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형이상학 산책54-미적분은 정당한가(3)[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54-미적분은 정당한가(3)
1)
앞에서 헤겔은 자신의 진정한 무한성 개념을 소개했다. 이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그것은 곧 두 정량 사이의 관계 또는 비례다. 여기서 각 계기는 다른 계기에 관계하여 규정되는 것이므로, 이런 관계는 질적인 것으로 된다.
이 질적 크기는 수적으로는 분수로 표현된다. 이런 무한량 가운데 거듭 제곱의 관계에 있는 것이 곧 분수 가운데 정수비로 환원되지 않는 루트나 파이로 표현되는 분수다. 수적인 제곱 관계는 구체적으로는 길이나 면적, 부피의 관계나 물체의 공간적 운동을 표현한다. 바로 이런 거듭제곱의 관계에서 성립하는 것이 미적분이다.
헤겔은 이처럼 미적분이 적용되는 무한량, 그 가운데서도 거듭제곱의 관계를 소개한 다음, 드디어 미적분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한다. 그는 이때 특히 뉴턴의 방식에 주목했는데, 그 이유는 뉴턴에 이미 진정한 무한성 개념이 비록 뉴턴 자신은 알지 못했더라도 출현했다는 것이다. 헤겔은 “그 규정의 발견자(즉 뉴턴이다)는 그 사상을 개념으로 아직 정초하지 않았기에 그것을 적용할 때에는 그와 같은 더 나은 상태에 모순되는 방편이 필요했다”(논리학 재판, GW 21, S. 253)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뉴턴이 발견하지만, 자각하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2)
뉴턴은 미적분을 유출법이라고 했다. 이 유출법의 방식은 그 이전(페르마와 데카르트 그리고 뉴턴의 스승 배로우에 이르기까지)의 무한소 개념에서 기초하는 것이다. 다만 그들이 무한소 또는 “불가분적인 것이라고 이해한” 무한 개념을 뉴턴은 다르게 이해한 것이다. 즉 “사라지는 가분적인 것”(논리학 재판, GW 21, S. 253)으로 이해한다. (여기서 뉴턴은 이 사라지는 것이 단순히 정량이 아니라 정량의 관계 즉 비례라는 점을 강조하는데, 그 점은 나중에 보도록 하자)
우선 미분법을 이해하기 쉽게 다음과 같은 도해를 보기로 하자. 아래의 도해에서 보듯이 곡선 F(x) 상에서 점 p1, p2가 있다고 할 때 두 점을 이으면서 곡선을 자르는 할선의 기울기는 이를 통해 이루어지는 작은 삼각형의 세로/가로 곧 F(x+h)-F(x)/ h이다. 이 식을 풀어서 두 번째 항 이하를 버리면, 미분식이 발견된다.
예를 들어 F(x)가 이차함수 x²이라면, 이 할선의 기울기는 (x+h)²-x²/h이며 이 식을 이항 정리를 통해 풀어보면 2x*h/h+h/h*h가 된다. 이 식 가운데 h/h는 1이니 남는 것은 2x+h이다. 미분의 계산법에서는 이 h는 0으로 간주하고 버리며, 그 결과 미분은 곧 2x로 규정된다.
문제는 h/h가 1이라는 것과 남는 h가 0이라면서 버리는 이유 또는 정당성에 관한 것이다 페르마에서 데카르트에 이르기까지 h는 무한소이며 크기가 없는 것 즉 0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h를 버리는 것은 문제가 없는데, 문제는 h/h다. 이것은 0/0이 되면서 악마의 소굴에 빠져 버리고 만다. 이것이 바로 앞에서 무한소 개념이 가지는 모순이라고 했다.
이 모순을 벗어나기 위해 라이프니츠는 이 무한소를 최소값으로서 0이 아니라, 무한히 작아질 수 있는 크기로 보았다. 그것은 0은 아니고 0에 다가가는 수로 규정되는데, 이것이 바로 앞에서 칸트가 설명한 무한진행이라는 개념이다.
라이프니츠의 무한진행으로서 무한소를 헤겔은 ‘사라지는 크기’ 즉 ‘무한히 가분적인 것’로 규정한다. 이 말 자체는 뉴턴이 쓴 말과 같지만, 라이프니츠에서 사라지는 것은 곧 정량, 크기다. 그러면 h/h가 1이라는 것은 이해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머지 h를 버리는 것이 문제다. 라이프니츠는 이 사라지는 크기를 아주 사소한 크기니, 버려도 무방하다고 보았다.
울프는 라이프니츠를 옹호하면서 실제 측정술에서 산의 높이를 잴 때 순간적으로 부는 바람 때문에 모래가 날아가 사라진 것은 계산에 빼도 무방한 것처럼 또는 일식이나 월식을 잴 때 집이나 탑의 높이를 무시하는 것처럼 미분 계산법에서도 아주 작은 크기는 버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 h는 무한히 사라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정한 크기를 가진 것이니, 수학적 엄밀성을 위해서는 버릴 수 없다.
3)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뉴턴은 ‘최종 비’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뉴턴은 이를 사라지는 크기라고도 했는데 여기서 크기는 곧 비례를 의미한다.) 즉 h가 아무리 작아지더라도 h/h는 일정한 크기의 한계를 지닌다는 것이다. 아래 도해를 보면, 할선의 기울기가 점차 접선에 다가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최종적으로 h=o가 되더라도 h/h는 일정한 비율(즉 접선의 기울기)로 남는다. 이것이 바로 최종 비이다.
헤겔은 이처럼 일정한 크기가 유지될 때 그 비례를 뉴턴이 최종 비라고 할 때 마음에 품었던 것이라고 본다. 이런 최종 비에서는 분자와 분모를 이루는 두 정량은 독자적인 정량이 아니다. 두 정량은 하나의 관계 속에서 통일되어 있으니, 여기서 두 정량은 비례의 계기에 불과하며, 서로가 아무리 줄어들더라도 일정한 비례를 유지하면서 줄어드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의 계기는 다른 계기를 통해서만 규정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헤겔은 뉴턴이 자기가 말하는 진정한 무한성으로서 비례 개념에 도달했다고 본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h/h는 1로 받아들이고 반면 h는 버리는 이유가 정당화된다. 전자는 최종 비이며 h가 아무리 줄어들더라도 비례를 유지하지만, 후자 h는 줄어들면 마침내 0이 되면서 사라지는 것이다.
h가 사라지면서 오히려 미분 계산의 정확성이 상실되는 것이 아니라 그 정확성이 오히려 회복된다는 사실은 기하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다. 아래와 같은 도해를 보자.
이 도해에서 보듯이 h가 줄어 들면(h->h’->h’->0′) 할선이 점차 점p에서의 접선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이 접선이 바로 구하려던 곡선의 기울기 즉 미분이다. 이처럼 기하학적으로 보면, 미분은 기울기가 지니는 한계 즉 극한을 의미하게 된다.
“그러나 비례 아래서 사라지는 크기는 사라지기 전에서도 아니고 사라진 이후에서도 아니며 오히려 그와 더불어 사라지는 가운데 있는 비례로 이해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생성하는 크기의 최초 비례는 그것이 생성하는 비례다.”(논리학 재판, GW 21, S. 253)
“이런 오해를 피하기 위해 그는 최종 비는 최후의 크기가 지닌 비례가 아니라 한계 없이 줄어드는 크기의 비례가 주어진 모든 유한한 차이보다 더 가까이 다가가는 한계다. 그런 한계를 최종 비는 무가 될 만큼 넘어서지는 못한다.”(논리학 재판, GW 21, S. 254)
현대에서 수리철학자 코헨과 바이어스트라세는 미분을 정의하면서 이런 극한 개념을 사용한다. 이 극한 개념은 헤겔이 뉴턴으로부터 발굴한 최종적 비례, 또는 비례의 한계를 의미하며 그런 한 코헨과 바이어스트라세는 헤겔의 개념 분석의 도움을 받았다고 하겠다.
“한계라는 표상에는 사실 가변적 크기의 질적 비례 규정이라는, 앞에서 제시된 진정한 범주가 들어 있다. 왜냐하면, 그런 가변적 크기로부터 등장하는 형식 즉 dx, dy는 단적으로 dy/dx의 계기로서만 여겨져야 하며, dy/dx 라는 기호 자체는 불가분적인 유일한 기호로 여겨져야 하기 때문이다.”(논리학 재판, GW 21, S. 265)
3)
뉴턴은 이 최종비라는 개념을 이제 ‘생성하는 크기[genita]’, ‘생성의 원리’로 이해한다. 그것은 순간적인 증분이나 감분인데 곧 이 생성하는 크기는 무한소나 무한진행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여기서 증분이나 감분은 어디까지나 비례 관계 속에 있는 하나의 계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순간적 증분이나 감분에 의해 이루어진 결과 변화된 운동은 하나의 독자적 정량이며, 뉴턴은 이를 생성의 원리로부터 생성된 크기로 간주한다. 양자는 생성에서 저차적인 질서와 고차적 질서로 구분된다.
이런 설명은 뉴턴이 미분을 이처럼 운동, 생성의 개념으로 이해한 것을 잘 보여준다. 미분은 어떤 것이 운동할 때 어떤 순간에 운동을 변화시키는 힘을 말한다. 생성된 크기가 어떤 정량이라면, 생성하는 크기는 질적인 것이다. 전자는 현존의 무차별성, 외면성 속으로 이행한 것이며 후자는 타자와 관계 속에 규정되는 계기다. 그러므로 헤겔은 전자와 후자가 수적으로 표현되는 방식이 다르다 한다. 전자가 x, y로 규정된다면 후자는 dx, dy로 규정된다.
‘사라지는 크기[Letzte Groesse]’ 즉 정량의 무한진행이나 ‘최종 비[Letzte Verhaltnisse]’ 즉 비례의 무한진행은 유사한 듯 보이는데도 마땅히 구별돼야 한다. 정량은 무한히 사라지더라도 일정한 크기를 유지한다. 그것은 결코 0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비례의 무한진행은 비례 자체에서 분자와 분모를 이루는 크기는 비례 관계에 묶여 있어 아무리 줄어들더라도 일정한 비례 관계를 유지하지만, 비례를 벗어나게 되면 각 정량은 독자적으로 줄어들면서 마침내 0에 이르게 된다. 아래 두 인용문을 비교해 보라.
-사라지는 크기
“이런 표상이 사태의 진정한 본성을 표현하는 조건은 정량이 무한진행 속에서 갖는 정량의 항상성이 정량이 사라지는 가운데 자기를 연속하면서, 자신의 피안에 다시 다만 어떤 유한한 정량을 즉 급수[계열]의 새로운 항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논리학 재판, GW 21, S. 254)
-사라지는 비례
“그러나 진정한 무한 속에서 만들어지는 이행에서는 항상적인 것은 비례다. 그 비례는 아주 항상적이고 자기를 보존하기에 그런 이행은 오히려 다만 그 비례를 순수하게 드러내는 데 성립하며 또한 비례의 두 측면을 이루는 정량이 이 비례 밖에 놓이면서도 여전히 정량이 되게 한다는 사실 즉 관계없이 존재한다는 규정이 사라지게 한다는 것이다.”(논리학 재판, GW 21, S. 254-255)
헤겔은 이와 연관하여 오일러의 주장을 소개한다. 오일러는 뉴턴의 최종비 개념을 근거로 하여 h/h는 1이지만, h=0이라는 주장을 이렇게 설명한다.
“무한한 차이[미분]은 다만 정량의 0이지, 질적인 0은 아니며, 정량의 0이더라도 단지 비례의 순수 계기이다.”(논리학 재판, GW 21, S. 257)
오일러는 0/0의 모순을 피하기 위해 산술적 비례와 기하학적 비례를 구분했다. 수학적 비례에서 0/0은 악마의 소굴이 되더라도 기하학적 비례에서는 0/0은 일정한 값을 지닐 수 있다고 한다. 헤겔은 오일러가 기하학적 비례라고 한 것은 다름 아닌 뉴턴이 최종비라고 말한 것에 해당한다고 본다.
