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회원들의 철학적 책읽기

난민과 국민 사이 ?재일조선인 서경식의 사유와 성찰 [청춘의 서재]

박민철(건국대학교 강사)

개인적으로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재일조선인 3세와 몇 일간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나는 재일조선인을 나와는 조금 다른 삶을 사는 ‘같은 민족의 동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러 이야기 끝에 이런 질문을 던졌다. “어렸을 적에 일본인 학생들과 많이 싸웠겠네요?” 서경식의 책을 통해 이 질문이 무지했음을, 아니 참으로 무례했음을 깨달았다.

“옛날에 탄광의 갱부들은 갱내 일산화탄소 농도를 알기 위해서 카나리아 새장을 들고 갱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카나리아는 사람보다 먼저 고통을 느끼고 죽음으로써 위험을 알린다. 식민지배의 역사 때문에 일본 사회에 태어난 재일조선인은 말하자면 ‘탄광의 카나리아’와도 같다.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경고하는 역할을 역사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다. 비유컨대 나의 저술은 질식해가는 카나리아의 비명과도 같은 것이다.” -서문에서-

서경식의 『난민과 국민 사이 ?재일조선인 서경식의 사유와 성찰-』은 그의 소개를 빌리자면 재일조선인론, 일본의 역사인식문제, 국가와 민족론 등에 대한, 한국인들이 읽었으면 싶은 평론 형식의 글을 모은 책이다. 서경식은 1951년 일본 쿄토시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자라온, 자신의 규정대로 하면 ‘재일조선인 2세’이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입장을 카나리아에 비유하며 재일조선인의 체험적 고통과 일본사회의 우경화에 대한 경고의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경고는 공격적이거나 선동적이지 않다. 오히려 타자에 대한 동정과 공감, 성실한 내부 성찰과 자기비판을 뿌리로 삼아 진지하고 담담한 언어로 표현한다. 그래서 따뜻하다. 그리고 한편으로 카나리아의 비명처럼 애절하다. 그의 글에서 느껴진 깊은 아픔과 좌절에 비하면 당시의 내 질문은 진정 무례했다. 이 책에는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가 펼쳐져 있다. 그 중 두 편의 짤막한 글을 소개하면서,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재일조선인인 그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다.

– ‘난민으로서의 재일조선인’

이 책에서는 ‘재일조선인’이 경험한 민족적 차별, 생생한 억압과 핍박, 처참한 아픔 등이 ‘이야기’되고 있다. 담담하게 고백하듯 서술된 서경식의 글은, 말과 글로는 설명될 수 없는 어떤 감정을 읽는 이로 하여금 가지게 만든다. 또한 우리로 하여금 재일조선인이 겪었던 아픔과 고통에 대한 깊은 공감과 더불어, 그들의 아픔을 잊고 있었다는 반성을 생겨나게 만든다. 어쩌면 그도 동일하게 재일조선인의 아픔을 철저하게 겪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조선에서는 19세기 말의 침략과 식민지배의 역사, 이어서 남북의 분단과 대립, 그리고 냉전의 와중에 디아스포라가 생겨났고 식민지배의 직접적 산물로서 재일조선인이 ‘반난민’의 상태로 살고 있습니다.”

서경식은 재일조선인을 ‘일제 식민지배의 역사적 결과로 구종주국인 일본에 거주하게 된 조선인과 그 자손’이라 규정한다. 하지만 뒤이어 그는 이 단순한 몇 마디의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재일조선인의 규정을 개인적인 가족사를 통해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일본의 패망 후 외국인등록령(조선인을 외국인으로 간주)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조선인의 일본국적 상실) 등과 함께 ‘조선’의 국적을 가지게 된 재일조선인의 국적취득 과정이 있었다. 당시 스스로를 국민으로서 귀속시킬 국가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그들은 ‘조선’이라는 민족적 태생을 선택해야만 했다. 하지만 자신들이 귀속될 수 있는 국가, 즉 조선이 존재하지 않았던 재일조선인은 곧 ‘국가로부터 쫓겨난 경험이 있고 여전히 국가로부터 내몰릴 위협에 시달리는’ 난민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난민으로서 재일조선인’들은 취업과 같은 사회 여러 부문에서 차별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한편 여러 설문조사를 통해 재일조선인의 일반적인 경향은 모국, 조국에 대한에 대한 애착이 희박해지고 일본 사회에 대한 애착이 널리 공유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서경식은 피차별자가 피차별의 체험을 표명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피차별자에게는 자기방어로 차별의 기억을 회피하려는 성향이 있다고 반문한다. 나아가 누구나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지역, 입에 맞는 음식, 친근한 벗에 대한 애착이 있기에 과연 이와 같은 것들이 ‘정말로’ 일본에 대한 애착일 수 있는지 묻는다.

그가 던진 질문, ‘난민으로서의 재일조선인’과 ‘일본 사회에 대한 애착’은 어쩌면 전자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외면했던, 후자는 우리가 편하게 믿고 싶었던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재일조선인’은 단순히 ‘민단계 재일조선인’과 ‘총련계 재일조선인’이라는 남과 북의 구분선에서만 존재했던 것 같다. 아니 ‘우리’라고는 말할 수 없어도 특히 ‘나’에게는 그러했다.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의 규정에 따라 ‘재일조선인’을 ‘남한 쪽의 민단계’와 ‘북한 쪽의 총련계’로 구분했다. 이 어처구니없는 형식적 구분이 얼마나 우둔했으며 무례한 것이었던지를 서경식은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식민지배를 통해 그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일본식민’이라 분류된 재일조선인을, 패망 후 일본은 재차 외국인으로 분류했다. 일본이 조선인들에게 주었던 억압과 고통을 ‘외국인’이라는 규정과 함께 부정해버렸다. 이것에 대해선 굳이 더 얘기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우리 역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을 단순히 남과 북으로 분류했으며, 그것과 함께 재일조선인의 아픔을 의식적으로 잊고자 했다는 것이다. 재일조선인이 생생하게 경험한 일제 식민지의 고통과 일본에서의 억압과 차별을 국가라는 형식적이고 단순한 틀 속에 묻어버리고 말았다. 일본이 재일조선인의 차별과 고통을 ‘외국인’이라는 규정으로 부정했다면, 우리 역시 ‘남한’과 ‘북한’이라는 구분 속에서 부정해버렸다. 설령 의식적으로 그랬던 것은 아니더라도 결과적으로 그러했다. 그 결과, 우리에게 재일조선인의 아픔은 단순히 탄광노동자, 징집병, 위안부 등과 같은 특수화된 이미지로밖에 남아있지 않다. 현실의 아픔은 없어지고 고통의 이미지만 남았다.

현재 재일조선인은 연평균 5,500여명에 이르는 귀화로 꾸준히 그 수가 줄어들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의 식민지배 역사 그리고 남북의 분단과 대립이라는 역사적 과정과 함께 생겨난 재일조선인은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존재이다. 그들은 단순한 ‘국가’라는 범주로 구분할 수 없는 생생한 역사적 존재이다. 특히나 역사 속에서 그들은 국가로부터 쫓겨난 경험이 있고, 여전히 국가가 보장하는 책임과 권리에서 차별과 외면을 당할 위협이 있는 존재인 셈이다. 재일조선인은 ‘난민으로서 재일조선인’이다.

그렇다면 ‘난민으로서 재일조선인’이 돌아갈 조국은 어떤 곳일까? ‘국민화’라는 구분 속에서 차별과 억압을 받았던 이들에게 돌아갈 ‘국가’를 다시금 묻는 다는 것이 어쩌면 가당치않은 질문이라고 할지라도, 무례를 무릅쓰고 묻고 싶은 질문이다. 서경식은 “‘조국’이란 어떤 영역, 토지, 혈통, 혹은 고유의 문화나 전통이라기보다 오히려 모든 정치적 조건들 아래서 선택되는, 미래를 향한 태도의 결정”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즉 조선반도라는 토지, 혈통, 문화, 전통과 분리된 존재인 재일조선인에게 ‘조국’은, 과거 고통의 역사가 되풀이 되어선 안 되는 곳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조국은 ‘한국’, ‘북한’, ‘일본’, ‘기타’와 같이 현재적인 의미에서 어떤 국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미래 지향적인 조국의 모습으로 규정된다. 이건 어쩌면 재일조선인이 필연적으로 도착할 수밖에 없었던 조국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우리는 재일조선인의 조국을 어떻게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었을까? 혹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우리들 마음대로 조국을 그들에게 부여하지 않았던가? 재일조선인들에게 국가라는 범주적 도식 속에서 조국을 부여하고, 어떤 억압적인 족쇄를 생각없이 채웠던 것은 아닐까? 잔인하게 반성하자면 ‘국민화’라는 또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말이다. 이젠 더 이상 그럴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을 현재 존재하고 있는 국가로의 범주화된 도식으로 내몰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미래의 모습으로 함께 나아가야 한다.

– ‘어머니를 모욕하지 말라’

제 1부 어느 편에 나오는 송신도 할머니는 1993년 일본에 거주하는 前 위안부로서는 처음으로 도쿄 지방법원에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송신도 할머니와 저자의 어머니는 동향同鄕에다가 동갑이라는 공통성을 갖는다. 또한 식민지배의 억압과 핍박 그리고 전후 일본에서의 민족차별과 성차별을 공통적으로 경험했다. 서경식은 송신도 할머니를 통해 자신의 어머니를 회상하면서 그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한 고통을 가슴 시리게 보여준다. 활자를 뛰어넘어 즉각적으로 느껴지는 감각으로서 말이다. 결과적으로 저자에게 송신도 할머니는 또 다른 어머니이다.

이 부분의 글을 읽으면 나도 모르는 눈물이 비쳐 나온다. 한편으론 그들이 겪었을 참혹한 고통에 대한 동정과 공감, 다른 한편으론 그동안 위안부의 존재를 머리로만 알고 넘어갔던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죄스러움 때문이다. 그녀들이 당한 행위에 대한 저자의 분노, 회한, 슬픔, 미안함 등은 그의 글에서 그대로 느껴진다. 그녀들의 고통과 아픔을 비슷하게 경험한 재일조선인이기에, 서경식의 글은 그녀들의 감정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루 70여명을 상대해야만 했던 열 여섯의 송신도 할머니에게 가해진 처참한 폭력과, 일본인 가정의 허드렛일을 맡아 하면서 여덟 살의 저자의 어머니에게 가해진 민족적 차별과 억압에 대한 서경식의 글은 단순히 ‘가슴아프다’라는 단편적 동정심을 넘어서게 해준다. 처참한 고통은 커다란 보편성,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는 보편적 동질감을 부여해준다. 같은 핏줄이어서, 같은 문화라서, 같은 언어를 씀으로서 갖는 동질감이 아니다. 아마도 극심한 고통에 대한 반발로서, 즉 고통받았던 이들에 대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게 될 보편적 연대감과 같은 말일 것이다. 같은 민족이란 “고통과 고뇌를 공유하면서 그 고통에서 해방되기를 지향함으로써 서로 연대하는 집단”을 의미한다는 서경식의 말은 따라서, 송신도 할머니는 이 글을 쓰는 지금 나의 또 다른 어머니임을 자각하게 해준다.

우리가 쉽게 사용한 재일조선인이란 말을 일본인들은 가장 차별적으로 사용해왔다. 모욕당하고, 버림받고, 얼굴을 가리고 피해갈 만큼 외면당해왔던 사람들을 ‘재일조선인’이란 공식적 명칭 속에서 은폐시켜버렸다. 아니 고통과 고뇌를 공유하기는커녕, 불편한 진실처럼 그리고 남의 일인 양 쉽사리 외면해왔다. 비단 일본의 우경화를 여기서 다시금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들 역시 가장 차별적인 그 단어를 ‘같은 동포’라는 무감각적 언어와 등치시켰다.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그들로서 박제화시켜버렸다. 어쩌면 우리들은 차별적 언어를 사용한 그들의 논리에 나도 모르게 포섭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앞서 얘기한 “어렸을 적에 일본인 학생들과 많이 싸웠겠네요?”라는 질문은 정말 무례한 질문이었다. 특히 나 스스로에게 절대적으로 그러했다.

“어머니를 향해 던져진 돌멩이를 이 몸으로 받으면서 ‘공식적 역사’가 묵살하고 은폐해온 어머니들의 역사를 위해, 어머니들과 함께 또 어머니들을 대신해, 자식인 내가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 자식인 우리가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카나리아의 비명을 질러야 한다. 이 책 3부의 제목처럼 ‘끊임없이 진실을 말하려는 의지’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그리고 동시에 ‘끊임없이 진실을 말하려는 스스로의 반성’이 필요하다. 서경식의 이 책은 나에게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과학, 그 불완전한 확실성 8-② [色 다른 책읽기]

손산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강사)

 

사례 1.

사건 번호: 04cv2688.

키츠밀러 대 도버 교육청(Kitzmiller vs Dover Area School District)

담당 법원 및 판사: 펜실베니아 중부 지방 법원, 존스(John E. Jones III) 판사

사건 개요:

2004년 11월 19일, 도버 교육청(피고)은 고등학교 과정 ‘생물’ 교과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보도 자료를 배포하고, 이를 이듬해 1월부터 시행하기로 한다. 간략하게 추려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다윈의 이론은 하나의 이론일 뿐이며, 따라서 새로운 증거가 발견될 때마다 그 진위를 판단해야 한다. 다윈의 이론은 사실(fact)이 아니다. 다윈의 이론에 있는 틈새들은 그에 합당한 어떠한 증거도 찾을 수 없었기에 존재한다. 이론은 광범위한 관찰들을 통합하는, 잘-다듬어진(well-tested) 설명으로 정의된다. 지적 설계론은 다윈의 견해와는 다르게 생명의 기원을 설명한다. …… 학생들은 어떠한 이론이던지 간에 열린 마음으로 대할 것이 권장된다.’ 따라서, 도버 교육청은 2005년부터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다윈의 진화론과 지적 설계론을 동등한 지위에서 가르치도록 결정한다. 도버 교육청의 이러한 결정에 반발하여 키츠밀러를 위시한 학부모들(원고)은 교육청의 결정은 미국 수정 헌법 1조(미연방은 국교를 수립할 수 없다) 및 14조(법률에 따른 평등한 보호)를 위배하고 있기에, 그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소를 제기한다.

