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없음] 이규성 철학 연구회 2025년 8월 제19차 정기세미나│『중국현대철학사론』 6장. 동서 ‘융회’와 형식주의 신이학: 풍우란(馮友蘭)-발제: 박영미│2025.08.22. [월례발표회•세미나]

이번 19차 정기세미나는 기술적 문제로 유튜브 영상이 제공되지 않습니다. 양해바랍니다.
세미나 사진과 박영미 선생님의 발제문은 아래 한철연 홈페이지 링크로 접속하여 첨부파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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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성 철학(사상) 연구회] 제19차 연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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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동서 ‘융회’와 형식주의 신이학: 풍우란(馮友蘭) (『중국현대철학사론 6장』)
-발제: 박영미 선생님
-일정: 2025년 8월 22일 금요일 오후 4시
-장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세미나실(줌 온라인 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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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차 이규성 선생 사상 모임에서는 이규성 선생님이 지은 중국 현대철학사론 가운데 6장 풍우란 편을 읽고 토론하고자 합니다.
풍우란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중국 현대철학자입니다. 그의 중국현대철학사는 중국철학을 이해하는 안내서로 여겨졌습니다.
그 책 덕분에 한국의 많은 학자들이 풍우란의 사상의 중국철학을 이해하는 방법이나 그 해석하는 관점에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제가 풍우란을 잘 알지 못하지만, 이규성 선생이 쓴 글의 서문을 통해 보면 풍우란은 동서 융회의 관점에 서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송대 이학이 플라톤적 이데아론과 통하는 것으로 보는데, 그런 이데아에 이르는 길은 오히려 논리적 길이라 합니다.
이 논리적 길은 사변적인 방법을 의미하기보다 오히려 논리적 분석을 통해 그 의미를 끊어버리는 회의주의적 방법으로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천리에 이르는 길은 최종적으로는 선적인 직각을 통한 길입니다.
풍우란은 선적인 직각을 통해 우주와 합일하며 이를 통해 인생의 이상을 세우고 여기서 내적 초월과 외적인 도덕의 합일을 추구했다고 합니다.
풍우란은 이를 바탕으로 사회를 건설함으로써 중국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내적인 혼란을 극복하려 하였다는 거죠.
설명 대로면 거의 플라톤적 사유를 빼다 박은 듯이 보이는 데(제가 제대로 이해하는지 모르겠지만),
풍우란의 사상을 통해 이규성 선생이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플라톤의 <국가> 강해(77)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77)

 

C. 철인통치자의 교육 목표와 교과목(502c-541b)

5. 영혼의 전환과 참된 실재로의 상승을 위한 교과목들(제7권 521c-541b)

3) 교과목들의 대상과 부과 방법, 시기와 구체적 프로그램(535a-541b)

 

[535a-541b]

* 소크라테스는 서곡으로서 예비적인 배울 거리들에서부터 본곡으로서 변증술에 이르기까지 배울 거리 전반에 대한 언급을 마무리한 후에 그 배울 거리들을 누구에게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부여할지를 배정하는 일이 남아있다고 말한다. (535a) 우선 누구를 배움의 대상으로 삼을지를 다루면서 소크라테스는 이전 통치자를 선발할 때 기준으로 삼았던 자연적 성향들을 다시 끌어들인다.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그 자연적 성향 내지 그에 적합한 자들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가장 안정적이고βεβαιοτάτος 가장 용감하며ἀνδρειοτάτος 가능한 한 가장 잘생긴εὐειδεστάτος 자.(535a) 성품τὰ ἤθη이 고상하고γενναῖος 강건하며βλοσυρός 배울 거리와 관련해서 예리하고δριμύτης 학습 능력이 뛰어난 자.(535b) 기억력이 좋고μνήμων 강인하며ἄρρατος 모든 점에서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φιλόπονος 자.(535c) 철학의 불명예ἀτιμία는 이러한 자격에 맞지 않은οὐ κατ᾽ ἀξίαν 사람들 즉 적자γνήσιος 아닌 서자νόθος들이 철학을 접했기 때문이다.(535c)

* 그리고 철학을 접하는 자가 고생을 마다하지 않음φιλοπονίᾳ에서 절름발이χωλός여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신체 관련 일들에서는 고생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배움을 좋아하지는 않는 경우가 그렇다.(535d) 그와 마찬가지로 진리와 관련해서도 의도적인ἑκούσιος 거짓ψεῦδος은 미워하고 성을 내지만, 의도하지 않은 거짓은 가볍게 받아들이고, 발각되어도 성내지 않는 자들은 불구ἀνάπηρος의 영혼을 가진 자로 마치 돼지 닮은ὕειος 짐승θηρίον처럼 무지ἀμαθίᾳ 속에서 맘 편히 뒹군다.(535e) 절제σωφροσύνη, 용기ἀνδρεία, 호방함μεγαλοπρέπεια, 그리고 덕ἀρετή의 부분들과 관련해서도 누가 서자이고 누가 적자인지를 경계해야 한다.(538a) 적자가 아닌 자들을 교육할 경우 나라πόλις와 정치체제πολιτεία를 구하지 못하고 철학을 한층 더 큰 비웃음의 홍수 속에 빠트린다.(536b)

*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느닷없이 우리가 놀이하고 있었다는 것ὅτι ἐπαίζομεν을 잊고 너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것 같아 자신이 우스운 꼴이 되었다고 말한다. 철학이 부당하게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성이 나서 그랬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통치자 선발ἐκλογή 관련 이야기로 돌아가 이번에는ἐν δὲ ταύτῃ 연장자πρεσβύτης를 선발하면 안 될 것이라 말한다.(536c) 산술과 기하를 비롯한 모든 예비교육προπαιδεία은 아이παῖς들일 때 제공되어야 하고 방식 또한 ‘강제로 배우는 가르침의 형태’ἐπάναγκες μαθεῖν τὸ σχῆμα τῆς διδαχῆς가 되어선 안 된다. 자유인ἐλεύθερος이 아닌 노예δουλεία처럼 억지로 배우는 것은(536d) 몸과 달리 영혼에 전혀 머물러 있지 않으므로 아이들을 양육할 때는 놀이 삼아παίζοντας 배우게 해야 한다. 그래야 ‘각자가 어디에 적성이 있는지’ἐφ᾽ ὃ ἕκαστος πέφυκεν도 잘 살필 수 있다.(536e)

* 그리고 아이들을 말에 태워 전쟁터에 데리고 가서 구경하게 해야 하고 좀 안전하다면 새끼 사냥개들처럼 피 맛도 보게 하여 모든 고생과 배울 거리와 두려움φόβος 속에서 가장 잘 대처하는ἐντρεχής 자를 선발해야 한다. 그리고 이 선발은 2년에서 3년 동안 필수적인 신체단련γυμνάσιον 기간이 지나 스무 살이 된 자 중에서 이루어지되(537b) 선택된 이들은 배울 거리들 상호 간의 친족 관계οἰκειότης와 ‘있는 것의 본성에 대해 전체적인 조망’σύνοψις τῆς τοῦ ὄντος φύσεως을 갖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전체적인 조망을 하는 사람ὁ συνοπτικὸς이 곧 변증술에 밝은 사람διαλεκτικός이기 때문이다.(537c)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적법한νόμιμος 일들에서 누가 가장 잘 머물러 있는지μόνιμος 등을 잘 살펴보고 이들이 서른 살이 되면 이들 중에서 다시 선택해서 변증술적 대화διαλέγεσθαι의 힘을 통해 시험하면서 누가 ‘있는 것’ 자체αὐτὸ τὸ ὂν에 진리ἀληθεία와 함께 다다를 수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537d)

*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이 교육 단계에서 아주 많이 경계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오늘날 변증술적 대화와 관련해서 나쁜κακός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그것을 하는 사람들은 불법παρανομία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이 놀라운θαυμαστός 일이 아니어서 그들을 이해해 줄 수συγγιγνώσκεις도 있지 않겠냐고 글라우콘에게 묻고(537e) 그들이 변증술적 대화와 관련해서 그렇게 된 사정을 비유를 들어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누군가 부모가 바뀌어 부유하고 큰 가문에서 많은 아첨꾼κόλαξ 사이에서 자라나 어른이 된 후 부모가 바뀌었음을 알게 되고 진짜 부모도 찾지 못했을 경우, 그 이전과 이후 그의 태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살펴보자.(538a) 그가 진실을 모를 때에는 부모와 친척들을 아첨하는 사람들보다 더 존중했을 것이고, 그들에게 불법적인 행동이나 말을 덜 했을 것이고, 중대한 일들과 관련해서 아첨꾼들보다 그들에게 불복하는 일이 덜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을 알고 나면 반대로 부모에 대한 존중은 줄어드는 대신 이전보다 현저하게 아첨꾼들의 말을 따르며,(538b) 그들의 방식대로 삶을 살고 드러내놓고 그들과 사귈 것이다.”

* 그러나 글라우콘은 이 비유εἰκών가 논변λόγος을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들과 어떤 점에서 관련이 있는지를 묻고 그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또 아래와 같이 설명을 이어간다. “어려서부터 우리에게는 정의로운δίκαιος 것들과 아름다운καλός 것들에 대한 신념δόγμα들이 있어 마치 부모γονεύς에게 양육되듯이 우리는 이 신념들에 복종하고 존중하면서 그 속에서 양육된다.(538c) 그런데 동시에 우리에겐 이것들과 반대로 쾌락ἡδονή을 수반하는 다른 활동ἐπιτήδευμα들도 있어 우리의 영혼이 아첨하는 쪽으로 이끌리기도 한다. 이때 다소라도 균형 잡힌 사람들은 그것에 설득되지 않고 이겨내지만, 때론 누군가 ‘아름다운 것이란 무엇인가?’τί ἐστι τὸ καλόν라는 질문에 접한 후 다양한 방식으로 논변에 의해 논박ἔλεγχος당할 경우(538d) 그는 그릇된 믿음δόξα 속으로 내동댕이쳐진다. 이 경우 그의 삶은 자신의 영혼에 아첨하는 삶βίον τὸν κολακεύοντα이 된다.”(539a)

*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글라우콘에게 ‘논변을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들의 상황이 이렇다면 그건 이해συγγνώμη해줄 만한 여지가 많지 않은가’를 묻고 글라우콘 또한 그에 동의하며 연민ἔλεος을 살 만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그 서른 살 먹은 자들에 대해서 이러한 연민이 생기지 않도록 모든 점에서 조심하면서 논변을 배우기 시작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539a)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그렇게 크게 조심해야 하는 것εὐλάβεια 한 가지로 젊어서 논변λόγος을 맛보지 않도록μὴ γεύεσθαι 하는 것이라 말한다. 젊은이νέος들이 처음 논변을 맛보면 그것을 그들은 마치 애들 장난παιδιή처럼 사용해서 항상 반박ἀντιλογία하는 데 써먹고 또 논박하는ἐξελέγχοντας 사람들을 흉내 내서 스스로 남들을 논박하면서, 논변을 도구로 삼아καταχρῶνται 마치 사냥개 새끼σκυλάκιον처럼 매번 옆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당겨서 찢어발기기σπαράττειν를 즐기기 때문이다.(539b) 스스로 많은 이들을 논박하거나 많은 이들에게 논박당하기도 하다 보면, 그들은 전에 믿었던 것들에 대한 전면적인 불신으로 급격하게 빠져들게 되고 이로 인해서 그들 자신과 철학 전체가 남들에게 비방을 받게 된다.(539c)

* 그러나 나이가 좀 든 사람ὁ πρεσβύτερος은 그러한 광기μανία에 참여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고, 변증술적 대화διαλέγεσθαι와 진리 탐구σκοπεῖν τἀληθὲς를 원하는 자를 흉내 낼 것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도 더 균형을 갖춘μέτριος 사람이 될 것이다.(539c)

*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열심히 논변에 참여하며 단련하는 기간을 5년 정도로 제시한다. 그리고 그 기간에 단련을 마치면 이후 15년 동안 즉 쉰 살이 될 때까지 그들을 다시 저 동굴로 내려가게 해야 하고, 전쟁과 관련한 일들을 관장하고 젊은이들에게 맞는 관직ἀρχαί을 맡도록 강제해야ἀναγκαστέος 한다. 그들이 경험에서 남들에게 뒤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도 그들이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는지ἐμμενοῦσιν 시험받아야βασανιστέος 한다.(539d-e)

* 이렇게 쉰 살이 되어 모든 과정을 통과하고 일ἔργον에서나 앎ἐπιστήμη에서나 모든 점에서 모든 식으로 가장 뛰어난 성취를 보인 이들을 드디어 최종 목적지τέλος로 인도해야 한다. 그리고 영혼의 눈길을 들어 올려 만물에 빛을 제공하는 것 자체를 바라보도록 강제해야 한다. 그리고 ‘좋음 자체’τὸ ἀγαθὸν αὐτό를 보고 나면 그것을 본παράδειγμα으로 삼고서, 남은 삶τὸν ἐπίλοιπον βίον 동안 대부분 시간을 철학을 하며 지내겠지만, 차례가 오면 각자가 나랏일로 고생하면서 나라를 위한 통치 업무를 불가피한ἀναγκαῖος 것으로 받아들여 수행해야하고 자신들과 비슷한 다른 이들을 교육하여 나라의 수호자φύλαξ로 남겨두어야 한다. 그런 연후 그들은 복된 자들의 섬μακάρων νήσος으로 떠나, 거기에 거주할 것이다. 이들은 신령들δαίμοσιν 또는 행복하고 신적인 사람들로 여겨지고, 나라는 이들을 위한 기념비를 세우고 공적인 제사를 지낼 것이다.(540b-c)

* 소크라테스가 위와 같이 배울 거리들을 누구에게 어떻게 배정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하자 글라우콘은 마치 조각가처럼, 통치자들을 완전히 아름다운 자들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때 소크라테스는 그러한 통치자들이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 통치자들τὰς ἀρχούσας도 포함하고 있음을 다시 환기한다.(540c) 그리고 끝으로 소크라테스는 앞서 다루었던 나라와 정치체제와 관련한 모든 이야기가 전적으로 기원εὐχή에 불과한 것들이 아니라 어렵긴 하지만 어떤 식으로는 가능한 것들이라고 말한다. 여럿이든 한 명이든ἢ πλείους ἢ εἷς 진정한 철학자들이 나라의 권력자가 되어 오늘날의 명예들은 멸시하고, 정의로운 것에 봉사하고 그것을 증진토록 하면서 나라를 바로잡을 때가 바로 그때이다.(540d-e)

*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위와 같은 나라와 정치체제를 가장 쉽고 빠르게 수립하기 위해 통치자들은 나라 안에 있는 열 살 이상의 사람들은 모두 시골로 보내버리고 그들의 아이들을 넘겨받아서, 부모들도 가지고 있는 오늘날의 습성에서 벗어나게 하고, 우리가 앞서 설명했던 것과 같은 자신들의 생활방식과 법들 속에서 양육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해야 나라 자체도 행복하고 그 나라를 이루는 집단τὸ ἔθνος도 가장 크게 이득을 볼 것ὀνήσειν이기 때문이다.

* 이에 글라우콘은 그런 나라가 언젠가 생겨난다면 어떤 식으로 생겨날지에 대해 지금까지 이야기가 잘 된 것 같다고 말하고 소크라테스 또한 그런 나라와 그런 나라와 닮은ὅμοιος 사람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이로써 정의로운 나라와 정치체제 그리고 그러한 나라를 닮은 정의로운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모두 마무리 된다.(541a)

– 제7권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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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5c ‘앞서도 말했듯이’ : 이 부분은 제6권 495c-496a에서 언급된 내용을 가리킨다.

* 535c-d ‘서자’nothos, ‘절름발이’chōros : 신분으로서 ‘적자와 서자’, 신체 상태로서 ‘사지 멀쩡한artimelēs 자와 절름발이’가 차별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물론 내용적으로 그 말들은 장차 나라의 수호자와 통치자가 되어야 할 사람들의 자질에 걸맞게 영혼과 신체의 균형을 갖춘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구분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 그렇지만  플라톤의 그 말은 그 또한 신분적 차이와 신체적 장애 여부를 사회적 차별의 기준으로 당연시했던 당대의 정치·사회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535e ‘의도하지 않은 거짓은 가볍게 받아들이고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게 발각되어도 성내지 않고 마치 돼지 닮은 짐승처럼 무지 속에서 맘 편히 뒹구는 영혼’ : 제2권(372d)에 나오는 ‘돼지들의 나라’가 말해주듯 이곳에서도 돼지는 무지와 탐욕을 상징하는 동물로 나온다. 소크라테스가 <변명>(38a)에서 말했듯이 ‘반성적 성찰이 없는 삶은 사람으로서 살 가치가 없는 삶이다’ho de anexetastos bios ou biōtos anthrōpō. 누구든 실수를 한다. 그러한 한, 사람의 위대함은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남에 의해서건 자신에 의해서건 그 실수나 잘못이 드러나는 대로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아파하며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반성하고 다짐하는 데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의 실수를 변명하는데 너무나 익숙하고 어떤 때는 변명은커녕 아예 뻔뻔스러운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그런 영혼이야말로 돼지 닮은 짐승처럼 무지 속에서 맘 편히 뒹구는 그런 영혼이다. 설사 거짓이나 잘못이 없더라도 그것을 자부하기 이전에 더 잘하지 못하거나 잘한 것이 없음을 부끄러워하고 혹시나 나의 무지가 타인의 눈물이 되지 않을까 늘 지적 긴장을 보전하는 것이 곧 지성이다. 세속 지식은 타자를 이기는 힘에 비례하여 커지지만, 지성은 타자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에 비례하여 커지고 자라난다.

* 536c ‘우리가 놀이paidia를 하고 있었다는 것hoti epaizomen을 내가 잊고 있었네. 그래서 너무 열을 내며enteinamenos 말을 했군.’ : 놀이하고 있었다고 해서 한갓 장난치고 있었다는 의미로 이해해선 안 된다. <파이드로스>(276a-e)를 보면 ‘배우는 사람의 혼에 앎과 함께 글로 쓰이며 자기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있으면서 그래야 마땅할 사람들을 상대로 이야기하고 침묵할 줄 아는 이야기’를 ‘더없이 아름다운 놀이’로 표현하고 있다. 이곳에서 말하는 ‘놀이’도 소크라테스와 글라우콘 등 대화 상대자들이 일정한 논의 주제를 가지고 서로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지금 놀이의 주제에 맞지 않게 혼자 흥분하여 배울 거리에 적합하지 않은 자들을 지나치게 길게 이야기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래서 스스로 책망하고 있다. 이것은 소크라테스가 당대 철학에 적합하지 않은 자들을 얼마나 혐오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철학에 끼치는 해악에 대해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소피스트들을 비롯해 이른바 철학자를 자칭하는 이소크라테스 같은 당대 지식인들이 그들이다. 제6권 495c에서도 이 부분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그곳에서 소크라테스는 가짜 철학자들을 비판하면서 이소크라테스로 짐작되는 인물에 대해 그답지 않게 대머리에 작달막한 외모까지 끌어들여 다소 흥분상태로 비난하고 있다. 이곳에서 느닷없이 다른 곳에서와 달리 통치자의 여러 조건 중 잘 생김을 꺼내든 일도 그 때문일까?

* 536c ‘이전에 통치자를 선발할 때에는 우리가 연장자를 선발했지만, 이번에는 그러면 안 될 것이네.’ : 문장만 보면 3권(412c)에서 언급했던 통치자 선발 방식을 이번에는 바꾸겠다는 것으로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통치자의 선발 기준은 이곳에서도 쉰 살 이후로 언급된다는 점에서 내용 상 바뀌는 것은 없다. 게다가 제2권과 3권에서 수호자를 위한 교육을 다루면서 이미 전 연령의 단계마다 시험과 선발이 주어진다는 점이 언급되고 있음을 고려하면(412d-e) 이 부분을 그렇게 해석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바로 이어지는 문맥도 통치자의 선발 방식의 변경이 아니라 다만 배울 거리는 장차 통치자가 될 나이 어린 예비 통치자 때부터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 강조될 뿐이다. 이렇게 보면 ‘이번에는en tautē 그러면 안 될 것’이라는 문장에서 ‘이번’은 ‘배울 거리를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부여할지’에 관한 ‘이번’ 논의를 가리키고 ‘그러면 안 될 것’이란 그에 관한 논의에서 전번처럼 연장자를 불쑥 제시하지 않고 습득 능력이 뛰어난 젊은 시절부터 교육해야 한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 할 것이다.

* 537a ‘아이들을 말에 태워 전쟁터에 데리고 가서 구경하게 해야 하며’ : 이 이야기는 앞서 제5권에서 언급된 내용이다.(467c-e)

* 537e ‘오늘날 변증술적 대화와 관련해서 나쁜 일이 많이 벌어지고 그걸 하는 사람들은 불법paranomia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네’ : 불법으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은 그들이 현실에서 많은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변증술의 맛만 보고 함부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영혼 상태가 불법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변증술을 제대로 배우는 것이 그만큼 매우 어려운지라 안타깝게도 초기 단계에서 그런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이어지는 소크라테스의 언급은 그런 일들이 많이 발생하는 것에 대한 자신의 안타까운 심정을 담고 있다. 그러나 변증술의 그릇된 사용이 초래하는 위험이 워낙 심대한 만큼 최대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신중하고도 철저한 준비와 대책이 필요하다.

* 538d ‘질문이 찾아와서’, ‘논변이 그를 논박하는데’ : 변증술은 앞선 강해에서 살폈듯이 기본적으로 끈질긴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의 상승적 반복을 통해 좀 더 확실한 진실로 다가가는 토론 과정을 토대로 한다. 그것은 입장이 다른 복수의 사람들끼리 문답을 통해 혹은 혼자 자문자답 형식의 치열한 사색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소크라테스는 여기서 그러한 변증술적 문답 과정을 보다 생동감 있게 표현하기 위해 질문과 논변을 의인화하고 있다.

* 539b ‘젊은이들이 처음 논변을 맛보면 마치 애들 장난처럼 사용해서 항상 반박하는 데 써먹고’, : 논변은 변증술적 논변을 말한다. <필레보스> 15d-16a, <변명> 23c에서도 소크라테스는 이런 양태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어서 보이는 ‘‘마치 사냥개 새끼처럼 매번 옆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당겨서 찢어발기기를 즐기기 때문’이란 표현은 제1권에서 소크라테스가 트라쉬마코스를 두고 ‘마치 야수처럼 혼신의 힘을 가다듬어 찢어발기기라도 할 듯이 우리한테 덤벼든다’(336b)고 말한 것과 거의 그대로 일치한다.

