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강연은 역사 속에서 뚜렷한 형상으로 나타나는 시민 정치의 역사적인 궤적을 따라, ‘시민’과 ‘시민이 됨’의 참된 의미를 되새겨본다. 매회 강의 후반부에 강사는 수강자들로부터 질문을 받고 답변함으로써 수강자들이 능동적으로 강연에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질문 답변을 이어서 강연자는 구체적인 사회현실과 연관된 예시 사례를 제시한다. 이를 통해 수강자들이 자연스럽게 집단적인 토론이 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자발적인 참여를 독려한다. 동학농민운동의 역사를 배운 후에는, 동학 농민들이 걸었던 길을 다시 걸으며 몸으로, 마음으로 역사의 숨결을 느끼고 체험할 탐방 학습이 병행된다. 마지막 강연으로는, 지금 여기서 서울시민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구체적인 현실의 물음을 함께 던지고 심층적인 토론이 이루어진다. 이에 대한 자료는 광화문 촛불 집회에 관한 것이다.

“근대 여성은 어떻게 시민이 되었나?” [2018 네트워크 시민대학1기 ‘동서양을 아우르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 ⑨

 

 

2018 네트워크 시민대학1동서양을 아우르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

2018. 9. 17. 서교동 한철연 강의실

 

제9강. 근대 여성은 어떻게 시민이 되었나?

 

강연 : 이현재(서울시립대 교수)

후기 : 정선우(한철연 회원)

 

* 가부장적 가족 질서와 친밀성 영역의 사적 억압을 정치적 해방의 요구로 전환시킨 여성운동의 의미를 현대 한국의 현실에서 재음미 해본다.

 

도대체 어떻게 가부장제는 여전히 유지되고 존속될 수 있는 것일까요?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근대적 이념이 널리 확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아직도 성차별은 (그 형태와 방식만 달라졌을 뿐) 지속되며, 가부장제를 지탱하는 사회구조와 제도, 사고방식 등은 아직까지 건재한 것일까요? 혹시 그 원인이 근대적 “사회 계약” 자체에 내재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러한 의문을 제시하며 이현재 교수의 강연은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토마스 홉스, 존 로크와 같은 계약론자들의 이론에 은폐되어 있는 성적 계약을 폭로하고, 사회 계약의 한계와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한 캐롤 페이트만의 이론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왕권신수설과 전통적인 가부장제를 옹호하는 전통적인 입장과 다르게, 당시 사회 계약론자들은 군주권과 부권보다는 (자유를 중심으로 한) 시민적 권리를 옹호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결정적으로 여성들의 권리는 누락되거나 배제되었고, 그러한 차별은 자유로운 동의(계약)라는 미명 아래 정당화 되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모든 사람들의 자유와 평등을 외쳤던 근대 계약론자들에게조차 여성들의 권리는 침묵의 대상이었던 것이지요. 사회 계약의 과정에서 성적인 종속은 은폐된 채 은근슬쩍 넘기게 되고, 그래서 우리 자신도 모르게 성적인 종속을 수용하게 되기에 이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근대적 사회 계약 자체를 부정하고 국가 또는 정부를 뒤집어야 할까요? 그럴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다른 점에 주목해 볼 수도 있습니다. 바로 사회 계약론자들, 예컨대 홉스나 로크의 이론에서 (그 치명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얘기되는 방식 말입니다. 그들의 이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 이상 여성은 천성적으로, 혹은 본래적으로 예속되거나 노예 상태에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신이 그렇게 명령하지도 않았고, 생물학적으로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여성들 역시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습니다. 다만 사회 계약의 과정에서, 즉 사후적으로 가부장적인 지배에 놓이게 것입니다.

 

이를 통해, 여성들의 예속과 억압은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 도출됩니다. 이처럼 근대적 사회 계약 이론이 가지는 모순과 갈등의 지점을 분석하고 비판함으로써, 현존하는 질서의 자명성을 깨뜨리고 다른 가능성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요컨대, 현존하는 것은 결코 당연하지도 필연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렇기에 현존하는 것에 대한 저항도 가능할 것일 테지요.

“서양 고대 그리스에서의 민주시민의 탄생”(2) – [2018 네트워크 시민대학2기 ‘동서양을 아우르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 ①

∗ 편집주간 드리는 말씀 : 이 후기는 한철연 네트워크 시민대학 2기 프로그램입니다. 처음 네트워크 시민대학1기 아홉 번째 강좌의 후기로 제목을 올렸으나 잘못되어 수정합니다.  시민대학 1기와 2기는 강좌 주제는 같으나 강사 선생님과 강의 내용은 차이가 있음을 알립니다. 2018. 9. 27.

