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형이상학 산책16- 논리학과 정신현상학의 이중적 길[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16- 논리학과 정신현상학의 이중적 길
1)
과연 정신현상학의 길과 논리학의 길이 이렇게 이중적인 것인지, 헤겔의 말을 실제로 들어보자. 우선 학문 또는 논리학의 길을 살펴보자.
헤겔은 정신현상학의 서문에서 학문의 길을 설명한다. 이 학문 가운데 형식적인 학문이 곧 논리학이니(실재적인 학문은 자연철학과 정신철학이다), 이는 곧 논리학의 길을 말할 것이다. 여기서 학문의 길은 개념이 ‘자기를 타자화’하고 다시 ‘자기 내로 복귀하는’ 두 가지 운동으로 서술된다.
“존재자의 운동이란 한편으로는 자신을 타자화하면서 그 자신 속에 내재하는 내용으로 되며 또 다른 편에서는 그와 같이 전개된 것, 또는 그의[그렇게 전개된] 현존을 자기 내로 복귀하게 하며”(정신현상학, 38쪽)
‘자신의 타자화’는 자기를 규정하여 구체적 술어가 출현하는 과정이며 ‘자기 내 복귀’는 개별 주어의 근거가 되는 일반적 술어가 출현하는 과정이다.
‘자기를 타자화’하는 운동과 ‘자기 내로 복귀’하는 운동은 교대로 일어나는 운동이라든가, 서로 독립하는 운동으로 파악하면 안 된다. 오히려 자기를 ‘타자화하는 운동’이 곧 ‘자기 내로 복귀하는 운동’이다.
논리학의 길이 이중적이라는 사실은 헤겔이 논리학의 시원을 다루는 데서도 동시에 등장한다. 앞에서 논리학의 길이 하강하는 길, 자기를 규정하며, 자기를 타자화하는 길이라는 것을 설명한 적이 있다.
“시원을 이루는 것에서부터 나가는 진행 과정은 시원을 이루는 것을 더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것으로서만 고찰될 수 있을 것이다.”(논리학2판, 48쪽)
그러나 동시에 헤겔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한다.
“철학(학문을 말한다, 그중 형식적 학문이 논리학이다)에서 앞으로 나간다는 것은 오히려 뒤로 되돌아간다는 것이고 근거를 찾는 것이다.”(논리학2판, 57쪽)
여기서 헤겔은 논리학이 타자화에 못지않게 일반적인 근거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논리학의 길도 이중적이다. 한편으로 그것은 자기를 구체화, 타자화하며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자기를 일반화하며, 근거로 복귀한다.
2)
그렇다면 정신현상학의 길은 어떠한가? 이미 앞에서 언급했지만, 헤겔은 정신현상학의 길을 의식경험의 길이라고 하면서 이를 소개한 다음 마침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이미 인용했지만 다시 한번 들여다보자.
“이상과 같이 의식은 자기의 진정한 실존을 향하여 끊임없이 육박하면서 최종적 지점에 도달한다. 또 다른 말로 하면 이 지점에서 마침내 의식의 현상은 그 본질과 동일하게 되며, 이로써 의식에 관한 서술은 또한 정신에 관한 고유한 학문이 성립하는 바로 그 지점과 합일된다.”(정신현상학, 61-.62쪽)
즉 의식은 점차 자신을 확장하여, 대상과 합일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정신현상학은 대상과 대립하는 직접지에서 나아가 마침내 의식과 대상의 통일인 순수지에 이른다. 이 과정은 곧 근거로 복귀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 정신현상학의 길은 자기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타자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 사실은 정신현상학의 출발점을 이루는 직접지와 그 최종적 도달점인 순수지를 서로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직접지란 감각적 확신이며, 여기서 어떤 구별도 존재하지 않으며 심지어 의식과 대상의 구분조차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이니, 가장 추상적인 전체라고 할 수 있다. 정신의 운동이 출발하는 지점인 감각적 확신 장의 서두에서 헤겔은 이렇게 말한다.
“감각적 확신은 가장 참다운 인식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것은 아직 대상으로부터 어떤 부분도 제거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대상의 전적으로 완전한 모습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 감각적 확신은 가장 추상적이며 또한 가장 빈곤한 진리임을 자처한다. 감각적 확신은 자기가 아는 것에 대해서 다만 ‘그것은 있다’라고만 말하니 말이다.”(정신현상학, 63쪽)
반면 순수지는 그 속에 포함된 모든 계기들을 명확하게 구분하면서 상호 필연적 연관을 맺는다. 헤겔은 정신현상학 절대지를 그려내는 마지막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신의 운동이 전개하는 계기들은 이런 운동 속에서 더 이상 의식에 나타나는 어떤 특정한 형태로 나타나지 않으며 오히려 의식이 지녔던 [인식과 대상으로의] 구별은 자아의 내부로 복귀함으로써 이들 계기들은 특정한 개념으로서 나타나고 또한 이런 개념이 자기 자체 내에 근거를 둔 채로 전개하는 유기적 운동으로서 나타날 뿐이다.”(정신현상학, 432쪽)
그러므로 직접지에서 순수지로 나가는 과정은 추상적인 전체가 점차 구체적으로 규정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직접적인 것으로부터의 일어나는 그와 같은 최초의 반성이란 곧 주체가 그 자신의 실체로부터 스스로를 구별하는 것을 의미하며, 다시 말하면 개념이 스스로를 이원화하는 가운데 순수한 나가 자체 내로 복귀하고 생성하는 것을 의미한다.”(정신현상학, 431쪽)
3)
이상에서 정신현상학과 논리학이 판단형식이 이행하는 길을 바탕에 깔고 있으며, 이 길은 이중적이어서, 정신현상학이나 논리학도 이중적인 길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다만 정신현상학이라는 책과 논리학이란 책은 그 서술의 목표가 다른 것이므로 각자가 포함한 두 가지 길 가운데 어느 길이 우선적으로 표면에 드러나는가는 달라진다.
