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의 두 갈래 [천 하룻밤 이야기]
사유(思惟)의 두 갈래
– 삶의 사유에서 삼태극을 생각하며
— 상강(霜降) – 가을이 매우 짧은 시대를 맞이 할 것인가?
이스라엘이 가자에서든 시리아에서든, 전쟁을 수행하는 것에 막을 내릴 수 있는 나라는 미국 밖에 없다고들 한다. 이 말은 이 전쟁의 배후에는 미국의 지지와 지원이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미국이 세상의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다.
전쟁과 평화, 전쟁을 하지 않기 위해 대항전쟁을 해야 하는 것이 아이러니이다. 전쟁을 거는 쪽이 자유와 안정을 위한 전쟁이라고 하지만, 그 전쟁이 누구의 자유와 누구의 안정인지를 묻는다면, 당연히 전쟁국의 상층들의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이들에게 백성은 안중에도 없으며,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다. 두 번의 세계 대전은, 소비에트와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으로, 다른 삶의 양식들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다른 삶의 양식을 악마화 하는 쪽은 누구인가? 물론 제국주의라고 말할 것이다. 이에 더하여, 기나긴 철학사 속에서 영원을 하늘(상층)에 두는 주지주의들이 있었고, 이를 백성들에게 심어서 순종하며 신앙으로 심은 것이 유일신앙자들이 있다.
유일신앙자들이 전쟁에서 어느 쪽을 돕는 적대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아마도 니체가 설명했던 바로, 한번은 백성에게 적개심을 심었던 랍비들이고, 다른 한번은 백성에게 죄의식을 심은 성직자들일 것이다. 니체의 말대로 적대의식과 전쟁은 백성의 것이 아니라 성직자의 것이라. 왜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과 지위를 보존하기 위해 백성을 인질로 삼았을까? 동양에서는 인질로 삼기보다 백성이 편안해야 천하가 편하다(평천하)는 군자들의 이야기와 지위를 보존하려는 위정자들 사이의 타협이 있었을 것인데 비해, 서양에서는 유일신앙의 중세를 거쳐서 오랫동안 권력과 지식이 신앙에 포획되어 있었다. 그 이유에 하늘의 영원성과 지상의 부질없는 가상성을 심었기 때문이다.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이라는, 한글의 천지인(l, ㅡ, ㆍ)의 삼원성은 인류의 사유의 과제였던 것 같다. 아테네 이전에는 두 갈래로 갈라지는 듯하다. 이오니아와 엘레아. 그런데 아테네에 와서, 소크라테스가 이런 세 가지를 하나로(?) 통합시키려는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뭣”이 세 가지로 갈라지게 되는지에 고민했을 것이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파르메니데스를 넘지 못했다고 서술했다. 그 소크라테스가 이오니아의 사유를, 고르기아스와 아낙시만드로스의 사유를 통해서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추측해보면, 흥미 있는 점을 발견한다. 하늘의 영원과 지상의 변화에 대해, 내가 소크라테스의 좌파(빨강이)라고 부르고 있는, 퀴니코스학파의 생각은 달랐다. 시간 속에서 찰나(le moment)는 변하지 않는 영원이고, 살아가는 인간의 과정인 순간(l’instant)은 변화하는 현상으로 보았다. 이런 퀴니코스학파의 영원과 변화의 항목을 정하는 것은 자연에서보다 언어의 개념화에 대한 저항이었을 것이다.
