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형이상학 산책 46-내포량과 외연량[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Spread the love

헤겔 형이상학 산책 46-내포량과 외연량

1)

앞에서 수에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했다. 단위[Eins]와 개수 그리고 총수[Einheit]¹이다. 정량에서 단위는 그 정량에 외면적인 것이지만, 정량은 이 단위의 반복을 통해 규정되므로, 자기 관계하는 것이다. 개수는 단위가 모인 집합이므로 불연속적이다. 총수는 이런 단위를 전체로 총괄하는 것이므로, 연속적이다.

주1: Eins, Eeinheit와 같은 표현은 문맥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진다. 대체로 Eins는 일자 즉 정량을 이루는 단위를 의미한다. 그런데 때로는 문맥상 어떤 수가 고유한 개별자로 존재할 때를 의미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7은 하나의 일자이다. 또 Einhiet도 대체로 총수를 의미하는데 어떤 때는 차라리 단위로 이해하는 것이 문맥상 더 적합할 때도 있다. 혼란이 있지만, 문맥에 따라 이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헤겔에서 개수도 연속성의 측면이 있으며 총수도 불연속성을 지닌다. 그러나 개수가 불연속적인 것의 집합이라 할 때, 세어지는 각 일자는 서로 같은 것이므로,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 서로 같은 것들끼리는 연속적이니, 그 점에서 개수도 연속적이다. 마찬가지로 총수가 내적으로는 연속적인 것이지만, 다른 수와 비교해 보면 단적으로 서로 구별되는 것이니, 이런 점에서 총수는 불연속적인 것이기도 하다.

2)

앞에서 말했듯이 질의 범주에서는 질이 서로 관계하여 통일되면서 대자 존재로 이행하는 것이다. 이 대자 존재는 양적인 것의 출발점이 된다. 양의 범주에서는 그 반대다. 여기 양에서 양적인 것이 서로 관계하면서 질적인 것이 다시 출현하는 과정이 다루어진다. 이처럼 질적인 것이 다시 출현하는 데서 중요한 계기가 되는 것이 내포량의 개념이다.

헤겔에서 내포량은 외연량과 비교된다. 양자를 구별하는 것은 바로 양적인 것을 규정하는 일자 즉 양적인 것의 원리이며 그 자체 규정성의 원리인 단위다. 외연량에서 단위는 자의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자기 자신이다. 어떤 것의 크기는 자기의 한 부분을 떼어내서 그것을 거듭 반복하면서 재어질 수 있다.

그 단위가 자기 자신이므로 여기서 규정성은 자기 관계에 머무른다. 이런 자기 관계는 아직 타자를 통해서 자기 내로 복귀한 것이 아니며 추상적인 자기 관계다. 여기서는 어떤 크기는 그 단위가 몇 번 반복된 것인지가 확정된다. 이것을 통해 개수와 총수가 주어진다.

그런데 내포량은 그것이 지시하는 것은 일상적으로 말해지는 대로 감각의 정도를 말한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사물은 경도나 강도에 따라 비교될 수 있다. 이런 경도나 강도는 자기 자신의 한 부분을 떼어내서 비교될 수는 없다. 이것은 자기와 다른 것과 비교돼서 더 크고 더 작은 정도를 지닐 뿐이다. 철기는 청동기보다 더 강하다. 서로 부딪히면 청동기가 깨어지기 때문이다. 유리보다 다이아몬드는 더 큰 경도를 지닌다. 다이아몬드로 유리를 자를 수 있다.

이처럼 내포량은 오직 다른 것과 비교된 크기므로, 더 강하고 더 약하다는 비교를 통해서 서열을 매길 수는 있지만, 과연 그 정도가 몇 배나 더 큰가를 말할 수는 없다. 다이아몬드 이런 비교를 통해 서열상 20번째라고 한다면, 여기서도 개수와 총수가 나오니 이것도 하나의 정량이기는 하지만, 다이아몬드가 서열상 첫 번째 사물(예를 들어 유리라고 하자)의 20배나 더 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헤겔은 외연량은 배중성[Vielheit]을 가진다고 말하며 내포량은 가중성[Mehrheit]을 가진다고 한다. 즉 전자는 몇 배인지를 알 수 있지만, 후자에서는 더 많은 것인가 많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외연량에서 개수는 ‘자기 내에서의 개수’이고 내포량에서 개수는 ‘자기 바깥에 있는 것으로서 개수’라고 한다.

“외연량과 내포량은 정량의 동일한 규정이다. 그 구별은 외연량은 개수를 자기 안에 가지며, 내포량은 이를 자기 바깥에 가진다는 데 있다.”(논리학 재판, GW 21, S. 213)

여기서 ‘자기 바깥에’라는 말은 타자와 비교된다는 말일 것이다.

“정도는 특정한 크기지만, 집합이거나 단지 자기 내에 머무르는 더 많은 것[Mehreres]은 아니다. 정도는 더 많음[Mehrheit]인데 더 많은 것은 단순한 규정 속으로 복귀한 더 많은 것[Mehere]이다.”(논리학 재판, GW 21, S. 210)

여기서 ‘자기 내에 머무르는 더 많은 것’과 ‘단순한 규정 속으로 복귀한 더 많은 것’이 비교된다. 그 의미를 새겨 보면, 전자는 많고 적음이 세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후자는 많고 적음이 세어질 수 없다는 의미다. 외연량은 세어질 수 있다. 그러나 내포량은 그저 비교될 뿐이다.

