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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병(未病) [퍼농유]

4. 미병(未病)

 

아는 선배와 함께 식사를 할 때였다. 그는 음식의 영양 성분과 그 음식을 먹었을 때 일어나는 몸의 효과 등 박식한 지식을 바탕으로 음식을 평가했다. 무엇을 먹어야 하고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할지. 놀라운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서글펐다. 몸이 아프다는 이야기 아닌가. 음식에 관해 많이 안다는 것은 그것을 알 필요가 있다는 말이고, 그것은 관리해야할 병이 있다는 말이다.

건강한 사람들은 음식에 대해 공부하지 않는다. 건강을 해쳤을 때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공부를 시작한다. 음식을 고르고 영양분을 분석하고 신체의 기능에 대해서 학습한다. 분석하고 학습할 뿐 아니라 자신의 몸에 맞는 식생활을 실천한다.

선배의 음식공부는 자신의 통증으로부터 출발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에 대해 공부하지 않는다. 행복을 즐기기에도 시간이 없는데 왜 따로 공부까지 하겠는가?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공부를 한다. 머리 아픈 사람들이 약을 구하는 법이다. 병이 없다면 약을 구하려 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서글픈 일이지만 사회적 차원에서는 바람직한 일인지도 모른다. 한의학에는 미병(未病)이라는 개념이 있다. 서양의학적인 검사로는 몸의 특별한 이상을 발견할 수는 없지만 다양한 형태의 자각증상을 가지고 있는 반 건강상태를 말한다. 특정질환을 진단받은 상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건강한 상태라고도 말할 수 없는 질병과 건강의 중간상태를 말한다. 완전한 건강 상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질병 상태도 아닌 제3의 상태이다.

 

Bruce Davidson

 

문제일까? <황제내경(黃帝內經)>에는 “최상의 의사는 미병 상태를 치료하고, 중간의 의사는 이미 질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한다.”(上工, 治未病. 中工, 治已病,)는 말이 있다고 한다. 병에 걸리기 전에 먼저 아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더 악화되기 전에 치료가 아닌 관리가 중요한 상태이다.

노자는 이런 말을 했다.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최상이고, 모르면서도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 병이다. 오직 병을 병으로 알기 때문에 그래서 병이 될 수 없다. 성인은 병이 없으니 그 병을 병으로 알고 있어서 병이 될 수 없다.”(知不知, 上, 不知知, 病. 夫唯病病, 是以不病. 聖人不病. 以其病病, 是以不病.)

노자에 따르면 미병은 결코 나쁜 상태는 아니다. 병을 모르는 것이 병이지 병을 어떤 자각증상을 통해 알고 있다면 병이 아닐 수 있다. 병은 완치할 수 없다. 병이 악화되기 이전에 병을 병으로 인식하는 것은 치료의 첫단계이다.

병을 병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자신의 병을 병으로 인식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자신의 행동이 옳고 선하다고 강변하기까지 한다. 고집하고 합리화하면서 자기를 기만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개인적인 차원의 건강에 대한 문제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는 어쩌면 미병의 상태이어야 오히려 더 건강할 수 있다. 건강한 사회라는 착각을 끊임없이 생산하기보다는 병에 대한 논쟁과 대화가 필요하다.

건강은 병이 완전히 없는 상태가 아니라 병이 있지만 그 병을 병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관리할 줄 아는 적절한 능력이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병을 병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이 진짜 환자다. 병을 병으로 인지하지 못한 사회가 병을 깊게 앓는다.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라는 영화가 있다. 잭 니콜슨의 광기어린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 정신 병동이라는 전제적이고 강압적인 시스템 하에서 인간이 추구해야할 가치와 어떻게 하면 거기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개인의 자유를 시스템으로 통제하려는 것에 대한 저항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먼저 사회적 병을 병으로 인식하는 일이다.

 

빈축[퍼농유]

3. 빈축(嚬蹙)

 

흥분하지 말자, 혐오는 온당하다. 어떤 경우 정당하면서도 자연스럽다. <대학>에는 “악을 미워하기를 악취를 미워하듯이 하고 선을 좋아하기를 아름다운 여색을 좋아하듯이 한다.”(如惡惡臭, 如好好色)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자신의 감정을 기만하지 않는 진정성(誠)의 문제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비유적으로 하는 말인 듯하지만 결코 비유가 아니다.

누구나 부당하거나 불공정한 처사에 분노를 느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불공정을 대하는 이 사회적 감정은 공정성을 요구하는 인간만이 가진 독특한 정의감이다. 과연 인간만의 독특한 감정일까? 진화생물학자들은 당연히 이점을 확인하려고 실험을 했다. 장대익의 <울트라소셜>에는 원숭이에게 행한 실험이 자세하게 나와 있다.

결론만 말하자. 원숭이는 자신이 부당하게 대우를 받는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지만 다른 원숭이의 부당한 대우에는 무관심하다. 인간은 상대를 배려할 줄 안다. 다른 사람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을 때 내가 불편하더라도 불공정의 문제를 해결할 줄 안다. 그러므로 자신만의 불공정만이 아니라 부당하고 불공정한 대우와 처사 자체에 분노할 줄 아는 것이 인간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공정성에 대한 요구가 우리 몸이라는 생물학적 차원에 어떻게 각인되었는지를 묻고 있다. 또 결론만 말하자. 혐오는 공정성이라는 도덕과 관련된다. 근본적으로 혐오는 음식 맛이 나쁠 때, 오염된 것을 접했을 때 나오는 거부반응과 관련된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맛이 나쁘고 오염된 음식에는 악취가 난다. 악취나 오염된 음식과 관련된 혐오는 동물의 생리 반응이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혐오는 오럴(oral, 입)에서부터 모럴(moral, 도덕)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또 하나 지적하는 것은 부당한 대우를 받은 사람의 얼굴 표정이 미각 혐오에서 일어나는 얼굴 표정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안와하근(眼窩下筋)의 반응과 관련된다. 안와하근은 상한 음식을 먹고 나서 윗입술을 들어 올려 코에 주름이 잡히는 표정을 지을 때 사용되는 얼굴 근육이라 한다. 코를 찡그리는 표정이다.

 

Damien hirst

 

흔히 정의를 뜻하는 의(義)를 수오지심(羞惡之心)과 관련해서 말했던 인물은 맹자다. 수오지심이란 부끄러워하고 혐오하는 마음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제선왕에게 맹자는 제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한다.

모든 백성과 함께 그 음악을 즐긴다면, 즉 여민동락(與民同樂)하면 잘 다스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 왕이 음악을 연주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들으면 골치아파하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왕이 음악을 좋아하시나 어찌하여 우리를 이런 곤궁에 빠지게 하는가라고 한탄을 할 것이라는 말이다.

여기에 ‘이맛살을 찌푸린다’고 번역한 말은 ‘축알(蹙頞)’이다. ‘알(頞)’을 흔히 이마로 해석하는데 콧잔등의 뜻이 있다. 맥락적으로 정확히 빈축(嚬蹙)이라는 말과 동일한 뜻이다. 빈축은 얼굴 정확히는 콧잔등을 찡그린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비난이나 미움을 이르는 말이다.

어느 부위를 주로 묘사하는가의 차이가 있지 맹자의 ‘축알’과 빈축과 안와하근을 가지고 설명하는 혐오와 모두 동일한 얼굴 표정임에 틀림없다. 빈축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비난이나 미움만을 이르는 말이 아니다. 부당한 일과 불공정한 처사에 대한 혐오와 관련된다.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혐오다.

맹자가 말하는 빈축의 도덕은 정치적인 부당함에 대한 혐오이며 동시에 악취를 싫어하는 동물의 생리 반응과 관련된다. 빈축은 오럴에서 모럴로 발전된 진화생물학적 근거를 가진 인간의 독특한 현상이다. 빈축의 혐오는 정당하면서 자연스럽다. 악취는 비단 음식에서만 나는 것이 아니다. 언어와 행위와 마음과 어떤 암시에서조차도 악취는 난다. 악취를 미워하는 인간의 생물학적 취향은 진화된 결과로서 공정성에 대한 도덕적 근거다. 빈축 사는 일을 혐오하는 일은 그래서 온당하다.

 

그나 저나 이 더운 밤 취두부 한 사발이라도 …….

 

 

그럴 리가?[퍼농유]

2. 그럴 리가?

단적으로 말해보자. 나는 대통령이 될 리가 있을까 없을까? 왜들 그러시는가? 있다. 수긍하기 힘들겠지만 그럴 리가 논리적으로는 분명히 있다. 그렇다면 나는 사람을 죽일 리가 있을까 없을까? 또 왜들 그러시는가? 당연히 있다. 당신이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

먼저 밝히고 싶었던 것은 이것이다. 지금까지 말한 문장은 비문이 아니다. 문법적으로 틀린 말이 아니란 말이다. 모두 그럴 리가 있냐는 문법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 말들은 모두 한글의 문법구조에 타당하다. 여기서 그럴 리라는 말은 분명 리(理)라는 전통적 철학 개념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고 확신한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는 세계관의 언어적 토대이다.

그러므로 다시 질문해 보자. 지금 앉아 있는 그 건물이 무너질 리가 있을까 없을까? 외적인 충격을 전혀 가하지 않았는데도 무너질 리가 있을까, 없을까? 없을까? 없다고 믿기 때문에 그 건물 안에 앉아있는 것이겠지만 논리적으로 보자면 건물이 외적 충격을 가하지 않았는데도 천만년 후에는 무너질 리가 분명히 있다. 그렇지 않은가? 천만년 후에 외적 충격이 없이도 무너져 내리는 건물의 붕괴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이 천만년이라는 시간적 간격은 무엇을 의미할까? 어떤 인연과 세력, 즉 가깝거나 혹은 먼 원인과 조건들이 만나고 충돌하고 배열되고 누적되고 형성되어 다른 질적 상태로 전환되는 순간을 만드는 과정일 수 있다. 그 과정을 통하여 그럴 리라는 잠재성의 세력이 현실에 드러나는 것이다.

마치 거대한 물결이 둑의 틈새를 견디다가 어느 순간 툭 터져 버리는 것과 같다. 그래서 그럴 리는 틈새로부터 나온다. 그럴 리가 어떤 현실화되는 순간이다. 터진다. 왕필의 문인인 동진(東晉) 시대 한강백(韓康伯)은 <주역>에 나온 기(幾)라는 말을 이렇게 설명한다. 기(幾)란 균열이다. 틈새이며 기미이며 낌새이며 기회이며 위기이기도 하다.

틈새란 무에서 유로 진입하는 순간이다. 이 틈새의 때는 이치가 작동하고 있었지만 아직 드러나지 않은 때이다.(幾者, 去無入有, 理而無形)

결국, 이런 일상적 용법으로 생각해 본다면 그럴 ‘리’라고 했을 때의 리(理)는 객관적 사물의 원리로서 이치나 외부적으로 강제되는 도덕적 당위로서 도리라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에 감추어진 잠재성’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잠재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세력의 조건들과 접촉하고 충돌하여 어떤 현실을 축적해나가는 과정이 숨겨져 있다. 이 과정을 통해서 현실에 어떤 균열을 일으킨다. 이 균열은 예측하지 못하는 현실을 만들어낸다. 거기에는 시간적 간격이 있다. 언어가 우리의 세계관을 규정한다면 그럴 리라는 말은 어쩌면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세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에서 악당 이아고가 오셀로에게 흉계를 꾸미기 전에 “시간의 자궁 속에는 여러 가지 사건이 있어. 잉태한 것은 달이 차면 나오게 마련이거든.”이라고 말했을 때, 정확히 잉태한 것은 바로 그럴 리를 말한다. 이 그럴 리가 시간의 자궁 속에서 여러 가지 사건을 현실화시킨다. 그러므로 그럴 리가 있는 균열과 틈새와 낌새를 느꼈다면 어서 조심스럽게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시간의 자궁 속에서 어떤 사건이 잉태될지 모르므로.

 

 

 

 

정치에서 시가 태어나는 순간들 : 예술은 정치적이다 [최종덕의 책과 리뷰] -15

최종덕(철학)의 종횡무진 책읽기

– 필자의 홈페이지(http://eyeofphilosophy.net)

 

정치에서 시가 태어나는 순간들 : 예술은 정치적이다

 

오늘의 서평 책 :  진은영, 문학의 아토포스, 그린비, 2014.

 

1. 문학의 아토포스 더 비기닝: 정치가 생기기 전

 

저 머나먼 은하의 한 별에서 외계인을 만났는데, 사람은 아니지만 나와 거의 비슷하게 생겼다면 나는 어떤 생각이 들까? 발화행위로 통하지 않는 두 존재 사이에 어떤 관계가 맺어질까? 공존 아니면 경쟁의 관계가 형성될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런 추측이 (i)가장 자연스럽고 (ii)가장 그럴듯하며 (iii)공존과 경쟁 범주 말고 다른 것을 생각하기 쉽지 않다는 뜻에서 가장 효율적이다.

 

거주자와 외부인이 공존한다고 가정해보자. 공존의 경우도 여러 가지로 가능할 수 있다. (i)두 존재가 원래 싸움에 관심이 없어서 상대방을 그냥 내버려 두거나, 아니면 (ii)서로 힘의 차이가 너무 커 아예 싸움이 되지 않고 힘센 자가 약한 자에게 관용을 베풀어 주는 경우이다. 첫째 경우는 원래 싸움에 관심이 없다면 그 생명종은 이미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어떤 존재이든지 현재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모종의 노력이 있어 왔고, 모종의 노력은 상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과 같은 후손을 복제해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존의 첫째 경우는 논리적으로만 가능하고 자연적이지 않다면 실제로 실재할 수 없다. 공존의 둘째 경우는 현실적이며 증거도 충분하다. 영장류 연구자 드발의 관찰보고에 따르면 히말라야 원숭이는 엄격한 서열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어린 새끼는 우두머리에게 감히 엉길 수 있다. 힘의 차이가 뚜렷한 일 년 미만의 어린 새끼에게만 관용을 베푼다. 다 자라난 새끼가 엉기는 것을 대장이 용서하는 경우는 전혀 없다. 침팬지는 4살까지 봐주고, 인간은 더 오래간다.(드발 2014, 244)

 

1949년 중국은 ‘하나의 중국’(只有一個中國)  정책을 표방하면서 소수민족을 흡수한다. 중국정부가 인정한 55개 소수민족은 인구구성 비율로 약 8.5%이지만(2010년) 전인대 대표자 비율로는 14%나 된다.(제11기 전인대 2,987명 중) 중국은 힘에서 격차가 큰 소수민족과는 공존하지만 티벳이나 최근의 위구르처럼 중앙세력에 도전하는 소수민족에게는 가혹할 정도의 폭력으로 강제 공존정책을 시행한다. 할 만한 상대와만 공존하고 소통한다는 뜻이다.(진은영, 10장)

 

두 존재유형이 경쟁하는 경우는 거주자가 외부인을 쫒아 내거나 지배하는 경우 혹은 침입자로서 외부인이 거주자를 몰아내고 지배하는 경우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두 가지 경우는 너무도 분명하다. 그런데 이 경우라도 상황을 이해하는 주변조건이 있다. 외부인이 거주자보다 힘이 월등하게 크더라도 새로운 거주 환경에 익숙하지 못하면 외부인은 적응에 실패할 것이다. 혹은 거꾸로 외부인에게만 맞는 면역 조건을 새로운 거주지에 심어 놓으면 기존 거주자가 소멸하는 경우도 있다. 책 『총.균.쇠』에서 1532년 스페인 피사로의 인구 168명이 1,000만 명 인구의 잉카제국을 멸망시킨 사건의 가장 큰 원인은 유럽엔 있었고 아메리카 땅에는 없었던 장티푸스와 천연두였다.

 

관점을 외계가 아닌 지구로 돌려 외계인과 지구인이 조우하던 기분 그대로 4만 년 전을 보자. 우리 조상과 가장 가까웠던 근연종 네안데르탈인은 호모사피언스와 유럽 땅에서 4만 년 전 쯤에(여러 가설 중 가장 강력한 이론) 처음으로 조우했다. 당시는 빙하기였기 때문에 그들은 동굴에 살았다. 네안데르탈인은 호모사피언스보다 키도 크고 뇌의 크기도 더 컸다. 외부인이었던 사피언스는 살아남고 추위에 이미 적응했던 기존 거주자인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했다. 멸종 이유에 대한 수많은 가설이 있지만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i)그들 사이에서 공존과 경쟁이 같이 있었고, (ii)네안데르탈인이나 호모사피언스 모두 석기 시대의 주체로서 새로운 문화혁명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벽화를 그렸고, 백조의 뼈에 구멍을 낸 피리를 불었다.(미슨, 15장)

 

그들 사이의 차이를 주목하자. 네안데르탈인과 다르게 호모사피언스는 ‘먹는 입’보다 ‘말하는 입’(진은영, 302)이 더 발달했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점에서 네안데르탈인이 멸절되었다는 해석이 다수 있다. 우리는 먹어야 살 수 있다. 네안데르탈인도 그랬다. 그러나 먹는 입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오로지 경쟁만이 있고 공존은 불가능하다. 공존은 먹고사는 조건이 평등해지거나 아니면 아예 차이가 크다는 것을 내가 인식해야 하고 또한 상대방도 알아차려야 한다. 나도 알고 상대도 아는 그런 것은 언어행위로 가능하며 언어행위는 ‘말하는 입’을 필요로 한다. 상호인식이 공존가능성의 원형이다. 공존은 소통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진은영도 먹는 입이 아니라 말하는 입이 소통의 조건이라고 했다.(진은영, 10장)

 

고대인도 동굴벽에 그림을 그렸다. 우리 조상은 그들의 사냥감과 사냥방식을 그림으로 그려 후손에게 남기려고 했다. 그래서 우리가 있다. 그들이 우리이다. 그들은 공간적 소통보다 시간적 소통이 더 필요했다. 3만 년에서 1만 년 전 벽화가 있는 라스코 동굴에는 들소, 사슴, 멧돼지, 염소가 그려져 있다. 그런 동물들은 그들의 입을 채워 줄 객체이다. 그런데 먹는 입의 주체 즉 사람의 모습은 거의 보이질 않는다. 라스코 벽화 700점 중에서 아래 벽화에만 유일하게 먹는 입의 주체로 사람이 등장한다. 시간이 더 흐르면서 만 년 전 즈음에는 동물 외에도 사람의 모습이 다른 동굴에서 벽화로 등장한다. 먹는 입을 가진 사람들은 벽에 손을 찍는 음화(스텐실) 방식으로 그렸다. 이때부터 이미 먹는 입에서 말하는 입으로 바뀌는 조상의 소통노력을 엿볼 수 있다.

