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국가> 강해(82)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82)
Ⅵ. 본론 3 : 부정의와 현실 비판 – 타락한 정치체제들 분석(제8권-제9권)
A. 부정의한 나라들과 부정의한 개인들.
4. 민주정과 민주정적인 인간, 필수적인 욕구와 필수적이지 않은 욕구(555b-562b)-(2)
[558c-562b] 민주정적인 인간
* 소크라테스는 이제 민주정에 상응하는 개인을 살피기 전에 그가 과두정적 인간에서 어떤 방식으로 생겨나는지를 먼저 고찰한다. 이곳에서도 그러한 변화 과정은 앞서와 동일한 비유 즉 아버지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고 또 어떻게 아버지와 다르게 변해가는 지를 통해 제시된다.(558c) 절약하는φειδωλός 과두정적인 사람의 아들은 아버지의 영향 아래 길러져 소비적이며ἀναλωτικός 돈벌이에 도움 되지 않는 온갖 쾌락ἡδονή들을 힘으로 다스린다. 그런데 이즈음에서 소크라테스는 보다 분명한 논의를 위해 욕구를 ‘필수적인ἀναγκαῖος 욕구ἐπιθυμία’와 ‘필수적이지 않은 욕구’로 나눈다.(558d)
* 필수적인 욕구는 우리가 물리칠 수 없는ἀποτρέψαι 욕구들, 충족됨으로써 우리를 이롭게 하는ὠφελοῦσιν 욕구들을 말하고, 필수적이지 않은 욕구는 어릴 때부터 훈련한다면μελετῷ 벗어날 수 있는ἀπαλλάξειεν 욕구들로서 어떤 좋은ἀγαθός 일도 하지 않는 욕구들이다. 이것들 각각의 예παράδειγμα를 들자면 필수적인 욕구란 건강ὑγιεία과 활력εὐεξία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만큼 먹고자 하는 욕구, 요리ὄψον에 대한 욕구 등이다.(559a) 먹을 것에 대한 욕구는 이로운ὠφέλιμος 것이라는 점에서도, 충족이 안 될 경우 생명활동ζῶντα을 중단시킬 수 있다παῦσαι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이것들을 넘어서는 그 밖의 다른 종류의 먹을 것들에 대한 욕구는 필수적이지 않은 욕구들로 몸에도 해롭고βλαβερός 영혼이 현명해지고φρόνησιν 절제하는 데τὸ σωφρονεῖν에도 해롭다,(559b) 이러한 욕구들은 소비적인ἀναλωτικός이지만 그에 반해 필수적인 욕구들은 일들τὰ ἔργα이 이루어지는 데에 유용하므로χρήσιμος 돈 벌어들이는χρηματιστικός 것이다. 성욕ἀφροδισίων ἐπιθυμία과 같은 그러한 쾌락ἡδονή과 욕구ἐπιθυμία로 가득 차 필수적이지 않은 욕구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조금 전 수벌κηφήν이라고 이름 붙였던 사람들이고, 필수적인 욕구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곧 절약하는φειδωλός 사람이자 과두정적인 사람이다.(559c)
* 이러한 과두정적인 사람에서부터 민주정적인 사람이 생겨나는 경위는 이렇다. 즉 교육도 시키지 않고ἀπαιδεύτως 돈을 아껴가며 길러낸 젊은이가 수벌이 그러듯 꿀μέλι을 맛보고γεύσηται 온갖 종류의 다채로운ποικίλος 쾌락을 제공할 수 있는 사납고αἴθων 무서운 짐승θήρ들과 어울릴 때,(559d) 그 사람 안에 있는 과두정이 민주정으로 변하기 시작μεταβολή한다. 이 때 이 젊은이는 닮은ὁμοῖος 것이 닮은 것을 지원하듯이 욕구들 중 어느 한 종류가 그것과 닮은 외부 욕구의 지원을 받아 바뀌는데, 만일 이런 지원에 맞서서 그를 훈계하고 책망하는 그의 아버지나 다른 친척들로부터 동맹군이 와서 이 젊은이의 안에 있는 과두정적인 요소를 지원할 경우(559e) 그 사람 안에서 내분στάσις과 이에 대한 반동ἀντίστασις 즉 자기 자신과의 싸움μάχη이 일어난다.
