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론 사고 대 다양체 사유: 비례중항 대 조화중항 [천 하룻밤 이야기]
이원론 사고 대 다양체 사유: 비례중항 대 조화중항
2026 02 19 우수(雨水): 겨울이 지나가는 기호(sign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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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언론지평 또는 공론장이라 하는 소통의 방식이 왜 이분법에 매여 있을까? 음양, 천지, 건곤, 용호 등의 용어에 습관적으로 익숙하기 때문일까? 통시적 습관과 현 사회의 공시적 습관은 다를 것이다. 내가 서울에 올라와서 철학을 공부하면서도 이런 사유방식에 어떤 문제가 들어 있다고 여겼다. 고대철학을 연구하는 철학도들도 이 문제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지금도.
언어라기보다 입말의 분석에서 나온 공시태라 할 수 있는 현상에서도 사건들에 대한 설명과 설득을 위한 인용을 보면 더욱 흥미롭다. 언론이든 학자이든 인용하는 학자들의 소속 또는 계열을 보면 그러하다. 현 상황에서도 맑스도 공산주의도 주제로 올리지 못한다. 그럼에도 맑스를 입에 올리는 자들이 맑스에 대한 이해가 없다고 한다. 이 문제만이 아니다. 민주정을 말하면서도 아테네 민주정이 아니라, 영국이나 미국이 민주제를 말한다. 공화정을 이야기하면서 로마 황제제 이전의 공화정을 말하지 않고, 나아가 프랑스 대혁명의 공화정을 말하지 않고, 민주제 앞에다 자유와 민주라는 용어를 붙여서 자유민주공화국이라 한다. 이런 담론들이 유행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가 서양사 또는 세계사를 이해하는 방식은 조선말 또는 대한 제국시대부터일 것이니, 동학이후로 치면 140여 년 쯤 될 것이다. 세계사 속에 편입의 시기에서, 코로나 이후에 눈떠보니 우리가 전지구적 삶을 살고 있다고들 한다. 우리가 세계의 일부를 넘어서 세계사 속에 가로지르며 흐르는 것은, 누리소통 이래로 AI시대에 세계 속에 들어와 있다는 점이다. 아직도 세계사 속에서 파편들만 우리의 누리소통에서 전개될 뿐이지만, 소통의 연결방식은 무한정하게 열려있다. 이제 배치와 배열을 유기적으로 조직화하는 방식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일 수 있다.
공시태 속에서 주류(상층)가 지도적 역할을 한다고 한다. 내류(심층)는 이 부류에 끌려가고 있다고 한다. 통시적으로 오랜 과정에서 주류의 학문(사서삼경)은 인민에게 명령 또는 지배의 논리였지, 내류의 삶과 심정과는 따로 놀았다. 그럼에도 주류 중의 일부는 항상 백성이 하늘이라고 한다. 백성이 하늘이 되기에는, 세계사에서 보아 백성의 소통(입말)이 문자화되어야 하는 데, 우리에게는 한자문화 속에서 상층과 심층이 따로 가고 있었다. 내류가 표면으로 오른 것은 겨우 80여 년이라 할 수 있다. 표면에서 심층이 내공을 가지고 표면의 각질을 균열내고 솟아나는데 시간이 필요했고, 아직도 필요하다. 내류의 강도가 축적된 내공은, 상층이 심층을 가르치는 정보의 획일화와 위계질서에 따른 명령과 지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심층의 자각으로 자치성과 자율성, 공시태 속에서도 연대와 소통에 있다.
