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제 마이트너, 여자가 과학을 한다구? [자연과 문화 사이에서]-2

최종덕(상지대, 과학철학)의 종횡무진 책읽기 : 서평연재 -2

오늘의 서평 책
: 샤를로테 케르너 지음 (이필렬 옮김), 리제 마이트너, 한 번도 인간적 면모를 잃은 적이 없는 여성 물리학자, 양문출판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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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리제 마이트너인가

여성 최초의 핵물리학자인 리제 마이트너Lise Meitner1878-1968의 삶을 새롭게 조명한 국내 번역서를 보았다. 애당초 나는 몇 년 전부터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리제 마이트너라는 여성 과학자를 한국에 처음 소개하려는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그의(주1) 자서전 등을 읽고 메모해 두곤 했다. 그런데 마이트너의 자서전을 읽던 중 유럽에서조차 마이트너가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에 나는 놀랐다. 그에 관한 몇 권의 자서전과 인터넷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놀란 것이 있는데, 마이트너의 저서전 중 한 책이 과학사가이신 이필렬 교수에 의해 <한번도 인간적 면모를 잃은 적이 없는 여성 물리학자 리제 마이트너>라는 제목으로 이미 6년 전에 번역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 책을 다시 꼼꼼히 읽을 수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주1)  ‘그’라는 3인칭 지시어를 남녀 구분 없이 사용합니다. 원래 우리말에서 ‘그녀’라는 3인칭 지시어가 없기 때문입니다.

리제 마이트너

리제 마이트너

2. 여성물리학자 리제 마이트너 볼츠만을 만나다.

마이트너는 1878년 오스트리아 비인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모 양쪽 혈통으로 내려온 전형적인 유대인이다. 그의 부모는 자식들에게 유대 전통의 삶의 방식을 요구하지 않고 매우 자유로운 분위기로 자식들을 키웠다. 8남매 중 셋째인 리제는 언니들의 말을 잘 들으면서도 동생들을 잘 돌보는 깊은 우애심을 갖고 있었다. 당시 오지리 비인은 다른 유럽국가와 마찬가지로 여자에게는 초등학교만 허락되고, 김나지움 등의 고등교육 입학은 불가능하였다. 그 이후 프랑스어 교사학교에서 공부도 하였지만 결국 그의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수학에 큰 자질을 보인 리제에게 개인교육을 시켜가면서 대학 입학 자격시험에 응시하도록 하였다. 다행히도 그 와중에 비인 황제대학 입학이 여성에게도 최초로 허락된 큰 변화가 있었다.(1899년, 독일의 경우 1900년) 대학에 합격한(1901년) 마이트너는 볼츠만에게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여성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았다.(1906년) 마이트너는 볼츠만 교수로부터 물리학이라는 학문에 대한자신감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한 여정의 방향을 얻기도 했다.

“모든 문화와 기술의 진보로 인간이 더 행복해졌을까요? 이것은 사실 까다로운 질문입니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행복은 각자 자신의 가슴 속에서 찾고 발견해야 하는 것입니다.”(28쪽)

라이프치히 대학 초빙교수를 마치고 다시 비인으로 돌아와서 행한 인사말 중에서 행복에 대한 볼츠만의 언명은 마이트너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이때부터 이미 마이트너는 과학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잃지 않았던 것으로 보여 진다. 볼츠만 교수는 힘들게 대학에 입학한 두 명의 여학생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어떤 성적 편견을 갖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볼츠만 교수는 마이트너의 수학적 재질을 인정하면서 물리적 세계의 근원에 대해 호기심을 갖도록 마이트너를 독려하였다. 볼츠만은 통계역학을 정립하였다. 독립적인 기본 입자들 간의 운동 역학은 원리적으로 설명가능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통계적으로 해명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볼츠만의 통계역학은 물리학 발전의 급진적 계기였다. 통계역학은 물질의 기본입자가 독립적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기본입자란 물질의 원자를 말한다. 원자란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단위를 뜻했다. 원자의 세계까지 파고들어가는 이유는 물질의 특성을 밝히기 위한 환원주의적 방법을 찾으려 함이다. 물질의 특성은 그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의 특성을 밝힘으로써 설명이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자론은 철저히 환원주의를 논증하고 검증하기 위한 근거가 된다. 여기서 환원은 대상의 특성을 ‘남김없이 설명하려는’ 방법론적 태도이다. 즉 원자들의 합은 대상 물질 전체가 되고 대상 물질의 특성을 인식하기 위하여 물질을 분해하면 원자들의 존재로 다시 분해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Weizaecker, S.43-47) 그런데 통계의 기본 설명방식인 확률은 환원과 반대로 부분과 전제의 환원론적 설명이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이 점에서 어떻게 환원주의와 확률론이 만나는지를 반드시 설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열역학은 통계역학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볼츠만의 가장 큰 과학적 성과 중의 하나는 열역학적 평형을 향해서 모든 물질에너지가 이동한다는 사실에 착안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열역학 제2법칙’이라고도 부른다. 아시다시피 근대 열역학의 전환은 열 개념을 물질 입자들이 충돌에너지의 통계적 합으로 정의하는데 있었다. 통계적 합이란 개별의 입자 즉 분가 덩어리가 분자끼리 혹은 벽에 충돌할 때 동일한 에너지를 발산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볼츠만의 탁월한 재능이 드러나는데, 이는 곧 물질의 원자론적 사유방식에 의해 보장될 수 있다. 여기서 원자론적 환원주의와 1023개 수 이상의 무한에 가까운 물질입자들의 충돌에 의한 통계역학적 에너지 총합이 만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물리세계의 원자론적 형식은 철학적 선험존재의 사유구조와 밀접 되어 있음을 암시하며, 동시에 확률에 대한 사유는 경험과학적 실험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마이트너는 볼츠만 교수에게 4년 이상 수업을 듣는 과정에서 이러한 양 날개의 사유구조를 심도있게 배우게 되었다. 이후 마이트너는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자신의 장래를 구체적으로 모색해야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스승 볼츠만 교수가 죽었다. 마이트너도 잘 몰랐던 오랜 우울증으로 자살한 것이다. 마이트너는 갑자기 방황하게 되었다. 놀라기도 했지만 인생과 지식이 삶의 바다에서 서로 만나지 못하는 현장을 경험하게 되었다. 마이트너는 좀 더 강해지기로 했다. 속으로는 학문적 냉정함과 인생의 주관성이 뒤섞여지는 일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리고 이제 비인을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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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차별의 강함을 이긴 성실함의 부드러움

지금까지 오스트리아에서의 마이트너는 여성으로서의 차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큰 지장없이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독일로 이전하면서 마이트너는 스스로 마음에 드는 지적 탐구는 수행했지만 여성으로서의 차별을 눈에 띄게 느꼈다. 먼저 마이트너가 존경했던 퀴리 박사에게도 연구 수행 신청을 위한 편지를 썼으나 거절되었다. 여자로서는 너무 힘든 실험실 일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화학과 물리학이라는 학문의 경계에서 퀴리 박사가 마이트너의 전문분야를 보기에 자신과 같은 화학 분야가 아닌 물리학 분야라고 여겼기 때문일 수 있다. 마이트너는 독일의 베를린으로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은 막스 프랑크 연구소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당시 이름인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의 전신이었던 대학 실험실로 연구원 자리를 찾아갔다. 그는 막스 플랑크 교수를 직접 찾아가서 그의 수업을 참가하고 싶다고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내가 아는 막스 플랑크는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가질만한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분명히 막스 플랑크는 마이트너를 여자라는 이유하나로 거절했다. 당시의 사회적 분위로서 진보적 성향의 플랑크 같은 사람도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가졌을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마이트너는 물러서지 않았다. 마이트너는 자신의 강한 학문적 열정과 전문분야에 대한 경력을 막스 플랑크에게 전달했다. 플랑크는 마이트너를 인정하게 되었다. 이후 마이트너는 30년 가까운 베를린의 학문적 역사를 갖게 되었다. 마이트너가 보기에 플랑크는 비인의 스승 볼츠만과 다른 성격을 지녔다. 무미건조하게 보이는 그의 품성은 오히려 지적 신념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의지로 여겨졌다. 플랑크는 상대적으로 마이트너에게 큰 장벽이 아니었다. 베를린 대학 실험물리 연구실로 소개받으면서 성적 차별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마이트너와 운명적인 만남이었던 오토 한 박사와의 공동 실험실이 지하목공소에 겨우 임시로 차려졌다.(1907년) 본 실험실에 여자 연구원을 절대로 들여놔서는 안 된다는 피셔Emil H. Fischer 연구소장의 엄명 때문이었다. 일년 반 만에 피셔 소장은 그 임시 실험실에 여자 화장실을 짓게 해주었을 정도다. 그제서야 남학생 전용 실험실에 마이트너의 출입을 허가해 주었으니 말이다. 왜 그렇게 피셔 소장이 변했을까? 여성에 대한 편견을 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 초라한 지하 공간에도 불구하고 마이트너의 조잡한 지하 실험실에서 더 많은 연구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이 당시 이미 마이트너는 원자 붕괴 시의 원자핵 분열을 예언한 방사선 붕괴물질을 찾아내었을 정도로 마이트너의 연구진척은 상당했다. 빈약한 실험실 여건이었지만 이러한 마이트너 연구논문의 질적 수준 역시 탁월했다. 피셔 소장은 갑자기 그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여자 화장실을 짓게 되었다는 말이다.

1912년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를 개소하면서 좀 더 안정적인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 이후 오스트리아는 전쟁을 치루게 되었다. 소위 1차세계 대전이었다. 마이트너는 연구실에만 있는 냉동 지식인이 아니었다. 그는 오스트리아를 위해서 방사선 담당 간호사로 자원했다. 뢴트겐 검사원으로 일했다. 2년 가까이 전쟁터에서 일하면서 그는 독일의 독가스 사용의 현장을 목격했다. 독일은 이미 1차 대전 때부터 프랑스와의 접전에서 독가스를 사용했다. 마이트너는 독가스 사용에 대하여 비판적 의사를 표현했다. 그러나 위정자들은 그의 비판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문제는 마이트너가 일했던 빌헬름 화학 연구소가 독가스 연구를 주도했다는 점이다. 마이트너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과학자의 연구성과가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는 무기로 변할 수 있다는 점에 몸서리를 쳤다.