 

2018 네트워크 시민대학2동서양을 아우르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

2018. 9. 17. 서교동 한철연 강의실

 

제1강. 서양 고대 그리스에서의 민주시민의 탄생(2)

 

강연 : 현남숙(한신대 강사)

후기 : 김상애(한철연 회원)

 

시민이 정치의 주체가 되어 국가를 지배하는 ‘민주주의’는 현재 거의 모든 국가의 정치체제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형태와는 매우 달랐지만, 이와 같은 정치체제는 고대 그리스에서 처음으로 등장했습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고대 그리스인이 민주주의를 발명한 배경과 그 실행 방식, 사상적 핵심을 살펴보고, 그리스 민주주의의 현재적 의의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고대 그리스는 ‘폴리스(polis)’라는 아주 작은 도시국가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그 중 민주주의가 가장 활발하게 발생했던 곳은 아테네였습니다. 아테네에서 민주주의가 발생한 배경에는 시민계급의 형성이 있었습니다. 아테네의 시민계급은 아테네와 페르시아 간의 전쟁 과정에서 국방력을 위해 결성되었지요. 시민들은 자신과 자신의 도시(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전쟁에 참여했고, 결국 완승을 거두었습니다. 이 때 생겨난 ‘내 도시는 내가 주인’이라는 신념이 민주주의의 배경이 된 것입니다.

 

한편 아테네의 정치적 공간인 아고라(토론장)와 프닉스(민회장)에는 아테네 시민이기만 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었다고 합니다. 아테네 시민들은 여러 의제를 가지고 프닉스에 모여, 다 같이 의결했다고 합니다. 아고라는 자유롭고 평등한 토론장으로, 소크라테스가 자기 변론을 했던 공간으로 유명한데요. 아테네 ‘시민’만이 참석할 수 있었던 민회와는 달리, 아고라에는 ‘시민’에서 배제된 여성과 외국인, 노예도 참석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스인들의 민주주의는 무엇을 지향한 것일까요? 현대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인간의 활동을 노동, 제작, 행위로 분류하여, 그리스 민주주의를 ‘행위’에 해당하는 인간 활동으로 설명합니다. 아렌트에 따르면 노동은 인간뿐 아니라, 동물도 하는 생존을 위한 활동이고, 제작은 효용성을 위한 활동입니다. 하지만 행위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인간다운 활동으로서, 서로 다른 인간들이 ‘언어’를 매개로 소통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이질적 복수성 위에서 공적 행복을 이루는 의미 있는 활동인 것입니다.

 

그리스 민주주의는 현대 정치에서 여전히 중요한 이념인 자유와 평등을 수립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현대 철학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 1929~)는 토론을 통해 의결에 다다르는 고대 그리스의 심의민주주의의 의의를 높이 평가하기도 했지요. 반면에, 다른 철학자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 1940~)는 계급적 불평등, 권력 관계 등 현실적 실존 조건을 배제한 채 동등하게 정치에 참여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모든 시민의 참여’를 표방하였으나, 사실상 성인 남성만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정치적 영역과 가정영역을 엄밀히 구분하여, 전자의 중요성만을 높이 평가했다는 점에서 그리스 민주주의는 한계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플라톤은 일반 시민의 지배가 엘리트의 지배보다 낫지 못하다며 그리스 민주주의를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민주주의에 대한 사유는 고대 그리스의 원형을 참조로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 이 시대가 요청하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중국에서 시민 되기의 행로 – 중국의 시민 부재와 유교 이데올로기” – [2018 네트워크 시민대학1기 ‘동서양을 아우르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 ⑧

2018 네트워크 시민대학1동서양을 아우르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

2018. 9. 10. 서교동 한철연 강의실

 

제8강. 중국에서 시민 되기의 행로 – 중국의 시민 부재와 유교 이데올로기

 

강연 : 송종서(경희대 강사)

후기 : 김상애(한철연 회원)

 

* 이천년에 걸친 동아시아 제국을 무너뜨리고 동아시아적 형태의 공화국 역사를 시작한 신해혁명의 의미를 현재적 관점에서 전망해 본다.

 

요즘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보면 한국의 근대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미스터 션샤인은 ‘공자 왈, 맹자 왈’과 ‘똘스또이’가 공존하는, 즉 전통사회에 서구 문물이 수입되어 공존하던 대한제국시대의 의병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의병을 ‘조선의 주권을 위해 투쟁한 이들’로 그립니다.

