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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소설] <그대에게 가는 먼 길> 1부 – 9회|4. 선택과 탐색 (1) [이종철의 에세이 철학]

아홉 번째 글

  1. 선택과 탐색 (1)

 

별다른 흔적을 남기지 않고 경험한 지난 한 달은 여러모로 나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유신이 무너진 후 고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결심은 그냥 물 건너 가버렸다. 5.17 이후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자마자 법대 고시원도 폐쇄되었다. 덕분에 법학이나 고시에 대한 미련을 깨끗이 벗어 버렸다. 고시를 하겠다고 하고서 기숙사에 입소했는데, 사회 분위기가 바뀐 탓에 내 마음도 완전히 바뀐 것이다. 2학기에 등록할 때는 법대 과목이 아니라 문과대의 사회학과나 영문과 그리고 사학과에서 과목을 선택했다. 보다 현실적이고 자유로운 학문을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실제로 이런 과목들이 훨씬 흥미로웠고, 시험을 봐도 성적이 훨씬 잘 나왔다. 사실 나의 경제 상황을 고려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취직해야 하는 데 나는 그런 것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아나키스트의 방랑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때 마음을 주었던 여성과의 만남도 예전 같지 않았다. 대신 유치장에서 사귄 몇몇 사람들과는 따로 세미나를 계속했다. 이 세미나는 단순히 공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모종의 데모를 시도하기 위한 학습으로 시작했다. 정치 상황은 여전히 살벌했다.

세미나를 하던 멤버 중의 한 명은 S 대 사회학과 4학년이었고, 다른 한 명은 같은 대학의 체육학과 4학년이었다. 졸업 학기를 앞두고 데모하겠다고 하는 것은 보통 결심이 서지 않으면 가능한 일이 아니다. 나는 이미 경험도 있고 해서 다시 시위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리고 여성 한 명도 참석했는데, 그녀는 세미나를 정기적으로 참석하기 보다는 가끔씩 참석해서 함께 술을 마시곤 했다. 세미나는 각자 집을 돌아가면서 했지만 주로 우리 집과 사회학과 신모 군의 집에서 했다. 그 당시 우리는 주로 정세 분석과 향후 정국의 방향에 관한 이론서들을 많이 다루었다. 『전환 시대의 논리』를 쓴 리영희 교수의 책들과 한국 경제를 다룬 최호진 교수의 책, 한국 근대사에 관한 김용섭 교수의 책을 주로 읽었다. 사회 이론에 관해서는 미국의 진보적인 사회학자인 C. Wright Mills의 『사회학적 상상력』과 『파워 엘리트』를 집중적으로 읽었다. 당시 우리들의 지적 관심은 상당해서 그 당시 막 소개가 되기 시작한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Critical Theory)과 헤겔을 전반적으로 소개한 H. 마르쿠제의 『이성과 혁명』(Reason and Revolution) 원서를 열심히 탐독했다. 사회 이론서들은 비교적 이해하기 쉬웠지만 처음 접한 헤겔 철학을 소개한 『이성과 혁명』은 개론서 임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특히 법(Recht)을 Right로 번역해 놓았는데, 왜 이런 개념이 법철학을 다루면서 반복적으로 나오는지 알 수 없어서 애를 먹었다. 아마도 이때 부딪힌 어려움이 나중에 헤겔 철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런 책들이 법대생인 나에게는 생소한 편이었지만 사회학도인 신모 군이 과 내에서 도는 독서 목록과 동향들을 많이 소개해주었다. 체육학과 생인 복기호 군은 추상적인 이론보다는 현실 운동에 보다 관심을 많이 보였다. 그는 실제로 대림동 야학에서 노동자들을 가르치고 시위 현장은 거의 빠짐없이 참석하는 편이었다. 우리들은 서로 간에 관심사와 편차는 있어도 거의 1년 이상을 꾸준히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향후 진로에 대해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세미나가 끝나면 술을 많이 마신 편이었다. 그 당시는 정말로 술과 담배를 억수로 많이 마시면서 급박하게 돌아가는 사회와 대학가의 현실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형, 오늘 인문대 쪽에 삐라가 뿌려졌어요. 시위가 확대되지는 않았지만 요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요.” 복기호군의 말이다. S대생들하고 세미나를 하는 덕분에 S대 동향을 많이 듣는 편이다.

“Y대도 마찬가지야. 요즘은 검색도 더 심해진 것 같아.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요즘 학생들의 분위기는 과거보다 훨씬 격렬해진 것 같아. 아마도 광주의 경험이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 같아.”

“그렇지요. 광주사태는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될 겁니다. 이제는 광주 이전과 광주 이후로 운동사가 나뉘어 질 거에요.” 신모군이 예리하게 당시 정세를 분석한다.

“독재자들은 늘 국민과 국가를 이야기하지만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들의 권력 유지일 뿐이지요. 그들을 권좌에서 쫒아내지 않는 한 국민도 없고 국가도 없을 겁니다.” 라고 말을 하면서 복모군이 오른손을 살짝 들고 ‘투쟁, 투쟁!’을 외치는 흉내를 낸다.

“일단 혁명의 견인차는 젊은 엘리트 혁명가들이 되어야 할 겁니다. 과거의 모든 혁명 운동사를 통해서 볼 때 이것은 변함없는 진리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대학가의 운동을 좀 더 조직화하고 체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우리가 이런 세미나를 하는 이유도 그 일을 선도적으로 하기 위해서이지요.” 신모 군이 세미나의 목적이 시위 주도에 있음을 다시 상기시킨다.

“하지만 그렇게 소수 엘리트 중심으로 나가다 보면 일반 대중으로부터 고립될 위험도 크다고 뵵니다. 엘리트주의는 철저히 경계할 필요가 있어요. 대중 속에서 대중과 함께 하지 않는 운동은 결코 결정적 시기를 앞 당길 수 없어요.” 늘 체험적으로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복모 군의 말이다.

 

엘리트와 대중의 관계는 우리들에게 늘 고민할 거리를 안겨주었다. 과연 우리는 어디에 몸담고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종철(철학박사)은 『철학과 비판』(도서출판 수류화개)과 『일상이 철학이다』(모시는 사람들) 그리고 『문명의 위기를 넘어』(공저, 학지원)를 썼다. 그는 『헤겔의 정신현상학』(J. Hyppolite, 1권 공역/2권, 문예출판사), 『사회적 존재론』(G, Lukacs, 2권/4권(공역), 아카넷), 『나의 노년의 기록들』(A, Einstein, 커큐니케이션스북스)등 다수의 번역서들을 냈다. 현재는 연세대 인문학 연구소 전문 연구원이자 인터넷 신문 ‘브레이크뉴스’ 와‘ 내외신문’의 칼럼리스트로 활동하면서 NGO 환경단체인‘푸른 아시아’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플라톤의 <국가> 강해(67)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67)

 

C. 철인 통치자의 교육 목표와 교과목(502c-541b)

3.선분의 비유(509c-513c) – (I)

 

[509c-513c]

* 소크라테스가 좋음의 이데아가 갖는 특별한 지위에 대해 설명하자 글라우콘은 신령스러운 넘어섬이라고 놀라워 한 후 그것이 갖고 있는 태양과의 유사성과 관련하여 조금도 빠짐없이 설명해달라고 요구한다.(509c)

* 이에 소크라테스는 남겨 놓은 이야기가 많고 또 많은 것을 빠뜨리게 될 테지만 그래도 최대한 이야기하겠다고 말한 후 다시 한 번 가지적인νοητός 영역τόπος과 가시적인ὁρατός 영역을 구분한 후 그 두 영역에 있는 두 가지 부류γένος들을 크기가 다른 ‘두 부분으로 나뉜’δίχα τετμημένην 선분γραμμή에 비유하여 아래와 같이 설명하기 시작한다.(509d)

1) 크기가 다른ἄνισα 두 부분τμῆμα으로 나뉜 선분을 다시 동일한 비율로 ‘가시적인 종류의 부분’τό τοῦ ὁρωμένου γένος과 ‘사유되는 종류의 부분’τὸ τοῦ νοουμένου γένος으로 나눈다.

2) 이것들을 서로 간의 상대적인 명확성σαφήνεια과 불명확성ἀσαφείᾳ의 관점에서 보면 가시적인 종류의 한 부분은 모상εἰκών들이다.(509e) 이 모상들은 그림자σκιά들, ‘물에 비친 영상들’τὰ ἐν τοῖς ὕδασι φαντάσματα, 밝고 조밀하고 매끄럽게 만들어진 것들에 비친 영상들 그런 모든 것들이다. 가시적인 종류의 다른 한 부분은 이 모상들이 닮아있는 원본들, 즉 우리 주위의 동물들 τά περὶ ἡμᾶς ζῷς과 모든 식물들 τὸ φυτευτὸν, 그리고 인공물τὸ σκευαστὸν의 종류 전체이다.(510a)

3) ‘진리와 진리 아님’ἀληθείᾳ τε καὶ μή의 관점에서 보면 위와 같은 가시적인 부분은 믿음(의견)의 대상τὸ δοξαστὸν이 앎의 대상τὸ γνωστόν과 맺고 있는 관계와 마찬가지로, 닮은 것τὸ ὁμοιωθὲν이 그것이 닮아있는 원본τὸ ᾧ ὡμοιώθη과 맺게 되도록 나뉘었다.(510a)

4) 그리고 가지적인 것의 부분의 경우, 한쪽은 앞에서 모방되었던μιμηθεῖσιν 것들을 모상εἰκών으로 사용하면서 영혼이 가정ὑπόθεσις으로부터 출발해서 첫 원리ἀρχή가 아니라 결론τελευτή을 향해 진행하며 탐구ζητεῖν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고, 다른 쪽은 가정으로부터 출발해서 ‘가정이 놓이지 않은 첫 원리’(무가정의 원리)를 향해 나아가며 저쪽에서 사용한 모상들 없이 형상εἶδος들 자체αὐτός만을 사용해서 그것들을 통해 탐구μέθοδος를 해나가는 부분이다.(510b)