                                                        (라스코, 1만8천 년 전 추정)                                           (라스코, 2만7천 년 전 추정)

 

먹는 입은 들소를 기억하기 위한 정보로서 들소를 그렸다. 말하는 입은 들소에 의미를 입혀서 상징적인 들소를 그렸다. 대상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는 종교적 의미가 대부분이었을 것이라고 문화인류학자들은 추정한다. 그런 행위는 예술의 시작이었다. 3만 년 전 조상은 사냥법의 개선을 위해 들소의 움직임과 계절에 따른 무리 이동 등을 세밀히 관찰했다. 그리고 그 관찰결과를 ‘기록’하는 벽화를 남겼다. 들소를 관찰한 정보를 보존하는 것이 벽화를 그리는 목적이다. 동굴의 어둠 끝 차가운 벽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동굴 속 가족들의 동의가 있어야 하고, 돌가루를 미리 물에 개놓아야 하고 동물기름을 모아 횃불을 밝혀야 하는 공동작업이 필요하다. 차가운 돌 표면에 그림을 그리면서 벽은 따듯해지고 가족들도 기분이 좋아졌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벽화는 현실을 반영하는 구체적 정치행위였다. 정치행위이면서 동시에 예술행위였다. 벽화는 사냥감을 기록하는 매체이며 동시에 서로 알 만한 사람들 사이의 감정을 공유하는 매개가 되었기 때문이다. 감정공유의 고대인의 행위는  곧 예술의 원형이며 예술의 시작이었다. 문학, 그림, 음악처럼 모든 예술은 현실의 삶을 투사하는 행위라는 점을 강조하려고 이렇게 긴 설명을 했다. 나는 이를 예술의 아토포스의 시작점이라고 본다. 더 나아가 이런 행위가 정치의 원형이라고 서평자는 이해했다.

 

2. 더 비기닝: 정치가 생기면서

 

시간은 흘러갔고 소빙하기가 끝나가면서 추위가 좀 풀렸고, 우리 조상들은 동굴에서 대지로, 숲에서 들로 서서히 나왔다. 들밀(밀)과 피(벼)의 알곡을 남겼다가 그 다음 해 땅에 뿌려 더 많은 알곡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단한 기술혁명이었다. 마침내 위험하고 불안정한 수렵행위보다는 좀 더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씨족 구성원들이 이리저리 이동하지 않고 가족이 한 곳에 정착하여 살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씨족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는 대략 8천 년 전 일이다. 이후 사람들은 공동체 생활에 익숙해졌고 더 큰 부족이 형성되면서 부족 집단 간 갈등이 생겨났다. 사람들 간에 배반과 협동으로 권력은 더욱 강화되었다. 이때부터 권력과 정치는 동의어가 되었다. 벽화를 그리던 3만 년 전 조상들의 감정공유의 정치 대신 권력의 정치가 시작되었다.

 

이후 문자가 만들어졌고, 문자 기록은 정치인들의 비밀스런 권력이 되었다. 소수의 권력집단 외에 허락 없이 기록을 소유한 자는 즉시 처벌되었고, 들소가 가는 길, 산속의 호수, 사막 건너 오아시스, 검은 숲속의 통로를 그린 지도나 이야기는 신비화되었다. 뭇사람들이 넘볼 수 없도록 한 기록의 비전은 권력의 가장 강력한 근거가 되었다.

 

그 사이 철학과 과학이 등장했다. 탈레스로부터 플라톤에 이어지면서 신화는 이성으로 변신하고 교회의 도그마로 위장했다. 이성은 보편적 사유에서 시작되었고, 소 열 마리와 염소 스무 마리를 가진 부족이 10+20=30 이라는 보편적 수학을 생각해 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보편적 생각, 그 자체도 여전히 비밀스런 기록으로 여겨졌다.

 

화산의 마그마와 지진은 지구가 분노한 것으로, 일식과 월식으로 드러난 해와 달의 운행, 인간에 대한 보복으로 생긴 홍수와 가뭄 등을 해결해줄 수 있는 권력자에 대한 충성심은 권력자에 의해 시로 쓰여 졌고 그림으로 그려졌다. 시와 그림은 이제 들소와 주변의 사람들, 강의 흐름과 강에 비춰진 달의 감정을 공유하는 정치적 행위를 벗어나서 시와 그림 스스로 감정의 주체가 되었다. 사람들은 사람이 만든 예술에 주체를 빼앗겼다. 나로부터 주체를 빼앗아간 예술은 저 혼자 감정을 향유하고 저 혼자 호흡한다. 창window조차 없어서 저 혼자만의 모나드를 자위하고 있다. 후대 사람들은 이런 예술을 자율성의 예술이라고 부른다. 그런 예술은 세상을 기록하지 않으며 빼앗아간 주체 자체를 현현할 뿐이라고 하는데 그나마 그런 현현성은 권력의 수단으로만 이용될 뿐이다. 자율성의 의미를 이렇게 보면 자율성의 예술과 참여성의 예술은 서로 대화가 불가능한 배중율의 관계일 뿐이다. 그러나 진은영은 자율성을 폭넓게 조율한다.

 

3. 감성적 자율성

 

진은영은 예술의 자율성을 독특하게 설명한다. “예술적 자율성이란 정치와 무관한 영역에서 예술이 제 스스로의 살림을 꾸려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배치의 가능성을 포착하여 기계적 인과법칙 속에서 실현된 일들에 또 다른 원인을 부과하는 것이다. 예술은 기계적 인과사태로부터 벗어나면서 자신의 자율성을 확보한다”(진은영 261) 처음에 나는 이 말을 잘 이해 못했다. 꼬이고 꼬이는 사태를 작가만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지만 멋들어지게 표현하는 것이 자율성인지, 아니면 진짜 자율성이란 이렇게 저렇게 되어야 한다는 당위의 모델을 보여주는 것인지 나는 잘 이해 못했었다. 하지만 그 다음 페이지를 넘기면서 진은영은 자율성이라는 이름의 호젓한 공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지성의 배치를 위반하는 흐름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진은영 262) 이 책의 1장에서 말한 랑시에르의 감성적 자율성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랑시에르와 진은영이 262쪽에서 말한 자율성이란 ‘자율성 2.0’ 버전으로 참여성과 결합한 자율성, 이분법에서 탈피한 자율성을 말한다. 진은영이 강조하고 중시한 랑시에르의 감성적 자율성의 의미를 그의 책에서 따와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감성적 자율성이란 (i) 현실에서 분리된 언어의 자기목적주의autotelism의 신성화를 거부하며, (ii) 예술의 자기지시성self-referentiality을 거부하고, (iii) 황금새장을 탈출하여 세상을 다시 구성하는 특이성을 추구하며(감성적 자율성의 특징), (iv) 감각적인 것을 새롭게 분배하는 활동이지만 (v)그렇다고 해서 특정 이데올로기에 대한 현실정치 참여에 제한될 필요가 없으며, (vi) 그런 활동의 내적 동력으로 작용하는 그런 감성분배의 태도이다. 이런 점에서 “예술은 정치적이다”라고 진은영은 확실히 말한다.

 

진은영은 문학이 삶과 결합된 정치라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에서 문제된 사태에 대해 명확한 내러티브나 선명한 메시지의 직접적 표현에 제한될 필요가 없다고 그는 강조한다.(30-35) 직접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표현은 자칫 선전구호로 되거나 관습적 규칙에 헌신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랑시에르가 정치의 의도적 윤리화를 비판한 글을 진은영의 책에서 읽어보면 아래와 같다. “윤리의 지배는 예술의 활동이나 정치의 활동에 가해지는 도덕적 판단의 지배가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구분되지 않는 영역의 구성을 의미한다. 윤리는 규범이 사실 속에서 해체되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이렇게 이해했다. 윤리는 체류의 행위이며, 이미 가정된 관습적 규칙에 복종하고 안주하는 행동원리이다.(진은영 101)

 

진은영은 한국에서 문학의 정치적 논쟁점을 아주 쉽게 정리해 주었다. 하나는 참여의 문학이며 다른 하나는 자율의 문학이라고 했다. 참여성은 “정치적으로 엄중한 시기임을 강조하여 민족. 민중 문학적 이슈들을 특정한 스타일로 형상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자율성은 “시인과 시민의 입장을 구분해서 시민으로서 정치적 자유공간의 의미를 강조하지만 시인으로서는 비정치적이고 자율적 형식실험에 몰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진은영 267)

 

4. 랑시에르의 감성적 자율성은 폐쇄적 자율성과 다르다

 

자율성의 태도는 “자율적인 그날이 오기까지” 한번 기다려 보자는 것인데, 이런 태도는 유토피아의 허구로 빠지고 만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런 유토피아는 현실에서 상실한 것을 오지 않을 미래에 찾아가라는 주문과 같다. 신과 내세의 유토피아도 그렇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박정희에 대한 환상은 권력자들이 뿌린 마약에 취한 집단적 병증에 지나지 않는다. 그 대표적인 병증이 바로 정치적 색깔론과 경제적 낙수효과에 기인한다. 이 두 가지 마약의 중독성이 우리 한국사회에서 작동하고 있다.

 

‘밝은 미래를 위해 지금은 좀 힘들어도 참고 열심히 일해보자“의 허구는 유토피아 사유구조의 허구를 그대로 따라한 것이다. 70년대 평화시장 봉재 노동자들은 절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단지 권력자들이 시민을 부려먹기 위한 도구적 언어일 뿐이었다. 정권과 삼성과 같은 재벌들, 그리고 그들과 같이 춤췄던 봉재공장 사장님들은 그런 말을 열심히 외쳐댔다. 그러나 밝은 미래가 정말, 다시 한번 정말 온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재벌과 독재 권력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그들은 그런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 밝은 진짜 미래가 오지 않도록 악랄한 조치를 해놓았다. 그러한 불행한 역사의 현장이 지금 작동되고 있다. 정권이 조금이나마 바뀌었지만 여전히 지금 우리 사회에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을 올린다고 하니 영세업이 망한다고 반대하는 목소리를 대놓고 한다. 핵발전을 중지하다고 하니 지역경제 때문에 핵발전 중지를 반대한다는 염치없는 사람들이 드러난다. 역사적 적폐청산을 대놓고 거부하는 과거의 권력집단들이 갖은 변명과 저지를 시도하고 있다.

 

유토피아 조작자들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권력집단의 조작은 대중에게 유토피아의 꿈에서 깨지 못하도록 중독성 믿음을 갖게 한다. 형이상학적으로 말하자면, 신은 전지전능하여 모든 지식을 갖고 있지만, 신을 믿는 대중은 지식을 가져서는 절대 안 되고 오로지 믿음만을 갖도록 강요될 뿐이라는 논리와 같다. 권력자는 그들만의 기록을 갖지만, 대중에게는 기록 대신 믿음의 환상만을 제공한다. 랑시에르도 감정의 분할, 감각의 분배를 믿음에만 기초해서는 안 된다고 메시지를 계속 보내고 있다. 누구 좋으라는 믿음인가? 이렇게 유토피아는 종교와 만나 사람들의 감각을 더 마비시켜 놓았다. 감각의 분배는 너의 감각, 나의 감각을 먼저 유연하게 연습해 놔야 한다. 현실에 순응한 결과는 필연적으로 감각의 마비와 경화를 가져온다. 그래서 진은영은 이 시대 너머 미래를 준비하는 감각의 유연성 연습을 권유한다. 진은영의 책, 결론에서 말한 “미래의 불가능성이 가능한 존재로 변모하는 순간”을 나는 이렇게 감각의 유연성 연습을 한다는 순간으로 이해했다. 진은영이 더 이야기해 줄 것이다.

 

5. 감각분배의 정치

 

세상과의 구체적인 접촉이었던 주술과 샤머니즘은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추상화되었고, 추상적 신의 존재가 구체적 현실을 지배했다. 나는 신석기 시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진은영의 말대로 부족의 공동체 생활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조에zoe에서 비오스bios로 전환되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추상적 관념론과 종교적 도그마가 결합하면서 비오스는 오히려 그들만의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전락했고 그래서 겉은 비오스이지만 내용으로는 조에로 퇴락했다. 그것이 오늘의 정치이다. 그런 정치를 진은영은 ‘치안’이라고 했는데 나는 ‘그들만의 경영’their own managenment라고 하고 싶다. 치안과 그들만의 경영 상태에서는 소통이 불가능하다. 소통을 위해서는 주체들 사이의 사적 이해와 편견이 제거되어야 한다고 했고, 그래서 조에가 아닌 비오스 영역에서만 소통이 가능하다고 진은영은 말한다.(275) ‘먹는 입’의 조에는 생명이 시작하던 10억 년 전의 원핵세포에서나 다세포생명을 거쳐 척추동물로 넘어서 늑대와 국화를 거쳐 오늘의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두 동일하게 작동한다. 이런 점에서 조에의 작동은 초시간적이다. ‘먹는 입’에서 ‘말하는 입’이 추가되면서 우리는 역사의 변화와 시대의 문제를 인식하게 되었다. 이는 비오스로 향한 혁명이다. 이런 지평선에서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 아렌트의 입장이라고 진은영은 소상히 설명하고 있다.(275) 물론 진은영은 이런 정치적 비오스가 경제적 조에로, 권력독점의 조에로, 사적이익의 조에로 위장되고 포장되는 현실의 아픔을 지적했다. 그래서 진은영은 치안의 정치에서 벗어나 감각분배의 정치를 말했다.

 

내가 보기에 진은영의 감각분배의 정치는 마치 와이파이나 블루투스와 같은 무선통신과 비슷해 보인다. 와이파이나 블루투스 혹은 위성통신은 정보를 멀리 떨어진 사람에게도 무선으로 전달할 수 있다. 문학도 멀리 떨어진 사람에게 감각을 무선으로 전달할 수 있다. 독재권력이나 경찰치안은 사람을 잡아두거나 말로 위협하거나 더 먼 땅으로 못 가게 경계를 긋는다. 그러나 문학은 그런 경계를 해체하고 넘어선다. 그래서 권력집단도 예술을 무서워했다. 감각은 감정의 열기emotion’s fever를 지닌다. 권력집단 특히 독재권력은 감각온도를 전달하지 못한다. 그러나 문학, 예술은 감정의 열기까지 무선통신으로 전달할 수 있다. 무선인터넷이 깔리지 않은 곳이 있듯이, 수많은 다른 언어의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도 문자의 예술이나 그렇지 음악이나 미술은 그런 한계에 구속되지도 않는다.

서평자는 인류학자 회벨E. A. Hoebel이 동 그린랜드Eastern Greenland 에스키모 부족에서 1908년 채집하고 기록한 노래를 인용하려 한다. 한 부족에서 두 남자가 한 여인을 두고 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그런데 몸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통해 그들의 싸움을 대신한다. 그 부족에서는 살인사건을 제외한 모든 갈등관계를 노래로 처리한다고 한다. 노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 남자 B가 그의 부인을 학대하고 나중에는 그 부인을 버렸다. 다른 남자 A가 그 나이 든 여인을 데리고 와서 다시 결혼하여 사랑의 마음으로 같이 살았다. 그러나 남자 B는 시기심에 남자 A에게 그 여자를 다시 내놓으라고 싸움을 걸었다. 노래로 말이다. 부족장이나 그들의 법률에 갈등해소 혹은 치안을 맡기지 않고 그들 사이의 감정을 교환하여 스스로 해결하는 감각분배의 사례인 것 같아서 그 노래 가사를 재인용해 보았다.

6. 진은영의 소통의 시학

 

진은영은 랑시에르를 소개하면서 랑시에르를 넘어서 있다. 진은영은 이 책 마지막 장에서 말하는 소통의 인문학에서 “정치적 주체화”를 강조하면서 책을 마무리하였다. 소통의 인문학을 잘 건축하기 위해 “소통의 과학”과 “소통의 시학”을 구분하는 진은영의 방식을 따른다면(진은영 298) 진은영은 <소통의 시학> 차원에서 책을 썼지만, 나는 <소통의 과학> 차원에서 서평을 썼다.

 

진은영은 소통의 시학에서 “철학자의 아름다운 거짓말”을 말하면서 거짓말의 현실성이 존재한다고 말했다.(진은영 297) 나는 이런 그의 말을 ‘세상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시선으로 그려야만 멀리 그리고 오래 감각을 분배할 수 있다’고 나름대로의 해석을 덧붙이고 싶다. 맞는지 모르겠다. 신비화를 경계하고, 이상주의를 비판하고, 현실을 차갑게 진단하는 사회과학적 지식의 의미를 갖는 “소통의 과학”에서 더 나아가 진은영은 “미래의 불가능성이 가능한 존재로 변모하는 순간”을 그려내고, “불가능한 동일시를 통한 정치적 주체화”를 시도하는 “소통의 시학”에 시선을 뿌리고 있다.

 

이 서평의 제목을 나는 “정치에서 시가 태어나는 순간들 : 예술은 정치적이다”라고 했다. 이는 진은영의 “정치적 주체화”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노룩패스, 레밍, 갑질, 밥하는 동네아줌마, 각목과 추행의 언어가 횡행하는 사회, 소통단절 권력이 여전한 사회에서 우리는 정치적 감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느꼈다. 다시 말해서 대중의 감각을 무시하는 감각독재, 소통을 두려워하는 공감부재의 권력과 그 적폐를 i) 강하게 저항하고 ii) 냉정하게 청산해야만 비로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온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잘 알게 되었다.

 

<진은영의 『문학의 아토포스』 서평을 위한 참고문헌>

 

진은영 2012, 『훔쳐가는 노래』, 창비

진은영 2009,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웅진주니어

드발  2014. 『착한 인류』, 오준호 옮김, 미지북스

S. 미슨  2008. 『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 김명주 옮김, 뿌리와 이파리 외

최종덕  2016, 『비판적 생명철학』, 당대

방심[퍼농유]

우쑵니다.
너무도 오랫만이라 쑥스러움을 넘어서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낯섭니다. 죄송합니다. 먹고 사느냐 나름 힘겹게 생활했습니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방학이라 이렇게 한숨돌리며 세월에 지치고 더위에 지친 몸 건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고자 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예능프로그램처럼 시즌 투가 되어버렸습니다.

요즘은 이런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모대학 모 전공 모 교수가 우리말로 철학하기라는 걸 시도한 적이 있었죠. 송구스럽지만 웃었습니다. 의도는 훌륭하다고 생각했지만 실 내용을 들여다보니, 국어순화운동 차원이더군요. 이화여자대학을 배꽃계집애큰배움터 정도로 써야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순수 우리말로 철학하자는 것이었죠. 우리말로 철학한다는 것은 순수한 한글을 고집하면서 철학한다는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내용의 차원을 어떻게 분석하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를 생각했습죠. 우리가 사용하는 말들과 그 말들의 맥락과 그 말들의 효과들이 어떻게 작용하고 기능하는지를 분석해하지 않을까요. 그 사유의 이면에 깔린 구조와 양태를 언어적으로 드러내는 방식 같은 것 말이죠. 그러나 이것은 또한 단지 분석철학에서 말하는 일상언어의 메타적 분석하고는 다른 차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단어들이 족보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의식해야한다는 것입니다. 하이데거도 그가 사용하는 개념을 설명하는 데에 희랍어를 분석하는 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지 않던가요.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의 대부분은 한자문화권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특히 송명 성리학과 선진 철학이 그러합니다. 일본 학자들이 서양학문을 수용하면서 많은 번역어 조어를 만들어내었고 또 그것을 우리가 상당부분 사용하고 있지만 그들도 기본적으로 유학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간단하게나마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사용하는 단어들이 어떤 족보를 가지고 있는가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사용하는 의미 맥락과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 많았습니다.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말로 전환되었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어원적 차원에서 분명한 족보의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족하나마 관심과 조언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총총 건승하시길…..

