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한철연 교육부 독일어강좌를 시작합니다.?[ⓔ시대와철학 알림]

2015 한철연 교육부 독일어강좌를 시작합니다.?[ⓔ시대와철학 알림]

 

 

한철연 교육부에서 독일어 강좌를 안내해 드립니다.

기간은 1월 30일(금)부터 8주동안 매주 금요일에 진행됩니다.

독일어 공부에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강좌 관련 문의 사항은 pipjc11@naver.com(교육부장, 김정철)으로 메일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강사 : 서유석
일시 : 매주 금요일 4시-7시
장소 : 한철연(서교동 태복빌딩 3층)
교재 : M. Bochenski, (번역본 <철학적 사색에의 길>), 문법책(정통종합독어, 최신독일어 중 택일 예정)
대상 : 철학과 학부/대학원생, 또는 철학과 대학원 지망자로 국한
수강료 : 무료

[신간] 철학, 문화를 읽다

철학 문화를 읽다

5년 만에 개정증보판으로 새롭게 출간된 《철학, 문화를 읽다》

현 시대의 문화를 반영하는 철학적 탐구를 통해

철학의 일상성에 한걸음 쉽게 다가가다!

문화는 현대인의 일상에서 불가피한 코드가 되었다. 고대나 중세 사회에서는 문화의 자리에 ‘종교’가 들어가 있었고 근대에는 ‘예술’이 부흥하면서 그 자리를 차지했다. 본격적으로 문화, 특히 대중문화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 시점은 20세기를 넘어서다. 지금 우리는 대중문화를 비롯해 문화를 수월하게 만끽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떻게 보면 모든 것이 문화에서 문화로 끝나는 시대, 문화를 읽는 키워드가 꼭 필요한 시대다. 그렇다고 문화라는 단일한 코드만으로 현대인의 삶을 다 읽을 수는 없다. 문화라는 커다란 날개 아래 숨겨진 핵심 코드를 찾아서 현대를 읽는다면 제대로 현대인의 삶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2009년에 초판이 나온 《철학, 문화를 읽다》는 5년 만에 개정증보판이 출간되었다. 이 가운데 몇 개의 주제들은 빠지고, 몇 개의 주제들은 새롭게 첨가되었다. 변화하는 한국 사회 문화의 상황을 가늠해볼 때 좀 더 비중 있는 몇 가지 주제들을 새롭게 첨가했다. 또한 초판에 없었던 도판과 사진들을 넣어, 더 입체적으로 문화의 현장에 접근할 수 있다. 이 책은 ‘인간’, ‘인간관계’, ‘성차별과 페미니즘’, ‘다문화’, ‘노동 ? 여가 ? 놀이’, ‘대중음악’, ‘소비와 욕망’, ‘감시와 자유’, ‘위생 ? 건강 ? 웰빙’, ‘환경’, ‘시간과 공간’, ‘가상과 현실’, ‘전통과 현대’, ‘죽음과 노년’을 주제로 삼아 총 14꼭지의 글을 한 권으로 엮었다. 이 책에서 언급된 현 대한민국의 핵심 코드 14가지를 통해 우리 사회의 전반에 깔린 문화 현상을 직시하고, 그러한 환경에 놓인 우리 스스로 주체가 되어 문화를 능동적으로 그리고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철학문화를읽다입체

 

■ 책 소개

문화 과잉의 시대를 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피곤하고 지쳐 있다. 견딜 수 없는 우울과 무의미한 허무함이 때때로 엄습하기도 한다. 위로와 힐링이 필요한 시간이다. 지친 심신을 한 잔의 차와 음악으로, 영화 감상으로 달래 본다. 마음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쇼핑을 하고 게임 중독에 빠지기도 한다. 더 이상 삶에서 의미를 찾기가 우스꽝스러운 허무의 시대에 현대인들은 문화적인 것으로 삶을 도배한다. 현대인은 넘쳐나는 문화의 과잉 영양으로 어찌할 바를 모른다. 너도 나도 문화인임을 자부하지만 메울 수 없는 공허함은 어쩔 수가 없다. 삶에서 의미를 찾던 시대는 가고 그 자리에 문화가 독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문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솔직히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문화는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될지도 모른다. 문화를 이해하고 알려고 하지 말고 감각으로 느끼고 몸으로 만끽하면 된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굳이 문화를 머리로 따지고 정신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문화를 만끽할 수만은 없다. 우리의 몸과 감각을 무지한 상태로 방관하는 것이 좋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과 감각이 지니는 ‘잠재력’에 한번 주목해본다면, 우리는 문화를 새롭게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문화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문화는 넘쳐나는데 우리는 여전히 문화에 대해 무지하고, 심지어 어떤 문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 무기력감에 빠지기도 한다. 다양한 문화 현상은 있되, 문화를 읽는 성찰적 눈과 지식이 얕기 때문이다. 넘쳐나는 문화를 즐기다가 제풀에 지쳐버리기 십상이다. 문화의 풍요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이다. 문화를 읽는 눈이 필요한 시간이다. 그래서 여전히 우리는 골치 아픈 철학의 눈을 통해 문화를 읽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철학이 문화를 읽는 것, 문화를 철학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듯하다. 그렇다고 따로 철학을 처음부터 꼭 배워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만은 않다.

철학은 조금만 더 생각하고 성찰하면 나올 수 있는 ‘깊이를 가진 눈’이다. 문화 현상을 보다가 그런데 ‘왜 그렇지?’ 하는 의문만 가져도, 이미 그 사람은 철학의 매서운 눈으로 문화 현상을 볼 줄 아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된 것이다. 이렇게 ‘깊이를 가진 눈’을 지니고 ‘생각을 가진 사람’이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덕목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실천’이다. 철학은 물론 ‘이론’이지만, 또한 이 이론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염두에 둘 때 ‘깊이를 가진 눈과 생각을 가진 사람’의 모습이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음악을 듣고 옷을 사고 영화를 보더라도 그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깨어 있는 주체로 감시의 눈을 가질 필요가 있다.

성찰을 통한 문화 운동을 기대하다

이러한 실천적인 성찰력은 현실에서 다양한 문화 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거대 문화 자본과 문화 권력에 맞서 각자 자리에서 서로 이웃과 연대해 소비자 불매 운동을 펼칠 수도, 공정 무역의 실천의 장으로 나갈 수도 있다. 억압적인 가부장제 문화와 불평등한 성 차별에 맞서 새로운 평등의 대안 문화를 꿈꿀 수도 있다. 감시 사회 속 노동의 현장에서 파열을 일으키며 자본주의 노동 문화에 저항하는 시민운동을 기획해볼 수도 있다. 게다가 무한 경쟁의 파시즘적 가속의 문화에 느림과 여유의 삶을 꿈꾸는 공동체를 꾸려 볼 수도 있다. 이미 우리는 주변에서 이러한 공동체를 꾸리는 이웃들을 만나고 있다.

이렇게 많은 대안 운동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풍요로운 문화를 우리의 새로운 삶의 코드에 맞게 얼마든지 다채롭게 가꾸어 나갈 수 있다. 넘쳐나는 문화는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다. 성찰적이고 실천적인 깊이가 빠진다면, 문화는 가장 위험한 마취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철학을 통해 문화를 읽는다는 것은 이론과 지식의 측면을 증가시키기보다 철학이 갖는 성찰력을 실천하는 셈이 될 것이다.

일상의 문화를 철학의 언어로 다시 읽다

문화는 궁금한데 철학은 궁금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 책을 접하게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철학을 모르고서는 문화를 아는 것이 피상적임을 깨닫게 된다.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책의 한 꼭지만 읽어도 금세 터득하게 된다. 이 책은 청소년이 읽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난이도로 쓰여졌지만, 문화를 보는 철학적 시각을 새로이 정립할 수 있도록 이끈다는 점에서 상당히 심오한 주제의 글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현 시대를 살아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내가 사는 이 시대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어떠한 현상들로 점철되어 있는지 한번쯤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가령 자본주의 문화 속에서 소비에 대한 개인의 욕망이 어떻게 무의식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지, 개인들은 자신의 자유가 증대되었다는 착각 속에 살지만 우리가 얼마나 더 철저한 감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웰빙을 부르짖으며 건강염려증이 만성화되는 현실 속에서 진정한 건강이란 무엇인지 등 삶과 개인의 곳곳에 침투해 있는 문화의 다양한 현상을 짚으며 궁극적으로 문화에 휩쓸리지 않고 주체자가 된 삶을 살 수 있도록 권유한다. 2014년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문화와 철학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상상할 수조차 없는 어려운 일들이 2014년에 일어났다. 우리들은 삶에 당면한 어려움과 피폐함으로 쉽지 않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우리의 삶에서 일상의 관행으로 뿌리박혔던 낡은 문화의 틀을 과감히 깨어 버리고 이제 좀 더 성찰하는 실천적 자세로 나아갈 때인 듯하다. 고통받고 소외된 약자들에 대한 배려와 나눔의 문화도 더불어 생각해볼 때다.

 

■ 내용 맛보기

다문화주의에서 소수 집단은 ‘다수 집단의 언어’ 아니면 ‘소수 집단의 언어’를 선택하는 양자택일에 놓인다. 문화적 선택 또한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집단의 대소를 막론하고, 모든 집단이 주체가 되는 상호문화주의는 ‘다자간 열린 대화’의 방식을 취하기 때문에 양자택일로 떨어지지 않는다. 동등한 위치와 동등한 가치를 지닌 사람들이 대화 가운데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데로 나아가기가 더 용이해진다.??97쪽

지문이나 DNA 정보는 각 개인마다 고유한 생채 정보를 담는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지문이나 DNA 정보는 개인 인증이나 국가의 범죄 정보 관리에 사용된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미국에 입국하는 외국인에 대해 지문채취와 얼굴 사진 촬영 등 생채 정보 수집을 의무화한다. 테러에 대한 효율적인 대책으로 생체 정보를 수집한다는 것이다. 이제 미국에 입국하고자 하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입국과 동시에 지문날인을 해야 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는 17세 이상 모든 국민에 대해 열손가락 지문채취를 의무화한다. 우리나라에서 17세 이상의 전 국민에 대해 지문날인을 의무화하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 정권 때부터다. 당시 김신조 등이 청와대를 기습한 1. 21사태의 여파로 남파간첩 및 불순분자 색출이라는 명목하에 17세 이상 국민에 대해 열손가락 지문채취가 의무화되었다. 현재 지문날인 제도는 애초의 범죄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한다는 목적보다 주민등록증 발급을 위한 행정 조치의 일부가 되었다. 52쪽

잠은 게으름의 상징이었고, 산업 사회는 게으름을 적대시한다. 그르니에는 수면에 플러스 기호를 붙일 것인가 아니면 마이너스 기호를 붙일 것인가 망설이지만 산업 사회는 태생적으로 잠에 마이너스 기호를 붙이는 사회다. ‘산업 사회’라는 말을 만들어낸 사람은 생시몽(Henri de Saint-Simon)이다. ‘산업, 즉 industry’의 라틴어 어원은 ‘부지런함’을 뜻하는 ‘인두스트리아(industria)’다. 이 개념이 만들어질 당시 이 말은 비생산적인 귀족에 맞서서 산업 노동자의 자부심을 고취하고자한 투쟁적 개념이었다. 그러나 산업 사회는 노동자를 생산라인의 부속품으로 만들어버렸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근면과 성실’을 소리 높이기 시작했고, 노동자의 밤 시간까지 통제하기 시작했다. 58쪽

 

철학문화를읽다표지

 

■ 저자 소개

지은이: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철학을 기반으로 한 연구자들의 자기 성찰과 실천적 모색을 통해 철학의 대중화를 지향하는 한국철학사상연구회는 1989년에 창립했다. ‘이념’과 ‘세대’를 아우르는 진보적 철학의 문제를 고민하며, 좁은 아카데미즘에 빠지지 않고 현실과 결합된 의미 있는 문제들을 통해 철학의 대중화에 앞장서고자 한다. 지역, 전공, 세대별로 흩어져 있던 구성원들이 커다란 강물을 이루듯 한데 모여 있는 한국철학사상연구회는 철학을 공부하는 석·박사 및 대학원생들과 대학 강사, 교수 등 총 300여 명의 회원이 함께 한다.

펴낸 책으로는 《철학 대사전》, 《다시 쓰는 서양근대철학사》, 《다시 쓰는 맑스주의 사상사》, 《철학자의 서재》, 《청춘의 고전》, 《철학자가 사랑한 그림》, 《열여덟을 위한 철학 캠프》, 《열여덟을 위한 신화 캠프》, 《삶, 사회 그리고 과학》, 《철학의 명저 20》, 《논쟁으로 보는 한국 철학》, 《이야기 한국 철학》, 《지식의 바다에서 헤엄치기》, 《우리들의 동양철학》, 《철학, 문화를 읽다》, 《철학, 삶을 묻다》 등 다수가 있으며, 매년 네 차례에 걸쳐 학술지 《시대와 철학》을 발간하며 대중 웹진인 《ⓔ 시대와 철학》을 운영 중이다.