다시 연구소로 돌아와 그는 원자번호 91번이며 방사선 원소인 프로탁티늄protactinium 원소를 발견하였다.(1918년) 이제 마이트너는 과학자로서의 위상을 굳건히 인정받았으며 교수의 지위를 갖게 되었다.(1922년) 여자가 교수Dozent로 될 수 있었던 일은 독일 프로이센 사회의 혁명을 일으킨 것 이상이었다.(Rife, p.87) 오토 한을 비롯하여 그의 남자 동료들은 이미 10여년 전 이상부터 교수였었다.(1907년) 마이트너의 교수취임 강연(1922년)을 취재한 어느 기자의 표현은 더 웃기는 일이었다. “여성이 우주를 언급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우주적kosmisch 과정’이라는 단어를 ‘화장술kosmetisch 과정’ 으로 간단히 바꾸어 버렸다.”(78쪽) 알고 보니 마이트너의 교수직도 요즘 말로 하면 비정규직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1926년) 이때부터 조교수 자격과 소위 교수자격시험에서 “venia legendi ”를 취득하여 10년 교수 계약을 하게 된다. 마이트너는 베를린 대학의 실질적인 교수가 된다.(주2)  마이트너는 학과장 막스 플랑크에게 감사의 편지를 썼다. 그 내용은 자신을 신뢰하여 패컬티로 되게 한 데 대하여 책임감있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내용이었다.(Rife, p.87; letter thanking Planck) 그의 뛰어난 학문적 능력은 이미 다 알려진 상태여서 어느 누구도 외형적으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은 여전했다.

프로탁티늄의 발견을 통해 마이트너는 노벨상 후보로 추천되면서 그 이후 1920-30년대 마이트너의 과학적 성과가 빛을 발하게 된다. 방사선 붕괴 시 베타선이 감마선보다 먼저 나온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은 아인슈타인으로 하여금 깊은 인상을 주었다. 아인슈타인은 그를 ‘독일의 퀴리부인’이라고 부르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닐즈보어와 마이트너는 유럽 최고의 과학자 그룹에서 진지하고 열띤 토론을 지속했다. 그러나 이러한 학문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마이트너는 여성으로서 느끼는 불평등함에 대하여 마음 속으로 불편해 했다. 여전히 많은 남성 과학자들은 마이트너의 논문을 제대로 읽지 않거나 책장 속에 파묻어 두었다. “나의 남성 동료가 이 보고서를 제출했다면 벌써 인정했을 것입니다. 단지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채드웍은 나를 멸시하는 것이죠. 이런 일이 나를 정말 우울하게 만듭니다.(84쪽; 오토한에게 보낸 편지, 1922년5월17일) 그 다음해 1923년 마이트너는 채드웍의 명성에 휘말리지 않고 냉정한 시각으로 채드웍의 베타선 붕괴에 관한 실험결과에 대하여 비판을 한다.(Simm, p.89) 마이트너에게 있어서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의 문제에서 오류를 지적할 뿐이었다.

그러나 마이트너는 1928년 캠브리지 학술대회에서 채드웍을 만나면서 매우 호의적인 관계를 표현한다.(Simm, p.105) 마이트너는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데 매우 서툴렀다. 아니면 남자들의 본질적 속성을 이해하고 너그럽게 수용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수줍음을 잘 타는 마이트너의 천성 때문일 수도 있다. 오히려 그런 갈등을 스트레스로 갖느니 실험실에 몰두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듯하다. 이런 자신의 성격이 여성의 평등 권리를 찾는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다. 마이트너가 여자인줄 모르고 독일 브로크하우스Brockhaus 출판사에서 발간하는 학술지 편집장은 마이트너의 논문을 적극 게재하려고 시도하다가 그가 여자인 것을 알게 되자마자 게재 거부를 했다. 그러나 마이트너가 그렇게 유명한 줄 알고서는 다시 마이트너의 논문을 게재하려고 편지를 냈다. 이런 일들은 마이트너에게 흔했다. 이제 상할 마음도 없었다.

이런 일이 지나치면서 그는 결혼할 생각을 접었다. 실제로는 왜 그가 결혼을 하지 않았는가라는 주변 사람들의 추리가 많았지만 마이트너는 결혼을 안 하겠다는 철저한 원칙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실험실 연구를 하느라 결혼에 신경 쓸 틈이 없었던 것이다. 실험실 연구 과정에서 그는 남성 동료 연구원들이 밤을 새가며 실험하는 현장을 일상적으로 보아왔다. 그러면서 그 반대급부로 그의 부인이 얼마나 힘든 결혼생활을 하겠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마이트너도 결혼해서 그의 남편이 실험실에서 밤을 지새우는 일이 잦아 질 경우 분명 자신도 그런 일상을 싫어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는 남성에 대한 반감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데 힘을 쓴 편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성의 평등한 지위를 찾는 일이 개인적인 차원보다는 사회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는 당시 여성운동 그룹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욱 현장에서 어렵게 활동하는 실천적 여성운동가들에게 짐을 지우고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당시로는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인종적, 성적, 계급적 차별을 정당화하려는 과학적 시도가 꽤 있었다. 아리안 인종의 유전적 우수성을 과학으로 정당화하는 독일 계열의 사이비 과학자들이 있었다. 지식을 배우거나 습득한 여자는 일반 여자와 달리 일종의 유전적 변종에서만 가능하다는 주장을 담은 책이 선풍적으로 팔려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이런 극단의 우생학적 주장은 여자를 남성과 아이의 중간 수준의 특별 인종으로 간주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나아가서는 귀족과 노예 사이의 차이도 단순한 사회적 차이가 아니라 유전적 차이에서 오는 것으로 간주하는 사회적 우생학이 널리 번져 있었다.(Max Planck Gesellschaft, S.116-118) 이렇게 사회에 만연한 성적 편견에 대하여 마이트너는 크게 마음을 두지 않았다. 마이트너도 이제 50대의 중년이며 인정받는 과학자이기 때문이다. 1933년 솔베이 학술대회에 참석한 마이트너는 국제적으로 실력있는 핵물리학자 대열에 있었다. 그런데 그때에 맞추기라도 하듯 나치가 권력을 장악했다. 여성으로서의 차별을 극복하는 듯싶었는데, 이제 유대인으로서의 차별의 시절이 본격적으로 오기 시작했다.

나치 집권 이후에도 마이트너는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가졌다. 유대인이기는 하지만 오스트리아 시민권자이면서 국제적으로 알려진 과학자라는 점 때문에 나치는 마이트너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런데 1938년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점령하면서 하루 밤 사이에 마이트너는 오스트리아 시민에서 독일 시민으로 바뀌어졌다. 이에 나치는 외국 지역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본격적으로 현실화하기 시작했다. 유대인인 마이트너는 이제 독일을 떠나야 한다는 결심을 한다.

주2) 한국사회에서 통용하는 “교수”라는 표현이다. 당시 독일 학과에서 교수는 한 사람뿐이다. 독일 개념으로는 막스 플랑크만이 교수라는 뜻이다.

4. 노벨상과 여성

1938년 덴마아크를 거쳐 스웨덴 망명길에 오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의 학문적 능력을 가장 많이 인정해주는 닐즈 보어는 마이트너의 탈출이 성공하도록 적극적으로 도왔다. 여권을 만드는 일에서부터 비자를 발급받는 일 등, 여객선 등의 교통편을 주선하는 일에까지 거의 영화 <미션임퍼서블>에 맞먹는 비밀조직의 도움으로 덴마아크에 도착했다. 비밀조직에는 네덜란드 그로닝겐 대학 물리학과 교수인 코스테르Dirk Coster가 있었다. 코스테르는 독일의 지식인 망명자의 탈출을 돕는 결사대 비슷한 조직의 행동대원이기도 했다. 코스테르는 마이트너와 동행하기 위하여 일부러 베를린까지 왔다. 네덜란드 영사 등을 통해 오스트리아 여권으로 네덜란드까지 검문을 받지 않고 무사히 도착했다. 이후 7월초 덴마아크에 도착하여 닐즈 보어를 만나고 곧 스웨덴 스톡홀름 노벨연구소로 이동했다. 단지 15마르크가 들은 손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서, 그의 인생은 새로 시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과정은 거의 영화 스토리가 되어도 충분할 정도다.

그해 11월 스톡홀름에 있던 마이트너는 오토 한과 서신왕래를 계속 했다. 그리고 덴마아크에서 그들의 비밀스런 만남이 이루어졌다. 이 자리에 조카 프리쉬도 있었는데 이들에게 의미있는 토론 자리였다. 이 때 오토 한은 마이트너에게 핵 붕괴 이후의 과정에 대하여 질문을 했다. 마이트너는 새로운 입자 생성이 실험적으로도 가능하다는 점을 제시했다. 화학적인 시야에서 도저히 볼 수 없었던 실험 예상치를 물리적인 시야로 볼 것을 마이트너는 오토 한에게 독려했고, 이에 오토 한은 무릎을 쳤다. 오토 한은 마이트너와의 토론에 결정적인 힌트를 얻어 독일로 돌아 간 후 슈트라스만과 함께 역사적인 실험결과를 얻어냈다. 우라늄 핵에 중성자를 쏘아서 분열을 시키고 소위 바륨이라는 원소가 탄생하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마이트너가 오래 전에 밝혀낸 것이다. 1938년에서 1939년 사이에 오토 한과 슈트라스만 그리고 마이트너 공동의 작품으로 붕괴 이후의 새로운 원소를 발견한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에너지는 아인슈타인의 에너지 법칙에 딱 맞아떨어진 물리학의 역사적 전환점이었다.(Schirra, S.204) 마이트너는 조카 프리쉬의 제언대로 단순한 ‘쪼개짐’Zerplatzen 이라는 용어 대신에 영어로 ‘분열’fission 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새로운 용어만이 새로운 원소의 탄생을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위대한 발견은 망명 이전 3년 전부터 오토 한, 슈트라스만 그리고 마이트너 세 사람이 공동으로 연구해 오던 프로젝트였다. 그래서 그 실험 성과 역시 세 사람 공동에게 돌아갔어야 했다. 그러나 오토 한은 마이트너가 스톡홀름으로 가고 없었던 사이에 발견한 우라늄 붕괴 결과를 자기만의 성과로 했다. 이 점은 나중 마이트너가 섭섭해 했던 점이며 추후 이 발견으로 노벨상을 단독으로 받게 된 오토 한에게 말할 수 없는 불편함이 있었다. 물론 슈트라스만의 이름도 빠졌기 때문에 슈트라스만도 섭섭해 했다.(박병소, 154-156쪽)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오토 한에게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1945년 전쟁이 끝나자마자 노벨상 위원회는 그 공로로 오토 한의 단독 노벨화학상 수상을 발표했다.

