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미학산책52-헤겔의 시민적 서사시와 루카치의 소설론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산책52-헤겔의 시민적 서사시와 루카치의 소설론
1)
앞에서 설명했듯이 서사시의 기본적 특징은 생생한 개별적 사건, 전체에 내재하는 통일성, 영웅의 행위, 서사적 화자의 고요한 음조이다. 헤겔은 이 네 가지 특징을 본래의 서사시인 그리스 서사시를 기초로 파악했다.
헤겔은 서사시가 오직 그리스 시대에만 존재했다고 보지 않는다. 그 이전 고대 서사시도 있었으며, 그 이후 로마와 중세를 거쳐 서사시가 계속 유지됐다고 말한다. 마침내 근대에 이르면 서사시는 시민적 서사시로까지 발전하게 되는데, 이제 서사시의 이런 발전 과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이는 특히 루카치의 소설 이론과 연관하여 흥미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위에서 말한 원래의 서사시는 고전적인 예술형식에 기초한다. 여기서 정신은 현실 속에 이상화된 방식으로 현상하다. 앞에서 거론한 서사시의 특징 가운데 세 번째 영웅적 행위는 본래 서사시에만 속하며 다른 시대 예술 형식에 이르면 사라지니, 서사시를 일반적으로 말할 때에는 이것을 배제하고 나머지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2) 고대와 중세, 근대의 서사시
헤겔은 고대 서사시로 인도의 서사시(라마야나나 마하바라타 등)이나 페르시아, 히브리, 아랍의 서사적 신화를 들고 있다. 고대 서사시는 모두 상징적 예술형식을 취하고 있는 서사시이다. 이런 서사시는 구체적 개별 사건들을 서술하지만 이 사건은 신이 자기를 변용하여 나타나는 상징적인 사건들이다. 이 사건들은 실재하는 사건이기도 하지만 주로 환상적인 사건이다. 사건은 합리성을 결여한 채로 수수께끼적인 방식으로 전개며, 그 어디서나 상징적 중심은 신이다. 상징화된 신이 전체 서사시의 통일적 연관성이 된다. 사건을 일으키는 행위자는 인간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모습 속에 숨어있는 신 자신이고 화자는 그 스스로 신성한 존재로서 이 사건을 서술해 나간다.
상징적 고대 서사시는 그리스 시대에 이르러 본래의 서사시로 발전했다. 헤겔의 역사에서는 고전 시대가 끝나고 법의 시대가 출현하는 로마에 이르면 이미 새로운 서사시가 출현한다. 여기서 그리스의 영웅적 서사시의 기본 형태를 유지하더라도 변형된다. 이제 서사적인 사건을 통일시키는 것은 개인에게 무의식적으로 생동하는 인륜적[민족적] 목적이 아니라 개인에게 외적으로 강요되는 윤리적[법적 국가]인 목적이 된다. 대표적인 것이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아스와 같은 서사시이다.
중세에 이르면 낭만적 서사시가 출현하게 된다. 헤겔은 이 속에 니벨룽겐의 노래, 단테의 신곡, 기사도 문학을 포함하는데, 여기서 개별 사건들은 낭만주의의 예술적 표현인 가상 개념을 통해 전체적으로 통일된다. 사건은 자립적으로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 자기를 부정하는 사건으로 발전되어 나가는 즉 하나의 가상이다. 그 자기부정을 통해 현실 세계는 신의 의지에 의해 내적으로 통일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신의 구원은 모든 사건에 내적이면서 동시에 초월적인 의미가 된다. 이 사건을 전개하는 행위자는 고대적인 신도 아니고 그리스적인 영웅도 아니다. 행위자는 특수한 주관, 개별적 개인이다.
낭만주의 시대는 시장관계가 성숙하면서 근대로 이어지는데, 대체로 르네상스 이후가 된다. 이 시대부터 헤겔은 새로운 서사시가 출현한다고 한다. 구체적인 예로서 타소의 해방된 예루살렘이나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들고 마지막으로는 밀턴의 실락원, 클롭스톡의 메시아, 볼테르의 앙리아드, 포스의 루이제나 괴테의 헤르만과 도로테이아[1] 등을 들고 있다. 이와 같은 서사시는 가상 개념을 기초로 하여 구원을 향한 낭만적 서사시를 이어받는 것이다. 다만 여기 근대 서사시에서 구원이라는 목적은 자유롭고 정의로운 세계라는 근대적 이상으로 대체된다. 여기서 행위자는 낭만주의 시대 이래 등장한 특수한 개인이지만, 이제 구원을 찾는 기사가 아니라, 도시 부르주아로서 개인이다.
