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 [책익는 마을 책읽는 소리]

한흥수 (보령 책익는 마을 회원)

 

가슴에서 여전히 펄떡이는 유년의 기억들

두 아이의 아빠로 힘든 사회생활 속에서도 어렸을 적 기억을 떠올리면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흐릅니다. 내가 살던 마을은 작은 농촌 마을 이었습니다. 집 뒤에는 나지막한 청산이 있고, 마을 넘어 드넓은 논이 있고, 논을 지나면 역내라는 맑은 샛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마을에는 7명의 또래 친구들이 있었는데 우리들은 틈만 나면 놀 것을 찾아 온 마을을 뒤지고 다녔습니다. 여름이면 우리의 즐거움은 단연 물고기 잡이였습니다. 수로에 얼망을 놓고 친구들이 물고기를 몰면 그 조그만 얼망 가득 붕어, 매기, 미꾸라지가 펄떡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물고기를 산에 가지고 가서 어죽을 끓여 먹었습니다. 한 친구는 집에서 몰래 양은솥을 가져오고, 한 친구는 고추장을 가져오고 아무것도 가져올 수 없는 친구는 삭정을 모아 불을 피웠습니다. 아무런 양념을 하지 않아도 어찌나 맛있던지 30년이 훌쩍 넘은 지 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저절로 입속에 군침이 흐릅니다.

 

하얀 솜 같은 매 새끼 네 마리를 애완동물로 키우다

나는 유독 동물 키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지금은 애완동물을 키우지만 옛날에는 그럴 형편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산짐승을 잡아다 집에서 키웠습니다. 기억에 남는 애완동물은 새매였습니다. 지금은 천연기념물이기 때문에 포획 및 사육이 금지 되었지만 그때는 그런 법도 없었고, 나 또한 죄가 되는지도 몰랐습니다. 새매는 높은 소나무에 둥지를 틀고 있었기 때문에 새끼를 얻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대로 둥지를 한번 쑤시고 어미매가 날아오면 도망가고 또 쑤시기를 반복했더니 하얀 솜 같은 매 새끼 네 마리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나는 네 마리를 집에 가져가 개구리를 잡아다 먹이를 주며 지극정성으로 키웠습니다. 그래서인지 네 마리는 모두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어느 날 학교 갔다 왔는데 두 마리가 없어졌습니다. 어머니께 따져 물었더니 동네 아저씨가 참새를 쫓는다고 두 마리를 가져갔다고 했습니다. 급히 매를 찾아 논으로 갔더니 매의 날개는 잘려있고 끈에 묶이어 허수아비 마냥 참새를 쫓고 있었습니다. 너무 속상하고 죄책감이 밀려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두 마리를 하늘로 날려 보냈습니다. 새매는 하루는 집으로 돌아오더니 다음 날부터는 그림자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마을은 어른들의 보살핌과 교육이 살아있는 공동체였습니다.

이런 유년시절은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자연생태계를 몸으로 배우고, 친구들과 싸우면서 사회생활을 배우고, 마을에서 서리하다가 걸려 도둑질의 나쁨을 경험으로 배웠습니다. 책에서 말했듯이 지나고 보니 마을은 공동체였습니다. 아이들 끼리 어울려 놀았다고 생각했지만 항상 어른들의 보살핌과 교육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물놀이 하다 물에 빠지면 주변에 있던 어른들이 구조했고, 서로 싸우면 지나가던 어른들이 꾸중을 했으며 예의범절 또한 마을 어른들의 몫 이었습니다. 이런 마을에서 자란 어린이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고 발전 시켰습니다.

 

아이들이 무섭습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어릴 적 가난했던 시절만 기억하고 모든 가치를 부와 명예로만 생각하고 소중한 아이들에게서 추억을 빼앗고 학원으로만 몰고 있습니다.
저도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아이들이 무섭습니다. 승강기에서 마주쳐도 인사도 하지 않고 계단에는 아이들이 피운 양담배가 수북이 쌓여 있고 아파트 뒤편 구석진 곳에는 깨진 술병과 먹다 남은 안주가 너저분하게 놓여 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지친 마음을 손쉽게 풀 수 있는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 삼매경에 빠져 듭니다. 게임 속에서도 여전히 경쟁은 시작됩니다. 지친 마음을 쉬려고 시작했던 게임은 어느새 더욱 심신을 피로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자란 똑똑한 아이들이 다스리는 미래가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랑과 기쁨이 넘치는 사회일까요, 무한 경쟁 속에서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사회일까요.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우리아이들에게 이제는 우리 부모에게 선물 받은 마을이라는 공동체를 돌려주어야 합니다.

 

날개를 잃고 참새를 쫓던 요즘 아이들 같은 매에게

박원순 작가는 마을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사라져 가는 마을을 되살리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진솔하게 담고 있습니다. 아름다움이 저절로 느껴지는 경남 남해 다랭이 마을, 전북 임실의 치즈마을, 환경 농업공동체를 실현시킨 경북의성의 쌍호공동체마을 등 책에서 소개된 모든 마을들은 의식 있는 몇 사람에 의해 시작되었고, 모든 마을 사람들의 참여로 인해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마을이 사라지면 우리의 풍요롭고 아름다운 미래도 사라질 수 있습니다.

소중한 마을을 지키기 위해 정부에서는 농어촌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되고,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도 마을공동체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강구해야 됩니다. 어른들이 힘을 모아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만들고 아파트 주민끼리 서로 인사하고 나누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다시 한 번 마을 공동체로 만들어 우리가 잊고 지내던 품앗이 문화를 되살려 서로 돕고 나누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마을을 만들기 위해서는 부모부터 변해야 합니다. 너무 자녀들을 경쟁에 밀어 넣지 말고, 아이들이 마을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마을공동체 문화가 정착 되어야 아이들의 범죄도 사라지고 국민들의 행복지수도 높아지는 진정한 선진국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끝으로 아름답던 유년시절을 추억하며 날개를 잃고 아무런 생각 없이 참새를 쫓던, 요즘 아이들 같은 매에게 다시 한 번 사죄합니다.

????????????????????????????????????????????

* 이 글은 <e시대와철학>과 <책익는 마을>의 공동기획 연재물입니다. 책과 더불어 건전한 시민문화를 만들어가는 보령 책익는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세상살이, 세상보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오늘은 그 다섯째 글로서 박원순의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검둥소 펴냄)을 다룬 글입니다.