판결 및 그 이유: 존스 판사는 139쪽에 이르는 판결문을 통해, ‘지적 설계론’을 교과 과정에 넣은 교육청의 행위는 레몬 대 쿠르츠만(Lemon vs Kurtzman 403 U.S. 602 (1971)) 판결이 제시한 일련의 기준 (레몬 테스트라 알려져 있다: 정부의 행위는 세속적인secular 입법 목적을 가져야 하며, 종교를 장려하거나 방해하지 않아야 하며, 종교와 ‘과도하게 얽혀있지’ 않아야 한다)을 통과하지 못했기에 미국 수정 헌법 1조 및 14조를 위배하고 있다고 판시한다.

사례 2.

1975년 어느 가을, 183명의 과학자들(18명의 노벨상 수상자 포함)이 바트 복(Bart Bok 천문학자), 로렌스 제롬(Lawrence Jerome 과학 작가), 그리고 폴 쿠르츠(Paul Kurtz 철학자)가 작성한 성명서에 서명을 한다. 이 성명서를 통해 이들은 ‘점증하는 점성학(astrology)의 영향력에 깊은 우려’를 나타내며, 점성학은 ‘신비적 세계관’의 산물로, 별들의 힘이 우리에게 미치기에는 ‘우리와 별들과의 거리가 너무 멀고’, 그 영향력은 ‘극히 미미하기에,’ 별들이 ‘우리의 운명에 영향을 준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 중 상당수는 사례 1과 2를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던 ‘과학’에 대한 생각을 아마도 재확인하지 않았나 한다. ‘그래, 우리가 생각하는 과학은 이런 거야!’ 하는 안도감과 함께. 러셀의 종교와 과학을 읽고 난 사람들의 감상도 아마도 마찬가지이지 싶다. 선명하게 대비시켜 배열된 종교와 과학 사이의 ‘투쟁사’는 깔끔한 그의 문장처럼 아주 명료하게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우리는 그렇게 ‘계몽’되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사례 1과 2를 이용해, 러셀이 주장하는 종교와 과학 사이의 ‘투쟁’을 조금 더 깊숙이 파고 들어보자.

 

과학이란 무엇인가?

러셀은 과학을 ‘관찰과 그것에 기반을 둔 추론을 통해 우선은 세계에 관한 특정한 사실을, 그 다음은 그런 사실들을 상호 연결해주고 (운이 좋으면) 미래의 현상들까지 예측 가능하게 해주는 법칙들을 발견’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9쪽). 아마도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과학에 대한 정의’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학의 정의가 사례 1과 2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사례 1에서 등장하는 ‘지적 설계론’은 우리가 ‘관찰할 수 없는 순간 (생명의 기원)’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기에, 우리는 큰 어려움 없이 지적 설계론을 과학으로부터 추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학의 대상을 ‘관찰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한정할 수 있는가? 사례 2의 경우는 ‘별들’과 ‘인간들’을 그 관찰의 대상으로 삼기에 일단 과학의 테두리 안에 들어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나아가 점성학은 별들과 인간을 이어주는 ‘경험적 법칙’을 발견하고자 노력하며, 이를 토대로 미래를 예측하고자 한다. 때에 따라 점성학자의 예측은 성공하기도 하지만 ‘운이 없어’ 실패하기도 한다. 앞의 성명서에서 언급된 점성학의 ‘신비적 기원’ 또한 문제시 되지 않는다. 만일 그 기원이 문제가 된다면 우리는 연금술에 기원을 둔 화학 또한 그 과학의 지위를 박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점성학을 과학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나아가 ‘관찰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는 과학자들을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현실 앞에서 (예를 들어 이론 물리학자들), 우리는 그들에게 교황이 호킹(S. Hawking)에게 했던, ‘빅뱅 이후의 우주의 진화를 연구하는 것은 괜찮지만, 빅뱅 그 자체 및 그 넘어는 연구하지 말라’는 충고를 되풀이해야만 하는 것일까? 아니면 러셀을 따라, ‘정확한 실험적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는 ‘철학적 불확실성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된다’ (98쪽)라고 선언해야 하는 것일까?

 

세속의 탄생: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시 사례 1로 되돌아가 보자. 필자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재판의 결과보다도, 미국의 입법가들이 그리고 존스 판사가 의식했건 의식하지 못했던 간에 사용하고 있는 ‘세속적이어야’ 한다는 문장이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세속적’이라는 표현은 ‘성스럽다(holy)’라는 표현과 대비되어 사용된다. 하지만 이 낱말들의 어원이 ‘전체로 완전함‘을 뜻하는 15세기 독일말 heil과 ’나이 먹음‘을 뜻하는 라틴말 saeculum에서 왔다는 것을 기억해낸다면 우리는 이야기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풀어 낼 수 있다.

우리 기억 속의 인간들은 그들이 이 땅에서 보낸 시간의 양 만큼 그들을 둘러 싼 세상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 했다. 종교 또한 이러한 인간의 열망 속에서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으며, 그리고 성장한다. 역사 속에서 ‘종교’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이 땅에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믿음의 체계’로 자신을 발전시켜 나아왔다. 종교의 ‘영성 체험,’ 또한 ‘약물’을 사용하던 ‘세계 종교(world religion)’에서 약물 사용이 필요 없는 종교로 통합 발전해 왔다. 이러한 발전 과정의 연장선 위에서 우리는 ’종교의 세계 이해‘를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기독교에서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나누는 (레위기 11장, 신명기 14장) 구분은 메리 더글라스(M. Douglas)의 지적처럼 ’완전한 것을 따라서 성스러운 것을 추구하던‘ 고대 유대인들이 ‘그들의 생물 구분법’의 경계선상에 있는 동물들을 ‘부정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더글라스는 고대 유대인들이 비늘 없는 물고기를 ‘완전한’ 물고기로, 날지 못하는 새를 ‘완전한’ 새로 볼 수 없었을 것이라 지적하며, 만일 중동에 펭귄이 살고 있었으면 틀림없이 펭귄 또한 부정한 짐승의 목록에 들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러한 종교의 이해가 받아들여진다면, 우리는 종교에서, ‘완전한’ 그들의 신관(神觀)과 ‘공존하는 그들의 세계 이해’를 구분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즉, 우리는 성스러운 것으로부터 나이를 먹는, 따라서 변화하는, 덕분에 ‘세속적인’ 우리의 세계 이해를 구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과학: 경험 속의 완전함의 추구에서 불완전한 확실성의 추구로

‘실체substance는 통사론에서 나온 개념이며, 통사론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구조를 결정한 원시 종족들의 다소 무의식적인 형이상학에서 나왔다. 문장은 주어와 술어로 나뉘는데, 어떤 단어들은 주어 혹은 술어로서 존재하는 반면, 오직 주어로만 (매우 엄밀한 의미에서는 아니라 할지라도) 존재하는 단어들도 있는 것 같았다. 바로 이런 단어들 – 고유 명사가 가장 좋은 예인데 – 이 ’실체‘를 의미한다. 동일한 개념을 표현하는 일상적인 단어는 ’물체thing’ – 인간에게 적용될 때는 ‘인격체person’ – 이다. 실체라는 형이상학적 개념은 어떤 물체나 인격체가 의미하는 바에 정확성을 부여하기 위한 시도일 뿐이다’ (102쪽). 이제 우리는, 다소 두서없이 등장한 러셀의 이러한 지적을 그의 ‘종교와 과학’ 안에 등장하는 수많은 갈등의 예들과 ‘함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종교와 과학 사이의 갈등을 ‘경험 속의 완전함의 추구 (성과 속의 일치)’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성으로부터 속을 분리해 냄으로써 갈등의 해소 또한 간단하게(?)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간단함이 인간 지식의 역사라고, ‘불완전한 확실성’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세속적인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이 무리 있는 표현은 아닐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사실 오류라는 영원한 희극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103쪽)라는 러셀의 표현은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부언:

참고로 미국 수정 헌법 1조 (국교 수립의 금지)와 관련된 판례들 중, 멕레안 판례(McLean vs Arkansas Board of Education 1982)가 처음으로 ‘과학’에 대한 전문가 증언을 ‘비’ 과학자인 마이클 루스(Michael Ruse)로 부터 구했다 (그는 과학 철학자이다). 점성학과 마찬가지로 과학자들 사이에서 과학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 미국 ‘초능력 협회’ 또한 미국 과학 진흥 협회(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협회는 황우석 사건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SCIENCE’라는 학술지를 펴내고 있다)의 준회원 기구로 아직까지(2011년 현재) 남아 있다.

참고 문헌

메리 더글라스 (1997 [1966]) 순수와 위험. 유제분, 이훈상 옮김. 서울: 현대미학사.

버트런드 러셀 (2011 [1935]). 종교와 과학. 김 이선 옮김. 파주: 동녘.

Bok, Bart J., Jerome, Lawrence E., and Kurtz, Paul (1975). “Objections to Astrology”. The Humanist. (September) 4-6. available at http://psychicinvestigator.com/demo/AstroSkc2.htm

Tammy Kitzmiller, et al vs Dover Area School District (400 F. Supp. 2d 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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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시대와 철학>이 기획하여 진행하는 책읽기 코너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저자 혹은 역자, 학자와 전문가, 일반 독자와 편집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책 읽기, 세상 읽기를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色 다른 책읽기>의 여덟 번째 책은 버트란드 러셀의 <종교와 과학>(김이선 옮김, 동녘 펴냄)으로, 이한오(성공회 신부), 손산(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강사), 오상현(상지대 강사)님의 글을 실었습니다. 기존의 ‘4인 4색의 책읽기’의 변화된 기획입니다.

 

종교가 종교답고 과학이 과학다운 세상을 그리며 8-③ [色 다른 책읽기]

오상현 (상지대 강사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우리 집 종교의 역사는 좀 화려한 편이다. 아버지는 결혼 전에 한동안 남묘호랑게교(SGI)에 심취하셨고, 어머니도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흔치 않은 종교인이셨단다. 그런 두 분이 만나 결혼을 하셨고 그리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종교의 은혜(?)로 말미암아 나를 얻으셨다. 얼마 전까지도 이모 한 분의 종교는 대순진리교였고 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지만 작은아버지의 가족들은 원불교도시다. 다양한 종교인을 친인척으로 두었던 과거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포부도 당당했던 철학과 신입생 시절에 내 관심은 온통 ‘종교철학’에 있었다.

 

종교와 과학, 그 진부한(?) 이야기

아직도 서점에 가보면 ‘종교와 과학’에 관한 신간들이 종종 눈에 띈다. 대개 종교와 과학을 대립적 구도로 나누고,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 승리를 안겨주는 것으로 끝을 맺는 것이 대부분이다.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진화론’ 연구도 상당히 ‘진화’했다. 이에 응전하기 위해 종교도 ‘창조론’에서 ‘지적 설계론’ 등의 대항마를 만들어 전쟁을 치렀지만 대부분의 승리는 과학의 몫으로 돌아가는 듯하다.

과학적 성향은 신중하고 잠정적이고 점진적이다. 자기가 획득한 최고의 지식조차도 전적으로 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이론은 머지않아 수정되어야 하며, 이 필연적인 수정 과정에는 연구와 토론의 자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219p.)

‘종교’와 ‘과학’은 사실 서구 사회를 이룬 두 가지 핵심 축이라 할 수 있는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헤브라이즘’은 신 중심적이고 초월적인 기독교 사상을 말하고 ‘헬레니즘’은 고대 그리스에 기원을 둔 인간 중심적이고 합리적인 사유를 일컫는다. 러셀도 이런 관점에 동의하고 있다. <종교와 과학>에서 그는 ‘종교’를 기독교에 한정하고 있으며 ‘과학’을 합리적 토론과 자유로운 연구를 통해 언제든 수정 가능한 것으로 간주한다. 요컨대, 종교와 헤브라이즘, 과학과 헬레니즘은 치환이 가능한 것이다.

길에서 두 사람이 대화를 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중국인과 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일본인이 대화의 두 주인공이다. 만약 이들이 특정한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토론을 하고 있노라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쉽게 믿기 어려울 것이다. 의미 있는 논쟁이 오고가기 위해서는 먼저 말이 통해야 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종교와 과학의 논쟁이 진부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삶은 늘 ‘판단’의 연속이다. “지난 주 ‘나는 가수다’의 1위는 박정현이야.”라는 식의 판단은 ‘다시 보기’를 통해 참이냐 거짓이냐를 가려낼 수 있는 것으로 우리는 이것을 ‘사실판단’이라고 한다. 반면에 “대한민국에서 제일 예쁜 여배우는 송혜교야.”라는 판단은 그야말로 자기 주관적 호불호(好不好)에 의해 내려지는 판단으로 우리는 이것을 ‘가치판단’이라고 한다.

‘가치’의 문제는 과학의 영역을 넘어 전적으로 지식의 영역 밖에 놓여 있다. 다시 말해, 이것 혹은 저것에 ‘가치’가 있다고 주장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 개인적인 감정에 상관없이 언제나 참인 어떤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204p.)

