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read the love

최종덕 회원의 <신유물론의 자연철학> 강의 영상 안내 [한철연 소식]

2025년 4월 7일부터 6월 9일까지 매주 월요일 유럽인문아카데미에서 진행한 최종덕 회원의 <신유물론의 자연철학> 강의 영상을 볼 수 있는 링크를 안내합니다.

영상은 최종덕 선생님이 운영하는 개인 유튜브 계정(https://www.youtube.com/@philonatu)에서 제공됩니다.

강의자의 동의를 얻어 소개하오니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시청바랍니다.

 

♦ 신유물론의 자연철학 (최종덕) 강의 시리즈 유투브 주소

1. 들뢰즈에서 라투르까지;미분법과 리만기하학
https://youtu.be/J8OF-Pofc7U?si=F5PtiYQvHxJy1EFY

2. 해러웨이 신유물론의 생물학적 기초
https://youtu.be/Ls00WVR4egs?si=a8ac0mz6Y_vxzq-v

3. involution, 해러웨이와 들뢰즈 차이
https://youtu.be/gvH_pBoOUNA?si=PXOn0Ao5HaVwyD6Q

4. 해러웨이, 기존 영장류학 비판
https://youtu.be/VUqWI_Bubfc?si=_zntBflcy1eC7Yc_

5. 캐런 버라드, 양자역학으로 본 얽힘과 결풀림
https://youtu.be/C4Dli8ieqQA?si=9yCggnII8HH38lLP

6. 버라드의 무nothingness와 생성
https://youtu.be/8a3CvfDPNtU?si=jdfEnk3TA_d6qF-h

7. 신유물론으로 읽는 화이트헤드
https://youtu.be/_TwpaCKuMSQ?si=xf6wuQgBxDbv-aGf

8. 티모시 모튼, 하이퍼객체와 저주체
https://youtu.be/Wc20Z3taEto?si=3PSmKhbHwIdmY4un


 

하버마스, 세상은 더 나아져야 한다(2024) – [1] [내게는 이름이 없다]

하버마스, 세상은 더 나아져야 한다(2024)

Es musste etwas besser werden

Gespräche mit Stefan Müller-Doohm und Roman Yos

 

한길석(한철연 회원)

 

[소개글]

하버마스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복잡하기 그지 없는 그의 사상이 무엇을 의도했고 어떻게 발전하였으며,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되도록 간명하게 알고 싶어 한다. 여러 개론서들은 독자들의 이런 욕구를 충족하고자 했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되지는 못했다. 2024년 출판된 이 인터뷰집은 하버마스의 생생한 육성을 통해 독자들의 이러한 불만족을 해소해 준다. 오랫동안 하버마스를 연구했으며, 그의 학문적 전기를 깊이있게 서술했던 질문자들의 역량 덕분이기도 하다.

이 인터뷰는 하버마스의 어릴적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그의 학문적 여정을 차근차근 다루고 있다. 인터뷰를 따라가다보면 하버마스와 스승 세대, 동료들 그리고 제자 세대에게서 받은 여러 영향들이 정치적 현실을 배경으로 어떻게 작용하였는지 이해하게 된다. 독자들은 이런 영향들이 하버마스의 사유에 있어서 어떤 동기를 부여했으며, 발전 방향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그리고 하버마스가 이런 영향을 어떻게 해석하고 평가하면서 수용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이 인터뷰는 학문적 생애를 단순히 회고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2019년 두 권으로 출판된 대작 『또 다른 철학사』를 통해 구현된 ‘탈형이상학적 사유의 계보학’이 어떤 과정에서 형성되고 발전되었으며 관철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독자는 하버마스 취하고 있는 탈형이상학적 사유가 무엇이고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파악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그의 철학이 현실 사회의 모순과 비판적으로 대결하면서 형성된 지적 정치 투쟁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종종 내비치는 소소한 개인사와 사적 인연들에 관련된 에피소드는 딱딱하고 진지하기만 한 이 이론가가 살아있는 인간의 몸을 지닌 존재라는 점을 느끼게 하면서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번역은 AI의 도움을 받아 수정했다. 저본은 Habermas, Jürgen. 2024. Es musste etwas besser werden … : Gespräche mit Stefan Müller-Doohm und Roman Yos. Stefan Müller-Doohm, Roman Yos, Frankfurt am Main: Suhrkamp.


[1]

 

1. 학문적 생애의 시작 – ① –

 

□ 하버마스 선생님, 예전에 “살면서 자기의 근본적인 의도를 쏟아부을 수 있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근본 의도’는 무엇이었으며, 그것이 이론 발전과 직업 경로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쳤습니까?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1949년 괴팅겐에서 철학 공부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 1949년 제 세대는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을 역사적으로 급격한 어떤 단절을 경험한 세대로 회고해 볼 수 있습니다. 대학에 입학할 무렵, 우리는 4년 동안 나치 지배가 남긴 심연을 시간을 갖고 되새기며, 그 시절 우리가 살아갔던 ‘정상적’ 일상의 이면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었는지를 성찰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윗세대보다 우리에게 더 쉬운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젊었기 때문에, 우리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정상적 일상 속에 숨어 있던 심연의 깊이를 민감하게 너끈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저지른 짓이나 방조(放棄)한 일에 대해 책임져야만 할 기억이 없었기에, 그런 통찰을 중지하게 할 만한 ‘죄책감’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헬무트 콜이 말했던 ‘늦게 태어난 것의 은혜’라는 표현은 이 점을 정확히 짚었습니다. 우리보다 조금이라도 나이 많은 이들은 우리 세대와 전혀 다른 경험을 해야 했습니다. 이 점에서 저는,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역사학자 논쟁(Historikerstreit)에 참여한 이들의 세대차를 늘 매우 의미 있게 보아왔습니다. 그처럼 완전히 의문시되지 않을 수 없는 민족적 환경 한가운데서, 우리 젊은 세대는 방향 감각과 계몽에 대한 갈망, 진실을 알고자 하는 욕구를 느끼는 데 심리적인 장애물이 별로 없었습니다.

우리 세대의 비판적 성향을 지닌 이들이 주변의 ‘굳어 버린 사고 방식’과 결별하게 된 것은 일종의 직관적 통찰 덕분이었습니다. 즉, 나치는 ‘본질적으로 건전한 문화’ 안에 침투한 이질적인 물질 같은 존재가 아니었고, 한낱 지나간 ‘악몽’ 같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우리 민족 문화의 가장 어두운 유산을 자신들의 자양분으로 삼아 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문화 유산은 심지어 토마스 만 같은 국민적 대문호조차도 제1차 세계대전 초기에 ‘1789년의 정신[프랑스 혁명 정신]’에 맞서 동원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오직 그런 배경만이 나치가 공습 대피소 안까지도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그 ‘감염력’을 설명해줍니다.

통화 개혁 전까지 이어진 전후 초 잡지와 문학 속에는, ‘문명 파괴’라는 이름조차 미처 붙이지 못했지만 그런 단절에 대해 스스로 책임 있게 성찰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철학 공부는 저에게 자연스러운 귀결처럼 다가왔습니다. 물론 그것을 가능케 한 가정 환경, 그리고 학비를 기꺼이 대려 했던 아버지도 한 몫 했습니다. 그러나 전공 선택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습니다. 철학을 공부하기로 했을 당시 저는 특정한 직업—그리고 특히 교수라는 직업은 전혀—염두에 두지 않았고, 단지 관심을 충족시키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1949년에는 한 세대의 약 5%만이 대학에 진학했지만 오늘날에는 50%에 달하죠.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자유가 보장된 시기였습니다. 단순히 한 전공 분야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 학부라는 틀 안에서 자신이 더 깊이 알고자 하는 주제나 대상들을 중심으로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거의 스스로 구성한 셈인 공부 과정을 통해, 중간 시험 같은 것을 본 적도 없이, 박사 시험에 필요한 두 개의 부전공을 나중에 선택하곤 했습니다. 저는 이미 대학 입학 시험(Abitur)을 통과하기 전부터 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 그 결심에 이르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당시 선생님의 삶의 상황, 특히 철학에 이르게 된 과정에 대해 들려주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경험이 있었을까요? 청소년기에는 의사가 되고 싶어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 어릴적 의사가 되고 싶다고 희망해서 해부학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열두 살 무렵 ‘융폴크(Jungvolk)’에서 ‘펠트셰어(Feldscher, 야전 의무병)’로 옮겨서 훈련받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아마도 사춘기 시절 입천장 갈림병(구개열) 문제와 관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어느 순간 그 문제를 뚜렷이 인식하게 되었고, 그것이 저를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제 친구 유프 되어(Jupp Dörr)와 함께 학교 운동장에서 불쾌한 경험을 몇 번 당한 것을 제외하면 순진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도록 꽤 잘 보호받으면서 지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의학에 대한 관심은 생물 수업의 영향을 받아 점차 이론적인 방향으로 옮겨갔습니다. 제 흥미를 자극했던 생물 선생님은 사실 전쟁 이후에 나폴라(Napola, 나치 엘리트 학교)에서 우리 학교로 부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분명 나치였던 셈이죠. 그러나 매우 해박했고, ‘인종생물학’의 함의를 이미 넘어선 학문 자세를 견지하면서 우리를 유전학과 다윈의 진화론에 입문하게 했습니다.

그 이후 제 관심은 생물학을 넘어서 인간학적 질문들로 확장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통화 개혁 이후 어느 날 저는 우연히 슐츠-헨케(Schultz-Hencke)의 책을 손에 넣었는데, 이는 나치 체제에 순응한 정신분석학 교재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김나지움(고등학교) 마지막 2년 동안에는 심리학 잡지 《Psyche》를 정기 구독할 수 있게 되었죠. 이처럼 넓은 의미의 ‘인간에 대한 관심’이 결국 제가 고교 졸업 시험을 보기 전 몇 해 동안 칸트와 헤르더의 역사철학을 읽으면서 철학적 관심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덧붙여, 사르트르의 실존철학—아이러니하게도 오토 프리드리히 볼노우(Otto Friedrich Bollnow)라는 구 나치 인사의 책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은 특히 그의 희곡을 통해 우리 세대 전체를 사로잡았습니다. 또한 굼머스바흐(Gummersbach)역 근처에 있던 공산당 서점에서 접한 마르크스주의 문헌들 그리고 그에 대한 일종의 ‘해독제’로서 제 아버지 세대가 선호했던 발터 오이켄(Walter Eucken)과 빌헬름 뢰프케(Wilhelm Röpke)의 질서자유주의(Ordoliberalismus)도 저의 지적 환경을 함께 구성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저는 개인적인 ‘에세이’(Aufsätze) 속에서 풀어냈습니다. 그 에세이를 가지고 저는 학교에서 몇 안 되는 비(非)나치 교사 중 한 명이자 제가 깊이 존경하던 라틴어 교사 클링홀츠(Klingholz) 선생님을 꽤 괴롭혔습니다. 그는 매우 인상적인 인물이었고, 저는 그에게 그런 글을 자주 들이밀었기 때문에 꽤 성가신 존재였을 겁니다. 또한 저의 외삼촌 페터 빈겐더(Peter Wingender)는 철학을 가르치는 고등학교 교사였는데, 칸트의 『프로레고메나(Prolegomena)』와 같은 ‘진지한’ 책을 추천해주며 제게 자극을 줬던 수많 내용들이 단순한 ‘흥미’ 수준에서 끝나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주었습니다. 이처럼 지적으로 무수한 세계가 한꺼번에 몰려드는 환경에 살다 보면, 철학을 공부하겠다는 결심은 따로 의식적으로 내릴 필요가 없습니다. 특별한 ‘근본 의도’ 같은 것도 없었습니다. 물론 철학 같은 학문을 전공하며 살아가겠다는 선택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경제적 불안감’은 오랫동안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나중에, 뜻밖에도 제가 교수가 될 수 있었을 때조차도, 저는 제 능력이나 성과 나아가 제 직업에 대해 별로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 직업—대학교수이자 학자—를 어느 정도 잘 해내고 있다는 감각이 비로소 생기기 시작한 건, 1980~90년대 프랑크푸르트에서의 마지막 재직 시절부터였습니다.