3)
헤겔은 이어서 그의 시대에 발전하는 소설(Roman, Erzaehlung, Novelle)을 ‘근대적, 시민적 서사시’로서 언급했다. 이 서사시는 앞에서 말한 근대 서사시와 구분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서는 이런 소설을 다루기 힘들다면서, 생략하고 만다.[2]
그런데 능력이 부족하다는 변명은 미학강의라는 책에서 그 다양하고 수많은 작품을 다루었던 헤겔한테는 통하지 않을 것 같다. 차라리 그의 서사시의 개념이 현상적으로 출현한 소설을 설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 아닐까? 서사시의 방계 장르로서 소설을 언급하면서 말한 다음과 같은 헤겔의 말 속에 그 고민이 엿보인다. 아래는 미학강의에 나오는 말을 정리 해 본 것이다.
-“여기서는 한편으로는….. 광범위한 배경 및 사건들의 서사적 서술이 완벽하게 재등장한다.”
-하지만 진정한 서사시가 출현하는 세계 상태는 근원적으로 시적인데, 여기서는 이것이 결여되어 있다. 근대적 의미의 소설은 이미 산문적 질서의 현실을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극히 일상적이며 소설에 최적인 충돌 중 하나는 가슴의 시와 이에 대립적인 산문, 즉 …우연이란 산문 사이에 벌어지는 분쟁이다.”
-“처음에는 일상의 세계질서를 거스르는 성격들이 그 속에 진정한 실체를 인정하는 법을 배우고, 그 제반 관계들과 화해하며, 그 속에 효과적으로 편입됨으로써,”
-“산문적 현상을 지우고, 또한 이를 통해 미 내지 예술과 친밀한 혈연관계의 현실로 하여금 현금의 산문을 대신하게 함으로써 그 해결책을 발견한다.”
-“표현에 관해 보자면, 본격적 소설 역시 서사시와 마찬가지로 세계관과 인생관의 총체성을 요구하며, ..바로 이 사건이 전체를 위한 중심점을 제공한다.”
“그가 자신의 묘사들 속에 현실적 삶의 산문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으면서도 스스로 산문적이며 일상적인 것에 머무르지 않으려 한다면 더 많은 유희 공간이 허용되어야 한다.”[3]
정리하자면 현실이 이미 산문적이라는 것이다. 즉 내적 총체성, 형식적 통일성을 지니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적어도 내적 통일성을 전제로 하는 서사시적인 방식으로 이런 현실을 다룰 수 없다. 그렇다고 산문적 현실을 그대로 기술한다면 그것은 시문학 즉 예술이 아니다. 시적 충동을 지닌 예술가는 산문적 현실을 대신하여 예술적 현실을 창조할 수밖에 없다. 그게 소설인데, 소설 역시 총체성 즉 전체의 형식적 통일이 존재한다. 다만 그것은 창조된 인위적 통일성이다. 마지막으로 헤겔은 이렇게 말한다. 즉 산문적 현실 속에서 이런 인위적 통일성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상의 구절들에서 헤겔이 소설의 현상 앞에서 부딪힌 곤혹스러움의 원인이 암시된다. 우선 헤겔에게서 근대 부르주아 사회는 통일성이 결여된 사회는 아니다. 근대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손 즉 내적으로 초월하는 통일성이 존재한다. 그 통일성은 종교적으로는 개신교적 신으로 표현되며 정치적으로는 국가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헤겔은 산문적 현실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 등장한 이유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근대 소설 작가는 인위적인 통일성을 만들어내는데, 예술을 시대정신의 표현으로 보는 헤겔에게 그런 작품은 의미 없는 것이다. 헤겔이 요리술이나 향기술을 예술로 간주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작품은 예술적으로는 의미 없는 작품이 된다. 그로서는 그의 시대 등장한 소설 현상에 어떤 예술적 의미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헤겔이 근대 낭만주의 소설 작가 즉 슐레겔이나 장 파울 등에 대해 보여주는 극히 부정적인 시각은 이런 추론을 입증해 준다고 본다.
