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사 문제는 한국현대사 문제이다: 김 상태가 쓴 『엉터리 사학자 가짜 고대사』[보고 듣고 생각하기]
한국고대사 문제는 한국현대사 문제이다: 김 상태가 쓴 『엉터리 사학자 가짜 고대사』
나태영(한철연 회원)
한국고대사 문제는 한국현대사 문제이다?
한국고대사는 말 그대로 한국고대사를 다루는 학문이다. 하지만 한국고대사를 다루는 사람은 현대인이다.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현대인들이 한국고대사를 주로 다룬다. 이 책 글쓴이 김상태는 그래서 지금 한국고대사를 다루는 한국 사학자들 연구 방법을 냉혹하게 평가한다.?
김상태는 실명 비판을 한다.?
김상태는 강준만, 김갑수처럼 실명 비판 한다. 실명 비판 한다는 것은 나를 던지는 것이다. 용기가 없으면 실명 비판할 수 없다. 실명으로 칭찬하기는 쉽지만 실명으로 비판하기는 어렵다. 잘못하면 비판받은 사람한테서 고소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왕따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상태는 훌륭하다.?
강준만, 김갑수, 김상태가 실명 비판하는 까닭은 공정한 평가를 하기 위해서 이다. 우리 역사에서 90점 받아야 할 사람이 40점 받는 경우가 많다. 신채호 선생이 그렇다. 20점 받아야 할 사람이 90점 받는 경우가 많다. 안창호가 그렇다.?
김상태는 대고조선을 주장하는 학자 신채호, 리지린, 윤내현, 복기대, 이덕일, 이희진, 성삼제가 90점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고조선을 주장하는 이완용 양아들 이병도, 이병도 제자 이기백, 노태돈, 송호정, 오강원, 김정배, 이기동, 박노자가 마이너스 90점 받아야 된다고 주장한다. 박노자는 한국고대사 이야기 그만하면 좋겠다. 한국고대사 글 계속 쓰면 진보적인 글 쓰고 받은 점수 다 까먹는다. 진심으로 박노자한테 부탁한다.?
그래도 이병도는 죽기 전에 정신 차렸다. 최태영 선생 덕에 정신 차렸다. 정신 차리고 대고조선을 주장하는 책을 최태영 선생과 함께 썼다. 그런데도 이병도 제자들은 아직도 얼이 빠져 있다. 너무 게으르다. 솔직하게 자신들 실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실력 있는 사람들을 무시한다. 그들은 문헌사학을 포기했다. 오히려 문헌사학 대가 윤내현을 비난한다.?
저들은 고조선 관련 자료가 적다고만 한탄한다. 하지만 고조선 관련 자료는 많다. 윤내현은 저들이 게으름 피울 때 다음과 같은 책에 흩어져 있는 고조선 관련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는 일을 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꽤어야 보배다‘ 윤내현은 서말이 안 되는 구슬을 꽤어 걸작품을 만들었다. 신채호 선생, 리지린한테 배우고 두 분을 뛰어넘는 일을 해냈다. 그런데도 저들은 윤내현이 이룬 것을 시기하고 질투만 한다. 윤내현을 한국 고대사학계에서 매장하려고 한다. 나는 저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이 진정 학자인가??
한국사료:『삼국사』 ,『삼국사기』, 『제왕운기』, 『고려사』, 『제왕운기』, 『고려사』, 『응제시주』, 『세종실록』〈지리지〉, 『동국통감』, 『성호사설』, 『동국통감』등등 ?… .중국사료:『사기』, 『한서』, 『후한서』, 『삼국지』, 『진서』, 『통전』, 『만주원류고』(서평자 주: 청나라 정사, 신채호 선생이 인정하는 책, 책 나온 지 300년 만에 공무원이 번역), 『요사』, 『대명일통지』, 『관자』, 『산해경』, 『수경주』, 『여씨춘추』, 『염철론』, 『전국책』, 『실원』등등 ?… .(171쪽)?
이기백은 비겁했다.?
