한 비호감을 넘어서 극단적인 혐중으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냉전의 잔재를 악용한 정파적 선전, 황사·미세먼지, 불법조업, 한한령, 혐한, 코로나19, 역사·문화 분쟁(일명 동북·김치·한복 공정) 등 일상적인 경험들의 축적이 비호감 정서를 키웠다. 그리고 이런 정보들을 의도적으로 과장되고 편향된 논조로 유통한 SNS와 정파적 행위가 크게 한몫했다.

그런데 일그러진 중국 인식은 일상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학술적 논의의 장소에서도 유통되는 중국 인식도 현실의 중국과 동떨어진 경우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민족주의적 논조를 차치하고라도 중국에 관련된 토론에서는 연구 주제가 무엇이든 간에 공통적으로 중화주의, 국가주의, 전체주의 등의 혐의를 담은 질의들이 곧잘 등장한다. 그런데 이런 질의에서 언급되는 중국은 현실의 중국이 아니다. 이 질의들에서 말하는 중국은 냉전시대의 중공, 조공체제 시대의 중국, 사회주의 시기와 개혁개방 초기의 빈곤한 중국, 그리고 멀게는 공자와 주희의 중국이다. 이때의 중국은 공산당, 독재, 황제, 노예 상태의 백성이 버무려진 관념들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 방향에서는 이른바 ‘성현의 말씀’이 신성화되고 그 ‘말씀’의 고향에서 분리되어 수시로 잡다한 유행들과 무매개적 접속을 시도한다. 문제는 이런 질의들이 제기되면 토론을 통해 빈약한 토대가 해소되고 인식이 수정되기보다는 ‘답정너’ 식으로 제기되어 기존의 편견을 확인하고 굳히는 방향으로 논의가 흘러가는 데 있다. 이런 식의 논의는 현실과 동떨어진 자기 확신과 만족, 위안만 확인할 뿐이다. 물론 현재 우리는 많은 중국 전문기관과 연구자의 노력을 활용하거나 네트워크 인프라를 활용하면 거의 실시간으로 중국의 동향, 중국 내 인사의 견해를 접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인문학과 일상, 정파적 정략의 영역에는 여전히 현실의 중국과 관념 속의 중국의 괴리가 상존하고 재생산되고 있다. (본문 977~978쪽)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기념하고 건국 100주년 중국몽 실현을 향해 내달리고 있는 지금 사상계가 어떤 목소리를 내고 어떤 역할을 할지는 계속 주목할 사안이다. 사실 중국 정부에서 내세우는 100이라는 숫자는 현실의 발전단계와 실질적 연관이 있지는 않다. 사전적으로는 100이라는 숫자는 세기와 더 연관이 깊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세기를 장기 혹은 단기로 부르며 세기와 100의 연관을 실질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따라서 숫자에 불과한 몇 주년을 내세워 흐름을 주도하려 할수록 기념의 껍데기를 벗겨버리고 역사적 흐름의 내막에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의 시대를 20세기 이후의 새로운 시대로 규정할지 20세기를 단기로 끝내지 않고 그 속성을 이어갈지는 아직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그것은 현재의 사유와 실천이 결정할 것이다. 이런 시대의 역사성을 인지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역사에 대한 냉정한 성찰과 현재의 시공간에 대한 심층적 통찰, 그리고 서로 다른 장소에서 차이와 공통점을 공유하는 이들과의 생산적이고 개방적인 소통이다. 향후 각국 지식인의 힘 있고 생생한 목소리를 매개로 이러한 사유와 대화가 지속되기를 고대하며 이번 번역 작업을 갈무리한다. (본문 980~981쪽)

 

2021년 6월

송인재


 

한겨례 신문 서평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005808.html

[신간 안내] 『역사와 자유의식: 헤겔과 맑스의 자유의 변증법』(안드레아스 아른트 지음, 한상원 옮김 | 에디투스 | 2021년 6월 30일 발간)

『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 : 아우구스티누스, 맑스, 벤야민. 역사철학과 세속화에 관한 성찰』(2018)과 번역서 『아도르노, 사유의 모티브들』(2020), 그리고 『현대 정치철학의 네 가지 흐름』(2019) 등 여러 공저를 펴내면서 활발한 학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한철연 한상원 회원의 신간 번역서를 소개합니다. 이 책은 한상원 회원의 박사 학위 논문 어드바이저로, 독일 68혁명 세대의 대표적 지성이며 헤겔 연구의 권위자인 안드레아스 아른트(Andreas Arndt) 교수의 책을 번역한 것입니다. ‘자유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헤겔과 맑스의 사상을 전면 재구성하는 작업을 담은 이 책은 헤겔-맑스주의 연구의 새로운 지평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역자의 노력으로 한국 지성계에 이 책이 소개되어 매우 반가운 마음입니다. 아래 옮긴이의 말로 책 소개를 대신합니다.


