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소설] <그대에게 가는 먼 길> 1부 – 16회|6. 다시 강의실로 (1) [이종철의 에세이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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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회

6. 다시 강의실로 (1)

 

다시 돌아온 대학 생활은 예전과 달리 흥미진진했다. 예전에는 울며 겨자먹기로 강의를 한 면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대학 바깥의 생활을 경험하다가 돌아온 지금은 젊은 학생들에게 내 이야기를 마음대로 떠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다. 내 시간의 대부분은 1주일 12시간이나 맡은 강의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이번 학기에는 내가 기획한 <논증과 비판>이 단과대 특성화 수업 3년 기한으로 채택이 됐다. 이 수업은 ‘형식 논리학’ 강의와 달리 논증(Argumentation)과 관련한 토론 수업이었다. 지금은 교수가 일방적으로 강의하던 시대를 벗어나 학생들 간에 문제를 가지고 토론 수업 형태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덕분에 과거의 이념 서클과 달리 토론 관련 학회가 학생들의 인기를 많이 끌었다. 이 토론 서클의 몇몇 학생들은 각종 형태의 토론 대회에 출전하는 경우도 있었다. 뛰어난 학생들은 전국 대회 규모의 토론 대회에서 아예 내놓고 상금 사냥하러 다니기도 했다.

나는 일찍부터 난청으로 인해 청력이 좋지 않고, 젊은 시절 흡연도 많이 해서 목소리도 좋지 않은 편이다. 그럼에도 우수한 학생들을 끌고서 논증과 토론 그리고 비판 중심의 강의를 무려 11년이나 끌어갔다. 이 강의는 2016년 내가 몽골의 H ICT 대학으로 옮겨갈 때까지 유지하다가 다른 강사에게 넘겨주었지만 2년을 넘기지 못하고 폐강되고 말았다. 강의의 전반부는 주로 응용 논리와 논증 이론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이론 강의를 한 다음 후반부에서는 본격적으로 난상 토론을 유도했다. 이 수업을 통해 강의 교수인 나도 많이 배웠다. 논증을 특별히 좋아한 나 역시 이 수업을 통해 단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이 수업을 시작할 때 반드시 요구하는 것이 2 가지가 있다. 하나는 목소리 관련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소개서이다.

“여러분, 프리젠테이션이나 토론을 하는데 절대 필요한 것이 뭔 줄 아세요? 목소리예요. 맑고 깨끗한 목소리, 불륨이 풍부한 목소리가 중요하지요. 그래서 전문 토론가들이나 성악가들은 특별히 목소리 관련해서 훈련을 받기도 하지요. 한국의 판소리 명창들도 폭포 앞에서 목소리 훈련하는 걸 영화에서 본 적이 있지 않나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굳이 그런 곳을 갈 필요가 없어요. 그냥 나를 상대로 이야기할 때 한 톤을 높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자연스럽게 목소리 훈련을 하게 되고, 나는 여러분들의 말을 좀 더 잘 들을 수 있지요.”

토론 수업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선생은 아마도 나를 제외하고는 없을 것이다. 학생들은 나의 이런 말을 들으면 배꼽을 잡고 웃는다.

두 번째 요구사항은 자기 소개서이다. 강의 첫 째 주는 일종의 탐색 기간이라 마음에 안 들면 다른 강의로 옮겨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강좌를 유지하려면 첫 주에 학생들 비위를 맞춰 줄 필요가 있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첫 주부터 학생들에게 과제물을 요구했다. 내가 의도적으로 학생들의 수강 철회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토론 수업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너무 많으면 곤란하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20명 안쪽이 적절하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두 번째로 요구하는 과제는 3분 동안 지속되는 자기소개서다. 이것을 통해 나는 수강생의 정보와 수업에 대한 관심도를 파악할 수가 있고, 학생들에게는 이 자기소개서를 가지고 프리젠테이션을 유도함으로써 무대에 대한 공포를 없앨 수 있다. 오랫 동안 이 강좌를 이끈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 자기소개서가 절대적으로 효과가 있다. 어떤 경영학과 여학생은 이로 인해 자신이 무대 공포증을 벗어났다고 하고, 나중에 로스쿨에 합격한 다른 학생은 첫 시간의 특별한 경험으로 인해 수업 내내 흥미로웠다는 이야기도 했다.

나는 이 토론 수업에서 적절히 짝을 지어 난상 토론을 유도했다. 이런 토론은 길거리 싸움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역량과 준비를 총 동원해 싸우는 것이고, 그 결과는 내가 혼자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수업에 참석한 다른 모든 학생들의 평가 점수로 결정했다. 이렇게 토론에 임하는 학생들 자신에게 모든 문제를 일임하고 다른 학생들의 토론을 진지하게 평가를 하다 보니 학생들의 토론 역량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 점은 나만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 인정한 결과이다. 내가 수많은 강의를 맡아 보았지만 이 <논증과 비판> 수업은 나름대로 가장 보람차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종철(철학박사)은 『철학과 비판』(도서출판 수류화개)과 『일상이 철학이다』(모시는 사람들) 그리고 『문명의 위기를 넘어』(공저, 학지원)를 썼다. 그는 『헤겔의 정신현상학』(J. Hyppolite, 1권 공역/2권, 문예출판사), 『사회적 존재론』(G, Lukacs, 2권/4권(공역), 아카넷), 『나의 노년의 기록들』(A, Einstein, 커큐니케이션스북스)등 다수의 번역서들을 냈다. 현재는 연세대 인문학 연구소 전문 연구원이자 인터넷 신문 ‘브레이크뉴스’와 ‘내외신문’의 칼럼리스트로 활동하면서 NGO 환경단체인‘푸른 아시아’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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