* 소크라테스가 가지적인 것의 부분들을 ‘가정’이란 말을 끌어들여 설명하자 글라우콘은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그것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1) 기하학γεωμετρία이나 계산술λογισμός이나 그러한 것들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홀수τό περιττὸν와 짝수τὸ ἄρτιον, 도형들τὰ σχήματα과 세 종류εἶδος의 각γωνία 그리고 그것들과 유사한 다른 어떤 것들을 가정으로 놓고서는 마치 이런 것들을 아는εἰδότες 사람들인 양, 그에 대한 어떤 설명λόγος도 제시할 필요가 없는 것, 모두에게 분명한 것으로 여긴다.(510c)

2) 그리고 이것들로부터 시작해서 나머지 것들을 검토해가면서 일관성이 유지되는 방식으로ὁμολογουμένως 그들이 애초에 고찰하고자 했던 것에까지 도달한다.(510d)

3) 기하학자, 계산술 그러한 것들을 하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ὁρωμένος 도형εἶδος들을 사용하며 이것들에 대해 논의를 하지만, 그들이 사고하는διανοούμενοι 대상은 이것들이 아니라 ‘이것들이 닮아있는 그 원본들’οἷς ταῦτα ἔοικε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리는 사각형τετράγωνος이나 대각선διάμετρος이 아니라 ‘사각형 자체’나 ‘대각선 자체’αὐτῆς를 ‘염두에 두고’ποιοῦνται 논의를 하는 것이다.(510d-e)

4)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고 그린 바로 그것들을(그것들의 경우 그것들의 그림자σκιά나 물ὕδωρ에 비친 모상εἰκών들도 있다) 이번에는 모상으로 사용하는데(510e) 그렇게 하는 까닭은 사고διανοίᾳ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ἰδεῖν 저것들 자체αὐτὰ ἐκεῖνα(사각형 자체나 대각선 자체)를 보기 위해서이다.(510e)

5) 이것들은 가지적인 부류에 속하는 것이지만 이것의 탐구ζήτησις에서 영혼은 가정을 사용하도록 강제되고ἀναγκαζομένην 가정들보다 더 위로 넘어갈ἀνωτέρω ἐκβαίνειν 능력이 없어서 ‘첫 원리’ἀρχή로 나아가지는 못한다.(511a) 그리고 그 아래의 것들에 의해 모방되며 그 아래의 것들에 비해서는 분명한ἐναργής 것이라고 판단되고δεδοξασμένοις 존중받는τετιμημένοις 것들, 바로 그것들을 그들은 모상εἰκών으로 사용한다. 이런 것들이 기하학γεωμετρία이나 그와 유사한ἀδελφή 전문기술들τέχναι에서 일어나는 일이다.(511a)

* 소크라테스는 가지적인 부류에서 기하학이나 계산술과 같이 가정을 사용하는 경우를 위와 같이 언급한 후에 가지적인 것의 다른 한쪽 부분으로 가정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경우를 아래와 같이 언급한다.

1) 이러한 경우란 이성 자체αὐτὸς ὁ λόγος가 ‘변증술적 대화(문답)의 능력을 통해’τῇ τοῦ διαλέγεσθαι δυνάμει 파악하는 경우로서 여기에서 이성은 가정들을 ‘첫 원리’가 아니라 말 그대로 가정들로 삼아 그 가정들을 가정이 놓이지 않은ἀνυποθέτου(무가정의) 것, 즉 ‘모든 것의 첫 원리’τοῦ παντὸς ἀρχὴ에 이를 때까지 거기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ὁρμή이자 디딤 발판ἐπίβασις 같은 것으로 삼는다.(511b) 그리고 그렇게 첫 원리를 파악하고 나면 이성은 다시 거꾸로 첫 원리에 근거를 둔 것들에 의존하면서 결론까지 그런 식으로 내려간다.καταβαίνῃ.(511b)

2) 이러한 파악 방식은 감각될 수 있는 것αἰσθητῷ은 어떤 것도 전혀 사용하지 않고 ‘형상들 자체를 사용해서 형상들을 통해 형상들로 나아가 형상들로 끝을 맺는 방식이다.εἴδεσιν αὐτοῖς δι᾽ αὐτῶν εἰς αὐτά, καὶ τελευτᾷ εἰς εἴδη”(511b)

* 소크라테스의 이와 같은 설명에 글라우콘은 엄청난συχνός 일ἔργον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 같다고 말한 후 그 내용을 아래와 같이 자기 나름으로 정리한다.

1) 전문기술이 고찰하는 부분보다 ‘변증술적 대화를 할 줄 아는 앎’τὸ ὑπὸ τῆς τοῦ διαλέγεσθαι ἐπιστήμης이 고찰하는θεωρούμενον ‘있는 것’το ὄντος과 ‘가지적인 것’το νοητος의 부분이 ‘더 명확한 것’σαφέστερον이라고 규정διορίζειν할 수 있다.(511c)

2) 전문기술들에서는 가정들이 첫 원리들이며, 자신들이 구경하는 것들을 감각이 아니라 사고를 통해서 구경하도록θεᾶσθαι 강제되지만, 첫 원리를 향해 올라가지ἀνελθόντες 않고 가정들로부터 그것들을 살펴보기σκοπεῖν 때문에 이들이 그것들에 관해 지성νοῦς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511c-d)

3) 기하학자나 그런 사람들의 상태는 지성이 아니라 사고διάνοια라고 부르는 것 같다. 사고dianoia는 믿음δόξα과 지성의 중간μεταξύ에 있는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511d)

*소크라테스는 글라우콘이 자신의 설명을 아주 충분히 잘 받아들였다고 평가한 후, 위에서 설명한 네 부분τμῆμα에 상응해서 아래와 같이 네 가지 영혼의 상태παθήματα가 생긴다고 말한다. 요컨대 맨 윗부분에 ‘지성적 앎’νόησις이 두 번째 부분에 사고διάνοια가, 세 번째 부분에는 확신πίστις이, 마지막 부분에 짐작εἰκασία이 할당된다. 이것들이 대상으로 하는 것들은 그것들이 진리 ἀληθεία에 참여하는μετέχει 만큼 명확성σαφήνεια에 참여하며 그것들은 그 비율에 따라ἀνὰ λόγον 배열을 이룬다.(511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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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9d-e ‘크기가 다른 두 부분으로 … 동일한 비율로 나누게: ‘크기가 다른(anisa)’으로 읽어야 하는지 ‘크기가 같은(an isa)’으로 읽어야 하는지 논란이 있지만 대부분 경우 ‘크기가 다른’으로 읽는다. 이에 따라 구분된 선분을 도표화하면 아래와 같다.

 

    L1          L2          L3               L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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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1과 L2 = 가시적인 종류의 것

L1 = 모상들(그림자, 영상) L2 = 실물들(식물, 동물, 인공물)

L3와 L4 = 가지적인 종류의 것

L3 = 가정들(수, 도형, 각)을 놓고 가는 것, L4 = 무가정적인 것, 첫 원리, 형상들-

명확성과 불명확성에 따른 각 선의 길이 비율

L1 : L2 = L3 : L4 = L1+L2 : L3+L4

* 각 선의 비율은 명확성에 있어 가시적인 것에 대한 가지적인 것의 우위와

각 영역 내에서 L1에 대한 L2의 우위, L3에 대한 L4의 우위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전체적으로는 L1보다는 L2가, L2보다는 L3가, L3보다는 L4가 명확성에서 우위에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실제 크기를 보면 L2와 L3가 같다.

혹자는 이것을 근거로 둘 간의 명확성의 크기가 같다고 주장하나 그것이 같음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과 표를 통해 드러내려는 플라톤의 기본 의도를 고려하면 도표상 그것들이 결과적으로 같은 길이로 나타날지를 플라톤 자신 미처 몰랐을 수가 있다.

 

* 플라톤이 위에서 말하고 있는 선분의 비유의 내용을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 ‘믿음’은 그리스어 doxa의 역어이다. 그런데 이번 강해에서는 ‘믿음’이라는 역어가 선분의 비유에 나오는 ‘확신pistis’이란 역어와 혼동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믿음’에 ‘의견’이란 말을 병기했다. 플라톤에게 pistis는 doxa에 포함된 것이되 신뢰성에서 상상보다는 높은 사고보다는 낮은 수준의 생각과 견해를 말한다.

* L3의 대상이 홀수, 짝수, 도형들, 각으로 예시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L3의 대상을 ‘수학적인 것들’ta mathēmatika로 부르고 있다.(<형이상학> A.987b15) 플라톤은 그것을 구체적으로 ‘기하학이나 이와 유사한 학술들’(511b) 즉 수학, 평면 기하학, 입체기하학, 천문학, 화성학이 다루는 대상들로 표현하고 있다.

* ‘사고’dianoia는 사전적 의미에서 뭔가를 목적으로 하는 지적인 궁리이되 논리적 추론이나 설명을 기반으로 하는 개념적 사고를 말한다. 선분의 비유에서 그 말은 기하학 등 전문 학술들의 인식 단계를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 511b ‘내려간다.’katabainē’ : 이성이 첫 원리를 파악한 후 다시 거꾸로 사고 단계로 내려갈 때 사용되고 있는 동사 ‘내려간다.’katabainō는 동굴의 비유에서 이데아를 본 사람이 다시 동굴로 내려갈 때도(516e) 쓰이고 <국가> 첫 구절 ‘어제 나는 아리스톤의 아들 글라우콘과 함께 페이라이에우스로 내려갔다’(327a)에도 나온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본문 첫 강해 때도 언급했듯이 <국가> 첫 구절에 모종의 상징성을 부여하여 그 말과 연계지어 그 말들이 ‘현상의 구제’를 함축하는 말로 다소 과도하게 의미 부여하기도 한다.