영원이 삶에서 이미 이루어진 것(fait, 만들어진 사실)은 인간이 고칠 수도 변경할 수 없이 지나가면서, 그대로 과거가 된다. 그럼에도 그 사실이란 항목이, 일반화되어 용어로 쓰이고, 그리고 규정하는 방식에 따라 정의되어가는 개념작업을 거칠 것인데, 이 항목, 용어, 개념은 고착성(고정성)을 갖는다. 사실은 덧붙여서 고칠 수 있거나 변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 찰나라는 개념은 영원하다. 그러나 삶아가는 인간들의 과정은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순간들의 지속을 이어간다. 삶의 한 시점이 순간이라 하더다로 그 순간은 지속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라는 개념은 변하지 않을지라도, 살아가는 소크라테스는 변하고 있었고 또는 “뭣”을 추구하고 살아갔다. 그가 어떤 정체성을 갖었는지를 퀴니코스학자들은 잘 모른다. 순간의 이어짐의 연속성에서, 소크라테스라는 항목이, 경계를 그으면서, 정해질 뿐이다. 이에 비해 플라톤주의자들은 소크라테스의 영원성이 ‘천상의 영혼’처럼 영원히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였다. 그 영원한 영혼이 소크라테스 신체에 들어왔다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모습과 과정은 변화의 현상들이라 한다. 소크라테스의 영혼은 불변하고 영원한데, 신체와 더불어 살면서 변하는 모습을 보였을 뿐이라 한다.
플라톤은 이중적이다. 개인 영혼의 변전과정도 고민했다고 여기고, 또는 변하지 않은 세계영혼도 있다고 믿었다고들 해석한다. 그 플라톤은 전체의 영혼과 개인의 영혼을 구별하려고 노력했다고 하는 해석가들도 있다. 그런데 플라톤주의자들은 영혼이 영원의 세계에서 내려온 것으로 해석하고, 현상인 지상은 가상의 세계라는 쪽으로 굳혔다. 즉 경계를 긋고(페라스를 중시하고) 고정시켰다. 이 고착적 사고가 정태적 사유의 길이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의 다른 제자 그룹들은 전혀 달리 생각했다. 삶은 노력(포노스, πόνος)이고, 그 노력의 강도(토노스 τόνος)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낸다고 보았다. 아마도 불교에서 수련과 보시에 의해 자아의 성립을 보살이라고 하듯이, 퀴니코스-스토아의 전통에서 지나가는 찰나(영원)들과 달리, 살아가는 순간이 삶에서 소중하고 또한 다루어야 할 철학적 과제라고, 즉 “뭣”이라고 하는 것이 실재성이라 보았다. 이들에 의하면 플라톤주의의 영원은 우화 또는 이야기(mythe)에 지나지 않고, 인간은 지상에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아가는 과정(se faisant, 만들어짐)이 중요하다고 한다. 주지주의자들이 아폴론 또는 아테네 여신을 이상으로 삼았다면, 퀴니코스학자들은 그들의 학교(퀴나고르게스)에서 헤라클레스를 모범으로 삼았다고 한다.
찰나와 순간, 영원과 시간에 대한 사유의 차이는 사유의 역사에서 고비마다 문제제기를 하였다. 그러나 유일신앙과 주지주의의 결탁으로 영원은 하늘나라에 있다고 여겼다. 그럼에도 영원이 지상에서도 돌고 있다고 공공연하게 제기된 것은 갈릴레이에서였다. 그 이후로 몇 세기를 지나지 않아서 주지주의 학문의 체계가 영원성도 없고, 그리고 체계의 완벽성도 없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게 된다. 왜냐하면 주지주의에 따른 모든 개별 학문들은 그 학문의 재료들을 다루는 방식에서, 그 학문들 각각의 한계(페라스) 속에서, 고착저이고 정태적으로, 규정 지었기 때문이다. 한 학문이 그것의 한계를 넘어서 다른 학문에 적용하는 것은 오류이기도 하지만, 사유방식의 착오이다. 쉽게 말하면, 피겨의 김연아의 운동과정을 축구의 손홍민에게 적용해서 설명할 수 없다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운동의 기본은 달리기가 기본이라는 을 부정하지 않는다.