 

□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선생님이 전공을 선택하게 된 어떤 ‘내면적’ 동기가 없었던 건 아닐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가치 지향을 정리하고자 하는 욕구 같은 건 없었나요?

 

■ 그런 식으로 이해하는 건 오히려 철학에 대한 플라톤적인 자기 이해에 가깝습니다. 저는 그런 관점을 한 번도 공유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자신이 늘 ‘진짜 철학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곤 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그런 철학자들 말이죠. 즉 자기 삶을 깊이 성찰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거기서 심오하고 형이상학적으로 타당한 통찰을 추구하는 그런 철학자들 말입니다. 오히려 저는 마르크스주의와 프래그머티즘에서 [철학적 탐구에 대한] 제 동기들을 더 많이 발견했습니다. 세상을 아주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려는 노력, 아니 최소한 늘 되풀이 될 위험이 있는 퇴행을 막으려는 노력이야말로 결코 하찮게 볼 수 없는 동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철학자이자 사회학자’라는 호칭에 꽤 만족하고 있습니다.

 

□ ‘철학자’라는 호칭만 붙이면 선생님께 약간 거리감이 느껴지는 표현이었던 건가요?

 

■ 그건 오랫동안 말 그대로 느낌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돌아보면, 동료들 가운데 제가 거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 되어버린 지금 가끔 그 점을 곱씹어보게 됩니다. 확실히 위대한 형이상학자 중 한 사람인 토마스 아퀴나스를 아무 거리낌 없이-하지만 아무 맥락 없이 그런 건 아니죠- 직접적으로 계승한 사람 중 로베르트 슈페만(Robert Spaemann)만한 인물도 드물 것입니다. 그는 고전 텍스트에 대해 깊이 있는 정독을 통해 놀라운 통찰을 끌어내는 능력을 지닌 인물로, 그 점에서 저는 종종 레오 슈트라우스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제 가까운 철학 동료들 역시 각자 고유의 이론적 구상 속에 겉보기엔 냉철해 보이면서도 ‘위대한 철학’ 전통에 다소간 뿌리박고 있는 동기들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허락하신다면 몇 가지 대략적인 도식으로 설명드리죠. 예컨대 칼-오토 아펠(Karl-Otto Apel)의 경우, 도덕의 최종적 정당화(die Letztbegründung der Moral)를 향한 그의 열정만 보아도, 그는 ‘탈형이상학적 사고’를 너무 멀리 밀어붙여선 안 된다고 확신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그건 우리 사이의 핵심적인 의견 차이기도 했습니다. 디터 헨리히(Dieter Henrich)의 경우, 형이상학적 근본 동기는 명백합니다. 즉, 성찰로 진입하기 이전에 이미 자기와 낯익은 것(Mit-sich-Vertraut-Sein)과 같은 게 있다는 직관을 확신하는 입장을 지니고 있는데, 이런 직관 같은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의식으로 하여금 [모든 존재자들의 바탕이 되는 형이상학적 근거와 같은] ‘포괄적 전체(Allumfassenden)’를 이해하게 하는 문턱이 된다는 것이죠. 미하엘 토이니센(Michael Theunissen)은 평생 동안 종교적 동기들과 씨름해 왔습니다. 초기에는 키에르케고르의 영향을 받았고, 이후에는 상호주관성과 청년 헤겔적 관점에서 해석한 헤겔 독해를 거쳐 말년에는 후기 하이데거로의 회귀를 시도했죠. 저는 그 시도가 그리 생산적이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가장 명석하고 냉철한 철학자였던 에른스트 투겐트하트(Ernst Tugendhat)조차도 자신의 언어철학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번역한 작업으로 이해했습니다. 무엇보다 그의 윤리학 사상에서 형이상학적 지향성은 그의 후기 작업인 신비주의로의 전환에서 명백히 드러납니다. 그는 자기중심적 주체의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압도적인 우주에 대한 관조에 몰입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런 방식이 아니고는 칸트의 보편주의적 정의 개념과 이성적 자유 개념을 구제할 수 없다고 그는 믿었던 것이죠. 저에게는 그런 종류의 ‘심층적인’ 동기들을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제가 붙잡고 있는 문제는 왜 인간 사회는 그토록 쉽게 파괴되고 반복적으로 붕괴되어왔는가 그리고 그런 취약한 사회적 공존을 어떻게 하면 지속 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것이 철학적 탐구의 동기가 될 수 있느냐고요? 저에게 인간의 자연 의존성[죽음의 숙명과 같은 것을 탐구하는 수많은 철학자들의 경향]은 철학적 탐구의 동기가 되지 않습니다. 저의 철학적 탐구는 다만 인류가 언어를 통한 사회화라는 완전히 새로운 진화적 도약을 이뤄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 [인간 사회 외부의 형이상학적 토대를 바탕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삶에 중심을 두고 사유됩니다. 제 철학의 ‘궁극적’ 동기를 굳이 꼽자면, 그것은 아마도 ‘언어의 해방적 힘(die befreiende Kraft des Wortes)’일 것입니다. 그것은 완전히 개별화된 사회화가 오직 상호 평등한 인정 관계 속에서 이뤄질 때에만 온전히 펼쳐질 수 있습니다. 가까이함과 멀리함, 예와 아니오, 해방과 퇴행, 찬성과 반대(Zustimmung und Widerspruch), 자립과 의존(Selbstsein und Abhängigkeit), 이 모든 것은 개인들이 사회화 과정을 통해 자아가 되어가는 과정을 치러낸 의사소통적 경험들입니다. 그런 개인들은 서로 상반된 극들 사이에서 균형을 이룰 때만 자기 자신을 유지할 수 있으며, 그것은 [인간 사회 외적 토대에 의존해서가 아니라] 적어도 어느 정도 통합된 사회적 조건 속에서만 가능하죠. 저는 이런 직관을 가지고 철학과 사회 이론을 전개해 왔습니다. 저의 이론은 역사적으로 볼 때, 칸트, 피히테, 쉘링, 헤겔 이후 [세속주의적] 철학자들과 연결되어있습니다. 이들은 종교적 직관을 세속적 사유로 완전히 이행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의 철학은 그리스적 동기보다는 성서적 동기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 말씀도 이미 어떤 근본적인 직관에 따른 것처럼 들리는 데요.

 

■ [관념적이기보다는] 좀 더 사실적인 측면에서 얘기해 봅시다. [앞에서 저는 인간의 사회적 삶의 성공 여부가 취약하다고 했어요. 이와같은] 성공적이거나 실패하지 않은 형태의 사회적 통합(soziale Integration)에 대한 직관은 저를 의사소통 행위 이론으로 이끌었고, 이 점은 제가 언어학적 전회에 주목했음을 말해줍니다. 처음 시작할 땐 명확하지는 않았죠. 하지만 훔볼트에서 비트겐슈타인에 이르기까지 발전해 온 사고, 즉 인간의 존재 방식으로서의 ‘호모 사피엔스’의 생활 형식을 언어적으로 구성한다는 사고만이 언어학적 전회로서의 패러다임 전환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반면에 카르납, 콰인, 데이비드슨 같은 주요 분석철학자들에게 언어학적 전회는 단지 방법론적인 의미에 불과했습니다. 덧붙여 이[렇게 언어학적으로 전회한] 패러다임은 조지 허버트 미드와 윌리엄 제임스 같은 프래그머티스트들이 제기한 개별화와 사회화의 동시 기원성과 상호 가능성이라는 개념을 통과할 때에만, 제1인칭, 제2인칭, 제3인칭 간 관계의 역동적인 긴장 구조에 내재한 변증법적 요소를 획득합니다. ‘나-너(Ich-Du) 관계’는 ‘우리(Wir) 관계’의 틀 안에서 형성되며, 이 ‘우리’는 [어떤 의견 등에 대해] ‘예’와 ‘아니오’라고 말하는 행위 주체들이 자신들이 공유하는 언어라는 공동 배경과 그로 인해 열리는 근거들의 공간을 인식하면서, 세계의 어떤 대상에 대해 객관적으로 관계를 맺고 그에 대해 합의를 이루려는 관계입니다. 저는 이 관계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즉 헤겔의 변증법처럼 행위 주체들 상호 간의 대립과 투쟁 관계에서 발생하는 위기적인 분위기의 변증법과는 다른 의미에서의—‘변증법적’ 관계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성장해 가는 이들은 자신들이 ‘나(Ich)’로서 경험하고 자의식을 형성하는 정도가, 자신들이 각각 ‘너(Du)’로 인식하는 제2인칭의 시선을 받아들이고, 그 시선을 자기 자신에게로 돌리는 법을 배우는 정도와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매개되는 것은 자의식만이 아닙니다. 의사소통 행위와 담론을 통한 이해는 타당성 주장에 대한 상호 비판을 목표로 하며, 그 점에서 문자 그대로 변증법적[변증술적] 과정입니다. 동시에 이 과정은 의사소통 행위를 하는 주체들로 하여금 ‘예’ 또는 ‘아니오’의 입장을 취하도록 강제하며, 이 입장에 대해 그들은 개인적으로 책임을 집니다. 그리고 인생에서 중요한 상황들에서는 이 책임감이 단지 개인의 자립성과 대체 불가능성에 대한 의식만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고유의 독특한 특성 또한 형성합니다.

 

□ 선생님의 생애로 돌아가 보죠. 이를테면 당신의 ‘첫 번째’ 대학 이야기말입니다. 왜 괴팅겐 대학이었나요?

