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미학산책26- 낭만주의 해체[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Spread the love

헤겔미학산책26- 낭만주의 해체

 

1)낭만주의의 해체

이제 낭만주의의 세 번째 단계인 근대 리얼리즘적 단계의 마지막 형태를 헤겔은 낭만주의가 해체되는 형태라고 규정한다. 그런데 여기서 낭만주의가 해체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앞에서 상징주의적 예술 형식이나 고전주의적 예술 형식이 해체되는 과정을 상기해 보자. 상징주의적 예술 형식은 기호와 의미, 즉 형상과 정신이 직접 연결되면서, 양자는 수수께끼적인 방식으로 결합되었다. 이런 예술 형식이 해체된다는 것은 곧 형상과 정신이 매개하는 유사성이 등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헤겔은 이를 통해 비유가 출현한다고 한다.

 

이런 유사성을 매개로 한 비유는 곧 고전주의 예술형식의 기초가 된다. 고전주의 예술 형식에서 기호와 의미 즉 형상과 정신이 결합하면서, 정신은 자신을 형상으로 현상시킨. 개별적 형상은 이를 통해 이상화된 형태로 발전한다. 고전주의가 해체되면서, 형상과 정신 사이의 단절이 다시 등장하며 이것이 고전주의 해체기에 등장하는 희극적 풍자이다.

 

풍자에서 형상이 부정되는 것을 통해 정신이 드러나는데, 이것이 새로운 예술형식 즉 낭만주의 예술형식의 출발점이 된다. 낭만주의적 예술 형식은 형상과 정신이 분리와 통일이라는 이중적 방식으로 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형상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거나 자기 모순을 통해서 정신으로 복귀하니, 헤겔은 낭만주의에서 예술적 형상을 가상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가상으로서 낭만주의적 예술 형식이 붕괴된다는 것은 외적 형상과 내적 정신이 서로 자립적인 것으로 각자 무차별적으로 전개되는 것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2) 오성국가

낭만주의 해체기는 시기적으로 본다면 계몽주의가 등장하는 시기와 맞물린다. 이 시기는 시장이 완성되면서 자본주의가 성숙하는 시기인데, 이 시기에 이르면 정신에 있어서 앞의 시기와 구별되는 특징이 나타나게 된다.

 

시장이 불완전할 경우, 교환은 사기와 폭력으로 가득 차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절대주의 왕정이었다. 자본가는 왕으로부터 특권을 통해 성장하지만 거꾸로 왕으로부터 약탈당한다. 이런 시대 시민적 삶은 알 수 없는 힘 운명의 지배 아래 있었다.  보이지 않는 운명의 힘은 신적인 힘으로 간주되면서 현실에서 부딪히는 운명은 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런 시기 예술적 형상은 그 배후에 정신을 드러내는 가상이 될 뿐이다.

 

그러나 시장이 충분히 성숙하게 되면 교환은 합리화되며 어느 정도 정의로운 방식으로 일어나게 된다. 사기와 폭력이 사라지면서 시민은 자기의 현실적 삶에 대해 긍정적이며 심지어 자기 자신의 자유를 즐기게 된다.

 

이런 시기 활기찬 시민적 삶을 바탕으로 개인의 주관적 자유가 절대화한다. 시민은 자신의 개인적 자아가 곧 일반적 자아라고 믿으니, 이것이 곧 일반의지이다. 이런 주관적 자유의 절대화를 바탕으로 정치적으로는 시민적 자유를 실현하는 민주주의가 발전하게 된다.[1]

 

바로 이런 시민적 자유, 활기찬 삶은 헤겔에서 아직 오성 국가의 단계에 머무르는 삶이다. 시장의 교환에서 부조리와 불균형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시장은 여전히 수요와 공급 사이의 모순을 부유하게 되며 때로는 공황이나 붐에 의해 급변하게 된다. 더구나 이 시기 사회적 불평등이 확대된다. 국가는 이런 불평등을 조정하지 못하고 가진 자의 재산을 보호하는 억압적 장치에 머무른다.

 

이런 한계 내에서도 시민적 자유, 활기찬 삶을 표현하는 예술이 헤겔이 말하는 근대 리얼리즘 예술의 마지막 단계에서 등장하는 낭만주의 해체기 예술이다.