* 539d ‘이것보다 먼저 이야기된 것들도’ : 539b에서 언급된 크게 조심해야 하는 것 즉 젊어서 논변의 맛 정도만 보고 섣불리 그 논변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 539e ‘다시 저 동굴로 내려가게 해야 하며’ : 애초의 동굴 비유에서는 수감자가 풀려나 동굴 바깥으로 나와 태양을 본 다음 동굴로 내려가지만, 여기에서는 태양 즉 좋음의 형상을 보기 전에도  동굴로 내려간다.  이것은 쉰 살 이후 본격적으로 통치자로서 현실 통치 업무에 임하기 전에 실습 차원에서 15년 동안 통치 보조 업무를 의무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 540a ‘영혼의 눈길을 들어 올려 만물에 빛을 제공하는 것 자체를 바라보도록 강제해야 한다.’ : 이 말은 변증술 교육을 억지로 하게 한다는 것이 아니라 변증술의 최종단계인 좋음의 형상을 본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매우 힘들고 어려운 것이므로 그것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이루어낼 수 있도록 좀 더 강화된 방식으로 좀 더 주도면밀하고 철저한 방식으로 교육을 수행한다는 것을 말한다. 쉰 살에 이르러 모든 점에서 모든 식으로 가장 뛰어난 성취를 이룬 자들은 그만큼 이미 최종 목적지에 이르려는 자발적인 의지로 충만해 있는 사람들로서 어떠한 어려움이라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 540b ‘복된 자들의 섬’makrōn nēsos : 헤시오도스 <일과 나날> 171에 나오는 신들과 영웅들이 사는 축복의 섬. 생전에 훌륭한 업적을 이루었거나 착하게 산 사람들도 사후에 그곳으로 갈 수 있다고 믿었다. 519c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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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의 논의 주제는 ‘배울 거리들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부여할지를 배정하는 일’이다. 이에 따라 이 부분(535a-541b)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1) 우선 누가 배움의 대상으로 적합한지와 관련하여 이전에 수호자의 선발 기준을 논의할 때 제시되었던 수호자의 기본 자질과 성향들이 다시 소환된다.(535a-536b) 2) 이어서 그들을 대상으로 언제부터, 어떠한 방식으로 그리고 무엇에 중점을 두어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다룬다.(536c-537d) 3) 그런 연후 그러한 교육 단계에서 경계해야 일들, 즉 철학적 자질이 부족한 자들이 저지르는 일과 그럴 경우 발생하는 나쁜 일에 대한 논의가 비유까지 포함해서 제법 길게 논의된다.(537e-539c) 4) 그래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변증술을 배우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을 잘 가려내야 하고, 나아가 그 배움의 중요성만큼 얼마 동안 어떻게 그것을 단련하고 실천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 즉 앞서 논의 주제로 제시되었던 배울 거리에 대한 배정의 문제가 연령별, 단계별로 다루어진다.(539d-540c) 5) 그리고 끝으로 이제까지 논의해온 나라와 정치체제들이 실현 가능한지에 관한 언급이 간략히 주어진 후, 양육과 관련해서 현재 상태에서 그런 나라를 가장 쉽고 빠르게 수립하기 위한 과도기적 방안이 제시된다.(540c-541b)

* 1) 그런데 누구에게 배정될지에 대한 논의는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다. 배울 거리들의 배정 대상은 당연히 통치가가 될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소크라테스가 개진하고 있는 배울 거리들의 대상이 갖추어야 할 기본 성향과 소질들 또한 모두가 제3권 수호자의 성향(375a-376c)과 제5권 철학자의 자질(484a-487a) 부분에서 다루어진 내용들과 크게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그것을 따로 반복하고 있는 이유는 통치자가 되기 위한 배움의 과정 특히 최종적인 배울 거리로서 변증술의 습득 과정이 아무나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매우 특별하고도 높은 수준의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다만 ‘가장 잘생긴’eueidestatos이라는 외모 관련 조건은 통치자의 성향으로 여기서 처음 언급된 것이다. 오히려 그 말은 제6권 494c에서 부유하고 명문 태생이지만 지성은 갖추지 않을 수 있는 자를 언급할 때 한 번 사용된 적이 있다. 알키비아데스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 점에서도 외모상 잘 생김은 다른 조건들과 달리 통치자의 필수 조건으로 제시된 것은 아닐 것이다. 전승에 따르면 소크라테스조차 이 기준엔 부합하지 않는다.

* 2) 여기선 위와 같은 자질을 가진 자들 대상으로 언제부터, 어떠한 방식으로 그리고 무엇에 중점을 두어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다룬다. 우선 나이가 들면 배우기 어려우므로 교육은 어려서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방식 또한 자유인답게 강제가 아닌 놀이를 하듯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물론 교육 과정에는 일정한 강제가 개입된다. 그러나 그 경우도 그 강제의 의미를 인지하고 그것을 감내하려는 자발적인 의지가 전제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른바 억지 내지 강요와 근본적으로 구분된다. 게다가 어려서부터 전쟁터에도 데려가 새끼 사냥개들처럼 피 맛도 보게 해야 한다. 그런 연후 필수적인 신체단련 기간이 지나 스무 살 즈음에 이르면 나중 최종적인 배울 거리로서 변증술을 습득하기 위한 예비적인 교육이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전체적인 조망 능력’이 주요 과제로 제시된다. 이것은 변증술적 능력의 요체가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synopis 즉 복잡다단한 사안들을 총체적이고도 통일적인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임을 잘 보여준다. 앞선 강해에서도 살폈듯이 변증술은 총체적인 관점에서 ‘모든 것을 조정하고 모든 것을 다스리며 모든 것을 유용하게 만드는 기술’(<에우튀데모스>290d)이며 ‘누구든지 듣는 사람들의 본성들을 일일이 헤아릴 뿐만 아니라 있는 것들을 부류에 따라 일일이 나누고 그 하나하나를 한 형태에 포괄하는’ 능력이고, ‘하나의 형상이 많은 것들을 관통하여 모든 곳에 퍼져 있음을 그리고 서로 다른 많은 형상들이 하나의 형상에 의해 바깥으로부터 둘러싸여 있음을 분명하게 지각하는’ 능력(<소피스트>(253d )이다.

* 3) 논의의 주제가 ‘배울 거리를 누구에게 어떻게 배정할 것인가’임을 고려하면 ‘배정에 있어 고려해야 할 적극적인 사안’이 중심 내용이 될 것이라 예상되지만 정작 내용을 보면 ‘배정에 있어 경계해야 할 사안’이 논의의 주를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 교육 단계에서 많이 경계해야 할 일이란 앞서 살폈듯이 철학에 적합하지 않은 이른바 서자나 절름발이가 그 한계를 드러내 영혼이 불법으로 가득 차게 되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런 일이 생겨나지 않도록 시험이나 선발 과정에 철저함을 기해야 한다. 그러나 십 년 동안 예비 교과와 철학 일반을 마친 사람들을 대상으로 누가 변증술에 적합한지 아닌지를 가려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때까지는 누가 진짜 적자인지 서자인지 본인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채 인지하지 못한 상태인 데다가 설사 적자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시험을 이겨낼 것이라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 소크라테스의 비유에서 자신이 서자임을 알게 된 사람은 서른 살에 이르러 변증술을 배우기 시작하는 단계에서 철학에 부적절한 자임이 드러난 자를 말한다. 그리고 아첨꾼이란 그들에게 지혜를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그들을 유혹하는 당대 소피스트들과 수사학자들 즉 가짜 철학자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젊은이들 모두 서른 살이 될 때까지는 친부모 밑에서 즉 전통적 신념들을 잘 보전하며 자라왔다고 여기고 있고 이후 변증술을 모두 배우기까지의 기간 또한 절대 짧지 않은 터라, 그들 중 누가 적자와 서자인지 즉 누가 철학에 적합하고 누가 그렇지 않은지를 가려내기란 크게 신중을 요하는 일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이후 교육 단계에서 여러 가지 시험의 방식으로 일부가 변증술에 부적합한 자로 판정되었을지라도 그간의 사정이 이러하므로 그들에게 이해와 연민이 따를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러한 이해와 연민이 생겨나지 않도록 최대한 배움의 시작 단계에서부터 누가 변증술에 적합한지를 잘 가려내지 않으면 안 된다. 철학에 부적합한 젊은이들이 제대로 가려지지 못했을 경우 변증술의 힘의 크기만큼 왜곡된 변증술이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 또한 심대하기에 더욱 그러하다.(539b-c)

* 플라톤이 가히 실감 날 정도로 생생하게 그리고 있는 이러한 그릇된 가짜 철학자들의 모습과 그들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위험들은 당대 지식인들에 대한 플라톤이 겪은 절망스런 체험에서 나온 것으로 플라톤 자신의 절절하고도 심각한 우려를 가득 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당대 아테네의 지적 상태는 오늘날의 철학적 상황에 비추어도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어설프게 논박의 기술을 익혀 당대 지식계를 주도하고 있는 가짜 철학자들의 모습은 오늘날 철학계를 여전히 주름잡고 있지만, 오히려 철학 자체의 위상과 영향력을 그 어느 시대보다 떨어뜨리고 있는 현대 영미 분석철학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플라톤이 2500년 전 토로하고 있는 ‘마치 사냥개 새끼처럼 매번 옆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당겨서 찢어발기기를 즐긴다’는 표현은 오늘날 철학계를 주름잡고 있는 영미 분석철학자들의 행태와 너무도 닮아 있다. 그들은 문제 해결을 위한 절박한 상황에서 생각을 창조하고 구성하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다. 더욱 한심한 것은 형이상학적 문제의식으로 가득한 플라톤 철학 분야에서조차 분석철학자들이 창궐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날이 분화되어가는 오늘날 학문 현실에서 여전히 앎의 극치로서 철학의 총체성이 요구되는 상황임에도 그들이 생산하는 담론들은 마치 사사로운 써클 활동처럼 공적 삶의 세계와 단절되어 그들만의 세계에 갇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놀이로 그들끼리만 공유된다. 논리적 분석과 비판이 진정 의미 있으려면 그 절차의 형식적 정밀성을 따지기 전에 삶의 현실과 관련하여 과연 무엇을 위한 비판과 분석인지, 무엇을 위한 정확성인지를 먼저 되새겨 봐야 한다. 마치 어설프게 변증술의 맛만 보고 전체를 조망하지 않고 그저 형식적 논박을 즐기고 있는 이른바 아첨꾼이나 서자들처럼 철학의 총체성을 간과한 채 그저 주어진 것에 대한 파편적 분석에만 몰두하는 자들은 시대를 불문하고 플라톤의 말대로 가짜 지성, 가짜 철학자들일 뿐이다.

* 그런데 변증술 교육 과정에서 경계할 일로 소크라테스가 제기하고 있는 것과 관련하여 오늘날 전체주의의 폐해를 경험한 우리로서 좀 더 짚어 볼 물음이 있다. 앞서 살폈듯 변증술 교육에서 플라톤이 경계하는 것은 변증술의 요체 중 하나인 질문과 대답 능력 즉 집요하고도 끈질기게 진실에 다가가는 고도의 문답 능력이 잘못 전수되어 초래될 수 있는 위험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변증술의 또 다른 요체이자 핵심 즉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이 잘못 전수되었을 경우 어떤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을지도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일련의 문답 과정에서 일어나는 부작용도 심대하긴 하지만 그야말로 진실 전체를 모든 국면에서 모든 방식으로 전도시킬 수 있는 최종적인 단계에서 발생하는 위험에 비할 바가 못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들은 오늘날 이른바 나치즘, 파시즘, 스탈리니즘 등 이른바 전체주의 정치체제들이 모든 국면에서 전체를 내세워가며 얼마나 나랏일을 황폐화시켰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20세기 이후 많은 사상가들은 그러한 정치체제들은 물론 플라톤의 정치체제까지 민주주의의 적으로 비난을 퍼붓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플라톤은 오늘날 전체주의 정치체제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모자라지 않은 참주정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변증술에서 경계해야 할 사안을 다루면서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이 초래하는 부작용의 경우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왜 그랬을까? 단적으로 말해 그것은 플라톤 자신 그 자체로 이미 애초부터 변증술의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을 참주나 이른바 전체주의자들이 갖춘 능력과 비슷하기는커녕 아예 거론할 만한 어떠한 접점조차 갖고 있지 않은 그야말로 정반대의 것으로 여겼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오늘날 자유주의자들은 단지 권력자의 머릿수를 기준으로 철인왕정과 참주정을 동일시하고 있지만 플라톤의 관심은 오로지 권력이 철학적 지성을 갖추고 있느냐에 있었다. 그러므로 플라톤에게 철인왕정과 참주정은 원천적으로 처음부터 비교조차 될 수 없는 것이었다. 철인왕정은 본질적으로 좋음과 아름다움 자체를 자연세계를 구성하는 우주적 실재이자 진실이며 나아가 정의로운 나라의 토대임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앞으로 제8권에서 밝혀지겠지만 참주정은 위와 같은 우주적 진실과 정의라는 모두의 좋음을 부정하고 오로지 특정 개인 내지 기득권자들만의 좋음을 즉 배타적 이기적 탐욕만을 정치의 원리이자 목표로 내세운다. 그럼에도 오늘날 많은 자유주의자들은 좋음의 형상의 존재와 그것을 통해 나라에서 우주적 좋음을 구현하려는 플라톤의 절절한 선의지를 단칼에 외면하고 플라톤의 철인왕정을 마치 현대 폭압적 전체주의 체제의 시조인 양 비하하고 있다. 물론 그것은 근대 자연과학의 발달과 20세기 피폐한 전체주의적 정치체제의 등장 이후 이른바 ‘선한 우주agathos kosmos’에 대한 믿음 자체가 무너져 버린 데 기인한 것이긴 하다. 그러나 자연사 및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철인왕정에 대한 그들의 비난은 그 시대 나름의 의미와 타당성을 가질 수는 있어도 그들의 견해가 우주적 실재를 관통하고 지배하는 원리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근거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최소한 우리는 현 단계에서 가히 시간적으로 무한하고 공간적으로 무한하다 싶을 정도의 우주가 실재하며 나아가 그 우주가 일정한 질서와 법칙 이른바 자연의 제일성(齊一性, unifomity)을 갖고 있다는 것을 우주적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과학 또한 그러한 전제와 토대 위에서 성립한다. 플라톤의 철인왕정 또한 그러한 믿음을 토대로 우주의 일부로서 인간적 삶의 공동체를 목표로 최대한 우리가 바라고 지향할 수 있는 이상적 푯대로 제시된 것이다. 물론 플라톤의 철인왕정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당연히 비난의 대상이 될 만한 사안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폭압적 전체주의에 대한 플라톤의 혐오는 현대 자유주의자들보다 컸으면 컸지 절대로 작지 않다. 아무려나 플라톤이 살았던 시대건 오늘날이건, 플라톤이건 현대 자유주의자들이건 궁극적으로는 모두가 하나같이 서로 다른 욕망을 가진 사람들끼리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게 공존하길 원한다. 그러한 한, 상이한 여럿의 조화와 공존을 본질로 하는 좋음의 형상 자체는 쉽게 외면할 일이 아니고 또 그렇게 외면될 수도 없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 내부에 현존하는 불멸의 힘이자 희망으로 끝없이 도전을 이겨내고 우리 영혼을 북돋고 고양시키며 인간의 역사를 견인하고 구성하는 하나의 실재체ousia가 아닐 수 없다.

* 4)에서는 변증술의 부작용이 생겨나지 않도록 변증술을 배우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을 잘 가려내야 하고, 나아가 그 배움의 중요성만큼 얼마의 기간 동안 어떻게 그것을 단련하고 실천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 즉 앞서 논의 주제로 제시되었던 배울 거리에 대한 배정의 문제가 다루어진다. 소크라테스가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그 구체적인 연령별 단계별 내용을 어린 아이 시절부터의 교육을 포함하여 함께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i) 4-5살부터 17-18살까지 : 시가 및 체육 교육

시가교육(376e-403c)과 신체 단련 교육 즉 체육 교육(403c-412b)은 제2권과 제3권에서 다루고 있다.

ii) 17, 18-20살(2-3년) : 필수적인 신체 단련 기간(537b)

이 기간은 청소년 시절 시가와 더불어 진행된 체육 교육이 아니라 군대에서 의무적으로 복무하는 기간을 말한다.

iii) 20-30살(10년) : 변증술을 위한 예비적 배울 거리들을 배우는 기간(537c)

스무 살이 된 자 중 선발된 자를 대상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이 기간은 변증술에 적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가늠하는 가장 큰 시험이 되는 기간이다.

iv) 30-35살 : 변증술을 단련하는 기간(537d-539e)

서른 살이 된 자들을 대상으로 오로지 변증술적 논변에 참여하고 그것을 단련케 하는 기간이다. 이때 변증술의 맛만을 보고 그릇되게 사용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초기 단계부터 조심해야 하고 만약 그런 경우가 생기는 경우 그런 자들을 걸러내야 한다.

v) 35-50살(15년) : 의무적으로 나랏일을 실제 경험하고 실습하는 기간(539e)

앞선 모든 과정에서 가장 뛰어난 자들로 하여금 경험에서 남들에 뒤지지 않도록 전쟁 업무를 포함하여 그들에게 맞는 관직을 의무적으로 수행케 하는 기간이다. 통치자가 나랏일을 관장하는 최고 관리직이라면 이들은 그들을 보조하는 관료들이라 할 것이다.

vi) 50살 이후 : 통치자로 임명되어 번갈아 가며 통치 업무를 수행하는 기간(540a-b)

이들 중 쉰 살에 이른 자들을 대상으로 다시 선발 과정을 거쳐 변증술의 최종단계인 좋음의 형상을 본 자들을 통치자로 임명한다. 이들은 남은 생애 대부분을 철학을 하며 지내면서 자신의 차례가 되면 좋음 자체를 본으로 삼아 통치 업무를 수행하고 동시에 장차 통치자가 될 수호자들을 길러낸다. 그리고 사후에는 복된 자들의 섬에서 거주한다.(540b-c)

 

* 5) 그리고 끝으로 소크라테스는 앞서 다루었던 나라와 정치체제와 관련한 모든 이야기가 전적으로 기원euchē에 불과한 것들이 아니라 어렵긴 하지만 어떤 식으로는 가능한 것들이라고 말한다. 플라톤의 이상국가의 실현 가능성과 관련한 이전의 논의(강해 64)에서도 이미 살폈듯이 매우 제한적인 조건에서만 가능할 정도로 그 실제적인 가능성은 극히 낮다. 그런 점에서 <국가>의 정치체제는 플라톤에게도 실제로는 말 그대로 말로 세우는 이상으로서 정치체제이다. 그리고 철학자 왕이 ‘한 명이냐 여럿이냐’의 문제 역시 앞선 강해(강해 44)에서 살폈듯이 플라톤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오로지 중요한 것은 이곳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여럿이든 한 명이든’ 그 사람이 진정한 철학자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플라톤은 이곳에서 제5권(456a-466e)에서 이미 밝혔듯이 그 통치자에 여성 또한 포함되어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다.

*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나라와 정치체제를 가장 쉽고 빠르게 수립하기 위한 방안을 이곳에서 제기하고 있는데 그것은 말로 세운 국가가 안정적으로 구축된 이후 상시적으로 시행되는 방안이 아니라 현실국가를 이상 국가로 정화하는 단계에서 과도기적으로 요구되는 방안이다.

 

* 이로써 제5권에 들어와 배우자 공유에 대한 이의가 제기되면서 논의 일탈의 형식으로 제시된 주제 즉 통치자로서 철학자 왕의 불가피성 그리고 그들을 위한 교육 내용과 단계에 관한 논의가 제7권을 끝으로 모두 마무리된다. 그러니까 정의로운 나라와 사람 그리고 그 반대로 부정의한 나라와 사람을 비교하여 누가 더 행복한가를 살피고자 했던 최초의 논의 계획의 전반부 즉 정의로운 나라와 그 나라를 닮은 정의로운 사람에 관한 논의가 모두 마무리된 셈이다. 이제 부정의한 나라와 그것을 닮은 사람에 관해 논의할 차례이다. 제8권부터 우리는 그 주제와 마주한다. -제7권 끝-

 

다음 주제 : VI 본론 3 : 부정의와 현실 비판 – 현실 국가 분석(제8권-제9권)

A. 부정의한 나라들과 부정의한 개인들.

  1. 도입부 : 원래 문제로 복귀. 고찰의 방법과 순서(543a-545c)

헤겔 형이상학 산책 47-수학적 명제는 선천적 종합 명제인가?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47- 수학적 명제는 선천적 종합 명제인가?

 

1)

논리학은 정량을 다루는 가운데, 수 개념을 제시한다. 이 수는 정량을 대표하는 것 즉 상품을 대표하는 화폐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수가 지닌 모든 속성은 정량에서부터 유래한다.

이런 관점에서 헤겔은 수학에 관한 여러 가지 철학적 논의에 개입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칸트가 <순수 이성 비판>에서 제시한 주장 즉 ‘수학적 명제는 선천적 종합 명제다’라는 주장이다. 헤겔은 이를 주석에서 다루는데, 그의 주장에는 우리의 흥미를 끌 만한 요소가 있어 여기 소개한다.

알다시피 칸트는 아주 기초적인 수학적 명제를 예로 든다. 즉 ‘7+5는 12라는 명제’다. 칸트는 여기서 ‘더하기’라는 개념을 분석하더라도, 그 더해진 수가 ‘12’라는 사실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이 12라는 수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손가락을 이용해 7개를 세고, 더 나가서 5개를 더 세어야 한다. 이렇게 세어진 결과 구부려진 손가락을 직관하면서, ‘12’라는 수를 떠올린다. 그러므로 칸트는 개념을 넘어서 경험적 직관의 도움 없이는 위의 명제를 알 수 있는 길이 없다고 말한다.

헤겔은 칸트의 이런 주장을 비판하면서, 위의 수학적 명제는 분석적 명제라고 말한다. 즉 경험적 직관의 도움이 없어도 위의 명제가 진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에서 ‘더하기’란 가장 외면적인 관계를 말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양적인 것은 대자 존재적인 일자들 사이에 서로 외면적인 관계, 서로 동등하면서도 서로 구분되는 관계를 다룬다고 했다. 양자의 서로 동등한 관계가 곧 물질적 관계며, 양자의 서로 구분되는 관계가 공간적 관계다. 물질적인 관계와 공간적 관계는 상호 동전의 양면이다.

이런 양적인 것의 관계는 가장 외면적인 관계다. 여기서 서로 관계하는 일자들 사이에 어떤 내적인 연관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외면성은 기하학적 공간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기하학적 공간은(일단 여기서는 유크리트적 공간을 말한다) 텅 비고 동질적이어서 그 속에서 도형을 아무리 이리저리 이동하더라도 그 도형은 서로 합동이며 즉 도형의 내적 성질은 그런 공간적 이동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양적인 것은 가장 외면적 공간이어서 그 속에서 정량들이 맺는 관계는 그 정량들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7개에 5개를 더하더라도, 전자의 개수가 7개인 것에는 변함이 없고 후자에 개수 5개 역시 그대로 남아 있으니, 12개의 개수가 보존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12개의 개수가 보존된다는 것이다. 이는 어떤 직관이나 경험의 도움이 없이도 알 수 있는 사실이며 이는 분석적인 사실이다.

칸트는 12개의 개수가 있을 때 이를 ‘12’라는 총수로 표현하기 위해서 경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했으나, 이것은 언어적 표현의 문제이다. 12개의 개수를 ‘12’라는 수로 표현하는 것은 12라는 수의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언어로 표현할 것이다. 만일 12개의 개수를 표현하는 언어가 ‘12’라는 수가 아니라, ‘한 다스’라는 언어이어서 그 결과를 ‘한 다스’로 표현하더라도 문제는 없다. 어떤 언어로 표현하느냐는 언어적 문제이지 ‘더하기’라는 사태의 본질은 아니다.

2)

칸트가 수학이 선천적 종합 명제라는 주장의 예로 또 하나 끌어들인 것이 기하학의 명제다. 그것은 곧 ‘직선은 두 점 사이의 최단 거리다’라는 명제다. 이 명제가 선천적 종합 명제라는 주장에 대한 칸트의 논증은 간단하다. 직선이라는 개념은 질적인 개념이다. 직선은 ‘곧바른’, ‘단순한’ 선이라는 말이니 말이다. 반면 ‘최단은 양적인 개념이다. 즉 길이가 가장 짧은 것이라는 의미다. 질적인 개념에서 양적인 개념이 나오지 않으니, 위의 명제는 분석적인 것으로 이해할 수 없다. 이는 경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명제다.

헤겔은 여기서 칸트가 직선 개념을 오해했다고 한다. 직선은 단순히 성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직선에는 이미 양적인 개념이 들어 있다. 즉 직선은 그저 ‘곧바른 것[Gerade]’ 가 아니라 ’곧바른 선[Gerade Linie]’이므로 위의 기하학적 명제는 양적인 개념에서 양적인 개념을 끌어낸 것일 뿐이다.