* 이 싸움에서 민주정적인 요소τὸ δημοκρατικὸν가 과두정적인 요소에 굴복하여ὑπεχώρησε 이 젊은이의 영혼 안에 염치αἰδώς와 같은 것이 생겨난다면, 다시 질서가 잡히겠지만κατεκοσμήθη 대개의 경우 아버지의 양육τροφή에 대한 무지함ἀνεπιστημοσύνη 때문에, 추방당한 욕구들과 같은 종류의 욕구들이 다시 뒤이어 자라나고 많아지고 또 강력해지곤 한다.(560a)
* 이후 플라톤은 젊은이의 영혼에 나타나는 이러한 변화들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는데 그것이 갖는 문학적, 수사적 성격을 고려하여 최대한 전문에 가깝게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 그것들은 이 젊은이의 영혼의 성채ἀκρόπολις에 신의 사랑을 받는θεόφιλος 사람들의 마음διάνοια에서 최상의 파수꾼φρουρός이자 수호자φύλαξ 노릇을 하는 훌륭한καλός 배움μάθημα과 활동ἐπιτήδευμα, 진실된ἀληθής 말λόγος이 비어있음κενός을 알아채고는, 마침내 그 성채를 점령해 버린다.(560b) 거짓되고ψευδής 허풍 가득한ἀλαζών 말과 믿음δόξα이 젊은이의 마음을 차지해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 저 로토스를 먹는 자들Λωτοφάγοι에게로 가서 공공연히 눌러 살면서 친척들이 보낸 지원군βοήθεια은 물론 연장자πρέσβυς들의 말도 사절πρέσβις로 받아들이지 않는다.(560c) 젊은이의 영혼을 장악한 허풍 가득한 말은 염치αἰδώς를 어리석음ἠλιθιότης이라 칭하며 시민권을 박탈해ἀτιμόω 망명객φυγάς으로 만들어 밖으로 내몰고, 절제σωφροσύνη를 남자답지 못함ἀνανδρία이라 부르며 진창에 처박아 내쫓아버린다. 그리고 절도 있음μετριότης과 적절한κόσμιος 지출δαπάνη도 촌스럽고ἀγροικία 자유인답지 못한 짓ἀνελευθερία이라고 설득하여 다수의 이롭지 못한 욕구들과 한 편이 돼서 그것들을 추방해버린다περορίζουσι.
* 그리고 그것들은 신들에 의해 점령당하고 거창한 의식τέλεσις으로 입교하는τελουμένου 젊은이의 영혼에서(560d) 이런 것들을 어떻게든 비워내고 정화하고서καθήραντες, 그다음에는 오만함ὕβρις과 무정부상태ἀναρχία, 낭비ἀσωτία와 몰염치ἀναίδεια에 화환을 씌워 많은 가무단χορός과 함께 복귀시킨다. 그리고 오만함ὕβρις을 기품있음εὐπαιδευσία으로, 무정부상태를 자유ἐλευθερία로(560e), 낭비벽ἀσωτία은 화통함μεγαλοπρέπεια으로, 몰염치는 용기ἀνδρεία로 부르며 찬양하고 미화한다. 필수적인 욕구들 속에서 길러진 젊은이는 이런 식으로 필수적이지 않고 이롭지 않은 쾌락들을 풀어주고 해방하는 쪽으로 변화한다. 그리하여 이 젊은이는 필수적인 쾌락 못지않게 필수적이지 않은 쾌락을 위해서도 재물χρῆμα과 수고πόνος와 시간을 소비하며 삶을 영위한다διατριβή.(561a) 다만 만일 그가 운이 좋아 거기에 지나치게 빠져들지 않는다면, 게다가 나이도 좀 들어서 질풍노도θόρυβος도 지나가고 쫓겨났던 것들 중의 일부를 다시 받아들이고 또 침입자들에게 자기 자신을 송두리째 내맡기지도 않는다면, 그는 여러 쾌락을 동등하게 대우하면서 지낼 것이다. 그리고 마치 추첨에 뽑히기λαχούσῃ라도 한 듯, 그때그때의 쾌락에게 그것이 충족될πληρωθῇ 때까지 늘 자신에 대한 지배권ἀρχή을 그것에게 내어주고, 그러고는 다시 다른 쾌락에게 내맡기면서 결코 그 어떤 쾌락도 소홀히 대하지 않고 동등하게ἐξ ἴσου 키운다. 나아가 누군가가 아름답고καλός 좋은ἀγαθός 욕구에 속하는 쾌락은 높이 평가하고 그렇지 않은 다른 쪽은 제재를 가하고 예속시켜야 한다δουλοῦσθαι고 말해준다고 해도(561b) 그는 이런 이야기를 용납하거나 자신의 요새φρούριον 안으로 들이지 않고 오히려 이 모든 것들을 부정하며 쾌락은 다 마찬가지라고, 모두 동등하게ἐξ ἴσου 평가τιμητέας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이런 사람은 그때그때 닥쳐오는 욕구들에 그런 식으로 영합하면서χαριζόμενος 하루하루 살아간다.(561c) 어떤 때는 술 취해서 아울로스 선율에 심취하는가 하면, 또 물만 마시면서 살을 빼기도 하지. 어떤 때는 또 신체단련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게으름 피우며 모든 것에 무관심ἀμελής하기도 한다. 또 어떤 때는 철학φιλοσοφίᾳ을 하는 것처럼 지내기도 하고. 종종 나랏일을 하기도πολιτεύεται 하고 벌떡 일어나 떠오르는 대로 말하고 행동한다. 전사πολεμικός가 부러우면 그쪽으로 옮겨가고 돈 버는 사람χρηματιστικός이 부러우면ζηλώσῃ 또다시 그리로 간다. 이 사람의 인생에는 그 어떤 질서τάξις도 강제ἀνάγκη도 없다. 하지만 그는 이런 인생을 즐겁고ἡδύς 자유인다우며ἐλευθέριος 복된μακάριος 삶이라 부르면서 평생토록 내내διὰ παντός 그렇게 살아간다.(561d)