글쓴이(게재 순)

이철승? 조선대학교 교수

연효숙 연세대학교 외래교수

현남숙? 가톨릭대학교 초빙교수

이정은? 연세대학교 외래교수

박민미? 대진대학교 외래교수

박영욱?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김선희? 이화여자대학교 HK연구교수

서영화 서울대학교 외래교수

강신익 부산대학교 교수

최종덕? 상지대학교 교수

서도식?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김성우 兀人고전학당 연구소장

김교빈? 호서대학교 교수

이순웅? 경희대학교 강사

 

■ 차례

군자에서 시민까지: 유가적 인간과 근대적 인간

가족에서 디지털 촌수까지: 새로운 인간관계

제2의 성에서 사이보그 선언까지: 성 차별과 페미니즘

단일 민족 신화에서 결혼이주여성까지: 다문화 사회의 한국

소외된 노동에서 잉여인간까지: 현대 사회의 노동, 여가, 놀이

통기타에서 컴퓨터 음악까지: 대중음악

편의점에서 백화점까지: 소비 사회와 욕망

지문날인부터 디지털 파놉티콘까지: 감시 사회와 개인의 자유

기생충에서 아토피까지: 위생, 건강, 그리고 웰빙

핵발전에서 먹거리까지: 환경 위기와 생태학적 자연관

증기기관차에서 KTX까지: 시간 체험과 공간 이동

단성사에서 CGV까지: 가상과 현실

경복궁에서 아셈타워까지: 전통문화와 현대

타인의 죽음에서 나의 죽음까지: 죽음과 노년의 문제

 

 

다수의 이익과 행복을 위한 위선[가동(可洞)선생의 삶의 철학]

영화 [거래(Arbitrage)]

?이 종철(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

 

1. 영화는 종종 철학 수업이나 사유의 좋은 텍스트가 되기도 한다. 강의 시간에 좋은 영화를 보고 토론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름 깊은 메시지가 있는 영화는 생각하기를 자극한다. 요즘은 대학 강의실에서 영화를 이용해서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나도 강의를 할 때 1-2번 정도는 영화를 상영하고 있고 학생들도 좋아한다. 좋은 영화는 웬만한 텍스트 이상으로 우리의 시야를 확장시켜 준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며칠 전에 우연히 본 리차드 기어 주연의 <Arbitrage>라는 영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 영화는 감독의 연출 의도 이상으로 곳곳에 해석의 여지가 많은 텍스트다. 문제의 정답을 이야기하려는 것보다는 그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http://evelin-hvezdy.blog.c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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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헤지 펀드(Hedge Fund)를 운영하는 로버트 밀러는 화목한 가정의 가장 역할도 충실하게 하고 있다. 그의 60회 생일 축하 자리에는 자식들과 손주들까지 두루 모여 즐거움을 함께 한다. 성공한 가장이 이룩한 화목한 가정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의 부인도 그를 사랑한다고 한다니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에 있을까? 오래 살을 맞대고 살아온 부인의 인정과 사랑만큼 한 남자의 성취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것이 있겠는가?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열심히 일을 한 것은 모두가 가정을 위한 것이고 가정의 행복에서 가장 커다란 의미를 느낀다고 말을 한다. 사회적 성취를 이룬 데는 무엇보다 가정의 행복이 밑바탕이 되었고, 가정의 행복이야말로 성취의 궁극 목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와 개인이 분열된 근대 자본주의 사회 이래로 핵가족 사회에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이상일지 모른다. 공동체의 인정보다 가족의 인정이 더 일차적인 것이다. 사회적으로 성취했다 하더라도 가정적으로 불행하다면 부르주아 사회의 행복의 기준에서 그는 결코 행복했거나 성공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점에서 밀러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행복한 가장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그의 핸드폰에는 정부 (情夫) 줄리의 문자가 들어 있고, 그의 욕망은 업무 핑계를 대고 줄리를 만나러 간다. 완벽한 가정 속에 감추어진 커다란 구멍. 젊은 여성 줄리는 그가 투자한 갤러리의 대표이자 밀러의 숨겨둔 정부이다. 자신의 생일 축하를 받아주지 못하는 밀러에 대해 투정하는 장면이 보인다. 하지만 잠시 그들은 불같은 사랑을 나눈다.

 

3. 이어서 장면은 밀러가 처한 회사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그는 회사를 매각하려 하지만 상대방은 계속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밀러의 불안감을 더해 준다. 그는 이미 러시아의 동광에 투자한 많은 돈을 날린 상태다. 어려워진 자기 회사의 재정 상태를 감추기 위해 친구에게 4천억을 빌려 잠시 예치해 놓은 상태로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약속 기간이 길어지자 불안해진 친구가 그 돈을 돌려놓을 것을 재촉한다. 친구와의 채무 관계, 회사 매각의 지연 등으로 진퇴양난에 빠진 격이다. 사업상 통상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겠지만 이번의 경우는 지금까지 쌓아 올린 공든 탑을 하루 아침에 날릴 수 있다. 투자와 투기의 차이는 무엇인가? 안정과 불안정의 차이에 있을까, 혹은 그것 너머 다른 차이가 있는 것인가? 모든 투자는 투기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 복잡한 상황이 연출되자 그는 집에서 잠을 자다가 새벽에 줄리에게 간다. 줄리는 사람들과 파티를 하다가 밀러의 강압으로 친구들을 돌려보낸다. 채워지지 않은 사랑에 대한 줄리의 안타까운 갈망은 밀러에게 투정과 비난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밀러는 자신의 가정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양립이 불가능한 유부남의 불륜이자 일탈적 사랑의 전형이다. 하지만 이런 사랑이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안정적 가정이 투자라면, 일탈적이며 위험이 크지만 매혹적인 불륜은 투기인가?

 

4. 그 때 밀러는 줄리에게 어디 먼 곳으로 도망가자는 제안을 한다. 그날 밤 둘은 차를 몰고 떠난다. 떠난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잠시 머리를 식히려는 것인가, 아니면 총체적 난국을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으로 완전히 증발하려는 것일까? 물론 사업가의 스마트한 두뇌가 후자를 선택할 가망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졸음운전을 하던 밀러에게 차량 전복 사고가 일어난다. 이런 상황은 물론 예외적 상황이리라. 하지만 모든 정상은 이런 예외와 비정상을 안고 있는 것은 아닌가? 차에서 간신히 깬 밀러가 옆 자리의 줄리를 보니 이미 죽은 상태다. 만약 그 사고 장면이 언론에 보도되면 밀러는 불륜의 당사자로 그가 쌓아 놓은 모든 이미지에 먹칠을 하게 되고, 회사 매각과 관련된 비즈니스도 중단되고 마침내는 사기 횡령죄로 감옥에 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런 계산을 한 밀러는 줄리를 남겨두고 차에서 나오는데, 그 순간 차량은 화염에 휩싸인다. 이 때 밀러는 일전에 죽은 자신의 운전기사의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구한다. 물론 핸드폰이 아니라 흔적이 남지 않도록 용의주도하게 공중전화를 이용한다. 미심쩍어 하는 지미에게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톨게이트를 통과하지 말도록 당부한다. 위기의 상황에서도 투자와 관련된 합리적 판단으로 단련된 머리가 치밀하게 돌아가고 있다. 투기꾼의 합리적 사고는 어떤 상황에서도 계산을 멈추지 않고 합리적 선택(rational choice)을 지향하는 것이다. 지미의 도움을 받아 집으로 몰래 귀가한 밀러는 상처의 흔적을 지우고 조용히 아내의 침대로 기어들어간다. 밀러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정서적으로 반응하기 보다는 차가운 이성을 통해 합리적 계산을 하는 냉정한 두뇌의 소유자이다. 고대의 윤리학의 기준에 비추어 본다면 분명 밀러는 탁월함(Virtue)의 소유자이다. 그러나 이런 탁월함조차 그 밑바탕에 선의지(Good Will)가 전제되어 있지 않다면 얼마든지 더 큰 악의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탁월함이 큰 악덕(Bad Virtue)으로 전도될 수 있다는 의미다.

 

5. 이 사건을 담당한 형사 로스는 사고 당사자, 현장 주변과 통화 기록 등의 조사를 통해 부자 밀러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직감한다. 해서 밀러를 기소하기 위해 압박해 들어가는데 밀러는 여러 가지 증거 인멸과 알리바이를 통해 로스의 수사망을 빠져 나가려고 한다. 그는 자신이 현재 구속될 경우 회사 매각이 결렬되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다칠 수 있다는, 일견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이유를 가지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려 한다. 그는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회계 부정까지 일삼는다. 목적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수단을 정당화하는 이런 태도를 우리는 도처에서 본다. 하지만 그가 처한 난처한 재정 상황은 이미 딸에게도 드러나 충분히 사기 횡령이 될 수 있다는 비난을 받는다. 이 문제를 가지고 딸과 언쟁을 벌인다. 회사의 회계 담당 이사인 딸의 입장이 난처해질 수밖에 없다. 비리를 묵인할 경우 형사처벌도 받을 수 있고, 앞날이 막혀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부정의 당사자가 누구인가? 바로 친아버지가 아닌가? 법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육친의 정과 도리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딜레마이다. 밀러는 딸을 설득하려하기 보다는 딸에게 판단을 맡긴다. 자신의 태도를 정당화하고 강제하려는 우리의 정서보다는 그나마 낫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내가 보기에 유일하게 거래를 넘어서는 부분일 것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거래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일까?

 

6. 그가 구속되느냐 아니면 빠져나가느냐의 열쇠는 이제 지미에게 달려 있다. 밀러는 지미에게 20억의 신탁 자산을 가지고 입을 막으려 한다. 반면 형사 로스는 지미의 차량 기록을 가지고 전과가 있는 지미의 협조를 압박한다. 상대는 돈과 권력을 갖고 있는 부자이고, 최고로 실력있는 변호사를 동원할 수 있다. 일개 수사관이 상대하기에는 벅찰 수도 있다. 무리수는 종종 이런 지점에서 유혹한다. 유죄에 대한 심증이 앞선 수사관은 증거 조작이라는 위법적 절차를 밟게 된다. 이런 증거로 인해 검사 역시 로스를 지원한다. 이제 지미가 진실을 털어 놓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인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반전의 묘미가 재밌다. 동일한 증거자료가 똑같이 반증자료로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텍스트는 해석에 있는 것이 아닌가? 지미가 톨게이트를 통과한 적이 없다고 한 말에 주목한 밀러는 변호사를 동원해 차량 기록이 조작되었음을 밝힌다. 결국 영화는 위법적 절차이기는 하지만 진실을 찾으려는 형사 대신 다수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양심을 속이고 위선적으로 행동하는 밀러의 손을 들어준다. 이 대목에서도 많은 생각을 일으킨다. 불법을 밝히기 위해 똑같이 불법적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혹은 합법의 형태로 수사망을 빠져나가는 피의자를 멀뚱히 쳐다만 볼 것인가? 이런 형사 사건의 경우에서도 재벌을 상대로 하는 소송이 힘든데 일 개인이나 집단이 거대 로펌을 앞세운 재벌이나 행정당국과 어떻게 법적 분쟁을 해결할 수 있을까? 삼성반도체 공장의 노동자들, 태안의 기름 유출 피해자들, 쌍용의 해고 노동자들, 혹은 노동 현장의 파업으로 인해 손해배상소송에 걸린 노동자와 노조들 등, 법적 쌍방 간의 불평등과 불균형을 생각하다보니 끝이 없다.