이렇게 칸트를 반박한 다음, 헤겔은 직선 개념에서 최단 개념을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끌어낸다. 직선은 가장 ‘단순한’ 선이니 ‘자기 관계하는’ 선이고, 이런 ‘자기 관계’는 “어떤 종류이든 규정의 상이성이나 그 바깥의 점이나 선에 대한 관계도 정립되지 않은 것”이니, 따라서 ‘최단’의 선이다는 것이다. 그 논증의 핵심은 곧 직선은 두 점 사이에 놓인 축에서 벗어난 제3의 점을 거치지 않으므로, 즉 우회를 거치지 않으므로 최단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기초한다.

“직선이라는 규정은 사실 다름 아니라 단적으로 단순한 선이다는 즉 그 탈자화(점의 운동) 가운데 단적으로 자기 관계하며, 그 확장 속에서 어떤 종류의 상이한 규정이나 자기 바깥의 점이나 선에 대한 어떤 관계도 성립하지 않는, 단적으로 자체 내 단순한 벡터[Richtung]라는 의미다.”(논리학 재판, GW21, S. 200)

헤겔의 논증은 겉으로 보기에도 좀 억지 또는 궤변처럼 보인다. 기하학적 명제에 관한 한, 칸트가 말한 것처럼 경험적 성격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등장하면서 기하학적 논증이 일정한 특수한 공간에서 성립한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정신현상학> 서문에 보면, 거기서 헤겔은 기하학적 명제의 증명이 작도에 의존하며, 그런 작도는 경험을 통해 우연히 발견된 것이라는 사실을 들어서, 기하학적 명제가 순수하게 개념적이며 분석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헤겔은 여기서 비록 칸트가 예로 들기는 했더라도, 굳이 기하학적 명제를 끌어들여, 수학이 분석적이라는 자신의 주장을 혼란스럽게 만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기하학은 해석기하학을 통해 수학으로 환원됐으며 해석기하학은 특수한 공간에 적용되는 유클리드 기하학과 달리 순수한 양적인 공간 속에서 전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학적 명제의 성격에 관해서 이미 다분히 경험적인 기하학적 명제를 끌어들이지 않고 수의 관계를 통해서 분석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3)

알다시피 칸트는 이런 수학적 명제는 경험적이면서도 필연적(보편적)이어서, 그 때문에 선천적 종합 명제라 불렀다. 흥미로운 것은 헤겔이 앞에서 말한 것처럼 수학적 명제가 경험적이라는 사실을 부정한 것에 그치지 않고 나아가서 수학적 명제가 필연적이라는 사실 역시 부정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헤겔은 수학적 명제가 분석적이라고 했다. 분석적이라면 필연적이 아닌가? 적어도 칸트의 용법에서는 그렇다. 그런데도 헤겔은 그 필연성을 부정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여기서 헤겔의 필연성 개념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헤겔에서 필연성은 사태가 내적으로 연관돼서. 연관된 하나의 사태에서 다른 사태로 이행하는 것이 필요하고도 충분한 경우를 말한다. 그런데 수학적 명제가 토대를 두고 있는 양적인 것의 관계는 서로 외면적인 것이다. 동일한 일자가 반복되면서 맺는 양적인 관계는 같은 것의 반복(물질적 측면)이어서 연속적이며 그런 한에서는 전적으로 동어반복적인 필연성을 지닌다. 그러나 동시에 이 관계는 서로 단적으로 다른 것의 관계(공간적 측면)이어서 불연속적이며 그런 한에서는 서로 무차별하다. 이런 무차별한 측면에서는 그 관계는 전적으로 우연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 수의 관계를 보면, 같은 것의 반복이라는 측면에서 분석적이다. 그러나 다른 것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전적으로 우연적인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구체적 사물을 일자라는 것으로 추상화해서, 즉 단순한 물질이나 공간으로 볼 때, 이 사물의 수적 관계는 분석적이다. 그러나 어떤 일자를 구체적인 것으로 본다면, 이것들의 관계는 비록 수학적으로 표현되더라도 필연적이 아니고 우연적이다.

즉 손가락을 추상화하며 동일한 일자로서 볼 때 여기서 더하기는 분석적이다. 그러나 손가락을 구체적 사물로 볼 때(수자는 본래 손가락을 지시하는 명사였다는 것을 기억하라), 즉 손가락 두 개로 보지 않고 예를 들어 엄지와 검지, 중지로 보면, 이런 구체적 사물의 관계에서 더하기라는 관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엄지와 검지를 더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며, 이를 통해 중지가 나온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런 관계는 그때그때 구체적인 관계이며, 수적인 필연성을 지닌 관계는 아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생각이 떠오른다. 칸트는 수학적 명제를 선천적 종합 명제라 했다. 헤겔은 수학적 명제는 분석적 우연의 명제로 보아야 한다고 한다. 최근 언어철학자 크립케는 고정지시어를 경험적이며 필연적 명제라 했는데, 그의 주장은 칸트에 가깝다기 보다 헤겔에 더 가깝다.

4)

수학적 명제가 이처럼 추상적인 일자의 관계 즉 추상적인 물질이나 공간에서나 적용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헤겔은 수학의 한계를 본다. 근대에 들어와 수학은 자연과학의 도구로서 혁혁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 때문에 철학자들은 수학적 관계를 일반화해서 세계의 모든 관계를 표현하려 시도했다. 즉 수학을 철학의 방법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헤겔은 자연과학에서 수학이 놓아준 성과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헤겔은 역학적 물체를 다루는 영역은 전적으로 양적인 영역이니, 여기서 수학을 적용하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한 일이라 한다. 수는 정량을 대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헤겔은 이를 충분히 인정하는 가운데서도 수학적 관계를 일반화해서 자연 전체를 즉 생물학이나 심지어 인간 사회를 이해하는 도구로 사용하려 할 때 이런 철학적 시도에 관해서는 비판적이다. 생물이나 인간의 경우에는 이미 더 복잡한 물질적 체계를 가지고 있으니, 여기에 수학적 관계를 적용한다는 것은 생물이나 인간을 역학적 물체로 환원하는 것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진정한 사상, 가장 생동적이며 가장 운동적이고 단지 관계 속에서만 개념화되는 것이 이같은 탈자의 지반[즉 수] 속으로 옮겨지면서 죽은 운동이 없는 규정으로 변한다. 따라서 사상의 규정과 관계가 풍부할수록 수와 같은 형식으로 사상을 표현하는 것은 더욱 황량하고 자의적인 것이 된다.”(논리학 재판, GW21, S. 205-6)

물론, 헤겔은 수학적인 것이 감각적인 것과 사상의 가운데 있는 추상적인 일자의 영역 즉 양적인 영역이므로 수학적인 것은 사유를 통해 사상에 다가가는 예비적 단계로서 사유를 훈련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철학자가 수학을 배우는 것은 마땅한 일이라고 본다.

그리고 사상을 상징하는 하나의 기호로 수를 사용한다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본다. 기호이란 표면적인 유사성(도상)이나 단편적 흔적(지표), 관습적 관계(상징)만으로도 상징으로서 충분한 역할을 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삼위일체와 같은 수학적 상징이 그러하다.

그러나 헤겔은 ‘삼위일체’라는 수학적 상징은 개념의 발전 즉 일반성, 특수성, 개별성 사이의 내적 필연적 연관을 성자, 성부, 성령과 같은 자연적인 가족적 관계로 오해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이런 수학적 상징은 수가 서로 무차별하게 존재하는 것이므로 개념의 내적 발전이나 연관을 은폐함으로써 오히려 그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는 것을 어렵게 하기도 한다는 한계가 있다. 다음과 같은 헤겔의 한탄을 들어보라.

“고대인은 사상규정을 위한 수적 형식의 불충분성을 매우 올바르게 통찰하고 있었으며 사상을 위한 임시변통 대신에 사상에 본래적인 표현을 마찬가지로 올바르게 요구했다. 고대인들은 숙고의 측면에서 오늘날 사람들보다 얼마나 더 나았는가, 왜냐하면, 오늘날 사람들은 다시 수 자체와 수적 규정을 … 사상 규정 대신에 정립하면서 무능력한 유아 단계로 되돌아가는 것을 어떤 가상할 만한 것이며 근본적이며 심원한 것으로 여긴다.”(논리학 재판, GW21, S. 205)

하버마스, 『세상은 더 나아져야 한다』(2024) – [6] [내게는 이름이 없다]

하버마스세상은 더 나아져야 한다(2024)

Es musste etwas besser werden

Gespräche mit Stefan Müller-Doohm und Roman Yos

 

옮긴사람 행길이(한철연 회원)

 

[6]

 

3. 실증주의 비판에서 기능주의적 이성 비판으로 –  –

 

□ 기술 사회학(beschreibende Soziologie)도 사회적 갈등의 측면들을 충분히 잘 조명하고 있습니다이에 비해 당신의 비판 사회이론(kritische Gesellschaftstheorie)이 더 나은 점은 정확히 무엇입니까?

 

■ 정치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즉 기존 정치적 지배를 정당화하는(legitimieren)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은 그저 특별한 경우일 뿐입니다사회 비판은 일반적으로 행위 주체와 그에 상응하는 제도들의 합리성 전제(Rationalitätsunterstellungen)에서부터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예를 들어 민주적 법치국가에서 시민들은 법정에서 어느 정도 공정한 판결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것은 현실주의자들이나 비판 법학(Critical Legal Studies)을 지지하는 이들이 제시하는 주장즉 판사들이 내리는 판결에는 이해관계에 편향된 동기들이 있다는 점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달라지지 않습니다—을 전제로 삼고 있기 때문에 법정에서 갈등을 해결해 보고자 합니다시민들은 합리성 전제가 성립될 수 있을 경우에만 법적 해결을 신뢰하면서 참여합니다이러한 합리성 전제는 때때로 [체제 반대와 같은일탈 행위를 설명하는 데에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예를 들어어느 정도 기능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들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경청될 수 있고정치 과정에서 자신들의 의견이 중요하게 여겨진다고 암묵적으로 전제할 때에만 습관적으로 총선에 참여할 것입니다민주 헌법은 심지어 그들의 표가 다른 모든 시민의 표와 동일한 가치를 가진다고 약속하기까지 합니다이러한 것들 역시 이상화된 전제들이지만 이것들은 사회적 결과를 낳습니다왜냐하면 지속적으로 소외되었다고 느끼는 유권자들은 더 이상 선거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오늘날 우리는 그러한 투표거부자들(Nichtwähler)이 종종 포퓰리즘 운동에 동원되는 것을 목격합니다그러나 이때 그들은 자신을 체제 반대자(Systemopposition)’로 이해하면서 민주적 선거의 전제 조건을 가지고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작동을 가로막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참여합니다이러한 [체제거부적실천들에서 문제거리가 되는 것은 참여자들에게 요구하는 이상화된 전제들이 아니라 제도 자체의 신뢰성입니다이를테면 소외된 투표거부자들과 그들의 이해관계를 정당정치적 차원에서 참작하지 못함(parteipolitische Nichtberücksichtigung) 사이를 돌고 도는 악순환이 발생하거나공적 의사소통의 기반구조가 붕괴하여 충실한 정보에 입각한 공적 의견이 아닌 어리석은 원한감정(dumpfe Ressentiments)이 마당[공적 의사소통 공간즉 공론장]을 장악하게 되는 일이 벌어지는 거죠비판 사회이론은 이러한 체제 반대의 실천 경향을 민주적 절차에 함축된 이상화된 전제에서 갈라져나온 것이라는 식의 합리적으로 재구성된 이해를 가능하게 합니다바로 이것이 오로지 객관화로만 접근하는 기술 사회학적 설명보다 비판 사회 이론이 낫다고 할만 한 것입니다.

 

□ 그렇다면 당신의 견해를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까요정치적 행위 영역에서 행위자들의 다소 합리적인 의도 및 의견을 경험 사회학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그저 첫 단계에 불과하며행위자들(Handlungsakteure)의 실천은 민주적 제도들의 객관적 의미에 비추어 생각해 볼 때 비로소 드러나게 되는 규범적 기대를 재구성하기 위한 접근법으로 보완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죠왜냐하면 우리가 [민주적 제도들의 객관적 의미에 비추어 행위자들의 규범적 기대를 재구성하지 않는다면 행위들에 대한비판적 판단을 형성할 수 있는 어떠한 기준이나 척도도 가지지 못하게 될테니까요.

 

■ 네저는 이런 논점에 대해 『의사소통 행위 이론』을 가지고는 전문가들을 설득하지 못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그런 상황 속에서 저는 이성(Vernunft)’을 주관적 능력이 아니라 상호주관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의사소통적으로 사회화된 주체들이 공동의 언어를 가지고 근거들의 공간을 공유하면서 담론적으로 규제된 주제입장논증의 교환에 참여하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루만(Luhmann)의 체계이론도 자기성찰성에 바탕을 두고 이론을 전개한다는 특징을 공유하고 있습니다그는 이러한 종류의 성찰성을 (전통적 철학 개념으로서의이성에 귀속시키지 않습니다그런 의미에서 루만 역시 사회이론에 종사하고 있습니다그렇지만 그는 자기성찰(Selbstreflexion)’을 처음에는 후설(Husserl)적인 생활세계(Lebenswelt)’ 개념으로 파악하다가 생물학을 모범형으로 삼아 그것을 다시 대상화합니다체계의 자기성찰은 다음과 같습니다복잡한 환경에 직면한 체계는 자기 준거적 경계 유지(selbstbezügliche Grenzerhaltung)를 고수하면서 환경에 대한 대응 기능을 자기산출적으로(autopoietisch) 제어합니다즉 그의 이론에서 자기성찰은 세계에 존재하는 개별적인 것들(Entitäten in der Welt)을 끝내 관찰 가능한’ 것으로 파악하려는 특성을 버리지 않습니다.

 

□ 힘차게 노 저어 가다보니 어느새 루만과의 논쟁 지점까지 도달버렸습니다이 논쟁은 근대에 대한 철학적 담론에 관한 당신의 설명을 배경으로 염두에 둬야만 하는 것이죠만

 

■ 맞습니다그 부분은 지금 나누고 있는 대화 주제의 범위에서 벗어난 듯 하군요제가 합리적 재구성[사회 현상이나 행위자들의 행위에 내포된 규범적 기대와 가능성을 합리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에 대해 너무 길게 설명했는데요이 부분은 변증법의 역할에 대한 당신의 원래 질문과는 관련이 없습니다당시 실증주의 논쟁에서 아도르노의 부정 변증법은 주제가 아니었고방법론적 담론에서도 다룰 것도 아니었습니다제가 이해한 바로는 헤겔의 변증법은 엄격한 의미에서 결코 논리학이 아닙니다오히려 범주론(Kategorienlehre)이죠헤겔은 이 범주론을 지나치게 보편화했지만 사실 그것은 마르크스가 뚜렷하게 강조했듯이 특정한 문제의식에 맞춰진 것이었습니다즉 당시 부르주아적’ 사회다시 말해 다소 자유주의적인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 위기의 전개 양상과 그 동학을 묻는 질문에 대해 어떤 개념들로 답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의식 말입니다.

우리가 앞서 헤겔이 근대 사회의 위기 경험즉 인륜적’ 생활 형식의 해체를 야기하는 압도적 소용돌이라는 위기와 그에 대한 대응으로서 제기되었던 대답즉 해체된 생활 관계로부터의 해방의 운동을 어떻게 특수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나타나는 배열 변화로 파악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이러한 것들은 기존의 총체성이 해체되고 다시 복원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총체성의 특징은 개별적인 것특수한 것 그리고 보편적인 것을 강제없이 통합한다(zwanglos integriert)는 것입니다저는 제 최근 저서의 헤겔 장에서 점점 늘어나는 사회적 복잡성과 심화하고 있는 개별화의 조건(Bedingungen wachsender gesellschaftlicher Komplexität und fortschreitender Individuierung아래에서 이러한 위기와 화해 경험을 언어 화용론적 방법을 통해 풀어내려 시도했습니다. 이 방식으로 풀어내보면헤겔의 총체성 개념과 그에 관련된 변증법이란 것은 서로를 만족스럽게 통합된 생활 형식의 구성원으로서 인정하는 개인들의 자기 서술(Selbstbeschreibung)에 결부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저는 헤겔 변증법의 논리적 기본 개념에 담긴 규범적 의미를 개인들이 참여자적 관점에서 생활 형식의 상태를 표현하고자 할 때 사용해야 하는 인칭 대명사의 수행적 의미를 통해 설명합니다즉 생활 형식에 대한 소속감이나 소외감을 표현할 때는 인칭대명사를 [관찰자의 입장에서가 아니라참여자의 입장에서 수행적 의미로 사용한다는 겁니다왜냐하면 개별성(Individualität) –또는 비동일적인 것(das Nichtidentische)–의 모습은 기술적 관찰자의 객관화된 시각으로는 단지 지칭할 수만 있을 뿐 그 자체로는 결코 파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즉 그것은 관찰자의 관점에서 3인칭으로 기술되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라고 말하는 1인칭의 관점으로 전환할 때 비로소 언어의 공간 속으로 들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물론 그것이 끝없는 자서전적 맴돌기(Einkreisung)의 형태로만 가능할 뿐그 자체를 완전히 표현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죠.

제 생각에는 헤겔 변증법의 기본 개념들은 본래 특정한 경험에 불과한 것을 집합적 형식으로 자기 서술하는 것즉 헤겔이 『법철학』에서 분석한 근대 사회의 위기 경험을 우리라는 말로 행했던 자기 서술에 적합한 것이라고 여겨집니다이 개념 장치를 국지적 적용 대신에 헤겔처럼 객관화하여 모든 존재하는 것즉 자연과 정신 전체에 적용하는 경우 이는 역사 철학적인 포편화를 암묵적으로 시도하는 것입니다그래야만 위기 상황을 표현하는 모든 사회 현상을 선험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즉 이 위기는 관련 당사자들의 관점에서는 해결이 필요한 것으로 파악되는 것은 물론이고변증법적 필연성의 관점에서는 (비록 잠정적일지라도해결이 가능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이죠.

헤르만 둔커(Hermann Duncker), “막스 슈티르너의 철학은 실제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 ② – [유령(Spuk)을 파괴하는 슈티르너(Stirner)]

헤르만 둔커(Hermann Duncker)[1]

Max Stirner’s Philosophy Is Actually Worth Reading

막스 슈티르너의 철학은 실제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 ② –

이 글은 헤르만 둔커(Hermann Duncker, 1874~1960)의 글을 2024년에 훔볼트 대학교 사회비판센터 연구원 야콥 블루멘펠트(Jacob Blumenfeld)가 영역하고 이것을 다시 우리 말로 옮기면서 옮긴이가 주석을 단 것입니다.

옮긴이 박종성(한철연 회원)

 

  • 프롤레타리아트를 위한 철학

어떤 사람은 ―이론뿐만 아니라 민중을 위한 과학, 프롤레타리아트를 위한 예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실천은 또한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교육과 지식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는 작품을 사람들에게 제공했습니다. 디츠출판사(the Dietz publishing house)에서 나온 다양한 역사서, 노동자 도서관Workers’ Library의 과학 및 경제 서적은 프롤레타리아가 ―그 책들을 손에 넣기만 한다면―이미 이른바 “고등 교육”으로 세례를 받은 부르주아지보다 지적으로 우월해질 수 있는 지식의 보고(寶庫)를 제공합니다. 이러한 지적 산물의 다양성을 감안할 때, 한 영역이 거의 완전히 지나쳐 버린 것처럼 보이는 것은 놀랍습니다: 철학! 사회주의자의 세계관은 철학에 기반을 둘 것을 요구하지 않나요? 이러한 필요성에 대한 느낌 때문에 당시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오이겐Eugen] 뒤링Dühring[1]에 대한 논쟁[2]을 더 광범위하고 대중적 방식으로 수행했을지 모르지만, 그의 과학 혁명(revolution of science)은 그의 작업의 비판적 성격이 수반하는 것처럼 철학적 파편들을 하나로 묶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 일에서 체계을 뽑아내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한 체계를 만들려는 시도는 레오폴트 야코비(Leopold Jacoby)[3]의 『발전의 이념』(Idea of Development)[4]에서 착수되었으며, 그 중 1-2부가 출판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작가의 죽음으로 인해 작품을 하나의 전체(a whole)로 확장하고 완성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야코비가 발전시킨 것은 어느 정도 자연 철학(philosophy of nature)입니다. ―그 자신의 직업은 자연 과학자(natural scientist)였습니다. 자연 과학의 부산물인 철학은 수많은 대중적 철학 논문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러나 그 가설(hypotheses)의 다소 심각한 모호함은 철학을 비난합니다. 우리는 [루드비히] 뷔히너의 『힘과 물질』(Force and Matter)[5]에서 일어난 것처럼 오래 전에 쓸모없고 입증되지 않은 그들의 이론들이 값싼 대중 판의 경노(channels)을 통해 노동 대중에게 스며든다는 사실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왜 현대의 인생관은 자연 과학을 통해(via) 장거리 우회를 통해서만 발전되고 촉진되어야 할까요?

칸트학파의 인식론적 철학(노동자 철학자인 [조제프Josef] 디츠겐Dietzgen[6]은 그의 저서 『철학의 긍정적 결과』(Positive Outcome of Philosophy)[7]에서 여전히 이 철학을 고수하고 있음)은 자연 철학으로 대체되었습니다. 하지만 자연 철학 역시 심리적 토대를 찾는 새로운 철학적 접근을 위한 길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과학적 지평의 변화와 함께 철학자의 대상도 바뀌었는데, 이전에는 철학자의 대상이 관념론의 영혼(idealistic soul)에서 유물론의 육체(materialistic body)으로 넘어갔다면, 이제는 두 대상이 하나로 결합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 안에서(in oneself) 이러한 결합을 인식했기 때문에, “현실의 나”(realistic I)는 철학적 성찰의 출발점이자 대상이 되었습니다.

[헨리크Henrik] 입센(Ibsen)[8], [표도르Fyodor] 도스토옙스키(Dostoyevsky)[9], [리하르트Richard] 데멜(Dehmel)[10] 등의 현대 예술 작품에서 격언처럼 들리기도 하고, 프리드리히 니체에서 가장 젊고 눈부신 대표자를 찾기도 했던 “나 철학”(I-philosophy)은 개인에서만 출발합니다. 전제 조건이 없다는 점, 즉 자신의 자기 지식(self-knowledge)에 국한된다는 점에서 이 철학은 특히 노동자에게 적합합니다. 어릴 적부터 자신의 안전(hide)을 시장에 내놓게 만든 자본주의 체제는 대학에서 자신의 나(ego)에 화려한 모자를 씌우는 부르주아 소년보다 훨씬 더 쉽게 그의 인격(personality)을 일깨워줍니다. 노동자가 존재를 위한 투쟁에서 풍부하게 수집하는 삶의 경험은 곧바로 자신의 노동력의 가치(worth) 또는 가치(value)[11]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 일은 자신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자기 인격의 가치 또는 유산 계급(propertied classes)의 세계와 관련하여 그 가치(worth) 부족에 대해 쉽게 숙고하게(to reflections) 됩니다. 사회주의자 운동을 지탱하는 것이 대중의 각성된 자기의식(awakened self-awareness)이 아니라면 무엇일까요! 여기서 자기의식(Self-consciousness)과 자기확신(self-confidence)은 상호 연관되는 용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는 다른 하나 없이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소유한 것보다 자신이 소유하지 못한 것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따라서 정의와 폭력, 국가와 법, 재산과 가족에 대한 생각은 상속받지 못하고 재산을 빼앗긴(dispossessed) 프롤레타리아의 머릿속에 쉽게 자리 잡습니다. 그의 생각은 현상 유지(status quo)[12]에 얽매이지 않고, 국가라는 신성한(hallowed) 기관에 머물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지만, 승리할 세상이 있기 때문입니다![13]

 

이 나-철학의 가장 명확하고 심오한 구축자는 막스 슈티르너이며,

『유일자와 그의 소유』는 모든 생각하는 노동자의 손에 있어야 하는 책입니다.”