세상과 다른 꿈, 조선 선비 9인의 사상을 읽다 [책익는 마을 책읽는 소리]

안세환 (보령 책 익는 마을 회원)

 
인터넷 서점 새 책 코너에서 이 책이 눈에 띄었다. ‘나는 불온한 선비다’라는 제목을 볼 때 당시 사회가 인정해 주지 않았던 다른 길을 걸어갔을 그들을 생각했다. 자기가 좋아서 선택을 했든, 타의에 의해서 선택을 했든 그 누가 뭐라고 하든지 그 길을 걸어갔을 꼿꼿한 선비의 모습을 제목을 통해서 읽을 수 있었다.

5권의 새 책이 택배로 배달이 되는 시간에 마침 우리 ‘보령 책 익는 마을’ 박종택 촌장과 다른 몇 분이 오셔서 식사 후에 커피를 마시며 담소하고 있었다. 새 책들을 펼쳐 가면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에 마을 분들은 이 책이 마음에 든다고 독후감을 쓰라고 한다. 여러 분들이 이 책을 추천하는 것으로 볼 때 제목에 마음이 들었나 보다.

『나는 불온한 선비다』를 살펴보니 ‘세상과 다른 꿈을 꾼 조선의 사상가들’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그렇다. 이 책에는 세상과는 다른 사상가들의 삶이 녹아져 있다. 그들의 생각이 이 책에 녹아 있다. 이 책에는 모두 아홉 명이나 되는 인물들을 아홉 장을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다. 김시습, 서경덕, 박세당, 정제두, 이익, 유수원, 홍대용, 이벽, 최한기가 그들이다. 깊이 있는 내용을 알기 보다는 대강의 삶의 언저리를 살펴보는 수준에서 읽어 볼만한 책이다. 나는 여기에 나오는 아홉 명을 다 설명할 수는 없고 김시습, 이익, 최한기 세 사람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매월당 김시습(1435-1493)

매월당은 공명과 지조 사이에서 고뇌한 ‘광인’으로 제목을 삼고 있을 만큼 지조의 사람이다. 그에게는 두 평가가 있다. ‘신세 망친 인간’과 ‘지조를 지킨 사람’이라는 평가이다. 전자가 주로 일상적인 삶을 중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후자는 지식을 담고 세상을 보는 사람들의 평가이다. 그는 21살 때(1455년) 과거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수양대군이 왕위찬탈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분노와 슬픔에 찬 통곡으로 3일간 지내다가 공부하던 책과 원고들을 모두 불태워버린다.

그리고는 유랑의 길로 들어서는데 어떤 때는 분뇨 속에 들어갔다가 나오기도 했다. 그 후 설악산에 있는 오세암에 들어가 삭발을 하고 기인의 삶을 산다. 경주 남산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 『금오신화』를 쓰고, 호를 매월당으로 한다. 마지막 2년은 부여의 무량사에서 지내다가 생을 마쳤다.

그의 기행을 살펴보면 어느 날 한강변을 지나다가 보니 한명회가 압구정 근처 한강변에 정자를 한 채 지어 시 한 수를 걸어 놓은 것을 보게 된다. 그 시구는 이렇다.

靑春扶社稷 청춘부사직 젊어서는 나라를 붙들었고

白首臥江湖 백수와강호늙어서는 강호에 누워있구나

이 시의 작자가 한명회임을 알게 된 김시습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붓을 들어 표현하는데, 扶를 危로, 臥를 汚로 살짝 바꾸어 놓았다.

靑春危社稷 청춘위사직젊어서는 나라를 위태롭게 했고

白首汚江湖 백수오강호늙어서는 강호를 더럽히는구나

정말 촌철살인의 위트가 번뜩인다. 당대의 최고의 권력자인 노년의 한명회를 향하여 이처럼 온 세상에 시원함을 줄 수 있는 인물이 김시습이다. 오늘날 이런 기개로 세상을 향하여 화두를 던질 수 있는 이가 누구인가? 권력에 붙어 온갖 영화를 누린 한명회를 보는 김시습의 눈에는 나라를 위태롭게 만들고 강호를 더럽히는 인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후에 한명회가 알고는 펄펄 뛰었지만 광인처럼 지내는 김시습을 어쩌지는 못하였다. 이것으로 보아 한명회도 일말의 양심은 있어서 세상에서 돌아가는 소리를 듣기는 들었나보다.

매월당은 제법 많은 분량의 시를 남기기도 했는데 특히 도연명을 좋아해 그에 답하는 화도시(和陶詩)를 66편이나 남겼다. 또한 그의 소설 『금오신화』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로 여겨지고 있다. 단편소설 정도지만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 이라는 5편이 실려 있는데, 앞의 세 편은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이고, 뒤의 두 편은 지옥과 용궁이라는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이다.

그 외에도 신유학이라고 하며 주자에 이르러 완성을 본 성리학을 더욱 완성시켰는데, 그의 이기론을 보면 개개의 현상만을 인정하는 이기일원론자 같기도 하고, 보편과 현상을 다 함께 보는 이기이원론자 같기도 하다. 오늘날 학자들 간에 그의 이기론을 두고 아직도 논쟁이 분분하다.

성호 이익(1681-1763)

먼저 영풍(獰風)이란 시를 보자.

野老竅窓疑不出 야로규창의불출 시골 늙은이 밖을 엿볼 뿐 나갈 엄두 못 내고

書生推沈?無言 서생추침묵무언서생들은 자다 일어나 아무런 말이 없다

이 시는 제목 그대로 엄청나게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는 한밤중에 지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무시무시한 바람과 함께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하늘에서는 뇌성벽력이 일어 땅을 흔들 정도다. 혹시 무슨 일이 있을까 하여 염려는 되지만 밖에 나가지 못하고 가만히 방에 있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이익은 관직에 나가는 청운의 꿈이 있었다. 그러나 첫 시험에서 주어진 형식대로 쓰지 않은 것 때문에 2차 시험에 나가지 못했고, 또 친형이자 스승인 이잠이 사형당한 일이다.

