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미학 산책2-예술의 과거성 테제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 산책2-예술의 과거성 테제
1)
헤겔 미학과 관련해 가장 뜨거운 논제는 예술의 과거성 테제일 것이다. 헤겔은 미학강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 예술의 아름다운 시절과 중세 후기의 황금시대는 사라졌다[sind voruber].” (미학강의1, 30쪽)[1]
“최상의 규정이라는 면에서의 예술은 우리에게 과거의 것[Vergangenes]으로 존재하며 또 그렇게 남아 있다. 이로써 예술은 우리에 대해 진정한 진리와 생명성도 역시 상실했으며[verloren], 예전의 필연성을 현실 속에서 주장하여 한층 높은 지위를 점하기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표상 속으로 그 자리를 옮겼다.”(미학강의1, 30쪽)
이런 구절에서 헤겔은 ‘사라졌다’ ‘과거의 것’ ‘상실했다’는 표현을 반복함으로써 소위 예술의 과거성[vergangen] 테제가 출현하게 되었다. 예술의 과거성 테제는 고전주의 시대인 그리스 예술작품에서 미가 완성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고전주의의 미적 작품은 예를 들어 그리스 조각 작품에서 보듯이 예술의 내용인 이념을 이상화 된 감각적 현존을 통해 표현한다. 이렇게 이상화 하는 가운데 고전적인 아름다움 즉 조화와 비례가 갖추어진다. 이 조화나 비례는 아름다움의 정점이었다.
그 이후 등장한 낭만주의 예술작품은 예술의 퇴락이다. 낭만주의 예술작품 가운데 인정할 만한 게 있다면 고전주의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예를 들자면 르네상스 시절의 종교화나 괴테의 고전주의적 작품이 그렇다. 그 외에는 뭐 볼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성 테제는 예술의 시대는 그리스 고전주의 이후 지나갔다고 주장한다.
2)
이 과거성 테제는 헤겔 미학 강의 텍스트 자체에 대한 논쟁으로 발전했다.[2] 이 논쟁에서 핵심은 위에서 언급한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달려 있다. 과거성 테제를 찬성하는 사람은 곧 헤겔이 그리스 예술을 이상화하는 고전주의자라고 보고 위의 말을 과거성 테제로 해석한다.[3] 이에 반대하는 사람은 헤겔의 위의 말은 헤겔 미학을 편집한 편집자 호토의 왜곡이라고 주장한다.
과거성 테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힘들다. 굳이 낭만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중세 이후 등장한 낭만주의 예술의 탁월함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헤겔 역시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나 네델란트 풍속화를 칭찬하는 데 결코 인색하지 않으며, 더구나 회화나 음악, 시문학은 낭만주의적 예술 장르라고까지 주장한다. 중세 이후 낭만주의 예술을 부정한다면, 지금 남아있는 대부분의 고전과 핵심적 예술 장르를 버려야 할 지경이다.
3)
호토가 헤겔을 왜곡했는지는 제쳐두고 위에서 언급된 ‘지나갔다’는 헤겔의 발언조차도 엄밀하게 살펴보면, 과거성 테제로 해석하기 어렵지 않을까? 위의 구절에서 ‘최상의 규정이라는 의미에서의 예술’이 사라졌다고 할 때, ‘최상의 규정’이라는 말의 의미가 문제가 된다. ‘최상의 규정으로서 예술’은 고전주의 미학자들이 믿듯이 그리스 예술이 인류의 최고 예술이라는 의미로 본다면 과거성 테제가 출현하게 된다.
