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운명 [천 하룻밤 이야기]

Spread the love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운명

2025 08 23. 처서(處暑), 고추잠자리가 높이 나는데 더위는 여전하다.

*

류종렬(한철연 회원)

*

철학사에서 아이러니(l’ironie)가 세 종류 있다고 들뢰즈가 제시했다. <고대의 상식을 통하여 소크라테스 아이러니, 근대의 합리주의의 양식에 의한 아이러니, 그리고 나를 개입시켜 시대의 활동을 서술(표현)하는 낭만주의의 아이러니가 있다.> 소크라테스의 아이러니는 자의식의 확장으로서 지혜의 추구가 하나의 길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는 플라톤의 『향연(Συμπόσιον, 심포지온)』의 자의식의 발현에서 욕망의 끝이 답이 없다는 점에서 아이러니라 한다. 이는 의식의 상승에서 아이러니이다. 근대에서 자의식은 자연의 총체성을 사유할 수 있다고 믿었고, 이를 보증해주는 신도 있다고 하였으나, 이 신은 신학의 신이 아니라 이론적 신이라고 하였다. 이런 의식의 발현이 무한을 사유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겼으나 칸트에서 이상은 형이상학(자연학의 배후)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아이러니이다. 그런데 낭만주의에 이르러서 이런 사유를 할 수 있는 자아가 있을 것이라고, 당연히 신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자아가 있을 것이라고 여겼고, 이런 자아가 자유롭다고 하며 자연 속에서 방랑성 또는 노마드가 있다고 여겼다. 그러면 그 방랑성은 왜 있는가? 자연에서가 아니라 인간에서 방랑성의 근원과 이유는 무엇인가? 상승도 아니고 이상도 아니고 총체성의 통일성도 아닌, 자아의 자유(방랑성)의 기원을 찾으려 했으나, 의식의 내재성은 규정할 수 없는 무차별성이라는 점에서 아이러니이다.

무차별성 속에서 자아의 성립은 무엇을 기준으로 할 것인가? 신 없는 자아, 범아 없는 자아, 자연 없는 자아는 성립할 것인가? 고대와 중세를 거쳐서 근대성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개체성 또는 이것임이 없는 인간은 고독자일까? 도덕감과 종교심이 있다고 하는 이들은 삶의 터전에서 일반화할 수 있는 삶의 양식이 있다고 한다. 그 양식이 무엇인지 대상화하기 어렵지만, 인간의 자연에는 일반화가 있다. 이 기원 또는 원인의 탐구는 인간의 발생적 기원에 관한 논의로 넘어갈 것이고, 생명의 기원을 탐색하면서 생물학과 심리학이 길을 열 것이다. 그럼에도 개체로서 인간은 단독자임에 분명하다. 19세기에 단독자, 유일자의 대상화로서 인간을 대하는 태도와 공동체 속에서 인간을 다루는 태도 사이의 차이가 등장할 것이다. 생물학의 발전과 진화론의 등장으로 기나긴 생명현상의 과정 속에서 인간이 등장한다는 것을 안다. 그 인간은, 스스로를 동물류에서도 인간 종에서도 아니고, 개체(불가분)로서 자연 속에서 한 인간(이것임)을 다루게 될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말하듯이 자기 대신에 죽을 수 있는 자가 없듯이, 생명체로서 인간은 단일성이고 특이자이며, 별건의 노마드이다.