이기백은 『한국사 신론 』에서 자신이 식민사관 없애려고 애썼다고 말한다. 거짓이다. 이기백이 한국사가 식민사관 벗어나게 한 것 별로 없다. 《한국사 시민강좌》 편집장 이기백은 《한국사 시민강좌》서영수, 이기동이 잘못을 지질러도 침묵했다. 이완용 양아들 이병도 제자답다. 이기백은 똑똑한 인간이다. 일본이 저지른 식민사관 한계를 알 것이다. 그런데도 못난 스승 이론을 고치려고 애쓰지 않았다.?
‘이기백은 《한국사 시민강좌》 2집의 편집인이면서도 서영수의 거짓과 이기동의 빨갱이 때려잡기를 교정하거나 만류하지 않고 그대로 용인했다. 아니 편집인으로서 그들을 옹호하고 조장했다는 쪽이 더 맞아 보인다. 이기백 자신이 이미 윤내현 때려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316쪽)‘고상한 선비차림으로 행세해 온 이기백에 대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317쪽)?
윤내현한테 몹쓸 짓한 이형구
‘1981년 필자가 귀국한 후 단국대학교 사학과 모 강사가 필자의 석사논문(주45)을 빌려간 다음 이를 윤내현에게 전달하였다고 했는데 아직까지도 반환되지 않았다. 윤내현의 글(<기자신고>, 1983)에는 필자의 석사논문과 일치하는 견해도 있으나 어디에도 전거가 보이지 않는다.’(486쪽, 이형구)’결국 이형구의 석사논문의 결론은 기자가 동쪽으로 이동하여 만주와 한반도에 정착했다는 이론으로 한국 주류 고대사학계 이론의 방계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이것은 기자가 만주와 한반도에 온 적이 없다는 윤내현의 <기자신고>의 입장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리고 이형구는 지금까지도 이 이론을 고수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견해가 윤내현과 일치했다는 말인가?그럼에도 이형구가 저런 주장을 떠들고 있는 것은 아마도 인용한 자료 가운데 일부와 그에 대한 해석의 일부가 같다고 우기는 것이다.’(488쪽)
이이화는 한국고대사 공부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이이화는 기초적인 내용도 모른다. 성실성도 부족하다. 성삼제가 쓴 『고조선 사라진 역사』만 봤어도 이런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안타깝다. 사마천은 『사기』란 책에서 사기 쳤다. 고조선 한나라 전쟁에서 고조선이 이겼는데도 한나라가 이겼다고 사기를 쳤다.?
’한나라는 조선을 침략하여 승리하고 나서 한사군을 세웠기 때문에 굳이 왕검성을 버리고 요동에 낙랑군을 설치할 필요가 없었다.‘ –이이화, 《이야기 한국사》 1권, 266쪽(이 책 93쪽에서 다시 인용)’고조선과 한과의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인데 한의 장군들이 작전 실패의 책임 등을 물어 연이어 처형당하고 있는 것이다.‘’위산의 군대는 황제 직할의 정예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위산은 패수를 건너보지도 못하고 회군한다. 그러자 한 무제는 위산도 처형한다. 별다른 전과를 올리지 못한 위산에 이어 한무제는 제남 태수 공손수를 파병한다. 고조선을 침공하라고 추가 파병된 공손수는 도리어 아군 장수인 누선장군을 체포한다. 보고를 받은 한 무제는 제나 태수 공손수도 처형한다.‘(『고조선 사라진 역사』, 성삼제, 121쪽)?
독자 여러분한테 묻는다. 당신들이 한 무제이다. 한나라가 고조선한테 이겼다면 당신들은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장군들 목을 치겠는가??독자 여러분은 이 책에서 이 부분만 읽어도 이 책 산 보람을 느낄 것이다.?
‘소고조선의 뼈대와 『삼국사기』불신론
송호정은 자신의 주저 『한국 고대사 속의 고조선사』36쪽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가 형성 과정을 중심 주제로 설정한 것은 고조선이 국가 형성과 동시에 곧바로 멸망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송호정이나 주류 고대사학계가 자신들의 입장을 이런 식으로 명확하게 밝히는 일은 거의 없다. 사실 이 문장도 상세히 읽어보지 않으면 여간해서는 찾아내기 어려운, 구석에 숨어 있는 문장이다.’?‘절반은 실수이고 절반은 이 책의 원본인 자기 박사논문의 지도교수가 노태돈이기 때문으로 보인다.’(189쪽)? ?