 

오늘의 강연 주제는 근대 중국의 “시민”이었는데요, 특히 근대 한국에서는 의병 투쟁과 같은 아래로부터의 정치 개혁, 즉 시민의 정치참여가 존재했는데, 왜 근대 중국에서는 그러한 시민이 부재했을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중국의 근대는 아편전쟁(1840)을 기점으로 합니다. 아편전쟁 이후, 청나라의 정치가, 혁명가들이 서구에서 들여오고자 한 것은 과학과 민주주의였습니다. 그러나 유교 전통과 무관한 이 서양의 두 문물은 백성들에게 너무나도 생경한 것들이었습니다. 이러한 평민들의 거부와 더불어 당시 발발한 청일전쟁(1894~1895)의 패배로, 서구의 낯선 문물은 중국에 정착하기 어려웠지요.

 

이후 중국에서는 진보진영의 주도로 오사신문화운동(五四新文化運動, 1917~1927)이라는 일종의 구국, 계몽운동이 일어납니다. 진보적 지식인들은 이전의 근대화가 실패한 원인을 대중의 자각의 부재에서 찾았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대중이 스스로 자각하여, 스스로 변화를 추구하게 하는 근본적 변혁운동”을 추구하였습니다. 오사운동을 주도하던 지식인들은 대중이 과학과 민주주의를 받아들이지 못한 까닭을 낡은 전통의 핵심에 있는 유학으로 보고, 유교를 타도하여 근대화를 이루어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사회문화 깊숙이 자리한 유교 이데올로기와 향촌 자치로 전통 농업사회를 유지해온 중국에서 근대화에 필수적인 “동원력(국가 권력이 농업사회의 잉여자산과 자원을 유효하게 흡수하여 현대적 국방과 공업 투자로 전환하고 그 결과 공업화를 실현하는 능력, 그리고 방대한 인력 자원을 동원해서 현대적 군사력을 세우는 능력)”을 생성하기는 무척 제한적이었습니다.

 

현재 중국은 본디 농민이 주도하는 공산주의 혁명을 위한 마오쩌둥 사상의 개념이었던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공식적 체제 이념으로 삼고 있습니다. 앞서 제기한 질문, 즉 “왜 근대 중국에는 시민이 부재했는가?”에 대한 대답은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중국은 그 나라 특색에 맞는 올바른 정치체제, 즉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발전시키고자 하였으며, 민중 스스로 시민보다는 공산당원이 되고자 했던 것입니다.

“서울 속의 동학혁명 현장 탐방” – [2018 네트워크 시민대학1기 ‘동서양을 아우르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 ⑦

2018 네트워크 시민대학1동서양을 아우르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

2018. 9. 8. 종로 일대 탐방

 

제7강. 서울 속의 동학혁명 현장 탐방

 

강연 : 윤태양(건국대 연구교수)

후기 : 김상애(한철연 회원)

 

* 동학혁명의 현장을 직접 탐방함으로써 책 속에 갇힌 역사를 몸소 경험해 느껴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번 주에는 곳곳에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종로 일대를 윤태양 교수의 이야기와 함께 ‘서울 속의 동학혁명’을 테마로 걷는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지금은 귀금속 종합매장으로 변모하였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관이었던 단성사 자리에 그보다 더 예전에 담긴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탐방을 시작하였지요. 단성사 터에는 동학의 2대 교주인 최시형(崔時亨, 1827∼1898)이 고문을 받았던 좌포도청(左捕盜廳)이 있었다고 합니다. 도둑을 잡으려고 만든 좌포도청이 조선 후기에 주로 타 당파의 정적을 제거하고 천주교도를 탄압하는 등 사회·정치적 사안에 관련된 인물을 취조하거나 형을 집행하던 용도로 쓰였다고 합니다. 종로3가 9번 출구 벽면에 새겨진 처형되기 직전 최시형의 모습을 보니, 민중을 나라의 주인으로 삼고, 모두가 한울님을 모신 평등한 존재임을 강조했던 그의 정신이 느껴졌습니다.