 

이 모든 사고방식은 “개인의 철학”과 평행을 이루는 것이 아닌가? 후자는 이미 프롤레타리아트를 위해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현상을 개념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훨씬 더 힘들고 불완전하게 시도했다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철학적 치료는 체계의 전체 구조를 통해 개인의 관찰을 일깨우고 지원하며, 철학적으로 사색하는(philosophizing) 개인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통찰력과 전체상(overview)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큰 이점이 있습니다. 이 나-철학의 가장 명확하고 심오한 구축자는 막스 슈티르너이며, 『유일자와 그의 소유』는 모든 생각하는 노동자의 손에 있어야 하는 책입니다.

니체는 종종 슈티르너의 후계자라고 불렸고, 연대기적으로 볼 때 이에 반대할 수 있는 말은 없습니다. 슈티르너는 니체보다 약 40년 전에 글을 썼습니다. 그러나 내용에 따르면, 슈티르너는 니체의 파편들(fragments)을 완성하고 종합하기 때문에 관계를 뒤집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 일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철학적 교사로서 슈티르너를 우리에게 가장 추천하는 것이기 때문에, 둘 사이의 큰 대조를 언급해야합니다.

니체는 귀족, 슈티르너는 평민(올바른 의미에서 평민을 뜻함)입니다. 니체는 문화(culture)에 지친 교양인(cultured)을 위해 세련되고 예술적 문체로 글을 썼는데, 이는 무한한 여가 시간과 이해를 위한 긍정적(positive) 지식을 전제로 하며, ―노동자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어렵게 획득할 수 있습니다.

슈티르너는 편견과 환상뿐만 아니라 국가 권력과 착취(exploitation)라는 수 세기에 걸친 노예 상태의 멍에를 떨쳐내야 하는 자기중심적 사람(egoist)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의 언어는 꾸밈없고 거칩니다. 그리고 그는 자유로운 시선(free gaze)과 자유로운 마음만을 전제로 합니다. 그는 여러 곳에서 프롤레타리아의 감정과 프롤레타리아의 힘에 호소합니다.[14]

먼저 슈티르너를 읽어야 한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기독교와 1840년대의 자유주의에 대한 그의 긴 논쟁의 일부는 건너뛰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인민”(people), “자유주의”, “공산주의” 같은 용어는 역사적 맥락(historical context)에서 설명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책이 이미 50년이 넘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곧 잊어버릴 것입니다.

부르주아지 발전의 역사, 교회와 국가, 법 이론 등에 대한 그의 발언에는 광범위한 통찰력이 풍부하게 담겨 있습니다. 빈곤(pauperism) 문제, 즉 그 시대의 “사회적 문제”에 대해 그가 말한 내용은 294페이지에 나와 있습니다(하지만 아마도 몇 가지 예가 가장 좋은 통찰력을 제공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국가들이 집단 빈곤을 없애야만 한다고 요구하였다. 나한테 그것은 국가가 자기 자신의 머리를 베어서 자신의 발 앞에 놓아야만 한다고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15]

 

그리고 더 나아가 p. 296:

집단 빈곤은 나의 무가치성이고, 내가 나를 이용할 수 없다는 현상이다. [282] 그 때문에 국가와 집단 빈곤은 하나이고 같은 것이다. 국가는 나를 내 가치에 도달하도록 허용하지 않고 내 무가치함을 통해서만 계속 존재한다. 비록 국가가 나로부터 얻은 그런 소비는 오로지 내가 자식(proles)414(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을 조달하는 데 있다 하더라도, 국가는 항상 나로부터 이익을 얻는 것에, 다시 말해 나를 착취하고 철저히 이용하며, 소비하는 것에 여념이 없다. 그러니까 국가는 내가 ‘국가의 창조물’이길 원한다.

나로서의 내가 나 자신을 가치 있게 사용할(verwerte) 때, 내가 자신의 가치(Wert)를 나 자신에게 줄 때, 그리고 나 자신의 값을 스스로 만들 때, 그때만 집단 빈곤은 없어질 수 있다. 나는 번영하기 위해서(umemporzukommen) 반드시 저항해야(empören) 한다.[16]

 

이 시점에서, 불행하게도 오늘날 종종 결정적 역할을 하는 또 다른 요점을 다룰 수 있습니다.

슈티르너가 ―“아나키즘의 철학자”로 의심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철학에 대한 이러한 의혹에 대해 누구도 충분히 호되게 반대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든지 누구에게나 이용당할(be exploited by)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슈티르너가 현대 사회주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심지어 [빌헬름Wilhelm] 바이틀링(Weitling)과 [Pierre-Joseph피에르 조제프] 프루동의 공상적 공산주의에 맞서 싸운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철학을 사회정치적sociopolitical 체제의 좁은 틀 안에 전혀 넣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 중요한 것은 나(the I) ―와 연합(the union)이기 때문입니다! 슈티르너 자신(315~318쪽)이 가장 생생한 색채로 그런 어떤 연합(union)의 파업strike을 묘사한 것처럼, 연합(The union)은 현대의 투쟁 조직인 노동조합(the trade union)의 한 유형에 지나지 않습니다![17]

프랑스의 한 비평가는 군주(monarch)로서 남긴 책인 『유일자와 그의 소유』를 ―우리가 군주를 떠나는 책(un livre qu’on quitte monarque)라고 부릅니다. 글쎄요, 프롤레타리아트는 한 번쯤 주인 역할을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오랫동안 노예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주인의 역할을 위해서는 주인 의식(consciousness)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슈티르너를 읽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큰 교훈이자 결실입니다.

모든 자유는 본래—자기해방(Selbstbefreiung)이라는 말을, 다시 말해 내가 내 자신의 자기소유성(Eigenheit)을 통해 얻는 자유만큼만 나는 자유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의 의미를 온전히 인정하지 못한다. 아무도 사람들의 언론·출판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양같이 온순한 사람들한테 무슨 쓸모가 있는가? 그들은 계속 우는소리를 한다.[18]


[1] 카를 뒤링(독일어: Karl Eugen Dühring, 1833년 1월 12일 ~ 1921년 9월 21일)는 독일의 철학자이다.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베를린 대학에서 법률학을 배운 다음 사법 실무를 수습하던 중에 실명하였다. 1864년에 베를린 대학의 철학, 경제학 사강사(私講師)가 되고 눈먼 학자로서 명성을 날렸다. 과거의 거의 모든 철학과 기독교에 반대하여 일종의 유물론인 ‘현실철학’을 제창하고 과학과 인류의 변혁자로 자처하였으며, 또한 반유대주의자였다. 1870년경부터 사회주의를 표방, 파리 코뮌을 찬미하는 진보파였으나 마르크스주의에 반대하였다. 1877년에 사강사 직에서 쫓겨나자 대학 내외에서 강력한 뒤링 지지 운동이 일어났다.

[2] 엥겔스는 1870년대 후반 <반뒤링론>이라는 책을 출판한다. 이 책은 독일 사회주의노동자당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던 오이겐 뒤링의 사상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뒤링이라는 이름 또한 엥겔스의 저작으로만 역사에 남아 있다. 하지만 당시 오이겐 뒤링의 사상은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같은 당대 독일의 주요 지식인조차 확고한 지지를 표방할 만큼 위력적이었다. 뒤링은 반유대주의를 노골적으로 표방한 사상가였다. 엥겔스의 <반뒤링론>은 공상주의적 사회주의가 만연한 독일의 사회주의 운동을 과학적 사회주의를 통해 현실화하려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의도가 담긴 책이다. 지금은 이름조차 낯선 뒤링이라는 엉터리 사상가 한명을 저지하기 위해 엥겔스와 마르크스라는 두 대가는 친히 전장에 나섰다.

[3] 레오폴트 야코비(Leopold Jacoby, 1840- 1895)는 독일의 사회주의 시인이었습니다.

[4] 야코비가 쓴 Die Idee der Entwickelung, Teile 1-2는 라는 책이 출판되었습니다. 진화와 발전Entwicklung의 개념을 다룬 철학적 논문이다. 저자는 생물학, 역사,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진화론의 개념을 탐구한다. 그는 발전을 설명하기 위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개발된 다양한 이론과 접근 방식을 설명합니다. 야코비는 또한 이 과정에서 인간이 수행하는 역할과 인간의 행동을 통해 발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조명합니다. 이 책은 발전 철학Philosophie der Entwickelung에 중요한 기여를 했으며 이 분야의 고전으로 간주됩니다.

[5] Kraft und Stoff는 인류에 대한 광적인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뷔히너는 물질의 불멸성과 물리적 힘의 최종성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루트비히 뷔히너(Ludwig Büchner)의 유물론은 독일 자유사상 운동 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1881년에 그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독일 자유사상가 연맹 ”(Deutsche Freidenkerbund)을 창설했습니다.

[6] 페터 조제프 디츠겐 (Peter Josef Dietzgen, 1828- 1888)은 독일의 사회주의 철학자 , 마르크스주의자 , 언론인이었습니다.

[7] https://www.marxists.org/archive/dietzgen/1887/positive-outcome/index.htm, 이 책은 1887년 출간되었다.

[8] 헨리크 요한 입센(노르웨이어: Henrik Johan Ibsen, 1828년 3월 20일 ~ 1906년 5월 23일)은 노르웨이의 극작가이자 시인이다.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역사상 가장 중요한 극작가 중의 하나로, 근대 시민극 및 현대의 현실주의극을 세우는 데 공헌하였다. 따라서 그를 “현대극의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9]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러시아어: Фёдор Миха́йлович Достое́вский 문자 개혁 이전: Ѳедоръ Михайловичъ Достоевскій, 영어: Fyodor Mikhailovich Dostoevsky,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옙스끼, 1821년 11월 11일/구력 10월 30일 ~ 1881년 2월 9일/구력 1월 28일)는 러시아의 소설가이다.

[10] 리처드 페도르 레오폴트 데멜 (Richard Fedor Leopold Dehmel, 1863년 11월 18일 ~ 1920년 2월 8일)은 독일의 시인이자 작가였습니다.

[11] worth는 value와 바꿔 쓸 수도 있지만 worth는 주로 인간의 정신으로 느낄 수 있는 가치를 말함: Few knew his true worth. 아무도 그의 참 가치를 몰랐다. value 효과상의 가치, 중요성, 또는 금액으로 환산되는 가치: the vɑlue of experience 경험의 가치〔중요성〕.

[12] 기존의 사회구조, 가치관, 체제 등을 현재의 상태로 유지하려는 것을 의미한다.

[13] “그러나 잃어버릴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어떤가? [126] 그러니까 프롤레타리아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는 잃어버릴 것이 아무것도 없으므로, 자신의 ‘아무것도 없음’을 위해 국가의 보호가 필요로 하지 않다. 국가의 보호는커녕, 피보호자에게서 저 국가의 보호를 빼앗는다면, 그는 이익을 얻을 것이다.”, 『유일자와 그의 소유』, 180쪽.

[14] 『유일자와 그의 소유』, “노동자는 엄청난 힘을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만일 언젠가 그들이 엄청난 힘을 철저히 자각하고 그 힘을 사용하게 되었다면, 아무도 그들에게 저항할 수 없다. 그들은 동맹 파업을 하고, 노동의 산물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향유하기만 하면 된다. 바로 이것이 여기저기에서 불쑥 나타나는 노동 불안의 의미이다.” 182쪽.

[15] 『유일자와 그의 소유』, 390쪽. 독일어본은 280쪽이다.

[16] 『유일자와 그의 소유』, 393쪽. 독일어를 병기한 것은 슈티르너의 글쓰기 특징을 살히고자 한 것이다. 그는 흔히 유사한 단어를 활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펼치면서 상대방의 주장을 조롱하곤 한다.

[17] 『유일자와 그의 소유』, “노동자는 엄청난 힘을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만일 언젠가 그들이 엄청난 힘을 철저히 자각하고 그 힘을 사용하게 되었다면, 아무도 그들에게 저항할 수 없다. 그들은 동맹 파업을 하고, 노동의 산물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향유하기만 하면 된다. 바로 이것이 여기저기에서 불쑥 나타나는 노동 불안의 의미이다.” 182쪽. 이 밖에도 『슈티르너 비평가들』에서 그리는 연합도 참조하면 좋습니다.

[18] 『유일자와 그의 소유』, 261쪽.

헤겔 형이상학 산책 46-내포량과 외연량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 46-내포량과 외연량

1)

앞에서 수에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했다. 단위[Eins]와 개수 그리고 총수[Einheit]¹이다. 정량에서 단위는 그 정량에 외면적인 것이지만, 정량은 이 단위의 반복을 통해 규정되므로, 자기 관계하는 것이다. 개수는 단위가 모인 집합이므로 불연속적이다. 총수는 이런 단위를 전체로 총괄하는 것이므로, 연속적이다.

주1: Eins, Eeinheit와 같은 표현은 문맥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진다. 대체로 Eins는 일자 즉 정량을 이루는 단위를 의미한다. 그런데 때로는 문맥상 어떤 수가 고유한 개별자로 존재할 때를 의미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7은 하나의 일자이다. 또 Einhiet도 대체로 총수를 의미하는데 어떤 때는 차라리 단위로 이해하는 것이 문맥상 더 적합할 때도 있다. 혼란이 있지만, 문맥에 따라 이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헤겔에서 개수도 연속성의 측면이 있으며 총수도 불연속성을 지닌다. 그러나 개수가 불연속적인 것의 집합이라 할 때, 세어지는 각 일자는 서로 같은 것이므로,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 서로 같은 것들끼리는 연속적이니, 그 점에서 개수도 연속적이다. 마찬가지로 총수가 내적으로는 연속적인 것이지만, 다른 수와 비교해 보면 단적으로 서로 구별되는 것이니, 이런 점에서 총수는 불연속적인 것이기도 하다.

2)

앞에서 말했듯이 질의 범주에서는 질이 서로 관계하여 통일되면서 대자 존재로 이행하는 것이다. 이 대자 존재는 양적인 것의 출발점이 된다. 양의 범주에서는 그 반대다. 여기 양에서 양적인 것이 서로 관계하면서 질적인 것이 다시 출현하는 과정이 다루어진다. 이처럼 질적인 것이 다시 출현하는 데서 중요한 계기가 되는 것이 내포량의 개념이다.

헤겔에서 내포량은 외연량과 비교된다. 양자를 구별하는 것은 바로 양적인 것을 규정하는 일자 즉 양적인 것의 원리이며 그 자체 규정성의 원리인 단위다. 외연량에서 단위는 자의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자기 자신이다. 어떤 것의 크기는 자기의 한 부분을 떼어내서 그것을 거듭 반복하면서 재어질 수 있다.

그 단위가 자기 자신이므로 여기서 규정성은 자기 관계에 머무른다. 이런 자기 관계는 아직 타자를 통해서 자기 내로 복귀한 것이 아니며 추상적인 자기 관계다. 여기서는 어떤 크기는 그 단위가 몇 번 반복된 것인지가 확정된다. 이것을 통해 개수와 총수가 주어진다.

그런데 내포량은 그것이 지시하는 것은 일상적으로 말해지는 대로 감각의 정도를 말한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사물은 경도나 강도에 따라 비교될 수 있다. 이런 경도나 강도는 자기 자신의 한 부분을 떼어내서 비교될 수는 없다. 이것은 자기와 다른 것과 비교돼서 더 크고 더 작은 정도를 지닐 뿐이다. 철기는 청동기보다 더 강하다. 서로 부딪히면 청동기가 깨어지기 때문이다. 유리보다 다이아몬드는 더 큰 경도를 지닌다. 다이아몬드로 유리를 자를 수 있다.

이처럼 내포량은 오직 다른 것과 비교된 크기므로, 더 강하고 더 약하다는 비교를 통해서 서열을 매길 수는 있지만, 과연 그 정도가 몇 배나 더 큰가를 말할 수는 없다. 다이아몬드 이런 비교를 통해 서열상 20번째라고 한다면, 여기서도 개수와 총수가 나오니 이것도 하나의 정량이기는 하지만, 다이아몬드가 서열상 첫 번째 사물(예를 들어 유리라고 하자)의 20배나 더 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헤겔은 외연량은 배중성[Vielheit]을 가진다고 말하며 내포량은 가중성[Mehrheit]을 가진다고 한다. 즉 전자는 몇 배인지를 알 수 있지만, 후자에서는 더 많은 것인가 많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외연량에서 개수는 ‘자기 내에서의 개수’이고 내포량에서 개수는 ‘자기 바깥에 있는 것으로서 개수’라고 한다.

“외연량과 내포량은 정량의 동일한 규정이다. 그 구별은 외연량은 개수를 자기 안에 가지며, 내포량은 이를 자기 바깥에 가진다는 데 있다.”(논리학 재판, GW 21, S. 213)

여기서 ‘자기 바깥에’라는 말은 타자와 비교된다는 말일 것이다.

“정도는 특정한 크기지만, 집합이거나 단지 자기 내에 머무르는 더 많은 것[Mehreres]은 아니다. 정도는 더 많음[Mehrheit]인데 더 많은 것은 단순한 규정 속으로 복귀한 더 많은 것[Mehere]이다.”(논리학 재판, GW 21, S. 210)

여기서 ‘자기 내에 머무르는 더 많은 것’과 ‘단순한 규정 속으로 복귀한 더 많은 것’이 비교된다. 그 의미를 새겨 보면, 전자는 많고 적음이 세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후자는 많고 적음이 세어질 수 없다는 의미다. 외연량은 세어질 수 있다. 그러나 내포량은 그저 비교될 뿐이다.

3)

어떻게 본다면, 내포량은 양적인 것에 아직 불완전하게 도달한 것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처음에 단순히 다른 것과 비교를 통해 측정된 것들도 엄밀하게 자기 관계하면서 몇 배나 되는지가 측정되고 외연량으로 규정되는 것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체온은 처음에는 감각의 정도였다. 손으로 재면서 내 체온보다 높으면 뜨겁고 내 체온보다 낮으면 차갑다. 그러나 이제 체온계를 통해서 재어지면서 얼마나 높은지, 몇 배나 되는지가 수적으로 결정된다.

그러나 헤겔의 관점에서 본다면, 거꾸로다. 즉 내포량은 외연량보다 한 단계 발전된 것이다. 왜냐하면, 외연량은 추상적인 자기 관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지만, 내포량은 이제 타자와 관계하면서 타자를 통해 규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타자를 통해 규정된다는 것이 질적인 것이 지닌 의미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외연량은 타자와 비교되는 것이지만, 사실 이 타자는 자기와 같은 것이다. 즉 타자는 예를 들어 경도나 강도와 같은 일정한 측면에서 비교되는데, 자기와 타자는 공통으로 이 경도나 강도를 가지고 있다. 결국, 이 타자와의 관계는 제한적인 의미를 지니며, 여전히 자기 관계라는 추상성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추상적인 자기 관계를 벗어나기 위해서 이제 정량은 다른 정량과 관계해야 한다. 즉 서로 다른 정량인 길이와 무게가 서로 관계하면서 비중이 출현한다. 관계한다는 것[Verhaltniss]은 곧 비율[Verhaltniss] 또는 비례를 갖는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비중의 정도는 두 개의 정량이 관계 또는 비율이다.

최근 과학에 대한 실망에서 과학적 사고를 비판한다. 현상학적 철학의 계열에서는 과학적 사고는 양적인 것을 토대로 한다. 과학적 사고는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양적인 것을 통해 개별적이여 구체적인 질적인 차이를 제거한다. 양적인 것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라, 추상화하는 사유가 만들어 낸 것이므로, 자연을 왜곡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과학적 사유는 자연을 파괴한다. 나아가 오늘날 시장 사회에서는 개인이 지닌 개성은 아무 의미가 없으며 오직 개인의 양적인 가치만이 중요하게 된다. 그 결과 인간은 소외되며, 평범하고 진부한 존재로 격하되고 만다.

이런 관점에서는 질적인 감각의 정도로 규정된 내포량(흔히 감각량)은 질적인 것이 여전히 보존된 것으로서 추상적 자연과학을 극복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하면서 특별한 주목을 받는다. 감각의 정도를 측정하는 예술가는 이런 측면에서 새로운 과학자가 된다.

헤겔은 다른 의미에서 이 감각량 즉 내포량에 주목하는데 이를 통해서 추상적인 양으로부터 감각적인 질적 차이가 다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 관점은 다르지만, 동일하게 양적인 것의 극복을 내포량에서 찾는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러나 내포량은 아직 진정한 의미에서 타자 관계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자기 관계하는 것이면서 그 자기 관계가 타자를 통해 측정될 뿐이다. 그러므로 헤겔은 내포량을 유사한 다음과 같은 말로 설명한다.

“외연적인 타자 존재를 더는 자체 내에서 갖지 않고 이를 그 밖에서 가지며, 그 자차 존재에 자기규정으로서 관계한다.”(논리학 재판, GW 21, S. 211)

“일자로서 수는 개수의 무차별성과 외면성을 배제하고 자기 자신을 통해 외면적인 것에 관계하는 것으로서 자기에 관계한다.”(논리학 재판, GW 21, S. 211)

“무차별한 규정성이 정량의 질을 이루며 즉 그 자체에서 자기에 외면적인 규정성으로 존재하는 규정성이다.”(논리학 재판, GW 21, S. 211)

“정도는 그러한 내포성이 더 많음이라는 것 아래 있는 단순한 크기 규정이다. 이 크기 규정은 각각이 단지 자기 관계하며 동시에 서로 본질적으로 관계하는 상이한 규정이다. 그러므로 각각은 다른 것과의 연속성 속에서 자기규정을 갖는다.”(논리학 재판, GW 21, S. 211)

“이 자기 외면성이 내포량이고 단순한 규정성이다. 다시 말해 자기 관계하면서도 동시에 그 규정성을 타자 속에 갖는 것이며 그 규정성은 그 자체에서 자기에 외면적인 규정성이다.”(논리학 초판, GW 11, S. 133)

“정도의 각각은 자기 관계하는 크기 규정으로서 다른 크기 규정에 무차별하지만, 마찬가지로 그 자체에서 이 외면성에 관계하며 다만 이 외면성과 매개해서만 그 자신의 본질로 된다.”(논리학 재판, GW 11, S. 134)

좌우의 이원론 대 민중의 다중화 [천 하룻밤 이야기]

좌우의 이원론 대 민중의 다중화

2025 10 23 상강(霜降), 이틀간 서리 내릴 듯 찬바람이 불더니 어제부터 다시 가을이다.

*

   이제 나이든 몸으로 히말라야 산맥에서 최고봉인 에베레스트(8,848m)를 오를 수 없겠지만, 개마고원을 거쳐서 백두산(2,155m)을 걸어서 오를 수는 있을까? 어느 산이든 산을 오르는 길은 매우 많다. 가까이에 북한산이 있고, 그 산을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이다. 서쪽에서는 은평구에서, 동쪽에서는 도봉구에서, 북쪽에서는 송추로부터, 남쪽에서는 정릉에서 오를 수 있다. 그리고 네 방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길들 사이사이에 오를 수 있는 길들도 여럿 있다. 그럼에도 북한산 꼭대기(836미터)는 하나이다. 왼편에서 오른 이는 오른편에서 오른 이와 같은 다른 길에서 보아온 것들을 이야기를 한다. 삶도 그럴지 모른다.

