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공산주의의 현실성』

『공산주의의 현실성』

 

김상범 (포항공대 대학생)

 

오늘날 ‘공산주의’와 ‘현실성’이라는 단어처럼 붙여쓰기에 어색한 단어들이 있을까?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공산주의라는 유령’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에는 공산주의가 ‘현실적 위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공산주의라는 유령’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 데리다의 말대로 ‘유령’은 단순한 ‘순수 정신’이 아니라 육체성이나 현실적인 위력을 어느 정도 가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 유령은 현실성과 절연된 채 ‘순수 이념’이 되어버린 듯하다. 특히 바디우는 공산주의가 플라톤적인 의미에서의 ‘이념’, ‘이데아’일 뿐만 아니라 칸트적 의미에서의 ‘규제적 이념’이라고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런 작업을 통해 공산주의는 살과 살이 부딪히는 시공간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초역사적인 보편성을 획득했지만, ‘현실’ 속에서는 완전히 무력한 것처럼 보인다.

<브루노 보스틸스>

브루노 보스틸스는 바디우 등이 내세우는 공산주의에 대한 ‘잠재성의 존재론’을 넘어서 ‘현실성의 존재론’을 구축하기 위해 이 책을 쓰기로 기획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이 ‘공산주의의 현실성’인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이것은 교조화된, 그리고 전투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로 그대로 복귀하는 것도 아니고, ‘사유는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유치한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으로 되돌아가는 것도 아니다.(보스틸스가 여기서 이야기하는 현실성은 reality가 아니라 actuality이다.)

보스틸스가 기존의 ‘정치적 존재론’을 검토할 때, 사실상 레닌주의적 정치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적 ‘실천’의 정치학에 대한 반박으로서의 비전투적이고 탈주체적인 존재론을 제시하고 있는 에스뽀지토와 모레이라스의 사유를 먼저 검토하는 것은 이러한 복귀가 낳을 치명적인 결과를 피하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에스뽀지토는 ‘비정치적인 것의 존재론’을 제시하는데, 이러한 ‘비정치적인 것’은 단순히 정치적인 것의 초월적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구 정치 전체의 배후에 깔린 전제들 자체를 근본적[급진적]으로 만듦으로써, 즉 이 전제들을 내부로부터 동시에 치명적으로 붕괴시키는 일의 초과 성취를 통해서”(『공산주의의 현실성』, 163쪽)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비정치적인 것’은 정치가 펼쳐진 영역을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며, 이러한 공간을 제공한다는 것은 전투적이고 주체중심적인 맹목적 실천으로부터 거리를 취하게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모레이라스는 ‘하부정치’라는 개념을 통해서 주체주의의 “돌림병”을 치유하고자 한다. 하부정치라는 것은 적/아군의 구분을 넘어서, 유위적이고 주체적이며 주권적인 결단을 넘어서 존재하는 ‘비주체의’, ‘수동적인’, ‘무위적인’ 것으로서 정치적인 것 혹은 정치적 주체의 ‘구성적 외부’라고 볼 수 있다. 모레이라스는 이 ‘하부정치’ 개념을 통해 “자기정체성에 내재하는 배제된 타자의 위상학”(『공산주의의 현실성』, 176쪽)에 도달하게 된다.

보스틸스는 이러한 에스뽀지토와 모레이라스의 이론을 통해 주체중심적이고 전투적인, 그래서 위험성을 간직한 순수한 해방의 존재론을 극복할 가능성을 발견하지만 동시에 이들의 이론이 “통상적인 정치 전부를 능가하는 도덕적인 탁월함의 증거로서 비정치적인 것의 비효율성에 의지하는 아름다운 영혼이 취하게 되는 태도”(『공산주의의 현실성』, 195쪽)를 보여준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통렬한 비판과 함께 보스틸스는 랑시에르를 검토하기 시작한다. 랑시에르는 잘 알려진 대로 감각적인 것을 분할하는 질서이자 셈의 ‘정상적이고 자연적인’ 논리로서 ‘치안’과 이러한 ‘치안’에 대항하여 “셈의 논리”로부터 벗어난, 평등을 주장하는 ‘정치’를 구분하는데, 보스틸스는 이러한 “감각적인 것을 [명령적] 질서대로 분할 및 구획하는 것으로서 치안과 몫이 없는 부분집단을 기입하는 것으로서 정치 사이의 대립은, 사변적 좌익주의의 특성이라 할 법한 모순의 ‘순수화’에 위험할 정도로 가까운 것”(『공산주의의 현실성』, 229쪽)이라고 비판한다. 뿐만 아니라 치안과 정치가 이와 같은 것이라면, 정치는 단지 ‘간헐적으로’ 또는 ‘희귀성을 가지고’ 출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고 보스틸스는 지적한다.

또한 보스틸스는 랑시에르의 때와 장소에 맞지 않는 것으로서의 공산주의, 즉 비시대적인 것이자 비장소적인 것으로서의 공산주의가 공산주의의 ‘비현실성’을 옹호하는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의 비현실성에 대한 이런 옹호는, 비 현실성 자체의 지반이 우리 자신의 현실성과 해방적 관련을 맺는 때는 언제이며 어디에서 관련을 맺게 되는가를 결정해야만 하는, 그 다음 수준으로 문제를 넘기게 되는 것은 아닌가?”(『공산주의의 현실성』, 250쪽)

그래서 보스틸스는 이렇게 랑시에르의 한계를 지적하며, ‘실행’에 대한 사유를 활발히 전개하고 있는 지젝에 대한 검토로 넘어가게 된다. 지젝은 『믿음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라캉과 헤겔을 참조하면서 그의 ‘진정한 실행’ 개념을 “신경증에서의 [증상으로 구현되는] 행동화, 정신병에서의 [발작적인] 실행으로서의 이행, 그리고 순수하게 형식적인 자기주장에서의 상징적 실행”(『공산주의의 현실성』, 272쪽)과 구분짓는데, 이러한 실행은 “행위자가 속한 상황의 그야말로 상징적인 좌표를 재구축하는”(『공산주의의 현실성』, 272쪽) 행위로 정의된다.