백성이, 인민이, 민중이 입말의 소통을 배치와 배열을 바꾸는 것은 두 가지 습관(역사적 습관, 현실 제도적 도덕)에 젖은 사고방식에서는 쉽지 않았다. 지금도. 바꾸고자 하는 과정에 걸림돌이 세계사를 재단하고 선전하는 상층의 방식이 공시태의 습관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들 중에서 하나는 유럽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서양이 또는 이방인이 우리나라, 중국, 일본을 합하여 동양이라고 하고, 우리나라의 특성을 무시하고 중국과 일본의 역사 또는 근대사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서 복속되어 있다고 하는데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의 화를 낸다. 우리나라는 중국도 일본도 아닌 우리의 고유성이 있다고 한다. 그 고유성이 상대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국뽕처럼 답한다. 그게 답이 아니다. 언어와 문자가 아니라, 입말과 문자화 방식이, 유기적 조직화의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고, 이런 차이는 어느 차이보다 크다. 여기에 대해 우리나라 언론지평에서 인용하는 것을 보면, 유럽에서 영국, 독일이 거의 8할에서 9할이며, 프랑스는 언급일 뿐이다. 그리고 영국과 대륙이라고 이원화하면서 독일과 프랑스가 같은 대륙 사상이라고 독일이야기로 덮는다. 우리나라 사람이 화를 내듯이 프랑스인도 화를 낼 것이다. 프랑스의 고유성이 먼저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통시태로 보아, 단군과 고조선 이래로 중국과 다르다고 한들, 훈민정음(1446년)에서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라는 것보다 더 차아가 나는 것이 없을 것이다. 대략 보아 유럽 3국의 차이가 르네상스 시기(1500년대)라 보면 비슷한 시기이다. 철학사에서는 이시기에 인류가 자의식의 발현의 시기라 한다. 중국은 금나라의 송나라 침입으로 자의식의 발현으로 신유학(주자학)이 생겼다고 하나, 이민족의 지배에서 벗어나려 원나라를 몰아낸 명나라(1368-1664)에서 통일된 중국을 갖는 점에서 중국의 자의식의 성립으로 본다고 한다. 우리나라를 오랜 관습상으로 중국 사상의 일부로, 현시대의 공시태로서 서양학문의 수입의 습관에서 일본 사상의 일부로, 서양인들이 알고 있다. 냉전의 산물로서 남북전쟁이래로 피폐해진 나라에서 코로나의 방역으로 세계사의 표면에 오르면서, 세계가 우리나라를 중국과 일본과 다른 나라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유럽에서 독일과 프랑스의 사상을 같은 대륙사상이라고 하면, 그 이방인이 우리나라를 모르듯이, 우리가 프랑스를 모르는 것이다. 프랑스와 독일 사이의 사상적 차이와 통시적 차히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차이와 차히보다 더 크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현시점에서 언론 지평에서, 사법부와 행정부 사이의 갈등과 대립에서는 독일과 일본의 흐름과 영국과 미국의 사고방식을 따라 가고, 프랑스 사유를 밀어낸다. 내가 알기로 공산당과 사회당으로 집회 결사 뿐만 아니라 언론의 자유는 프랑스가 유일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이런 사상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말하면, 이분법 사고에 젖어서, 마치 중국의 유학의 공화과 불교의 평등을 밀어내는 것처럼, 이것들을 이상하게도 사교(邪敎) 또는 빨갱이 취급하는 경향을 드러낸다.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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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민주당에서 합당 문제에서도 그러하다. 합당의 주제로서, 또는 우리나라가 나갈 중요한 화두로서, 우리 사회에서도 이제는 사회권과 자연권을 표면위로 올릴 수 있다고 한다. 사회권이란 상층의 공론장이 아니라 민중의 의식화의 표현, 심층의 표면화이다. 이 용어는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부제로서 인용하는 정치권(le droit politique)과 같다. 이 시기는 그리스 민주제처럼 인민의 의사에 의한 발의와 결정이 제도화하는 것을 말한다. 프랑스가 르네상스 이래로 프랑스 입말을 쓰기 시작하여 200여년이 걸려서야, 상층이 문자화를 통해 지배하던 라틴어가 물러나는 시점이다. 