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철학자가 들려주는 ‘분개’ 이야기 [시대와 철학]

Spread the love

세 철학자가 들려주는 분개이야기

 

정선우 (연세대학교 철학과 박사과정)

 

분개는 타인의 부당한 선을 불승인하도록 만들고(아리스토텔레스)
타인이 겪는 피해를 순전히 남의 일로 치부함으로써 외면하거나 방관하지 않도록 만들며(데카르트, 스피노자)
심지어 국가가 불의를 자행할 때 이에 침묵하지 않고 권력에 적극적으로 불복종하도록 만든다(스피노자)

우리를 분개하게 만드는 대상은 사적 존재인 한 개인일 수도 있으나 공적 존재일 수도 있다.
분개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어떤 의미에서 위협적인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에게 손해나 고통을 끼치는 사람에게 증오와 분노를 느낀다. 가령 누군가가 내 몸에 위협을 가하거나 내 것을 강탈하거나 내 평판을 떨어트리거나 내 인격을 무시할 때 나는 그를 싫어하고 그에게 화낼 것이며, 그 결과 그와 맞서 싸울 것이다. 이처럼 타인에 대한 적대적 감정은 주로 자기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가해진 해악을 이유로 생겨난다. 그러나 독특하게도 인간은 자신의 안녕이나 복리와 관련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에 대해 부정적 감정을 느끼곤 하는데, 이러한 종류의 감정으로 분개(indignation)를 꼽을 수 있다. 분개의 감정은 이익을 추구하고 손해를 기피하는 자연적 성향, 곧 이기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철학자들은 오랫동안 이 감정에 주목해 왔다.

거의 모든 학문의 출발점에 놓이는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분개의 감정을 상당히 진지하게 다룬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분개는 일반적인 노여움이나 성냄과는 구별되는 감정으로, 이웃에게 일어난 일, 이웃에게 닥친 상황을 봄으로써 생겨나는 고통을 의미한다. 또한 분개는 시기(이웃이 잘되면 괴로워하는 것)와 심술(이웃의 불행에 즐거워하는 것) 사이의 중용에 해당하며, 따라서 유덕한 사람이 취하는 일종의 도덕적 태도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분개란 불의를 향한 분노, 곧 ‘의분(righteous indignation)’이다. 가령 누군가가 요행이나 부정에 의해 정당하지 않게 선을 획득하는 경우, 그는 그 선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으므로 그가 선을 소유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따라서 훌륭한 사람은 그의 부당한 행복에 괴로워하며 분개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덕스러운 행위자가 분개하는 까닭이 타인의 선이 행위자 자신의 이익과 상충하거나 행위자 자신의 행복을 저해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것이 그 자체로 옳지 않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분개의 감정은 인간이 좁은 범위의 이해관계를 넘어서서 옳음과 그름, 정당함과 부당함의 관점에서 사태를 평가할 수 있음을 드러내 준다.

한편, 데카르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분개 개념을 보다 일반화함으로써 자신만의 분개 개념을 제시한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우리는 다른 사람이 어떤 악을 행하는 것을 볼 때, 그를 미워한다. 이는 다시 두 가지 경우로 나뉜다. 첫째, 만약 이 악이 우리와 관련될 때, 곧 타인이 우리 자신에게 해악을 끼칠 때, 우리는 그에게 분노(anger)를 느낀다. 둘째, 만약 이 악이 우리와 관련되지 않는다면, 곧 타인이 우리 자신에게 해악을 끼치는 것은 아니라면, 우리는 그에게 분개를 느낀다. 가령 어떤 사람이 선을 가질 만한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선을 소유한다면, 그는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지만 부당한 일(악행)을 저지르는 것이므로 우리는 그에게 분개의 감정을 느낀다.

그런데 분개의 감정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처럼) 도덕적 행위자로서의 인간을 특징 짓는 요소로서 이해될 수 있지만, 반대로 정의를 가장하는, 실제로 정의롭기보다 정의로워 보이기를 원하는 인간의 모습을 반영하는 요소로서 이해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양면성을 지닌다. 데카르트는 이 후자의 측면에 주목함으로써 분개의 배후에 놓여 있는 은밀한 인간 심리를 매우 예리하게 포착한다. 데카르트가 지적하듯, 자주 분개하는 사람은 참되게 덕스러운 사람이기보다 덕스러워 보이기를 원하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가령 비난받을 만하지 않은 일이나 사소한 일에 과도하게 분개하는 사람, 혹은 세계의 운행이나 신의 섭리를 탓하면서 신이나 자연의 작품에 분개하는 사람은 도처에서 흠잡을 거리, 비난할 거리를 발견하는 사람이며, 따라서 덕을 사랑하기보다 악덕을 추구하는 사람에 불과하다. 심지어 그런 사람은 자신의 빈번하고 과도한 분개가 도리어 자신의 올바름을 입증하는 양 착각한다는 것이 데카르트의 지적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 분개는 증오나 분노 일반과 구별되는 특별한 감정이다. 타인의 불의에 분개하는 마음은 나 자신의 이익과 손해라는 협소한 관점을 벗어나는 태도라는 점에서 도덕적 중요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개는 합당하고 바람직한 분개에 속한다. 그러나 분개는 ‘가짜 덕’ 혹은 위선으로부터 비롯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타인의 악덕이 자기 자신의 덕의 징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과오를 비난하는 데 몰두하는 사람은 정말로 분개해야 할 것에만 분개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에나 쉽사리 분개한다. 이러한 분개는 합당하지 않으며 바람직하지 않은 분개에 속한다.