‘어쨌든 고조선이 국가 형성과 동시에 망해버렸다는 것은 과거 고조선이란 조그만 부락이 위만조선이 등장하는 서기전 2세기 무렵에야 역사상 처음으로 국가 수준으로 발전했다가 곧바로 한나라에 망해버렸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서기전 2400년경에 건국되어 반만년 민족사를 이루어왔다는 고조선의 역사는 틀렸다는 얘기다. 이것은 소고조선론의 핵심 논리 가운데 하나다. 여기에 하나만 덧붙이면’ ‘바로 한사군 이야기다.’?
‘1. 고조선은 서기전 2세기 무렵 국가가 되었다가 곧바로 망해버린 나라다. 최소한 서기전 1500년 이전부터 국가를 이루었던 중국의 은(상)나라나 그 뒤를 이은 주나라 및 춘추전국시대의 나라들에 비추면 고조선은 그 기간 동안 줄곧 후진적인 부락 집단에 불과했다.?
2. 그 작은 나라를 한나라가 정복하여 한사군을 설치했고 이 가운데 낙랑군은 고조선 지역에 오래 남아 400년간 지속되며 이후 한반도 국가와 사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한사군 이야기다. 그 이유는 다음 두 가지인데 이것도 꼭 기억해두어야 한다.?
주류 고대사학계가 가진 모든 이론적 논증구조의 핵심은 한사군이다. 이것은 일제시대 일본인 관변사학자들이 만든 전통으로서 그 일본 식민사학과 이것을 그대로 이어받은 한국 주류 고대사학계의 철의 법칙이다.?
이들은 고대사 어느 시대를 말하든 일단 한사군, 특히 낙랑군의 위치와 그 낙랑군이 존재하던 시기를 기준으로 한다. 한사군의 위치를 기준으로 고조선, 부여, 고구려, 옥저 등의 위치를 비정하고 한사군이 존재하던 시기를 기준으로 고조선, 부여, 고구려, 옥저등의 시기를 배정한다. 고조선이 미개한 부락집단으로 전락한 이유도 근본적으로 여기에 있다. 나아가 이들의 위치를 기준으로 만리장성의 위치를 설정하고 심지어 이들의 위치와 연대를 기준으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록까지 마음대로 뜯어 고친다.’?
‘둘째, 만일 한사군이 한반도 내부에 있었다는 이론이 무너지면 일단 고구려사를 연구한 송호정의 사부 노태돈의 평생 업적부터 휴지 조각이 된다. 한사군이 한반도 내부에 있었다고 보는 노태돈은 고구려 성립 시기부터 그 위치, 영역, 군사적, 정치적 활동 전체를 한반도 내부에 있는 한사군과의 관계를 통해 배치하고 정리하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다. 일이 이쯤 되면 한반도 내부의 한사군을 전제로 한 기존의 신라사, 백제사, 가야사, 전체도 모두 무너진다. 다시 말해 이병도, 이기백, 김정배, 노태돈, 송호정으로 이어지는 해방 이후 70년간의 한국 주류 고대사학계의 고대사 이론 전체가 먼지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들이 윤내현 등장 이전에는 별로 신경도 안 쓰던 고조선사에 목숨 걸고 달려드는 실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디 이론만 무너지겠는가. 이론이 무너진 순간 그들의 수십 년간 나태와 권위주의와 학문적 무능력과 매국적 식민사학도 다 드러나게 된다. 국사 교과서에 이들의 수십 년 학문 내용의 오류와 본질이 기록되고 우리의 자녀와 후손들이 이 기록을 배운다고 생각해 보라. 이렇게 되면 한국 주류 고대사학계 전체는 밤잠을 못 이룰 것이다.?
이들이 목숨을 걸고, 윤내현을 왕따시키며 심지어 역사학자로 역사 문헌을 포기하면서까지 한국 고대사를 왜곡하려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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