플라톤의 <국가> 강해(78)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78)
VI. 본론 3 : 부정의와 현실 비판 – 현실 국가 분석(제8권-제9권)
A. 부정의한 나라들과 부정의한 개인들.
1. 도입부 : 원래 문제로 복귀. 고찰의 방법과 순서(제8권 543a-545c)
* 소크라테스는 말로 세운 정의로운 나라와 사람에 대한 논의를 마친 후 제5권에 들어와 애초의 논의 목적 즉 정의와 부정의 중 어느 것이 진정 행복을 가져다주는지를 비교 판정하기 위해 부정의한 나라와 사람을 다루려고 한다. 그러나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가 끼어들어 그러한 논의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앞서 말로 세운 나라에서 처자 공유에 관해 갖고 있던 자신들의 의문부터 해명해 줄 것을 요구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마지못해 그들의 요구에 응하게 되면서 제5권부터 논의는 애초의 계획에서 벗어나 처자 공유가 필요하고 가능할 수 있는 조건들로서 철학자와 철학자 왕정 그리고 그들을 위한 교육과정에 대한 논의가 다루어진다. 일탈의 형식으로 진행된 위와 같은 논의가 제7권 말미에서 모두 마무리되자 소크라테스는 이제 애초의 계획에 따라 다루려고 했던 주제 즉 부정의한 나라와 사람에 대한 문제를 다시 꺼내든다. 이렇게 제8권은 주제 상 제7권이 아닌 제4권을 이어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543a-545c]
* 소크라테스는 여인γυνή들과 아이παῖς들의 공유κοινός는 물론 모든 교육παιδεία과 전시나 평시 활동에서 남녀가 공동으로 해야 하고 철학과 전쟁 관련 일 모두에서 가장 뛰어난 자들이 왕들βασιλέας이 되어야 한다는 것(543a) 그리고 일단 통치자들οἱ ἄρχοντες이 세워지면, 전쟁의 선수ἀθλητής와 수호자φύλαξ로서 그들이 함께 지내야 할 거처οἰκήσεις를 포함하여 소유와 보수μισθός 그리고 임무와 관련해서 그들이 감당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가 동의되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543b) 그런 연후 그는 글라우콘에게 원래의 논의를 벗어났다가 다시 여기로 오게 된 사정을 기억해 볼 것을 요구한다. 이에 글라우콘은 소크라테스가 좋은ἀγαθός 나라와 그것을 닮은 좋은 사람을 세웠음을(543d) 그리고 사실 그보다 한층 더 아름다운καλλίω 나라와 사람을 이야기할 수 있으면서도 그랬음을 환기시킨 후 제대로 된ὀρθός 그 나라 외에 결함 있는ἡμαρτημένας 네 종류의 나라들과 그 나라들을 닮은 사람들을 모두 살펴보기로 했음을 기억해 낸다.(543e) 그리고 그 목적 또한 누가 가장 뛰어나고ἄριστον 누가 가장 못났는지κάκιστον 의견의 일치를 본 후, 그들 중 누가 가장 행복하고 εὐδαιμονέστατος 누가 가장 못난 자이자 가장 비참한ἀθλιώτατος 자인지를 고찰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도 확인한다.(544a) 그리고 글라우콘은 그때 폴레마르코스와 아데이만토스가 끼어들어 처자 공유와 관련한 이의를 제기하는 바람에 네 종류의 정치체제에 대한 논의가 중지되었다가 여기로 이어진 것이라는 것도 함께 기억해낸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글라우콘의 기억을 칭찬한다. 그러자 글라우콘은 레슬링선수처럼 그때와 똑같은 붙들기 자세로 전 같은 질문을 드릴 테니 그때의 주제로 돌아가 네 종류의 정치체제에 대해 말해줄 것을 요구한다.(544b)
* 소크라테스는 글라우콘의 요구를 받아 그 네 종류의 정치체제를 아래와 같이 제시한다. 첫 번째는 우선 크레타체제Κρητική 또는 스파르타체제Λακωνικὴ이고 두 번째 체제는 과두정ὀλιγαρχία 체제 그리고 세 번째는 이 체제와 대립하는 것이면서 이것에 이어서 생기는ἐφεξῆς γιγνομένη 민주정δημοκρατία 체제이다. 그리고 네 번째는 이 모든 정치체제로부터 벗어나 있는διαφέρουσα 것이자 가장 말기에 이른 질병νόσημα과 같은 체제로서 참주정τυραννὶς 체제이다.(544c) 그리고 세습왕정δυναστεῖαι βασιλεῖαι이나 매매왕정ὠνηταὶ βασιλεῖαι 같은 정치체제들도 있는데 그것들은 저 네 개의 체제들 사이 어디 쯤 속할 법한 것들이다.(544d)
* 소크라테스는 정치체제에 상응하여 인간 성격의 종류ἀνθρώπων τρόπων εἴδη도 존재한다고 말한다. 요컨대 최선자정으로서 철학자왕정과 앞서 다룬 네 개의 결함 있는 정치체제에 상응하여 개인의 영혼도 다섯 가지로 존재한다. 우선 최선자정ἀριστοκρατίᾳ을 닮은 사람은 이미 설명했듯이 뛰어나고 정의로운 사람이다.(544e) 그리고 이보다 못난 나머지 네 종류의 사람으로서 첫 번째는 스파르타 정치체제에 상응하는, 승리를 사랑하고φιλόνικος 명예를 사랑하는φιλότιμος 인간, 두 번째는 과두정적인ὀλιγαρχικός 인간, 세 번째는 민주정적인δημοκρατικός 인간, 그리고 네 번째는 참주정적인τυραννικός 인간이다.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이들을 살펴 가장 부정의한ἀδικώτατον 자와 가장 정의로운 사람을τῷ δικαιοτάτῳ 맞세워 놓으면 순수한ἄκρατος 정의δικαιοσύνη와 순수한 부정의ἀδικία가 그것을 지닌 사람들의 행복εὐδαιμονία과 불행ἀθλιότης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견주어 보려는 우리의 고찰도 완결될 것이라고 말한다.(545a) 그러면 트라쉬마코스에 설득되어 부정의를 추구할지, 아니면 지금 드러나고 있는 논의에 설득되어 정의를 추구할지도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545b)
*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네 종류의 인간, 네 종류의 영혼을 살피면서 앞서 성품ἦθος에 대한 고찰σκοπεῖν을 시작할 때 방식 그대로 개인ἰδιώτης보다는 정치체제를 먼저 살핀다. 그래서 그때와 마찬가지로 소크라테스는 이곳에서도 명예를 사랑하는φιλότιμος 정치체제 즉 명예정τιμοκρατία이나 명예통치정τιμαρχία을 먼저 살피고 그 정치체제와 상응하는 인간을 고찰하고 같은 방식으로 이어서 과두정과 과두정적인 인간, 민주정과 민주정적인 인간을 관찰하고 마지막으로 참주정과 참주정적인 영혼을 살피겠다고 말한다. 그래야 애초 제기한 문제들을 판정κριτής하기에 충분할 것이기 때문이다.(54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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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3a – 543b : 이곳에서 동의된 것으로 언급되고 있는 내용들은 제3권, 제4권에서 다룬 수호자들의 생활 방식(415d-421c)과 임무(421c-427c) 그리고 철학자의 자질(484a-487a)과 철학자 왕(497a-502c)을 다루고 있는 부분을 참고.
* 543b ‘전쟁의 선수athlētēs’ : 403e에서 소크라테스는 수호자들을 가장 큰 시합의 선수들로 언급하고 있다.
* 543d ‘좋은 나라와 그것을 닮을 좋은 사람을 세웠음을’ : 제5권 서두 449a 참고
* 543e ‘그보다 한층 더 아름다운 나라와 사람’ : 플라톤의 이상 국가를 굳이 구분하려고 하면 제2권에서 제4권까지 말로 세운 나라와 나중 제7권에서 제시된 철학자 왕이 다스리는 나라로 나눌 수 있다. ‘한층 더 아름다운 나라와 사람’은 그 두 나라 중 후자를 가리키는 것이긴 하지만 말로 세운 나라에서 언급된 통치자의 자질을 보면 내용적으로 이미 철학자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그 두 나라는 다른 나라가 아니다. 이곳의 표현은 다만 논의의 단계상 말로 세운 나라의 통치자가 명시적으로 철학자임이 드러났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 543e ‘그 나라 외에 결함 있는 네 종류의 나라들과 그 나라들을 닮은 사람들’을 모두 살펴보기로 했음을 기억해낸다. : 제4권 445c, 제5권 449a 참고
* 544a ‘누가 가장 행복하고 누가 가장 못난 자이자 가장 비참한 자인지를 고찰하기 위한 것이었다’ : 제2권 361d 참고
* 544c 크레타체제와 스파르타체제 :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제2권 제9장-제10장 (1269a30 – 1272b20) 참고. 플라톤은 이곳에서 이 체제를 명예를 사랑하는 정치체제 즉 명예정timokratia의 다른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 544c 질병nosēma : 참주정은 플라톤뿐만 아니라 당대 민주정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질병으로 여겨졌고 실제로 그렇게 불렸다. 이소크라테스 <헬레네 찬가> 34 참고.
* 544d 매매왕정ōnētai basileiaiι :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정치제제를 ‘관직을 높은 재산 자격 조건에 따라서 임명하고 그들 자신 그러한 자격을 지니는 남아 있는 자들을 임명하는 경우’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명예정이라는 명칭을 평가재산timēma에 기반하여 수립된 금권정의 의미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플라톤이 규정하고 있는 이곳의 명예정과 내용상 차이가 있다. 그만큼 명예정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명칭은 아니다. 플라톤에게 금권정은 이곳에서는 과두정에 해당한다(550c). <정치학> 제4권 1292b. 플라톤 <법률> 680a-b,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9권 제10장 참고.
* 544e ‘최선자정’aristokratia : 플라톤의 철학자 왕정에서 왕은 한 사람일 수도 있고 여럿일 수도 있다. 플라톤에게 중요한 것은 왕의 수가 아니라 그 왕이 철학자인가이다. 플라톤은 직위명이 아니라 실제 최고 권력자dynatēs를 거론할 때 기본적으로 복수를 사용하고 있다.(473d) 그래서 플라톤 스스로도 철학자 왕들이 여럿인 체제를 최선자정aristokratia으로 부르기도 한다.(445d) 철학자의 지배라는 점에서 플라톤에게 철학자왕정basileia과 최선자정aristokratia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aristokratia는 이후 정치사에서 귀족정aristocracy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면서 플라톤의 철인왕정이 귀족정으로 불리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일반적인 의미에서 귀족정은 귀족이 곧 철학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철학자왕정과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그것은 이곳 기준에서 보면 높게는 명예정에 낮게는 과두정에 가깝다.
* 545d ‘개인보다는 정치체제들에서 먼저 시작했듯’ : 제2권에서 소크라테스는 대문자 비유를 끌어들여 소문자보다 대문자가 보기 쉽듯이 인간 개인의 영혼에 대한 논의를 나라의 계층에 대한 논의로 확대해 정치체제를 먼저 다루고 있다.(368d-369a). 이곳에서도 소크라테스는 나라를 먼저 살핀 후 개인의 영혼을 유추하던 앞의 논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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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권은 나라의 타락 과정과 그에 닮은꼴로 대응해 있는 영혼의 타락 과정을 일련의 연속된 흐름의 형식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래서 제8권에서 플라톤이 의도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라의 타락 과정 각각의 내용을 세부적으로 살피기 전에 그 흐름 전체를 크게 염두에 두는 것이 필요하다. 플라톤이 논의에 앞서 타락 과정에 포함된 정치체제 전체를 미리 순서에 따라 제시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점을 고려하여 그 전체 흐름을 내용적으로 좀 더 풀어서 정리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무엇보다 타락은 이상 국가를 구성하는 세 계층 가운데 통치 계층의 타락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통치 계층의 변화는 마치 도미노처럼 우선 전사 계층의 변화를 초래하고 끝내는 생산자 계층의 변화로까지 이어진다. 이러한 과정에서 가장 먼저 통치계층이 이성 능력의 결함에 따라 후계 권력으로 갈수록 통치 능력을 상실하여 전사 역할 정도만을 수행할 정도로 타락하면 철인왕정은 명예정timokratia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통치 기능이 마비됨에 따라 전사 계층들도 점차 본분을 넘어 통치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수호자 계층 간 권력 투쟁이 일어나고 끝내는 그 권력 투쟁에서 승리한 소수 전사들이 통치하는 과두정oligarchia이 들어선다. 이미 명예심조차 상실하고 권력의 맛을 본 과두정의 통치자들은 권력을 물질적 욕구를 확장하는 최상의 방편으로 여겨 생산자 계층의 재산마저 착취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결국 생산자 계층의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봉기로 이어져 혁명을 통해 과두정이 무너지고 민주정dēmokratia이 들어선다. 민주정은 민중의 이익을 위한 민중의 지배를 달성하지만 이미 통치 계층과 전사 계층 모두 본래의 욕구를 거의 상실해버려 결국 기능은 다르지만 욕구는 생산자 계층들과 마찬가지로 물질적 욕구를 갖는 계층으로 변모하기에 이른다. 이에 따라 민주정에서는 자신이 속한 계층에 상관없이 누구나 다 물질적 욕구의 충족을 위한 부의 획득이 삶의 목표가 된다. 결국 계층에 상관없이 누구나 다 물질적 욕구에 매몰되고 경쟁 또한 격화되어 부익부 빈익빈이 초래된다. 그리고 이러한 양극화가 나날이 심화되어 다수 빈민층의 불만이 폭발 직전에 이르게 되면 권력 지상주의자들이 나타나 민중을 등에 업고 최고 권력을 탈취한다. 이렇게 해서 포퓰리즘의 극을 달리는 정치체제로서 이른바 불법적 민주정이 들어선다. 그러나 그들은 권력을 장악한 후 빈민층을 구제하기는커녕 되레 자신에게 집중된 권력을 이용해 오직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데 몰두하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가능케 하기 위해 폭압적인 독재 권력 체제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해서 불법적 민주정은 가장 나쁜 정치체제로서 참주정tyrannis으로 전락한다.