* 511c에서는 ‘본다’를 의미하는 동사가 두 군데 나온다. 하나는 ‘변증술적 문답을 할 줄 아는 앎이 고찰하는 있는’이란 구절에서 ‘고찰하는’으로 번역된 ‘theōroumenon’(원형 theōreō)이고, 또 하나는 ‘전문기술들에서는 사고를 통해서 구경하도록 강제되지만’이란 구절에서 ‘구경하도록’으로 번역된 ‘theasthai’(원형 theaomai)이다. 둘 다 기본적으로 ‘본다’(look at, see)라는 뜻을 갖고 있지만 전자는 ‘관조’theōria의 의미가 그러하듯 의미상 speculate, consider 등 지성적 함축을 많이 포함하고 있고, 후자는 오늘날 극장theatre의 어원 theatron에서 thea가 의미하듯 ‘관망’view as spectators의 의미가 크다. 플라톤은 여기서 앎과 사고의 차이에 준해 그 표현들을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476a에서 ‘앎을 좋아하는 철학자들’과 대비하여 ‘전문 기술을 좋아하는 사람들’philotechnos을 ‘구경을 좋아하는 사람들’philotheamōn로 일컫고 있는데 이 때 theamōn도 theaomai에서 나온 말이다. 여기서 theaomai를 ‘구경하다’로 번역한 것도 그 때문이다. 플라톤은 일상어의 이러한 미묘한 차이까지 의식하면서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사소할지 모르지만 최소한 플라톤철학 연구자라면 텍스트상의 이러한 차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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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분의 비유와 동굴의 비유는 ‘좋음의 이데아와 태양과의 유사성만은 빠짐없이 다시 자세히 설명해 달라’는 글라우콘의 요구(509c)에 따라 제시된 비유들이다. 즉 우리가 지금 다루게 될 선분의 비유와 이어지는 동굴의 비유는 모두 태양의 비유와의 유사성에 착안하여 좋음의 이데아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의 일환으로 제시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선분의 비유는 태양의 비유와 마찬가지로 전체 구도상 가시적인 영역과 가지적인 영역을 구분하는 방식으로 시작되고 마지막 동굴의 비유 또한 동굴과 바깥세계, 어둠 속 횃불과 대낮의 대비 형식으로 내용상 비슷한 구도로 전개되고 있다. 게다가 그 두 영역 모두 다시 각기 마치 명백성의 단계를 보여주듯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어 학자들은 그 모든 비유가 아래와 같이 대체로 비슷하게 전체적으로 4단계로 구분되어 있다고 여긴다.

* 좋음의 이데아는 <국가>는 물론 플라톤 철학 전체를 이해하는데 중대한 관건이 되는 핵심 주제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국가>에서 우리가 들여다볼 수 있는 직접적인 전거는 위의 세 가지 비유들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그 세 비유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 세 비유 간의 상호 관계 특히 각 비유가 포함하고 있는 단계별 영역 간 유사성과 상응 관계를 구체적으로 비교 분석하고 그것을 통해 플라톤이 말하고자 하는 근본 의도가 무엇인지 나아가 그것들이 전체 플라톤 철학과 관련하여 어떤 철학적 함축을 지닌 것인지를 오랫동안 탐문해왔다.(우리나라에서도 주요 해석가들의 연구 성과들을 바탕으로 이러한 상응 관계를 자세하게 비교 분석한 논문이 발표되었다.  강성훈, 「플라톤의 『국가』에서 선분의 비유와 동굴 비유」, 『철학 사상』 V.27,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08) 그러나 그 세 비유의 영역별 단계별 유사성과 상응 관계에도 불구하고 과연 그 세 비유가 포함하고 있는 영역들이 과연 철학적으로 음미할 만한 정도의 유비적인 상응 관계를 지니는지 끊임없이 논란이 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유사성에 기초한 그 상응 관계에 대한 연구들이 오히려 좋음의 이데아와 관련하여 플라톤이 각 비유를 통해 다각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던 고유 의도를 간과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도 함께 제기되어 왔다. 어쨌거나 플라톤이 세 가지 비유를 든 것은 한 가지 비유만으로는 해소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 세 비유의 영역별 단계별 유사성과 상응 관계에 대해서는 나중 동굴의 비유까지 살핀 후 종합적으로 살펴보겠지만 그것 못지않게 세 비유를 통해 플라톤이 말하고자 한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세 비유 간 차별성과 고유성을 살피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우선 앞서 살핀 태양의 비유와 선분의 비유만 비교해 보아도 눈에 띄는 구조적 차이점이 발견된다. 그 두 비유는 비록 구조상 동일하게 가시적 영역과 가지적 영역이라는 공통의 구분을 지니고 있지만, 그렇게 두 영역을 구분하는 이유와 배경에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태양이 비유에서 가시적인 영역은 가지적인 영역의 인식론적 하위 단계가 아니라 가시적인 영역의 태양으로부터 가지적인 영역의 좋음의 이데아를 유비적으로 추론하기 위해 별도로 상정된 상호 등치적인 영역이다. 다시 말해 전체로는 네 부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각 영역별로 분리된 상태에서 동일하게 두 부분 즉 형상의 세계와 믿음의 세계로 구분된다. 그리고 논의 내용 대부분이 기본적으로 태양이 빛을 비추는 대낮의 실물과 눈 그리고 그에 상응하여 좋음의 이데아가 진리와 실재를 비추는 이데아와 영혼에 집중되어 있다. 즉 형상 쪽에 집중되어 있다. 이에 비해 선분의 비유에서 가시적인 영역과 가지적인 영역은 유비관계를 갖는 등치적인 영역이 아니라 인식론적인 위계가 있는 상하 관계를 갖는 비등치적 영역이다. 게다가 두 영역은 위계상 상하 단계로 갖고 있으면서 서로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지성적 앎의 단계뿐만 아니라 그 하위 단계까지 고르게 다루어지고 있다. 굳이 말하자면 ‘사고’dianoia 단계가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다. 이 점을 고려하면 태양의 비유는 두 영역 간의 유비적 비유를 통해 기본적으로 좋음의 이데아의 근본 특성과 위상을 드러내려는데 기본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선분의 비유는 그 좋음의 이데아가 속해 있는 지성적 앎의 단계뿐만 아니라 그 하위의 인식론적 단계들까지 자세하게 다루는 방식으로 오히려 하위의 인식 단계들 특히 추론적 사고가 인식의 방법에서 어떻게 형상적 앎과 관계를 지니면서 그 형상적 앎에로 상승하는지를 보여주는데 기본 목적이 있어 보인다.

* 선분의 비유에서 이러한 상승의 측면을 들여다보자면, 가시적 영역의 영상과 실물의 관계는 서로 ‘모상과 원본의 관계’를 가지면서 다시 또 그 실물들은 윗 단계인 가지적인 영역의 ‘사고’의 모상이 된다. 즉 ‘사고’는 영상의 원본인 실물들을 다시 모상들로 이용하여 ‘삼각형 자체’, ‘대각선 자체’를 인식한 후 다시 또 그것을 발판으로 형상에로 다가간다. 즉 각각 단계는 상호 위계 관계를 가지면서 종국적으로 좋음의 이데아가 있는 지성적 앎의 단계로 이어진다. 요컨대 가시적 영역과 가지적 영역은 진리를 향한 연속적인 상승의 과정으로 이어져 있다. 그러니까 삼각형과 대각선을 기준으로 보면 ‘물에 비친 그림자’ 수준(영상eikasia 단계)에서 ‘실제 그려진 삼각형과 대각선’으로 상승하고(확신pistis 단계) 이것들은 사고에 의해 모상들로 이용되면서 ‘삼각형 자체와 대각선 자체’로 상승한다.(사고dianoia) 그리고 마지막으로 변증술적 문답의 능력을 통해 형상적 앎(지성적 앎noēsis)에 이른다. 선분의 비유가 포함하고 있는 이러한 위계적 단계들과 그 단계들이 갖는 인식 방법상의 상승은 나중 동굴의 비유에서 바깥세계를 향해 올라가는 도정anodos의 단계들과 상응되면서 그 철학적 의미에 관한 다양한 해석들이 제기되었다.(이와 관련한 논의는 나중 동굴의 비유에서 다룬다)

* ‘도형’(510b)의 그리스 원어는 ‘형상’의 뜻도 가지고 있는 eidos이다. 그런데 형상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그 말은 eidos의 일상적 용례 그대로 기하학자들이 가정으로 놓고 들어가는 ‘눈에 보이는 그려진 도형들’(510d)을 가리킨다.(<에우튀데모스> 290b 참고) 요컨대 이 단계에서 언급되는 삼각형 자체와 대각선 자체는 마지막 지성적 앎의 단계에서 성립하는 ‘형상’이자 ‘자체적 존재’로서 삼각형 자체, 대각선 자체가 아니다. 그러나 이때 그들이 실제 추론적 사고 과정에서 내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도형이 아니다. 이를테면 수학 교사나 기하학자들이 칠판에 도형들을 그리며 설명을 할 때 설명을 듣는 사람들은 칠판에 그려진 그림들을 바라보지만 정작 머릿속으로는 그 그림들 배후에 있는 삼각형 자체, 대각선 자체를 떠올리며 그 설명을 이해한다. 그러나 이 추론적 사고 단계에서 성립하는 이러한 삼각형 자체와 대각선 자체는 비록 물질적 성질은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머릿속 사유 공간에서 연장성을 가지고 존재한다. 연장성은 이차원·삼차원 공간이 갖는 본질적 특성이다. 그러나 형상들이 있는 세계는 그러한 연장성을 탈각해 있다. 즉 형상계는 관계 맺음의 조건으로서 연장성이 성립하지 않는, 말 그대로 형상이 형상 자체로서 존재하는 세계이다. 그러므로 추상적 사고 단계에서 언급되는 삼각형 자체, 대각선 자체는 형상적 자체 존재로서 삼각형 또는 대각선이 아니라 기하학자들이 칠판에 그것을 그리면서 염두에 두고 있는 추상적 도형들로서 비물질적인 삼각형 또는 대각선이다.

