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미학산책9-예술과 시대[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산책9-예술과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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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관련해 흥미로운 문제는 예술과 시대 사이의 관계이다. 필자는 역사를 좋아해 TV 사극은 대체로 빼놓지 않고 보는데, 요즈음 사극은 시간과 장소는 과거이지만 인물의 생각과 행위는 현대인의 모습이라서, 가끔 웃음을 자아낸다. 주인공이 조선 시대 옷을 입고 말을 쓰면서 로미오와 줄리엣 식의 사랑을 전개하는 것 같아서이다. 이런 팩션[faction] 사극이 발전해서 요즈음엔 인물이 옛날과 현대를 타임머신을 타고 오가는 표전[fusion] 사극이 등장했다.
필자가 좋아하는 사극은 그 시대 인물의 정신적 고투와 삶의 결단을 그 시대로 돌아가 보여주는 말하자면 정통 사극이다. 그런 정통 사극으로서 필자가 아직도 기억하는 사극으로는 지금 이름도 잊었지만 한명회가 나와서 ‘내 손안에 있소이다’하고 호방하게 웃던 사극이다. 거기서 주인공 수양대군은 조카에 대한 의리와 권력에 대한 야심 사이에 오랫동안 흔들리는 데, 필자는 그것이 수양대군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가족적 의리와 권력에 대한 야심 사이의 충돌이 조선 시대 한 영웅의 정신적 고투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인가 의심스럽다. 그런 충돌은 그리스 시대 비극 예를 들어 안티고네 등에서 주로 나타나는 것이다. 안티고네에서는 가족의 의리를 지키려는 안티고네와 국가의 법을 지키려는 클레온이 충돌한다.
그런데 조선시대를 그리스 시대와 같이 볼 수 있을까? 조선 시대는 이미 고대 민족국가가 아니라 점차 왕권이 강화되어 가는 과정에 있던 중세 국가가 아닌가? 왕은 예를 들어 형제의 난에서 승리한 태종에게서 보듯이 더 이상 가족적 의리 같은 것에 매달리지 않는다. 수양대군의 진짜 모습은 어쩌면 가족적 의리는 그저 입에 발린 말이고 권력에 대한 야심만이 온통 지배했던 것이 아닐까? 그러니 필자가 정통 사극이라고 본 것도 엄밀하게는 현대화된 팩션에 더 가깝다고 하겠다.
대체 정통 사극이란 게 가능한가 자체가 의심스럽다. 설혹 그런 정통 사극이 있어 과거의 인물이 과거의 정신 속에서 살아간다면, 그 모습 또한 우리 현대인이 보기에는 우스꽝스러울 수 있을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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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과 관련하여 헤겔은 세계 상태를 논하면서 시대와 예술과의 관계를 설명한다. 여기서 헤겔은 먼저 작품의 구체적 구조(즉 이상의 규정성)를 이루는 요소를 탐구하는데 그는 그 구조는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그 요소는 세 가지 즉 세계 상태, 상황, 행위이다.
세계 상태란 예술 작품이 그 속에서 작성되고 전달되는 세계 즉 그 시대를 의미한다. 헤겔에서 모든 작품은 자기가 속한 세계 상태 속에 내재하는 고유한 정신(이념)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어서 헤겔은 상황을 다루는데, 세계 상태가 전체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상황은 작품의 소재가 전개되는 특수한 장소를 말한다. 세계 상태 속에는 이념의 내적 통일성의 측면이 부각된다면 상황에 이르면, 이념의 분열이 출현한다. 여기서 특수한 상황과 보편적 세계 상황의 대립은 그 상황 속에 처한 인물과 인물 사이의 대립으로 발전하면서 마침내 충돌[1]로 나가게 된다. 마지막은 곧 행동이다. 인물의 행동은 상황에서 출현한 분열과 대립을 촉발하여 충돌로 나가게 하는 계기를 말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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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헤겔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세계 상태와 작품의 관계이다. 많은 경우 예술은 그 시대에서 소재를 끌어내지만 자주 예술은 역사 속에서 소재를 끌어낸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는데, 헤겔은 그것이 예술의 필연적 속성 때문이라고 본다.
즉 예술은 이념을 표현하기 위해 구체적 감각적 형상을 순화해야 한다. 현실 속에서 소재를 택하는 경우 작가나 독자의 마음에 실제의 구체적 모습이 사라지지 않아, 오히려 그 속에 표현된 이념을 방해한다. 반면 역사 속의 주제에서는 오랜 시간의 망각작용으로 구체적인 실제 모습이 이미 사라지고 중요한 특징적인 모습만이 남아서 이념을 뚜렷하게 표현할 수 있다.[3]
과거 속에서 소재를 끌어내면, 여기서 과거와 현재 사이에 충돌이 벌어지게 된다. 헤겔은 이런 충돌을 덕에 관한 두 가지 개념 ‘탁월성[arête]’과 ‘도덕[virtue]’의 구별이나, 고대인의 책임과 근대인의 책임 개념을 비교하면서 잘 보여준다.