 

■ 대학 입학 시험을 마친 후 어디서 공부할지는 자연스럽게 결정됐습니다. 그 당시에는 마르틴 하이데거와 니콜라이 하르트만이 ‘누구나 꼭 가서 배워야 할’ 두 명의 대표적인 철학자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프랑크푸르트에 대학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어요. 프라이부르크 대학은 전쟁 때문에 ‘중단된’ 학년이 있었고 전후에 여전히 의무적으로 시행되던 정리 작업들(시설 재건 등) 때문에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거기서 공부하려면 몇 달, 어쩌면 한 학기를 더 보내야 했기 때문이죠. 반면 괴팅겐 대학에서는 하르트만과 ‘입학 면담’만 하면 됐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별 관심 없어 보이던 그에게 저는 릴케의 작품을 읽은 경험만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제 첫 학기는 마침 제1차 독일 연방의회 선거운동 기간과 겹쳤습니다. 우리는 나치 시대에 성장했기 때문에 전쟁이 끝난 후 마지막 몇 해 동안에서야 어느 정도 각성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주로 도덕적인 반응에서 출발했지만 나중에는 정치적으로도 깨어나게 되었죠. 그래서 괴팅겐에서 열리는 선거 유세 행사들을 거의 빠짐없이 찾아갔지요. 그때 저는 민주주의를 대부분 책을 통해서만 배워 온 젊은이로서 아주 극단적인 실망을 경험했습니다. 현실 민주주의와 했던 첫 대면은 충격이었죠. 그 충격은 1944년 7월 20일 베를린에서 반(反)히틀러 음모자들을 체포했던 오토 에른스트 레머(Otto Ernst Remer)가 극우 독일제국당 대표로 등장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저를 진정으로 충격에 빠뜨린 것은 BHE(동유럽 국가들에서 거주하다가 추방된 독일인 연합 Bund der Heimatvertriebenen und Entrechteten), 독일당 그리고 기독교민주당의 선동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레머 못지않게 극우적인 태도를 보였거든요. 그때 제가 알게 된 오버렌더, 제보움, 메르카츠(Oberländer, Seebohm, Merkatz) 같은 인물들은 거만하고, 모욕적이고, 점령국들에 맞서 들끓는 말투의 뻔뻔한 태도로 연설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이 아데나워 초대 내각에 전원 포함되었던 겁니다! 그들의 무책임한 언설에서는 나치 시대와의 단절이라는 필수적인 감각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어요. 지금도 그 장면이 기억납니다. 어떤 행사에서 독일 국가의 첫 소절이 연주되자 저는 바로 자리를 박차고 나왔고, 그 순간 청중들의 야유와 환호가 동시에 터져 나왔습니다. 그 국가가 12년 동안 나치의 당가였던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Horst-Wessel-Lied)’와 불가분하게 결합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모두가 떠올렸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원래는 별 문제가 없는 국가였지만, 그런 식으로 악용되었기 때문에 저는 지금도 독일 국가에 대해 일종의 저항감을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94년 연방총회에서 요하네스 라우가 로만 헤어초크와 경쟁해 낙선했을 때, 저는 그 자리에 있던 페터 글로츠에게 ‘독일 국가가 연주되기 전에 미리 알려달라’고 부탁해서 그 시점에 맞춰 회의장을 떠났습니다. 이처럼 제 첫 학기의 경험을 되돌아보면, 그 시절 우리 세대가 ‘정치적으로 자명한 것들(die politischen Selbstverständlichkeiten 정치적으로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기본적인 원칙이나 가치들)’을 얼마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는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철학적 깨달음에 대한 지적 욕구는 그런 자명성에 깊이 젖어 있었지요. 세상은 더 나아져야만 하고, 그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 전후 시절 당시 철학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계셨나요? 디터 헨리히가 ‘1945년 이후 세대 철학자들만의 고유한 세대적 특징이 있으며, 그것이 특히 현재에 대한 특정한 시각으로 표현되었다’고 한 말에 동의하십니까?

 

■ 전후 세대 철학자들에 관해 헨리히가 말한 ‘특유한 세대적 특징’이라는 감성을 제가 공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식의 세대 구분으로 철학자들을 다른 학문 동료들과 명확히 나누는 것은 쉽지 않다고 봅니다. 저와 제 아내는 같은 또래 사회학자들 그리고 역사학자들과 우정을 맺으며 매우 비슷한 사고 방식을 경험했습니다. 인문학부 내 모든 학문 분야에 존재하던 더 깨어 있고 더 뚜렷한 개성을 가진 정신들 속에서 어떤 공통된 세대적 특성이 형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의 전통이 부패한 뒤 모든 것이 오염되었다는 혐의를 얻었고, 모든 것이 회의와 불신, 비판의 여과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우리는 철학 교수로서 나중에 플라톤 전통의 엄숙한 제스처에 맞서서, 우리의 직업적 역할에 대해 냉철하고 소박한 이해, 특히 우리의 주장과 이론의 오류 가능성에 대한 자각이 뿌리내리도록 하였습니다. 하이데거가 여전히 찬양하던 진리에 대한 특권적 접근권을 주장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짓에 불과했습니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은 분석철학의 방법과 정신을 습득하려 노력했습니다. 독일에서 한때 경멸받던 프래그머티즘조차도 금방 성공 가도를 달렸습니다. 이러한 서구에 대한 무조건적 개방은 독일 철학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저희 세대는, 자랑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 문을 열어젖혔습니다.

각기 다른 이유로 저는 전쟁을 겪은 칼-오토 아펠, 에른스트 투겐트하트, 디터 헨리히, 미하엘 토이니센과 가장 가까웠습니다. 앞에서 말한 동기들 때문에, 우리는 모두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까지 각자 철학 프로젝트를 발전시켰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다소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서로를 지켜본 것 같습니다. 브루멘베르크(Blumenberg)는 독불장군이었고, 야콥 타우베스(Jacob Taubes)는 1960년대 초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 뮌스터 대학 동료들, 특히 슈패만(Spaemann), 륍베(Lübbe), 마르쿠바트(Marquard)를 포함한 뮌스터(Münster)의 동료 철학자들은, 제가 보기엔 리터 학파(Ritter-Schule) 소속이라는 관점에서 받아들여졌을 뿐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저는 파울 로렌젠(Paul Lorenzen)의 ‘에를랑겐 학파’와 특히 ‘콘스탄츠 학파’인 프리드리히 캄바르텔(Friedrich Kambartel), 위르겐 미텔슈트라스(Jürgen Mittelstraß), 나중에는 페터 야니히(Peter Janich)와 더 밀접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 세대 철학자에는 알브레히트 벨머(Albrecht Wellmer)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이델베르크에서 철학을 공부할 때 수학을 전공했던 그가 제 첫 제자였는데, 우리는 곧 매우 우정 어린 관계를 맺었고, 다른 경우들처럼 가족 간 교류로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알브레히트는 뉴스쿨(New School)에서 수년 간 가르치면서 미국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벨머는 뉴 스쿨에서 비판이론 정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학생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이 과정에서 토마스 매카시와 그의 제자들도 함께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 전통은 오늘날 독일보다 미국에서 더 생생합니다. 1970년대 초부터 미국에서 딕 번스타인(Dick Bernstein 리처드 번스타인), 딕 로티(Dick Rorty 리처드 로티), 특히 긴밀한 연구 협력 관계를 맺은 톰 매카시와의 우정이 수많은 다른 인맥의 시작이었습니다.


다음 회에 계속~

헤겔 형이상학 산책38-일자들의 반발 관계[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38-일자들의 반발 관계

1)

앞에서 일자의 요소들을 살펴보았다. 일자는 자기를 산출하는 무한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대자 존재며, 이 산물이 대자 존재의 산물 중의 하나라는 점에서 일종의 존재[Sein Fuer Eines]며, 그것은 그 외에도 똑같은 다른 일자들과 관계한다는 측면에서는 일자[Eins]다

이 일자들이 서로 관계하는 평면이 공허다. 이 공허는 똑같은 일자들이 만나는 평면이므로 한편으로는 동질적 평면이며 다른 한편에서 일자들의 차이는 외적, 우연적인 차이이므로 우연적 차이가 존재하는 평면이다. 이 공허 속에서 동질성과 차이가 서로 외면적으로 관계하면 그것이 곧 공허다. 그러므로 일자의 한계는 공허이며, 일자들은 공허 속에서 존재한다.

“다수의 일자는 일단 정립되지 않은 타자 존재다. 한계는 다만 공허이며 일자들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또한 일자들은 그 한계 속에 존재한다. 그들은 공허 속에 존재하며 다시 말해 그들의 반발은 그들의 공통적 관계다.”(논리학 재판, GW21, S. 158)

이런 구체적으로는 모든 물체가 질량으로 환원된 상태에서 이 질량이 서로 관계하는 물리학적 공간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모든 공간이 이런 공간이 아닐 것이다. 현존들이 만나는 평면이나 생명체의 내적 평면은 물리적 공간은 이런 공허로서의 공간과는 다른 공간이다.

이제 이런 허공 속에서 일자들이 어떻게 관계하는지를 살펴볼 차례다. 일자들의 이런 관계에서 핵심적인 개념이 곧 반발이므로 2장 현존론 3절 대자 존재의 B항(일자와 다자)에서 공허 개념(B-b항)을 다룬 다음 바로 다음 ‘반발[Repulsion]’ 개념(B-c항)을 다루고 있다. C항으로 넘어가면 다시 일자의 배제[Ausschliessen](C-a항)을 다룬 다음 이어서 반발과 견인의 관계를 다루므로, 일자의 반발 또는 배제는 B항에서 C항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개념으로 보면 될 것이다.

2)

공허 속에서 일자들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공간 속에서 두 당구공 사이의 충돌을 예로 드는 것은 일자와 당구공 사이의 유사성에 비추어 적절하지만, 충분하지는 못하다. 당구공으로는 일자의 대자성을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일자는 동질적이면서 서로 외면적 차이를 가진 것이니 차라리 두 형제의 갈등을 예로 드는 것이 더 합당하게 보인다. 왜냐하면, 인간의 의식은 대지적인 것이니, 대자성까지 마음속에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든 당구공의 충돌이나 형제의 관계를 예로 생각하면서 일자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일자의 관계를 설명할 때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개념이 곧 ‘자기에 대해 부정적인 관계’라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탈자[Ausser sich Sein]’로 규정되기도 하는데, 자기 부정이라는 측면에서 같은 의미다.

앞에서 하나의 현존과 다른 현존의 관계에서 하나의 현존은 규정성을 가지는데, 이 규정성은 타자에 대한 부정성을 의미했다. 예를 들어 ‘빨간색’은 ‘파란색’에 대해 그것이 아닌 것 즉 부정으로 규정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현존이 있다면 그것은 그것과 대립하는 다른 현존이 존재함을 전제로 하고 또 요청한다.

