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형이상학 산책 58-척도의 개념과 양질 전환의 법칙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 58-척도의 개념과 양질 전환의 법칙
1) 특정 양
3편 척도는 1장에서 척도의 개념을 다루며 2장에서 자립적 척도 또는 실재하는 척도를 다룬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것은 소위 화학적 친화성의 개념이다. 3장에 이르러 무-척도가 등장하면서 본질로 이행한다.
우선 1장에 다루어지는 척도의 개념을 살펴보자. 우선 헤겔은 ‘특정 양[spezifische Quantum]’의 개념에서 시작한다. 특정 양은 앞에서 말했듯이 서로 다른 정량들이 내적으로 관계하여 이루어진 정량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가 곧 비중이다. 이 비중[Gewicht]을 가리키는 말은 ‘특정화하는 무게[spezifische Gewicht]’로 규정되니, 헤겔이 여기서 특정 양[spezifische Quantum]이라는 말을 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특정[spezifisch]는 ‘특수한[bosondere]’의 번역과 혼용될 수 있으나, 차이가 있다. 특수하다는 것은 여러 사물에 공통된 것을 의미하며, 특정하다는 것은 어떤 것이 지닌 고유성을 의미한다. 여기서 특정한 양이란 어떤 사물의 척도가 되는 양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 원자론자는 처음에 물질은 형태나 크기와 같은 공간성을 지닌다고 보았다. 그러나 곧이어 원자의 고유성을 규정하기 위해 무게가 도입되었다. 아르키메데스에 이르러 사물의 비중이 발견되면서 비중이 사물의 고유한 척도가 된다고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특정한 양 즉 비중이라 규정되었다. 오늘날 비중은 사물의 고유한 척도의 자리에서 밀려난 지 오래다. 그러나 비중이라는 말은 그대로 사용된다.
헤겔의 경우 비중은 더는 사물의 고유한 척도가 아니다. 다만 주관적 척도가 될 수는 있으니, 그런 의미에서 특정한 양을 다루며, 그런데 이 특정한 양은 주관적 척도라는 의미이니, 가장 적합한 예가 비중이 된 것이다.
특정 양의 예로서는 흔히 발견되는 비중 말고도 속도가 있다. 속도는 거리/시간의 관계다. 단, 여기서 시간을 거리의 또 하나의 차원으로 본다면, 이 속도는 제곱 양에 머물러 있다고 보겠다. 헤겔은 앞에서 속도가 미분될 수 있는 이유로 이것이 제곱 양의 범주에 속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므로 앞으로 특정 양의 주된 예로 비중을 들려 한다.
2) 특정 양의 개념
앞에서 외연량과 내포량에 이어서 제곱 양 또는 제곱 관계가 다루어졌다. 외연량은 예를 들어 사물의 ‘길이’를 ‘길이’를 지닌 자로 규정하는 것이니, 자기를 통해 자기가 규정되는 양이었다. 내포량은 타자와 관계하는 양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기를 통해 규정된 양이다. 그것은 예를 들어 경도나 강도와 같이 동일한 정량을 다만 타자와 비교하여 규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제곱 양은 이미 두 정량의 관계를 의미한다. 여기서 두 정량이 관계하여 새로운 정량이 출현한다. 다만, 여기서는 두 정량은 실질적으로 같은 것의 다른 차원으로서 정량이다. 예를 들어 면은 선의 제곱이다. 예를 들어 같은 것 즉 선이 제곱하여 즉 자기 관계하여 다른 것 즉 면에 이른다.
그러나 특정한 양에 이르면, 실질적으로 서로 다른 정량의 관계가 다루어진다. 여기서는 두 정량의 관계를 통해 새로운 정량이 출현한다. 비중에서 무게와 부피는 실질적으로 서로 다른 정량이다. 서로 다른 정량이 관계하여 새로운 정량이 출현하니 그것이 곧 비중이다.
부피와 무게는 서로 무관하다. 그런데도 사물에서 부피 없는 무게가 없으며 무게 없는 부피도 없다. 그 때문에 무게와 부피는 내적인 연관을 지닌 것으로 파악되고 양자의 내적 연관이 비중이라는 말로 규정된다.