* 요컨대 기하학자들은 사고 단계에서 어쩔 수 없이 도형들을 이용하여 삼각형 자체, 대각선 자체라는 앎의 단계에 이르고 그것을 토대로 결론을 내린다. 여기서 ‘결론teleutē을 향해 진행한다’(510b)는 말은 기하학자들이 이를테면 피타고라스의 정리 또는 원의 점점이 하나임을 설명할 때 칠판에 눈에 보이는 도형들을 그려가며 즉 그것을 이용하여 마침내 공리로 증명해내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기하학자들이나 계산술 또는 그러한 것들을 하는 사람들은 홀수와 짝수, 도형들과 세 종류의 각기 같은 것들을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학술을 수행한다. 플라톤이 추론적 사고와 관련하여 언급하는 ‘가정’hypothesis은 기하학자들이 학술을 수행하면서 이처럼 ‘놓고 들어가는 것들’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과학에서 말하는 ‘가설’과 차이가 있다. 이른바 과학에서 말하는 가설은 ‘둘 이상의 변인들 사이의 관계에 관한 일종의 추측 즉, 둘 이상의 변인 또는 현상 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검증되지 않은 명제’로서 추후 검증할 수 있도록 기술된 문제에 대한 잠정적인 응답’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말하는 가정은 명제가 아닌 어떤 존재자들로서, 그 존재자의 실재성에 대한 추측 내지 잠정성이 부재한 상태에서 아무런 검증이나 설명의 필요 없이 분명하고 당연한 존재로서 그냥 말 그대로 ‘놓고 들어가는 존재자들’이다.

* ‘사고’ 단계를 구성하는 학술들 즉 ‘기하학이나 계산술이나 그러한 것들’은 이같이 가정들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것들로부터 순수한 연역적 추론에 의해 결론을 이끌어 낸다. 그리고 그 결론들은 이성에 의한 변증술적인 대화(문답) 능력을 통해 첫 원리로 향하는 발판이 되고 종국적으로 일정 단계에 이르면 지성을 통해 형상들에 대한 앎과 그 총체로서 좋음의 이데아에 대한 앎에 이른다. 글라우콘은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기하학이나 계산술이나 그러한 것들’을 ‘기하학이나 그와 유사한 전문기술들technai’로 바꾸어 부르는데(511b) 플라톤은 이러한 학술들을 나중 변증술을 설명하는 단계에 가서 변증술의 획득을 위한 예비교과목(521c-531c)에 속하는 학술들로 구체화한다. 수학, 평면 기하학, 입체 기하학, 천문학 및 화성학 등이 그것이다.

* 플라톤은 이제 가지적 영역에서 기하학이나 계산술과 같이 가정을 사용하는 경우를 위와 같이 언급한 후에 가지적인 것의 다른 한쪽 부분 즉 가정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지성적 앎oēsis에 대해 언급한다.(511b-c) 플라톤은 그것을 ‘이성 자체’auos ho logos가 변증술적 대화의 능력을 통해 파악하는 것으로 언급한다. 즉 이성은 가정들을 ‘첫 원리’가 아니라, 말 그대로 가정들로 삼아 그 가정들을 ‘무가정적인 것’, 즉 ‘모든 것의 첫 원리’에 이르기까지의 출발점이자 디딤 발판 같은 것으로 삼는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은 플라톤 자신 이 단계에서 첫 원리에 이르는 역할의 주체를 ‘이성’logos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logos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설명 또는 추론을 의미하는데 플라톤은 마지막 단계의 앎의 상태를 언급하면서 그 이성이란 표현과 지성적 앎noēsis이라는 표현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엄격한 의미에서 지성적 앎이 종국적으로 이성이 아니라 지성nous을 통해 완성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분명 이성과 지성은 다르다. 그럼에도 플라톤이 이곳에서 이성과 지성을 함께 사용하고 있는 것은 추론적 사고에서부터 지성적 앎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자체가 연속적인데다가 그 과정 대부분을 기본적으로 이성이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532a에서 ‘이성은 좋은 것 자체를 행해 출발하고 그것을 파악하기 전까지 물러서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즉 이성은 가지적 영역 전체에 걸쳐 변증법적 문답의 능력을 통해 가정들을 출발점이자 발판으로 삼아 끊임없이 지성적 앎에로의 상승을 견인하는 중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 게다가 이성은 ‘첫 원리를 파악하고 나면 다시 거꾸로 첫 원리에 근거를 둔 것들에 의존하면서 그런 식으로 다시 결론 쪽으로 내려간다.katabainē’(511c) 이 말은 기하학자가 지성을 통해 형상을 포착한 후 올라온 방식 그대로 재정립된 사고 단계로 내려갔을 때 그의 사고 과정에서 이성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준다. 이성은 변증술적 대화(문답) 능력을 통해 첫 원리에로의 오름도 담보하지만, 그 첫 원리를 깨달은 후 다시 내려오는 과정에서 전문 학술들의 가정들의 학적 근거를 부여하여 그것을 통해 내리는 결론들에도 전문 학술로서 최소한의 학문적 지위를 갖게 해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이성은 감각적인 것은 일체 이용하지 않고 형상들 자체만을 사용해서 형상들에 기초해서 결론을 내린다.(511b-c) 이 결론은 사고 단계에서 가정들을 가지고 내리는 결론과 근본적으로 다른 결론이다. 가정들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사고는 오름 과정의 극치에서 지성nous을 통해 형상들에서 연원하는 존재 및 인식 근거를 제공받아 내림의 과정에서 형상에 의존하되 말로 할 수 있는 학적인 앎의 기초를 비로소 갖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지성적 앎 없이 사고 단계에서 가정들만을 토대로 다다르는 결론은 설사 연역적 정합성을 갖추고 있을지라도 연역이 의존하는 상위 명제의 진리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에서 학적인 보편성과 객관성을 가질 수 없지만, 그 모태가 되는 첫 원리에 대한 앎을 통해 가정들의 존재 및 인식 근거가 확보될 경우, 그것들을 통해 다시 재정립된 사고 내지 기하학을 비롯한 전문 학술들은 말과 논리로 성립하는 이론적 학문으로서 비로소 기초적인 학적 보편성과 객관성을 부여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불가의 돈오점수(頓悟漸修)처럼 생각과 생각의 단계적 상승을 통해 그 극치에서 차원이 다른 반야(般若)의 지혜를 일거에 깨닫고 다시 그 깨달음에 의존하여 깨친 생각들을 보전하고 풀어가며 보시(布施)를 실행하는 것과도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동굴의 비유에 가면 이러한 단계들이 실천적 역동성을 갖고 보다 실감나게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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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쯤에서 우리는 플라톤에게 심각하게 되돌아 보아할 의문이 있다. 그것은 플라톤이 지금 선분의 비유에서 언급되고 있는 위와 같은 인식론적 위계가 조금 앞서 제5권에서 존재론에 기초해서 플라톤이 상당히 공력을 들여 피력하고 있는 앎과 믿음(의견)과 관련한 원칙적인 위계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제5권에서는 앎epistēmē과 믿음(의견)doxa이 원천적으로 구분되면서 앎의 형상성이 배타적으로 강조되고 있고 믿음은 ‘있는 것도 아니고 있지 않은 것도 아닌 것’으로 가지적인 영역에 속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선분에 비유에 와서 플라톤은, 앎의 단계는 제5권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그것과 원천적으로 구분되었던 하위 인식 단계에 모종의 단계 즉 ‘사고’dianoia라는 단계를 두어 그것까지도 가지적 영역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도대체 플라톤은 왜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히 상당 분량의 존재론적 논의를 토대로 그토록 강조해온 앎과 믿음(의견)의 원천적 차별성을 접어 둔 채 선분의 비유를 통해 앎의 단계에 미치지 못하는 단계까지 설정하여 그것을 가지적 영역의 범위에 포함토록 하는 것일까? 그것은 제5권에서 피력한 그 자신의 앎에 관한 근본 입장에 수정을 가하는 것일까 아님 추가적인 보완일까? 추가적인 보완이라면 그것을 통해 플라톤이 의도하고자 했던 목적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은 전체 플라톤 철학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다음 강해에서 그에 관한 이러한 물음들에 필자 나름의 답을 제시하면서 선분의 비유에 관한 논의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 끝 –

 

다음 주제 : C. 철인 통치자의 교육 목표와 교과목(502c-541b)

  1. 선분의 비유(509c-513c) – (II)

[연재 소설] <그대에게 가는 먼 길> 1부 – 8회|3. 광주항쟁 (5) [이종철의 에세이 철학]

여덟 번째 글

3. 광주항쟁(5)

 