사람들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살아가는 길은 무수히 많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이 살아온 터전을 어느 날 떠난다는 것은 숙명이며, 사람이란 ‘세상을 떠난다’ 것은 하나의 이법으로 통한다. 산꼭대기에 올랐다가 산을 내려오고 다시 오를 기회가 있지만, 세상을 떠나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떠남은 필연이며 숙명이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잡다한 이야기들은 산을 오르는 길들이 달라서 다른 이야기들을 하는 것과 닮았지만, 한번 세상을 떠나면 되돌아 올 수 없고, 각각이 살았던 이야기는 새로운 반복처럼 다르다. 오르고 내림의 반복과 살아가는 반복은 전혀 다른 반복일 것이다. 그럼에도 살아가는 반복이 남긴 것은 역사이며, 되돌아 비춰보는 통감(通鑑, speculation)이 있고, 평결론자들(les sententiaires)은 삶을 확장하고 풍요롭게 할 것이다.

*

“산다”, 사람, 살림, 삶, 살(육肉)을 이야기 하면서도,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터전에서 반복하는 방식들이 다르다. 그럼에도 자연의 이법에 따라 아침과 저녁을 맞이하는 반복은 같은 반복으로 받아들여진다. 아침에 나서서 일터에 가서 일하는 노력들이 다르지만 매일 노력을 더하여 자기 일의 집중과 강도를 높이며 살아가는 반복은 하루의 순환, 한해의 순환과 다르게 느껴진다. 동일하게 느끼는 해와 달의 순환과 달리,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방식에서 반복의 차이는 개인의 삶의 선호와 열정에 따라 다르다. 사람들은 자연과 터전에서 공통점을 공유하기도 하고, 각각의 역량에 따라, 크게 다르지 않을 지라도 동일하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다양한 방식이 공통용어로 잘 만들어지지 않더라도, 동일반복으로 일반화의 방식에서 하루, 한달, 한해에 맞는 용어들을 만든다. 그럼에도 용기 있는 인간과 정의로운 인간을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각각이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르다고 하지만 큰 틀에서는 같아 보인다고 할 때, 삶에서 일반적인 기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 그럼에도 위치가 다르듯이 개별적 특성에 의해 각자는 남들과 다른 지위와 위상을 갖는다고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연을 다루는 방식에서 공통성을 유지하면서 질서 속에서 살아가지만, 각자의 위치의 차이가 있고 게다가 삶에서 공동체라는 제도 안에서 역할에 따라, 다른 배치와 지위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낀다.

아마도 사람들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고대 그리스철학 이래로 다른 방식들을 보았을 것 같다. 한편으로 자연을 도구로서 잘 이용하려고 과학으로써 지식을 만들려고 했고, 다른 한편 자연 속에서 또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양식으로써 지혜를 찾고자 했을 것이다. 이렇게 구별하는 것은, 이미 인간이 사물 또는 물체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이런 차이를 알게 되면서, 외부의 자연에 대한 이중적 관심도 있었고, 또한 마찬가지로 인간이 자신의 삶의 양식에도 이중적 또는 다양한 양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관심 또는 지식을 만들려는 노력에서 이중화 또는 다양화는, 자연의 순환성과 인생의 일회성의 차히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일회성으로는 순환성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회성이지만, 세대를 거쳐 가면서 새로운 탄생의 일회성과 더불어 순환성을 이어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순환성이 지속인지 단절의 도약인지를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 도 없었을 것이다. 이즈음에서도 설명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자연의 순환성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일회성을 해결하려고 했을 것 같다.

자연의 순환성을 하루, 한달, 한해라는 구별을 한꺼번에 생각 속에 담을 수 있는 방식을 찾으려 했다면, 순환의 운동을 수(數) 또는 길이로서 표시하는 방법이, 또는 상징으로서 공통 문자화 또는 기호화가 당연히 요구되었을 것이고, 그리고 이를 언어로서 표현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인류가 신석기에 들어서서 생산물을 축적하고 교환하는 과정에서 각 부족들이 나름의 표시들을 가졌을 것이라 한다. 이러한 표기방식에서 기호화하고 언어화하는 과정에서 일반화의 규칙들을 생각해내었다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이 일반화에서 사물에 대한 것과 삶의 양식에 대한 것 사이에 차이로서 양면성이 있었을 것이다.

소통과 교환이, 이런 양면적 역할에서, 보다 넓은 공동체 안에서 일반화의 방식을 창안해 나갔을 것이다. 제도도 일반화의 토대 위에 성립할 것이다. 이런 일반화들이 인간의 상상작용과 더불어 인간으로서 후대까지 공유할 수 있는 기호화의 체계를 만들고, 다음 세대들에게도 또는 다른 터전에서도 이해할 수 있게 만든 것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으로 고대 그리스의 사유세계라고들 한다.

물론 문명의 시작으로 아나톨리아지방의 신석기 문명에서 포획의 방식이 생겼다고 하고, 농경문화에서는 인더스 문명의 영향이 기본이라고 한다. 그래도 바빌론 문명과 이집트 문명들에서도, 동양에서도 황허문명과 요하문명에서도 전승이 있었다고는 하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이들의 실재 활동과정에서 세는 것과 재는 것이 있어왔고, 또는 독해가 완전하지 않을지라도 주문과 같은 암송의 언어들은 세대를 거쳐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인간이 두뇌의 용량의 확대와 구강의 발달이, 흔적을 남기지 못했던 구술언어의 단계를 거쳐서 문자화할 수 있는 언어로 역사 속에서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현대인들이 독해 가능한 범위 안에서 문자기록의 전승에서 보아, 그리스 철학사가 흥미 있는 사유의 전개 과정으로 남아 이어지고 있다고들 한다. 그리스 사유에 양면성이 있다고 한다. 공간과 시간, 정지와 운동, 페라스와 아페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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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좌파와 우파의 대결처럼 이항 대립으로 보는 관점을 고착시켰다고 여긴다. 21세기에도 이런 사고의 이분법적 방식이 당연하고 또한 편리한 것으로 여긴다. 하물며 이들은 이분법을 인정하면서 조화 또는 중용의 방식을 소중히 여겨, ‘하늘을 나는 새는 좌우 두 날개로 난다’고들 한다. 사람은 두 다리로 걸으면서 오른발과 왼팔이 왼발과 오른팔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한다. 한 몸 속에서도 운동 방향을 달리하는 방식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분법 또는 이원론에 익숙한가. 수에서 10진법과 60진법이 있음에도, 이분법의 방식은 두 팔과 두 다리의 걷기에서 오는 것이라기보다, 나중에 사회라는 제도와 종교라는 교리가 지배하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사람들은 이런 이분법적 추리가 논리적 사유의 배중율에서 왔다고도 한다. 배제, 배척, 부정, 적대.

생각의 폭을 넓혀진 시대 이전에, 동양의 천지인에서도 인간이 소중하다고 한다. 어릴 때 들었던 하도와 낙서로부터 주역을 이해해야 군자로서 세상사에 나설 수 있다고 했다. 현 시절에서는 초등학교 시절에서부터 산수의 계산법을 배우고 또한 도형의 기하학을 배운다. 그리고 물체들을 더 정확하게 다루기 위해 좌표기하학과 미적분을 거쳐서 허수의 등장까지 배운다. 그럼에도 또한 공동체의 삶에서 전례의 방식에 따라 규칙과 규율을 익히고, 사물을 다루는 법칙과 원리를 깨달아가면서, 세상에 나서서 장하고 훌륭한 인간이 되는 도덕을 닦고 인성을 함양한다. 이런 방식들은 현실사회에서 잘 살아가기 위한 방편들이리라. 그 방편들을 학문이라는 체계에 맞추어 생각하는 추리와 추론이 점점 복잡해진다는 것도 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회생활에서 필수적인 수와 도형을 익히고, 더불어 노래와 운동을 통해 건강과 신체를 안존하는 방식을 배우고, 나아가 사회생활의 필수로서 제도와 체제의 규율들을 익힌다. 이런 과정에 대해 학문은 체계적으로 설명하려 하고, 삶의 보존에서 편리하고 유용한 방식들을 공유하게 한다. 그 공유하는 지식을 다음 세대에도 체계적으로 전수하여 공동체와 나라를 유지하고 발전하게 해 준다고 생각한다. 크게 보아 청동기 시대부터 현대 산업혁명까지 지식의 전승은 인간을 자연의 지배자라고 착각하게 하였던 것 같다.

공동체의 체제와 사유하는 체계를 둘로 나누어서 생각하는 것은 편리하다. 그런데 이런 편리한 방식이 질서와 안녕을 가져다 준 것인가, 또는 사람들이 자주 말하듯이 인간에게 자유를 누리게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어쩌면 불협화음처럼 계속되었다. 정합성이 모자라더라도 체계 안에서는 지식인들뿐만이 아니라 민중도 터전을 유지하며 살만하다고 여겼다. 즉 인간이 인간과 더불어 사는 과정에서 자연에 대한 이용 방식을 공유하고, 나아가 제도를 만들어 인간들 사이의 공통성과 개별성을 더 잘 보증해 주고 있다고 여긴다. 이런 제도와 체제가 이원론으로 구성된 또는 구축된 세상이 타당한가라는 물음을 고대 그리스로부터 죽 있어왔으나, 사람들은 여전히 세계를 이항대립 구도로 여기고, 또한 윤석열 정부의 계엄령에서는 거의 극단적인 대립구도를 드러냈다. 대립의 극단에서 자기편이 아닌 자들을 반국가세력이라고 하고 제거해도 된다는 착란에 빠지기도 한다.

우선 팔과 다리의 운동을 상기해 보면서 어떤 힘들의 운동에서, 양편이 조화와 중용을 이루는 것은 중요하다. 사회의 발달과 역사의 과정으로 보아도, 건전한 사유에서는 좌편이 51% 우편이 49%로 이루질 경우에 조화와 균형을 이룰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다수인 대중이 소수자처럼 살고, 소수이면서도 권력이든 재산이든 많이 소유하는 자들이 지배권을 가지고 있다. 사회학과 정치경제학의 발전이래로 이런 지배층이 대중을 강압하는 점에서 전도된 사회이라고 평한다. 그래서 전도된 사회에 혁명을 설파하는 사상가들과 혁명가들이 있다. 사유 활동의 진솔한 전개를 주장하는 이들은 대혁명이후로 자연 안에서부터 사회로 그리고 세계 공동체로 나가는 전복적 사유의 시대를 이루어가고 있다고 한다. 이들을 위마니스트가 아니라 위마니떼르, 리베랄리스트가 아니라 리베르떼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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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편과 우편의 이분법적 사유는 사회적 삶의 편리함 때문에, 앵글로색슨계에서는 유용성과 실용성이라 하면서, 당연한 것처럼 여겼다. 사유의 깊이 또는 심층으로 들어가기 이전에, 즉 자연 속에서 삶의 숙명성을 다시 깨우치기 이전에, 사람들은 편리와 이익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동양에서도 천지인에서부터든 하도낙서로부터이든, 음양, 남녀, 천원지방 등의 이분법의 바탕 또는 기원으로 하나인 태극을 두기도 한다. 하나로부터 이원성과 4상, 8괘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분화에서도 조화와 중용을 통해 세상이 평천하를 유지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동양 사회는 이원성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지만, 입말과 문자에서는 백성이 하늘이라 한다. 그 바탕이 태극이라는 것이 사변적이라면, 백성은 실재성일 것이다.

이와 달리 고대 그리스에서는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을 영향을 입은 두 갈래의 사상이 아테네에 들어왔다고 한다. 자연의 탐구로서 이오니아학파의 사상과 수학(산술학)에 근거를 우주의 원리로 삼은 엘레아의 사상이 들어왔다. 여기 외적 자연과 사유 사이의 이중성에서, 다시 이것들 생각하는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가 제기되었다. 이 탐구가 인간 또는 사유하는 권능으로서 영혼(프쉬케)이 의식 속에서인지, 의식의 대상인지에 대한 문제는 남아있었다.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이 철학이라고 하지만, 그 문제는 변형되어 중세의 신학에 이르렀다. 신학에서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며, 인간은 신앙 속에서 진실한 활동을 한다고 믿었다.

신의 완전성과 세계의 원리 등을 추리에 앞서 보편성으로 인정한다고 했더라도, 사물들에서 또한 세상사에서 부딪히는 사실들과 환경들은 완전하지도 않았고, 원리에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신과 천국, 천사와 계시라는 부분들을 젖혀두고 라서도 현실에서 경험적 사실들은 다른 영역임이 드러났다. 계시와 언어의 전달은 별개이라, 인간이 만든 기호들과 개념들의 잡다함에 통일성과 법칙성을 규정하는데 목적성이 먼저 있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판단들에서 명제들의 용어들에 대한 기호표기와 사물의 조작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알았듯이, 삶의 표현들에서 종교적 환희나 공동체의 즐거움과 개인의 훌륭함 등이 다른 영역임을 알았다.

많은 논제들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에 의견들을 모으는 평결문들은 선전제에 의한 추리들이 아니었다. 13세기에 프란체스코파 학자든 도미니크파 학자들은 평결문들에서 구체적 증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교황청 교리성은 신과 신국 등 근원적 항목들을 대해 문제 삼지 않는 한에서, 파리와 옥스퍼드 등의 대학들에서 현실적 논의에서 이중성의 대립을 인정하였다.

그럼에도 한편을 들고 다른 편을 말살하는 방식은 종교재판과 마남사냥에서 여전히 남아있었다. 르네상스시기까지 종교재판으로 브루노를 산채로 화형 시켰고, 갈릴레이에게도 지동설을 외부로 발설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미 세상 사람들은 신에 의해 창조된 자연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물질세계가 어쩌면 신의 창조와도, 그리고 인간의 추상적 추론의 담론과도 다른 탐구 방법의 필요를 알게 되었다.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을 받는 시기에, 데카르트는 발표를 하지 않았지만, 세계에 대한 자치적 특성을 발표하려고 했다. 그런 데카르트가 두 개의 실체를 내세우면서, 자연 또는 물질의 탐구 방법이 따로 있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근대철학의 여명이라 불리는 방법론은 두 가지 다른 방법론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렸다. 그럼에도 사유와 연대하는 자연의 작용방식을 인식의 한 방향(양식)으로 여기고, 자연과 물질의 운동 현상도 사유와 상응하여 설명하려하였다. 그러나 두 사유 속성을 다루면서, 소박한 유물론자들이 다루는 물질과 관념론자들이 사유 대상의 일부로서 삼는 물체 사이에 간격이 점점 확인되어 갔다. 이로서 생명 있는 존재는 자연 속에서 산다는 인식이 “빛들 세기”에 도래할 것이고, 19세기에는 생기론과 프퓌케에 대한 학문이 전개될 것이다.

인간의 사유는 자연 밖에서도 또는 자연 안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자연에 대한 인식의 추론체계와는 다른 생성의 양식이 있음을 알아챘다. 안과 밖이 없는 심층 세계가 등장할 준비를 하고 있었으리라. 다시 기원에 대한 성찰에 힘입어서, 자연을 탐구하는 기본적 요소 또는 기본 단위로서 수, 점, 원자, 이외에 스토아학자들이 말했던 정령들(프쉬케)도 한 몫이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계몽기라고 하는 18세기 “빛들 세기”에서는 빛이 기본요소로서 떠올랐다. 빛의 무한 진행?에서 무한대라는 생각은 이미 브루노가 하늘의 뚜껑을 열어서 무한대를 펼쳐놓았었다. 그 빛을 통해 사물과 물체를 구별하고 있었듯이, 빛의 직진과 무한 확장과 같은 수학적 추론과 원리들을 생각하였다.

자연에서 좌표 설정과는 다른 양태인 자연의 자치성에서, 생명체가 물체처럼 자동인형 같은 것이 아니라, 생명있는 물체의 자치성과 자율성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데카르트 좌파라고 불릴 유물론자들은 그 자율성 속에, 물리학자들이 물체의 충력을 보듯이, 생명체의 조직화에 생기 또는 에너지를 보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도 겉으로 보기에 이원성을 기준으로 하는 두 갈래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자연의 물질과 물체들의 성질들을 위계적으로 무기물, 식물, 동물, 인간 (천사, 신) 등으로 보는 이해하는 방식을 떠나서, 각각의 물체들(이미지들, 형상들)이 발생적으로 다른 과정에서 생성의 길을 걷는다는 것 알게 되었다. 자연학자인 뷔퐁이 생성의 과정에서 논리학의 항목들과는 다른 항목(용어, 명사)들을 설정할 것이다. 게다가 생명체의 조직화를 다루게 되면서 생리학도 성립한다. 인간의 감각과 감정의 발생과 전개, 그리고 생명체 안에서 영혼(아니마든 프쉬케든)의 위치를 다루게 될 것이다. 이런 관점은 세계의 체계와 제도의 체제를 세운 정신의 성찰과는 다른 길을 열게 될 것이고, 생물학과 진화의 사유를 열기에 이를 것이다. 이원성은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지식체계의 관점이었으며, 과거의 잠재적 이원성은 이를 상징으로 교회제도와 사회제도에 투사했던 것으로 여겼다.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물질의 내부의 탐구로 이어지면서, 인식의 역량이 지적 체계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삶의 터전에서 일반화의 방식에서도 내재적 발생의 연관을 고려하게 된다. 지식의 발달과 도구의 발달은, 빛들 세기에 “백과전서”에서 밝히듯이 오랜 과정에 점진적 발전을 거쳐서 민중이 공유하는 기술발달의 확장으로 생산력이 높아지고, 시민의 정치의식도 활발해졌다. 심층으로부터 나온 자연의 자치성 이상으로 인간의 자율성은, 교권과 왕권에 대항하는 제3신분이라는 인민을 등장시켰다. 물질성의 변화가 의식의 변화와 사회 변화를 가져왔다.

이들은 상위의 두 권력을 무너뜨리고, 인민의 자치와 인민의 지배권을 행사하려 하였다. 우주와 자연에서 의식의 이원성이, 제도와 체제에서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이분법적 사고로 전환되는 듯이 보였으나, 전승의 선전제와 체계는 공고하였고, 혁명과 반동 사이에서 국가 권력이 교권과 왕권을 대신하면서, 정치적으로 좌우를 구별하여 좌편에는 인민을 대변하는 세력이, 우편에는 기존 권력을 유지하려는 왕당파들이 있었다. 1830년 이후로 산업화의 과정에서 왕당파를 대리하는 자본가들이 우파가 되고, 자본에 예속되는 노동자가 좌파가 되었다. 맑스는 대혁명에서 인민의 성장이, 정치경제학적으로 프롤레타리아의 지배가 이루질 것이라고 역사의 발전을 설명했다. 인간의 사유 방식에서 심층과 상층의 이원적 대립, 다음으로 의식 활동에서 인간에서 물질과 정신 또는 영혼과 신체의 대립, 빛을 통하여 자연의 체계와 자연의 발생의 대립을 잠시 거쳐서, 삶의 터전에서 좌와 우의 대립은 사회정치적 활동에서 대립의 양상으로 이어졌다.

천오백년의 종교이든, 이백년의 형이상학이든 자연의 대하는 태도에서 대립에서는 인간이 막연하게 우월하다는 심정이 있었다. 그리고 인간은 지식의 확장을 통해 자연의 주인으로써 지위를 차지하려고 했으나, 칸트는 그런 지식이 없음을 형이상학의 불가능성이라고 밝혔고, 사회에서는 지식보다 도덕과 공감이 우선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산업화의 발전에서 지식을 도구로 삼는 체제는 인간의 이기심을 부추기고, 사회의 갈등과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칸트이후의 산업화 과정에서는 국가 제도와 체제에서 소수의 상층과 다수의 심층 사이의 대결은 심화되었다. 다수의 좌파와 소수의 우파의 구별은 뚜렷해졌고, 부의 사적 축적자들에 의한 산업화과정은 불평등의 해소하지 못하고, 다수의 인민 자유를 억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정치경제적 좌우의 대결은 19세기 이래로 산업화 과정에서 점점 굳어져갔다. 상품자유주의 세계에서는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이에 대립하는 인성자유주의 세계에서는 인도주의를 내세운다. 우리 남녘에서는 개인의 사적 이기심이 사회의 공공성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우선시하는 체제를 굳혀갔다. 21세기 임에도 급기야, 야만적 상품자유주의자들이 인도주의자이며 인성자유주의자들을 반국가 세력으로 처형하려는 쿠데타를 일으키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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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 방식이든, 사유 양태이든, 사회 제도이든 좌우의 구별은 사실상 불편한 것이다. 철학은 이런 이분법적 추리의 사유(로고스)를 해소하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서양 철학사에서 의식의 측면에서 2500년 과정을 상층에서 표면으로, 그리고 표면에서 심층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자유의 측면에서 상층의 소수의 자유에서 표면의 부르주아의 자유로, 그리고 심층의 인민의 자유로 확장되어 간다고 한다. 인민의 자유, 안양정토세상, 평천하.

고대의 사유에서는 상층의 정지가 먼저였고, 르네상스 이래로는 표면의 이분법과 이중화 현상이 있었고, 근대에 와서는 심층의 발현과 발생의 사유로 인민의 성장이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20세기 중반에 새로운 변화로서 유전자(DNA) 구조의 발견과 디지털의 발명으로 새로운 사유가 전개되고 있다. 이런 사유에는 상하와 좌우라는 사방으로 방향설정을 생각할 수 있고, 이를 세분화하여 팔방도 생각할 수 있고 확장으로 36방과 삼십육계를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양방이든 36방이든, 방향의 중심을 공의 중점 또는 초점처럼 생각하면, 진자운동처럼 수많은 움직임이 마치 주변에서 중심으로 그리고 중심으로 주변들로 왔다갔다 하는 것으로 여길 수도 있다.

갈릴레이는, 사람들이 추의 진자의 운동에서 중간점이 겉보기에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규정할 수 있을지라도, 그 중간점이 다른 방향으로 달리는 힘(충력)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이런 충력이 물체 속에 있다. 이런 움직임이 지구의 자전과 관계있다고 증명한 것은 1851년의 푸꼬(Léon Foucault, 1819-1868)의 추(le pendule)이다. 운동하는 중간 또는 중심이 하나이라고 기호화할 수도 있지만, 이 하나가 수도, 점도, 원자도 아니다. 움직이는 힘 또는 에너지, 나아가 퀴니코스-스토아학파가 이야기한 소마-프쉬케(물질영혼)일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이, 인간에 내재하는 영혼의 작동에게도 상사성이 있을 것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이 인간을 편리와 안락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는 것도 근대성일 것이다. 그런데 편리와 안정의 생산력은 산업사회의 한계에 이른 것 같은데, 사적이익 추구자(트럼프포함)들은 그 기술과 도구를 여전히 전쟁과 공포를 조장하려는데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의 발달이 소통의 방식을 바꾸었다고 하지만, 철기시대 이래로 문자화가 우선하며, 간접화법을 통한 지배방식은 여전했다. 디지털의 발전은 직접화법과 이미지전달(상상작용)을 함께 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문명의 발달의 한계에 이르러서 문화의 다양화가 전개되고 있다고 한다. 다양성의 발현이 우선은 사유에서보다 문화 예술에서 전개되고 있다. 문학, 영화, 스포츠, 음악, 회화, 공예, 건축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기술의 발전에서 생산력의 변화에 인공지능(AI)이 첨가 되면서,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만큼이나 전쟁 도구로 전환도 속도를 내고 있는 것 같다. 터전 또는 개인도 다양화되고 있어서 다양체의 사회가 이루지고 있고, 전지구는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 그럼에도 이항 대립이 낳은 불평등과 억압은 여전히 너울을 드리우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 탐만치, 즉 탐욕자와 사적 이익추종자들과 치졸한 파라노이아 환자(종교병환자)들이 문제다. – AI가 입말과 문자화를 일방통행을 넘어서 이미지들을 상호소통 시키면서, 다방향으로 빛의 속도로 소통하는 누리소통 시대에서, 제국의 지배방식과는 다른 공감과 공명이 이루어질 탈영토화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본 들뢰즈가 순수했다고 해야 하나.

