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 산책26 -규정과 양상, 소금과 락스[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 비평]
형이상학 산책26 -규정과 양상, 소금과 락스
1)
논리학 2장 현존 장은 세 절로 이루어진다. 지금까지 살펴본 그 자체 존재와 대타 존재 그리고 양자의 통일성으로 실재성은 그 가운데 1절의 내용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이 개념들의 핵심에는 감각적 성질이 있다. 구체적 예를 들자면 빨간색이나 단맛 등이다.
1절의 내용은 단일한 감각적 성질이 지닌 논리적 범주의 분석이다. 2절에 이르면 새로운 논리적 범주가 등장한다. ‘규정’과 ‘양상’, ‘내재존재’와 ‘한계’, ‘당위’와 ‘제한’ 등의 범주다. 3절에 이르면 질적인 무한성의 범주가 등장한다. 앞에서 1절의 내용을 파악하였으니 이제 2절로 들어가기로 하자.
2절에 이르면 너무나 유사한 범주가 난무하여 그것들을 가려내는 데 머리가 지끈거린다. 더구나 1판과 2판의 내용이 상당히 달라 그 차이점을 이해하는 것이 정말 기가 막힐 지경이다.¹이 미로에 들어가려면 아드리아네의 실꾸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정신현상학에서 경험적 인식의 발전이다.
주1: 앞에서도 말했듯이 1판에서는 내재 존재와 한계가 먼저, 규정과 양상이 나중에 나온다. 2판에서는 규정과 양상이 먼저, 내재 존재와 한계가 나중에 나온다. 필자가 보기에 2판은 헤겔 자신이 수정한 것이므로 이 글에서는 2판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1절과 2절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인가? 1절의 마지막은 ‘실재성’인데, 2절의 출발점은 ‘어떤 것’이다. 그게 그거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결정적 단절, 또는 비약이 있다. ‘실재성’은 단일한 감각적 성질이다. ‘어떤 것’은 앞으로 개별적 사물로 발전하는 출발점이 되는 것인데, 그 핵심은 여러 감각적 성질의 교차적 관계에 있다. 정신현상학에서 헤겔이 사용한 예를 끌어들이자면 소금과 같은 것이다. 소금은 짜고, 희며, 입방체다. 소금은 이 세 가지 감각적 성질이 교차하여 이루어진다.
정신현상학에서 감각적 성질의 교차는 지각의 단계에서 출발점이 되니, 논리학에서 1절에서 2절로 나가는 것은 정신현상학에서 감각적 확신에서 지각으로 이행하는 것과 상응한다. 그러므로 실재성에서 어떤 것으로 나가는 데 인식 경험의 발전이 매개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구체적 예를 가지고 설명해 보자. 소금에서 짜고, 희며, 입방체라는 감각적 성질은 처음 보면 서로 동등하다. 경험이 발전하면, 여기서 우연성과 필연성이 구분된다. 흰색은 소금의 우연성이지만 짠맛이나 입방체는 소금의 필연성이다. 그러나 인식 경험에 있어서 일단 처음에는 이 세 가지는 모두 소금에서 발견되는 감각적 성질이며, 이것들은 소금에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소금은 이 세 가지 성질이 서로 교차하는 것이니, 바로 이처럼 하나의 성질이 아니라 여러 성질이 교차하여 성립하는 것이 어떤 것이다.
아직 이 어떤 것 즉 소금은 감각적 성질이 그 속에서 단순히 공존하는 것인지(그 경우 소금은 그릇과 같은 매체가 될 것이다) 아니면 이 감각적 성질이 서로 부정적으로 통일되어 하나의 개별자로서 소금(이 경우 헤겔은 사물이라 한다)을 이루는 것인지는 판단되지 않았다. 어떤 것에서 처음에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그 속에 여러 감각적 성질을 발견한다는 사실뿐이다.
이처럼 여러 감각적 성질이 교차하는 어떤 것이 출현하면서, 이제 하나의 판단 형식이 출현한다. 그게 바로 ‘이것은 흰색이고’, ‘이것은 짠맛이며’, ‘이것은 입방체’라는 개별 판단들이다. 이는 질적 판단에 속하며, 긍정 판단에 속한다. 그 이전에 실재성 즉 ‘감각적 성질’은 그저 술어일 뿐이며, 아직 구체적인 판단 형식을 갖추지 않은 것이다. 어떤 것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술어가 주어에 대해 정립되고, 이를 통해 판단 형식이 출현한다.
