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형이상학 산책38-일자들의 반발 관계[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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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형이상학 산책38-일자들의 반발 관계

1)

앞에서 일자의 요소들을 살펴보았다. 일자는 자기를 산출하는 무한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대자 존재며, 이 산물이 대자 존재의 산물 중의 하나라는 점에서 일종의 존재[Sein Fuer Eines]며, 그것은 그 외에도 똑같은 다른 일자들과 관계한다는 측면에서는 일자[Eins]다

이 일자들이 서로 관계하는 평면이 공허다. 이 공허는 똑같은 일자들이 만나는 평면이므로 한편으로는 동질적 평면이며 다른 한편에서 일자들의 차이는 외적, 우연적인 차이이므로 우연적 차이가 존재하는 평면이다. 이 공허 속에서 동질성과 차이가 서로 외면적으로 관계하면 그것이 곧 공허다. 그러므로 일자의 한계는 공허이며, 일자들은 공허 속에서 존재한다.

“다수의 일자는 일단 정립되지 않은 타자 존재다. 한계는 다만 공허이며 일자들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또한 일자들은 그 한계 속에 존재한다. 그들은 공허 속에 존재하며 다시 말해 그들의 반발은 그들의 공통적 관계다.”(논리학 재판, GW21, S. 158)

이런 구체적으로는 모든 물체가 질량으로 환원된 상태에서 이 질량이 서로 관계하는 물리학적 공간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모든 공간이 이런 공간이 아닐 것이다. 현존들이 만나는 평면이나 생명체의 내적 평면은 물리적 공간은 이런 공허로서의 공간과는 다른 공간이다.

이제 이런 허공 속에서 일자들이 어떻게 관계하는지를 살펴볼 차례다. 일자들의 이런 관계에서 핵심적인 개념이 곧 반발이므로 2장 현존론 3절 대자 존재의 B항(일자와 다자)에서 공허 개념(B-b항)을 다룬 다음 바로 다음 ‘반발[Repulsion]’ 개념(B-c항)을 다루고 있다. C항으로 넘어가면 다시 일자의 배제[Ausschliessen](C-a항)을 다룬 다음 이어서 반발과 견인의 관계를 다루므로, 일자의 반발 또는 배제는 B항에서 C항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개념으로 보면 될 것이다.

2)

공허 속에서 일자들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공간 속에서 두 당구공 사이의 충돌을 예로 드는 것은 일자와 당구공 사이의 유사성에 비추어 적절하지만, 충분하지는 못하다. 당구공으로는 일자의 대자성을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일자는 동질적이면서 서로 외면적 차이를 가진 것이니 차라리 두 형제의 갈등을 예로 드는 것이 더 합당하게 보인다. 왜냐하면, 인간의 의식은 대지적인 것이니, 대자성까지 마음속에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든 당구공의 충돌이나 형제의 관계를 예로 생각하면서 일자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일자의 관계를 설명할 때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개념이 곧 ‘자기에 대해 부정적인 관계’라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탈자[Ausser sich Sein]’로 규정되기도 하는데, 자기 부정이라는 측면에서 같은 의미다.

앞에서 하나의 현존과 다른 현존의 관계에서 하나의 현존은 규정성을 가지는데, 이 규정성은 타자에 대한 부정성을 의미했다. 예를 들어 ‘빨간색’은 ‘파란색’에 대해 그것이 아닌 것 즉 부정으로 규정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현존이 있다면 그것은 그것과 대립하는 다른 현존이 존재함을 전제로 하고 또 요청한다.