고대 영웅 시대의 덕 탁월성[arête]은 경향성과 도덕의 직접적인 통일성이다. 여기서 개인의 욕망은 직접적으로 인륜적 법칙과 결합되어 있다. 거꾸로 말하자면 아직 개인은 자기를 자각하여 인륜적 법칙을 의심하거나 부정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고대 헤라클레스와 같은 영웅에게 나타나는 덕이 바로 이런 덕이다.
반면 인격이 출현한 중세 사법 시대 도덕[virtue]은 경향성을 억압하면서 추상적인 도덕법칙을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이 추상적 도덕법칙은 황제에 의해 결정되어 개인에게 강요된 것이니, 개인의 인격적 존재는 자신의 자의를 전적으로 희생하고 이 도덕법칙을 따를 수밖에 없다. 아니면 그는 자신이 모시는 군주로부터 이탈하여 다른 군주의 지배 아래 들어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엘 시드라는 중세 서사시에서 등장하는 영웅의 모습이 그와 같다.
헤겔은 덕의 개념 외에 죄의식과 책임의 개념도 거론한다. 근대인의 경우 그의 책임은 자신이 직접 행위 한 결과에 제한된다. 그러므로 무지로 인해 일어난 행위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하지만 고대인의 경우, 예를 들어 비극 오이디푸스에서 나오듯이 자신이 모르고 행위 한 것에 대해서도 그는 죄의식을 느끼고 책임을 지게 된다. 왜냐하면 근대인은 개인으로 자각하면서 자신을 사회와 구분하는 반면 고대인의 경우, 아직 개인적 자각이 없어 개인은 사회 즉 인륜적 실체와 직접적으로 통일되어 있어서 그가 직접 행위 한 것이 아니더라도 인륜적 실체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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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세계 상태, 시대에 따라 작품 속 인물의 행위를 규정하는 정신적 태도가 달라지니, 앞에서 말한 것처럼 예술가가 과거 속에서 소재를 구하려는 것은 극복하기 어려운 곤란에 부딪힌다. 한편으로는 과거의 인물을 현재적으로 해석하거나 다른 편에는 과거의 인물을 과거적으로 해석할 결과 현재의 독자에게 이해되지 않게 된다.
헤겔은 관객, 독자의 역할을 논의하면서, 과거 속의 소재를 현재적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주관적 작가와 이를 오히려 과거의 관점에 충실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객관적 작가 사이의 논쟁을 소개한다.
전자의 대표적 예는 라신느이다. 헤겔은 예를 들어 <타울리스의 이피게니아>에서 보듯이 라신느가 역사적 인물을 당대 프랑스의 인물로 그려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슐레겔은 과거에 가능한 한 충실하게 묘사하기를 요구했다.
그렇다고 과거에서 소재를 구하는 것이 주는 장점도 있으니 쉽게 포기할 것도 아니다. 이런 어려움에 부딪혀 헤겔은 그 시대를 주객관적으로 고찰해야 한다고 본다. 헤겔의 말 자체는 약간 얼버무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술에 대한 그의 기본 개념을 이해한다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시대 즉 세계 상태는 이념이 드러난 것이다. 각 시대에는 고유한 이념이 있지만, 이미 그 이전 시대에도 다가오는 시대의 이념이 내재하며, 또 그 이후의 시대에도 과거 시대 이념이 한 계기로 보존되어 있다. 예를 들어 헤겔 <법철학>에 나오는 가족과 국가 사이의 관계를 보자. 가족 속에 출현한 자식 세대는 가족적 공동체를 벗어나 국가를 구성하는 시민으로 발전한다. 또한 오늘날 국가 속에는 국가를 구성하는 하나의 계기로 포함되어 있다.
