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국가> 강해(79)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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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국가> 강해(79)

 

VI 본론 3 : 부정의와 현실 비판 – 현실 국가 분석(제8권-제9권) 

A. 부정의한 나라들과 부정의한 개인들.

2. 최우수자 통치로부터 명예정으로 체제 변동 : 명예정과 명예정적인 인간(545c-550c)

 

[545c-548d]

* 소크라테스는 최선자정ἀριστοκρατία에서 명예정τιμοκρατία으로의 변화μεταβάλλει는 다스리는 자리에 있는 자들τὰς ἀρχάς 안에서 내분στάσις이 일어날 때 생긴다고 말한다. 그런 다음 소크라테스는 보조자들οἱ ἐπίκουροι과 통치자들οἱ ἄρχοντες이 어떻게 내분에 휩싸이게 되었는지를 호메로스가 그랬듯이, 무사 여신의 입을 빌려 아래와 같이 말한다.

* “최초 구성된 나라는 변하기가 어렵지만 생성된 모든 것들은 사멸φθορά하기 마련이어서 모든 시간 동안 머물러 있지 못하고 해체된다. 생명을 갖는 것들에는 각기 순환περιφορά주기가 있어서 영혼과 몸이 결실 또는 불모의 상태가 될 때가 있다. 그래서 나라의 지도자가 감각αἴσθησις을 수반한 계산λογισμός에서 출산의 적기와 불모의 시기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경우 아이가 태어나선 안 되는 때에 아이들이 태어난다. 해체λύσις는 그렇게 해서 시작된다. … 순환 주기와 관련한 수들에 관한 이야기(생략) … 이와 같은 기하학적 수 전체가 우수한 출생과 열등한 출생을 좌우하는데 그대들의 수호자들이 이에 대해 무지해서 적절하지 않은 때에 신부와 신랑을 맺어 줌에 따라 수호자 자격이 없는 자들이 태어난다. 이후 그들이 아버지의 권력을 이어받게 되면 이들은 수호자로서 시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신체 단련도 소홀히 한다.(546d) 이들 가운데에서 통치자들이 선발되고 그들은 헤시오도스의 종족은 물론 인간들 중 금족γένη χρυσοῦν, 은족γένη ἀργυροῦν, 청동족γένη χαλκοῦν, 철족γένη σιδηροῦν을 제대로 가려내지 못해(546e-547a) 결국 철과 은, 청동과 금이 섞임으로써 조화가 깨지고ἀνάρμοστος 불일치ἀνομοιότης와 변칙ἀνωμαλία이 발생한다. 이렇게 해서 전쟁πόλεμος과 적대ἔχθρα가 생겨나고 내분이 초래된다. 내분이 발생하면 저 종족γένος들은 둘씩 짝지어 철과 청동의 종족은 돈벌이와 땅, 집, 금은을 소유κτῆσις하는 쪽으로 나라를 끌어당기고εἱλκέτην, 금과 은의 종족은 영혼이 아직 부유하기에 덕ἀρετῆ과 원래의 체제κατάστασις 쪽으로 끌어당긴다. 이들은 이렇게 서로 격렬하게 맞서 싸우다 결국 그 중간에서 합의를 하여 땅과 집은 분배하여 사유화ἰδιώσασθαι하고 전에는 자유인 친구이자 부양인τροφεύς으로서 이들에게 수호φυλακή를 받았던 자들을 노예로 만들어 외거περίοικος노비나 가내노비οἰκέτης로 삼아 저들을 지키는 일과 전쟁을 도맡게 한다.”(545c-547b)