열 달이 지나도록, 계엄과 내란 획책의 집단적 사고는 여전히 우리의 상층에서 그리고 주변을 맴돌고 있다. 빠르게 널리 이미지의 전송과 소통에서도 고착된 사고방식은 바뀌지 않는 것 같다. 그들에게는 누리소통도 이항대립처럼 편가르기의 도구로 쓰이고 있다. 게다가 이 문자화에서 용어들이 상층 편향되어 있고, 편집증의 세뇌가 깊이 작용을 하고 있는 현실 상황에서, 새로운 시대라고 말하지만 구체제와 구시대의 관습과 습관이 사유방향을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재성이 내재성으로부터 발현이라고 하지만, 그 발현이 현실성의 형해화 된 이미지와 관계 속에서 고착화되는 것을 우선은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달리 생각하고 달리 행동하는 것이 현실의 관계에서 숫적으로 다수 임에도 지배방식에서 소수자일 때, 삶의 터전의 변화와 혁명은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분법의 경계는 무너지고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사람들은 개인이 실천하는 방식으로 우공이산이라고 하기 에는 다양체의 덩어리가 엄청나게 커졌다는 것을 직감한다. 시대는 입말의 소통과 더불어 이미지의 소통으로 다양체의 덩어리가 회오리처럼 커져가는 것이 분명하다. 그 덩어리가 거대한 파도처럼 밀고 나가는 모습을 그 파도 속에 있는 물방울로서는 느끼지 못하는 한계 때문일까?

프로이트 위상적 사고에 따른 실재계, 상상계, 상징계에서, 상징계의 영향과 더불어 사회를 생각하는 이들은 교회권력, 국가권력, 학문권력에 복속되어 자들이라고 하지만, 그 상징계를 거의 실재성으로 여기는 신앙인들, 부역자들, 이원법의 인식 추종자들이 여론과 문자화를 통해 체제를 견고히 하려 한다. 이런 고착성에 대해 중심의 운동성과 다양성이 체제 안에서 작동하여 변화를 실행하려고 하는 노력에는 강도가 축적되어가고 있다. 누리소통을 통한 공감과 공명이, 삶의 터전에서 먹고 자는 문제에 대한 해결과 연결되지 못한다면, 그 소통은 상상계의 그림(이미지)과 같은 잠재성으로 그칠 것이다. 이 상상작용으로서 실재성이 현실로서 누리 소통 속에서 잠재성에서 표출되고 생성되는 것에서 의미를 새롭게 할 것이다.

벩송이 정태적 종교를 이야기하면서 폴리네시아인들이 자연에 정령의 힘과 같은 ‘마나’가 있다고 믿었다고 하는데, 이는 인류에게 공통하는 것으로 보았다. 말하자면 토착민들의 종교성은 이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에도 있다는 것이다. 벩송이 인용한 예에서, 어느 부인이 승강기를 타려고 했을 때, 승강기문이 열렸으나 발판이 없었는데, 마담이 한 발을 내디디려고 하는 순간에, 안에서 갑자기 앞에 검은 물체(사람)가 뛰쳐나와서 뒤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살았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에서 상상작용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언론인 이영희 선생은 어느 글에서 함경도 지방에 ‘어덕서니’라는 귀신이 있다고 하였는데, 어려움이 닥칠 때 갑자기 앞에 나타나는 검은 기둥귀신과 같은 것인데, 위로 올려다 보면 점점 커져서 무섭고 아래로 내려다보면 점점 작아져서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줄어드는 것을 설명하며 어떤 심리학자는 인간에게 귀신처럼 등장하는 검은 물체 또는 저승사자에게는 발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아래로 아래로 내려다보면 상상계가 줄어들어 사라지고 실재를 직시하게 된다고 한다. 이데올로기로서 상층도 마찬가지이다. 문화에서도 종교에서도 가상성은 여럿으로 그리고 과정으로 확대되어 가는 것은 마치 포퓰리즘의 대중의 확대처럼 커져 간다. 그런데 그 밑을 또는 심층의 실재성을 들여다보면 실체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심층의 발현으로써 어느 부인의 일화는 효과가 있다.

AI를 통한 누리소통을 통한 실재성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어덕서니의 아래를 보듯이 그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벩송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 상상계의 이미지를 기억의 재인식의 방식으로 다시 보아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상상의 작동은 실재성과 현실성의 연결에 의한 조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래도 벩송에 이어서 들뢰즈는 상상작용(imagination)에서 형태로서 등장하려는 이미지(image)의 어렴풋한 형상화(마나, 검은 물체, 어덕서니, 저승사자)의 효과에 머물지 말고, 내재성의 실재 생성과 발현을 심층에서부터 깊이 재인식할 것을 권한다. 그 실재성의 발현이 무생물이건, 식물이건, 동물이건, 어덕서니건 그 발현은 삶의 표출로서 탈주선임을 생각하자는 것이다. 이런 재인식에서 또는 역사를 깊이 들여다보면서 인민의 권능과 그 강도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자는 것이다.

(8:13, 58UMDD)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철학의 세계』(2023),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

헤겔 형이상학 산책45-연속적 크기와 불연속적 크기[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45-연속적 크기와 불연속적 크기

1)

헤겔 논리학을 다루면서 논리학의 구조가 판단 형식 즉 범주가 전개되는 방식과 상응한다고 말했다. 그런 상응에 비추어 보면, 정량은 양적 판단 형식 가운데 첫 번째 단칭 판단 형식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헤겔은 질을 다룰 때도, 존재와 무의 상관관계를 통해 현존을 끌어냈다. 존재와 무는 현존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관계 즉 ‘관계있음(존재)’과 ‘관계없음(무)’를 말한 것일 뿐이고, 실제 질적 판단 형식은 현존으로부터 시작한다. 즉 현존이 질적 긍정 판단에 해당한다.

이런 전개 방식은 양을 다루는 때도 마찬가지다. 바로 앞에서 다루었던 양적인 것 즉 연속성과 불연속성은 정량의 일반적인 상호 관계를 말하는 것일 뿐이다. 양적 판단 형식이 처음 시작하는 것은 정량에서부터다. 질적 판단 형식에서 현존에 해당하는 것이 양적 판단 형식에서는 정량이다.

2)

정량과 수의 관계는 앞에서 말했다. 정량 속에 이미 수적 관계가 들어있다. 수는 나름대로 하나의 정량이며, 다만 다른 정량을 표현하는 기호로 사용될 뿐이다. 즉 이 정량에서 이미 존재하는 수적 관계를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정량과 수의 관계는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설명한 상품과 화폐의 관계와 같다. 상품 속에 이미 교환가치의 관계가 들어있다. 화폐도 하나의 상품이지만, 다른 상품의 교환가치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즉 화폐는 상품의 교환가치를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것일 뿐이다.

수에 관한 심리주의자는 수를 인간의 셈이라는 주관적 활동으로부터 끌어내려 했다. 그것에 대해 논리주의자는 반대했는데, 왜냐하면, 수는 알다시피 초월성 또는 객관성을 갖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플라톤은 수를 이데아로 여겼다. 양적인 존재 즉 정량은 이런 이데아가 분유 되어 나온 것일 뿐이다.

그러나 헤겔의 관점에서 본다면 수의 객관성은 마치 화폐가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과 같다. 마르크스는 금의 자연적 속성에서부터 화폐의 본성이 나오는 것을 일종의 물신화로 여겼는데, 마찬가지다. 수의 객관성을 수가 지닌 고유한 속성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면 이는 물신화에 해당한다. 상품에서 화폐가 나오듯이 수의 객관성은 정량에서 나온다.

3)

정량은 수로 대변되므로 헤겔은 정량을 논하면서 자주 수를 끌어들인다. 정량을 다루는 2편 2장 A 절은 아예 ‘수’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이 A 절에서 헤겔은 수를 두 가지로 구분한다. 그것이 바로 외연량과 내포량이다.

흔히 수는 두 가지로 구분된다. 연속적 수와 불연속적 수다. 연속적 수 또는 크기(정량)¹를 다루는 학문이 기하학이다. 불연속적 수 또는 크기(정량)를 다루는 것이 산술학이다. 고대에 기하학과 산술학은 독립적으로 발전했다. 기하학은 주로 이집트 그리스에서 측량술로부터 발전했다. 산술학은 인도를 거쳐, 아라비아에서 발전했다. 인도가 수 0을 발견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주1: 헤겔은 양적인 것[Quantität]을 크기[Größe]와 구분한다. 크기는 규정성을 지니므로 정량[Quantum]에 해당한다.

그런데 수가 자연수에서나 분수에서처럼 불연속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일찍 발견됐다. 피타고라스학파에서 비밀로 여긴 무리수의 발견이 여기에 속한다. 무리수는 수이지만, 그 끝을 알 수 없는 연속적 수다. 이 수가 서로 분리된 유리수 사이에 끼어들면서 수는 단순히 불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연속적임이 알려졌다. 수를 불연속적인 것으로만 여겼던 피타고라스학파가 무리수를 숨기려 했던 것은 이 발견이 고대에 얼마나 충격적이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기하학은 공간적 크기를 다루고, 여기에는 수가 개입하지 않는다. 기하학은 변이나 각, 길이의 같음과 다름을 다룰 뿐이다. 물론 기하학에서도 삼각형이라든가, 사각형 등에서 보듯이 수가 부분적으로 개입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다루는 대상에 관한 것이지, 기하학이 다루는 것은 여전히 같음과 다름일 뿐이다.

피타고라스학파는 피타고라스 정리를 기하학적 방식으로 증명했다. 그러나 아라비아에서 대수학이 발전하면서 피타고라스 정리가 대수학적으로 증명됐고 나아가서 근대 해석기하학에서 대수학이 일반적으로 사용되면서, 기하학적 크기 역시 불연속적 속성을 지닌다는 사실이 인정되기에 이른다.

대수학의 발전은 기하학의 연속적 크기가 불연속적 크기를 가지며, 거꾸로 산수적 불연속적 크기가 연속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입증하면서 수를 이렇게 연속적 크기와 불연속적 크기로 나누는 것을 의미 없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헤겔은 정량을 다루면서 당시 흔히 다루었던 방식대로 연속적 크기와 불연속적 크기로 나누지 않고, 외연량과 내포량으로 나누었다.

4)

이제 외연량과 내포량, 외연적 크기와 내포적 크기의 관계를 다루기 전에, 이 두 가지 크기의 공동 지반이 되는 정량을 살펴보자. 정량은 개념적으로는 양적인 것이 규정성 또는 한계를 지니면서 출현한다.

이런 정량은 구성하는 요소는 우선 일자다. 이 일자[Eins]는 정량의 수를 셀 때 출발점이 되는 것 즉 기본 단위다. 이 단위를 무엇으로 하는가는 자의적이다. 물의 양을 재기 위해 우리는 부엌에서처럼 바가지로 잴 수도 있고 실험실에서처럼 비커로 잴 수도 있다. 전통적 단위인 ‘냥’으로 잴 수도 있고 국제 표준 단위인 그램을 사용할 수도 있다. 어느 단위를 사용하든 자의적인 것은 마찬가지다. 여기에 고유한 객관적 단위는 없다. 헤겔은 어떤 정량을 재기 위한 단위를 그저 ‘일자’라고 한다.

정량을 단위로 재면, 두 가지 계기가 출현한다. 헤겔은 이를 개수[Anzahl]와 총수[Einheit]라고 한다. 이 두 계기가 수를 설명하는데 아마도 헤겔만이 제시한 독특한 개념이다. 우선 개수는 어떤 단위가 얼마나 여러 번 반복됐는가를 말한다. 20의 크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1이 스무 번 반복돼야 한다. 즉 20에는 1이 스무 개 들어있다.

20개 속에 들어있는 1 즉 일자는 서로 동일하다. 그 중 어느 것도 1일뿐이다. 또한, 이들은 서로 동등하다. 세 번째 1과 네 번째 1은 세기 나름이지, 달리 세어서 세 번째를 네 번째로 세고 네 번째를 세 번째로 세더라도 무방하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20개 속에 있는 일자는 불연속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일자는 아무리 빨리 세더라도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어진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총수[Einheit]를 보자. 이것은 1을 스무 번 반복해서 나온 ‘20’이라는 수가 다른 수 예컨대 ‘9’라든가 ‘21’과 같은 수와 비교해서 가지는 의미다. 이 20은 개수로 보면 스무 번 반복한 것이지만, 총수로 보면, 다른 수처럼 고유한 것이다. 예를 들어 엄지와 검지는 개수로 보면 1과 2지만, 총수로 보면 각자 고유한 것 즉 엄지와 검지다. 엄지는 머리를 누르는 것이고 검지는 옆구리를 찌르는 것이다. 스무 개라는 개수가 고유한 스물이 되는 게 바로 수다.

20이 스무 개라는 점에서는 불연속적인 것의 집합이다. 그러나 20을 총수로서 고유한 크기로 보면, 그 속에 모여 있는 20개라는 분리된 것들은 의미가 사라지고 전체는 하나의 통일성을 지닌 것 즉 연속적인 것이 된다. 그러기에 이름이 총수[Einheit: 통일성]이다.

“수는 그 계기로 총수와 개수를 가지며 그 자체에서 양자의 통일이다. 총수는 연속성의 계기며, 개수는 분리의 계기를 이룬다. 양자는 정량 속에서 수로서 존재한다.”(논리학 초판, GW11, S. 126)

5)

정량에서 개수와 총수가 이처럼 두 계기를 이루므로, 헤겔은 정량의 규정성과 질적 현존의 규정성을 비교한다. 질적 현존에서 규정성 즉 감각적 성질은 우연적이고 개별적이고 외면적일 뿐이다. 그것은 타자에 대립해서 규정된 것이다. 예를 들어 빨간색은 파란색에 대해 규정된 것이다.

그러나 정량에서 규정성 즉 한계는 다른 규정성과 구별되는 것만은 아니다. 동시에 다른 규정성과 연결되고 있으니, 4는 3과 5와 다른 것이지만, 동시에 단위인 일자를 셋에서 한 번 더 더한 것이며 한 번 더 더하면 다섯이 되는 것이다. 전자의 측면에서 타자에 대립해서 규정되지만, 후자의 측면에서는 자기 관계해서 규정된 것이다.

어떤 사물의 정량이 20이라고 할 때, 이 개수로서 20이든 총수로서 20이든, 그 기본 단위가 자의적이므로, 그 정량은 자의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나이가 스무 살 된 대학생보고 팔십 먹은 노인네라 해도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나이를 셀 때 1년을 단위로 하지 않고 계절별로 세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량이라는 크기는 어떤 사물에 대해 외면적이고 그 사물의 본성과 무관한 무차별성을 지닌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일정한 단위가 전제된다면, 그때 정량은 그 사물을 규정하는 고유한 한계, 규정성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군에 가는 나이는 20살이다. 누구도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스무 살에는 군에 가야 한다.

정량을 재는 단위가 이처럼 자의적이라는 점에서 정량은 타자에 의해 규정된 것이다. 그러나 정량을 재는 단위가 일단 정해진다면, 정량은 그 단위의 반복을 통해 규정되는데, 그런 점에서 정량은 자기 자신을 통해 규정된 것이다. 이런 이중성 때문에 헤겔은 정량은 “타자를 통해 규정되는 가운데 자기 자신과 동일하게 머무른다”라고 말한다.

6)

정량의 규정성이 자의적인 규정성이라는 점에서 이 정량의 규정성은 질적 현존에서 현존의 규정성과 유사하다. 현존의 규정성 즉 감각적 성질은 주관이 파악한 우연성이며, 그 사물에 대해 외면적이다. 질적 범주에서 운동은 인식하는 주관이 이 외면성을 극복해서 사물에 고유한 성질을 찾아 나가는 운동이었다. 그 운동 끝에 마침내 대자 존재 즉 그 사물의 형상에 이르렀다.

정량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정량은 외면적인 규정성이다. 어떤 사물에 고유한 정량을 발견하는 것이 양적 판단 형식에서 운동의 기본 목표다. 예를 들어 도라는 음은 현의 길이를 통해 그 본성을 드러낸다. 여기서 현의 길이는 도라는 음의 본성을 규정하는 것이다. 즉 단순한 우연적 정량이 아니다. 헤겔은 척도라는 개념에 이르면 비로소 고유한 정량이 출현한다고 본다.

“양적인 것은 대자 존재가 지양된 것이므로 이미 그 자체에서 그리고 대자적으로 그 한계에 대해 무차별하다. 그러나 동시에 양적인 것에서 그 한계 또는 정량이라는 사실은 무차별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양적인 것은 일자를 즉 절대적으로 규정된 존재를 자체 내에 그 자신의 고유한 계기로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 일자는 그 자신의 연속성 또는 총수에 이르러 정립되면 양적인 것의 한계가 된다. 이 한계는 양적인 것이 자기를 생성해 마침내 도달한 하나의 독자적 존재[Eins]로서 머무른다.”(논리학, 재판, GW21, S. 193)

헤겔 형이상학 산책44-정량과 수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44-정량과 수

1)

형이상학은 세계의 가장 일반적인 원리를 다룬다. 칸트의 선험철학을 원리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더욱 발전하겠다고 확고하게 선언했던 헤겔은 세계의 일반 원리를 사유의 근본 범주(또는 판단 형식)로부터 끌어내려 했다.

문제는 양적 범주다. 양적 판단 형식 즉 양적 범주가 세계를 일반적으로 구성하는 원리가 될 수 있는지, 요즈음 철학은 많은 의문을 던지고 있다. 러셀이나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것처럼 원초적인 세계는 질적 개별자의 세계가 아닌가? 양적 범주란, 세계 밖에서 사유하는 인간의 주관적 산물이 아닐까?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이 개별적인 것이 존재하려면 지속적이어야 한다. 명멸하는 우연적인 것에는 이런 개별성조차 없고 그저 있었다가 사라지는 것을 반복할 뿐이기 때문이다. 찰나생 찰나멸, 이런 세계에서는 사유한다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런데 지속하는 것이 있는 한, 이 지속성은 서로 대립하는 두 성질이 자기 관계하는 것 즉 대자 존재일 수밖에 없으며, 그럴 때 대자 존재자들의 상호 관계는 양적인 관계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양적인 세계의 존재는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에서 그리고 그 뒤를 잇는 원자론자의 원자와 공간의 개념을 기초로 한다. 원자와 원자의 관계가 곧 양적인 관계이며, 이 양적인 관계에서는 오직 연속성과 분산성이라는 두 가지 관계밖에 없다. 원자와 원자는 동일한 대자 존재의 관계이니 연속적이며 그러면서도 이 관계 맺는 것이 서로 독자적인[fuer sich] 것이니 분산적이다. 연속적이라는 점에서 물질적인 것이며, 분산적이라는 점에서 공허로서 공간적인 것이다. 물질과 공간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지만, 서로의 이면에 떼어낼 수 없이 붙어있다.

2)

양적인 관계야말로 수학적 관계의 토대가 된다. 파르메니데스의 형이상학이 양의 세계를 밝힘으로써, 피타고라스의 수의 세계도 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양적인 것과 수적인 것은 다르지 않을까?

헤겔은 양적인 것에서 정량이 나오고 정량에서 다시 수가 나온다고 한다. 양적인 것은 대자 존재의 연속과 분리라는 관계를 말할 뿐이다. 그것은 얼마나 큰가 하는 크기 규정을 갖지 않는다. 정량은 이런 양적인 것이 일정한 크기 규정을 지니게 된 것을 말한다.

이미 양적인 것은 크기 규정을 지닐 수 있다. 그것은 동일한 대자 존재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대자 존재는 반복하는 만큼의 크기를 지닌다. 하지만 여기서 양적인 것에서 크기 규정은 다만 가능적인 것일 뿐이다. 그것이 특정한 크기를 지니려면 다른 것과 비교되어야 한다. 즉 잣대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길이는 미터를 잣대로 하고, 무게는 그램을 잣대로 한다. 그러나 미터나 그램과 같은 잣대는 주관적으로 선택된 임의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떻든 임의적으로 선택된 잣대를 기준으로 반복을 통해 일정한 크기가 규정된다. 이렇게 규정된 특정한 크기가 곧 정량이다.

정량은 반복되면서 이미 수적인 체계를 갖지만, 아직 수는 아니다. 그것은 가능적인 수적 체계다. 이 정량이 수가 되려면, 일정한 잣대가 지닌 수적 관계가 추상돼야 한다. 그렇게 추상된 수적 관계가 곧 수를 이룬다.

“정량은 일단 규정성이나 한계 일반을 지닌 양적인 것인데, 그것이 완전하게 규정되면 수다.”(논리학 재판, GW21, S. 193)

정량과 수의 관계는 마치 마르크스가 말한 상품과 화폐의 관계와 같다. 화폐는 상품의 하나다. 어느 상품이 화폐인가 하는 것은 주관적 선택에 달려 있다. 그러나 역사적 발전을 통해 어떤 상품이 사회에서 대표적으로 화폐로 선택되면서 화폐가 출현한다. 이 화폐는 상품이 지닌 교환가치의 비례 관계라는 수적 체계를 의미할 뿐이다.

정량과 수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정량을 측정하는 잣대는 주관이 임의로 선택한 것이다.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선택된 대표적인 잣대가 곧 수다. 이 수는 정량의 비례 관계를 언표하는 수단이 된다.

3)

이제 수 개념에 관한 플라톤이나 러셀의 주장을 헤겔의 사유와 비교하여 살펴보자. 19세기 심리주의는 수를 더하거나 빼는 것과 같은 사유의 활동에서부터 끌어내려 했다. 그러나 이런 사유의 심리적 활동은 경험적이고 우연적이지만, 수적 질서는 객관적이고 필연적이니, 이런 심리주의는 수를 적절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그 결과 수를 플라톤적인 이데아에서 끌어내거나, 수를 논리로 환원하려는 논리주의가 등장했다.

우선 수에 관한 플라톤적 설명은 문제가 있다. 수는 자주 이데아와 같은 초월적 존재를 지닌 것으로 여겨진다. 기하학적 크기도 일종의 수라고 할 수 있는데, 기하학적 질서야말로 플라톤이 이데아의 표본으로 설명해 왔던 것이 아닌가? 수가 이처럼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이 자연의 질서 속에 수를 적용한다는 것은 이 자연이 수를 모델로 만들어졌다는 플라톤의 생각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이데아에 따라 세계를 창조하는 데미우르고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창조주 신은 일단 제쳐 두자. 창조주는 굳이 이데아의 모범에 따라 세계를 창조할 필요는 없다), 자연이 초월적 이데아를 따르는 까닭을 이해할 수 없다. 데미우르고스를 인정할 수 없다면, 자연 속에 수적인 질서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만큼 자연적인 것에서부터 수적인 질서가 발생하는 것을 설명해야 한다.

헤겔의 생각은 그런 점에서 수가 자연에서 발생하는 과정을 잘 이해시켜 준다. 헤겔에서 수적인 것은 양적인 것에서 나온다. 양적인 것은 일정한 크기를 지닌 정량으로, 정량에서 다시 정량을 대표하는 수로 전개된다. 정량이 이미 수적 관계를 내포하고 있으며, 그것을 대표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다만 수일 뿐이다. 수도 하나의 정량으로서 다른 정량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선택된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마치 마르크스에서 상품에서 화폐가 나오는 과정과 같다.