이전 시기에 내재하면서 동시에 이후 시기에 포함되는 독특한 발전 과정은 이념의 역사에서도 적용된다. 그런 한 현재의 예술이 과거 시대에서 소재를 구하더라도 그 소재가 현재의 이념을 적어도 가능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문제가 없다. 또는 현재의 소재 속에서 과거 시대의 이념을 표현하는 것도 가능하다. 왜냐하면 현재 속에 과거는 한 계기로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재든 과거든 자신이 표현하는 이념에 적합한 소재를 찾아내는 것에 있다. 여기서 소재에서 표현되는 이념의 측면 말고 나머지 외면적인 측면에서는 그 시대의 외면적 특징을 제대로 살리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외면적 측면은 헤겔 말대로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측면이며, 중요한 것은 선택된 과거의 소재 속에 현재의 이념이 표현될 가능성이 있는가에 있을 것이다.[4]
5)
헤겔은 이와 같은 의미에서 성공적인 작품으로서 괴테의 이피게니아를 들고 있다. 여기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타우리스의 바닷가 신전에서 어쩔 수 없이 머물고 있는 누이를 그리스로 데려오너라. 그러면 저주가 풀리리라”(헤겔, 미학강의 1, 311에서 재인용)
헤겔은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한다. 원래 에우리피데스의 희극에서 이피게니아는 자신이 봉사하던 신전의 아르테미스 신상을 자신의 조국으로 가지고 돌아가서 저주에 걸린 조국을 구원한다. 그러나 괴테는 조국에서 희생된 이피게니아가 다시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 자체가 저주를 푸는 것으로 해석했는데, 괴테는 이피게니아를 통해 자기 희생이라는 순수한 사랑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는 기독교적 이념을 표현하려 했기 때문이다.
[1] 헤겔은 충돌의 구체적 방식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는 그 자체로서 부정적인 것 예를 들어 역병이나 액운과 같은 것이다. 둘째는 그 자체로는 부정적인 것이 아닌 자연적인 것이 대립과 분열을 이끌어가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형제나 인종의 차이가 일으키는 대립, 갈등이다.
셋째는 인륜적 실체, 즉 사회 내에 내재하는 대립과 갈등이 표현되는 경우이다. 비극 안티고네에서 혈연의 법칙과 국가의 법칙의 대립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2] 헤겔은 여기서 특히 파토스와 성격을 구분한다. 파토스는 인물을 움직이게 하는 실체적 힘을 말한다. 반면 성격은 그런 인물이 가지고 있는 개별성이다. 한 인물은 다양한 개별성을 지니며, 실체적 힘은 그 가운데 하나의 지배적 개별성에서 출현한다. 파토스는 동시에 다른 모든 개별성을 침투하면서 전체적인 통일성을 형성하여 하나의 성격을 이룬다. 따라서 성격은 다면성을 지니며, 그 내부에 서로 알력이 존재한다. 하지만 하나의 성격은 파토스를 통해 전체적인 통일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헤겔은 성격은 “내적으로 완결된 주체”라고 하며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성격의 특수성에서는 하나의 주요 측면이 지배적 측면으로 나타나야 하지만, 그 규성성 내부에는 가득한 생명성과 내실이 보존되어 있어야 한다.”(헤겔, 미학강의 1, 323쪽)
이런 점에서 헤겔은 “모든 힘들을 내면에 고요히 숨기는 강인한 중립성을 표현하는’”조각의 적막과 침묵”이 성격의 다면성과 통일성을 잘 보여준다고 한다.
예를 들어 호머의 아킬레스는 여러 성격적 요인을 지닌다. 청년으로서 열정과 활기, 파트로클로스에 대한 애정, 적에 대한 복수심, 명예를 지키려는 분노, 노인을 존경하는 마음 등이 복합되어 있다. 아킬레스의 파토스는 폴리스에 대한 충실성인데, 이는 주로 청년으로서의 열정과 활기에서 나타난다. 이 파토스는 아킬레스의 다른 성격적 요인을 침투하면서 아킬레스라는 성격을 이룬다.
[3] 헤겔은 이점을 아래와 같이 말한다. “과거는 오로지 기억에 속하며 기억은 그 스스로가 이미 성격, 사건, 그리고 행위들을 보편성이라는 예복으로 즉 특수하고 외적이며 우연적인 특칭성들을 내비치지 않는 예복으로 감싼다.”(헤겔, 미학강의 1, 258쪽)
[4] 헤겔의 다음과 같은 표현에 주목하다. “역사적 외면은 인간적 보편적 요소에 견주어 대수롭지 않은 부수물로 치부되어 묘사에서 한 구석에 있어야만 한다. 이미 중세가 그런 식의 실례이니 중세는 소재를 고대에서 취하되 자신의 시대의 내용을 주입했다.”(헤겔, 미학강의 1, 371족)
또한 다음의 구절도 참조하라. ”동시에 예술가는 이러한 모습들[먼 지방, 지나간 시대 낯선 민족들로부터 얻거나 신화 관습 제도의 역사적 모습]을 다만 그의 그림의 틀로서만 이용해야 하며 반면 그 속은 그의 현재의 본질적이며 한층 깊은 의식에 맞추어야만 하니, 괴테의 이피게니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를 위한 매우 놀랄 만한 실례가 되고 있다.”(헤겔, 미학강의 1, 3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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