그 아픔을 뒤로 하고 재야에 묻혀 농사와 교육에 종사하면서 학문연구에 몸을 바치기로 한다. 시골 초가의 방안에 앉아 그가 접할 수 있는 넓은 세계로 문을 열어 놓고 학문을 한다. 철학, 정치, 사회, 역사, 자연과학 등 모든 학문 분야가 그의 관심에 들어와 있다. 부친이 청나라 사행길에 구입한 많은 서구 관련 책들을 읽고 서구에 열려진 진보적인 유학자로 입지를 굳힐 수 있었다.

그의 주장 중에 6두(?)라는 것이 있다. 여섯 개의 좀이 있다는 말이다. 노비제도, 과거, 문벌중시, 잡기와 무당, (일부의) 승려(승적으로 인해 병역기피가 많았기에), 게으름 등을 말하는데 없어져야 할 사회의 악으로 보고 있다. 성호는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입장에서 정책을 펴도록 주장을 한다. 이런 주장들은 대부분 성호사설에 들어 있다. 그에게 늘 불행만 있는 것이 아니라 행복도 있다. 절대적인 존경의 마음을 가진 인재들을 제자로 둘 수 있었던 것이 그것이다. 조선 후기 이름을 떨친 윤동규, 안정복, 신후담, 권철신 등이 그의 제자였고, 정조 때 영의정을 지낸 채제공도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게다가 여든셋까지 살았으니 그 시대에 장수한 셈이다.

성호사설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옛 글과 자신의 글을 뒤섞어 책을 만들었기에 후대의 정약용은 올바른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고 비판을 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이런 중립적 사유가 있기에 오늘날까지도 많은 내용이 실천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익이 제기한 부정부패, 빈부의 문제와 개선책은 오늘날에도 여전한 과제로 남아 있다.

혜강 최한기(1803-1877)

혜강 최한기는 1980년대 이후에 관심과 연구가 부쩍 늘었다. 혜강의 학문은 넓고 깊다. 그가 남긴 1천여 권의 저서는 최남선이 탄복할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편이다. 아직도 다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니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분야이다. 그는 개성 출신인데 ‘개성상인’과는 거리가 먼 저술가로 평생을 바쳤다. 그는 비싼 돈을 들여 북경에서 들어온 책들을 샀다.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 책을 사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뭐라고 하자 이렇게 대답을 한다.

‘가령 이 책 중의 사람이 나와 같이 동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천리라도 불구하고 찾아가야만 할 텐데 지금 나는 아무 수고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그를 만날 수 있다. 책을 구입하는 것이 돈이 많이 들기는 한다지만 식량을 싸가지고 먼 여행을 떠나는 것보다야 훨씬 난 것이 아니겠나.’

성리학자들에게 주공이나 공자는 성역의 존재다. 그들을 비평하는 것은 금기다. 그런데 혜강은 주공이나 공자에 대해서도 반대의 입장에 설 수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기측체의 서’에서 오직 두 성인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려는 맹점을 지적한다. 나라의 풍속이 다르고 시대가 다른데도 그들 두 사람이 남긴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며 변통할 줄 모른다면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했다. 하기는 최근인 1999년에 김경일 교수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을 내었다가 유학자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지탄을 받았는가? 하물며 19세기의 사람임에랴!

그의 책 『신기통』과 『추측록』 두 권을 묶어서『기측체의(氣測體義)』라는 이름으로 중국 북경의 서점가인 유리창에서 발간이 되었는데, 이것은 수입일변도인 조선에서 중국으로 수출이 되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혜강에 대해서 한마디로 말한다면 ‘미래에 대해 열려 있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문호가 닫혀 있었던 시대에 많은 책들을 통하여 배우고, 수많은 책을 저술하면서 시대를 앞서 나갔던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그가 자주 쓰는 용어 중에 ‘운화’란 말이 있다. 운화는 운동, 운행, 운영 정도의 변화를 의미한다. 그는 상업에 있어서 나와 타인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상업을 운영하는 것이 곧 이익을 보는 최상의 길이니 그 길을 따르라고 한다. 이런 시각은 비단 상업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에 있어서 서로 이익이 되어야 하고, 사회에서도 서로 이익이 되는 보편적인 방법이 최상임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마무리 하며

저자는 독특한 사상의 길을 걸어갔던 아홉 명을 들어 설명하고 있지만 작은 책에 담다 보니 가볍게 그 분들의 정신보다는 삶을 이해하는 선에서 정리가 되었고, 나 또한 다 다룰 수 없어 세 분만 들어 그야말로 간단하게 정리를 해 보았다. 특히 한국철학사상연구회에서 <e시대와 철학> 사이트에 글을 싣는다는데, 철학 쪽보다는 우리 선조들의 삶에 조명을 하게 된 셈이어서 의도에 상충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다. 그럴 줄 알았다면 ‘철학책 중에서 선정할 걸’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번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위안을 삼는다.

여러 사람들에게 왜 책을 읽느냐고 물어보면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대답을 한다. 맞는 말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해의 정도가 문제이다. 저자의 생각과 글 속에 나타나는 의미를 내가 얼마만큼 아느냐가 관건이다.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 그래서 읽을 때에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이해의 정도를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리라 여기며 글을 접는다.

????????????????????????????????????????????

* 이 글은 <e시대와철학>과 <책익는 마을>의 공동기획 연재물입니다. 책과 더불어 건전한 시민문화를 만들어가는 보령 책익는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세상살이, 세상보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오늘은 그 넷째 글로서 이종호 님의 <나는 불온한 선비다>(위즈덤하우스 펴냄)을 다룬 글입니다.

영원한 현자, 소로우와의 만남 [책익는 마을 책읽는 소리]

임명옥 (보령 책 익는 마을 회원)

 

방문객이 되어 길을 떠나다

나는 방문객이 되어 그를 만나러 길을 떠난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 그를 방문하려 했을 때 사실 내 마음은 덜컹거리거나 삐걱거리고 우글우글 끓거나 오글거렸다. 안일함을 추구하는 자아와 도전정신을 가지고 있는 자아가 만나서 갈등하고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전히 깨어 있는 삶과 본질적인 삶을 추구했으며, 말과 글로써 만이 아니라 실천적인 삶을 살다 간 그에 대한 호기심이 나를 월든 호숫가로 이끌었다.

