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소설] <그대에게 가는 먼 길> 1부 – 5회|3. 광주항쟁 (2) [이종철의 에세이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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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글

3. 광주항쟁 (2)

 

내가 광주 학살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은 것은 사회에서가 아니라 중부서 보호실에서였다. 이 이야기는 완전히 보도 통제된 일간지에서는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카더라 통신을 통해 간간히 광주 학살에 관한 이야기들을 접하기는 했지만 정확한 진상은 알 수가 없었다. 나중에 대학 시절 친하게 지내던 지수걸을 통해 계엄 철폐 데모를 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은 초여름의 햇살이 밝게 비추던 일요일이었다. 나는 그때 새로 다니기 시작한 교회에 있었다.

 

“뭐라고? 너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시우야, 조용히 해. 잠깐 내 말 좀 들어줘. 내가 이 말을 아무 생각 없이 한 게 아니야.”

“아니, 지금 시국이 어떤 상황인데 그런 생각을 해? 너의 행동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 줄 알아? 그 행동 하나로 인해 너의 인생이 완전히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을 안 해 봤어. 어떻게 이기적으로 네 생각만 하냐? 너의 가족들은 어떻게 될까?”

“그래, 나도 그 점을 충분히 생각했어. 이런 결정을 내리기 위해 몇 날 며칠을 하나님에게 울면서 기도했어. ‘주여, 이 잔을 내가 피할 수 있으면 피하게 해주소서’라고 말이야. 하지만 그런 간절한 기도 끝에 내가 얻은 대답은 가라, 네가 선택한 길을! 이었어. 이런 결정을 내리고 나니까 오히려 내 마음이 아주 차분해졌어. 그러니 나의 이런 심정을 친구인 네가 이해를 해줬으면 해.”

 

친구 수걸하고는 대학에 들어갔을 때 ‘아가페’라는 서클에서 만났다. 그 후 우리는 그 써클을 탈퇴했지만 그와 나는 서로 죽이 잘 맞아 계속 만났다. 나는 그가 다니던 K동 교회 청년회 사람들과도 자주 어울렸다. 때마침 1977년에 아동 급식 빵으로 인해 대규모 식중독 사건이 일어나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됐었다. 나는 이 사건을 풍자한 사회극 시나리오를 써서 교회의 연극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당시 나는 카뮈의 『이방인』이란 소설에 심취해 있었다. 시나리오는 그 작품에 등장하는 검사의 논고를 흉내내 기성인들의 부패를 고발한 작품이다. 수걸과는 자주 어울려서 서울역 앞에 있는 고아원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광주 사태 이후 갑자기 찾아와서 광주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데모해야겠다고 말한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정적으로 그에게 동조는 해도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를 설득하려고 애를 많이 썼지만 일단 결심한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는 달걀을 가지고 바위에 내리친다고 하면서 이런 행동을 반복하다 보면 결국 큰 바위도 균열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거사 1주일을 앞두고 나에게 일방적인 통보 비슷하게 이 이야기를 했다.

그가 폭탄선언을 하고 간 뒤로 내 머리가 아주 혼란스러워졌다. 나는 그 당시 교회에서 만난 한 여성과 막 사랑을 시작하려던 순간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한데 친구가 기름통을 메고 불 속으로 뛰어들겠다고 하니까 더 대책이 서지 않았다. 이제 공은 나에게 넘어왔고, 내가 결정해야 할 시간이다. 나는 이 사실을 친구 가족들에게 알려서 그의 거사를 막아야 하는가, 아니면 외롭게 역사의 짐을 지고 가는 친구의 거사에 동참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이미 마음이 굳어진 친구의 결심을 더는 어떻게 막을 수가 없다. 그 이후로 나는 매일 같이 다녀 보지 않은 새벽 기도를 나가서 간절히 기도했다. 내가 이런 신심이 있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친구의 모습을 보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그저 열심히 기도를 통해 물었다. 그때는 잠도 하루에 서너 시간도 자지 않았다. 그렇게 닷새가 지났다. 여전히 나에게는 해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도 할 수 없었고, 저렇게도 할 수 없었다. 나중에 철학을 공부할 때 배운 딜레마(Dillema)가 바로 이런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닷새쯤 되었을 때다 새벽에 열심히 기도를 드리는 데 갑자기 눈앞에 떡이 보였다. 그것을 잡으려고 했지만 그냥 사라져 버렸다. 일종의 헛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간절한 기도 속에서 접한 현상이라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을 당시 만나던 여성에게 이야기하니까 성경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말해준다. 예수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하나로 5천 명의 사람을 먹였다는 기적 같은 이야기다. 꿈보다 해몽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마음을 굳혔다. 친구의 거사에 동참하리라.

일단 나의 마음을 굳혔지만 생각할 일이 적지 않다. 지금과 같이 살벌한 계엄 상황에서 데모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고시를 보겠다는 나의 생각은 이제 완전히 물 건너가는 것이다. 감방에 들어가면 몇 년이 될지 알 수가 없다. 결국 고시를 포기하는 것이고,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겠다는 생각을 포기하는 것이다. 너무 무모한 것은 아닐까? 두려움도 생기고 번민도 많았다. 이런 나는 나의 문제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인간이 아닐까? 무엇보다 나의 이런 결정에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먹고 살기도 힘든 가정에서 대학을 보내 주었는데, 자기 인생을 말아 먹을 지도 모를 불섶으로 뛰어 들어가는 나의 행동을 가족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나의 너무나 무책임한 행동에 대해 이해를 바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마음의 결정을 내리기는 했지만 이런 불안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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