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형이상학 산책 4-본질에서 힘으로[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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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형이상학 산책 4-본질에서 힘으로

1)

앞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 등장하는 실체 개념을 살펴보았다. 그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실체는 자기를 통일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지속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실체는 개체를 통해서 자기를 재생산하는 가운데 지속한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진정한 실체는 개별자가 아니라 종적 본질이다. 종적 본질은 개별자를 징검다리로 해서 자기를 지속한다.

여기서 지속이란 곧 시간적 지속을 의미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 속에는 무규정성이 들어 있고 이는 시간적으로 존재를 해체하는 힘이다. 이 해체하는 힘에 대립해서 시간적으로 자기를 지속해서 존재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 곧 종적 본질이 지닌 자기를 통일하는 힘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이 시간적 지속이라는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미 짐작했겠지만, 헤겔의 형이상학의 출발점이라고 할 그의 본질[Wesen] 개념이 다름 아닌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헤겔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이고 그런 점에서 플라톤과는 대립한다.

서양철학사에서 플라톤주의의 역사는 길지 않다. 그것은 근대 초에 반짝 빛을 보았다. 서양철학사 대부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지배했다. 스콜라철학이 지배한 중세 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근대에도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셸링, 헤겔로 이어지는 흐름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부활이었다.

그럼, 이제 헤겔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정신현상학 서문 장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들여다보자.

“앞에서 표현한 대로 실체는 그 자체에서 주체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모든 내용은 자기에게 고유한 방식으로 자기 내로 반성한다. 현존이 지속성을 지니면서 실체가 되면 그것은 자기 동일성을 지닌다. 왜냐하면,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해소될 것이기 때문이다.”(정신현상학, 39쪽)

위의 구절에서 헤겔은 현존이 지속성을 지니게 되면 실체가 된다고 한다. 이런 지속성이 가능한 것은 자기 동일성 때문이다. 헤겔의 ‘자기 동일성’은 추상적 자기 동일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헤겔은 자기 동일성이 있으므로 “스스로 해소되려는 것”에 대항하여 자기를 지속할 수 있다고 했으니, 이 자기 동일성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자기를 통일하는 힘’을 말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런 자기를 통일하는 힘 때문에 헤겔은 실체는 곧 주체라고 한 것이다. 실체가 곧 주체라는 주장은 정신현상학 서문에서 핵심적인 개념인데, 위의 구절을 보면 헤겔이 얼마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잘 알 수 있다.

2)

헤겔이 이렇게 자기를 지속하는 존재로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정신현상학에서 지성 장에서 자기의식 장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헤겔은 플라톤주의를 비판하고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옹호하는 것으로 해석할 만한 여지를 보여주고 있으니, 이제 그 부분을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정신현상학에서 그 과정은 상당히 장황하므로, 이 자리에서는 상세하게 그 과정을 소개하기보다, 간단하게 정리해서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

지각 장에서 헤겔은 사물에 개별적 우연적으로 속한 성질과 필연적 일반적으로 속한 속성을 구별한다. 이어서 지성 장에서는 그 사물에 고유하게 속하는 본질을 찾으려 한다. 인식의 발전에서 소피스트에 대해 소크라테스가 비판했던 이유는 바로 소피스트가 단순한 일반적 필연성과 사물의 고유한 본질을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일반적 필연성에 불과하다. 고유한 본질, 객관적 본질을 파악하는 독자적인 인식 기관 예를 들어 본질 직관 능력과 같은 것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고유한 본질을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는가?

일반적 필연성이 각 사물에 하나뿐이라고 한다면, 쉽게 그것이 곧 고유한 본질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각 사물에는 여러 개의 일반적 필연성이 발견된다. 예를 들어 사람에 관해서 우리는 직립 보행이라는 일반성과 의식이라는 일반성을 발견할 수 있으니, 이 둘 가운데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것 즉 그 고유한 본질이 될까?

이런 난점에 부딪혀 헤겔은 우선 플라톤적 사유를 소개한다. 헤겔에 따르면 플라톤은여러 가지 일반적 필연성 가운데 이데아(고유한 본질)가 될 수 있는 것을 규정하는 것은 곧 선의 이데아라고 했다는 것이다. 즉 선의 이데아는 세계를 최선의 세계로 만든다. 그것을 위해서 각 사물은 자신의 기능을 최대한으로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최선을 위해 사물을 통일하는 것이 곧 이데아이다.

