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근원’과 여성의 몸 [청춘의 고전 시즌2]-②

?[청춘의 고전 시즌2 /그림으로 읽는 철학] – ②

??? 일시: 2012. 4. 14.?(홍대입구 상상마당 강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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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근원’과 여성의 몸

– 구스타브 쿠르베의〈세상의 근원〉에 대한 여성주의 철학자의 시선 –

 

강연:? 이현재 (서울시립대 HK교수)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구스타브 쿠르베의 작품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법적 담론이 이루어지고 있다. 유명 영화감독이 이 작품을 소재로 영화를 제작한 바 있으며, 방송통신심의위원인 법학자가 표현의 자유와 음란물 판단 기준에 관한 법적 토론을 목적으로 이 작품을 블로그에 게재한 후, 법적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이 작품을 여성주의 철학자의 시선으로 보면 어떤 이야기가 가능할까?

청춘의 고전(2) ‘그림에 say’의 두 번째 강연자로 나선 이현재 서울시립대 HK교수(이하 이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여성주의를 연구하는 대표적인 여성 철학자이다. 이교수는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한 후 지금까지 줄곧 논문과 책들을 통해서 여성주의에 관한 일관된 철학적 담론을 제기하고 확산시키고 있다. 이교수가 이번 강연에서 주제로 제시한 것은 ‘쿠르베의과 여성의 몸’이다.

구스타브 쿠르베의 작품은 곧 ‘세상의 근원이 여성의 성기임’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여성의 성기는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해 여러 가지 서사를 통하여 ‘여성의 성기는 세상의 근원이다’라고 답하는 것은 결국 동어반복에 불과한 것으로, 이 답으로부터는 아무런 추론을 이끌어낼 수 없다. 이 물음에 대해 철학적으로 답하는 것은 그 ‘무엇’의 본질을 말하는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한 이교수의 답은 이것이었다. “여성의 성기는 ‘없음’이다.” 이 답은 단순한 추론을 넘어선 차원의 해석이다. 이 해석은 쿠르베의 작품에서부터 “여성의 성기는 ‘없음’이다.”라는 명제가 직접적으로 도출될 수 없다는 점에서 추론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림 앞에선 감상자의 단순한 느낌도 아니다. 이 해석은 그러한 차원을 넘어선 철학적 해석이다.

▲ 이현재 서울시립대 HK 교수 ⓒ프레시안(민정훈)

1. 쿠르베의 시선

이교수가 여러 수강생들에게 쿠르베의 작품을 보여주고 그림이 어떻게 보이는 지를 물었을 때, 수강생들이 답한 느낌은 다양했다. 강의실에는 지난 첫 번째 강의에서처럼 남녀노소의 다양한 수강생들로 가득 차 있었고 그만큼 답도 다양했다. 이교수는 수강생들의 반응을 살핀 후, 크리스틴 오르방이 쓴 소설 『세상의 근원』(함유선 역, 열린책들, 2001)을 소개하면서 쿠르베가 그림을 그릴 때 그림의 모델이 되었던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쿠르베의 시선을 이야기하며 본격적인 강의를 시작하였다. 이 소설을 통해서 이교수가 찾아낸 시선은 여성의 몸을 마치 법의학자와 같이 보는 시선이다. 즉, 치밀하게 계산하고 분석하고 철저하게 따져보는 시선이다. 그러면서 대상을 완전히 주관에 따라서 만들어 내는 시선이다. 이 시선은 단지 화가 쿠르베의 시선이라기보다는, 남성적인 시선이다. 그리고 이 남성적인 시선이 대상을 규정하는 서양 철학의 근본 원리이다. 이 남성적인 시선을 통해서 대상을 보아왔기 때문에 서양 철학은 본질적으로 남성중심주의에 빠져있다는 것이 이교수의 주장이었다. 그리고 이 시선이 서양 철학에 뿌리 깊게 박혀 있었기 때문에 철학은 여성과 남성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여성에 대한 남성의 우위를 도식화 해왔다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우위는 사실 서양 철학이 은폐하고 있었던 소위 불편한 진실이었다. 이교수에 따르면, 서양 철학은 남성과 여성을 둘로 나누면서 이 둘을 수평적인 둘이 아니라, 위계적인 둘로 구분하였다. 그래서 서양 철학에 의해서 남성과 여성은 남성이 여성의 위에 있는 위계적인 이분법으로 구분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위계적인 이분법의 의미가 은폐되어 있는 철학의 근본 개념들이 바로, 이성과 감성, 마음과 몸, 문화와 자연의 구분이다. 이 구분에서 앞에 있는 것이, 플라톤 이래로, 줄곧 뒤에 있는 것에 대한 우위를 점유하고 있었다고 이교수는 언급하였다. 여기에서 이교수는 “앞에 있는 것은 스스로가 자기를 정립하는 능동적인 힘이 있는 것이었으며, 그에 반해서, 후자의 것은 전자에 의해 정립될 수밖에 없는 수동적인 것으로 취급되었다”고 말하면서, “서양 철학사에서 이성적인 것은 항상 남성적인 것이었고, 감성적인 것은 여성적인 것이었다”고 말하였다. 이와 같이 남성적인 것을 여성적인 것에 앞서는 위계적인 이분법을 고수하기 위해서 서양 철학이 끊임없이 정립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남성적인 것의 근원이었다. 다시 말하면, 이성의 근원, 마음의 근원, 문화의 근원이었다. 그런데 이 근원을 정립하고자 할 때 철학이 목표로 삼았던 것은 사실 ‘남성적인 것의 근원은 다름 아니라 남성적인 것에 있다’라는 결론이다. 그 남성적인 것이 우월함을 확인하기 위해서 서양 철학이 탐구하였던 것이 바로 남성적인 것의 근원을 보다 높은 곳에 있는 것, 고귀한 것, 다시 말하자면 현실을 초월해 있는 것, 이상적인 것에 두는 것이었다. 그 근원은, 간단하게 말해서, ‘있음’과 ‘없음’ 중에서 ‘있음’이며, ‘있음’ 중에서도 ‘꽉 차 있음’이다. 그래서 이교수에 따르면, 서양의 철학은 바로 이 ‘꽉 차 있음’에서 출발해서 그것으로부터 모든 것이 나온다는 것을 정립한 것이다. 그 근원으로부터 위계질서를 세우면, 사유와 세계는 보편성, 완전성, 절대성에 따라 법칙화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의 철학은 남성 우위의 철학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플라톤의 이데아에서부터 헤겔의 절대정신에 이르기까지 모든 철학이 바로 남성 우위의 철학이었다”고 이교수는 말하였다.

