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논리학 개념 운동17-배타적인 선언 판단 형식에 관해[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논리학 개념 운동17-배타적인 선언 판단 형식에 관해
1)
정언 판단 형식이나 가언 판단 형식도 이미 실체성을 전제로 한다. 정언 판단 형식에서 실체는 우연한 개체들이 이루는 무차별한 전체 즉 ‘외적인 개별성’의 관계이다. 가언 판단 형식에서는 두 존재 사이의 관계가 정립된다. 그러나 이 관계는 다만 부분적이며 아직 두 존재에 대해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헤겔은 이런 관계를 ‘부정적 동일성’의 관계라 한다.
이런 가언 판단 형식에서 하나의 존재는 이미 다른 존재에 대해서 특정한 것이다. 즉 A의 존재는 B의 존재를 전제로 ‘B가 아닌 것’으로 규정된 것이다. 가언 판단 형식에서 두 대립하는 규정성 사이의 관계가 출현했지만, 아직 두 대립하는 것은 서로 배타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A가 존재하면, B가 존재하게 되니, 이런 관계는 부분적이며, 여기서 무수히 많은 다양한 관계가 출현한다. A는 C와 관계하며, 또는 D와 관계하고 B는 F와 관계하면서 무수한 관계의 네트워크가 펼쳐진다. 정언 판단 형식에서 각 존재가 무차별한 것(객관 논리학에서 ‘실재성’, ‘실존’에 해당)이었으나 가언 판단 형식에서는 각 존재는 추상적인 특수성(객관 논리학에서 ‘유한성’, ‘현상’에 해당)을 의미한다.
이런 가운데 경험을 통해 배타적 관계가 출현한다. 이 배타적 관계는 A이거나 -A인 것의 관계이다. A는 이제 ‘-A가 아닌 것’ 즉 -(-A)로 규정되니, 규정성이 다시 정립된 것 즉 ‘정립된 규정성’이다.
이때 A와 -A 사이에 다른 것은 없으며(배중율) 그 결과 A와 -A가 전체, 총체성을 이룬다. 이처럼 배타적 선언지의 형태를 지닌 판단 형식이 곧 선언 판단 형식이다. 전형적인 예를 들자면, 생물체에서 암수의 관계이다.
이 선언 판단 형식에 이르면 주어인 일반적 유로서 본질은 술어의 총체성으로서 실체로 실현된다. 양자 사이에는 “개념의 동일성으로서 일반성”이 출현하니, 각자는 “개념 속에 정립된 특수성”이다.(논리학 2부, GW12, 80)
“규정성이 갖는 직접성을 통해서 규정성의 각 계기가 구별된 것으로서 존재하며, 동시에 그런 특수성은 규정성의 관계를 이루는 규정성의 통일을 통해 그 규정성의 총체성으로서 존재한다.”(논리학 2부, GW12, 80)
2)
이런 배타적 선언지의 판단 형식은 주어는 구체적 일반성이며, “단순한 형태 속에 있는 유”이다. 술어는 마찬가지로 유이지만, 이 일반적 유는 이제 “구별된 규정의 총체성” 즉 실체이다. (논리학 2부, GW12, 80)
양자의 관계는 동일한 유가 다른 방식으로 출현한 것이므로 그것의 내포와 외연은 동일하다. 다만, 그것이 출현하는 개념의 형식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즉 주어에서 유 즉 ‘일반성’이라는 개념 형식을 가지지만, 이는 ‘자기 내로 반성된 일반성’이다.
반면 술어에서 유는 자기를 구체적으로 실현한 것이니, 이는 ‘특수성’이지만, 이 특수성은 서로 대립하는 특수성으로 분화되며, 유의 전체 영역을 전개하면서, 이 대립하는 특수성은 대립 속에서 통일된다. 즉 술어는 “주어의 전체 영역을 그러나 특수성의 대결 속에서 보존하는” “특수성의 총체성”이다. (논리학 2부, GW12, 80) 이런 술어는 곧 유[Gattung]가 분화된 종[Art]의 관계이다.