그러나 이 말은 절대정신을 대변하던 예술이라는 의미로 보아야 할 것이다. 헤겔은 그리스 시대는 예술이 종교나 철학을 제치고 절대정신을 대변했다고 말한다. 그는 이런 판단의 구체적 근거로 그리스 신화조차도 호머의 서사시를 통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거론하기도 한다. 그렇게 본다면 과거성 테제는 예술이 절대정신을 대변하던 그리스 시대가 지나갔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그 이후 그리스 시대보다 더 탁월한 예술이 나오기도 했지만 절대정신을 대변하는 자격에서 예술은 이제 철학에 자리를 양보하게 되었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리스 시대, 예술이 절대정신을 대변하는 이유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헤겔은 이 시대 예술의 내용이 되는 신은 곧 민족신이라고 규정한다. 민족신은 그 이전 자연신의 단계를 벗어나기는 했지만 아직 각 민족에게 고유한 개별적 신이다. 개별적이라는 것은 곧 감각적인 것과 같은 말이니 헤겔은 그리스 신이 개별 신이기에 외적인 감각적 현상으로 출현할 수 있다고 본다.
신 자신이 민족신으로서 감각적으로 현상하므로 감각성에 머무르는 예술이 이 시대에 종교를 제치고 지배적인 절대정신이 된다. 하지만 이런 민족신을 이해하는 데 사유가 필요한 것이 아니므로 철학이 아니라 예술이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한다는 주장이다. 비유하자면 산수 정도는 초등학생이 가장 잘한다는 뜻이다.
4)
그런데 문제가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낭만주의 시대에도 예술이 여전히 ‘진리와 생명성’을 주장하려면 이 시대 예술의 가능성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이 문제가 헤겔의 미학을 이해하는데 가장 어려운 문제이다. 왜냐하면 어떻게 보면 이 시대 예술은 근본적인 난관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헤겔의 역사관에서 중세 이후 근대까지 이어지는 주관성의 시대이다. 이 시대 예술이 곧 낭만주의 예술인데 낭만주의 예술의 내용이 되는 것은 유일하며 보편적인 기독교 신이다. 그 신은 감각적 현실을 초월하는 신이다. 이 신은 우상숭배금지의 원칙에서 보듯 자신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을 거부하는 신이다.
초월적 유일 보편 신을 어떻게 감각적 예술을 통해 표현할 수 있을까? 헤겔이 낭만주의 예술의 특징을 특징성에 두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런 특징성란 곧 셰익스피어의 희극의 주인공이 지닌 것과 같은 권력욕(맥베스) 질투(오델로) 등 주관적 성격을 말하는데, 이런 특징성 자체가 아름답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 특징성이 예술의 원리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여기서 추가 예술의 원리가 된다는 주장으로 나가기도 하지만 추가 예술의 한 요소는 몰라도 기본 원리로 인정되기는 어렵다.[4]
설혹 괴테나 실러의 고전주의적인 작품에서 보듯이 그리스적 예술작품의 흉내를 내더라도, 우선 우수꽝스럽다. 미켈란제로가 예수의 모습을 그리스 영웅 헤라클레스의 모습으로 표현했을 때 생각해 보라. 그리고 낭만주의적 인물이 기독교적 신을 표현하는 한에서는 여전히 우상숭배 금지의 원칙을 위배하는 것이니, 아마도 후일 성상 파괴 운동에서 보듯이 교도의 도끼 아래 파괴되고 말지 않을까?
그렇다고 예술이 감각을 떠나 개념을 사용하거나 불립문자와 같은 방식으로 수수께끼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지 않을까?
5)
헤겔은 낭만주의가 표현하는 신이 초월적 신일뿐만 아니라 인격신이라는 데서 모든 실마리를 찾으려 한다. 인격신이라는 말은 곧 신이 우리 눈앞에 자신을 직접 계시한다는 말인데, 계시된 신의 존재가 곧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는 신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는 무상의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비로소 사람들은 그가 곧 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의 탄생과 죽음은 신의 인격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여기서 감각적 예술의 가능성이 생겨난다. 즉 낭만주의 시대 예술은 신의 인격성과 마찬가지로 감각적 현상이되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헤겔은 이를 곧 가상이라 규정한다.[5] 낭만주의 예술의 근본적 원리는 바로 감각적 가상이다.