ⓒ프레시안(민정훈)

2. 쿠르베의 혁명성과 한계

이교수는 쿠르베를 양가적으로 해석하였다. 하나는 혁명성이었고 다른 하나는 한계였다. 우선, 쿠르베는 남성적인 것의 시선이 감추고 있던 진실을 들추어냈다는 점에서 혁명적이었다. 쿠르베가 들추어낸 진실은 남성적인 것의 시선을 아무런 미화나 신비화 없이 추하고 구체적인 것으로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즉, 높은 곳, 천상적인 곳, 이상적인 곳으로 향하던 남성적인 것의 시선을 낮은 곳, 지상적인 곳, 구체적인 곳으로 되돌리면서 남성적인 것의 시선이 지닌 문제를 사실적으로 들추어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쿠르베가 여성의 성기가 세상의 근원임을 보여줌으로써, 이전까지 믿어왔던 남성적인 것의 근원이 남성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여성적인 것이었다는 진실이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남성들이을 보고 느끼는 불편함은 곧 세상의 근원이 남성적인 것이 아니라 여성적인 것임을 인정하게 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남성 우위의 도식이 위협 받는 불안감에 기인한다고 이교수는 설명하였다. 여기서 쿠르베는 동시에 한계를 드러내게 되는데, 그 한계는 사물을 주체가 아니라 수동적 대상이 되게끔 하는 남성적인 시선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작품에서 그려진 여성의 몸은 마치 해부학 실험실에 놓여 있는 죽은 몸 혹은 덩어리로 보이게 하며, 그러하기에 여성의 몸은 아무런 움직임 없이 그대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앞에 고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그림에서 그려진 여성의 몸은 가슴에서부터 성기까지 잘라졌기 때문에 말을 할 수 있는 입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래서 쿠르베의 시선은 여전히 대상을 수동적으로 바라보는 과거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을 이교수는 지적하였다.

그래서 이교수는 “쿠르베가 여성의 성기를 세상의 근원으로 발견했지만, 그 여성의 성기는 결핍, 없음으로 규정된다”고 말하였다. 여기에는 남성의 우월성을 표현하는 철학적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데, 그 논리는 바로 ‘있음’으로부터 ‘없음’을 규정하는 이분법적 규정이다. 이교수는 ‘있음’과 ‘없음’을 기호로 표현하면, A와 ~A가 된다고 언급하면서, ‘없음’은 다름 아니라 ‘있지 않음’을 뜻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전자가 곧 남성이고 후자가 곧 여성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교수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끌어들이면서 프로이트가 주목한 것은 바로 “남성의 성기는 ‘있음’이고, 그 ‘있음’이 ‘있지 않음’으로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남성에게 있어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형성한다”고 말하였다. 여기서 두려움이란 곧 ‘없음에 대한 두려움’인데, 그 두려움이 생기는 이유는 그 ‘없음’이란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없음’은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을 탐구하고자 하는 신비감을 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끝까지 알 수 없는 것으로 남게 되면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없음’ 대해서 이교수는 라캉의 말을 인용하면서 깜깜한 동굴, 구멍, 비어 있음을 통해 설명하였다. 그러면서 이교수는 “무엇을 안다는 것은 곧 알지 못하는 공포의 대상으로부터 오는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 그 대상을 정복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다시 말하면, 인식은 곧 정복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곧 서양의 주류 철학사이자 서양 중심의 문명 형성사였다. 다시 말하면, ‘있음’을 통해서 ‘없음’을 정복하여 대상화함으로써 그것으로부터 오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곧 철학을 통한 계몽의 과제이자 문명의 발달 과정이었다. 이 과정의 근저에 깊게 흐르고 있는 것이 남성 우월주의였다. 이런 의미에서 이교수는 “‘있음’으로서의 남성은 구멍, 비어 있음, 무지의 세계를 참지 못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없음’이 주는 공포감과 불안을 남성은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 ‘없음’으로서의 여성의 몸은 정복의 대상이 된다.