“즉 한번은 유의 단순한 규정성으로서 다른 한 번은 바로 이 동일한 규정성이 자기가 구별된 것들로 전개되는 것을 통해 나타난다. 그러한 방식으로 유는 종의 특수성이 총체화된 것이며 이 총체성이 곧 유의 일반성을 이룬다. 특수성이 전개되면 술어를 이룬다. 특수성은 주어의 전적으로 일반적인 영역을 포함하지만, 동시에 이 일반적 영역을 특수성의 대결 속에서 포함하는 한에서 주어보다 더 일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논리학 2부, GW12, 80)
선언 판단 형식에서 주어와 술어의 관계를 헤겔은 이중적으로 규정한다. 한편으로 그것은 ‘무엇이면서 동시에 무엇이 아닌 것“[sowohl als]이다. 즉 선언 판단 형식은 주어이면서 동시에 술어이다. 여기서 주어와 술어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동일성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즉 객관적 일반성은 그 특수성의 총체성에서 자신을 완전히 보존한다.
그러나 이 선언 판단 형식은 다른 한편 술어의 측면에서 보면 상호 대립을 표현한다. 그것은 ‘무엇이거나 그것과 다른 것이거나, 그 중간은 없는 것’[entweder oder] 이다. 여기서 각자는 특정한 구별이며, 서로 부정적인 관계를 맺는다. 그러므로 주어인 일반적 유는 “규정된 특수자의 통일로서 통일”(논리학 2부, GW12, 81)이다.
3)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왜 일반적 유가 이와 같은 배타적인 선언지의 형태로 출현하는가이다. 헤겔에서 일반적 유가 개체의 추상적 일반성이라면, 이 유가 실현된 종은 서로 무차별하다. 이런 경우 선언지는 경험적인 선언 판단 형식을 이루며, 이런 선택지 사이에는 내적인 분류의 원리가 결여한다.
이 선택지는 그저 경험적으로 발견되는 것일 뿐이며 그 사이에는 배타적 선택성[entweder oder]의 관계는 없다. 비록 여기서 선택지가 완전하더라도 이 완전성은 경험적인 것이며 주관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헤겔에서 선택지가 ‘부정적인 통일’의 관계 속에 있으면, 이런 선택지는 개념 규정에 따라서 보면 자기를 부정한 것을 다시 부정하는 것으로서 개별적 선택지는 이런 전체 속에 자기를 해소하면서, 그런 선택지 전체는 자기 내에서 완결된 것 즉 실체이며, 그것의 총체는 일반적 유를 이루는 것이다. 이때 분류의 원리는 일반적 유 자체에 내재하는 필연적 원리가 된다.
“경험적인 선언 판단 형식은 본래 배타적으로 선택적[entweder oder]임을 언표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종은 다만 어떤 주관적 완전성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타적 선택은 그 선택지 이상의 것을 배제하며 자기 내에 들어 있는 총체적 영역을 완결한다. 이 총체성은 그 필연성을 객관적 일반자가 지닌 부정적 통일 속에 갖는다. 이 객관적 일반자는 개별성을 자기 내에서 해소하고 구별된 종을 규정하고 관련시키는 단순한 원리인 한에서 개별성을 자기 내에 내재적으로 갖는다. 그에 반해 경험적 종을 구별하는 것은 어떤 우연성이며 이 우연성은 외적인 원리거나 따라서 유의 원리가 되지 못하며 이를 통해서 또한 유에 내재하는 규정성이 되지 못한다.”(논리학 2부, GW12, 81)
추상적인 유의 예로서 헤겔은 색깔을 ‘빨간색, 녹색, 노란색 등’으로 구분하는 것을 든다. 이런 구분은 상이한 것일 뿐, 부정적 통일의 관계를 지니지 않는다. 반면, 색깔을 명암으로 구분할 때 이 구별은 대립을 통해 규정되는 것 즉 부정적 통일의 관계를 지닌 것이며 따라서 명암은 일반적 유로서 색깔을 분류하는 내적 원리가 된다.
4)
일반적 유가 이처럼 배타적 통일로 되는 이유는 유가 분화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립하기 때문이다. 즉 A에서 P가 나오면 원래 A는 -P가 되니, 그 결과 A는 P와 -P로 즉 배타적으로 분화된다.