* 이에 아데이만토스는 평등을 추구하는ἰσονομικός 사람의 삶βίος을 아주 제대로 설명해 주셨다고 답하고 소크라테스는 이 사람을 온갖 성격ἦθος으로 가득 찬μεστός 다면적인παντοδαπός 사람, 아름답고 다채로운ποικίλος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이처럼 그의 삶 안에는 정치체제와 생활방식τρόπος의 사례들이 아주 많이 있어서 남녀를 가리지 않고 많은 이들이 그를 부러워한다고 말한 후(561e) 이 사람을 민주정에 상응하는 민주정적인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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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8c ‘이 체제에 상응하는 개인’ : 명예정과 명예정적인 인간, 과두정과 과두정적 인간은 전자가 후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이해하면 철학자왕정은 철학자들로 구성된 것이 된다. 그것은 설명의 편의를 위해 제시되었던 대문자와 소문자의 비유에서 대문자와 소문자의 관계가 그렇듯이 다만 크기와 규모만 다를 뿐 서로 비슷한 특징을 갖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붙여진 이름들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그것의 변화 과정은 형식상 평행적으로 서술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서로에 상응하는 비슷한 특징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내용적으로 이미 유기적인 관계를 갖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 558c ‘절약하는pheidōlos 과두정적인 사람’ : 부를 추구하는 과두정적인 사람은 돈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 필수적인 욕구를 넘어서는 것에 돈을 쓰려하지 않는다. 그들은 돈벌이에 도움 되지 않는 온갖 소비적인 쾌락들을 힘으로 다스린다. 이들은 수벌이 그러듯 꿀을 맛보고 다채로운 쾌락을 제공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점차 필수적이지 않은 욕구 소비적이고 사치스런 욕구를 갖게 되면서 민주정적인 사람으로 변화한다.
* 558c ‘일들ta erga이 이루어지는 데에 유용하므로’ : 여기서 ‘일들’이란 말 그대로 돈 되는 일을 말한다. ‘돈 되는데 유용한chresimos’ 일을 한다는 것은 곧 ‘돈을 벌어들이는chrematistikos’ 일을 한다는 것이다. 과두정적인 사람에게 절약 또한 돈 되는데 유용한 일로서 그 자체로 돈을 벌어들이는 일이다.
* 558d 필수적 욕구 : 의식주와 관련하여 생물로서 생존 및 자기 보전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에 대한 욕구를 말한다. 과두정적 인간은 돈에 대한 욕구에 매몰되어 있어 돈을 쓰는 데 아주 인색하여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필수적인 것 이상을 욕구하지 않는다.
*558d 필수적이지 않은 욕구 : 생존에 필요한 필수적인 욕구를 이상의 쾌락과 사치와 관련한 것들에 대한 욕구를 말한다. 이러한 욕구는 좋은 일도 하지 않고 해로운 것이지만 어릴 때부터 제제와 교육을 받으면 벗어날 수 있다. 그런데 혹자는 ‘선을 추구하려는 도덕적 욕구’ 같은 것도 생물학적 자기 보전과 관련한 필수적인 욕구를 넘어선 것이라는 점에서 이곳에 말하는 ‘필수적이지 않은 욕구’에 해당하는 것이 되고 그렇다면 좋은 것도 이로운 것도 아닌 것이 되는데 그것은 플라톤의 주장과 어긋난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표시할 수 있다. 그러나 플라톤이 여기서 말하는 욕구epithymia는 나라의 3계층 중 생산자 계층에 상응하는 개인 영혼의 3부분 중 욕구 부분이라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생존과 자기 보전과 관련한 일종의 물질적 생물학적 욕구를 가리킨다. 그런데 한편으로 넒은 의미에서 영혼 자체가 뭔가를 인식하고 가치를 지향하고 그에 부응하는 행위를 유발하는 기능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의미에서 욕구 또는 욕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본고에서 사용되는 욕망구조라는 말에서 욕망이라는 표현 또한 그러한 의미를 지닌다. 그런 측면에서 앞서 말한 ‘선을 추구하기를 바라고 그렇게 하려고 하는’ 이른바 도덕적 욕구는 영혼의 이성 부분이 갖고 있는 욕구 내지 욕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558d ‘사납고 무서운 짐승thēr들’ : 과두정 치하에서 부를 추구하다가 경쟁에 밀려 부를 탕진하여 빈털터리가 된 사람들 즉 수벌 같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부자들에 적대감을 품고 그들의 돈을 뜯어 소비적인 쾌락에 빠져들고 부유층 젊은이들을 유혹하여 필수적이지 않은 사치스런 욕구를 갖게 만든다. 그리고 끝내 그들은 점차 늘어난 사회적 불만층을 선동하여 기득권자들을 무너뜨리는 주도 세력이 된다.