그러나 이후의 저작에서 지젝은 바틀비를 옹호하며 ‘가짜 실행’을 하지 않는 것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해석이나 사유에 머물지 않도록 명령하고 맹목적인 실천을 명령하는, 도서관에서 나와서 거리로 나갈 것을 명령하는 협박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다. 지젝은 ‘멈춰라, 그리고 사유하라’고 말한다.

심지어 지젝은 진정한 ‘실행’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기도 한다.

“오늘날 진정한 정치적 실행일 수 있는 것은 새로운 운동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라기보다는, 현재의 지배적인 운동을 중단시키는 일이다.”(『공산주의의 현실성』, 321쪽)

이것은 보스틸스의 입맛에는 맞는지 모르지만, 나는 이것이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사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본주의를 일순간에 정지시킬 수도 없고, 이러한 초월적/신적 폭력에 의한 자본주의의 정지가 바람직한 정치적 결과를 낳는 것도 아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들뢰즈와 가타리, 네그리와 하트가 말한대로 우리는 자본주의를 뚫고 지나가야 하며, 자본주의 안에서 공산주의를 만들어내어야 한다. (심지어 가속주의자들의 주장대로 자본주의를 가속화시켜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바깥에 서 있을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역설적으로 가장 ‘현실적인 사유’가 아닌가?

그리고 이러한 ‘현실성’을 파악하고 현실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보스틸스의 생각과는 반대로 ‘잠재성’의 사유가 반드시 필요하다. ‘현실성’만 부여잡고 있는다고 해서 ‘현실적인 사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잠재성을 알아야 현실의 경향성을 파악할 수 있고, 또 존재론적으로도 현실의 진정한 변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잠재적인 것이 요청되는 것이다.

또한 공산주의를 하이데거-아감벤적 의미에서의 ‘순수 잠재성’으로 정의하거나, 바디우적/고진적 의미에서 ‘순수 이념/규제적 이념’으로 정의할 필요는 없고, 오히려 들뢰즈적 의미에서 언제나 현실화될 수 있는 잠재성, 현실화될 수 있는 ‘이념’으로 정의할 필요가 있다. 모든 사회에 언제나 내재하는 비시대적인/비장소적인 것으로서의 공산주의, 그러나 동시에 언제나 어디에서나 현실화될 수 있는 공산주의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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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서재 라이브’를 시작합니다[ⓔ시대와철학 알림]

“철학자의 서재 라이브”를 기획하며

 

 

4기 연구협력위원회 학술 1부에서 연락드립니다. 금번 2014년 2학기부터 월례발표회를 “철학자의 서재 라이브”라는 이름으로 운영해 보고자 합니다. 이제까지 월례발표회는 전문적인 논문 발표 형식을 취해 왔는데요, 그 덕분에 오랜 기간 동안 한철연 회원 간의 깊이 있는 학술 교류를 해 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한철연이 여타 전공 학회와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서 새로운 월례발표회 형식을 고려해 보면 어떨까 하는데 고민이 모아졌습니다. 한철연은 단일한 분야의 전공자들이 모인 여느 학회와 다르게 여러 분야의 전공자들이 함께 모여 있는 모임이다 보니, 전문적인 논문 발표 형식을 갖는 기존 월례발표회가 회원들 간의 학술 교류를 활발하게 하기에 제한이 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금번 2학기에는 독서토론 모임의 형식을 취하는 월례발표회를 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방식은 추후에 진행하면서 더 고민해 봐야겠지만 우선은 하나의 책을 정하고, 그에 대한 발제자를 정해서 독서 토론을 진행했으면 합니다. 모임의 이름은 “철학자의 서재 라이브”로 정해 보았습니다. 앞으로 회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좋은 아이디어를 내 주신 연구위 부장님들께 감사드립니다.

<8월 철학자의 서재 라이브>

발표자 : 조은평(건국대 외래교수)
철학자의 서재 : 랑시에르, 『무지한 스승』
일 시 : 2014년 8월 20일(수) 오후 3시 ~ 5시 30분
장 소 : 태복빌딩 302호 한철연 강의실

무지한스승

 

 

 

 

 
<무지한 스승>(자크 랑시에르 지음, 궁리 펴냄)

[프레시안]에 게재되었던 발표자의 서평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65218

8월 이후 일정
* 9월 19일(금) 김우철 선생님,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10월 24일(금) 진은영 선생님, 8월 진은영 신간 『문학의 아토포스』
*11월 21일(금) 강경표 선생님, 장하석의 『온도계의 철학』
*12월 한철연 정기 학술대회 관계로 월례발표회는 다음 달로 순연

● 2학기 “철학자의 서재 라이브” 시작 시간은 저녁 7시 30분입니다. 그리고 이후에 다루었으면 하는 책이나 주제가 있으시면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yhseo2001@hanmail.net

학술 1부 드림

 

한철연과 함께하는 철학 세미나 3기를 모집합니다. [ⓔ시대와철학 알림]

한철연과 함께하는 철학 세미나?3기를 모집합니다.?[ⓔ시대와철학 알림]

 

한철연과 함께하는 철학 세미나?3

 

?정치철학과 예술철학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이하 한철연)는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 진보적 철학자들이 자유롭게 공존하는 모임입니다.?철학을 기반으로 연구자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을 위한 철학 세미나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개설 강좌

 

독일어 원전 강독 연습

강사😕서유석?(호원대 교수)

강독 교재: Max Stirner, Der Einzige und sein Eigentum (유일자와 그의 소유)

기간: 5월?16일?~ 8월?22일?(12)?매주 금요일 저녁?7– 10?

*?독어 철학텍스트 강독(독일어 초보자도 환영,?문법 강의 함께 진행)

*?대학원생 이상 수강 가능

?

고전한문 강독 연습

강사😕구태환?(상지대 강사)

강독 교재😕맹자집주(孟子集註)

기간: 5월?22일?~ 8월?21일?(12)?매주 목요일 저녁?7– 10?

