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신화 사무라이정신, 장성훈의 『사무라이정신은 거짓이다!』/나태영 [보고 듣고 생각하기]

[보고 듣고 생각하기]

만들어진 신화 사무라이정신

장성훈의『사무라이정신은 거짓이다!』

글: 나태영(교육강좌 수료, 한철연 회원)

 

‘현재를 다스리는 사람이 과거를 다스리고, 과거를 다스리는 사람이 미래를 다스린다.’
고대 이집트 사상이 고대 그리스 사상보다 더 뛰어나다. 고대 그리스 사상가들이 이집트에 공부하러 갔다고 자주 자랑한 것을 보면 이는 명백한 사실이다. 이정호 교수 한테서 들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일반인은 드물다. 한국고대사가 중국고대사보다 더 뛰어나다. 이형구 교수, 우실하 교수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는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러나 이 땅 다수 역사학자들이 게으르고 무능해서 그런 사실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들은 화이사관, 식민사관에 물들어서 그렇다. 그들은 이완용 양아들인 이병도의 자식들이다. 식민사학자 이병도는 죽기 전에 참회하고 단군신화가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 자식들은 그 애비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착잡한 일이다. 그들은 신채호 선생만한 역사관도 지니지 못했다. ‘현재를 다스리는 사람이 과거를 다스리고, 과거를 다스리는 사람이 미래를 다스린다.’ 중국이 동북공정, 하상주단대공정(하나라, 상나라, 주나라 시기를 밝히는 공정)을 억지로 밀어붙이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중국 어용 역사학자들은 단군왕검, 광개토태왕, 을지문덕장군도 중국인 조상으로 둔갑시키려고 한다. ‘가늠할 수 없는 꿈의 크기’ 대조영도 저들은 중국인 조상으로 둔갑시키려고 한다. 징기스칸을 중국인 조상으로 생각하는 중국인들 많다. 무섭고도, 무서운 현실이다. 두 눈 부릅뜨고 우리는 우리 고대사 공부해야 한다.

일본인은 거짓을 참인 것처럼 만드는데 도통한 인간들이다. 없었던 왕을 있었다고 끊임없이 우긴다. 일본 고고학자는 일본에 구석기 시대가 있었다는 역사를 만들려고 가짜 구석기 유물을 땅 속에 묻었다. 거짓이 항상 참을 이길 수는 없다. 언론을 통해서 그 학자 거짓이 드러났다. 보통사람 장성훈이 쓴『사무라이정신은 거짓이다!』라는 이 책이 일본인들이 거짓말한 사실을 잘 드러내준다. 이런 책을 역사학자가 쓰지 않았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청나라 정사인『흠정만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라는 책도 이 땅 역사학자들은 번역하지 않았다. 우리 고대사와 관련된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도 그랬다. 저들은 뼛속까지 화이사관, 식민사관에 물든 인간들이다. 최초로 번역한 사람은 공무원 장진근이다. 세상에 나온 지 232년 만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번역되었다. 이 땅 역사는 힘 있는 사람들보다 뜻을 지닌 보통사람들이 가꾼 역사라는 생각을 해본다. 한국 현대사에서 대통령들은 작것질을 했다. 독도에 대해서 말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이 그리했다. 보통사람들이 독도를 지켰다. 장성훈도 중요한 일을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무라이정신은 거짓이다!』, 장성훈 지음, 북마크 펴냄, 2011년

사무라이정신은 근대에 만들어진 이름이다

‘청일전쟁1894∼1895에서 이긴 일본은 자신감을 되찾으며, 서양 열강과 맺은 굴욕적인 통상조약을 개정하는 데 성공한다. 그동안 서양 열강에 갖고 있던 열등감으로부터 자신감도 회복한다. 그러면서 서양의 사상보다는 일본의 ‘고유한 가치관’을 갖자는 기류가 사회 전반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BUSHIDO-The Soul of Japan』이라는 책이 미국에서 영어로 발간된 것도 이때1898년였다.’

‘그 이전의 어떤 문헌에도 ‘무사도’라는 단어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무사도라는 말 자체를 이 책의 저자가 창안하여 만든 글이라고 책에서 밝히고 있다.’(55쪽)

‘그가 유럽의 교수로부터 “일본은 학교에서 종교를 가르치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학생들에게 도덕적 규범을 가르치며 일본의 도덕적 가치관은 무엇인가?”하는 당혹스런 질문을 받는다.