* 위와 같이 소크라테스는 이상국가 해체의 발단과 관련한 무사 여신의 이야기를 소개한 다음 그렇게 해서 등장하게 된 체제에 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먼저 이 정치체제 πολιτεία는 최선자정과 과두정 ὀλιγαρχία의 중간에ἐν μέσῳ 있는 정치체제이다. 이런 까닭에 일부는 앞선 정치체제를, 일부는 과두정을 모방하면서 명예정 자체의 고유한 특성이 드러낸다.(547c) 통치자들을 존중하고 전사 집단τὸ προπολεμοῦν을 농사γεωργία나 수공예χειροτεχνία 그 밖의 다른 돈벌이χρηματισμός들로부터 떼어놓는 일 그리고 공동식사συσσιτία를 하며 신체 단련과 전투 훈련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등은 앞선 정치체제를 모방한 것이다.(547d) 그러나 이 체제의 통치자들은 더 이상 단순하고ἁπλόος 강직한ἀτενής 자들이 아니라 섞인μικτός 자들이어서, 지혜로운 자들을 통치자로 선임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본성상 평화εἰρήνη보다는 전쟁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을 선호하며.(547e) 전쟁에 관한 계략과 전술들을 중히 여기고 온 시간을 전쟁을 수행하는데 보낸다. 이것이 이 체제의 고유한 특성이다.

* 그리고 한편 이 사람들은 과두정 하의 사람들처럼, 재물χρήματα에도 욕심이 있어서 어둠 속에서 금과 은을 모아 그것들을 숨겨 놓을 보관소ταμιεῖον와 집안 금고θησαυρός를 만들어 사적인 둥지νεοσσιά로 삼는다(548a) 그리고 그 안에서 여인들은 아무렇게 아무 곳에든 재물을 써대며 낭비한다.δαπανῷντο. 그러나 그들은 재물을 드러내놓고φανερῶς 모으지는 못하기 때문에 재물에 인색하지만, 욕망은 있어서 남의 것 쓰기를 좋아하고 마치 아버지를 피해 달아나는 아들처럼 법을 피해가며 은밀히 쾌락ἡδονή을 누리고 논변λόγος과 철학을 멀리하며(548b) 시가μουσική보다 신체단련γυμναστική을 훨씬 소중히 여긴다. 설득πειθός이 아닌 강압βία에 의한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이다.(548c)

* 소크라테스는 명예정이 나쁜κακός 것과 좋은ἀγαθός 것이 섞여 있는 정치체제라는 글라우콘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그 체제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을 기개θυμοειδής부분의 지배에 따른 승리와 명예에 대한 사랑φιλονικία καὶ φιλοτιμία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타락한 정치체제들에 대한 이곳의 논의가 그 체제의 형태들과 성품ἦθος을 남김없이 하나하나 정확하게 그려내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정의로운 사람과 가장 부정의한 사람을 알아보기 위한 밑그림ὑπογραφή을 그리는 데 있음을 다시 한번 재확인한다.(548c-d)

 

[548d-550c]

* 그런 연후 소크라테스는 이제 이러한 정치체제에 상응하는 사람에 대해서 언급한다. 이때 아데이만토스는 승리에 대한 사랑에 관한 한, 글라우콘이 그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말한다.(548d)이에 소크라테스는 승리에 대한 사랑에 관한 한은 그럴지 모르지만 명예정적인 사람의 특징에는 그 밖에 다른 점이 많이 있다고 말한다. 우선 명예정적인 사람은 고집이 상당히 센αὐθαδέστερον 사람이고 시가를 사랑하나 시가에 뒤처져 있으며 듣기를 좋아하긴φιλήκους 하지만 결코 연설가ῥητορικός는 아니라고 말한다.(548e) 그리고 이어서 그들은 노예δοῦλος를 그저 무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험하게ἄγριος 다루는 반면 자유인ἐλεύθερος들에게는 온순하고 통치자들에게 극히 순종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그들이 다스리기를 좋아하고φίλαρχος 명예를 사랑하지만, 전쟁과 관련해서만 그럴 뿐임을 덧붙인다. 게다가 그들은 젊어서는 재물을 무시하겠지만(549a)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점 더 재물을 반기고ἀσπάζοιτο 사랑하는 본성도 갖게 된다. 이성λόγος을 가진 자만이 평생토록 덕의 보존σωτὴρ ἀρετῆς이 가능함에도 그는 덕을 지키는 최상의 수호자로서 이성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549b)