* 앞으로 이러한 타락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 미리 염두에 둘 것이 이밖에 몇 가지가 더 있다. 우선 이러한 나라의 타락과정 모두 이를테면 명예정, 과두정. 민주정, 참주정에로의 타락 과정 모두 자신이 속한 계층이 본래의 직분을 수행하지 못해 발생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본래의 분업적 계층 자체는 여전히 살아 있으며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자신이 속한 계층의 본래 직분에 충실한 사람들 또한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명예정이 전사 중심의 과두정으로 타락했다고 해서 통치 계층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통치 계층에 속한 사람들 모두가 다 자신의 직분을 버린 채 전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과두정이 민주정으로 변모했다고 하더라도 통치 계층, 전사 계층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들 모두가 자신의 직분을 잃고 생산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타락이라는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다만 자신이 속한 계층의 본분에 충실한 사람들이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면서 자신이 속한 계층에서 이른바 주도권을 상실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개인의 타락 과정도 나라의 타락 과정과 마찬가지이다. 그 과정에서 개인들은 자신의 영혼 세 가지 부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만, 그들 세 부분의 영혼들 내부 간 갈등이 진행되면서 그들 상호 간의 지배 관계가 점차 다르게 변모한다. 이를테면 명예정적인 사람의 경우 그 사람의 영혼이 모두 기개적 영혼으로 변화된 것이 아니라 그 역시 영혼 삼분설에 따라 이성적 부분의 영혼, 기개적 부분의 영혼, 욕구적 부분의 영혼을 다 갖고 있되, 기개적 부분의 영혼과 다른 영혼과의 지배 관계가 달라지게 된 것이다. 즉 기개적인 영혼의 부분이 그 사람의 생각과 행위를 결정하는 주도권을 갖고 나머지 부분 이를테면 이성 부분을 도구적으로 이용하고 통제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과두정적 인간, 민주정적인 인간, 참주정적인 인간들 모두 마찬가지이다. 그러한 인간들 모두 각기 서로 다른 영혼 부분들을 가지고 있되, 그러한 그들 서로의 관계에서 이성적 영혼 부분이 약화되어 본래의 조화로운 관계가 무너지고 그에 비례하여 타락한 영혼 부분이 다른 영혼 부분을 압도하여 자신의 성향에 맞추어 주도적인 역할을 행사함에 따라 각기 그러한 인간들이 된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 이것을 뒤집어 보면 타락 과정이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한 필연의 과정이 아니라 비록 쉽지는 않지만 여전히 온전한 영혼을 보전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언젠가 극복과 반전이 이루어질 수 있는 최소한의 여지 즉 가능성이 남아 있음을 함께 보여준다.
* 이밖에 제8권의 논의가 이루어지게 된 배경을 이해하는 차원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중요한 점이 또 있다. 그것은 나라의 타락 과정과 개인 영혼의 타락 과정 모두 대문자와 소문자의 관계가 그렇듯이 형식적으로는 서로 대응 관계를 갖고 각기 독립적으로 서술되고 있다고 할지라도 내용에서 보면 그것들은 결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앞서 이상 국가를 다룰 때 나라와 영혼의 유기적 성격을 강조했던 것 그대로 플라톤은 결함 있는 나라들의 변화를 언급하면서도 각각의 나라들과 그 계층을 구성하는 개인들 영혼의 변화를 유기적으로 연관해 서술하고 있다. 이 점은 이제 우리가 제8권을 살피면서 지속적으로 주목해야 할 주제 즉 플라톤의 정치체제 변동론이 근대적인 의미에서 일반적인 정치철학적 주제로서 다루고 있는 정체체제 변동론과 그 본질적 성격에서 근본적인 차이점을 갖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점차 밝혀지겠지만 화두 차원에서 미리 이야기하자면 플라톤의 정치체제 변동론의 특징은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전제로 두고 성립된 근대적 의미의 정치체제 변동론과 달리 인간 본성의 중층성을 토대로 인간의 내적 영혼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정치체제 변동론 즉 인간 욕망구조의 변화와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갖고 그 결과로서 드러나는 정치체제 변동론이라는 점이다. 플라톤의 정치철학을 이른바 영혼의 정치철학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즉 정의로운 나라는 계층 간 조화라는 사회적 조건에서만이 아니라 개인들의 내적 상태, 즉 정의로운 영혼에로의 자기 고양이 담보될 때 비로소 가능하고, 부정의한 나라 역시 같은 방식으로 부정의한 영혼들의 내적 관계에 상응하여 그 관계가 본래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에 비례하여 각각 그에 상응하는 부정의한 나라로 전락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오늘날 최상의 정치체제로 여겨지고 있는 민주정은 본래의 각기 다른 영혼들이 이성 부분의 주도하에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관계에서 최하급의 영혼 즉 물질적 욕구가 주도하는 관계로 전락한 상태 즉 본래의 다양하고도 중층적인 본성 상태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들이 마치 그들 모두가 하나같이 물질적인 욕구만 갖고 태어난 것처럼 여기고 있는 상태에서 채택된 정치체제, 다시 말해 플라톤의 관점에서 보면 궁극적으로는 인간 본성의 고양과 회복을 통해 극복해야 할 정치체제인 것이다.
* 그리고 위에 추가해서 미리 논의해 볼 사안이 있다면 그것은 제8권에서 플라톤이 그리고 있는 나라와 개인의 타락 과정이 실제 정치체제의 역사적 변화와 관련하여 플라톤의 퇴행사적 역사관 내지 그 자신의 비관적인 숙명론을 반영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토인비(A. Toynbee)가 그 대표적인 학자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언급되고 있는 정치체제 변화는 비록 타락하는 한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그것을 근거로 플라톤이 실제로 정치체제가 그렇게 변화해왔고 변화해 갈 것이라고 여겼다고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곳에서 서술되고 있는 타락 과정은 원천적으로 정의로운 나라와 부정의한 나라를 서로 비교하여 어느 쪽이 더 행복한지를 판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애초부터 상정이 예고된 것이다. 다시 말해 정의로운 나라가 갖고 있는 특성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가장 부정의한 나라가 있다면 그런 나라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방식으로 어떤 점에서 그러한 나라가 되었는지를 드러낸 후 그 결함들과 나쁜 점들을 근거로 그 나라가 좋음과 행복의 측면에서 정의로운 나라와 결코 비교조차 될 수 없을 정도의 최악의 나라임을 밝히려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것은 논의 목적상 일종의 설명을 위해 채택된 논리적 심리적 귀결 방식에 따라 이르게 된 나라일 뿐 실제 역사적 전개에 대한 기술이 아니다. 실제 현실에서는 그러한 귀결을 이끄는 조건들이 결코 일양적일 수 없고 언제든 달라질 수 있는 한, 그 변화의 실제적 방향과 흐름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플라톤에게 바람직한 방향과 목표는 분명 주어져 있지만, 그것의 도달 여부는 능력에 따른 가능성의 영역이지 필연의 영역이 아니다. 게다가 누구나 다 인정하듯이 플라톤의 <국가>의 근본 주제가 이상적인 나라를 세우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고려하면 오히려 퇴행사적 역사관보다는 절망적인 현실을 딛고 일어서 이상을 향해 나아가려는 진취적인 역사관으로 평가하는 것이 플라톤의 근본 의도에 부합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번 밝혔듯이 플라톤 철학은 경직된 정적인 목적론이 아니라 목적을 행한 분투 어린 노력, 가능적 능력을 확보하기 위한 동적인 함양을 강조하는 역동적 목적론의 성격을 갖고 있다. 말년의 <법률> 또한 가능성 차원에서 현실에 부합하는 최선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조건들의 탐색이 주를 이루고 있다. 굳이 실제 역사와 관련지어 생각한다 해도 플라톤이 그린 이상 국가는 아테네 정치사에서 존재한 적도 없거니와 실제 역사적 전개 과정 또한 이곳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다. 물론 타락의 과정을 설명하는 구체적인 문맥에는 플라톤이 살아오면서 겪었던 역사적 경험들이 분명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플라톤이 제시하고 있는 특정 정치적 변화 국면에 대한 설명들은 실제 일어난 역사적 현상을 이해하는 데 탁월한 통찰력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이곳의 서술과 설명의 초점은 정치체제들의 역사적 변화를 규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의가 행복임을 증명하려는 애초의 논의 목적에 부합할 수 있도록 정치체제와 인간 본성의 유기적 관계를 철학적으로 해명하는데 모아져 있다. 특히 나중에 밝혀지겠지만 그러한 해명과정에서 인간의 본성과 관련한 개인의 심리 내지 욕망 구조의 변화가 정치체제를 결정하는 중대 변수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철학적 의미를 지닌다.
* 이상이 제8권의 논의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미리 염두에 두어야할 몇 가지 사항들이다. 제8권을 살피는 동안 우리는 이러한 사항들이 갖는 철학적 의미를 지속적으로 음미하게 될 것이다. -끝-
다음 주제 :
VI 본론 3 : 부정의와 현실 비판 – 현실 국가 분석(제8권-제9권)
A. 부정의한 나라들과 부정의한 개인들. .
2. 최우수자 통치로부터 명예정으로 체제 변동 : 명예정과 명예정적인 인간(545C-550C)
헤겔 형이상학 산책53-미적분은 정당한가(2)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53-미적분은 정당한가(2)
1)
앞의 글에서 헤겔은 미적분을 정당화하는 개념으로 무한소나 무한진행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무한 개념 즉 진정한 무한을 설명했다. 진정한 무한은 두 정량 사이의 비례 관계이며, 타자를 통해 자기를 규정하는 것이며 질적인 크기라고 했다.
이런 무한량의 개념은 이미 양적 무한성을 다룰 때 헤겔이 설명한 것인데, 아직 이 무한량이 미적분을 어떻게 정당화하는지는 설명되지 않았다. 그런 설명은 주석 1의 후반부에 들어가서 구체적으로 소개되는데, 이에 앞서서 헤겔은 이런 진정한 무한성의 개념을 수적으로 표현하는 문제에 다시 골몰한다.
무한량은 수적으로는 분수로 표현된다. 헤겔에서 셈은 곧 새로운 수를 낳는데, 더하기 빼기는 정수에 머무른다. 곱하기에 이르면 이미 두 개 정량의 관계가 출현한다. 곱하기는 더하기로 환원될 수 있다. 3*4는 세 번씩 더하기를 네 차례 걸쳐 계속하면 얻어진다. 그러나 곱하기의 진정한 의미는 두 정량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3미터 길이를 폭으로 4미터 이동한 것일 수 있으며, 시간 당 3키로 속도로 네 시간째 달린 거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곱하기는 흔히 더하기로 환원되면서 두 정량의 관계는 감추어지고 마는데, 이 두 정량의 관계는 곱하기를 뒤집은 셈인 나누기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나누기는 두 개의 정량이 서로 관계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표현한다. 예를 들어 2/7이 그렇다. 두 개 정량의 차이와 동시에 관계가 빗금[/]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2)
나누기를 표현하는 분수는 두 개 정량의 관계라는 점에서 이미 무한량을 표현한다. 그러나 정수비로 환원될 수 있는 분수는 무한량을 은폐한다. 그것은 독자적인 하나의 정량을 표현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정수비로 환원될 수 없는 분수가 있다. 그것은 예를 들어 무리수나 통약불가능한 수(예를 들어 원주율)를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표현에 이르면 이런 분수가 무한량을 표현한다는 것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헤겔은 무한량을 표현하는 두 개의 표현 형식을 비교한다. 이 두 표현 형식은 정수비가 되는 분수에서도 성립하지만, 여기서는 그 차이가 드러나지 않는다. 반면 정수비가 아닌 분수에서 그 차이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므로 후자의 측면에서 두 표현 형식의 차이를 살펴보자. 하나는 무한 계열[Reihe: 급수]의 형식이고 다른 하나는 분수 표현이다.