 

7. 밀러의 부인은 밀러의 부도덕한 현실을 빌미로 재단을 딸에게 넘기도록 강요하지만 밀러는 그것도 거부한다. 마지막 부부간의 대화는 그동안 화목하고 행복했던 부부로 믿었던 것이 얼마나 위선이었고 다른 방식의 거래일 수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준다. 부르주아의 행복이란 것의 허구! 결혼은 성기의 배타적 점유를 위한 계약이라는 칸트의 말을 연상하게 한다. 그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계약이 깨졌을 때 부부관계는 새로운 형태의 거래로 변질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한편 밀러는 회계장부까지 조작한 회사도 강하게 배팅해서 성공적으로 매각한다. 결국 모든 상황을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바꾸어 놓은 성공적인 비즈니스 맨의 모습이다. 거래(Arbitrage)는 쌍방 간의 가격 차이를 이용해 최상의 결과를 얻고자 하는 장사꾼들의 합리적 행동을 지향한다. 이 점에서 본다면 밀러의 행동은 성공적인 거래의 전형을 보여준다 할 것이다. 가정에서도 그렇고, 불륜 상대인 줄리와의 관계에서도 그렇고, 자신을 추적하는 형사와 위증을 통해 자신을 지지하는 지미와의 관계에서도 그렇고, 성공적으로 회사를 매각하는 배팅에서도 그렇다. 위험천만하지만 그러나 성공적인 이런 거래의 이면에는 끊임없이 도덕적 정당성의 문제가 제기된다. 합법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부도덕한 현실, 그리고 왜곡된 진실의 모습…과연 진실이 무슨 의미이고, 돈과 권력의 역할을 무엇인가? 영화의 마지막은 그가 이런 모습의 전형임을 만천하에 보여주는 수상 장면이다. 수상을 발표하는 자리는 자신의 딸이 사회를 맡고, 딸은 밀러에게 더 할 수 없는 찬사를 바친다. 밀러는 부인에게 행복한 키스를 보내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수상을 축하하는 박수를 친다. 하지만 마이크를 건네주는 딸의 모습은 냉랭할 뿐이다. 겉으로 드러난 사람의 모습과 이면에 감추어진 진실의 허구를 극명하게 대비시켜 준다. 성공한 이미지 정치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양면을 한 인격 속에서 무리 없이 잘 표현해준 배우 리처드 기어의 뛰어난 연기가 돋보인다.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 탐험(21)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 탐험(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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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정호 (방송통신대학교 교수)

 

 

* 주제 3에서는 부르크하르트의 『그리스 문화사』제8장 “Zur Philosophie, Wissenschaft und Redekunst”(Gesammelte Werke, Band VII, s. 275-421)의 내용을 수회에 걸쳐 발췌 요약하는 방식으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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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3 : 부르크하르트의 『그리스 문화사』: 그리스 철학과 과학의 지성사적 기원과 의미

 

3. 연설기술(1)

연설기술(Rh?torike : Redekunst)은 소피스트 사상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다. 철학자들을 살피기 전에 연설기술이 나타나게 된 이 현상부터 간단히 정리 고찰해보기로 하자. 우리가 무엇보다도 우선 상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그리스 말이 가지고 있었던 비상한 힘과 유연성이다. 그리스어는 상대에게 말하고 전해야 할 모든 것을 명확하게 하는데 매우 유용했다. 이 점은 예를 들어 헤브라이어와 분명한 대조를 보인다. 그리고 상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또 하나의 것은 일상생활이건 전시에서건 간에 기회 있을 때마다 연설이 가져다 준 큰 기여이다.

연설기술의 경우 우리는 고대 포이니키아(페니키아)나 카르타고, 고대 게르만 등 어느 곳에서도 그것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것에 반해 호메로스의 작품은 현재 우리의 손 안에 있다. 호메로스의 신들이나 인간들의 연설은 최고의 자연적인 힘과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고 게다가 그러한 연설은 폴리스가 앞서 이룩한 큰 성취에 바탕하고 있다. 사실 그리스에서는 이미 모든 사안이 토론에 의해 이루어지고 그것을 위한 성대한 경기도 열려 말하는 일이 일의 성취와 목표 달성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 있었다.

그 후 폴리스에서 민주주의가 발달하고 민회와 민중 법정이 여러 가지 주요사안을 결정하게 되면서 연설은 갑자기 체계적인 학문의 대상이 되었고 그에 따라 사람들은 이 연설기술을 그리스의 모든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하고도 중심적인 요소로서 육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현대의 신문, 잡지와 달리 그리스의 말하는 행위는 특정 장소와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그 시점에만 결부되어 있어, 연설하는 사람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가장 직접적이고도 실감 있게 설득할 수 있어야했고 그 반대자 역시 제대로 된 반론을 펴기 위해서는 그곳에서 그들의 말을 경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거나 그리스인의 경우 현재의 신문 잡지의 힘에 필적하는 것으로서 연설의 힘과 비교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만약 고대의 아테네인이 연설을 듣는 대신에 단지 열심히 신문 밖에 읽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고 하면 사태는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는 것도 흥미 있는 일일 것이다.

이런 까닭에 연설기술은 의심할 나위 없이 아테네인들의 생활의 중심이 되면서 사색이나 지식, 학적 탐구의 경쟁 상대가 되었다. 연설기술은 이후 이 시민들의 전체 에너지의 실로 방대한 부분을 빼앗았고 그러한 이유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학적인 탐구는 그 아래에서 신음하는 처지가 되었을 정도이다. 사실 연설기술에 동원된 막대한 노고 이를테면, 수사학을 위해서 작성된 대량의 안내서의 종류만 비교해보더라도 학적 탐구의 실적은 그저 어중간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철학자들도 처음부터 연설기술을 철학의 경쟁상대로 의식하고 있었다. 그 경우 가장 현명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것처럼 그들 자신 이것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즉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생애의 상당 부분을 수사학에게 바쳐 그 최대의 탐구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실제 사변으로서의 철학은 연설기술에 대한 엄밀한 탐구를 꺼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예술과 시가의 손실은 돌이킬 수 것이었고 학적 탐구 또한 한참 뒤에 가서야 그 보충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 놀랄 만한 현상을 고찰하기 위해서 우리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자료는 무엇보다도 보존되고 있는 연설 그 자체이다. 연설의 발달사적 측면에서 그 가장 중요한 증인은 『브루투스(Brutus)』와 『연설가(Orator)』를 쓴 키케로(기원전 106-43)이다. 키케로는 양질의 자료와 그 자신 그리스에서 거둔 학업을 통해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수사학 내지 연설의 기술관련 지도서는 철학자 대부분이 하나 정도는 썼던 까닭에 그 수는 몇 백 권에 달하지만 이러한 기술 지도서 중 우리 손에 남아 있는 것으로 눈여겨 볼만한 것은 무엇보다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Rh?torike)』과 『알렉산드로스에게 주는 연설기술(Rhetorica ad Alexandrum』이고, 그 이후의 저작으로서는 람프사코스의 아낙시메네스를 들 수 있고 조금 작은 기술 지도서로서는 할리카르낫소스의 디오뉘시오스의 저작 『고대연설가론(de oratoribus antiquis)』등도 중요하다. 그 밖의 것은 발츠(Walz)와 슈펜겔(Spengel)에 의해서 출판된 『그리스 연설가들(Rhetores Graeci)』를 참조했으면 한다. 이 문제에 대한 자료 전부가 다루어지고 있는 근대의 저술로는 브라스(F. Blaβ)의 『아테네의 연설(die attische Beredsamkeit)』이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예술적으로 연마된 연설의 목표는, 아직 독서 습관은 없었지만 민회나 법정 일에 길들여져 무엇이든 듣고 싶어 하는 민중들로 하여금 연설 내용이 ‘그럴 듯하다'(eikos)고 여기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럴듯하다고 여기게 만드는 것은 듣는 사람들을 승복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당연히 오늘날까지도 유효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순진할 정도로 귀가 얇은 그리스인들로서는 어떤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어떤 수단을 사용해도 부끄러울 게 없었다. 자기가 부정하는 견해이고 또 듣는 쪽에서도 그것을 의식하고 있다고 여겨질지라도 내 몸을 구하고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상관없이 끌어다 댔고 게다가 그 연설이 소피스트들이 가르친 그대로 상대를 매료시킬 정도의 고상함을 갖추었을 경우에는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었다. 섬세한 귀를 가지고 능숙하게 펼쳐지는 연설을 귀담아 듣는 것을 소중한 기회로 여기고 있었던 그리스인들로서는 이미 그 연설을 받아들일 마음가짐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리스토파네스도 『새(Ornithes)』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말은 정신에 날개를 돋게 하여 인간을 높은 곳으로 날아오르게 한다.” 이러한 말의 힘을 가장 풍부하게 우리에게 나타내 주는 것으로 안티폰(기원전 480-411)의 생애와 관련한 일화가 있다. 안티폰이 망명자 신분으로 코린토스에 체재하고 있을 때 그는 위자료를 벌기 위해 노점을 열고 다음과 같이 방을 써 붙였다고 한다.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말로 치료해드립니다”(1447) 이윽고 사람들이 찾아오자 그는 그 사람들에게 슬픔을 치유하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어 그들의 불행을 쫓아내 주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데 말이 얼마나 실질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다. 지금 이 시대에 과연 말로 슬픔을 치유할 정도의 사람이 있을지는 새삼 되물어 볼 일이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연설은 그리스인에게서 이미 오랜 동안 다른 여러 민족에게서 나타나는 것보다도 훨씬 중시되고 있었다. 나랏일에서나 법정에서나 사실 옛 부터 가장 큰 효과를 갖는 것이 존재하고 있었고 그것은 늘 감탄의 대상이었다. 다시 말해 규칙과 체계를 가진 연설기술이 나타나기 훨씬 이전부터 말을 잘 하려는 어떤 대단한 의식적인 노력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개개의 사례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면서 그것과 함께 그러한 화법에 대한 기억도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러한 것을 기록해두는 것은 아직 사람들의 염두에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민주주의적 재판 제도가 발달하고 이 재판 제도가 연설의 기회를 습관적으로 제공하게 됨에 따라 마침내 그 노력들에 이어서 체계적이고 이론적인 연설 기술의 출현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최초로 행해진 것은 시칠리아에서였다는 것이 일치된 견해이다. 기원전 466년 시칠리아에서 참주들이 추방된 뒤 민주주의가 발흥 하여 “오랜 동안 권력에 의해서 억압되고 있었던 다수의 사법상의 요구가 크게 증대되었던 것”이다.

엠페도클레스(기원전 490?-430?)가 이 새로운 연설기술의 창시자로서 어느 정도 문제가 되는지는 일단 접어두기로 하자. 그러나 이즈음 이미 시칠리아 땅 쉬라쿠사이의 코락스(Korax)가 민중 연설가로서 또 법정 변론인으로서 명성을 얻고 있었음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가장 초기의 『연설기술 안내서』혹은 단순히 『안내서』라고 불리는 책은 이 코락스가 지은 것인데 이 책은 적어도 연설의 형식과 구분에 대한 규범, 서두를 어떻게 장식할 것인가 등에 관한 지침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와 똑같이 연설 안내서를 쓰고 있었던 제자이자 경쟁자였던 티시아스(Tisias)의 저서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럴듯함”(eikos)이 매우 강조되고 있다. 그런데 시칠리아의 연설 내지 연설기술은 이 티시아스와 소피스트인 레온티노이의 고르기아스(기원전 483-376)에 의해, 기원전 427년 그 자신도 동행했던 시칠리아 사절단의 아테네 파견을 계기로 유입되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연설과 더불어 예비지식으로서 철학, 그것도 앞서 본 것처럼 진리 인식을 부정하는 부정적 성격의 철학도 함께 유입되었다. 아테네에서는 프로타고라스(기원전 485?-414?)가 고르기아스에 앞서 연설기술의 기초는 만들어 주었던 터라 고르기아스 때부터 이미 연설기술은 소피스트들의 중심적인 관심사가 되었고 또 고르기아스 자신 이미 연설기술의 교사로 불리고 있었다. 그는 소피스트들 모두가 그랬듯이 끊임없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면서 그곳 실정에 맞추어 체계적인 연설기술을 가르쳤다. 그 때문에 연설 교사라는 게 하나의 직업으로 여겨졌다. 또 그들에게서 배우면 무엇인가 얻는 바가 있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면서부터 연설 교사는 고액의 사례를 받을 수 있는 직업으로 떠올랐다.
 

고르기아스(Gorgias 기원전 483-376)

고르기아스(Gorgias 기원전 483-376)


 
고르기아스는 재능이 남달라 아무리 내용이 진부해도 시적인 표현과 새로운 언어로 그 내용에 맞추어 훌륭하게 재구성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정말 그가 이룬 진전은 의심할 바 없이 시의 운율을 도입하여 연설문에 균형 잡힌 구조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연설의 각 부분은 서로 대응해서 어울리는 문장들로 구성되었다는 인상을 갖게 되었다. 말의 울림이 매우 좋아진 것은 물론이고 이러한 방식은 기술된 사안을 보다 명료하게 해주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는 연설 각 부분들을 서로 대비하면서 생각들의 대립을 부각시키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같은 길이의 문장(isok?la), 형식상 서로 대응하는 문장(parisa), 그리고 특히 똑같은 말로 끝나는 문장(homoioteleuta), 그리고 같은 소리의 말, 서로 운율이 맞는 말(paronomasiai, par?ch?seis)을 활용하여 연설가로 하여금 한층 더 활기 있는 열변과 화려한 몸짓을 더하게 만들었다.
 