* 그런 다음 소크라테스는 명예정적인 사람을 잘 다스려지지 못하는 나라에서 사는 좋은 아버지의 어린 아들υἱός에 비유하여 아래와 같이 말한다. 그의 아버지는 나라가 제 길을 벗어나자 명예나 관직은 물론 소송δίκη 같은 일에 관여하기를 피하고 번거로운 일을 피해 자신을 낮추며 살고 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가 통치에서 비켜선 그런 남편 때문에 다른 여자들 사이에서 얕보여 화가 나있고(549c) 재물χρήματα이나 이익을 둘러싼 법정δικαστήριον 다툼에 무관심하고 그녀를 딱히 존중하지도 무시하지도 않는 것에 성질이 나서 아들에게 아버지가 남자답지 못하고 너무도 안이하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549d) 그리고 집안의 하인οἰκέτης들도 때때로 그런 이야기를 몰래λάθρᾳ 아들에게 하면서 어른이 되면 돈을 빚졌거나 무슨 다른 부당한 짓을 한 자들에게 복수하고 아버지보다 더 남자다운 남자가 되라고 부추긴다.(549e) 한편 이 아들은 집 밖에 나가 자기의 일보다 남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존중받고 칭찬받는 것도 듣고 아버지 이야기도 들으면서 영혼의 이성부분τὸ λογιστικὸν에 물을 주고 자라게 하는 아버지에 이끌리기도 하고 또 욕구부분τό ἐπιθυμητικὸν과 기개부분τὸ θυμοειδές을 자라게 하는 다른 사람들에 이끌리기도 한다.(550a) 그는 본성φύσις이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이렇게 이 양쪽에 의해 이끌리다가 결국 자기 자신 안의 지배권ἀρχή을 중간의 것, 즉 승리를 사랑하는 기개부분에게 넘겨서 기상이 넘치고ὑψηλόφρων 명예를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550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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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6b-c ‘주기와 관련한 수들’ : 제법 길게(546b-c) 다루어지고 있는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정암학당 역본(2026년 2월 출간 예정)과 박종현 역본의 각주에 자세한 설명이 제시되어 있으므로 이곳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 546e ‘헤시오도스의 종족과 금족, 은족, 청동족, 철족’ : 415a-b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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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톤은 무사 여신의 말을 빌려 생성된 모든 것들은 사멸하듯 최초 구성된 나라도 해체하며 동식물 모두 각기 생산과 불모에서 순환periphora주기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사 여신의 이 말이 나라의 해체가 순환 주기를 갖고 이루어진다는 것으로 읽히면 안 된다. 나라의 해체는 순환 주기를 갖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지도자가 자연적 질서로서 그 순환 주기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함에 따라 일어난다. 우주는 천체들이 그러하고 계절이 그러하듯 정해진 순환 주기가 있고 그에 따라 자연에 기대 살아가는 생명체들은 모두 그 순환 주기에 딱 맞는 때 즉 적기kairos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 나라와 개인의 해체는 이러한 적도와 적기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놓치는 데서 시작한다.

* 이상 국가의 해체과정을 담고 있는 제8권의 논의는 앞서 살폈듯이 행복의 관점에서 정의로운 나라(개인)와 부정의한 나라(개인)를 비교하려는 애초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제기된 밑그림hypographē(548c-d)이다. 다시 말해 부정의한 나라가 어떤 점에서 어떤 결함을 더해가면서 정의로운 나라와 비교조차 불가할 정도로 행복과 정반대의 위치에 자리하게 되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일종의 방편적 논의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도 이상 국가의 해체 과정은 정치체제의 역사적 변화과정을 그린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비교의 목적상 이상 국가의 결함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발생하고 점점 더 그러한 결함이 더하는 경우 단계적으로 어떤 정치체제들이 나타나게 되고 그것에 비례하여 어떤 불행들이 심도를 더하는지에 대한 논리적·심리적 귀결을 기술한 것이다.