3) 특정 양의 두 측면
어떤 사물이 비중을 가진다고 할 때, 그 비중은 이중적 측면을 지닌다. 한 측면은 자기 관계의 측면 즉 질적인 측면이며 다른 측면은 외면성의 측면 즉 양의 측면이다. 비중은 분수 즉 무게/부피인데, 그 분수 값이 일정한 정수 예를 들어 1.5라면 이 분수 값의 측면은 외면적 양적인 측면이다.
그러나 이 값은 단순히 직접 주어진 무게가 아니라 무게를 단위 부피에 따라 나눈 것이며, 이는 무게가 부피를 통해 규정된 것이다. 이 부피가 무게에 외면적이라면 이는 자기 관계가 아니겠지만, 이 부피가 무게에 내면적이라면 이는 자기 관계로 규정될 수 있다. 이 자기 관계는 감각적 질과 같은 직접적인 자기 관계가 아니라 타자를 통해 자기로 복귀한 것이므로 매개된 자기 관계다. 그러므로 비중은 자기 매개를 통해 출현한 질적인 측면이 된다.
여기서 비중의 양적인 측면은 증감 가능하며, 외적 규정에 열려 있고 이런 양적인 증감은 점진적 연속적이다. 그러나 어떤 비중의 질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물체마다 고유한 비중을 지니므로, 이런 양적 관계(무게/부피) 값의 변화에 따라서 하나의 물체는 다른 물체로 변화하게 된다. 예를 들어 온도가 내려가면 수증기는 물이 되고, 다시 더 내려가면 얼음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비중은 물체의 척도가 된다.
일반화하여 말하자면, 특정 양은 양적 측면에서 보면 다른 정량과 마찬가지지만, 질적인 측면에서 보면, 물체를 규정하는 고유한 척도가 된다. 고대인의 눈에는 비중이 물체마다 다르므로 물체의 본질을 규정하는 객관적 척도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런 척도는 물체의 본질이 아니라 어떤 상태를 규정하는 척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말하자면 주관적 척도다. 이런 주관적 척도이므로 이 비중은 ‘특정한 양’에 머무른다.
“현존에서 나타나는 양적 규정성은 이중적 규정성이어서 즉 한번은 질이 의존하는 규정성이며 다른 한 번은 이 질과 무관하게 이리저리 옮겨 다닐 수 있으니, 하나의 척도를 지닌 어떤 것의 몰락은 그것의 정량이 변화되는 것 속에서 일어난다. 이런 몰락은 한편으로는 기대되지 않은 것으로서 나타난다. 왜냐하면, 정량에서는 척도나 질을 변화함이 없이 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런 몰락은 개념적으로 파악되는 것으로 되니 즉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몰락이다.”(논리학 재판, GW 21, 331)
4) 표준의 개념
물체마다 고유한 비중을 지닌다. 물의 비중이 1이라면 철의 비중은 그보다 높을 것(예를 들어 10이라고 하자)이고 나무의 비중은 그보다 낮을 것이다(예를 들어 0.1이라 하자). 여기서 물체의 비중을 측정하는 표준은 물이다.
물은 고유한 척도 즉 1이라는 비중을 지니고 있다. 헤겔은 이것이 모든 물체의 비중을 재는 단위가 된다는 점에서 ‘본래적으로 규정된 존재[an sich Bestimmtsein]’이라 한다. 앞에서 정량을 규정할 때 그 단위가 되는 일자를 헤겔은 마찬가지로 ‘본래적으로 규정된 존재’로 언급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라.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이 표준적 단위는 자의적인 것일 뿐이다. 비중의 기준이 되는 것을 보통 물로 보고, 물의 비중을 1로 규정한다. 왜 물이 비중의 표준 또는 기준이 되어야 하는지는 관습적인 것일 뿐이다.