*?한문 텍스트 강독(초보자?위주로 진행)

*?학부?3~4학년 및 대학원생 수강 가능

 

분과연합 세미나(공통강좌)??정치철학과 예술철학

기간:??5월?17~8월?2일 매주 토요일?2~5

대상:?학부?3~4학년 및 대학원생 수강 가능

 

1.?정치철학

?맑스 분과

강사:?김종곤?(건국대?연구교수,?맑스분과 회원)

5월?17():?맑스의?<자본론>?상품장 읽기

5월?24():?알튀세르의??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읽기

 

?여성과 철학 분과

강사😕이현재(서울시립대?HK?교수,?여성과 철학분과 회원)

5월?31():?버틀러와 젠더의 해체적 재구성(주디스 버틀러, <젠더 트러블>)

6월?7일?():?깁슨그래함과 여성주의 정치경제학(깁슨그래함, <그따위 자본주의>)

 

?변증법과 해체론 분과

강사😕서영화(서울대,?변증법과 해체론 분과 회원),

? ? ? ??김성우(兀人?고전학당 연구소장,?변증법과 해체론 분과 회원)

6월?21():?지젝의?투쟁,?역사성,?의지그리고 무위자연Gelassenheit의 사중주

(Less Than Nothing?4부?13)

6월?28():?지젝의?스피노자,?칸트,?헤겔 그리고?바디우!”

(http://www.lacan.com/zizphilosophy1.htm)

 

2.?예술철학

?헤겔 분과

강사😕이정은(연세대 외래교수,?헤겔분과 회원)

이관형(경기개발연구원,?헤겔분과 회원)

7월?5() 😕헤겔미학 강의(1)

7월?19():?헤겔미학 강의(2)

 

?라캉 분과

강사😕이병창(동아대 명예교수,?라캉분과 회원)

7월?26():?라캉의 정신분석학(1)

8월?2일?():?라캉의 정신분석학(2)

 

* 6??14, 7월 둘째 주는 한철연 봄 학술대회와 전체 모꼬지 행사 관계로 휴강

대 상😕대학원 재학생 및 수료생,?학부?3~4학년,?한철연 신진회원

(철학을 토대로 연구자의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

*?독일어 강독의 경우,?철학과 대학원생

*?강좌 수료 이후에는 일정 절차를 통해 정회원으로 가입하여 각 분과에서 활동 할 수 있음.

*?분과연합세미나의 경우,?전 강좌에 참여해야 함.(부분 수강 불가)

수업 방식😕세미나(필요한 경우 강의 방식 병행)

신청 방식😕메일?(pipjc11@naver.com)로 자기소개서를 보내주세요.

(자기소개서 다운로드😕한철연 홈페이지(hanphil.or.kr)?→?공지사항)

수 강 료?😕없음?(과목당 최대 수강 인원?10,?최소 수강인원?2, 2명 미만 시 폐강)

문 의: 02-332-4301, pipjc11@naver.com

기 간: 2014년?5월 중순-7월 말(8월 말)

<ⓔ시대와철학>에 3년여에 걸쳐 연재한 [꽃보다 붉은 울음] 저자 김성리 인터뷰

<ⓔ시대와철학>에 3년여에 걸쳐 연재한 [꽃보다 붉은 울음] 저자 김성리 인터뷰

 

한센인 할머니의 시, 삶을 치유하다

마주 보고 이야기 나누면, 고통도 나의 것이다 『꽃보다 붉은 울음』 저자 김성리

 

『꽃보다 붉은 울음』은 한 한센인 할머니의 인생 이야기와 시를 기록한 글이다. 제목에서 할머니의 고통이 전이돼 오는 듯하다. 질병, 질병으로 인한 가난, 사랑하는 이들과의 생이별, 죄의식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는 한스러움 등으로 할머니의 생애를 몇 줄로 요약할 수 있겠지만, 할머니의 마음의 고통은 결코 요약될 수 없을 것이다.

한 한센인이 60년 동안 가슴에 묻어두었던 삶의 이야기를 시 11편에 담아 담담히 구술하는 동안, 그 이야기를 듣는 상대자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리고 그 이야기를 다시 글로 옮기면서 김성리 저자는 가슴 먹먹함과 눈물 아른거림을 어떻게 견뎠을까? 한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그것도 오랜 고통의 시간 속에 꽁꽁 묻혀 있었던 상처투성이 마음을 보듬어 안을 수 있는가?

 

“할머니의 자작시들, 그리고 저자가 적재적소에 인용하는 아름다운 시(詩)들은 한센병이라는 단단한 갑옷 뒤에 숨겨진 한 여인의 해맑은 영혼을 비춰주는 투명한 거울이 되어준다. 한하운과 김춘수를 비롯한 수많은 시인들이 노래한 ‘타인의 아픔’은 할머니의 말 못할 아픔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어주기도 하고, 할머니의 아픔과 우리의 아픔을 함께 어루만지는 따스한 엄마의 손길이 되어주기도 한다.”(정여울, 문학평론가)

 

저자의 담담한 글로도 담기지 못한 할머니의 정서와 필자의 마음을 더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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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동안 어떤 심정이었나요.

 

저를 만난 할머니는 당신의 삶을 조금씩 내려놓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생을 떠나기 전에 마음 한구석까지 비우려 했었던 것 같아요. 60년 동안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풀어내는 마음이 어땠을까요? 할머니는 이야기 도중이나 시를 읊을 때 머리가 아프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특히 밤에 혼자 누워 “지난날을 생각하며 시를 지으면 머리가 아프고 기운이 없어서 다음에는 안 한다 해야지” 하고 다짐하지만 또 생각하게 된다고 했죠. 할머니는 기를 소진하여 두통이 올 정도로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칡넝쿨처럼 헝클어진 자신의 생을 정리하여 반듯하게 뉘어 놓고 가시고자 했던 건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아팠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글을 쓰다가 여러 번 멈추고 멍하니 앉아서 할머니를 생각했습니다. 한 줄 써놓고 밖으로 나가서 그냥 걸어 다녔던 적도 여러 번입니다. 심지어 한 편의 글을 쓰는 데 한 달 가까이 걸린 적도 있습니다. 만약, 내가 할머니를 만나지 않았다면, 만났더라도 할머니가 자신의 삶을 드러내게 도와드리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아직 살아 계실지 모른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들과 마쓰시타(연인이자 아들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할머니가 그 모진 삶을 이어온 동앗줄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왜 진작 이것을 몰랐을까요? 할머니가 저에게 당신의 삶을 내려놓고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할머니를 만나는 내내 아팠던 것은, 할머니의 고통이 저에게 옮겨 와서였습니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는, 그런 차원의 아픔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몰랐다는 자책에서 오는 아픔이었죠. 그리고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죄의식에서 아마 제가 살아 있는 동안은 벗어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할머니는 저에게 눈물입니다.