페리클레스(Perikles 기원전 495-429)

페리클레스(Perikles 기원전 495-429)


 
고르기아스 이래 아테네에서 연설의 수준이 급격하게 향상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이러한 향상은 아테네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이것은 아마도 오랜 동안 아테네의 정치가들에 의해서 기반이 잘 마련되어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페르시아 전쟁 이래 그리스의 위대한 정책과 제국의 패권을 둘러싼 당시의 정치현실이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이미 테미스토클레스(기원전 528-462)부터 그 자신 정치가로서뿐만 아니라 연설가로서도 위대했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페리클레스(기원전 495-429)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전몰자 추도 연설’을 할 때까지만 해도 실제로는 고르기아스가 이룬 연설 기술의 수준에는 크게 못 미쳐 있었다. 물론 고대 사료들은 여러 곳에서 페리클레스의 연설이 보여준 마술과 같은 효과(ep?dai)를 전하고 있다. 이를테면 그의 연설이 올림포스의 위대한 신 제우스처럼 천둥과도 같이 전광을 발하며 그리스 전 국토를 뒤흔들었고, 그의 입술 위에는 연설의 여신이 머물러 있었으며 그의 연설은 청중의 마음속에 가시를 남겨두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연설은 투퀴디데스(기원전 460?-400?)의 저작을 통해 그의 입으로 전해지는 것일 뿐 실제 그 자신이 쓴 것으로는 민회의 결의문 이외에 어떤 것도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사실 플라톤도 말했듯이(『파이드로스』257d) 당시만 해도 나라에서 대단한 일을 맡고 있는 사람들은 후세의 평판이 두려워 자신의 이야기들을 쓰거나 저술을 남기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투퀴디데스의 저작에 실린 페리클레스의 연설은 분명 그의 정신을 반영하고는 있지만 그의 연설의 특수한 부분까지 담고 있지는 않다. 페리클레스의 연설이 시적 형상을 이용하고 있었고 그 일부가 훗날 유명하게 되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긴 하지만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그가 연설하는 모습 자체는 나중 세대인 데모스테네스(기원전 384-322)가 가지고 있던 것 같은 정열적인 면모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사실 페리클레스는 망토로 몸을 둘러 싸맨 채 가만히 서서 연설을 하였고 목소리도 항상 같은 높낮이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당시는 정치가는 물론 법정 변론가도 연설을 할 때 아직 단순한 말투를 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고르기아스가 아테네에 도착한 이후 30년 남짓의 세월의 사이에 연설 기술은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었던 것이다.

(3. 연설기술(2) 다음에 계속)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에 항거한다.”[베를린에서 온 편지 11]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에 항거한다.”

 

?한상원(한철연회원/베를린 통신원)

 

*베를린에서 유학 중인 한상원 회원이 인문학 동향이나 정치 소식을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나는 전에 쓴 글 <극단의 시대>(http://ephilosophy.kr/han/?p=46285)에서 유럽에 거주하는 무슬림 청년들의 극단주의화 경향과 유럽 내 반이슬람, 반외국인 정서가 양극을 이루어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고 진단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 우려는 끔찍한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유럽 역사상 가장 끔찍한 언론에 대한 테러가 일어났다. 전 세계가 이 테러에 분노하고 있고, 희생된 사람들에게 추모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양심의 선언은 처벌의 대상, 폭력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는 표현의 자유의 원칙은 흔들림 없이 지켜져야 한다. 우리는 모두 죽은 이들에게 추모의 뜻을 밝히고, 야만적인 폭력으로 본인들의 의사를 관철시키려고 하는 모든 형태의 종교 근본주의에 반대해야 한다. 이 큰 원칙에 우리 모두가 동의한다는 전제 하에, 나는 다만 몇 가지 세밀한 논점들에 대한 논평을 덧붙이고자 한다.

2012년 9월 독일에서 있었던 일이다.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에 주요 근거지를 가지고 있던 극우 민족주의 단체 프로 도이칠란트(Pro Deutschland)는 베를린 시내 한복판에서 당시에 전 세계 무슬림과 아랍인들의 분노를 자극했던 모하메드 풍자 비디오를 상영하려고 시도했다. 당시 프로 도이칠란트와 대립하며 이미 거리 시위에서 폭력을 동원해 대항했던 이슬람 근본주의적인 살라피스트 단체들은 이 상영회를 격렬히 비판하며, 상영회가 강행되면 테러공격을 자행하겠다고 밝힌 상황이었다. 양측의 폭력충돌이 우려되고 테러위협이 제기되던 상황에서 메르켈 정부는 안전을 구실로 모하메드 풍자 비디오 상영회를 불허하여 상황을 종료시킨다. 그러자 중도좌파진영인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은 강력히 반발하며, 정부의 상영 불허조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라고 비판했다.

이 상황은 오늘날 표현의 자유가 직면한 역설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과거 표현의 자유는 언제나 온갖 형태의 권력에 의한 억압에 저항하던 피억압자들과 진보적, 계몽주의적 지식인들, 그리고 권력자들을 조롱하고 성적 금기에 도전했던 예술가들과 문학가들의 구호였다. 이제 제1세계와 중심부 국가들에서 정치적, 성적, 종교적 표현의 자유가 상당부분 허용되는 상황에서 간혹 등장하는 표현의 자유 논쟁은 더 이상 피억압자, 소수자, 약자의 권리에 관한 것이 아니다. 거꾸로 이제 논란은 이 소수자와 약자들에 대한 혐오선동을 일삼는 배타적 민족주의자들과 극우세력에 대한 태도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독일에서는 나치를 찬양하는 것이 불법이다. 그러나 일부 네오나치들은 여전히 그들의 표현의 자유를 앞세우며, 홀로코스트가 진실이 아니라고 주장할 권리, 그리고 유태인과 외국인들을 비난할 그들의 권리를 인정하라고 요구한다. 원칙적으로 모든 표현의 자유는 보장받아야 한다. 그러나 무슬림들에 대한 노골적인 증오와 혐오를 드러내는 모하메드 풍자 비디오를 공공장소에서 상영하며 특정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모독할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는가? (이를 한국의 경우에 대입해본다면, 일베와 같은 극우 인터넷 사이트 이용자들이 특정 지역인들과 여성, 장애인들 등을 모욕할 표현의 자유를 그대로 존중해주어야 하는가?) 질문을 이렇게 던진다면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유럽에서 계몽주의자들과 공화주의자들, 그리고 사회주의자들은 공통적으로 세속주의의 가치를 들고 구체제의 억압적 사회질서와 관습들을 옹호하던 종교권력에 대항해 싸웠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당시 자코뱅과 공화주의자들은 부르봉 왕가와 귀족들뿐 아니라 특권을 누리던 성직자와 교회와도 싸워야 했다. 오늘날에도 유럽의 공화주의적, 사회주의적 좌파 진영은 동성결혼, 안락사, 낙태 등의 이슈로 언제나 보수적인 교회에 대립해 왔다. 표현의 자유는 언제나 교권주의에 대항하는 세속주의자들의 무기였다. 그렇게 해서 “계몽(세속주의적 비판정신과 표현의 자유)”이 “신화(비합리적이고 억압적인 교권주의적 종교권력)”에 대항하여 오늘날 자유롭고 개방적인 유럽을 만들어냈다고 많은 세속주의자들은 생각하고 있으며, 68혁명 이후 등장한 <샤를리 에브도> 같은 세속주의적 좌파 언론 역시, 신성시되는 모든 가치들을 가차없이 조롱하는 것이 1968년의 급진적 문화대혁명을 완수하는 길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놀라운 속도로 진행된 세계화 속에 이제 유럽은 자신들이 겪은 이 수백 년간의 문화적 충돌들, 그리고 그 타협물인 세속적인 관용의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에 관한 경험을 갖추지 못한 수많은 제3세계 출신 이주민들과 공존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 특히 프랑스는 인구의 10% 가까이가 무슬림인 것으로 추정되며, 독일의 경우도 터키인 이주자들이 이미 하나의 주요 사회세력으로 인정될 만큼 커다란 비중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 전부는 아니더라도, 상당수의 무슬림들에게 여전히 세속적인 표현의 자유, 그리고 모독의 권리, 불경하고 불온한 것에 대한 사회적 관용은 그들이 경험, 학습하지 못한 낯선 문명이다.

유럽에 몰려오는 아랍, 터키, 아프리카계 무슬림들은 대부분 유럽 문화 속에 동화되지 못하고, 그들 스스로의 공동체들을 형성하며 제1세계 내 타자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신앙은 그들의 공동체적 동질감을 높여주는 수단이었고, 백인 현지인들에게 시달리는 차별과 소외의 감정을 보상해주는, (맑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억압받는 피조물의 한숨”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이 믿는 신앙이 유럽 현지인들에 의해 조롱을 받는다고 생각해보자. 그들이 느낄 박탈감은 어떤 것이겠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표현의 자유는 더 이상 “신화”에 맞선 “계몽”으로 군림하기보다는, 낯선 “타자”의 등장 앞에서 깊은 자기성찰에 직면해야 했던 것이 아닐까? 종교권력에 대한 가차없는 비판이라는 세속주의자들의 구호가 만약 타자, 그것도 소외받는 소수자들의 종교에 대한 조롱으로 귀결된다면, 그것은 유럽의 세속주의가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들(다양성, 개방성, 인권)에 스스로 반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현재 <샤를리 에브도>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많은 사람들이 외치는 구호 “나는 샤를리다(Je suis Charlie)”에 내가 동의하지 않는 이유다. 물론 나는 <샤를리 에브도>의 표현의 자유를 지지한다. 그리고 <샤를로 에브도>에 대한 야만적인 테러행위에 단 한 점이라도 정당화될 수 있는 근거가 있다고 말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것이 그들의 만평에 내재된 타종교에 대한 적대감의 표출, 그리고 노골적으로 드러난 인종주의가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니다.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Je ne suis pas Charlie). 그러나 그들의 죽음에 항거한다.” 이것이 이번 상황에서 내가 취하고자 하는 입장이다. 물론 내가 샤를리가 아닌 이유는 극우파 국민전선(FN)의 창설자 장 마리 르펜이 말하듯이 이 잡지가 아나키스트-트로츠키스트 성향의 좌파여서가 아니라(르펜의 호들갑과 달리, <샤를리 에브도>는 90년대 이후 정치적으로는 온건해졌으며, 상업주의화되어 정치적 메시지 전달의 선명성보다는 상업적 스캔들을 더 즐긴다는 비판을 이전부터 받아왔다), 소수자들이 믿는 타종교에 대한 조롱이 톨레랑스에 대한 위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톨레랑스야말로 세속주의자들이 보수적인 교권주의자들에 맞서 싸우면서 쟁취하려 해왔던 것이 아니었는가?

현재 유럽 각국의 극우세력들은 앞을 다투어 이번 테러를 비난하면서 “이번 일은 예상된 귀결이고, 바로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내일 당장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라며 이슬람과 이주민들에 대한 인종주의적 적대감을 선동하고 있다. 독일에서 매주 월요일 드레스덴에서 벌어지는 페기다(PEGIDA, ‘서양의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의 약자)의 반이슬람, 반외국인 시위대 규모는 3만에 육박하고 있으며 드레스덴을 넘어 전 독일로 확산되는 추세다. 마찬가지로 외국인들에게 적대적인 독일 국수주의 극우정당 AfD(독일을 위한 대안)의 지지율은 이미 테러사건 이전에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극우세력들의 인종주의적 증오선동과 일상에서 느끼는 억압과 차별이야말로 무슬림 청년들이 더욱 더 유럽의 세속주의적 문화가 아니라 이슬람 근본주의적인 주장들에 동조하게 되는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다. 프랑스에선 3천 명 이상이, 독일에서만 600명의 이주민 자녀들이 이슬람국가(IS)의 지하드에 동조하고자 시리아로 떠났고, 이들 중 상당수는 유럽으로 돌아왔다. 독일에서 떠난 사람들 중 180명이 독일로 돌아온 것으로 추산된다. 돌아온 사람들이 어떤 종교적 성향을 지니고 있는지, 그들이 여전히 이슬람국가 측의 지령에 따르고 있는지 등은 미지수다. 독일인들은 겁에 질려 있으며, 이 기회를 틈타 극우세력이 지지를 끌어모으고 있다. 정부는 인터넷 감시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끔찍한 악순환이다.