* 559c ‘성욕aphrodisiōn epithymia’ : 물론 생물학적 자기 보전 즉 생식을 위한 필수적 욕구로서 성욕도 있다. 그러나 aphrodisios가 성적 쾌락과 관련하여 사용되는 형용사라는 점에서 여기서 말하는 성욕은 생식을 넘어서는 쾌락을 위한 비필수적 욕구로서 성욕이다.
* 559d ‘교육시키지 않고’apaideutos, 560a ‘아버지의 양육trophē에 대한 무지함anepistēmosynē 때문에’ : 과두정적 아버지는 돈벌이에 도움 되는 것이 아닌 한, 어떤 교육과 양육에도 무관심하거나 무지하다. 플라톤에게 교육과 양육은 나라와 개인을 보전하는 가장 중추적이고 핵심적인 토대이다. 이곳에서도 젊은이를 타락시키는 가장 큰 원인은 교육과 양육의 부재이다. 교육과 양육에 무지한 아버지의 가르침은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들에게서 추방시킨 필수적이지 않은 욕구들이 없어지기는커녕 다시 뒤이어 자라나 많아지고 강력해진다.
* 560c ‘로토스를 먹는 자들’lōtophagoi : <오뒤세이아>(9권 83-104)에 나오는 자들로 이곳에선 과두정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꿀을 맛보게 하고 필수적이지 않은 온갖 쾌락에 빠지게 하여 민주정적 인간으로 변하게 만드는 수벌들과 수벌을 따르는 민중들을 가리킨다. 민주정 치하 민중과 민주정적 인간에 대한 플라톤의 부정적 인식이 담긴 말이다.
* 560c-e : 타락해가는 젊은이들에 대한 안타깝고 비탄 섞인 소크라테스의 심정이 실감나게 표출되어 있다. 이러한 탄식은 494d에도 나오는데 많은 연구자들은 이러한 젊은이로 플라톤이 염두에 두고 있었을 대표적인 인물로 알키비아데스를 꼽고 있다.(J. Adam. 이 부분 노트 참고)
* 560d ‘거창한 의식으로 입교하는 젊은이의 영혼에서 이런 것들을 어떻게든 비워내고 정화하고서’ : 젊은이들에게서 어떻게든 좋은 것을 비워내고 없앤다는 표현에 ‘정화하고서kathērsantes’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라고 볼 수 있다. 이곳에서 플라톤이 말하고 있는 종교 의식을 주석가들은 엘레우시스Eleusis 밀교 의식으로 보고 있는데 맥락상 플라톤은 당대 그리스 사회에서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던 엘레우시스 밀교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흥미롭게도 플라톤은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모종의 궁극의 앎에 이르는 통로로 이러한 비의(秘儀)적 입문 내지 비밀스런 가르침을 담은 장면을 자주 인용하고 있다. 플라톤에게 수학과 기하학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피타고라스학파 역시 기본적으로 궁극의 앎은 비의적 입문과 수행을 통해서 다다를 수 있다고 가르쳤다. <고르기아스> 497c, <향연> 210a, 218b, <테아이테토스> 155e-156a, <법률> 666b, 870d-e, <파이드로스> 250b-c, 249c, <파이돈> 81a, 69c, <국가> 378a 등(J. Adam 이 부분 노트 참고)
* 561a ‘화통함megalopreia’ ; megalopreia는 호방함, 큰 도량을 의미하는 말로 486a에도 나온다.
* 561b ‘어떤 쾌락은 아름답고 좋은 욕구에 속하고 …… 어떤 쾌락은 나쁜πονηρός 욕구’ : 이와 관련해서는 <고르기아스> 494e, <필레보스> 13b 이하, <프로타고라스> 353d 이하, <법률> 733a 이하 등 참고.
* 561c ‘쾌락은 다 마찬가지라고, 모두 동등하게 평가되어야 한다.’ : 젊었을 때 나쁜 쾌락에 휩쓸려 있다가 나이 들어 운이 좋게 이전의 좋은 쾌락의 일부를 받아들인다 해도 여전히 좋은 쾌락과 나쁜 쾌락을 구분하지 못하고 모두 마찬가지로 동등한 쾌락으로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플라톤에게 진정한 동등이란 주어진 조건이나 자질에 맞게 그 값어치대로 나누거나 대우하는 이른바 비례적 동등 내지 ’기하학적 동등‘hē isotēs hē geōmetrikē이다.(<고르기아스> 508a) 민주정과 민주정적 인간이 여기서 말하는 동등이란 맹목적인 상대주의에 입각한 형식적이고 산술적인 동등이라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에서 동등은 아니다.