①: 2/7, 루트 2, 파이
②: 0.285714.., 1.141…, 3.14…
②의 표현 형식을 보면, 무한 계열의 형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런 표현은 ①을 개수[Anzahl]로 표현한 것인데, 이 경우는 정수비와 달리 결코 최종 결과에 도달하지 못한다. 여기서 표현된 것은 진정한 전체에 비해 모자라며 항을 추가해서 필요한 만큼 더 정확하게 규정할 수는 있지만, 아무리 항을 추가하더라도 모자라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이 규정은 당위에 불과하며 악-무한 또는 무한 진행을 표현한다.
헤겔은 이런 표현은 “질적인 규정성에 기초하는 것을 개수로 표현하려는 것”(논리학 재판, GW21, S. 244)이기 때문에 그런 모순은 해소되지 않는 모순이라고 한다. 또는 표현하는 것은 정량이고 표현되는 것은 무한이니, 양사의 상이성 때문에 도달할 수 없는 피안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도달해야 하는 한계는 자기의 항 밖에 있다.
반면 ①의 표현 형식을 보면 이런 무한 계열로 표현되는 것이 일정한 합에 이미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합이 곧 분수며 루트며 파이다. 이런 표현 형식에서는 ②의 표현에서 드러났던 무한성이 다시 감추어진다. 그러나 ①의 표현 형식은 이 무한성이 사실은 두 개의 정량의 관계라는 점이 그것도 일정한 비례 지수 즉 질적인 크기를 가지고 있음을 표현한다. 이런 표현은 무한량의 한계를 직접 표현한다.
“급수는 정립된 항 때문에 무한한 것이 아니라 불완전하기 때문에 즉 그 항에 본질적으로 속하는 타자가 그 급수의 피안에 있기 때문에 무한하다.”(논리학 재판, GW21, S. 245)
“그러나 그 급수에 반해서 유한한 표현 또는 그런 급수의 합이라고 말해지는 것은 결함이 없다. 그런 표현은 급수가 다만 추구하는 값을 완전하게 포함한다. 피안은 도주하는 것으로부터 소환되어서 그런 표현의 본질과 본질이어야 하는 것은 서로 분리되지 않으며 동이한 것이다.”(논리학 재판, GW21, S. 245)
3)
헤겔은 여기서 스피노자의 무한 개념을 소환한다. 흔히 유한은 긍정이고 그 부정인 무한은 부정으로 규정되지만, 스피노자는 유한을 오히려 타자의 부정으로, 무한을 자기 긍정으로 규정한다. 그런 점에서 헤겔은 스피노자의 무한 개념이 진정한 무한성 개념을 함축하고 있다고 본다.
스피노자는 이런 절대적 긍정성으로서 무한 개념을 예를 들어 두 개의 원을 통해 설명했다. 즉 서로 부등한 원이며 하나의 원이 다른 원 안에 있으면서도 서로 중심이 다르면서 서로 접촉하지 않을 때 두 개 원 사이의 공간은 일정한 크기를 지닌 것이지만, 그것을 수를 통해 표현하려 하자면 무한한 계열이 필요하니, 바로 이것이 현존하는 무한성을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무한에 관한 무한을 급수나 집합으로 표상하는 것을 내버리고 무한히 현재적이고[gegenwaertig] 완전하다는[in sich vollendet] 사실을 위의 예를 들어 설명했다. 스피노자는 전자를 상상의 무한으로 후자를 사유의 무한으로 부른다. 이 후자가 진정한 무한성[wirkliche Unendlichkeit]이다.
그러나 스피노자에서 자기 긍정으로서 무한성은 절대적 통일, 부동의 통일이며, 그런 점에서 타자를 매개로 해서 자기 내로 복귀한 자기 긍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고 한다.
4)
이상 헤겔은 진정한 무한성의 개념을 소개했다. 그 무한량은 두 개 정량의 관계로 이루어진다. 이는 수적으로는 분수로 표현된다. 이 분수적 표현을 곱하기의 표현 즉 함수를 통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
수적으로 같은 분수로 표현되더라도, 정수비로서 분수와 무리수와 같은 분수는 구분된다. 정수비는 곱하기로는 y=ax와 같은 함수로 표현된다. 여기서 정수비 a는 고정된 정량 즉 개수를 의미한다. 여기서 서로 함수 관계에 있는 두 정량은 “각자 고립적으로 독자적인 정량이며, 그 함수 관계는 그 수[정량]에 본질적이 아니다.” 즉 그 함수 관계는 두 정량에 대해 무차별하다.
물론 이 사이에도 관계가 있으며 그 관계는 곧 무한량이다. 그러나 그런 무한량은 무한성의 의미를 충분히 드러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처럼 관계 즉 비례가 그 정량에 외면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정수비에서 무한량은 운동에서는 등속운동과 같은 것이거나 비중(=무게/ 부피)인데, 여기서 미분은 제로라는 점을 생각하면 헤겔이 왜 무한량이 충분히 자기를 드러내지 못한다고 말하는가가 이해된다.
반면, 등가속 운동 즉 Y=1/2at² 이나 포물선 운동 y²=x 는 이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함수의 양 측면은 특정한 정량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 함수 자체가 고정된 정량이 아니라 가변적 크기다. 양자는 제곱 비례하며, 이런 제곱 비례는 비례를 이루는 두 정량과 외면적인 관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관계를 지닌다.
그러므로 여기서 관계하는 정량은 더는 독자적 정량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다른 정량과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지니고 따라서 타자에 대한 관계를 자기에 내재하는 것으로 함축하고 있다.
헤겔이 미적분을 정당화할 때 결정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 바로 정수비와 달리 제곱 비례는 관계하는 정량에 대해 내적인 관계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함수 관계에 있는 x와 y는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된다. 즉 dy와 dx인데 이 표현은 사실 라이프니츠가 무한소, 미분을 표현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지만, 헤겔은 이를 y/x에서처럼 외면적 관계가 아니라 내적인 관계를 표현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즉 “dy, dx는 더는 정량이 아니며 단지 비례 속에서만 의미를 지닌다”(논리학 재판, GW21, S. 251)는 것이다.
5)
무한량은 두 정량의 관계라 했다. 이 두 정량은 동일한 정량에서 서로 다른 정량일 수도 있고, 종류가 다른 정량일 수도 있다.
처음은 곱해진 것[또는 비례 관계에 있는 것]이 동일한 정량일 때다. 이때 두 정량의 사이는 무차별하며, 외면적이니, 이런 동일한 정량의 관계는 정수비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정수비에서도 미적분이 성립하지만, 실상 여기서는 그 의미는 없다. 왜냐하면, 이 경우 미분은 0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또한, 두 정량이 다른 종류일 때 그 관계는 물질적 결합을 의미할 것이다. 예를 들어 원소의 상호침투적인 화학적인 결합이 이에 속한다. 이런 화학적 결합에서는 하나의 정량이 자기를 지양해서 완전히 다른 정량으로 이행하니, 이는 구조적으로는 미분적 관계이지만(상호 침투가 그런 미적분의 관계를 보여준다), 더 이상 수적인 방식으로 표현될 수는 없다. 이것은 수학적 운동을 넘어선 물질의 구체적 운동에 속한다.
수학적인 미적분이 다루어지는 영역은 이 가운데 특히 동일 정량이 거듭제곱의 관계에 있는 경우다. 양자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곧 거듭제곱 도는 자기 제곱이다. 이제 곱하기가 자기 제곱으로 발전하게 되면, 그 결과 새로운 정량이 출현할 때 이런 곱하기는 자기 자신을 제곱하는 것이니, 자기에 내면적인 것이며 이때 곱해진 것들 사이의 관계는 단순한 비례가 아닌 제곱근의 관계에 있다. 이때 비례는 정수화할 수 없는 무한급수의 형태로 출현한다.
자기를 제곱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는 길이를 길이로 곱해 면적으로 구하거나 면적을 면적에 곱해 부피를 구하는 것과 같은 운동이다. 물질의 운동 가운데 속도와 가속도, 운동 에너지 사이의 관계도 이런 거듭제곱에 속한다.(여기서 시간은 공간적 길이의 하나로 여겨진다)
“무한은 이런저런 정량으로서 지양될 뿐만 아니라 양 일반으로서 지양된다. 그러나 양적 규정성은 남는다. 그것은 정량의 지반, 원리다. 또는 이렇게도 말할 수 있는데 최초의 개념에 도달한 양적 규정성이다.”(논리학 재판, GW21, S. 251)
미분이 이처럼 공간운동이나 역학적 운동에 한정된다는 사실은 헤겔이 철학의 방법론으로 수학적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기피하는 까닭이 된다. 하지만, 헤겔이 수학적 방법이 양을 다루는 역학의 영역에서 의미가 없다고 보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양적인 것의 영역에서 가장 적절한 방법은 곧 이런 수학적 방법 즉 미적분이라 본다.
헤겔 형이상학 산책52-미적분은 정당한가?(1)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52- 미적분은 정당한가?(1)
1)
헤겔은 양적 무한성을 다룬 끝에 주석을 세 개 붙였는데 그 가운데 주석 1은 초판에서 이미 나오지만(내용을 약간 수정했으나 그 수정은 언어적 표현에 그친다), 주석 2와 3은 재판에서 추가한 부분이다. 이 세 주석에서 헤겔이 다룬 것은 소위 미적분의 정당화 문제다.
먼저 주석 1 앞부분에서 헤겔은 자신이 왜 미적분의 정당화에 뛰어들었는가를 설명하는데, 이 부분을 읽어보면, 그의 의도와 그의 목표가 잘 드러나리라 생각한다. 이 부분은 수학을 전공하지 않은 필자로서는 지극히 난해하다. 더구나 헤겔이 수학의 공식을 철학적 개념으로 서술하기에 그의 말이 무엇을 지칭하는지 알기도 힘들다. 그 때문인지, 이 부분에 대한 학계의 논의는 거의 없다. 그런 까닭에 필자는 부득이 헤겔이 주석에서 자기의 논지를 전개한 대로 따라가면서 그의 주장을 요약하려 한다.
주석 1을 시작하면서 헤겔은 이렇게 말한다. 미적분의 정당성은 주로 ‘성과’의 ‘올바름’에 기인하지만, 그 증명은 정당화되지 못했으며, 심지어는 “그 자체로 잘못으로 인정된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미적분이 자신이 사용하는 도구의 본성을 알지 못하고 비판 없이 사용된다면 “그 적용의 범위를 결정하지 못하거나 그 오용을 막을 수 없는”(논리학 재판, GW21, S. 236-237) 것이 아닐까?
헤겔은 이런 미적분의 정당화를 수학자의 손에 맡겨두지 않고 자기가 직접 다루게 된 이유로 이 미적분의 토대가 되는 개념이 철학에서 다루는 무한 개념과 관련된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그는 심지어 “수학적 무한[미적분]에 근저에는 진정한 무한 개념이 놓여 있으며” 이것은 기존의 철학에서 논의된 형이상학적 무한 개념(즉 헤겔의 말로 악무한이나 무한 진행)보다 더 차원 높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수학은 자신의 근저에 있는 무한성 개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자신을 정당화하지도 못한 채, 그런 철학적 정당화는 자기들이 할 바는 아니며, 자기들은 그저 자기가 처한 고유한 지반 위에서 일관적으로 앞으로 나가기만 하면 된다고 믿으니, 그 때문에 자기가 개입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2)
헤겔은 미적분이 증명 과정에서 오류를 범한다고 했을 때, 그 오류는 간단히 말해 다음과 같다. 즉 미적분은 “유한한 크기를 한번은 무한소만큼 증가시키고 이 무한히 작은 크기를 부분적으로는 그다음 계산에 보존하지만, 일부분은 무시함으로써” 일어난다고 한다. 이처럼 일부를 무시하는 이유는 “그 일부가 영은 아니지만, 너무나도 눈에 띄지 않을 정도의 정량이어서 무시될 만한 것이기”(논리학 재판, GW21, S. 237)때문이라 한다.
예를 들어 y=x² 의 미분 계산에서 도중에 전개한 항 가운데 미분을 포함하는 첫 번째 항 2x*dx/dx는 남기고 두 번째 항 dx²/dx는 제거하는 것을 말할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일상적 삶에서와 달리 수학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수학은 엄밀하고 정확한 학문이며 더구나 “수학적 인식에서는 증명이 본질적이기에” 조금이라도 잘못된 증명은 수학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헤겔의 이 주장은 나중에 상세하게 설명하겠지만, 미적분에 관한 기초만 이해하더라도 충분히 인정할 만한 주장이다.