만약 유럽사회가 이슬람 인구를 자신들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공존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이슬람 근본주의의 확장을 경계하고 테러에 단호하게 반대하면서, 동시에 수많은 무슬림들의 신앙이 왜 극단적인 성향으로 전도되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에서는 2004년부터 학교에서 무슬림 여학생들의 히잡(머리에 두르는 수건) 착용이 금지되었다. 2011년부터는 길거리에서 부르카(온 몸을 가리는 두건)를 착용하고 얼굴을 가리는 행위가 금지되었다. 국가가 개인의 옷차림마저 규제하는 것은 극단적인 사생활 침해이자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규제는 신앙의 자유에 대한 침해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프랑스의 세속주의 세력, 즉 공화주의적, 사회주의적 좌파는 항상 이 문제에 침묵하거나 아니면 그들의 세속주의 원칙에 따라 이 조치들에 찬성해왔다. 그러나 진정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사람이라면 타종교가 신성시하는 선지자를 알몸으로 그리고 모독할 권리 그 이상으로, 소수자들이 자신의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권리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믿음에 대한 비판의 권리만큼이나 믿을 수 있는 권리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

우리는 한 시사잡지의 만평을 보고 느낀 격분을 야만적인 학살이라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했던 사람들에게 분노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러한 행동을 사주한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들에게도 분노한다. 그러나 유럽 사회는 수많은 이슬람권 이주민들과 그들의 자녀들이 근본주의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모든 형태의 인종주의적 차별 선동을 중단해야 한다. 그것만이 이 사회를 살아가는 다양한 집단의 사람들의 공존을 가능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지켜져야 한다. 그것이 사회의 다양성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 표현의 자유는 다시금 혐오와 차별선동에 대해서는 그 스스로의 예외를 허용해야 한다. 이것만이 표현의 자유가 애초에 지키고자 했던 사회의 다양성과 관용적 질서를 가능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물론 이 예외는 결코 국가권력에 의한 강제에 의한 것이어서는 안 되며, 시민사회의 힘을 통해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 시민사회의 힘을 만들어내는 것은 다시금 소수자와 차별받는 사람들에 대한 보편적 연대의식이다. 이 연대의식의 성장은 억압받는 타자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나는 샤를리다”라는 구호는 <샤를리 에브도>가 표현해온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차별적이고 인종주의적 시선에 비추어볼 때 적합한 구호가 아니다. 이것이 우리가 <샤를리 에브도>의 희생자들을 슬픔과 분노 속에 추모하면서도, “나는 샤를리다”라는 구호에 만족할 수 없는 이유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이유로 이를 대신해 “나는 아흐메드다(Je suis Ahmed)”라는 구호를 외친다. 아흐메드는 사건 당시 숨진 아랍계 경찰관의 이름이다. 그 역시 선지자 모하메드와 무슬림을 조롱하는 <샤를리 에브도>의 논평에 수치심을 느꼈을 무슬림이었다. 그러나 그는 <샤를리 에브도>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 죽었고, 따라서의 그를 기리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폭력적 침탈에 항의하면서, 소수자 무슬림의 권리 역시 방어하는 의미를 갖는다.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 폭력에 항의하며, 동시에 타자화된 소수자들에 대한 연대의식을 표현하는 것.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되는 매우 어려운 과제다.

 

 

<철학, 죽음을 말하다>[철학자의 서재]

<철학, 죽음을 말하다>[철학자의 서재]

 

 

박종성(호원대학교 외래교수)

 

[철학자의서재]가 “이시대와 철학”에서 새롭게 연재됩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제때에 죽도록 하라!

 

 

죽음이라는 삶의 그림자

낙엽이 떨어지고 눈이 내리는 계절이다. 우리는 그 앙상한 나무를 보며, 떨어진 낙엽을 보며 지나간 시간을 다시금 느끼며 자신의 삶으로 시선을 옮긴다. 생명을 다한 것은 죽음이다. 생명을 다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죽음일 것이다. 죽음에 대한 시선은 다시금 나의 삶에 대한 성찰로 전환된다. 그런 계절이다. 상황이 인간의 의식을 규정하는 것일까? 물론 가을이 되고, 겨울이 와야 죽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삶과 함께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 속에서는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인식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죽음은 인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올해 우리는 너무나 많은 죽음을 경험하게 되었다. 사회적으로는 너무나 가슴이 저미는 세월호 참사,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 개인적으로는 가까운 이들의 죽음일 것이다. 죽음은 삶의 그림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피할 수도 없는, 모두가 직면하고야 마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다큐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가 역대 독립영화 최고 관객수를 넘어서 300만을 넘었다. EBS <다큐 프라임> ‘데스’에서도 죽음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죽음이란 어떻게 다가오는 것일까? 죽음이란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너무나 많은 참사와 사고가 많았던 한 해이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을지도 모른다.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다시금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삶의 태도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철학, 죽음을 말하다>(산해, 2012)는 11명의 학자들이 11명의 철학자들이 말하는 죽음에 대한 글로 구성되어 있다. 이 지면에서는 11명의 철학자들을 모두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그 중 필자의 가슴에 남은 철학자들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머지 글들은 독자가 음미하는 것이 좋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음미한 맛은 모두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철학 죽음을 말하다

 

“검토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필자가 이 책을 통해 소화시킨 철학자들의 죽음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소크라테스는 현세적 삶을 중시하여 죽음을 무시하거나 내세적인 것에 충실하여 현세적 삶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에게 철학은 무지를 자각하는 것처럼 죽음에 대한 무지를 자각하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그는 “검토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잠자고 있는 자신의 영혼을 일깨우는 것이 철학인 것이다. 무지의 자각은 논박(elenchos)을 통해 궁극적으로 상대방을 당혹스러운 상태(aporia)에 처하게 하여 무지를 자각하는 과정을 말한다. 결과적으로 그에게 죽음은 죽을 운명의 인간이 죽음을 대비해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이다. ‘죽음의 수련’은 결과적으로 삶의 태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시작은 죽음을 사유하는 것이다. 죽음의 사유는 플라톤에게서도 영혼의 돌봄으로 이어진다. 플라톤에게 영혼은 죽지 않은 것이며 생명의 원리인 반면, 육체는 물질적이고 죽는 것이다. 그리고 영혼의 본래성은 지성적인 능력이고 육체의 본래성은 감각적인 앎이다. 그런데 영혼의 본래성을 방해하는 것은 성적인 즐거움, 육체적인 즐거움, 소유욕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가 처한 삶의 환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감각적이고 소유욕을 증대시키며 체제를 움직이고 있는 현실이 우리의 삶의 환경이다. 자본주의 체제라는 것은 이렇듯 욕망의 체제로 굴러가는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며 자본주의 체제를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쇼펜하우어의 죽음에 대한 사유에서도 읽어 낼 수 있었다. 그에게? 인간 행위의 동인은 이기주의(Egoismus), 악의( Bosheit), 그리고 동정( Mitleid)이다. 그런데 그가 보기에 인간은 맹목적인 삶의 의지(Wille)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의지, 욕망 때문에 번뇌, 고통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삶의 의지를 물질적 부, 돈에 두고 있다면 그것은 맹목적 의지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맹목적 의지를 부정하는 것은 또 다른 삶의 의지의 긍정인 것이다. 나아가 이 맹목적 삶에의 의지의 부정은 인간애(caritas)이다. 인간애는 ‘그 누구에게도 해를 입히지 말고 오히려 네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사람을 도우라’를 의미한다. 결국 그가 추구하는 인간은 동정(Mitleid)을 가진 자이다. 동정은 타자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그에 참여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삶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현실이다.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는 끊임없는 욕망을 부추기고 무한 경쟁으로 삶을 옥죄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는 인간애를 실현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쇼펜하우어의 죽음에 대한 사유는 또 다시 현실의 변혁과 이어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맹목적 의지의 부정은 삶의 구원(Erl?sung)이기 때문이다. 또한 맹목적 의지의 소멸은 일상세계의 부정이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실존의 변화를 실현하여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해탈(Erl?sung)이 가능해 지기 때문이다. “검토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본주의는 검토되어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제때에 죽도록 하라, 타자의 얼굴과 만나라

니체(Nietzsche)는 인간을 신체(Leib)적 존재로 이해한다. 이것은 이원적 해석을 벗어나기 위한 전략적 개념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이성과 육체, 그리고 힘의 의지(Der Wille zur Macht)가 공존하는 총체적 존재라는 것이다. 그에게 삶의 목적은 초인(Der ?bermensch)인데, 초인은 고정될 수 없는 인간, 현 상태의 유지(erhalten)가 아니라 지속적인 상승(steigen)을 추구하는 인간이다. 이는 힘의 의지(Der Wille zur Macht)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초인은 자신을 넘어서고 극복하는(?ber-sich-hinaus-gehen, sich-?berwinden) 자기 자신을 새롭게 창조하는(sich-schaffen) 삶을 영위하는 인간이다. 이는 인간 개개인이 구현해야 할 실존적 이상이다. 니체는 “제때에 죽도록 하라”,“그러나 결코 제때에 살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제때에 죽을 수 있겠는가?”라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말한다. 제때 삶을 사는 것은 삶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거나 삶의 열등함으로 인해 죽음을 의욕 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야 할 때 살려고 하지 않거나 그냥 죽지 않는 것이며, 삶에 가치를 부여하며 긍정하며 사는 것, 이것이 니체가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니다. 이것이 제때에 죽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의 세월호 참사는 제때 죽지 못하게 만든 사회적인 죽음이다. 제때에 죽지 못한 삶, 다시 말해 제때에 살지 못한 사회적 죽음인 것이다. 이 모든 죽음에 대해서 우리는 타자의 죽음을 생각할 수 있다. 타자의 죽음은 레비나스(Levinas) 철학에서 중요한 내용이다.

레비나스는 죽음은 인식론에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윤리학적 차원에서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존재론은 존재자의 존재를 전제로 하여 존재 근거와 존재 방식을 탐구하는 것인데, 죽음은 존재에 속하는 것이 아니고 존재 영역을 넘어서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타자가 철학의 제1원리이다. 타자와 죽음의 철학은 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문제의식이며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사유의 한계에 대한 비판이다. 언제나 타자의 죽음은 나의 죽음을 앞선다. 그가 보기에 존재론적 철학은 ‘타자’를 ‘자아’의 영역으로 환원하여 자아의 지배하에 두는 ‘자아’ 우위의 철학이다. 하이데거가 주장하는 것처럼 죽음 현재에 속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속하며, 따라서 선취를 통해 앞질러가서 사로잡을 수 있는 그런 ‘현재의 미래’가 아니다. 미래의 죽음을 현존재 안으로 들어온 죽음으로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타자의 타자성에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은 윤리적 접근이며 이는 타자와의 만남, 타자의 얼굴과의 만남이다. 기아 빈곤, 전쟁, 테러, 어린이 여성, 노약자들은 타자의 얼굴이며, 이들의 얼굴은 “제발 저를 죽게 내버려두지 마세요!” “제발 저를 죽이지 마세요! 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세월호 참사라는 사회적인 죽음, 송파구 세 모녀의 죽음을 생각할 수 있다. 타자의 얼굴에 우리가 응답하는 것이 남겨진 자들의 과제이자 책무일 것이다. 국가는 이 타자들의 얼굴에 얼마만큼 응답하고 있는가! 지금의 현실에서 그 답은 부정적이다. OECD 34개 국가 중 죽음의 질 지수가 최하위인 현실에서 죽음의 사유는 더 긴요하게 요구된다. 지난 9월에 이미 3명의 노동자가 월성 핵발전소에서 목숨을 잃었고 어제 27일에 노동자 3명이 질식사하였다. 비단 이것만이 아니다. 안전하지 않은 국가에서 제때 죽을 수 없는 것이고 이것은 제때 살지 못하는 것이다.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삶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삶의 변혁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생명보다 이윤을 더 큰 가치로 추구하는 사회에서는 죽음으로 질주하는 타자의 얼굴들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현재를 즐겨라)이다. 즉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 것은 ‘현재를 즐기고 이용’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를 즐기고 이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와 국가는 타자의 얼굴에 보다 적극적으로 응답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사회와 국가는 변혁되어야 한다. 제때에 죽도록 하라! 그러기 위해서는 타자의 얼굴과 만나야 한다!

 

 

 

서초 세모녀 살해… 그래서 난 <국제시장>이 무섭다[가동(可洞)선생의 삶의 철학]

가족주의의 유령

이 종철(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

 

?<오마이뉴스> 1월 8일 자에 중복 게재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70412

▲  지난 6일 오후 경북 경북 문경 농암면에서 경찰에 붙잡힌 '서초 세모녀 살해 사건' 용의자 A씨가 서울 서초경찰서로 이송되고 있다. A씨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 자택에서 아내와 두 딸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 6일 오후 경북 경북 문경 농암면에서 경찰에 붙잡힌 ‘서초 세모녀 살해 사건’ 용의자 A씨가 서울 서초경찰서로 이송되고 있다. A씨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 자택에서 아내와 두 딸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실직한 가장이 부인과 두 딸을 죽이고 도주 자살을 시도하려다가 붙잡혔다. 불황과 실직으로 인한 경제적 압박 끝에 인간으로서 차마 할 수 없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셈이다. 가족 간의 불화와 증오 때문이 아니라 잘못된 가족애와 과도한 연민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더 가슴이 아프다. 전혀 낯설지만은 않은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일 수도 있다. 경제적 곤궁이나 우울증 등으로 인해 삶을 포기하려는 어른들이 종종 자식들과 동반 자살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살인범이 된 대한민국의 가장, 가족 때문이다

이런 사건들을 보면서 그런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고뇌와 고통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생각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극진한 가족주의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런 가족주의는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들이 공유하는 정신이니까 우리 모두 극단적인 선택의 잠재적 공범일 수도 있다. 가족주의로 인해 가족은 가장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소유물로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땅의 대부분의 엄마들은 자식들의 모든 것, 그들의 미래의 삶마저도 걱정하고 책임지려고 한다. 하지만 자식이 부모의 소유물인가?