* 561c ‘이 모든 것들을 부정하며’ : ‘부정하며’의 원어 anaueuō 동사의 일차적 의미는 ‘고개를 뒤로 젖히다’이다. 당대 그리스에서 그런 행위는 우리들이 부정을 표시할 때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것처럼 부정을 나타내는 행위로 사용되었다.
* 561e ‘평등을 추구하는ἰσονομικός 사람의 삶’ : 민주정은 동등한 자에게나 동등하지 않은 자에게나 동등함을 똑같이 나누어 준다.(558c) 그리고 앞에서 살폈듯이 쾌락에도 분명 좋고 나쁨이 있고 각기 그것만의 고유한 값어치를 갖는 것들이 있음에도 민주정적 인간은 그것들을 구분하지 않고 동등하게 평가한다. 아데이만토스가 민주정적 인간의 삶을 평등을 추구하는 사람의 삶으로 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실제로 민주정 치하에서는 각자의 적성과 소질의 차이에 상관없이 모두가 물질적 욕구를 중심으로 등질화되어 있음을 고려하면 최소한 욕망구조의 측면에서 계층에 상관없이 모두가 제멋대로의 자유를 평등하게 누리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사회구성원 모두가 산술적으로 평등하게 무차별적 자유를 제멋대로 행사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예상되는 갈등을 방임하는 것으로서 사회적, 법적 안정성을 와해시켜 결국에는 나라를 무너뜨리는 근본 원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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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문자와 소문자 비유에 따른 논의 구도 그대로 이곳에서도 타락한 정치체제와 개인 즉 과두정과 과두정적 인간, 민주정과 민주정적 인간은 각각 서로에 상응하면서 서로 닮아 있다. 그런데 이때 유념할 것이 있다. 그것은 명예정, 과두정, 민주정이 비록 타락한 정치체제일지라도 모두 정치체제인 한, 기본적으로 세 가지 계층 즉 통치계층, 전사 계층, 생산자 계층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그에 상응하여 명예정적 인간, 과두정적 인간, 민주정적 인간 또한 영혼 3분설에 따라 영혼의 이성 부분, 기개 부분, 욕구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이곳에서 정치체제의 타락은 이러한 3계층과 3영혼들 간의 관계의 재편 내지 변질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명예정은 전사 계층이 통치의 주도권을 갖는 관계로 재편된 경우이고, 그것을 닮은 명예정적인 인간은 영혼의 기개 부분이 행위의 주도권을 갖는 관계로 재편된 경우를 가리킨다. 그러나 그렇다고 통치 계층 내지 통치 기능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정치체제인 한, 명예정에서도 통치 계층 내지 통치 기능은 존재하되, 다만 통치 계층 대부분이 전사 계층으로 대체되었거나 통치 기능이 그들의 욕구에 부응하는 도구로 변질 또는 전락한 상태로 있다. 과두정과 민주정도 마찬가지이다. 과두정에서도 통치 계층 내지 통치 기능은 존재하되 통치 계층이 부자들로 대체되었거나 통치 기능이 부자들의 욕구 즉 부를 보다 효율적으로 축적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 상태에 있다. 민주정에서도 통치 계층 내지 기능이 존재하긴 하되 통치 계층이 민중으로 대체되었거나 통치 기능이 민중들의 욕구 즉 제멋대로의 자유를 보다 효율화하기 위한 도구로 대부분 전락한 상태에 있다.
* 정치체제를 닮은 개인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명예정적 인간에서 영혼의 기개 부분이 주도권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영혼의 이성 부분이 존재하긴 하되 그 기능이 더 이상 제대로 된 본래의 이성 기능이 아니라 기개 부분에 영합하는 도구적 이성 기능으로 대부분 변질되거나 전락했다는 것을 말한다. 과두정적 인간과 민주정적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과두정적 인간에서 부를 위한 욕구가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는 것 역시 영혼의 이성 부분이 존재하긴 하되 그 기능이 더 이상 영혼의 기개 부분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부에 대한 욕망을 보다 강화하기 위한 도구적 이성 기능으로 대부분 변질되었거나 전락했다는 것을 말한다. 민주정적 인간에서 영혼의 욕구 부분이 주도권을 갖게 되었다는 것 역시 영혼의 이성 부분, 기개 부분이 존재하긴 하되 그 부분들 모두 욕구 부분으로 하여금 필수적 욕구를 넘어 사치스런 욕구로까지 확대하고 강화시키기 위한 도구로 대부분 변질되었거나 전락했다는 것을 말한다. 욕망구조의 변질 차원에서 보면 과두정적 인간 이후의 단계에 이르면 영혼의 부분들 모두 물질적 욕구에 지배되어 있다. 영혼의 이성 부분과 기개 부분은 다만 그 욕구를 효율적으로 실현하는 도구적 기능으로 전락해 있다.
