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원 단편소설 – 배추이파리 [철학을 사랑한 소설]
?이재원 단편소설 – 배추이파리 [철학을 사랑한 소설]
이재원(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두세 달 간 대웅전을 짓는 일을 하는 동안 덕암사 주지는 틈만 나면 사진기를 들고 와 일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었다. 그가 찍은 내 사진만도 한 봉투나 되었다. 그는 절 지은 기념으로 그 사진들을 보관하겠다고 했다. 그 사진들 속에서 나는 일하고 있었다. 가장 활기 있던 나의 생의 한 시절이 그 사진 속에 들어 있었다.
절 지붕을 올리는 중인가 보다. 나는 용마루 위에 서 있다. 작업하다가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것이리라. 그 옆에 장씨가 몸을 구부린 채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다. 장씨는 항상 등산화를 신고 일했다.
장씨가 특별히 게으름 피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등산화를 신고 일하는 탓에 장씨는 항상 몸이 굼떠 보였다. 하 사장은 그런 장씨를 항상 못마땅해했다. 하 사장은 장씨에게 일 시킨 것을 후회하곤 했다. 장씨는 우리와 함께 일하던 사람이 아니었다. 덕암사 일을 시작하기 전, 안영사에서 종각 짓기를 마치자 함께 일하던 일꾼 두 사람이 빠져나갔다. 그러자 덕암사에 와 일할 사람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하 사장이 찾아낸 것이 장씨였다.
장씨는 토목공사 패거리를 따라 덕암사에 왔다. 덕암사 기단 공사랑 주변 축대 공사를 마치자 장씨는 혼자 덕암사에 남아 공사 잔거지를 하고 있었다. 하 사장은 그런 장씨를 뒷일꾼으로 썼다.
장씨는 마흔이 갓 넘었다. 그러나 미혼이었다. 막일로 몸이 굳은 사람처럼 보이는 것도 아니요, 특별히 다른 기술도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평소에 무엇으로 소일했느냐, 누구와 사느냐고 물을라치면 그는, “머, 산으로 들로 돌아다녔에요. 갈 곳 없으면 형님 집에……” 라고 얼버무리곤 했다.
식사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도 있다. 모닥불을 중심으로 여기저기 앉아 식사하고 있다. 양씨가 내 옆에 있고, 진옥 씨가 사람들 옆에 서 있다.
그녀는 다리를 절었다. 어떤 사람은 주지의 부모가 그녀가 어렸을 때 수양딸로 데려다 키웠다고 했다. 우리보다 먼저, 그리고 우리보다 오래 덕암사에 있었던 탓에 장씨는 절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장씨는 그녀가 공장을 다니다가 몸이 나빠져서 휴양차 이곳에 와 있다고 했다. 그녀가 딱히 절에서 어떤 역할을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공양주 보살을 도와 식사 준비도 같이 한다. 그렇다고 그녀가 전적으로 식사를 책임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주지 다음으로 절에서 중요한 일들을 관장하고 있었다. 요사채 겨울나기를 주도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장씨를 시켜 요사채 주변 헛간에 비닐로 문을 해 달기도 한다.
장씨는 그녀 말이라면 껌뻑 죽는 시늉이다. 말끝마다 “진옥씨가 불러서……”라고 한다. 진옥 씨가 자기에게 일시키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은 태도이다.
원래 식사는 대웅전 공사 현장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요사채에서 했다. 그러나 하 사장이 공양주 보살에게 현장까지 점심을 날라다 줄 것을 부탁했다. 겨울이라 날이 짧아 그렇지 않아도 일할 시간이 적은데 점심 먹으러 오르락내리락 하니 일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 모두 추운 데서 식사하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말로 그런 불만을 나타내는 이는 양씨 뿐이었다. 하 사장이 없는 곳에서 양씨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밥 먹는 시간이 을매나 된다구 밖에서 식은밥을 먹게 하누? 에이, 이번 일 끝나면 나는 일 그만할 께다.”