 

한 때 택시의 서비스 개선책으로 나온 구호가 있었다. 가족처럼 모시겠다는 취지의 슬로건으로 기억된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제발 가족처럼 취급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차라리 가족이 아니라 생면부지의 고객에 대한 서비스 정신으로서 모시는 게 훨씬 잘 모실 수 있지 않겠는가? 택시 기사들이 승객들을 멋대로 무시하고 거칠게 대한 것이 아마도 가족처럼 생각해서 그런가보다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의 가부장적 가족주의 하에서 가장은 가족 구성원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군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장이란 명분하에 자신이 성공했다면 그 성공한 삶을 자식이 이어받아야 한다고 믿고, 자신이 실패했다면 그 실패한 삶을 자식이 대신해서 보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의 욕망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런 가족주의의 망령이 아닌가?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부모가 자식의 모든 것, 그의 미래와 생명을 책임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져서도 안 된다. 부모가 현재 고통을 겪는다고 해서 자식이 똑 같이 반복한다고 예단하는 것은 지나치다. 설령 그런 고통을 겪게 될 지라도 그 모든 것을 부모가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의 역할이 있고 자식들의 삶이 있는 것이다. 다들 가족을 이루는 구성원이지만 각자 독립된 인격을 가진 주체가 아닌가? 이제는 그런 독립적 주체로 받아들이고 살아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가족주의는 한 세대 전이나 21세기에 들어선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국제시장>이 거부감 드는 이유

▲  영화 의 한 장면.   ⓒ CJ E&M

▲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 CJ E&M

한국의 신산(辛酸)한 근대사를 그린 영화 <국제시장>이 히트를 치면서 그 시대를 거쳐왔던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자아내고 있다. 우리 세대는 그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너무나 공감을 하지만, 나는 이제 그런 감정과 과도한 가족 유대가 부담스럽고 거부감이 든다. 이런 가부장적 가족주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몇 장면이 있다. 흥남부두에서 등에 업은 누이동생을 잃어버리자 구하러 갔던 아버지와 헤어지면서 아버지가 당부하는 다짐이 있다.

“덕수야! 지금부터는 네가 가장(家長)이다. 가장은 어떤 일이 있어도 가족이 최우선이다.”

주인공 덕수는 가장으로서의 이런 책임을 지기 위해 자신의 개인적 삶을 포기할 만큼 평생을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다. 동생이 서울 대학교에 합격을 하자 가족의 경제를 책임지기 위해 그는 지체 없이 서독 광부를 지원한다. 나중에 돌아와서 막내 누이의 결혼 비용과 고모의 가게를 지키기 위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다시 베트남전쟁의 한 복판으로 뛰어 들어간다. 부인이 이제 그만 짐을 내려 놓고 당신 자신의 삶을 살라고 눈물로 호소할 때도 덕수는 그게 가장의 책임이고 역할이라고 말한다.

늘그막에 가족들이 모두 모여 잔치를 벌일 때 덕수는 슬그머니 빠져나와 아버지 유품을 모신 방으로 들어간다. 그 방에서 덕수는 힘들었던 지난 삶을 회상하면서 아버지의 인정을 구한다. “아버지! 저 이만하면 약속 잘 지켰지예? 저 진짜 힘들었거든요!”개인의 삶보다는 가족을 위한 삶이 덕수의 정체성을 이루었던 탓에 그 가족의 첫 번째 가장인 아버지의 인정이야말로 고통과 희생에 대한 보상으로 믿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면 그만큼 가족주의의 정서적 유대가 우리 삶 속에 크게 자리 잡고 있음을 반증한다. 가족주의는 식민지를 거치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상태에서 가족 구성원들의 생존을 보호하고 국가의 산업화를 이루는데 큰 힘이 되기도 했었다.

개인이 존재하지 않는 가족주의, 그만하자

하지만 가부장적인 가족주의는 권위주의적인 사회 구조와 남성 중심적 기업 문화, 연고주의적인 사회적 관계, 족벌경영과 부의 세습을 낳는 주된 원인이 되기도 했다. 가족주의의 긍정이나 부정 여부와 관계없이 가부장적 형태의 가족주의는 이제는 벗어 던져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무엇보다 가족주의 안에서는 개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의 욕망과 인격의 자립성, 개인의 주체성 등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가족주의를 거부한다고 해서 가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이 중요하더라도 일차적으로 가족의 구성은 인격적 개인, 주체적 개인이어야 하고, 그런 개인들의 욕망과 인격이 인정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부장적 가족주의 하에서는 그런 개인들이 설 땅이 없다. 이 말은 세 모녀를 살해한 21세기의 가장에게나 힘들게 근대사를 살아왔던 <국제시장>의 덕수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그릇된 가족애가 정당화되고, 가족이란 이름하에 개인의 무한 희생이 당연시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가 성장하면 잘 어울리던 옷도 더는 몸에 맞지 않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사회가 변화하면 그 사회를 규정하는 원리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봉건적이고 가부장적인 가족주의가 힘을 발휘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0과 1 [철학을다시 쓴다]-30-1

0과 1?[철학을다시 쓴다]-30-1

 

 

윤구병(도서출판 보리 대표)

 

*이 글은 보리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임을 알립니다.

오늘 내가 할 이야기는 apeiron이 중심입니다.

이 강의는 이 땅에서 여기 앉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몇 안 되는 사람만 귀를 기울일, 그 가운데서도 귀가 둘이니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사는 데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추상의 단계가 너무나 높아서 공기가 희박해 호흡곤란을 느낄지도 모를 그런 이야깁니다.

이 세상에는 끊어진 것, 또는 그렇다고 여기는 것, 이어진 것, 또는 그렇다고 여기는 것이 있습니다. 끊어진 것, 또는 끊어내는 것, 이것과 저것을 갈라놓는 것, 겉이, 갓이, 끝이 있는 것을 ‘peras’라고 부릅니다. 이 ‘페라스’가 없으면 이것저것을 가를 수 없고, 죄다 이어져 있으면, 아무것도 ‘이것’, 또는 ‘저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냥 혼돈이죠. 가르지 않으면 살길이 없는 게 목숨 지닌 것에 주어진 숙명이라고 해야겠지요. 갈라야죠. 금 긋고 나누어야죠. 바이러스, 박테리아 수준에서도 살아남으려면 가려야죠. 나누어야죠.

살길과 죽을 길, 갈림길, 그게 모두 사람 비슷한 것들이 맞닥뜨린 ‘한계’죠. 너도나도 ‘한계’는 아는 척해요. 잣대를 대고, 금을 그으면 되니까요. 그런데 ‘아페이론’은, 그어도 그어도 속에 남는 이건 무어죠?

이게 오늘 내 강의 주제예요.

졸라 힘들고, 뭐가 뭔지 모를 말들이 횡설수설 겹칠 텐데, 그래도 듣고 싶나요?

먼저 ‘페라스’ 문제를 인간의 수준에서 어떻게 해결했는지 잠깐 살펴봅시다. 하나로 수렴하죠. 1의 문제, ‘-者’라고도 하고 ‘하나님’이라고도 하는 이 문제를 아주 깔끔하게 처리한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라고 하지요. 기독교의 ‘하나님’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이에요. 플라톤은 정지와 운동의 원인을 나누었어요.(Parmenides의 수준에서는 엉켜 있었어요.) 플라톤은 idea의 세계와 Demiurgos의 역할을 나누어 보아요. Demiurgos는 우주를 창조하지만, idea의 세계는 우주 밖에 독립된 실체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 안에 idea들을 끌어들입니다. ‘순수형상’이라는 Eidos는 1입니다. 1은 스스로는 정지해 있으면서 운동의 원인으로 작용하지요.(kinoun akineton).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신입니다. ‘하나’님입니다. 교부철학은 Plotinus를 거쳐서 변형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신학의 근거로 삼아요. 1에서 0에 이르는 과정은 두 가닥의 끈으로 꼬여 있어요. 요즘 사람들은 이것을 ‘2중나사’라고 하나요? 아리스토텔레스는 끌어올리는 과정만 보아요. 0은 ‘순수질료’라고 규정하지요. 0은 1에 끌려 상향운동을 해요. 물론 0도 1과 마찬가지로 ‘부동의 동자’(kinoun akineton)이에요. 나중에 헤겔이 reine Sein과 reine Nichts는 같은 거다. 그걸로 운동 설명 못 한다. 사유의 틀에서 벗어난다. Sein을 ‘있음’으로, Nichts를 ‘없음’으로 보지 말고, Sein을 ‘임’이고 Nichts를 ‘아님’의 측면에서 보자. 그러면 ‘긍정’, ‘부정’, ‘부정의 부정’이라는 정반합의 변증법적 운동을 설명해 낼 수 있다. 이렇게 주장해요. 이게 헤겔 <대논리학>의 핵심이에요. 현상계의 운동을 사유의 전개과정에 맞추려고 해요. 개념(Begiff)의 자기 전개라고 하면서요. Marx는 이거 아니라고, 물질이 의식을 결정한다고 헤겔의 철학을 뒤집지만, ‘형이상학’ 때려치우라고 하지만 헤겔 아류이고, 속류 헤겔론자로 볼 수 있어요. 0과 1의 문제에 관심 없어요. 막스에게는 ‘형이상학’보다 훨씬 더 중요한 현실 문제가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서양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것이지만, 막스도 ‘인간’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해요. 플로티누스가 중요한 건 ‘질료’에서 ‘형상’으로, 그리하여 마침내는 ‘순수질료’에서 ‘순수형상’으로 향하는 ‘상승운동’의 가닥만 본 아리스토텔레스의 그 위로 치켜 뜬 눈길을 아래로 돌리게 한 거예요.

‘유출설’이라고 하나요? <Eneades>에서 플로티누스는 “자, 봐라. 저기 눈부신 햇살로 빛나는 1이라는 해가 있다. 광명이 있다. 그런데 그 햇살을 아래로 아래로 끌어내리는 0이라는 어둠이 저 밑에 도사리고 있다. 1이 위로 위로 끌어올리면서 ‘페라스’를 증가시킨다면 0은 아래로 아래로 끌어내리면서 그 ‘페라스’들을 뭉개서 ‘아페이론’을 증가시킨다. 1에서 nous로, nous에서 psyche로, psyche에서 또 무엇으로 내려가는 과정은 어둠에 이르는 길이다. 그야말로 ‘태양은 빛을 잃어’ 빛이 없는, 나중에 1의, ‘하나님’의 권능이 깡그리 사라져 버리고 마는 ‘흑암’이 저 맨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다.” 이렇게 말해요. 이렇게 되면 운동은 ‘이중나선’, ‘새끼꼬기’, (그걸 요즘 물리학자들은 ‘초끈’(string)이라고 하나요?) ‘상승운동’과 ‘하강운동’이라는 두 가닥 끈이 상호작용해서 각 단위, 1에서 0에 이르는, 또 0에서 1에 이르는 각각의 단계에서 1과 0의 작용이 어떻게 ‘평형’을 이루는지, 그리고, 그 ‘평형’ 상태를 ‘공간’화하는지, ‘정지’로 보는지, ‘운동의 이중성’이라고 볼 수 있는 ‘국면’들이 드러나요. Bergson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공간이론을 비판하는 데는 까닭이 있어요. 흐르는 물을 물방울로 해체시킨다고 해서 어느 순간 그 물이 멈추는 것으로 착각하지 마라. ‘지속’(dure′e)과 ‘계기’(succession)는 다르다. ‘계기’는 시계 문자판에 고정시킨 시간이고, 공간화된 시간이고, 사람의 의식이 인위적으로 금을 그어놓은 ‘페라스’일 뿐이다. ‘지속’은 순간순간 ‘아페 이론’을 그 안에 안고 있는 ‘페라스’를 뛰어넘는 ‘도약’이다. Zenon이 아무리 ‘날으는 화살은 날지 않는다.’, ‘한 시간은 반시간이고, 두 시간’이다, 바보 같은 짓 걷어치우고 Parmenides로 돌아가자고 해도, 그렇게 해서는 ‘현상계’를 구제할 수 없다고 해서 플라톤이 나섰는데, 플라톤이, idea와 Demiurgos의 역할을 갈라놓았는데, 그 가운데 아리스토텔레스는 Demiurgos를 1로 놓고, 모든 운동을 그 정지 모델로 공간화했다, 그거 문제 있다. 나 베르그송은 그거 뛰어넘겠다. ‘생명’이라는 게 운동인데, 그 운동 멈추면 죽는데, 우주 전체가 살아남으려면 끊임없이 운동해야 하는데, 살아남으려는 이 몸부림을 ‘뛰어넘기’로 보자. 그게 ‘삶의 도약’(e′lan vital)이고, 그게 궁극으로는 ‘사랑의 도약’(e′lan d′amour)다. 뭐 이딴 이야기해요. ‘엘랑 비딸’까지는 그럴싸해요. 그러나 ‘엘랑 다무르’라니. 이거 다 ‘생명’이신 ‘하나님’, 1로 가자는 거예요. 물론 베르그송은 2원론자이기 때문에 ‘질료’의 측면, 아리스토텔레스의 휠레(hyle)를 무시하지 않아요. 늘 두 개를 나란히 놓아요. <물질과 기억>, <생각과 움직임>, 이처럼 1과 0을 나란히 놓아요. 0의 해체 기능 잘 알고 있어요. 아마 베르그송 철학의 밑바닥에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상상력이 깔려 있을지 몰라요. 근현대 물리학자들의 의식의 밑바닥에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와, 루크레티우스의 <자연의 본성에 대해서>에서 종합되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와 공간, 단일한 우주의 이론이 눌러 붙어 있는 것처럼이요.