그런데 여기 일자에서 일자는 ‘자기에 대해 부정성’을 지니는데, 헤겔은 이 자기 부정성을 또 하나의 자기와 똑같은 ‘일자를 정립하는 것’으로 여긴다. 즉 자기 부정이 또 하나의 자기산출이라는 것이니, 여기서 두 개의 또는 여러 개의 일자가 출현하게 된다. 여기서 출현한 다수 일자의 관계는 그 차이가 외면적인 한, 다만 외면적 관계다. 양자의 연관성을 말해주는 구절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일자의 다수성은 일자의 고유한 정립이다. 일자는 일자의 자기에 대한 부정적 관계일 뿐며 이 관계 그러므로 일자 자체가 곧 다수의 일자다.”(논리학 재판, GW21, S. 157)

“다수의 일자는 존재하는 것이다. 그 일자들의 현존 또는 상호 관계는 무-관계이므로 그 관계는 그런 일자들에 외면적이다. 즉 추상적 공허이다. 그러나 이들 일자 자체는 자기가 마치 존재하는 타자인 것처럼 자기에 대해 부정적으로 관계한다.”(논리학 재판, GW21, S. 158)

그러나 ‘자기를 부정하는 것’과 ‘다른 일자가 산출되는 것’ 사이의 연결 고리를 쉽게 찾기 힘들다는 사실이 헤겔의 주장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대자 존재라는 매개 고리를 집어넣는다면, 그 과정이 어렵지 않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자기에 대해 부정한다는 ’것은 일종의 존재가 자기 내로 복귀하여 대자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렇게 대자 존재가 된다는 것은 또 ‘하나의 일자를 산출한다’라는 것으로 이어지게 된다. 대자 존재를 매개로 ‘자기에 대한 부정적 관계’가 ‘다른 일자의 산출’로 연결된다.

3)

일단 일자의 자기에 대한 부정적 관계를 통해 다른 일자가 산출된다면, 여기서 반발의 관계가 출현한다. 왜냐하면, 이 다른 일자 역시 똑같은 일자이며 다만 그것들은 외면적 차이가 있으므로 서로 부정적이다. 하나의 일자가 지닌 우연성은 자기와 다른 일자의 우연성 부정하면서 존재하게 되니, 여기서 일자들의 반발이 일어나게 된다. 이 반발은 필연적이다. 왜냐하면, 우연성은 단순한 우연성이 아니라 똑같은 일자가 지닌 우연성이기 때문이다.

일자들의 반발을 이해하기 위해 당구공의 충돌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흰 당구공은 빨강 당구공과 단순하게 공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흰색은 빨간색의 부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흰 당구공은 빨간 당구공과 충돌한다. 그런데 예가 약간 어색하게 느껴지는 데, 왜냐하면, 흔히 당구공은 관성적 존재므로 가만히 놓아두면 서로 공존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를 바꾸어 대자성을 지닌 존재인 형제를 놓고 보자. 형제의 차이는 사실 우연적이므로 굳이 갈등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이 우연성 때문에 불가피하게 충돌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을까? 왜냐하면, 이 우연성의 배후에 일자가 있으며 그 일자는 서로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에 대한 부정의 관계는 이제 타자를 부정하는 관계로 바뀌면서 반발 또는 배제라 관계가 출현한다. 이런 반발의 관계는 동일성과 우연성이 외면적으로 결합한 상태에서만 일어나는 운동이다. 동일성과 우연성의 외면적 결합이 곧 공허이니, 공허 속에서 존재하는 일자만이 서로 반발한다.

단순한 외면적 차이만을 지닌 현존의 경우는 서로 반발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의 규정성에서 다른 규정성으로 이행할 뿐이다. 생명체 역시 반발하지 않는다. 생명체는 타자 관계 속에서 자기를 유지하는 것(생명의 자기 재생산)이니 여기서도 공허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질량을 지닌 것들이 공허 속에서 관계하는 물리적 공간에서만 반발이 출현한다.

4)

반발의 관계는 표면적으로 보면 마치 당구공이 충돌하는 것처럼 공간 이동의 모습으로만 보인다. 그러나 사실 이 반발의 관계는 대자 존재를 매개로 하므로 심층적 관계다. 자기 부정을 통해 자기 내로 복귀하면서 대자 존재가 되며, 이 대자 존재는 자기를 산출하면서 다른 일자가 되고 이 다른 일자와 일자는 서로 충돌하니, 서로 반발하게 된다.

이제 헤겔은 공허 속에서 일자들이 서로 반발하는 관계를 서술하는데, 이 과정은 마침내 상호 견인의 관계로 전환하게 된다. 반발에서 견인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헤겔은 드라마틱하게 그려내니, 이제 아래에 그 드라마의 개요를 정리해 보자.

① 일자들은 외면적 차이를 지니지만, 서로 똑같은 일자다.

② 일자는 다른 일자를 부정하면서 다른 일자는 부정된 존재가 된다. 즉 자기 내로 복귀하면서 관념적인 대자 존재가 된다. 여기서 대자 존재가 된다는 것은 부정된다는 것이 부정되는 것에 해당한다. 다른 일자의 자기 복귀는 일자를 부정함으로써 촉발된 것이다.

③ 다른 일자가 자기 내로 복귀하는 것과 동시에 일자 역시 자기 내로 복귀하여 대자 존재가 된다. 왜냐하면, 일자의 다른 일자에 대한 부정과 동시에 다른 일자의 일자에 대한 부정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일자의 자기 복귀는 다른 일자를 부정함으로써 촉발된 것이다.

④ 이 타자에 의해 촉발된 자기 부정은 사실 자기가 타자에 대해 부정하는 것을 통해 매개된 것이니, 이 타자에 의한 자기 부정은 자기에 의한 자기 부정이다.

⑤ 상호 반발을 통해 각자가 자기 대자 존재로 되지만, 이 대자 존재는 양자에게 같은 것이니, 양자는 서로 합일하게 된다. 상호 반발이 결국 상호 견인으로 전환한다.

“반발은 그 자체로 보아서 곧 관계다. 일자들을 배제하는 일자는 그런 일자들에 관계하는데, 그것을 자기로 여기면서 관계한다. 일자의 상호 부정적 태도는 따라서 자기와 합일하는 것이다. 반발이 이행하는 동일성은 상이성과 외면성의 지양이다. 그런 상이성과 외면성은 일자들을 상호 대립적으로 배제하는 것으로서 주장한다고 말해지던 것이다.”(논리학 재판, GW21, S. 160)

당구공이 서로 부딪히면서 자기 자리로 되돌아오는 모습을 그려 보면, 헤겔이 서술한 반발의 드라마가 눈에 선하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차라리 형제의 갈등을 보자. 형제의 갈등은 사실 아주 우연적인 것에 일어난다. 남들이 보기에 그 우연성 때문에 싸울 이유는 없다. 그러나 형제에게 그 우연적인 것이 갈등의 요인이 되는 것은 그 형제가 사실 같은 어머니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우연성은 단순한 우연성이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을 의미하는 징표가 된다. 그것을 부정당한다는 것은 곧 자기의 존재 자체를 잃어버리는 것으로 되니, 이 우연성이 갈등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형제는 우연성 때문에 갈등하지만, 이런 갈등을 통해서 자신이 동일한 어머니에 의존하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 형제는 서로를 자기로 동화시키려 한다. 그래야만 자기에게서 떠난 어머니의 사랑이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되기 때문이다. 형과 아우는 이렇게 해서 서로 닮는다.

5)

일자들 사이의 반발과 견인의 드라마를 헤겔은 이렇게 요약한다. 반발을 통해 타자를 부정하지만, 이 타자의 부정이 곧 이 타자를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자기를 보존하는 것을 통해 오히려 자기를 해소한다.

“다수의 일자가 지닌 대자 존재는 그런 상호 반발을 매개로 하여 자기를 유지하는 것으로서 제시된다. 그러나 동시에 다수의 일자는 이 관념성을 반발하면서 일자를 정립하니, 타자에 대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일자가 부정적 상호 관계를 통해 자기를 유지한다는 것은 차라리 자신을 해소하는 것이다. 일자는 존재할 뿐만 아니라 상호 배제를 통해서 자기를 유지한다.”(논리학 재판, GW21, S. 159)

플라톤의 <국가> 강해(73)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73)

 

C. 철인통치자의 교육 목표와 교과목(502c-541b)

5. 혼의 전환과 참된 실재로의 상승을 위한 교과목들(제7권 521c-541b)

1) 예비 교과목(521c-531c)

* 수와 계산 기술, 지성적 이해(521c-526c)

 

이제 논의 주제는 동굴의 비유에서 제시된 구제의 임무들을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을 만한 훌륭한 철학자들이 이 나라에 어떤 방식으로 생겨날 것인가의 문제 즉 철학자의 교육과정에 관한 논의로 이어진다.

 

[521c-526c]

* 소크라테스가 밝히고 있는 그러한 교육과정은 ‘밤과 같은νυκτερινός 낮으로부터 진정한 낮을 향한 영혼의 전환ψυχῆς περιαγωγὴ’ 즉 ‘참된 철학’φιλοσοφία ἀληθῆ을 가능케 하는 배울 거리들μάθημα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러한 배울 거리들이 생성하는 것το γιγνομένον으로부터 ‘있는 것’τὸ ὄν으로 영혼을 이끌어낸다.(521c-d) 물론 앞에서 다룬 신체단련γυμναστικῇ과 시가μουσικῇ도 배울 거리들이지만 신체단련은 생성하고 소멸하는 것 몸의 성장과 쇠퇴를 관장하는 것이므로 우리가 지금 찾고 있는 배울 거리가 아니다.(521d-e)

* 그리고 시가 또한 습관ἔθος을 통해 화음ἁρμονία과 장단ῥυθμός을 전수해주는 것이지 앎ἐπιστήμη은 아니다. 기술들도 모두 손을 쓰는 일로 보여 그러한 배울 거리에 속한다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시가와 신체단련과 기술들τέχναι을 빼고 어떤 배울 거리가 남아있을까?(522a-b)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첫 번째 배울 거리로 모든 기술τέχναι과 사고διάνοια와 앎ἐπιστήμη이 사용하는 공통의 것이면서, 누구나 제일 처음에 배울 수밖에 없는 것으로 수ἀριθμός와 계산λογισμός을 제시한다.(522c) 특히 계산하고 셈할 줄 아는 것은 전사πολεμικός에게 필수적인 배울 거리이다. 이것이 곧 우리가 찾고 있는 것들, 즉 ‘본성상 지성적 이해로 인도하는’τῶν πρὸς τὴν νόησιν ἀγόντων φύσει 배울 거리들에 속하는 것이다.(522d-523a)

*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이것이 전적으로 ‘있음’οὐσία을 향해 이끌어주는 것임에도 아무도 이것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음을 지적하면서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감각αἰσθήσεσις에 속한 것들에서 지성적 이해νόησις를 불러내는παρακαλοῦντα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살핀다. 우선 감각에 속한 것들τὰ ἐν ταῖς αἰσθήσεσιν 중에서 어떤 것들은 감각에 의해 충분히 분간되기κρινόμενα 때문에 탐구ἐπίσκεψις를 위해 지성적 이해νόησις를 불러내지 않는 것들이고, 어떤 것들은 감각으로는 어떤 건전한ὑγιὲς 것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전적으로 지성적 이해가 탐구하도록 요청하는 것들이다.(523a-b)  지성적 이해를 불러내지 않는 것들은 ‘반대되는 감각을 동시에 산출하지 않는 것’ὅσα μὴ ἐκβαίνει εἰς ἐναντίαν αἴσθησιν ἅμα들이고, 반면에 지성적 이해를 불러내는 것은 ‘반대되는 감각을 동시에 산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멀리서 보든 가까이에서 보든, 감각이 그것을 특별히 더 그것이라고도 그와 반대되는 것이라고도 분명히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명확히 구분해 주기 위해 지성적 이해가 요구되는 것이다.(523c)