이 귀결이 프랑스 대혁명이다. 다른 하나는 이런 계약의 사회에서, 철학적으로 ‘자연배후학(형이상학)’은 자연이지, 신이나 지배층이 만든 법률이 아니다. 법치는 자연권의 토대위에 있다. 모든 사회적 계약과 규약이 인민의 의사에 의해서 이루어지듯이, 세계는 자연의 자치와 자기과정 또는 자율성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의 배후에는 자연의 자치성과 자율성이 있다. 인간도 스스로 자치와 자유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사유는 입말이 소통장에서, 표면에서 자유로울 때이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기까지 여러 별종들이 성행했다는 것도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서유럽의 세 나라, 프랑스, 독일, 영국에 대해 좀 더 깊이있게 들여다보고 생각해야하듯이, 우리나라, 중국, 일본에 대해 공시태에 머물지 말고, 오랜 과정의 삶의 방식에서 나온 통시태의 사유를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중국과 일본에 비해 특이성이 뛰어나다. 일본이 한자와 자국어의 병행이듯이 중국의 고문과 간자체의 병행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입의 구강(신체의 유기적 조직화)과 함께 하는 입말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이 차이는 공시태의 차이가 아니라, 통시태의 오랜 과정에서 만들어진(창조된) 차히이다. 이로서 이원론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에서, 다양체가 아니라도 삼원적으로 또는 다원적으로 다루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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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을 대하는 태도에서 다른 하나는 서양사상사에 대한 이해가, 내가 보기에,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학자들이 또는 식자들이, 거의 9할이 일본과 미국에 젖어있다. 일제와 미제의 영향을 당연히 여기는 것은 꺼삐딴 리와 같은 사고방식이리라. 내가 서울에 와서 천재와 수재라고 불리는 이들을 많이도 보았다. 철학에서도 이들 중의 9할 이상이 앵글로색슨(영미, 독일철학)에 젖어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나도 잘은 몰랐었지만 박홍규(朴洪奎, 1919~1994 : 前 서울대 철학과 교수) 선생님에게는 열에 ‘하나’가 특이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를 이어가는 이는 드물다. 내가 가끔 농담처럼 이야기하기로, 왜 프랑스 철학을 선택했는가 하면, 2천년의 중국의 너울에서 벗어나고, 100년의 일본의 학문적 영향에서 떠나고 싶고, 미국의 철학이 우리를 지배하려 드는 것이 싫어서라고 한다. 인도나 중동을 선택하지 않고 프랑스를 선택한 것도 서울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은 통시적으로 조선시대에 훈구파로서 상층을 유지하려는 사장파, 서인, 노론, 주자학으로 이어지는 외세 의존파가 주류를 이루었다. 이런 계보에서 학문적 편견으로 “사문난적”이라는 방식으로 편 가르기 하면서, 달리 사유하기를 배제를 넘어서 그런 사유를 은연 중에 악의 소굴처럼 만들었다. 이에 비해 내재적 발현을 이어가는 사림파, 동인, 남인, 실학 이후에도 문체반정에 대해 별종의 발언들이 있었으며, 이는 20세기에 만주에서 다른 계열로서 자주 독립파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원적 분화의 설명도 또한 이중성으로 한정되는 것 같지만, 여전히 영토에서는 상층의 지배가 있었다. 심층이 표면으로 올라오지 못했던 시절에 이원화는 표면 위에서 이원화이지, 자연배후학의 자연과 정치권(사회권)의 주체로서 인민을 포함하는 이원론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대의 한계였다. 그럼에도 120여 년 동안에 자의식의 발현으로 80여 년 전부터 입말이 표면에 올라오면서 삼원성이 드러났다. 그리고 현재는 상층과 심층의 대립(모순이 아니다) 사이에 표면의 이중성이 드러났다. 이런 표면의 이중성을 주류 언론은 현실을 인정하자면서 공시태로서 사실(만들어진 것)들을 보자고 하고, 통시태 입장에서는 사건(연관들의 조화)들을 만들어가자고 할 것이다. 사건은 접속하는 연관의 사유에 덩어리로서, 이 사건이 굴러가는 방식에 따라 그 시대의 카이로스(또는 변곡점)를 드러내 보인다. 