그러므로 능력이 없어 다루지 못하겠다는 헤겔의 표현은 그런 낭만적 소설이 등장하는 이유나 예술적 가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5)
어쩌면 의도적으로 헤겔이 다루기를 거부했던 그 지점에서 루카치의 소설이론이 탄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루카치의 청년기 저서인 소설이론은 그가 신칸트 주의에서 헤겔주의로 전향하면서 탄생한 작품인데, 그 자신 “헤겔 철학의 결과를 미학적 문제에 구체적으로 응용한 최초의 정신과학적 저술”[4]이라고 평한다. 실제 그의 이론의 많은 부분에서 헤겔의 흔적이 드러나는데, 우선 소설이라는 장르를 선험적으로 규정하고, 이런 선험적 형식을 역사적으로 구성하려 한 그 시도가 전형적인 헤겔적 철학방법론이다. 그에 못지 않게 소설 이론의 구체적 내용 속에 헤겔의 미학강의라는 저서에 나오는 내용에서 빌려온 것으로 보이는 많은 개념이 발견되다.
루카치는 이 책의 2부에서는 소설 다양한 구체적 형식을 파악하는 데로 나가는데 여기서 관심의 대상이 되는 곳은 주로 1부이다. 여기서 그는 서사시와 극을 구분하고, 또 각각을 고대와 근대로 구분하는 가운데 소설의 선험적 형식을 제기한다.
우선 고대와 근대는 운문과 산문으로 구분된다. 이것은 단순히 운율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른 것이 아니다. 운율이라는 것은 이미 어떤 통일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니, 고대가 운율을 지닌다는 것은 그 시대 자체가 전체적 통일성을 지닌다는 것을 의미하며 반면 근대가 산문이라는 것은 근대에 더는 전체적 통일성이 결여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루카치가 헤겔과 달리 근대 부르주아 사회가 이미 내적으로 분열된, 상호 대립된 사회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고대라고 해서, 통일성이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고대에서는 통일성이 존재하던 시대를 기억 속에서 회상할 수 있었던 시대였다. 그러므로 고대 서사시나 비극은 이미 분열된 시대에 그러나 통일성이 있었던 시대를 기억 속에서 되살리면서 출현한 문학이라 할 수 있다. 반면 근대는 이제 그런 통일성을 다시 기억할 수 없는 시대일 뿐이다.
6)
루카치에서 서사시와 극의 구분은 외연적 총체성과 내포적 총체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된다. 외면적 총체성이란 시공간적으로 전개되는 개별적 사건들 전체를 통일하는 총체성이다. 반면 내포적 총체성이란 주관의 내면적 통일성이다. 즉 개인이 지향하는 목적의 통일성이다. 즉 서로의 목적이 상호 조화로울 경우 내포적 총체성이 된다.
서사시는 발견의 구조를 지니며, 극은 구성의 구조를 지닌다. 서사시에서 주인공은 내면적 목적을 세계 속에서의 모험을 통해 실현한다. 이는 곧 세계의 목적을 발견하는 것이며 결국은 자기의 재확인이다. 극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목적을 당위로 파악하면서 행위로 표현한다. 그러나 그는 현실에서 자신의 행위에 대립하는 결과를 발견하게 되면서 몰락한다. 그런 가운데 그는 자신의 목적과 대립하는 목적, 두 개의 당위가 모두 정당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현실은 이제 두 개의 원리의 종합[구성]을 통해 재구성된다.
서사시를 외연적 총체성으로 보는 것은 헤겔이 서사시를 자립적인 개별적 사건과 그것에 내재하는 통일성으로 규정한 것과 일치한다. 마찬가지로 내포적 총체성이라는 루카치 개념 역시 헤겔이 극시를 두 개의 대립하는 목적(행위자의 원리) 사이의 대립과 균형으로 규정한 것에 상응한다.
헤겔이 그렇게 했듯이 고대의 서사시나 극에서는 행위자는 모두 실체적 목적을 수행하는 영웅들이다. 이들은 이런 목적을 자신의 개성 속에 생동적으로 통일하고 있으니, 그 관계는 무의식적, 관습적 관계가 되며 그들의 행위는 자기의 내면으로부터 주저 없이 행동으로 나오게 된다. 루카치는 고대 서사시나 극에서 행위자가 지닌 측면을 명백하게 서술하지는 않았으나, 그가 소설이론 첫 문장에 고대인은 “영혼의 타오르는 불꽃은 별들이 발하는 빛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말했을 때, 그 의미는 이런 영웅적 행위자를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7)
고대 문학에 관한 헤겔적 개념을 통해서 루카치는 소설 이론으로 넘어가게 된다. 근대 부르주아 시대에 이르러 사회적인 분열이 나타나게 된다. 이런 분열의 시대 개인이 가슴 속에 품었던 목적은 실현되지 않는다. 개인은 이제 알 수 없는 삶에 의해 지배당하게 된다. 개인의 목적은 추상적인 것에 머무르며, 삶은 우연과 운명이 지배하는 이질적이고 불협화음적이며 세계가 된다. 개인은 고독하게 되며 타인과 더불어 더는 소통되지 않는다. 이 시대 고대적 서사시든 고대적 비극은 더는 존재할 수 없다. 이제 행위자는 더는 영웅이 아니며 특수한 개인에 불과하다. 그는 특수한 목적 즉 욕망을 품고 이 세계 속에 타인과 관계하면서 살아간다.