다음으로 들른 곳은 운현궁입니다. 운현궁은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이 거처하던 곳입니다. 이 장소가 동학혁명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궁금했는데요. 동학혁명의 지도자였던 전봉준(全琫準, 1855~1895)이 흥선대원군과 대화를 나눈 곳이 바로 운현궁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전봉준이 운현궁에 문객으로 3년 정도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연구자들은 혁명의 성공을 위해서, 흥선대원군은 자신의 정권 장악을 위해서 서로를 필요로 하여 밀약을 맺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고종 부부와 민비 척족세력의 부정부패를 종식시켜야 한다는 공동의 목적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동시에 민비 척족 세력은 임오군란의 군인들과 동학혁명의 농민들이 모두 분노했던 대상이었습니다. 서울의 유명 유적지가 동학혁명의 지도자였던 전봉준과 관련 있었다는 점이 매우 새롭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운현궁 바로 맞은편으로 길을 건너면 수운회관과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6호인 천도교 중앙대교당(1921년 건립), 그리고 세계어린이 운동 발상지 기념비가 함께 있습니다. 동학 3대 교주 손병희(孫秉熙, 1861∼1922), 어린이날을 만든 것으로 알려진 방정환(方定煥, 1899~1931)이 이 곳에 거점을 두고 독립운동과 어린이 운동 등 여러 활동을 해나갔다고 합니다. 참, 소파 방정환은 손병희의 사위라고 하는 군요. 어린이를 존중할 대상, 인격으로 보는 평등 의식의 바탕에 바로 동학의 근본정신이 있었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당연하게 느껴졌습니다.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인사동을 거쳐 들른 곳은 태화빌딩입니다. 이 빌딩 앞에는 ‘삼일독립선언유적지’라 적힌 커다란 기념비와 동판으로 제작된 독립선언문이 있습니다.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29명이 유혈사태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따로 모여 독립선언서를 읽은 뒤 경무총감에게 전화를 걸어 일본 경찰에 자진 투항한 장소가 지금의 태화빌딩이 있는 자리에 있던 고급 음식점 태화관이었다고 합니다.

종각역 앞 전봉준 동상을 끝으로 답사를 마무리했습니다. 이 동상이 세워진 바로 그 자리가 전봉준이 처형당한 전옥서 터입니다. 동상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전옥서 자리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이 동상은 촛불혁명의 시대를 맞아, 전봉준과 동학혁명 세력이 추구했던 저항정신을 기리고자 2018년 4월에 만들어졌습니다.

 

정부의 부정부패와 가진 자들의 횡포에 저항한 농민군들, 식민지배 시기에 민족해방을 꿈꾸고,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했던 어린이의 권리를 회복하고자 했던 천도교 지식인들, 마지막으로 2016년 겨울, 전봉준의 저항 정신과 공명하는 촛불혁명까지, 오늘 동학혁명의 유적지를 둘러보며 동학이 그저 어떤 하나의 사상이나 종교가 아니라, 시대의 요청에 응답하는 저항운동으로 지속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백성에서 시민으로 향하는 여정 – 동학농민혁명과 동학사상” – [2018 네트워크 시민대학1기 ‘동서양을 아우르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 ⑥

2018 네트워크 시민대학1동서양을 아우르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

2018. 8. 27. 서교동 한철연 강의실

 

제6강. 백성에서 시민으로 향하는 여정 – 동학농민혁명과 동학사상

 

강연 : 구태환(상지대 초빙교수)

후기 : 정선우(한철연 회원)

 

* 동학혁명을 전후한 시기에 조선의 백성은 어떻게 자립적 시민으로서의 자기 요구를 정치화하였는지 살펴본다.

 

조선 말기는 신분제적 봉건 질서의 부조리와 모순이 극심하고, 외세의 침략이 노골적으로 본격화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백성들(민중들)은 이중으로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으로는 탐관오리의 득세와 삼정(三政)의 문란 등으로 인한 터무니없이 과중한 세금 탈취를 당하였고, 밖으로는 일본과 서구 등의 외세가 조선의 이권(利權)과 지배권을 노리며 다툼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동학사상과 동학혁명은 바로 그러한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등장한 것입니다. 특히 동학혁명의 사상적 기반이 된 동학사상은 시대적 문제에 대한 민중의 대응을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당시 현실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개혁하기 위해 ‘다시 개벽(開闢)’을 외쳤고, 모든 사람이 똑같이 귀하고 평등하다는 ‘시천주(侍天主)’ 사상을 확립하였습니다. 당시, 오랫동안 조선을 지배했던 성리학적 이념은 지배 질서를 유지하고 정당화하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불과하게 되었고, 불교나 도교 또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崔濟愚, 1824~1864)는 새로운 세상, 즉 다시 개벽을 위한 새로운 도를 찾고자 하였습니다. 그렇게 오랜 수행과 수양 끝에 얻어낸 도가 바로 ‘시천주’입니다. ‘시천주’는 ‘한울님을 내 몸에 모심’을 뜻합니다. 한울님은 우주 만물을 이루는 기(氣) 가운데 가장 지극한 기로, 우주 만물의 근원이 됩니다. 그러한 한울님은 우리 모두가 모시고 있는 것이고, 따라서 사람은 신분, 빈부, 성별, 연령과 무관하게 모두 동등하게 귀한 존재입니다. 각종 차별과 폭력은 시천주를 깨닫지 못한 채 저지르는 악행이라는 주장으로 귀결됩니다. 여성, 어린이, 노인, 빈민, 천민 등은 모두 한울님을 모시고 있는 존재로, 한울님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러한 입장은 동학사상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평등의식과 존중의식을 잘 보여줍니다. 결국 동학사상에 따르면, 모든 사람 섬기기를 한울님 섬기듯이 해야 하며, 나아가 우주 만물이 곧 시천주라는 주장으로까지 이어집니다. 만민평등, 나아가 만물평등 사상으로 이어지는 것이지요.