궁색한 답변에 자존심이 상한 저자는 며칠을 생각한 끝에 그것은 ‘무사도’라는 것을 겨우 생각하게 됐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가 학교에서 특별히 도덕적 규범에 대하여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자신의 관념 속에 내재되어있던 도덕적 관념은 그가 어려서 듣던 무사들의 무용담 얘기 속에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쓰고 있다.’(56쪽)
영화 7인의 사무라이(1954)

그가 유럽의 교수로부터 “일본은 학교에서 종교를 가르치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학생들에게 도덕적 규범을 가르치며 일본의 도덕적 가치관은 무엇인가?”하는 당혹스런 질문을 받는다.
궁색한 답변에 자존심이 상한 저자는 며칠을 생각한 끝에 그것은 ‘무사도’라는 것을 겨우 생각하게 됐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가 학교에서 특별히 도덕적 규범에 대하여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자신의 관념 속에 내재되어있던 도덕적 관념은 그가 어려서 듣던 무사들의 무용담 얘기 속에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쓰고 있다.’(56쪽)

‘꼬리가 길면 밟힌다.’ 거짓은 언제든 드러난다. 일본학자가 없던 사무라이정신을 근대에 억지로 만들었으니 그 한계가 일본 역사에서 도드라지게 드러난다.
‘가미가제 특공대원’들은 숭고한 애국심으로 국가를 위하여 스스로를 희생하지 않았다. 얼빠진 정치인들과 얼빠진 일본 역사학자들이 지어낸 거짓말이다. 그들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같은 신세였을 뿐이다. 이 책 『사무라이정신은 거짓이다!』에서 요미우리신문의 와타나베 쓰네요 회장이 말했다. 가미가제 특공대가 실제로 미 함정에 돌진한 숫자가 6프로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도 그 한계를 알 수 있다.

피로 물든 시대, 전국시대는 일본에도 있었다

‘일본의 전국시대는 일본역사에 있어 가장 암울한 시기였다. 한 나라가 무려 50 ∼70여 개의 작은 독립된 세력으로 나뉘어져, 130여 년간 서로가 서로를 침략하고 침략당하는, 전쟁이 그칠 날이 없는 시기였다.’(39쪽)

‘전쟁이 있을 때는 전쟁에 피해를 보고, 전쟁이 없을 때는 전쟁 준비로 또 다른 어려운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면서도 겨울이면 바람막이조차 되지 못하는 움막에서 얼어 죽지 않으려고 웅크리고 자고, 춘궁기면 굶어 죽지 않으려고 주린 배를 움켜잡고 살아야 했다.

자료에 의하면 당시의 지배계급이었던 사무라이들조차도, 상위 30%만이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고, 나머지 70%는 절대적 빈곤 속에서 살았다고 한다.’(40쪽)

?현대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처럼 속마음을 화통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를 알만한 내용이 이 책에 나온다. 경제대국 일본인들 참 불쌍하다.

‘모반과 하극상이 어찌나 심했던지, 영주 및 사무라이들은 동료나 부하는 물론 부모도, 형제도, 심지어 자식도 믿을 수 없는 극단적인 상황이 되었다. 식사를 할 때나, 잠을 잘 때나, 항상 칼을 소지하고 다니게 되었다.’

‘오늘은 살아 있어도 내일을 기약할 수 없고, 아침에 일어나 숨을 쉬어야 살아 있음을 실감하는 그런 시기였다.’(21쪽)

도조 히데키는 절대로 김홍집이 될 수 없다.
도조 히데키는 나쁜 짓은 크게 하고 책임지는 일을 해야 할 때는 쥐새끼처럼 쥐구멍으로 숨었다. 참으로 구차하게 살다간 인간이다. 도조 히데키를 보면서 그릇이 작은 인간은 큰 일 맡으면 안 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도 똑같이 맞춤하는 사실이다.

‘이름 앞에 애국자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니는 친일파가 한 사람 있다.’ ‘일본의 선진 문물을 보고서 그는 불과 한 달 만에 친일로 기울어 있었다.’ (정운현의『친일파는 살아있다』, 169쪽)

‘하루아침에 친러파 세상이 되어버리자 친일파 역적으로 지목된 그는 신변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그는 사인교를 타고 고종이 머물고 있던 정동 러시아 공사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본 일본군이 그의 사인교를 가로막으며 소리를 질렀다.

“대감! 지금 군중들이 대감을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같이 얼른 이곳을 피하셔야 합니다.”

그러자 김홍집은 비통한 표정을 짓더니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일국의 총리로서 동족의 손에 죽는 것은 천명이오. 구차하게 남의 나라 군인의 도움으로 살아남고 싶은 생각은 없소!”