근대 비극에서 개인은 고독하며 서로의 관계는 형식적 관계이다. 여기에 개인들 사이의 내포적 총체성이 없으니, 현대연극은 ‘삶을 추방하는 비극’이거나 ‘삶을 연소하는 비극’에 지나지 않는다. 전자는 세상으로부터 절연한 고독 속에 은거하는 연극이며, 후자는 자기를 영웅적으로 파괴시켜 소멸하는 연극이다.
마찬가지로 서사시의 기본 형식인 외연적 총체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은 구체적 현실 속에서 자신의 목적을 실현할 수 없으니, 더 이상 서사시는 존재할 수 없으며 이 시대 새롭게 탄생한 것이 바로 소설이라는 장르이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서사시의 주인공처럼 세계 속에서 모험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분열의 시대 그 모험은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는 이런 실패가 예상되면서도 소설적 주인공은 자기도 모르는 힘에 이끌려 나가게 되니, 그 존재를 루카치는 마성적 존재라 한다. 이 세계 속에 그가 발견하는 것은 세계의 악의, 신의 침묵이다.
주인공은 이런 가운데 자신의 목적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고대 서사시가 주인공의 자기 발견에 목적을 두고 있다면 소설에서 주인공은 자기 부정을 통해 자기를 인식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특수한 개인에서 출발하여 스스로 자기를 벗어나 해방된 존재가 된다. 바로 이런 해방을 루카치는 낭만주의자 슐레겔의 개념을 빌어 아이러니 상태라 한다.
그러므로 루카치는 소설의 근본적 형식을 전기적 형식이라 한다. 소설은 실체적 목적을 실현하는 투쟁의 형식이 아닌 세계 속에서 자기 자신을 깨닫게 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이처럼 자기 부정을 통해 도달하는 자유에 도달하는 과정이기에, 그 과정은 항상 열린 구조를 지니고 있다.
소설 장르의 출현을 헤겔이 모른 것은 아니지만 헤겔은 소설의 출현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반면 루카치는 헤겔의 서사시 개념을 뒤집어서 자기 개방적 전기적 형식을 지닌 소설 개념을 끌어내고 그 미학으로서 아이러니 개념을 발견했으니, 여기에 루카치의 탁월성이 존재한다.
루카치의 소설 이론은 소설 장르를 설명하는 아직도 의미 있는 이론인데, 그의 이론은 벤야민의 바로크 문학론과 더불어 헤겔의 미학 개념이 내포하는 가능성을 살려낸 대표적인 작업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1] 헤겔은 특히 포스의 루이제나 괴테의 헤르만과 도로테이아는 목가적 서사시라는 이름을 붙인다. 왜냐하면 가정이나 소도시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그려내기 때문이다. 물론 헤겔은 그런 사건이 가정사나 소도시의 삶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사회적 혁명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헤겔은 포스와 괴테가 이런 거대한 혁명적 사건을 가장과 소도시의 사건을 통해 드러내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2] 헤겔은 소설에 관해서는 “극히 일반적인 얼개로나마 더 이상 추적할 수 없다” (미학강의 3권, 422쪽)라고 말했다. 흥미롭게도 헤겔은 서사시의 방계 장르를 다루는 부분에서 근대적 시민적 서사시를 언급한다. 서사시의 방계 장르로서는 그 외에도 전원시, 목가시, 기사담 등이 있다. 반면 서사시의 역사를 다루면서 낭만적 서사시 속에 중세 기사 서사시와 근대에 출현한 서사시를 묶어서 다룬다. 그러므로 밀턴, 클롭스톡, 괴테 등의 근대 서사시와 헤겔이 소설이라고 말한 근대적 시민적 서사시는 서로 다른 것이다.
[3] 미학강의 3권, 398-399쪽
[4] 루카치, 『소설이론』, 반성완 역, 심설당, 198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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