그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고 세속적인 의미에서 성공이라 여겨지는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모험과 실험 정신을 가지고 도전과 위험으로 가득 찬 인생길을 선택했다. 극심한 고통과 근심, 과도한 노동에 마음을 빼앗긴 이웃들에게 그리고 집의 노예, 재산의 노예, 일의 노예로 사는 사람들에게 자급자족과 여유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또 하나,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 직면해 보기 위해서 그는 자신의 고향인 월든 호숫가에 집을 짓고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햇볕이 화사하게 내리쬐어 만물을 회생시키는 이 최초의 봄날 아침, 숲으로 들어선 나는 월든 호수 근처에서 개구리와 거북이의 마중을 받는다. 월든 호수는 웅장하지는 않지만 수수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데 그의 묘사대로라면 여름날 청명한 날씨에는 청색빛, 폭풍우가 부는 때는 청회색빛, 사방이 눈으로 덮였을 때는 초록빛을 띤다. 호수에는 강꼬치고기, 메기, 퍼치, 피라미, 황어, 기름종개, 송어, 장어가 서식하고 봄과 가을에는 물오리와 기러기가, 여름에는 횐가슴제비가 물살을 가르며 날아오른다. 소로우에게 월든 호수는 신과 천국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가장 숭고하고 친밀하며 가장 아름답고 표정이 풍부한 지형이자 대지의 눈이다.
소로우, 월든 호숫가에 집을 짓다

소로우는 1845년 3월 말 경 그의 나이 스물여덟 살 때 미국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 마을에 통나무로 오두막 한 채를 지었다. 도끼 한 자루를 빌려 들고 월든 호숫가의 숲 속으로 들어가 혼자 힘으로 봄과 여름 내내 집을 지었다. 숲에 있는 호두나무와 소나무를 자르고 베고 깎는 일은 그에게 즐거운 노동이었다. 기둥과 서까래를 다듬고 굴뚝을 만드는 일은 그에게 재미있는 놀이였다. 점심으로 그는 버터 바른 빵을 싸 갔는데 송진이 묻은 손으로 만진 빵에서는 소나무 향이 풍미를 더 했을 것이다. 28달러의 비용으로 거주할 공간을 완성했는데, 그 비용은 그 당시 하버드 생이 학교에 내야 할 일 년 치 월세보다 더 싼 비용이었다. 즉, 소로우는 적은 돈으로 평생 살 수 있는 집을 지을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나는 그의 오두막 집 문을 두드린다. 그는 노동으로 다져진 건강한 신체와 건전한 정신이 가져 오는 맑으면서 풍부하고, 깊으면서도 예리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진지하면서도 신중해 보였는데, 아무 예고도 없이 찾아 온 방문객을 성의껏 맞아 주었다. 그의 집은 폭이 약 3m, 길이가 4m 50cm, 높이가 2m 40cm 정도로 몇 사람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의 작고 아담한 크기이다. 집 안에는 탁자 하나, 침대 하나, 의자 세 개, 책 몇 권, 그릇 몇 개 정도이다. 겨울을 나기 위해 벽난로를 놓았고 창문과 출입문이 있다. 소로우에게 주거 공간이란 기본 요건만 갖춘 간소한 집을 의미한다. 살아가는 데 필수품인 것들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 그릇이 몇 개 없으니 찬장이 필요 없고, 옷도 몇 벌 없으니 장롱도 필요 없다.

탁자는 책상이자 식탁이고, 집은 거실이자 침실이자 부엌이다. 커튼은 자연이 만드는 채광이 있으니 필요 없고, 창문을 통해서 사계절을 느낄 수 있으니 그림이 필요 없고, 자고 일어나면 온 숲 속에 울려 퍼지는 새들의 노랫소리로 음악이 필요 없다. 나는 그가 마련해 준 의자에 앉는다. 그의 집에는 의자가 세 개인데 하나는 고독을 위해서, 두 개는 우정을 위해서, 세 개는 사교를 위해서, 라고 그는 설명해 준다. 나는 그가 새벽마다 근처 샘가에 가서 떠 왔을 물 한 잔을 대접받는다. 물이야말로 현명한 사람들을 위한 유일한 음료라는 생각이 소로우의 오두막집 음식문화이다. 술은 그다지 고상한 음료가 아니고 아침의 희망을 한 잔의 뜨거운 커피로 꺼버리고 저녁의 희망은 한 잔의 뜨거운 차로 꺼버리기에 커피와 차도 불필요한 음료라는 게 소로우의 덧붙여진 설명이다.

하루에도 몇 잔씩 커피를 즐기는 나로서는 무색하고 난감해질 수밖에 없는데 기호식품은 생필품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본질을 직면하고자 하는 그에게 기호식품은 사치품일 텐데, 나로서는 “이것마저 포기해야 해요?” 라고 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물은 맑고도 향기롭다. 자연과 숲이 물속에서 교감하고 체화되어 순수함을 만들어 낸 듯하다.

소로우, 참다운 농부가 되다

소로우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정오까지는 대부분 콩밭을 가꾸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콩밭을 매면서 소로우는 자문한다. ‘나는 콩들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이며, 콩들은 나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자급자족해야 하는 그에게 콩밭 가꾸기는 그의 직업이 되어 심고 김매고 수확하고 도리깨질하고 추리고 팔고 먹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오직 호미 한 자루와 두 손으로만 일을 한다. 말과 소, 개량된 농기구들을 이용하지 않고 비료와 거름을 주지 않는다. 그의 농사일을 돕는 조수들은 단지 이슬과 비, 지력과 태양빛, 공기 그리고 새들의 노랫소리이다. 그렇게 하고도 그는 손해를 보지 않고 이익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는 말한다.