ⓒ프레시안(민정훈)

3. 남성/여성의 위계적인 이분법을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은?

플라톤 이래로, 육체는 가시적이고 감각적인 것과 동일시되는 열등한 것으로 간주되고, 인간은 가지적인 세계인 이데아에 도달하기 위해 육체를 영혼에 복종시켜야 한다는 것이 서양 철학의 주류를 형성하였다고 이교수는 말하였다. 그러면서 이교수는 “여성을 비본질적이고 종속적이기만 한 육체로 보았다는 통념에 문제가 있음을”지적하면서, 여성주의 철학자들이 여성에 대한 이러한 종속적 규정을 벗어날 수 있는 다른 개념을 철학사에서 찾고자 노력해왔고 그 성과를 세 가지로 설명하였다.

그 세 가지 가능성을 찾는 핵심은 여성의 몸이 위계적으로 구분되어 오직 남성만 자기규정성을 가지고 있는 ‘있음’에 의해 수동적으로 규정되는 ‘없음’이 아니라, 여성의 몸이 자체적인 힘을 가지며 스스로 자기 규정성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개념을 찾는 것이다. 그러면서 위의 노력을 통해서 여성의 몸에 대한 기존의 철학적, 남성적 담론을 넘어선 새로운 담론의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는 성과가 마련되었다고 설명하였다. 이교수는 “위계적인 이분법을 넘어서서 ‘여성의 몸’이라는 개념의 능동적인 자기 규정성을 찾는 것이 여성주의 철학자의 과제”였다고 언급하면서, 이 개념을 찾기 위해 전 세계의 여성주의 철학자들이 끊임없이 노력해 왔음을 이교수는 강조하였다. 그리고 그 노력의 결과를 플라톤의 ‘코라(chora)’, 이리가레의 ‘두 입술’, 그로츠의 ‘뫼비우스’에서 찾을 수 있다고 제시하였다. 즉, 위의 세 개념을 통해서 남성/여성의 위계적인 이분법을 넘어설 수 있는 여성의 몸에 대한 새로운 규정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교수는 이 가능성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강의 자료를 통해 준비해 왔으나 아쉽게도 약속한 강의 시간이 다 되어, 이 교수는 개략적인 설명을 통해 언급한 이후에 강의를 마무리했다.

강의가 끝난 후 곧바로 이어진 질문 시간에는 다양한 수강생들의 열띤 질문이 이어졌고 이교수는 하나하나 충실히 답하였다. 질문은 계속 이어져 8개의 질문과 답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진지하고 열의 있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열의는 다음 강연까지도 이어질 것이다. 다음 세 번째 강연은 4월 28일 6시에 상상마당 4층 강의실에서 열리며, ‘살바도르 달리의 과 아도르노의 『미학 이론』’이라는 주제로 김성우 兀人고전학당 연구소장이 강연자로 나선다.

후기: 김민수 (한철연 회원)

세한의 계절(歲寒之時)에 느끼다 [청춘의 고전 시즌2]-①

? [청춘의 고전 시즌2 / 그림으로 읽는 철학] – ①

??? 일시: 2012. 3. 24.?(홍대입구 상상마당 강의실)

??세한의 계절(歲寒之時)에 느끼다

– 추사의 <세한도>와 사마천 ‘사기’ 속의 공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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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전호근 (경희대 교수)

 

“우리의 삶 속으로 추위가 온다는 것은 시련인데, 시련이란 우리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해 준다. 날씨가 추워졌을 때 삶의 가치가 비로소 드러난다.”(전호근 교수)

봄꽃을 시샘하는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 토요일이라 젊은 청춘들로 북적대는 홍대 앞에도 여지없이 바람은 세차게 불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휘감고 돌아 나갔다. 오전에 인왕산 자락에 갔었다가 휘몰아치는 돌풍을 만났던 필자는 ‘저 바람도 인왕산의 소나무를 한 바퀴 돌아 나왔겠지’라며 잠시 상념에 젖었다.

처음 찾아간 상상마당의 복합적인 건물 구조가 익숙하지 않아 간신히 계단을 찾아 4층 강의 공간으로 올라갔을 때가 5시 35분이었다. 한 눈에 들어온 넓은 강의 공간에는 5명이 앉을 수 있는 긴 책상이 14개나 두 줄로 줄지어 있었고, 그 뒤로 간이 의자가 30여개 넘게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유리창 밖의 세찬 바람과 가지런히 놓인 책상들이 하나의 풍경으로 보이는 뒤쪽의 간의 의자에 앉아 미리 준비되어 있던 두 쪽이 강의 원고를 천천히 읽으며 시간을 기다렸다.

이윽고 우산을 접듯, 바람을 접고 들어온 수강생들이 앞의 책상에서부터 하나 둘 씩 자리를 채웠고, 필자가 앉은 자리 앞에도, 옆에도 그리고 뒤의 맨 마지막에도 수강생들이 가득 찼다. 시간이 임박하여서는 급히 온 수강생들이 바람을 닫는 소리로 분주하였지만, 이내 조용하고 차분한 가운데 오늘부터 시작하게 될 <청춘의 고전2-‘그림으로 읽는 철학>의 첫 강좌 – 추사의 <세한도>와 사마천 ‘사기’ 속의 공자 – 를 기다렸다.