  어느 정도 이곳 생활에 익숙해져 갈 때 내가 다니던 교회의 장로님이 위로차 방문했다. 장로님은 불편한 것은 없는지 물어보고 사식을 넣어 주었다. K 교회에서 자주 어울리던 상수는 수시로 유치장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그는 이렇게 큰 거사를 하면서 자기한테 안 알린 것에 대해 무척 섭섭해했다. 하지만 의대 본과에 다니던 그를 무조건 끌어들일 수는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다니던 교회의 미정이가 위문을 왔다. 그녀는 특유의 쾌활한 목소리로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혼자 깔깔거리기도 했다. 위문 온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녀의 평소 스타일이 그런 면이 많기는 해도 나의 처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에 섭섭한 느낌도 들었다. 나는 그날 시위한 이래 처음으로 내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자유가 차단되었다고 생각했다. 철창 밖의 사람들과 내가 이질적인 삶을 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설령 이곳을 나간다 해도 다시 또 들어올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무슨 일이든 처음이 어렵지 다시 반복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래도 비교적 적응을 잘하는 체질이라 나는 유치장 분위기에 금방 젖어 들었다. 우리는 정치범이라고 해서 일반 잡범들이 대우도 해주고 자리도 좋은 곳으로 주었다. 나는 그곳에서 명색이 법대생이라고 해서 형사소송법과 법전을 옆에 펼쳐 놓고 일반 잡범들의 법률 상담도 해줬다. 소매치기로 들어온 어떤 여성은 생리 중에 그런 도벽이 생긴다는 현실을 호소해서 대신 이유서를 써준 적이 있다. 잡범들 가운데서도 소매치기들은 여간해서는 자신들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일단 하는 말들 대부분은 거짓말인 경우들이 많다. 오히려 솔직하고 단순한 잡범은 주먹을 쓰는 건달들이다. 이런 건달도 노는 구역이 어디냐에 따라서 행태가 다 틀린다. 중부서 관할의 남대문에서 노는 건달들은 비교적 순진하고 단순한 반면, 타워 호텔을 무대로 노는 건달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은근히 뻐기는 경우들이 있었다. 당시 명동 신상사파의 중간 보스쯤 되는 건달이 있었는데 그의 입담이 아주 걸쭉했다. 외모로 볼 때는 일반인하고 거의 차이가 없는데 목소리가 우렁우렁하고 말도 유창하게 잘했다. 그는 특히 음담패설을 잘했는데 한밤중에 그가 한 창 음담패설을 할 때는 내근하는 형사들까지 와서 열심히 듣곤 했다. 당시 연청의 핵심 멤버 중의 한 사람이 있었는데 외모로 볼 때는 호랑이처럼 생겼지만 마음 씀씀이는 여우 같은 면이 많은 사람이었다. 내가 법률 상담할 때 그가 뒤에서 자문해주곤 했다. 나중에 유치장을 나가면 그의 사업장으로 한번 찾아오라고 해서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은근히 외면하는 것 같아서 발길을 끊었다. 그는 나중에 정치적으로 크게 성공하기도 했지만 그때의 경험 때문에 별로 신뢰감이 가지 않았다.

  유치장 안에서 비교적 대화가 잘 통하는 것은 비슷한 또래의 학생 운동권 사람들이다. D 대의 운동권 인사가 여럿 들어왔는데 그들과 향후 정국 동향이나 앞으로의 진로 등과 관련해 토론을 많이 했다. 그중의 한 사람인 우성과는 나중에 바깥으로 나가서도 만남이 이어져서 세미나도 함께 하곤 했다. 기억나는 한 분은 민중 불교를 하던 승려였다. 그는 평소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떠들고 토론해도 일체 관여하지 않고 면벽 참선만 했다. 결혼을 앞둔 상태라 신부 될 사람이 자주 유치장을 찾았다. 신부는 아주 옛된 여군 장교라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끌었다. 당시 김대중의 연설을 녹음해서 판매하다가 들어온 음반 제조업자인 모 씨는 바깥에 나가서 우리와 자주 어울렸다. 사람 좋은 그는 우리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을 알고 술도 많이 사줬고, 그가 제작한 클래식 테이프 모음집을 우리에게 줘서 한때 그것들을 팔아 용돈으로 쓰기도 했다. 그때의 경험을 통해 왜 사람들이 교도소를 학교라 생각하는지 알 수가 있었다.물론 우리가 있었던 곳은 교도소가 아니라 경찰서 유치장에 불과했지만 그곳에서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사람 경험을 많이 한 편이다. 내가 처음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라는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무더운 날씨에 사람들이 많다 보니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그래도 국방부 시간은 여지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우리가 시위를 한 것이 6월 27일인데 한 달쯤 돼서 갑자기 친구와 나를 불렀다. 따라서 올라가 보니 서약서를 제출하라고 하면서 석방이라고 했다. 다시는 그런 엉뚱한 짓을 하지 말라고 서약서를 쓰라고 했다. 비상계엄으로 삼엄한 상황에서 데모를 했지만 우리는 무사히 풀려났다. 우리와 관련된 모든 조사 기록들은 다 폐기 처분했다고 한다. 처음 거사했을 때 방사형으로 배후를 캐던 형사들이 아무 것도 나오지 않으니까 허탈해하면서 돈키호테 같은 놈들이라고 말했었다. 이번에는 그동안 조사했던 기록들을 하나 하나 씩 지워가면서 석방한 것이다. 함께 거사한 친구의 아버지가 백방으로 손을 보안사 과장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숨통이 콱콱 막히던 유치장을 나오니까 밖은 햇볕으로 눈이 부시고 더위가 한창인 7월 말이었다.


이종철(철학박사)은 『철학과 비판』(도서출판 수류화개)과 『일상이 철학이다』(모시는 사람들) 그리고 『문명의 위기를 넘어』(공저, 학지원)를 썼다. 그는 『헤겔의 정신현상학』(J. Hyppolite, 1권 공역/2권, 문예출판사), 『사회적 존재론』(G, Lukacs, 2권/4권(공역), 아카넷), 『나의 노년의 기록들』(A, Einstein, 커큐니케이션스북스)등 다수의 번역서들을 냈다. 현재는 연세대 인문학 연구소 전문 연구원이자 인터넷 신문 ‘브레이크뉴스’ 와‘ 내외신문’의 칼럼리스트로 활동하면서 NGO 환경단체인‘푸른 아시아’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연재 소설] <그대에게 가는 먼 길> 1부 – 7회|3. 광주항쟁 (4) [이종철의 에세이 철학]

일곱 번째 글

3. 광주항쟁(4)

 

예나 지금이나 명동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사람들로 붐볐다. 마침 우리의 거사 날짜는 토요일 오후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특히 많았다. 수걸은 시위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토요일로 잡은 것이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왼쪽으로 지하도가 있었고, 바로 앞에는 유명한 빵집이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각자 맡은 분량의 전단지를 뿌렸다. 동시에 우리는 외쳤다.

 

“계엄을 철폐하라, 광주의 진실을 밝혀라. 학살 원흉 전두환은 물러나라!”

 

비상계엄이 여전했고, 곳곳에 무장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현실에서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이런 엄청난 구호를 외친 것이다. 도로 위에 있던 수많은 사람이 깍깍 소리를 지르면서 달아나는 모습이 보였다. 광주 사태 이후 더욱 강화된 계엄상황에서 이런 데모를 벌이는 것 자체를 두렵게 보았을 것이다. 전단을 여기저기 뿌렸다. 뿌렸다기보다는 처음 해보는 일에 당황해서 그냥 뭉터기로 내 던졌는지 모른다. 지하도 안으로도 던졌고, 거리에도 던졌다. 손에 더 이상 전단이 없자 수걸과 나는 주먹을 쥔 오른손을 번쩍 들고 명동 방향으로 구호를 외치면서 걸었다. 사람들이 바다가 갈라지듯 우리 앞길을 열어 주었다. 단 5분도 안 걸린 시간이었을 텐데 그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는 느낌이 들었다. 짧은 시간에 목이 쉬어 버렸다. 그 이후로 내가 여러 차례 경험해봤지만 아주 짧은 시간에 영원과 접속되는 경험을 한 것은 그때가 처음 같았다. 그 사이 누군가가 우리를 신고했다.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더니 경찰 몇 명이 나타났다. 계엄군이 출동하지 않은 게 다행이다. 만약 군인이 출동했다면 그 자리에서 그냥 반죽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바로 수갑찬 채 명동 파출소로 끌려갔다.

파출소에 도착하니 비로소 상황이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파출소의 한 젊은 순경은 우리가 다소 안쓰러운지 담배를 권했다. 담배 한 모금을 빨자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바깥은 우리의 시위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토요일 오후 인파들로 덮여 있었다. 우리의 시위는 찻잔 속에 잠시 미풍이 분 것 정도도 안 되었다. 그런 일을 도대체 왜 했을까? 개인적으로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지만 타인이나 사회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동키호테식 행동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실제로 조사받는 과정에서 우리 뒷선을 아무리 캐도 나오지 않자 ‘이거 미친놈들 아냐. 완전 동키호테구먼.”이라는 말도 들었다.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우리의 시위는 일종의 자기 확신에 기초한 자기 고백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기 자신과의 약속이고, 자신이 스스로 설정한 채무 이행이었는지 모른다. 훗날 이 사건을 반추하면서 나는 다시 새로운 다짐을 했다. 다시는 이런 동키호테식 자기 고백은 하지 않겠다고.

명동 파출소에서는 별다른 조사 없이 바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중부서로 이첩됐다. 우리가 도착하니 큰 상황판에 방사선 형태의 그림이 그려졌다. 일단 형사 앞으로 가서 심문받고 조서를 써야 했다. 우리가 앉자마자 다짜고짜 한 형사가 뺨을 때린다.

 

“이런 미친놈들, 지금 시국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아?” 이런 폭력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는 당황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답은 하지 않았다.

“이놈들, 무슨 생각을 하고 이런 짓을 벌인 거야? 배후가 누구야?” 다른 형사가 큰 목소리로 추궁했다.

“배후는 없습니다. 우리 둘이 다 결정한 것입니다.” 친구가 대답했다.

 

한참을 캐도 드러난 이상의 것이 나오지 않으니까 그냥 보호실 철창으로 집어넣으라는 말이 들렸다. 바지의 혁띠를 푸르고, 내가 차고 다니던 보조기도 풀어야 했다. 당장 걷는 데 지장이 있지만 할 수 없었다. 그날 밤 우리는 잡범들과 함께 보호실에서 보냈다. 낯선 철창, 평소 범죄자들로 백안시했던 사람들과 한방에서 그날 밤을 보냈다. 긴장이 풀어져서인지 잠은 잘 잤다. 이제 나에게 익숙한 세상은 사라지고, 낯설고 새로운 상황이 다가온 것이다.