* 소크라테스는 이와 같은 설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다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해 손가락δάκτυλος의 비유를 끌어들인다. 만약 우리가 새끼손가락ὅ σμικρότατος, 약손가락ὁ δεύτερος, 가운뎃손가락ὁ μέσος 이 셋을 가까이에서 보는 경우 가운데에서 보이든 끝에서 보이든, 하얗든 검든, 굵든 가늘든, 그리고 그런 어떤 경우든 이것들 각각은 똑같이 손가락으로 보인다. 그 점에서 그 손가락들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래서 대중들의 영혼은 손가락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지성적 이해에게 묻도록 강제되지 않는다. 그 경우에는 시각ἡ ὄψις이 영혼에게 손가락과 그것에 반대되는 것τοὐναντίον을 동시에ἅμα 제시하지ἐσήμηνεν 않기 때문이다. 앞서 ‘반대되는 감각을 동시에 산출하지 않는다’라는 말의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그 경우 지성적 이해를 불러내거나παρακλητικὸν 일깨우는ἐγερτικὸν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523c-d)

* 한편 시각ἡ ὄψις은 손가락들의 큼τὸ μέγεθος과 작음σμικρότητα을, 촉각ἡ ἁφή은 손가락들의 굵음과 가늚, 부드러움ἢ μαλακότητα과 딱딱함σκληρότητα을 지각하기도 한다. 이 경우 시각은 그것들 중 어떤 것이 가운데에 있든 끝에 있든 과연 큼과 작음, 굵음과 가늚, 부드러움과 딱딱함을 충분히 구분할까? 다른 감각도 그럴까? 아니면 감각들 각각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그냥 딱딱함에 적용되는 감각을 부드러움에도 적용할 수밖에 없어서 ‘이 감각은 동일한 것을 딱딱한 것이면서 부드러운 것으로 감각한다.’고 영혼에 보고할까?(523e-524a) 답은 후자이다. 감각은 동일한 것을 딱딱한 것으로도 부드러운 것으로도 보고하고, 가벼운 것의 감각과 무거운 것의 감각이 무거운 것을 가벼운 것으로 가벼운 것을 무거운 것으로 영혼에 제시한다.(524a) 감각이 영혼에게 이처럼 보고할ἑρμηνεί 경우 영혼은 자신에게 제시된 그 내용에 당혹해할ἀπορεῖν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영혼은 그러한 보고 내용을 이상스러운ἄτοπος 것으로 여기고 탐구ἐπίσκεψις가 필요하다고 여길 것이다. 그에 따라 영혼은 이러한 상황에서 우선 계산λογισμός과 지성적 이해νόησις를 불러내서 보고된 것들 각각이 하나ἓν인지 둘δύο인지를 탐구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각각이 하나이고 함께해서 둘이라면, 영혼은 그 둘을 분리된κεχωρισμένα 것으로 생각할 것이고 ‘분리되지 않은’ἀχώριστος 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생각할 것이다.(524b-c)

* 앞의 상황에서 시각은 큼과 작음을(촉각의 경우는 딱딱함과 부드러움을) 보지만, 그것을 분리된κεχωρισμένον 것이 아니라 뒤섞여 있는συγκεχυμένον 것으로 본다. 그러나 영혼은 그것을 구분해서 이해하기 위해 시각과 반대로, 그것들에서 큼과 작음을 보도록 강제된다ἠναγκάσθη.(524c) 그래서 영혼은 여기 어디쯤에서 처음으로, 큰 것은 도대체 무엇이며 또한 작은 것은 무엇인지τί ἐστὶ를 묻게 된다. 우리가 한쪽을 가지적인 것τὸ νοητόν이라고 부르고 다른 쪽을 가시적인 것τὸ ὁρατὸν이라고 부른 것도 그 때문이다.(524c) 그리고 그것들이 바로 조금 전에 어떤 것들은 사고를 불러일으키는παρακαλοῦντα 것이고 어떤 것들은 그렇지 않은 것이라고 내가 말했던 것들이다. 요컨대 자신과 반대되는 것과 함께 감각에 들어오는 것들은 사고를 불러일으키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지성적 이해를 일깨우지 않는 것이다.(524d)

* 소크라테스는 위와 같이 사고와 지성적 이해가 영혼에서 발생하는 일이 어떤 경우에 생겨나는지를 설명한 다음, 지성적 이해가 수행하는 계산과 탐구의 근간에 수ἀριθμός와 하나τὸ ἓν가 자리하고 있음을 밝힌다.(524d) 만약 하나가 그 자체로 충분히 눈에 보이거나 다른 어떤 감각으로 파악된다면, 굳이 하나가 ‘있음’으로 이끌어주는 일이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것에 대립하는 어떤 것이 항상 그것과 동시에 눈에 보이나 그렇다고 특별히 하나οὐσία로 드러날 정도가 아니라면 그때에는 판정 내려줄ἐπικρινοῦντος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상황은 영혼으로 하여금 혼란스러움을 일으키는ἀπορεῖν 경우이기 때문에 영혼은 자기 자신 안에서 사유ἔννοια를 발동시켜 탐구ζητεῖν와 동시에 하나 자체αὐτὸ τὸ ἕν가 도대체 무엇인지τί ποτέ ἐστιν를 묻도록 강제되는ἀναγκάζοιτ᾽ 것이다.(524e) 그렇게 해서 ‘하나에 대한 배움’ἡ περὶ τὸ ἓν μάθησις은 영혼을 ‘있는 것을 구경하는 쪽으로’ἐπὶ τὴν τοῦ ὄντος θέαν 인도하며ἀγωγῶν 그쪽으로 방향을 바꾸게μεταστρεπτικῶν 하는 힘을 갖게 된다.(525a)

* 그러나 시각은 동일한 것을 하나인 것으로 보면서 동시에 수적으로 무한한ἄπειρος 것으로 본다.(525a) 그런데 하나 내지 모든 수가 시각 때문에 동일한 그런 일을 겪을 수는 없다. 그래서 계산 기술λογιστική과 산수ἀριθμητικὴ가 필요하다. 그것들은 시각과 달리 가시계를 벗어나 동일한 것을 진리로πρὸς ἀλήθειαν 인도ἀγωγός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들이야말로 우리가 찾고 있는 배울 거리들에 속하는 것이다.(525b) 전사에게는 군대의 대오τάξις 정비를 위해서, 그리고 철학자에게는 생성γένεσις으로부터 벗어나서 ‘있음’을 접해야하므로 이것들을 필수적으로 배워야 한다. 수호자φύλαξ가 전사πολεμικός이자 철학자φιλόσοφος가 되어야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배울 거리를 법으로 정하고 나라에서 가장 큰 일들에 참여할 사람들로 하여금 지성적 이해 자체를 통해서 수들의 본성을 구경하는 데에 이를 때까지 – 무역상이나 행상들처럼 사고팔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 전쟁의 수행을 위해서 그리고 영혼 자체가 생성으로부터 진리와 ‘있음’οὐσία 쪽으로 방향 바꾸는 것을 용이하게 만들기 위해서 – 계산 기술을 연마하게 해야 한다.(525b-c)

* 특히 이 배울 거리는 기묘해서κομψός – ‘행상 일을 하기’καπηλεύειν 위해서가 아니라 – ‘앎을 얻기’γνωρίζειν 위해서 수행할 경우 우리가 원하는 것과 관련해서 여러모로 쓸모χρήσιμος가 있다. 그것은 영혼을 위쪽으로 강하게 이끌고 ‘수들 자체에 대해서 대화하도록’περὶ αὐτῶν τῶν ἀριθμῶν διαλέγεσθαι 강제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누군가가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몸체를 가진 수들을 영혼에 제시하면서 대화를 한다면, 영혼은 그런 대화를 결코 승인하지 않을 것이다.(525d).

* 이런 문제에서 ‘대단한δεινός 사람들’은 누가 하나 자체αὐτὸ τὸ ἓν를 말로 나누려고 시도할 경우, 결코 하나가 여러 부분μόρια으로 드러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면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525e) 만약 누군가가 그들에게 ‘어떤 수들에 관해 대화하고διαλέγεσθε 있는지’ 즉 ‘그것들이 어떤 수들이기에 당신들이 그래야 한다고 요구하는 대로 각각 모두가 모두와 같고 조금도 차이가 나지 않으며 자신 안에 어떤 부분도 갖지 않는 것인지’를 묻는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이야기하는 수는 사고하는 것만διανοηθῆναι μόνον이 허용되고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접근할 수 없는 것들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요컨대 그것은 영혼이 진리 자체αὐτὴ τὴ ἀλήθεια에 이르기 위해 지성적 이해 자체를 사용하도록 강제하는 것임이 밝혀진 한, 이 배울 거리는 우리에게 정말 필수적이고 대단히 효과적이기까지 하다.(526a)

* 그리고 선천적으로 계산에 능한 사람들이 선천적으로 어떤 배울 거리도 대체로 빨리 익힌다. 또한, 더딘 사람들도 계산 교육과 훈련을 받는다면, 다른 이득은 전혀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 이전의 자신보다 빨라진다는 점에서는 누구나 진전을 보인다.(526b) 더구나 배우고 연마하는 데 이보다 더 힘이 드는 배울 거리는 쉽게 찾을 수도 없고 많이 찾을 수도 없다. 이 모든 이유로 이 배울 거리는 빼놓지 말아야 하며 최고의 자연적 성향을 지닌 자들은 이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526c)

—————————————-

* 521c-523a : 앞으로 논의될 교육 과정이 앞서 동굴의 비유에서 언급된 영혼의 전환(518d-e)을 가능케 하는 배울 거리이고 그것이야말로 생성하는 것으로부터 ‘있는 것’to on으로 영혼을 이끄는 것이라는 말은 장차 변증술을 목표로 하는 철학자를 위한 교육 과정이 다름 아니라 앞서 태양의 비유, 선분의 비유, 동굴의 비유를 공히 관통하고 있는 것 즉 인식과 실천의 상승과정임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이곳의 논의 또한 앞서 논의의 동일 구도 즉 가시계로부터 가지계로의 상승적 전환 차원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청년기의 신체단련과 시가라는 배울 거리를 지나 그러한 상승의 최고 목표로서 변증술적 앎에 이르는  첫 단계로서 감각으로부터 지성적 이해로의 상승 내지 전환으로서 수와 계산 즉 수학 교육이 제시되고 있다. 요컨대 철학자를 위한 배울 거리의 첫 단계는 가시계의 감각적 지각의 단계로부터 가지계의 사고 단계로 전환 상승하는 것이다.