러셀의 주장대로 ‘가치’의 영역은 과학이 추구하는 ‘사실’의 영역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다. 앞서 종교와 과학의 논쟁을 진부하다고 혹평한 까닭은 두 주장이 실은 전혀 다른 영역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쟁하려 애쓰는 모습이 마치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상대방의 말을 이해할 수도 없으면서 합의점을 찾으려는 우격다짐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논쟁이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주장을 말이나 글로 펼치면서 다투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논쟁의 당사자는 상대의 합리적 이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래야만 ‘논쟁’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논쟁’은 합리적이어야 하며 러셀의 표현처럼 ‘과학적 성향’이 필요한 영역이다. 종교가 늘 과학과의 논쟁에서 지는 까닭은 싸움의 규칙 자체가 과학의 편에 서 있기 때문이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로 무장한 근대 이후의 사람들에게 ‘가치판단’의 문제를 설득하려는 시도는 애초부터 무모한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러셀이 이 책을 쓴 진짜 이유

서양 근대의 합리주의는 데카르트에서 비롯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 명제로 유명한 그는 『방법서설』에서 “학문에서 어떤 확고부동한 것을 이룩하려고 한다면 지금까지 믿어왔던 모든 견해를 벗어나 아주 기초부터 새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지금껏 믿어왔던 경험적 사실들을 모두 부정하고 명석하고 판명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지식인의 임무라는 것이다.

과학적인 방법을 제외하고는 진리에 도달하는 어떤 다른 방법도 인정할 수 없다. 그러나 감정의 영역에서 종교의 근원을 이루는 경험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경험은 잘못된 믿음과 결함하여 선뿐만 아니라 많은 악을 낳았다. 그런 결함에서 풀려난다면, 바라건대 오직 선만이 남을 수 있을지 모른다. (166p)

러셀은 종교와 과학의 논쟁이 단지 무의미한 것들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그가 데카르트의 전통 위에 서 있는 인물이었고 그로 인하여 <종교와 과학>의 대부분에서 과학의 손을 들어주고 있기는 하지만 종교 자체가 의미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다만 종교가 잘못된 믿음과 결합하여 만들어낸 많은 악에 대한 우려가 있었을 뿐.

러셀은 초기에는 수학이나 논리학, 과학 등에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이와 관련한 많은 책들을 집필했다. 또한 철학사가로서 오늘날에도 널리 읽히고 있는 <서양철학사>를 남기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윤리학이나 정치?사회?교육 등의 분야에도 전문서적을 펴냈으며 급기야 1950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러셀이 오늘날 우리에게 귀감이 되는 것은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거나 학문에 대한 욕심과 노력이 남달랐음에 있지 않다. 그의 삶이 던지는 묵직한 메아리는 그가 단지 배우고 익히는 것에서 머무르지 않고 반드시 실천으로 옮기려한 지식인이었다는 것에 있다.

<종교와 과학>이 의미 있는 까닭은 러셀이 단순히 종교와 과학의 다툼을 나열하고 과학의 승리를 언명하고자 함에 목적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교와 과학>에는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의 고뇌가 담겨있다. 핵무장을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했던 평화주의자였고 옳지 못한 국가권력에 맞서 ‘불복종운동’을 주장하기도 했던 그의 실천적 행위는 그 내면에 자리했던 ‘인류의 고통에 대한 연민’이 필연적이고 자연스럽게 표현된 것이다.

오늘날의 위협은 정부로부터의 위협이다. 혼돈과 무질서라는 현대적 위험 요소 때문에, 오늘날 정부는 이전에는 교회의 권위에 부여됐던 신성불가침의 특성을 이어받았다. 그러므로 낡은 형태의 박해가 사라졌다는 것에 만족하며 자축하기보다는 새로운 형태의 박해에 저항하는 것이야말로 과학자를 비롯하여 과학적 지식을 가치 있게 여기는 모든 이들의 명백한 의무라고 할 수 있다. (223p.)

새로운 진리는 종종 불편하다.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욱이 그렇다. 그러나 새로운 진리야말로 잔인함과 편협함으로 얼룩진 기나긴 역사 속에서도, 총명하면서도 방종한 우리 인류가 이루어낸 가장 중요한 성과물이다. (224p.)

러셀은 ‘신성불가침의 특성을 이어받은 새 권력들’을 ‘신흥종교’라고 불렀다. 러셀이 비유한 ‘신흥종교’는 오늘날 ‘국가 권력’이나 ‘자본 권력’ 등의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러셀은 이런 ‘신흥종교’가 자행하는 수많은 악행에 저항하는 것이야말로 합리적 이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과제라고 생각했다.

자기계발서가 넘쳐나고 있는 요즘 누군가 말했다. “누가 이 좋은 말들을 몰라서 이러냐? 실천하기 어려워서 그러지.”라고. ‘앎’이 진정한 ‘앎’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행동’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 간단하면서도 울림이 강한 진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현자(賢者)들에 의해 회자되었다. 그러나 실천은 늘 어려운 법?!

 

반성이 없다면 미래도 없다.

공자님 말씀을 들어보자.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政)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답하길 “군주는 군주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합니다.” (『논어』, 「안연」)

위에서 공자가 강조한 것은 ‘자기 이름에 걸맞게 행동하라’는 것이다. 각자 자기의 역할에 충실할 때에 비로소 정치가 바르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이른바 공자의 ‘정명(正名)’이다. 나는 종교와 과학의 미래도 ‘정명하는 것’에 그 운명이 달려 있다고 본다.

예수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사랑’이다. 그것도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종교를 이유로 자행된 전쟁들과 그로 인해 희생된 수많은 죄 없는 사람들을 우리는 역사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오늘날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신다면 당신의 이름을 들먹이며 잘못된 ‘이웃사랑’을 펼쳤던 그들을 칭찬하실 수 있을까? ‘종교’란 삶에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안식을 주며 권력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잊지 않고 따스한 온정을 베푸는 사회의 정화장치가 아니던가?

과학은 인간의 수고를 덜기 위해 발전해왔다. 그것도 선택받은 소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 모두에게 이로움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해 준 것도 과학의 힘이고, 짧은 시간에 멀리 데려다주는 것도 과학의 힘이다. 그러나 대량살상무기도 과학의 힘이고 방사능물질 오염도 또한 과학의 힘이다. 오늘날 과학은 이처럼 인간을 위하던 초심을 잃고 자본이나 권력의 노예로 전락하기도 했다.

종교가 신성하고 고귀한 겉옷을 벗고 낮은 데에 임하는 것, 다툼이 있는 곳에 사랑을 전하고 아픔이 있는 곳에 위로를 건네는 것, 그것이 종교다운 것이며 종교가 지향해야 하는 길이다. 과학도 이제 권력과 자본의 노예에서 벗어나 ‘돈 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위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선택 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인류 모두’를 위해서 말이다.

종교건 과학이건 무턱대고 믿는다는 것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까닭이 ‘사유함’에 있다면 자기가 믿는 바―그것이 종교건 과학이건―가 혹 저지를지도 모르는 잘못을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종교가 종교답고 과학이 과학다운 세상은 아직도 멀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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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시대와 철학>이 기획하여 진행하는 책읽기 코너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저자 혹은 역자, 학자와 전문가, 일반 독자와 편집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책 읽기, 세상 읽기를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色 다른 책읽기>의 여덟 번째 책은 버트란드 러셀의 <종교와 과학>(김이선 옮김, 동녘 펴냄)으로, 이한오(성공회 신부), 손산(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강사), 오상현(상지대 강사)님의 글을 실었습니다. 기존의 ‘4인 4색의 책읽기’의 변화된 기획입니다.

프란츠 파농 『검은 피부 하얀 가면』[청춘의 서재]

김 범 수(한국철학사상 연구회 회원)

 

며칠 전 머리를 하러 갔다. 동네 미용실이란 원래 아줌마들의 수다 공간이다. 나는 남자인 관계로 그 수다에 끼지 않는다. 단지 구경만 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네 미용실을 갈 때면 사람이 없는 시간에 주로 간다. 그런데 이날은 이미 손님으로 두 명의 아줌마가 있었다. 나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구석에 앉아 있었다. 무려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책을 보는 척하면서 귀는 아줌마들 수다에 향해 있었다. 그렇지만 별로 유익한 정보는 없었다. 드라마 얘기. 학원 선생님 얘기. 아이 잘 키우기 위한 수다도 있었지만 드라마에서 잘 생긴 사람 얘기는 왜 저렇게 하는지… 수다를 듣느니 차라리 여성 잡지를 보는 것이 나을 것도 같았지만, 뭐 자리가 자리인지라 여성 잡지 보기도 민망한 상태였다. 그저 가지고 다니는 책의 책장만 넘기고 있었다. 아줌마들이 가고 내 차례가 되자 미용사는 나 역시 수다의 대열에 합류시키려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수다에 끼고 싶지가 않았다. 가오가 안서지 않는가? 아저씨가 아줌마 수다에 동참하다니… 눈치를 살피던 미용사는 친근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책 많이 읽으시는 것 같은데 가실 때 제가 읽을 수 있는 책 좀 추천해 주세요.”

에고. 또 골치 아프게 됐군. 책 추천을 안 하자니 그렇고 하자니 그렇고. 참 거시기한 상황이다. 내가 아는 책은 어려운 책인데 그런 책을 추천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안 하면 매우 불친절한 사람처럼 보이고. 그 여자는 분명 의도하지 않았지만 사교 언어의 진수를 보여 주었다. 형식적인 얘기를 넘어서 진정성마저 느껴지는 그 한 마디가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도대체 무슨 책을 추천해야 하지? ‘차라리 영화를 추천하라고 하지. 왜 하필 책이야?’ 속으로 뇌까렸다.

영화 <방가방가>가 생각이 낫다. 왜일까? 그리고 조금 오래 된 영화지만 <바리케이트>라는 영화도. 두 영화 모두 외국인 노동자가 출현한다. 그 외에 공통점은 없는 듯하다. 오히려 선명하게 차이점이 부각된다. 이런 저러한 생각을 하다가 정작 미용사의 요구에는 어떤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그 여자랑 수다를 떨어줘야 예의일 것 같다는 생각만 했다. 그렇지만 책 얘기는 싫었다. 이럴 때 화제 전환이 최고다. ‘밥 먹었어요?’

아! 그런데 여기에 책을 소개하려고 한다. 여기서는 화제 전환도 되지 않는다. 그냥 노골적으로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젊은이가 젊은이에게 책을 소개한다. 괜히 낯간지러운 짓하는 것 같다. 그래서 두 편의 영화와도 관련되면서 불쑥 떠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요즘은 할 수 없지만 하릴없을 때 흔히 하는 놀이가 있다. 먼저 tv 앞에 앉는다. 리모컨으로 tv를 켠다. 리모컨으로 이리저리 채널을 돌린다. 한 바퀴, 두 바퀴. 이렇게 놀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어느 날인가 여느 때와 같이 TV를 켰다. 채널 돌리기 놀이를 하다가 채널을 고정한 곳은 다큐멘터리. 남아메리카 원주민의 일상을 소개하고 있다. 최소한의 가릴 곳도 제대로 가리지 않은 그들의 일상이 재밌게 다가왔다. 늘어진 여성의 가슴도 여과 없이 들어왔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아니 공중파에서 여성의 가슴이 노출되어도 되는 거야?’ 만일 저 모습이 서양 여성이었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난리 났을 법도 하다. 여성에 대한 시각만 그럴까?

몇 해 전부터 한국계 외국인, 정확하게 보자면 서양인의 피와 섞은 남자 배우들이 인기가 좋다. 다니엘 헤니, 데니스 오, 줄리엔 강 등. 키도 크고 잘 생겼다. 여성의 애간장을 녹이기에 충분하다. 이들이 혹시 적당히 벗고 나와 준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드라마에서 이들의 샤워 신이라도 있다면, 완전 계 탄 날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왜 원주민은 안 되는 것일까?

여기에는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가 바라보는 백인과 유색인에 대한 상상적 이미지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각은 우리의 심층 속에 자리잡고 있다. 너무도 당연하게 느끼는 것을 보니.

이런 얘기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이 있다.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 그것이다. 이 책은 흔히 포스트콜로니얼리즘 시대의 책이라고 한다. 말이 어렵다. 탈식민지주의라고 말해야 할까? 그런데 이 말도 어렵다. 우리가 식민지가 아니기에 무슨 해괴한 소리인지.

먼저 프란츠 파농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프란츠 파농은 서인도 제도의 한 섬에서 태어났다. 프랑스에서 의학을 공부했고, 이후 알제리로 이동해서 여기서 정신과 의사로 활동하면서 알제리 독립 운동에 가담하기도 했다. 파농은 알제리가 독립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알다시피 알제리는 프랑스의 식민지 통치를 받아왔다. 전세계에서 프랑스만큼 자유를 추구하는 나라가 얼마나 있을까? 그럼에도 프랑스의 지식인들도 알제리의 독립에 대해서는 반대하거나 침묵했다.

파농의 입장에서 보자면 알제리 독립에 침묵하던 프랑스 지식인들의 모습이 싫었을 것도 같다. 그렇지만 정작 그가 더 심각한 문제로 생각하는 것은 흑인들의 사고방식이다. 일종의 식민주의 심리학이 팽배해 있었던 때문이다. 피부색과 관련한 열등 콤플렉스가 집단적으로 발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너무도 심각해서 하나의 신화가 된 상황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현상을 분석하고 내면화하는 것이리라.