양씨는 50이 넘었다. 하 사장이 일을 들볶을 때 가장 괴로워하는 이가 양씨이다. 포를 조각하거나 끌 구멍 파는 데는 이력이 났지만 연목이나 인방 감을 메어 나르는 일에는 몹시 힘들어 한다. 무릎뼈를 다쳐 찬바람이 불면 시리다고 했다. 하사장이 일을 채근하는 눈빛을 보내거나 일을 채근하는 소리를 지를라 치면 양씨는 다른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렇다고 하 사장이 특별히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세화 김씨는 일꾼들 돈 떼어먹은 적 없고, 품값 주는 날 하루도 넘겨본 적이 없다는 면에서 하 사장이 성실한 사람이라고 칭찬하곤 했다. 물론 세화 김씨도 하 사장이 닦달하는 대상에서 비켜나 있는 것은 아니다. 조금만 머뭇거리면 하 사장이 세화 김씨의 연장을 빼앗아서, 김씨 말대로라면 미친년 널뛰듯 지랄한다는 것이다.
사장이라고 하지만 하 사장도 함께 일하는 목수이다. 절 공사를 도급 맡아 일하므로 사장이라고 불린다. 하 사장은 입버릇처럼 퇴직금 이야기를 하곤 했다.
“직장 다니는 사람들이야 퇴직금이나 있지. 우리네야 퇴직금이 있나, 절 지어 돈 남으면 퇴직금 쪼로 작은 건물이라도 하나 마련해야 할 텐데, 이것 참 날은 춥지, 일 능률은 안 오르지, 이것 참.”
하사장의 말을 잡고 늘어지는 장씨와 그에 대한 하사장의 대거리는 우습지만은 않다.
“그래, 건물 살 만큼 돈을 거의 모았에요?”
“건물 살 돈 있으면 이 겨울에, 가족을 떠나서 이렇게 고생하겠소?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일해서 조금 모아 보려는 거지.”
하 사장은 장씨를 향해 눈을 치뜨고는 쏘아댄다.
“오늘 먹을 것만 있으문 돼요. 배추이파리는 낼모레 썩으니까.”
“돈이 썩는다면 사람들이 일하겠소? 너도나도 오늘 먹을 만큼만 일한다면 겨울엔 어쩔 거요? 굶어죽을 것 아뇨? 벌어놓은 것 없으니.”
“목수가 하루 일 하면 열흘은 먹는데 굶기야 하겠에요? 목수가 일 안 하면 아쉬운 건 사장들이겠지.”
“거 쓸데없는 말 그만 합시다.” 하고 하 사장은 대꾸를 피한다. 배추이파리 공화국(이것은 내가 장씨가 말하는 내용에 붙인 제목이다)을 이야기할 때의 장씨는 이 문제를 대단히 오랫동안, 그리고 열심히 생각해 본 사람과도 같다. 특히 화투판이 벌어질라치면 장씨는 배추이파리 공화국을 실현하려는 사람 같다.
저녁 식사 후 대개는 일찌감치 이불을 펴고 누워들 있다. 잠은 안 잘지라도 지친 몸을 쉬는 것이다. 그러나 가끔 화투판이 벌어진다. 대개 세화 김씨, 장씨, 나, 그리고 하 사장이 함께 한다. 하 사장은 내일 일을 설칠까봐 일꾼들이 밤늦게 자는 것도 꺼려하였다. 아니면 매일 화투판이 벌어졌을 것이다.
장씨는 화투판에서도 말끝마다 ‘배추이파리’이다. “배추이파리는 썩으세요. 웬만큼만 긁어가세요.”라거나, “배추이파리는 꼭 필요할 때만 좋은 것이세요.” 라는 식이다.
장씨가 돈을 따는 날이면 색다른 일이 벌어졌다. 하 사장은 일꾼들이 술을 먹는 것도 꺼렸다. 역시 내일 일을 설칠까봐 걱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씨는 하 사장의 그런 눈치를 아랑곳하지 않는다. 화투판이 끝나고 돈을 세어 보고는 장씨는 기세 있게 말한다.