그런데 헤겔은 이런 플라톤적 사유에 반대한다. 만일 선의 이데아가 없다면, 여러 일반적 필연성 가운데 어느 것이 이데아인지를 전적으로 우연하게 결정될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사물의 고유한 본질이 우연에 맡겨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헤겔은 플라톤적 사유가 부딪힌 난점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등장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사물을 지속적으로 존립하게 하는 것이 곧 그 사물의 고유한 본질이 된다고 보았다. 그런 지속성은 사물의 통일성에서 나오는 것이니,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본질이란 곧 일반적 필연성의 상호 통일성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즉 일반적 필연성 가운데 어떤 개별적인 요소가 아니라 이런 일반적 필연성 사이의 통일적 연관이 그 사물을 지속하게 하는 본질 즉 종적 본질이 된다.

헤겔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질 개념을 수용한다. 그에게서도 마찬가지로 본질은 곧 일반적 필연성의 내적 통일이다. 이런 통일성 때문에 그것은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된다. 그런데 헤겔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질 개념을 단순하게 수용한 것이 아니라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질 개념을 미분적 차이의 개념과 연결한다.

3)

생각해 보자. 단순화를 위해 어떤 사물에 두 가지 서로 대립하는 일반적 필연성이 있다고 하자. 이 두 가지 필연성이 상호 통일을 이룬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헤겔은 그 당시 등장한 미적분학을 통해서 이 두 가지 필연성의 상호 통일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려 한다. 예를 들어 함수 Y=X²의 미분 함수는 dy/dx=½X이다. dx와 dy의 분수 관계는 대립적 관계를 의미하며, 이 미분 함수가 전개되면, 그 적분 함수는 X<0인 경우는 하강 곡선이며 X>0인 경우는 상승 곡선이 된다.

헤겔은 미분적 차이 개념을 일반화하여, 이를 ‘무제약적 일반자’라는 개념으로 수용한다. 여기서 무제약적 일반자(미분적 차이)가 자기를 전개하여 사물(적분 함수)에 이르는 과정을 헤겔은 이중적인 과정으로 설명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무제약적 일반자가가 자기를 펼치는 과정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 결과인 사물이 자기를 수축하여 무제약적 일반자에 이르는 과정이다. 이 두 과정은 매 순간 동시에 상호적으로 일어나면서 무제약자가 사물을 산출하는 운동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이 힘으로 불리는 것이다. 이 운동의 한 가지 계기 즉 자립적인 물질들이 펼쳐져서 제각기 존재하게 되는 운동은 힘의 표출이며 반대의 계기 즉 이 자립적인 계기들이 지양되어 사라지게 하는 운동은 표출에서 자기 내로 수축하는 힘이거나 또는 본래적인 힘이다.”(정신현상학, 85쪽)

두 힘은 서로 떨어져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두 힘은 상호작용하면서 얽혀있다. 헤겔은 이를 힘의 유희라고 설명한다. 두 힘의 얽힘에 관한 다음과 같은 헤겔의 표현을 보라.

“예를 들어 촉발하는 것이 일반적 매체로 정립되고 그에 반해서 촉발된 것은 수축된[ 힘으로 정립되었지만, 그러나 역시 전자[촉발하는 것]가 일반적 매체 자체가 되는 것은 오직 그에 상대되는 것이 수축된 힘이기에 가능했다. 또는 이 후자[촉발된 것]가 오히려 전자[촉발하는 것]에 대해 촉발하는 것이며 전자를 비로서 매체로 만드는 것이다. 전자[촉발하는 것, 매체]은 다만 이런 타자[수축된 힘]에 의해서만 [촉발하는 것]이라는 자신의 규정을 가지며, 타자[촉발된 것]로부터 촉발하는 것이 되도록 촉발되는 한에 있어서만 촉발하는 것일 뿐이다.”(정신현상학, 86쪽)

무제약적 일반자는 어떤 존재나 원소[Element]가 아니다. 그것은 펼쳐지는 힘과 수축하는 힘의 통일이니 비유하자면 마치 태극과 같다고 하겠다. 헤겔은 이 통일적 힘이야말로 사물의 진정한 본질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이 힘이 사물에 내재하면서 사물을 내적으로 통일하면서 사물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낸다. 이 힘이 곧 사물을 지속하게 하는 실체가 된다.

결국 헤겔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수용하면서 이를 근대의 미분적 차이라는 개념으로 전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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