 

옮긴이의 말

 

이 책은 안드레아스 아른트의 책 Geschichte und Freiheitsbewusstsein. Zur Dialektik der Freiheit bei Hegel und Marx (2015)을 우리 말로 번역한 것이다. 서문에도 나와 있듯이, 『역사와 자유의식』이라는 이 책의 제목은 루카치의 기념비적인 저작 『역사와 계급의식』을 염두에 두고 지은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루카치는 그의 책에서 정통 맑스주의의 기초를 맑스의 변증법적 ‘방법’에서 찾으며, 이를 통해 헤겔과 맑스의 변증법을 결합하는 ‘헤겔 맑스주의’의 노선을 정립하였다. 이러한 루카치의 헤겔 맑스주의는 이후 서구 맑스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1950년대 이래로 ‘인간주의적’ 맑스 해석이 등장하는데 결정적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루카치의 헤겔 수용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것은 의식의 변증법이었다. 즉 루카치의 물음은 프롤레타리아 의식이 어떻게 부르주아적 주객 이분법과 사물화를 뚫고 변증법적으로 새로운 총체성에 도달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루카치의 헤겔 맑스주의는 이후 알튀세르 학파에 의해 강력한 도전을 받기도 했다. 알튀세르는 루카치와 인간주의 경향의 맑스 해석을 비판하면서 탈주체, 구조, 이데올로기, 무의식, 인식론적 절단과 같은 범주들을 도입하였으며, 특히 헤겔 변증법의 표현적 총체성과는 다른 맑스의 독자적 변증법을 강조했다. 그 이래로 이 두 학파 사이의 논쟁이 헤겔과 맑스의 관계를 둘러싸고 수십 년간 지속되었다.

이 책의 저자 안드레아스 아른트 역시 헤겔 맑스주의자다. 그러나 그의 헤겔 맑스주의는 루카치의 그것과 상이한 관점을 취하고 있다. 루카치 이래 전통적으로 헤겔 맑스주의는 변증법적 방법을 툴러싸고 헤겔과 맑스를 비교하는 관점을 지니고 있었지만, 아른트는 헤겔과 맑스를 결합하는 심급을 이동시킨다. 그에 따르면, 헤겔과 맑스는 ‘개인적 자유’의 실현이라는 관점 속에 새롭게 결합될 수 있다. 그리고 개인적 자유를 보장할 법/권리의 차원에서 대안적 포스트 자본주의 사회가 논의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맑스의 『자본론』과 비교해야 할 헤겔의 저작은 변증법적 방법을 다루는 『논리학』이 아니라, 자유의 현존재로서 법과 국가 공동체에서의 인륜성을 다룬 『법철학』이 될 것이다.

저자 아른트의 이러한 독특한 헤겔 맑스주의 사유는 새로운 논쟁의 지평을 열 수 있을 것이다. 맑스 텍스트에서 청년기 저작과 성숙기 저작의 관계, 헤겔과의 관계를 둘러싼 루카치 학파와 알튀세르 학파의 대립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연구해왔는데, 반면 이를 넘어 ‘자유’의 관점에서 어떻게 헤겔과 맑스가 비교 연구대상이 되는가에 관해서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이 책은 기존의 관점을 넘어선 새로운 시각의 헤겔 맑스주의의 가능성을 논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헤겔과 맑스 모두가 역사적으로 받아왔던 비난, 즉 개인이 아닌 전체의 관점에서 사고하며 이로 인해 전체주의나 관료독재를 정당화했다는 시선에서 벗어나, 개인적 자유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두 사상가를 결합시키려는 과감한 시도를 감행하고 있다.

저자 안드레아스 아른트는 베를린 자유대학교 철학과 초빙교수를 거쳐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신학부의 철학 담당 교수를 역임했으며, 나의 박사학위 지도교수이기도 했다. 나는 아도르노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아른트 교수의 도움으로 헤겔과 맑스의 변증법에 관한 심도깊은 논의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부족한 나의 논문을 성심껏 지도해주신 안드레아스 아른트 교수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이 부족한 번역에도 불구하고 독자들 사이에서 다양한 논쟁들을 촉발하길 기대해본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출판해주신 에디투스 출판사의 연주희 대표님께도 감사 인사를 드린다.

 

사진출처: 알라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22733124&start=pnaver_02

한겨례 신문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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