3)
헤겔은 미적분의 문제점을 이해하기 위해 일단 이렇게 문제점만 던져놓고는 무한량에 대한 앞에서 설명한 개념으로 다시 돌아간다. 왜냐하면, 미적분에서 주로 사용하는 무한 개념이 무한소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 무한소 개념은 역사적으로 고대에서(알키메데스나 카발리에, 페르마 등) 등장해 라이프니츠 직전까지 계속됐기 때문인데 이 개념은 미적분을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고 본다. 헤겔은 이 논의에서 미적분을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은 이런 무한소 개념이 아니라 자신의 진정한 무한성 개념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우선 그는 무한히 작은 양은 정량이 아니라고 한다. 이 무한소는 최소치라는 의미인데 즉 “그것을 넘어서 더 적은 것이 없는 크기”(논리학 재판, GW21, S. 239)다. 그러나 어떤 것이 정량인 한에서는 항상 증감할 수 있다. 증감할 수 있다는 것은 정량의 본성에 속한다. 따라서 최소치란 즉 더 적어질 수 없는 것은 더는 정량이 아니게 된다. 그런데도 무한소는 하나의 크기로 받아들여지니, 무한소란 개념 자체에 자기모순을 지닌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정량은 무한한 한에서 지양된 것으로 사용되기를 요구하며 즉 정량은 아니면서도 그것의 양적인 규정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서 사유되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논리학 재판, GW21, S. 239)
헤겔은 이때 즉 무한자가 일정한 크기를 가지게 된다면, “그런 무한에 대해 더 큰 것과 더 적은 것의 구별이 성립한다”(논리학 재판, GW21, S. 240)라고 하니, 나중에 칸토르가 무한 집합론의 모순으로 설명했던 것을 헤겔은 이미 선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칸토르의 모순은 예를 들어 흔히 자연수의 집합은 정수의 집합보다 작은 것으로 여겨지지만, 자연수와 정수는 둘 다 무한한 원소를 지니고 각 원소는 서로 대응하니, 양자는 일대일 대응 관계에 있고 따라서 크기가 같다고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연수의 무한은 정수의 무한보다 크다고 생각하는 상식은 무한을 일정한 값을 지닌 것으로 생각하는 데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4)
최소치라는 개념을 비판하면서 칸트는 무한량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라는 일정한 값이 있어서는 안 되며 이 무한량-칸트는 무한한 전체라는 말로 대체한다.-은 끊임없이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운동 중인 것 즉 무한 진행으로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여기서는 앞에서 주어진 것을 넘어가는 관계만이 들어 있고 주어진 것에 따라서 그것을 넘어선 무한한 전체는 다른 무한한 전체보다 더 클 수도 있고 더 적을 수도 있게 된다. 무한한 전체의 절대적 크기라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칸트에서 무한량에서 이처럼 주어진 양을 넘어가는 운동은 주관의 작용에 속한다. 주관은 끝없이 주어진 양을 넘어가는 가운데 전체를 동시에 파악하는 “종합은 결코 완성될 수 없게”(논리학 재판, GW21, S. 240, 이 구절은 칸트 재인용) 된다.
이를 거꾸로 보면 주관이 넘어가는 작용을 하지 않는다면 대상인 수 자체는 마침내 완성된 최대치라는 일정한 값을 지니게 되니, 여전히 앞에서 모순으로 여겨진 최대치, 최소치라는 개념이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여기서는 넘어가는 운동은 주관에 속하고 정량이라는 크기는 대상에 속하면서 “모순이 객체와 주관에 나누어 배당될 뿐”(논리학 재판, GW21, S. 240)이다.
헤겔은 이런 무한 진행 역시 모순을 피할 수 없는데, 이 모순은 미적분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앞에서 든 이차함수의 예에서 항을 전개하면 첫 번째 항은 2x*dx/dx이다. 이때 뒷부분 dx/dx는 결국 1이니, 여기서는 2x만이 남는다. 그러나 만일 dx가 무한소로서 어떤 값을 지니지 않는다면 즉 마침내 0에 도달하고 마는 무한히 작은 양이라면, dx/dx는 곧 0/0이 되면서 판단 불능에 빠지게 된다.
0/0은 1도 되고 100도 되는 무의미한 수다. 이런 판단 불능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dx는 최소의 값을 지녀야 하며 그때 비로소 미분 계산에서 첫째 항에서 2x만을 남기는 이유가 이해된다.
5)
헤겔은 마침내 자신의 무한성 개념을 제시한다. 그의 무한성 개념은 이미 앞에서 제시한 대로 비례(또는 관계 Verhaltnisse]의 개념과 연관된다. 그는 앞에서 외연량과 내포량을 설명한 다음, 무한량을 제시했다.
외연량은 단순한 자기 관계다. 이는 추상적이며 개별적인 정량이다. 이 정량이 자기의 임의적인 한 부분을 단위(예를 들어 보폭이나 팔길이)로 측정되면, 일정한 정량이 된다. 예를 들어 길이나, 무게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 외연량은 ‘배중성[Vielfachheit]’으로 규정된다.
내포량은 여전히 개별적이며 추상적 정량이지만, 타자와 비교된 정량이다. 더 크거나 더 적은 것을 순서대로 하면,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등이다. 예를 들어 경도나 강도가 여기에 속한다. 헤겔은 이런 외연량을 ‘다중성[Mehrheit]’이라고 한다.
무한량은 타자를 통해서 측정된 정량이다. 예를 들자면 속도(=거리/시간)나 비중(=무게/부피)다. 이는 두 개의 정량 사이의 관계가 바탕이 된다. 즉 그 관계를 통해서 어떤 것이 자기를 규정할 때, 그것이 무한량이다. 타자를 통해 자기를 규정한다는 점에서 이 무한량은 부정성을 지니고 따라서 질적인 규정성을 지닌다. 그러나 무한량은 독자적으로 하나의 정량이므로 이는 “질적 형식을 취하고 있는 크기 규정”(논리학 재판, GW21, S. 241)이다.
“무한 정량은 계기로서 그 타자와 본질적으로 통일 속에 있으며 다만 그의 타자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으로서만 존재한다. 즉 무한 정량은 그의 타자 존재와 관계 속에 있는 것과 연관해서만 의미 있는 것일 뿐이다.”(논리학 재판, GW21, S. 241)
6)
질적인 것은 일반적인 것이다. 빨간색은 꽃의 빨간색일 수도 있고 석양의 빨간색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무한량이 질적 성격을 지닌다는 것은 그 성격이 일반적이라는 말이 된다. 여기서 일반성은 비례의 일반성이다. 헤겔은 이 무한량을 ‘비례의 지수[Exponent]’라고 말한다.
즉 어떤 정량의 크기가 다른 정량의 일정한 크기를 단위로 해서 측정된 것이므로, 이 관계 즉 비례 관계는 일정하다. 다른 정량의 단위가 증가하면 그것에 비례해서 어떤 정량의 크기도 변화한다. 예를 들어 속도나 시간당 4키로라면 두 시간에는 8키로 거리를 지나가며 세 시간에는 12키로 거리를 지나간다.
무한량에서 서로 관계하는 두 정량은 독자적으로 보면 하나의 정량이지만, 이 관계에 들어가면 더는 정량이 아니라 전체 정량의 한 계기로서만 존재한다. 하나의 정량은 양적인 것으로서 다른 정량에 대해 무차별하겠지만, 전체의 계기로서의 정량은 자신과 관계하는 타자(다른 정량)에 대해 일정한 관계를 유지한다.
이 무한량은 자기 관계하는 것이다. 즉 자기가 자기를 단위로 측정된다. 그러나 이는 외연량처럼 추상적인 자기 관계가 아니라 타자를 매개로 해서 측정된 자기 관계다. 예를 들어 속도는 거리의 크기를 말한다. 크기는 자의적인 척도를 통해 측정된다면, 단순한 자기 관계다. 그러나 이 크기가 다른 정량인 시간에 관계하여 측정된다면 그것이 속도다.
헤겔은 미적분에서 핵심 개념인 무한은 알키메데스의 무한소도 아니며, 칸트의 무한 진행도 아니고 바로 이런 관계로서의 무한량을 의미한다고 본다.
헤겔 형이상학 산책 51-시공간은 무한한 것인가?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 51-시공간은 무한한 것인가?
1)
시간, 공간은 무한한가? 앞에서도 밤하늘 무한한 천공 앞에서 숭고함을 느끼거나 시냇가 조약돌에서 아득한 시대 화석으로 남은 생물을 발견하면, 그 아득히 먼 시대를 상상하며 즐거움을 느낀다.
시간과 공간의 아득함에 관해 시인들은 많은 시를 지었는데, 헤겔은 양적 무한성을 다루면서 주석에서 할러의 시를 하나 인용한다.
숱한 산들처럼
엄청난 수를 쌓아 올리고
시간의 더미에 시간을, 세계의 더미에 세계를 쌓아 올리고
그리고 소스라칠 정도로 높은 곳에 올라가
아득하게 다시 너를 내려다보면,
수의 위력이 천 배가 증가하더라도,
아직도 너는 단 한 귀퉁이조차 드러나지 않는다.
차라리 내가 수의 위력을 떨쳐버릴 때
너의 모습은 생생하게 내 앞에 떠오를 것이다.
헤겔은 이 시의 앞부분은 무한한 시공간 앞에 느끼는 숭고함을 표현했으나 이 시의 마지막 부분이 오히려 의미심장하다 한다. 즉 차라리 무한한 수의 위력을 떨쳐 버릴 때 오히려 무한의 진정한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는 것이다.
헤겔이 말하는 수의 위력이란 곧 무한 진행으로서 악 무한을 의미할 것이다. 반면 진정한 무한의 모습은 곧 내재하는 무한성 즉 자기 부정성으로서 무한성일 것이다.
2)
우리 앞에 있는 세계의 무한성에 관한 논의는 곧바로 세계의 유한성이라는 주장으로부터 반박당한다. 세계에 시초가 있어야 하고 우주는 그 한계가 있어야 한다. 그럴 때만 이 세계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런 주장을 통해서도 무한성에 관한 주장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으니, 형이상학의 세계는 곧 세계의 무한성과 유한성이라는 주장의 전장터가 되었다.
이런 전장을 최종적으로 흽쓸어 버리려 했던 철학자가 곧 칸트였으니, 칸트는 순수이성 비판에서 무한성이라는 주장이든 유한성이라는 주장은 이율 배반에 빠지고 만다는 것을 논증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칸트는 알다시피 순수이성 비판 변증론 2편 2장에서 순수이성의 이율 배반을 다루면서 네 가지 이율 배반을 제시했다. 이 네 가지 이율 배반은 네 가지 판단형식의 범주 즉 질적 범주, 양적 범주, 관계적 범주, 양상적 범주에 각기 해당한다.
그 가운데 질적 범주에서 나타나는 이율 배반은 사물이 합성체인지 단순 실체인지 하는 이율 배반인데, 칸트는 이를 두 번째 이율 배반으로 다루었지만, 양적 범주보다 질적 범주를 우선하는 헤겔은 오히려 앞에서 질적 판단형식을 다룰 때 이미 다루었다.
헤겔은 양의 무한성을 논하는 가운데 칸트가 말한 첫 번째 이율 배반을 다룬다. 헤겔은 이 이율 배반이 양적인 것과 관계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헤겔에서는 이 이율 배반이 두 번째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곧 시간과 공간이 시초나 한계를 지니는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 이는 다시 말하면 세계가 양적으로 유한한가 아니면 무한한가 하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3)
헤겔은 이 문제를 다루면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해가 자신과 칸트가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칸트는 시간과 공간을 직관의 형식으로 보았다. 반면 헤겔은 시간과 공간은 사물의 상호 관계하는 방식이라고 규정한다.
이때 관계 방식은 바로 양적인 것의 방식인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방식은 서로 동일한 일자와 일자의 외면적인 관계다. 나뭇잎과 나뭇잎, 물방울과 물방울의 관계에서 나뭇잎이나 물방울과 같은 구체적 대상을 제거한다면 바로 시간 공간적 관계가 된다. 이런 시간, 공간적 관계는 사물이 가진 모든 관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물이 지닌 모든 구체적 관계를 추상한 가장 외면적인 관계일 뿐이다.
칸트와 같이 추상적인 직관의 형식으로 보든, 헤겔과 같이 사물의 가장 외면적인 관계로 보든 일단 양적인 관계 즉 일자와 일자의 관계라는 점에서는 동일한데, 헤겔은 이런 양적인 관계에서 시간과 공간의 유한성과 무한성의 문제를 여기서(정량, c 절 양적 무한성, b 항 무한 진행, 주석 2) 다룬다.
4)
우선 정립은 세계가 유한하다는 주장이다. 구체적으로 시간에는 시초가 있으며 공간에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헤겔은 우선 이 정립에 관한 칸트의 증명을 인용하면서 소개하는데, 다음과 같다.