* 사실 이론적 측면에서만 보면 철학자 왕이 통치하는 이상국가는 말 그대로 이상적인 통치자가 지배하는 한, 해체될 가능성이 없다. 플라톤도 이곳에서 통치자들이 철학자로서 자질을 하나같이 견지하는 한 비록 그들의 수가 아무리 적더라도 정치체제는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545d) 실제 그가 제시한 이상국가에서는 설사 어느 철학자 왕이 통치 업무에 실수를 저지를지라도 다른 여러 철학자 왕들이 돌아가며 통치를 맡아 얼마든지 실수는 수정 극복될 수 있다. 그리고 전사와 생산자 계층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에도 통치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 한, 그 또한 수정 극복될 수 있다. 그럼에도 플라톤은 이곳에서 무사 여신의 입을 빌려 이상 국가가 해체될 수 있는 가능성을 언급한다. 비록 쉽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철학자 왕들 가운데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점차 다수가 되면 결국 철학자들 즉 통치자들 간에 내분이 일어나 나라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 그렇다면 이상국가에서 철학자 왕들의 통치 수행 능력상의 결함은 또 어떻게 생겨난다는 것일까? 이 역시 무사 여신의 이야기를 토대로 음미하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통치자의 임무는 무엇보다 나라를 수호하는 일에 더해 자신과 같은 통치자를 길러내는 일이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 통치자로서 자질을 갖춘 아이들이 태어나야 한다. 그런데 아이들의 태생을 관장하는 통치자가 사멸하는 존재인 한 신적인 출생의 주기에 따른 출산의 적기와 불모의 시기를 제 때에 맞추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고 그러한 경우 자질이 부족한 아이들이 태어나고 이들은 자라면서 그만큼 시가와 체육 단련에도 소홀하여 수호자로서 능력을 온전히 갖추지 못한다. 이런 일들은 후계로 갈수록 더욱 심화되고 그만큼 통치자들 간 조화가 깨지고 불일치와 변칙이 생겨나면서 결국 나라는 전쟁과 내분에 휩싸이게 된다. 요컨대 무사 여신의 설명대로라면 통치자의 출산 적기와 관련한 이성적 계산 능력의 결핍으로 인해 제대로 된 자질을 가진 아이들이 태어나지 못하는 일이 거듭되면서 이상 국가의 해체가 초래되었다는 것이다.

* 그런데 무사 여신의 입을 통해 제시된 이상 국가 해체 배경과 관련한 플라톤의 설명은 앞서 그가 앞서 펼친 이상국가론과 비교해 볼 때 여러 점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 우선 이상 국가 해체의 근본 원인을 출산 적기와 관련한 통치자의 이성적 계산 착오에서 찾는 것부터 수긍이 되지 않는다. 물론 통치자가 계산 착오를 범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생성물 일반의 근원적 사멸성에서 찾는 것은 받아들일 만하다. 그러나 인물로서 어떤 아이의 잘못된 태생이 제도로서 정치체제의 해체로 곧바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후계 출산을 위한 통치자의 계산 착오가 간단없이 지속적으로 반복된다면 정치체제의 결함 내지 해체는 필연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이곳 이상 국가는 한 사람의 철학자 왕이 권력을 독점하여 임의로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것도 아니고 수호자 태생이라고 해서 아무나 다 권력을 세습할 수 있는 체제도 아니다. 이곳 이상 국가는 다수의 철학자 왕들이 돌아가며 통치를 하는 체제이고 그들 모두 각고의 노력과 검증을 통과한 사람들임을 고려하면 설령 일시적 실수는 있을지 몰라도 모두가 그것도 지속적으로 능력 결핍 상태에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한 한, 통치자들이 출산 적기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일이 반복해서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 없으며 앞서 언급했듯이 설사 일시적 착오가 있더라도 그것은 다른 철학자 왕들에 의해 언제라도 수정 극복될 수 있다. 그리고 수호자의 자식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통치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금족으로 태어났다고 해도 선발과정에서 능력이 검증되지 않으면 퇴출될 수 있고 은족으로 태어났다 해도 선발과정에서 출중한 능력이 발견되면 수호자가 될 수 있다. 50세에 이르러 좋음의 형상들을 본 철학자들 다수로 구성된 통치자 계층 대다수가 앞서 살폈듯이 일거에 지속적으로 능력 결핍 상태에 있을 가능성 또한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통치자로서 임명되는 근거 또한 그가 단순히 혈통 때문이 아니라 철저한 교육과 선발과정을 거쳐 진정한 철학자로서 자질을 검증받았기 때문이다. 무사 여신이 언급하고 있는 통치 권력의 계승은 마치 세습 군주정처럼 통치 능력과 무관하게 특정 통치자가 순전히 혈통에 의해서만 특정 통치자에게 권력을 세습할 경우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곳 철학자왕정은 일인 세습 군주정이 아니다. 비록 이상 국가의 권력 계승은 수호자의 후손들에 제한되어 있을지라도 어느 특정인에게 세습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호자들 가운데 최상의 기준으로 선발된 철학자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아무리 우생학적 관점이 중요하더라도 이상 국가 해체의 발단과 관련한 이곳의 내용은 <국가>에서 플라톤 자신 그토록 강조한 교육의 중요성을 지나칠 정도로 무시하고 있다.