예를 들어 동물에서 인간[P]이 분화되면, 인간이지만 출발점에서 서서 여전히 ‘동물성을 지닌 인간[-P]’과 분화된 인간성이 발전하면서 ‘인간적으로 된 인간[P]’이 출현하게 되는 것과 같다.
“주어와 술어의 구별은 개념의 구별이며, 그러한 술어 속에서 나타나는 종의 총체성은 마찬가지로 이런 개념의 구별 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 그러므로 선언적 선택지의 서로 대립하는 규정은 이런 개념의 구별을 통해 생겨난다. 그런 선택지는 개념의 구별로 환원되니, 왜냐하면 선언적으로 분지하고 부정적인 통일을 드러내는 것은 바로 이런 개념의 구별이기 때문이다.”(논리학 2부, GW12, 82)
“개념 자체는 이를 통해 또한 직접적으로 그것이 전개하는 선택지 가운데 하나[즉 -P]이며 그러나 다른 선택지는 이 일반성을 그 특수성 속에 해소한 것이거나 개념이 규정한 것으로서 규정성[즉 P]이니 바로 그 속에서 일반성이 총체성으로 나타나는 것이다.”(논리학 2부, GW12, 82-83)
이런 배타적 통일의 관계는 대립적이거나 모순적일 수 있는데, 본질론에서 헤겔은 반성 규정을 다루면서 대립이 어떻게 모순으로 나가는가를 설명했다. 대립은 예를 들어 흑백과 같은 것이며, 여기서 양자의 관계는 아직 배타적임이 드러나지 않은 것이다. 반면, 이런 대립하는 것 가운데 양자의 배타성이 드러나면서 모순적인 것이 된다.
개별적인 선택지가 우연적이고 그 통일은 주관적이라면 이 원리는 일반적 유에 대해 외면적이니, 이때 일반적 유는 개별 선택지에 대해 최근 유가 되지 않는다. 반면, 일반적 유가 ‘배타적 통일’로 분화하면, 이 일반적 유는 개별 선택지에 대해 반드시 최근 유가 된다. 왜냐하면, 이 일반적 유가 자기를 분화한 것이 곧 개별 선택지이기 때문이다.
“어떤 유가 종으로 선언적으로 분지하는 것이 아직 이런 형식[배타적 통일]에 도달하지 않았다면, 이것은 자기를 개념의 규정성으로 고양하지 못했으며 그 개념으로부터 출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한다.”(논리학 2부, GW12, 83)
4)
선언 판단 형식은 이미 말했듯이 개념의 이중적인 분지이다. 우선 그것은 주어와 술어로 분지하며, 술어는 다시 배타적인 선택지로 분지한다. 주어는 단순한 규정이며 술어는 서로 대립하는 구별의 총체성이다.
판단은 주어와 술어의 관계이다. 추론은 판단 형식과 판단 형식의 관계이다. 선언 판단 형식에서 주어의 일반적 유와 술어의 실제 즉 구별된 것이 이루는 총체가 합일한다. 그러므로 판단의 운동은 끝난다. 개념의 구별된 규정성이 마침내 다시 통일로 환원되면서 개념이 회복된다.
처음 판단에 들어가기 전 개념의 계기는 아직 분화하지 않는 내적 계기이었다. 개념의 계기가 분화하면서 판단이 성립되었다. 판단의 운동을 통해 분화된 개념의 계기가 다시 통일되니, 개념이 회복되었지만, 이는 단순한 주관적 개념이 아니라 개념이 정립된 것이다.
“이제 판단 형식의 계사인 이 통일성 속에 양극단은 서로 동일함을 통해 몰락하니, 이를 통해 그 통일성은 개념 자체가 되며 사실 여기서 개념은 정립된 것이 된다.”(논리학 2부, GW12, 83)
개념이 정립되면서 개념과 주관과의 관계가 출현하니, 그게 바로 개념 판단 형식이다. 개념 판단 형식은 판단에서 추론으로 이행하는 매개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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