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형이상학 산책(41) -양적인 것에 관해[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41) -양적인 것에 관해
1)
헤겔 논리학 1부 1권 존재론 1편은 1장은 존재와 무, 생성이라는 존재론의 영역에서 전개되는 운동의 형식을 서술한 일반론에 해당한다. 존재론 2장 즉 현존 장은 사물의 질을 다루었고 여기서 현존, 유한성, 무한성이 다루어지고, 존재론 3장에서는 대자 존재를 다루면서 이 대자 존재의 견인과 반발이라는 운동을 설명했다.
2장 마지막 부분에서 헤겔은 양적인 것으로 이행을 소개하면서 마침내 1편을 마치고 2편 크기 또는 양적인 것을 다루기 시작한다. 2편에서 다룰 내용은 양적인 것(1장), 정량(2장), 비례(3장)이니, 판단 형식에서 보면 양적 범주에 속하는 형식들이 다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형식 논리학은 판단 형식을 거론할 때 양적 범주를 먼저 언급하고 질적 범주를 나중에 거론한다. 이것은 칸트가 판단 형식에서 인식의 선험적 범주를 끌어낼 때도 따랐던 원칙이었다. 그런데 헤겔은 질적 범주 다음에 양적 범주를 언급한다.
사실 서구 형이상학에서 가장 핵심적 개념은 이 양의 개념에 있다. 이 양의 개념이 형이상학적으로 전개되면서 서구의 자연과학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거꾸로 자연과학은 양의 현상을 발견하면서 형이상학을 발전시키는 매개가 됐다. 형이상학과 과학 사이에 전개된 논의의 축은 항상 수의 개념과 비례의 개념이었다. 서구 형이상학이 본래적으로 드러나는 곳이 곧 이 양의 개념에 있다.
2)
형식 논리학에서 볼 때 양적인 것은 질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성질이다. 양적인 것의 대표는 공간적 크기나 형태인데, 인간은 공간적 크기나 형태를 직관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때문에 자주 지각에 관한 형태학적인 이론이 제시된다.
그러나 과연 이런 양적인 것이 질적인 것과 동일한 직접 지각 가능한 성질인가? 흄은 양적인 크기의 지각은 감각적 성질의 차이를 통해서만 가능하니, 양적인 것은 직접 지각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 때문에 양적인 것이 추상적인 성질이라는 주장이 등장했다. 감각적 성질로부터 추상하여 양적인 성질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장 반박이 제기될 수 있다. 감각적 성질은 직접적이니, 그 자체로 진리가 된다.(물론, 이 직접성을 확보하기 위해 감각 너머 원초적 감각을 상정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감각은 직접적인 것으로 본다) 반면, 양적인 것은 직접적인 것을 추상하는 사유를 통해 형성된 것이니, 과연 이것이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인지가 의심스러워진다.
후설이 양적인 것을 비판한 이후로 이처럼 양적인 것의 존재를 부정하는 철학적 관점은 도처에 흩어져 있다. 현대에 와서 아도르노나 들뢰즈와 같은 철학자가 양적인 것의 존재를 부정하는 대표적인 철학자가 될 것이다. 양적인 것을 넘어서 원초적 감각으로 되돌아가자는 주장은 오늘날 철학에서 만연한 구호라고 하겠다. 이런 관점은 양적인 것에 기초하는 자연과학을 회의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3)
헤겔은 양적인 것이 감각적 성질처럼 사물에 속한 성질로 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것이 사유의 추상을 통해서 형성되는 관념이라고 보는 것은 아니다. 헤겔은 감각적 성질조차 관계를 통해서 설명하려 했는데, 양적인 것이야말로 이런 관계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양적인 것이 어떻게 출현하는지, 헤겔의 설명을 따라가 보자.
앞에서 헤겔은 질적 범주를 다루는 마지막에 이르러 대자 존재를 다루었는데, 대자 존재란 철학상 파르메니데스에서 시작하는 일자를 말한다. 일자는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내적인 통일성을 지닌 존재로 규정된다. 두 개의 대립하는 성질이 관계를 맺을 때 그 관계가 지속할 때, 즉 통일성이 유지될 때 대자 존재가 된다.
헤겔은 이런 대자 존재는 일자지만, 파르메니데스처럼 수적으로 하나는 아니고 다수의 개별자일 수밖에 없다고 보며, 그런 점에서 오히려 헤겔의 대자 존재는 데모크리투스적 원자라는 개념에 가깝다. 왜냐하면, 그런 통일적 관계가 한순간 존재할 때는 개별자기 때문이다.
이런 개별자는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는데, 그 각각은 우연한 조건에 따라서 출현하므로 그것들의 차이는 우연적 차이일 뿐이며 그 속에 어떤 동일한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모든 개별자는 동일한 것이 된다. 헤겔의 대자 존재를 대표하는 예를 들자면 하나하나의 소금 알갱이거나 하나하나의 나뭇잎일 것이다.