언젠가 빈민운동은 빈민과 싸워야 하고, 여성운동은 여성과 싸워야 한다는 말을 들을 적이 있다. 빈민이 갖고 있는 패배의식, 도저히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좌절감. 이런 의식으로 팽배해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희망도 사치에 불과할지 모른다. 가난이란 경쟁 자본주의에서 어쩔 수 없는 장식일지도 모른다. 그 의식을 꺾지 못하면 어떤 노력도 허망할 수밖에 없다. 파농도 식민지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일차적인 상대는 프랑스가 아니라 검은 피부의 인간들이었을 것이다. 흑인도 열등감에서 벗어나서 백인들(프랑스인들)과 동등한 위치에 있고 싶어도 뼛속까지 침투해 있는 콤플렉스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파농이 느꼈던 이런 감정은 한류 열풍의 중심지에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야’ 한류의 열풍으로 자긍심을 갖고 있는 것과 상관없다. 말하자면 우리에게는 콤플렉스를 치유할 수 있는 자긍심이 있다고 해도 소용 없다. 의식 깊숙한 곳에는 상상과 실재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 콤플렉스가 있다. 경제적 잣대로 사람마저도 나누는, 그래서 백인에 대한 호감을 넘어서 성적 지향성마저도 편중되는 현상. 외모에 대한 기준마저도 서구로 변해버린 세상.

영화에서도 비슷한 감정이 느껴진다. 외국인 노동자는 한국인과 동등한 위치에 놓일 수 없다. 심지어는 다문화 정책에 대한 비판도 서슴없이 나오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취업이 늘면서 정작 내국인의 취업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외국인 노동자의 범죄 사실을 통해서 그들을 추방시켜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우리에게 노동력이 아니라 자본을 갈취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투자라는 미명 하에 국내 자본을 잠식하는 세력은 누구인가? 왜 같은 피해를 입히는데 누구는 미워하고 누구는 좋아하는 것인가?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을 읽으면 우리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콤플렉스, 어렵게 말하면 옥시덴탈리즘의 가면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의 문제를 우리 의식의 문제로 확대해서 읽어본다면 상상 속에서 날조된 우리의 모습을 반성할 수 있을 것이다.

『믿음에 대하여』- 지젝 [청춘의 서재]

김종곤(건국대학교 강사)

신혼여행 가는 길이었다. 비행기를 타려고 대합실에서 지친 몸을 의자에 기대고 있는데 아내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나에게 주변 사람들을 보란다. 우리의 목적지가 신혼 여행지로 인기가 있는 곳 중 하나이기에 많은 신혼부부들이 그 비행기를 타려고 기다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두가 우리가 같은 신혼부부로만 보였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서 어떤 특이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자 아내는 한명한명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들이 들고 있는 가방과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와 같은 ‘물건’들을 설명해준다. 아내의 설명 요점은 그것들이 모두 고가의 ‘명품’이라는 것이다. 그때까지는 아내의 설명이 지닌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려할 때 난 비로소 아내가 하려는 말이 ‘신혼여행=명품소비 여행’이라는 것을 알았다. 돌아오는 비행기 게이트 앞에서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무엇인가를 사고 있었다. 나도 기념이 될 만한 물건이 있으면 골라봐야지라는 생각으로 아내의 손을 이끌었다. 하지만 이내 그것이 공항 외부 면세점에서 구입한 물건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임을 알았다.

몇 백 만원에서 몇 천 만원까지 하는 가방, 시계와 물건은 또 다른 몇몇 가지의 물질을 가공한 구성물이다. 그것은 나름의 실용성에 바탕을 둔 가치를 가진다. 하지만 명품 소비는 그 실용성을 욕망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왜냐하면 잡동사니를 담는 물건, 시간을 측정하는 물건에 그렇게 열광할 이유는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소비는 그것을 넘어 ‘다른 무엇’을 욕망하는 듯 보인다. 지젝은 이러한 소비의 형태를 자신의 책 『믿음에 대하여』(최생열 역, 동문선)에서 ‘잉여 향유’(plus de jouir)라 부른다. 즉, 오늘날의 소비에 있어 우리의 욕망을 사로잡은 것은 물건에 달라붙어 있는 ‘더 이상의 어떤 것’이라는 것이다. 지젝의 말에 따르면 오늘날의 소비주체는 “자신의 욕망의 실체를 회피하는 방식으로 작용하는 그릇된 상상의 잉여”(37)를 향유하고 있는 것이 된다.

잉여는 환상적 이미지와 같은 것이다. 한 자동차 광고를 보자. 길거리에서 만난 친구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어떻게 지냈냐고 물어본다. 그러자 그 친구는 ‘육체’를 통해 나오는 음성 대신 옆에 세워져 있던 고급 세단을 향해 리모컨을 누른다. ‘비육체’적인 검은색 자동차는 “뽕뽕”하고 비언어적 소리를 낸다. 그런데 신비롭게도 이 광고를 보고 있는 우리는 자동차의 비언어를 이해하면서 리모컨을 눌렀던 친구의 대답을 듣는다. 그 대답 속에는 그 친구의 지난 과거와 현재가 담겨있다. 고급 세단을 살 만큼의 화폐를 축적했으며 그래서 지금 세단의 평가등급 만큼과 같은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말이다. 우리는 여기서 맑스가 말하는 물신숭배(fetishism)를 발견한다. 비육체적인 물질과 교환되는 화폐량이 곧 그것의 가치 전부를 대변하면서 육체(생명)들 간의 사회적 관계는 물질과 물질 간의 관계라는 환상적 형태를 취하게 된다. 맑스는 이것이 노동생산물이 상품으로 생산되는 순간 달라붙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소비주체가 소비하고자 욕망하는 것은 노동생산물에 달라붙어 있는 바로 ‘잉여’가 아니겠는가? 지젝이 그러한 것처럼 충동의 목적(goal)과 목표(aim)를 구분해서 보자면(101), 여기서 충동의 목적은 자동차를 소유하는 것이지만, 목표는 그것을 통해 얻는 쾌락이다. 그것은 타인과의 차이를 확인하는 것일 수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외설적 초자아(superego)의 부름에 부흥한 안도감이면서 기쁨이다. 이것의 의미는 오늘날의 소비 사회를 진단하는 지젝의 말을 단초로 해서 찾아진다.

“‘소비 사회’에 해당하는 후기 자본주의는 더 이상 영웅적 행위를 통해 한계를 뛰어넘도록 요구하는 방식으로 유지되는 질서가 아니다. 후기 자본주의의 일반화된 잉여에서 위반 자체가 권장되었고, 우리는 매일 우리로 하여금 남용을 일삼게 할 뿐 아니라 새로운 잉여를 직접적으로 장려하고 유혹하는 발명품들과 사회 형태들에 의해 세계를 받는다.”(28)

초자아는 이드(id)의 충동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법, 도덕 기능을 한다. 하지만 소비사회에서 초자아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형제들을 잡아먹은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 법적 질서와 도덕적 규범을 위반하는 외설적 아버지이다. 오늘날 소비사회는 죽음에 맞서 자신의 충동에 충실한 안티고네를 넘어서, 제우스가 죽인 자신의 외설적인 아버지 크로노스를 되살리고 있다. 아이폰 광고에서 우리는 그러한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아버지의 말씀에 따르면 아이폰을 가지지 않는 것은 남들이 하는 이것저것을 할 수 없는 ‘바보’가 된다. 그것은 마치 옆 집 아이는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엄친아인데 너는 왜 그러냐는 식의 꾸지람과 같다. 이제 필요에 따른 소비 혹은 절제된 소비는 외설적 초자아 앞에서 ‘우둔함’이 된다. ‘미덕’은 경계 없는 소비이면서 다시 순환해서 돌아오는 소비이다.

그런데 이 외설적 아버지는 어디로부터 귀환했는가? 죽은 자를 다시 부활시킨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안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잉여향락이 가져다주는 짜릿함은 ‘자본의 욕망’이 우리 안으로 파고들어오도록 허락한다. 그리고 우리를 뚫고 들어온 그것은 우리의 몸 속에서 기생하며 우리의 몸을 지배한다. 마치 영화에서 괴물이 사람들의 몸에 들어가 그들을 지배하듯이 말이다. 이제 이 기이한 괴물은 인간이 먹는 것을 받아먹는다. 인간은 아무리 먹어도 배가 채워지지 않고 허기진다. 굶주린 인간은 좀비와 같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찾는다. 하지만 그때마다 인간에게 남는 것은 단지 음식이 입안으로 들어왔을 때 느끼는 잠시 동안의 즐거움, 텅비어있는 기표의 소비뿐이다. 그래서 우리의 소비욕망은 라캉이 말한 것처럼 자신의 욕망이 아닌 타인의 욕망이다.

입으로 들어간 것이 있으면 밖으로 나오는 것이 분명 있다. 그것은 우리의 몸으로 배출하는 것이지만 사실 우리의 몸속에 있는 괴물의 배설물이다. 배설물은 입으로 들어갈 때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서 일그러지고 혐오스럽다. 그 “외부화된 배설물은 인간 몸체를 식민화하는 이방적 괴물에 정확히 상응”(69)한다. 그것은 항문적 대상으로서 똥이기에 누군가가 보기 전에 변기에 물을 내리듯이 감추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것이 괴물의 배설물이라는 것, 나의 욕망이 타인의 욕망이라는 점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자신의 소비행위가 자신의 자율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원한다면 A를 누르고, 원하지 않는다면 B를 누른다. 역설은 우리가 선택의 욕구를 끊임없이 분출하고 성적 욕구나 민족 정체성과 같은 ‘자연적’ 특성들이 선택의 문제로서 경험되는 전통 사회 이후의 ‘반사적 사회’에서는, 그간 철저히 배제되었던 요소들이 근본적이고 진정한 선택으로 간주된다는 점에 있다.”(37)

이는 라캉의 믿음 공식, 즉 이데올로기와 관련된다. 지젝은 그것을 그의 다른 책(『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등)에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설명한다. ①고급 세단이 나의 사회적 지위를 표현해준다고 믿는다. ②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③‘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믿는다. ①의 믿음은 ②에 의해 부정된다. 지젝은 이를 냉소적 이성에 따른 결과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①의 믿음이 극복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잉여항략이 ①의 믿음을 ③의 믿음과 같이 전복시켜 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믿음은 나의 믿음이 아니다. 그것은 외설적 초자아의 기대에 형성된 타인의 믿음이다. 타인의 믿음을 믿음으로 해서 우리의 소비선택은 나의 자율적 행위라는 환상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이렇듯 외설성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외설성은 자신의 타율성을 우리의 자율성으로, 타인의 욕망을 나의 욕망으로 믿게끔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소비사회의 생명은 ‘살아 있는 죽음’이다. 여기서 벗어나 하나의 생명으로 살아나는 방법은 외설적 초자아를 몰아내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을 찾기 힘들어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라는 또다른 과제를 남긴다. 그것은 어쩌면 오늘날 새 역사를 준비하는 청춘의 몫이 아닐까 싶다.

[월례발표회 참관기] 조영준 선생의 논문 ?주체로서의 자연?에 관하여

?[2011년 8월 월례발표회]

 

논문 제목: 주체로서의 자연 -셸링 자연철학의 생태학적 함의
발표자: 조영준(경북대)

 

조영준 선생의 논문 ?주체로서의 자연?에 관하여

후기: 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

 

1.

한국에서 철학자 셸링은 영 찬밥이다. 발표자 조영준 선생이 아마도 한국에서 유일한 셸링 연구자가 아닐까 한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독일 고전철학자 가운데 칸트와 헤겔만이 주로 언급되어 왔다. 이것은 일본에서 셸링이 주로 언급되는 것과 비교해 보면 무척 흥미롭다. 하여튼 그러다 보니 독일 고전철학은 한국에서 무척 심심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그것은 독일고전철학의 핵심적인 문제가 그저 형이상학적인 문제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다시피 독일 고전철학의 역사는 셸링이 끼어들면서 극적으로 반전된다. 여기에 비극적인 시인 횔덜린의 삶까지 엮어놓으면 이제 사람들은 독일고전철학이 수 세기에 걸쳐서 철학자들 심성을 왜 그렇게 자극했는지 이해할 것이다.

칸트와 자유, 튀빙엔 신학대학에서의 자유의 나무, 천재 셸링, 사랑에 빠진 셸링의 도피와 은거, 『정신현상학』에서 헤겔의 분노, 횔덜린의 혁명 음모와 체포, 학생운동의 발상지 예나대학, 나폴레옹의 침략과 독일낭만주의의 변절, 프러시아의 개혁, 헤겔과 베를린 대학, 시인 횔덜린의 비극 적 파멸, 베를린 대학에 등장한 말년의 셸링 등등. 이 많은 사건들은 독일 고전철학의 역사가 한 민족의 운명과 직결된 드라마였음을 드러내 보인다. 여기에 헤겔 이후 헤겔좌파의 역사까지 보태면, 1793년 칸트의 『한갓된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로부터 시작하여 1847년 마르크스의 『독일 이데올로기』에 이르는 거의 50년에 걸친 철학의 역사는 세계사적인 획기를 이루어낸 엄청난 드라마였다.

필자는 『헤겔 정신현상학』 ?서론?을 주석(『영혼의 길을 모순에게 묻다』)하면서 이 세기의 드라마를 풀어보려 하였으나 아직은 역부족이었다.

필자가 독일 고전철학의 역사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그 철학의 역사가 오늘날 한국에서 다시 한 번 변주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한국에서 사회주의 사상과 포스트모더니즘, 라캉과 들뢰즈, 그리고 한국좌파 운동에서의 분열을 셸링과 헤겔의 대결이라는 모델 속에서 이해한다.

다행이 셸링 연구자가 한국에 출현했으니 이를 계기로 다시 한 번 독일 고전철학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그러니 필자로서는 이번 발표에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오래 존경해마지 않는 선배님을 모시고 술을 먹다가 뛰쳐나와 발표회장에 이르렀다. 이 자리를 빌려 필자의 건방짐에 대해 선배님께 용서를 빈다.