1. 방심(放心)

모든 방치된 것은 썩는다. 어쩌면 이 명제는 모든 인간은 죽는다만큼이나 예외가 없다. 방치에는 무관심과 무책임이 묻어있다. 화초에 물과 공기가 부족하면 썩게 되듯이 어떤 것이든 관심과 책임이 부족할 때 썩는다. 타인의 관심과 애정과 책임과 인정이 철수되었을 때 남는 것은 무기력하게 메마른 황무지일 뿐이다.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 메말라 강퍅하다.
인간의 근본적 욕망은 다시 정의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흔히들 근본적 욕망을 식색(食色)과 관련된 생리적 욕구라고 본다. 대표적으로 매슬로(maslow)는 인간의 욕구에 위계가 있다고 하여 욕구 피라미드를 가정했다.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로부터 시작하여 안전의 욕구, 사회적 욕구, 존경의 욕구, 마지만 자아 실현의 욕구로 구분했다.
장대익의 <울트라소셜>에는 흥미로운 내용이 나온다. 진화생물학에 의하면 이런 욕구의 위계는 뒤집어져야만 한다. 논리는 이렇다. 어린 아기에게 이런 욕구의 위계를 적용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린 아이에게는 먼저 생리적 욕구나 안전의 욕구가 충족되어야 한다. 당연하다. 먹을 것이 필요하고 따뜻한 품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욕구를 충족시킬 대상은 음식, 집, 물 등이 아니다. 아이에게는 이런 대상이 아무 쓸모가 없다. 어린 아이는 이것을 직접 욕망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이런 대상을 가져다줄 ‘사람’이다. 사회적 연결망이 없으면 아기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기는 다른 동물과는 달리 미숙아로 태어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약함과 취약함과 미숙함이 최초로 이 세상에 나온 인간의 생물학적 조건이다.
그럴 때 가장 근본적 욕망은 생리적 욕구가 아니라 사회적 욕구이다. 이는 진화가 만든 결과이다. 사회적 욕구는 생리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보다 상위에 있는 욕구가 아니다. 오히려 “생리적 욕구와 안전 욕구를 사회적 방식으로 충족시켜 주기 위한 근본적 욕구”이다. 인간은 “생존과 번식에 필요한 다양한 자원을 사회적 자산, 즉 부모, 친지, 친구, 동료 등과의 관계를 통해 획득하는 전략을 취해왔다.” 진화생물학에 따르면 매슬로의 욕구 피라미드는 뒤집어져야 한다.
맹자는 이런 말을 한다. “인(仁)은 사람의 본래 마음이고, 의(義)는 본래 마음을 실현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다. 그 길을 버리고 따르지 않으며, 그 마음을 방치하고 찾을 줄을 모르니 애처롭다. 사람이 닭과 개가 도망가면 찾을 줄을 알면서도, 마음을 방치하고서도 찾을 줄을 알지 못한다. 학문하는 방법은 다른 것이 없다. 그 방치된 마음(放心)을 찾는 것일 뿐이다.”(仁, 人心也, 義, 人路也. 舍其路而不由, 放其心而不知求, 哀哉! 人有鷄犬放, 則知求之, 有放心而不知求. 學問之道, 無他, 求其放心而已矣.)
인의(仁義)란 사회적 욕구이다. 방심은 긴장이 풀려 마음을 다잡지 않고 놓아 버린 상태이다. 부주의하고 조심성이 없는 상태이기도 하다. 맹자에게서 방심은 방치된 사회적 마음이다. 적당한 물과 공기로 길러지지 못해 썩어가는 사회적 욕구이기도 하다. 본심의 상실이기도 하다. 맹자에게서 방심은 정확히 본심에 주의하지 못한 부주의이고 본심을 상실하여 조심성이 없는 것이다.
만약 이 사회적 욕구를 방치한 채로 살아간다면 맹자에 의하면 그것만큼 애처로운 일은 없다. 이 애처로움을 깨우치는 것이 학문의 요체이다. 학문이란 구방심(求放心)이다. 도망간 닭과 개를 찾는 것과 같이 방심(放心)을 구하는 일이다. 방심이란 잃어버린 마음이고 방치된 마음이다. 학문은 단지 이 사회적 욕구인 인의(仁義)의 마음이 방치된 채로 썩지 않지 않게 하는 일이다. 그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얀-사우데크(Jan-Saudek)

국민을 협박하는 삼성의 정치자본 [최종덕의 책과 리뷰] -14

최종덕(철학)의 종횡무진 책읽기

 

국민을 협박하는 삼성의 정치자본

 

오늘의 서평 책 :  이종보, 삼성독재, 빨간소금, 2017.

 

 

 

독재정권과의 동맹이 삼성재벌의 핵심이라는 점은 한국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혹은 정확히 알고 있지는 못하더라도 누구나 대충은 그렇게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이 오늘날까지 존속한 이유는 재벌기업이 국가경제를 살려줄 것이라는 막연하지만 강력한 기대감에 의해 지지되어 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기대감이 지난 정권의 역사를 통해서 기만적으로 조작되고 가공된 허상이었음을 어느 책 한 권을 읽고 깨닫게 되었다. 그 책은 최근에 나온 <삼성독재>(이종보 씀, 빨간소금출판사, 2017)라는 책이다

 

이 책 초반부에서 일본 제국주의 치하에서도 그러했지만 해방 이후에도 이승만 정권의 절대적 비호 아래 성장한 삼성의 매판자본 형성과정이 잘 그려지고 있다. 당대의 역사적 배경을 통해서 삼성의 자본독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이 책은 설명하고 있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미국 원조물자 배분과정을 포함한 거의 모든 상거래에서 삼성은 특혜를 받아왔다는 과거사를 주목해야 한다. 박정희 군사정권에서부터 박근혜 빙의정권에 이르기까지 삼성은 탈법, 세습, 불법, 유착, 매판, 독점, 축재, 착취의 범례라 할만한 일들을 수행해 왔다. 요약해서 말하면 부정축재와 매판자본 그리고 독점자본이 삼성의 키워드라는 것을 이 책은 선명하게 증명해주고 있다.

 

 

1939년 2백만 평의 땅장사를 시작으로 한 지난 80여 년을 거치면서 일상화된 삼성의 자본권력이 우리의 마음까지를 빼앗아 갔는지를 되돌아 봐야 한다. 이 책은 우리 자신도 혹시 삼성바이러스에 면역되었는지를 반성하게 한다. 저자 이종보는 말한다. “우리는 삼성에 감염되었다” 그리고 “삼성은 우리 사회의 욕망을 표현하는 위대한 신이 되었다”.(9쪽) 이러한 삼성의 막강한 지배력이 산업기술과 통상 기반 경제 영역만이 아니라 일상성의 문화와 지식을 포함한 정치 영역까지 어떻게 확장되었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저자는 이런 삼성의 속살을 “정치적 자본가”로 표현하고 있다.(20쪽) 한국에서 피어오른 “정치적 자본가”로서 삼성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고 말한다. i) 가족지배 ii) 개발독재 iii) 문어발식 종합상사 iv) 정경유착이다.

 

이 책은 삼성의 이런 모습들 가운데 정경유착의 역사를 상세히 설명한다. 그 역사는 땅장사를 시작하던 삼성 상회(1938년)의 일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땅장사는 땅을 구입할 큰 돈을 필요로 한다. 이병철은 조선식산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돈으로 2백만 평의 대지주가 된다. 삼성의 출발부터가 매판자본의 시작이었음을 이 책을 통해서 잘 알게 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일제와 미국의 상속자인 이승만의 강건한 방호벽에 힘입어 삼성의 세력은 전국화 되었다.

삼성상회 – 사진출처 : Wikimedia Commons

 

이승만의 권유로 삼성물산공사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여 서울로 진출한 삼성은 일제 적산과 미국의 원조물자를 기반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쌓게 되었다. 설탕과 밀가루 그리고 모직 사업으로 50-60년대 이미 한국의 자본을 독점하기 시작했다. 해방 이후 1956년에 이르기까지 한일은행, 조흥은행, 상업은행을 인수하면서 삼성과 정치권력이 한 몸통이 된 경과를  이 책은 아주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1959년 이승만 자유당 내각 명단을 이병철이 작성하여 당시 이승만 다음의 정치권력 2인자였던 이기붕에게 전달했다는 이 책의 내용은 정말 충격적이다.

 

419 혁명과 함께 이승만 정권은 붕괴되었지만 삼성이 살아남게된 경위를 이 책은 소상히 기술했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삼성은 무한한 것인가. 정말 삼성은 위대한 신이었나 보다. 419 혁명은 정치혁명일 뿐 사회경제혁명이 아니기 때문에 삼성은 죽을 수 없다는 기묘한 논리를 삼성은 조작해 내었다. 곧 이어 이뤄진 삼성과 박정희 정권과의 동맹은 한국 근대인의 흉부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1963년 박정희는 재벌 폭리의 상당 금액인 50억 원을 상납 받았다고 이 책은 폭로한다. 그 금액은 당시 정부 예산의 1/15 수준이었다고 하니 오늘의 가치로 따진다면 27조원에 해당한다. 박정희가 갈취하고 또한 재벌이 알아서 기면서 상납한 바로 그 돈이 오늘의 박근혜-최순실 농단의 지하수장고였다는 점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니 더더욱 몸서리가 처진다.

 

1966년 삼성과 박정희가 공모했던 대규모 밀수사건은 정말 대단한 국가회롱의 사태였다. 그러나 박정희와 삼성의 결탁권력은 이런 사실까지도 잠잠하게 만들어 놓았으니, 한국에서는 삼성보다 무서울 것이 없었다. 경주 최 부자가 설립한 대구대학을 삼성이 인수하고, 삼성은 이를 박정희에게 헌납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오늘날 박근혜의 이름으로 존속하는 영남대학교가 그것이다. 책을 읽다보니 이런 어마어마한 사태들이 한 두 건이 아니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박정희는 역사의 심판을 받고 죽었지만, 삼성은 역시 불사의 존재였다. 삼성과 전두환과의 밀월은 더 가관이었다고 이 책은 말한다. 산업경제 전반에서부터 국방산업에까지 미쳤던 그들의 정경유착은 방송매체와 스포츠산업을 포함한 문화산업 전반에 뻗쳤다. 그런 문화 공략전술이 오늘의 정유라를 낳은 것이다. 군부정권이 끝나고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0년대에도 삼성은 건재했다. 오히려 삼성의 권력은 ‘글로벌’이라는 미명으로 정당화되고, 과거처럼 독재정권의 눈치조차도 볼 필요 없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독주가 정착되었다. 이건희의 개인 우상화는 극에 달했는데, 이 책은 그런 우상화의 실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 부분을 정말 재미나게 읽었다. 책으로 읽기에는 재미났지만, 우리 근대사에서 가장 불행했던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사진 출처 : vimeo.com

 

문민정부에서 삼성은 과거 독재정권과 다르게 오히려 정부와 정치를 하대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이 책에서 알게 되었다. 1995년 김영삼 정부 시절 삼성의 이건희는 “정치는 4류, 관료는 3류, 기업은 2류”라는 노골적인 무시 발언을 한다.(120쪽) 노무현 정부 때에도 마찬가지였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삼성은 악독한 정권에는 아부전략으로, 상대적으로 민주지향의 정권에는 무시전략을 이중적으로 적용하는 야비한 전술을 이어갔다. 이런 전략이 바로 삼성 전략기획의 기초인 것 같다.

 

이제 이병철과 이건희는 가고, 이재용이 대를 잇고자 기를 쓰고 있다. 3대를 이어 권력을 계승하려는 삼성을 보면 김일성과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이 계승한 북한 독재권력과 그대로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딱 맞다. 삼성 이름만 들어도 숭상하는 유행이 여전하다. 삼성이 개인 기업인데 자식들이 대를 이어 승계하는 게 뭔 대수냐고 항변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삼성은 개인 소유 기업이 아니라 주식회사이며, 개인 투자도 아니고 국민세금을 그럴듯한 방식으로 탈취한 돈으로 꾸려간 기업이다. 상속이 법적으로 가능한 개인재산 부문조차도 상속세를 제대로 낸 것도 아니다. 게다가 계열사 모두를 지배하려는 소유구조를 통해 불법을 일상화하고 있다. 노조를 허용하고 있지 않으니 공공성이란 아예 없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밀수에 친일, 탈세와 횡령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경제가 국민경제를 살린다는 환상에 빠져 삼성파티를 대신 해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용의 승계시도는 아버지의 승계조건을 그대로 답습하는 오류를 범했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통해서 계열사를 피라미드 안으로 가두는 전략을 선택했다. 이재용의 승계를 위한 기초작업은 이미 1996년 그 유명한 삼성애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에서 시작했다. 20년에 걸친 승계작업은 전적으로 정권의 인정없인 불가능했다. 책에 나온 이야기를 써본다면,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2015년 합병으로 이재용은 8,549억 원의 이득을 보았지만, 국민연금공단은 1,388억 원을 손해봤다. 그 사라진 돈은 모조리 국민의 세금이다. 이런 방식의 소유구조 조작과 횡포는 삼성에서 누워 죽먹듯 해왔던 일들이었다고 이 책은 밝히고 있다.

 

사진출처 : vimeo.com

 

다시 말하지만 삼성은 적은 지분으로도 계열사를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소유구조를 항상 유지해 왔다. 삼성은 비서실, 구조조정본부에서 전략기획실과 미래전략실이라는 이름으로 바꿔가면서 계열사 전체의 소유구조를 관장하는 비서조직을 존속시켜 왔다. 최순실 농단 이후 최근 해체되었지만 말이다. 그런 식의 소유구조의 일방적 결정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정권의 비호 없이는 불가능했다. 결국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역사적 배경에는 삼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박근혜는 이재용의 후계 승계를 인정해주고, 그 대가로 이재용은 문화재단 후원 298억 원을 내놓았다. 결국 박근혜는 탄핵으로 끝났지만, 삼성의 내재적 자본독재는 여전하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삼성은 ‘성장논리’와 ‘글로벌경영’, ‘국가경쟁력’과 ‘창조적 파괴’ 등, 교묘한 혼란의 언어를 사용하여 자본독재를 영위하려고 시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묘한 언어포장을 벗겨보면 삼성의 속내는 불법과 유착으로 형성한 매판자본을 통하여 부정축재를 누적시켜 자본독점을 안착시켜가는 행위를 숨기는 전략을 발전시키는 데 있다.

 

냉정하게 삼성을 알아야 한다. 삼성 경제가 국가 경제가 아니라, 국민 경제가 삼성 경제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정말 대단한 역사였다. 박정희가 경제성장의 주역이라는 둥, 삼성이 있어서 한국경제가 커졌다는 등의 억지는 부정비리의 당사자들과 매판의 역사적 관련자들 그리고 독재권력의 주관자 집단이 노리는 기본전술이다. 한국 경제성장의 대단한 역사는 한국인이 만든 것이지 삼성과 박정희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삼성과 박정희 관련자들은 한국이라는 유무형의 몸체 가운데 있는 흉부를 그들 마음대로 도려낸 살점을 가지고서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다. 대한민국 흉부를 도려낸 후의 서민의 고통을 진정시키기 위해 삼성브랜드의 마취제를 사용했지만 그나마도 마취약이 풀리는 곧 다가올 시간에 그 고통은 더 말할 나위 없이 온 몸에 퍼질 것이다. 삼성이 저지른 위해요소들을 거꾸로 해결해 갈 수 있다면, 그때 우리는 비로소 실질적인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맞이할 수 있다.

 

이 책 <삼성독재>의 저자 이종보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면서 책을 마무리했다. 첫째 재벌이 투자를 기피하는 이유는 정부를 길들이려는 의도에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권유착 목적이 아닌 순수 재투자가 되도록 하는 기업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둘째 재벌기업은 항상 ‘성장논리’와 ‘국가경쟁력’이라는 구호를 도용하여 국민을 협박하기 때문에 정부와 국민은 그런 협박에 밀리지 않고 객관적이고 투명한 기준을 제시하면 된다. 셋째 이 책이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서술했듯이 정치와 재벌의 유착은 오랜 역사 속에서 매우 강하게 맺어져 있다. 거꾸로 말해서 재벌개혁은 정치개혁 없이 불가능하다고 역설한다. 정치개혁을 통해 관습적 정경유착의 끈을 끊을 때 비로소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

 

한국경제의 환상을 깨야 한다. 삼성이 세계 1위의 기업이라고 자축하는 것은 삼성 그들만의 잔치일 뿐이다. 삼성이 커지면서 빈부격차는 더 커졌고, 사회적 우울증은 급증했고, 국부 반출은 더 많아졌고, 소기업은 더 망가졌으며, 노사관계는 더 나빠졌고, 청년실업은 더 늘어가기만 했다. 그런 직접적 인과관계는 아직 명료하지 않지만, 그 상관관계는 분명하다.

 

부자가 권력을 잡으면 서민들도 부자가 흘린 국물이라도 더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낙수효과때문에 우리 국민은 이명박이나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놓았고 삼성과 같은 재벌들에게 제공한 막대한 불법적 혜택에 대해 눈감고 있었다. 이제 낙수효과의 허상을 깨고 나와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실감나게 느꼈다. 어려운 전문용어나 에둘러 돌려치는 말도 쓰지 않은 책이라서 술술 읽히면서도 진짜 공감을 주니, 한번 읽어볼 만하다. 이번 여름에 읽은 이 책은 무더위를 식히지는 못할지언정 잠시 잊을 수 있을 정도로 몰입을 시켜준 좋은 책이었다. 강추!

한국철학은 누가 세우겠나 [최종덕의 책과 리뷰] -13

최종덕(철학)의 종횡무진 책읽기

 

한국철학은 누가 세우겠나

 

오늘의 서평 책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처음 읽는 한국 현대철학』 동녘, 2015

 

1. 우리의 철학을 찾아서

 

어린이날이 왜 좋을까? 사랑하는 아이들이 있어서, 아니면 공휴일이라서? 어린이날하면 방정환 선생이 떠오른다.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날을 직접 제정한 것은 아니지만, 방정환 선생이 만드신 <색동회>가 오늘의 어린이날 전신이었다. 여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런데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를 어린이답게 만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동학에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개천절이 어떻게 국가공휴일로 되었는지, 주시경 선생으로부터 촉발된 한글날이 왜 한국철학과 연관되는지를 알게 되었는데, 한국철학사상연구회에서 쓴 『처음 읽는 한국 현대철학』(동녘, 2015)을 읽은 덕분이다.

 

이 책 『처음 읽는 한국 현대철학』은 “우리에게 철학은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 책은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만들었으며 매우 분명한 문제의식을 세우고 있다. 이 책에서 한국현대철학의 문제의식을 대신한 한 마디의 표현이 있는데, 일본 제국주의자를 비판적으로 흘겨본다는 표현이다. 독립운동가 신규식이 일제에 항거하며 독약을 마시고 한쪽 눈을 잃었는데, 그 이후 그는 자신의 호를 한쪽 눈으로 흘겨본다는 뜻으로 예관晲觀이라고 붙였다.(344쪽) 예관이란 반성하고 비판하며 행동하는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한철연의 책은 우리에게 철학이 어떤 의미인지 지식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이 철학함의 출발이라고 말한다. 출세와 입신양명의 도구로 전락한 지식을 비판하며, 권력에 결탁하는 학문을 거부하는 새로운 비판과 부정, 저항과 혁명의 철학이 현대한국철학의 기초였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341쪽) 한철연의 한국현대철학은 부제로 “동학에서 함석헌까지, 우리 철학의 정체성 찾기”에서 암시하듯이 철학의 의미를 스스로 질문하며 나아가 분열의 시대를 마주한 현대인의 철학적 지혜를 모색하고 있다.