나뭇잎과 소금 알갱이들은 서로 동일하면서도 차이를 지닌다. 이런 것들의 관계는 서로 동일한 것들의 관계라는 점에서는 견인이며 서로 차이를 갖는 점에서는 반발이다. 이를 통해 두 가지 관계가 출현한다. 견인을 통해 본질상로 연속적인 것인 양적인 것이 출현하며 반발을 통해 본질상 차이에 속하는 공간이 출현한다.
마치 원자론자가 원자의 이면에 공허를 상정했듯이 양자는 서로 대립하는 것이면서도 따로 떨어져 있을 수 없다. 양적인 것이 없이 공간도 없으며 공간도 없이 양적인 것도 없다. 양적인 것의 이면은 이미 차이며, 공간적인 것의 이면은 이미 양적인 것이다.
4)
그러므로 헤겔은 질은 최초의 직접적 규정성이지만, 양은 “존재(질)에 무차별하게 된 규정성”이며, “대타 존재와 단적으로 합일한 대자 존재”라고 한다. 여기서 대자 존재는 통일성, 일자의 측면이며 대타 존재는 현존, 개별자의 측면이다. 즉 대자 존재는 존재하는 것이라는 저에서 서로 차이를 지니지만, 대자 존재라는 점에서 본질상 동일한 것을 말한다.
여기까지는 대자 존재에 관한 규정인데, 양적인 것으로 이행하면서 새로운 규정이 덧붙여진다. 양적인 것은 대자 존재와 대자 존재의 관계로 이루어진다.
“여러 일자의 반발이며 동시에 직접 서로 반발하지 않는 것, 즉 여러 일자의 연속성이다.” (논리학, 재판, GW21, S. 173)
이렇게 덧붙여진 규정이 의미하는 것은 여러 대자 존재 사이에 연속과 차이를 동시에 갖는 관계가 곧 양적인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양적인 것은 다음과 같이 규정된다.
“대자 존재자가 이제 그의 타자를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타자 속에 자기를 긍정적으로 지속하도록 정립되었으므로 대자 존재자는 현존이 이 연속성 옆에서 다시 출현하는 한, 타자 존재다. 대자 존재자의 규정성은 동시에 더 이상 단순한 자기 관계 속에 있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또는 현존하는 어떤 것의 직접적인 규정성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 자기로부터 반발하면서 규정성으로서 자기 관계를 다른 현존 속에서 갖도록 정립된다.”(논리학, 재판, GW21, S. 173)
이해하기 쉽지 않은 구절이지만, 현존의 경우 타자 존재와 대립해서 존재한다. 유한성은 타자 존재를 그 자체에서 갖는다.(그것이 대타 존재다) 그러나 양적인 것에서 하나의 대자 존재는 다른 대자 존재에 대립하지만, 이 다른 대자 존재도 역시 그 자신과 같은 대자 존재다. 그러므로 대자 존재는 연속적인 것 즉 “타자 속에서 자기를 긍정적으로 지속하는 것” 또는 “자기 관계를 다른 현존 속에 갖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자기 옆의 대자 존재는 사실 자신과 다른 또 하나의 대자 존재니, 이 타자 존재는 하나의 현존이며, 이 현존성은 “연속성(자기) 옆에서 다시 출현한” 현존이다. 타자 존재와 대자 존재는 이처럼 연속과 차이라는 이중적 관계를 통해 관계하는 것이다.
양적인 것은 아직 정량이 아니다. 정량은 양적인 것이 특정한 규정성을 그 자신에서 지니게 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구체적인 양이다. 즉 일정한 단위를 지닌 양이다. 예를 들어 미터, 그램 등과 같은 것이다. 양적인 것 자체는 아직 규정성을 지니지 않은 것이니, 여기서는 연속과 차이라는 관계만이 다루어진다.
양적인 것과 정량의 차이는 질적인 것에 현존과 유한성의 차이에 대응한다. 현존은 질의 명멸하는 질들의 관계라면 유한성은 타자와 관계 속에 있는 어떤 것의 규정을 말하니, 이미 그 자체에서 규정된 것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양적인 것은 연속과 차이의 직접적 결합만을 말하며, 정량은 특정한 양 즉 그 자체에서 어떤 규정을 지닌 양을 말한다. 말하자면, 유한한 양이라 말할 수 있다.
존재론 1편은 헤겔이 개정하면서 초판과 재판이 너무나 달라서 과연 같은 내용인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였다.(물론 양자는 비교해 보면, 서로 대응하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으니, 그리 우려할 만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존재론 2편에서부터 초판과 재판은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는 평행해서 나간다. 그런 가운데 설명하는 용어나 구절에서 첨삭이 진행됐으나, 그 내용을 못 알아볼 정도로 심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존재론 2편 양적인 것을 설명하는 데서는 주로 재판을 인용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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