그 변곡점을 잘 들여다보면서, 사람들의 발언과 조화를 이룰 평결에 관심을 기울이는 시대이다. 이번에 유시민의 발언은 변곡점을 찍었을 것이며, 이런 사유의 흐름을 잡고 있었던 이는 이해찬(1952-2026)이라고들 한다. 이런 과정에서도 빨갱이니 공산주의니 하는 용어들로 공론장에서는 이런 화두를 매장하려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인류가 통시적으로 주장해온 사상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이들인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사상의 자유에서 등장하는 자유가 자본주의와 우리나라 현실에서 모순이라고 여기는 이들이다. 모순은 유일신앙자의 논리이고 존재론의 비례의 논리이지, 자연배후학이든 실증철학사의 조화의 논리가 아니다. 전자에서는 사실에서 만들어진 것들의 비교와 수량적 비례로서 참과 거짓, 또는 아군과 적군을 구별한다. 이에 비해 후자에서는 사건에서 다양한 접속에서 대립과 차히가 있지만 사유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 타당한 사유 방식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실들(les faits)과 사건(les événements)의 차히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속에서 차이가 악마화되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 아류의 비례중항(比例中項)을 중요시하는 것이고 앵글로색슨의 사고방식이다. 이에 비해 사건 속에서 다양한 접속에 대립을 종합하는(진정한 의미에서 변증론) 과정에서 조화중항(調和中項)을 찾는데, 이는 소크라테스와 공자의 사유에 있다. 이 후자들의 특징은 유일신이 없다는 것이다. 유일신으로 상승하는 사고에서 최고 류개념의 성립을 변증법이라고하는 것은 자연배후학이 아니고 유일종교의 신학이다. 철학은 신에 대한 경배가 아니라, 자연에 대한 자기성찰이다. 신을 믿는 자들은 그 신이 자신들의 소유 또는 대변자라고 착각한다. 이에 비해 자연배후학에서 자연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고 누구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자치와 자율성과 자발성에 대한 성찰과 집중에 있다. 변증법이란 이름으로 대립을 모순으로 몰아 적대시하는 사고와, 공동체에서 소유 없는 공산의 사회의 조화와 공감, 누리소통에서 공명을 찾는 사유, 이 둘 사이에 차히는 어디서 왔을까? 나로서는 박홍규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무엇인가 다르긴 다른데 어떻게 다른지, 선생님의 설명이나, 뒷풀이에서 그 제자들 사이에서의 해석의 차히가 있다는 것은 느끼지만 무엇에서 나왔는지를 알 수 없었다. 공시태와 통시태, 우주론과 우주발생론, 존재론과 자연론, 공간론과 시간론, 참주제와 민주제, 황제제와 공화제, 진위론과 실증론 등에서 사유의 차이는 분명하지만, 이 차히의 근원이 무엇일까?는 늘 고민이었다. 벩송은 두 가지가 근원에서 차이가 있다고 했다. 정지와 운동, 공간과 시간이란 용어를 내비쳤지만, 나로서는 젊은 시절에 운동(정확하게는 지속)의 설명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는 사유의 단위(l’unité)에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왜 벩송은 수의 하나(un)라는 단위의 비판에서 출발했을까? 수학책을 열권이상 읽으면서도 잘 찾을 수 없었다. 수학사에서 한 가지 얻은 것은, 모든 수학들은 수로 환원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브룅슈비끄는 달리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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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하게 설명하기 위해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은 하나의 단위, 그 다음으로 둘째 단위, 두 단위의 설명과 둘 사이의 유사성과 상사성도 있다는 것이었다. 하늘과 땅, 음과 양, 좌파와 우파, 0과 1은 편리를 위한 사고방식이다. 그 둘은 유사성보다 상사성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양자를 쌍으로 보는 경우, 대립으로 보는 경우, 조화와 순환으로 보는 경우, 그리고 극한에서 모순으로 추상하는 경우, 등은 각각이 다르다.