이에 대한 상황분석은 다층적이다. 나는 그런 상황을 성적 편견과 연관하여 몇 가지로 나누어 다음처럼 파악한다.
(1) 첫째 한 평생 실험실 동지였던 오토 한에게 묘한 배신감 비슷한 것을 느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오토 한의 노벨상 수상 이후 마이트너가 친구 에파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 판단이 타당하다. 이필렬 교수가 번역한 것을 그대로 따서 읽어본다.

“오토 한이 노벨화학상을 수상할 자격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그러나 이와 관련된 부수적인 일에서 오토 로버트 프리쉬(조카)와 나는 부당한 대우를 받았어. 스웨덴 신문 D.N.에서의 한 기사는 거의 모욕적이었단다. 내가 정말로 오토 한의 보조연구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여성 물리학자였고, 물리학 분야에서 몇 개의 제대로 된 연구를 했다고?”(139쪽)

이 문제에 대하여 오토 한의 해명은 없었기 때문에 한의 입장을 결정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당시 여성 학자의 사회적 편견이 상존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2) 둘째 스톡홀름 노벨연구소로 자리를 옮긴 마이트너는 정말 최악의 상황이었다. 60살이 된 국제적인 물리학자였지만 노벨연구소에서는 조교 이하의 대접을 받았다. 당시 노벨연구소 소장이었던 시그반 교수는 마이트너에게 아주 간단한 실험기기조차 제공하지 않았다. 급여를 받았지만 조교 수당만도 못했다. 독일에서 건너올 때 가지고 온 것은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에 이불보 하나라도 새로 사야만 했다. 그러나 돈이 없었다. 이런 푸대접은 실상 아무 것도 아니었다. 노벨상 심사위원회의 편견에 비하면 말이다. 시그반 소장은 노벨상 심사위원회에도 속했는데 당시 최고의 물리학자들에 의해 해마다 추천이 올라 온 마이트너를 전적으로 배제하는 데 앞장서 있었다. 시그반 소장이 보기에 여성이 노벨상을 받는 것은 당치도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이트너가 노벨상 수상에서 빠진 이유는 이처럼 앞의 두 이유를 주로 들고 있다. 물론 이 두 사항 모두 추정일 뿐 확정된 사실은 아니다. 그들 어느 누구도 마이트너를 배제한 이유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수긍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편견은 역사적 풍토에 기인한다. 오늘날 양성평등 제도에 대한 사회적 실천이 가장 잘 되고 있다는 스웨덴이나 노르웨이에서도 불과 70년전인 1934년도에 장애자나 정신박약자에 적용하는 극단의 우생학적 단종법이 가결되어 시행되었었다. 특히 스웨덴 정부는 1941년도 나치의 위협이 커지면서 오히려 특정 목적성 단종법을 추가로 가결시켰다. 선천성 장애자 혹은 불구자 정신박약자 등에게 출산을 제한했던 인종 악법이 겨우 없어진 것은 1960년대 들어서였다.

이와 비슷한 수준으로 여성 차별의 역사적 문제는 성적 우생학적 풍토와 깊이 연관한다는 입장이 나의 결론이다. 성적 우생학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조선시대 과거 역사도 아니고 30년대 스웨덴의 문제만도 아니다. 바로 텔레비전을 틀기만 하면 나타나는 우리 안의 루저와 위너의 위계가 문제다. 성적 쇼비니즘이 아직도 우리 안에 내재해 있음을 파악해야만 비로소 나눠 살만한 평등사회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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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트너 생애>

1878 오스트리아 비엔나 탄생, 필립 마이트너와 헤드빅 사이 8남매 중 3녀. Phillip and Hedwig Meitner
1892 비엔나 시민학교 수료; 이미 어렸을 때부터 카톨릭 교육을 받았으나 정식으로 개종.
1896 프랑스어 교사학교 공부를 하고 대학입학 자격시험을 위해 개인교습을 받음.
1901 비엔나 대학 물리학과 입학, 미적분학 수업을 들으면서 어릴 때부터 재능을 보여왔던 수학보다는 물리학을 공부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함.
1902 볼츠만Ludwig Boltzmann 교수 수업 대부분을 들으면서 깊은 영향을 받음.
1906 최초의 여성 박사학위 수여 PhD in Physics from University of Vienna
1907 독일 베를린 대학 실험실 연구 시작, 화학자 오토 한과 만남
1909 막스플랑크, 폰라우에, 아인슈타인 등과 함께 콜로키움 참석; 이후 베를린에 완전히 정착하기로 결심.
1912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 입소
1915-16 전쟁에 참여
1915 오토 한 “Gas Pioneer” 참가를 적극 반대
1918 91번 원소 protactinium 발견(오토 한 공동)
1919 막스 플랑크 노벨물리학상 수상
1919 빌헬름 연구소와 장기계약 및 급여 상승
1920 닐즈보어 만남
1922 프러시아 여성 최초 조교수 Assistant Professor
1926-1933 베를린 대학 교수
1923 오토 한 단독으로 노벨 화학상 후보 추천
1924 오토한과 마이트너 노벨 화학상 공동 후보 추천 (이후 10차례 가까이 후보 추천됨)
1928 그의 조카이며 평생 조력자이고 한 오토 프리쉬Otto R. Frisch도 베를린으로 연구지를 옮김.
1933 나치, 연구소에서 유대인 마이트너 박사를 사임하도록 압력 시작, 델브릭과 원자핵 구조에 대한 새로운 연구성과 제시
1936 오토 한은 독일화학회에 마이트너와 다른 상급의 대우를 요구.
1937 막스 플랑크 사임
1938 독일 오스트리아 침공, 따라서 마이트너 연구소를 탈출하여 코스터 박사의 도움으로 닐즈보어가 있는 덴마아크로 피신, 그리고 곧 스웨덴으로 망명.
1939 조카 프리쉬와 원자핵 분열Nuclear fission 논문 게재.
1958 요양 차 조카가 있는 캠브리지로 이사함.
1968 (27 October) Lise Meitner died a few days short of her 90th birthday
<참고문헌>

박병소, 노벨상 이야기. 범한서적, 1998
Bankston, John, Lise Meitner and the Atomic Age.
Hamilton, Janet, Lise Meitner: Pioneer of Nuclear Fission.

Kerner(이필렬 옮김), 한번도 인간적 면모를 잃은 적이 없는 여성 물리학자 리제 마이트너, 양문출판사, 2009

Kerner, Charlotte, Lise Meitner, Atomphysikerin. Weinheim,1986
Krafft, F., Lise Meitner und ihre Zeit, in: Angew. Chem. 90(1978)
Max Planck Gesellschaft (Herg.), Verantwortung und Ethik in der Wissenschaft, Wissenschaftliche Verlag, 1985
Rife, Patricia, Lise Meitner and the Dawn of the Nuclear Age. Birkhaeuser, 1999
Schirra, Norbert, Die Entwicklung des Energiebegriffs und seines Erhaltungs- konzepts. Harri Verlag. 1991
Sime, Ruth Lewin, Lise Meitner: A Life in Physics. Univ. of California Press, 1996
Stolz, W.: Otto Hahn – Lise Meitner. 2. Aufl. Leipzig, 1989
Weizaecker, Carl Friedrich, Zum Weltbild der Physik, Hirzel, 1990
마이트너 소개 동영상 http://eyeofphilosophy.net/board/view.php?forum=vod&num=206

불의의 시대 [시대와 철학]

전호근(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연구협력위원장)

 

불의의 시대라 계절도 더딘가 싶더니 어느덧 겨울이 문턱이다. 예전 이맘때면 나뭇잎은 황금빛으로 물들고 가난한 이들의 창에는 서리가 하얗게 서려왔다. 그러나 추운 계절을 탓할 일은 아니었다. 겨울이 깊으면 봄을 기약하는 낭만이 있었고 가난한 삶에도 따뜻한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 나라 어느 구석에도 겨울의 낭만은커녕 봄이 올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가난 때문이 아니다. 바로 푸른 기와집에서 귀신과 작당하는 너희 때문이다.

 

너희는 지금이 옛날보다 낫다하나 나는 믿지 않는다.

옛날의 간신은 군주를 속였는데 지금의 간신은 백성을 속인다.

옛날의 탐관오리는 백성을 마소로 여겼는데, 지금의 탐관오리는 백성을 개돼지로 여긴다.

옛날의 무당은 뒷문으로 드나들며 주문을 외웠는데 지금의 무당은 정문으로 드나들며 연설문을 고친다.

옛날의 어두운 군주는 충신을 죽였는데 지금의 어두운 군주는 아이들과 농민을 죽인다.

 

이러니 지금의 간신이 옛날의 간신만 못하고 지금의 탐관오리가 옛날의 탐관오리만 못하고 지금의 무당이 옛날의 무당만 못하고 지금의 어두운 군주가 옛날의 어두운 군주만 못한 것이 아니냐. 그러니 지금이 옛날보다 낫다는 너희의 말은 거짓이 아니더냐. 내말이 틀렸느냐?

 

자고로 나라가 망하려면 귀신의 말을 듣는다했다. 그래, 너희의 귀에 귀신이 소곤거리는 말은 들리고, 자식과 부모를 잃고 찢겨진 가슴, 피눈물로 울부짖는 민초의 모습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단 말이냐?

 

두말 할 것 없다. 당장 너희 모두 그 자리에서 내려와라. 그 자리는 백성의 아픔을 돌보기 위해 있는 자리다. 그러니 너희 같이 무능하고 거짓을 일삼으며 귀신에게 아첨하는 자들이 있을 곳이 아니다.

 

이제 이 땅의 백성은 드러내놓고 너희를 죽이려 할 것이고 너희가 믿는 귀신조차 어둠 속에서 너희를 죽이고자 모의할 것이다. 신라 때만 최치원이 있는 줄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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섦 [별과 달과 바람의 노래] -21

김설미향(그림책 작가)

늑대와 소녀

 

진실을 찾아 헤매는 것은 나의 도륙하는 눈이다.
두 눈은 잔인한 늪에 빠진 존재의 거짓을 삼키고
안팎으로 빛깔 좋은 까마귀를 닮아 간다.

대지 위에 서 있는 소녀는
대지 아래 늑대가 있는 것을 모를 뿐이다.
나는 모르는 척 허황된 들판에 유행하는
우주선을 따라 좇아간다.
그 곳에는 황량한 사막도, 근심도 없고
먹잇감을 찾는 늑대와 소녀도 없다.