“농사가 한때는 신성한 예술이었다. 지금은 농업의 여신이나 대지의 신에게 제사 지내지 않고 지옥의 황금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다. 사람들의 탐욕과 이기 때문에……. 토지를 재산으로 보기 때문에 자연은 불구가 되고, 농사일은 품위를 잃고 농부는 비천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 .”
“금년에 숲에 밤이 열릴 것인지 아닌지 다람쥐가 걱정을 않듯 참다운 농부는 걱정에서 벗어나 자기 밭의 생산물에 대한 독점권을 포기하고, 자신의 최초의 소출뿐만 아니라 최종의 소출도 제물로 바칠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는 대부분의 식사를 옥수수 가루를 반죽해서 빵으로 만들어 먹거나 쌀로 죽을 끓여 먹거나 감자를 먹는다. 때로는 월든 호수에 나가 송어나 메기를 잡아 오기도 한다. 한번은 그에게도 육식에 대한 본능이 있어서 숲에서 우드척을 사냥했는데 육식을 먹기 위한 과정이 감자를 먹는 과정보다 훨씬 더 많은 노동력이 소모된다는 사실을 경험하고는 감자나 옥수수 가루, 쌀을 먹는 게 효율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의 책상 위에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비롯한 고전 몇 권이 놓여 있다. 그는 독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의 거처는 사색을 하기 위한 곳일 뿐만 아니라 진지한 독서를 하기 위한 곳으로도 어느 대학보다 낫다. 고귀한 지적 운동으로서의 독서만이 진정한 의미의 독서인데, 고전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유일한 신탁이다……. 기록된 말은 역사적 유물 중에서도 가장 귀중한 것으로 그것은 삶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예술작품이다.”

간소하고 소박하게, 그리고 단순하게

오전에 김매기나 독서나 글쓰기를 다 끝마치고 월든 호수에 몸을 담근 후 소로우는 가뿐해진 몸과 마음으로 오후에는 마을에 산책을 나간다.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를 듣거나 숲에 있는 새와 다람쥐를 관찰하듯 우거진 느릅나무와 플라타너스 밑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관찰하러 마을로 향한다. 어느 날 그는 마을에 갔다가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소로우로서는 인간을 가축처럼 매매하는 국가는 권위를 인정할 수 없었고, 그러한 국가에는 세금도 낼 수 없었기에 세금 납부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국민’보다 ‘인간’이 중요하고, ‘법’보다는 ‘정의’가 더 중요했다.

아직 흑인노예해방이 이루어지지 않은 시점에서 소로우는 흑인노예제라는 야비한 제도에 빠져 있는 천박한 국민들과 악랄한 노예주인 남부의 농장주와 새로운 노예를 생산해 내는 북부의 공장주들을 함께 비판했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빼앗고 노예로 삼는 것도 비판했지만, 자기 스스로 자신의 노예 감독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예리하게 관찰했다. 그래서 그는 과도한 노동에 얽매이지 말고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고, 간소한 옷과 집, 소박한 음식과 단순한 삶을 살게 되면 자기 인생의 노예가 아니라 자유로운 주인으로 자주적인 인간으로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본질과 진실을 찾아 가는 삶

소로우는 2년 2개월 동안 문명사회에서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실험해 보고 이 책 『월든』을 탄생시켰다. 그의 정신세계는 보다 높은 곳을 지향하지만, 그의 문장은 자연에 대한 예찬과 아름다운 묘사들로 가득 차 있다. 소로우는 자신이 살고 있던 19세기를 들떠 있고 신경질적이며 어수선하고 천박하다고 표현했다. 그래서 탐욕을 따르기보다는 절제된 삶, 소박하고 간소하며 단순한 삶을 추구했고, 진정한 문명인으로서 일과 돈의 노예로 살기보다는 여유롭고 자유로우며 건강한 삶을 추구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사랑이나 돈, 명예가 아니라 진실이었다. 인생을 깊이 있게 사유하면서 순결함과 고귀함, 진취성과 용기, 선행과 겸손, 너그러움과 신뢰, 정직함과 모험을 사랑했고, 숲에서 호수에서 천국을 발견했다.

소로우의 집에서 나와 나의 집으로 향하면서 내 마음 속이 여전히 오글거림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나는 자연으로부터, 그가 말하는 인생의 본질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서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들어서이다. 본질적인 삶으로부터 멀어져서, 그 길을 찾기가 어려워져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몰라 착잡하기도 하고 19세기와 21세기는 많은 점에서 다르다, 라고 변명을 해 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본질을 찾아가는 삶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진실을 추구해야 하는 인간으로서 마땅한 도리라는 생각이 든다. 소로우가 말한 대로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만 끊임없이 노력하지 말고, 더 적은 것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우는 게 진실과 가까운 삶일 것이다. 나는 소로우와의 만남을 통해 앞으로의 내 생이 지금보다 더 간소하고 소박해지기를, 그래서 자연과 우주의 법칙에 어긋나지 않게 살기를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소로우식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나는 이 가증스럽고 허황되며, 탐욕스럽고 몰염치한 21세기에 사는 것보다는 이 시대가 지나가는 동안 서 있거나 앉아서 생각에 잠기고 싶다. 그리고 나 역시 내가 갈 수 있는 유일한 길, 어떠한 힘도 나를 막을 수 없는 그런 길을 가기를 꿈꾼다.

????????????????????????????????????????????

* 이 글은 <e시대와철학>과 <책익는 마을>의 공동기획 연재물입니다. 책과 더불어 건전한 시민문화를 만들어가는 보령 책익는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세상살이, 세상보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오늘은 그 셋째 글로서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강승영 옮김, 이레 펴냄)을 다룬 글입니다.

우리는 권력의 시선에서 자유로울까? [책익는 마을 책읽는 소리]

장윤성 (보령 책익는 마을 회원)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매일 두 번 이상 엘리베이터를 타며 오르내린다. 엘리베이터를 낯선 이와 함께 타면 시선을 어디로 둬야 할지 곤란하다. 아마 상대방도 나와 마찬가지인가 보다. 나와 상대방은 각각 다른 곳을 응시하며 한 평 남짓한 엘리베이터 안을 어색한 침묵에 잠기게 한다. 상대방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린 후 비로서 내 시선은 자유로워진다.

거울을 보면서 옷매무새를 고치거나 얼굴을 살핀다. 나를 쳐다보는 눈길이 없기 때문에 내 시선도 행동도 자유롭다. 내가 아닌 남이 나를 쳐다보는 것은 어색하다. 심지어 불쾌하기도 하다. 작가는 그 이유를 ‘타인은 지옥’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서 수치심을 느끼기 때문에 당혹감과 모욕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가 남의 눈을 바라보는 것은 의사가 환자의 눈을 바라보는 것처럼 생물학적 양태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타인의 눈을 바라보는 것은 시선과 시선의 마주침이다.

