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이유: 레종 데타(Raison d’État) ① [내게는 이름이 없다]
나라의 이유: 레종 데타(Raison d’État)
행길이(한철연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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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나라의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다. 올바른 나라란 무엇이고, 정의로운 나라란 어때야 하는지가 궁금했다. 이에 대해선 여전히 궁금하지만, 조금 더 알고 싶은 건 나라의 이유다. 나라가 좀 더 좋아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올바른 나라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해 묻게 되었지만, 계속 묻다 보니 ‘굳이 나라가 있어야 할까?’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찾아보니 나라 없이도 잘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의외로 많았다. 믿었던 나라에 발등 찍히는 일이 많은 요즘, 나라 없는 이들이 부러워 보이기도 한다. 그렇긴 해도 나라가 없어 설움받았던 우리와 세계 곳곳을 떠도는 난민들의 고초를 떠올리면 나라가 없어서는 안 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존재 이유를 묻고자 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근본적 물음은 새로운 길로 이끌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대답의 행로가 어디로 이어질지 알 수도 없고, 간혹 그 대답이 우리를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할 수도 있을 테지만…….
여기에 끄적이게 될 글들은 나라의 이유를 탐문하는 과정의 기록들이다. 일단 ‘나라가 생긴 이유’를 통해 ‘나라가 있어야 할 이유’나 ‘없어도 될 이유’를 짐작해 보고자 한다. ‘올바른 국가란 무엇인가’라든가 ‘국가의 목적은 무엇인가’ 등과 같은 거창한 물음에 대한 답은 우선 미뤄두기로 한다. 그런 얘기라면 이미 빛나는 지혜를 지닌 수많은 사람들이, 너무도 일찌감치, 참으로 훌륭하게 풀어 놓았다. 여기서는 그저 내가 이곳 저곳에서 보고 들었던 나라에 대한 이야기들을 헐렁하게 늘어놓고자 한다. 누구에게는 전인미답의 이야기들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뒤늦은 담론일 수도 있다. 후자라면 비판적 가르침을 부탁드린다.
여기 써 내려 간 모든 이야기는 작은 조각들로 구성되어 있다. 각 파편들의 이야기는 독립되어 있는 동시에 서로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때로는 사료나 민족지적 자료에서 뽑아낸 이야기를 쓰기도 하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추정과 상상을 길잡이로 삼아 자료의 공백을 채워보기도 할 것이다. 근거 없는 허무맹랑한 얘기가 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앞으로의 이야기는 눈동자가 발가락에 붙고, 머리와 꼬리가 구분되지 않으며, 상상이 근거를 압도하는 터무니 없고도 어처구니 없는 형세로 전개될 수도 있다.
감히 이 글을 읽는 독자의 태도에 대해 첨언한다면, 눈썹의 힘은 풀고, 비스듬히 누운 채, 곁눈질로 읽는 것이다. 읽다가 지겨우면 저만치 치워뒀다가 다시 읽어도 무방하며, 재미 없으면 슬쩍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도 좋다. 뒤에서부터 읽어도 되고 중간부터 읽어도 상관 없다. 어차피 모든 이야기는 나라가 있게 된 이유와 없어도 될 이유에 관해서이거나, 지금은 없으나 어쩌면 있었을지도 몰랐던 나라에 관한 이야기들로 대략 흘러들어갈 것이다. 흘려 듣다가 문득 비판적 눈길을 던져준다면 더욱 감사하겠다. 나라 없던 시절, 족장의 말을 공공연히 흘려들으며 그들의 위세를 견제했던 부족민들처럼(이 얘기가 궁금하면 계속 읽어 주세요. ㅎㅎ).
마지막까지 읽어도 나라의 존재 이유에 대한 이렇다 할 답은 아마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나라에 관해 늘어 논 여러 가지 이유들로 머리만 복잡해 질지도 모르겠다. 나라에 살 이유, 나라에 안 살 이유, 나라가 생긴 이유, 나라가 없어진 이유, 나라가 있어야 할 이유, 나라를 없애야 할 이유, 나라 없어도 잘 살 수 있는 이유, 나라 안에서 나라 없는 듯이 살아도 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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