2.

조 선생의 발표를 듣다가 필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 또 한 사람 철학에 미친 사람이 있구나 하고 말이다. 다행히 교사로 근무한다니 먹고는 사는 것 같다. 하지만 발표하는 그의 목소리에 넘치는 힘은 언제라도 철학이라는 모험의 바다에 뛰어들기 위해 그 자신의 삶을 벗어던지고 말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선배 한 분이 생각난다. 우면동 산 속 비닐하우스에서 기거했던 분, 끝까지 철학을 사랑하여 철학을 시로 승화시킨 분, 결국 벌레가 척수에 기어들어와 쓰러지기까지 자기를 돌보지 않았던 분.

우리 한국의 철학계에는 이런 분들이 많다. 철학을 마치 종교적인 구도의 길을 가는 듯이 연구하는 분들이다. 그들은 먹고사는 삶에 조금도 연연하는 법이 없이 지금도 구도로서 철학의 길을 걷고 있다.

조 선생을 보면 이런 구도자로서의 철학자라는 삶의 모습을 다시 엿볼 수 있어 너무 기쁘다.

3.

조영준 선생의 논문 제목은 ?주체로서의 자연?이다. 부제는 ‘생태학적인 함의’이다. 제목은 금방 이 논문의 내용을 보지 않고서도 거의 짐작하게 만들어 준다.

우선 간단하게나마 조 선생의 논문의 요지를 들어보자. 논문의 의도는 생태학적인 위기에 처해서, 단순히 인간의 자연에 대한 윤리적 태도만을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는 데 있다. 자연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되지 않겠는가? 조 선생은 이렇게 질문하면서 이런 자연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단서를 셸링의 자연철학에서 찾으려는 것 같다.

자연에 대한 이해의 전환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조 선생은 오늘날 생태철학의 입장과 같은 맥락에 서 있다고 보겠다. 이런 의도에는 어떻게 보면 반세기 전 하이데거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하이데거 역시 현대의 과학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존재론적인 전환을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이런 전환은 이미 김지하 선생이 생명철학에서 시도하여 왔다. 아마도 조영준 선생의 의도가 제대로 실현된다면 이런 생태철학의 흐름이 더욱 풍부한 근거를 가질 것으로 기대된다.

4.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그렇다면 셸링이 이해하는 자연이란 어떤 것인가? 조 선생은 셸링의 자연철학을 3기로 나누어, 초기 피히테의 절대적 자아 개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시절과 중기 그의 독자적인 자연철학이 제시된 시기(1798-1800), 그리고 180-1806 사이의 동일철학의 시기로 나눈다.

그런데 조 선생이 논문에서 강조하려는 것은 바로 중기의 입장이다. 특히 조 선생은 이 시기에 셸링이 제시한 생산성 개념을 강조한다. 이 생산성 개념은 거슬러 올라가면 스피노자의 자연 개념에서 유래한다. 그것은 곧 자연의 역능, 잠재성의 개념이다. 조 선생의 역점은 스피노자의 사후 잊혔던 생산성 개념을 다시 부활한 사람이 바로 셸링이라는 데 있다.

조 선생은 여기서 관념론적인 자연 설명과 실재론적인 설명을 구분한다. 피히테에서처럼 자아가 정립하는 것으로서 자연 개념은 관념론적이다. 반면 역능 개념은 실재론적인데, 조 선생은 이렇게 구분함으로써 독일 고전철학 속에서 셸링의 철학의 위치를 분명하게 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조 선생은 자연 개념의 이런 실재론적인 성격 때문에 셸링의 철학은 마르크스로 이어지는 유물론의 선구가 된다고 본다.

그런데 조 선생의 논문에는 왜 이것이 실재론적인가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아서 유감이었다. 또 무엇을 실재론적이라고 하는가도 설명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발표 이후 이 문제에 대한 많은 토론이 이루어졌던 것 같다.

이 점에 관해 사실 조 선생은 ‘역동적인’이라는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암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점에 관해 필자가 약간 부연 설명을 하자면, POTENZ 즉 역능 잠재성 개념은 수학에서 미분의 힘에서 연상되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런 미분함수의 전개는 발생론적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는 생산적이라고도 한다. 조 선생은 바로 이런 발생론적 생산적인 과정을 일컬어 실재론적인 자연 설명이라고 본 것이 아닐까 한다.

5.

조 선생은 논문의 4절에 이르러 ‘주체로서의 자연’ 개념을 제시한다. 아마 이것이 논문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보인다. 그런데 사실 이 부분은 좀 애매하다. 왜냐하면 철학에서 주체라고 한다면 항상 데카르트 이래로 자기를 대상으로 정립하는 사유의 활동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그런 활동은 관념론적인 것이라고 해서 셸링이 비판했던 것이 아닌가? 그래서 만일 자연을 주체로서 파악한다면, 이것은 피히테의 입장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조 선생의 논문에 대해 많은 토론자들은 이렇게 질문했다.

조 선생의 답변은 논문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조 선생은 여기서 두 가지 주체 개념이 존재한다고 본다. 둘 다 자기를 대상으로 정립하는 활동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하나는 그 활동의 산물인 대상과 자아가 대립되는 것이다. 반면 다른 하나는 오히려 활동의 산물인 대상과 자아가 일치하는 경우이다. 전자가 피히테적인 주체라면 후자가 바로 셸링적인 주체이라고 조 선생은 말한다.

조 선생은 이 구분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전자의 자아는 ‘경험’적이고 후자의 자아는 ‘선험적’이라고 말한다. 이런 구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런 차이에 대하여 조 선생이 충분하게 설명하지 않으므로 필자가 나름대로 덧붙여 설명하자면 이렇다. 즉 예를 들어서 자아가 주관적인 목적을 대상으로 정립하면 그것은 결국 객관적인 실재의 반격에 부딪힌다. 그러나 자아가 자연의 진정한 내재적인 목적을 정립한다면, 그 대상은 객관적 실재와 일치하게 된다.

결국 셸링의 ‘주체로서의 자연’ 개념은 주관이 자의적인 원리가 아니라, 자연의 내재하는 원리를 인식하여 그것을 자아의 활동성을 통하여 대상으로 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해될 수 있다. 여기서 방점은 자연의 내재적 원리에 대한 인식에 주어진다. 셸링에 있어서 자연의 내재적 원리는 곧 자연을 발생시키는 생산성이다.

그렇다면 굳이 주체의 활동성을 말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아니다. 셸링의 경우 활동성은 피히테적인 주체의 활동성과도 구분된다. 여기서 주체의 활동성이란 자연에 원리를 부여하는 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의 원리를 드러내는 활동이다. 이런 생각은 마치 미켈란젤로가 조각가란 돌 속에 내재하는 형상을 쪼아내어 드러내는 자라고 말한 것과 서로 통한다.

약간의 사변을 덧붙이자면, 어쩌면 자연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 자신을 드러내도록 시키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인간은 자연의 반성하는 매개자가 아닐까?

당연히 셸링의 철학이 윤리학적인 칸트, 피히테의 성격과 구분되어서 미학적이고 예술적인 성격을 지니는 이유가 여기서 이해된다. 자연에 관한 이런 미학적인 개념이 자연에 대한 생태학적인 개념과 직결된다.

조 선생이 논문의 결론에서 설명한 바, 주체로서 자연이라는 셸링적인 개념을 생태학적인 함의는 그렇다면 무엇이 될까? 이렇게 되지 않을까? 인간의 활동은 자연의 내재하는 생명을 드러내는 활동이어야 한다고. 이런 생각은 김지하가 인간의 삶이 신명을 드러내는 활동이라고 규정한 것과 맥락이 통하지 않을까?

6.

헤겔은 셸링의 철학을 비판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자연의 내재적 원리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헤겔의 물음은 이렇게 시작된다. 직관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자의와 어떻게 구분되는 것인가? 자신의 자의를 직관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아닐까?

당시 낭만주의자들은 중세의 기사제에서 개인의 자유와 전체와의 조화가 일치하는 삶을 보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중세 신성로마제국에서 독일통일의 환상을 보았다. 헤겔의 분노는 이런 낭만주의자들이 직관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환상을 정당화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헤겔은 자연의 내재하는 원리를 인식해야 한다는 셸링의 정당한 입장은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그렇다면 그 원리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그 물음을 수행한 자가 바로 철학자 헤겔이다. 그런데 셸링의 관점에 서 있는 조 선생은 헤겔의 이런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하다.

7.

알려진 바에 따르면 셸링은 베르그송에게 영향을 주었고, 베르그송은 다시 들뢰즈에게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오늘날 들뢰즈의 많은 생각들, 특히 자연과 역사를 역능 개념을 통해 체계화하려는 들뢰즈의 시도는 셸링에게서 유래한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한다.

셸링의 철학에 대해서는 이미 헤겔 이후 많은 비판이 주어져 왔다. 어떻게 본다면 헤겔의 철학은 셸링에 대한 비판에 기초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들뢰즈 철학이 지니는 한계를 헤겔의 철학을 통해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사실 이것이 필자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왔던 문제이고, 앞으로 많은 논의가 있기를 바라는 주제이기도 하다.

끝으로 철학의 정열을 잃지 않는 조 선생에게 다시 한 번 뜨거운 연대를 느낀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고독한 철학자들, 그러나 민족의 운명을 철학으로 개척하고자 하는 성스러운 철학자들의 연대에 있는 모든 동지들 곧 한철연의 이름으로 환영한다.

『불과 얼음』 [청춘의 서재]

이찬희(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지금 오늘의 청춘이 가장 애타게 바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따스한 위로가 아닐까. 88만원 세대의 한없이 작아진 꿈을 위해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에 맞서 몸부림치는 그들은 상처투성이에 일어설 힘조차 없어 보인다. 오늘의 청춘은 사회와 가족의 보호망이 해체되고 개인주의가 만연한 가운데 무거운 자신의 삶을 단지 혼자서 감당해야 할 뿐이다. 그러한 외로움과 고통 가운데 어떤 이는 생활전선을 위한 노동과 적금 통장에, 어떤 이는 미래를 위한 수험서와 처세서에 온 마음을 쏟아 붓는다. 야망을 위해 싸우던 기성세대들에 비해 자신이 쉴만한 빈 자리를 위해 싸우는 오늘의 청춘들의 모습에는 서글픔이 어려 있다.

다시 용기를 내어 나를 한없이 작아지게 만드는 세상에 용감히 맞서기 위해 인문ㆍ사회 서적들을 들추어보기도 하지만, 모르는 게 약이라고, 나 자신은 그만 더욱 작아지고 만다. 위안과 자신감이 필요한 청년에게 “세상을 알아라! 이렇게 싸워라! 용기를 내라!”고 말하지만 마치 ‘긍정의 힘’을 갈파하는 목사님과 무슨 다른 말을 하는지 솔직히 분간이 잘 가지 않는다.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라는 진심어린 충고가 우울한 이를 더욱 우울하게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위축된 청춘에게 필요한 것은 선택지 가운데서 올바른 선택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함께 ‘곁에 있어’ 주는 것일 텐데 말이다. 청춘은 너무 힘겨워 자신의 삶을 결단해나갈 기력조차 없으며, 자신의 어려움을 말할 힘조차도 없다.

그들이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 위로할 방법은 없을까? 자신의 아픔을 말하는 것에서 나아가 자신의 기쁨을, 희망을, 자신의 소중함을, 자신 안에 보물이 간직되어 있음을 확신하고 자신하게 만들어줄 방법은 없을까? 그래서 나는 청춘에게 시를 권한다. 그 가운데서도 청춘의 생명을 테두리지어 압박하지 않고 청춘 곁에 한 걸음 뒤로 머물러, 바라보고, 어루만지고, 기다려주는 시를 말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생존을 위한 대비의 몸부림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청춘에게 넉넉한 여백과 여운으로 다가서는 시 한 편은 삶에 작은 빈 자리를, 작은 마음의 여유와 안식처를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불과 얼음』의 첫 시는 「목장」이라는 제목을 달고 전원적 풍경으로부터 시작한다.

 

샘 치러 나가 볼까 합니다;

그저 물 위의 나뭇잎이나 건져 내려구요

(물이 맑아지는 걸 지켜볼는지도 모르겠어요)

오래 안 걸릴 거예요. 같이 가시지요.

 

엄마소 옆에 있는 어린

송아지를 데리러 가려구 해요. 너무 어려서

엄마소가 핥으면 비틀거리지요.

오래 안 걸릴 거예요. 같이 가시지요.

 

이 시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할까. 무엇을 말하려 하면서도 아마 아무 것도 말하려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저(only)’ 말할 뿐일 것이다. 여기서 잠시 『불과 얼음』 마지막의 해설을 훔쳐보면 프로스트의 다음과 같은 말이 인용되어 있다. “시는 …… 반드시 대단한 해명이 아니라 혼란과 맞선 잠정적 머무름에서 끝나는 것이다.” 우리들의 인생살이란 스스로의 결정이나 결정당함 혹은 확정적인 해명에 둘러싸여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프로스트의 말처럼, 삶의 평온이란 해명과 선택을 강요받지 않고 가벼운 망설임과 혼란 가운데, 기대 가운데 머물러 있음 속에서 빈 자리를 발견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첫 번째 시 「목장」 또한 저자의 대단한 해명을 기대해서도 안 되고, 기대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시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고 집착하기보다는 아무런 기대 없이, 들려오는 시의 울림에서 느껴지는 분위기 가운데 그 색채들 가운데 고요히 쉴 것을 권유한다. 이 시를 읽으며 상상 속에서 그저 기분 속에서만이라도 나뭇잎이나 건져 내는 한가로운 여유를, 오래 걸리지 않는 동행을, 비틀거리는 어린 송아지의 가냘픔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말이다.