 

『처음 읽는 한국 현대철학』은 현대인이 한국의 현대철학을 이해하도록 안내하는 입문서로서 최소한의 한국현대철학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동학의 최제우, 대종교의 나철, 양명학의 박은식, 민족주의형 무정부주의의 신채호, 사회적 휴머니즘의 신남철, 실천철학의 박치우, 국가주의의 박종홍, 씨알철학의 함석헌의 철학을 잘 풀이해주고 있다. 동학의 최제우에서 씨알 함석헌에 관통하는 철학은 이념적으로 평등과 자유에 있었으며, 방법론으로 저항과 실천에 있었으며, 내재적으로는 주체와 성찰에 있었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2. 생명존재론

 

이 책에서 주로 다룬 동학이나 대종교 그리고 당대 양명학은 인격의 선천적 동등성을 강조한다. 당대에서 문제된 인격의 선천적 동등성이란 계급 차별, 직위 차별, 남녀 차별, 부자간 차별과 나이 차별의 역사적 질곡에서 벗어나려는 생명의 존재론이다. 생명의존재론이라는 말은 서평자 마음대로 붙인 것이지만 나름대로 전체 맥락을 상징한다고 보기 때문에 이런 브랜드를 붙어보았다.

 

인격에서 존재론적 동등성의 실현되면 그것이 비로소 삶의 자유이다. 인격적 동등성을 누릴 수 있다는 민중의 희망이 자유를 실현하며 이런 자유의 실현이 당대의 일제 침략으로부터 자신의 자존감을 지킬 수 있다. 동학과 대종교 그리고 당대 양명학에서 말하는 생명의 자유론은 일제에 대한 저항정신의 기초가 된다는 뜻이다. 특히 자유를 희망하는 당대의 동학은 계급에 대한 탈피와 일제에 대한 저항이라는 두 가지 통과제의를 거쳐야 했다. 탈피와 저항이 바로 동학의 기본정신이다. 저항과 탈피는 거창한 독립운동 이데올로기나 종교 경전을 통해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저항과 탈피는 일상생활에서 남녀 혹은 부부 사이에 가로놓여진 사회적 차별이나 어린이를 함부로 다루는 어른들의 관습을 버리고 동등한 관계임을 실천하는 것에서 실현된다는 것이 동학의 기본 철학이다.

 

서평자는 이 책을 읽고 교훈이나 경험담을 민중에게, 여성에게, 학생에게, 어린이에게 억지로 가르치려들거나 강요하지 말라는 뜻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 어린이와 같이 모르는 사실이 세상으로부터 어떻게 복잡한 세상사를 배워갈 것인지 의문이 들 수 있다. 간단하다. 아이들도 혹은 학생들도 다 알고 있거나 크면 자동적으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어른들은 그저 올바르고 제대로 돈 행동과 생각을 하면 아이들이 모방을 하고 따라서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나쁜 짓하면 어린이도 따라서 할 것이다. 자기 자식을 아비가 원하는 어떤 방향으로 잘 키우고 싶으면 아비가 그렇게 하고 싶은 방향대로 잘 행동하면 될 뿐이다. 이런 선천성의 가능성이 바로 존재론적 동등성이다. 좀 어려운 말이지만 존재가 서로 동등해야만 비로소 존재의 생명성이 부여된다는 점에서 존재론적 동등성은 생명 존재론의 전제이다. 쉽게 말해서 생명존재론이란 일상생활에서 남녀, 부부, 계급, 직위, 나이의 차이가 사회적 차별로 이어지지 않는 철학적 토대이다.

 

특히 동학에서 생명존재론의 생명이란 풀 한 잎, 한 잎의 작은 생명이 우주의 생명을 반영하고 있다.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계급이나 성별, 지식이나 재산에 관계없이 누구나 생명의 소중함을 안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백성은 계몽의 대상이 아니라 백성 한 사람마다에게서 대생명의 흔적을 찾아내어 되살릴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동학의 생명존재론은 조선 전통의 성리학 전통과 결정적으로 다르다. 기존 성리학에서 대인은 소인이 지향해야할 모델이며, 거꾸로 소인은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계도되어야 할 계층이었다. 기존의 유가적 수양론에 의하면 성인의 훈교를 통해 무지한 자는 무지로부터 벗어나게 되며, 무지한 자가 훈교되지 않는다면 계속 무지한 채로 남게 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반면 동학으로 촉발된 생명존재론은 일방향적 군주정치나 성인정치의 그늘에서 벗어나 있다. 동학은 빈한한 유랑 지식인들에 의해 주도되었지만, 크나큰 인간관의 변혁을 일으켰다. 군자가 소인을 훈교하도록 정초된 성리학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동학은 세상의 도탄을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생명존재론의 씨앗은 일방적 계몽정치를 부정한다. 오히려 개인들 즉 백성은 이미 남녀의 평등성, 아이와 어른의 평등성, 양반과 상인의 평등성의 마음을 선천적으로 구비한 상태다. 단지 그런 마음이 미발현 상태일 뿐이라는 철학적 존재론을 표명한다. 이 책에서는 이런 미발현 상태의 인격적 잠재성을 조선 양명학으로 설명하고 있다.

 

미발현의 마음을 발현되도록 도와주기만 하면 사람들은 생명과 자유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바로 조선말 생명 존재론의 고유성이며 독특성이다. 그런 변화로의 반등을 촉발하는 철학적 기반은 조선 양명학이다. 중국 명나라 시기 왕양명에서 시작된 양명학이라는 철학은 대학의 격물치지를 양지良知라고 해석했다. 즉 생명의 힘과 자유의 권리는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에 관계없이 임금이나 신하에 관계없이 동등하게 이미 내재되어 있으며 그런 내재된 자기를 발견하는 힘이 바로 양지인 것이다. 자기 안에 이미 군자가 들어 있는 것이며 그래서 소인도 자기 안에서 군자를 찾아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 양명학의 인식론은 조선말에서 일제 압정기로 거치면서 생명사상의 뿌리로 발전했다. 양명학에서 말하는 양지의 사유구조는 평등과 주체, 자립과 현존을 세울 수 있는 철학적 기초이다. 또한 양지는 양명학의 인식론적 기초인 몸과 마음이 하나 되도록 하는 생명사상의 근간인 지행합일의 논리 위에 정초되어 있다.

구체적인 사례를 하나 들어보기로 하자. 2대 교조 해월(1827-1898) 선생은 35세 동학에 입교하였는데, 입교한지 불과 2년만인 37세에 교조가 되었다. 그렇게 가능한 이유는 동학 안에 내재된 양명학에서 말하는 양지良知와 맥을 같이하는 인내천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천적 양지가 있었기에 단박에 도를 깨칠 수 있는 것이고, 도를 깨치면 누구나 교조가 될 수 있다고 1대 교조 수은 선생은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한울이니 사람을 한울처럼 섬기라”는 평등사상은 백성 한 사람마다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무계급의 철학을 포함한다. 나아가 “두려워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77쪽)는 말이 내 안의 시천주侍天主에 대한 확신의 표현이라고 이 책에서 잘 설명되고 있다.

 

방정환 선생의 예를 더 말해보자. 일본에서 막 돌아온 방정환 선생은 이런 동학의 인내천 철학을 처음 접했다. 그리고 방정환 선생의 심장이 휘둥그레졌었다. 이런 인내천의 철학이 어린이에게 구체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고 방정환 선생이 깨달았다. 이후 그는 짧았던 인생기 내내 어린이를 위해 살았다. 철학에서 별로 혹은 크게 다루지 않은 어린이를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실제로는 새로운 관점이 아니라 원래 우리 안에 이미 양지(良知)로 있었지만 감춰져있었거나 억압되어 드러나지 않았던 관점일 것이라고 재해석할 수 있다. 그런 관점을 읽을 수 있고 덧붙여 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이 이 책을 읽는 행운이다.

 

3. 동학 말고 한국철학의 다른 주제들

 

단군교로 시작한 대종교의 창시자 나철(1863-1916)은 단군을 부흥시키는 일에 머물지 않고 일제탄압에 정면으로 맞서서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한다. 천지인, 혹은 한인-한웅-한검이라는 3의 구성체는 단순히 절대적인 구원의 길을 제시한 단순 종교적 특성을 넘어서서, 인간이 살면서 겪는 “느끼고 숨 쉬고 부딪치는” 세 가지를 가리켜 ‘세 길’이라고 부른다고 하며, 인간은 이 세 길에서 방황하며 살아가는 존재라고 했다.(112쪽)

 

황성신문을 창간한 박은식(1859-1925)은 사회진화론을 도입하여 서양과학에 친화적인 양명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책은 박은식이 말하려는 양지를 잘 요약해주었다. 양지는 주자학의 주지주의적 도덕론에서 벗어나 있으며, 오히려 맹자가 말한 측은심의 기반이라고 했다. 후천적으로 습득한 것이 아닌 내재된 도덕적 정감의 의미를 포함하는데, 공정함과 시비선악의 기준으로서 성선함의 기초라고 설명한다. 특히 박은식은 양지를 자연을 밝게 통찰하는 앎, 순일하고 거짓없는 앎, 끊임없이 유행하며 쉬지 않는 앎, 두루 감응하며 막힘이 없는 앎, 성인과 어리석은 사람과 차이가 없는 앎, 우주와 인간을 합일하는 앎이라고 쉽게 풀어주었음을 이 책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149쪽)

 

우리에게 민족 개념이 들어온 역사는 짧다. 그나마도 박정희 군부독재 국가주의를 옹립하기 위한 이념적 도구로서 ‘단일민족’이라는 선전구호로 왜곡되었다. 이념적 도구가 아닌 주체로서의 민족 개념을 처음으로 안착시킨 철학자는 바로 신채호(1880-1936)였다.(173-6쪽) 신채호는 성균관 박사(교수 지위)로 임용되었지만 과감히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첫째 이유로서 전통이 유교적 세계관으로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보았으며, 둘째 이유는 자신의 스승 신기선을 포함해서 당시 유가적 전통을 따르는 집단이 친일 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 분개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외적 역사와 내적 성찰을 거치면서 신채호는 군주와 양반 중심의 일방향적 군주 사회가 아니라 백성과 민중이 주인되는 민족 개념을 형성하였다. 신채호의 민족주의는 오늘날 해석에 따르면 ‘방어적’ 민족주의에 해당한다. 민족이란 민중이 주인 되는 주체의 국민을 의미하며, 서구식으로 말하면 시민에 해당한다. 신채호는 나중에 국가 차원의 주인성보다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더 중시하게 된다. 결국 신채호의 철학적 관심은 1928년 이후 민족주의에서 탈피하고 사회진화론의 영향력에서도 벗어나서 아나키즘으로 변화한다.(190쪽) 이런 점에서 신채호의 철학은 한국현대철학에서 중요한 위상을 갖는다. 한철연 책은 신채호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가 지나치게 민족주의자와 독립투사로만 부각되어 있음을 지적했다. “사회를 구성하는 각각의 주체들이 자기성찰과 자기각오를 통해 궁극의 자유를 창조하는 사유의 발판”을 신채호가 마련했다는 점에서(194쪽) 신채호 철학의 의미는 과거에 그칠 일이 아니라 미래의 지표로 될 수 있음을 이 책은 강조했다.

 

브렌타노 현상학 논문으로 경성제대 철학과를 졸업한 신남철(1907-1958)은 헤겔과 고대그리스 자연철학 연구를 지속해 왔다. 헤겔의 정신철학 연구에서 신남철은 역사철학과 인식론을 연결시켰고, 나아가 철학을 현실역사에 접목시켰다.(215쪽) 신남철은 헤겔의 정신철학을 단순한 관념의 발전이 아니라 세계와 인식주체 사이의 끊임없는 실천적 상호작용으로 해석한 점이 독특하다.(215쪽) 결국 신남철의 관심은 서구 르네상스 문화가 조선역사에 출현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묻는 실천적 질문이었다. 신남철은 그 답을 계몽과 인간 그리고 자유라는 세 가지 키워드에 초점 맞추었다. 1942년 7월 1일 매일신보에 실린 신남철의 “자유주의 종언” 은 그의 현실참여형 정치철학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그 글에서 첫째 대동아공영권 개념을 강조한다. 이 점으로부터 신남철을 비롯한 당대의 많은 지식인들이 일본의 제국주의 야욕을 세계보편주의로 오해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서구 국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위상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셋째 국가를 떠나서는 자유를 실현할 수 없다고 했다. 넷째 자본주의를 비판한다.(226-7쪽) 이후 중국식 사회주의에 영향을 받고 월북한다. 신남철은 1948년부터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서양철학사를 강의하다가, 나중에 자유주의자로 낙인찍힌 후 1958년 사망했다. 결국 그는 정치적으로 남한 정부나 북한 정부에도 적응할 수 없었으며, 자유주의와 이상주의를 영원히 품고 있었던 휴머니스트였을 뿐이다.

 

총을 든 빨치산 철학자로 알려진 박치우(1909-1949)의 삶은 정말 실천철학의 범례였다. 박치우의 실천은 사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인민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실현하는 데 있다고 한다. 박치우는 경성제국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숭의실업전문학교 교수와 조선일보기자로 있다가 월북했다. 그는 문학평론가이며 마르크스 철학의 학자였지만 유격투쟁의 일선에서 삶의 실천을 더 중시했다. 그는 빨치산으로 남파되어 활동하다 1949년 태백산에서 사살되었다. 그는 근대철학의 방법론을 배우고 실천하려 했던 최초의 강단철학자로 평가받기도 한다.(233쪽) 그는 현실에서 실천으로 이행하는 철학적 단계를 그의 책 <사상과 현실>(1946)에서 해명하였다. 그것은 ‘교섭적 파악’, ‘모순적 파악’, 그리고 ‘실천적 파악’의 세 단계이다. 위기의 파악과 극복은 이성에 근거하지만 실제로는 ‘실천’으로만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이 박치우의 기본 명제이다. 이를 그는 “로고스와 파토스의 변증법적 결합”이라고 불렀다.(239쪽) 철학이 이론으로만 머물 때 가장 호사스러우면서도 가장 허울에 찬 것에 지나지 않음을 박치우는 강조한다. 우리는 박치우의 실천 행로가 꼭 옳은 것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철학의 할 바가 무엇인지를 박치우를 통해 배울 수 있다고 본다. “철학은 오늘. 이 땅, 우리에게 있어서 ,,,, 어떤 책임을 분담해야만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박치우는 한시라도 떨어진 적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243쪽) 한철연은 박치우에 대한 평가를 다음의 한 마디로 하고 있다. “한국에도 사유와 삶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 분투한 철학자가 있었습니다”.(267쪽)

 

이 글을 쓰는 서평자는 어렸을 적 학교에서 박정희 군부독재의 의식화 사업의 하나였던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우지 못해 선생님에게 매를 맞은 일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 국민교육헌장을 작성한 이가 박종홍(1903-1976)이다. 근대의 폭력적 권력이 전근대의 전제적 왕권보다 더 잔인하다는 것을 알게 해준 퇴행의 역사, 박정희의 ‘10월 유신’이라는 이름도 박종홍이 붙인 것임을 서평자도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박종홍은 신남철이나 박치우처럼 경성제대 철학과 출신이었으며, 1968년 서울대 철학과 교수로 평온하게 은퇴했다. 다른 한국현대철학자들이 철학과 현실을 접목시키려 시도한 지식인으로 평가된다면, 박종홍은 철학과 현실에 권력까지 접목시킨 국가주의 지식인이었다. 그의 청년 지식기는 헤겔과 하이데거 그리고 퇴계를 통해서 전통철학과 서구철학을 연결하는 데 있었다고 이 책은 말한다. 박종홍은 그의 후반기로 이행하면서 개인의 자유와 평등보다는 집단의 운명을 강조한다. 집단의 공동체적 운명이 자각과 자유를 지닌 개체로서의 ‘나’보다 선행한다고 했다. 이러한 박종홍의 입장은 그가 향후 왜 독재권력에 적극적으로 승차한 정치적 이유를 알게 해준다. 그의 철학은 보통 ‘부정과 창조의 철학’으로 이름 붙여지기도 하는데, 그 내용인즉 부정을 통해 집단성의 힘을 창조한다는 데 있다. 박종홍에게 주체는 개체가 아니라 철저히 우리 민족이라는 결론에 이른다.(294-9쪽) 해방 후 미군정 중심으로 경성제대를 편성한 ‘서울국립종합대학안’을 많은 지식인이 반대했지만 박종홍은 관여하지 않았으며 이승만 독재에 대해서도 박종홍은 묵인의 함구를 했다. 이러한 사실과 대조적으로 박정희 군사 쿠데타 이후 박종홍은 대통령교육문화담당 특별보좌관을 역임하는 둥 적극적인 권력참여를 했다.

 

씨알의 철학자로 알려진 함석헌(1901-1989)은 억압에 대한 저항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 젊은 함석헌의 오산학교 시절은 일제 저항의 민족적 정신과 스승 유영모를 통한 노자 철학 그리고 개신교와 세계의 문화적 보편성에 다층적으로 영향받은 시간이었다. 이후 일본 유학기에 범신론적 종교성, 평화주의, 반자본주의, 노장 사상의 현대적 해석을 통해 실천적 지식의 지평을 넓혔다. 함석헌의 철학은 평화사상과 생명사상으로 줄여 표현할 수 있다. 평화와 생명은 저항으로부터 온다는 점을 강조한 것은 함석헌 씨알 사상의 핵심이기도 하다. “비폭력, 불복종, 총단결”로 요약되는 ‘민주시민을 위한 헌장’(1974)은 앞서 말한 박종홍의 국가주의 칙령인 국민교육헌장에 정면으로 맞서는 씨알의 지표였다. 한철연의 책에 써진 그대로 씨알의 의미를 서평자가 대신 요약하면, 씨알이란 진보의 역사를 끌고 가는 주체, ‘고난의 역사와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의 역사’의 주체이다. 서평자는 이 책에서 가장 기억나는 함석헌의 말이 있어서 인용한다. “저항하는 것이 사람이고, 저항할 줄 모르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334쪽) 서평자는 함석헌을 현대 생명사상의 기초를 다져준 지식인으로 평가한다. 나의 이런 평가는 전적으로 이 책을 읽고 나서 생겼다. 함석헌의 생명의 원리는 첫째 자연적이며, 둘째 스스로 드러나며, 셋째 환경에 맞서 고난하며, 넷째 자유로우며 능동적이다.(321-8쪽) 즉 생명 자체가 평화의 근원임을 보여준 것은 함석헌 철학의 역사적 혁명이었다.

 

4. “다시 읽는 한국현대철학의 탄생을 위하여

 

서평자는 이 책 <처음 읽는 한국현대철학>을 꼼꼼히 읽으면서 새로운 시각으로 나의 한국을 바라볼 수 있었다. 내가 몰랐던 것이 너무 많았고, 내가 아는 척 한 것이 너무 많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단순히 한국의 현대철학사를 나열한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삶의 이유를 스스로 묻게 해주었다. 철학은 답변이 아니라 질문이라는 점을 정말로 실감하게 해 준 책이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여름휴가 동안 한번 읽어 보시도록 주변 사람들에게 강하게 추천한다.