적용의 오류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생성과 전개의 과정에서 달리 이루어진 경계(페라스)를 아페이론에게 적용하려는 오류가 플라톤주의에 이미 있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아이러니에는 아페이론과 같은 영혼의 대상화에 대해 항목, 용어, 개념화의 과정을 찾으려하는 것이라면, 퀴니코스는 삶의 터전에서 영혼의 삶에 대해 장하다, 훌륭타, 경건타를 실행하는 방식을 찾으려 했던 소크라테스를 주목했을 것이다. 주지주의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문헌에 없는, 또는 증거가 없는 이야기로 넘긴다. 그런데 그들이 소크라테스의 영혼의 이야기를 증명하는 듯이 이야기하는 것이, 상상의 이야기 또는 칼데아신화의 이야기라고 한다. 이런 완전성의 이야기를 진리라고 받아들인 이들이 유일신앙자들이다.
사유에는 두 가지 방식이 또는 여러 방식이 있다고 할 때, 천지인을 기본으로 하는 사유에서는 최소한 세 가지를 인정하는 것이다. 적어도 두 가지 방식과도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플라톤주의자들의 주지주의는 하늘의 영원성에 항목과 용어를 만들어 이야기해야만 한다는 쪽이고, 다른 한편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주의자들은 항목과 용어가 인간들이 쓰는 단어와 문장에서 개념작업을 거쳐서 개념들을 다루어서 체계화해야만 한다는 쪽이다. 달리 사유하는 퀴니코스와 스토아는 삶이 먼저이고, 그리고 사유는 다음이라 할 것이다.
하늘에 영원성을 묶어두고, 제도를 만들고, 학문적으로 체계를 규정하는 이들이 자기들의 이야기가 진리이며, 공정한 체제이고 나아가 평등한 신앙으로 여긴다. 이들은 항목을 고정화하고, 용어들과 개념들을 규정화하여, 전체를 구성하고 구축하였다고 착각하고 있다. 이들의 단초에서 고착(고정)이 정태적 사유의 근본이며, 이를 신앙을 받아들인 유일 신앙이 정태적일 수 밖에 없고, 그 정태성을 절대적 진리로 믿고서, 얼마나 많이 달리 생각하는 자를에게 피를 뿌렸는지는 세계사가 말한다. 중세의 마남사냥으로부터 미국의 맥카시 조작에 의한 빨갱이 사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인간의 정태적 사유와 동태적 사유의 이중성이 있다는 것이 제기되기는, 소크라테스 이전에도, 싯달다에도(9/9는 0.9999일까, 1일까), 중국의 주나라 이전에 하도(10, 5)와 낙서(9)에서도 있어왔다. 사악한 자들은 개념, 수, 점에서 승리를 구가하면서, 항목, 지수, 부피 등을 악으로 몰아내려고 하였다. 이런 그들의 생각들에서 전쟁은 자유의 전쟁, 안정의 전쟁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전쟁은 악마의 전쟁이며, 공공재(하늘, 땅, 물)인 것을 사적으로 소유하고자 하는 탐욕의 전쟁이며, 이들이 권력, 권세, 권위를 합쳐서 패거리를 만드는 치졸함에서 오는 것이다. 이 치졸함의 정태적 사고임에도, 요상하게도 동태적이고 운동적이라고 가르친다. 교육을 장악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악마같은 자들이 철학사와 역사교육을 왜곡한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이들 세 가지의 고정된 사고에 저항하는 이들이 셋이 있었다.
권력에 저항하고 항쟁하는 사유를 창안한 이는 정치 경제학에서 루소가 제기하고, 아나키스트들이 불을 지피고, 맑스가 과학적 체계를 통해, 생산도구를 사적 소유를 철폐하고 프롤레타리의 공화국을 주장했다. 세 패거리들이 기계 산업일 때는 맑스를 두려워했는데, 규소라는 디지털시대에 제국이 변신하면서도 동적 사유를 빌어온다. 그러나 여전히 맑스의 혁명의식은 중요하다.