거사 당일 밤 수걸과 나의 집으로 형사대들이 급파돼서 증거물이 될 법한 것들을 가지고 왔다. 그날 밤 가족들이 크게 놀랬다고 한다. 아닌 밤중에 형사들이 조사를 위해 왔다고 하니까 가뜩이나 걱정이 많은 어머니가 많이 놀랬다. 수걸의 집을 조사했던 한 형사는 수걸의 집 책장의 수많은 장서들을 보고 놀랬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실 그의 집에는 아버지와 형이 보던 책, 그리고 수걸이 보던 책들이 빼곡히 꼿혀 있었다. 조사하는 과정에서 주범은 지수걸이고, 종범은 나로 확정됐다. 때문에 수걸은 수시로 불려 나갔다. 전단지를 인쇄한 곳이 어디냐는 추궁을 받았지만 그는 잘 둘러쳤다. 적어도 그를 믿고 일을 해준 사람들이 곤욕 치르지 않도록 처리했다. 그의 일처리는 생각보다 꼼꼼했다. 그가 한참 후에 한국형 레스트랑을 창업해서 크게 성공한 적이 있었는데, 이 때의 일솜씨가 바탕이 됐을 것이다.

처음 시작한 경찰서 보호실 생활을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났다. 때가 때인 지라 정치범들이 여럿 잡혀 있었다. 이곳에는 이미 김대중 산하 청년 조직인 연청 관련 인사가 들어와 있었고, 근처 동국대의 핵심 간부들과 선후배들도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김대중 씨 연설한 것들을 녹음해서 배포한 음반 업자도 있었고, 사회주의에 발을 들여놓은 지사형 정치인도 있었다. 그리고 이 보호실에는 정치적인 이유로 들어온 사람들 외에도 일반 잡범들도 많았다. 계엄 상황에서 나중에 삼청교육대로 보내진 수많은 잡범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정치범에 대한 예우 때문인지 우리는 비교적 좋은 자리에 있었지만, 더운 여름날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없는 상태로 칼 잠을 자는건 참으로 고역이었다. 나중에 본격적으로 철학을 공부할 때 알게 된 “타인은 지옥이다.”는 사르트르의 말을 몸으로 체감했다.

내가 광주 학살에 관해 이야기를 들은 곳은 바로 경찰서 보호실 안에 들어와 있던 한 잡범을 통해서였다. 보호실 안은 끊임없이 소란스럽고, 온갖 소리들이 난무했다. 특히 밤에는 입담 좋은 친구들 주변으로 삼삼오오 몰려서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다. 담당 경찰관도 특별한 경우 아니면 그냥 묵인했다. 하루는 20대 중반의 한 청년이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그는 광주에서 아주 끔찍한 경험을 했다고 했고, 자신은 사선을 넘다시피 해서 그곳을 탈출했다고 했다. 그가 그날 밤 구구절절이 광주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을 때 다들 할 말을 잊은 듯 침묵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너무나 충격적이고 리얼했기 때문이다. 그가 남도 사투리로 떨리는 듯 말했다.

 

“정말 이제 못 보겠습디다. 공수 부대 안 있소? 완전히 무장해 갔고 대학생으로 보이면 무조건 곤봉으로 머리빡부터 뚜드려 패버리는 거예요. 그러먼 그 자리에서 자빠져불죠. 그렁께 여기저기 사람들이 막 쓰러져 있는 거예요. 일어설 수 있는 사람들은 무조건 옷부터 배께 갖고 팬티만 남기고 도로에 무릎 꿀레서 일렬로 안치고,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개머리판으로 사정 없이 패 부었어요. 길 가던 시민들은 놀래갖고 ‘오매 저러다 사람 죽이겄다’고 하면서도 군인들이 워낙 살기가 등등하니까 어쩌지도 못하고라. 최루탄을 쏴나서 눈도 못 뜨고 숨도 못 쉬고요. 멀리서 보고 오다가 도망가는 젊은이가 있으면 끝까지 쫒차가서 같은 방식으로 패버리는 거예요. 나는 너무 무서워서 밖에 나갈 엄두를 못 냈어요.”

 

그날 밤 이런 끔찍한 이야기가 그의 입에서 나올 때 일반 잡범들도 조용히 침묵했다. 어떤 이들은 눈물마저 글썽거렸다. 도저히 국민의 군대라고 할 수 없다고 분노하는 이도 있었다.

 

조용히 듣기만 하던 동국대 운동권 출신의 한 사람이 질문했다.

“직접 당신이 확인한 건가요?”

“그러문 요오. 신문에 안 나니까 모르시는 거예요. 그러다가 3일째 되는 날 집으로 들이닥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께 무서워서 못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화순 쪽으로 빠져서 어떻게 기차를 겨우 타고 서울로 도망을 온 거예요. 물론 오면서 양심의 가책도 들었어요. 내가 아는 친구들도 저렇게 무자비허게 당하고 있을 텐디 나만 도망을 가는구나 하고요.”

 

그가 광주의 현장에서 도망간 것에 대해 누구도 비난할 수 없었다. 목숨을 보전한다는 것은 모든 생명체의 1차적인 보호 본능이기 때문이다. 이날 이후로 한반도의 남녁은 깊은 침묵의 세월로 접어들었다. 과연 하늘에 신이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주여! 당신은 어디로 가시나이까?(쿠오바디스 도미네)

그날 그에게 끔찍한 광주의 학살 현장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솔직히 분노 이상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도대체 이놈들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을 벌렸는가, 그리고 다음 희생자가 누가 될 것인가, 감방에 있는 우리들에게도 그 여파가 밀려오지 말라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등등으로 밤에 잠을 이루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우려했던 것과 달리 경찰서 유치장에서의 삶은 큰 변화는 없었다. 다만 민생 사범들을 대거 잡아들이면서 보호실의 인구 밀도가 극도로 높아져서 지내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이종철(철학박사)은 『철학과 비판』(도서출판 수류화개)과 『일상이 철학이다』(모시는 사람들) 그리고 『문명의 위기를 넘어』(공저, 학지원)를 썼다. 그는 『헤겔의 정신현상학』(J. Hyppolite, 1권 공역/2권, 문예출판사), 『사회적 존재론』(G, Lukacs, 2권/4권(공역), 아카넷), 『나의 노년의 기록들』(A, Einstein, 커큐니케이션스북스)등 다수의 번역서들을 냈다. 현재는 연세대 인문학 연구소 전문 연구원이자 인터넷 신문 ‘브레이크뉴스’ 와‘ 내외신문’의 칼럼리스트로 활동하면서 NGO 환경단체인‘푸른 아시아’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막스 슈티르너: 에고이즘의 위대한 철학자-5 <슈티르너의 에고이즘> [유령(Spuk)을 파괴하는 슈티르너(Stirner)]

<슈티르너의 에고이즘>

 

박종성

 

    – 차 례 –

  • 서론
  • 헤겔 좌파
  • 헤겔 좌파에 대한 슈티르너의 비판
  • 정치적 슈티르너
  • 슈티르너의 에고이즘
  • 슈티르너 이후
  • 역사적 결론
  • 페미니즘에 관한 후기

Svein Olav Nyberg [노르웨이 아그데르 대학교(노르웨이어: Universitetet i Agder) 부교수]의 글, Max Stirner: The Great Philosopher Of Egoism(2021)을 번역한 글입니다.

슈티르너의 에고이즘(egoism) 개념은 지금까지 부정적 기능을 가진 것, 즉, 상대방을 높은 지위에서 떨어뜨리기 위해 철학적 또는 정치적 주장을 끼워 넣을 수 있는 것으로 제시됐습니다. 그러나 슈티르너는 또한 우리에게 긍정적 예로 에고이즘을 제시합니다. 여기서 내가 한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이 원하고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랜드의 에고이즘과 달리, 슈티르너의 에고이즘은 규범적이지 않습니다. 그는 신-주의(new -ism)의 기초가 되는 용어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슈티르너의 철학은 구체적 개인에 초점을 맞추는 철학입니다. 슈티르너의 비판을 넘어 그의 철학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생각은 “유일자”, “개인”, “유일한 한 사람”을 의미하는 Der Einzige입니다.

슈티르너는 각 개인이 유일하다고 지적합니다.[1] 한스 트리그베(Hans Trygve)[2]와 나는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구체적으로 다른 두 개인입니다. 물론, 우리는 둘 다 인간이지만, “인간”은 우리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것만을 표현하는 것이지, 우리가 되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어떤 것도 표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 우리의 본질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본질”은 개인의 특성[3]이 아니라 개념의 특성입니다. 그리고 나는 많은 것들과 공통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내가 다른 것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이 공통성이 나의 본질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떤 개념이었다면, 당신도 나를 철자할 수 없었을까요?

이것은 간단한 일상의 관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작은 일격이 큰 철학의 오크나무를 쓰러뜨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유일하기 때문에, 우리의 관심사들도 유일합니다. 즉, 우리의 관심사들이 유일자를 표현합니다.[4] 슈티르너가 에고이즘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유일한 사람의 유일한 관심사들(unique person’s unique interests)입니다. 에고이즘은 신, 인간 그리고 당신의 국가와 같은 이상들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관심을 위해 당신이 가지고 있는 관심사입니다.