“세계가 시간상 시초를 갖지 않는다면 주어진 시점에 이르기까지 영원이 흘러가야 하며 세계 속에 상호 뒤따르는 사물 상태의 무한한 계열이 지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제 이런 계열이 무한하다는 것은 곧 이 계열이 계기적 종합을 통해서는 결코 완전해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무한히 흐르는 세계 계열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세계의 시초는 세계가 현존하기 위한 필연적 조건이고 이것은 처음 증명되어야 했던 것이다.”(칸트 재인용, 논리학 재판, GW21, S.229)
칸트의 증명은 간단하다. 시초가 없다면 어떤 현존도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현존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한한 계열이 지나가야 하는데 이 무한한 계열을 다 지나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계에 어떤 현존이 있는 것을 분명하므로, 시초가 없을 수 없다는 것이다.
헤겔은 이어서 공간의 한계에 관한 칸트의 증명을 소개한다. 이 부분은 칸트의 증명을 헤겔이 요약하는 방식으로 소개된다.
“공간상 무한한 세계 부분들의 총괄을 위해서는 무한한 시간이 요구될 것이다. 세계가 공간 속에서 형성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완전히 주어진 것으로서 여겨지는 한, 무한한 시간은 이미 흘러간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 그러나 시간에 관한 증명의 앞부분에서 제시됐듯이 무한한 시간이 흘러간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논리학 재판, GW21, S.229)
이 증명의 핵심은 곧 공간이 한계가 없다면, 이 공간을 총괄하기 위해 무한한 시간이 걸리는데, 무한한 시간이 흘러가는 것은 불가능하니, 공간은 한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공간을 우리가 총괄할 수 있다는 것이 전제된다.
5)
위와 같이 칸트의 정립을 소개한 다음 헤겔은 이를 비판하는데, 그의 비판은 칸트의 소위 귀류법적인 증명은 증명 속에 증명돼야 하는 것이 이미 전제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이미 칸트는 시간에는 시초가 있고, 공간은 한계가 있어서 총괄 가능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것은 세계에서 현존이 있으려면 요청되는 것인데, 증명을 통해 증명돼야 하는 사실이다. 칸트의 정립 증명은 시간의 시초가 있고 공간의 한계가 있어야 하므로, 무한한 시간과 무한한 공간은 없어야 한다는 주장이니, 사실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현존이 있기 위해서 반드시 시간의 시초와 공간의 한계가 있어야 하는가? 어떤 것은 그 시초를 모르는 것이거나 공간상 한계 없이 펼쳐지는 것이더라도 현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아무도 내 앞의 우주가 언제 생겼는지, 어디까지 펼쳐지는지 모르더라도, 내 앞에 우주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증명되어야 하는 주장이 증명의 근저에 직접 놓여 있으므로 증명을 우회적으로 만들거나 증명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필요한 것을 알 수 있다. 즉 영원(영원은 여기서 다만 악 무한적인 시간이라는 형편없는 의미를 지닌다)이 흘러가야 도달할 수 있는 어떤 시점 또는 각 주어진 시점이 전제된다. 주어진 시점이란 곧 시간 속에 일정한 한계를 의미할 뿐이다. 그러므로 증명에는 시간의 한계가 실제로 있는 것으로 전제된다. 그러나 그런 한계는 증명돼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정립이 주장하는 것은 곧 세계가 시간상 시초를 갖는다는 것이기 때문이다.”(논리학 재판, GW21, S.229)
6)
이어서 헤겔은 반정립을 살펴본다. 칸트가 말한 반정립은 세계는 시초를 갖지 않으며 공간상 한계도 갖지 않고 오히려 시간상이나 공간상으로 무한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한 칸트의 증명은 다음과 같다.
“세계가 시초를 갖는다 하자. 현존하는 이 시초에 앞서 사물이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 선행한다. 그러므로 세계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 즉 공허한 시간이 선행해야 한다. 그러나 이제 공허한 시간 속에 어떤 사물의 발생도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 같은 시간의 어떤 부분도 다른 부분 앞에서 비 현존의 조건에 앞서 구별된 현존의 조건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계 속에서 사물의 많은 계열이 시작할 수 있지만, 세계 자체는 시초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세계는 지나간 시간과 관계하여 무한하다.”(칸트 재인용, 논리학 재판, GW21, S.231)
이 증명은 사물의 발생이 시간 속에 현존하는 조건을 갖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만일 아무것도 없는 공허의 시간에는 사물의 발생할 조건이 존재하지 않으니 사물이 발생하려면 시초 앞에 시간에도 사물이 있어야 한다. 결국, 세계의 시초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물이 반드시 그 앞에 발생 조건을 가질 필요가 있는가? 아무 조건 없이 출현하는 사물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시초 앞에 공허한 시간이 있어도 무방하지 않을까? 헤겔은 이런 생각 끝에, 칸트의 증명이 정립에 대한 증명과 마찬가지로 증명돼야 할 것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여기서는 발생 조건이 전제되는데, 이 발생 조건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시초가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 된다. 시초가 없다는 것이 증명돼야 하는 과제인데 이미 발생 조건이라는 말 속에 함축적으로 전제되고 있다.
이어서 칸트는 공간에 한계가 없다는 주장을 증명하는데, 이 증명은 시간의 무한성 증명과 같은 논리를 반복한다. 즉 사물의 공간이 한계가 있다면, 그 밖은 공허한 공간이어야 한다. 그러면 공허한 공간 속에 사물의 공간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시간의 무한성 증명에서는 조건이라는 개념이 이용됐다면 공간의 무한성 증명에는 관계 개념이 이용된다. 어떤 것이 공허와 관계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무와 관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관계가 있으려면 공허가 아니어야 하고 사물의 공간은 다시 더 큰 사물 공간 안에 들어 있어야 한다. 결국, 사물의 공간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이다.
앞에서 발생 조건을 전제하는 것이 시간 앞의 시간을 전제하는 것과 같다고 했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공간의 관계를 전제로 하면, 이미 공간 너머 공간을 전제하는 것과 같으니,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증명돼야 할 것이 미리 전제된다고 하겠다.
7)
시공간이 유한하다거나 무한하다는 중장은 동시에 성립하지 않으니, 칸트는 이를 이율 배반이라고 주장한다. 칸트는 이런 이율 배반이 나오는 이유는 사유의 범주, 판단의 형식을 경험적 개념에 적용하지 않고 물 자체의 개념 즉 시간, 공간, 우주, 세계와 같은 물 자체의 개념에 적용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칸트는 이런 물 자체에는 유한성이나 무한성과 같은 사유의 범주를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헤겔은 칸트의 이율 배반을 비판하면서 거꾸로 말하자면 유한성과 무한성이라는 주장이 시간과 공간에 동시에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것은 곧 양적인 관계 즉 일자와 일자의 관계가 연속적인 동시에 불연속적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지닌 한 불가피하게 나오는 것이다. 연속적인 동시에 불연속적이라는 것은 곧 한계가 자기를 자기가 넘어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곧 어떤 정량은 자기 내에 무한성을 내포한다는 것을 말하는데, 헤겔은 칸트의 이율 배반을 비판함으로써 양적 무한성을 설명하려 했다.
헤겔은 칸트의 주장에 대해 이렇게 비판한다.
“세계에서 모순을 제거하고 반대로 모순을 정신 속으로 또는 이성 속으로 옮기고 그 속에서 해결되지 않은 채로 존립시키는 것은 세계에 대해 너무나 나약한 태도다. 사실상 정신은 모순을 견딜 수 있을 만큼 강력하며 그러나 또한 모순을 해소할 줄도 알고 있다. 그러나 소위 세계는 어디에서도 모순이 없지 않으며 모순을 견딜 수 없고 그러므로 생성과 소멸에 희생된다.”(논리학 재판, GW21, S.232)
세계의 모순을 인정하고 그것을 넘어서려는 분투의 정신이 여기에 표현돼 있다.
산다, 생각한다, 떠난다 : 삶, 생각, 떠남 – 삶의 다양화, 사유의 다중화 [천 하룻밤 이야기]
산다, 생각한다, 떠난다: 삶, 생각, 떠남.
– 삶의 다양화, 사유의 다중화,
2025 11 22. 소설(小雪), 며칠 전 갑자기 겨울이 오는 것 같더니, 오늘은 풀렸다.
해안 보초를 서는 군대시절에 야간근무를 함께 한 동국대 불교학과 석사논문을 쓰는 방위병이 있었다. 그는 이틀에 한번 만나면, 흥미 있는 선문답의 과제를 나에게 이야기 했다. 서너 달을 같이 하면서, 당시에는 선문답이 한 주제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물을 수도 있고, 같은 문제에 대해 달리 대답한다는 것을 느꼈다. 또한 내무반에는 다른 책이라곤 기드온에서 나온 영어 대역본 신약경전이 전부였기에, 이를 여러 번 읽고 있었다. 그와 대화에서 남은 것은 “깨달은 자 떠난다” 것인데, 기억으로는 각자이출(覺者而出)인 것 같았는데, 중이 절을 지고 갈 수 없듯이 깨달은 자가 떠난다고 여겼고, 뭔가 체계를 알았을 때 출세간(出世間)하듯이 스님의 출가(出家)가 깨달음을 추구한다는 정도였다. 이 출(出)인지 행(行)인지 분명하지 않으나, 학문의 노력 또는 깊은 수련이 있어야하고 그리고 세상에 나가 활동한다고 여겼다. 이제는 들뢰즈의 용출선(탈주선)도 같은 의미가 아닐까 한다.
서울에 와서 대학원을 다니면서, 세상에는 수재들과 천재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야기에서 서로가 길이 다르고 대척점이 있어도, 변증법이 아니더라도 하나로 모아진다고 한다. 그러나 함께 이야기하던 자리를 떠나면, 서로는 현실적으로 또는 구체적으로는 달리 살아간다는 것이 자연의 이법과 같다고 여겼다. 그래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고, 완벽한 학문적 체계와 거의 완전한 제도적 체제를 창안하거나 만들어가는 것이 변역(變易)의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각자(各自)는 자기 생각대로 습관 또는 고집 같은 것이 안으로 있어서, 자기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 시기 쯤에서 생각이 다른 삶의 양식들은 각자의 세계관이 다르다는 표현으로 쓰였던 것 같다. 여러 만남들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학술적으로 왜 다양할까? 그리고 각자는 자기 방식을 좀 더 정합적으로 견고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세상의 관례와 맞는 이들은 즐겁게 지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세상의 체제와 제도와 어긋나는 이들 중에는 고민하며 노력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이들은 냉소하고 회의하며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 사이에 학술적 습득 과정에는 공통점이 없더라도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것은 분명히 동일 표면 위에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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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라는 학문에 접한 지 쉰셋 해가 지나간다. 되돌아 보건데, 사람들은 먹물들 사이에 학문적 관심의 차이가 여전히 있다고 알고 있으면서, 삶의 터전을 무시하지 못하여, 이런 저런 방식으로 종합 또는 일반화라는 이름으로 통일성 또는 단일성을 추구하고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 마음속에는 다른 길 또는 다른 관점이 있지만, 드러내고 말하는 것이 터전에서 쫒겨 날 것 같아서, 그저 속으로 삭힌다. 마치 속앓이 하듯이, 응어리로 남아있지만, 제도 속에 산다는 것이 그 제도에 알맞은 내용을 제외하고는 망각 속으로 밀어 넣는다. 다시 나오지 못하게. 그런데도 불쑥 불쑥 솓아날 때가 있지만, 애써 누르고 살다보면 늙어간다. 윤구병은 그의 저술의 화두로서 “산다는 것이 먼저이고 철학한다는 다음이라”(primum vivere, deiende philosophari)라고 하면서 삶, 앎, 함을 서술하려하였다. 벩송은 이런 말투를 처음 쓸 때는 산다가 먼저이고 그리고 비춰본다(speculer, 사색한다)라고 했다. 그리고 벩송은 이런 말을 덧붙이지 않았지만, 어느 연구자는 이 다음으로는 플라톤의 “철학한다는 죽는다를 배우다”는 것을 덧보태기도 한다.