4)

이번에는 현대 수 이론을 대표하는 러셀의 주장을 살펴보자. 러셀은 수를 집합의 집합으로 정의했다. 쌍으로 이루어진 것들의 집합, 예를 들어 {신발, 손, 발, 귀 등등}. 그것을 대표하는 것이 두 번째 손가락(검지, 둘)이다. 셋으로 이루어진 집합도 있다. {솥의 다리, 삼원색 등등.} 이것을 대표하는 것이 세 번째 손가락(중지, 셋)이다. 이처럼 어떤 집합을 대표하는 것들로 이루어진 집합 즉 {둘, 셋, 넷… 등등}이 곧 수이다.

러셀의 수 개념은 간명하기는 하지만, 이 집합의 집합을 통해 수의 진정한 개념이 정립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러셀의 주장은 헤겔이 이미 말한 것처럼 수가 정량을 대표하는 것이라는 말에 불과하다. 그는 수로 사용되는 언어가 어떻게 해서 수적 질서를 의미하게 됐는지를 말할 뿐이다. 이를 통해 수가 지닌 기본적인 속성 즉 수의 연속성과 분산성은 밝혀진 바가 없다.

이런 집합의 집합으로서 수 개념은 정의 속에 이미 수를 전제로 한다. 즉 ‘쌍으로 이루어진 집합’이나 ‘셋으로 이루어진 집합’이라는 개념이 이미 쌍이나 셋이라는 수 개념을 포함하니, 정의될 것을 정의 속에 전제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

더구나 이런 수 개념으로서는 수가 지닌 가장 근본적인 속성인 연속성과 분산성이라는 속성을 끌어낼 수 없다. 쌍을 대표하는 수 검지(둘)와 다섯 개짜리를 대표하는 수 즉 약지(다섯) 가운데 어느 것이 큰가 또는 둘과 셋을 더하면 다섯이 나온다는 수적인 질서가 나오지는 않는다. 검지가 약지보다 작은가? 또는 검지로 찌르고 다시 중지로 찌른다고 해서 약지로 찌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까?

더구나 러셀의 수 개념은 집합 개념에 기초하는 것인데 집합 개념은 그 자체 모순을 포함한다는 사실이 이른바 러셀의 역설을 통해 스스로 밝힌 바 있다. 사실 잘 살펴보면, 러셀의 수 이론은 수의 개념을 설명한다기보다 수로 사용되는 언어가 어떻게 선택된 것인지를 보여줄 뿐이다.

5)

플라톤이나 러셀은 수 개념을 이성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헤겔은 양적인 것에서부터 수 개념을 끌어냈는데, 양적인 것을 규정한 정량은 다양한 것들로 존재한다. 이런 다양한 정량적 존재자들을 대표하는 것이 곧 수다.

플라톤의 <국가> 강해(76)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76)

 

C. 철인통치자의 교육 목표와 교과목(502c-541b)

5. 영혼의 전환과 참된 실재로의 상승을 위한 교과목들(제7권 521c-541b)

2) 본 교과목 : 철학적 문답법 – 변증술(531d-535a)

 

[531d-535a]

* 소크라테스는 앞서 다룬 배울 거리들이 본 곡το νόμος을 배우기 위한 서곡το προοίμιον에 지나지 않음을 밝힌다. 아무리 그것들에 대단한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은 ‘변증술에 능한 자들’οἱ διαλεκτικοὶ이 아니기 때문이다.(531d) 그런 연후 소크라테스는 바로 변증술적 대화’τὸ διαλέγεσθαι가 연주하는 바로 그 본 곡을 아래와 같이 언급한다. ‘그것은 마치 시각 능력이 마침내 생물들 자체와 별들 자체, 그리고 마지막으로 태양 자체 보기를 시도하듯이 누군가가 변증술적 대화에 착수해서 모든 감각을 배제하고 논변λόγος을 통해 “‘각각의 있는 것 자체’αὐτὸ ὃ ἔστιν ἕκαστον를 향해 나아가ὁρμᾶν, 있는 것인 ‘좋음 자체’αὐτὸ ὃ ἔστιν ἀγαθὸν를 지성적 이해νόησις 자체에 의해 파악λαβή하는 것”이다. 즉 마치 ‘동굴을 벗어난 수감자’가 가시적인 것의 끝점τέλος에 도달하듯이, 가지적인 것의 바로 그 끝점에 도달하는 그 여정πορεία이 곧 ‘변증술’διαλεκτική이라 불리는 것이다.(532a-b)

* 그리고 그 여정에 이르기까의 과정들 즉 결박δεσμός으로부터 풀려나기, 그림자σκιά들 쪽에서 영상εἴδωλον들과 빛 쪽τὸ φῶς을 향해 방향을 바꾸기μεταστροφή, 동굴κατάγειος에서 나와 태양ἥλιος까지 올라가기ἐπάνοδος,(532b) 그리고 거기에서 아직은 동식물들τὰ ζῷά τε καὶ φυτὰ과 태양의 빛을 볼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있는 것들의 그림자와 물ὕδωρ에 비친 ‘신적인 상들’φαντάσματα θεῖα을 보기 등은 영혼 안의 가장 훌륭한βέλτιστος 것을 있는 것들 중에 가장 좋은ἄριστος 것을 구경θέα할 수 있도록 이끌어 올리는 힘δύναμις을 가지고 있다.(532c)

* 이와 같이 소크라테스가 본 곡에 대한 운을 떼자 글라우콘은 그것을 받아들이기도 받아들이지 않기도 쉽지 않은 일이어서 앞서 서곡에 대해 설명 했던 것처럼 본 곡도 설명해주기를 요청한다. 우선 그는 변증술적 대화τὸ διαλέγεσθαι의 힘δύναμις은 어떤 성격τρόπος의 것이며, 어떤 식으로 분류되고διέστηκεν, 또 어떤 길들ὁδοί을 따라가는지를 묻는다.(532d). 이 길들이 드디어 바로 그곳, 거기에 도달한 사람들οἷ ἀφικομένῳ에게는 길로부터의 휴식ἀνάπαυλα이자 ‘여정의 종착지’τέλος τῆς πορείας와 같은 것이 되는 그곳으로 인도하는ἄγουσαι 길들이기 때문이다.(532e)

* 이에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열의προθυμία야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테고, 이제부터 비유εἰκών를 통해서가 아니라 내게 보이는 대로 참된 것 자체’αὐτὸ τὸ ἀληθές,ὅ γε δή μοι φαίνεται를 보게 될 테지만 그리고 그것이 진짜 그런지 아닌지는 더 이상 자신 있게 주장할 만한 일이 아니지만, 더 이상은 따라올 수 없을 것이라 말한다.(533a) 그리고 그는 각각의 것 자체 모두에 관하여 체계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별도의 연구 즉 변증술적 대화의 힘뿐이고 다른 모든 기술들은 사람들의 믿음δόξα들과 욕구ἐπιθυμία들과 관련되어 있거나, 생성γένεσις 또는 조립σύνθεσις된 것들과 관련되어 있거나, 아니면 그러한 것들을 보살피는 쪽πρὸς θεραπεία으로 모두 방향이 맞춰져 있다τετράφαται고 말한다.(533b) 그리고 ‘있는 것’τὸ ὄν에 어느 정도 관여한다고 우리가 주장한 나머지 것들, 즉 기하학과 그에 뒤따르는 것들도, ‘있는 것’을 깨어 있는 상태로 볼ὕπαρ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것들은 가정ὑπόθεσις들을 사용하되 그 가정들에 대한 설명λόγον διδόναι은 제공할 수 없어서 그것들을 건드리지 않고 내버려 두기ἐῶσι 때문이다. 이와 같이 첫 원리ἀρχὴ는 물론 결론τελευτή과 그 중간의 것들τὰ μεταξὺ도 알지 못하는 것으로 짜여진 경우’ἐξ οὗ μὴ οἶδεν συμπέπλεκται 설사 정합성ὁμολογία을 이룬다 해도 결코 앎ἐπιστήμη이 될 수 없다.

*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변증술적 연구ἡ διαλεκτικὴ μέθοδος만이 스스로 확고하게 만들기βεβαιώσηται위해 가정들을 제거하면서ἀναιροῦσα 첫 원리 자체로 나아가며πορεύεται,(533c) 우리가 설명한 기술들τέχναι을 ‘영혼의 전환을 함께 돕는 조력자’συνερίθος καὶ συμπεριαγωγός로 삼고서 그야말로 ‘야만의 늪에’ 묻혀 있는 영혼의 눈ἐν βορβόρῳ βαρβαρικῷ τινι τὸ τῆς ψυχῆς ὄμμα κατορωρυγμένον’을 ‘조용히 이끌어 위로 인도한다.’ἠρέμα ἕλκει καὶ ἀνάγει ἄνω고 말한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앞서 설명한 기술들을 우리는 습관ἔθος 때문에 종종 앎ἐπιστήμη이라고 불렀지만, 이것들에게는 믿음δόξα보다는 밝고 앎보다는 어두운 다른 이름이 필요하여 앞에 어딘가에서 우리는 이것을 사고διάνοια라고 불렀지만, 내가 보기에, 살펴볼 것이 우리 앞에 이토록 많이 놓여 있으므로 이름ὄνομα을 가지고 왈가왈부ἀμφισβήτησις할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533d) 그런 연후 앞에서 그랬듯이, 첫 번째 부분은 앎ἐπιστήμη이라고 부르고, 두 번째는 사고διάνοια, 세 번째는 확신πίστις, 네 번째는 짐작εἰκασία이라고 부르고 뒤의 둘은 합쳐서 믿음δόξα으로, 앞의 둘은 합쳐서 지성적 이해νόησις라고 부르면 충분하다고 덧붙인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믿음은 생성γένεσις과 관련되고 지성적 이해는 있음οὐσία과 관련되며, 있음과 생성의 관계는 지성적 이해와 믿음의 관계와 같으며 지성적 이해와 믿음의 관계는 앎과 확신의 관계, 그리고 사고와 짐작의 관계와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다만 이것들이 대상으로 하는 것들 사이에 어떤 비례ἀναλογία가 성립하는지와, ‘믿음의 대상과 지성적 이해의 대상 각각을 둘로 나누는 것’διαίρεσιν διχῇ ἑκατέρου, δοξαστοῦ τε καὶ νοητοῦ은 우리가 해온 논의의 몇 배나 되는 논의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 내버려 두자고 말한다.(534a)

* 소크라테스는 위와 같이 각각의 것의 있음οὐσία에 대해 설명λόγος을 할 수 있는 자를 ‘변증술에 밝은 자’διαλεκτικός로 그리고 그럴 수 없는 자는 스스로와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을 제시’λόγον διδόναι할 수 없는 자로서 지성νόος을 갖추지 못한 자로 부르고 좋음τὸ ἀγαθός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즉 ‘좋음의 형상’τὸ ἀγαθοῦ ἰδέα을 설명을 통해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 구별해서 규정할 수 없는 사람,(534b) 그래서 마치 전투에서처럼 모든 논박ἔλεγχος을 헤쳐 나가면서 믿음이 아니라 있음에 의거해서 검토하고자ἐλέγχειν 애를 쓰며 그 설명λόγος을 유지한 채로ἀπτωτί 이 모든 상황을 뚫고 나가지διαπορεύηται 못하는 사람은 좋음 자체αὐτὸ τὸ ἀγαθὸν도 그리고 다른 어떤 좋은 것도 알지 못하는 자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그런 사람은 행여 어떤 영상을 포착한다고 하더라도 앎이 아니라 믿음으로 포착하는 것이며, 현재의 생에서 꿈꾸고ὀνειροπολοῦντα 졸면서ὑπνώττοντα 지내다가 여기서 깨어나기ἐξεγρέσθα 전에 하데스에 먼저 도착해서 완전히 잠들 것이라고 말한다.(534c)

*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아이들을 논의가 아니라 언젠가 실제로 양육하게 될 경우, 그들이 마치 무리수ἄλογος 길이의 선분들과 같은 상태로 나라의 통치자ἄρχων가 되어 가장 중요한 일들을 주재하는κυρίους 것을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질문하고 대답하기를 가능한 한 가장 잘할 줄 아는 자가 되게 만드는’ἐξ ἧς ἐρωτᾶν τε καὶ ἀποκρίνεσθαι ἐπιστημονέστατα οἷοί τ᾽ ἔσονται 교육παιδεία에 그들이 참여하도록 법을 제정할 것을 제안한다.(534d)

* 그런 연후 소크라테스는 위와 같은 자신의 설명이 변증술ἡ διαλεκτικὴ이 마치 갓돌θριγκός처럼 배울 거리들τὰ μαθήματα 위에 놓이고, 이것보다 위에 놓여 마땅한 다른 배울 거리μάθημα는 이제 더 없는 것으로 보이게 했는지를 확인한 후(534e) 배울 거리들에 대한 문제가 드디어 마무리τέλος되었다고 말하고 이제 배울 거리들을 누구에게 그리고 어떤 방식τρόπος으로 부여할지를 배정διανομή하는 일이 남아있다고 말한다.(535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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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3c ‘첫 원리archē는 물론 결론teleutē과 그 중간의 것ta metaksy들’ :  점차 밝혀지겠지만 변증술적 앎의 총체성은 철학의 총체성이 그러하듯 비록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구체적 개별자들을 하나로 관통하여 존재 세계에 대한 총체적 견지를 가져다주고 나아가 그것을 토대로 개별 존재들 각각의 본질에 대한 원리적인 포착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리고 플라톤의 형상은 위계상 최상의 실재 세계를 구성하지만, 철학자 왕에게 그 형상적 앎이 요구되는 근원적인 이유와 목표는 오히려 형상과 무(mē on) 사이에 존재하는, 끝없이 차이를 노정하는 중간의 것들 즉 현실 세계의 인식과 구원에 있다. 즉 형상의 인식은 실천적으로는 하나의 방편인 것이다. 변증술을 통해 좋음의 형상을 아는 사람은 마치 전투에서처럼 모든 논박을 헤쳐 나가면서 믿음이 아니라 있음에 의거해서 검토하고자 애를 쓰면서 그 설명을 유지한 채로 현실의 모든 상황을 뚫고 나가는 사람이다.(534c) 변증술이 철학자 왕이 배우고 알아야 할 궁극의 교과인 이유이다.

* 533d ‘이름을 가지고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 플라톤은 선분의 비유를 이곳에서 다시 요약하고 있는데 제5권(474c-480a)과 제6권 선분의 비유(509c-513c)의 내용과 비교하여 epistēmē의 범위를 다소 다르게 기술하고 있다. ‘이름을 가지고 왈가왈부 할 일이 아니다’라는 이곳 언급은 그것을 의식하고 한 말로 보인다. 그런데 본 강해 64에서 살폈듯이 그의 그러한 용어 사용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플라톤 자신 최소한 기하학, 천문학 등 일반 학술technai이 포함하는 ‘사고’dianoia의 학적 수준을 일종의 앎이자 지성적 이해로 넓게 포함시켜 평가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우리가 해온 논의의 몇 배나 되는 논의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 말이지’(534a)도 인지적 상태들 사이에 성립하는 비례관계가 그 대상들 사이에 성립하는 비례관계와 같지 않을 수도 있다는 해석을 낳는 부분이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이 역시 dianoia의 대상에 일정 부분 학적인 성격을 유연하게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강해 64 해당부분 참고)

* 534b ‘설명을 제시하는 것’logon didonai : logon didonai는 플라톤 철학을 설명할 때 핵심적으로 제시되는 용어의 하나이다. 플라톤에게 지성nous을 갖춘다는 것은 특정 입장의 강요나 압박, 선전·선동이 아니라 스스로와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대화의 방식으로 충분히 ‘설명을 제시하는 것’이다.

* 534d ‘무리수 길이의 선분들과 같은 상태로’ : ‘무리수’로 번역한 그리스어는 ‘alogos’이다. 그것은 logos(정수들의 비율)가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만 ‘비이성적’이라는 의미도 있다는 점에서 이 부분은 일종의 말 유희를 포함하고 있다. 플라톤은 좋음에 대한 설명 또한 이성적 설명을 넘어선 것으로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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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증술의 원어 dialektikē는 어원상 ‘대화하다’, ‘토론하다’, ‘끄집어내다’를 의미하는 dialegō에서 파생된 형용사 dialektikos(문답에 능한)의 여성형이다. 그래서 그 말은 명사형으로는 그리스어 사전상 표제어로 나오지 않는다. 그 말이 플라톤 고유의 철학적 문답의 기술 즉 he dialektikē technē를 나타내는 하나의 명사 ‘dialektikē’로 사용된 곳은 이곳(532b)이 처음이다. 물론 제논(Zeno of Elea)도 이 말을 문답술의 의미로 사용했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전하고 있지만(<단편집> 단편 65) 전거상 구체적인 내용을 갖고 고도의 철학적 문답기술로 제시한 것은 플라톤이 처음이다. 이후 철학사를 통해 수많은 철학자들이 쓰고 있는 이른바 ‘변증법’dialectics이라는 이름은 바로 플라톤이 <국가>에서 명명한 이 dialektikē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말 역본에서 dialektikē를 ‘문답법’이 아닌 ‘변증술’로 번역하고 있는 것도 플라톤 고유의 방법론이라는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그러한 철학사적 연관도 함께 고려한 것이리라.

* 물론 dialektikē라는 말이 <국가>에서 처음 사용되었다고 해서 플라톤의 변증술이 <국가>에서 처음 제시된 철학적 방법론은 아니다. 나중 살피겠지만 dialektikē와 거의 병용하다피시 사용되고 있는 dialegesthai(변증술적 대화 – dialegō의 중간태 현재 부정사. 중간태는 동사가 의미하는 행동이 자신에게 미치는 경우 쓰이는 그리스어 특유의 변화형)란 말과 ‘변증술에 능한’을 의미하는 dialektikos란 말이 이미 그 이전 대화편들에서도 많이 나온다. 그럼에도 이곳 <국가>에서 변증술에 관한 플라톤의 언급이 중요한 것은 그 자신 앞서 본문 요약이 보여주듯 동굴의 비유와 선분의 비유를 모두 끌여들여 변증술의 핵심을 매우 적극적인 방식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플라톤은 변증술을 ‘동굴을 벗어난 수감자가 동물들 자체와 별들 자체 그리고 마지막으로 태양 자체를 보기를 시도하는 것’에 비유하면서 구체적으로 “dialegesthai에 착수해서 모든 감각을 배제하고 논변logos을 통해 각각의 있는 것 자체를 향해 나아가, 있는 것인 ‘좋음 자체’를 지성적 이해 자체에 의해 파악하는 것”, “마치  수감자가 동굴 바깥 가시적인 것의 끝점에 도달하듯이, 가지적인 것의 바로 그 끝점에 도달하는 여정poreia”’(532a-b)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결박으로부터 풀려나기부터 있는 것들의 그림자와 물에 비친 사람들이나 신적인 상들을 보기까지의 과정을 앞서 설명한 산술과 기하학 등 학술들이 수행한 작업으로서 ‘야만의 늪에 묻혀 있는 영혼의 눈을 조용히 위로 이끌어’ 종착지인 좋음의 형상에 이르게 하는 힘, 즉 변증술을 가능케 만드는 힘으로 규정하고 있다.(532c) 동굴의 비유 해당 부분(516a)에 따르면 이 신적인 상들을  본 연후 눈이 익숙synētheia해져 비로소 동굴 바깥 실물들을 보게 되고 이어서 하늘에 있는 것들과 하늘 자체를 보는 것이 가능하다. 이것은 플라톤이 수감자가 결박에서 풀려나 동굴 바깥에 이르러 물에 비친 사람들과 신적인 상들을 보는 단계까지의 과정과 그 단계를 넘어 실물들을 보고 하늘을 본 후 끝내 태양을 보기까지의 여정을 구분함과 동시에 후자의 여정 즉 “실재 세계로 들어와 실물들 즉 ‘각각 있는 것 자체’auto ho estin hekaston인 형상들을 본 후 지성적 이해를 통해 형상들 전체를 하나로 꿰뚫고 있는 ‘좋음의 형상’이라는 끝점에 도달하기까지의 여정”을 변증술로 규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그리고 플라톤은 <국가>에서 위와 같이 변증술을 규정한 후, 이후의 대화편들 구체적으로 <파이드로스>, <소피스트>, <필레보스>, <정치가>에 이르러 이른바 모음(종합)synagē과 나눔(분할)diairesis의 방법을 끌어들여 최고류는 물론 형상 세계 전체의 상호 관계에 대한 논의에 집중하면서 그 탐문의 기술을 다시 한 번 ‘변증술’로 부르고 있다. 이것이 곧 많은 학자들이 공통으로 이름을 붙인 이른바 플라톤의 ‘후기 변증술’이다. 나중 이 후기 변증술을 간략히 살펴보겠지만 나눔과 모음을 변증술의 방법으로 처음 제시하고 있는 <파이드로스>의 경우 그 모음의 방법은 ‘흩어져 있는 여럿들 모두를 함께 보면서 단일한 형상으로 이끄는 것’으로, 그리고 나눔의 방법은 ‘서투른 푸주한처럼 부분 부분을 부숴트리는 것이 아니라, 형상에 따라 자연적인 마디 그대로 자를 줄 아는 것’으로 정의되고 있다.(265d-266c) 그러나 모음과 나눔의 방법으로서 새롭게 제시된 이른바 후기 변증술이라고 해서 앞서 <국가>에서 정의된 변증술과 무관하거나 다른 성격의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내용상 모음과 나눔이라는 표현이 명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았을 뿐, <국가>에서도 오름길의 마지막 단계 즉 형상들과 그것들의 관계와 위계 그리고 좋음의 형상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변증술로 규정하고 있고, 내림의 과정에서도 형상들 각각의 진상과 상호 관계가 다시 조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앞서 살폈듯이 동굴의 비유에서 수감자는 동굴 바깥으로 나와  각각의 사물들과 동식물들 자체와 별들 자체 등 사물세계 전체를 본 후 마지막으로 태양 자체를 본다. 다시 말해 수감자는 형상으로서 각각의 실물들을 본 다음 그 실물들과 그 실물들의 결합물로 가득한 바깥 세계 즉 지상과 하늘에 존재하는 실재 세계 전체는 물론 그 결합의 궁극 원리로서 좋음 자체도 인식한다. 그뿐만 아니라 선분의 비유에서도 플라톤은 그러한 과정을 간략하지만 보다 명시적인 방식으로 아래와 같이 언급하고 있다. 즉 변증술을 통해 오름의 과정에서 “이성 자체가 첫 원리를 포착한 다음 이번에는 이 원리에 의존하고 있는 것들을 고수하면서 다시 결론 쪽으로 내려가되 그 어떤 감각적인 것도 전혀 이용하지 않고 형상들 자체만을 이용하여 이것들을 통해 이것들 속으로 들어가서 형상들에서 또한 끝을 맺는다.”고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511b-c) 이 언급은 앞서 언급한 후기 변증술 즉 모음의 방법으로 하나의 유(類)genos를 포착한 다음 나눔의 방법으로 그 유를 종(種)들eidē로 나누되 정의할 부류의 본질적 성질이 드러날 수 있도록 최하종atoma eidē에 이르기까지 나누는 절차와 내용상 큰 차이가 없다. 