* 522a ‘시가는 .. 앎epistēmē이 아니다’ : 앎의 원어 epistēmē는 일반 기술적 앎에서부터 최상의 형상적 앎에 이르기까지 사용 범위가 넓다. 참고로 다양한 기술들이 앎으로 규정되는 사례는 아래와 같이 플라톤 대화편에서 수도 없이 발견된다. <테아이테토스> 146c-147c, 198a-c, <소피스트> 232a, 257d, <정치가> 258b-d, 297b, 300e, 305a, <필레보스> 55d-e, 57a-b, 58b-c, <알키비아데스 1> 125d-e, <카르미데스> 165c, 166a, 170b, 170c, 173c, <에우튀데모스> 289b, 291b, 292c-d 등. 이 점에서 보면 시가나 신체단련도 기술적 배울 거리의 하나로서 넓은 의미에서 앎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소크라테스는 그 말의 의미를 선분의 비유를 기준으로 사고dianoia 단계 이상의 앎으로 한정하여 사용하고 있다.

* 523a 지성적 이해noēsis : 그러나 지성적 이해의 원어 noēsis는 최상의 형상적 앎의 단계에 한정하지 않고 그 아래 단계인 사고dianoia 단계의 앎을 두루 포함하는 말 즉 가지계ta noēta 일반의 앎으로 넓게 사용되고 있다. 앞서 선분의 비유(509d-511e)에서도 noēsis는 때로는 ‘형상적 앎’epistēmē에 국한해서 때로는 수학적 앎까지 포함한 가지적인 것(ta noēt)에 대한 앎 모두에 두루 사용되고 있다.

*523a – 524c :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전환 과정에서 맞이하는 두 부류의 지각을 구별한다. 하나는 지성적 이해를 불러내거나 자극하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성적 이해를 불러내거나 자극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소크라테스는 손가락에 대한 지각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예를 들어 여기 세 개의 손가락이 있다면 우선 시각은 각각이 모두 손가락임을 알려준다. 이러한 단순 지각 상태에서는 손가락들 간의 차이까지 지각되지는 않아 지성적 이해에 자극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시각이 단순 지각을 너머 크기와 작음, 두께와 얇음, 딱딱함과 부드러움 등 동일한 대상에서 반대적인 속성들까지 동시에 지각하면서도 구분 없이 그것들 모두를 동시에 영혼에 제시할 경우 영혼은 당황aporein할 수밖에 없다. 동일한 대상이 동시에 그 반대의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혼은 급기야 지성적 이해에게 도움을 호소하고 지성적 이해는 즉각적으로 그것에 반응하여 ‘그것은 무엇인가? ti esti’라는 소크라테스적 물음을 통해 보고 내용들에서 ‘큼’과 ‘작음’을 각기 자기동일적 하나로 구별 분간해 낸다. 이로써 시각 대상to horaton 내지 감각대상to aisthēton은 사고 대상to noēton으로 전환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크기나 무게 등 수적 계산이 가능한 단위들과 결합해 감각적 대상들에 대한 산술적 파악 내지 구분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영혼은 당혹스런 난문aporia을 통과하여 참된 배움으로서 감각적인 가시계를 떠나 가지계로 진입한다.

* 523c ‘반대되는 감각을 동시에 산출하지 않는 것’ : 이 문장은 동사 ekbainei와 전치사 eis의 의미를 살려 ‘반대되는 감각으로 동시에 넘어가지 않는 것’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아직 단순 지각 상태에 머물러 반대되는 감각을 동시에 포함하는 뒤섞인 감각으로까지 넘어가지 않은 것들을 의미한다. 그것들은 아직 반대되는 감각을 동시에 산출하지 않으므로 지성적 이해를 자극하지 않는다.

* 524c-d : 물론 시각에도 큼과 작음은(촉각의 경우는 딱딱함과 부드러움) 들어오지만, 문제는 그것들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뒤섞여 있는 상태로 감각된다는 점이다.  이에 당황한 영혼은  뒤섞여 있는 것에서 큰 것과 작은 것을 구분해 보도록 강제된다.  그래서 영혼은 사고dianoia를 통해 그려진 삼각형에서 삼각형 자체를 보듯 큰 것과 작은 것에서 큼과 작음을 보고 그것을 분리해내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것들은 추가적인 사고 과정을 통해 각기 고유한 내포적 의미는 갖되 비교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적용되는 것들임이 드러나고 그에 따라 그것들과 관련한 영혼의 당혹감은 해소된다. 사실 오늘날 누군가 약한 손가락이 동시에 크기도 하고 작기도 말한다면 여기의 영혼처럼 당황스러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최소한 상식을 가진 현대인이라면 큼과 작음이 이미 상대적인 개념임을 익히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반적인 관점에서 ‘가시계의 동일한 어떤 대상이 왜 다르거나 반대적인 것들로 동시에 지각되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이 경우 사고 작용은 그 동일 대상에서 다른 것들 내지 반대적인 것들이 사실은 고정치가 아니라 관계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나타날 수 있는 계기적 측면들 내지 우연적 속성들임을 알아차린다. 아마도 플라톤이 당혹감을 주는 사례로 작음과 큼, 딱딱함과 부드러움 같은 것들을 끌어들인 까닭은 당대 소피스트들이 측면이나 계기, 속성 등 우연적인 것들을 파르메니데스를 끌고 와 마치 배타적 일자성을 갖는 것인 양 내세워 상대를 곤경에 처하게 만드는 궤변적 쟁론술을 자주 구사했기 때문일 것이다.(<에우튀데모스> 277d-282c 등 참고)

* 이곳에서 영혼의 당혹감 또는 난문aporia은 감각적 가시계에서 반대적인 것들이 동시에 함께 주어짐으로써 촉발되지만, 영혼의 당혹감은 물질적 가시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쾌락과 고통, 선과 악과 같은 윤리적 문제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발생한다.  플라톤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가 ‘그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통해 참과 거짓, 선과 악, 정의와 부정의, 경건과 불경건, 쾌락과 고통 등과 관련한 일상의 주장들을 하나같이 난문에 빠트리는 장면들은 허다할 정도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소크라테스적 난문들은 진정 알고자 하는 자들에게 탐구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참된 철학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부추기고 자극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이곳에서도 영혼이 마주하는 당혹감은 최상의 배움을 향한 상승과 전환의 첫 발을 내딛게 하는 발판이자 기폭제가 된다. 말 그대로 철학은 당혹과 놀라워 함thaumazein에서 시작된다.

* 524d : 소크라테스는 위와 같이 사고와 지성적 이해가 영혼에서 발생하는 일이 어떤 경우에 생겨나는지를 설명한 다음, 지성적 이해가 수행하는 계산과 탐구의 근간에 수arithmos와 하나to en가 자리하고 있음을 밝힌다. 그런데 그러한 구분에 ‘수와 하나’가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우선 구분과 분간이 된다는 것은 대상들 각각이 어떤 단일한 일자적 규정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일자적 규정성으로서 자기동일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타자와 분명한 구별이 불가능하다. A는 A로서 일자성이 확보되고 B는 B로서 일자성이 확보될 때 비로소 A라는 ‘하나’,  B라는 ‘하나’가 성립하고 그것들 모두 각기 나름의 일자성을 갖는 서로 다른 ‘여럿’(多)이 된다. 그리고 이렇게 여럿이 성립해야 비로소 그것들 간의 비교, 차이가 드러나고 그것들 사이의 관계도 드러나 이른바 그것에 대한 객관적 탐구가 가능해진다. 그런데 가시계의 물질적 감각적인 것들은 늘 생성 변화하고 그 안에 반대적인 속성들마저 뒤섞여 있어 자기동일성의 확보가 어렵고 그에 따라 동일한 것을 ‘하나’en인 것으로 보면서 동시에 수적으로 무한한apeiron 것으로 본다. 이렇듯 감각은 더 이상 대상들을 제대로 적확하게 지각하지 못한다. 그래서 영혼은 사고 작용을 통해 그것들에서 물질적 감각적 변화의 요소들로부터 이를테면 큼 자체, 작음 자체라는 자기동일자를 분리해낸다. 예를 들어 A, B라는 속성들이 가시계에서 뒤섞여 있다고 하자. 이 경우 사고는 그곳에서 감각적 시간성을 제거하여 ‘A는 A’로 ‘A는 A 아닌 것이 아닌 것’으로 – B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것으로 – 추상해 낸다. 이를 통해 비로소 그것들은 구별과 분간이 가능한 각기 ‘하나’이면서 동시에 서로 구분되는 ‘여럿’이 되는 것이다. 논리학에서 동일률과 모순률, 배중률을 사고의 기본 원리로 삼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리고 이러한 순수 공간적 사고를 통해 자기동일성을 드러내는 가장 대표적인 존재자가 다름 아닌 ‘수’arithmos이다. 사고 단계를 구성하는 핵심에 수학이 자리하고 배울 거리의 첫 단계가 수학이 되는 이유도 그곳에 있다. 누군가 단일성의 개념을 형성해보려 시도하지 않았다면 산수라는 과학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플라톤이 보기에 사고를 불러일으키고 자극하는데 수학만큼 적합한 것은 없다.

* 물론 플라톤에서 사고가 가시적인 것들에서 각각의 자기동일성을 드러낼 수 있는 배경에는 그 각각의 것들에 자체적 존재로서 형상eidos이 자리하고 있다. 가시적인 것들은 그 형상들을 마치 그림자처럼 분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수학적 자기동일성과 자체적 존재로서 형상이 갖는 자체성은 다르다. 그럼에도 플라톤은 수학적 자기동일성이 형상이라는 자체적 존재에 연원해 있다는 데 근거하여 수학에 기반한 사고 단계의 개별 학술들 즉 기하학, 천문학, 화성학의 학문성을 확보한다.

* 그러나 오늘날 비합리주의 계열의 주장처럼 형상적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입장에서는 플라톤이 말하는 사고 내지 지성적 이해는 실제 시공간에 존재하는 존재자들에서 시간을 제거하고 공간적 존재로서만 그것들을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재하는 현실의 실상을 배반하는 것이라 비판한다. 노자(老子)가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이라 설파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플라톤 철학은 어떻게든 현실을 말로 설명해내려는 현실 구제의 이념을 지향한다. 틀리면 그 이유를 대고 바로잡는 것 또한 말로 하는 논변이다.

