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소설] <그대에게 가는 먼 길> 1부 – 21회|7. 철학과 대학원 (2) [이종철의 에세이 철학]
21회
7. 철학과 대학원 (2)
처음에 헤겔과 독일 관념론에 관심을 갖고 모교의 철학과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막상 들어와 보니 대학원의 일반적 분위기는 영미 분석철학이 강했다. P 교수가 이 분야의 대부였고, 과학철학을 하던 O 교수도 영미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었고,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D 교수도 미국에서 학위를 받았다. 또 다른 S 교수가 독일 보쿰 대에서 학위를 받았지만 내가 별로 관심을 두지 않은 해석학 분야였다. 그래서 독일 관념론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따로 강독 세미나를 운영해서 자기들끼리 공부했다. 나의 동기들 모두 칸트와 헤겔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졸업하는 내내 독일어 원서 강독을 많이 했다. 이런 움직임 탓인지 3학기에 올라갔을 때는 독일 철학 연구자들의 숫자도 많이 늘어서 별도로 대학원 내에 독일 철학 연구자 모임을 만들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 모임은 만들자마자 바로 해산되는 비운을 경험했다. 사건의 발단은 그 모임을 만들고 나서 뒷풀이로 술을 마시던 자리에서 나왔다. 나는 그때 동생이 일으킨 사고처리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 나중에 다른 참석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본 사정은 이렇다.
“김 봉한이 너무 독선적이지 않아요? 저 혼자 독일 철학을 다 하는 양 하는 게 좀 눈에 거슬리네요.”
“그 친구 독선은 하루 이틀 된 것도 아닌데 뭘 그래.”
“그래도 이제는 원팀을 만들어서 함께 공부하려는 마당에 혼자서 독불장군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보기 좋지 않죠.”
“하긴 그래. 하지만 그걸 어떻게 해? 그만하라고 일일이 막을 수도 없고.” 이 친구는 대학 2학년 때부터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옆에 끼고 살았다. 3학년이 되어서는 칸트에 관한 학술 논문을 써서 대학 신문에서 수여하는 학술 논문상도 수상해서 나름 지명도가 높았다.
“아무튼 나는 그런 모습 못 봅니다. 자꾸 멋대로 행동하면 내가 그만두는 수밖에 없지요.”
“내가 한번 잘 이야기를 해보지. 아무래도 전체의 분위기가 중요하니까,” 그나마 그와 친한 선배의 말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다음 날 그 친구 귀에 들어간 것이다. 그는 당장 화를 내면서 자기는 연구회 모임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이제 막 시작한 모임이 제대로 꽃도 피우지 못하고 해산될 지경에 이른 것이다. 모임을 깨고 싶지 않았던 내가 그를 따로 만나서 설득해보기로 했다.
내가 술자리에 참석 못한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당시 나의 누이가 동부 이촌동에서 기사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서 비슷한 식당을 하는 친구가 너무 심하게 호객행위를 해서 나의 막내 동생과 물리적 충돌을 빚었다. 덩치는 훨씬 큰 친구가 운동을 했던 막내 동생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사촌 형이라고 하는 브로커를 내세워 당시로는 거금이라 할 수 있는 5백만 원을 합의금 조로 요구한 것이다. 만약 합의를 해주지 않을 경우 막내 동생은 구속을 면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내가 그를 직접 병원으로 찾아가서 호소를 해봤다.
“몸은 좀 어떠세요?” 그는 찾아간 나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링게르 주사를 꼿고 병상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니까 생각보다 심하지 않아 보였다.
“사촌 형과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물론 때린 제 동생이 많이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서로 매일 같이 얼굴을 맞대고 있는 사람들끼리 너무 무리하게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요? 다들 하루 벌어 하루살이 하는 형편을 잘 아시잖아요.”
내가 여러 말을 하면서 합리적으로 풀어 보려고 했지만 그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요지부동이었다. 브로커 삼촌이 일체 말을 하지 말라고 단단히 언질을 준 것 같았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주먹 몇 번 날린 것에 대한 댓가로 5백만 원을 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날 오후 교내 평화의 집에서 김봉한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독일 철학 연구자 모임의 해체를 막기 위해서였다. 깨는 것은 쉽지만 다시 만들려고 하면은 훨씬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먼저 내가 운을 띄웠다.
“오늘 제 동생이 주먹을 잘 못 놀려서 적지 않은 돈을 물어주게 되었어요. 그 친구한테 사정 사정을 해봤지만 요지부동이네요. 한 마디로 말문이 꽉 막힌 사람이더군요. 살아가는 방식이 틀려서 그런지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아요.” 그래도 우리는 함께 공부하는 연구자들이니까 그런 사람들하고는 다르지 않냐고 은근히 넘겨짚은 것이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단호했다.
“함께 공부하자고 하면서 뒷다마 치는 인간들하고 어떻게 공부해요? 오늘 아침 그 소리를 듣고 정말 화가 많이 났습니다.” 가뜩이나 외골수인데 그런 소리까지 들었으니 더 말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한마디 더 했다.
“만약 우리가 이 모임을 깬다고 하면 앞으로 다시는 이런 모임을 구성할 수 없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나요? 대를 위해서 한 번쯤 이해해보면 어떨까요?” 하지만 그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그렇게 할 수 없소.” 그걸로 끝이었다. 그냥 결별인 것이다.
이 친구의 고집과 뚝심은 참으로 대단했다. 나중에 그가 모 재벌을 상대로 시위하는 장면을 보고 그때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그는 내가 대학원을 그만두려 했을 때 나에게 함께 일을 해보자고 제안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 잃은 신뢰 때문에 내가 거절하고 말았다. 독일 철학 연구자 모임은 만들자마자 바로 해산되었고, 다시는 만들지 못했다. 그 이후 나는 더 이상 Y대 내에서 그런 모임을 진행하지 않았다. 대신 대학 밖으로 나가서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타 대학 대학원생들하고 세미나를 했다.
이종철(철학박사)은 『철학과 비판』(도서출판 수류화개)과 『일상이 철학이다』(모시는 사람들) 그리고 『문명의 위기를 넘어』(공저, 학지원)를 썼다. 그는 『헤겔의 정신현상학』(J. Hyppolite, 1권 공역/2권, 문예출판사), 『사회적 존재론』(G, Lukacs, 2권/4권(공역), 아카넷), 『나의 노년의 기록들』(A, Einstein, 커큐니케이션스북스)등 다수의 번역서들을 냈다. 현재는 연세대 인문학 연구소 전문 연구원이자 인터넷 신문 ‘브레이크뉴스’와 ‘내외신문’의 칼럼리스트로 활동하면서 NGO 환경단체인‘푸른 아시아’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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