 

동학사상은 백척간두(百尺竿頭)에 놓여 있던 당시 현실에서 민중들이 가지고 있던 간절한 열망과 치열한 문제의식을 드러냅니다. 자신의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했던 지배층의 안일한 태도와 다르게,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키면서도 그것이 혹시나 외세 침략에 빌미를 제공하지는 않을까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 그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동학혁명은 일본군이 조선에 주둔하는 핑계로 쓰였고, 청일전쟁이 일어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정말 안타깝고 씁쓸한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근대 노동자와 21세기 노동자” – 노동과 노동자 [2018 네트워크 시민대학1기 ‘동서양을 아우르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 ⑤

2018 네트워크 시민대학1동서양을 아우르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

2018. 8. 20. 서교동 한철연 강의실

 

제5강. “근대 노동자와 21세기 노동자” – 노동과 노동자

 

강연 : 박종성(건국대 초빙교수)

후기 : 김상애(한철연 회원)

 

우리의 삶에 있어서 ‘노동’은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끝없는 굴레일까요? 아니면 자기실현을 위한 주체적 행위일까요? 박종성 교수의 이번 강의를 들으며 역사적으로 노동과 노동자가 어떻게 정의되고, 가치 평가되어 왔는지 살펴보고, 특히 맑스(Karl Marx, 1818~1883)의 사상을 바탕으로 ‘노동자로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창세기에 노동은 아담이 지은 죄의 결과로 얻게 된 징벌로 적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도 육체적 활동인 노동은 노예계급의 것이라며 저급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노동은 철학적 맥락에서 언제나 부정적인 의미만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종교개혁 이후 노동은 신의 명령으로서 그 의미가 변화했고, 근대에 이르러서는 사유재산 개념의 등장으로, 모든 권리의 근간이 되는 것으로 그 가치가 격상됩니다.

 

그 이후 등장한 칼 맑스는 ‘노동’과 ‘노동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상가인데요, 맑스는 노동을 인간의 실존조건으로 봅니다. 즉 노동은 인간의 존재에 있어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맑스는 자본주의가 인간에게 이토록 중요한 노동과 이를 수행하는 노동자를 착취와 소외로 내몰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맑스에 따르면 노동활동은 노동자의 노동력, 노동대상, 노동수단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여기에서 노동대상과 노동수단을 합쳐 ‘생산수단’이라고 부릅니다. 이를테면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물건은 노동대상이며, 그 물건을 만들기 위한 기계 등은 노동수단입니다. 이 생산수단과의 관계가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을 가릅니다. 말하자면, 생산수단을 가진 자가 자본가이고, 생산수단 없이 자신의 노동력만을 가진 자가 노동자입니다.

 

자본주의 체제를 이루는 기본 세포는 ‘상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노동력 역시 상품으로 봅니다. 맑스는 노동자가 노동력을 판매할 때 이중적 자유가 생긴다고 보았습니다. 한편으로 노동자에게는 자신이 가진 노동력을 팔 것인지를 결정할 자유가 있습니다. 자본가와 노동자가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노동자는 자유로운 것이지요.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는 생산수단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노동자는 생산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노동자는 이 이유로 생존을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해야만 합니다.

 

여기에서 노동자의 착취구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본질은 자본의 가치증식입니다. 다시 말해 1만큼의 자본을 가지고 1보다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자본가의 입장에서 이를 가능케 하려면 제 값보다 더 적은 금액으로 노동력을 구매하면 됩니다. 더 낮은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지요. 생산수단이 없는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이 임금이 부당해도 자본가를 위해 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자본주의 원리와 노동자의 이중적 자유 때문에 노동자와 자본가는 형식적으로는 대등한 계약 관계라 볼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지배와 종속의 관계이기에, 필연적으로 적대관계에 놓이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노동자가 스스로를 자본가의 적대자로 생각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게으름’을 나쁜 덕목으로 만들고, 스스로를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로 생각하게끔 만들어 노동자 자신의 욕망을 왜곡하고 자본에 복무하도록 만듭니다.