* 525a ‘시각은 동일한 것을 하나인 것으로 보면서 동시에 수적으로 무한한apeiros 것으로 본다.’ : 이 말은 시각의 대상인 가시적 물질적인 것들이 반대적인 것들을 포함하여 변화무쌍하게 수많은 측면들과 계기들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음을 함께 보여준다. 가시적 물질계는 존재론적으로 이미 그 자체로 무규정적apeiron인 것이다. 영혼은 형상 인식을 토대로 이러한 무규정성에 분유된 규정성peras을 간취하여 지성적 이해로 하여금 대상 세계의 분별을 가능하게 한다. 이로써 여럿으로 구성된 현실 세계의 구별 자체를 부정하는 파르메니데스적 허무주의와  소피스트들의 회의주의가 극복된다.( <박홍규 전집> 3. 형이상학 강의 2. “플라톤의 허무주의 극복” 참고)

* 525d ‘누군가가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몸체를 가진 수들을 영혼에 제시하면서 대화를 한다면’ : ‘몸체를 가진 수들’이란 감각적 대상을 단위로 두고 세어진 수들 이를테면 사과 두 개, 말 세 마리, 물 세 컵 등으로 표현된 수들이다. 물 한 컵에 두 컵을 더해도 한 컵이 되는 것을 근거로 ‘1+2도 1이 될 수 있다’는 궤변도 몸체를 가진 수와 순수한 수를 구분하지 않은데서 비롯된 것이다. 수학자들이 감각적 몸체를 가진 수들이 아니라 오로지 사고의 대상으로서 수만을 승인하는 이유도 그곳에 있다.

* 525d ‘배울 거리가 여러모로 쓸모chrēsmos가 있다’ : 플라톤에게 앎은 그 자체로 좋음 즉 실천적 유용성을 수반하는 것이다. 일부 플라톤 연구자들이 그를 철저한 공리주의자로 해석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여기서 소개되는 계산 기술과 산수 또한 영혼으로 하여금 생성으로부터 있음 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것을 용이하게 한다는 점에서 질서와 대오를 중시하는 군대 즉 전쟁의 수행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특히나 그 배울 거리는 기묘해서 무엇보다도 ‘영혼을 위쪽으로 강하게 이끌고 ‘수들 자체에 대해서 대화하도록’ 강제한다는 점에서 쓸모가 있다. 여기서 ‘대화하도록’의 원어 dialegesthai가 ‘변증술적 대화 능력’의 의미로도 함께 쓰이고 있음을 고려하면 수학 교육의 가장 큰 쓸모는 무엇보다도 바로 가장 위쪽 즉 좋음의 극치로서 형상적 앎에 이르는 변증술의 토대가 된다는 데 있다.

* 525d ‘배울 거리가 행상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 수학 교육이라는 배울 거리가 무역상이나 행상들처럼 사고팔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말은 오늘날 경제학에서 수학을 강조하는 관점과 괴리가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수학이 장사와 무관하다는 말이 아니라 수학 교육을 진리로 다가가기 위한 배울 거리로 여기지 않고 순전히 상업적 부를 획득하기 위한 방편으로만 중시했던 당대 사회에 대한 플라톤의 비판을 담고 있는 것이라 할 것이다. 상업적 부는 그 자체로 삶의 목적이 될 수 없다. 삶의 목적은 크건 작건, 나라 차원에서건 개인 차원에서건 우주적 선과 진실에 부합하는 영혼이 되도록 자신의 영혼을 보살피는 것이다.

* 526a ‘그것들이 어떤 수들이기에 당신들이 그래야 한다고 요구하는 대로 각각 모두가 모두와 같고 조금도 차이가 나지 않으며 자신 안에 어떤 부분도 갖지 않는 것인지’를 묻는다면 : 여기에서 ‘당신들’이 가리키는 것은 당대의 기하학자, 천문학자, 화음 이론가들이다. 소크라테스는 나중 그들 이론의 한계를 분명하게 비판하고 있지만 일단 수학을 강조하는 이 단계에서는 일단 당대의 수 이론을 승인하고 있다. 수는 감각적 대상처럼 자신 안에 어떤 부분도 몸체도 갖고 있지 않고 오직 사고로만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형상(이데아)으로서의 수도 아니다. 앞서 선분의 비유에서 사각형 자체가 그려진 도형으로서 사각형도 아니지만 형상으로서 사각형 자체가 아닌 것과 같다. 플라톤은 선분의 비유에서 사고의 대상을 수학적인 것으로 명시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으나 이곳의 내용은 사고dianoia의 대상이 수학적인 것임을 충분히 알아차리게 해준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도 <형이상학> 1.6.987b에서 플라톤이 감각물과 이데아 사이에 수학적인 것들이 있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그만큼 플라톤에게 수학은 앞으로 다루게 될 기하학, 천문학, 화성학과 더불어 변증술에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 예비 교과이자 개별 학술로서 최상의 지위를 공유한다.

* 525b : 본성에 따른 천부적 능력이 우선시 되고 있지만 누구라도 교육과 훈련을 통해 진전을 이룰 수 있음 또한 강조되고 있다.

* 526c ‘배우고 연마하는 데 이보다 더 힘이 드는 배울 거리’ : 플라톤은 앞서 제6권(503e-504d)에서 ‘가장 큰 배움’to megiston mathēma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길고 힘든 단련의 과정이 필요한지를 언급하고 있다. 말 그대로 ‘아름다운 것은 힘든 것’(ta kala chalepa)이다.

———————————

* 그러나 플라톤이 이곳에서 제기하는 가시적인 것에 대한 지각에서 가지적인 것에 대한 인식에로의 전환은 어떤 인식론적 입장을 갖느냐에 따라 수많은 이견과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이를테면 플라톤은 손가락에 대한 감각적 지각은 손가락이 아닌 지각을 동시에 산출하지 않는 단순 지각으로서 지성적 이해를 자극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칸트 인식론의 관점에서 보면 감각 대상이 손가락으로 인지되었다는 것은 이미 주어진 감각소여data에 손가락이라는 오성적 개념지 즉 범주의 개입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감각에 속하는 것들 가운데 반대되는 감각을 동시에 산출하는 감각도 있고 그것이 지성적 이해를 자극한다(523a)는 언급도 마찬가지의 문제를 낳는다. 왜냐하면 그 감각이 지각한 내용은 거울처럼 순수하게 대상을 수동적으로 모사한 감각소여가 아니라 이미 반대적이라는 오성적 판정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험론의 입장에서 보면, 일체의 감각 대상은 오로지 감각소여로 주어질 뿐이어서 그 지각 내용들에 그 어떤 지성적 이해도 들어 있지 않다. 그것은 다만 지각된 잡다한 관념들의 내적 연합의 법칙에 의해 개연적인 집합성만을 갖는 것으로 구별 인식될 뿐이다.

* 아무려나 이곳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철학자를 위한 이곳의 교육 과정 또한 구도상 앞서 살핀 태양의 비유, 선분의 비유, 동굴의 비유가 포함하고 있는 인식과 실천의 상승과정과 그대로 일치한다는 점이다. 단적으로 이곳에서 제시된 수학 교육은 선분의 비유 상 의견doxa이 지배하는 가시적인 것들에 대한 믿음pistis의 단계로부터 추론적 사고dianoia와 지성nous가 지배하는 가지적인 것들ta noēta에 대한 지성적 이해noēsis의 단계로의 전환periagōgē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것은 장차 제시될 기하학, 천문학, 화성학 등과 함께 본 곡으로서 변증술적 앎을 준비하는 서곡을 구성한다. 앞으로 다루게 되겠지만 이 개별학술들technai은 본 곡으로서 변증술에 이르는 토대가 된다. 변증술이 지적 직관에 크게 바탕을 두고 있음을 고려하면 이러한 개별 학술들이야말로 설명을 통해 이루어지는 학문의 실질적인 정점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별학술들을 바라보는 플라톤의 시선을 고려하면 그가 오로지 형상에 대한 인식에만 매달렸다는 통상적 이해는 결코 진실이 아니다. 아무리 그것이 자체성을 갖는 최상의 앎이라고 해도 자기동일성에 기반한 개별 학술들에 대한 앎을 획득하지 않으면 결코 그곳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도 개별학술들은 이미 그 자체로 중차대한 학문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칸트 인식론의 ‘감성’(Sinnlichkeit)과 ‘오성’(Verstand) 그리고 ‘이성’(Vernuft)(좁은 의미)의 지배 영역을 큰 틀에서 플라톤의 인식 단계와 비교해보면, 비록 칸트의 인식론이 실재론자 플라톤과 달리 인식을 구성하는 주관에 치중되어 있다할지라도 그것들 각각은 가시계의 감각aisthēsis과 가지계의 추론적 사고dianoia 그리고 형상계의 지성nous에 대응한다고 볼 수도 있다. 오성 차원에서 물자체는 불가지이지만 이성 차원에서는 최소한 그 존재가 알려진다는 것도 사고 차원의 개별 학술적 앎과 ‘좋음의 이데아’에 대한 변증술 차원의 직관적·총체적 앎과의 간극에 대한 플라톤적 상념과 일정부분 닿아 있다.

* 이제 논의는 사고 단계의 첫 출발로서 수학 교과를 거쳐 나머지 예비교과로서 평면기하학, 입체기하학, 천문학, 화성학으로 이어진다. – 끝 –

 

다음 강해 :  5. 혼의 전환과 참된 실재로의 상승을 위한 교과목들(521c-541b)

1) 예비 교과목(521c-531c)

* 기하학(526c-527c), 입체 기하학(528a-d)

헤겔 형이상학 산책37-일자와 공허[흐린 창가에서 -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37-일자와 공허

1)

지금까지 현존에 속하는 다양한 범주를 설명하면서 늘 소금을 예로 들었다. 이 소금은 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지각을 설명하는 가운데 예로 들었던 것인데, 논리학 존재론 현존 장의 정신현상학 지각 장에 상응하니, 여기서도 소금을 예로 들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소금과 소금의 관계에 이르게 됐다. 하나의 소금은 서로 대립하는 속성이 서로 관계하는 것을 통해 산출된다. 이 대립적 속성의 관계 곧 미분적 차이가 헤겔에서 대자 존재다. 어떤 소금은 이 대자 존재가 산출한 것 가운데 하나이니 소금이 일종이다.

이제 이 소금을 다른 소금과 관계해서 보자. 다른 소금과 관계의 평면에서 하나의 소금을 헤겔은 일자라 했다. 그것은 소금 대자 존재의 자기 관계를 통해 산출된 것이지만, 이제 그것을 통해 출현한 여러 소금이 관계하는 평면에서 그 하나의 소금을 보기 때문에, 직접적인 것으로 되돌아온 것이고 그래서 일자다.

지금까지 헤겔은 대자 존재에서 일종의 존재를 거처 일자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했다. 그것이 존재론 3절 대자 존재의 1소절 주요 내용이었다. 이제 2소절에 들어가게 되면, 일자와 일자의 관계 예를 들어 소금과 소금의 관계가 다루어지는데, 여기서 핵심적인 개념은 곧 공허[Das Leeres]다.