 

한마디 더 붙여보자. 2017년 7월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름 학회는 <동학>을 주제로 열린다고 들었다. 이번 학회의 주제를 토대로 하여 “처음 읽는 한국현대철학”에서 “다시 읽는 한국현대철학”의 탄생이 있기를 한 번 더 강하게 기대한다. i) 서구의 사유를 배제하진 않지만 스스로 창발된 한국철학, ii) 자아민족주의에 빠지지 않는 한국철학, iii) 정서적 믿음이 아닌 엄밀한 지성에서 쌓아올려진 한국철학의 탄생은 이미 이 책 “처음 읽는 한국현대철학”에서 예고된 것이기 때문이다. <끝>

인간적 사회과학의 가능성: 맑스와 뒤르케임이 어떻게 만날 수 있나 [최종덕의 책과 리뷰] – 12

최종덕(철학)의 종횡무진 책읽기

 

인간적 사회과학의 가능성: 맑스와 뒤르케임이 어떻게 만날 수 있나

 

오늘의 책 : 김명희, 통합적 인간과학의 가능성, 맑스와 뒤르케임의 실재론적 귀환, 한울, 2017

 

1.  이분법의 과학에서 통합의 인간과학으로

우리는 이분법의 시대에 살고 있다. 신화로부터 벗어나 과학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신과 기계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가치중립적이라는 구호 아래 객관적 사실을 추구한다지만, 우리가 사실이라고 여겨왔던 사실들은 여전히 주관적 가치에 염색된 것들로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유전자 덩어리이지만, 그 자체로 신이나 알파고도 흉내낼 수 없는 실존적 존재임을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이분화된 것을 종합하고 통합하고 통섭하고 결합하고 융합한다고 하지만 제대로 된 것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다가 어떤 책 한권을 집었는데, 이 책은 이런 이분법을 굳이 종합하려고 하지 않고 그것을 그대로 둔 채 서로에게 대화를 유도하여 새로운 노벨티를 발생하게 하는 변증법적 연합을 보여주고 있다. 그 책은 김명희의 『통합적 인간과학의 가능성』이다. 저자는 사회과학자이지만 과학철학의 방법론을 흡입하여 소위 ‘인간과학’이라는 장르를 제시하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인간과학이란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변증법적 통합의 소산물이다. 이는 정량적 결합도 아니고 화학적 종합도 아니다. 단지 있는 것을 그대로 둔 채 그들 사이에 갈등을 생태적 공존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로 여겨졌다.

 

19세기 들어 자연사실을 취급하는 지식방법론은 실증주의로 굳혀졌다. 실증주의는 자연주의와 환원주의 기반위에 과학에 대한 방법론적 해석을 시도한 철학적 방법론으로 정의할 수 있다. 20세기 사회과학도 그러한 실증주의에 기반한 방법론을 중시했었다. 인간이 배제되고 사물 중심으로 자연을 해석하고 사회를 해석하려 했던 이러한 실증주의 분위기를 거부하고 인간의 관점에서 사회를 이해하려 한 도전이 일어났으며 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조류로 볼 수 있다. 저자는 사회과학에서 이런 분위기를 루카치나 사르트르 혹은 프랑크푸르트학파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그 원조는 맑스와 뒤르케임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러한 도전을 저자는 인간과학이라고 표현했다.

 

2. 비판적 실재론 도입

이 책이 던지는 중심주제는 맑스와 뒤르케임의 사회과학방법론을 비판적 실재론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데 있다. 여기서 비판적 실재론critical realism이란 바스카R. Bhaskar가 처음으로 사용한 개념으로, 실재 그 자체를 되찾아 사회적인 관점에서 실재론의 주장을 전개한 내용을 함의한다. 사회적 관점에서 본 실재론을 의미하는데, 자자가 의도한 비판적 실재론의 속 내용은 과학적인 논리와 사회문화적 구성이 종합되어야만 일상의 세계문제를 조명하고자 하는 데 있다. 이 책은 사회과학에서 논쟁 중인 이분법적 딜레마를 저자의 특유한 종합법으로 재구성하려 했다. 다시 말해서 다음과 같은 ①청년 맑스와 노년 맑스, ②초기 뒤르케임과 후기 뒤르케임, ③자연과학과 사회과학, ④자연주의와 반자연주의, ⑤사실과 가치,⑥과학과 비판이라는 이분법의 틀을 종합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는 점이다. 그 목표를 수행하기 위하여 저자는 맑스와 뒤르케임을 끌어왔다. 저자는 이 두 사람이 이분법의 통합에 매우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22쪽).

 

저자는 이런 종합을 두 문화의 통합에 비유할 수 있다고 했다. 저자가 추구하는 통합적인 인간과학으로 가는 여정으로 표현될 수 있다.(23) 그 여정으로서 첫째 이분법적 해석의 통합을 시도하며, 둘째 자연주의 사회과학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저자의 이런 시도는 실증주의와 낭만주의를 갈라놓은 기존의 사회과학방법론의 분위기를 벗어나서 제 3의 방법론을 정착시킨다는 점에서 정말 고무적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생긴다.

 

통합의 이론적 도구로서 저자는 바스카R. Bhaskar의 비판적 실재론을 소개한다. 비판적 실재론이란 자연과학의 방법론적 틀을 인정하면서도 물질로 환원불가능한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고유한 관점을 덧붙이는 공존과 병합의 태도를 말한다. ‘가치’를 다룰 수밖에 없는 사회과학이지만, 사회과학은 말 그대로 ‘과학’이라는 말꼬투리를 붙인 만큼 사실을 다루는 방법론을 안고가야 한다. 종래의 사회과학자들은 사회과학을 자연과학처럼 취급한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런데 이런 그들만의 자랑스러움이 오류였음을 처음으로 지적한 이가 바로 맑스다. 사회현상을 자연과학의 방법론으로 모조리 설명할 수 있다는 기존의 사회과학방법론의 한계는 역사를 관통하는 사회의 동력학적 맥동을 파악하지 못한 데 있다는 것이다. 사회의 맥동이 실재하며, 그 실재가 역사 위에 얹혀 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하여 저자는 비판적 실재론을 도입하였다.

 

3. 맑스의 비판적 자연주의

비판적 자연주의는 맑스의 과학방법론이며 이를 통해서 실증주의 방법론으로 포섭되지 않는 삶과 사회의 영역까지를 포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연주의와 인본주의를 연결시킴으로써 구조와 행위가 이어지고 설명과 비판이 하나로 묶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론과 경험의 이분법, 이론과 역사의 이분법을 통합하는 것은 바로 인간과학의 핵심이며, 저자는 그 원류를 맑스에서 찾는다. 그런데 저자는 맑스의 인간과학과 분석 맑스주의를 혼동하지 말고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분석 맑스주의는 형이상학으로 변한 맑스 이론의 하나이다. 분석 맑스주의는 전통과학의 규범을 인정하며, 논리적 개념을 추구하며, 공식적인 모델을 정립하려 한다. 저자는 이런 분석 맑스주의는 그것이 아무리 맑스의 언어를 차용했다고 하더라도 인간과학의 영역으로 들어 올 수 없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분석 맑스주의의 존재론은 맑스의 사회적 존재론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분석 맑스주의는 방법론적으로 개인주의를 취한다. 방법론적 개인주의란 존재론적 원자론과 이론적 환원주의를 합친 것으로 이해하면 좋다. 즉 사회현상은 개인을 통해서 설명되어야 다는 것이다. 반면 맑스의 사회적 존재론이란 개인들 간의 관계가 사회전체를 형성하지만 개인의 정량적 통합이 전제사회로 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저자는 이런 환원주의에 기반한 방법론적 개인주의를 비판하면서 그 대안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맑스를 조명했다.

 

그 대안의 하나로서 비판적 자연주의가 있으며 이는 맑스의 과학방법론에 맞닿아 있다. 맑스의 과학방법론은 자연주의와 인본주의가 어울려 있으며, 구조와 행위가 이어져 있고, 이론과 실천이 합쳐져 있어서 세상과 사람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고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4. 뒤르케임의 윤리적 자연주의

저자는 사회과학 안에서 과학활동의 몰이해를 지적한 이기홍의 논문을 인용하면서 실재론적 사회과학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실재론적 사회과학이란 피어스가 소개한 것으로서 비판적 자연주의의 기반을 갖고 사회를 해석한 것이다. 그래서 관념적이 아니라 실재적이다. 동시에 환원주의에 갇혀 있지 않고 세계를 통합적으로 보는 시선을 제공한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실재론은 형이상학적 실재론에 그치지 않고 사회현상 이면에서 사회현상을 통합적으로 설명할 있는 포괄성을 지닌다.

 

그 실례로서 저자는 뒤르케임의 과학방법론을 아래처럼 설명한다.

 

  1. 뒤르케임의 실증주의는 환원적 실증주의가 아니라 자연주의에 가깝다.
  2. 뒤르케임 방법론의 핵심은 행위와 사유가 서로 이어져 있고 묶여져 있다는 데 있다.
  3. 뒤르케임의 <자살론>을 사회생물학의 전거로 보는 과잉 자연주의적 해석도 있지만 저자는 뒤르케임의 자살론을 전통적인 자연주의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관점 그리고 사회적 관점에서 생물학적 동력을 관찬한다.

 

자살론에 적용된 방법론은 단순한 경험주의가 아니다. 경험에 기초하고 있지만 경험을 불러일으킨 발생메커니즘을 중시한 것이다. 경험에서 원리를 추론하는 사유의 힘을 통해서 자살의 근원을 파헤친 것이다. 이런 추론법은 소위 역행추론retroduction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저자는 행위와 이론이 합쳐지고 사회와 역행추론을 통해서 자살을 설명했다.

 

저자는 뒤르케임의 과학방법론을 비판적 실재론의 틀에서 설명했다. 저자의 탁월한 설명법이란 전통적인 자연주의를 극복하여 소위 환원주의에 매몰되지 않는 ‘윤리적 자연주의’의 틀을 마련했으며, 둘째 이런 윤리적 자연주의를 비판적 실재론과 연결하여 설명했다는 데 있다. 나아가 저자는 뒤르케임을 통해 사회의 도덕적 가치가 자연의 원형적 사실위에 성립된 것임을 보여준다. 윤리적 자연주의라는 이름으로 가치와 사실, 나아가 도덕학과 경제학 사이의 통합을 말했다. 사회의 윤리적 규범조차도 자의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이 생존하는 데 가장 합당하게 자연에 적응된 결과로 형성된 것이라고 논증한다. 사회적 가치와 자연적 사실 사이에 장구한 인류의 역사를 매개체로 집어넣은 것이 바로 뒤르케임의 윤리적 자연주의인 셈이다. 자연주의에 대한 오해에 바지지 않기 위하여 저자는 자연주의를 부연설명했다. 자연주의에는 통상의 유물론적 자연주의와 생물학적 자연주의 그리고 심리학적 자연주의가 있는데 뒤르케임의 자연주의는 이와 다르게 사회학적 자연주의라고 한다. 뒤르케임이 말하는 사회학적 자연주의에서 사회적 환경은 초월영성성hyper-spirituality을 포괄한다.

 

사회적 자연주의로부터 사회는 인간 개체들의 합 이상의 무엇이 발현된다는 생각이 정립된다. 뒤르케임에게서 이런 생각은 그의 <분업론>과 밀접하다. <분업>에서 우리는 개별 분업성과의 총합이 전체 성과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며 전체 성과가 개별 성과의 합으로만 환원되지 않고 그 이상의 무엇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해서 그 이상 혹은 그 이하로 될 수 있다. 즉 개인의 총합이 집단이 되는 것은 아니며, 거꾸로 집단은 개인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는 자연에 속하지만 자연을 지배한다는 것이(Durkheim 1953, 97) 뒤르케임을 보는 중요한 관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그의 윤리적 자연주의가 성립된다.

 

뒤르케임의 윤리적 자연주의는 도덕적 사실이 자연의 현상의 일부라는 점을 말한다. 이로서 결정론과 자유의 대립을 해소한다. 이는 즉 개방적 결정론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나아가 뒤르케임의 윤리적 자연주의란 사실과 가치를 통합하려는 의지가 드러난 인식론적 통로이다. 통합하는 방법론적 논리로서 뒤르케임은 공변법method of concomitant variation을 사용했다. 공변법이란 동시에 발생한 사건들 혹은 현상들 사이에 내적 연관성을 찾는 방법으로, 두 사건(현상)이 동일한 원인을 갖거나 아니면 공통으로 의존된 제3의 조건이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둔 방법론이다. 뒤르케임은 자신의 공변법을 통해 자연과 사회 사시의 내적 연관성이 있음을 밝히려 했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뒤르케임은 이런 공변법을 통해 사회학과 자연과학의 태도를 연결했으며, 도덕론과 경제학을 합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실제로 그는 당대 칸트주의 도덕론과 공리주의 경제학의 이원론을 통합하려는 뒤르케임의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된다. 인간과 자연이 하나라는 생각보다는 인간과 자연이 둘이지만 같이 공존한다는 생각에 가까울 것으로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인간은 인간은 동물적 요소에서 탈피할 수 없으면서도 동시에 동물과 다른 발현적 속성을 갖는다고 한다.(Durkheim 1958, 197) (130쪽) 그렇게 발현된 것이 문화이며 종교기고 제도이다. 제도는 집단에 의해 만들어지고 정형화된 믿음체계와 행위양식이다. 마찬가지로 종교와 같은 정신현상은 사회현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뒤르케임은 말한다.(Review of H. Spencer 1886)

 

5. 비판적 실재론: 바스카와 저자의 입장

이론은 사실을 기초로 하는 과학적 설명을 위해 필요한 것이고, 실천은 가치를 기초로 하는 도덕적 비판을 위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기존의 관점에서 볼 때 과학은 실증주의적 자연주의로 설명될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사회는 반실증주의의 자연주의로 접근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비판적 실재론이라고 부른다. 이는 저자가 말한 새로운 독해의 한 통로이며, 새로운 과학철학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비판적 실재론에 대해 아래와 같이 더 자세히 설명한다.

  1. 과학의 자동적 차원 : 과학 내부의 독립적 논리를 갖는다. 과학이 타동적 차원은 과학과 사회의 상관성을 함의하다. 개별과학은 사이의 층화가 있다. (콜리어 2010, 161)
  2. 개인주의와 집합주의 사이의 이분법을 해소한다.
  3. 자원론(환경론)과 물상화 사이의 이분법을 해소한다.
  4. 정신과 물질 이분법 극복, 정신은 물질의 발혀적 히이다. (바스카 2005a, 21) 이는 철학적 수반이론과 비슷하다.

 

“비판적 실재론의 과학관은 통상 지식추구의 인식론적 절차로만 이해되어 왔던 과학의 암묵적인 존재론적 차원을 불러옴으로써 실증주의의 잘못된 과학관을 바로잡고자 한다. 비판적 실재론의 과학관에 기초할 때 경험적 실재론의 관점에서 좀처럼 이해될 수 없었던 맑스와 뒤르케임의 실재론적 과학관이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60쪽) 다시 말하지만 과학과 비판, 사실과 가치의 이항대립에 멈춰있다면 사회를 이해하기 어려우며 사회과학조차도 설명하기 어렵다. 이 점에서 유물론과 관념론, 결정론과 자유의지, 과학과 철학, 설명과 비판, 사실과 가치, 인간과 자연처럼 서로 분화되고 대립된 양면을 잇고 맞대고 하나로 묶을 수 있다는 저자의 시도는 충분히 호평 받을 만하다. 자연과학에서도 오해될 소지가 많지만 사회과학에서조차 가치중립적이라는 명분과 구호가 지배되고 있는 현실에서 저자의 이런 통합시도는 새롭지만 힘든 학문적 도전이다.

 

인간과학은 자연과학과 별개의 차원이 아니지만 서로에게 환원될 수 없는 새로운 노벨티를 포함한다. 이런 인간과학의 조망은 비판적 자연주의의 핵심이며, 사회를 자연학적 총체성으로 설명하는 시도의 하나이다. 방법론적 개인주의 혹은 환원주의와 정반대의 설명법이라고 보면 좋다. 바스카를 인간과학의 입장에서 보려고 저자는 시도한다. 바스카에게서 “사회는 개인들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 그 속에 자리잡고 있는 관계들의 총합을 나타낸다”는 표현은 아마도 뒤르케임의 사회과학 조망론일 것이다. 바스카는 뒤르케임을 해석할 때 항상 집합주의 사회학과 실증주의적 (경험주의) 방법론을 결합한 독특한 방법론의 소유자로 말한다.(95쪽) 바스카는 맑스를 해석하 대도 마찬가지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맑스 방법론의 핵심은 실재론과 관계적 사회학의 결합에 있다고 한다.(95쪽)

 

바스카의 비판적 실재론에서 전제된 철학적 존재론이 있는데, 그것을 바스카는 이중의 탈중심화라고 부른 것 같다. 저자가 표현한 탈중심화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인간 개인들의 총합으로 설명할 수 없는 창발적인 사회 속성이 있다.
  2. 사회는 개인 중심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3. 개인으로 설명할 없는 창발적 정신 속성이 있다.
  4. 인간은 개인의 심리학으로 환원되지 않는 고유의 정신을 갖는다.

 

결국 사회는 존재론적 고유성이 있는 구조라고 한다.(97-98쪽) 바스카에서 사회구조는 자연구조와 달리 그것이 지배하는 행위와 독립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구조는 자연구조와 달리 행위주체들이 활동하면서 그들 자신이 하고 있는 것에 대해 관념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사회구조는 자연구조와 달리 행위주체들이 활동하면서 그들 자신이 하고 있는 것에 대해 관념없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구조는 자연구조와 달리 오직 상대적으로만 지속된다.

 

6. 비판적 유물론

인간과학을 위한 유물론을 저자는 강조한다. 비판적 유물론은 이론적 이분법에서 탈피하자는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과학을 물질주의 과학의 제한에서 탈피시키자는 것이다. 그러면 유물론과 관념론, 결정론과 환경론 나아가 과학과 철학의 이분법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런 뒤르케임의 통합방법론을 맑스의 통합론과 동일한 지평에서 다루었다. 비판주의와 과학주의, 자연주의와 문화주의, 실증주의와 역사주의를 하나의 틀로 묶어내었다는 점 이상으로 맑스와 뒤르케임을 공통의 사유틀로 엮어낸 저자의 학문적 조망력은 더많은 독자의 시선을 끌 것 같다. 그런 시선은 인간과학의 범주를 끌어내고 있다.

 

저자는 이와 관련하여 엥겔스가 블로흐에게 보낸 편지를 소개한다.(맑스 엥겔스 1997, 508) “경제의 변화는 유물론이지만 결정론이 아니다. 생산과 재생산들의 계기를 다루는 경제적 계기는 매우 복잡한 상황들의 연관성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단일한 인과법칙으로 환원되거나 결정론적이지 않다.” 이 편지 내용은 유물론이면서 어떻게 인간주의 과학이 가능한지를 시도하는 데서 시작된다. 저자는 맑스와 뒤르케임의 새로운 유물론이 바로 이러한 인간과학의 옷을 입은 유물론이라고 매우 의미있는 주장을 전개했다. 서평자는 저자의 주장을 아래처럼 요약했다.