*

물질적 생산력의 변화는 의식의 변화를 가져온다. 시대가 인물을 만든다. 자연이 생산과 창조를 한다. 자연의 생산성은 이오니아학파의 사유였을 것이다. 페르샤의 침공을 막았던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동맹은 각각의 도시가 스스로 자립한다는 생각을 해냈을 것이고, 자립의 도시를 아테네에서 풀어보려고 여겼던 그리스 식민도시들의 현자들은 아테네로 모였을 것이다. 그 시기의 화두는 고르기아스의 카이로스(때에 맞게)였을 것이다. 이 때를 알아보려고, 세상에서 인간의 행복과 자유를 풀어내는 이들을 찾아 나선 이를 소크라테스라 생각해 보자. 인간이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며, 공동체 안에서 인간은 무엇이며, 우주 속에서 인간이 무엇인가를 풀어보려고 한 이는 플라톤일 것이다.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학의 배후: 메타피지카』라는 논저를 쓰면서, 자연을 공간에서 숫자로 다루어야 한다는 생각이, 제도와 체제를 유지하려는 참주제, 국가, 제국주의 등에서 유지되어 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아테네에서 가르칠 때는 이미 그의 제자인 알렉산드로스가 마케도니아의 참주(대왕)로서 아테네를 식민화하였고, 그리고 동방으로 정복전쟁을 나갈 때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제국주의에 젖어 있었던 어용철학자는 아닐까? 물론 알렉산드로스의 측근이었던 그의 조카가 처형당하고 난 뒤,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드로스 사이에 틈이 생겼다고 한다. 정치편이든 윤리학들이든 권력 속에서 저술하였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추론이 아니라 사실에 가깝다.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뒤 아테네에서 반 마케도니아 운동이 일어날 때,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머니의 고향으로 피신했다고 한다. 누군가는 그가 소크라테스처럼 인민 속에서 목숨을 내놓고 인민과 더불어 철학한 자가 아니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를 핑계로 도망갔다고도 한다. 그는 도망가면서 “아테네가 철학에게 두 번이나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테네를 떠났다고 한다. 1930년대 비엔나에서 프로이트는 나찌의 위협을 피해 영국으로 떠났다. 이 과정에서도 솔직한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들뢰즈가 말했지만, 인민 속에서 인민과 흐르면서 산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그래도 시대의 변화에서 흥미롭게 살았던 이들이 있다. 철기문화가 유입되면서 종족이란 단위가 와해되는 시기에 사키야족의 싯달다가 있었다고 한다. 중국의 당나라와 전쟁의 대립적 구도 속에서 해동삼국의 다툼에서 인민 속에서 불교를 통한 고통과 불행을 해소하려는 노력했던 원효도 있었다.

인민 속에서 인민의 흐름으로 산다는 것은 무소유이며, 무자아이며, 무국적인 것은 그래도 유효한 것 같다. 그럼에도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데 그 공동체를 인정하고도 도망치지 않은 현자는 소크라테스와 예수일 것이다. 같이 산다는 것은 고통과 죽음을 함께 하는 것이리라. 벩송이 도덕적 영웅과 같은 이를 소크라테스와 예수로 꼽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나로 또는 체제로 체계로 나가야만 한다고 주장하지 않은 두 사람이다. 그리고 목숨을 내놓고, 타인과 타자를 향해 문을 열고, 모든 것을 공유하고자 했다. 사적 이익을 챙기는 쪽에서 경계를 긋고, 뺏길 것이 있다고 여기는 한에서 타인이 적이 된다. 뺏기기 전에 빼앗는 것이 전쟁이며, 모든 것을 빼앗을 때 최고의 잉여이익을 챙기는 것이라는 것을 안 것도 이기적 사고에서 나온다.

*

고(孤) 또는 ‘홀로’는 이기적 삶에서 벗어나는 자들에게도 있었다. 퀴니코스학파의 유랑(노마드)에서, 불교의 승단(비구/니집단)에서, 카파도키아의 지하에서, 사막의 천막에서, 초원의 포라에서도 있었다. 그들은 이 세상에 왔다가 간다는 것을 설명할 필요도 설득할 노력도 하지 않고서 느끼고 살았을 것이다. 이런 수행과 닮은 노마드의 삶에서 누가 시켜서도 스스로 하고 싶어서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연의 섭리와 숙명에 대한 화두가 떠나지 않은 이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해안에서 근무하던 군대생활에서 방위병과 함께 밤 보초를 섰는데, 동국대 불교전공 석사와 함께 몇 달을 함께 했다. 그 방위병은 추운 겨울에 난로를 쬐기 위해 나에게 선문답의 화제를 내어주었다. 나는 보초에서 이틀에 한 번씩 선문답의 화제를 받았다. 한 삼개월 정도에서 그는 어느 날 “각자(覺者)는 떠난다”는 화두를 주었는데, 그때에 싯달다가 이런 화두를 생각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벩송에서도 깨달은 자는 정지해 있지 않고 지속(운동)하는 자라는 것에 붙여보기도 했다. 그런데 들뢰즈의 여러 글을 읽으면서 노마드가 각자(覺者)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개인은 먹고 자는 것이 해결되어야 깨닫는다는 수련도 실천도 있는 것이 아닐까? 들뢰즈가 노마드라는 규정에 다른 하나를 보태어, 1988년 대담에서 <토인비(Toynbee, 1889-1975)의 구절에 감명을 받는다. 즉 “노마드들은 꿈적이지 않는 자들이고, 이들은 떠나지는 것을 거절하기 때문에 노마드들이 된다.”>고 한다. 떠나봐야 부처님 손바닥이지. 노마드 의식은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흐르고 있는 의식이기에 자아도 범아도 아닌 의식일 것이다. 노마드가 고(孤)일까, 고(孤)라고 고정시키는 것이 페라스를 규정하는 것이리라. 그러면 아페이론이 노마드일 것이다.