그러나 베르그송은 ‘생기론자’이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처럼 희망과 낙관을 버리지 않아요.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만큼 낙관적이지는 않기 때문에 두려움이 밑바닥에 깔려 있기는 해요. 그러나 공통점이 있어요. ‘페라스’와 ‘아페이론’ 이론을 다루는 데에서 1과 0의 문제를 파고드는 데에서 아리스토텔레스나 베르그송이나 모두 ‘인간의 의식’을 벗어나지 못해요.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생각이 이 사람들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요.

그래서, 박홍규 선생님한테서 들은 말인데, 한때 교황청에서 베르그송 철학으로 신학이론을 바꿔치기하자, 아리스토텔레스를 바탕으로 한 신학이론은 근대 물리학의 성과를 받아들일 수도 없고, 진화론을 기독교 신학체계 속으로 끌어들일 수도 없다고 고심했던 적도 있다고 해요. 그래서 테이야르 샤르뎅 같은 신부도 <인간현상>이라는 책에서 베르그송 이론으로 신학을 재구성하려고 들지 않았나요?

참, 군소리가 길어졌네요. 그런데 이거 다 박홍규 선생님의 ‘형이상학 강의’에서 나왔던 말들이에요. ‘아페이론’ 이론을 다루는 데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 하나는 ‘우연’과 ‘필연’, 거기에서 파생되는 ‘자유의지’ 문제예요. 현상계를 운동 중심으로 파악하려면, 그리고 그 운동의 원인이 우주 밖에, 정지된 그 무엇에 있지 않고, 우주 안에 있다고 하려면, ‘우연’의 문제 회피할 수 없어요. 루크레티우스가 궁여지책으로 무한공간과 무한수의 원자를 놓고 ‘수직하강운동’(이거 아리스토텔레스 식으로 뒤집으면 ‘수직상승운동’으로 보아도 돼요.)으로만은 해결할 수 없는 원자들의 결합을 설명하기 위해서 끌어들인 게 원자의 ‘경사운동’(klinamen)인데, 이거 ‘느닷없는 때’ ‘느닷없는 곳’에서 ‘우연히’ 일어난다고 하는 거예요.

정말 느닷없는 이야기예요. 이 ‘우연’과 ‘필연’의 문제는 베르그송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고 해요. ‘도약’, 이거 우연이에요. ‘자유의지’라는 말로 분칠되어 있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이유밖에 다른 근거가 없어요. 물론 베르그송도 ‘자유의지’의 측면에서 우연과 필연 논쟁에 끼어들기는 해요. 그런데 그게 큰 설득력이 없어요. 감성으로는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러나 ‘형이상학적’ 근거는 부실해요. 박홍규 선생님의 고민도 거기에서 출발했다고 봐요. 끙끙대고 있는데 자끄모노(Jaque Mono) 책이 박 선생님 눈에 띄어요. <우연과 필연>이라는 책이지요. 저는 안 읽었어요. 모노 이론 잘 몰라요. 그렇지만 그 책 안에서 박 선생님은 형이상학에서 골머리를 앓던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내셨을지 몰라요.

 

 

오 탄넨바움! [베를린에서 온 편지 10]

오 탄넨바움!

?한상원(한철연회원/베를린 통신원)

 

*베를린에서 유학 중인 한상원 회원이 인문학 동향이나 정치 소식을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12월 25일 새벽, 성탄절을 맞아 쓰는 편지.

독일에서 가장 널리 사랑받는 성탄절 노래는 독어로 탄넨바움이라고 불리는 전나무를 예찬한 곡 <오 탄넨바움(O Tannenbaum)>이다. 16세기부터 내려오던 전래동요로서, 1824년 라이프치히의 에른스트 안쉬츠(Ernst Ansch?tz)에 의해 크리스마스와 연관된 곡으로 가사가 수정되면서 대표적인 독일의 캐롤이 되었다. 전나무는 독일에서 흔하게 자라는 나무이면서 동시에 크리스마스 트리로 사용되는 나무이기 때문에 독일의 크리스마스와 겨울을 상징한다. 어느 곳에서 나무가 많은 독일에서는 한 겨울, 흰 눈에 뒤덮인 전나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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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곡은 영국으로 옮겨가 아일랜드 출신의 혁명가 Jim Connell에 의해 가사가 붙여져 1889년 <적기가(The Red Flag)>라는 민중가요로 재탄생했는데, 이 곡은 영국 노동당을 비롯한 노동운동진영뿐 아니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응원팬들에 의해 널리 불리며 여전히 전승되고 있다. 이 곡이 과거 북한에서 번안되어 <적기가>라는 군가로 사용되었는데, 우리에겐 영화 <실미도>에서 북파 암살요원들이 결의에 찬 채 이 곡을 부르는 장면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이 영화는 당시 심기가 불편했던 몇몇 우익들로부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국가보안법과 ‘종북’ 논란까지 불러일으킨 이 곡이 실은 독일에서 어린이들이 즐겨 부르는 평온한 느낌의 성탄 캐롤이라는 점은 우리가 사는 “실재의 사막”이 얼마나 아이러니한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총 3절로 이뤄진 노래 <오 탄넨바움>의 가사는 지역별로, 시대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가장 고전적인 버젼은 다음과 같다. 독어로 먼저 쓰고 한글로 번역해보자.

1.

O Tannenbaum, o Tannenbaum,

wie treu sind deine Bl?tter!

Du gr?nst nicht nur zur Sommerszeit,

nein, auch im Winter, wenn es schneit.

O Tannenbaum, o Tannenbaum,

wie treu sind deine Bl?tter!

오 전나무야, 오 전나무야

너의 잎은 얼마나 충직한가!

너는 여름에만 초록빛인 것이 아니다.

아니다. 겨울에도, 눈이 올 때도 초록빛인 것이다.

오 전나무야, 오 전나무야

너희 잎은 얼마나 충직한가!

2.

O Tannenbaum, o Tannenbaum,

du kannst mir sehr gefallen.

Wie oft hat nicht zur Weihnachtszeit

ein Baum von dir mich hoch erfreut!

O Tannenbaum, o Tannenbaum,

du kannst mir sehr gefallen!

오 전나무야, 오 전나무야

너는 내 마음에 쏙 드는구나.

몇 번이고 성탄 기간에는

너라는 한 그루 나무가 이토록 나를 즐겁게 하는구나!

오 전나무야, 오 전나무야

너는 내 마음에 쏙 드는구나.

3.

O Tannenbaum, o Tannenbaum,

dein Kleid will mich was lehren:

Die Hoffnung und Best?ndigkeit

gibt Trost und Kraft zu jeder Zeit.

O Tannenbaum, o Tannenbaum,

dein Kleid will mich was lehren.

오 전나무야, 오 전나무야,

너의 옷은 내게 무언가를 가르쳐 준단다.

희망과 강인함은

매 시간 위안과 힘을 주는구나.

오 전나무야, 오 전나무야,

너의 옷은 내게 무언가를 가르쳐 준단다.

노래 가사가 말해주는 것처럼, 전나무의 잎은 비단 여름에만 푸르게 만개하는 것이 아니다. 춥고 눈과 바람이 몰아치는 매서운 겨울에도 전나무의 잎은 초록빛과 그 풍성함을 유지하며 다가오는 따스한 봄을 기다린다. 그래서 전나무는 변하지 않고 늘 푸르른, 충직한, 믿음직스러운 나무이며, 또한 온갖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는 강인함을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전나무는 우리에게 깨달음을 준다. 전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처럼 우리도 이 힘겨운 시련을 버티고 이겨낼 때, 다시 도래할 따스한 봄날의 햇살을 마주할 수 있으리라는 진리가 바로 그것이다.

한 겨울의 살얼음처럼 차가운 추위 속에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칼처럼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은 살갗을 할퀴고 상처를 내며 지나간다. 한 겨울 한국은 민주주의의 죽음이라는 재앙을 선고받았다. 유권자에 의한 직접 투표로 5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한 당이,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고 정권과 권력자들에 의해 임명된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명령을 받았다. 북한과의 실질적 연관성이 증명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당의 강령이 북한의 주장과 유사하다는 것만으로 정당을 해산시킨 유례가 없는 판결이다. 선출된 국회의원들은 제명되었고, 일반 당원들에 대해서까지 공안수사의 보복이 몰아칠 예정이다.

이 판결이 매서울 칼바람인 이유는 해산판결을 받은 당의 구성원들뿐 아니라, 정권과 권력자들, 그리고 그들이 지배하는 거대한 사회적 억압체계에 대항하는 주장을 펴거나 행동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이 잠재적으로 ‘종북’이라는 낙인이 찍힐 위협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낙인찍기와 마녀사냥이 터져나올 것이다. 극단적인 불평등과 경제난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때마다 ‘종북’이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닐 것이다. 생존의 권리, 평등, 자주적 주권 등 실제로는 ‘부르주아적’ 근대 사회의 산물인 개념이 ‘종북’이라는 낙인과 함께 법의 외부로 추방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사회가 전근대화될 위기, 민주주의 이전의 단계로 퇴행할 위기에 처해 있다. 모든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주장들이 ‘자기검열’에 시달릴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면 ‘종북’으로 몰리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마법처럼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사로잡을 것이다.

10년 전, <오 탄넨바움>을 원곡으로 한 북한가요 <적기가>로 인해 영화 <실미도>가 국가보안법 논란에 휘말렸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와 같은 상황이 하나의 희극이며 구시대적 냉전적 사고의 유물이라고 웃어넘겼다. 그 때 사람들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한 우스꽝스러운 희극적 사건이 드러내는 비극성이 커지고 커져, 결국 한 사회 전체를 잠식하게 될 줄은.

 

실미도 항공사진

실미도 항공사진

 

거센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냉혹한 겨울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사회적 시련이다. 이 현실의 역경 속에서, 다시 전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을 새겨야 하는 것이 아닐까. 현실이 어렵다 하여 색을 변화시키지도 말 것이며, 고난과 역경이 닥치더라도 잎을 떨어뜨리지 말고 언제나 한결같이, 늘 그래왔던 것처럼 푸르름을 유지하라. 그러면 지금 너를 떨게 만드는 추위도, 너의 얼굴에 생채기를 내는 매서운 찬 바람도 그칠 것이다. 해가 나고, 따스한 봄이 올 것이다. 그러면 너의 푸르름도 더욱 빛을 발하리라. 전나무는 이렇게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성탄의 밤에, 충직하고 또 강인한 전나무를 생각한다.

 

 

통일과 도덕(1)[대안도덕교과서]-11

통일과 도덕(1)[대안도덕교과서]-11

 

 

이원혁(건국대학교)

 

*이 글은 삼인출판사에서 출판 될 대안도덕교과서(가제)의 일부를 게재한 것임을 알립니다.

 

1. 서로 너무나 다른 남과 북

 

통일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작은 상황극을 한번 살펴보는건 어떨까요? 한 책상을 쓰는 두 초등학생이 티격태격하면서 나누는 이야기를 보면서 생각해봅시다.

선생님 ? 지훈아 너랑 민서는 짝꿍인데 왜 그리 다투니?

지훈 – “제 짝꿍 민서는 저랑 너무 달라요. 도무지 한국인이라는 것 말고는 닮은 점이 없어요. 짝꿍끼리는 친하게 지내야한다고해서 이것저것 알려주고 친하게 지내려하지만 저 고집불통은 참견 말라며 오히려 역정을 내네요. 이 답답한 친구랑 한 책상에 묶여 있으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에요. 사실 이 친구의 성적은 좋은 편이 아니에요. 제가 이래봬도 공부를 쫌 하거든요. 그래서 제 공부 방법을 가르쳐주려하는데.. 세상에 그게 기분이 나쁘데요. 같은 책상을 쓰니 안 볼 수도 없고 그 친구랑 어떻게 지내야할까요?”

민서 – “지훈이는 이상한 친구에요. 말로는 친하게 지내자고하면서 항상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들거든요. 저는 저만의 공부방식이 있어요. 누가 뭐래도 이게 가장 저에게 맞는 것 같아요. 비록 지금은 성적이 좋지 않지만 곧 좋아지리라 믿어요. 저는 이 방식을 바꿀 마음이 없어요. 그런데 지훈이는 제 방식이 틀렸다고 비아냥거려요. 그리고 어색하기만한 자기 방식을 보여주며 우쭐되곤 해요. 그리고 제 짝꿍이지만 다른 친구들이랑 더 어울리곤하는데 가끔 제 험담을 하는 것 같아 속상해요. 그래서 한 소리를 했더니 적반하장으로 되레 제게 뭐라고 하네요.