6시가 되자 상상마당의 프로그램 기획 담당자가 인사말을 건넸다. 수강생들 중에는 지난해 <청춘의 고전1-영화로 읽는 철학>을 듣고 또 온 사람이 꽤 많았다. 잠시 후 기획 담당자가 예고한 6시 10분이 되자 드디어 오늘의 강사 전호근(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강의실로 들어왔다. 이렇게 하여 <청춘의 고전2-‘그림으로 읽는 철학>의 첫 강좌가 시작되었다.

‘인문학의 위기’ ‘철학의 위기’라는 세간의 표현이 무색하게 홍안의 청년에서부터 백발의 노년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수강생들이 자리를 꽉 메운 강의실의 풍경에 전호근 교수도 다소 놀라는 눈치였다. “이렇게 많이 올지 몰랐습니다.” 다산, 연암, 추사의 원전 강독 강좌에 정평이 난 전호근 교수가 대중 강연에 나와 처음 던진 인사말이었다.

“인문학은 어려운 학문입니다. 그리고 제 강의도 그렇습니다.”라고 운을 떼며 전 교수는 곧바로 강의를 시작하였다. 인문학이 기성복을 사듯 몸에 맞는 적당한 것을 쉽게 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옷을 지어서 입는 것이라면,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해 가며 직접 옷을 지어야 하는 수고로움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전교수의 설명이었다. 물론 그 옷을 만드는 과정에는 애써 짠 옷을 풀었다가 다시 짜는 실패의 경험도, 서툰 바느질에 손끝이 찔리게 되는 아픔의 경험도 함께 들어 있다.

우리가 고전을 읽을 때 겪는 어려움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일상생활에 쫓기면서 기성복을 골라 입듯이 편안한 것만을 추구하는 우리에게 고전은 불편한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멀리 있으면서도 낮선 ‘어떤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전 그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고전은 진리만을 말할 뿐인데, 진리와 멀어지게 된 거리가 고전을 어렵게 만든다. 고전 읽기의 어려움 정도는 현존 상황에 대한 익숙함 정도와 비례한다.

이런 의미에서 전 교수는, 『논어(論語)』를 예로 들어, 역사적으로 분서갱유를 당한 과거의 금기가 오늘날에도 ‘공자가 죽어야한다’ 혹은 ‘공자는 멍청이의 원조이다’라는 터무니없는 말로서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을 비판적 시각에서 언급하면서, “우리가 고전을 어떻게 읽느냐가 바로 ‘고전’의 수준을 좌우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덧붙여서 “좋은 책이란 현실이 진리를 외면할 때 금지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역사적으로 우리의 선대 지식인들이 어떻게 고전을 읽어왔는지 안다면, 그 앎 속에 오늘을 사는 우리의 의미도 있을 것이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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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한도에 담긴 조선시대의 불멸의 정신

전 교수가 세한도에서 읽은 것은 조선시대의 ‘불멸의 정신’이었다. 그에 따르면, “조선시대의 불멸의 정신은 다름 아니라 성리학의 ‘리(理)’이며 이것이 사대부의 정신이었는데, 그 마지막 정신이 세한도에 있다”는 것이다. 창 밖의 세찬 바람도 저 멀리 달아나게 할 정신. 그 정신이 이 세한도에 있다는 것이다. 추사는 단지 ‘그림’만을 잘 그리는 제자보다는 먹이 스며들듯 정신이 깃든 ‘문자향’을 잘 드러낸 제자를 사랑하였다는데, 그 이유를 전 교수는 추사가 그 어느 것보다 더 높게 추구한 불멸의 정신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전 교수는 ‘추사의 세한도가 왜 명작인가?’라는 물음에 대에 대해서 그 답을 찾으려고 할 때, 우리는 단지 ‘그림’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문자의 ‘향(香)’이라 할 수 있는 정신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전 교수가 강의 자료로 가져와 보여준 추사의 세한도 그림에는 우선 흰 여백이 있었다. 그리고 여백 한 가운데에 갈필로 그려진 소나무 두 그루와 문이 정면으로 나 있으면서 비스듬히 놓인 집이 있었고, 왼쪽에는 잣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오른쪽 상단에는 그림의 제목인 세한도(歲寒圖) 글씨가 있었고, 그 옆으로 제자인 이상적(李尙迪)에게 준다는 우선시상(藕船是賞)이라는 글씨가 있었다. 이어서 추사(秋史)의 또 다른 대표적 호(號)인 완당(阮堂)이라는 글씨와 함께 본명인 정희(正喜)라 씌여진 낙관이 찍혀 있었다. 오른쪽 하단에는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뜻의 장무상망(長毋相忘)이 낙관처럼 찍혀 있었다. 그 이외에 어떤 세찬 바람은 없었다. 4층 강의실 너머로 가로수들을 심하게 흔드는 바람보다 훨씬 더 거센 제주도의 바람이 불었을 법한데, 세한도에 바람은 없었다. 추사의 정신 속에는 바람이 이미 지나간 이후였다.