* 민주정에 관한 논의에서는 ‘제멋대로의 자유’가 민주정의 핵심적인 특징으로 제시되었지만, 이곳 민주정적인 사람에 관한 논의에 와서는 ‘필수적이지 않은 욕구의 추구’가 민주정적 인간의 핵심적인 특징으로 언급되고 있다. 나라에서 제멋대로의 자유가 허용되어 있기에 개인이 필수적이지 않은 욕구까지 추구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둘은 서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사실 나라와 개인 타락과정에서 이미 과두정 단계에 이르면 욕망구조에서 계층과 영혼의 부분들 전체에 걸쳐 물질적 욕구가 지배하고 있고 통치 기능과 이성 기능은 그것의 효율적극대화를 위한 도구로 전락해 있다. 그런데 과두정적 인간이 어떻게 민주정적 인간으로 변화하는가를 논의하면서 플라톤은 흥미롭게도 이 물질적 욕구를 ‘필수적인 욕구’와 ‘필수적이지 않은 욕구’로 구분하고 이후 민주정적인 인간이 참주정적 인간으로 변화하는 단계에 가서는 그러한 욕구들에 이어 불법적인 욕구까지 제시한다. 그리고 이처럼 세 가지로 구분된 욕구들은 물질적 욕구로 등질화된 과두정적 인간, 민주정적 인간, 참주정적 인간의 욕구 각각을 보다 세부적으로 구분하고 규정짓는 핵심적인 특징들로 제시된다. 이것은 나라와 개인의 타락과정을 욕망구조의 변질로 설명하려는 플라톤의 기본 의도에 부합하는 것으로서 과두정적 인간 이후 개인 영혼의 타락과정에서 물질적 욕구가 어떻게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방식으로 타락의 심도를 더해가면서 끝내 불법적인 욕구로까지 변질되어 가는지를 잘 드러내 준다. 그러니까 영혼의 부분들은 욕구 부분의 세분화까지 포함하면 ‘이성 부분’, ‘기개 부분’, ‘필수적 욕구 부분’, ‘필수적이지 않은 욕구 부분’, ‘불법적인 욕구 부분’으로 나누어지고 그것들 각각은 철학자 왕정과 이후 타락을 더해가는 정체들에 각기 상응하여 그것을 닮은 사람들의 핵심적인 특징들로 제시되고 있는 셈이다. 나중 밝혀지겠지만 결국 정의로운 개인과 부정의한 개인의 판정이 영혼의 부분에서 이성 부분에 충실한 자와 욕구 부분 중 최악의 상태인 불법적인 욕구에 매몰된 자들이 갖는 행복과 불행의 크기로 결정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곳에서 제시된 욕구의 세분화와 그에 상응하는 정체적 인간들의 구분 또한 그 궁극의 판정을 위한 플라톤 자신의 주도면밀한 준비 작업의 일환이라 할 것이다.
* 흥미롭게도 플라톤은 이곳에서 제멋대로의 자유를 구가하는 민주정적 인간을 논하면서 일단 민주정적 인간의 삶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들 모두가 일상에서 평생토록 내내dia pantos 평등하고도 지속적으로 제멋대로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561d) 게다가 이곳에서 플라톤이 들고 있는 제멋대로의 자유에 해당하는 사례들도 이른바 타인을 해치는 부도덕한 행위나 타인에 대한 간섭이 아닌 개인이 그냥 자신을 위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삶의 행태들로 구성하고 있다. 플라톤은 나중에 드러날 실제 전개와 상관없이 일단 민주정과 민주정적 인간의 삶을 민중들이 기대하고 믿고 있는 그대로 그들의 희망에 맞추어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이곳에서 그려진 민주정과 민주정적 인간이 실제와 무관하게 이곳 논의 계획에 맞게 플라톤이 설정한 ‘플라톤의 민주정과 민주정적 인간’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러한 민주정과 민주정적 인간을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려진 그림 그대로 따로 떼어놓고 들여다보면 그것은 인간이 서로 평등하게 제멋대로의 자유를 평생토록 누릴 수 있는 상황 즉 개인들이 일상에서 타인의 자유를 서로 침해하지도 타인으로부터 어떠한 자유도 침해 받지 않으면서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자유롭게 선택하고 누릴 수 있는 꿈같은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곧 다가올 수밖에 없는 파국에 대한 무지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제 그렇게 될 수 없는 다만 대중의 환상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꿈같이 펼쳐놓은 민주정적 인간의 그러한 삶의 양태들 그 자체는 플라톤의 생각과 무관하게 끊임없이 인간의 자유로운 삶의 낭만과 쾌락을 꿈꾸는 후대의 수많은 사람들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다. 특히 플라톤이 이곳에서 동원한 풍부하고도 실감나는 문학적 수사는 거부감이전에 욕망하는 존재로서 인간을 바라보는 많은 문학가들과 예술가, 사상가들에게 많은 영감과 함께 큰 감명을 안겨다 주었다. 어쩌면 민주정의 제멋대로의 자유는 원하는 것을 한다는 의미에서 근대적 자유 이념으로서 소극적 자유를 넘어서는 적극적 자유의 선구일 수도 있다. 그래서 저명한 <국가>의 주석가 아담(J. Adam)조차 599d 부분 노트에서 플라톤의 의도와 무관하게 그가 후대에 미친 영향과 정황을 아래와 같이 감탄조로 서술하고 있다. “이곳에서 플라톤이 묘사한 민주적 인간의 기원은 고대와 현대 문학 전체를 통틀어 가장 장엄하고 웅장한 글 중 하나이다. 