 

  • 유물론과 관념론이라는 기존의 이분법을 넘어서 있다.
  • 환원주의가 아닌 과학적 유물론, 즉 사회적 실재에 대한 과학적 믿음의 내용이 중요하다.
  • 사회적 형태의 재생산과 주체적 인간의 구성적 역할을 강조하는 실천적 유물론이다.
  • 자연은 단지 인간에 대립적인 감각경험의 대상만이 아니다.
  • 자연은 인과적으로 상호의존하는 실천적 관계의 장이다.
  • 경험주의적 존재론에서 벗어나 있으며, 이를 비판적 자연주의 관점으로 맑스와 뒤르케임 두 사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
  • 가시적 인과론을 밝히려는 일반경제학과 달리 경험계 밖 인과관계까지 다루는 과학의 근저이다.(219쪽)
  • 물신주의에서 탈출하는 주요한 통로가 될 수 있다.
  • 리카르도 경제학의 “환원주의 오류”로부터 벗어나는 계기가 된다.(요강 III, 22)
  • 역사와 가치 이분법, 비판과 과학의 이분법을 극복하는 유물론이다.

 

7. 맑스와 뒤르케임에 대한 “새로운 독해”

인간이 배제된 채 자연과 사회를 해석하려 했던 19세기 실증주의 분위기를 거부하고 탈피하려는 사상적 도전이 바로 20세기 중후반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사회과학의 루카치에서 프랑스의 사르트르 나아가 프랑크푸르트학파에서 그 포스트모더니티와의 공조를 엿볼 수 있다. 그런 사조의 원조가 맑스와 뒤르케임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런 관점에서 본 사회과학을 저자는 인간과학이라고 표현했다.

 

이분법의 틀에서 벗어난 인간과학으로서의 사회과학은 방법론적 개인주의 혹은 계량적 환원주의를 비판하며, 관념적인 추상의 연역법칙이 아니라 실재하는 자연주의를 무시하지 말도록 우리를 설득한다. 저자는 비판적 자연주의를 더 확장하여 사회과학적 실재론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실재론을 이해하기 위하여 저자는 “새로운 독해”를 제시한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새로운 독해”란 첫째 형식적 이분법에서 탈피하며, 둘째 과학을 재조명하는 데 있다. 과학과 비판, 사실과 가치의 이항대립에 멈춰있다면 사회를 이해하기 어려우며 사회과학조차도 설명하기 어렵다고 역설한다. 이 점에서 유물론과 관념론, 결정론과 자유의지, 과학과 철학, 설명과 비판, 사실과 가치, 인간과 자연처럼 서로 분화되고 대립된 양면을 맞대어 잇고 하나로 묶으려는 저자의 시도는 충분히 호평 받을 만하다. 자연과학에서도 오해될 소지가 많지만 사회과학에서조차 가치중립성의 구호가 팽배해진 오늘의 현실에서 저자의 이런 통합시도는 새롭지만 아마도 힘든 학문적 도전으로 될 것 같다.

 

새로운 독해의 구체적 사례로서 저자는 소이어의 <발현이론>을 들었다.(Sawyer 2002, 227) 발현이론이란 주어진 부분들의 합으로부터 전체가 구성되지만, 전제 안에는 부분들에 없었던 새로운 것이 발생된다는 것이다. 전체가 부분들의 합과 똑같지 않고, 부분의 합이 전체보다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다는 것을 저자는 말한다.

전체는 부분들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결국 결정론과 자유론(환경론 혹은 자원론)이 서로 공존하는 길을 제시한다. 그래서 정신과 물질의 이분법을 극복하고, 정신은 물질의 창조적 발현이라는 점을 저자는 논증한다. 인간과학은 자연과학과 달리 무엇에도 환원되지 않고 스스로 고유한 노벨티를 머금고 있다고 한다. 개인들 하나하나를 설명한다고 해서 사회 전체가 설명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사회를 설명하기 위하여 사물 안에는 없었지만 사물 사이에서 새롭게 창출된 관계항까지가 파악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이러한 파악은 정적인 사물을 촬영한 한 컷의 사진기로 가능하지 않다. 관계의 창출을 파악하려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사물을 연속적으로 촬영한 복수의 사진컷을 필요로 한다. 연속의 사진컷을 우리는 역사라고 부른다. 역사를 보지 못하는 사진사는 인간과학의 살아있는 장면장면들을 생생하게 촬영할 수 없다는 점을 이 책을 읽고 깨닫게 되었다.

 

8. 청중을 위한 사회과학, 독자를 위한 사회과학서

이 책에서 이런 글귀를 읽었다. “사회과학은 주제에 관한 것이기도 하지만 청중을 위한 것이다”.(292쪽) 이 책은 저자만의 고유한 주제의식과 창의적인 내용을 충분히 담고 있다. 그런데 책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내용이 전문적이라서 읽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전문적 내용이라도 독자들이 읽어 내지 못하면 책의 의미가 반감된다. 사회과학은 청중을 위한 것이라고 저자는 분명히 말했다. 그만큼 독자가 다가갈 수 있는 글쓰기로 책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못한 것은 이 책의 약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분법의 홍수 속에서 그렇게 분열된 것들을 공존시킬 수 있는 방도를 생각해보려는 독자들은 이 책 구석구석에서 대단한 읽을거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스트롱맨의 허구 [최종덕의 책과 리뷰] – 11

최종덕(철학)의 종횡무진 책읽기

 

스트롱맨의 허구

 

책 『파퓰리즘』에 대한 서평 : Cas Mudde and C.R. Kaltwasser, Populism, Oxford, 2017

 

1. 파퓰리즘이라는 책

 

최근 들어 파퓰리즘이라는 말이 정치권에서도 가끔 들려온다. 요즘 그런 파퓰리즘이라는 말은 대체로 자기와 다른 입장의 정치인을 비난하는 데 사용되곤 한다. 파퓰리즘의 말이 그만큼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부정적 이미지는 다음의 세속적 어투에 연관되어 있다. 먼저 첫째 대중에 영합한다는 어투를 상징한다. 둘째 대중을 마음대로 끌고 갈 수 있다는 정치가의 권력을 은유한다. 셋째 파퓰리즘은 대중에 따라한다는 것을 말하면서도 그 반대로 대중과는 격이 다른 정치엘리트만의 권력양상임을 은근히 함의한다. 이런 나의 직관적 이해가 맞는지 틀리는지 나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요사이 출간된 책 한권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파퓰리즘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 책이었다. 그래서 그 책을 소개할 겸 이렇게 리뷰를 하게 되었다. 그 책 이름은 이 쪽 분야를 오랜 동안 연구해온 조지아대학교 머디 교수가 펴낸 『파퓰리즘』이다.

 

파퓰리즘의 정치인이라면 대뜸 유럽의 우파 지도자나 남미의 죄파 출신 대통령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들 정치인들 사이의 공통점을 찾기 어렵다. 그만큼 파퓰리즘이라는 용어도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파퓰리즘이라는 말이 사용되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그 의미도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파퓰리즘이라는 말은 오히려 정치적 반대자들을 공격하는 언어적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파퓰리즘의 고유한 의미는 없다는 사회과학적 입장도 강한데, 어쨌든 너무 모호한 개념이라서 파퓰리즘의 정치 양상을 일반적 정치 특징으로 적용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을 이 책이 잘 보여주고 있어서 파퓰리즘을 단박에 이해하려고 했던 나의 의도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해소의 실마리를 찾았다.

 

2. 해방적 파뮬리즘

 

파퓰리즘은 인민the people과 엘리트the elite 계층을 구분하는데서 시작한다. 다시 말해서 파퓰리즘은 엘리트주의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좁은 의미로 정의할 때 파퓰리즘이란 부패한 기존의 엘리트 집단에 대항할 수 있는 대중의 일반의지가 자생적으로 집결된 정치적 이데올로기이다.(p.6) 인간과 사회의 특성에 대한 규범화된 신념체계를 이데올로기라고 말한다면 파퓰리즘도 충분히 이데올로기의 지위를 갖을 수 있다. 파퓰리즘을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간주했지만, 파시즘이나 자유주의 혹은 사회주의와 같은 전형적인 이데올로기와는 다른 수준에 있다. 저자의 구분을 서평자 마음대로 다시 번역해 본다면, 파시즘, 자유주의, 사회주의 등의 이데올로기를 고체성 이데올로기thick-centered ideology라고 붙일 수 있고, 파퓰리즘의 이데올로기는 액체성 이데올로기thin-centered ideology로 비유될 수 있다(p.6).

 

파퓰리즘의 원형은 봉건제 왕권으로부터 민중을 구원하고자 했던 i) 해방전선이었으며 독재로부터 대중의 인권을 보호하려했던 ii) 투쟁기반 역할을 했었다. 독재저항에 나섰던 아르헨티나 정치이론가 라클라우(Ernesto Laclau)도 말하기를 “파퓰리즘은 정치의 본질로서만이 아니라 해방의 권력으로도 간주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파퓰리즘을 이 책의 용어와 무관하게 해방적 파퓰리즘이라고 부르려 한다.

 

우리에게 해방적 파퓰리즘은 조선말 농민혁명으로 시작한 동학과 조선후기 양명학과 대종교 등 일제 강압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의 정신적 원형이었다. 조선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독재와 서구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식민지 국가의 민족주의적 저항운동은 대부분 해방적 파퓰리즘의 성격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전제주의가 무너지는 19세기 말과 민주주의가 들어서는 20세기 초를 연결하는 데 있어 파퓰리즘의 역할은 큰 의미를 지녔다. 이 책의 저자 역시 파퓰리즘과 민주주의는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19세기 말부터 확산되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둘이 필연적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p.40) 불행히도 20세기 중후반 소위 자유민주주의의 이름이 휘날리면서 파퓰리즘은 다른 색깔로 드러나게 되었다.

 

3. 폐쇄적 파퓰리즘nationalist populism

 

파퓰리즘의 시작은 억압된 피플(백성, 국민, 민중, 인민, 대중)을 해방시킨다는 아젠다에서 출발한다. 반면 요즘 거론되는 파퓰리즘은 정치시스템의 한 양상으로 간주되곤 한다. 파퓰리즘이 이미 현대 미디어와 정치에 제한된 규범적 용어라는 입장을 이 책은 제시한다(p.6)

 

파퓰리즘은 “민주주의”라는 말보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상황에 더 잘 사용되고 있다는 저자의 말은(4쪽) 매우 의미심장하다. 자유민주주의 범주는 우리가 전형적으로 알고 있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결합된 사회적-정치적 양상이라고 보아도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는 구시대의 왕권형 권위주의에서는 벗어났지만 오히려 사회적 민주주의보다 퇴보한 형태로 볼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말에 전적으로 나도 동의한다. 저자가 말하는 파퓰리즘은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다. 현존하는 파퓰리즘은 외국인 혐오증과 반이민 정책과 연관된 유럽의 파퓰리즘과 파벌주의와 경제적 파국에 연관된 남미의 파퓰리즘을 연상하게 한다.

 

엘리트들이 민중을 위험하고 부정직하며 상스럽다고 믿으며, 동시에 엘리트는 도덕적으로 민중들보다 우월할 뿐만 아니라 문화와 지성에서도 우월하다고 믿는다.(p.7) 따라서 엘리트 정치가는 대중을 조정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엘리트 정치가들이 나서서 대중을 조정하는 정치는 대부분 독재정치로 이어진다. 엘리트 정치인들은 자신의 일방적 독재 정치양식을 변명하기 위하여 파퓰리즘을 선전도구로 악용한다. 엘리트 정치인 혹은 정치집단이 대중 일반을 잘 살게 해줄 수 있다고 호도한다. 자본의 권력을 최우선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는 엘리트 정치집단과 엘리트 경제집단이 결탁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상호 결탁된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부와 권력의 잔여물을 대중에게 나눠줄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줌으로써 대중의 지지를 유지하고 확장한다. 이러한 환상의 기대치를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라고 한다. 엘리트 정치와 낙수효과가 서로 상생하여 오도된 파퓰리즘이 형성된다.

 

이러한 엘리트중심 파퓰리즘은 해방적 파퓰리즘이기보다는 정반대의 폐쇄적 파퓰리즘에 가깝다. 이 책도 그런 폐쇄적 파퓰리즘을 주로 조명하고 있다. 이 책이 다루는 파퓰리즘은 대체로 두 가지 형태에 있다. 첫째 1970년대 한국의 군사혁명, 태국의 친위혁명, 남아메리카의 해방혁명 등으로 새로 형성된 신생 독립국가와 신흥 자본주의 국가에서 나타난 파퓰리즘이다. 둘째 최근 전세계적 빅이슈가 되고 있는 IS 테러와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서 오는 무슬림 난민에 대응하는 정치적 양식으로서 파퓰리즘이다. 둘째 파퓰리즘은 최근의 난민증가에 대한 반작용이지만, 그 단초는 소비에트가 무너지고 독일 통일이 된 1989년 이후 유럽국가의 변화에 있다. 이 책은 2017년 초 출간되었지만, 초고는 트럼프 대통령 이전 시기에 쓰여졌기 때문에 트럼프 정권의 파퓰리즘에 대해서 다룬 것은 별로 없다. 지난 2012년 미국 대선 공화당 예비후보였던 사라 페일린을 파퓰리즘의 사례로 조금 언급했을 뿐이니, 이 책의 시의성은 미흡한 것으로 판단된다. 폐쇄된 파퓰리즘은 내가 붙인 이름이고, 학술적으로는 주로 민족주의 파퓰리즘natioalist populism이라고 부른다. 혹은 국가주의 파퓰리즘으로 번역해야 될 때가 많다. 왜냐하면 유럽국가나 동아시아 국가와 달리 다중민족으로 형성된 미국에서는 민족주의 개념이 무의미하거나 국가주의로 변신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America First” 라는 구호가 보여주듯이 트럼프는 극단의 국가 이기주의를 채택했다. 결국 그가 대중 선거를 통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기 때문에, 어쨌든 트럼프는 충분히 파퓰리스트로 간주될 수 있다. 트럼프의 파퓰리즘은 전형적인 폐쇄적 파퓰리즘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4. 파퓰리즘 정치가의 세 가지 형태

 

파퓰리즘의 정치가(파퓰리스트)는  3가지 형태로 나타난다고 저자는 말한다. 생소한 구분이기는 하지만 저자의 표현대로 외부 파퓰리스트, 내부 파퓰리스트 그리고 외부-내부 파퓰리스트의 세 형태를 말한다. 이들의 차이가 선명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범례를 통해 그 차이를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4.1 외부 파퓰리스트 : 외부 파퓰리스트는 주류 혹은 엘리트 정치그룹과 연관성이 전혀 없었던 정치 신인들을 의미한다. 그들은 정치 비주류였지만 기존 정치세력에 신물이 나거나 폐해를 입었던 대중들에게 큰 호감도를 갖고 인기를 얻으면서 주도적 정치세력으로 부상하는 경우이다. 전반적으로 드문 현상이기는 하지만, 차베스나 후지모리가 그 사례였다. 칠레의 후지모리 대통령(1990-2000)은 정치적 기반이 전혀 없었던 대학총장 출신이었고,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1998-2012)은 직업군인 출신이었다. 진정한 외부 파퓰리스트는 정당정치와 제도정치로 안착된 서구유럽에서는 드물고 라틴아메리카처럼 개인적이고 유동적인 정치시스템에서 성공적이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독재자로 낙인찍혀서 불행한 최후를 맞이했다.(p.74)

 

4.2 내부-외부 파퓰리스트 : 이들과 다르게 내부-외부 파퓰리스트는 정치적 엘리트는 아니었지만 그들과 강한 연관성을 가졌던 사람들의 집단이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외부 파퓰리스트보다 정치적 성공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전후 최장기 오스트리아 수상이었던 크라이스키(Bruno Kreisky, 1970-1983)의 정치적 제자인 하이더 카린티아 주지사(Jorg Haider, 1999-2008)는 국민들의 강력한 인기를 받아 스스로 민족주의 파퓰리즘의 수상이 되고자 했다.(그는 자동차 사고로 죽으면서 수상이 되지 못했다.) 2012년 미국 대선에서 당시 대선 공화당 후보였던 맥케인John에 의해 부통령 후보로 추천되어 인기 급부상한 사라 페일린과 당시 이탈리아 수상과의 친분관계로 나중에 이탈리아 수상까지 한 미디어 제왕 베르루스코니(Silvio Berlusconi, 2008-2011)이 전형적인 내부-외부 파퓰리스트들이다.(p.75)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4.3 내부 파퓰리스트 : 원래부터 정치적 엘리트 핵심이었던 파퓰리스트도 있다. 저자는 이들은 내부 파퓰리스트라고 표현했다. 내부 파퓰리스트는 원래 정당정치인이다. 처음에는 정치적 인연이 없었다가 개인적 등장으로 정치를 시작한 외부 혹은 외부-내부 파퓰리스트와 다르게 내부 파퓰리스트는 대중정당을 만든 후에 포퓰리스트로 전환한 경우이다. 예를 들어 태국의 부수상 출신 탁신은 자신의 대중정당을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수상까지 했다. 스위스 보수당 SVP 출신으로서 반이민정책과 신자유주의를 내세우면서 대중영합의 인기를 통해 극우대중정당을 만들어 스위스 연방위원장이 되었던 블로커(Christoph Blocher, 2004-2007), 그리고 보수당에서 우파 대중정당을 창설하여 헝가리의 민족주의 파퓰리즘을 내세운 헝가리의 오르반(Victor Orbán) 수상(2010-현재)이 전형적인 내부 파퓰리스트의 사례이다.(p.76)

 

5. 파퓰리즘과 민주주의

 

파퓰리즘은 정치의 본질로서만이 아니라 해방의 권력이라는 라클라우(Ernesto Laclau)의 말은 파퓰리즘의 이상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현실에서는 오히려 “파퓰리즘은 대의민주주의 절차와 이상을 무너트리는 것이다”라고 프랑스 주지주의 사회과학자 로잔발롱(Pierre Rosanvallon)은 말한다.(p.79) 앞서 많은 사례에서 보여주었듯이 1980년대 이후 전세계의 파퓰리즘은 민주주의를 거스르는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 많다. 민주주의와 파퓰리즘을 연결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이지만, 파퓰리즘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견해와 민주주의를 보완한다는 견해는 그 어느 것도 틀리거나 맞다고 할 수 없다. 이 점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수시로 등장하는 파퓰리즘의 현실이다. 다시 말해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파퓰리즘은 민주주의에 긍정적 영향을 주기도하지만 부정적 영향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p.84) 그 긍정적 영향과 부정적 영향의 내용을 저자는 표로 만들었는데, 저자가 만든 표를 그대로 번역해 보았다.