“내가 이만큼 땄에요. 배추이파리 석장. 이걸 나 혼자 집어넣으면 배추 이파리가 썩어요. 술을 사오겠에요.”
그런 다음 예의 그 등산화를 신고는 산을 내려간다. 장씨는 술과 안주 등속을 사되, 과일이나 음료수, 과자 등속을 넣은 다른 꾸러미 하나를 더 만들어 온다. 그러고는 그것을 공양주 보살과 진옥 씨가 있는 방 안에 밀어넣어주곤 한다. 장씨와 진옥씨가 하는 이야기가 우리들이 자는 방까지 들려온다.
“공양주 보살은 잠들었어요. 저두 먹기 싫어요. 갖다 잡수세요.”
장씨는 막무가내로 들이미는 모양이다.
“우리는 술과 안주가 있에요. 두었다가……”
장씨는 우리 방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모두 장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숨 잠들어 있던 사람들까지 술 소리에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난다. 저녁 식사 후 시간도 적당히 지난 후라 술 한 잔은 그야말로 몸을 녹아나게 한다. 장씨가 돈을 따기를 바라는 것은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새삼스레 장씨의 배추이파리공화국을 되뇌며 잠드는 것이다. “배추이파리는 꼭 필요할 때에만 가치가 있에요.”
신정이 다가와 우리는 일을 며칠 쉬기로 했다. 우리가 쉬겠다고 한 것이기보다는 하 사장이 결정했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나이 많은 축들은, 명절이란 구정이니 신정에는 일하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하 사장은 역시 일 능률을 먼저 생각한다.
“일이 안 돼요, 남들 쉴 때 일하면.”
일을 쉬기로 했다면 의당 일하던 사람들은 집으로 간다. 그러나 장씨는 마땅히 갈 데가 없는 눈치였다. 장씨를 제외하고 우리는 모두 집으로 갈 준비를 했다. 두어 달 만에 집에 가는 것이요, 한꺼번에 받은 임금봉투도 두툼해 사람들은 흥에 겨워했다. 홀로 남게 된다는 생각 때문이라서 그런지, 장씨가 조금 쓸쓸해 보여 나는 말을 걸어본다.
“돈 받으니까 모두 기분들 좋아하네요. 이게 배추이파리라 한다면 사람들 기쁨이 줄어들지도 모르겠네.”
적어도 배추이파리를 화폐로 쓰자는 발상에 관해서만은 장씨 대답은 경탄스러울 정도이다.
“그 반대일지도 모르잖겠에요?. 배추이파리 한 보따리씩 갖구 가지만, 도중에 썩어버릴 테니까 나한테 한 주먹씩 나눠줄 것 아뇨, 술두 먹구, 진옥 씨 허구 맛있는 것 사먹으라구. 주는 사람 즐겁지, 받는 사람 기쁘지, 이형 생각과 같지 않을 수도 있지 않겠에요?”
나는 웃으며 또 농쳐본다.
“그럼 진옥 씨 하고는 잘 되어가는 중이란 말예요? 아이구, 고목나무 꽃 필 일 생기네.”
장씨는 황망히 손 저으며 부정한다. 마치 나에게 달려들 기세이다.
“그런 게 아니라, 진옥 씨도 지금은 돈을 못 버는 처지이니 나누어 쓸 수도 있지 않느냐는 것이지, 내가 어떻게 진옥 씨와 잘 되어갈 수 있겠에요?”
며칠 집에서 쉬고 다시 덕암사로 왔을 때 장씨만이 덩그런 요사채를 지키고 있었다. 인기척이 있자, 진옥씨가 어디선가 나타나 잠깐 얼굴을 보이곤, 다시 어디론가 박혀버린 듯,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밤늦게 도착할 것이다. 장씨가 절에 남아 있는 것이 조금 의아했다. 하다못해 극장이라도 가거나 술 한잔 하러 갈 수도 있었을 텐데 왜 무료히 요사채에 머물러 있을까.