 

3) 생동적 현실

낭만주의가 해체되는 시기에 이르러 다시 두 가지 경향이 출현한다[2]. 첫 번째 하나는 외적 현실을 다루는 것이며 두 번째는 곧 주관적 내면을 다루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낭만주의의 해체기 정신과 개별적 형상이 각자 자립적이며 서로 무관하게 전개되는 해체기 형식을 반영한다.

 

우선 전자 즉 외적 현실을 다루는 해체기 경향을 살펴보자. 낭만주의가 등장하면서 외적 현실을 드러내는 리얼리즘적 경향성이 등장했다. 그러나 낭만주의 시기에서 개별성은 자기를 부정하는 가운데 정신을 드러낼 뿐이니 여기서 리얼리즘적 경향성은 낭만주의적 예술 형식 안에 머무르는 것이었다.

 

이제 낭만주의가 해체되면서 형상과 정신이 서로 독립하면서 개별적 형상은 더 이상 정신을 비추어주는 것이 아니라 개별성 자체로서 예술작품이 되니, 여기서 리얼리즘적 경향성은 정신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된다. 헤겔의 말에 따르면 “외부 세계는 독자적으로 자기의 길을 가는 자유, 자신의 고유성과 특칭성의 면에서 자신을 보존하는 자유를 얻는다.”[3]

 

한마디로 말해 개별적인 현실 자체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리얼리즘적 예술이 낭만주의의 한계를 벗어나 독립적으로 탄생한다는 것이다.  헤겔은 이렇게 말한다.

 

“예술가는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함에 있어서 그것들 속에서 흡족해 한다. …마치 낭만예술의 종교적 권역에서 그리스도의 탄생과 동방박사의 경배를 그린 그림에서 황소와 당나귀, 구유와 지푸라기가 빠져서는 안 되는 것과 진배 없이 우리는 예컨대 햄릿에서 궁정 외에도 초병을,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하녀를  그 밖의 다른 희곡들에서 바고, 시골뜨기, 일상의 갖가지 비루한 일, 선술집, 마부, 요강 벼룩들을 보는 바이다.”[4]

 

과거 현실적 소재들은 정신을 암시하는 부차적인 수단이었으나 이제 현실적 소재는 그 자체로 긍정적인 것이며, 따라서 생동적인 움직임 속에서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생동성은 신적인 정신을 표현하는 것이라기보다 개인의 주관적 정신을 표현하는 것이니, 그것은 예술가의 불안과 고통, 기쁨과 환희를 표현하는 형상으로 된다. 

 

헤겔은 그 대표적 예를 네덜란드 풍속화로 보고 있는데, 네덜란드 풍속화에 드러나는 네덜란드인의 정신을 이렇게 설명한다.

헤겔은 네델란드의 풍속화 속에 네델란드인의 생동하는 정신이 표현되어 있다고 보며, 여기에 나타나는 모더니즘 기법에 주목한다.

“현존재의 궁핍이나 정신적 압박 같은 것 속에 살지 않았으며, 그들의 활동 근면성 용감성 절약 정신을 통해 스스로 터득한 자유의 느낌 속에서 복지, 풍요, 정직성, 쾌활감에 심지어 명랑한 일상적 현존재에 대한 자족의 느낌에 이르렀다.“[5]

 

4) 모더니즘의 기법

외적 현실을 그려내는 리얼리즘적 경향은 더욱 발전하면서, 우연한 것과 찰나적인 것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된다. 우연하고 찰나적인 현실은 과거에는 예술의 소재가 되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제 마침내 이런 우연적이고 찰나적인 것이 예술의 주요 소재가 되고, 예술적으로 영구히 보존하려 한다.