선생님 ? “그런데 너희 둘은 저번에 반 아이들에게는 둘이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고 했다며? 둘이서 서로 조금 양보하면 안 될까? 둘이 쉽게 화해하기 힘든 이유가 있니?”

지훈 – “민서는 입이 너무 험해요. 조금만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먹을 불끈 쥐고 욕설을 해요. 이렇게 말을 너무 함부로 하니 다가가기가 어려워요. 사실은 저희가 예전에는 매우 친했어요. 그런데 크게 한번 다툰 뒤로 사이가 너무 멀어졌어요. 얼마나 심하게 다퉜냐하면 주먹다짐을 할 정도였어요. 그때 민서가 저를 먼저 때려서 크게 다퉜어요. 왜 싸웠냐고요? 민서가 저를 먼저 때렸다니깐요? 어떻게 짝꿍을 먼저 때릴 수가 있죠? 사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민서랑은 놀고 싶지 않아요.

민서 – “제가 먼저 때렸다구요? 그게 중요한가요? 그 싸움은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고요. 사정이 있으면 먼저 때릴 수도 있죠. 지훈이는 지금도 항상 그런 식이에요. 전후 사정보다 제 행동의 겉모습만 보고 뭐라고 해요. 그리고 제가 뭐만 하려고 하면 ‘공부도 못하면서 그런 것도 하려고해? 공부나 해’라고 핀잔을 줘요. 치.. 공부를 못하면 다른 건 하면 안 되나요?

선생님 – “지훈이는 민서의 행동을 존중해 주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민서는 지훈이의 조언이나 다른 친구들의 공부 방법을 참고해보는 건 어떨까?”

지훈 ? “민서가 공부를 너무 못하니깐 하는 소리에요. 물론 공부 말고 다른 것도 중요하죠. 그런데 학생에게 제일 중요한건 공부 아니겠어요? 아무리그래도 어느 정도는 해야지 않겠어요?

제 말대로 하면 좋을 것 같은데 민서는 절대 말을 안 들어요. 민서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요. 반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지도 않고,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지도 않아요. 이래서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겠어요. 매일 꽁하게 있기만 하다가 마음에 안 들면 화만 내니 도대체 쟤를 어떻게 감당해야할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

민서 ?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전 제방식이 옳다고 생각해요. 지훈이는 너무 자기마음대로에요. 자기랑 같은 방식이 아니라고 절 너무 이상한 아이취급해요. 사실 전 지훈이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해요. 이건 비밀인데 저번에 지훈이가 복도에서 주운 동전을 가지는 거 봤어요. 그런 아이의 방식을 제가 어떻게 믿겠어요? 전 사실 지훈이가 저를 자기랑 똑같은 사람으로 만들까봐 걱정이에요. 그래서 지훈이의 겉으로 보이는 호의를 믿지를 못하겠어요. 왜냐면 저는 저만의 방식을 잃고 싶지 않거든요.”

남북의 상황을 티격태격하는 두 아이의 상황으로 엮어서 만들어봤습니다.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위 대화에서 지훈이과 민서의 문제점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러한 생황에서 과연 통일은 가능할까요? 두 아이는 서로 화해하고 싶어 하는 것만큼 서로에게 상처를 받아있습니다. 그리고 사이좋게 지내고 싶어하는만큼 자신의 방법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히 차있습니다.

이 에피소드와 남북관계에는 비록 같을 순 없지만 비슷한 문제점이 있죠. 남과 북은 항상 통일과 화해를 이야기하지만 서로에 대한 불신과 상처가 이 화해를 가로막고 더 나아가 서로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남과 북은 어떻게 하면 서로의 상처를 딛고 서로를 웃으며 마주할 수 있을까요? 그러기위해서는 서로가 가진 상처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먼저 살펴봐야할 것입니다.

 

2. 분단의 상처와 그 발단

 

남과 북은 분단으로 인해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아마 ‘분단을 극복하자’, 또는 ‘통일을 하자’라고 주장하는 큰 이유는 이러한 상처들을 극복하자는 것일 겁니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인명, 재산적 피해, 이산가족, 남북간의 긴장관계 그리고 이로 인한 여러 부차적 효과들은 남과 북 모두에게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분명 이러한 상처는 쉽게 치유되기 힘든 병으로 남과 북 모두의 몸과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분단으로 인한 상처에 대해 조금 자세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하게 분단과 전쟁으로 인한 사회적·경제적 피해로만 분단의 상처를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사진출처: ehistor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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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이 된지 벌써 60년을 넘어 70년이 다 되어가는 동안 우리는 분단 그 당시의 상황과는 많이 다른 모습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전후 복구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완료되어 전쟁의 상흔은 박물관과 오래된 기록 속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행히도 이산가족들도 오랜 세월 속에 그 수가 많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분단당시와 전쟁을 직접경험하지 않은 세대에게는 분단의 상처가 쉽게 와 닿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분단은 일상에서는 완전히 잊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왠지 분단이라는 상황은 께름칙한 무언가를 계속 남기기도 합니다. 휴전선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재래식 무기의 대치장소입니다. 그러나 혹자는 안보불감증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겠지만, 70여년에 가까운 그 대치 자체보다 그 이상으로 우리의 마음에는 분단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 께름칙한 무언가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나라를 ‘뭔가 부족한 나라, 뭔가 불안정한 나라’로 생각하게 합니다. 기존의 윤리교과서를 비롯하여 많은 책들은 분단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라이며, 통일은 우리나라를 완성하는 것이라는 말을 많이 해왔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설명이 부족해왔던 것 같습니다. 냉전시대 남한에서는 ‘민족의 원수 빨갱이 김일성’을 무찌르기 위해서, 북한에서는 ‘미제의 앞잡이 남조선 괴뢰도당’을 몰아내기위해서 분단과 통일을 설명해왔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분단으로 인해 가로막힌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과거나 현재나 이러한 인식들은 분단의 상처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적어보입니다. 다만 이 비정상적으로 느껴지는 이 순간을 단순히 벗어나기 위해 다급하게 통일을 이야기하고, 남과 북은 서로를 자신의 잣대로 평가해왔습니다. 따라서 분단을 해소하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보다는 더욱 고착화시키는 모양새를 띠었습니다. 위에 소개되었던 민서와 지훈이의 다툼에서 우리는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그 상황 자체에 대한 파악을 하지 않으려는, 또 그럼으로써 왜 상대가 이러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두 아이의 안타까움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두 아이의 화해를 위해서는 왜 두 아이가 다투는지 그리고 그 상처가 무엇인지 살펴봐야할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서로 다른 그 둘이 어떻게 공존하고 화해하고 그리고 하나가 되는지 보는 것이 좋은 순서가 될 것입니다.

혹시 ‘트라우마’라는 말을 아시나요?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에 따르면 트라우마는 ‘심각한 기계적 충격이나 사고 그리고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는 기타 사고를 겪은 후에 발생하는 스트레스 장애’를 말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트라우마가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 그리고 한 세대가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나타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보통의 트라우마가 어떤 사고의 당사자의 개인적 체험에 그친다면 여러 세대에 걸쳐 집단에 나타나는 트라우마는 그 당사자와 관계하고 있는 집단 내부로 옮아가는 독특한 점이 있죠. 이러한 트라우마를 조금 어려운 말로 ‘역사적 트라우마’라고 합니다.

설명이 조금 어려워졌는데, 조금 쉽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트라우마는 개인의 안전이나 살려고하는 에너지가 손상되었을 때 나타납니다. 즉 우리가 밥을 먹고, 사랑을 하고 신체를 지켜가는 활동이 외부의 강제로 인해 손상되거나 박탈되었을 때 트라우마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적 트라우마’는 역사적인 사건들을 공유하는 집단이 그들의 공통된 욕망과 욕구가 좌절되거나 억압되면서 나타난다고 합니다.

위의 말에 따르면, 과거와 현재 우리나라사람들 사이에 공통된 욕망이 있었고 그 것이 좌절되어 큰 상처를 남겼다 것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구한말 조선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바람 앞에 등불이었습니다. 자랑스러운 유학의 전통은 보잘 것 없는 것이 되었고, 서양의 위력은 세삼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과학기술은 부러움을 넘어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은 동도서기(東道西器) 즉, 동양의 전통을 유지하고 서양의 기술만을 받아드리려 했으나, 이는 서양의 접시에 미역국을 담으려하는 것처럼 서로 결합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애초에 근대민족국가와 자본주의라는 형식에서 만들어진 기술을 전근대의 사회와 국가에서 담아내기는 힘든 것이었죠.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서양과 같은 근대적 민족국가건설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죠. 그래서 신민회도 만들고 독립문도 세우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보다 적극적으로 갑오개혁과 동학혁명을 진행하기도 했죠. 그러나 잘 아시다시피 이러한 노력은 일제에 의한 한반도의 식민지화로 좌절되었습니다.

흔히 서양의 민족국가를 ‘상상된 공동체’라고 말합니다. 봉건시대에 흩어져있던 여러 사람들을 묶고,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계급적 대립 극복하기 위해 민족이 요청되었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에 의해 소위 ‘세계화’가 진행되고 새로운 가치들이 난립하는 가운데 기존의 공동체가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한 보호장치이자 안식처로서 민족은 요청되어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의 국가는 그러한 안식처이나 상호 호혜적 집단으로서 민족이 빠진 국가였습니다. 서양의 다른 나라들은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이루어 공동체의 공통된 욕망을 충족하고자 했습니다. 비록 그런 욕망이 제국주의 등으로 표출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째든 그들은 집단의 욕망을 다른 사람들 앞에 내보였습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의 우리나라는 민족과 국가가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일제가 강점한 국가는 민족을 억압하는 존재였습니다. 따라서 그 국가는 공동체가 욕망하는 국가가 아니라 공동체의 욕망을 위해 제거되어야하는 국가였습니다. 숱한 탄압에도 우리네 선조들이 꿋꿋이 독립운동을 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지요. 일제 강점기는 바로 아버지로서 국가가 없는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도둑처럼 찾아온 광복’은 아버지가 없는 상황에서 서로가 자신이 아버지라 주장하는 상황을 만들어버렸습니다. 남과 북은 서로가 과거에 좌절된 근대적 민족국가의 이상이 바로 자신이라며 대립을 하였고 다른 상대를 일제와 마찬가지로 민족국가 건국을 방해하는 적으로 삼고 타도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이윽고 전쟁이 일어났으며 전쟁은 지금과 같은 분단을 만들어 결국은 누구도 아버지가 될 수 없는 결손가정, 아니 결손국가를 만들었습니다. 100여 년 전부터 고대해온 민족국가의 성립이라는 집단적 욕구의 좌절은 남북 모두에게 큰 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남과 북 상대에 대해 책임을 떠넘김으로써 자신은 그 책임을 면제 받으려 해왔습니다. 그리고 분단과 전쟁에 대한 모든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김으로서 상대방을 대화와 타협의 상대가 아닌 용납할 수 없는 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후 남과 북은 구한말부터 내려오던 민족국가의 이상이 실패한 ‘원죄의식’을 서로에 대한 폭력으로 전환시켜왔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도 누군가 나서 어떻게든 가정을 이끌어야겠지요. 분단과 전쟁으로 인해 결손국가가 되어버린 남과 북은 완성된 민족국가가 아닌 결손국가가 되어버린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김으로서 남과 북 각자의 내부를 통합하여 국가의 정당성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남과 북은 각자를 지금은 조금 부족하지만 곧 완전해질 이상적 국가에 자신의 모습에 대입하고 상대를 방해꾼 혹은 이해할 수 없는 나쁜 편으로 정해버렸습니다. 남북의 적대감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형성되고 강화되어 왔습니다.

‘역사적 트라우마’는 그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시점에서 발생한 사건에 의해 한 집단 속에서 옮아갑니다. 그런데 이러한 트라우마는 요즘 일어나는 사건과 과거의 분단 또는 전쟁이 결합하면서 그 상처가 불쑥불쑥 표면으로 들어납니다. 예를 들어 북한의 미사일발사 실험은 과거 한국전쟁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여 그 옛날 한국전쟁의 공포를 마치 오늘의 공포처럼 되살려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트라우마는 지나간 상처의 흉터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 됩니다. 과거에 집단적으로 좌절된 이상과 그 실패의 정점을 찍은 전쟁은 후대의 세대에도 상처로 유전되어 집단적 허전함과 불안감을 가져다주고 있는 것입니다. 옛말에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과거에 할아버지가 본 자라는 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 그리고 아들의 마음속에 자리하여 실제 자라와 크게 상관없고 겉모양만 닮은 솥뚜껑만 봐도 과거의 긴장이 되살아나는 신기한 유전병이 생겨난 것입니다. 즉, 분단의 상처는 우리가 평소에 뚜렷하게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세대를 넘어 전해져 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남과 북의 화해와 통일은 이러한 서로간의 상처에 대한 문제에 대한 이해, 즉 서로의 상처가 닮았다는 점 그리고 그 상처가 오래되었다는 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서 비로소 그 논의의 출발을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