* 한편 이곳에서 무사 여신의 입으로 제시되고 있는 우주의 자연적 주기와 관련한 수에 관한 언급들은 기본적으로 통치자들에게서 수학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특히 그 수들은 모두 사람의 임신과 태생의 적기는 물론 우주 자연의 주기적 순환과 규칙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화와 질서를 강조하는 플라톤 우주론과도 잘 부합한다. 그러나 장황할 정도로 길게 나열된 그 수식들과 그것이 포함하는 난해성은 달리 보면 수학에 뛰어난 발군의 통치자일지라도 계산에 완전할 수 없음을 보여주기 위한 수사적 장치일 수도 있다. 사실 이상 국가의 해체를 설명하기 위해 굳이 정밀성과 거리가 먼 신화적 이야기를 끌어들여 복잡한 수식을 늘어놓는 것부터 이미 어색하다. 게다가 내용에서도 역술가처럼 태생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인 양 결론 내리고 있는 것 또한 플라톤답지 못하다. 이로 미루어 짐작컨대 이상 국가의 해체가 자신의 기존 주장과 배치된다는 것을 플라톤 자신 이미 의식하고 있다. 사실 이상국가는 이곳에서 논의의 방편상 해체 하강의 방향으로 그려지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나쁜 정치체제들에 대한 경험들을 토대로 그것의 극복을 위해 구축한 상승 형성 과정의 최종 도착지이다. 그러나 플라톤은 이제 논의의 목적과 구도 상 이상국가의 해체를 논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플라톤이 최소한 해체의 발단에 관한 한, 자신이 아닌 무사 여신들을 끌어들여 말하는 것도 이러한 사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 어쨌거나 일단 이상국가의 해체가 통치계층의 내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통치 기능의 마비가 발생했다는 것이고 그것은 이상국가를 구성하는 세계층간의 본성에 따른 조화로운 의존적 분업관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세 계층 간의 조화가 갖는 유기성을 고려하면, 한 계층 특히 통치를 담당하는 계층의 내분은 필연적으로 나머지 계층에까지 영향을 미쳐 그들의 직분에 따른 본래 역할에도 금을 가게 만든다. 플라톤의 말 그대로 조화가 깨지고 불일치와 변칙이 발생하는 것이다.(547a) 통치자 계층의 내분을 별 설명 없이 바로 이어서 보조자들과 통치자들 간의 내분으로 확대해서 말하는 것도(545d) 그 때문이다. 이러한 부조화, 불일치와 변칙은 내용적으로 그들의 본래적인 직분과 역할에 대한 변화로 나타난다. 통치 계층의 이성에 따른 통치 기능이 쇠락하면서 전사 계층의 기개가 점차 그 자리를 차지하고 그만큼 전사 계층의 직분이 흔들리게 되면서 통치 계층에 대한 전사 계층의 의심이 싹튼다. 이러한 의심은 전사 계층의 전에 없던 통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결국 통치계층과 전사 계층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통치 권력을 두고 두 계층 간의 적대적인 투쟁이 야기된다. 그리고 이들 사이의 권력 투쟁은 이미 그들 자신이 갖고 있었던 최소한의 이성적 영혼과 명예 및 기개의 손상은 물론 통합의 원리로서 절제의 정신까지 훼손하여 생산자 계층에게만 고유했던 물질에 대한 사적 소유욕에까지 확장되어 결국은 그들에 대한 사유재산을 권력의 힘으로 착취하는 단계에 이른다. 이러한 타락상 일반이 이른바 이상 국가의 해체과정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단계로서 명예정timokratia이다.