‘혼자서’라는 용어를 즐기는 이들이 있는 것 같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이 그러하다. 그의 아테네는 그 영광을 잃었다. 그럼에도 플라톤이 처한 도시국가에서 세계를 아우르는 사유를 할 수 있었다. 정지해 있는 듯 하면서 움직이는 사유를 했을 것이다. 그는 제자들이 많았다는 점에서 고(孤)를 즐겼을 것이다. 어쩌면 (먹거리와 잠자리가 해결된 귀족 계급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이 말하듯이 여가(σχολή, 스콜레)가 있어야 학문을 할 수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학교와 스콜라철학은 이 그리스어와 연관이 있다. ‘혼자서’라는 용어 속에는 어쩌면 “혼자서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도구의 사용을 우선으로 여기는 지자든, 사람들 사이에서 공동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하다고 여기는 현자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당연히 알았으리라. 지자는 터전 또는 사회에서 행할 수 있는 일들을 눈살미로 배울 수 있다고 여길 것이다. 도구의 사용에는 눈살미가 중요하다. 다른 한편 공동체에서 그럴듯한 삶은 시간 속에서 여러 난제들을 해결해온 이야기를 배울 것이다. 현자는 꼬마들에게 이야기를 전해주듯이, 입문자(도제)들에게 알 듯 모를 듯 화제들을 제시하였을 것이고, 입에서 입으로 흐르고 있었으리라. 인더스 문명의 브라만의 교육은 암송이었다고 하고, 그리스의 전통에서 호메로스 전통과 시인들의 신화의 이야기는 연극장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승을 더 중하게 여겼다고 한다. 나중에 문자화는 공통적이고 체계적인 전달을 가져왔을 것이다.

먹거리와 잠자리의 해결에서 유한계급의 지식 체계와 확장은 그 지식 안에서 즐거움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즐거움이 행복과 동일하지 않지만, 행복에 다가가는 방법일 수 있다. 식주(食住)의 해결이 민중과 백성에게도 일반화하여 이루어질 때는 생산력의 발달에서일 것이다. 인민의 자유와 평등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산업화와 같은 궤도 위에 있을 것이다. 의복은 제도 속에서 치장이라 여기면, 의(衣, 옷과 모자, 신발과 장신구)등은 생산력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기본은 식주이다. 식주의 해결이 긴 노동분업에 의해 이루어진 체제에서 고통과 비참도 어느 정도 해소되어 갈 때, 고(孤)라는 개체성 또는 인격의 특이성은 표출된다. 특이성이란 류와 종의 차원에서 인간이나 최고류의 신 등과 연관 없이도 문제거리로 제기되었다. 자연 속에서 인간이 화두가 되기 시작한 시절에, 특이성(개인, 유일자)이 실질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대혁명과 더불어 산업화에서 나온 것이라고들 한다.

자연이 신에게서 벗어나는 시기이기도 하며, 자연의 섭리를 터득하는 시기를 근대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근대성에서 자기의식은 특이자로서 개인(그 누구, 즉 조국, 최강욱)이다. 그는 논리상으로 최고류, 류, 종, 종차의 지위를 거쳐 가며 특이자라는 지위를 갖는다고들 한다. 그는 혼자서 살 수 있는가? 공공의 토대위에서 살아가는 것이지, 자기의 이익의 전유와 확장으로 살아가는가? 이 즈음에서 공동체나, 공산주의가 등장하는 것은 당연했으리라.