3)

어떻게 본다면, 내포량은 양적인 것에 아직 불완전하게 도달한 것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처음에 단순히 다른 것과 비교를 통해 측정된 것들도 엄밀하게 자기 관계하면서 몇 배나 되는지가 측정되고 외연량으로 규정되는 것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체온은 처음에는 감각의 정도였다. 손으로 재면서 내 체온보다 높으면 뜨겁고 내 체온보다 낮으면 차갑다. 그러나 이제 체온계를 통해서 재어지면서 얼마나 높은지, 몇 배나 되는지가 수적으로 결정된다.

그러나 헤겔의 관점에서 본다면, 거꾸로다. 즉 내포량은 외연량보다 한 단계 발전된 것이다. 왜냐하면, 외연량은 추상적인 자기 관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지만, 내포량은 이제 타자와 관계하면서 타자를 통해 규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타자를 통해 규정된다는 것이 질적인 것이 지닌 의미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외연량은 타자와 비교되는 것이지만, 사실 이 타자는 자기와 같은 것이다. 즉 타자는 예를 들어 경도나 강도와 같은 일정한 측면에서 비교되는데, 자기와 타자는 공통으로 이 경도나 강도를 가지고 있다. 결국, 이 타자와의 관계는 제한적인 의미를 지니며, 여전히 자기 관계라는 추상성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추상적인 자기 관계를 벗어나기 위해서 이제 정량은 다른 정량과 관계해야 한다. 즉 서로 다른 정량인 길이와 무게가 서로 관계하면서 비중이 출현한다. 관계한다는 것[Verhaltniss]은 곧 비율[Verhaltniss] 또는 비례를 갖는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비중의 정도는 두 개의 정량이 관계 또는 비율이다.

최근 과학에 대한 실망에서 과학적 사고를 비판한다. 현상학적 철학의 계열에서는 과학적 사고는 양적인 것을 토대로 한다. 과학적 사고는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양적인 것을 통해 개별적이여 구체적인 질적인 차이를 제거한다. 양적인 것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라, 추상화하는 사유가 만들어 낸 것이므로, 자연을 왜곡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과학적 사유는 자연을 파괴한다. 나아가 오늘날 시장 사회에서는 개인이 지닌 개성은 아무 의미가 없으며 오직 개인의 양적인 가치만이 중요하게 된다. 그 결과 인간은 소외되며, 평범하고 진부한 존재로 격하되고 만다.

이런 관점에서는 질적인 감각의 정도로 규정된 내포량(흔히 감각량)은 질적인 것이 여전히 보존된 것으로서 추상적 자연과학을 극복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하면서 특별한 주목을 받는다. 감각의 정도를 측정하는 예술가는 이런 측면에서 새로운 과학자가 된다.

헤겔은 다른 의미에서 이 감각량 즉 내포량에 주목하는데 이를 통해서 추상적인 양으로부터 감각적인 질적 차이가 다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 관점은 다르지만, 동일하게 양적인 것의 극복을 내포량에서 찾는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러나 내포량은 아직 진정한 의미에서 타자 관계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자기 관계하는 것이면서 그 자기 관계가 타자를 통해 측정될 뿐이다. 그러므로 헤겔은 내포량을 유사한 다음과 같은 말로 설명한다.

“외연적인 타자 존재를 더는 자체 내에서 갖지 않고 이를 그 밖에서 가지며, 그 자차 존재에 자기규정으로서 관계한다.”(논리학 재판, GW 21, S. 211)

“일자로서 수는 개수의 무차별성과 외면성을 배제하고 자기 자신을 통해 외면적인 것에 관계하는 것으로서 자기에 관계한다.”(논리학 재판, GW 21, S. 211)

“무차별한 규정성이 정량의 질을 이루며 즉 그 자체에서 자기에 외면적인 규정성으로 존재하는 규정성이다.”(논리학 재판, GW 21, S. 211)

“정도는 그러한 내포성이 더 많음이라는 것 아래 있는 단순한 크기 규정이다. 이 크기 규정은 각각이 단지 자기 관계하며 동시에 서로 본질적으로 관계하는 상이한 규정이다. 그러므로 각각은 다른 것과의 연속성 속에서 자기규정을 갖는다.”(논리학 재판, GW 21, S. 211)

“이 자기 외면성이 내포량이고 단순한 규정성이다. 다시 말해 자기 관계하면서도 동시에 그 규정성을 타자 속에 갖는 것이며 그 규정성은 그 자체에서 자기에 외면적인 규정성이다.”(논리학 초판, GW 11, S. 133)

“정도의 각각은 자기 관계하는 크기 규정으로서 다른 크기 규정에 무차별하지만, 마찬가지로 그 자체에서 이 외면성에 관계하며 다만 이 외면성과 매개해서만 그 자신의 본질로 된다.”(논리학 재판, GW 11, S. 134)

0 replies

Leave a Reply

Want to join the discussion?
Feel free to contribute!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