전 교수는 세한도가 그려진 때가 세밑 겨울이 아니라 의외로 여름이었다고 한다. 나무도 실제 소나무의 모습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서 전교수는 조선 문인화의 정수인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언급하면서, ‘진경(眞景)’은 “눈에 보이는 단편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둘러본 이후에 생긴 ‘참눈’으로 일체를 보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참눈’은 바로 문인(文人)의 정신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교수는 겸재(謙齋)가 진경으로 산수를 보았듯, 추사가 세한을 보듯, 우리도 그렇게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진경(眞景)으로 보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전 교수는 하나의 예를 들었다. 예는 봉은사 판전현판(殿板, 1856) 글씨로 낙관부의 ‘칠십일과병중작(七十一果病中作)’이 암시하듯 추사의 마지막 글씨이다. 전 교수에 따르면, 이 글씨는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보면 그저 초등학생 친구가 쓴 글씨로 “똥 싸질러 놓은 듯한 글씨”일 뿐이다. 이 말은 예전에 초등학생이었던 전교수의 딸이 추사의 글씨를 보고 했던 말이라고 한다. 한편으로, 무거운 세상의 짐을 내려놓고 붓의 무게마저 내려놓은 노인의 마음으로 보면 “해탈하고 나서야 알 듯한 글씨”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 말은 전 교수의 어느 벗이 일전에 대화를 나누다가 했던 말이라고 한다.

이 예를 들면서, 전 교수는 “그림을 제대로 본다는 것은 삶을 통한 체험의 무게와 작품의 내면에 깊이 닿는 ‘순간의 감동’을 느낄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체험의 무게가 무겁지 않으면 작품 내면의 깊은 곳까지 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문학이나 예술이 시공간을 초월하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작품을 뚫고 나가는 ‘해탈’인데, 추사의 마지막 작품에는 그 ‘해탈’의 경지 즉, 삶과 죽음이 하나가 되는 순간에 도달한 경지가 있다는 것이 전 교수의 설명이었다. 그리고 덧붙여 전 교수는 이런 설명은 아무리 애써 말해도 작품을 보는 감상자에게는 부차적인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작품 앞에 마주선 감상자가 직접 자신의 경험 속에서 느끼는 그 ‘순간’을 반드시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면 말이란 쓸모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추사의 세한도에 대해서 말할 때에도, 그림에 대해서 ‘이렇고 저렇고 어쩌고 저쩌고’ 말(say)하는 것은 어쩌면 아무 쓸모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전교수는 다빈치의 모나리자 앞에서 혹은 렘브란트의 말년의 자화상 앞에 설 때에도 마찬가지라고 언급하였다. 흔히들 모나리자에 대해서 색체의 원근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혹은 눈썹이 없어 미완성 때문이라는 등등의 말, 램브란트가 빛을 만들기 위해서 계란 흰자를 사용했다는 등의 말로서 작품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은 경험의 ‘순간’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전 교수는 고흐가 친구화 함께 미술전시관에 갔다가 램브란트의 작품 「유대인 신부」(1665년 작) 앞에 서서 몇 시간을 꼼짝 안하고 서 있다가 친구에게 “내가 이 그림을 2주 동안 계속 감상할 수 있다면 나의 수명 중에 10년을 줄여도 좋을 것”이라고 말한 일화를 소개하면서, 작품을 볼 때에는 그러한 ‘순간’의 체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덧붙여, 전 교수 “나의 경우에는 10분쯤 줄여도 좋을 것”이라고 말하며, “어쨌든 10년이든 10분이든 수명을 줄여도 좋다고 인정한다는 대단한 것 아니냐”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유발하면서 청중과 호흡하는 강의를 진행해 나갔다.

 

▲ 전호근(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KT&G 상상마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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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추사, 태사공, 공자의 세한(歲寒)

“우리가 세한도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단지 그림의 이렇고 저러한 면이 아니라 그 그림 속에 담긴 추사의 생각을 보아야 한다.”라고 말하며, 전 교수는 세한도의 발문(跋文)을 읽기 시작하였다. 세한도의 발문은 단지 천만리 밖 먼 곳에서 여러 해에 걸쳐 책을 구해다가 추사의 유배지인 제주도에 가져온 제자 이상적에 대한 고마움을 기록한 단순한 발문이 아니다. 발문에는 추사가 느낀 세한의 의미가 담겨 있으며, 이 발문이 소나무와 잣나무 두 그루와 집 한 채가 있는 그림과 함께 세한도라는 작품이 완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추사의 발문에는 옛 성인인 태사공(太史公)과 공자(孔子)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낀 세한의 의미가 함께 들어 있다.

“태사공은 이르길, ‘권세와 이익으로 만난 관계는 권세와 이익이 다하고 나면 사귐 또한 끝난다.(以權利合者 權利盡而交流)’고 했다. 그대 또한 도도하게 흘러가는 세상의 한 사람인데 초연히 스스로 도도히 흐르는 권세와 이익의 밖에 있으니 그렇다면 그대는 권세와 이익으로 나를 보지 않는 것인가? 태사공의 말이 틀렸단 말인가?” 이 말은 곧, 태사공의 시대에도 그렇고 추사 당대에도 그러하듯, 세상의 도도한 흐름은 오직 권세와 이익을 좇아 그것을 얻기 위해 마음과 힘을 그토록 허비하는데, 그러한 권세와 이익으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바다 멀리 초췌하고 바싹 마른 늙은 추사에게 오기를 마치 세상 사람들이 권세와 이익을 좇아가는 듯 하는 제자 이상적을 고맙게 여겨 추사가 한 말이다. 이 말은 우리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이다. 전교수는 태사공의 말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한다.