하나의 단위에서 둘로 구별하는 방식이 주류를 이루는 사고방식과 달리 하나에서 여럿이 발생한다는 사유는 다르다. 둘은 자르면서 생기는 것이고 이로부터 사고를 하는 이들이 간단명료해 보인다. 그럼에도 자연은 하나에서 여럿을 창조하고 생산하며, 여럿들 사이의 발생과 생장이 서로 다르다. 여럿을 모두 이야기하기 어려워서, 셋으로 줄여서 간략하게 이야기하기도 하고, 넷 또는 다섯으로 다루기도 한다. 인간의 의식도 얼(혼)과 행(삶)의 이분법이 있는가 하면, 현실에서 상층과 표면과 심층(로고스, 에토스, 파토스)로 구별하여 사유하는 이들도 있고, 나아가 사상처럼 넷으로 구별하는 경우도 있으나, 수학사에서 1차, 2차, 3차, 4차를 나누기도 한다. 그런데 공간상으로 4차를 구해내기 어렵다. 그러면 점을 1차로 선을 2차로 면을 3차로, 체적을 4차로 생각해 보면 되지 않을까하는 이들이 있다. 점이란 것이 그렇지 않다. 이 점은 아톰과도 다르고, 산수학에서 수와도 다르고, 언어논리에서 항목 또는 용어들과도 다르다. 이런 차이들을 숙고하는 쪽은 (플라톤과 플라톤주의 이래로) 일자와 다자에 대한 구별에도 고심을 한다. 편리의 사고는 플라톤주의, 루소주의, 맑스주의 등으로 쉽게 구획정리로서 나름의 경계를 그은 것이다. 플라톤에서 페라스(한계)를 상충에 두는 이유이기도 한다. 그러면 반대편의 아페이론은 무엇인가? 페라스의 범위 밖인가? 페라스를 생산하는 토대 또는 재료일까? 그 자름의 경계는 무엇인가?
플라톤의 사유 깊이는 소크라테스로부터 이어지고, 대를 이어간 아카데미아 학당장(총장)들로 연결된다. 플라톤의 「폴리테이아」편에서 선분의 비유는 편리한 사고였다. 네 등분인데 이등분으로 보면 인식과 비인식(억측)이라는 이분법이다. 그러나 수학사는 흥미롭게도 인식(에피스테메)에 산술학과 기하학, 비인식 부분에 천문학(책력)과 음향(입말, 음악)을 포함시켰다. 이로서 중국의 주역이나 사상의학처럼 4가지로 분류된다. 그런데 플라톤이 후기에 가서 「티마이오스」편에서 이데아계, 데미우르고스, 아페이론계로 삼등분했다. 삶의 현실에서 로고서, 에토스, 파토스의 세 측면을 고민했다고 해석한다. 여기서 중간항처럼 보이는 에토스에는 서로 겹치는 듯하지만 다른 기하학과 천문학이 있다. 얼핏 보아 천문학이 상층에, 기하학이 심층에 가까울 것 같다. 이런 고민이 아카데미아 학당장들은 괴롭혀서 회의론으로 개연성으로 고민했다고 한다. 플라톤의 천문학은 이집트 책력에서 온 것이라 하며, 책력은 삶의 터전에서 생활양식의 필수요소이다. 그 당시에 12별자리든 24절기든 농사와 연관이며, 인간이 먹거리와 잠자리의 중요성이 표출된 것이다.