헤겔은 예술은 이념의 가상이라고 규정하는데, 이 가상이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자기를 드러내는 것은 낭만주의 예술에 와서이다. 이집트 예술은 신을 수수께끼와 같은 상징으로 표현한다. 그리스 신은 이상화 된 현상으로 출현한다. 낭만주의 시대 신은 자기 부정이라는 가상을 통해 출현한다. 예술의 개념 즉 이념의 가상이라는 개념은 상징과 현상을 거쳐 가상에 이르러 자기를 실현한다. 그러니 헤겔에서 예술은 고전주의가 아니라 낭만주의에서 완성된다고 하겠다.
5)
예술이 낭만주의에 와서 완성되었다고 하더라도, 예술이 낭만주의 시대 절대정신에 대한 유일한 표현이거나 최고의 표현은 아니다.
인격신은 가상을 통해 표현되더라도, 감각적으로 표현되는 한 한계를 지니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예수의 탄생과 죽음은 사실 신이 현현하는 모습인데, 인간의 눈에 그저 자연적인 탄생과 죽음으로 이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면서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는 경우이다. 헤겔이 예술이 ‘진리와 생명성을 상실했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감각성이 지닌 이런 한계를 뜻한다.
그러므로 낭만주의 시대에 헤겔은 인격 신을 표현하는 절대정신의 대변자로서 자격을 철학에 넘겨준다. 철학은 추상적 사유가 아니라 자기반성적인 사변적인 개념을 통해 인격 신을 표현할 수 있다. 이제 심지어 예술은 진리를 알고 있는 철학의 반성 대상이 되어 그 자리를 앞에서 인용 귀절에서 말했듯이 ‘표상 속으로 옮기니’ 여기서 ‘예술에 대한 학문’으로서 미학이 출현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술이 죽은 왕의 후궁처럼 구중 궁궐에 숨어 지내야 한다 말은 아닐 것이다. 우선 철학이 인격신을 사변적으로 표현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사변적 개념에 기초한 철학은 헤겔 철학에 와서야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전 추상적 사유에 기초한 철학 즉 근대철학보다는 차라리 예술이 낫다. 왜냐하면 예술은 비록 한계는 가지지만 가상을 통해 인격신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변철학이 등장하여 인격신을 표현하더라도, 이런 사변철학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들다. 헤겔이 정신현상학 서문에서 말했듯이 사변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중들에게 사변철학보다는 예술이 훨씬 쉽게 인격신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그렇다면 낭만주의 시대 끝에 이르러 사변철학이 등장하고 마침내 인격신의 비밀이 대중적으로 폭로된다면 예술은 어떻게 되는가? 헤겔은 낭만주의 예술형식의 발전 끝에 예술 자체의 종언을 제시한다. 이것은 흔히 과거성 테제로 오해되기도 하지만 사실은 다른 논제이니 추후 살펴보기로 하자.
[1] 헤겔, 미학 강의 1, 이창환 역, 세창, 2020
[2] 헤겔은 1818년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미학을 처음 강의한 이후, 베를린 대학에서 1821 겨울, 1823년 1826년 1828년 겨울 네 번에 걸쳐 강의했으나 자신의 강의를 출판하지 못하였다.
1831년 헤겔 사후, 헤겔 강의록 출판의 흐름 속에서 헤겔의 미학강의도 출판되었다. 미학강의는호토[H. G. Hotho]가 처음으로 1835년 편집하여 불멸자의 친우판 전집으로 발간했고 1842년 개정했다. 호토는 헤겔 자신의 베를린 시대 23년 강의 수고와 자신의 필기록을 대조하여 편집했다.
20세기 초 헤겔 부흥운동 중 1911년 이후 라슨 판 전집이 발간되는 가운데 라슨이 1931년 미학강의를 재편집하였다. 라슨은 1826년 강의의 필기록을 참조로 하여 호토의 판을 살펴본 결과, 호토가 생략하거나 표현을 왜곡한 부분이 다수 발견되어 재편집하였으나, 서문과 1부의 발간에 그쳤다.