저녁 준비를 할 때에야 무엇인가 느낌이 왔다. 일꾼들이 집에 가자 공양주 보살도 멀리 나들이한 터여서 식사 준비를 할 사람은 진옥 씨뿐이었던 것이다. 진옥 씨가 주방으로 들어가는 기척이 있자 장씨가 아주 익숙한 듯이 주방으로 갔다. 상을 내려 수저 등속을 준비하고 밥통을 열어 밥을 푼다. 진옥 씨가 한 일이란 국이며 찌개를 만든 것뿐이다. 마치 신혼부부가 다정스레 저녁을 준비하는 것 같은 정경이었다.
식사 후 장씨는 술 한잔 하자며 나를 이끌었다. 산길을 내려가면서 장씨가 말했다.
“이형이 하 사장과 일 한지는 얼마 안 되었다면서요?”
아마도 하 사장이 말을 한 모양이다.
일하겠다고 찾아온 내게 하 사장은 나의 목수 경력을 물었다. 목수들은 대개 함께 일하러 다니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목수가 일하겠다고 혼자 현장에 찾아오는 법은 드물다. 하 사장은 마땅히 물어볼 만하다.
나는 하 사장에게 사정을 말했다. 목수일 하기를 몇 년 쉬었다. 쉬는 동안 장사를 했다. 그러나 장사도 잘 안되어 다른 밥벌이를 찾아야 했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목수 일이었다. 함께 목수 일을 하던 옛 동패들을 찾아보니 모두 흩어져 있었다. 할 수 없이 나 홀로 떨어져 일거리를 찾아다니고 있다. 그러니 내게 일을 시켜다오.
나는 장씨에게 말했다.
“이럭 저럭 하 사장과 함께 일한 지 일년이네요.”
시내에 이르자 장씨는 앞장서 술집으로 들어갔다. 여러 종류의 술을 파는 집이었다. 장씨는 국산 양주를 시켰다. 나는 생맥주를 마시는 편이지만 장씨 주문을 막고 싶지도 않았다. 양주도 그 독특한 맛이 있지 않은가. 나는 계면쩍게 웃으며 말했다.
“간조했다는 말이지요, 비싼 양주를 산다는 게? 좋아요, 홀가분한 총각이 한번 써 보시오. 나는 다음에 생맥주를 사겠소.”
그는 소리나게 양주 한 잔을 마시고 말했다. 아니, 빨았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원래 나는 양주를 마십니다. 공사판 슬슬 따라다녀도 양주 마실 만큼 벌지 않겠에요? 머, 이렇게 사는 거지요.”
나는 그가 돈이 생기면 들로 산으로 돌아다녔다는 이야기를 생각해 내고는 말했다.
“양주 마시면 산에는 언제 갑니까? 돈 모아야 산에 가서 몇 달 살 것 아닙니까?”
“갈 형편이 되면 가지요. 산이나 들도 따뜻한 때라야지 지금 같은 겨울이야 어디 적당하겠에요? 지금은 들이나 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형과 술 한 잔 하자고 했에요.”
“어떤 이야기입니까?”
“이형 중매 해 봤에요?”
“아니요.”
“중매 한 번 해 보겠에요?”
“누구와 누구를?”
“나와 진옥 씨.”
“네?”
나는 비록 다리를 절지만 자태가 빼어난 진옥 씨를 떠올려 보았다. 답이 금방 나왔다. 속으로 조용히 머리를 흔들고는 술을 들이켰다.
“당사자끼리 부딪쳐 봐야 해결날 일 아닐까요? 데이트하자고 이야기해 보시지, 진옥 씨한테?”
“그렇잖아도 식사하러 나가자고 이야기 했더랬에요. 그런데……”
“진옥 씨가 거절합디까?”
장씨는 대답을 피했다. 그러고는 딴 말을 한다.
“진옥 씨가 이형을 좋게 생각하는 눈치였에요. 진옥씨가 그럽디다. 이형은 일 잘하는 목수라고. 또 노가다 티 내지 않고 젊잖은 사람이라고.”
“나를 좋아한다면 비참한 일이 생기지. 나는 결혼했는데. 이건 농담이고, 그래서 내가 말하면 진옥 씨가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할 거란 말이군요?”