그러면 음향은 무엇일까? 비빌론과 이집트의 음악(율려)에 대한 전승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악기가 주축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리스의 연극 극장을 생각해보면, 반원의 중심(촛점)에서 연기자가 이야기 한다. 관객에게 골고루 전달되는 방식이며, 그리스 민주정의 전성기에 시인 작가들이 또는 연설가, 변론가들이 시대 이끈 주인공들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언설들이 난무하는 길거리에 이야기들을 종합(담론, 평결)을 하고자 한 인물로 보자. 그러면 플라톤의 고민은 아테네 시민의 의견들의 종합으로 실행방식이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 페라스를 전달하는 지자의 역할일까, 아니면 아페이론의 다양한 입말의 발설들을 종합하는 현자의 길이었을까? 앵글로색슨 철학사가들은 전자에, 프랑스 실증주의는 후자에 방점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아카데미아의 후대 학당장이든 플로티노스이후 플라톤의 계승자들은 책력과 음향에서 그리고 수학의 내용에서 운동과 변환은 산술학의 단위 1과 기하학의 단위 점과 다른 것으로 보았다. 이 단위는 산술학도 기하학도 아닌 조화중항이라는 단위가 있다는 것이다.
학문사에서 늦게서야 이분법의 단위가 아닌 다른 단위가 있음을 확증했다. 비례중항이 맞다 틀리다를 따진다면, 조화중항은 소크라테스와 공자처럼 훌륭타 장하다를 다루었을 것이다. 되돌아가서 플라톤은 이원적 비례중항이 아니라, 삶에서 다양한 발생(아페이론의 생성)을 고심했다고 보았다. 그 삶에서 발현, 발생의 다양한 방향과 다양한 계열의 종합이 플라톤이 사유했던 변증법일 것이다. 이로 후대의 학자들은 4가지 분류방식의 종합은 상층의 산술과 기하의 비례방식의 중간을 기본으로서 다루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원(공)의 운행과 변화와 음향의 확장과 전파에 대한 것을 포함하여 종합으로서 변증법적 중앙, 즉 조화중앙을 찾으려했다고 보았다. 삶에서는 비례중항이 중하고 먼저라고 보았다. – 아마도 후대에서 플라톤의 다자의 조화에 대한 해석을, 상층의 이데아들의 조화가 아니라 아페이론에서 발생된 준이데아들의 조화로 보았을 것이다. – 브룅슈비끄 수학사는 이를 흥미롭게 전개한다. 양자 대결에서 진위, 선악의 구별은 비례중항이란 이름으로 유일신앙의 착각이지만, 이에 반해 삼자 또는 다자의 조화중항은 인간의 삶에서 일어나, 상부상조, 약속, 계약, 평결, 협약 등에서 드러난다. 우리나라에서 비례중항주의자들이 언론 공론장을 이야기하면서 중립적이라고 하는 말은 상층의 지배를 감추고 있는 사기에 가깝다. 비례중항에서 중립은 선과 악, 진과 위 사이에 서는 것으로, 전형적인 유일신앙의 이분법적 사고이다. 이 중립이라는 항은 현실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상층(극우)에 편드는 경계선을 긋는 작업이다. 이런 작업을 플라톤주의 또는 아리스토텔레스 정의에서 끌어내어 이야기 한다. 플라톤의 사상에서 초기부터 이분법이 있었지만, 그것은 영혼의 역량에 대한 마부의 비유에서, 하나에서 둘로 갈라지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 하나에서 둘만이 아니라 여럿이라는 점을 선분의 비유로서, 우주의 생성에서 새로이 다루고자 하였으나, 당대의 입말과 수학들의 전개방식의 한계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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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일제에서 벗어나 20세기 후반에 입말의 발생과 확장이 극대화 되었다. 이런 발생론적 과정이 서울이라는 틀에, 즉 스스로 페라스를 긋는 작업에 갇히어, 또는 조선 시대 관습이래로 상층을 유지하는 방편으로 남북의 경계를 긋는 자들에 포획되어, 이런 사고가 이분법에 머문 것은, 앵글로색슨 철학을 심은 일제의 강압도 있었지만, 사문난적과 문체반정의 영향도 있었다. 