추사가 제주도 유배지에서 감내해야 했던 세한의 계절은 곤궁함이고 누추함이고 고독함이었다. 전 교수는 “우리는 누구를 볼 때, 그 사람이 이룬 훌륭한 성취만을 보고 그 사람의 삶을 모른다.”고 언급하면서 추사의 실질적인 삶은 비참했다고 언급한다. 전 교수는 비참했던 추사의 제주도 유배 생활은 당시 그가 남긴 수많은 서간들에 잘 드러나 있다고 언급하면서, 가족들과 친지들에 보낸 서간들에는 기가 막히는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숱한 풍토병과 눈병에 시달려 약을 구해달라고 하는 등등의 구구절절한 내용이 가득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추사는 겨울에는 한풍으로, 여름에는 무더위와 높은 습도로 고난과 역경의 삶을 연명해야 했었다.

추사의 세한도에 담긴 단아하고 굳건한 정신은 단지 도도하고 강건한 성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유배로 올 수밖에 없었던 세상의 풍파, 즉 세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세한의 계절에서부터 비롯해서 세한의 계절을 이기고 난 이후에 생겨난 것이 흔들림 없는 ‘불멸의 정신’이다. 그 정신이 흔들림 없이 표현된 것이 다름 아니라 세한의 이후에도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 두 그루, 그리고 고즈넉한 집이다. 이렇게 보면, 추사의 세한도에는 세한의 계절을 모두 거치면서도 그 시간을 이겨내고 극복한 숭고미가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그 정신에는 세한의 계절에 놓인 세계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태사공에 이어서 전 교수는 발문에 적힌 공자의 말을 읽어나갔다. “공자께서 이르시길,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고 하셨다. 이 말은 『논어(論語)』 「자한(子罕)」 편에 나오는 구절을 태사공이 「백이열전(伯夷列傳)」에서 ‘온 세상이 어지러워진 뒤에야 비로소 깨끗한 선비가 드러난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언급하면서 인용한 것이며, 이 말을 다시 추사가 발문에서 인용하여 적은 것이다. 이 구절에 대해 추사는 발문에서, “소나무와 잣나무는 사계절을 통틀어 시들지 않으니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도(歲寒之前) 그대로 똑같은 소나무와 잣나무일 뿐이고, 날씨가 추워진 뒤에도(歲寒然後) 똑같은 소나무와 잣나무일 뿐인데, 성인께서는 단지 날씨가 추워진 뒤의 소나무와 잣나무만을 칭찬하셨다.”고 적고 있다. 그러면서 이어서 제자인 이상적이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도 그리고 추워진 후에도 변함없는 것을 언급하면서, 추사는 “그렇다면 이전의 그대는 칭찬할 것이 없겠거니와 이후의 그대는 또한 성인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라고 적고 있다.

전 교수는 세한지전(歲寒之前)과 세한연후(歲寒然後)를 구분하면서, 소나무와 잣나무가 날씨가 추워진 이후에도 여전히 굳게 푸르른 것은 변함없는 ‘인(仁)’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 전교수는 직접 강의 자료로서 준비해온 사마천의 「백이열전」 중의 한 글을 읽으면서 탐욕스러운 재물에 목숨을 걸기보다는 인덕을 쌓고 개끗하게 행동했던 백이, 숙제(伯夷, 叔齊)의 ‘인(仁)’을 이야기 했다. 그리고 공자의 70명 제자 중 유독 배우기를 좋아하고 성품이 훌륭했다는 ‘안연(顔淵)’의 이야기를 했다. 비록 백이, 숙제는 굶어 죽고, 안연도 쌀겨조차 배불리 먹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여 끝내 일찍 죽고 말았지만, 깨끗한 선비는 세상의 권세가들이 그토록 중시하는 부귀를 가볍게 여겼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전교수는 온 세상이 어지러워진 이후에야 그 속에서 깨끗한 선비가 드러남을 백이, 숙제, 안연을 통해서 이야기 한 것이다. 이렇듯, 추사가 태사공과 공자와 함께 느낀 세한의 의미는 곧, 세한의 계절을 겪은 이후에야 비로소 드러나게 되는 문인(文人)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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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날씨가 추워진 이후(歲寒然後)에 먼 곳에서 찾아온 벗

공자는 『논어』 「학이(學而)」편에서,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하냐(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하냐(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사람이 알아주지 못해도 노엽게 생각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니냐(人不知而不? 不亦君子乎).”라고 말했다. 사람이 알아주지 못해도 노엽지 아니한데, 날씨가 추워진 이후(歲寒然後)에도 먼 곳에서부터 벗이 찾아온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아마도 추사는 멀리서부터 찾아온 제자 이상적과 그가 스승의 오래된 벗으로부터 구해 온 책들을 보며, 젊은 시절에 청나라 연경에서 함께 배우고 때때로 익히며 기쁜 시간을 함께 보낸 스승과 벗들을 생각하였을 것이다.