정신현상학은 의식이 대상을 매개로 발전하는 과정을 다루는 것을 목표로 하므로, 여기서는 개별성에서 일반적 근거에로 복귀하는 과정이 자기를 규정하는 타자화의 운동에 우선한다.
반면 형식적 학문에 속하는 논리학의 경우, 자기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타자화의 길이, 근거로 복귀하는 운동에 우선하여 표면에 드러난다.
각자 이런 표면에 드러나는 것은 대립하지만, 그러나 그 이면에 각기 자신의 표면과 대립하는 운동을 포함하고 있으니, 여기서 정신현상학과 논리학은 대립과 평행이라는 복합적인 모습을 띠고 나타나게 된 것이다.
4)
이상에서 논리학과 정신현상학의 전개 과정에 관한 설명을 마쳤다. 양자는 이중적인 길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나, 그럼에도 각자 우선하는 길을 갖는다는 것이다. 논리학과 정신현상학의 진행 과정을 도표화하면, 지금까지 논의가 한 눈에 드러날 것이다.
정신현상학 | 논리학 | |
인식의 시간적인 운동 | 범주의 자기 전개(순수지 내부에서 운동) | |
표면 운동 | 개별에서 일반으로(근거로의 복귀) | 자기의 타자화(추상에서 구체) |
이면 운동 | 의식과 대상의 대립에서 통일로, 확신에서 진리로(구체화) | 존재에서 개념으로:근거로의 복귀 |
여기서 서로 교차하고 있는 두 항 즉 ‘추상에서 구체화’와 ‘확신에서 진리로’가 서로 일치하며, 또한 ‘개별에서 일반으로’가 ‘존재에서 개념으로’와 일치한다. 결국 정신현상학과 논리학은 마치 메비우스 띠처럼 서로 교차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도 정신현상학과 논리학은 같은 평면에 있는 것은 아니다. 정신현상학은 시간의 평면에 있으며, 논리학은 개념의 평면에 놓여 있고, 양자를 전체적으로 본다면, 서로 투영되고 있는 관계에 있다.
이제 논리학과 정신현상학의 시원 문제로 들어가 보자. 정신현상학은 인식의 역사적 발전을 다루므로, 그 출발점은 가장 단순한 인식인 감각적 확신이다. 이 감각적 확신은 가장 개별적이어서 인식이 사물이 마치 두 개의 구처럼 부딪히는 접점처럼 가장 개별적인 지점에서 일어난 인식이다. 그러나 동시에 감각적 확신은 가장 추상적인 인식이어서 사실 그것이 무엇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인식이다. 그 속에 이미 모든 것이 불명료한 상태로 포함된 인식이다.
직접지는 인식의 전개 과정에 비추어 본다면, 가장 먼저인 직접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그런 직접적인 인식이 출현하기까지 자연은 오랜 기간 발전해야 했다. 물체의 세계를 거쳐, 화학적인 세계, 그리고 생물의 세계가 전개된 끝에 마침내 출현한 인간 의식의 세계이니, 그런 점에서는 이미 매개된 것이다.
5)
이제 논리학의 시원을 보자. 논리학의 바탕은 곧 순수지다. 순수지에 도달하기 위해 정신이 현상학은 오랜 역사적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런 역사적 과정을 거쳐 나왔다는 점에서 그것은 매개된 것이다.
앞으로 논리학은 이 순수지의 바탕을 떠나지는 않을 것이다. 순수지의 바탕에서 움직이면서도 논리학의 출발점을 이루는 것은 모든 논리적 전개의 근거가 되는 가장 일반적인 순수지 즉 가장 추상적인 범주가 된다. 그보다 더 근거가 되는 것은 없는 최초의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그것은 직접적인 것이다. 이 가장 추상적인 범주가 곧 존재이다.
가장 추상적인 존재 범주는 모든 존재자에게 적용된다는 점에서 가장 일반적이지만. 그러나 모든 존재자의 가장 피상적인 측면에만 적용되는 범주이다. 그런 존재자들이 갖는 구체적 관계는 조금도 다룰 수 없으니, 단순히 ‘있음’에서 ‘없음’의 관계만 다룰 뿐이다.
앞에서 정신현상학과 논리학의 전개 과정에 관해 도표의 도움을 받았는데, 이제 다시 한번 시원의 문제에 관해서도 도표의 도움을 받아 보자.
정신현상학 | 논리학 | |
시원 | 감각적 확신 | 존재 |
표면 | 가장 개별적 인식 | 가장 추상적 빈약한 인식 |
이면 | 가장 구체적인 인식 | 모든 존재자에 적용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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