나는 좀더 장씨의 개인사를 알고 싶어졌다. 묻고 들은 결과는 짐작했던 대로였다. 재산도 없다. 조실부모한 후로 형님 밑에서 컸다. 지금도 형님 집에서 얹혀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형님이 부자도 아니다. 독립해 볼 생각은 여태 하지 않고 살았다. 따라서 방 한 칸 얻을 돈도 없다. 공부도 많이 하지 않았다. 내가 장씨에게 말했다.
“장성한 조카들이 각자 제 밥벌이하는데 장씨 혼자 벌어 혼자 쓰기도 바쁘다면 형님이나 형수 눈총 받을 텐데?”
“내 이래 봬도 국수 뽑는 기술자였에요. 형님이 오랬동안 물국수 공장을 했었거든요. 형님댁에서 내가 쓸모 없는 인간은 아니었에요. 눈총 받을 일 없었에요.”
“그러나 지금은 결혼할 준비도 안 되었다는 게 문제지요. 공장을 했으면 형님이 장씨 월급도 챙겨 놓았어야 할 것 아니오?”
“월급을 따로 챙길 만한 공장이 아니었에요. 여러 식구 굶지 않고 먹고 사는 것으로 족했에요.”
“그러니까 형님 가족들을 위해 일했다? 좋아요, 장형이 배추이파리를 돈으로 쓰는 나라에서 사는 사람답게 살았다고 합시다. 그러나 지금 가정을 꾸릴 만 한 준비가 안되었으니, 진옥 씨 문제를 이야기할 처지는 아닌 것 같아요. 결혼할 준비만 되어 있다면 장형이 진옥 씨에게 직접 의중을 떠봐도 전혀 이상할 리 없죠. 그러나 지금 장형이 할 일은 청혼이 아닌 것 같네요. 하 사장 몇 년 착실히 따라다니면서 돈을 모으는 일 갖네요.”
장씨는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더이상 진옥 씨를 화제로 올리지 않고 술만 마셨다.
덕암사는 조금씩 형체를 갖추어 갔다. 양씨는 여전히 힘이 부쳐 보이되 견디어 나갔다. 장씨는 특별히 요령을 피우는 것은 아니지만 그 등산화가 항상 그를 방해했다. 하 사장은 장비를 쓰지 않고 순전히 사람 힘으로 절 구조를 짜 맞추어 나갔다. 대웅전 중심에 크고 긴 촉대를 세우고 도르래를 매달아 대들보와 서까래 등속을 끌어올려 지붕을 짜맞추는 식이다. 양씨는 하 사장이 없을라치면 항상 한마디 한다.
“크레인 불러 (대들보) 들어올리면 얼마나 편해? 몇 푼 아끼려고 사람을 이리 잡누? 에이, 이번 일 끝나면 나는 집으루 갈란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양씨를 비롯해 누구 하나 하 사장 앞에서는 불만을 말하지 않았다. 덕암사 일을 마치면 북악사 종각을 짓기로 되어 있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각은 대웅전 짓는 것보다는 사람이 덜 필요하다. 목이 잘리지 않고 하 사장과 함께 일하려면 열심히, 말없이 일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덕암사 일을 마무리하면서 하 사장과 세화 김씨 둘만 소근거리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북악사에 가서 종각 지을 일을 계획하는 것이다. 누구누구를 데리고 갈 것인가를 의논할 것이다. 그들 둘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일일이 확인하고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세화 김씨가 이야기했다.
“북악사 옹벽 거푸집 짤 때에도 이씨 혼자는 어려울 거라. 그러니까 장씨도 한몫 쓸 만할 거라요.”
하 사장이 나를 돌아다보며 말한다.
“이씨, 옹벽 거푸집쯤이야 혼자 할 수 있죠? 안영사 기단 거푸집도 이씨 혼자 잤는데, 뭘.”
내가 혼자 못 한다고 해서 장씨를 데리고 갈 하 사장이 아니다. 나는 그저 머리를 주억거릴 뿐이다. 그러자 하 사장은 김씨를 돌아보며 말한다.