 

이 책을 쓴 계기가 할머니의 말씀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할머니가 자신의 생애 이야기와 시를 남기시려고 한 것은, 어떤 이유였을까요?

 

할머니는 한센병이 발병하던 19세 무렵에 이미 연인 마쓰시타(당시 대학생)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습니다. 해방 후에 마쓰시타가 일본으로 귀국하자, 미혼모로 아이를 낳았죠. 젖먹이였던 아이를 도저히 혼자 키울 수 없어서 입양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때, 할머니는 한국이 아닌 일본으로 아이를 보낸 거죠. 아들이 장성하면 병든 어미는 말고 일본에서 친아버지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이 아들을 평생 동안 그리워했습니다. 당장이라도 할머니는 알아볼 수 있다고 했죠. 할머니는 아들에게 당신은 “너를 버리지 않았다. 잊지도 않았고, 너를 살리려고 입양 보냈다”, 이 말을 꼭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이유로, 저에게 당신의 일을 소설로 쓰고, 그 소설이 일본에서도 출판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또 만일 아들이나 마쓰시타가 책을 통해 당신을 찾아오게 되면, 병든 몸으로는 만날 수?없으니, 당신이 죽은 후에 출판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가난과 병환으로 오랫동안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없었던 사람이 시를 쓴다, 쉽지 않은 일일 텐데요. 할머니의 시는 어땠나요.

 

할머니는 자신이 이 세상에 살았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했습니다. 할머니는 자의식이 강하고 자존심도 대단한 분이었죠. 그래서 그분의 삶은 더 처절했습니다. 할머니는 사는 것도, 죽는 것도, 그 어느 것도 할머니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3번에 걸쳐 생을 마감하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은인들의 손길에 구조되었습니다. 할머니가 저를 만나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시를 쓴 것은, 발병 이후 당신의 의지로 행한 첫 사건이었습니다. 저와의 만남 자체, 그리고 저와 함께한 시간들은 할머니에게는 사건이었죠.

 

『꽃보다 붉은 울음』이라는 제목에는 할머니의 슬픔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할머니의 기억 속에서 가장 화려하고 예쁘게 남아 있는 10대는 꽃처럼 살고 싶어 하던 소녀였습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지만, 넉넉한 살림이어서 당시(일제 강점기) 부산고녀에 다녔었죠. 일본인 대학생이 1년 넘게 구애하며 쫓아다닐 정도로 고왔고 순수했습니다. 그 10대가 끝날 무렵부터, 할머니의 삶은 질병으로 인해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할머니의 감정인 슬픔, 고통, 비애, 분노, 절망, 회한 등을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했죠. 그런데 할머니는 시에서 당신의 삶을 “핏자죽이 어린 길”이라 했습니다. 핏자죽 어린 길을 걸어가면서 얼마나 많이 울었을까요? 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을 말할 때 “피를 토한다”라고 하지요. 할머니의 울음은, 피를 토하다 못해 붉게 물들었을 울음입니다. 그 울음은 60년의 시간을 지나서 시로 재현되었습니다. 할머니의 시에는 60년의 시간과 60년의 슬픔과 60년의 눈물이 담겨 있죠. 할머니의 시는 할머니의 삶입니다. 저에게 할머니의 삶과 시는 꽃보다 아름답고 꽃보다 더 붉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제목을 “핏자죽이 어린 길”로 하고 싶었는데, 제목이 너무 선명하여 『꽃보다 붉은 울음』으로 했습니다.

편집자는 저에게?『꽃보다 붉은 울음』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만, 그것은 미당 서정주의 시 「문둥이」에서 직접 표현된 것이라서 많이 망설였습니다만, 할머니의 삶을 그보다 더 잘 나타내는 것은 없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문디’라는 표현은 경상도 지역에서 흔히 하는 말이지만, 결코 (한센인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 중의 하나가 ‘문디’입니다. 그런 시에 나온 표현이기 때문에 할머니의 삶에 더 적합한 표현으로 고쳐서 제목으로 정하게 된 것 같습니다.

 

할머니는 자신의 생애를 말로써, 시로써 풀어놓고 가셨습니다. 그렇다면, 할머니는 과연 고통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안을 얻었을까요?

 

할머니가 처음에 구술한 시에서 당신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손톱만한 벌레만도 못한’ 사람으로 비하했습니다. 그렇지만 만남이 지속되는 동안, 온몸의 기를 소진하여 두통에 시달리면서도 시를 생각하고, 저에게 그 시를 들려주는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 시를 생각하는 그 과정 자체가 스스로 자기 삶의 매듭을 푸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두통에 시달리면서도 시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던 것입니다. 저에게 시를 읊어주고 그 시를 다시 저의 목소리로 들으면서 할머니는 과거를 정리하고,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부정했던 그 과거의 시간들을 서서히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할머니 이야기는 잠시 두고, 본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간호학과를 나와서 간호사로 일하다가 다시 문학을 전공했습니다.

아주 어릴 때 꿈이 두 개였습니다. 시인과 간호사. 중학생 때 스스로 꿈을 정리했습니다. 시를 쓰는 간호사가 되기로. 근데 간호사는 되었는데 시인은 되지 못했네요. 시를 공부하고 시의 치유력을 발견하면서 가장 먼저 한센인을 떠올린 건 아마도 간호사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을 거라고 봅니다.