 

「걸어 보지 못한 길」

 

단풍 든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더군요,

몸이 하나니 두 길을 다 가 볼 수는 없어

나는 서운한 마음으로 한참 서서

잣나무 숲속으로 접어든 한쪽 길을

끝간 데까지 바라보았습니다.

……

 

이 시의 생략된 뒷 부분에서 주인공은 결국 하나의 길을 택하고 그 이유는 사람이 덜 밟은 길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한숨지으며 이야기한다. 여러 갈래의 길에서 고뇌하는 꿈이 많은 청춘에게 이 시는 참으로 많은 공감을 전해줄 것이다. 어쩌면 수많은 갈래 길들을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포기한 청춘에게 이 시가 동병상련의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두 갈래 길 가운데 어느 길이 맞는 길인지 주저하고 불안해하고 무서워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의미를 던져줄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지만 주인공의 한숨은 이 시를 읽는 독자에게 결코 꿈을 위한 용기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현실적인 선택이든 이상적인 선택이든 그 무엇도 우리에게 그것이 올바른 선택임을 말해 주지는 않는다. 단지 시인은 이 시를 읽는 사람과 함께 그 길을 곁에서 같이 걸어가 줄 뿐이다. 단지 곁에 함께 걸어가 주는 것… 불안하고 방황하는 우리들에게 과연 곁에서 기다려주고 고독한 시간을 함께 나눠줄 친구가 있는 것일까.

이 시를 읽으면 내가 겪었던 작은 방황의 경험이 생각난다. 대학생 시절 선후배 몇 명과 함께 하는 소규모 공부 모임에 속해 있었는데, 처음으로 후배를 맞이하면서 그 모임의 운영자 자리를 맡게 되었다. 비록 몇 명만이 모인 자리이지만 회의를 진행하고 주도하는 자리를 처음 맡았던 터라 그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정도였다. 회의 자리에서 정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고, 아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으며, 부끄러움과 열등감으로 인한 위축감에 극도로 시달렸다. 그래서 회의를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도망치기까지 하였다. 게다가 2학년 선배가 되어서 공부로나 인생의 문제에 있어서나 내가 선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에 너무나 힘들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내가 힘들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과연 학생으로서 내가 택했던 꿈을 이룰 수 있는지, 이루기 위한 준비는 아무것도 못하고 귀중한 시간만 낭비한 건 아닌지, 이러다 졸업 후 자기 앞가림도 못하게 되지나 않을지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불안감으로 생각이 멈추고, 말을 못하고, 말을 더듬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매일 나를 지진아나 바보라고 자학하곤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래서 당시 우울증과 대인기피의 모습까지 보였던 내게 친구들과 선배들이 진심어린 조언과 충고를 해 주었지만 그 말을 듣는 그 순간만 나의 문제가 해결되는 듯 느껴질 뿐 돌아서면 다시 원점의 불안으로 돌아오고 마는 것이었다. 그나마 친한 친구가 곁에서 놀아주려 하고, 같이 밥 먹고, 집에 놀러와 같이 자고 할 때면 그 순간만은 마음의 불안이 진정되곤 하였다.

우스울지 모르겠지만 이런 괴로움을 극복한 결정적인 계기가 된 장소는 학교 화장실 변기 위였다. 나의 책임으로부터 도망치고, 선후배들로부터 도망치고, 학교라는 공간에서, 세상에서 도망쳐 피신한 곳은 고요한 화장실 안이었다.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 아픈 머리를 감싸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였는데, 그 공간은 그야말로 나 혼자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지금 그 때를 돌이켜 보면 신입생 시절부터 밖으로만 배울 것을 찾아다니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다니고, 선배들과 친구들을 찾아다녔지만 이때의 화장실 안에서의 기억처럼 오로지 안으로 나 자신을 향해 스스로 찾아 나섰던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생각하다 생각하다 괴로워하다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던 순간 보았던 번뜩이는 섬광은 그 동안의 불안과 우울함을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나의 문제와 불안과 망설임을 해결하는 어떠한 방법으로서 ‘무엇’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경험 이후부터 지금까지 나는 내 스스로 그 ‘무엇’을 하나하나 찾아낼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 경험은 바로. 말하자면. 나 ‘스스로’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자신하는 것이었다. 내가 그냥 그대로, 생긴 모습대로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경험이었다. 나는 오직 있을 뿐이지 내가 어때야 하고 어떻게 비춰질 지에 대해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힘들어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경험했던 그것이 어쩌면 바로 실존이라고 부르는 그 무엇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실존은 책에서도, 선배들의 조언에서도, 친한 친구의 위로 가운데서도 발견되지 않았고, 아무것도 없는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화장실 안 혼자만의 불안과 고독 가운데서 발견할 수 있었다. 나의 모습대로 있는 것을 두려워하던 시간의 나는, 내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나에게 어떤 충고와, 어떤 길이 정말 맞는지에만 의존하던, 아니 억눌려만 있던 나였다. 내가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세상의 가르침들과 수능 문제를 풀어 대학에 들어가면서까지 나에게 부과되었던 5지선다의 ‘무엇’은 바로 나의 있는 그대로의 ‘있음’을 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무엇’들은 당시의 어린 나에게 그 이후부터도 미래의 자신의 삶의 길이라는 모습으로 계속해서 따라올 것이었지만, 적어도 ‘스스로 있을’ 수 있는 자신감을 발견한 나는 포기하지 않고 세상 가운데 쓰러지지 않으려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선택지를 강요하는 명령과 심문은 청춘을 더욱 아프게 한다. 청춘의 슬픔은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서, 스스로의 슬픔을 돌볼 빈 자리 가운데서 스스로 구원될 수 있다. 그 빈 자리는 청춘의 말을 조용히 들어주고 그 빈 자리에서 청춘은 스스로 모두 말할 수 있다. 넉넉한 삶의 여백 가운데 청춘은 자신의 본래적인 온 모습을 대면하고, 있는 그대로를 긍정하고, 자신을 스스로 창조할 기회와 용기를 얻는다. 그리하여 자신의 살아 있음은 자라날 수 있고, 살아 있음의 기쁨이 춤출 무대가 마련될 수 있다. 늦은 밤 어둠을 바라보며 입에 문 담배 연기의 적막한 시간처럼. 청춘이여! 시의 여백 속에서 삶의 여백 속에서. 한순간만이라도 나의 위안을, 나의 용기와 꿈을 되찾아보자! 그리고 시를 써보자.

섬세한 삶의 감각을 찾는 연습 7-② [色 다른 책읽기]

박혜정 (산책자 에디터)

두툼해도 단숨에 읽히는 책이 읽는가 하면, 얄팍해도 읽는 도중 읽기를 멈추어 가며 생각에 잠기게 되는 책이 있다. <무미 예찬>을 만들고 있을 때에는 교정지를 보고 있다가도 문득 눈을 들어 허공을 보는 일이 많았다. 그렇다고 특별히 구체적인 생각을 몰아간 것은 아니었다. 교정지에서도 확연히 느낄 수 있는 느슨한 행간과 넉넉한 여백, 전체적으로 건조하면서도 색이 적은 담채화처럼 적당한 물기가 있던 프랑수아 줄리앙의 사유가 내 눈길도 어떤 ‘생각 사이의 여백’으로 향하도록 했던 것이다. ‘산책자의 에쎄 시리즈’ 다섯 번째 책인 <무미 예찬>은 그런 책이었다.

사실 산책자의 에쎄 시리즈는, 학부 졸업 정도의 교양 수준에다 당시 책을 만들기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넘은 초보편집자에게는 제법 어려운 텍스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래도 <무미 예찬>은 그보다 묵직하고 사회적인 에쎄들, 지그문트 바우만의 <유동하는 공포>와, 장 보드리야르의 <아메리카>를 만든 후에 시작한 책으로 앞의 책들보다는 미학적이고, 지식보다는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즉 편집자로서의 나와 독자로서의 나 양쪽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와 주었던 책이다.

‘에쎄essais’ 시리즈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에쎄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양한 에쎄가 존재하지만 누군가에게 에쎄 시리즈에 대해서 설명할 때 제목부터가 ‘에쎄Les Essais’인 몽테뉴의 <수상록>이나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를 예로 들곤 한다. 어느 인류학 연구 논문 못지않은 학술적 성과를 담고 있는 <슬픈 열대>는 “내가 이 일을 결심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려야 했다…” 라는 지극히 내밀한 어조의 수필 문체로 시작된다. 자신의 감정, 지식, 경험들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자유로운 문체로 서술했기에 담고 있는 내용들이 논문이나 보고서만큼이나 단단하게 쌓아올려지는 지적인 에세이, 그것이 에쎄라고 설명하곤 한다.

하지만 한국인들에게 ‘에세이’라고 하면 인생사나 감상을 주로 표현한 부드럽고 감성적인 글들(또 다른 수필의 분류로 따지자면 ‘미셀러니’ 정도의 글)을 떠올리기 때문에 ‘에쎄’라는 단어도 종종 그런 선상에서 이해되는 것 같다. 그래서 ‘에쎄 시리즈’라고 해서 읽기 편한 수위의 책으로 생각하고 골랐는데 왜 이렇게 학술적인가라는 독자의 불만을 간혹 듣곤 한다. 글의 형식에 대한 개념이란 문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에 그런 불만도 물론 있을 수 있지만, 편집자로서 간단히 웃어넘기기는 어려운 일이다. 어쨌든 그런 불만을 감안하고 보았을 때, <무미 예찬>은 약간 유화되어있는 한국 독자의 ‘에세이’ 개념에도 제법 들어맞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문화에 대한 참신한 시선을 보여주는 프랑수아 줄리앙을 소개할 때 ‘푸른 눈을 가진 동양학자 중 가장 독보적인 학자’라는 표현을 쓴다. 서양인이 동양에 대한 책을 썼다고 생각하면, 오리엔탈리즘이 가미된 편견이나 열광이 아니면 정말이지 성실하고 딱딱한 학술 연구 외에 무엇이 있을까하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 이후에는 그런 생각을 차츰 버리게 되었다. ‘동양 문화에 속하지 않았으면서 어떻게 알 수 있겠나’ 라는 생각보다는 ‘동양 문화에 속하지 않은 눈으로 보니 우리는 미처 의식하지 못한 것들을 본다’ 는 생각이 강해진 것이다. 사실 동양 문화에 속해있다고 해도 속도감 넘치고 자극이 가득한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그저 의식만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굉장히 새롭게 다가오는 중국 문화의 면면들이 던져준다. 현대인이 너무도 당연시 하는 것, 개성과 특별함을 추구하는 것을 비판하는 대목이 특히 그렇다. 누구나 알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 ‘진부한 덕’, 즉 ‘중용’을 담백한 삶의 태도라는 형태라고 해석해낸 대목은 중용이라는 개념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 이상의 깨달음을 준다.

불어로는 ‘맛없음,싱거움fadeur’ 으로 번역되는 ‘담淡’의 개념은 불어에서 딱 들어맞는 표현이 없어 저런 대체어를 썼을 정도로 서양에서는 낯선 개념이었을 테지만, 프랑수아 줄리앙은 그 개념을 ‘한번 의식하기 시작하면 어디서든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무미, 담백함의 풍경은 정말로 모든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아주 먼 옛날부터 아주 가까운 현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고급스러우면서도 가장 소박한 모든 풍경 속에 ‘담’이 있다.

나로서는 이 책에 종종 등장하는 ‘물 맛’이니 ‘흰 돌을 삶아 먹는’ 중국 선인들의 이미지에서 담담하고 산뜻한 흰색에 대한 여러 가지 글들이 떠오른다. 일단 박완서가 <개성사람 이야기>에서 쓴 흰색에 대한 글. “어머니는 버선만 보고도 어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면서 개성사람 버선은 옥시설처럼 희고, 서울사람 버선은 푸르뎅뎅하게 희고, 일산·금촌사람 버선은 불그죽죽하게 희다고 했다. 옥시설은 어머니가 완벽한 흰색에 바치는 최고의 찬사인데, 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일제강점기 소설가인 강경애도 손빨래를 하며 흰 옷을 더욱 희게 빨아내는 데 크나큰 희열을 느낀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러다보면 흰색을 넘어 담백한 심상에 대한 글들도 떠오른다. ‘슴슴한’ 국수를 사랑한 백석의 시, “수필의 빛은 비둘기빛이거나 진주빛이다. 수필이 비단이라면, 번쩍거리지 않는 바탕에 약간의 무늬가 있는 것이다. 무늬는 사람 얼굴에 미소를 띠게 한다”고 하는 피천득의 <수필>로 생각이 이어진다.

현대의 풍경을 둘러보아도 ‘담’을 느낄 수 있다. 아파트에 질린 현대인들은 흰 문종이로 들어오는 햇빛과 문살의 그림자가 가장 큰 인테리어 요소이며 가구로 가득차지 않아 아름다운 한옥의 아름다움에 다시 집중하곤 한다. ‘슈퍼 노멀’이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가장 표준적이고 단순한 디자인이 탁월하다는 것 역시 의식하고 있다. 또한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가 가장 단순한 스타일과 옅은 화장을 고수하는 것을 보고 감탄하지 않는가?