 

물론 맑스는 혁명을 통해,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소유함으로써 계급을 없애자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관계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실에서 이와 같은 혁명이 단번에 이루어지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착취구조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우리는, 혁명의 낙관도 기대할 수 없는 우리는, 노동자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오늘 강의를 맡은 박종성 교수는 이렇게 조언합니다.

“먹고는 살되, 내가 신나는[나에게 재미와 의미가 있는] 일을 하며 살자”

“프랑스 혁명과 광장에 선 시민” [2018 네트워크 시민대학1기 ‘동서양을 아우르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 ④

 

 

2018 네트워크 시민대학1동서양을 아우르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

2018. 8. 13. 서교동 한철연 강의실

 

제4강. “프랑스 혁명과 광장에 선 시민”

 

강연 : 이지영(이화여대 강사)

후기 : 정선우(한철연 회원)

 

* 프랑스 혁명기에 평민들이 어떻게 정치적 주체로 등장하게 되었는지 살펴본다.

 

“프랑스 대혁명은 과연 성공한 혁명일까? 그 성공과 실패 여부는 과연 누구를 기준으로 평가된 것일까? 프랑스 대혁명 이후 우리는 어떤 변화 속에서 살게 되었을까?”오늘의 강의는 이런 물음들로 시작되었습니다. 강의를 맡은 이지영 교수는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이유, 혁명의 전체 과정을 상세히 분석하면서 프랑스 대혁명을 과연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해야 하는지 고민해 볼 것을 주문했습니다. 특히 프랑스 대혁명을 ‘민중’의 관점에서 볼 때, 과연 성공한 혁명이라 할 수 있는지를 말이지요.

프랑스 대혁명은 민중이 사회 전면에 등장해 기존 질서를 근본적으로 변혁했다는 점에서 독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중 자신의 요구나 이익이 거의 반영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또한 독특합니다. 프랑스 대혁명이 민중들에 의해서 진행되었지만, 정작 ‘민중 혁명’이기보다는 오히려 ‘부르주아 혁명’ 혹은 ‘시민 혁명’이라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어쩌면 부르주아지들의 이익을 위해서 민중들이 피 흘려 싸웠다고 말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민중은 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킬 수 없었을까요? 왜 프랑스 대혁명은 부르주아지의 이익만을 보장하는 사회·경제적 질서로 이행하는 것에 그쳤을까요? 그 까닭은 아마도 프랑스 대혁명 그 자체에 내재적으로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요? 혁명을 일으켰던 ‘제3신분’의 이질성과 다양성에서 하나의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시 프랑스에서 삼부회의 한 축을 차치하던 ‘제3신분’은 성직자와 귀족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즉 부유한 상층 부르주아지부터 법률가, 하급 관료, 장인(직공), 노동자, 농민 및 농노, 빈민 등을 포괄했던 광범위한 신분이었던 것입니다. 봉건적 질서와 신분제를 타파하겠다는 목표만 동일할 뿐, 서로의 욕구나 목적이 완전히 상이했던 것입니다.

결국 혁명의 과정과 그 귀결에서 부유한 상층 부르주아지들이 그토록 원했던 소유권(사유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할 권리)이 절대적 가치와 이념으로 굳어지게 되었고, 그를 기반으로 새로운 질서가 자리 잡게 됩니다. 소유권 혹은 재산권으로서 자유는 불가침의 기본권으로 확립되었고, 그를 보장하고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이자 목적이 된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단지 혁명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혁명을 통해 ‘무엇을 바꾸는가’, ‘누가 바꾸는가’가 결정적인 질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혁명을 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혁명으로 인해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물어야 하고, 그것이 정말로 좋은 변화인지, 즉 개선된 것인지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는 2016년 겨울부터 그 다음 해까지 지속된 이른바 촛불 시민 ‘혁명’에도 적용되어야 할 것임은 자명합니다.