세상에서 비추어본다고 하는데, 비추어본다면 세상 속에서 무엇을 비추어 볼까? 브레이어의 [서양] 철학사의 견해는 12세기쯤에서 평론파들이 등장하는 시기에 비춰본다는 용어가 등장한다고 했고, 중국에서 11세기에 통감(通鑑)한다고 표현했다고 한다. 살아온 과정에서 비춰본다는 것, 즉 역사적 과정을 되돌아보면서, 인류가 자연에서 인간의 지위를 누리며 사는 것을 비춰 보리라. 그러나 기나긴 자연사에서 보면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두발로 걷는 곧추선 인류(호모 에렉투스)로부터 시작하지 않더라도, 문화적 표현이 남아있는 구석기 동굴의 예술을 생각하면, 거의 3만년 전이고, 신석기로부터 구리의 제련으로 청동기 시대는, 거의 5천년 전일 뿐이다. 인간이 긴 세월에서 손발의 움직임을 잘하여 도구 생산의 발달과 더불어, 집단적 삶에서 두뇌가 커지고 구강의 발달로 입말을 통한 소통을 문자화하여 소통한 것이 3천년 전(기원전 천년)쯤이라 한다. 우리나라는 홍산문명과 요하문명의 상고사를 생각하면, 문자화를 중국에 빌려오기 시작한 고조선의 역사가 있었다고 한다. 인류는 문자화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자연과 더불어 살았으며, 자연을 피조물처럼 대상으로 삼지 못했다. 더 좋은 삶의 터전을 찾아다니면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토지와 쇠를 다룰 수 있는 산악을 함께 하는 지역에서 도구 문명을 발전시켰을 것이다.
도구의 발달은 생산력을 높이기도 하고, 이로부터 축적과 분업을 보다 잘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았던 것은 인간이 공동체에서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리라. 공동체의 생활은 채집과 사냥에서 재배와 목축으로 전환이후 일 것이다. 그런 공동체가 지구상의 좁은 지역과 집단에서 한정되어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보자. 도구의 발달 이후로 주거와 축적방식의 발달도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쯤에서 사물에 대한 수적 센다는 사유가 정초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한다.
공동체 생활의 규모가 커지고, 도시화를 이루면서 제도가 성립하는 시기에는 산술의 계산과 생활에서 배치와 배열이 이루어질 것이고, 산술에 체계화와 더불어 영토의 분할과 토지의 경작을 위한 측량술도 발달하리라. 이런 삶에서 토지와 하늘의 관계는 우주(코스모스 또는 세계)에 대한 체계적 관점을 구성하기에 이를 것이다. 하늘의 운행이 지상과 연대 또는 대응할 것이라는 관심일 일어났다. 토지 위에서 배치와 순서도 필요하지만, 세월의 변화에 종속되는 생명체들과 연관에서 나이를 세는 하늘의 운행도 숫적으로 세어 보았을 것이다. 하늘의 운행의 수는, 토지의 평면과 달리, 원이라는 기하학적 도형에서 찾았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하는 기술의 발달이 일반적으로, 고대 이집트와 영향 속에서 그리스의 학문의 발달과 연관이 많아서 서양 철학사는 고대 그리스에서 출발점을 찾고 있다.
대부분의 고대 수학사의 설명은 계산하는 기술로서 산술학 발달, 그 다음으로 하늘의 운행을 땅위에 비추어서 그려보는 시간의 관념이 성립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 사상은 체계와 관련하여 산술학이 성립되고, 수라는 단위의 설정을 본떠서 사물들의 항목들을 정하는 언어의 논리학의 발달도 이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집트의 나일강의 범람시기를 측정하는 책력의 발달과 더불어 토지의 측정을 보태어 알렉산드리아에서 기하학의 체계가 이루었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수의 산술학과 하늘에 투영한 시간의 측정과 더불어 기하학, 사물의 항목에 대한 논리학과 수와 점을 함께 다루는 기하학이 성립했다고 순서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생각하는 기술로서 산술학, 기하학, 논리학, 도형학 등의 전개, 그리고 기초 학문의 정립과 발전은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이롭게 하여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것이리라. 여전히 삶이 먼저이고, 생각하는 것은 다음일 것이다. 이런 시기에 도시국가의 체제가 갖추어지고, 생각하는 얼개들을 종합하는 지식의 발달이 있듯이, 인간의 자기반성과 자기 성립에 관심이 확장되었을 것이다. 이리하여 그리스 반도에서 알렉산드리아로, 그리고 로마로 이어졌다고 보는 것이 서양사상사의 흐름이라 한다. [인용에서 이상하게도 우파는 로마 황제 시대에, 좌파는 아테네 민주제에 이야기 거리를 끌어오고 있다.]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행복과 안정을 추구하면서도, 나아가 자연을 다루면서, 인간이 자연을 이법을 찾아 자기완성과 자유에 대한 생각을 이어왔다고 한다. 그럼에도 인간이 세상에 나와서 살다가 떠난다는 자연의 섭리에서, 인간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필연을 받아들이기보다 자연을 극복하여 영원한 삶을 추구하는 욕망이 있었다는 것이다. ‘산다는 것’에서 영원히 산다는 것에 상응하여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여겨, 자연의 법칙과 운행을 관통하는 지식 체계를 갖는다면 영원성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어쩌면 영원한 진리를 안다면 영원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지식 체계에서 난점들과 부조리를 제거할 수 있다면, 영원성에 다가가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이런 지적 체계에 전념하는 지자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 일찍이 천원지방(天圓地方)처럼 원과 네모가 서로 환원이 안 되듯이, 원을 선으로 바꿀 수 없다는 논리적 귀결을 깨달은 현자들은 널리 이롭게 하는 방식으로 삶의 터전에서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했을 것이다. 간단하게 고대로부터 이론과 실천의 영역이 다르다(차히)는 것은 이미 내재해 있었던 것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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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을 일으킨 일당들과 이를 지지하는 자들은 종북좌파 빨갱이들을 척결해야 한다고들 한다. 이들을 극우라고 명명하는데, 이들의 사고에는 오랜 습관 또는 세뇌와 같은 사유의 방식이 있다. 그것은 통일성에 대한 믿음(신앙)이 있다. 수를 기본으로 항목 논리를 전개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체제에서는 참주제 또는 황제제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자연을 지배하려는 사고가 지배하였고, 이들은 나중에 개인의 탐욕을 부추기는 인문주의자, 시장자유주의자로 불린다. 이들은 학문적으로 단일화 또는 통일화가 먼저 있다고 착각하며, 이들 스스로도 실행하지 못하면서, 백성, 대중, 인민에게 자기들의 생각을 강요한다. 이들의 사고는 하나의 믿음의 길 이외에는 악마의 것이라고 하는 유일신앙자들의 사고 양태를 따르고 있다. 이들은 지난 세기에는 유일신, 국가주의, 제국주의를 숭배하는 독단과 탐만치에 빠져있었다. 이들의 사고에서는 인간이 자연 속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신의 창조로부터 생겨났다는 공상에 빠져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신화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비해 통일성이라기보다 조화와 공감을 사유하는 자들은 생각하는 방법도 자연으로부터이며, 삶은 자연의 지배가 아니라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생각을 한다. 이들은 여전히 인간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겸손을 지니고, 자연과 함께 살려고 이법을 탐구하며, 또한 체제와 제도 속에서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상부상조와 토대마련에 중점을 두어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이들 인도주의자와 인성자유주의자들은 인간들의 자의식의 발현으로 각자에게 필요에 따라, 각자는 능력에 따라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인간 종이 자연에서 생겨나서 자연의 재해와 타생명체로부터 발생하는 질병들을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오래 지식을 축적하면서 노력해 왔는지를 성찰한다. 인간만이 아니라 지구의 생태계도 보존하면서 살아야한다는 반성을 하는 면에서 인도주의를 넘어서 자연주의에 가깝다.
[지식체계 정립도 창안도 필요하고, 자연 속에서 함께 산다는 지혜도 필수적이다. 그런데 하나의 생각을 강요하는 신앙 체계가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은 오랜 걱정거리였다. 철학사에서는 이런 생각이 우파 또는 상층사고라고 한다. 좌파는 지식체계가 필요하고 더불어 인간과 자연을 보존하는데 필요하다는 것도 안다. 이를 위해 인간은 새로운 발명과 창안도 하고,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한다. 나로서는 한 영토에서 같은 입말의 사용의 경우에, 좌파의 사유가 51% 우파의 사고가 49%의 비례이라면, 세상에서 행복과 안녕, 평등과 자유를 더 잘 이루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례라는 것은 단순한 이분법이 아니라 다양한 갈래들에서, 중세 평결론자의 논의들이나 비유클리드 기하학 이후에 쁘왕까레의 협약주의에서처럼, 조화로운 비례이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는 우파의 사고는 편을 가르고 있다. 이에 저항하는 사유의 다양한 갈래는, 산업사회의 문명사관으로부터 21세기 문화의 관점으로 변역(變域)의 시대를 맞이하여, 다양체의 사유가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극우든 우파이든 외통수의 사고는 사고하는 자에게 뿐만 아니라, 공동체도 서로 적대감을 심으려 피폐하게 만들었다. 우파에게서 난제 해결을 전쟁을 통해서 하려는 사고는 참주제, 황제제, 유일신앙, 제국주의와 제국 등에 오랫동안 보아왔다 그럼에도 왜 이런 편집증적(파라노이아)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나로서는 탐욕과 지배욕에서 나온다고 본다. 탐만치를 버리고, 상부상조와 조화의 세상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두뇌(또는 정신)를 외장하드처럼 외부에 둘 수 있다는 생각도, 지식체계의 통일성을 믿는 쪽이다. 지식은 삶을 이롭게 보존하게 하는 방식으로 다루어야 할 것이다. 도구란 인간이 자기 특이성을 깨닫고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지, 그 외부지식이 인간의 삶의 목표도 목적도 아니라는 것이다. 살아가는 목표는 조화로운 삶이다. 플라톤이 일찍이 정의는 세 역량, 즉 지혜, 용기, 절제의 조화라고 하였듯이, 21세기에는 여러 갈래로 된 다양체로서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찾아야 할 것이다. (58VK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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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철학사는 삶의 실천과 지식의 탐구 사이에 간격을 메우려는 노력의 역사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삶에서 상부상조와 조화를 통하여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노력이 있는가 하면, 이와 달리 지식의 체계와 확장을 통해 삶을 편리하고 유용하게 하면서 인간에게 이익이 되게 잘 살자고 한다고 한다. 이를 인간적 용어로 표현하면, 전자는 인도주의(위마니떼르)이고 후자는 인본주의(위마니스트)이다 또한 삶에서 조화로운 정의를 실현하면서 인민이 함께 자유를 누리자는 인성자유주의자(리베르떼르)가 있는가 하면, 권력과 권위를 통하여 상층의 자유를 최대화하려는 상품자유주의자(리베랄리스트)가 있다. 또한 세상은 양자의 뒤섞여 있을 진데, 중경과 선후를 정하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품성들을 표출할 수 있다. 서양철학사의 발전은 이처럼 이중화 현상이 동전의 앞뒷면처럼, 표면에서 양면성을 지니고, 엎치락뒤치락했다고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철학 이래로 양면성은 주로 세계(코스모스)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가 자주 언급했듯이 하늘의 운행의 기하학과 지상의 길이의 산술학이 사유의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고대에서도 이 양자를 통합하려는 노력이 있었으나, 그 시대의 지식체계의 한계 때문에 통합되지도 통일되지도 못했지만, 사람들은 세계가 하나의 뚜껑 같은 하늘아래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이로서 하나의 통일성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오니아학파의 자연에 대한 탐구와 엘레아학파의 존재에 대한 추론은 생각한다는 이중화 현상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후대의 철학 사가들은 이 양면성이 인간의 사유에서 이중화의 양태들이 반영된 것으로 본다.
이런 양면성이 형상과 질료처럼 인간에게 영혼과 신체의 연관처럼 보였다. 형상과 질료가 일대일 대응이 아니듯이, 영혼과 신체는 하나로 통일할 방법이 없어서, 결국은 영혼을 밖으로 내보낸다. 그것이 하늘나라를 믿는 신학이 개입하는 찰나일 것이다. 이러한 사유에는 생리학적으로도 심리학적으로 이중화를 해명할 방법을 갖추지 못하여, 하늘과 땅에 투사된 세계관(우주관)처럼 대우주와 소우주의 연관 관계 같은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체계의 심층으로 들어가 보면, 플라톤은 우주의 발생론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론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이오니아학파가 좌파라고 부를 수 있다면, 엘레아학파는 우파이다.] 그 우주론은 하늘아래 땅위에 있다는 의미에서 세상살이인데, 세상살이에서도 자연의 섭리를 해명하지 못하였다. 그렇다고 우주발생론을 해명할 과학들의 발전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플라톤의 우주발생론이 이집트의 학문을 수용했다고 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기반으로 하는 우주론은 데모크리토스의 유물론의 변형이라고들 한다. 플라톤은 이오니아학파의 자연탐구 전통에서 자연의 생성과 변형에 관심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에 비해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는 자연의 사물들을 파악하는 유물론자들의 원자들의 조립과 조합의 방식이 기계적이라 보았고, 그래서 인간의 사유능력에 의해 항목들을 설정하고 관계들을 다룰 수 있다고 여겼다. 유물론자들이 다룬 자연의 대상으로서 사물은 물체들인데 비해,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사유의 대상을 생물체로부터 시작하여, 생물체들 사이에 차이를 규정하고 이들의 치이에 의해 류(類)와 종(種)을 구별하였다. 이런 류의 상위에서는 생각하는 정신(또는 영혼)의 능력이 있고 그 능력에 의해 자연을 다루는 분류화작업이 가능하다고 여겼다.