2016.10.31

작가의 블로그 http://dandron.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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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노트 
세상의 삶의 많은 부분이 보이는 것이 진실이 되고
보이는 것에 진실이 가려지기도 합니다.
늑대는 소녀를 기다리며 자신의 존재를 뚜렷하게 만들어 가기 위한
영생을 준비하고 있고 소녀는 자신이 밟고 있는 땅이 늑대의 존재임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진실을 볼 수 없거나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동물은 배가 고프면 필요한 만큼만 배를 채웁니다.
동물적 본성과 습성을 가진 인간은
필요 이상으로 넘치는 배들이 즐비합니다.
각각의 배에 신들린 사이비 욕망은 채워도 모자라고 부족합니다.
끊임없이 욕망하고 갈구하고
타인을 통해 먹잇감을 찾는 자신을 규정하고
칼의 제도적 습관에로, 악의적 규율의 법칙에로
길들여진 행위는 정신보다 동물적인 감각만을 우위에 두고
끝없이 몰두하는 욕심에로,광란의 타락에로 몰락해 갑니다.
온 우주는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으며
온 우주를 자기 것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한 칼날을 만들고
자신의 것을 보호하기 위한 집단을 만들고
타인의 것을 빼앗는 것은 자연의 섭리로 존재한다고
믿는 것입니다.
실낱같이 아주 여린 많은 생을 짓밟아
배고픈 동물은 힘이 강한 동물에게
그저 먹잇감이 되고 맙니다.
배가 불러도 더 배를 불리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 인간 동물은
자신의 배를 두둑히 채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광활한 우주의 무한한 표류를 버리고
자신만의 배에 정박하여 낮고도 험한 정신을
멈추지 않으며 미친개의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냅니다.
그러나 그 자연의 하늘 아래 돌아갈 대지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있습니다.

상실의 절망을 환상의 횡단으로 [시대와철학]

김성우(한국철학사상연구회 ⓔ 시대와 철학 편집위원장)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의 10년간을 상실의 시대로 규정하고 집권한 뉴라이트 계열의 MB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10년간이야말로 진정한 상실의 시대가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뉴라이트는 기존의 보수주의보다 신자유주의적인 시장 만능주의를 지향하며 대기업과 금융자본에 유리한 정책을 추구하는 새로운 보수주의이다. 뉴라이트의 이러한 면모는 MB의 “기업 하기 좋은 나라”, 박근혜 대통령의 신탁적 표현인 “규제는 암 덩어리”라는 말로 대변된다.

 

MB 정부는 뉴타운 열풍으로 대표되는 부동산 투기 붐이 만든 환상적 매트릭스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매트릭스는 초거대 인공지능이 광대한 컴퓨터 네트워크로 만든 가상 세계에 대한 명칭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매트릭스는 인간의 생체 에너지를 전원으로 이용하기 위해 인간을 배터리로 만들었다. 결국, 이러한 설정은 매트릭스가 인간의 욕망에 의해 작동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온 국민의 부동산 욕망이 MB 정부를 지탱하는 에너지였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부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환상을 연장하고 싶은 노장년층과 보수층의 욕망으로 지탱되고 있는 매트릭스였던 것이다. 물론 인간 박근혜는 생물학적인 존재자로서도 아니며 검증된 사회적인 인물로서도 아닌, 영화 <향수>에 나오는 절대 향수와 같은 숭고한 대상으로 여겨진다.

 

그 영화에서 절대 향수는 욕망의 원인이 되는 대상이다. 다시 말해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그것이다. 즉, 스타 철학자 지젝이 정신분석학자인 라캉의 말을 빌려 표현한 ‘오브제 프티 아’(작은 대상 a)인 것이다. 지젝 식으로 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대통령 후보로서의 박근혜는 도올 선생이 그렇게나 외친 스펙을 통한 지도자로서의 능력 검증을 거칠 필요가 없으며 생물학적인 여성이라는 한계와도 무관한 환상적인 매트릭스가 된다. 물론 이러한 매트릭스를 만들고 확장하는 데에 새누리당과 아울러 보수 언론과 보수 인사들이 지대하게 기여했다. 다시 말해 이들이 공모하여 자신들의 권력 연장을 위해 MB 정부의 실정에 실망한 국민에게 새로운 환상의 매트릭스를 제공한 것이다.

 

이러한 환상의 매트릭스는 처음부터 대단히 깨지기 쉬운 연약한 것이어서 이를 방어할 방패막이 필요했다. 그래서 종북과 안보는 현 정권의 마법적인 부적이 되었다. 이 부적을 내세워 국가의 공익과 국민의 안전은 뒤로 한 채, 권력의 사유화가 극도로 진행되어 국가 시스템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세월호 사건과 메르스 사태로 인해 국가 시스템이 심각하게 마비되고 현 정부가 극도로 무능한지가 드러났다. 이로 인해 국민은 국가의 부재를 느끼며 ‘각자도생’이라는 웃기도록 서글픈 신조어가 탄생했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라서 옥시 같은 회사의 가습기 살균제로 소중한 아이들이 죽어가도, 폭스바겐 같은 회사의 연비조작으로 환경이 오염되더라도, 대기업의 이윤을 위해 차별과 착취의 비정규직이 늘어가더라도 정부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더구나 세월호 사건 때나 농민 백남기 님의 죽음 앞에서 실제로 이러한 일이 벌어지게 한, 궁극적인 책임자인 박근혜 대통령이나 실무 책임자들도 유가족과 국민에게 슬픔과 책임감을 표하기는커녕, 책임 회피를 위해 비정한 태도로 사건을 조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온 국민이 알아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드디어 최순실과 관련된 박근혜 대통령 게이트가 터지면서 온 국민이 설마설마하면서도 마주하고 싶지 않던 현 대통령의 트라우마적인 리얼한 민낯에 직면하고 말았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이 매트릭스에서 분리되어 인간이 배터리가 되어 매트릭스에 봉사하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한 것처럼 말이다.

 

지젝은 이를 ‘리얼(실재)이라는 사막’이라고 부른다. 그 뜻은 환상에서 깨어날 때 만나게 되는 진실이 트라우마를 일으킬 정도로 무의미한 폭력적인 야만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정신분석학에서 치유란 환상에서 벗어나 불편한 진실인 자신의 무의식적 욕망을 용기 있게  대면하는 것이다. 지젝은 여기서 더 나아가 환상의 횡단과 아울러 프레임의 재구성이나 변형을 추구한다. 환상은 주체의 욕망을 유지하는 프레임이기 때문이다.

 

지젝에 의하면 현실이란 리얼한 것이 아니다. 현실이란 환상의 프레임을 바탕으로 인간에게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이 그동안 숭고한 대상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바라본 것은 우리 자신의 욕망이 투영된 현실인 것이다. 그런데 환상을 제거해버리면 현실까지 상실되고 만다. 아마도 지금 우리 국민이 느끼는 ‘상실의 시대’는 이러한 상태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환상은 제거가 되지 않는다. 횡단이 요구된다. 환상을 횡단하는 것은 헤겔 식으로 표현하면 부정적인 것을 감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환상의 프레임에서 벗어나려면 욕망의 원인대상을 먼저 상실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이는 ‘오브제 프티 아’(objet petit a)라는 숭고한 대상을 포기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포기가 부정의 과정이다.

 

본래 상실이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을 의미하므로 슬픈 사건이다. 상실의 시대란 국가 시스템이 마비되어 국가가 더는 국민의 안전망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통치 권력의 무능이 드러나고 통치자의 권위가 사라짐과 아울러 국민이 이러한 상황에 대해 한숨짓고 절망하는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상실이 부정적인 것이라고 해서 절망한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현실 사회주의의 배신과 몰락을 경험한 구 유고슬라비아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토대로 상실을 순전히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이러한 상실의 부정성을 견디며 박정희 시대라는 환상을 횡단하고 환상의 기존 프레임을 다시 변혁하고 재구성해야 함을 지적한다.

 

숭고한 대상으로서의 박근혜 대통령과 그 리얼한 사막인 ‘헬조선’(지옥 같은 한국)과 관련된 기존 제도와 국가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누가 권력을 잡을 것인가라는 프레임에 지배받지 않고 앞으로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통치의 방향과 이념을 정립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박근혜 대통령과 박정희 시대라는 숭고한 대상에 대한 포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마침 그 숭고한 대상의 민낯이 드러난 이상, 이에 공모한 공모자들에 대한 준엄한 사법적 처벌과 역사적 심판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시대적인 과제를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기존의 숭고한 매트릭스의 배터리인 우리의 욕망을 포기해야 한다. 서구화의 욕망, 상업화의 욕망, 부동산 투기의 욕망, 승자독식의 욕망, 차별적 구별 짓기의 욕망 등을 포기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상실의 시대가 꼭 나쁘지는 않다. 박근혜 정부는 우리의 뉴라이트적인 욕망이 공모한 환상의 매트릭스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상실된다고 해서 무엇이 문제이랴! 이제 문제는 뉴라이트라는 욕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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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왓슨, 무신론자의 시대 [자연과 문화 사이에서] -1

 

최종덕의 종횡무진 책읽기 : 서평연재 -1

 

피터 왓슨, 무신론자의 시대, 책과함께 2016년 5월 출간 (Peter Watson, The Age of Nothing, 2014) 

 

무신론자의 시대 : 이 책 피터 왓슨의 <무신론자의 시대>는 원래 영국판 책 제목을 <무의 시대>로 달고 나왔었다. 그러나 미국판에서 <무신론자의 시대>로 제호를 바꾸었다. 이 책의 제목으로 이 책을 무신론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단정지면 안 된다. 무신론도 의미가 있겠지만 인간에게 본성적으로 내재된 종교심이라는 것이 있음을 은근히 보여주려는 책이다. 하버머스와 네이글로 시작하여 니체와 산타야나마르크스와 하이데거 그리고 융과 빅터프랑클에 이르기까지 현대 20세기 철학자들을 통하여 종교와 무신론이 서로 모순관계가 아니라 공존관계임을 보이려고 한 것이 저자 왓슨이 이 책을 쓴 목적이다.