슈티르너는 또한 우리가 이상을 위한 투쟁과 우리의 관심을 동일시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여전히 – 에고이즘에서 비롯된 우리의 자기-관심에 기초하여 그 일을 수행할 것이라고 암시합니다. 즉, 그는 심리적 에고이즘을 제안합니다.[5]

이 일은 우리의 모든 관심사가 기본적으로 유일한 관심사, 즉 우리가 유일한 개인이듯이, 우리 자신의 개인적 관심사라는 점에서 정확하고 동어 반복적입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심리적 에고이즘이라는 생각이 다소 번잡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테레사 수녀(Mother Theresa)와 같은 “무의식적” 에고이스트와 나 자신 같은 “의식적” 에고이스트를 분리하는 문턱을 높이기 때문입니다.[6]

그의 작품 전반에 걸쳐 슈티르너는 나에게 주입된 생각 및 감정과 내 안에서 일어났던 생각과 감정을 결정적으로 구분합니다.[7] 그의 논설 「우리 교육의 잘못된 원리(Das unwahre Prinzip unserer Erziehung)」에서, 그는 교육의 큰 문제를 아이들의 머릿속에 지식을 가능한 한 효과적으로 채워 넣는 것 중 하나로 보는 이론을 공격합니다. 슈티르너는 교육자들이 교육 수단에 관해 서로 격렬하게 의견이 다르지만, 목표가 아이들의 머릿속에 지식을 채워 넣는 것이라는 점에는 모두 동의한다고 말합니다. 이와 반대로, 슈티르너는 아이들이 그들 자신의 학습을 선택할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그들의 함양은 그들 자신의 관심에 기초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지식은 아이들 자신의 이 되고, 떠넘긴 사실들과 이론들의 무거운 짐이 되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슈티르너 이후 150년 후의 뇌 연구에서 나온 흥미로운 관찰은, 학습의 화학 작용은 틀림없이 학습자가 관심을 가지고 학습할 때 가장 잘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정확히 배움처럼 무언가가 자기 자신의 이라는 생각은 슈티르너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두 번째이자 필수적 생각입니다. 슈티르너에 따르면, 당신이 접촉하는 모든 것은 당신의 소유입니다. 이는 법적 의미가 아니라, 유일자로서의 당신이 접촉한다는 그런 의미에서, 그 밖에 누군가가, 어떤 이상 등등이 규정한 관계가 아닌 자기 자신의 관계에 따라 당신이 직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소유”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특이한 방법임이 틀림없으므로, 다음과 같이 설명하겠습니다. 고전적 의미에서 “소유”는 당신이 통제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이 통제를 명확히 사용하는 방법은 당신과 당신의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권리”로서의 “소유”는 슈티르너가 방금 거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권리”는 개인에게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권리는 “인간”(Man)의 소유입니다.

따라서 지배적이고 규범적 이상이 없다면, “소유”는 당신이 접촉하게 되는 모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상과 권위가 규정한 것에 따라서가 아니라, 당신 자신의 자기소유성(ownness)으로 그것과 관계를 맺을 때 그것이 “소유”입니다. 그리고 대상에 대한 당신의 통제력은 당신의 힘, 즉 당신의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슈티르너의 마지막 두 번째 생각이 바로 Eigenheit, 즉 “자기소유성”입니다. 이 발상은 당신이 자기 자신과 자신의 평가를 – 당신의 것으로 생각한다는 설명입니다. 자기소유성은 슈티르너의 마지막 생각인 “소유자”를 의미하는 Eigner와 관련이 있습니다.[8]

슈티르너는 “자기소유성”과 “자유”를 대조합니다.[9] 슈티르너는 “자유” 자체가 공허하고[10] 헛된 개념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자유(“자유”라는 단어)는 “자유”라는 단어와 함께 “부재”만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라이트 맥주(Light beer)에는 알코올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마신다고 해서 자유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자유”를 추구할 때, 정확히 무엇으로부터 자유를 원하시나요? 단어 자체는 아무런 답을 제공하지 않으며, 당신은 지칠 때까지 단어에 대한 권리에 대해 “인간적 자유주의자”와 논쟁을 벌일 수 있습니다.

아니면 당신은 단순히 이 자유에 무엇이 포함되어야 하는지를 자기 자신을 위해 결정할 수 있고, 당신의 자유를 전혀 원하지 않는 군중이 아니라, 아마도 당신의 자유와 모순되는 다른 종류의 자유를 원하는 군중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하려고 노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슈티르너는 “자유”보다 “자기소유성”을 더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부재하는 자유는 당신 자기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당신이 당신의 자유를 좋아하는 영역에서 존재감 드러냈을 다른 사람들에 의해 “승인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당신은 공짜로 자유를 가질 수 없다”라는 악명 높은 문구에 반영되었습니다.

자유와 자기소유성의 차이를 보여주는 예시는 학교에서 놀림을 받는 어린이의 경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만약 괴롭힘을 가하는 사람이 한동안 그 어린이를 괴롭히는 데 지치면, 괴롭힘은 한동안 없어집니다. 그 어린이는 괴롭힘에서 자유롭습니다. 그러나 이 자유는 다른 사람의 수중에 있다는 것이 쉽게 드러납니다. 반면에, 그 어린이가 가라데[태권도;옮긴이;우리 정서에 맞게]를 배우기 시작하거나 운동선수 친구를 사귀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그런 다음 그 어린이는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과 싸우기 위해 자기 자신의 을 사용합니다. 그 어린이는 자신의 의지로 그들에게 저항합니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습니다. 만약 가해자들이 그 어린이를 다시 괴롭히기로 결정하고, 그 어린이가 자신의 자유를 호소한다면, 이 헛된 호소는 가해자들이 없기를 바라는 소망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 소원은 그 자신이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괴롭히는 사람들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은 다시 랜드와 어느 정도 유사성을 갖고 있습니다. 랜드는 “피해자의 제재”에 대해 말합니다. 당신이 반격하고 거절하지 않는 한, 당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의 힘은 무제한입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슈티르너는 어떤 이상의 매개[11]를 통해 서로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대 개인으로서 서로 관계를 맺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합니다. 특히 그는 그가 그들의 이상을 무너뜨릴 때 필사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지켜줄 이상이 없으면, 우리는 완전히 멸망한다고요, 우리는 악행자들에 맞서 싸울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고요!” 여기서 슈티르너는 십자가나 마늘과 마찬가지로 “권리”도 어떤 경우에도 보호받은 적이 없다고 대답합니다.[12]당신은 무엇을 위해 거기 서 있습니까?” 그는 묻습니다. “당신은 저항할 힘이 없습니까?”

게다가, 슈티르너는 힘과 능력이 크고 건장한 남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다른 사람들과 합치면, 나의 힘은 몇 배로 배가되기 때문입니다.[13] 그리고 역사 전반에 걸쳐 이루어진 모든 변화는 이상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든 특정한 사람들을 위해 이루어졌든, 항상 구체적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이상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상은 기껏해야 구체적 사람들의 마음속에 밀항자나 무용지물에 머물렀을 뿐입니다.

그래서 내가 얻은 것은 환상과 이상을 잃어도 사라지지 않으며, 잃어버린 이상이 “권리”와 “자유”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내가 얻은 것을 누군가가 나에게 더 이상 허락하지 않더라도 나는 더 이상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얻은 것이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괴롭힘을 당한 남학생이 얻은 “자유”는 자유를 위한 청원보다는[14]이고 그 자신의 자기소유성에 더 잘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또한: 내가 주류 판매 면허를 상실했다고 해서, 내가 자동으로 음료 판매를 중단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나는 특정 한도를 초과하는 수입이 거부되어, 고전적인 정치적 의미에서 나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자기소유성으로 -밀수입합니다.


옮긴이 박종성: 건국대학교에서 슈티르너의 유일자 개념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유일자와 그의 소유』(2023년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이데올로기와 문화정체성』(공역)이 있다. 논문으로는 「유일한 사람의 사랑」, 「슈티르너의 ‘변신’ 비판의 의미」, 「식민지 조선에서 슈티르너 철학의 변용과 그 의미 및 한계-염상섭의 「지상선을 위하여」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현재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이고 건국대학교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1] “나의 관심은 전체에 두루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유일한 나이듯이,—유일한(einzig) 것이다.” 12쪽, “나는 나 자신을 어떤 특별한 존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유일한 존재로 여긴다. 확실히 나는 남들과 비슷한 점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견주어 보거나 돌이켜보는 경우에만 해당한다. 실제로 나는 비교할 수 없는 존재이며, 유일한 사람이다.”, 218쪽, “하지만 이제부터 더 이상 인간답지 않은 인간이 아니외다. 오히려 유일한 것이외다.” 231쪽, “자유주의자는 그대에게서 그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개념을 보고, 또는 철수나 영희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보며, 현실적인 사람 혹은 유일한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대의 본질이나 그대의 개념을 보고, 뼈와 살을 갖춘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신을 본다.” 268-9쪽, “그러면 그 인류의 무덤 위에서 내 유일한 주인인 나,” 『유일자와 그의 소유』(부북스, 2023), 338쪽.

[2] 원주 5, 번역자.[이 글을 노르웨이어로 번역한 사람이다; 옮긴이]

[3] 그래서 나는 에고이즘을 자기중심성으로 옮겼다. 나아가 개인의 특성이 자기중심성이고 그런 개인을 자기중심적 사람으로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4] 같은 책, “나의 관심은 전체에 두루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유일한 나이듯이,—유일한(einzig) 것이다.” 12쪽.

[5] 같은 책, “비록 인간 본질의 내용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지만, 아르놀트 루게와 같은 “정치적 자유주의자”에게는 인간 본질이 ‘시민권’과 동일시되고, 모제스 헤스와 같은 “사회적 자유주의자”에게는 인간 본성이 ‘노동’과 동일시되며, 브루노 바우어와 같은 “인간적 자유주의자”에게는 인간 본질이 ‘비판적 활동’과 동일시됩니다.” 575쪽, 옮긴이 해제.