이런 점에서 서울은 사대주의의 연장에 서 있었고, 미국이라는 제국으로 갈아타면서 앵글로색슨의 분석철학을 심었고, 정의론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 계열의 비례중항을 심었다. 그 속에 미국의 정의, 독일의 공론장을 말하고 있다. 그나마도 플라톤에 대한 깊은 탐구와 이해가 있었음에도, 서울이 사문난적이래로 3백여년 습관과, 현실에서 영어를 간판으로 만드는 공시적 습관 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덧씌운 플라톤주의도, 그리고 맑스주의도, 비례중항이라는 이름으로 젖어서, 중립적이고 하며 중간자의 입장이라고 하며, 민주와 정의를 말한다. 이들의 사고에서는 플라톤이 고민했던 에토스에 이르는 발생의 책력과 음향은 제국의 체제에 맞게 짜여가고 있었다. 그리고 산술과 기학의 이중성에 대해 언어 추리로서 최고류로 종합이 현시대를 지배한다. 그 지배는 로마 황제제 이래로 전쟁을 통한 지배와 수탈이며, 이 그늘 속에서 서울은 인민의 최종심급의 평결장을 법치라는 이름으로 공론장을 만들고 있으며, 발생과 생성을 거짓과 악으로 몰아가려 한다. 이번에 극우파의 제국 추종주의와 달리, 달리 사유하기의 방식으로 사회권(루소의 정치권리)과 토지에 대한 자연권을 화두로 올렸으나, 제국의 주구들이 덤벼들어 다양체의 논의를 공론장의 논의로 바꾸었다. 아직도 앵글로색슨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나, 누리소통을 4천5백만이 손안에 쥐고 있는 나라에서 다양체의 발현은 이미 도래했다. 상부상조, 공감, 공명의 종합으로서 변증법적 사유인 조화중항을 널리 사유할 때이다.
플라톤이 흥미있게도 정의를 조화라고 했다. 영혼, 가슴, 팔다리의 삼자가 조화로울 때정의롭고, 이를 실행하는 이가 훌륭타. 영혼의 발산은 용기와 절제로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진다고 하는 것은 발생과 과정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이를 고정시키는 자들이 이분법주의이자이며, 플라톤이 아니라 플라톤주의자들이다. 이들의 사고방식으로 보아, 그러면 용기는 선이고 절제는 악인가? 하나에서 여러 방향으로 전개되지만 설명 상 두 가지일 뿐이며, 발명과 창안은 여러 다른 방향의 길들이기도 하다. 유일신앙의 지배아래 아리스토텔레스를 두고 공론장이라는 비례중항의 정의는 편 가르기이다. 이에 비해, 마치 빛의 발산과 같은, 자연의 다양한 발현과 생성에서, 다양체들의 조화중항을 이루는 시대가 왔다. 5천만 중에서 4천5백만이 손바닥에 재료와 도서관 자료를 볼 수 있는 누리소통의 도구가 우리 입말과 더불어 빛처럼 퍼져나간다. 그 빛의 발산이 윤석열의 내란을 막지 않았는가? 이제 플라톤주의가 아니라, 소크라테스제자인 플라톤의 진솔한 사유인 조화중항을 이루고자 노력하며, 내공을 쌓은 이들이 먼저 하나의 디딤돌을 놓을 것이다. (6:05, 59MLH) (6:39, 59M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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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는 19일 오후 4시경 내란 혐의 재판에서 선고 하였다. 윤석열 무기징역,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 징역 30년, 민간인 노상원 18년․‥….
사람들은 걱정했다. 이병철 변호사의 말: 법원에서 90%가 보수이고 80%이상이 극우이라고 한다. 조희대, 박영재, 지귀연, 우인성이 극우라고들 하는데, 지귀연도 시대의 흐름을 따라간다. (59MLI)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철학의 세계』(2023),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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