종합병원에 근무할 때 정형외과 병동에 5년 정도 있었습니다. 그때 치료는 끝났으나 온전한 삶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을 많이 봤습니다. 더 큰 충격은 퇴원을 하신 분 가족의 초대로 그 분 댁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오랜 병상생활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아내와 어린 딸을 사랑했던 환자가 거의 폭군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병원의 아빠 병상 옆에서 돌을 지내고 간호사실을 들락거리며 귀여운 말썽을 일으키던 아이는 겁에 질려 아빠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아내는 죽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환자분은 내내 침대에 누워 스스로는 휠체어에 탈 수도 없고 대소변도 자유의지로 처리하지 못하는 자신을 향해 무서운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습니다.

그 가족과 휠체어에 의지해 퇴원하던 6살의 진아, 치료 후의 삶이 더 고통스러웠던 많은 환자분들은 저에게 지금도 고통으로 남아 있습니다. 제가 그 분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었을까요? 그럼에도 할머니를 찾아간 것은 그 분들과 달리 한센인들은 추방과 격리, 그리고 감시의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답이 좀 길어졌네요. 제가 알고 있는 의학적인 지식과 인문학적인 시선에서 볼 때 한센인들만큼 고통스러운 삶은 없을 겁니다.

 

독자가 이 책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이 책은 한센병을 앓았던 한 여인의 고백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온전한 삶을 살고 싶어 했던 한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여느 삶과 같이, 할머니의 삶을 존중하고 사랑해 주시기 바랍니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아이를 품에 안고 키우면서 살고자 합니다. 너무나도 단순하고 당연한 일이죠. 이 평범한 일상을 누리기는커녕, 평생 가슴에 묻어야 하는 비밀로 간직할 수밖에 없었던 한 여인의 삶입니다.

어머니로 살았지만 어머니로 살 수 없었고, 아내로 살았지만 여자일 수 없었던 분입니다. 배우처럼 자신의 삶을 낯설게 살다가 생애 마지막 나날에 비로소 자신의 진짜 목소리를 들려주었던 분입니다. 시 쓰기라는 도구를 통해서였지만, 그것은 단지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누구든 자신의 진짜 내면을 들려주고자 한다면, 자연히 소통의 언어는 따라올 것입니다. 할머니에게는 그것이 시였고, 삶이었습니다.

 

가장 딱딱한 질문이라 가장 끝에 물어보네요. 지금 연구 주제로 삼은 “치유 시학”에 대해서 말해 주세요.

 

아뇨, 딱딱한 질문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죠. 살아가면서 마주칠 수밖에 없는 삶의 문제를 시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치유 시학”입니다. 시를 읽거나 시를 쓰거나 또는 서로 시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자신의 문제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요. 고통의 기억은 아무리 많은 시간이 지나고 위로를 받아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또렷하게 살아나지요. 하지만 그 기억이 현재 나의 삶을 흔들지 않으면 그 고통은 치유되고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완전한 치유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고통의 기억을 안고 사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치유의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제가 시를 공부하니 시가 치유의 길을 인도하는 하나의 별이 되는 것이지요. 만약 춤을 잘 춘다면 춤으로, 노래를 잘 부르면 노래로 치유의 방법을 찾았을 겁니다. 숲길을 걷기만 해도 마음이 얼마나 편안해집니까. 시만 우리들의 삶을 치유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치유되지 않는 고통도 없습니다. 어떤 기억이, 어떤 경험이 계속 괴로움을 준다면, 그것들을 피하지 마세요. 모른 척하시지도 말구요. 마주 보고 이야기 나누면 고통도 나의 것이 됩니다. 하지만 맨 얼굴로 나의 고통을 들여다보는 건 쉽지 않으니까 그때 시를 읽어도 좋구요, 노래를 들어도 좋습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습니다.

 

이 글의 출처는 http://cafe.naver.com/gozone?임을 밝힙니다.

 

 

한철연4기 연구협력위원회 첫 회의를 잘 마쳤습니다[ⓔ시대와철학 알림]

한철연4기 연구협력위원회 첫 회의를 잘 마쳤습니다[ⓔ시대와철학 알림]

 

사진 : 윤지미(한철연 회원)

정리 : 강지은(편집주간)

 

한철연 제4기 연구협력위원회가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더욱 발전하는 한철연을 기대합니다.

 

 

 

 

 

 

 

 

 

 

 

 

 

 

 

 

 

세상의 붕괴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철학자의 서재3>출간 안내[ⓔ시대와철학 알림]

신간소개

세상의 붕괴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부제 <철학자의 서재 3: 일상에 지친 당신을 위한 책 천국>

 

 

 

우리 시대의 명저, 숨어 있는 책, 저주받은 걸작들을 통해 쏟아내는
철학자들의 쓴 소리 / 흰소리
책읽기, 글쓰기, 철학적 사유에 관한 통합적인 안내서

 

<철학자의 서재> 시리즈의 세 번째 권이 출간되었다. 5년 동안의 연재, 206명의 필자, 217편에 달하는 서평들이 세 권의 책에 오롯이 담겼다. “세상의 붕괴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3권에서 철학자들은 현실과 일상, 정치와 경제, 안과 밖에 대해 사유하고, 글쓰기와 책읽기와 사유하기에 관한 통합적 안내를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는 63편의 “철학자들의 쓴 소리/흰소리”가 담겨 있다. 모두 책을 소개하는 글들이다. 실용적 독자들로서는 이 책만 대충 읽어도 63권의 책을 읽은 효과를 얻을 것이다. 이른바 “읽은 척 매뉴얼”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알려주기로는 최적이다. 또, 철학자들은 어떤 책을 주로 읽는지 알 수 있는, “훔쳐 읽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들은 이 책의 운명이 ‘실용적 차원’에 머물기만을 바라지 않는다. 저자들은 여기에 소개하는 책들의 목소리를 통해 인간의 현재적 삶의 운명을 새롭게 하고, 새로운 운명에 대한 상상을 해보라고 권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의 서재> 시리즈는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인 철학자들이 우리 시대의 명저나, 숨어 있는 책, 이른바 저주받은 걸작, 동서양 고전들을 선정하여 서평을 쓴 것을 모은 책으로, 지난 5년간(2008년 9월~2014년 현재)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연재되었던 칼럼들이다. 서평이기도 하며, 철학 칼럼이기도 하며, 에세이이기도 한 이 코너는, “서평 문화의 장”의 한 획을 그었으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오고 있다. <철학자의 서재>는 서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유와 문제의 단초를 일상의 삶에서도 찾고자 하는 적극적인 시도들이다. 이론과 활자들의 말잔치가 아니라, 책읽기, 글쓰기, 철학적 사유에 관한 통합적인 안내서이다. 그래서 <철학자의 서재> 시리즈는 방대한 양의 서평 모음집에 그치지 않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철학자의 서재>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공맹의 사상 등에서 시작하여 조르주 아감벤, 지그문트 바우만 등 2500년 지성사를 한눈에 훑어볼 수 있다. 무려 200여 권에 달하는 책들 중에 우리 시대 지성들이 읽어야 할 교양이 망라돼 있는 것이다.