이렇게 어떤 것 속에서 아직 서로 동등하게 발견되는 감각적 성질을 논리적 범주로서 ‘규정성[Bestimmtheit]’이라 한다. 규정성은 실재성과 다르지 않지만, 사용되는 맥락에서 다를 뿐이다. 실재성은 어떤 감각적 성질을 하나의 술어로서만 볼 때를 지칭한다. 반면 규정성은 이미 다른 여러 규정과 함께 있는 것을 전제로 하여 그 감각적 성질을 규정성이라 한 것이다.
하나의 규정성은 혼자 있는 법이 없다. 여러 규정과 함께 있을 수밖에 없다. 단순히 공존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규정성[Bestimmtheit]은 다른 규정성 때문에 규정된[bestimmt] 것이다. 즉 흰색은 짠맛이 아니며 입방체가 아니다.
굳이 규정성을 타자에 비추어서 보지 않고, 추상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 그것은 실재성이라는 범주에 해당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실재성 역시 부정성을 포함한다. 그러나 이 실재성은 이미 어떤 개념 틀 안에서 다른 것에 대립하는 부정성이다. 예를 들어 빨간색은 색깔의 틀 내에서 파란색이 아니다. 그러나 규정성은 이런 개념 틀 밖에서 다른 규정성과 대립하는 부정성을 갖는다. 여기서는 어떤 것을 전제로 한다. 그 어떤 것이 지닌 다른 성질에 비추어 그런 성질이 아닌 것이 규정성이다.
앞에서 현존[질]은 그 자체 존재와 대타 존재라는 두 측면을 지니고 이 대타 존재는 다른 감각적 질과의 차이를 의미한다고 했다. 즉 빨간색은 단맛과 다르며, 둥근 것과 다르다. 그러면 규정성은 질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여기서 차이가 있다. 규정성이라고 할 때는 어떤 것 안에서 다른 규정성과 구별된 것을 말한다. 즉 소금에서 흰색은 짠맛이나 입방체와 구별되는 것이다. 반면 현존[질]에서 대타 존재는 어떤 것이 아직 출현하기 이전 상태이므로 모든 다른 성질과 구별되는 성질이라는 의미이다.
3)
‘질(대타 존재)’, ‘실재성’, ‘규정성’은 모두 동일한 감각적 성질을 다른 맥락에서 사용한다. 이런 맥락의 차이를 헤겔은 몰라도 우리 일반 사람은 구별하기 힘들다. 우리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유사한 개념이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규정성은 다시 두 가지로 구분된다. 즉 규정[Bestimmung]과 양상[Beschaffenheit]이다.
규정성[Bestimmtheit]나 규정[Bestimmung]은 용어 자체가 비슷하니 헷갈리기에 십상이다. 규정성에는 수동성의 의미가 들어 있다는 것에 주목하라. 그리고 규정은 일상적으로 어떤 것의 본질, 본분, 사명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차이가 짐작될 것이다. “철학자로서 나의 사명, 본분은?” 할 때는 ‘규정성’이 아니라 ‘규정’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인식론에서는 규정 대신에 속성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같은 것을 지칭하지만, 전자는 논리적 범주고 후자는 인식론적 개념이라는 차이가 있다.
양상[Beschaffenheit]은 어떤 모습을 지닌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으며, 라틴어로는 ‘modus’, 즉 언어에서 형용사나 부사 등에 해당하는 용어가 지닌 의미를 말한다. 보통 ‘양태’라는 어려운 말로 번역하는데, 쉽게 말하자면 우리 말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모습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딱 좋은데, 왠지 어감이 안 맞는다. 양태라는 말보다 양상이라는 말은 일상적으로도 많이 쓰므로 앞으로 양상이라는 말로 번역하겠다.
경험이 발전하게 되면 이렇게 서로 교차하는 감각적 성질 가운데 우연성과 필연성이 구분된다. 앞에서 말했듯이 소금에 있어서 짠맛은 필연성이고 흰색은 우연성이다. 어떤 것이 지닌 필연성은 어떤 것의 규정이 되며, 반면 우연성은 그것의 양상이 된다. 이렇게 구분해 보면, 별로 어려울 것이 없는 구분이다.
규정과 양상이라는 논리적 범주는 어떤 것 속에서 여러 규정성이 교차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처음에 그것들 사이에 자격의 차이가 없으면 모두 다 똑같은 규정성인데, 어떤 것과 관련되는 자격에서 필연성과 우연성의 차이가 나타나면, 그 차이를 고려하여 어떤 규정성은 규정이 되고 어떤 규정성은 양상이 된다. 그러면 헤겔은 규정과 양상이라는 논리적 범주를 어떻게 구별하는지 보도록 하자.