* 이 체제의 명칭이 명예정인 것은 이상국가에서 이성 기능이 쇠락하면서 공동식사와 신체단련, 그리고 전사다운 기개와 명예가 일정부분 존중되고 있다는 점에서(547d) 붙여진 것이다. 그러나 명예정이 이상적 철인왕정에서 과두정으로 타락해가는 중간 과정에 있는 정치체제임을 염두에 두면 나중으로 갈수록 최소한 허울로서 유지하던 명예조차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지는 지경에 이르고 결국 오로지 물질적 욕망에 눈이 먼 금권정으로서 과두정과 별반 다름없는 정치체제로 전락한다. 지성이 결여한 맹목적 충성과 명예욕이 맞이하는 필연적 귀결이다. 다만 명예정이 과두정과 다른 것은 국가의 세 계층이 허울뿐이나 명목상 유지되고 있고 탐욕도 아직은 덜 노골화되어 있다는 점이다.(547d) 그러나 내용에서는 이미 권력이 사유재산욕을 증대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이상 생산자 계층에 대한 수호는 말만 수호일 뿐 실제로는 보다 효율적인 착취를 위한 통제와 감시로 변질되어 본래의 상호 의존관계가 아닌 주인과 노예의 관계로 변모한다. 그리고 수호자들은 본성상 평화보다는 전쟁을 선호하는 까닭에 지혜로운 자들을 배제한 상태에서 자신들의 금고를 지키기 위해 하루가 멀게 전쟁을 일삼는다.(547a) 수호자들에 대한 생산자 계층의 불만이 쌓여가고 그에 따라 생산자들에게서 통치에 대한 관심마저 들어서기 시작하는 것도 이때이다. 금은이 섞이고 은동이 섞인 다음 그 둘이 다시 섞여 모두가 비슷한 성질로 변해간다. 이상 국가의 근본 원리로서 본성에 따른 다양한 욕망들의 분업적 공존은 무너지고 계층 간 욕망구조의 변화 즉 욕망의 등질화가 이미 명예정 단계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547e)

* 이상국가의 명예정에로의 타락과정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이상국가의 통치기능의 마비에 따라 생산자 계층만이 누렸던 사유재산에 대한 욕망이 통치자와 보조자들 일반 즉 수호자 계층에까지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사실 물질적 욕망이 선도하는 사적인 탐욕은 제1권에서 등장한 트라쉬마코스의 주장의 핵심을 이루는 것으로서 플라톤이 이상 국가를 통해 극복해야 할 가장 강력한 안티테제를 구성한다. 게다가 그러한 강력한 장애가 이상국가의 해체과정을 논의하는 첫 단계에서부터 등장했다는 것은 나라가 타락을 더해갈수록 그러한 장애 또한 더욱 강력해질 것임을 함께 고려할 때 나라의 최고 권력을 손아귀에 쥔 자들에게 사적 소유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근원적 해악인지 그리고 그것을 뿌리 뽑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플라톤 자신 뼛속 깊이 통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명예정은 앞서 살폈듯이 이후의 타락한 정치체제들과 달리 기존의 타락한 정치체제로부터가 아닌 철학자 왕정이라는 바람직한 정치체제로부터 나온 정치체제이다. 그래서 명예정이 갖는 중간적 성격과 양면성에는 명예정이 지니는 일부 바람직한 측면이 포함되어 있다. 이를테면 군인다운 기개와 명예, 질서와 규율을 중시하고 신체 단련에 열심을 보이며 충성심도 강하다. 플라톤이 명예정의 대표적인 사례로 스파르타를 들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종종 플라톤의 이상 국가가 스파르타를 모델로 했다고 말하곤 하지만 플라톤이 명예정을 타락한 정치체제의 하나로 분류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부터 이미 그 말은 진실이 아니다. 다만 명예정으로서 스파르타 정치체제가 지니는 양면적 특성 가운데 수호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이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스파르타에 대한 플라톤의 긍정적인 평가는 거기까지이다. 스파르타는 철학자 왕정과 달리 이성의 지위를 군사조직과 전략의 하녀로 끌어내렸을 뿐만 아니라 신민을 노예로 여겨 수호의 대상이 아닌 엄혹한 통제와 감시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야말로 군국주의 국가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러한 강압에 의한 결속과 비자발적인 절제는 쾌락과 금전의 유혹에 노출되면서 너무도 쉽게 무너져 내렸다. 그들이 그토록 동경하던 누구도 넘볼 수 없을 정도의 국가조직의 강력함과 단합된 삶의 방식은 이성의 원리가 결여할 때 오히려 그 반대의 길로 간다는 것을 그들은 깨닫지 못했다. 플라톤은 물론이고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일찍이 이러한 점들을 충분할 정도로 간파하고 있었다.(플라톤 <법률> 633b,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1333b 참고)