파퓰리즘의 부정적 영향력이 강해질수록 민주주의의 존속이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서유럽이나 미국에서처럼 파퓰리즘은 난민과 무슬림을 포함한 외국인에 대한 차별을 합법화하고 있다. 최근 한국 정치파동에서 속살을 드러낸 폐쇄적 파퓰리즘은 어버이연합이나 엄마부대처럼 동원된 파퓰리즘이라는 최악의 병증을 드러냈다. 역사에서 드러났듯 세기말 동학운동과 같은 해방적 파퓰리즘에서부터 <촛불>이라는 자생적 파퓰리즘에 이르기까지 우리 내부에서부터 대중적 공감성이 되살아나 폐쇄적 파퓰리즘의 병증을 겨우 치료했지만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항상 불완전하며, 언제든지 개선될 수 있지만 거꾸로 쇠퇴될 수도 있다. 폐쇄적 파퓰리즘이 민주주의를 덮으면 미래는 암울할 것이며 해방적 파퓰리즘이 건재하면 민주주의는 더 건강해 질 것이다. 그래서 민주주의 통치 그 자체만이 아니라 민주화를 이뤄가는 과정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자도 강조한다.(p.86)

 

6. 스페인, 프랑코 스트롱맨 정권과 그를 수용한 철학자 가세트의 이중성

 

6.1 박정희, 전두환과 맞먹는 프랑코

스페인의 프랑코francisco Franco는 스페인 내전(1936-1939)을 독일 나치의 도움을 받아 공화파 전선을 물리치고 자신의 승리로 가져가면서 정권을 장악한 1939년부터 그가 죽을 때(1975)까지 대통령과 총리 그리고 사라진 전제주의 왕까지 겸비한 총통의 자리를 차지한 전형적인 독재자이다. 그는 카톨릭 교회의 적극적인 부역으로 파퓰리즘 형태의 압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프랑코가  30만에 가까운 유아납치, 언론장악, 정적 제거를 하면서도 독재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끊임없이 대중을 강제로 동원하여 자기지지를 하도록 유도해 왔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런 대중 지지를 이끌어 낸 결정적인 배후세력은 카톨릭 교회였다. 불행하게도 점에서 프랑코 정권을 파퓰리즘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스페인 근대사를 몇몇 문장으로 아래처럼 상징적으로 표현해 보았다.

  • 1920년대 카톨릭 교회가 전국토의 93%를 소유했을 정도로 빈부차가 극심했다.
  • 왕정과 기득권 부패에서 해방하려는 시도가 제2 공화정을 탄생시켰지만 곧 무너졌다.
  • 그 결과가 당시 식민지반란군을 제압했던 떠오르는 별 프랑코(당시 대령)군부와 프랑코 군부를 신의 계시인 십자군이라고 치켜세운 카톨릭 교회 및 극우반공산당파가 한 축의 세력이며, 반대 축으로 공화파-좌파-국민세력 사이에 벌어진 스페인 내전(1936-1939)이었다.
  • 1939년 프랑코 정권은 무자비한 독재정치를 확장했다. 여전히 파퓰리즘의 이름을 도용했다.
  • 블랙리스트의 한국 문화계처럼 영화, 예술, 등의 문화정책에서 강력한 문맹정책을 시행했다. 상당 부분 프랑코 입장에서 성공적이었다고 그들은 자평했다.(각주1)
  • 프랑코 독재일당은 나중에(1949년) 당명을 민족해방당(Movimiento Nacional)으로 개칭했다. 나는 이런 현상을 민족주의 파퓰리즘의 시효라고 본다.
  • 1975년 프랑코의 죽음으로 비로소 민주화의 길을 열었다.(각주2)

각주1) 대표적인 사례가 No-Do(영화 시작 전에 정권홍보상영) 강제시행 등.

각주2)  1975년 이후 스페인 민주화 이행과정이 평화적이었다고 평가하는 것이 많으나 실제로는 상당한 적폐 청산과정과 사회적 부작용을 거쳤다. 1975년부터 80년 사이 민주화운동으로 63명의 거리 시위자가 사망하였고, 약 400명이 내부 테러로 희생되었다.(Paloma Aguilar Fernández, “Justice, Politics, and Memory in the Spanish Transition”, in The Politics of Memory, p. 97.)

 

6.2 이를 바라본 철학자 가세트 : 대중을 복종과 예속에 적응된 계층으로 묘사했다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José Ortega y Gasset, 1883-1955) 스페인 ‘생의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각주3) 가세트는 대중의 반란(La rebelión de las masas)이라는 책에서 대중을 복종과 예속에 적응된 계층으로 묘사했다 물론 가세트는 대중을 말하면서 경제적 계층이나 사회적 계층의 부류로 규정하지 않고 우리 모두에게 잠재적인 인간의 존재성으로 말했다. 즉 대중은 경제적 계층이나 사회적 계층이 아닌 일종의 정신적 상태를 의미한다는 뜻이다. 누구나 대중이 될 수 있으며, 거꾸로 누구나 엘리트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가세트가 대중을 복종의 당사자며 엘리트를 지배의 주체라고 보았다는 점이다. 입장과 견해가 없는 자는 입장과 견해가 분명한 집단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 가세트 대중철학의 핵심이다. 가세트가 말한 대중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대중은 1) 자신의 의견과 입장이 없으며 2) 권력에 대체로 추종하며 3) 사회문제에 참여하지 않으며 4) 자신의 사람에 치명적인 위해가 느껴지지 않는 한 지배체제를 거부하지 않는다고 가세트는 말한다. 더 강하게 말한다면 가세트가 말하는 대중은 전적으로 엘리트 계층의 부속물에 지나지 않는다. 가세트의 대중은 평균화된 존재(평균대중)들이다 그래서 대중 개인의 의견과 주장은 대중 안에서 스스로 나올 수 없는 것으로 묘사했다. 대중은 원래 비속하고 나태하여 이성적인 문제해결에 약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중을 잘 이용하는 집단이 바로 엘리트의 폐쇄된 파퓰리즘이다. 대중은 본래의 지배적 권위의 소유자인 엘리트(選良)의 지배권을 인정하여 대중 스스로 엘리트의 지배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 가세트의 기괴한 대중론이다. 이러 생각은 프랑코 정권의 무자비한 통치에 대중이 숨죽여만 생존했던 당대의 기억에서 나온 관념적 소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각주3)  오르테가가 <생의 철학>에서 말하는 실재는 물리학의 실재(reality)가 아니며, 수학에서 의미하는 실재도 아니며, 플라톤 실재론 철학의 실재도 아니고, 관념론 철학의 관념생성의 실재인 자아(ego)도 아니다. 그의 생의 실재는 인간의 사람 자체이다.

 

7. 스트롱맨의 등장 : 파퓰리즘의 콘트롤센터

 

중남미 정치권에서 보듯 대중과 직접 연계하면서 권력을 집중하는 소위 강한 카리스마 이미지의 정치가들의 출현을 파퓰리즘이라고 한다. 파퓰리즘은 카리스마 지도자를 수반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카리스마 지도자로부터 파퓰리즘이 성공한 예는 거의 없다.(p.97) 이들은 대중과의 연결을 중시하지만 반대자들을 단절시키는 전략을 사용한다. 이런 파퓰리스트는 일부 자연사한 사람들 말고 대부분 끝내 불행한 죽음을 맞이한다.(p.4)

 

스트롱맨의 사례로서 칠레 피노체트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칠레의 폭정 피노체트(Augusto Pinochat) 대통령(직위,1973-1990)은 민주화운동 인사 3,000명 이상을 납치 살해했던 박정희이나 전두환과 맞먹는 독재자였다. 피노체트는 1970년 민주의 봄이 피던 당시의 칠레에서 3만여 명 이상의 민주인사들을 살해하면서 정권을 탈취했다. ‘산티아고’의 봄은 정말 짧았다. ‘기타는 총, 노래는 총알’ 이라는 민중가요로 잘 알려진 민중 가수 빅토르 하라(Víctor Lidio Jara Martínez, 1932-1973)의 기타치는 손목을 잘라버린 피노체트의 악명은 전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그러나 그러한 경악에는 보이지 않는 정치적 위선이 끼어있었다. 미국정권이 피노체트를 오랜 동안 지원했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다는 점이다. 피노체트 역시 스트롱맨의 철권정치를 하면서도 지속적으로 군중을 동원하여 자기 지지를 표방하도록 하는 폐쇄적 파퓰리즘을 간판으로 세웠다. Gamal Abdel Nasser 이집트 대통령(1956-1970), 리비아의 Muammar al-Gaddafi(1969-2011), 이스라엘의 장기집권자 Benjamin Netanyahu, 헌법까지 마음대로 바꾸면서 장기독재를 기획한 터키의 현재 대통령 Tayyip Erdogan을 들 수 있다(p.39). 뭐니뭐니해도 한국의 박정희와 전두환이 빠지지 않는다. 스트롱맨의 흔적이 강한 경우 그 친족인 박근혜 같은 사람도 ‘그냥’ 정치를 향유하게 되는 우스운 사태가 벌어진다. 미국의 트럼프나 그를 흉내내는 홍준표의 스트롱맨 양태는 그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하여 많은 거짓말을 동원해야 한다. 그 거짓말의 양상은 독재권력기간의 시간이 지나면서 스트롱맨 초기에 기만적이었다가 스트롱맨 후기에는 자기기만self-deception으로 전환된다. 자기기만의 스트롱맨 권력기에는 대체로 대중들의 삶의 고통은 지수함수적으로 증가한다.

 

스트롱맨의 파퓰리즘은 아래의 현상을 드러낸다.

 

  • 조작된 군중동원을 항상 기획하며, 실제로 군중집단유도에 강하다.
  • 미디어를 통한 이미지 확보에 주력한다. 사전 이미지 확보가 안 되었거나 새로운 권력 이미지를 창출하기 위하여 미디어를 장악하려 한다. 이런 미디어 장악이 안 되는 경우 미디어와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 기존 정치 이데올로기나 경제구조와 이론을 무시하고 그만의 이기주의 기반 정책을 기획한다.
  • 강한 카리스마를 내세워 독단적인 방식으로 정책을 전개하려 한다. 그들의 권위는 대중으로부터 우러난 존경심으로서 권위가 아니라 권력을 이용한 i) 공포심 조장에 기반한 권위이거나 혹은 ii) 대자본에 의한 낙수효과로서 권위에 지나지 않는다. 스트롱맨의 동원된 형태의 권위는 독재권력으로 귀착될 뿐이다. (커크 호킨스)
  • 개인성향을 정치권력에 그대로 반영한다.(personalization; p.77) 권력의 개인적 특성이 현대정치의 일반적 경향이지만 스트롱맨의 개인 특성은 개인의 우상화로 연결될 우려가 높다.
  • 필리핀 두테르테나 미국 트럼프처럼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정신과 기초헌법을 무시하는 경우가 나타난다. 이들처럼 파퓰리즘이 권력화되면서 사법권을 무시한 조폭형 정치가 일상화된다.(p.38)
  • 스트롱맨의 정치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기본적으로 서열과 계층구조가 필요하다. 그래서 스트롱맨 정권은 원천적으로 평등정책을 거부한다.(각주4)
  • 스트롱맨의 정치는 최후에 원칙이 없어지고 인물만 남는다.
  • 스트롱맨의 정치세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정치엘리트는 항상 적대적 관계를 욕망하고 적 진영을 필요로 한다. 이런 스트롱맨의 특징은 어떤 형식의 이기주의 집단과 결합한다.

각주4)  폐쇄적 파퓰리즘은 보수주의 정치양태의 하나로 드러난다. 폐쇄적 파퓰리즘은 말이 파퓰리즘이지 대중 혹은 서민이나 민중의 입장이 아닌 정치엘리트와 경제엘리트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행태를 보인다. 이들의 경제정책은 자본과 권력 중심으로 개편되어서 부의 재분배 정책을 개악시키거나 단절하고자 한다. 건강보험이나 실업수당 혹은 경제 소외자에 대한 복지정책을 줄이거나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극우주의들의 파퓰리즘을 말한다.

 

파퓰리즘을 해방적 파퓰리즘과 폐쇄적 파퓰리즘의 두 양상이 있다고 앞서 말했다. 해방적 파퓰리즘은 대중의 주체성 혹은 선천적 양심성을 근간으로 한다. 반면 폐쇄적 파퓰리즘은 대중의 예속성을 파고들면서 대중 혹은 집단화된 개인의 이기주의에 근간을 둔다. 파퓰리즘이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것처럼, 대중의 개념도 단박에 정의되기 어렵다. 굳이 말한다면 해방적 파퓰리즘의 주체는 피플(인민)이며, 폐쇄적 파퓰리즘의 대상은 대중mass이라고 볼 수 있다. 대중의 의미는 주로 종속적이거나 예속적이든지 아니면 집단 내 개인의 정체성도 없고 개인이 모인 집단의 정체성도 없는 경우, 그런 집단을 대중이라고 한다. 대중은 무질서를 지향한다는 것이 서구일반의 설명이다. 반면에 피플은 개인의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집단의 목적지향적 정체성을 유지한다면 그런 집단을 피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스트롱맨은 대중을 통제하는 데 주로 문맹정책 등의 문화적 조정구조를 사용하며, 피플을 통제하기 위하여 무력이나 공포정치를 이용한다.

 

엘리트정치의 부작용인 스트롱맨 출현은 대중의 부정적 의미 즉 예속적이고 무질서 지향의 집단을 통제하며 훈육하고 종속시킬 수 있다는 권력의 형성을 의미한다. 스트롱맨의 특징은 그들의 이기주의에 대중의 욕망을 조정하는 데 있다. 스트롱맨 일반이 보여주는 마조키즘이나 훈육주의는 한 사회의 퇴행성으로 가는 잣대가 된다.

 

피플people과 대중mass의 문제점을 상쇄하고 조절하며 전통 스피노자 철학에서 도입한 개념인 다중multitude 개념은 해방적 피플과 예속적 대중에 대한 대안 개념으로 많이 회자된다. 이탈라이 정치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 1933~ )가 창의한 다중 개념이 개인의 정체성을 인정하면서도 대중성 집합성이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나왔지만, 과연 파퓰리즘의 피플을 대체할 수 있는 지는 독자가 평가해야 할 듯하다.

역사를 호흡하는 공부 [자연과 문화 사이에서] -10

최종덕(철학)의 종횡무진 책읽기

 

역사를 호흡하는 공부 (이번에는 절판된 책 한 권을 소개 합니다)

자평(자기 책 서평) : 최종덕 지음, 인문학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휴머니스트, 2003

 

이번 서평은 오래 된 저의 책을 소개합니다. 제 책을 소개하는 것이 정말 겸연쩍습니다. <인문학,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라는 제목의 책인데, 15년 전에 잠깐 세상에 나왔다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채 사라진 책입니다. 이미 절판된 책이라서 과감히 자뻑 수준의 자평을 올려 봅니다. 책의 마지막 10장 부분을 수정하여 옮긴 것입니다. 장 제목은 <역사를 호흡하는 공부>입니다. 과학과 철학, 동양학과 서양학, 고전과 현대를 방황하던 저의 젊은 시절을 회고한 글이기도 합니다. 헤아려주세요

 

1. 그때 저는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 글을 썼는데,

“요즘 나는 사랑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지나가는 소나 말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구분하고, 친구와 처자식, 그리고 임금에 대한 사랑을 따로 구분하는 분별적인 사랑인가 아니면 무차별의 사랑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이러한 고민이 과거 유가와 묵가 사이의 이론적 갈등으로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민족주의의 문제에서부터 작은 학문연구자집단 안의 갈등들과 학연과 지연의 질곡들, 그리고 서양과 동양의 갈등이 곧 전통과 근대의 갈등으로 정착되는 우리의 왜곡된 현실의 문제로 비화되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길이 무엇인지 뾰족이 짚어낼 능력이 없지만, 우선 동양철학도 이제는 동양의 협궤를 과감히 벗어나서 삶과 역사를 호흡하는 통합과학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2. 연속성을 찾아서

 어릴 적에 멋모르고 천주교 성당을 나가게 되었다. 사춘기의 고민을 풀 수 있는 빛을 교회로부터 받게 되었다. 선과 악의 경직된 기준을 심사하는 일보다 사랑과 용서를 교회로부터 배우게 된 것은 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서 하나의 문제에 부딪혔다. 기독교의 구원이었다. 기독교 구원의 기준은 아주 분명했다. 복잡한 교리 밑바닥에서 공통된 구원의 기준을 찾을 수 있었다. 즉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고, 그렇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바울 이후 ‘양심’이라는 보조준거가 나왔지만, 그래도 구원의 기준은 깨질 수 없는 성곽이었다. 여기서 또 다른 고민 하나가 생겼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조 할머니들과 지금도 문명과 단절된 아마존 정글 속의 원주민들이 구원을 받기란 애당초 그른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 기준의 무차별 적용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더 생각해보니 그 구원은 2000년 전의 구체적인 존재자로서 예수의 존재에 대한 믿음보다는 신이 이룬 최초의 창조에 대한 믿음의 성격이 더 강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당신은 예수를 믿느냐?”라는 물음보다는 “당신은 최초를 인정하느냐?”라는 물음으로 돌아서야 한다고 보았다.

 

최초에 대한 의구심은 조금이라도 철학적 반성을 하고 싶어하는 젊은이의 특권이다. 나의 존재를 묻다보면 어느새 최초의 할머니가 누구인지를 묻게 되듯이 시간적 최초성은 아주 큰 고민거리 중의 하나이다. 나 역시 이런 고민에 빠진 적이 있으며, 이제 대학선생이 되어 철학 강의 시간에 이 문제에 대한 답 같지 않은 적당한 답을 떠들고 있지만 사실은 아직도 골치 아픈 문제로 남아있다. 그 뒤에 와서야 최초는 최후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을 내가 하도록 해 준 두 분의 선생님이 계셨다. 한 분은 인도철학을 전공하시는 교수님이고, 다른 한 분은 전직 천주교 수사이셨던 할아버지이다. 교수님에게서는 시간적 최초만 따지지 말고 공간적 최초와 함께 보아야 하며, 인식의 최초가 존재의 최초를 넘어서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전직 수사님에게서 [대학]과 [중용]을 배우면서 최초는 최후의 끝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 학문으로 접했던 고전물리학과 분석철학은 나에게 이 세계를 모두 산수算數와 조립의 대상으로 되어있는 것으로 보게 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유럽철학을 접하면서 내가 공부한 산수와 조립방식은 존재에 접근하는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양자역학 공부는 존재와 인식이 서로 얽매어진 실재 세계의 가능성들을 나의 가슴 안에 담아 주었다. 이 때부터 나의 철학적 화두는 연속성의 세계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의 철학 공부의 대상은 인간이 만나는 자연의 모습이었다. 자연의 근원은 연속성이라는 특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공부한 생물학적 자연과 초미시의 물리적 자연의 모습은 적어도 연속성 자체였다. 지나치게 전문적인 자연과학적 대상이 아니라도 일상적으로 우리가 접하는 모든 자연의 운동과 현상이 바로 연속성임을 알게 되었다. 