전 교수는 강의 마무리 즈음에 이르러, ‘먼 데서 찾아 온 벗’이라는 화두를 꺼내며 ‘1984년 5월 어느 날… 버디 있어 먼 데서 찾아오니…’라고 적힌 강의 프리젠테이션 화면을 띄웠다. 1984년 5월 어느 날은 전 교수가 눈물을 흘렸던 직접적인 체험이 담겨 있는 날이었다. 그날은 종로 어느 골목에서 젊은 날의 전 교수가 눈물을 흘렸던 날이었는데, 그 이유는, 코를 따갑게 만들며 눈을 뜰 수 없게 만드는 자욱한 최루 가스 때문이었다. 아울러 전 교수가 눈물을 흘렸던 그 날은 또한 때마침 방문하여 종로 인근에 있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도 그 가스로 인해 눈물을 흘렸던 날이었다. 그 때, 요한 바오로 2세가 어느 연설장에서 한 첫 말이 “버디 있어 먼 데서 찾아오니….”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전교수의 추측에 따르면, ‘버디 있어’라고 잘못 발음한 것을 보니 누가 원고를 대신 써준 것이 아니라, 교황이 직접 썼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전 교수는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에 오면서 “2,500년이라는 시공간을 관통해서 왔었다”고 말하였다. 전교수에 따르면, 요한 바오로 2세는 논어를 읽고 감명이 들어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하냐’를 첫 인사말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먼 곳에서부터 찾아온 벗을 너무 즐겁게 반겨서 최루 가스로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전 교수가 개인적 체험을 거론한 것은 단지 주관적일 뿐인 한 때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바로 역사를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었다. 전교수는 사마천의 어느 한 문장을 기억하여 말하면서, 역사가는 “지나간 일을 기록함으로써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이다.(述往事思來者)”라고 말하였다. 즉, 역사가의 서술 작업은 과거를 정확하고 진실하게 기술함으로써 과거 속에 올바른 미래를 기약하는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역사 서술은 문자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사회적 존재이자 역사적 존재인 인간이 역사에 대한 책임이 없다면, 우리가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뿐더러 아울러 미래 또한 아무런 전망을 내놓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교수는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면서 전교수는 4.19세대들은 후대인들에게 자신들의 역사를 지속적으로 알리는 데 성공했다면, 5.18세대들은 후대인들에게 자신들의 역사 속에 담긴 성과와 과오를 알려주는 실패했다고 언급했다.

전 교수에 따르면, 우리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당대의 뛰어난 사람을 벗으로 사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교수는 이런 의미에서 “당대의 뛰어난 벗이 있어 직접 찾아갈 수 있다면 즐겁고 행복한 것이다”라고 말하며, “그러나 만약 당대의 뛰어난 벗이 없다면, 옛 사람을 벗으로 사귈 수 있다”고 말한다. 옛 사람을 벗으로 사귀는 것이 곧 역사를 읽는 것이자 역사 속에 오래도록 남은 고전을 읽는 것이다. 그러면서 전 교수는 이덕무(李德懋)가 “책을 읽다가 그 사람을 만날 수 없어서 너무나 아쉬운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늦은 시간까지도 강의실을 가득 메운 수강생들에게 “우리는 책을 읽다가 그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러면서 전교수는 이 물음에 대해서 “만약 이 기준에서 볼 때, 우리가 눈물을 흘린 적이 없다면, 우리는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것이다”라고 답하였다.

‘먼 곳’이란, 단지 지리적으로 이동 거리가 먼 곳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벗이 ‘가까운 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권세와 이익을 쫓아 자신의 온 정열을 쏟으면서도 벗을 보지 못한다면, 그는 ‘먼 곳’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먼 곳’이란, 시공간적 의미에서, 단지 지금으로부터 오래 전의 사람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래 전의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가 그의 생각을 문헌을 통해서 읽고 헤아리고 함께 나눌 수 있다면 그 벗은 아주 가깝게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전교수는 고전이란 바로 우리가 벗으로 여긴다면 아주 가까울 수 있으면서, 그 반대로는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언급한다.

날씨가 추워진 이후에 추사에게 찾아온 벗은, 먼 곳에서부터 어렵게 책을 구해서 제주도로 찾아온 제자 이상적뿐만 아니라, 그 책을 전해준 당대의 벗들, 그리고 그 책 속에 담긴 아주 오래된 벗들이었다. 이 벗들을 만나 즐거운 마음에, 세한연후(歲寒然後)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가는 것을 알게(知) 된다는 공자의 말을 빌어, 추사는 비록 거리는 멀리 있지만 가까이 온 벗을 반긴 것이다. 그러면서 그 반가운 마음을 추사는 새한도에 담은 것이다. 그리고 이 새한도를 받은 이상적이 그해 연경에 찾아가 추사의 벗들에게 그 마음을 보였을 때, 그 벗들 또한 즐겁고 반가운 마음에 서로들 찬시(讚詩)를 덧붙여 썼던 것이다. 우리도 세상살이의 풍파 속에서 경험하는 것이지만, 벗들은 세한연후에야 비로소 ‘먼 곳’에서부터 찾아온다. 아무리 세찬 바람이 불더라도 바람이 지나간 연후에는 벗이 찾아온다.