* 플라톤은 이제 논의 계획에 따라 명예정의 나라를 논한 다음에 그에 상응하는 명예정적인 인간에 대해 언급한다. 명예정적인 인간은 명예정이 철학자왕정과 과두정 중간에 있는 것처럼 성격 또한 양쪽에 걸쳐 있다. 시가를 사랑하지만 뒤처지고 통치자에게는 순종적이지만 노예들에게는 가혹하다. 그리고 젊어서는 재물을 무시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그것을 반가워한다. 플라톤은 이런 사람을 잘 다스려지지 못하는 나라에 사는 좋은 아버지의 아들로 비유한다. 아버지는 잘못된 나라에서 명예나 관직을 맡기를 피하고 소송도 관여하지 않을 정도로 나름 염치가 있고 겸손한 이른바 좋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관직이나 재물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남편 때문에 다른 여자들 사이에서 얕보이고 있음을 참지 못할 정도로 허영에 절어 있어 남편을 남자답지 못하고 안이한 사람으로 못마땅하게 여기고 틈만 나면 아들에게 장차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어선 안 된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집안의 하인들조차 이 아들에게 아버지처럼 나약한 사람이 되지 말 것을 선의의 충고인 양 수시로 던져댄다. 이들 어머니와 하인들은 오로지 타인의 시선과 인정에 기대어 삶의 만족을 느낄 뿐 내적 자부심의 토대로서 그 자체로 좋은 것에 대한 어떤 인식도 이해도 갖고 있지 않다. 이에 따라 아들은 아버지와 이들 사이에서 때론 이성 부분 쪽으로 때론 욕구 부분 쪽으로 이끌리다가 결국 자기 사신의 안의 지배권을 중간의 것 즉 승리를 사랑하는 기개 부분에 넘겨 이른바 명예정적인 인간이 된다.(550b)