또, <철학자의 서재>는 책의 선정과 집필을 최소 한 달 이전에 시작하기 때문에, 사유하고 글을 쓰는 데에 충분한 시간과 분량이 주어진다. 그럼으로써, 글의 완성도와 주제의 선명성이 높게 나타난다.

<철학자의 서재>는 대안적 상상력, 내일을 지시하려는 몸짓과 울림을 강조한다. 학문은 현실의 문제에 해답을 제시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학 서적에만 국한하지 않고, 정치/사회/경제/문화/예술/대중문화 등 거의 전 분야를 다룬다. 철학적 사고는 대안적 상상력이 뒷받침되어야 깊어진다는 점이다. 철학 본연의 텍스트가 아닌 다양한 분야의 텍스트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출판사 보도자료 중 일부

 

한국철학사상연구회·프레시안 시민강좌[ⓔ시대와철학 알림]

한국철학사상연구회·프레시안 시민강좌
?<큰 것을 생각하라 2014>
세속의 철학자, 경제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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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유토피어니즘을 디자인하기 위한 공존의 경제를 찾아서-
?
우리 시대가 겪고 있는 이 거대한 시련의 근원은 무엇인가?
새로운 세상을 디자인하는 것은, 새로운 유토피어니즘을 기획하는 것이다.
미국식 금융 자본의 붕괴 이후,
그리고 9·11 이후 체제에 대한 진지한 사유의 방향을
이제 우리 주변으로 돌려, 공동체의 나아갈 비전을 찾아보고자 한다.
일상과 주거에서, 마을과 공동체에서,
지역 사회와 도시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본의 의미를 재구성해보자.
궁극적으로 새로운 세상을 디자인해 보기 위해
우리 시대의 가치, 자본, 노동의 의미를 다시 세워보도록 하자.
?

● 강의 커리큘럼

2월 13일 1강 : 세계경제를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찰하기

????????????????????? – 김성우(兀人고전학당 연구소장)
2월 20일 2강 : 노동과 가치를 다시 생각한다. – 박영균(건국대 HK교수)
2월 27일 3강 : 당신의 돈, 당신의 비즈니스를 생각한다 1 – 한길석(한신대 외래교수)
3월?? 6일 4강 : 당신의 돈, 당신의 비즈니스를 생각한다 2 – 박민미(대진대 외래교수)
3월 13일 5강 : 자본주의를 다시 생각한다 – 이순웅(숭실대 외래교수)
3월 20일 6강 : 경제의 위기와 민주주의의 재구성 – 이정은(연세대 외래교수)
3월 27일 7강 :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차이의 경제와 대안 도시를 생각한다
??????????????????????- 이현재(서울시립대 HK교수)
4월?? 3일 8강 : homo cooperatus 협동성 경제의 실현 – 최종덕(상지대 교수)
?

● 일???????시 : 2014년 2월 13일~4월 3일(매주 목요일 저녁 7시 30분~9시 30분 총 8강)

● 장?????? 소 : 서울 마포구 서교동 481-2 태복빌딩 302호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강의실

● 신청문의 : 02) 332-4301 /?kophil@daum.net?(주로 메일을 이용해 주세요.)

● 수?강?료 :

① 전 강좌 15만원
② 각 강좌당 2만원
③ 한철연 회원(정회원, 준회원, 후원 회원 등) 무료
마감 인원 : 35명

고대 그리스 정치철학의 기원과 의미-한철연 신년회 기념 강연회

고대 그리스 정치철학의 기원과 의미-한철연 신년회 기념 강연회

강연 : 이정호(한국철학사상연구회 이사장)

정리 : 강지은(ⓔ시대와철학 편집주간)

 

 

1월 9일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정식 신년회 행사에 앞서 우리 학회 이정호 선생님의 강연이 진행되었다. 2시간여 걸쳐 진행된 이날 강연은 새로 단장한 학회의 강연장에서 개최되었으며 3시 시작부터 강연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열기가 신년회의 마지막까지 이어졌다.

이정호 선생님의 고대 그리스 정치철학의 핵심은 ‘다의 공존과 조화의 추구’이다. 정치를 바라보는 이러한 입장은 놀랍게도 현대의 정치철학이 추구하는 이상과 일치한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 철학은 생명력 있는 모습으로 더욱 우리에게 다가온다. 강연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자.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신화를 통해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것은 자연을 비롯한 환경적 조건에 대한 그리스인의 운명의식이다. 신들조차 이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 바다(水)는 포세이돈의 것이고 하데스에게는 그가 주재하는 사자(使者)들이 일몰지를 넘어가서 서쪽의 어두움 속에 거주하느냐 또는 지하에 거주하느냐에 따라 ‘안개 짙은 어둠’ 즉 대기(風)나 대지(地)가 배당된다. 이 모든 것이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자 그들 자신의 몫이다. 이와 같이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신화 속에서 우리는 인간이건 신이건 모든 개체의 능력과 실존을 한계 짓는 운명에 대한 심원한 믿음을 발견한다.