롱기누스(Longinus)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곳 대부분에서 플라톤의 문체는 ‘마치 넓디넓은 바다처럼 풍요로움 속으로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거대함’을 보여준다. 숭고함의 본질을 ‘웅대한 사상과 이미지, 그리고 언어의 가득 찬 조수’ – 소리나 거품조차 일지 않을 만큼 깊고 가득 찬 조수 -에서 찾는 이들에게 이보다 더 나은 예시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플라톤 특유의 제사장적 풍모에 대해 롱기누스로부터 최고의 찬사를 전해 받고 있다. 특히 그의 <숭고에 대하여> 33~36장을 보면, 롱기누스가 정의한 ‘고결한 정신의 울림’으로서의 숭고함이 단순한 메아리 그 이상으로 생생하게 느껴진다. 반면,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뉘시오스는 전혀 다른 평가를 내리기는 하지만, 그의 현학적인 비판을 보면 오히려 아티카 수사학자들에 대한 공부만으로는 플라톤을 심판할 자격이 부족하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플라톤의 이 대목은 문체의 고결함뿐만 아니라 심리학적 통찰력 면에서도 매우 놀랍다. 인간 사회의 ‘카멜레온’으로 묘사된 민주정적 인간에 대한 서술(561c 이하)은 시대를 초월한 초상화라 할 수 있다. 실제 사실에 대한 묘사로서는 여느 때처럼 다소 과장된 면이 있으나, 매우 생생하고 강력하다. 이것은 개인과 국가 사이에 대한 플라톤적 유추가 거장의 손을 거칠 때, 국가뿐만 아니라 개인의 영혼이 작동하는 방식을 풀어내는 얼마나 훌륭한 단서가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 플라톤이 그리고 있는 민주정과 민주정적 인간은 앞서 살폈듯이 아테네 민주정의 현실과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당대 그리스 민주정의 모습과도 상당 부분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제8권에서 타락한 정치체제와 개인의 한 양태로서 민주정과 민주정적 인간을 플라톤 자신 어떻게 규정하고 있고 그러한 플라톤의 생각이 지닌 철학적 의미는 과연 무엇인지를 살피는 일이라 할 것이다. 일단 플라톤에게 민주정은 과두정에서 소외된 민중들이 선도자를 앞세워 혁명을 통해 세운 정체이고 그 민중들이 추첨을 통해 직접 관직에 참여하고 무엇보다 제멋대로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정체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살핀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에 비추어 보면 그러한 민주정이 플라톤에게 왜 타락한 정치체제일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선 플라톤의 민주정은 누구나 상관없이 관직이건 어떤 사회적 직분이건 마음대로 참여하고 무엇이든 원하는 것이면 제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내세우고 있으나 그것은 원천적으로 인간 각자가 갖는 다양하고도 서로 다른 자연적 본성과 소질을 철저히 무시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나라를 통치하고 관리하며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수호하는 일은 그러한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적성과 능력을 갖춘 자가 맡아야 하지 추첨이라는 무작위 방식을 통해 아무나 맡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의 유지와 보전에 전혀 유익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 이에 반해 플라톤의 철인왕정은 서로 다른 자연적 본성과 소질에 따라 각자 원하는 사회적 직분과 역할을 배정하여 그것의 수행을 통해 각자가 갖고 있는 다양하고도 고유한 나름의 행복감을 누리게 한다. 이런 점에서 플라톤에게 민주정은 철인왕정과 거리가 먼 타락한 정치체제이다. 물론 민주정도 사회적 직분과 역할과 관련하여 스스로를 정당화할 수 있는 배경과 바탕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민주정은 명예정과 과두정을 거치면서 본래의 다양했던 소질과 적성을 제대로 길러가지 못한 채 물질적 욕구가 지배하는 환경 속에서 욕망구조 상 돈을 추구하는 성향으로 등질화된 상태에서 그에 부합하는 정치체제로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라톤에게 욕망구조의 등질화 그것도 욕구 부분의 지배로 등질화되었다는 것은 제한된 물질적 재화에 대한 경쟁을 필연적으로 초래하고 결국 나라는 양육강식의 논리에 따라 부자의 나라와 가난한 자의 나라로 분열한다. 이것은 서로 다른 것들의 조화와 공존을 꿈꾸는 플라톤으로선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 이제 민주정의 제멋대로의 자유와 민주정적인 인간의 필수적이지 않은 욕구는 서로를 강화하는 힘으로 작용하면서 평생토록 평등하게 그것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애초의 기대들을 무참하게 깨트리고 만다. 상호 동등을 내세워 위계와 질서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사되는 방만한 자유와 필수적이지 않은 욕구는 무분별한 상호 침탈과 부류간 다툼을 불러일으키다가 결국은 침달린 수벌같은 자들이 지배하는 비참한 예속 관계를 낳는다. 