이 책의 원제 Eloge de la fadeur를 거의 그대로 옮긴 <무미 예찬>이 큰 고심 없이 자연스럽게 가제에서 최종 제목으로 결정된 것도 알려 두고 싶다. 문화적인 사안이든 정치적인 사안이든, 시쳇말로 ‘까는’ 행위가 ‘쿨한’ 트렌드가 되어버린 시대에 무언가를 예찬하고 있는 책을 만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제목에 ‘예찬’이라는 단어가 붙은 책이 제법 많다. 미셸 투르니에의 <예찬>부터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예찬>, 알랭 바디우의 <사랑 예찬>, 프란츠 카프카의 <여행자 예찬>에 이르기까지 멋진 책들을 만날 수 있다. 그 중에 <무미 예찬>과 함께 읽으면 좋은 책으로 추천하고 싶은 책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음예예찬陰?禮讚>인데, 한국판은 <그늘에 대하여(눌와, 2005)>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일본 문화가 곳곳에서 그림자와 그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활용했다는 것을 해석한 글이 있는 책으로, 일본 문화에 대한 수준 높은 미학을 맛볼 수 있는 ‘동양의 에쎄’ 라 할 만하다.

<무미 예찬>은 중국 문화에 대한 책이지만 담백한 취향과 삶에 관한 포괄적인 책으로 더 다가온다. 싱거움이나 비어 있음을 강조하지만 이 모든 자극을 단호히 떨쳐버리라거나 세상으로부터 단절되라는 방햐으로 전개되지는 않는다. 가장 감지하기 어려운 맛을 감지할 수 있도록 하기에, 가장 미묘하고 섬세한 감각들을 일깨우는 책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음식에서 배어나오는 미묘한 맛을 즐기는 사람을 미식가라고 한다. 자극적인 맛만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둔하다는 의미이다. 마찬가지로, 지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금방 파악할 수 있는 뚜렷한 자극만 추구하는 둔한 사람을 진정한 삶의 향유자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장 넓게 퍼져 있는 동시에 가장 미세하게만 느낄 수 있는 맛, 가장 까다로우면도 가장 폭넓은 삶의 취향을 찾는 감각을 이 책을 통해 연습해볼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며 문득 허공을 바라보게 되는 사람이 많았으면 한다.

박혜정 (산책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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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시대와 철학>이 기획하여 진행하는 책읽기 코너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저자 혹은 역자, 학자와 전문가, 일반 독자와 편집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책 읽기, 세상 읽기를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色 다른 책읽기>의 일곱 번째 책은 프랑수와 줄리앙의 <무미예찬>(최애리 옮김, 산책자 펴냄)으로, 김익균(동국대 국문과 박사과정), 안세환(보령 책익는 마을 회원), 박혜정(산책자 편집자)님의 글을 실었습니다. 기존의 ‘4인 4색의 책읽기’의 변화된 기획입니다.

 

바깥에 대한 사유와 초월하지 않는 담백함 7-① [色 다른 책읽기]

김익균 (동국대 국문과 박사과정)

 

서구적 세계의 바깥으로서 중국

『무미예찬(無味禮讚)』의 리뷰를 쓰게 된 것은 우연이지만 이 책의 존재를 모르는 동안에도 나는 이 책을 요청해 왔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어떤 면이 독자인 ‘나’를 자극한 걸까?

책을 읽을 때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책읽기 행위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람 즉 저자와 독자(리뷰어)의 만남이라는 점일 것이다. 그러니 짧으나마 통성명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겠다. 책의 저자인 프랑수아 줄리앙은 프랑스의 학적 전통 속에서 성장했고 중국학을 전공했다. 나는 남한에서 성장했으며 남한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국문과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남한의 정체성은, 중국의 영향을 장기지속 해온 동시에 서구화와 식민화의 복잡한 체험으로 교착된 ‘조선’의 해방과 분단, 그리고 한국전쟁을 겪어낸 산통의 과정, 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러한 남한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방법의 하나로 나는 해방 이후 혹은 한국전쟁 이후의 십여 년간의 서정주 시를 공부하고 있다. 해방 이후에서 사일구 이전까지 서정주의 시가 얻은 국민적인 호응과 부침의 과정을 살펴보면 당대 남한의 ‘세계감’을 풍부하게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기 때문이다. 다시 프랑수아 줄리앙에게 시선을 돌려보자.

프랑수아 줄리앙은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그리스 철학을 전공한 후에 중국을 연구하게 되었으며, 그것은 중국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자신이 속해 있는 서양 전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시각을 얻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옮긴이의 설명을 좀 더 참조해 보면 프랑수아 줄리앙이 속해 있는 서구적 세계의 바깥이란, “언어적 역사적 문화적으로 서양과 무관하게 형성된 독자적인 세계인바 인도-유럽 언어권의 바깥, 서양 역사 및 문화의 영향권 바깥-따라서 인도나 이슬람 문화는 제외되었다-그리고 연구 가능한 풍부한 텍스트 전통을 지닌 세계”였다.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는 곳이 곧 중국이었다는 것이다. 서구가 그동안 행한 중국에 대한 탐구가 신기한 것에 대한 호기심이나 제국주의자의 시선이 중첩된 어떤 것이었다면 프랑수아 줄리앙은 ‘타자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을 덧붙이고 있는 셈이다.

 

그 안에 들어가야 할 하나의 ‘세계’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프랑수아 줄리앙이 ‘서구적 세계의 바깥’으로 생각하는 ‘중국’의 특징을 그대로 남한의 그것으로 연상하거나 동양 삼국의 잃어버린(혹은 되찾아야 할) 과거로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프랑수아 줄리앙에게 바깥인 것은 ‘우리’에게도 바깥이며, 50년대의 서정주에게도 바깥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전근대적 신분제 하에서 살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즉 근대의 노동자 혹은 소비자로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프랑스인과 ‘우리’는 다르지 않다. 프랑수아 줄리앙이 개진한 담(淡)의 원리는 지금-여기에 있는 실체(혹은 과거에 있었다는 사실 확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가 사유할 수 있는 ‘서구적 세계의 바깥’의 잠재태라고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단적으로 말해서 이 세계는 중국이나 동양 삼국이 기득권을 주장할 수 있는 소유물은 아닐 것이다.

이 책에서 ‘무미(無味)’라고 옮겨진 단어는 중국어의 ‘담(淡)’에 부여된 가치를 괄호친 의미이다. 프랑수아 줄리앙이 불어로 ‘fadeur’라고 옮겼고 한글로는 담백하다, 묽다, 싱겁다, 부드럽다, 자극이 적다 등으로 옮길 수 있을 것이다.(영어로는 ‘blandness’라고 한다.) 프랑수아 줄리앙은 ‘담=무미’가 중국의 문화와 미학적 전통에서 중심적인 가치이자 바탕을 이루는 가치라고 한다. 담은 “특수한 시각(문체론적 심리적 윤리적 시각 등등)이 아니라 전체적 시각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중국인들의 말을 빌자면, 그것은 그 안에 들어가야 할 하나의 ‘세계’이다.” 앞에서 지적했듯 이 세계가 지금 존재하는 실체인가는 단정지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계 속으로 들어오는 경험이 서구적 근대의 세계를 상대화 하는 개연성을 제공한다고는 할 수 있겠다. 가령 “‘감각적’인 것과 ‘이지적’인 것이 상반된 두 가지 현실이며 그중 하나가 다른 하나의 모방이라는 생각, 천구(天球)들의 음악이든 천사들의 음악이든 간에 음악이 다른 어떤 세계에 속하는 것이라는” 서구적 세계관은 ‘담(淡)의 가치가 주도하는 세계’ 쪽에서는 낯선 것이 될 것이다. 담(淡)의 세계에는 현실 세계와 그 너머의 바깥이라는 구분이 없다. “섬세함의 정도 차이” 즉 감각이 지각할 수 있는 것과 정신이라는 좀 더 예민한 ‘기관’이 요구되는 것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비가시적인 것들이 서구에서처럼 초월적 세계에 속하지 않고 연속적인 현실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 철학에는 존재론이 없다. 내가 보기에, 고대 중국 사상을 (그리스 사상과 대비하여)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 점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고대 중국 사상이 현실에 접근하는 관점은 진실로 ‘존재’하며 결코 변하지 않는 것(물자체, 이데아)이 무엇이냐를 묻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내재하며 생성에 그 변전의 논리를 부여하는 일관성을 묻는 것이다.” 프랑수아 줄리앙에 따르면 그것이 바로 무미 혹은 담(淡)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맛의 성질은 그 특수한 성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퍼져나가는 힘에 있다.”

“무미의 미덕은 우리의 정신을 사물의 더 근본적인 국면과 일치시키는 데 있다. 어떤 맛도 다른 맛보다 특별히 더 우리를 유혹하지 못할 때, 우리는 작용하는 모든 잠재태들 가운데 ‘대등한’ 균형을 유지하며 -그것이 제(齊)이다-존재에 내재하는 논리로 하여금 스스로 발전하도록 내버려 둔다.” “담(淡)의 기초는 그저 엷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내적인 강인함이 느껴지는 <자연스러움>”인바, “담은 감지할 수 있는 것의 마지막에서, 보이지 않는 것의 초입에서 비로소 나타난다. 그것은 감지할 수 있게끔 드러나는 즉시 그 초월적인 조화로움으로 돌아간다. (…)담은 사물들이 차별화되지 않는 것 속으로 돌아갈 때, 사물들이 그 변별적 특성들을 잃어버리고 차이를 흡수하며 혼돈을 향할 때 비로소 그것들에 대해 말한다. 담은 측량할 수 없는 성질이자, 그래서 필연적으로 덧없으며(…) 일체의 체계적 모색을 피하며, 손을 잡아 붙들 수도 없다.”

이러한 세계의 특징을 프랑수아 줄리앙은 상당히 풍부한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 있으므로 우리는 ‘몰랐다는 듯이’ 사례들을 살펴볼 수 있다.(동양인 혹은 남한의 독자들이 ‘우리는 다 아는 이야기’라는 고자세로 이 책을 읽는다면 프랑수아 줄리앙이 공들여 탐색해 보이는 ‘새로운 세계’는 읽히지 않을 것이다.) “예스런 담백함에는 진정한 맛이 들어있다. 대제사의 탕에 간을 맞출 필요가 어디 있으리요.”라는 구절을 읽으며 예스러운 취향에 대한 호불호를 거론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탕의 담백한 맛이 진정한 맛으로 인정되는 세계의 가치관과 철학의 체계를 이해하고 지금-여기 남한은 그 체계 바깥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경험을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담백한 맛은 “유(儒)?불(佛)?선(仙) 모든 사상의 지원을 받으며, 시, 음악, 회화 등 다양한 예술에 공통된 이상을 환기한다.” 프랑수아 줄리앙의 주장은 강하게 논증되기보다는 풍부한 예시를 통해서 담백하게 그려지고 있다. 의미를 직접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례들에서 ‘우러나게’ 하는 것이 또한 무미의 기술일 것이다. 프랑수아 줄리앙이 지적했듯 “음미(吟味)”라는 말이 갖는 읽기와 먹기 사이의 유사성은 “(서구의 지적 시각에서처럼) 의미를 해독하기보다 그에게 외적으로 주어지는 물질성(즉 텍스트를 이루는 말들)을 자기 안에 받아들”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서구의 바깥인 중국은 바깥이 없는 세계다?

『무미예찬(無味禮讚)』(혹은 프랑수아 줄리앙)의 출발점은 고대 중국이 프랑수아 줄리앙이 속한 세계의 바깥에 있다는 사실의 판명함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판명하다고 전제한 것들이 과연 그러한지 묻는 것은 논외로 한다면, 역으로 ‘우리’에게 그것이 판명한가를 묻는 일이 요청된다. 서구는 우리의 바깥인가? 혹은 고대 중국은 우리의 바깥인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혼란을 일으키는 지점은 프랑수아 줄리앙이 ‘발견한’ 중국은 바깥이 없는 세계라는 점일 것이다. 서구의 바깥에 대한 프랑수아 줄리앙의 탐구는 바깥이 없는 세계로서의 중국을 산출한다. 그렇다면 담(淡)의 체계인 중국적 사유에서 바깥은 사유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근본적으로 프랑수아 줄리앙이 발견한 세계는 서구적 방법으로 만든 서구의 대립항이지 않은가?

이런 질문을 밀고나가는 것은 전공자들의 몫으로 남겨놓도록 하고 나는 남한의 건국 과정에서 나온 ‘우리’의 탐색이 『무미예찬(無味禮讚)』과 어떻게 서로 비출 수 있을지 생각해 보고 싶다. 그 시기에 서정주는 『귀촉도』, 『서정주시선』, 『신라초』를 내놓은바 ‘국민시인’ 혹은 ‘시의 정부’, ‘부족 방언의 족장’ 등으로 호명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서정주가 모색한 이 시세계는 현실의 긴장, 갈등, 고통이 없는 세계로 비판받아 왔다. 비판자들은 시가 현실의 고통을 직시하기를 요구했는데 그것은 고통의 너머에 놓인, 발견해야 할 이데아로서의 세계에 대한 전제와 분리되지 않았다. ‘저기’가 없다면 ‘여기’의 고통은 선명한 이미지를 갖지 못하는 것이 서구적 근대 미학이지 않은가.

