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미학산책8-예술과 노동[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산책8-예술과 노동
1)
예술은 유사성을 매개로 하여 이념을 표현하므로, 예술은 물질적 자연의 모습을 이념을 통해 순화시킨다. 이념과 유사한 모습을 물질 속에 표현하는 가운데 물질이 지닌 우연적이고 개별적인 측면이 사상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헤겔은 호머가 아킬레우스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다만 높은 이마, 잘 생긴 코, 길고 강한 정강이만 언급하고 나머지는 일체 생략했다고 말한다. 또한 이 점과 관련해 헤겔은 흥미롭게도 고대 의상의 장점을 논한다.
현대 배우들이 입고 있는 신사복은 미리 재단되어 있어서 오히려 정신이 그것을 통해 이념을 표현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반면 통으로 이루어진 고대 의상은 정신에 따른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 자연스럽게 주름이 이루어지니, 오히려 이념을 표현할 가능성이 더 많아진다.
2)
예술은 이념의 이중화인데, 이 점에서 노동의 산물과 유사성을 갖는다. 노동 역시 대상 속에 자기의 형식을 부여하는 형성화이기 때문이다. 예술이 기술[kunst: art]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예술과 노동 사이의 유사성을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예술과 노동의 근본적으로 구분된다. 노동은 대상에 인간적인 형식을 부여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자연적 물질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에 적합한 산물로 변화된다. 이런 형식부여는 물질 자체를 구조적으로 개조하는 운동이다.
반면 예술은 비록 노동이지만 그것은 다만 이념의 어떤 성격을 대상에 외면적 형식으로 부여하는 것에 불과하다. 여기서 물질 자체는 이런 형식이 부여되는 지반으로서 역할만 담당한다. 이런 이중화는 마치 얼굴이 감정을 표현하는 것과 같다. 얼굴의 찡그림이 고통을 표현한다고 할 때 신체 자체의 물질성이 개조될 필요는 없다. 다만 얼굴에 찡그림의 표정만을 외면적 형식으로 부가하면 된다. 마찬가지로 신상을 나무에 표현할 때, 나무 자체를 신적인 것으로 개조할 필요는 없으며, 나무의 물질적 성격에 대해 외면적인 형식으로 신의 모습을 부가하면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예술은 관념화하는 노동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관념화하는 노동은 이념의 형식이 물질에 외면적으로 부여되므로, 여기서 예술은 물질 자체를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넘어서서 관념화된 물질을 수단으로 이용하게 된다. 특히 낭만주의 예술 장르에 속하는 미술이나 음악은 순수 색이나 절대 음과 같은 자연적 물질로부터 추상된 관념화된 물질을 사용하며, 이는 문학에 이르러 관념 자체가 예술적 수단이 되는 데서 정점에 이른다.
3)
더구나 예술은 이념을 표현하기 위해 독자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그것은 현실 자체의 모방이 아니라 다만 현실과 동일한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방식이다. 그것은 실제 사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환상을 창조하는 방식이다. 백남준의 말대로 예술은 본질적으로 사기(환상)이다.
그런 환상을 창조하는 방식은 색채와 음과 같은 예술적 수단을 축조하는 방식이다. 그림이 포도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을 만들어낼 때, 헤겔은 이미 미술가가 색채의 대비를 통해 그런 반짝이는 모습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음악이 슬픔을 불러 일으킬 때 어느 작곡가도 인간이 우는 울음을 그대로 모방하지 않는다. 음악은 슬픔을 음조를 통해 표현할 뿐이다.
예술적 노동은 관념화된 노동이므로 예술이 유사성에 의해 매개된다고 하더라도 이런 유사성은 본질적인 유사성은 아니고 외면적 유사성에 머무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예술이 아무리 이념에 가까이 다가가더라도 근본적으로 기호적 성격을 벗어날 수는 없다. 즉 예술은 이념의 이중화에도 불구하고 이념과 예술은 완전히 합치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예술은 자립적인 물체로서 이념과 구분되는 독자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4)
예술의 노동이 관념화하는 노동이라는 점에서 장점과 한계를 가진다. 한계라면 예술은 역시 이념을 표현하는 데서 관념적으로만 표현하므로 그것은 결국 환상에 머무른다. 미술이 아무리 맛있는 사과를 그리더라도, 그 사과를 우리가 먹을 수는 없다.
칸트는 심미적인 쾌감을 욕망의 쾌감으로부터 구분했다. 대상의 물질성이 아니라 대상의 형식에 관한 관심에서 즉 심미적 관점에서 대상을 바라볼 때 생겨나는 쾌감이 곧 미적인 쾌감이다. 헤겔 역시 예술작품에서 얻어지는 쾌감은 욕망의 쾌감과 구분된다고 하는데, 그것은 예술적 노동이 곧 관념적 노동에 머무르기 때문에 예술작품으로서는 욕망의 쾌감을 충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점이라면 예술은 물질을 이용해 힘들이지 않고 쉽고 유순하게 정신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포도의 반짝이는 모습을 실제로 만들자고 한다면 아무도 자연을 따라갈 수는 없다. 하지만 미술가는 색채의 대비를 통해 아주 쉽게 그런 모습을 만들어낸다.
더구나 예술은 자연적으로는 곧 사라지고 마는 것조차 이런 관념적인 노동을 통해 영원히 보존한다. 헤겔에 따르면 “살짝 비치다만 미소, 입가에 스치는 비웃음, 시선, 언뜻 어리는 빛”[1]조차 예술은 영원히 보존한다.
[1] 헤겔, 미학강의 1, 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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