전 교수는 강의 중반부에서 “예술가가 외롭고 고독한 존재인 줄 알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외롭고 고독한 존재이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살아간다.”고 말을 하였는데, 어쩌면 우리는 외롭고 고독한 존재임을 정녕 몰라서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모른척하며 진지한 ‘순간’을 삶에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혹은 불편한 진실로 여기고 살아간다. 전 교수의 말 속에는 전 교수가 추사의 ‘세한도’를 통해서 전해주고 싶은 결론이 암시되어 있었다. 즉, 우리가 외롭고도 고독한 존재임을 알면서도 세상의 추운 한파를 견뎌 낼 때, 세한연후(歲寒然後)에는 먼 곳에서 벗이 오는 기쁜(樂) ‘순간’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강의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이르렀을 때, 강의실 밖에는 여전히 봄꽃을 시샘하는 세찬 바람이 불어 가로수는 흔들렸다. 하지만, 새한도 안의 소나무와 잣나무는 여전히 흔들리지 않았다. 강의를 마무리해야 할 때가 되었음을 안 전교수는, ‘세한의 계절(歲寒之時)에 느끼다’라는 시대적 화두를 던지며, “우리의 삶 속으로 추위가 온다는 것은 시련인데, 시련이란 우리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해 준다. 날씨가 추워졌을 때 삶의 가치가 비로소 드러난다.”라는 말로 강의를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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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세찬 바람을 뚫고 가까운 곳에서 찾아온 벗

이윽고 강의의 여운이 남겨진 가운데, 청중의 질문 순서가 이어졌다. 첫 번째 질문은 “못된 사람이 잘 사는 현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였다. 이에 대해 전 교수는 “못된 것은 못된 것이라고 서술하는 것이 역사이고 사마천은 그렇게 했다. 사마천은 역사 속에 미래를 담은 것인데, 지금의 우리 상황은 사마천의 시대보다는 나은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단지 역사를 서술하는 것 이외에도, 현실에서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좀 더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하였다. 두 번째 질문은 “이상적이 가져온 책은 추사가 원했는가? 아니면 이상적이 알아서 가져온 것인가?”였다. 이에 대해 전 교수는 “둘 다 맞다고 할 수 있다. 추사는 연경에 있던 벗들과 그들이 가지고 있던 최신의 책들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는데, 제자 이상적이 그 마음을 헤아려 알아서 가져온 것이라 할 수 있다.”고 답하였다. 그 외에 세 가지 질문이 더 이어졌고, 전교수는 차례대로 답하였다. 질문자 중에서는 일산에서 고등학생과 함께 온 어머니도 있었다.

‘너는 홍대 앞 클럽 가니? 나는 홍대 앞에서 철학한다.’라는 다소 시대상을 반영한 도발적인 문구로 상상마당+한국철학사상연구회+프레시안이 공동 기획한 <청춘의 고전>이 지난해 ‘영화+철학’으로 시즌1을 마친데 이어 올해 ‘그림+철학’으로 시즌2를 시작하였다. 시즌2의 제목은 ‘그림에 say’이다. 필자는 ‘그림’에 대해서 어떻게 ‘말(say)’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는 미학자이자 철학자이다. 그림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은, 전호근 교수가 강의 중에 말했던 바와 같이, 그림에 대한 구체적인 경험이 없다면 부차적인 것이거나 쓸모없는 일이 될 것인데, 어떻게 말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우선 감상자의 미적 체험이 없이는 보일 수 없는 그림을 누군가가 말로서 대신 체험하게 해 준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밖에 부는 바람 때문일지 아니면 시대적 요청일지, 여하튼 아직은 모를 어떤 힘에 의해 ‘그림에 say’라는 실험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실험에 필자 또한 타의 반, 자의 반 쓰기로 약속한 ‘글쓰기(write)’를 시작하였다. 글쓰기에서 좋은 문장을 얻기 위해서는 손의 힘을 빼는 것이 필요할 터인데, 아마도 이것이 필자가 ‘그림에 say’를 쓰는 것에 더욱 더 필요할 것 같다.

소위 인문학의 위기, 철학의 위기를 겪는 동안 학자들은 현실과 대중에 다가가지 못했던 자기반성을 시도하였고, 이제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멀리 있는 것으로만 여겼던 ‘벗들’을 찾아 나섰다. 춘삼월이라 하지만 아직 봄꽃을 시셈하는 세찬 바람이 불어옴에도 불구하고, 그 바람을 뚫고서 상상마당 4층 강의실로 우산을 접듯 바람을 접고 ‘벗들’이 들어왔다. 벗이 있어서 먼 곳에서 찾아오니 즐겁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만약 그렇다면 마치 제자 이상적이 먼 곳에서 찾아왔을 때 추사가 세한도를 건네며 고마움을 표현했듯이, 이제 우리의 선학자들도 ‘벗들’에게 어떤 울림의 말을 해서 고마움을 표현할지 기대해 볼 일이다. 울림이 클 때 벗들도,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기쁨이 있을 것이다(學而時習之說也).

 

후기: 김민수 (한철연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