이에 비해 서정주가 해방 이후 ‘신라의 내부에 대한 한 모색’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근대의 미적 세계 바깥에 대한 모색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정주는- ‘우리’가 그렇듯이- 어떤 혼동 속에서 그렇게 했다고 할 수 있다. 서정주가 간혹 역사적 실체라는 허상에 얽매였다면 그것은 ‘판명한 바깥’에 대한 프랑수아 줄리앙의 자의식과 맺는 모종의 차이를 생산하지 않느냐고 나는 묻고 싶다. 물론 그 차이를 근본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 배운 논리를 적용해보면 이 차이는 서구적인 안과 밖의 차이가 아닌 중국적인 ‘담’의 중심과 가장자리의 차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궁금한 것은 서정주(와 청록파)로 대변되는, 일본제국의 신민으로 태어나 대한민국 건국의 중추가 되었던 세대가 탐구한 세계이다. 그것은 일본에 의해 형성된 식민지 근대화를 30년 안팎의 한 생애를 통해 체현한 1910년대 생인 세대가 그 세계의 바깥을 꿈꿨던 경험 세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정주는 건국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서구적 가치에 대한 환멸이 심화되고 서구의 ‘타자로서의 자기 자신’을 탐색하려고 노력했다. 간혹 고대사를 실체화하는 오류에도 빠져 가면서, 서정주는 서구적 가치와 유불선의 가치 그리고 더 옛날의 샤머니즘(서정주의 용어로는 영통과 혼교)을, 어느 것도 사라지지 않고 되풀이를 통해 살 수 있는 ‘새로운’ 세계를 시로 체현하려 했다.

프랑수아 줄리앙이 학자로서 그리고 판명한 바깥에 선 자의 강점을 가지고 그려낸 담(淡)의 세계는 50년대 극동의 한 시인이 그려낸 ‘신라의 내부’와 서로 비추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담의 세계 바깥에서 담의 세계를 그려보는 프랑수아 줄리앙과 이미 담의 세계 바깥에 서 있으면서도 그것을 순간적으로 망각하며 시를 통해 담의 세계로 들어가 보는 서정주의 모색은 담의 세계를 재구하기 위해 마주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담(淡)의 체계에서는 현실의 바깥으로 나가는 초월이 없다’고 요약해 본다. 내가 이 책이 반가웠던 이유는 남한의 50년대에 서정주 (세대)와 신세대의 시적 정신을 초월(의 고통)이 없는 세계의 모색과 초월을 단행하려는 고통의 실천 사이에 두는 내 문제의식에 새로운 자극을 줬기 때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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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시대와 철학>이 기획하여 진행하는 책읽기 코너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저자 혹은 역자, 학자와 전문가, 일반 독자와 편집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책 읽기, 세상 읽기를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色 다른 책읽기>의 일곱 번째 책은 프랑수와 줄리앙의 <무미예찬>(최애리 옮김, 산책자 펴냄)으로, 김익균(동국대 국문과 박사과정), 안세환(보령 책익는 마을 회원), 박혜정(산책자 편집자)님의 글을 실었습니다. 기존의 ‘4인 4색의 책읽기’의 변화된 기획입니다.

 

“제2차 인문학 페스티벌”(8. 20-21), 대천 해수욕장에서 책읽기 잔치 열려

작년 2010년에 처음으로 열린 <인문학 페스티벌>에 이어 올 해에도 보령(대천)에서 보령 책익는 마을(촌장 박종택)의 주최 주관으로 <제2차 인문학 페스티벌>이 개최된다.

2010년에는, 박인희(안양대 강의교수)의 김명진(시민과학센터 운영위원), 이진남(숙명여대 교수), 류호철(안양대 강의교수), 이정모(과학저술가), 김시천(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 연구교수), 이종필(고등과학연구원), 편상범(고려대 강사), 전중환(경희대 교수), 이재현(동덕여대 교수), 이명현(천문연구원 연구원), 강양구(프레시안 기자) 등 인문학의 여러 분야는 물론 과학, 종교, 역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강의가 한창 휴가철인 8월 13-14일 이틀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당시 인문학 페스티벌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시민과 학생이 세미나룸을 가득 채웠고, 아침부터 하루종일 계속되는 강의에도 불구하고 강의실의 열기는 내내 뜨거웠다.

처음에는 몇 명의 독서모임으로 출발한 조촐한 모임이었지만, 지금은 여러 팀으로 이루어져 매월 저자를 초청하여 모두가 읽고 강의와 토론을 하는 <저자초청토론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며, 2010년부터는 집중적으로 인문학에 대한 강의와 토론의 축제로서 <인문학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올 해에는 2010년에 강의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페스티벌의 성격을 약간 변화시켜, 저자토론회와 접목시켜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참여하기로 정해진 강사진은, 김주일(정암학당 연구원)의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를 비롯, 최시현(소설가), 장시복(경제학자), 이종수(문학저술가), 김태권(만화가) 등이 자신의 저술을 중심으로 강의하고 토론하는 축제가 마련하고, 8월 20-21일 이틀에 걸쳐 대천 한화콘도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아래의 글은 ‘보령 책익는 마을’의 황선만(보령 책익는 마을 전 촌장)이 <제1차 인문학 페스티벌>을 마친 후에 <보령신문>에 기고한 글 “2010보령 인문학페스티벌을 마치고”을 옮겨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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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달 전 일이다. 오랜만에 만난 아저씨뻘 되는 친척분은 내게 이것 저것 꼬치꼬치 물었다. 직장은 잘 다니고 있는지, 사는 집은 어떤 곳인지, 아이들은 공부를 잘 하는지, 돈 벌이는 괜찮은지 등등 친척 어른으로서 궁금한 점이 많았는가 보다. 그런데 헤어지면서 하시는 말씀이 날 잠시 머뭇거리게 하였다.

“주변 사람들이 잘 살아야 되네, 젊었을 때 열심히 일해서 성공해야 돼! 알뜰하게 돈 잘 벌게.”

우리네 생활 속에서 의례적이고 일상적으로 듣는 말이고 가장 많이 하는 말이기도 하다. 성공과 돈이 등치관계라는 주장은 교과서에만 등장하지 않을 뿐 우리네 삶의 공간에는 도그마와 같은 명제로 또아리를 틀고 있다. 문화행사도 돈벌이가 되어야 하고, 국회의원도 돈을 벌 줄 알아야만 한다. 청소년들의 공부의 목적은 명문대를 가는 것이고, 그것도 고액 연봉의 직장으로 취업 잘되는 학과를 가는 것이다.

인문학 페스티벌이 만들어진 의도 속에는 그런 고민이 들어있다. 우리네 장롱 속에 숨어버린 것 같은 ‘가치’라는 단어를 꺼내서 펼쳐들고 다양한 무늬의 ‘성공’의 길을 생각해보고 싶었다. 몇몇 학자와 저자를 모시고 책익는마을의 조촐한 토론회를 생각했는데 횡재수가 온 것이다. 참여하겠다는 분이 12명이나 기별이 온 것 아닌가. 그동안 저자초청 토론회라는 이름으로 시민들을 초대하는 행사를 10여 차례 진행해온 우리들은 별 이의없이 ‘보령시민들과 함께하는 만남의 장’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뿔사! 시간을 아무리 쪼개도 12명의 강의를 넉넉하게 배치할 수가 없었다. 몇 분은 오시지 말라고 하는 것도 참으로 어렵고 기간을 하루 이틀 더 늘릴 수도 없는 처지이다 보니 1시간 강의 10분 휴식에 12시간 연강이라는 수험생 시간표가 나오고 말았다.

게다가 제목을 붙이는 것 또한 고민거리였다. 도대체가 한 단어로 표현할 방도가 보이지 않았다. 약간은 겸연쩍은 일이지만 12강 중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주제를 포괄하는 단어를 생각했고 그 결과물이 인문학 페스티벌이었다. 책익는 마을의 저자초청토론회가 ‘인문학’ 중심이었고 우리들의 월별 선정도서 또한 그러하기에 인문학이라는 단어는 구미를 확, 땡겨왔다. 그리고 인문학페스티벌이라는 제목만 읽어보고 찾아올 위인이 어디있겠는가. 이야기 주제와 강사프로필이 있으니 사전에 생각해볼 여유는 충분할 것이었다.

그래서 참가자들에게 사전에 자세히 안내하는 차원에서 강사의 소속, 저서, 강의주제, 자세한 시간 안내까지 포스터, 전단지 등에 담아두었던 것이다. 듣고 싶은 강의만 들어도 상관없으니 주제와 강의시간을 살펴서 원하는 강의시간별로 참석이 가능하다는 안내를 넣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시간을 맞춰서 원하는 강의에 참여했는데, 12강을 계속해서 참여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어떤 강의시간에는 넓은 세미나실에 보조의자까지 채워지는 경우도 있었다. 세상에 일없는 사람은 없다고 했는데, 귀한 시간들을 아낌없이 배려하는 것을 볼 때 시민들의 지적 욕구가 얼마나 큰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참여자는 보령시민들 뿐만이 아니었다. 서울, 인천, 수원, 부여에서도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왔고, 익산과 천안에서도 다녀갔다. 또 어떤 사람은 보령시 홈페이지에 난 홍보를 보고 대구에서 올라와 1박2일 동안 꼬박 강의실을 지켰다.

강사들도 행사의 의도에 공감해서인지 자신의 강의시간만 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청중으로 앉아있었고 쉬는 시간에는 참가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했다. 약간은 우려했던 과학 관련된 강사들의 강의내용도 행사의 제목을 의식해서인지 순수자연과학에 치우치지는 않았다. 솔직히 이날의 인문학페스티벌이 전공학자들의 세미나도 아니고 이른바 대중강연 아닌가. 아무리 수준을 맞춘다하여도 주제에 따라서 어떤 이에게는 부족할 터이고, 어떤 청중에게는 넘칠 것 아닌가. 배정된 시간이라도 넉넉했다면 좀 나았겠지만 강의시간표를 받아든 누구라도 예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강사들이 자신의 강의 앞뒤에도 자리를 지켜주어서 관심있는 사람들과의 개별적 소통이 이루어진 것은 흐믓하고 감사한 일이었다. 책익는마을의 저자초청 토론회처럼 선정도서를 읽은 사람에 한해 참가하고 30분 저자의 강의에 90분 질의응답으로 이어지는 토론이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러나 그런식으로 그렇게 많은 강사들을 만날려면 우리들 일상을 참으로 많이 할애해야 했을 것이다.

1박2일 동안 이어진 릴레이 강의를 듣고 다소 피곤해진 몸으로 정리를 하고 있는데 연세 지긋한 한 선배에게서 문자가 왔다.

“유익한 시간들이었어. 우리가 젊어지는 느낌이었고 행복했어.”

도대체 내가 왜 이틀 동안 아니, 준비해온 한 달 동안 생업도 소홀히 하면서 왜 그렇게 달뜬 나날을 보냈을까. 책익는 마을 회원들은 또 무슨 이득을 보자고 그렇게 많은 시간을 나누고 후원금까지 내면서 달려왔을까. 직장에서 휴가를 내면서까지 참여했다는 낯선 청중들은 또 어떤 열정이 있기에 그런 용기를 내었을까. 그 자리는 흔히 만나는 ‘금융자산관리법’ 강의도, 돈 많이 번 유명인사의 ‘인생 성공법’ 강의도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진중하고 고리타분해서 우리가 학창시절에 얼핏 스쳐갔을 뿐 대체로 거들떠보지 않는 어려운 주제들이 아니었던가.

나는 그 열정을 지적인 욕구,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고미숙은 『호모쿵푸스』에서 ‘아무런 실용적 목적이 없이도 공부할 수 있을 때, 그때 공부는 비로소 최고의 지식이자 사회를 변혁하는 무기이면서 동시에 운명을 통찰하는 지혜의 수행이 된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에게 ‘책읽지 말고 공부하라’고 말해야하는 시대이기에, ‘대학을 졸업하면 공부 끝!’이라고 하는 세상이기에 나는 행복해지는 조건으로 인문학적 독서를 소망한다.

우리는 학교 다닐 때의 성적을 다 늙어서까지 외고 다니면서 자신의 두뇌가 뛰어나다고 믿는 사람들을 흔히 만난다. 또 학교 때 성적이 안 좋았던 사람들은 자신이 평생 책과는 인연이 없다고 치부해버리는 경우도 만나곤 한다. 모두가 잘못된 성장기가 만들어준 허상이다. 한 번 책을 함께 읽고 터놓고 만나보라. 나이도 학력도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능력도 전제하지 말고 책을 놓고 함께 토론해보라. 권위와 잘난체를 소거하고 함께하는 공부가 얼마나 따스한 인간애를 샘솟게 하고 행복한 기운이 넘쳐나게 하는지를 경험해보시라. 우리나라 근대적 사유의 물꼬를 튼 연암 박지원은 13살 연하인 박제가와 평생 벗으로 함께했다. 책을 읽는 공부는 누구나가 할 수 있고, 그 속에서 다양한 무늬를 한 역동적 행복의 길을 만날 수 있다.

2010보령 인문학 페스티벌은 보령 시민들의 그런 공부를 향한 열정을 확인하는 계기에 다름 아니었다. 평생교육이라해서 실용적 기능을 배우는 것 만이 어찌 평생교육이겠는가. 아니, 우리는 대학에서까지 기업에서 요구하는 기능 중심의 스펙 쌓기 공부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성인사회에 독서가 필요하다. 사회인으로 시작하는 그 시점이야말로 비로소 진짜 공부를 해야하는 출발점이다. 마지막 강의를 듣고 일어서는 그 순간에 내 마음속에는 읽고 싶은 책이 여러 권 떠올랐다. 또 이틀 동안 특별한 기능을 익히지도 않았고 대단한 지식을 배운 것도 아니지만 뿌듯한 기운이 충만해지고 있었다.

<보령신문 2010년 8월 24일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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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e시대와 철학>에 ‘책익는 마을 책읽는 소리’를 연재하는 보령 책익는 마을의 인문학 축전이 인문학과 삶이 어우러지는 새로운 시민 축전으로 자리매김되기를 바라며, 이에 소식을 알립니다.

일시 및 장소 : 2011년 8월 20-21일 대천 한화콘도 세미나실

참고 문의 및 연락처 : 017-432-9558

카페주소 : http://cafe.daum.net/thind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