그런데 여기 일자에서 일자는 ‘자기에 대해 부정성’을 지니는데, 헤겔은 이 자기 부정성을 또 하나의 자기와 똑같은 ‘일자를 정립하는 것’으로 여긴다. 즉 자기 부정이 또 하나의 자기산출이라는 것이니, 여기서 두 개의 또는 여러 개의 일자가 출현하게 된다. 여기서 출현한 다수 일자의 관계는 그 차이가 외면적인 한, 다만 외면적 관계다. 양자의 연관성을 말해주는 구절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일자의 다수성은 일자의 고유한 정립이다. 일자는 일자의 자기에 대한 부정적 관계일 뿐며 이 관계 그러므로 일자 자체가 곧 다수의 일자다.”(논리학 재판, GW21, S. 157)

“다수의 일자는 존재하는 것이다. 그 일자들의 현존 또는 상호 관계는 무-관계이므로 그 관계는 그런 일자들에 외면적이다. 즉 추상적 공허이다. 그러나 이들 일자 자체는 자기가 마치 존재하는 타자인 것처럼 자기에 대해 부정적으로 관계한다.”(논리학 재판, GW21, S. 158)

그러나 ‘자기를 부정하는 것’과 ‘다른 일자가 산출되는 것’ 사이의 연결 고리를 쉽게 찾기 힘든다는 사실이 헤겔의 주장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대자 존재라는 매개 고리를 집어넣는다면, 그 과정이 어렵지 않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자기에 대해 부정한다는 ’것은 일종의 존재가 자기 내로 복귀하여 대자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렇게 대자 존재가 된다는 것은 또 ‘하나의 일자를 산출한다’라는 것으로 이어지게 된다. 대자 존재를 매개로 ‘자기에 대한 부정적 관계’가 ‘다른 일자의 산출’로 연결된다.

3)

일단 일자의 자기에 대한 부정적 관계를 통해 다른 일자가 산출된다면, 여기서 반발의 관계가 출현한다. 왜냐하면, 이 다른 일자 역시 똑같은 일자이며 다만 그것들은 외면적 차이가 있으므로 서로 부정적이다. 하나의 일자가 지닌 우연성은 자기와 다른 일자의 우연성 부정하면서 존재하게 되니, 여기서 일자들의 반발이 일어나게 된다. 이 반발은 필연적이다. 왜냐하면, 우연성은 단순한 우연성이 아니라 똑같은 일자가 지닌 우연성이기 때문이다.

일자들의 반발을 이해하기 위해 당구공의 충돌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흰 당구공은 빨강 당구공과 단순하게 공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흰색은 빨간색의 부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흰 당구공은 빨간 당구공과 충돌한다. 그런데 예가 약간 어색하게 느껴지는 데, 왜냐하면, 흔히 당구공은 관성적 존재므로 가만히 놓아두면 서로 공존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를 바꾸어 대자성을 지닌 존재인 형제를 놓고 보자. 형제의 차이는 사실 우연적이므로 굳이 갈등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이 우연성 때문에 불가피하게 충돌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을까? 왜냐하면, 이 우연성의 배후에 일자가 있으며 그 일자는 서로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에 대한 부정의 관계는 이제 타자를 부정하는 관계로 바뀌면서 반발 또는 배제라 관계가 출현한다. 이런 반발의 관계는 동일성과 우연성이 외면적으로 결합한 상태에서만 일어나는 운동이다. 동일성과 우연성의 외면적 결합이 곧 공허이니, 공허 속에서 존재하는 일자만이 서로 반발한다.

단순한 외면적 차이만을 지닌 현존의 경우는 서로 반발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의 규정성에서 다른 규정성으로 이행할 뿐이다. 생명체 역시 반발하지 않는다. 생명체는 타자 관계 속에서 자기를 유지하는 것(생명의 자기 재생산)이니 여기서도 공허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질량을 지닌 것들이 공허 속에서 관계하는 물리적 공간에서만 반발이 출현한다.

4)

반발의 관계는 표면적으로 보면 마치 당구공이 충돌하는 것처럼 공간 이동의 모습으로만 보인다. 그러나 사실 이 반발의 관계는 대자 존재를 매개로 하므로 심층적 관계다. 자기 부정을 통해 자기 내로 복귀하면서 대자 존재가 되며, 이 대자 존재는 자기를 산출하면서 다른 일자가 되고 이 다른 일자와 일자는 서로 충돌하니, 서로 반발하게 된다.