이런 시선의 관계에는 지배 관계가 따른다. 바라보는 자는 시선이고 바라보여 지는 자는 눈이다. 바라보는 자의 시선은 바라보여지는 자의 눈을 지배한다. 그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타인은 내게 지옥이 된다. 그래서 뒷모습을 보일 때 더 안절부절 해진다.

면접을 보게 되는 상황도 한가지이다. 면접관의 객관적인 냉혹한 시선 안에서 나는 하나 둘 옷이 벗겨지는 듯하다. 면접관은 나에게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았지만 나는 두려움에 긴장한다. 면접관이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보다 면접관의 눈을 응시하며 말해야 되는 상황에 식은땀을 흘린다. 면접관의 바라보는 시선과 나의 바라보는 눈 사이에 지배와 종속관계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시선에도 권력은 존재한다.

17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잔인한 처형은 공개된 처형이었다. 17세기말 아비뇽의 판례를 보면 사람들이 모인 광장에서 죄수를 처형했다. 형리는 처형된 죄수의 몸을 내장부터 하나하나 꺼내 분해한다. 시체에 가혹행위를 하는 까닭은 군주가 가진 힘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지배자인 군주의 절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처벌은 잔혹했으며 이 처벌을 고스란히 민중들에게 보여줬다. 공개처형은 이 장면을 바라보는 민중들에게 두려움을 갖게 하여 군주의 권력을 굳건하게 만드는 통치수단이었다.

 
근대에 이르러 공개처형은 사라지고 은밀하게 진행된다. 18세기부터 19세기 개혁론자들은 공개처형이 민중을 위협하는 수단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것은 표면적 이유이다. 공개처형을 보면서 민중은 처벌받는 사람과 동질감을 느꼈다. 민중은 죄수가 당하는 잔인한 처형을 보면서 불안감을 느낀다. 이 불안감에서 저항의지가 시작되었다.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한 후 로마는 크리스트교를 핍박했다.

크리스트교 신자들을 원형 경기장에 넣어 굶주린 사자의 밥이 되게 했다. 끔찍하고 처연한 크리스트교 신자들의 죽음에 로마시민 중 일부는 크리스트교인이 되기도 했다. 구경거리가 된 죽음 앞에 크리스트교인들의 종교적 신념은 더욱 강해졌다. 결국 로마는 크리스트교를 공인했다. 공개처형은 그 역할을 해내지 못해 폐지된 것이다. 푸코는 공개처형제도의 폐지가 죄수에 대한 인권신장이 아니라 한계에 부딪친 권력 기술의 전환이라고 했다.

국가는 권력유지를 위해 다른 방법을 찾아낸다. 바로 ‘감시’이다. 공개된 처형 대신 폐쇄된 공간 속에서 죄수들을 몰아넣고 엄격한 감시와 꼼꼼한 일과표로 통제한다. 1797년부터 죄수들은 네 부류로 나뉘었다. 네가지 부류로 나눈 기준은 죄수들이 저지른 범죄가 아니라 감시되는 개인의 잠재적인 위험이 근거였다. 죄수들은 일과표에 따라 식사, 노동, 운동, 학습 등을 철저히 수행한다. 이 규범의 수행여부는 감시를 통해 확인한다.

죄수들의 행동을 강제하는 것이 규율적 권력이다. 규율적 권력은 공개처형에서 보여준 과시적 권력보다 훨씬 더 무서운 권력이다. 과시적 권력은 민중들에게 저항의지를 심어주기도 한다. 규율적 권력은 저항 의지 자체를 갖지 못하게 만든다. 규율적 권력은 민중이 스스로 권력에 복종하도록 한다. 죄수가 아니더라도 거의 대부분 사람들은 권력에 순종하는 인간이 된다.

학교에 입학함과 동시에 우리는 많은 규율에 시달린다. 내가 경험한 규율중 가장 심각했던 규율은 중, 고등학교 시절 두발 단속이었다. 용모단정이라는 미명하에 머리카락 길이는 귀밑 5cm로 정해졌다. 선생님들은 자를 들고 다니시며 5cm가 넘는 머리카락을 가위로 무자비하게 자르셨다. 싹둑 잘려나가는 내 머리카락 속에서 나는 내 의지도 함께 잘려나가는 것을 느꼈다. ‘남자는 군대에 다녀와야 남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군대에서 받는 훈련들로 ‘극기’를 하여 강한 남자로 개선된다고 한다. 이는 심각한 착각이다.

우리는 군에서 받는 반복되는 훈련들로 ‘순종’하는 인간으로 개량되어 간다. 정치력을 가진 정치인, 경제력을 가진 재벌들은 본인뿐만 아니라 그의 자식들도 종종 군대에 가지 않는다. 그들은 복종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이 가진 권력으로 복종을 받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힘든 훈련을 통해 순종하는 인간으로 개량할 필요가 없다. 순종하는 인간으로 만드는 규율적 권력은 감시를 통해 만들어지고 유지된다. 감시는 바로 시선에서 나온다.

나는 감시당하고 있다.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벤담은 완벽한 감시 장치, ‘판옵티콘’을 구상한다. 그의 책 제목이기도 한 ‘판옵티콘’은 하나의 시선만으로도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감옥건물이다. 건축가도 아닌 정치 사상가였던 벤담이 감옥 건축을 구상한 까닭은 감옥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이상적인 실험공간이기 때문이다. 판옵티콘의 원리는 시선의 불균형, 시선의 비대칭성이다. 반지모양의 원형건물 안 중앙의 탑에는 감시인을 둔다. 중앙 탑은 빛이 차단되어 수감자는 감시인을 확인하지 못한다. 반면 수감자의 독방에는 항상 빛이 통과되게 한다. 이 빛은 감시자의 시선이 죄수들을 더 잘 파악하게 만들어준다.

벤담이 구상한 판옵티콘의 원리인 시선의 불균형, 비대칭성은 오늘날 경찰서 심문실에서 이용되고 있다. 용의자가 있는 심문실은 거울처럼 보이는 창이 있다. 용의자는 그 창을 통해 다른 방에 있는 검사와 경관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검사와 경관은 그 창을 통해 용의자를 관찰한다. 판옵티콘의 죄수들이나 경찰서 심문실의 용의자는 감시인을 확인하지 못한다. 확인하지는 못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은 인식하고 있다. 이 시선 때문에 그들의 행동은 제약이 따른다.