예이츠가 본 니체 : 니체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는 무신론의 성경이지만, 그런 책도 당시 니체의 책의출판을 맡은 인쇄소에서 니체 책보다는 찬송가집 50만권을 인쇄하는 일정 때문에 니체 책 출간이 한참 뒤로 밀려났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상징적으로 종교와 반종교이 당시 분위기를 표현한 것이다. 니체의 초인을 저자 왓슨은 존재론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방향적으로 해석하고 싶었다. 니체의 초인을 설명하기 위하여 니체를 직접 건드리지 않고 예이츠William Buttler Yeats가 본 니체로 대신했다.(1902) 예이츠는 니체를 “가혹한 니체”와 “온화한 니체”로 구분했다고 한다. 가혹한 니체란 “물기없는 눈으로 바라본 세계”와 “무시무시한 인간의 내적 본성”을 강조한 니체이다. 반면 니체는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예이츠는 강조하고 이 책의 저자 왓슨은 더 강조한다. 그런 다른 모습의 니체를 예이츠는 “온화한 니체”라고 했다. 온화한 니체가 바라본 세상은 다음과 같다. 전체적 세계는 혼돈스럽고 모순에 가득차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익한 세계라고 한다. 적대자들 사이의 짧은 용서가 존재한다고 한다. 끊임없는 새로운 선택의 자유는 그것 자체로 ‘기꺼이 맞이하는 기쁨’이다. 삶이 비극임을 인정하지만 그짧은 순간순간에도 신성한 무엇인가가 담겨져 있음을 생각한다. 예이츠는 그런 상태를 황홀한 긍정이라고 했다고 한다. 나는 에이츠를 읽지 않아서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하겠지만 이 책의 저자가 에이츠의 니체 해석을 지나치게 황홀경의 존재론으로 만든 것 같다. 그 이유로서 예이츠는 나이가 들어 신비과학occult science과 민족주의로 빠졌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산타야나의 탈속세 : 또 한 명의 미국 현대철학자 산타야나가 있다. 산타야나의 반초월주의 철학은 이미 당시의 실증주의와 과학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산타야나의 논거는 매우 정교했다. 그에게 초자연성은 없으며 따라서 영혼도 없다. 그는 철학적 자유주의자로서 절대적이고 완전한 실재의 관념을 싫어했다. 그는 관념론의 철학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그 철학은 하나의 견해일 뿐이라는 것이다. 관념론도 지나치면 신비주의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산타야나는 신비주의를 철학적 논의 자체의 붕괴로 간주했다. 그러나 저자 왓슨은 교묘하게도 산타야나에서 신성성을 골라내었다. 산타야나가 삶의 가치를 속세가 아닌 것(unworldiness)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명제를 골라낸 것이다. 즉 탈속의 범주에서 아름다움이 있고 그 안에서 정신성이 내재된다는 산타야나의 명제를 왓슨은 부각시켰다. 그러나 내가 산타야나를 아는 범위에서 왓슨의 강조점은 초점을 약간 벗어났다. 그가 말하는 정신성이란 미학적 정신성에 국한한다. 학문적 혹은 합리적 정신성은 여전히 세속적 합리성에서 찾아진다.

아방게르 : 1차 세계 대전 직전 프랑스의문화적 풍토를 말한다. 이에는 프랑스혁명의 저항정신이 포함된다. 나는 이 책에 나온 그 저항정신의 질문들을 아래처럼 요약했다. 1)성숙한 어른이 아이보다 과연 우월한가? 2)유머와 아이러니(풍자)의 차이가 있을까? 3)꿈의 의미는 무엇인가 4) 모호하지만 상징적인 그리고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다중성이 무엇인가? 왓슨은 다중성과 아이의 개념을 이성으로 접근하지 못하는 어떤 미지의 영역으로 유도하려는 글쓰기 전술을 보이지 않게 노출시켰다.

 

마르크스의 혁명 : 저자의 마르크스 해석을 더 보자. 경제학자며 철학자로서 마르크스의 저서 <자본>은 아래의 주장을 담았다고 말한다. 1)노동자는 자신이 생산한 부가 많아질수록 더 가난해진다. 2)더 높은 임금을 받게 되어도 더 가난해진다. 즉 인간 존재로서 더 궁핍한 소외로 빠지고 만다는 것이다. 3) 결국 소외는 노동에서 생겨난다. 왓슨은 소외의 기원을 다음처럼 설명한다. 1)노동의 댓가는 노동자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고 오히려 노동자를 지배한다. 2)생산행위자체가 노동자의 존재론적 본성을 빼앗는다.(소외시킨다) 3)시장이 형성되면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소외시킨다. 4)결국 노동은 노동자를 노동자가 속한 문화에서 소외시킨다. 나아가 저자 왓슨은 마르크스가 본 사회를 기술하고 있다. 첫째 어느 시대에서나 지배계급의 사상이 지배적인 사상으로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물리적 힘을 지배하는 계급이사회를 지배하는 지식권력의 주류가 된다는 점을 말한 것이다. 둘째 인간은 오로지 혁명행위를 통해서만 자기 자신을 정화하고 순화된 새로운 인간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책 10장) 왓슨이 왜 마르크스를 설명했는지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 확실한 것은 마르크스에 대한 전형적인 비판 중의 하나가 마르크스의 혁명조차도 유토피아와 같은 이상적 구원에 해당할 뿐이라는 것인데, 왓슨도 마르크스를 이런 식으로 보고 있다.

 

하이데거의 현존재 : 다 알다시피 우리 인간은 세계 속에 던져진 존재라는 것이 하이데거의 표제어이다. 즉 우리는 우리의 세계와 존재를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세계에 잘 맞추어 잘 사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세계가 우리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에 맞춰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에게 고유한 본성이나 본질은 무의미하며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하이데거는 말한다. 본래적 삶이란 허구이며 세계 앞에서 우리는 유한한 작은 존재일 뿐이다. 그러한 유한성을 깨닫고 세계 속에 던져진 우리가 세계의 다원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 선택하는 것이기 보다 선택될 수밖에 없는 일을 결단이라고 말하며, 우리는 결단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이러한 현재적 인정은 “여기서 그리고 지금”이라는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결국 우리는 세계를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잘 맞추는 길을 찾아야 한다. 하이데거는 이런 길을 ‘염려’Sorge라고 표현했다. 세계를 염려하는 울의 하이데거의 태도는 세계를 관조해야 한다는 초연함으로 우리를 끌고 가려한다. 세계라는 말 대신에 사회라는 말을 대입하면 우리는 세상에 대해 탈정치화 되어야 한다는 견해로 귀착된다. 하이데거는 바로 이 지점에서 초연함의 종교성과 만나게 된다는 것이 저자 왓슨의 해석이다. 왓슨의 이런 해석은 아주 명쾌하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1927)에서 존재는 두 가지 양상으로 드러난다고 했다. 하나는 변화를 인정하는 미래지향의 존재(Sein-Zu)이며, 다른 하나는 죽음으로 가는 존재(Sein-Zum-Tode)이다. 여기서 저자 왓슨은 하이데거의 존재를 현실적 존재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어딘지는 모르지만 어디로 가야하는 ‘향함’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저자 왓슨은 추상세계를 거부한 하이데거에서도 종교적 향함의 태도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다른 말이지만 왓슨은 하이데거의 인간적 태도에 대하여는 아주 부정적이다. 하이데거의 문체가 조악하여 읽기 어려운 것은 둘째치더라도 하이데거가 나치에 부역한 사실과 나중에 후설과 아렌트에 대해 비열한 처신을 한 사실을 저자 왓슨은 잘 꼬집어 내었다.

 

, 원형에 숨겨진 종교 감정 : 집단의식 형태의 무의식에는 인간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내재된 패턴이 있으며, 그런 패턴을 융은 ‘원형’이라고 했다. 원형을 이해하는 몇몇 개념을 나열한다. 인간에 씌여져 착각과 허상을 일으키는 페르소나가 있다. 남성성은 남성의 것, 여성성은 여성의 것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남성성과 여성성은 혼재되어 있다고 한다. 남성에게도 여성성이 있으며 여성에게도 남성성이 있다는 것이 융의 중요한 인간이해방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성 안에 가능한 여성성을 아니마라고 하며 여성 안에 가능한 남성성을 아니무스라고 한다. 요즘 통속심리학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외향성과 내향성이 구분도 융이 설정해 놓은 것이다. 그림자 개념은 인간의 이면을 관찰하는 중요한 통로이다. 여기서 왓슨은 융의 자아 개념을 강조한다. 융이 말하는 자아 개념 자체가 바로 신을 믿으려는 존재라고 왓슨은 해석한다. 융은 종교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보인다. 종교 자체를 부정하지만 사람의 종교 감정을 이해하는 일이 신경심리학적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왓슨이 보기에 융이 말하는 종교 감정을 거부할 수 없는 인간의 속성이라고 강조하는 듯한데, 저자 왓슨도 이 부분에서 분명하게 말하지 않고 애매한 태도로 기술하였다.

 

듀이, 종교와 종교적 : 실증주의자로서 듀이는 실증 범주를 벗어난 초자연적인 것을 부정한다. 당연한 일이다. 초자연주의를 인식의 방해물로 규정하는 것이 듀이의 기본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이 책의 저자 왓슨은 듀이의 종교이해를 새롭게 관찰한다. 듀이는 초자연적 계시종교를 거부한 것이지 사람 마음 속에 있는 종교적 성향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듀이가 보기에 종교는 하늘의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문제를 풀어야한 한다고 한다. 종교는 사람들 사이의 공통된 문제에 직접 닿아 있어야 한다. 또한 그런 일이 가능하다. 사람 마음속에 더 잘 살기 위해 경험에 내재한 힘과 가치를 보여주는 시적인 상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시적인 상징의 힘이 바로 종교라고 왓슨은 말한다. 결국 왓슨이 보기에 실증주이자 듀이조차도 종교를 버릴 수 없었다는 것이다.

 

빅터 프랑클의 높이심리학 : 빅터 플랑클의 강제수용소 일기는 우리 내면의 반성과 성찰을 가져다 준 생명의 고전이다. 독일 점령 아래 3년간 감금된 경험을 전쟁이 끝나자마자 고향인 빈으로 돌아와 9일 만에 집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프랑클은 고통의 참상에서 인간의 원형을 보았다. 고통 안에서 멈춘 것이 아니라 고통으로부터 인간의 자유와 고귀함을 발견하였다. 그가 말하는 자유란 삶의 의미이며, 그 의미란 자기 개인에서 벗어나 세계로 나아가는 통로이며, 그 통로에서 자신의 존재를 재발견할 수 있었다. 자기존재의 발견이 곧 자기실현이다. 자기실현은 자기 초월이다 자기 초월의 심리학을 높이심리학이라고 표현한다. 융의 깊이심리학에 대비하여 표현한 말이라고 한다. 그 ‘높이’란 인간으로 하여금 영성을 찾아가는 내면의 에너지라고 저자는 말한다. 다시 말해서 빅터프랑클의 심리학은 단순한 행동주의나 유물론적 심리학이 아니라 영성의 심리학임을 저자 왓슨은 간접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초월성에 대한 내재적 충동 : 하바마스는 종교의 기원을 결여된 것에 대한 의식이라고 말했다.(Habamas 2008,”Ein Bewusstsein von dem, was fehlt”) 언어분석철학으로 시작한 현대 영미철학자 네이글은 스스로 무신론자이지만 초월적인 것에 대한 충동성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라고 말했다. 네이글에게서 생명은 이중적이다. 생명은 물질적 현상이면서도 목적론적 실체라는 것이다. 왓슨은 네이글의 이러한 이중적 태도를 매우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왓슨은 네이글의 이중성을 지나치게 호의적으로 혹은 편향적으로 해석했다. 분석철학자 네이글이 젊었을 때는 전형적인 유물론자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변했듯이 네이글도 나이들어서 신비주의자로 된 전형적인 사례이다.