김건희의 목걸이와 시계에 대한 이야기는 의(衣)의 표시를 드러낸 것이리라. 그 표시는 권력이며, 이 권력 지배방식은 제국의 하수인이라는 점이다. 이런 이야기는 인민의 삶에서 먹거리와 잠자리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빌게이츠가 하루에 수십억을 벌고, 그의 집 입구에서 집까지 들어가는데 수 킬로가 된다고 하더라도, 먹거리와 잠자리는 민중의 기본, 공공성의 문제이다. 공공성이 없는 사적 소유에 대한 무제한 편취 또는 자본축적이 왜 문제가 되지 않는지를 문제 삼지 않고서, 개인의 파편화와 개인의 인격화를 문제 삼는 것은 허구이고 또는 전도된 사고에서 오는 것이다. 전도된 사고에서 최고류에서부터 연역적으로 사고하는 이들이 자본과 제국의 제국은 신앙처럼 믿고 있다. 이 사고는 무기와 전쟁의 공포로서 사적 소유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자들의 논의이다. 윤석열 어게인을 말하는 극우들은 이들의 꼭두각시이다.

경계 없는 우주(아페이론)에서 사유를 출발한다는 것은 홀로 길을 나서는 것과 같다. 세상(우주)에서 생명체는 개체로서 혼자이라고 느끼는 동물은, 진화론적 발전 과정에서 아마도 인간이 처음일 것이다. 자연 속에서 홀로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학문에서 먼저(선후)이고 화두로서 중할(중경)것이다. 숙명의 받아들이는 겸손의 철학이 오래 전에 제기되었고, 자연 속에서 자연의 흐름에 맞게 질박하게 살면서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소통을 팔방으로 그리고 어제와 아제를 연결하는 사유를 해야 할 것이다. 각자는 이 세상에 아자르(hasard)로 왔으며, 필연적으로 이 세상을 떠난다. 이 자연의 섭리 속에서, 세상(코스모스) 속에서 깨달은 자가 먼저 길을 나서는 것이다.

인간이 생태계를 이야기하면서 자연을 훼손 또는 파괴하지 말자고 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이 말로서 떠드는 것이 일이 아니라, 삶의 양식을 변역(變易)하는 일이 나, 너, 우리의 일이다. 곧 떠난다는 것을 자각하며, 그래도 이 터전을 떠날 준비를 하는 것도 혼자이다. ‘혼자’를 세상과 멀리 둘 수도 가까이 둘 수 없다는 점에서, 자아는 공(空)이며, 범아 속에서도 어디에도 없으며, 그리고 어느 시점에도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아니다’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삶이 색(色)이며, 말하자면 그렇다는 정도이다. 이 세상에 색칠을 한다? 또는 주사위 놀이를 한다? 그럼에도 자연의 섭리 속에서 혼자서라도, 우리의 터전을 아름답게, 그리고 자유와 평등의 세상으로 만들려 노력하며 강도를 높이려 한다. (4:20, 58SMC)

*

벩송은 1911년 5월 29일 영국 버밍험 대학에서 “의식과 생명(la Conscience et la vie)”을 강연했는데, “우리는 어디서 와서,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D’où venons-nous? Que sommes nous? Où allons Nous?)라는 화두를 제시하였다. 사람들은 이 제목이 고갱(Gauguin, 1848-1903)이 1897년 그린 제목임을 안다. 이 그림에서 고갱은 “나는 죽기 전의 나의 모든 에너지를 이 작품에 쏟았었다”고 “1898년 2월 몽프레에게 보낸, 폴 고갱의 유서”에서 쓰고 있다. 그는 이 작품을 그리고 세상을 떠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그는 그림에서 오른쪽에서부터 어린애, 청년, 노년을 그려 삶의 과정을 표현하였고, 그 각 생의 현장에서 주변의 연관들을 표현했다고들 한다. 그림은 삶의 과정을 한꺼번에 보여줄려고 하는 우주론적인 사고이고, 전기 비트겐슈타인에게서 세계는 사실들의 총합과 같다는 발상이다.