* 앞에서 플라톤은 명예정의 나라를 다루면서 주로 나쁜 쪽에 비중을 두어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이곳 명예정적인 인간을 다루면서는 아버지의 아들이 어떻게 양면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을 뿐 그 후 어떤 심리적 변화과정을 거쳐 어떻게 물질적 탐욕에 휩싸여 과두정적인 인간에로까지 타락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별다른 언급이 없다. 물론 이상국가의 유기체적 성격상 통치기능의 마비가 세 계층 모두에 두루 영향을 미쳐 결국은 세 계층의 분업적 공존과 조화를 깨트리는 근본 원인이 되고 끝내는 생산자 계층에 대한 착취로까지 이어졌음을 고려하면 명예정적인 인간 또한 이미 영혼의 이성 부분이 마비되면서 세 부분의 영혼들 간의 조화가 무너지고 결국은 물질적 욕구 부분이 지배하는 인간으로 변모하게 될 것임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국가>가 소문자로서 개인을 잘 들여다보기 위해 대문자로서 나라를 먼저 살피는 방식을 취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어쨌거나 개인에 대한 고찰이 논의의 중심을 이루고 분량 또한 더 많을 것이라 예상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분량에서건 비중에서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플라톤은 대문자를 들여다보는 일에 크게 치우쳐 있다. 이 점은 <국가>의 근본 관심 내지 주제를 형식적인 논의 구도만을 토대로 영혼론 내지 도덕 심리학에 있다고 주장하는 일부 학자들의 견해가 그다지 설득력이 없음을 보여준다. 아무려나 플라톤의 정치철학이 외적인 나라의 경영과 개인의 내적 영혼의 관리를 불가분의 것으로 전제하고 성립하는 한, 그 양쪽 가운데 어느 한쪽의 관점만으로 <국가>의 전모나 특징을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은 이미 그 자체로 한계가 있다.

*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우리가 살펴왔듯이 서로 다른 본성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 자신에게 고유한 소질에 맞는 직분을 택해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구현하면서 서로 조화롭게 공존하는 나라이다. 그리고 그것이 플라톤이 말하는 정의의 본질 즉 분업적 공존의 틀 안에서 각자의 본성에 맞는 자기다움을 실현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과 공동체의 행복을 함께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옆에는 언제라도 이성을 무너뜨릴 기세로 이기적 탐욕이 자리하고 있다. 물론 플라톤의 이상 국가는 인간의 본성에 기초한 다양한 욕망을 모두가 함께 구현할 수 있는 방식을 통해 이러한 이기적 탐욕이 자라날 수 있는 여지를 최소화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장치를 구비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나라가 단순한 소망이 아니라 실질적인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토대 또한 인간의 본성이 지니는 근원적 다양성과 그것의 상호 의존성에 대한 믿음을 통해 굳건하게 확보되어 있다. 그러나 이곳 제8권의 이상국가의 해체과정을 보면 인간 본성에 관한 플라톤의 믿음은 철학자들에서조차 마치 살얼음 위를 걷듯 위태로워 보인다. 이미 플라톤 자신 해체의 첫 단계에서부터 이기적 탐욕이 언제라도 이성의 통제를 흔들어 놓을 수 있을 정도로 위협적이라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하다 보니 제8권에 들어와선 나라와 개인의 통치 원리로서 이성의 지배가 철학자들을 포함해서 나머지 대다수 사람의 본성에서 어떤 방식으로건 과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정말 인간의 본성으로 가능키나 한 것인지 의심마저 든다. 게다가 플라톤은 제8권의 논의에서 우리의 그러한 의심을 더욱 크게 만들 정도로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정치체제로 거침없이 우리를 몰아간다. 그러나 제8권에서 우리가 느끼는 이러한 혼란 또한 장차 부정의에 대한 정의의 극적인 비교 우위를 드러내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준비된 계획의 일부이자 밑그림인 것이다.(548c-d)  플라톤은 제8권을 포함해서 <국가> 전체의 논의를 통해 정의로운 국가를 세우고 지켜가는 것이 매우 어렵고 힘든 일 지라도 결코 그것을 향한 뜨거운 열망마저 포기되어선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위해 이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토대로 모멸의 현실을 딛고 일어나 불굴의 의지로 철학을 통한 영혼의 자기 고양과 이론적 실천적 투쟁을 하나같이 이어가야 한다는 것을 시종일관 강조하고 있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은 정의로운 국가의 현실 구현을 철학의 힘으로 앞당기고 좀 더 강건하게 견인하기 위한 이념적 지표이자 어떠한 위협에도 결코 와해되지 않을 사상 투쟁의 굳건한 기반이다. ta kala tō onti chalepa. – 아름다운 것은 실로 힘든 것이다. -끝-

 

다음 주제 : VI 본론 3 : 부정의와 현실 비판 – 현실 국가 분석(제8권-제9권) 

A. 부정의한 나라들과 부정의한 개인들.

3. 과두정과 과두정적인 인간(550c-555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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