유일신앙이 자본주의 국가들 안에서 세상에서 권세를 누리고 산다. 종교는 인민과 더불어 사는 것이고, 헤라클레스를 따르는 퀴니코스의 견해로는 세상사의 어려운 난제를 해결하는데 노력(포노스, πόνος)과 내공(토노스 τόνος)을 써야 한다. 아직도 세계가 가난과 질병으로 시달리며, 이제는 이런 문제보다 더 심각하게 다가온 것이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 놓은 지구의 생태계의 문제도 있다. 자연자체, 지구 자체가 자기 정체성을 지니고 있어야 그 속에서 사는 생명체든 인간이든 안정을 이루어갈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은 유일신상의 신에 종속되고, 포로 되어, 그 신의 명령으로 피조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자연은 자연대로 살아가는 과정으로 자발성과 자율성이 있다고 브루노가 주장했었다. 그를 그들은 산채로 태워죽이고 아직도 사과하지 않는다. 이제는 사람들은 자연이 동적이고, 유일신앙의 사고가 정태적이고 고착적이라 한다. 유일신앙의 사고를 벗어나는 사유의 방식을 학습하고 노력하고 내공을 쌓아야 한다.
지식의 권위는 권력과 권세의 아부하려고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자연을 지배하고 제도를 만들고, 인간을 행복하게 살게 하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의심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그러한 지식이 어째서 외골수 방향으로 나아가, 인간만이 잘 사는 휴머니스트(hunaniste)로, 지식을 갖는 인간만이 타인의 자유를 무시하고도 자유를 누리는 상품자유주의자(liberaliste)로 가고 있는지를, 그들은 깊이 성찰해야 한다. 이들 현상 인식론자들인 지식론자들이 누구의 침을 발라서 문장을 쓰고 판단을 하는 지를 반성해야 한다. 지식론자들은 수학에서 비유클리트기하학, 생물학에서 고생물학과 유전학, 심리학에서 기억이론 등에서 체계의 완전성이 사라졌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제도 속에서 안전과 편안을 누리고, 반대파들을 마남사양과 빨갱이 사냥에 동조하면서, 자신들의 지위를 누리고 살기를 바란다. 세 패거리들이 시킨 교육에 안주하면서 안락과 편리를 누리는 바탕에는, 정태적 사유와 더불어, 그 사회에 적응하는 동안에 내재하는 탐만치가 가득하다. 탐욕과 오만과 치졸함이다. 누구를 꼬집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태가 그러하다. – 뒷전으로 밀려난 용어들, 인도주의자(humanitaire)와 세계시민사상가(le cosmopolite), 그리고 인성자유주의(libertaire)를 생각해 보시라, 현재 교육이 “뭣”을 감추고 가르치고 있는지…
이들의 탐만치와 정태적 사고는 제국주의와 제국의 사유에 대한 동경과 향수이며, 이는 유일신앙의 하늘나라에 대한 착각에서 온다. 이에 저항하는 백성들과 인민들이 무수히 사라졌지만,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 이런 저항이 20세기 후반에서 21세기에 표면 위로 올라왔다. 이 인민들의 여러 차례 저항들에 극우들의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드러냈다. 남녘에서 세 패거리들에 포획된 자들은 미국이라는 제국의 허락을 구걸하면서, 일본의 포로가 되기를 자청하고 있다. 세계사에서 인민의 저항에 대해서도 반동의 극우들이 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친일파가 아니라 부일파, 숭미파들이 겁도 없이, 공공재에 대해 사적 소유의 승리를 주장하고 있다.
기나긴 역사에서 혁명이 성공한 것은 얼마 되지 않지만, 인민의 승리를 부정하는 이들이 없다. 단지 그 과정의 강도와 속도가 조금씩 달리 할 뿐이다.(4:01, 57UMB) (4:19, 57UMC)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철학의 세계』(2023),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
Leave a Reply
Want to join the discussion?Feel free to contribu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