“장씨를 데리고 간다 해도 옹벽 거푸집 짤 때만 필요할 뿐이잖소. 그러니까 장씨는 뺍시다.”
결국 장씨가 북악사 일에서 제외되었다. 장씨는 대단히 실망하는 눈치였다. 그래서였을까, 장씨는 하나터면 사고날 뻔 했다. 밤새 서리가 내린 아침이었다. 장씨와 나는 대웅전 지붕에 올라갔다. 지붕 상판을 덮던 어제 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 장씨가 상판을 덮고 남은 재료를 밟고 미끄러졌다. 장씨는 미끄러지면서 허둥대다가 연목 끝에 박아놓은 발비를 잡고 나서야 간신히 미끄러지기를 멈추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장씨를 끌어 올렸다. 장씨는 간신히 지붕 위로 올라왔다. 장씨가 손이 거북스러운 듯한 몸짓을 했다. 나는 장씨의 장갑을 벗겨보았다. 장씨의 한 손가락 손톱이 벗겨져 있었다. 나는 그 손톱을 바로 펴고는 헝겊으로 싸매었다. 장씨는 내게 말했다.
“누구에게도 이 일을 말하지 맙시다. 말 나면 하사장 귀에 들어가고, 안전사고로 하 사장을 걱정시키면 들볶이는 것은 일꾼들이니.”
상량식날 밤에도 장씨는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그것은 사건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덕암사 세면장은 작았다. 두 사람 간신히 씻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일을 마치고 얼굴과 손 발을 씻을라 치면 북새통이었다. 나는 혼잡을 피해서 저녁을 먹고 나서 세면장에 씻으러 가곤 했다. 그날도 느긋하게 혼자 씻고 있었다. 세면장에 들어와 작업복을 벗던 장씨의 주머니에서 무엇인가가 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장씨가 갑자기 허둥대며 그것을 주어들고 안절 부절 못했다. 그것이 무엇인가를 내가 안 것은 잠깐 후의 일이었다. 금반지였다!
상량식 하는 날 신도들은 대개 불전과 함께 몸에 지니고 있던 패물들을 단 앞에 꺼내 놓곤 했다. 패물들은 따로 추려서 대들보 한 쪽 홈에 넣어 봉해졌다. 나는 장씨를 뜨아 하게 바라보았다. 잠시 후 장씨가 말했다.
“이형, 죄송합니다. 모른 척 해 주세요.”
이윽고 덕암사 일을 마치는 날 일하던 사람 모두 시내에서 회식을 했다. 절로 돌아오기 전에 나는 장씨를 술집으로 이끌었다. 생맥주를 마시면서 장씨는 하 사장에 대한 불만을 자제했으나 쓸쓸함을 숨기지 않았다.
“덕암사에 같이 왔던 토목공사 패거리를 따라가지 않았던 것은 물론 공사 뒷마무리 작업과 요사채 일 때문이기도 했에요. 그러나 내 의중은 토목공사를 배우는 것보다는 절 일을 배우는 것이 좀더 품격이 있어 보였에요. 그런데 북악사 공사에는 데리고 가지 않겠다니 조금 챙피하네요.”
나는 할말이 없었다. 양씨는 세화 김씨와 처남 매부지간이다. 따라서 사람이 많다 해도 양씨를 집으로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또 목수들은 대개 하 사장과 오래 일한 사이이다. 따라서 장씨가 밀려나지 않았다면 내가 밀려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밀려나는 것이 일할 곳이 없다거나 돈 때문에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목수라고 간판 걸고 다니다가 일터에서 쫓겨난다면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 연장가방을 메고 다니는 것을 은근히 자랑스럽게 생각해 온 터에 일 못해서 집으로 돌아간다면 체면이 말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만약 하 사장이 나를 자른다면 나는 가만히 잘리고만 있지 않았을 것이다. ‘나를 데리고 간다 해도 당신 손해 안 끼친다. 내 품값 내가 벌어먹을 수 있다. 사람 하나가 더 있으면 다른 사람들 일도 줄어들고 공사 기간도 그만큼 빨라질 것이 아니냐. 그러니 나도 데리고 가라.’ 그러나 내 코가 석자인 터에 장씨를 돌보아 줄 만한 여력이 내게는 없었다.