“근대 부르주아는 어떻게 시민이 되었는가? 도시공간의 출현, 커피하우스, 살롱” [2018 네트워크 시민대학1기 ‘동서양을 아우르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 ③

 

 

2018 네트워크 시민대학1기 ‘동서양을 아우르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 ③

  1. 8. 6. 서교동 한철연 강의실

 

제3강. “근대 부르주아는 어떻게 시민이 되었는가? 도시공간의 출현, 커피하우스, 살롱”

 

강연 : 한길석(가톨릭대 교수)

후기 : 김상애(한철연 회원)   

 

* 근대에 커피하우스와 살롱의 공간에서 재건된 부르주아적 시민과 고대적 시민이 어떻게 다른지 고찰해 본다.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민주주의‘는 사실 2000년의 공백을 거쳐 18세기에 다시 등장한 정치체제입니다. 한길석 교수의 이번 강의에서는 “근대 부르주아는 어떻게 시민이 되었는가?”라는 제목으로 고대 그리스와는 매우 다른 사회구조적 배경을 가졌던 근대 민주주의의 등장배경에 대해 알아보고, 공영역[public sphere, 공론장]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토의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준 하버마스의 이론을 검토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폴리스(polis)라는 고대그리스의 매우 단순한 사회구조에서 시민(즉 성인 남성)이라면 곧 정치가였던 것과는 달리, 민주주의의 (재)등장 이전의 근대 사회에서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오직 왕과 귀족들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왕과 귀족들의 정치자금을 대던 부르주아들이 권위, 그리고 자신의 욕망에 대해 깨닫게 되면서 혁명을 일으키고 이러한 체제는 뒤바뀝니다. 근대 부르주아들이 정치적 세력이 된 것이지요.

 

이들이 정치적 세력을 키울 수 있었던 계기가 바로 커피하우스나 살롱과 같은 공영역에서 벌인 자립적 활동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기엔 커피숍이나 사랑방은 그저 수다나 떠는 사적 영역인 것 같은데, 근대인들의 커피하우스는 다양한 문헌들을 접하고 활발한 토론을 하며 여론을 형성하던 정치적 공영역이었습니다.

 

근대 민주주의 형성에 큰 기여를 한 이 공영역은 점차 축소됩니다. 공영역의 핵심은 국가로부터 자율적이었다는 것인데, 국가가 개인의 복지욕구를 해소해주는 기관이 되면서 국가에 복무하는 체제 순응적 인간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해 하버마스(Jürgen Habermas, 1929~)는 처음에 비관적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체코 프라하에서 시작되어 주변의 여러 국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소비에트에 대항한 민주화운동, 그리고 그것이 이끌어낸 변화들을 지켜보면서 하버마스는 정치적 공영역의 순기능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정치적 공영역이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가능성을 되짚어본 것이지요.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여, 결국엔 부패한 대통령을 탄핵으로 이끈 토의민주주의의 모델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판적 문제의식을 가졌고, 정부에 민주적 의지를 반영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문제가 아닌 다른 사회문제들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좀처럼 정부에 가닿지 않는다는 것은 하버마스의 약점인 듯합니다.

 

민주주의를 완성시키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이제, 모두가 문제라고 인식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사회문제들에도 귀 기울이는 것이 아닐까요?

 

8월 13일(월)에는 4강 “프랑스 혁명과 광장에 선 시민”이 이어집니다.

많은 참석 바랍니다~

“동양 고대 민본주의와 시민(民本과 民主)” [2018 네트워크 시민대학1기 ‘동서양을 아우르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 ②

2018 네트워크 시민대학1기 ‘동서양을 아우르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 ②

2018. 7. 30. 서교동 한철연 강의실

제2강. “동양 고대 민본주의와 시민(民本과 民主)”

강연 : 배기호(충북대 강사)

후기 : 정선우(한철연 회원)

 

  • 춘추전국시대에 제안된 민본주의적 통치 원칙의 규범적 의의를 살펴보고 그것이 과연 현대 민주주의의 원칙과 공존할 수 있는지 살펴본다.

 

“동양에 민주적 전통은 있는가? ‘민주(民主)’와 ‘민본(民本)’은 어떻게 다른가? 민본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유효한 가치와 이념일 수 있는가?”

 

오늘 강의는 이러한 물음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배기호 교수는 순자(荀子, BC 298~BC 238) 철학을 중심으로 고대 유학 전통에서 민본 사상을 끄집어내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주목하여 설명했습니다. 성악설에만 가려져 있던 순자 철학에서 ‘위’와 ‘아래’의 문제를 깊게 파고듦으로써 ‘아래로부터의 정치적 참여’라는 메시지로 고대 유학 사상을 재구성한 것이지요.

 

오늘날 정치적 주체가 된 ‘아래’는 ‘위’를 끊임없이 비판적으로 견제하고 감시해야 하며, 정치 주체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 권리와 더불어 의무를 자각해야 하고, 공동체의 일원이자 주인으로서 의식 수준을 고양할 필요가 있습니다.