플라톤은 이것이 초래하는 결과를 참주정의 등장으로 이어서 다루고 있지만, 이즈음에서 우리는 이런 질문도 던져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러한 단계에서 더 이상 타락하지 않고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과연 그것은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우리는 그것을 위한 대표적인 방책으로 가장 먼저 홉스(T. Hobbes)의 사회계약론을 떠올릴 것이다. 홉스에 따르면 민중들의 계산적 이기심은 서로가 똑같이 늑대와 늑대인 상태가 야기할 약육강식의 관계가 결국 그들 모두를 공멸로 이끌 것임을 알아차리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통제해 줄 정부를 상호 합의로 수립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정부에 이양하는 이른바 사회 계약의 방식으로 공멸의 위기를 벗어난다. 실제로 홉스의 사회 계약론은 이런 사상적 특징에 힘입어 실제로 이후 자유주의 국가들의 정부 수립에 이론적 바탕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서양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플라톤이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그대로 제멋대로의 자유의 과잉은 결국 사회를 분열시키고 역설적으로 프롬(E. Fromm)이 말한 대로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불러일으켜 결국은 강한 권력에 자신을 자발적으로 복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시피 20세기 나치즘과 파시즘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나치즘과 파시즘의 배경을 들여다보면 플라톤이 이곳에서 피력하고 있는 참주정의 등장 배경과 마치 2000년 후의 일을 내다보기라도 하듯 거의 그대로 일치하고 있다.
* 참고로 니체 이후 그를 계승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및 현대의 여러 욕망 관련 이론들은 개인의 욕망을 폭력적으로 억압하는 거대 권력 또는 담론들에 대한 사상적 비판 근거로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 이후의 지식인들 특히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불러일으키면서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사적인 개인의 권력의지 차원을 넘어 국가 권력자의 욕망 차원에서 보면, 나치의 히틀러가 스스로 니체의 초인임을 자임하고 자신의 욕망을 권력의 힘을 빌려 폭력적으로 표출했듯이, 어용적 지식인들이 그 이론을 끌어들여 국가 권력자의 무분별한 욕망마저 자연스런 욕망인 양 뒷받침하고 부추길 경우 가늠하기조차 힘든 절망과 폐해로 이어질 수 있다.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 극우 정치가들이 득세하는 것도 권력자 자신의 욕망을 소외된 대중의 욕망에 투사하여 마치 대중의 욕망을 대리하는 것처럼 위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세계 제일의 강대국이자 민주주의의 표상이라고 자부하는 미국의 최고 권력자가 마치 이곳 민주정적 인간이 그러하듯 자신의 욕망을 제멋대로 행사하고 있는 작금의 사태는 우리가 현재 목도하고 있듯이 회복하기 힘든 세계사적 불행으로 귀결되고 있다. 플라톤이 민주정적 인간의 타락과정을 서술하면서 탄식을 담아 그리고 있는 젊은이의 모습이 트럼프의 한창 시절 모습과 오버 랩 된다해도 전혀 부자연스럽거나 어색하지 않다. 목하 트럼프는 마치 당대 알키비아데스가 그랬듯이 젊은 시절의 욕망 그대로 탐욕을 키워가며 끝내 욕망의 극점에 다가서 최고 권력자가 된 지금에도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마치 자신이 받아야 할 당연한 보상이라도 되는 양 아무런 수치심 없이 환호와 갈채를 받아가며 여전히 자신의 정치적 욕망과 이기적 탐욕에 사로잡혀 침략전쟁까지 불사하고 있다.
* 우리는 이제 민주정과 민주정적 인간이 어떻게 어떤 과정을 거쳐 폭압적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한 참주정과 참주정적 인간, 참주로 변화해 가는지를 다음의 논의 주제로 남겨두고 있다. 플라톤이 이곳 <국가>에서 그리고 있는 ‘민주정과 민주정적 인간’의 ‘참주정과 참주적 인간’으로의 변화는 불행하게도 20세기는 물론 오늘날 극우 세력의 득세 현상과 더불어 미국 민주정 트럼프의 행태가 보여주는 그대로 21세기에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제도로서 민주주의도 중요하지만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식상할 정도로 당연한 말이 새삼 실감나게 느껴지는 요즈음이다. -끝-
다음 강해 : VI 본론 3 : 부정의와 현실 비판 – 타락한 정치체제들 분석(제8권-제9권)
A. 부정의한 나라들과 부정의한 개인들.
5. 참주정과 참주정적인 인간, 불법적인 욕구(562b-576b)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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