그가 탄 사인교는 군중들의 몽둥이가 기다리는 광화문 쪽으로 향했고, 그는 결국 길바닥에서 맞아죽었다. 그의 시체는 새끼줄에 묶여 개 끌리듯 종로로 끌려가서 발길질과 팔매질에 온갖 수모를 겪었다.’(정운현의 『친일파는 살아있다』, 171쪽)

 

‘육군 대신으로 그 당시 내각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던 도조 히데키는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삼국동맹을 주도하고, 영국, 미국 등이 지배하고 있던 동남아시아를 침범케 함으로써, 기존의 전쟁을 영국과 미국을 상대로 확대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72쪽)

‘한마디로 도조 히데키는 겁쟁이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비굴할 정도로???.

사무라이답게 할복할 용기가 없어서, 그 고통을 감내할 자신이 없어서 총으로 자살을 시도했지만, 결국엔 총을 머리에 제대로 쏠 용기조차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겁쟁이 도조 히데키는 자신이 내린 ‘전진훈前進訓’과는 반대로 명예롭게 죽지도 못하고 수치스럽게 포로로 잡혀 재판장에 섰으며, 자신이 부하들에게 권유한 ‘와전옥쇄瓦全玉碎’도 지키지 못한 채 부끄럽게 교수형에 처해진 것이다.’(76, 77쪽)

 

불교는 살생을 금하는 종교이다. 원광법사가 세속오계를 통해서 말했다. “산 것을 죽일 때는 가려서 하라.” 하지만 원광법사의 말씀을 거스르는 말을 일본 승려는 너무 쉽게 했다.

‘당시 일본인들의 신망을 받던 ‘야스타니 하쿠운Yasutani Hakuun은 “당연히 우리는 죽여야 하며, 가능하면 많은 사람을 죽여야 한다.”고 자국민들에게 어용설법을 하였다.’(51쪽)

야스타니 하쿠운이 과연 일본인들의 신망을 받을만한 승려였는지 의문이 생긴다. 옳곧게 살기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몇몇 기독교 목사들이 상식에 어긋나는 말을 한다. 동족인 북한을 도와줘야함에도 불구하고 북한과는 상대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한다. 남북긴장을 풀기 위해 노력해야할 종교인들이 남북긴장을 더 악화시키는 일을 해대고 있다. 남북이 독일과 다르게 천천히 30년에 걸쳐서 통일을 이루면 대한민국은 백범 김구선생이 꿈꾸시던 멋진 문화대국이 될 것이다. 경제대국이 될 것이다. 세계 최대 금융그룹 골드만 삭스가 한 말이다.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 많다. 왜 독도가 엄연히 한국 땅인데도 저들은 일본 땅이라고 우기는지, 왜 일본이 위안부 여성을 동원하고서도 계속 궤변을 일삼는지, 왜 일본이 2차 세계대전의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척 하는지, 왜 많은 일본인들이 세뇌되어 자살을 하게 되었는지, 왜 일본 총리가 염치없이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경제대국이라고 자랑하는 일본이 전후 독일처럼 상식이 통하는 나라가 되기에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열도부여)은 이 땅 삼국시대 때 백제(반도부여)와 범부여 국가를 이룬 나라였다. 백촌강 전투 때 일본(열도부여)이 수백 척 배를 백제로 보낸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김운회교수가 쓴 『대쥬신을 찾아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런 일본이 이 땅에 큰 죄를 지었다. 그 첫째는 임진조일전(임진왜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 둘째는 1910년에 조선을 강제병합한 것이다. 그보다 더 큰 죄는 이 땅에 식민사관을 심은 것이다. 이 땅 정기를 없애려고 삼천리 금수강산에 말뚝을 박은 것이다. 조선시대 왕궁을 더럽힌 것이다.

김택민 교수는 이 땅 역사가 ‘한의 역사’가 아니라 중국 역사가 ‘한의 역사’임을 정확히 밝혔다. 장성훈이 좀 더 공을 들여서 김택민 교수처럼 훌륭한 역사책을 써주길 부탁한다. 『일본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라는 책을 써주길 부탁한다. 일제 강점기에 이루어진, 지금도 이 땅 곳곳에서 힘을 발휘하는 식민사관을 없애주는데 큰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우리 역사가 ‘한의 역사’가 아니라, 일본 역사가 ‘한의 역사’였음을 확실하게 밝혀주길 기대한다.

‘난세는 길고 치세는 짧다

최초의 1천 년, 난세 870년 치세 130년

중간의 8백 년, 난세 670년 치세 130년

마지막 1천 년, 난세 700년 치세 300년’

(김택민의『중국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 12쪽, 개정판 책 제목이 『3000년 중국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로 바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