 

 “하지만 금속의 반짝거림, 불빛에 비친 포도의 미광, 희미해져 가는 해와 달의 모습, 웃음, 흘깃 스쳐가는 심정상태의 표현, 우스꽝스러운 움직임, 자세, 표정-찰나에 스쳐 지나가는 이러한 것을 잡아내고 그 충만한 생명성을 지속적으로 가시화하는 일, 이것이 현 단계 예술의 주요 과제이다.”[6]

 

헤겔은 과연 그러한 산물이 예술작품으로서 자격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법한데, 왜냐하면 과거 고전적인 미의 이상에 비추어 볼 때 그런 대상은 많이 모자란 “비미적인 것, 산문적인 직접적 현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다루는 소재 즉 대상이 아니다. 이런 작품이 예술작품으로 되는 것은 그런 대상을 다루는 예술가의 솜씨이다. 여기서 우연적이고 찰나적인 것을 표현하는 예술가의 기법이 주목되어야 한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현실은 단순히 모방하려 해서는 붙잡을 수 없으니, 여기서 예술은 예술 고유의 기법을 완성하게 된다. 그것은 곧 현실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생산하는 것이며 그 수단은 곧 음악이 사용하는 기법 즉 흔히 모더니즘이라 알려진 기법이라 하겠다. 헤겔은 가장 리얼한 예술이 생산이라는 모더니즘 기법을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이를 테면 객관적 음악, 색채들의 음이라고 할 터이다. 다시 말해 음악에서 개개의 음향이 독립적으로는 아무 것도 아니며 오직 다른 음향과의 관계 속에서 그 대립, 조화, 이행 그리고 융합 속에서 효과를 야기한다면, 여기서는 색채가 그런 것이다.”[7]

 

5) 아이러니의 예술

낭만주의 해체기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예술적 경향을 ‘주관적 유머’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주관적 유머에는 주관적 정신의 절대적 자유가 전제된다. 예술가는 이런 절대화된 주관적 자유 자체를 형상화하려 하였다. 예술가는 현실 속에서 활동하지만 그는 이런 현실적 자기를 바라보고 그 자기의 한계를 인식하고 자신이 그 너머에 존재한다는 것을 자각하니, 여기서 주관적 유머가 출현한다.

 

이런 유머는 예술가가 정신적으로 자기를 초월하여 자기를 바라보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즉 그것은 “예술가 자신을 소재로 하며”, “자신을 객관화하여 형상화하려는 일체의 것[주관의 활동]을 주관적 착상, 번뜩이는 생각, 빼어난 이해방식들의 힘을 통해 내적으로 붕괴시키고 해체하는 일이다.”[8]

 

이런 ‘주관적 유머’의 예술은 독일 낭만주의의 미학자 슐레겔의 아이러니 개념을 상기시킨다. 헤겔은 그 구체적 예로서 장 파울의 작품을 거론한다. 헤겔은 슐레겔의 아이러니는 자의적인 산물에 불과하다고 본다. 즉 현실 속에서 자의적으로 활동하는 자기를 바라보는 자기의 초월적 관점 역시 자의적일 뿐이라 한다. 헤겔에 따르면 그런 유머는 “극히 이질적인 것들을 종종 고의로 괴상망측하게 결부시키는 착상과 농담들의 우연에 주관이 빠질 경우”[9]라 한다.

[1]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절대화된 주관적 자유 즉 일반의지가 프랑스 혁명에서 공포정치를 야기했다고 비판한다.  

[2] 헤겔에서 낭만주의는 두 가지 유형으로 전개되어 왔다. 첫 번째 유형은 그리스도의 수난사와 같이 개별자의 자기 부정을 매개로 하는 운동적 유형이며, 두 번째 앞의 유형과 대립된 유형은 기사도 문학에서 보는 것과 같이 개별자와 무한한 심정의 모순을 보여주는 유형이다. 이런 이중화는 낭만주의의 마지막 단계인 근대 리얼리즘적 유형에서 다시 반복된다. 근대 리얼리즘적 예술은 한편으로 모험적 소설과 같이 우연성의 유희를 보여주는 형태가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성격 예술에서와 같이 한 개인의 무한한 성격의 모순을 보여주는 형태가 있다. 낭만주의 해체기에 이 두 가지 유형은 다시 반복된다.

[3] 미학강의 2, 236쪽

[4] 미학강의 2, 236쪽

[5] 미학강의 2, 241쪽

[6] 미학강의 2, 242쪽

[7] 미학강의 2, 243쪽

[8] 미학강의 2, 244쪽

[9] 미학강의 2, 245쪽

0 replies

Leave a Reply

Want to join the discussion?
Feel free to contribute!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