 

순자 철학을 비롯한 고대 유학을 현대적으로 재-음미해본다면, 더 이상 수동적인 대상이 아니라 능동적인 주체로서의 ‘아래’에게 그에 걸맞은 책임과 역할을 요구하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임금은 배고, 백성은 물이다”라는 순자의 말은 강조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심지어 고대 유학에서조차 백성들이 단지 통치 대상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라의 근본이 됨을 밝히는 말이 됩니다.

 

순자 철학을 중심으로 민본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우리 현실과 연결 지으면서 시민의 정치 참여가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 있는지가 논의 되었습니다. “길거리의 사람들도 모두가 성인이 될 수 있다”라는 순자의 말을 통해, ‘시민(임)’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시민적 활동, 즉 참여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며, 그것이 누구에게나 해당하고 열려 있다는 점에서 민주적 이념과 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요컨대, 고대 유학이 표방하는 바를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 맞게 변형하고 적용한다면, 시민의 정치 참여를 북돋우고 올바른 공동체 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가능성 말입니다.

“서양 고대 그리스에서의 민주 시민의 탄생” [2018 네트워크 시민대학1기 ‘동서양을 아우르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 ①

(사)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18 네트워크 시민대학1기 ‘동서양을 아우르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 ①

2018. 7. 23. 서교동 한철연 강의실

제1강. “서양 고대 그리스에서의 민주 시민의 탄생”

강연 : 김성우(상지대 교수)

후기 : 김상애(한철연 회원)

 

  •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 역사를 개관해 보고 그것의 현재적 의미와 실현 가능성을 가늠해 본다.

 

우리 역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달성하기 위해 희생을 감내하며 투쟁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흘린 피는 지금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 수 있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체제로서 민주주의는 과연 결함 없는 완벽한 정치체제일까요? 과거 세계 대전과 대량학살을 일삼았던 독일의 히틀러, 그리고 현재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를 내세우면서 분리주의를 옹호하는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당선된 것이 모두 민주적 절차인 투표를 통해 정당하게 얻어진 것입니다. 이를 생각하면 민주주의에 대한 물음은 커집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재작년 전국을 뒤흔든 국정농단 사건, 최근 연이은 정치인들의 성폭력 문제들, 그리고 제주도를 통해 입국하려는 난민들을 둘러싼 문제들은 민주주의의 결함들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민주주의는 결함 없는 완벽한 정치체제라고 단언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맞닥뜨린 민주주의의 결함이 그 자체 본질적인 문제이므로 민주주의를 폐기하고 새로운 정치체제를 채택해야할까요? 아니면 그 결함이 민주주의 자체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실현과정에서 발생한 수정 가능한 외적인 문제로 반성과 변혁이 필요한 것일까요?

 

(사)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18 네트워크 시민대학 1기 ‘동서양을 아우르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 첫 번째 시간, 김성우 교수는 민주주의의 결함에 대한 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Plato, BC 427~BC 347)과 현대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에서 찾아봐야한다고 얘기합니다. 민주주의가 발생한 고대 그리스 사회로 돌아가 이 문제를 고민해보고, 이 시스템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아렌트의 새로운 이해를 엿보았습니다. 같은 주제에 대해 플라톤은 독재자의 등장과 그에 대한 예속과 같은 결함은 민주주의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라 보았다고 합니다. 반면에 아렌트는 “이소노미아(isonomia)”, 즉 평등한 자유로부터 민주주의의 본질을 찾았습니다.

 

아렌트가 주목한 이소노미아는 장자의 ‘무치(無治)’와도 관련 있습니다. 이소노미아의 주 특징은 지배와 피지배 관계가 없다는 것, 인간의 평등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나간다는 것입니다. 장자의 무치주의는 비록 이소노미아와 다르게 ‘인위’보다 ‘자연’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지배와 피지배의 계급사회를 비판한다는 점에서 이소노미아와 비슷합니다.

 

강의가 끝난 뒤에는 시민대학에 참여해주신 수강생들의 열띤 토론 시간을 가졌습니다. 위에서 제기한 문제, 즉 “민주주의체제에서 발견된 결함은 본질적인 것인지, 수정 가능한 외적인 것인지” 뿐 아니라, “현대사회의 문제점들을 이소노미아와 무치주의로 극복할 수 있을지”, 그리고 “철학자와 그가 제시한 철학의 에토스와 파토스를 시대적 한계와 어떻게 관련지어 생각해야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과연 이소노미아는 멀리 있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