“질이 단순한 어떤 것[etwas]에서 그 자체적인 것을 그 본질에서 어떤 것의 다른 계기인 ‘그 자신의 표면에 존재하는 것[an ihm sein]’과 합일하는 것일 때, 이러한 질은 그 어떤 것의 규정이라 불릴 수 있다.”(논리학 2판, GW21, 110)
“규정은 그 자체적 존재로서 긍정적인 규정성을 말한다. 이때 어떤 것은 현존하는 가운데 타자 즉 자기를 규정하게 될 타자와 뒤얽혀 있는 것에 대립하여 그 자체 존재에 적합하게 머무르며, 자기를 자기와의 동일성 속에서 유지하며, 이 동일성을 자신의 대타 존재 속에서 성립하도록 만든다.”(논리학 2판, GW21, 110-111)
“어떤 것은 외적 영향을 받아서 외적 관계에 사로잡히면 이런저런 양상[모습]으로 존재한다. 이 외적인 관계에 양상이 의존하고 있으며, 타자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은 어떤 우연한 것으로 나타난다. 어떤 것의 질은 이 외면성에 희생되면서 양상을 지니는 것을 말한다.”(논리학 2판, GW21, 111)
위의 구절에서 어떤 것이 가진 규정성 가운데 어떤 것의 자기 동일성, 또는 그 자체 존재에 속하는 것이 규정이라고 헤겔은 말한다. 즉 예를 들어 소금이라면 모두 지닌 일반성 즉 짠맛이 소금의 규정이다. 소금이 짠맛을 잃어버리면 소금이라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소금의 본분, 사명이 곧 짠맛이라는 말이다.
반면 이 어떤 것에는 또 다른 규정성이 있는데, 그것은 이 어떤 것의 표면에[an ihm sein] 존재하는 것이다. 독일어 전치사 ‘an’은 어떤 것의 표면을 말한다. 표면에 있는 것은 겉으로 나타난 것이니 곧 그것이 지닌 양상이다. 표면에 있는 것은 다른 것과 부딪히면서 다른 것과 관계하여 구별되는 것이니 곧 대타 존재다.
이 대타 존재는 외면적인 것이기에 외적인 영향 아래서 늘 변화하는 것이니 우연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양상은 예를 들어 소금에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소금에 속하기도 하고 속하지 않기도 하는 성질을 말한다.
4)
사실 필연성과 우연성 즉 규정과 양상의 구별은 상대적이다. 규정이든 양상이든 독자적으로 보면 감각적 성질로서 한편으로는 그 자체 존재와 다른 한편에는 대타 존재를 가지고 있다. 즉 일반성이면서 다른 성질과 구별된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것이든 규정이 될 수도 있고, 양상이 될 수도 있다. 그 점을 헤겔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그와 같이 타자를 자기 내에서 포괄하는 규정성은 그 자체 존재와 통합되면서, 타자 존재를 그 자체 존재 또는 규정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를 통해 규정은 양상으로 격하된다. 거꾸로 양상으로서 대타 존재는 고립되고 독자적으로 정립된다면, 타자 자체이며 그 자신에서 타자이며 자기 자신의 타자인 것으로 그 자체에서 된다. 그 결과 대타 존재는 자기 관계하는 현존이며 어떤 규정성을 지닌 그 자체 존재 즉 규정이다.”(논리학 2판, GW21, 112)
그러나 이는 가능성일 뿐이며 실제로 어떤 규정성이 규정이 되는가 아니면 양상이 되는가는 비교하는 맥락에 달려 있다. 앞에서 소금을 보자. 소금은 요리라는 관계에서는 소금의 일반성은 짠맛이다. 짠맛을 내는 소금 대체재 역시 짠맛 때문에 흔히 소금이라 한다. 이런 경우 짠맛은 소금의 규정이며, 소금의 성분은 우연적이다.
그러나 다른 관계에서 보자. 필자는 언젠가 소독제로 쓰는 락스의 성분이 소금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란 적이 있었는데 소독제라는 관계에서 본다면 소금의 짠맛은 우연적일 뿐이다. 락스를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분명 짜지는 않을 거다. 소금 말고도 유사한 성분이 락스 재료로 쓰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물은 어떤 관계에서(주로 실용적 관계에서 그리고 주관적으로) 규정되는데 이 경우 개연적인 정도의 필연성이면 충분하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런 필연성은 우연성에 속한 것으로 규정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규정과 양상은 그 비교의 관계에 따라 서로 전복되는 것이다. 어떤 관계에서 규정은 다른 관계에서 양상이 되고 어떤 관계에서 양상은 다른 관계에서는 규정이 된다.
“단순한 중심은 규정성 자체다. 규정이나 양상은 공통으로 그 중심의 동일성에 속한다. 그러나 규정은 독자적으로 양상으로 이행하고 양상 역시 규정으로 이행한다.”(논리학 2판, GW21,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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