[6] 같은 책, “『유일자와 그의 소유』에서, 슈티르너는 물질적 부를 추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탐욕스러운 개인의 중요한 예를 논의합니다. 그러한 개인은 분명히 자기유용을 갖고 있지만(그는 단지 재산을 모으기 위해서만 행동합니다), 그 일은 슈티르너가 일방적이고 편협하다고 거부하는 자기중심성이며 정신을 빼앗긴 상태입니다.” 579쪽. 옮긴이 해제 참조.

[7] 같은 책, “자신의 것(Eigene)이 고취된 것(Eingegebenen)과 대조될 때,” 102쪽, “그 밖의 어떤 것들을 통해 내 안에서 일어났던 감정이나 생각과 나에게 주어진(gegeben) 감정이나 생각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103쪽, “그렇다면 차이는 나에게 불어 넣어진(eingegeben) 감정인지 혹은 단지 나를 마음 내키게 했던 감정인지이다. 나를 마음 내키게 했던 감정들은 나 자신의, 자기중심적 감정들이다.” 104쪽.

[8] 같은 책, “이와는 반대로 자기소유성, 그것은 내 온전한 존재이자 현존을 의미한다. 자기소유성은 나 자신이다. 나는 내가 벗어난 것에서부터 자유롭다. 나는 나의 힘 속에 가지고 있는 것 혹은 내가 마음대로 제어하는 것의 소유자이다.”, 246쪽, “그러한 기독교적 희망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자기소유성’은 어떤 현실성이다.”, 256쪽, “자기소유성은 그 자체로 자기 자신인 모든 것을 포함한다. 그리고 자기소유성은 기독교의 언어가 명예롭지 않게 만든 것을 다시 명예롭게 만든다. 그러나 또한 자기소유성은 타자의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자기소유성은 자유, 도덕, 인간다움 따위와 같은 이념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소유성은—소유자의 묘사일 뿐이다.”, 267쪽.

[9] 같은 책, “자유와 자기소유성 사이의 차이는 얼마나 큰가!” 246쪽, “자유와 자기소유성 사이에, 그저 말 사이의 차이에 불과한 것보다 더 깊고 심한 대립이 여전히 있다.”, 248쪽.

[10] 같은 책, “왜냐하면 자유는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자유를 이용할 방법을 모르는 사람에게 이렇게 쓸모없는 허용은 어떤 가치도 없다. [172] 하지만 내가 자유를 어떻게 이용하느냐는 나 자신의 자기소유성에 달려있다.”244, “나의 자유가 나의—힘일 때에만, 나의 자유는 완성된다.”, 261쪽.

[11] 같은 책, “사람은 다른 사람과 즐거운 방식으로 교류해서는 안 되고, ‘더 높은 감독과 중재’ 없이 교류해서는 안 된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실행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가 허락한 것만큼만 실행해야만 한다. 나는 나 자신의 생각, 나 자신의 노동, 또는 대체로 나 자신의 어떤 것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351쪽.

[12] 원주 6, 노르웨이의 저명한 자유주의자인 Bjørn Borg Kjølseth는 “누군가가 당신의 권리를 상하게 한다면”, “권리가 이에 대응하여 그의 다리를 물겠습니까, 아니면 스스로 그 일을 해야 합니까?”라고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13] 같은 책, “이러한 결속[상호 의존; 3쇄 교정할 때]에서 나는 내 힘의 상승만을 본다. 그리고 오로지 결속이 내 증가된 힘인 한에서만, 나는 결속을 유지한다. 하지만 이렇게 결속은 어떤—연합이다.”, 483쪽.

[14] 같은 책, “전자는 국가에 대한 청원이고, 후자는 국가에 맞선 반란이다. ‘권리에 대한 청원’, 심지어 언론 자유의 권리에 대한 진지한 요구는 국가를 주는 사람(Geber)으로 전제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오직 선물(Geschenk)과 허가, 승낙을 기대할 수 있다.”, 435쪽.

[연재 소설] <그대에게 가는 먼 길> 1부 – 6회|3. 광주항쟁 (3) [이종철의 에세이 철학]

여섯 번째 글

3. 광주항쟁(3)

 

“그 당시 나는 교회에서 알게 된 미정에 대해 연애 감정을 갖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그녀를 생각하기도 했다. 그녀도 회사에서 틈만 나면 나에게 전화했고, 전화를 시작하면 꽤 오랜 시간 전화기를 붙잡고 있기도 했다. 아주 오랜만에 서로 마음이 통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내가 감방에 들어간다면 그녀와의 만남은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에 미치면 괴로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거사를 하기 전날 나는 그녀의 집을 먼저 찾아갔다. 내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사정 이야기를 그녀에게 해주어야만 했다. 나중에 제3 자를 통해서 나의 거사를 알게 된다면 그녀는 나에 대해 실망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내가 써 왔던 일기장을 그녀에게 준다는 것도 나 자신에게는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나의 마음을 전달하고, 나의 생각과 행동을 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생각되었다. 밤늦게 그녀의 집 앞으로 찾아가서 그녀를 불러냈다. 그런데 기대했던 것과 달리 그녀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사선을 넘어가려고 하는데 그녀는 갑자기 왜 불러냈느냐는 식의 심드렁한 표정만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예요? 이 늦은 시각에.” 아주 뜬금없다는 태도다.

“잠시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야.”

“그냥 전화로 하던지, 아니면 밝은 낮에 하면 안 되나요?”

 

그 말을 듣자 그녀와 나 사이에 넘기 힘든 벽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로 간에 감정이 완전히 불통이 된 것 같아 가슴이 답답했다. 물론 내 생각이 너무 앞서 간 면이 있었지만 달리 어떻게 할 시간도 없었다.

 

“알았어. 그런데 이 노트를 잘 좀 보관해줘. 내가 오랫동안 써 왔던 일기야. 그리고 나 내일쯤 당분간 멀리 떠나게 될 거야.”

“아니, 그걸 왜 나한테 줘요. 도대체 어디를 가는데 그래요?”

 

내가 민망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일기장을 건네자마자 바로 그녀를 뒤로 하고 떠났다. 아무리 상황이 그렇다 하더라도 서로 공감하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해봤다. 내 마음이 전혀 전달되지 않았고, 나의 절실한 감정에 대해 무신경한 그녀의 태도가 무척이나 실망스러웠다. 차라리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그녀와는 비슷한 경험을 나중에 다시 하게 되었다.

 

다음 날 나는 수걸의 집으로 가기 위해 아침 일찍 나섰다. 이날 벌어질 엄청난 사건으로 인해 1980년 6월 27일은 평생 가도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사는 봉천동에서 금호동 까지는 한참 먼 거리지만 그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그의 집은 금호동 로타리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 올라간다. 그곳으로 올라가는 나의 걸음 하나하나가 마치 골고다 언덕으로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는 예수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문을 두드리자 나온 수걸은 나를 보자 다소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웬일이야?” 뻔히 알면서 묻는다.

“너 때문에 내가 골머리를 썩고 있다. 이놈아.”

“왜 네가? 그냥 편하게 받아들이지.”

“너라면 그게 편하게 받아들여지냐?”

“내가 너를 만나러 간 것은 뒤처리 좀 부탁하기 위해서였어. 그런데 이렇게 직접 찾아오니까 할 말이   없다.”

“내가 그냥 뒤처리나 할 사람으로 보였나? 나는 그렇게는 못 하겠다. 내가 너의 마음을 꺾을 수 없다면 너 역시 나의 마음을 꺽을 수는 없을 거다. 내가 며칠 동안 아주 심각하게 고민했다. 결론만 말할게. 네가 하려는 거사에 내가 함께 하겠다.”

“뭐라고? 그건 안돼. 내가 너를 끌어들인 셈이 되잖아.”

“너는 나를 뒤처리용으로 생각한다고 했지만 사실 너도 내가 함께 하기를 바란 것은 아닐까?’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툭 하니 말을 내뱉는다.

“알았다. 그렇게 하자.”

 

이 말을 시점으로 함께 하기 위한 거사 준비를 일사분란하게 진척시켰다. 이미 거사 일에 현장에서 뿌릴 전단은 수걸이 다 만들어 놓았다. 우리는 각자 주소가 확인되는 친구들 한테 전단지를 우편으로 보내기 위해 주소를 적었다. 나중에 친구들이 놀랠 수도 있어서 미리 알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우편물을 보내는 과정에서 내가 친구의 이름을 잘못 적어 보낸 것이 있다. 나중에 한 친구가 그런 말을 해줬다. 그 당시 급박한 상황에서 일을 처리하다 보니 나온 실수였다.

다음으로 우리는 몸을 단정히 하기 위해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깍고 대중목욕탕에 가서 목욕도 했다. 이제 마음의 준비도 다 됐다. 우리는 함께 거사 장소인 퇴계로 명동 입구의 지하도로 향했다. 묵직한 전단지를 들고 버스를 탔는데 버스 안 승객들이 다 우리를 주목하는 것만 같았다. 온 시선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특별히 떨리는 감정은 아니었지만, 내가 지금 큰일을 벌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도로 곳곳에는 무장한 계엄군이 보였다. 잠깐 순간이었지만 나의 미래가 전혀 예측이 되지 않을 정도로 불투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나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이종철(철학박사)은 『철학과 비판』(도서출판 수류화개)과 『일상이 철학이다』(모시는 사람들) 그리고 『문명의 위기를 넘어』(공저, 학지원)를 썼다. 그는 『헤겔의 정신현상학』(J. Hyppolite, 1권 공역/2권, 문예출판사), 『사회적 존재론』(G, Lukacs, 2권/4권(공역), 아카넷), 『나의 노년의 기록들』(A, Einstein, 커큐니케이션스북스)등 다수의 번역서들을 냈다. 현재는 연세대 인문학 연구소 전문 연구원이자 인터넷 신문 ‘브레이크뉴스’ 와‘ 내외신문’의 칼럼리스트로 활동하면서 NGO 환경단체인‘푸른 아시아’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