네이글은 무신론을 유지하지만 세계 안의 목적을 인정한다. 네이글은 그런 종교적 성향의 목적론을 ‘자연목적론’이라고 했다. 저자 왓슨은 네이글을 통해서 종교와 무신론의 구분에서 벗어나 공존가능의 논리를 세우려 했다. 그의 태도는 무신론과 종교의 공존보다는 애매한 상태의 병립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는 노년에 들어서 진화론을 부정하면서도도 기독교 창조론의 새로운 버전인 <지적설계론>과도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네이글의 <마음과 우주>(Mind and Cosmos, 2012)라는 책이 지적설계론을 지지하는 디스커버리 연구소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서평자가 보기에 노년의 네이글은 무신론의 주장을 포기한 것이다. 어쨌든 인간에게는 보이지 않는 무엇에 대한 공포와 동경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은 진화론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 아니면 인류학적으로도 사실인 듯하다.

 

논리와 시 : 저자 왓슨은 시의 성찰적 기능을 크게 강조한다. 시는 일종의 세속적 계시에 해당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미국윤리학자 리처드로티는 유명하다. 그는 불행히도 노년에 췌장암에 결렸다. 그러면서 그는 그의 전공분야에서 약간 벗어난 논문 “실용주의와 낭만주의”를 썼다. 그 글에서 로티는 셀리의 시를 언급하며 <시의 옹호>Defence of Poetry를 다루었다. 로티가 한 말이다. “종교도 아니고 철학도 아닌 시이다.” 그는 말년에 들어서 논리에서 시로 전환했다. 왜 나이가 들면 논리를 싫어할까? 이 책은 그런 전환을 찬사했지만 최소한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피터 왓슨, 무신론자의 시대, 책과함께 2016년 5월 출간 : 원제 Peter Watson, The Age of Nothing, 2014

피터 왓슨, 무신론자의 시대, 책과함께 2016년 5월 출간 : 원제 Peter Watson, The Age of Nothing, 2014

민주주의적 주체는 어디로? [평이의 궁시렁]

온 나라가 최순실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인물로 들썩이고 있다. 최순실이 연극 대본처럼 써준 연설문을 열심히 따라 낭독하던 우리의 최고 권력자 박근혜 대통령도 단순한 지지율 추락이 아니라 탄핵과 하야를 외치는 민중들의 성난 분노에 직면해 있다.

대통령을 한때는 그리도 열심히 보필하던 새누리당과 조중동 언론마저 이제는 그녀(?)에게 등을 돌린 듯 싶다. 아마 삼성을 중심으로 한 경제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단순한 레임덕 상황이 아니라 어쩌면 지금의 상황은 새로운 권력의 쟁취를 두고 이합집산하며 새판짜기에 골몰하는 모양새다.

지금은 아마  ‘공위시대interregnum'(주1)가 다가오고 있는 시기일 것이다.  그람시가 지적한 대로 “위기란 바로 낡은 것은 죽어 가는데 새로운 것이 태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바로 이러한 공위시대에는 매우 다양한 병적인 징후들이 출현한다.”(주2)  그렇기에 이런 시대의 방향성은 함부로 예견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지점은 기존의 체제를 어떻게든 유지하려는 세력과 새로운 체제를 원하는 세력 간의 투쟁이 , 다시 말해 계급투쟁이 전면화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패닉상태이고 앞으로 우리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지 매우 불안하다고들 말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때 대통령을 그리도 열심히 원하고 보필했던 사람들과 언론들, 심지어 새로운 정권 창출에 몰두해 온 야당을 중심으로 이런 불안의 심리가 전시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왜 대체 뭐가 불안한 것일까? 그 불안에 대한 심리는 어쩌면 계급투쟁이 진행되고 사회가 혼란 속에 들어갈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예견에 대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계급투쟁의 두 전선 사이에는 명백한 간극이 존재한다. 체제가 뒤흔들려 기존의 안정성이 사라질까봐 두려워하는 진영이 있다면, 이와달리 이 공위시대가 새로운 체제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기존 체제의 새판짜기로 전락할까봐 걱정하는 진영이 있을 것이다.

알랭 바디우가 말한, 민주주의적인 주체의 시대!

우리는 이제 대통령에 대해서도 진정 평등하게 욕을하고 우리의 원하는 목소리를 그 어디에서든 내뱉게된 상황을 목도한다. ‘누구나 말할 수 있다’는 그 언어적 소통 가능성이, 그럼에도 어떻게 그 힘을 발휘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 분노의 목소리들은 기존 체체가 내뱉는 스펙타클적인 언어적 소통을 통해 오히려 기존 체제를 안정화시키는 새판짜기 전략에 포획될지도 모른다. 또 반대로 그 분노의 목소리들이 동일한 스펙타클적인 언어적 소통을 통해 오히려 기존체제를 부수고 새로운 체제를 탄생시키는 길을 열어놓을지도 모른다.

과연 지금 2016년 10월의, 우리 민주주의적 주체들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게 될까?

나는 불안하다. 또 다시 기존체제 권력의 새판짜기 전략으로 이 공위시대가 마무리될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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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공위시대란 보통 국가나 조직 등에서 신임 지도자가 취임하기 전, 최고 지도자가 부재하는 기간을 뜻한다. 물론 역사상 신성 로마 황제의 추대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았던 1254(또는 1256년)~1273년까지의 기간을 대공위시대(大空位時代, Interregnum)라고 규정하기도 하지만, 여기에서는 그냥 일반적으로 과거 국왕의 부재하던 기간이나 급격한 정치적 변혁 시기에 최고 지도자나 최고 권력이 비어있는 기간을 의미한다.

주2) In Quaderni del carcere; here quoted after Antonio Gramsci, Selections from the Prison Notebooks, ed. and trans. Quintin Hoare and Geoffrey Nowell-Smith (Lawrence and Wishart, 1971), p. 276. : 지그문트 바우만,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동녘, 2012. 254쪽 재인용.

[웹진 및 투고 안내] 한철연 회원님들과 독자님들께

안녕하세요.. (e)시대와 철학의 편집주간입니다.

그동안 웹진을 새로 리뉴얼하면서 나름 하루 평균 방문자 600여명, 한달 평균 조회수 2만여건 등, 아직은 그저 구멍가게 수준이지만 그래도 여러 필자분들과 편집위원님들 덕분에 우리 웹진이 꾸준히 나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블로그진 코너에 후원금도 내주시고 글도 써주시는 훌륭한 필진 덕분에 점점 더 반응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아울러 20대 30대 젊은 후학들과의 소통을 위해 외부필진의 글도 받으면서 외연이 더 넓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아직 우리 한철연 회원님들의 소중한 원고를 기획하고 발굴해 내지 못하고 있고, 웹진에서의 회원들 간의 소통도 좀 저조하다는 사실입니다. 모두가 웹진을 꾸려가는 일꾼들의 부족입니다.ㅠㅠ

그럼에도 희망을 갖고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해보겠습니다. 회원님들과 독자분들의 관심과 독려, 때로는 호된 비판도 부탁드립니다.

직접 연락드리며 원고를 청탁하는 노력을 좀 더 기울여야겠지만.. 그럼에도 자발적으로 참여해 주실 분들을 위해 원고 투고에 대해서도 안내드립니다.


1. 블로그진 코너 : 한철연 회원님들 중에서 자발적으로 월 1만원의 후원금을 납부하시면서, 직접 웹진에 글을 써서 업로드 해주시는 코너입니다. 필자분들이 원하시는 코너를 개설하셔서 이후에 책으로 출판하시거나 다른 곳에 재게재 하셔도 좋습니다. 아울러 저작권과 원고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필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관심있는 회원님들은 언제든 아래 이메일 주소로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 [피켓2030]이라는 코너는 특별히 20대, 30대 젊은이들이 우리 시대에 꼭 외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내는 코너입니다. 회원님들뿐 아니라 독자분들, 주변의 지인분들 그 어느 분이든 원고를 투고하실 수 있습니다. 나머지 코너와 마찬가지로 약소하지만 3만원의 원고료를 지급합니다. 대략 A4 2장 이내의 분량으로 역시 아래 이메일 주소로 원고를 보내주시면 검토 후 바로 게재됩니다. 많은 관심과 지원 부탁드립니다.

 

3. 이하 종료기사를 제외한 나머지 코너는 계속해서 원고를 받고 있습니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주시는 [톡,톡,씨네톡], [시대와 철학], [침몰하는 대학] 등 흥미로운 코너가 많으니 살펴보시고 언제든 역시 아래 이메일 주소로 원고를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원고 투고 이메일 주소 : esicheol@daum.net

아래로 연락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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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개 [내게는 이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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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오래전 어딘가에 써놓았다가 처박아 둔 것이다. 세월의 변화를 감안하여 조금 손보았다. 재활용은 좋은 것이다.

 

하루 24시간 동안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말을 입에 올리고 있을까?

말 많은 인간을 내지 않는 집안의 자손인 나는 일상생활에서 되도록이면 입을 많이 놀리지 않고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다. -그런데…공교롭게도 나는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을  전공했다-

 

그러다보니 나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대화에서 무척 고전한다. 최소한의 대답만 하는 나를 아주 거만하거나 버릇없는 인간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건 터무니없는 오해인데, 왜냐하면 그럴때의 나는 다만 낯을 심하게 가리는 중이거나, 상대방과의 화제를 찾기 위해 머릿 속에서 이런저런 대화의 상황을 백여수 정도 까지 진행시키는 중이거나, 아주 가끔 정말 상대방을 상종하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새는 세번째의 경우가 증가세다.-

그래서 친구가 점점 적어진다.

있어도 멀어지는 중이다.

그 결과 말 수는 더 적어지고, 운동부족이 된 내 혀는 점점 뚱뚱해지고 있다.

한번은 내가 하루동안 무슨 말을 했는가 적어본 적도 있었는데,  그게 고작 “밥 줘”, “얼마여요?”, “응”, “아니”, “끊어” 뿐이었다.

 

혹자는 가족과 대화는 안 하는가고 짐짓 의아하게 생각할 테지만, 나에게는 가족이 없다.