위 물음을 제시한 벩송의 사유는 우주발생론적이다. 그는 철학이 실증과학처럼 진보할 것이라 한다. 원시적 생명, 즉 단세포에서부터 사유하자는 것이고, 생명은 기억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대(20세기 초) 쯤에서 인류는 생명이 기나긴 역사의 과정에서 생성되었다는 것을 겨우 자각한다. 뀌리의 방사능 동위 원소의 발견이후 긴 시간을 지나서야, 오랜 지층에서 한 꽃가루가 몇 억년 전이라는 것도 계산하게 되었다.

세계는 기적적으로 만들어진 것도, 누군가가 마법의 막대기를 사용하지도 않고 말로서 있으라고 해서 창조된 것도 아니라는 것도 안다. 실증과학의 발달로 의식은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사실들(만들어진 것들)의 선들(lignes de faits)”을 따라 추적해 볼 수 있다. 그 의식은 생명인 한에서 우선 기억을 지니고 있고, 그리고 미래에 예상참여하려 한다. 그러면서 의식은 자기를 확장시키면서 세분화(가지치기)하여 왔다. 의식은 생명과 공연적(coextensive)이라 한다.

이 우주의 섭리에서 이 과정을 이해하기 시작한 생명체로서 인간은 스스로 떠난다는 것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터전에서 삶을 중요시하는 것도 인간이다. 여기에서 벩송은 그의 첫 작품에서부터 도덕감과 종교심을 이야기한다. 여기에 보태어 아름답다는 감정을 보태었다. 이런 세 가지는 지성(또는 속 좁은 이성)이 계산할 수도 측정할 수도 없으며, 규정할 수도 없고, 나아가 정의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면 인간에 대한 연민, 아름다운 감정, 공통 삶에서 장하고 훌륭함 등은 무엇인가? 인간이 스스로 풀어가야 할 과제일 것이다. 깨달은 자들이 행하는 것이리라. (58SLJ)

도덕감과 종교심은 열려진 소통일 것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삶에서 도구의 발전과 생산력을 증가시켜 왔다. 그리고 소통의 방식도 다변화했다고 할 수 있다. 소리와 문자에서 오랫동안 각 시대마다 소통과 정보의 체계화를 위해 백과전서들을 만들어왔다. 이런 지적 노력과 소통의 확장은 인간들 사이의 신뢰와 조화로서 자유와 평등이라는 정의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런 정의가 전지구적으로 이루어진 적이 아직은 없었다.

철의 시대에서 기술발달의 속도와 달리, 규소의 시대에서 기술과 소통의 발달은 엄청나서 세기의 구분도 세대의 구분도 아닌 시대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현 시점 여기에서 삶의 터전을 잘 만드는 것은 절실한 작업이다. 그 만치 인간들 사이의 신뢰 또는 경제적으로 신용이라 부를 수 있는 덕목도 소중하다. 사회활동에서도 제도의 조직적 연결과 달리 인간적 연결망이 생겨난다. 게다가 터전에서 삶의 양식을 바꾸려는 노력은 다양한 방식으로 솟아나고 있다. 이 중에서도 광복 후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서 일제 부역자들의 잔재를 제거하지 못했던 것들을, 윤석열 집단의 반란에 대한 제압을 통해 밀정들을 제거하려는 깨어있는 시민들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광장에서 응원봉처럼 이들의 누리소통의 빛들의 퍼짐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 것이다.

제도 속에서 사실들의 문자화로 기록과 등록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오늘이 처서(處暑)이다. 정청래가 백로와 추분을 지나 한로까지 기다려 달라고 한다. 최강욱이 힘을 보태고, 추미애가 법사위원들을 추스르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을 실행에 옮길 것이다. 문자화의 길이 현 정부의 일일 진데, 조국혁신당의 조국이 한 걸음 더 나가야 할 것이다. 진보당과 더불어 인민의 입말을 통한 누리 소통과 학습열락(學習悅樂)을 통하여 공화정을 세우리라. 인민 주권의 강도(τόνος 토노스)를 다져가야 할 것이다. (4:31, 58SLJMA) (5:32, 58SMC)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철학의 세계』(2023),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

0 replies

Leave a Reply

Want to join the discussion?
Feel free to contribute!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