그 이후 이어지는 헤겔 전집에서는 즉 70년대 수어캄프 판이나 펠릭스 마이너판까지 모두 호토판에 기초하였다. 1971년 부브너[R. Bubner]는 호토판을 불신하면서 라슨이 편집한 것을 재편집하여 미학강의를 단행본으로 출판했다. 안네마리 게트만 지페르트는 호토 판을 불신하면 강의 필기록에 기초하기를 주장했다. 니콜라스 헤빙[Nicholas Hebing]이 편집하여 2015년 발간된 헤겔 서고 판(펠릭스 마이너 출판사)은 제목조차 미학 강의가 아니라 예술철학 강의[Vorlesungen ueber die philosphie der Kunst]로 바꾸었고, 호토의 편집을 불신하고 강의 필기에 기초하여 편집조차 21년(미학), 23년(예술철학), 26년(예술철학). 28년(미학) 강의록이라는 방식으로 전개했다.
현재 한국에서 번역된 두행숙 번역판(나남, 1996)이나 이창환 번역판(세창, 2022)은 모두 1970년 발간된 수어캄프 판 미학강의를 번역한 것이다. 헤겔의 강의 필기록은 개별적으로 번역 출판되었다. 서정혁은 미학강의-베를린 1820/21(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3). 한동원은 헤겔 예술철학(미술문화, 2008), 권정임은 헤겔 예술철학 1826년 강의(세창, 2023)을 출판했다.
[3] 이 논쟁에서 최근 중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을 들라면 G. S 안네마리를 들 수 있겠다. 그의 주장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①호토판 미학강의는 헤겔을 왜곡했다. ②여기서는 헤겔을 고전주의자로 간주하면서, 고전주의 예술작품에서 미의 이상은 완성되었다고 본다. ③중세 이후 고전적 이상의 잔재가 남아 있으니 르네상스 종교화와 고전 음악 정도이다. ④중세 이후 등장한 낭만주의 예술작품은 특징적인 것에 몰두하는데 이는 미적 이상으로부터의 후퇴이다.
안네마리는 호토판 헤겔미학을 혹독하게 평가하면서, 헤겔의 미학강의에 관해서는 학생들이 남긴 필기록을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는 1826년 강의 필기록에 주목하는데, 이에 따르면 헤겔의 미학적 관점은 앞에서 제시된 것과 전혀 다르다.
①고전주의 시대 예술이 표현하려는 절대정신은 민족신이었으나, 낭만주의 시대 절대정신은 기독교적 신 즉 내재하는 신이다. ②헤겔 미학에서 상징주의, 고전주의, 낭만주의는 이념이 현존하는 방식의 차이를 주장한다. 각각에 고유한 미적 이상이 존재한다. ③고전주의는 미적 이념이 아름답게 현존하는 방식을 말한다. 낭만주의에서 미적 이념은 이념과 감각적 현존이 불합치하는 추의 방식으로 출현한다. ④구체적으로는 예를 들어 쉴러의 드라마에서 등장하는데, 주인공은 윤리적 의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좌절되면서 범죄자로 전락한다.
[4] 그러나 헤겔에서 낭만주의 예술 형식을 파악하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호토의 헤겔 미학강의가 왜곡되었다고 비판하는 안네마리조차도 이 점에서 분명하지는 않다. 그는 고전주의가 아름다운 감각적 현존을 제시했다면 낭만주의 예술형식은 추의 형식을 제시했다고 말한다.
무엇이 예술에서 추일까? 안네마리는 미가 이념과 감각적 형식의 조화, 합치라고 한다면, 추는 이념과 감각적 형식 사이의 부조화라고 한다. 하지만 이념이 어떤 형식이라도 갖는다면, 미와 추를 논할 수 있겠지만, 기독교 신은 이념은 아예 감각적 형상화가 거부되니, 무엇이 미이고 추인지를 알 수 없다.
중세 고딕 신상을 보면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은 왜곡되고 과장되어 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절 신의 모습은 그리스 조각상처럼 이상화되어 있다. 전자가 낭만주의 예술이라면 후자는 낭만주의 예술이 아니란 말인가?
[5] 가상[Schein]이나 현상[Erschein]이나 똑 같이 빛난다[scheinen]는 말에서 나온다. 하지만 현상은 직접적인 것에 머무르며, 가상은 자기부정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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