가 아니고, 내가 밤 늦게 집에 가면 나의 모친께서는 붓글씨 쓰기에 여념이 없으신고로 나는 할 수 없이 가만히 모친의 곁에 앉아 불을 끄고 떡을 썰 운명밖에는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떡을 잘 못 썰면 다시 도서관으로 쫓겨가야 한다. 참고로 난 한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오늘은 <타임>지에 ‘영향력있는 100인’으로 선정된 황우석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앵무개를 만들어 달라고 얘기해봤다.

나의 불행한 사정을 조용히 오랫동안 귀 기울여 주시던 황교수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전 황수관입니다.”

 

앵무개란 앵무새와 개의 교접종으로 나의 심각한 ‘대화결핍에 의한 공황 장애 및 과대망상을 동반한 조울증후군’을 치료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만들기 어려운 유전자 변형 생물이다.

처음에 나는 나의 심각한 ‘대화결핍에 의한 공황 장애 및 과대망상을 동반한 조울증후군’을 치료하는 데에는 애완동물이 제격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되도록이면 말하는 동물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현재 애완도 가능하며 말까지 할 수 있는 생물이라면 대표적으로 앵무새가 존재하는데, 불행하게도 나는 새라는 새는 모두 무서워하는 ‘조류 공포증’을 지니고 있으므로 앵무새는 결코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없다.

더군다나 앵무새는 무척 크며 발톱도 무지막지하게 굵고 부리는 거대하며 덩치도 꽤 나간다. 섣불리 앵무새를 키웠다가는, 분명 어느 천둥번개 치는 밤 앵무새는 커다란 발톱과 무지막지하게 날카로운 부리로 허술한 새장을 찢어발기고는, 더할 나위없이 연약한 모습으로 잠든 나를 습격하고 말테고, 다음날 난 하의가 벗겨진  변사체로 발견될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왜 하의가 벗겨져 있는지는 끝내 미스터리로 남겨지기를 바랄 뿐이다-

 

뿐만 아니라 앵무새를 키우기 위해서는 키다리 존 실버나 플린트 선장 혹은 갈고리 후크 같은 이들의 직군에 있거나, 그것에 걸맞는 몸집과 정신세계를 지녀야 하는데, 보시다시피 나는 그런 직업 세계인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영위하는 것에 무척 만족하는데다가,  뱃멀미에도 약하고, 카리브해는 커녕 캐리비안 베이에 가 본적도 없으니-생각해 보니 한 번 가봤는데,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과의 추억이 생각나서 가보지 않은 곳으로 선포한다- 앵무새를 애완하기 위한 조건은 아무래도 만족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남은 대안은 유전자 변형을 거친 동물의 개발인데, 앵무새와 개를 조합한 앵무개는 분명 말도 할 줄 알테고 재롱까지 솔찮이 부릴 테니 나의 긴 이름의 증후군을 치유하기에는 무척이나 적합한 대안이라 하겠다.

 

더군다나 앵무개만 데리고 다니면 나는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될 것이며, 영화와 CF와 앨범 판매와 게임으로 온갖 돈을 움켜쥐게 될 것이고, 앵무개가 수명을 다한다고 해도 미리 들어놓은 보험은 죽음에 의한 손해를 해소시키기에 충분할 것이다. 희한한 동물에 의한 성공은 미국의 콜로라도주에 실재했던 머리 없는 닭 마이크에서 이미 증명되었으니 앵무개의 개발은 분명 대박이다. 그러니 난 생계를 위해 공부를 안 해도 된다.

 

하지만…

앵무개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바티칸의 아르헨티나인 교황을 제거해야 하고,

황수관 박사의 방해를 따돌리고 황우석교수에게 소대신 개와 앵무새를 연구하도록 설득해야 하며, 그렇잖아도 희귀한 앵무새를 잡으러 돌아다녀야 한다. 물론 앵무새 보호 단체와의 전쟁은 필수다.

 

특히 마지막 조건을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인도네시아와 뉴기니아 등지의 지방 군벌들과 친분을 쌓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마약사업에도 관여해야 하고, 그러다보면 홍콩과 상해의 삼합회와 충돌을 일으킬 것이며, 중국에서의 조직간의 충돌은 어느덧 나비 날개에 실려 미국 해안가에서 허리케인을 일으킬 것이고, 미국 전역은 재해로 인해 온갖 난동과 범죄에 휩싸일 것이고, 이를 본 미대통령은 ‘기왕지사 또 전쟁하자’며 ‘불량국가들’과의 전쟁을 선포할 것이다.

 

이런 고난을 뚫고 사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설적인 킬러 카를로스와 검은 9월단과 붉은 여단과 알카에다와 블랙팬더단과 벵갈의 호랑이단, BF단, 스펙터, 닥터이블, 아수라백작, 파란해골 13호, 친구, 양은이파 등등의 비동맹세력과 광범위하고도 집중적인 연대가 필요할 텐데…

 

문제는 이 많은 사업을 하려면 수 많은 사람들과 오만가지 언어로 수 많은 논의를 거쳐야 하므로-또 한번 강조하지만 나는 말 없는 의사소통행위이론가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는 채식주의자 조스가 있다-, 나의 일명 ‘대화결핍에 의한 공황 장애 및 과대망상을 동반한 조울증후군’은 앵무개를 만들기도 전에 자연 치유될 것이며,

 

일단 치료가 된 마당이니 이제는 앵무개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위의 무지막지한 집단들에게 알리면, 나는 세상에 태어난 것을 오백만번쯤 후회하게 되는 신세가 될 것이고, 흥분한 황수우석 교수팀은 앵무개를 만들다가 우연히 발견한 좀비 바이러스를 퍼뜨려 워킹데드의 세상으로 만들 것이고, 기타등등 기타등등…

쳇, 앵무개 하나 만들기 되게 힘들군.

 

 

 

낚시[퍼농유]

우쑵니다.

서양의 많은 현자들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예수도 그러했고 아테네의 등에를 자처하며 사람들을 일깨우고자 했던 소크라테스가 그러했습니다. 하지만 공자는 처형당하기는커녕 천수를 누렸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철학을 엘렝코스(elenchos)로 규정했더군요. 논박술입니다. 나중에 플라톤이 변증술이라고 불렀던 원조라고 할 수 있죠. 루이-앙드레 도리옹(Louis-Andr Dorion)이라는 사람이 쓴 소크라테스>라는 책에 따르면 엘렝코스는 질문하고 대답하는 대화를 통해 논증을 전개하는 과정입니다. 답변자가 어떤 주제에 관해 모순된 주장을 하고 있음을 질문자가 드러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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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옹은 독특한 설명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엘렝코스의 논리적 요소에만 관심을 가졌지 정작 그 목적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합니다. 엘렝코스의 논리적 방법은 도덕적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엘렝코스의 목적은 상대의 논제를 논파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화자를 더 훌륭하게 만드는 데에 있습니다. 상대의 영혼을 정화시키려는 것이죠. 영혼의 정화는 행복의 조건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논리가 아니죠.
소크라테스는 상대가 참이라고 믿어왔던 것이 거짓으로 드러날 때 그 영혼이 겪게 될 충격과 수치심을 강조합니다. 수치심을 느꼈다는 것은 철학을 시작할 수 있는 징후이기 때문입니다. 수치심을 느낀다는 것은 허위의식이 깨졌음을 의미하므로 이제 함께 철학적 탐구에 들어설 조건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논박을 당할 때 느끼는 수치심을 소크라테스는 ‘유익한 수치심’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엘렝코스는 일종의 교육적 장치로서 도덕 교육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 논리적 논박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수치심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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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것은 이 엘렝코스가 주술(呪術)로 비유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엘렝코스는 합리적인 논변의 양식인데 어째서 마법의 주문인 주술에 비유되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효과적인 측면에서 그렇다고 합니다. 대화자들을 마비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죠. 홀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소크라테스에게 논박당한 이들 가운데 그의 이런 좋은 뜻을 이해하고 고마워했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저는 ‘유익한 수치심’을 다른 측면에서 보고 싶더군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하는 논리적 궁지는 ‘유익한 수치심’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개쪽’입니다. 쪽팔림입니다. 현자라고 알려진 사람들은 더욱더 그렇겠죠. 권력자들과 기득권자들 말입니다.
물론 유익한 수치심에 의한 도덕적 자각을 이룬 사람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실제로 논박당한 사람들은 대부분 고마움을 표하기는커녕 소크라테스에게 적의를 드러냈다고 합니다. 도리옹의 말이죠. 특히 소크라테스를 모방했던 젊은이들에게 논박당한 사람들은 오히려 소크라테스에게 원한을 품고 복수를 다짐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법정에 고발당한 것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무력하게 논박당하면서 모순덩어리인 자신이 발가벗겨지듯이 드러나는 순간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낀 이들이 소크라테스에게 분노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까요.
소크라테스가 의도했듯이 수치심을 통해 영혼의 정화가 이루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분노와 복수심을 불러일으킨다면 논박술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당하는 마지막 법정에서 죽어 지옥에 가서라도 엘렝코스를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좋은 의도가 현실에서는 최악의 결과를 산출하는 이 모순을 어찌 설명할까요.
공자는 어떠했을까요. 공자도 많은 제후들과 군주들에게 도덕적 깨달음을 위한 유세를 하러 다닌 사람이 아니던가요. 유세가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이듯이 공자도 유세가였습니다. 유세가였던 공자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장자 「어부(漁父)」 편에 나온 평가는 그렇게 긍정적이지 못합니다.
「어부」에서 공자가 제자들과 산책할 때 어부를 만납니다. 근데 왜 공자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하필 어부를 만났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전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부는 강가에서 물고기를 낚지만 지식인과 신하들은 현실 정치에서 군주의 마음을 낚습니다. 사실 어부는 군주의 마음을 낚는 사람을 상징합니다. 유세가이죠. 어부는 낚시의 최고 고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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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대(明代) 화가 오위(吳偉)의 독조한강설

아무튼 어부는 공자가 어떤 사람인지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제자 자공은 충신(忠信)과 인의(仁義)를 실행하고 예악(禮樂)을 닦고 인륜(人倫)을 정하며 위로는 임금에게 충성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교화하여 천하를 이롭게 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합니다. 이에 대한 어부의 질문이 독특합니다. 공자가 땅을 가진 군주냐 아니면 왕을 보좌하는 신하인가를 묻습니다. 물론 그 어느 것도 아니죠. 공자는 신하도 아니고 군주도 아니었습니다. 지위가 없는 사람이 지위에 걸맞지 않는 참견을 하는 사람입니다.
어부의 충고가 재미있습니다. 공자는 인한 사람이긴 하지만 화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어부는 충고합니다. 좋은 뜻을 가진 사람이지만 결과적으로 재앙을 면치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공자가 이를 듣고 쫓아가 가르침을 청합니다. 어부는 사람들이 흔히 범하게 되는 8가지의 잘못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어부가 말하는 잘못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의 속셈을 고려하면서 말하는 ‘아첨’, 옳고 그름을 분간하지 않고 말하는 ‘아부’, 다른 사람의 단점만 말하기를 좋아하는 ‘험담’, 친구사이를 배제하고 친한 사람을 갈라놓는 ‘이간질’, 교활한 속셈과 거짓으로 칭찬하면서 이를 통해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망치는 ‘사악함’, 선악을 가리지 않고 양측 모두 좋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음험함’ 등 입니다. 공통적으로 모두 말하는 방식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은 권력자에게 간언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당시 말이란 정치적 맥락을 가집니다.
그 가운데 첫 번째와 두 번째가 공자에 해당합니다.