 

문제는 연속성의 모습을 인간의 한계인 인식의 차원에서 밝힐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서양의 전통적인 의미에서 학문은 사이언스이어야 한다. 사이언스 연구 대상의 기본적인 필요조건은 비연속적이거나, 혹은 대상이 비록 연속적이더라도 그 연속성이 비연속성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비연속적이 아니면 결코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고민은 이미 칸트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칸트는 그 이전 시대의 형이상학자나 자연철학자와 달리 연속성의 세계를 인정하였다. 그러나 연속성의 세계를 인간의 언어적 담론으로 다루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인간 오성의 성곽 안으로 비연속성의 세계만 편입시키고 연속성의 세계는 제외하였다. 이러한 구분이 서구 근대철학의 중요한 지위를 얻으면서, 서구에서 비약적인 학문발전이 있게 되었다. 칸트의 이러한 구분은 먼저 인식의 오차를 현저히 줄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따라서 과학과 형이상학의 혼란을 없앨 수 있었다. 그리하여 대상의 과학과 마음의 형이상학 양자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요즘 매스컴에서 ‘디지털 혁명’이라는 말을 자주 접하게 된다. 디지털과 대비되는 아날로그는 비연속성과 연속성의 대비와 유사하다. 흐르는 강물을 떠서 정확한 양을 누구에게 전달하고 싶을 때, 우리는 잔을 이용하여 한잔, 두 잔 또는 세 잔을 떠서 전달한다. 강물이 잔물로 바뀌면서 아날로그의 디지털 전환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정확한 정보 전달은 반드시 계량 가능한 단위화가 이루어져야 가능해진다. 단위화 되지 않은 아날로그 정보 전달은 오차와 노이즈를 일으키면서 인식의 혼란을 가져온다. 반면에 디지털의 정보 전달은 한 개, 두 개, 세 개처럼 대상을 단위화 하고 나누어 셀 수 있어서 그 전달 효과가 매우 크다. 우선 단위와 단위 사이에 있는 어떤 존재의 양상은 이쪽 혹은 저쪽의 한 단위에 편입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놓칠 수 있는 정보를 모두 담아낼 수 있다. 그리고 정보 단위의 구분이 확실해지므로 노이즈 발생율을 현격하게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자연의 디지털 전환은 자연의 연속적인 아날로그 상태의 많은 것을 디지털 단위로 이전하고 변환하거나 혹은 왜곡시켜야만 가능하다. 이러한 디지털 혁명은 “무엇인가 있으며, 있는 것을 인식할 수 있고, 인식하는 것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서구의 전통적인 인식의 난제를 자연과학적으로 완성시킨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앞에서 말한 나의 연속성의 화두란 이제 디지털에서 다시 아날로그로 바꾸어 자연의 원래 모습으로 이전되고 변환되거나 혹은 왜곡되지 않은 원래의 모습을 그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노이즈가 가득 찬 아날로그라면 굳이 다시 아날로그의 패러다임으로 바꿀 필요가 없을 것이다. 결국 나의 철학적 화두란 노이즈가 없는(상대적으로 적은) 아날로그 정보 전달의 가능성을 찾는 일이다. 그리고 이를 자연과학의 성과로 이어지게 하고, 인문학의 주요 담론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3. 동양의 지리부도 

그래서 그 방법을 찾아보고 있다. 우선 생물학적인 운동과 현상이 전통 물리학적인 인과율의 범주와 차이나는 것을 조망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양자론과 상대성이론이 서로 만나야만 해결되는 천체물리학과 미시물리학의 대상계를 관찰해야 한다고 본다. 아울러 고대 자연철학의 진화론적 사유와 19세기 진화론의 발전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또한 인문학에서 포스트모더니티의 흐름과 역사주의 철학의 조류를 살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정지성의 철학이 아니고 시간이 유입되어 역사화된 철학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양의 자연에 대한 이해를 수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모든 관심의 테두리를 나는 자연철학이라고 부르며 사용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동양학에 대한 나의 관심은 존재의 연속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우선 나는 동양철학에서 인식과 존재의 차이를 두지 않고 있다. 엄격히 말해서 인식의 유형은 존재의 양상에서 진화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각 존재의 양상을 지배하는 존재의 원초성은 모든 존재에 동등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시간초월의 존재라는 말 대신에 역사적 존재 혹은 진화존재라는 신조어를 사용하고 싶다. 동양적 의미의 존재는 서양적 의미의 실체론적 존재와 달리 시간을 머금은 역사 속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동양의 역사 존재는 두 가지 방식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하나는 역사 존재 자체의 자화상이며, 다른 하나는 인간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수양론이다. 물론 두 가지 방식도 자연주의라는 관점에서 볼 때 서로 연결되어 있다. 누구나 사용하는 일상언어 가운데 한번 핀 꽃은 지고, 달도 차면 기우는 것을 인간 행태의 도리에 비유하여 말할 때 그 논거는 전적으로 자연주의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자연주의는 자연의 운동과 인간의 운동의 동형성을 강조하는 것으로서, 동양학의 중요한 방법론이 된다. 결국 동양의 자연주의는 역사 존재와, 그것을 인식하는 태도, 그리고 그에 따른 인간 행태의 방식이 서로 연속적임을 말하고자 하는 데 그 뜻이 있다.

 

대학원 시절 주렴계나 장횡거를 배우면서 대단한 우주 해석이 그들의 주제 안에 들어있다고 생각하였다. 장횡거에게서 개별자의 뜻을 파악하는 일이란 쉽지 않았다. 오히려 그 어려운 것이 더욱 매력적이었다. 개별자의 정체성을 따지는 일에 익숙한 라이프니츠의 시각으로 볼 때 장횡거는 하나의 정서적 반란이 아닐 수 없었다. 역사적 순서를 무시하고 그 뒤에 장자를 만나고 보니 참으로 주렴계 이상의 대우주가 그려지는 듯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서적 반란은 주자학을 풍월하면서 다시 차분해져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대부분의 도학 풍의 논의가 광대하게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우주의 책을 쓰고 있어서 무척 난해하지만, 반면에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엄청난 매력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냉철한 학문의 칼을 들이대면서 조금씩 정리하여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벌써 학문과 수양의 이중적 갈등이 드러난 셈이다. 이러한 생각의 변화는 실상 동양철학을 수양의 관점에서 보느냐, 아니면 학문의 관점에서 보느냐 하는 고민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고민을 풀어줄 만한 해답은 이미 제시되어 있었다. 동양철학의 학문은 수양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서양과학에 익숙해 있던 당시의 나로서는 절실하게 다가오지를 않았다. 수양을 빙자하여 학문의 엄밀성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동양학의 문외한이자 초보자의 의심어린 어설픈 생각 때문이었다. 이는 공손룡을 만나는 과정에서 더욱 강하게 나왔다. 오래 전 논리철학에 심취해 있던 중에 동양에서 서양의 논리와 비슷한 장르를 찾다가 문자적 차원의 유사성에 끌려 명가名家를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명가를 비판한 장자처럼 혜시 역시 논리학이 아니라 광대한 삶의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곡절을 겪으면서 유가나 도가, 또는 불가의 이야기 안에는 연속성의 주제가 분명하게 들어있음을 알게 된 것은 지금까지 큰 수확이었다고 생각한다. “循環無端 故所在爲始也”라는 말은 대학원 시절에 공부의 주제를 잡게 해준 중요한 내용의 하나이다. 과연 최초를 인정해야 만 존재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자문을 하면서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당시에 나는 최초와 최후를 상정한 서양과학의 선형적 사유에 대한 적절한 대안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자백가의 역사적 상황의식은 분명한 것 같다. 일종의 사회 구원을 찾는 길이라고 본다. 당시는 정치적 분쟁이 끊이지를 않았고 사회적 불안감이 팽배했던 시대였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그들은 사회안정을 위한 개혁의 기치를 높이 세운 것 같았다. 서민이 학문에 접근할 수 없었던 사회적 상황에서 물론 그러한 노력은 관리 주도로 이루어 진 것 같았다. 그리고 관리의 개념은 현직뿐만이 아니라 많은 경우 민가에 흩어져 있는 무명의 학자인 잠재적 관리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서민의 생활태도뿐만이 아니라 임금의 도리와 임금과 서민간의 관계까지 다루면서, 삶에 녹아드는 실질적인 지표를 의도했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의 지표는 추상적이거나 종교적인 교리가 아니라 매우 구체적인 사회적 관심을 표명하고 있었다. 아마도 고대 유럽사회라면 다른 상황을 낳았을 것으로 본다. 유럽이라면 이러한 혼란상황에 직면해서 나올 수 있는 담론은 아마도 종교적 교리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중국인은 철저하게 구체적인 사람의 덕목을 제시하는 사회화 형성에 관심을 기울인 것 같았으며, 내세를 따지는 종교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공자에 보면 의義와 이利의 구분을 상반시켜 군자와 소인의 차이를 말했다. 그러나 유가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조차도 이를 구하듯 실용적 적극성을 발현해야 한다고 보는 듯하였다. 물론 도가는 그것조차도 부정하였다.

 

이렇게 제자백가 시대의 관심에 대하여 아마도 어떤 이는 사회 구원에 앞서 개인 해방에 관심을 두는 반면에, 어떤 이는 사회구성체 조직을 위한 개인의 역할에 관심을 두어 판단하기도 한다. 어쨌든 도가든지 유가든지 그것이 사회철학의 범주에서 볼 수 있다는 이야기에 큰 호감을 가졌다. 이러한 호감은 조선시대 정도전의 삼봉집을 읽으면서 확신으로 바뀌게 되었다. 정도전은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새로운 국가의 이데올로기를 창출할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그런 필요성에 의해 불교는 단지 과거의 것으로 치부되어 척단될 수밖에 없었고, 그 대신에 새로운 유교가 신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을 것이라는 해석학적 상상을 하였다.

 

이제 이쯤에서 분명히 해두어야 할 일이 생겼다. 동양철학이 개인의 수양론인가, 아니면 우주론적 본체론인가, 아니면 사회․정치철학으로 볼 것인가라는 논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서양철학의 입장에서 접근하는 방식이라는 점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역시 수신제가를 한 뒤에 치국평천하를 할 수 있다는 권력 유지의 차원에서 보는 수직적 해석이 아니라, 수신제가를 하면서 동시에 치국평천하도 할 수 있다는 수평적 입장을 취한다면 위의 논의 구조가 그렇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미아리 고개나 계룡산 계곡에 있는 많은 점집에서 ‘동양철학관’이라는 간판을 걸고 주역을 내세우며 장사를 하는 예를 들어 설명할 수 있다. 주역은 인간의 대소사를 점치는 책이 아니라 원래 하늘의 운행 이치를 설명한 책이다. 그런데 동양철학의 기저에는 하늘의 운행방식과 인간의 운행방식이 동형적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으니, 하늘의 운행방식을 그린 주역을 가지고 그 운행방식을 따르는 인간의 대소사를 점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점치는 집에서의 주역의 구실을 너그러이 봐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중국인이 본 하늘은 어떤 하늘인가를 알아야 한다. 서양의 하늘은 땅을 낳고 법칙을 생산한 인간이 다가갈 수 없는 머나먼 곳이다. 이에 비하면 동양의 하늘은 땅으로부터 귀납된 하늘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동양의 하늘은 땅의 모든 기억을 보존하고 있다. 서양의 하늘은 2500년 전부터 인위성이 가미되어 인간을 지배하는 하늘이면서 동시에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반면에 동양의 하늘은 저절로 우러나오는 호연지기浩然之氣의 하늘이다. 맹자가 말했듯이 모든 사람이 요순이 될 수 있다는 말은 이미 하늘이 내 몸 안에 들어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이런 의미를 통해서 맹자 이후 이천년이나 지났는데도 맹자와 불교가 새롭게 만날 수 있었던 양명학의 역사적 배경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어쨌든 하늘이 내 몸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올 수 있는 이유는 하늘이 땅의 숨겨진 유전자를 갖고서 진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늘과 땅은 일방적인 지배 관계가 아니라 장자가 말한 ‘물극필반(物極必反)’하여 어느 것이 하늘이고 어느 것이 땅인지를 모르게, 그리고 먹고 마시고 부부의 잠자리를 하면서 어느덧 하늘이 땅 속에 들어있음을 깨닫는 일이 중요하다고 본다. 중용의 지적처럼 그러하다.

 

오래 전 돌아가신 동양철학계의 큰 스승, 배종호 선생님이 미국 여행을 다녀오신 이후였다. 그 때 나는 대학원생이었는데, 배종호 선생님께 이상한 질문을 드린 적이 있었다. 우리의 풍수지리 해석이 그랜드케년 지역에도 들어맞는지를 여쭈었다. 선생님은 전혀 맞지 않는다고 하셨다. 역시 지리적인 풍토의 차이가 고유의 사상을 유발시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늘이 땅의 생산자가 아니라, 오히려 땅이 하늘의 생산자라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서양철학이나 서양종교의 입장에서 본다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또한 어떤 이는 동양철학에 대한 지나친 해석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말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공부를 더 해야 하겠다는 마음이 들뿐이다.

 

4. 서양이 이름붙인 동양

이후 나는 독일에 유학 가서 동양철학을 잊고 지냈다. 동양철학에 관한 책을 읽기보다는 힘든 유학생활을 달래기 위하여 틈틈이 붓글씨를 쓰곤 하였다. 재활 포장용 종이에 ‘인(仁)’자를 수백 번이나 썼을 것이다. 그리고 반야심경을 뜻도 잘 모르면서 부지런히 암송하였다. 이때 나는 마음을 다스리는 일에 있어서 동양철학이 갖는 의미와 그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와 보니 우리의 현실은 동양철학이 제시하는 수양론과 엄청난 괴리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니 원래 알고 있었지만 새삼 느낀 것이라고 해야 옳다. 제일 먼저는 동양인 우리가 서양보다 더 서양적이라고 느꼈고, 역설적이지만 많은 동양적이라고 하는 것들의 표제어는 서양에 의해 이름 붙여진 것이 많다고 느꼈다. 그리고 갑자기 동양학에 대한 열기가 크게 일어났지만 그 열기의 실상은 비동양적인 것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우선 첫째 식민지 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과거의 왜곡된 동양학 연구태도라고 본다. 둘째 서구문화가 여과 없이 직수입되면서 생긴 학문의 시녀현상을 든다. 셋째 서구문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발 내는 국수주의로 인하여 고전문헌에만 매달려 훈고학만 하면서 발전적 비교해석과 전통의 창조를 두려워하는 잘못된 관행을 든다. 넷째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실천의 문제를 등한시하면서 중립성과 객관성이라는 허울아래서 잘못된 선비의식을 정당화시키는 편의주의적 상아탑의 가면이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둘째 문제와 연관을 갖는 것으로서 동양과 서양을 이분법적으로 대비시켜 이를 무턱대고 이성과 반이성으로 대치시켰던 과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그런 이분법적 태도가 횡행하고 있는 듯하다.

 

한때 외국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 아무래도 외국의 연구 자세와 우리를 비교하는 못된 버릇이 있었는데, 이를 너그러이 용서해준다면 한마디 더 하고 싶은 것이 있다. 최소한 논문을 쓰려면 남이 해놓은 소주제 전개와 주장을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남이 해놓은 연구결과를 관심 있게 살펴야 할 것이다. 혹은 기존의 연구결과에 일목연한 데이터베이스가 마련되어 있다면 더욱 좋다고 생각한다.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지는 최근의 학계풍토로 보아서 세밀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서양의 동양학자가 쓴 글들이 우리 자신이 쓴 글보다 동양을 더 쉽게 이해하도록 해주는 안내구실을 더 잘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 마음 구석 한편에는 아직도 ‘서양 사람이 하면 얼마나 할까’라는 조소 어린 생각을 해보지만 실제로 서양의 동양학자가 쓴 책을 접하다 보면, 그 마음이 얼마나 풍선이었나를 깨닫게 된다. 나 같이 비전문가나 일반인 혹은 동양학 입문자에게 과연 한국의 기존 동양학 연구자는 과연 무엇을 해주었는지를 반성해야 한다고 본다. 내가 보기에 서양의 동양학자의 강점이 있는 듯하다. 나무를 보는 대신에 멀리서 숲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절대로 서구의 동양학 연구자를 얕보아서는 안 된다고 본다. 오래 전에 동양철학 관련 국제학술대회가 있었다. 독일에서 초청된 독일 한국학자가 발표를 하는데 내가 독일어를 한다는 이유 때문에 그 연구발표의 논평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훌륭한 한국어 구사를 했기 때문에 나의 필요성은 별로 없게 되었다. 어쨌든 그의 남명 관련 연구논문은 높은 수준이라고 할 수 없었지만, 하나 중요하게 느낀 것이 있었다. 그의 남명 관련 논문의 주제는 한국의 학자 어느 누구도 건드리지 않은 분야였다. 그리고 논문의 전개 방법론이 매우 창의적이었음을 느꼈다.

 

5. 동서고금의 시선 – 역사를 호흡하는 공부

요즘(15년 전) 나는 나름대로 심각한 문제에 봉착되어 있다. 학문적 문제가 아니라 학문 외적 문제이기 때문에 더 심각할 수 있다. 앞서 말한 것 중에서 다섯 번째 문제와 연관되기도 하다. 문제의 핵심은 서양철학 그것도 과학철학하는 사람이 왜 갑자기 한의학이나 동양철학을 건드리고 있냐는 비난 어린 질문들이다. 한문이나 제대로 하느냐하는 보이지 않는 비난일 것이다. 약간은 곤혹스러웠다. 실제로 나는 한문을 읽는 수준이 미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동양철학 한다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단지 나의 주 전공은 자연철학이고 자연철학의 문제를 다루기 위하여 동양의 자연문제를 건드릴 뿐이었다. 어쨌든 그러한 비난은 동양과 서양을 획일적으로 갈라놓는 이분법적 사고라고 본다.

 

나는 동양과 서양이 반드시 만나야만 우리가 안고 있는 역사적 문제들을 조금씩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서양의 종합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먼저 반드시 동양과 서양의 차이가 정립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차이의 부각에만 그치면 국수주의 혹은 민족주의 아류에 머물고 만다. 차이의 정립은 종합을 위한 과정적 단계일 뿐이다. 과정을 거처 우리는 방법론과 문제의식까지를 공유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서양의 자연철학과 동양의 자연철학을 종합하는 듯이 보이는 작업은 거창한 학제간 연구이기보다는 한 논문의 작은 구성요소로서 인정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기 위하여 동양학을 공부하려는 후배들은 서양철학의 역사적 흐름들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서양철학을 공부하려는 후배들도 동양철학을 다른 전공으로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현상학 수업을 수강한 후에 하버마스 수업을 수강하는 그런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본다. 1998년쯤인가 동서양 철학하는 소장학자들이 모여서 더불어 공부하는 한국철학사상연구회에서 방이지(方以智)의 『물리소지』(物理小識)를 이현구, 김교빈, 박석준 선생님 등과 같이 읽은 적이 있었다. 동식물의 생태학적 자연학을 담아 낸 책인데, 동양철학의 시선을 넓게 해준 정말 고마운 독서모임이었다. 동양에도 서양이, 서양에도 동양이 내재해 있었음을 깨닫게 해준 좋은 기회였다.

 

요즘(15년 전부터 지금까지) 나는 사랑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지나가는 소나 말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구분하고, 친구와 처자식, 그리고 임금에 대한 사랑을 따로 구분하는 분별적인 사랑인가 아니면 무차별의 사랑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이러한 고민이 과거 유가와 묵가 사이의 이론적 갈등으로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민족주의의 문제에서부터 작은 학문연구자집단 안의 갈등들과 학연과 지연의 질곡들, 그리고 서양과 동양의 갈등이 곧 전통과 근대의 갈등으로 정착되는 우리의 왜곡된 현실의 문제로 비화되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길이 무엇인지 뽀족히 짚어낼 능력이 없지만, 우선 동양철학도 이제는 동양의 이름을 과감히 벗어나서 대화의 글쓰기에 나서야 한다. 나아가 서양철학자들도 동양학에 대하여 철학적 성찰과 과학적 방법론이 결핍되어 있다는 비판도 중요하지만, 이제 우위비교가 아닌 동양의 철학적 소재나 방법론에 도전해야 한다. 이런 문제는 공부하는 사람, 그 개인에게만 부과될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관심과 세계관을 지닌 사람들 사이의 열린 대화가 필요하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문제풀이를 찾기보다는 학자군의 만남, 학문간의 협동이 절실하다. 그래서 동서양의 경계,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경계, 전통과 근대의 경계에 묶이지 않으며, 삶과 역사를 호흡하는 그런 공부의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2003년 나온 책 『인문학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