2)

계속 소금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하나의 소금과 다른 소금은 사실 내부 구성이 동일하다. 양자는 짠맛과 입방체라는 두 대립하는 속성의 관계를 통해 산출된 것이다. 유명한 라이프니츠의 동일율에 따르면, 속성이 같은 것은 동일자이니, 속성이 같은 소금이 따로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는 명백하게 서로 분리된 채 존재하는 두 개의 소금을 만나게 된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라이프니츠의 반성 개념이 지닌 모호성을 비판하는 가운데, 속성이 같은 사물이 따로 떨어져 있을 수 있다고 보았다. 두 개의 나뭇잎이나 두 개의 물방울, 두 개의 소금 등등. 칸트는 여기서 감각적 규정인 시, 공간을 지성의 범주인 개념과 구분하면서 속성이 같더라도 시공간적 위치가 다르면 서로 다른 사물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칸트는 일자가 시공간 속에서 차이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는 했지만, 이런 시공간성은 사물과 무관한 것으로 보았다. 그것은 인식의 형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식의 형식이 인식의 형식이 되려면 이미 사물 그 자체에 그런 형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전혀 무관한 어떤 것을 통해 어떤 것이 받아들여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공간을 사물이 지닌 다른 성질과 같은 차원에 있는 것으로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사물 속에 그런 공간성이나 시간성을 감각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칸트는 시공간을 사유의 형식에 집어넣었으나, 그것도 문제라는 것은 앞에서 이미 말했다.

여기서 헤겔의 시공간 개념이 출현하니, 헤겔에서 시공간은 곧 사물들이 서로 만나는 평면 즉 관계다. 그것은 사물의 성질도 아니고 주관의 형식도 아니다. 사물의 관계 평면이니, 하나의 사물은 아무리 속성이 같더라도 시공간적 평면에서 다른 위치를 차지한다면, 서로 다른 사물이 될 수 있다.

3)

사물이 만나는 방식에 따라서 서로 다른 다양한 시공간 형식이 출현할 수 있다. 다양한 시공간적 형식 가운데 헤겔은 일자와 일자가 만나는 시공간의 평면을 곧 공허라고 한다.

그러나 이 공허라는 개념은 철학자를 늘 괴롭혀온 개념 중의 하나다. 공허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니, 어떤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을 통해 구별된다면, 사실 구별이 없다는 말이 아닐까? 그런데도 공허는 없는 것은 아니니, 그것이 어떤 현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존하는 것이므로 현존은 이 공허를 통해 구별될 것이다. 공허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니, 이런 양면성을 지닌 것을 인정하기가 합리적 철학으로서는 쉽지 않았다.

이 인정하기도 곤란하고 부정하기도 곤란한 공허를 헤겔은 일자와 일자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다. 즉 일자와 일자의 관계는 공허를 통해 관계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미 여러 관계의 평면을 다루어 왔다.

최초의 현존은 생성과 무의 통일이었다. 여기서 하나의 규정은 곧바로 다른 규정으로 변화하면서 명멸하는 세계가 출현했다. 감각적 규정이 명멸하는 세계는 마치 하나의 공간처럼 보이지만,이 공간은 아직 공허로서의 공간은 아니다.

이어서 어떤 것은 자기 자신에서 타자에 관계한다. 그러면서 하나의 규정을 지닌 것은 다른 규정을 지닌 것으로 변화하니, 이것이 곧 어떤 것(실재)들이 이루는 관계다. 이런 변하는 곧 덧없이 흐르는 시간과 닮았지만, 이 역시 공허로서 시간은 아니다.

공허는 곧 자기 관계하는 대자성을 토대로 산출된 일자가 출현하면서 비로소 출현한다. 일자는 자기 관계하는 대자 존재가 직접성을 지닌 것이라 한다. 그것이 어떤 규정성을 지닌 일자 즉 예를 들어 소금이다. 이런 일자들이 관계하는 평면이 곧 공허다.

4)

헤겔은 이 허공을 이렇게 규정한다.

“일자는 부정의 자기에 대한 추상적 관계로서 보면 공허다. 이 공허는 무로서 단순한 직접성 즉 일자라는 또한 긍정적 존재와 단적으로 구별된다. 양자는 관계 즉 일자들의 관계 속에 있으므로 그 상이성은 정립되지만, 공허로서 무는 존재하는 일자 밖에 놓여서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구별된다.”(논리학 재판, GW21, S. 153)

여기서 핵심어는 곧 ‘부정의 자기에 대한 추상적 관계’라는 말이다. 대자 존재는 자기 관계하는 매개 운동이다. 그 매개가 다시 직접적 존재로 되돌아오니, 그것이 일자다. 이런 일자들이 맺는 관계가 즉 하나의 일자가 다른 일자에 대한 관계를 헤겔은 ‘부정의 자기에 대한 관계’라 한다.

현존에서 자기를 부정하면 타자가 된다. 예를 들어 흰 소금은 자색 소금으로 변한다. 그러나 소금은 자기 바깥에 소금과 만나므로, 자기를 부정하면 자기 자신이 된다. 이렇게 자기를 부정해도 자기 자신으로 남는 것이 곧 부정의 자기에 대한 관계다. 일자라는 개념으로부터 필연적으로 여기서 공허라는 특별한 시공간의 평면이 출현하게 된다. 그러므로 공허라는 개념은 일자라는 개념과 쌍생아이며, 양자는 서로 대립하지만, 동일한 대자 존재로부터 도출된 개념이다.

바로 이런 공허가 우리가 흔히 물리학에서 다루는 시공간이다. 물리학은 모든 물체를 질량이라는 일자로 환원하기에 이를 통해 공허라는 물리학적 공간이 생겨난 것이다.

5)

그런데 자기 관계하는 대자 존재 일자는 다시 구체적인 사물이다. 즉 다양한 우연성을 지니고 있다. 일자들은 서로 공허 속에서 만난다. 그런 공허 속에서 각 일자는 자신이 지닌 우연성에 따라 특정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예를 들어 소금은 상당히 추상화된 것이다. 즉 그것은 소금이라는 구체적 사물이 지닌 성질 가운데 우선 감각적 규정을 제외하고 그것이 지닌 속성을 넘어서 속성의 관계 즉 대자 존재에 이른 것이다. 이제 속성의 관계 즉 대자 존재에 의해 다시 소금이 산출되면 그것으로 다시 구체화된다. 이제 소금은 단순한 일자가 아니라 흰 소금이나 자색 소금이 된다. 소금이 다른 소금과 만나는 평면이 곧 공허인데, 사실 이 공허는 이런 우연성으로 채워져 있다. 각각의 일자로서 소금은 각자가 지닌 우연성에 따라 그 공허에 자리잡는다.

그러므로 공허라고 할 때 그 특성은 일자들의 만남에서 규정된다. 일자들은 서로 같은 대자 존재를 지닌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점에서 서로 구별되지 않는다. 그러나 각 일자는 각자 우연성을 지니면서 이 공허 속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대자 존재는 이런 방식으로 일자와 공허고 규정되면서 다시 현존에 도달한다. … 일자와 공허라는 대자 존재의 두 계기는 대자 존재라는 통일로부터 나오면서 서로 외면적으로 된다. 두 계기의 통일로부터 존재의 규정[일자]이 회복되므로, 이 존재의 규정은 자기 자신을 하나의 측면으로 즉 현존으로 격하한다. 그런 현존 속에서 그 존재의 규정과 다른 규정 즉 부정 일반은 마찬가지로 무의 현존으로서 즉 공허로서 대립하여 설정된다.”(논리학 재판, GW21, S. 153)

여기서 일자의 규정이 다시 현존으로 격하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현존의 규정은 곧 우연성을 말한다. 예를 들어 소금의 흰색이나 자색을 말한다. 일자는 우연성을 가지면서 공허 속에서 일정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그 차이가 우연적이라는 것이 핵심적이다. 그러므로 일자의 만남을 이루는 허공은 한편으로는 똑같은 일자가 만나는 평면이므로 그 공허는 등질적이고 모두에게 내재적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여기서 차이는 우연성의 차이이므로 이 공허는 외면적 차이를 지닌다.

이 등질적이며 우연성의 차이만 지닌 특별한 시공간이 곧 공허다. 일자들은 사실 일자라는 점에서 한편으로 차이를 지니고 다른 한편으로 차이를 지니지 않는다. 마치 공간적 점이 있는 것이면서 동시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있는 것으로 보면 그것이 점이며 없는 것으로 보면 그것은 공허다.

6)

헤겔은 여기서 공허를 발견한 원자론자들을 높이 평가한다. 원자 즉 일자라는 개념이 출현했으므로 비로소 공허라는 특별한 시공간이 마련될 수 있었다. 이 특별한 시공간이 있기에 물리학이 성립할 수 있다.

처음 원자론자들은 원자들이 공간적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이 공허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하나의 원자가 빈 순간 다른 원자가 그 자리를 채움으로써 공간의 이합집산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곧바로 반론에 부딪힌다. 원자의 형태와 크기가 다르니, 하나의 원자가 자리를 비워두더라도 크기나 형태가 다른 원자가 그리 들어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가서 원자론자들이 최초에 가정했던 공허는 원자와 따로 떨어진 것이며, 그것은 원자의 운동이 일어나는 곳일 뿐, 그 자신은 원자의 운동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원자론자가 데모크리투스에 이르면 공허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이 공허는 곧 운동의 원인이나 근거가 된다.

헤겔은 공허가 운동의 원인이라는 원자론자의 생각을 높이 평가하는데, 이런 생각은 곧 공허가 원자에 단순히 외면적인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원자들이 관계 맺는다는 것으로 파악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관계가 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규성 철학 연구회 2025년 4월 제17차 정기세미나│『중국현대철학사론』 4장. ‘자기학’으로서의 ‘생명철학’과 동서문화론: 양수명(梁漱溟)-발제: 송인재│2025.04.11. 영상 [월례발표회•세미나]

-주제: 『중국현대철학사론』 4장. ‘자기학’으로서의 ‘생명철학’과 동서문화론: 양수명(梁漱溟)
-발제자: 송인재(한림대)
-일시: 2025년 4월 11일(금) 오후 4시
-장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세미나실 & 줌 온라인

이번에 살펴볼 양수명은 이규성 선생의 소개에 따르자면 대체로 유교를 중심에 두고 서구 사상을 흡수함으로써 현대에 되살리려고 시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유교는 양명학에 가까운 것으로 보이는데, 유교의 인 개념을 서구 현상학자 오이켄의 직각 개념과 연결하여 정의적 공감을 나가고, 도 개념을 베르그송의 생명 개념과 연결하여 우주의 대 생명으로 해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생명과 정의적 공감에 기초하여 공동체(향촌)를 건설하려는 사회운동을 전개했다고 합니다.

국내에서 양수명을 연구하는 학자가 많군요. 강중기 선생이 책으로 발간한 바 있고 이철승 선생도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규성 선생도 거의 한 권의 책에 가까운 분량을 통해 양수명의 사상을 연구했군요. 아마도 전체적으로 보아 이규성 선생의 사상과 가장 가까운 인물이기에 남달리 애정을 가졌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번 발표는 중국현대철학사상 연구자로 알려진 송인재 선생(한림대)이 맡아서 해 주시겠습니다.

 

발제문: ‘자기학’으로서의 ‘생명철학’과 동서문화론20250411

 

영상 출처: https://youtu.be/yMWvWZfSjFM?si=b8RAwnYEmdJA4wO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