벤담의 판옵티콘은 구상으로만 끝나버린 채 건축되지 못했다. 판옵티콘 이라는 건물은 존재하지 않으나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는 변형된 판옵티콘들이 존재한다. 그 변형된 판옵티콘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 우리는 수많은 감시하는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학생들은 시험으로 학습능력을 감시당하고 교사들은 교원평가제로 교수능력을 감시당한다. 소비자들은 신용카드로 물건을 구입하면서 기업에게 소비행태를 감시받는다. 보유율 90%가 넘는 휴대폰도 훌륭한 감시도구이다. 휴대전화 통화기록으로 감시당하고 GPS와 결합하여 위치도 추적당한다. 나의 언행이 나도 모르게 휴대전화로 찍히기도 한다.

인터넷 상에서 회원가입을 하면서도 감시받는다. 내가 기록한 구체적 신상정보가 유출되어 불이익도 받는다. 건강보험제도로 내 질병의 사항들이 보험회사 등에 의해 감시받는다. 나는 기억조차 못하는 내 질병을 보험회사는 아주 자세히 알고 있다. 곳곳의 폐쇄회로 TV는 우리를 범죄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 준다는 구실로 유용하게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할 때 감시하는 시선에서 자유로울지 알 수 없다. 행정안전부는 2013년부터 주민등록증에 IC칩을 내장한 전자주민증으로 변경하겠다고 한다.

정부가 전자주민증이 필요하다고 내세우는 이유 중 하나는 응급치료 상황시 필요한 혈액형 정보를 넣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와 같은 이유는 어불성설이다. 아무리 응급상황시라도 수혈을 하기 전 혈액형검사는 하기 때문이다. 환자가 알려준 혈액형이나 주민증에 기재된 혈액형으로 수혈하는 의사는 없다. 그대로 수혈하기에는 위험성이 크다는 것은 의사라면 숙지하고 있는 기본 의학상식이다. 정부가 근거없는 이유를 내세워 국민을 기만하면서까지 전자주민증으로 변경하려는 목적은 감시이다. 좀 더 효율적으로 국민을 감시하려는 것이다.

나는 트루먼이다

십여 년 전에 섬뜩한 영화를 관람했다. <트루먼 쇼>라는 영화이다. 트루먼 쇼는 트루먼이라는 남자의 일상을 24시간 숨겨진 카메라로 촬영하면서 전 세계에 내 보내는 인기 프로그램이다.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은 이 트루먼 쇼에 열광한다. 평범한 남자의 일상생활에 푹 빠진 이유는 엿보기의 심리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트루먼의 사생활을 엿보며 쾌감을 느낀다. 실제로 트루먼 쇼 같은 인간의 엿보기 심리를 이용한 프로그램은 다양하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란 장르로 방영되고 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 중 이혼위기에 처한 여러 쌍의 부부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의 전개되는 내용을 시청자들도 대충 짐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하는 이유는 가상이 아닌 실제 부부생활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트루먼 쇼를 관람한 후 다른 사람을 내가 엿볼 수 있다는 사실은 누군가가 나도 엿볼 수 있다는 확연한 진실을 깨닫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현금인출기 앞에서, 주차장에서 나는 트루먼이다. 어디를 가든지 카메라가 나를 감시하고 있다. 나는 트루먼처럼 나를 촬영하는 폐쇄회로 TV를 의식하지 못한다. 물론 폐쇄회로 TV가 나를 촬영하고 있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러나 내 의식의 세계는 그 사실을 감지하지 못한다. 내 의식은 나를 감시하는 시선에 길들여져 있어서 편안하게 익숙해졌다. 자연스러운 그 익숙함은 감시받는 시선에서 탈출하려는 의지를 지니지 못하게 한다. 설령 그 의지를 갖게 되더라도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다.

섬을 탈출한 트루먼은 과연 시선에서 탈출했을까?

————————————————————————————————————————————

* 이 글은 <e시대와철학>과 <책익는 마을>의 공동기획 연재물입니다. 책과 더불어 건전한 시민문화를 만들어가는 보령 책익는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세상살이, 세상보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오늘은 그 둘째 글로서 <시선은 권력이다>(박정자 지음, 기파랑 펴냄)을 다룬 글입니다.

내 마음 속의 ‘아Q’를 보내며 [책 익는 마을 책 읽는 소리]

<보령 책익는 마을> ‘책 읽는 소리’ 연재를 시작하며

박종택 (보령 책익는 마을 촌장)

아큐(阿Q)형!

오늘 날짜로 형에게 이별을 고하고자 편지를 씁니다.

형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던가는 기억이 또렷하지 않지만 초등학교 4학년 때 중국 루쉰(魯迅) 선생님의 소개로 정식 인사를 나누었던 기억은 명확합니다. 그 후로 형과의 우정 어린 만남은 친밀성을 넘어 동반자적 관계를 가지며 살아온 세월이었습니다. 그러다 형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게 된 것은 ‘책익는 마을’에 이주하게 된 때부터였습니다.

아Q형,

오랜 동반자적 우정을 나누던 내가 갑자기 이별을 고하니, 분하고 괴이함을 넘어서 나의 속내와 ‘보령 책익는 마을’이 어떤 곳인지 궁금할 것입니다. 저도 우리 지역에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자발적인 독서 모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린이도 아니고 어른들이 모여서 책을 읽다니 별일이다’ 놀랍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했습니다.

‘책익는 마을’에 가입하기 전부터 매달 ‘독서토론회’에서 선정된 책을 한 권 더 사서 내미는 보령소방서 강윤규 계장의 권유가 부담스러울 즈음 『책읽기의 달인 호모부커스』의 저자 이권우님을 모시고 열린 ‘저자초청토론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사회를 담당하게 되었다는 원진호 내과원장이 시민 누구나 참석가능하다기에 저도 참관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독서량이 많지도 않았지만 그나마 올바른 책읽기가 아니었음을 알고 깜짝 놀랐으며 독서토론이 편견을 타파할 수 있는 시선형성에 좋다는 말씀을 듣고서, 가끔씩 욱하는 성격과 보수적 성향, 술에 취하면 극우로 돌변하는 특이 체질을 개선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 이후로도 여러 차례 ‘저자초청토론회’를 참관 했었지만 ‘책익는마을’에 가입을 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대학 시절에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수업을 빼먹는 장기를 갖고, 단 한 번도 세미나에 참석한 사례가 없었던 역사적 사유로 토론에 대하여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영업을 하다 보니 사업설명회나 브리핑, 워크숍, 심포지엄, 포럼 등은 나와는 아무런 연관성을 찾지 못하며 살아온 관계로 독서토론에 대하여 막연한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저자초청토론회’로 잘못 인지하고 참석했던 ‘독서토론회’에서 큰 재미를 찾았습니다. 현실적으로 성인들의 책읽기는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만 집중하게 되고 기존에 형성된 자신의 생각을 기준으로 책 내용을 재단하는 경향이 강하지 않습니까? 형님의 ‘정신승리법’도 그렇지 않습니까?