자신의 일도 아닌데 간여하려는 것을 ‘참견’이라고 하고, 이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구태여 말하려는 것을 ‘잘난 체’라고 한다.(非其事而事之, 謂之摠, 莫之顧而進之, 謂之佞.)

이 말은 공자가 군주냐 신하냐라고 물었던 어부의 질문과 관련된 대답입니다. 공자에게 군주도 신하도 아니면서 직분에 어긋난 일로 잘난 체하며 참견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말재주를 부리고 다니면 화를 당한다는 것이죠. 주목해야할 점은 정치에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개입하는 방식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합니다.
어부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정치에 개입을 했는데 왜 사람들은 나에게 원한을 가지느냐고 다시 묻습니다. 그때 어부가 말하는 것이 자신의 그림자가 두렵고 발자국이 싫어서 그것으로부터 떨어지려고 달아난 사람에 대한 상징적인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그림자와 발자국을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결국 쉬지 않고 달리다가 죽었다는 이야깁니다. 무슨 이야기일까요.
재미난 상징적 이야기이지만 전 처음에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빛이 있다면 그림자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등불을 가지고 타인의 허물을 지적한다는 것은 타인의 그림자를 만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등불의 빛을 가지고 타인을 평가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생기게 마련이고 땅을 밟으면 발자국의 흔적이 남게 마련입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더라도 진리의 빛을 독단적으로 비추면 그림자가 생기고 무분별하게 개입하게 되면 상대에게 원한의 흔적이 남습니다. 예기(禮記) 「곡례(曲禮)」 하편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신하된 자의 예는 군주의 추악함을 드러내면서 간언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 번 간하였는데도 듣지 않는다면 직위를 버리고 떠난다.(爲人臣之禮, 不顯諫, 三諫而不聽, 則逃之.)

여기서 ‘추악함을 드러내면서 간언하지 않는다.’라고 번역한 말의 원문은 ‘불현간’(不顯諫)입니다. 군주의 과실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놓고 간언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당나라 때의 유학자인 공영달(孔潁達)은 ‘군주의 추악함을 분명하게 말하여 군주의 아름다움을 빼앗지 않는다.’고 주석을 달고 있습니다.
잘났건 못났건 군주는 군주로서의 지위에 맞게 대우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군주라는 명예를 흠집 내고 역린을 건드려 인간적인 모멸감을 주면서 간언하지 말고 예의를 갖추면서 옳고 그름을 설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조건 군주의 비위를 맞추며 아부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오해해서는 안 되겠죠. 설득과 아부는 다릅니다.
때문에 상대의 심리적 상태가 어떠한지 현실적 조건이 어떠한지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하고서 먼저 모든 것을 솔직하게 날 것으로 드러내면서 자신의 옳음을 말하는 것은 정직의 미덕이 아니라 일을 망칠 수도 있는 조급함의 악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진리에 대한 지나친 확신이 있을 때 앞도 뒤도 좌우도 돌아보지 않고서 직설적으로 내뱉게 되는 것이 인간의 심리 아닐까요. 그러나 자신이 옳다는 확신을 가지고 상대의 부정을 공격한다면 상대는 자신의 부정을 인정하기보다는 저항하고 회피하기 쉽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부정한 사람으로 규정하려 하는 상대를 죽이려 하겠죠. 자신이 부정하다는 증거가 되니까요. 증거를 없애고서 피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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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유세란 그 당시에 어려웠던 일었습니다. 말이란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의사소통의 문제죠. 의사소통이란 하버마스처럼 이상적인 상태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성적인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이상적인 대화가 의사소통은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도 의사소통을 해야 합니다. 이성적인 인간들과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은 이상적인 현실을 말합니다. 인간은 이성적이지 않습니다. 현실에서는 복잡한 것이 인간입니다.
논어를 읽다보면 공자의 이런 모습이 엿보입니다. 유비(孺悲)라는 사람이 공자를 만나려고 했습니다. 유비라는 사람을 공자는 매우 싫어했던 듯합니다. 공자는 병을 핑계로 만나주지 않았죠. 그 명을 전달하는 사람이 문밖으로 나가자마자 공자는 거문고를 꺼내 노래해서 유비가 일부러 듣게 했다고 합니다.
왜 병을 핑계로 만나주지 않고 일부러 노래를 듣게 했을까요. 만나고 싶지 않다는 공자의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유비는 만나고 싶지 않은 혐오스런 인간일 수 있습니다. 이성적인 대화가 통할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만나서 난 너가 싫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권력자입니다.
그렇다면 왜 유비에게 직접 만나고 싶지 않다는 뜻을 전달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병을 핑계로 만날 수 없다고 해 놓고 얼핏 보면 야비하게 거문고를 꺼내 노래함으로써 나는 아파서 너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는 암시를 주려고 했을까요.
정말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예의의 격식을 차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예의를 차린답시고 만나고 싶지 않다는 의도가 전달되지 않는다면 유비에게 어떤 깨우침을 주지 못하고 공자에게도 감정적인 앙금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나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서 만나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전달해야 하는 모순적인 의사소통 방식이 더욱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상대는 상처를 받지 않으면서 스스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좀 극적이죠.
물론 논어에서는 유비가 그것을 깨달았는지 어떤지 혹은 무엇을 깨달았는지는 기록이 없기 때문에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이런 모순적인 의사소통 방식은 우리들의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이런 극적인 장면은 연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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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참 묘한 인간의 심리입니다.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는 감추어진 영역에서 통찰해내는 진실을 읽어냄으로써 오히려 상대를 전적으로 신뢰하게 됩니다. 이것은 상대의 조건을 이용하고 상대를 모르게 한다는 모순적인 의사소통 방식입니다. 폭력적이고 권력적인 방식이 아니라 다소 시적인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진리를 직접적으로 깨닫게 하려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공자는 진리를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계기를 줄려는 시적이면서도 모순적인 방식을 택했습니다.
뭐랄까요. 인간은 좀 모순적이고 복잡합니다. 진리도 말할 만한 사람에게 말해야지 통하지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원한을 받을 수 있죠. 사람에게 자신의 의도를 통하게 하는 방식은 직설적인 방식 말고도 우회적인 방식이 다양합니다. 이 우회적인 방식이 단지 비겁하다고 폄하될 수는 없을 듯합니다. 춥습니다. 이제 가을입니다. 우쑤, 저는 가을이 왠지 기다려지는군요. 단지 쏘주 한잔 때문만은 아니지만 쏘주가 그리운 계절입니다.

[한철연] 10월 철학자의 서재 live 안내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선생님들과 독자님들께

안녕하십니까? 한철연 학술1부입니다.

10월 월례 발표회를 공지합니다. 10월은 철학자의 서재 live로 진행합니다.

진행은 버틀러의 저서 『혐오 발언』을 가지고 유민석 선생님이 하십니다.

“혐오와 혐오 발언”은 일베, 메갈리안 등의 활동이 촉발시키고 쟁점화되며 최근 한국에서 중요한 화두가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주제인만큼 회원 선생님들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 일시 : 10월 21일(금), 오후 6시

* 장소 : 한국철학사상 연구회

* 주제 : 버틀러의 『혐오 발언』 – “혐오 발언에 대한 대항은 가능한가”

* 진행 : 유민석 선생님(서울시립대)

 


<아래는 유민석 선생님이 보내주신 철학자의 서재 live 내용 개요입니다>

법학자들과 운동가들은 혐오 발언이 말하는 것 뿐 그것이 행하는 것에 근거하여 혐오 발언에 대한 금지를 종종 추구해왔다 (랭턴, 1993).
그들에 따르면 혐오 발언은 일종의 언어적인 따귀로, 표현의 자유의 보호를 받는 ‘그냥 말’이 아니며(매키넌),
수신자의 복부를 강타하고 종속적인 지위로 못박아 두거나(마츠다),
열등한 자로 서열을 매기고, 그들을 향한 차별을 정당화하며 사회적 약자들을 발언 불가능하도록 침묵시킨다(랭턴).

그러나 말은 의도된 대로 항상 행위하지 못한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주디스 버틀러는 잠재적으로 고통을 주는 말을 심문하고 수복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말에 대한 금지가 아니라 말에 대한 반복에 위치시키면서 (1997)
“아무도 상처를 반복하지 않고서는 상처를 극복할 수 없다”(p.102)고 주장했다. (Eichhorn 2001)

『격분하기 쉬운 말Excitable speech』에서 버틀러는 포르노와 인종차별적 혐오 발언은 어떤 형태의 법적 제재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몇몇 페미니스트들과 반인종주의 이론가들을 비판한다.
버틀러가 인용하는 이론가들―레이 랭턴, 캐서린 매키넌, 그리고 마리 J. 마츠다―는 모두 발화의 규제에 대한 “평등equality” 논증의 어떤 형태를 제공한다.
즉 만일 말이 억압된 집단 구성원을 종속시키고, 주변화하거나 피해를 준다면, 말은 규제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J. L. 오스틴의 언어 행위 이론을 사용하면서 그리고 말의 열린 본성을 강조하면서, 버틀러는 이러한 논증들을 거부한다.
궁극적으로 버틀러는 그 같은 규제는 그렇지 않았다면 혐오 발언을 “재의미화resignigying”하고 “재상연restaging”함을 통해
이러한 말에 대한 도전을 불러일으켰을 자들을 침묵시키도록 작동할 수 있기 때문에 혐오 발언에 대한 어떤 규제를 실행하는데 반대할 것을 조언한다. (Schwartzman 2002)

혐오 발언이란 무엇이며, 혐오 발화자는 누구일까?
혐오 발언에 대한 대항은 가능한가?
버틀러는 어째서 혐오 발언에 대한 발화수반행위론에 반대하며, 혐오 발언에 대한 국가 규제나 처벌을 반대하는가?
주디스 버틀러가 『혐오 발언 Excitable Speech』에서 개진한 발화효과행위론을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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