* 그러나 이러한 후기 변증술이 비록 <국가> 이후 후기 대화편들에 와서 모음과 나눔이라는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제기되었다고 해도 그 변증술의 기본 성격과 목표와 지향은 <국가>에서 ‘변증술적 힘의 성격과 분류, 방향’을 묻는 글라우콘의 문제의식(532d-e)이 보여주듯 <국가>를 포함해서 그 이전 대화편들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이미 제기되어 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사실은 플라톤이 변증술을 다루면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들만 추적해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앞서 살폈듯이 dialektikē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분명 이곳 <국가>가 처음이다. 그렇지만 <국가>에서 조차 그 말은 532b, 536d 두 군데 정도에서 사용할 뿐, 변증술을 거론할 때면 그 이전부터 사용했던 dialektikos와 dialegesthai를 그대로 쓰고 있다. 아니 <국가>에서 변증술을 나타내는 말로 오히려 그 말들이 훨씬 많이 사용되고 있다.(dialegesthai : 511b, 511c, 525d, 532a, 532d, 533a, 537d, 537e, 539c, dialektikos : 290c, 531d, 534b). 그에 따라 그 말들은 이른바 후기 변증술을 본격적인 주제로 포함하고 있는 대화편들 즉 <파이드로스>, <소피스트>, <필레보스>, <정치가>에서도 너무나 당연하듯 자연스럽게 사용된다. 게다가 이제 주목할 것은 그 말들은 그곳에서만이 아니라 쟁론술eristikē과 대비하여 함께 참과 존재를 탐구하는 철학적 문답법의 의미로 이미 <국가> 이전부터 사용되어왔다는 점이다. 물론 그 말들은 상용어라는 점에서 꼭 변증술적 문답의 의미로만 쓰인 것은 아니지만 이를테면 <변명>에서는 물론(40c), <프로타고라스>에서도 소크라테스와 대화자들 사이에서 dialegesthai가 철학적 문답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고(335a, 336c) <고르기아스>(448d)에서도 소크라테스는 그 말을 철학적 문답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메논>(75d)에서는 dilektikos가 ‘진리를 답하는 것뿐만 아니라 묻는 사람이 안다고 인정하는 그런 것들을 가지고 답하는 것’으로 언급되고 있고  <크라튈로스>(389d)에서도 dialektikos가 변증술 관련 용어로 사용되면서 ‘입법가의 일을 잘 감시할 수 있는 사람’으로 언급되고 있다.  중기 대화편이기는 하지만 <에우튀데모스>(290c)에서도 그 말이 나온다. 그리고 <테아이테토스>(167e)에서도 <필레보스>(17a)에서처럼 dialegesthai가 쟁론술과 구분되는 진정한 철학의 방법임이 강조되고 있다. 서양 역본은 물론 우리말 역본에서 ‘dialectics’, ‘변증술’이란 단어가 수없이 등장함에도 정작 그것의 원어가 꼭 dialektikē가 아닌 이유도, 그리고 변증술 관련 원어 색인에 dialektikē만이 아니라 dialektikos, dialegesthai가 병기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것은 dialektikē라는 말이 비록 <국가>에서 처음 사용되었을지라도 <국가> 등 중기대화편에서는 물론 그 이전의 대화편들에서도 참과 존재를 탐구하는 플라톤 고유의 철학적 문답법으로서 변증술이 두루 개진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 이렇게 볼 때 우리는 플라톤의 변증술을 가장 좁은 의미에서 모음과 나눔의 방법으로서 후기 변증술로 규정할 수도 있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국가>의 동굴의 비유 전체 과정이 그러하듯 감각지로부터 벗어나 좋음의 형상에 이르기까지의 진리 탐구 과정 전체 즉 초기 대화편들에서부터 후기 대화편들에 이르기까지 플라톤이 사용하고 있는 철학적 문답법 모두를 변증술로 부를 수도 있다. 실제로 많은 학자들은 플라톤이 사용하는 철학적 문답법 일반을 넓은 의미의 변증술로 규정하고 그것이 논의하는 주제와 구체적인 방식에 따라 그 변증술을 내용적으로 세 단계의 형태로 구분하고 있다. <국가>의 변증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철학적 문답법으로서 변증술 일반에 대한 이해 또한 필요하다는 점에서 그 내용을 간단히 살피면 아래와 같다.

*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시피 플라톤의 대화편은 우연과 편견이 가득한 일상에서 참을 찾기 위한 dialogs 즉 대화에서 출발한다. 그에 따라 초기 대화편들은 대체로 일상적 믿음과 편견에 대해 비판적 물음을 던지는 방식으로 ti esti 즉 사물과 사태에 대한 ‘정의(定義)’를 근본 주제로 다루고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때 그러한 정의를 다루는 과정에서 문답의 방식으로 사용된 것이 이른바 소크라테스의 논박elenchos의 방법과 산파술maieutikē이다. 이런 점에서 이러한 방법들 또한 넒은 의미의 변증술의 하나로서 앞에서 언급한 변증술의 단계별 형태를 기준으로 가장 첫 번째 것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문답 끝에 제시되고 있는 마지막 결론은 늘 유보된 상태에서 ‘무지의 지’를 깨닫는 데 머물러 있다. 그렇지만 점차 이러한 무지의 지에 대한 깨달음은 참된 실재에 대한 앎의 욕구를 다시 촉발시키고 그에 따라 물음은 ‘정의’의 문제를 넘어서서 즉 실재에 대한 탐문으로 이어져 믿음doxa와 구분되는 ‘있는 것 그 자체’to on kath’ hauto‘ 즉 ’형상‘에 대한 앎epistēmē이 보다 진전된 철학적 문답법의 주제로서 탐색되기에 이른다. <국가>의 선분의 비유와 동굴의 비유를 보면 일상의 대화에서 시작한 이러한 탐문의 과정이 앎을 향한 오름길anodos의 모습으로 잘 그려져 있다. 그래서 그 단계의 오름길에서는 어떤 한 부류의 사물들과 하나의 어떤 이데아 내지 형상이 맺고 있는 관계가 논의의 주제를 이루면서 이른바 methesis, parousia, koinōnia라는 용어가 그 관계를 설명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이것은 초기대화편에서 제기된 ti esti의 물음이 ’무지의 지‘에 대한 깨달음을 넘어서 사물들에 분유된 실재의 흔적을 추적하여 종국에는 그 실재 자체를 적극적으로 발견하려는 탐문으로 진전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른바 <파이돈>, <국가> 등 중기 대화편의 주제가 그에 해당하는데 우선 <국가>만 보더라도 플라톤은 선분의 비유와 동굴의 비유를 통해 그러한 실재 내지 참된 앎의 조건과 성격 그리고 그 대상을 구체적이고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있다. 특히 <파이돈>에서는 거짓을 폭로하는 논박을 뛰어넘어 참된 앎과 실재로 육박하려는 플라톤의 의지를 잘 보여주는 방법으로서 이른바 ‘가정hypothesis의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99c-100a) 플라톤은 그곳에서 영혼 불멸을 증명하는 차선의 방법으로 가장 강하다고 판단되는 명제를 가정한 다음 그야말로 정립과 반정립의 방식으로 참에 가까운 것으로 인정될 수 있는 보다 상위의 가정에로 끊임없이 고양시켜 그렇게 이른 최선의 원리를 가정하여 그것을 근거로 답을 제시한다. 이것은 <국가>에서 가정들을 끊임없이 제거하면서 형상적 앎에 이르는 이성 자체의 문답법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런 점에서 가정의 방법 또한 변증술의 한 형태로 앞서 언급한 단계 가운데 두 번째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에서 이 두 번째 형태는 동굴의 비유로 보자면 동굴을 벗어나 바깥 세계에 들어서 눈이 익숙해져 마침내 실물들을 마주한 상태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 그런데 플라톤은 개별 실재들에 대한 앎에 도달한 것을 넘어 그 실재 세계 전체에 대한 앎 즉 모든 형상들의 결합과 그 관계에 대한 물음으로 영혼의 힘을 더욱 고양시켜 마침내 그러한 형상들 모두를 포괄하는 종국의 원리를 포착한 후 그것을 통해 최고류에서 최하종에 이르기까지 형상들 서로의 관계 또한 해명하려 한다. 이것이 바로 앞서 간략하게 언급한 후기 대화편들에서 제시되고 있는 모음(종합)synagogē과 나눔(분할)diairesis의 방법으로서 후기 변증술 즉 변증술의 단계별 형태상 세 번째 것이다. 이 단계에서도 methesis, parousia, koinōnia란 말이 나오는데 이때 그 말은 사물과 형상 간의 관계가 아닌 형상들 상호 관계를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실제로 <파이드로스>(266b), <필레보스>(16b)에선 ‘변증술이 가장 바람직한 철학적 방법’임이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해 직접적으로 언명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앞서 말한 <국가> 이후 대화편들 모두에서도 이른바 후기 변증술을 구성하는 구체적인 내용들이 논의 주제의 하나로 심도 있게 다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대로 그 대화편들 모두 변증술과 관련하여 주제적으로 변증술을 모음(종합)과 나눔(분할)의 방법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갖고 있다.

* 이러한 플라톤의 후기 변증술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그 요체를 개요 수준에서나마 몇 대화편을 소재로 좀 더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우선 <파이드로스>의 경우는 ‘dialektikos’를 ‘하나를 그리고 여럿을 볼 수 있는 자’라고 부르고 광기mania를 예로 들어 바로 나눔과 모음에 의해 그 구분이 가능함을 설명한다. 즉 모음이란 앞서 인용한 대로 ‘흩어져 있는 여럿들 모두를 함께 보면서 단일한 형상으로 이끄는 것’이되 그 목적은 각각을 규정하면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을 항상 분명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눔이란 ‘형상들의 결합 관계를 하나로 꿰뚫은 다음 그것에 따라 개별 형상들을 본래의 자연적인 마디 그대로 자를 줄 아는 것’으로 정의된다.(265d-266c) 그리고 <소피스트>는 변증술적 앎을 ‘유에 따라서 분리하고 동일한 형상을 다른 것으로 간주하지 않고 다른 형상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이 앎을 행할 수 있는 자는 하나의 형상이 많은 – 각각 하나가 따로 떨어져 놓여 있는 – 것들을 관통하여 모든 곳에 퍼져 있음을 그리고 서로 다른 많은 형상들이 하나의 형상에 의해 바깥으로부터 둘러싸여 있음을 분명하게 지각한다. 또 그는 다른 한편으로 하나의 형상이 다른 많은 전체들을 관통하여 하나 속에서 합쳐 있음을 그리고 많은 형상들이 전적으로 분리되어 구별돼 있음을 분명하게 지각한다. 즉 이것이, 그것들 각각이 어떻게 결합할 수 있고 또 그럴 수 없는지를 유에 따라서 분리할 줄 아는 기술 즉 변증술이다.(253d-e) 그리고 <필레보스>, <정치가>에서도 모음과 나눔의 방법으로서 이를테면 에로스, 소피스트. 정치가 등을 정의하는 데 변증술이 활용되고 있다. 특히 <필레보스>에서는 변증술이 무엇보다도 어떤 하나의 유genos와 무수한 것들의 중간에 있는 종들eidē이 얼마나 되는지를 밝혀내는 방법임도 새삼 강조된다.(16d-17a) 즉 중간에 있는 것들이 얼마나 되는지를 아는 것 또한 그 분야에 밝은 사람이라는 게 플라톤의 생각이다. 이곳 <국가> 533c에서 첫 원리, 결론과 더불어 변증술적 앎의 대상의 하나로 언급되고 있는 ‘중간의 것들ta metaksy도 위에서 언급한 중간에 있는 것들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렇게 보면 변증술은 인간의 정신이 존재 세계 전체를 파악하고자 할 때 이 목표에 성공적으로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밟을 수밖에 없는 사유의 통로로서 제안된 것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변증술에 능한dialktikos 사람’을 ‘전체를 조망하는 사람’ho synoptikē이라고도 부른다.(537c) 다시 말해 변증술은 플라톤의 실재에 관한 탐문과정에서 부분들로부터 그 부분이 속해 있는 전체에 관한 관심으로 또는 전체 속에서의 부분들의 위치로 관심이 이동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 볼 수 있다. 플라톤은 앞서 ‘철학자의 자질'(제6권 484a-487a)을 논하면서도 철학자를 이미 ‘신적인 것 전체to holon와 인간적인 것 전체를 항상 모두pantos 추구하려는 영혼’을 그리고 ‘모든 시간과 존재를 관조theōria하는 정신’을 가진 자로 언급하고 있다.(486a)

* 후기 변증술과 관련한 위와 같은 내용들은 각 대화별로 이미 많은 학자들 사이에서 세부적인 분석은 물론 그것의 통일적 설명을 둘러싸고 다양한 해석과 논쟁이 전개되어 왔다. 그 점에서 <국가>를 다루는 본 강해에서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깊이 있게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본 강해는 철학적 문답법으로서 <국가>가 다루고 있는 dialektikē의 기본적인 의미와 후기 변증술에 관한 논의들을 최대한 간명하게 살펴보는 것에 머물되, 다만 추가적인 관심이 있는 독자들을 위하여 해당 대화편들에서 변증술이 다루어진 주요 부분과, 그것과 관련하여 우리나라에서 발표된 관련 논문들 몇 개를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자 한다. 논문들의 경우 국회도서관이나 대학 도서관에서 제목들을 검색하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텍스트의 경우는 원문 역본을 참고해야만 기본적인 학술적 이해가 가능하다.

* <국가> 이후 변증술이 다루어진 주요 전거들 : <파이드로스> 265a-266d, 276e-277c, <소피스트> 252c-259d, 264c-268d, <필레보스> 16a-18d, 55c-59d, <정치가> 260a-263b, 285a-287c, 303d.

* 변증술 관련 우리나라 학자들의 주요 논문들 : 플라톤의 dialektikē와 측정술(박종현), 플라톤의 전기 변증론 연구(김남두), 플라톤의 <필레보스>편을 통해 본 변증술의 성격과 쓰임새(이기백), 플라톤의 후기 변증술 연구(김대오), <소피스트>를 중심으로 한 플라톤 존재론과 변증법 개념(김혜경), <politeia>에서 hypothesis와 dialektikē(정준영), 플라톤의 <소피스테스>편에서 변증술과 존재론(김태경), 플라톤의 후기 변증술(김태경), 플라톤의 <정치가>에서 정치술과 변증술의 관계(이성훈) 등.

* 위의 모든 논의들을 간략히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1) 플라톤은 <국가>에서 변증술을 ‘각각의 실물들에 대한 앎을 넘어 실물 세계 전체 즉 모든 형상들을 포괄하고 관통하는 궁극적인 기초이자 첫 원리로서 좋음의 형상을 지성적 이해로 파악하는 기술’로 처음 규정하고 있다. 2) 그러나 철학적 문답을 통한 참된 앎의 탐문과정 일반으로서 넓은 의미의 변증술은 <국가>이전에 이미 초기 대화편부터 플라톤 고유의 철학적 방법으로 제시되어왔다. 3) <국가>는 사물과 실재의 관계 차원에서 실재에 대한 앎의 문제를 다루고 있음과 동시에 그것을 넘어 존재 세계를 구성하는 전체 형상들의 관계에 대한 견해 또한 큰 그림 차원에서 표명하고 있다. 4) 이른바 <국가> 이후 후기 변증술이란 이러한 <국가> 변증술의 큰 그림을 토대로 유와 종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존재 세계 전체에 대한 앎에 확실성을 뒷받침하기 위한bebaiōsētai 실제적인 목표를 갖고 제시된 것이다. 요컨대 플라톤의 변증술은 여럿을 꿰뚫고 있는 하나로서 최종적 진실인 ‘좋음의 형상’을 포착하고 그것을 토대로 현실 세계 여럿의 본질과 관계를 규명해내는 즉 존재 세계 전체에 대한 진실을 최대한 명백하게 밝혀내는 철학 방법이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도 <국가>에서 표명된 ‘좋음의 형상’은 존재 세계를 구성하는 여럿들 각각의 저다움과 그것들의 선하고 조화로운 하나됨을 담보하는 궁극의 원리로서 변증술의 궁극의 목표가 된다.

* 그러나 전체 개별과학에 통달한 신적 존재나 만물박사라면 모를까 존재 세계 전체에 대한 진실을 하나하나에서부터 원리에 이르기까지 모두 알아내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플라톤의 변증술을 근대 이후 철학과 개별과학의 관계와 관련하여 제시된 철학에 관한 정의들과 연관지어 음미한다면 철학적 방법론의 고전적 시원으로서 플라톤의 변증술이 갖고 있는 의미를 일정 부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철학의 정의로서 두 가지 정도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철학은 여러 개별과학의 기본 개념을 명확하게 하며 서로 다른 개별과학들의 성과를 종합하여 존재 세계에 대한 하나의 종합적인 관점을 갖게 하는 원리적 지식이다”(B. Russell). “철학은 특수과학에서 얻은 인식을 모순 없는 체계로 통일하여 과학에서 사용되는 인식의 방법과 전제들을 그 통일된 원리로 설명할 수 있는 보편학”(W. Wundt)이다. 요컨대 플라톤의 변증술은 세계에 대한 총체적 앎을 추구하는 고전적인 의미에서 철학적 방법론의 이상적 푯대이자 끝없는 질문을 통해  앎의 명백성을 근거지우려는 철학 정신의 토대이다. 그리고 좁은 의미의 변증술의 기본 방법으로서 모음(여럿에서 그것을 꿰뚫고 있는 하나를 포착하는 것)과 나눔(하나로부터 그것이 꿰뚫고 있는 여럿을 구분해내는 것)의 방법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규정한 형식논리적 귀납법과 연역법을 넘어 치열한 문답 과정을 통해, 추상적 개념들이 아닌 존재 세계의 실상으로서 형상들의 결합 관계를 해명하는 실질적인 연역과 귀납 능력으로서 철학적 분석과 종합의 토대가 된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정치가로서 철학자왕에게 요구되는 측정술metrētikē과 직조술hypanitiē 또한 지행합일의 관점에서 이러한 변증술적 앎을 포착한 후 그것을 토대로 온갖 양상으로 뒤섞여 있는 이른바 현실세계 중간의 것들을 적도(to metron)에 따라 분별 있게 헤아리고 상호 반대적인 것조차 하나로 묶어내는 고도의 실천기술이자 이상적 정치술이라 할 것이다. 이곳에서 철학자왕이 배워야 할 지고의 배울 거리로 변증술이 제시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정치를 바로하기 위함이다.

* 한편 흥미롭게도 크세노폰(Xenophon)의 <소크라테스의 회상>을 보면 ‘소크라테스가 dialegesthai란 말은 모여서 종에 따라 사물들을 분류하고 의논하는 것에서 나왔다고 말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는데(4권 5장 12절) 이때 dialegesthai의 의미를 단순히 ‘대화하다’로 옮길 경우 뭔가 부자연스럽고 어색하다. 오히려 앞의 논의와 연관하여 생각하면 그 말은 ‘변증술적 문답’으로 옮기는 것이 딱 맞아 보인다. 크세노폰이 인용한 내용이 정말 역사적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라면 이것은 역사적 소크라테스와 후기의 플라톤 사이에 최소한 dialegesthai의 의미와 관련해선 별다른 견해 차이가 없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지엽적이나마 역사적 소크라테스가 무지의 지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흥미를 끈다.

* 끝으로 플라톤 철학에서 대화와 문답의 방법으로서 변증술이 갖는 철학적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는 것으로 논의를 마무리하기로 한다. 앞에서도 살폈듯이 dialektikē와 dialegesthai, dialektikos는 모두 동사 dialegō에서 나온 말로서 각기 어원상 ‘문답을 나누다’, ‘토론하다’, ‘끄집어내다’, ‘문답에 능하다’ 등을 나타내는 일상적 상용구로 쓰이다가 플라톤에 이르러 명실 공히 플라톤 철학의 방법론 즉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으며 진리 내지 해결책을 구해가는 절차 또는 과정’으로 확립된 말이다. 물론 이러한 말들은 점차 플라톤 고유의 철학적 방법론으로 구체화되어 가지만, 나중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그리고 플라톤 철학 자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dialektikē의 근본정신 즉 그것이 원천적으로 dialegein, dialogos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 갖는 철학적 의미와 가치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이 근본정신을 풀어서 말하자면 곧 1) 대화dialogos라는 가장 기초적이고 일상적인 상황에서 시작하여 일단의 의문을 제시한 후 그 답을 끌어내고 2) 다시 한 발짝 더 나가 그 답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고 다시 또 그에 대한 답을 내놓으면서 3) 갈수록 고도화되는 추상적 논변까지도 감내해가며 4) 끝내 ‘모두가 진리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답이 나올 때까지 치열하게 질문을 던지고 끝내 설명이 가능한 대답을 내놓는 것’이다. 이것은 플라톤의 dialektikē가 철학 정신의 빛나는 토대이자 이념적 시원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훗날 테제와 반테제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모순 극복의 논변들 또는 존재 세계의 모순을 상호지양의 방식으로 끝까지 끌어올려 존재 세계의 운동과 변화, 방향과 목적을 해명하려는 일련의 세계관 철학을 왜 ‘변증법’(dialectics)라 부르는지, 그리고 인간이 다가설 수 있는 지적 궁리의 궁극적인 정점에서 ‘튀는 불꽃에서 댕겨진 불빛처럼 불현듯eksaiphnēs’(<일곱번째 편지> 341c-d) 직관으로 마주하는 진리의 빛이 왜 불가불 형이상학적 초월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지도 그리고 그럼에도 왜 나름의 설명력과 설득력을 갖는지도 이미 플라톤의 dialektikē가 함축하고 있는 근본정신을 통해 해명되고 있다할 것이다. 그리고 그 궁극의 직관적 진리마저 궁극의 끝점이되 실제로는 끝없이 살아 숨 쉬며 약동하는  끝점으로, 철학자는 첫 원리 좋음의 형상을 본 후에도 다시 동굴로 내려가 문답을 지속하며 영혼의 고양과 실천을 통해 그 진리를 끝없이 충전하고 구현한다. 

* 참고로 dialektikē, dialegesthai가 복수의 사람들 또는 사람들 사이의 대화 또는 토론의 의미를 갖지만 플라톤 말대로 ‘영혼이 영혼 자신과 나누는 말 또한 대화'(<테아이테토스> 189e, <소피스트> 264a-b)인 한, 개인이 치열한 내면의 사색을 통해 궁극의 진리를 직관하는 것 또한 진리 탐구의 치열한 과정으로서 dialektikē의 극치에서 충분히 주어질 수 있는 일이다. 533a에서 소크라테스가 글라우콘에게 비록 상호 문답을 통해 이어져 온 진리 탐색의 과정임에도 이제 더 이상 따라올 수 없다(533a)고 말하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홀로 하나의 화두를 두고 치열한 사색과 명상을 통해 끝내 돈오(頓悟)에 이르는 불가의 견성론도 방법론적으로는 dialektikē와 일정부분 상통한다 할 것이다. 종종 우리는 플라톤 철학 내지 그의 형이상학적 논변이 갖는 독단주의(dogmatism)를 비판하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지적 역량을 총동원해 더 이상 의문을 던지기 힘들 정도의 수준까지 치열하게 끌고 가는 그 변증술적 문답의 과정 자체가 그것의 뿌리에 자리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플라톤 철학이 독단의 철학 이전에 끊임없는 질문의 철학, 의심의 철학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섣부른 답도 문제이지만 답을 내놓지 않는 것도 문제이다. 플라톤이 내놓는 답은 문제상황 하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궁극에 이를 정도의 모든 의문과 절실함을 바탕으로 한다. 이처럼 삶의 현장에서 서로 다른 입장이나 주제를 가지고 치열하게 묻고 또 물으며 설명이 가능한 최선의 답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플라톤의 변증술의 기본 정신이다. 민주주의의 본질이 의심이라면 플라톤 철학은 그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담보하는 철학적 토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플라톤은 이곳에서도 우리가 법제화하여야 할 교육의 목표를 아래와 같이 제안하고 있다. 교육paideia은 ’무엇보다도 질문하고 대답하기를 가능한 한 가장 잘할 줄 아는 자를 만드는 일‘이다.(534d) -끝-

다음 주제 : C. 철인통치자의 교육 목표와 교과목(502c-541b)
5. 영혼의 전환과 참된 실재로의 상승을 위한 교과목들(제7권 521c-541b)
3) 교과목들의 대상과 부과 방법, 시기와 구체적 프로그램(535a-541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