분개의 중요성은 이뿐만 아니다. 이 감정은 비단 개인적 차원, 도덕적 차원에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안에서도 중대한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분개는 공동체를 위태롭게 하거나, 심지어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기도 하는데, 분개의 커다란 위력에 주목한 철학자는 바로 스피노자다. 우선,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분개 개념을 이어받는다. 스피노자에게서 분개란 다른 이들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에 대해 가지는 미움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 이들에게 못되게 굴거나 해악을 끼친다면, 우리는 피해 당사자가 아닐지라도 분개를 느낀다. 가령 (우리가 이전에 아무 감정도 갖지 않았던) A라는 사람이 (마찬가지로 이전에 아무 감정도 갖지 않았던) B라는 사람을 괴롭힌다고 가정하자. 이때 우리는 A에게 분개를, B에게 연민을 느낀다. 이에 따라 B가 더 이상 A로부터 괴롭힘을 당하지 않도록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B의 편에서 A와 맞서 싸울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를 분개하게 만드는 대상이 사적 존재로서의 한 개인일 수도 있지만, 공적 존재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스피노자가 지적하듯, 만약 주권자(가령 한 명의 군주나 여러 명의 귀족들)가 신민들을 학살하거나 약탈하거나 겁탈하거나 이와 비슷한 일을 행한다면, 수많은 신민들은 이에 분개하여 주권자에 맞서고자, 국가 권력에 대항하고자 공모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국가가 더 많은 사람에게 국가에 복종하기보다 저항할 이유를 제공할수록 국가의 지배력은 약해진다. 따라서 신민들이 공통의 분개를 계기로 하나로 뭉칠 때, 국가의 최고 권력은 무너진다. 역으로 말하자면, 국가 권력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만약 주권자가 법을 위반하여 대다수의 시민들이 주권자에게 분개한다면, 그 국가는 보존될 수 없으므로 주권자는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서 법을 준수해야 한다. 제아무리 절대적 권력을 지닌 통치자라고 할지라도 대중들이 공통의 분개에 휩싸이지 않도록, 곧 시민들이 성난 군중으로 돌변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만큼 분개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어떤 의미에서 위협적인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의 논의를 정리해 보자. 세 철학자 모두 제각기 다른 이유와 근거에서 분개라는 감정에 공히 주목한다. 이들의 설명에 따르면, 분개하는 인간, 곧 불의와 악덕에 괴로워하고 불의와 악덕을 미워하는 자야말로 도덕적 행위자이자 정치적 행위자가 됨을 알 수 있다. 분개는 타인의 부당한 선을 불승인하도록 만들고(아리스토텔레스), 타인이 겪는 피해를 순전히 남의 일로 치부함으로써 외면하거나 방관하지 않도록 만들며(데카르트, 스피노자), 심지어 국가가 불의를 자행할 때 이에 침묵하지 않고 권력에 적극적으로 불복종하도록 만든다(스피노자). 반면에 분개가 도덕적 우위를 점하고 싶은 욕망이나 무엇이든지 흠잡고 깎아내리려는 기질로부터 생겨난다면, 이는 참된 도덕적 성품이라기보다 도덕을 꾸며내는 것에 불과하다(데카르트). 따라서 마땅한 때, 마땅한 일에 대해, 마땅한 사람을 향해, 마땅한 목적을 위해, 마땅한 방식으로 분개해야 하며, 그럴 때만 인간은 참되게 고귀하고 훌륭하다고 평가받을 수 있다(아리스토텔레스). 세 철학자의 설명에서 알 수 있듯, 실로 인간의 위대하고 찬란한 면모도 보잘것없고 암울한 면모도 분개라는 이 하나의 감정에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분개가 그토록 오랫동안 철학적 주목의 대상이 돼 온 것일 테다.


 

0 replies

Leave a Reply

Want to join the discussion?
Feel free to contribute!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