 

사진 : 강지은
새단장한 한철연 강연장에서

신화와 철학에서 발견되는 고대 그리스인의 정치사상적 단초

 

이와 같은 우주 탄생과 관련한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신화는 단순히 우주생성의 비밀 이상의 사회적 역사적 삶에 대한 고대 그리스인의 대응 의식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대응의식은 기원전 6세기 무렵에 이르러 점차 정교하게 되면서 마침내 신화적 단계를 넘어서 우주, 자연의 근본 구조를 그 자체로서 탐구하려는 움직임으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이정호 선생님은 신화적 세계관에 나타난 고대 그리스인들의 근본 의식은 철학사가들에 의해 최초의 철학자로서 재평가되고 있는 아낙시만드로스의 철학을 통해 놀라울 정도로 계승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우주생성의 근원으로서 무한정자(apeiron)를 상정한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따뜻함과 차가움, 메마름과 습함(온냉건습)이라는 대립적인 원시 질료적 요소들이 생겨나고 그 요소들의 대립적 성질로 인한 상호침식과 운동 및 변화에 의해 가시적 세계만물이 생성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우주생성에 관한 신화적 서술을 철저히 질료적 힘에 의한 우주론적 논의로 치환하고 있을 뿐, 그 속에 내포되어 있는 전통 그리스의 정신은 온전한 모습 그대로 계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철학에 나타난 자연철학적 세계관 역시 신화적 세계관과 마찬가지로 고대 그리스 인들의 삶과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운명의식과 연관되면서 자연학적 탐구의 윤리학적, 사회적 연관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두 말할 나위 없이 그 운명의식이란 신화에서 운명의 신 모이라가 각 신에게 할당된 고유의 영역, 경계, 지위, 역할 및 권한의 분배를 표상하듯이, 사회공동체적인 측면에서도 분할, 영역, 할당된 몫의 불가침적 보존 내지 질서에 대한 의식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의 독특한 ‘운명’의식

 

그런데 주목할 것은 여기서 말하는 할당된 몫이란 오늘날 개인주의 사회에서 개인들 간의 이해관계에서 성립하는 배타적 소유 내지 권리라기보다는 환경세계 속에서 구성원들의 공동체적 삶의 보존을 위한 역할과 능력의 분담과 그 분담된 다양한 역할의 상호존중과 수행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보다 적극적인 측면에서 해석하자면 그것은 고대적 삶의 기초로서 농업생산과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협동적 질서(taxis)와 절제(sophrosyn?)의 구현 다시 말해 공동체에서 자신의 능력과 소질에 맞추어 할당된 역할의 적극적인 실현과 그것을 통한 공동체적 자치와 자기 보존 구현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이 폴리스적 시민이 권리이자 의무로서 누릴 수 있는 진정한 명예와 자유의 의미이다.

이런 점에서도 고대 그리스의 자유는 근대가 지향하는 소극적 자유와 거리가 멀다. 이정호 선생님은 이런 관점에서 고대 그리스인들의 운명의식은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종교적 또는 역사적, 시간적 좌표 상에서 필연으로 묶여진 운명론적 개념이 아닌 가능성의 영역에서 능력을 다해 지켜야할 한계를 표시하고 당위를 견인하는 공간적 개념이자 윤리학적, 정치철학적 개념이라고 정리한다.

 

대규모 농업생산과 순수한 사유의 관계

 

사진 : 강지은

파르메니데스와 제논으로 대표되는 엘레아학파는 우리가 그동안 상식적으로 당연시되어온 운동과 여럿을 부정하고 자연세계를 그 자체로 정지된 하나로서 파악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자연세계를 운동과 변화과정의 총체로 여기던 기존의 자연관을 송두리째 뒤엎는 것이었다. 이러한 주장의 기초에는 순수한 사유에 의한 논리주의가 자리잡고 있었고 기존의 자연학과 자연철학적 성과는 논리주의 앞에서 모두 부정되었다.

이미 질료에서 분리된 순수사유는 오직 공간적 성격만 갖는 것이어서 시간성과 결합된 일체의 질료적 운동성과 변화는 그 자체로 순수 사유로 해명되지 않는 것이었다. 이제 사유로 해명되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들의 설명방식에 입각해 있는 한 토끼가 거북이를 따라잡거나, 화살이 날아가는 현실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즉 ‘사유가 곧 존재’인 순수사유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플라톤에 의해 운동이 공간적 사유로서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질 때까지 이러한 논리주의의 위세는 상식적으로 경험적인 자연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지적 열등감과 무력감을 안겨주면서 그리스의 지적 풍토를 한 동안 지배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추상적 사유의 배경은 농업생산에 있다. 엘레아학파가 태동한 크로톤 지방은 그리스 본토와는 달리 대평원지역에다 지중해 교통의 요지여서 대규모 관계농업이 발달했다. 이러한 농업생산량의 확대는 관리계층 및 상업계층을 발달시켰고 그 핵심에 속한 엘리트들은 소규모 농업생산사회의 엘리트보다 훨씬 복잡하고 추상적인 사유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는 토끼에서 벗어나려는 그리스적 사유

 

기원전 5세기에 들어서자 아테네 지식인들이 지향해야 할 목표는 엘레아학파에 의해 파기된 질료적 자연 사물들과 그것들이 운동변화에 대한 해명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정황에서 대두된 대표적인 고전기 아테네 사상이 곧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에 의해 주창된 원자론이다. 원자론자들의 기본적인 관심은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엘레아의 비판에 의해 운동도 변화도 없이 정지해버린 세계를 끊임없이 운동하면서도 없어지지 않는 현실로 구제해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일단 엘레아적 논박을 피하기 위해 엘레아학파가 주장한 일자의 성격과 똑같은 분할자체가 불가능한 원자를 우선 상정하되, 동시에 엘레아학파들에 의해 파기된 다자성과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원자의 수를 무한하게 상정하고 그것들이 움직일 허공(kenon)을 상정하였다. 그리고 그 허공마저 비존재라는 논박을 피하기 위해 그들은 주저 없이 엘레아 기준으로 이른바 ‘없는 것(to m? on)’인 허공 또한 물체 못지 않게 모두 실제로 있는 것(ousia)이라고 선언하였다.