덧말이지만, 플라톤의 사유에는 시간과 운동에 대한 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의에는 공간과 위치 이동에 대한 사고에 젖었다고 한다. 알렉산드리아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이어받은 로마의 황제제는 점과 수에 의한 세계의 해명을 실용적이고 제도적으로 옮겨놓았다는 장점이 있지만, 하나의 체계 속에다가 모든 방법을 수렴시키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생각은 하나의 길 또는 세계의 통일성이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 제국은 무너졌으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류와 종의 이원적 분류에서 최고의 상층으로서 사유의 사유를 따라 크리스트라는 유일자를 상층에 올렸던 중세사유는 우주 발생론의 사유가 심층(深層)으로 가라안고, 황제의 체제를 닮은 위계제도 우주론이든 계급제도를 구축하였다. 삶에서 도구/무기의 발전과 지적 노력은 계속되어 둥근 지구와 하늘의 뚜껑을 열고, 진솔한 세계 즉 코스모스를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로마 황제제로부터 중세 독단론에까지 우주론인 한에서 공간적 사고였으며, 르네상스에 이르러 시간의 사유가 표면으로 올랐다. 이오니아학파 이래로 좌파가 표면위로 표출되었다.]
항목의 논리학이 최고의 사유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은, 브루노에게서 우주의 무한이 열리면서, 그리고 위치 이동의 동시성이란 제논의 난점을 해결에서 시간의 측정 방식의 도래는 수학에서도 ‘생각하다’에서도 다른 길을 열었다. 공간을 기준으로 하는 항목의 고정성은 위치 이동의 운동에 난점 있었다. 이제 산술 수와 기하의 점을 결합하는 데카르트의 분석기하학은 “생각한다”의 방법을 수, 점, 항목의 추론에 한정하지 않았다. 점은 길이를 따라 무한히 나아가고, 점과 점 사이에 수가 정수가 아니라도 선들 위에 점의 연속성을 부정할 수 없다. 점의 운동은 공간의 운동이라기보다 사유의 운동이 되었다. 사유와 물체, 또는 정신과 물질의 이원성이 있다고 하는 두 개의 실체론을 전개하였다.
하늘과 땅, 이 두 가지의 이론화와 조직화는 인간의 영혼과 신체의 두 가지 조직화로 변환되었다. 그럼에도 초기 근대철학자들은 고대 이래로 시간과 공간 사이의 변환이 사유하는 방식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았듯이, 생각하는 자아가 움직이는 신체의 변환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착각하였다. 두 실체는 고대 철학이 하늘과 땅의 연대 또는 투사라고 사유하던 방식을 넘어서, 양자 사이에 대응하고 있거나, 또는 각각의 정합성이 서로 상응하는 것으로 여겼다. 여기서 각각의 정합성에서 사유의 정합성은 고중세의 사유에 이어져 왔지만, 물질 또는 신체의 정합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물질과 물체의 운동이 따로 독립적으로 자치성을 인정해야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런 관점은 자연은 신의 피조물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난다. “빛들 세기”의 소박한 유물론자는, 자연에게 자치성을 넘어서 자율성을 부여하면서, 신의 부속물 또는 속성으로서 자연과는 다른 자연의 생성과 발산을 다루게 되었다. 이로서 정신과 ‘생각하다’(코기토)를 다루는 쪽이 데카르트 우파가 되고, 물질의 생성과 발전을 다루는 쪽이 데카르트 좌파가 될 것이다.
“빛들 세기”의 마지막에는 제도에서 교권과 왕권에 기댄 상층과 대비로, 민중에서 제3신분이 등장하였다. 이들은 기술과 과학의 체계화에서 생산도구의 발달로 삶의 터전을 성안에서 성밖으로 나아가 다른 세상으로 확장하였다. 생산력의 발전은 민중 또는 인민의 사유하는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상층의 두 권리의 지배와 강압에서 벗어나, 인민의 자치와 제헌을 주장하며 혁명을 일으켰다. 이 혁명에서 인민의 자치를 주장하며, 루소를 본따서 인민의 자연권과 정치권을 주장하는 자꼬방 산악파들이 혁명을 실천하였다. 이들이 제헌의회를 소집하였고, 그래도 과거의 사상에 의존하는 의원들이 의회의 오른편에, 자꼬방 당원들이 좌측에 앉았다. 이 시기에는 상층이 권력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이 권력을 생산하고 통제권을 갖는다고 생각했다. 인민주권, 즉 인민이 기본 권력이며, 정부와 제도는 인민의 최종심급에 동의를 받아야 했다. 혁명은 공화정을 성립시키면서 삼색기를 선택하였고, 역사는 좌측이 붉은색을, 우측이 푸른색을 상징으로 삼았다. 통상적으로 좌파와 우파 구별은 이를 기준으로 한다. 자꼬방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바뵈프, 루이 블랑, 파리꼬뮨의 블랑키 등은 공산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붉은 깃발을 들었다.
프랑스 대혁명의 전파는 유럽에서 인간의 자유에 대한 정열을 불러일으켰으나,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공화정을 세우는데 실패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영국으로 망명한 맑스는 과학적 공산주의를 주장하며, 정치경제학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대 자본가의 대립을 보면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선언하는 공산당 선언을 하고, 계속하여 혁명을 주장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인민과 프롤레타리아에게 좌파를, 왕당파와 자본가에게 우파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선진 산업 국가들은 부강한 국가를 세우고자 식민지 수탈을 확대하였다. 이 시기에 유럽은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대)라고 부른다. 이에 대해, 국가 권력과 교회 권세에 저항하는 무권위주의자들도 등장하였고, 식민지 착취에 반대하는 제국주의 반대운동도 일어났다. 프랑스에서 장 조레스가, 다른 한편 러시아의 망명자인 레닌이 있었다. 제국주의는 식민지들에 쟁탈전이 일어나면서 결국에는 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이로부터 세계사에서 좌파의 국가인 소비에트 연방이 등장하였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좌파 정부가 등장하였다. 두 국가는 다른 다양체였다. 세계사는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하여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을 하부에 두는 새로운 질서로서 냉전시대를 맞이했다. 전후에는 러시아의 혁명파급을 막기 위해 패전국인 독일을, 중국의 확장을 막기 위해 패전국인 일본을 이용하는 미국 제국의 시대였다. 이런 좌파와 우파라는 국가주의 개념은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에서 좌파에 대한 빨갱이 취급으로 악마화 하는 것은 부일파와 일제 잔재의 사고에서 나온 것으로 본다. 그리고 적대 의식의 강화에는 미국의 제국세력이 소련과 중국에 대한 적대의식으로 우리나라 남녘에 심은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일제 강점기의 일본제국주의가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을 제거하기 위한 방편으로 일차대전 이후에 러시아의 민족해방에 대한 억압정책을 심었을 것이고,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점령하여 새로이 등장한 중국 공산주의의 방패막이로 삼기 위해 남녘의 교육제도를 반공주의로 방향을 잡은 데서 기인한다. 이런 경향은 군부독재에 이어서 극우의 준동을 낳았다.
일본과 미국의 학문지배가 120년 정도 지나면서, 근래에 좌파척결을 내세우며 중화인민공화국을 적대시하는 정책을 주도한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을 낳았다. 정권에 반대하는 자들을 제거하려는 지난해 계엄령에는 국회의장 우원식, 민주당 대표 이재명, 계엄에 반대하는 한동훈 등 정치인뿐만 아니라, 뉴스공장의 김어준 등을 잡아서 처단하려 했다는 끔직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왜 이렇게 우파는 다른 생각을 하는 자들을 악마화 할까? 시간과 우주발생론적 사유와 달리, 공간과 우주론적 사고는 유아적 사고의 고착, 즉 파라노이아에 빠져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사고가 민중들에게 확장된 것은 일제의 식민지교육과 미국의 반공교육에서 비롯되었다. 이런 교육의 배경은 위에서 말한 시간과 공간의 역사 대비에서 공간론 쪽에 극단적으로 경도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쓰는 것은 “시간 사유”가 서양 철학사에서도 늦게서야 벩송에게서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알아 챈 우리나라 철학자 박홍규(1919-1994)가 있었고,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들뢰즈(1925-1995)가 거의 동시대에 살았는데, 지역을 달리하고 소통하지 않아도 같은 방향을 잡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데 놀랐다. 프랑스에 자료 수집차 가면서 벩송의 전집을 다 읽고 나서, 이것을 버리고, 루소와 프랑스 혁명을 다시 들고 들어오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벩송의 전집과 잡문집을 여러 차례 읽으면서 벩송이 루소 이상으로 새로운 혁명의 시발점을 제공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돌아와서 들뢰즈를 읽으면서 벩송과 프로이트 사이의 차이가 시간론과 공간론 이상으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공간론과 우주론과 형상(신학) 형이상학을 읽으면 혁명에서 멀어지고, 시간론과 우주발생론과 질료(자연)형이상학에서 사유할 때 혁명은 지속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브레이어의 철학사를 읽으면서 형이상학의 두 종류, 신학(독단) 형이상학과 자연(실증) 형이상학이 있다고 느꼈고, 사유의 이중화에서 좌파의 길과 우파의 길이 다르다는 것을 보았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코로나 발생 전 해에 라깡의 세미나의 참여하라는 선배와 또 같이 하자는 한철연 회원의 제안을 받았는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참석하지 않았다. 나는 두 가지 방향(들뢰즈 대 라깡, 생성론 대 상징계)을 한꺼번에 공부할 머리도 안 된다고 했었다. 그 때만 해도 벩송의 새로 나온 강의록들도 읽지 못했고, 들뢰즈의 저술들도 10여권 정도 읽었는데, 코로나 덕분에 방콕하면서 벩송의 강의록 4권도 읽었고, 이제는 들뢰즈 저술을 20권을 넘게 읽고 있고, 에밀 브레이어 철학사를 세 차례나 읽고 나서 보니, 프랑스 철학이 신학에 대한 철학의 대립구도라는 것을 보았다. 앙드레 로비네는 일찍이 프랑스 철학의 특징이 신앙과 이법의 대립이라고 했었다. 그리고 프랑스의 철학 저술을 읽는다는 것의 어려운 점은 각 철학자가 자기 용어를 창안하여 쓰기에, 그 철학자의 용어와 어휘를 익히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이제 생각해봐도, 내 머리로서는 벩송과 들뢰즈의 어휘와 흐름을 잡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새로운 방법을 찾아나서는 데는 철학사, 수학사, 생물학사의 세 가지 실증적 연구사를 읽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한계의 인식에는 산다, 사유한다, 떠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다.
여전히 자연에서 출발하는 좌파와 사유의 완전성으로 풀어가는 우파 사이에서, 51대 49의 비율로 공부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여긴다. 그런데 우리 입말을 쓰면서 문자화와 이미지화 하는 누리소통의 시대에, 체제에서도 제도에서도 언론지형에서도, 그리고 학문에서도 합하여 남녘에는 2 대 98정도로 우편향 되어 있다고 본다. 그나마 우리 입말과 이지미의 전지구적 확장이 편향적 사고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본다. 좌와 우의 대립이 아니라, 중세의 평결론의 시대, 자연에 대한 형이상학의 이중화 사유, 개연성이 높아지는 수학에서 쁘왕까레의 협약주의, 전지구에 대한 의식의 다원화 시대를 거치면서, 들뢰즈가 다양체로서 리좀이 움직이지 않고서도 세계와 연결(접선)이 빛살처럼 펼쳐져 있다는 설명을 이해할 것 같다. 그 리좀은 종교의 권세, 제국의 권력, 지식의 권위라는 세 패거리에 대해, 니체의 망치작업처럼, 무권위주의로부터 자연에서 출발이 필요할 것이다. 변역(變易)은 정태적이 아니라 동태적이고, 즉 열린 세상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 덧글:
나로서는 기댈 언덕으로 한철연이 있었기에 행운이었고, 그 속에서 세상과 달리 생각하는 방법을 찾았던 것 같다. 함께 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즐겁고 유쾌하다. 요즘은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상호 연결하는 누리소통의 활동을 시작해 본다. 한철연의 “시대와 철학”의 최근 2년 치의 논문을 쭈욱 읽으면서, 한철연의 분위기가 우측으로 기울고 있다고 느낀다. 그 논문들에 대한 감상문은 다음카페 “천사흘밤”의 ‘한철연’ 항목, ( https://cafe.daum.net/milletune/S6O4 )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7:05, 58VMA) (8:16, 58VMB)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철학의 세계』(2023),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