‘책익는 마을’에서는 특정 분야에 치우친 개별적 독서를 넘어 서기 위하여 각 모둠 별로 정회원의 순서를 정하고 다음 달 발제자가 자신이 선정한 책을 정회원 모두에게 선물하고 한 달 후에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이 설정한 의제로 독서토론회를 진행하는 방식이 무척이나 신선했습니다.

즈음하여 제 심신상에도 변화가 왔습니다. 신문구독을 끊고 TV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 어언 15년에, 책을 구매 해 본 것이 10년을 넘어선 나에게 동화책을 읽어 달라는 아이가 생긴 것입니다. 혼자 사는 阿Q형님 생각에 결혼을 미루었는지 나의 처지나 능력을 바르게 파악하지 못하는 어리석음 때문이었는지 마흔세 살의 늦은 나이로 2006년 초에 결혼하여 그해 12월에 얻은 아들입니다.

아들에게 나도 하기 싫었던 것을 시키는 아버지가 되지 말고, 독서를 통하여 나 스스로 자아존중감을 갖고 아들을 존중하며 아들과 함께 걷는 아빠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궁벽한 지방 소도시에 살면서 대도시에 사는 친구들이 공부를 계속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고도 자기 발전을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을 볼 때 덮어 둘 수 없는 위기감과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내가 지향해야 할 진실한 삶이 무엇인가를 찾기 위하여, 또 내가 칠팔십의 나이에 공통 관심사를 가지고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책익는마을’에 전입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책익는마을’에 전입해서도 3개월간의 준회원 기간은 물론 정회원이 되고나서도 ‘책익는마을’ 카페에 글 한 번 못 올렸던 것이 나의 타고난 성격이었겠지만 阿Q형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부터 형님과 저는 피할 수 없는 갈등을 겪게 되었고 저에게 첫 발제의 기회가 주어진 달,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으로 형님과의 전투에 나서기 위하여 10년 만에 책을 주문하였습니다. 토론의 그 날을 기다리며 저는 제가 지니고 있던 무기를 갈고 다듬고 신식 무기 구입에 열을 올렸습니다. 그날의 전장에서 멀리 서구에서 저를 도우러 달려온 마키아벨리의 도움으로 소규모의 승전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 전투 이후 저는 희망에 들뜬 마음으로 미숙하기 그지없지만 카페에 글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두 번째 발제의 기회가 주어진 달, 최후 결전을 위하여 형님의 일대기를 다룬 『아Q정전』과 『삼성을 생각한다』 두 권의 책을 연관 지어 각자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저마다의 아Q와 맹렬한 전투를 벌였습니다만 형님을 내 마음의 영지 밖으로 몰아내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날 이후 형님 측의 세력이 확연히 약화 된 것은 형님도 인정할 것입니다. 지난 8월 대천한화콘도에서 펼쳐진 ‘보령인문학페스티벌’에서 강사로 모신 12분의 교수님과 방명록에 성함 남겨 주신 180명의 우군 덕택에 1박 2일의 전투에서 아Q형님의 힘은 더욱 약화되었습니다. 물론 형님의 힘이 많이 약화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그 힘이 강성하다는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힘에 강력히 저항하고 형님을 극복하기 위하여 작년 12월 ‘보령 책익는 마을’ 촌장에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카페에 글을 남기기 시작한지 불과 1년 밖에 되지 않았고 운영위원도 아닌 저에게 촌장의 자리를 마련해준 속사정이야 지금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내 마음속에 웅크린 악마들과 비루한 노예들, 패배감에 물든 전사들을 몰아내기 위하여 취임을 하였습니다. 지난 7년 동안 ‘보령 책익는 마을’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하여 열성을 다해 온 황선만 전 촌장, 운영위원을 비롯한 마을 선배님들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열심히 마을 일을 살필까 합니다.

무능한 저의 능력을 향상시켜 주기 위하여 각 모둠별로 도움장이 신설되었습니다. 토론문화를 성숙시키기 위하여 운영위원회에서 계획한 사업을 실무적으로 진행할 분들이 모인 것입니다. 식상해 질 수도 있는 독서토론회에 활기를 불어 넣기 위하여 다양한 방식을 도입하고, 초청 저자분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여 내일을 함께 하기 위하여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제부터 마을 분들은 <e시대와 철학>이라는 웹진에, 선별된 한 편의 글을 송고해야 하고, 출판사로부터 책을 전해 받은 후 서평을 쓰는 기회도 갖게 되었습니다.

따뜻한 유월이 오면 2박3일의 일정으로 대천해수욕장에서 이진남 교수님이 이끄는 ‘철학온’과의 연합MT가 계획되어 있습니다. 연합MT는 ‘철학온’ 회원들과 ‘보령 책익는 마을’ 회원들이 섞여서 저자초청토론회와 독서토론회를 진행하게 될 것입니다. ‘철학온’에 철학을 전공하신분이 많다는 이야기에 긴장하는 회원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논리의 철학은 부족할지라도 부딪히며 살아온 삶의 철학이 있다”, “좋은 문학작품은 변화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말고 현재의 고통을 극복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결국 ‘나’라는 사람에 대하여 믿음을 준다.”고 하셨던 이권우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작년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올해도 변함없이 8월이 오면 1박2일간 대천해수욕장에서 한여름의 ‘인문학페스티벌’을 진행하게 될 것입니다. 도움장들의 행사진행과 운영위원들의 후원과 열기가 넘치는 마을 분들의 열정으로 보령시의 열린 시민들과 함께 또 멀리서 찾아주시는 분들을 모시고 책, 정, 술을 함께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