요컨대 운동과 질적 변화의 현실적 실재를 부정할 수 없었던 그들은 원자와 허공의 존재를 통해 다와 운동을 구제하였고 이미 엘레아 근본주의 앞에 치명적인 약점이 되어버린 성질의 실재성은 포기하되 그 성질을 원자들의 부대현상으로 대체하였다. 그리고 운동의 원인을 해명하기보다는, 허공의 도입을 통해 운동을 설명이 필요없는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였던 전통적 확신을 복원하였던 것이다.

 

일자성과 다자성, 조화와 공존의 문제

 

신화적 세계관에서 플라톤에 이르기까지 고대 그리스의 자연적인 것(physis)과 인위적인 것(nomos) 내지 자연학적 관심과 윤리학적 관심을 정치철학적으로 추적해 볼 때 거기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그것은 우선 자연학적 논의의 측면에서 보면 자연의 본질에 관한 형이상학적 물음으로서 일관되게 일자성과 다자성에 관한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사회 윤리학적 정치철학적 시각에서 보면 그리스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도시국가들 간의 공존과 질서 또는 하나의 도시국가 내에서 각기 다른 계층 내지 사람들 간의 조화와 공존에 관한 문제라고 할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형이상학과 존재론은 ‘생존의 존재론’이고 본질적으로 정치철학적 윤리학적 성격을 갖는다. 일과 다의 문제, 정지와 운동의 문제는 우주론과 자연학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이미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상이한 세력들 간의 갈등과 조화, 분열과 통일이라는 정치 사회적 문제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고, 자연학과 윤리학을 통일하는 하나의 원리로서 제시된 다의 공존과 조화의 원리 또한 두말할 나위 없이 기원전 5세기 지중해 연안에 흩어져 살던 고대 그리스인들의 이상적 삶의 원리이자 사회적 관계형성의 근본 원리였던 것이다.

강연이 끝난 후 40여분간 진행된 질문과 응답 시간이 이어졌으며 예정된 시간을 넘겨서도 마치지 못하여 아쉬움이 많았다.

 

 

지식순환협동조합 노나메기 대안대학 시범강좌[ⓔ시대와철학 알림]

지식순환협동조합 노나메기 대안대학 시범강좌

 

안녕하세요, [지식순환협동조합 노나메기 대안대학]입니다.

 

[지식순환협동조합 노나메기 대안대학]은 분과학문으로 파편화되고 기업화된 낡은 대학의 틀을 벗어 던지고, 학문 간 통섭이라는 원리를 통하여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서로 평등하게 마주하는 새로운 대안대학의 플랫폼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2014년 새해를 맞이하여, [지식순환협동조합 노나메기 대안대학]이 앞으로 펼쳐나갈 교육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시범강좌를 개최합니다. 이번 시범 강좌의 열쇠말은 [카오스와 비전 Chaos and Vision]입니다. 총 9강으로 이루어진 이번 시범강좌는 혼란스러운 사회 속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대안적 가능성들에 주목하였습니다. 위세를 떨쳤던 신자유주의가 저물어가고 새로운 체제가 시작되는 이행기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일어나는 나비효과를 통한 새로운 비전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지식순환협동조합 노나메기 대안대학의 시작을 알리는 시범강좌에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강좌 소개]

 

[3/11 후쿠시마, 끝에서 시작으로]

1/13(월) 19:00~22:00

최종덕(상지대 과학철학), 하승수(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김익중(『한국탈핵』 저자, 동국대 의대 교수)

 

[인류의 위기와 대안에 대한 원효와 맑스의 대화]

1/14(화) 19:00~22:00

이도흠(한양대 국문과 교수)

 

[케이팝의 흉내내기는 어떻게 문화자본이 되었나]

1/15(수) 19:00~22:00

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어린왕자’에서 보편종교성을 읽다]

1/16(목) 19:00~22:00

박규현(부산동래생협)

 

[대안세계는 적녹보라 연대로부터 온다]

1/17(금) 19:00~22:00

심광현(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박이은실(한신대 연구교수, 기본소득네트워크)

 

 

[21세기 변혁 존재론을 위하여]

1/20(월) 19:00~22:00

김성우(한국철학사상연구회)+서영화(한국철학사상연구회)

 

[위기의 청년들에게 ‘자본’이 일용한 양식인 이유]

1/21(화) 19:00~22:00

임승수(경희대학교 강사)

 

[기억하라 1980년대 : 칠수와 만수의 시대극장]

1/22(수) 19:00~22:00

김종길(미술평론가)+한홍구(역사학자, 성공회대 교수)

 

[혼돈 속에서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

1/24(금) 19:00~22:00

대안적 지식생산자들의 파티 (홍세화, 조희연, 이명원 등)

 

 

 

일시 : 2014.1.13(월) ~ 2014.1.24(금), 저녁 7시 ~ 10시

(총 9회, 1/23(금) 및 토, 일요일 강의 없음)

장소 : 중림종합사회복지관 (충정로역 4번 출구에서 도보 3분)

수강료 : 강의 당 5,000원

신청(링크) : http://www.freeuniv.net

https://freeuniv.typeform.com/to/iQHPyI

문의 : kcunion2013@gmail.com / www.freeuniv.net / 010-4721-5757(사무국장 강정석)

 

 

 

 

 

 

<ⓔ시대와철학>에 연재되었던 “철학자 구보 씨의 세상 생각” 전격 출간[ⓔ시대와철학 알림]

?〈ⓔ시대와철학〉에 연재되었던

?”철학자 구보 씨의 세상 생각” 이 드디어 책으로 묶여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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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원 선생님(부산대) 특유의 기지와 재치로 〈ⓔ시대와철학〉에 연재되었던 철학적 세상읽기는?꾸준히?많은 조회수를 기록하였다. 2년 여에 걸쳐 연재된 “철학자 구보씨의 세상 생각”은 정치, 경제, 문화 등 인간 세상 전반에 관한 철학적 성찰을 이해하기 쉬운 대화형식의 문체로 이어나갔다. 때로는 세상을 꾸짖기도 하고 때로는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바라보는 반성의 자세를 보여주기도 한 구보씨는 어찌보면 오랜만에 만난 친구같기도하고 선생님 같기도 하지만 늘 세상을 바로보는 방법을 보여주려 노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