일상적 삶에서 긴요한 것이 항해이니 물에 뜨는가 아닌가이니, 아마 물의 비중을 1로 규정해서 기준으로 삼았을 것이다. 항해를 위해서는 물 대신에 바닷물을 표준으로 삼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척도는 일상적 의미에서 표준이니, 그것은 외면적 몫수[Anzhal]에 대립하여 그 자체에서 규정된 총수[Einheit]로서 자의적으로 받아들여진 정량이다. 그와 같은 단위는 사실상 그 자체에서 규정된 총수일 수 있다. 예를 들어 피트나 그와 같은 근원적 척도다. 그러나 그런 총수가 표준[Massstab]으로서 다른 사물에 적용되는 한에서 그 사물에 다만 외면적이며 그것에 내재하는 척도는 아니다.”(논리학 재판, GW 21, 330)
이제 어떤 물체의 비중을 물이라는 표준을 통해서 보자. 물체의 비중 자체는 추상적인 양이다. 비중이 무게/부피라고 해서 무게를 재고, 부피를 측정하면 비중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물체의 비중을 재기 위해서는 먼저 단위가 되는 물의 부피를 정해야 한다. 물 1L의 부피에 해당하는 무게가 1kg이면, 철이나 나무 1L의 부피를 잰 다음 그것의 무게를 알아보아야 그 비중을 알 수 있다.
철이나 나무는 일정한 무게와 부피를 지닌다. 이런 무게나 부피의 관계는 직접적 정량이다. 그러나 이 비중을 물이라는 표준을 통해서 본다면 일정하게 규정된 비중을 지닌다. 이 비중은 타자를 통해 자기 관계하는 것 즉 특정화된 양이다.
물체의 특정화된 양은 곧 비례 지수가 된다. 예를 들어 이 물체의 비중은 물체의 무게와 부피 사이의 비례를 규정하는 비례 지수가 된다. 물체의 무게는 물체의 비중* 물체의 부피가 될 것이다. 물체의 부피를 알면 우리는 그 무게를 알 수 있다.
5) 자연 변증법
비중이 두 측면 질적 측면과 양적 측면을 지니므로 여기서 그 유명한 법칙 양질 전환의 법칙이 나온다. 양이 변화하면 질이 변한다는 법칙이다. 이 법칙은 엥겔스가 자연 변증법에서 이를 자연의 한 법칙으로 삼았고 구체적 예로서는 수증기가 물로 되고 물이 얼음으로 되는 것을 들고 있다. 이어서 엥겔스는 사회적 생산에서 생산력의 양적 변화가 생산 관계라는 질을 변화한다는 예를 통해 이를 설명했다. 그 이후로 이 법칙은 널리 알려진 법칙이다.
엥겔스가 자연 변증법의 법칙을 세 가지로 들었는데 그 각각이 헤겔 논리학에서 나왔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 가운데 양질 전환의 법칙은 바로 지금 우리가 다루는 존재론의 영역에서 나온다. 상호 침투의 법칙은 본질론에서 끌어낸 것이다. 이중 부정의 법칙은 개념론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엥겔스는 이런 법칙을 자연의 일반적 법칙이라고 규정했고 그것이 적용되는 구체적 영역 즉 헤겔 같으면 존재론, 본질론, 개념론이라는 영역을 표현해 주지 않았다. 그 결과 이런 법칙들이 무차별하게 아무 데나 적용되곤 했다. 헤겔의 존재론은 역학의 영역이다. 본질론은 굳이 찾자면 생물학의 영역이다. 개념론은 인간 사회의 영역이다. 그렇다면, 각 영역에 다른 법칙을 적용해야 마땅하다.
특히 양질 전환의 법칙은 앞서 말한 대로 헤겔이 특정 양의 영역에 적용한 것이다. 그것은 물체의 어떤 상태를 양적으로 표현할 때 나온다. 구체적 예는 비중과 같은 것이다. 이런 영역을 넘어서 다른 영역에 이런 법칙을 적용하는 것은 헤겔의 관점에서 본다면 범주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중이 바뀌어 수증기가 물이 되고 물이 얼음이 되는 것은 마땅히 양질 전환의 법칙이 적용될 만하다. 그러나 생산력과 생산 관계가 논의되는 사회적 영역에서 단순히 양질 전환의 법칙을 적용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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