나는 장씨에게 앞으로의 거취를 물었다.
“스님이나 진옥 씨 모두 (내가) 마땅히 갈 곳이 없으면 절에 머물러도 된다고 하세요. 절 살림도 크니까 일할 사람 하나쯤은 필요하다고. 그러나 머, 내가 절에 있을 사람은 아니고……”
“여기 덕암사에서 겨울을 나는 것도 좋겠네요. 봄이 되면 어디 가서든 일 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웃으면서 장씨에게 말했다.
“그동안 진옥 씨하고 잘해 보세요.”
장씨는 헤벌쭉 웃으며 술을 들이켰다. 지금의 장씨 상황에서 진옥 씨를 보는 것만으로도 장씨에게는 희망이요 기쁜 일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북악사 공사 현장은 자동찻길에서 한참 떨어져 있었다. 우리는 자동찻길에서부터 지게로 일일이 연장이며 나무를 현장까지 져 날랐다. 그리고 기둥과 대들보 등은 목도를 해 날랐다. 좀처럼 불평을 하지 않는 세화 김씨가 지게를 지고 가다가 쉬면서 한마디 한다.
“장씨를 데리고 왔으면 얼마나 좋누? 이렇게 힘쓸 일이 많은데 꼭 필요한 사람만 데리고 와서는 사람 들볶는다니까. 저만 퇴직금 없나? 저만 빌딩 가져야 하나? 사람을 좀더 써서 우리 일을 덜어주면 어디가 덧나나?”
나는 갑자기 생각나는 게 있어, 김씨에게 물었다.
“덕암사 상량할 때 주지가 돈 좀 안 놓았어요?”
“놓았겠지요.”
“누가 보관하고 있나요?”
“하 사장이 가졌겠지요.”
“그 돈 언제 나눠줄까?”
양씨가 내달아 말 했다.
“하 사장은 돈 안 나눠줘. 상량해 보아야 여태 맥주 한 잔 없었어.”
“상량 돈은 대개 나누 갖잖아요? 기와쟁이들 몫까지 나눠주는 법인데?”
김씨가 거들었다.
“내가 하는 이야기가 그거라요. 도대체 자기 뱃속만 생각하니, 이거 해 먹겠느냐고.”
북악사 일이 한창일 무렵 장씨 소식을 들었다. 북악사 주지가 모임을 갔다 와서 장씨 이야기를 했다. 덕암사 주지에게 들은 이야기라고 했다. 절 공사 후 뒷일이 많기도 하고 마땅히 갈 곳도 없어 보여 장씨를 덕암사에 있으라 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는지 며칠을 술에 취해 들어왔다. 그러더니 며칠 전 새벽녘에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취해 쓰러져 장독처럼 몸이 굳어 있는 장씨를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으니 와 보라.
의사에 의하면, 온 몸에 동상을 입어 조금만 늦게 발견했더라면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이었다는 것이다. 장씨를 병원에 옮긴 경찰이 덧붙이기를, 죽으려고 작정했는지 누워 있던 자리에 소주병이 여러 개 있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다.
“얹혀 살던 주제에 사고 쳤으니 절에서도 쫓겨나겠네. 이제 어디로 가누?”
“배추이파리만 찾더니 배추이파리도 필요 없는 나라에 갈 뻔했군.”
그러나 나를 비롯해서 우리 중 누구 하나 장씨를 문병 갈 만한 사람은 없었다. 공사판에서 만난 사람은 현장 일이 끝나면 인간 관계도 동시에 끝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덕암사 사진을 볼 때마다 장씨에게서 들은 배추이파리 이야기는 생각해 볼수록 항상 새로운 느낌을 준다. 나는 만 원 짜리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뇌어 보았다.
“이것이 배추 이파리로 만들어졌다 하자…”
흙에서 난자 흙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돈도 그와 같은 배추이파리도 시간의 차이일 뿐 다 썩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