이제 헤겔은 공허 속에서 일자들이 서로 반발하는 관계를 서술하는데, 이 과정은 마침내 상호 견인의 관계로 전환하게 된다. 반발에서 견인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헤겔은 드라마틱하게 그려내니, 이제 아래에 그 드라마의 개요를 정리해 보자.

① 일자들은 외면적 차이를 지니지만, 서로 똑같은 일자다.

② 일자는 다른 일자를 부정하면서 다른 일자는 부정된 존재가 된다. 즉 자기 내로 복귀하면서 관념적인 대자 존재가 된다. 여기서 대자 존재가 된다는 것은 부정된다는 것이 부정되는 것에 해당한다. 다른 일자의 자기 복귀는 일자를 부정함으로써 촉발된 것이다.

③ 다른 일자가 자기 내로 복귀하는 것과 동시에 일자 역시 자기 내로 복귀하여 대자 존재가 된다. 왜냐하면, 일자의 다른 일자에 대한 부정과 동시에 다른 일자의 일자에 대한 부정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일자의 자기 복귀는 다른 일자를 부정함으로써 촉발된 것이다.

④ 이 타자에 의해 촉발된 자기 부정은 사실 자기가 타자에 대해 부정하는 것을 통해 매개된 것이니, 이 타자에 의한 자기 부정은 자기에 의한 자기 부정이다.

⑤ 상호 반발을 통해 각자가 자기 대자 존재로 되지만, 이 대자 존재는 양자에게 같은 것이니, 양자는 서로 합일하게 된다. 상호 반발이 결국 상호 견인으로 전환한다.

“반발은 그 자체로 보아서 곧 관계다. 일자들을 배제하는 일자는 그런 일자들에 관계하는데, 그것을 자기로 여기면서 관계한다. 일자의 상호 부정적 태도는 따라서 자기와 합일하는 것이다. 반발이 이행하는 동일성은 상이성과 외면성의 지양이다. 그런 상이성과 외면성은 일자들을 상호 대립적으로 배제하는 것으로서 주장한다고 말해지던 것이다.”(논리학 재판, GW21, S. 160)

당구공이 서로 부딪히면서 자기 자리로 되돌아오는 모습을 그려 보면, 헤겔이 서술한 반발의 드라마가 눈에 선하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차라리 형제의 갈등을 보자. 형제의 갈등은 사실 아주 우연적인 것에 일어난다. 남들이 보기에 그 우연성 때문에 싸울 이유는 없다. 그러나 형제에게 그 우연적인 것이 갈등의 요인이 되는 것은 그 형제가 사실 같은 어머니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우연성은 단순한 우연성이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을 의미하는 징표가 된다. 그것을 부정당한다는 것은 곧 자기의 존재 자체를 잃어버리는 것으로 되니, 이 우연성이 갈등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형제는 우연성 때문에 갈등하지만, 이런 갈등을 통해서 자신이 동일한 어머니에 의존하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 형제는 서로를 자기로 동화시키려 한다. 그래야만 자기에게서 떠난 어머니의 사랑이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되기 때문이다. 형과 아우는 이렇게 해서 서로 닮는다.

5)

일자들 사이의 반발과 견인의 드라마를 헤겔은 이렇게 요약한다. 반발을 통해 타자를 부정하지만, 이 타자의 부정이 곧 이 타자를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자기를 보존하는 것을 통해 오히려 자기를 해소한다.

“다수의 일자가 지닌 대자 존재는 그런 상호 반발을 매개로 하여 자기를 유지하는 것으로서 제시된다. 그러나 동시에 다수의 일자는 이 관념성을 반발하면서 일자를 정립하니, 타자에 대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일자가 부정적 상호 관계를 통해 자기를 유지한다는 것은 차라리 자신을 해소하는 것이다. 일자는 존재할 뿐만 아니라 상호 배제를 통해서 자기를 유지한다.”(논리학 재판, GW21, S.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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