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퍼와 정신분석 7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 비평]
호퍼와 정신분석 7
1)
앞에서 언급한 서로 대조되는 두 그림은 당시 호퍼의 관음증과 노출증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의 나르시시즘과 더불어 상상적 동일화의 증상이다. 호퍼에게서 등장하는 관음증과 노출증은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지만 항상 그림의 모델은 조로 보인다.
물론 조와 다른 인상을 주는 여성도 있지만, 사실 그런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모두가 조라고 해도, 그 의미는 다르다. 여성은 실제 조가 아니라 호퍼의 어머니이거나, 호퍼 자신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선 아래 그림을 보자.
결혼하기 전 1921년 그려진 또 하나의 그림을 보자. 역시 방안에 있는 여성이다. 그녀는 창가에 있기는 하지만 창 밖을 바라보지는 않는다. 그녀는 재봉틀에 몰두하고 있다. 그녀는 붉은 벽을 배경으로 옆모습으로 관찰되고 있다. 붉은 색 바탕에 흰색과 노란색이 섞여 전체적으로 따뜻한 느낌이 든다. 그녀는 긴 머리와 눈부신 흰 속옷을 입고 있다. 왼쪽에 화장대가 보이는데, 화장대의 크기가 압도적으로 크다.
일에 몰두하거나 책을 읽거나 아니면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은 자기 내에 되돌아가 완결된 안정적인 모습이다. 그녀가 란제리 차림으로 있다는 것은 지금 호퍼가 숨어서 그녀를 훔쳐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화장대의 거대한 크기를 생각해 보면 역시 팔루스적인 것으로 보이는데, 그림 안에 반쯤 들어와 있다. 그림의 시선은 관음증적이지만 노골적이거나 자각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니 마치 아이가 어머니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아이는 일에 몰두한 어머니가 자신을 보아주기를 갈망한다.
1921년 뉴욕 실내라는 작품이다. 드레스를 입고 있는 그녀는 검은 방문을 배경으로 등을 돌리고 있다. 손 동작을 보건대 아마도 드레스를 꿰메는 것으로 보이는데, 누군가 뒤에서 그녀를 훔쳐보고 있다. 아직 결혼 전이니 아내 조의 모습은 아니다. 힌트는 앞에 걸려 있는 반쯤 만 보이는 희미한 사진에 있을 것 같다. 그 사진 속의 인물을 정확하게는 알아볼 수는 없지만 남자의 얼굴이다. 사진 속의 남자는 드레스를 입은 여성을 바라본다. 호퍼의 관음증적 시선을 잘 보여주는 그림으로 보인다.
2)
이어서 같은 해 그려진 에칭화를 보자.
제목이 ‘저녁의 바람’이다. 여성의 신체 모습이나 머리칼의 모습은 결혼 전인데도 조와 닮았다. 결혼 전이니 조를 모델로 하기보다, 호퍼가 늘 마음 속에 품은 여성의 모습이다. 긴 머리칼과 약간 작은 키, 약간 마른 살집, 이 특징은 결국 호퍼 자신의 어머니의 모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저녁이니 햇빛은 없다. 창문 밖은 이미 약간 어두울 텐데, 호퍼는 이 부분을 생략하여 마치 환한 그러나 달빛처럼 은근한 빛이 들어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림 왼편에 탁자가 보이고 그 위에 팔루스적 형상을 지닌 주전자가 어둠 속에 흐릿하게 놓여 있다.
여성은 옷을 벗고 침대에 들어가는 순간인데, 밖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커튼이 상당히 심하게 흔들리고 있으니 바람이 상당히 세게 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생각할 때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여성의 마음이 내면에서 느끼는 욕망을 의미할 것이다.
욕망에 흔들리는 여성의 모습, 그것은 ‘아침 11시’에 등장한 여성의 모습과 같이 노츨증적인 증상을 드러낸다. 두 여성은 모두 벌거벗고 있으며, 창 밖을 바라본다. 거기에 있는 것은 자신의 시선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거기에 있어야 할 것 즉 자기를 바라보기를 바라 마지 않는 어떤 시선이다. 여성은 안타까이 그 시선을 기다리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그 시선은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여성은 호퍼 자신을 의미할 것이다.
3)
호퍼의 상상적 동일화의 증상은 점차 절망에 빠지면서 자폐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더 이상 그는 이제 자기 밖을 보지 않는다. 자기 속의 내면에 갇히게 된다. 20년대보다 30년대 호퍼의 그림은 더 절망적이고 주인공은 거의 자폐적이다. 이는 30년대 미국의 대공황에서 받은 심적인 타격을 그린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동시에 호퍼 자신의 욕망 구조에서의 절망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그림은 1931년에 그려진 그림이다. 호퍼는 여행을 좋아해 여행을 암시하는 소재를 많이 그렸다. 이 그림의 제목이 ‘호텔 방’이니, 이 여성도 여행을 떠나왔을 것이다.
벽 기둥을 가운데 두고 그림은 둘로 나뉘어진다. 반쯤 열린 창문을 통해 보면 캄캄한 밤이다.
그림 오른편에 소파는 녹색인데, 호퍼의 그림에서 자폐적인 모습은 자주 이런 녹색으로 표현된다. 여름의 밝고 화려한 꽃무늬 원피스가 소파에 걸쳐있지만, 가방은 풀지도 않은 채 닫혀 있다.
왼편에는 침대가 있고 여성이 걸터앉아 있다. 그녀는 호퍼가 좋아하는 긴 머리와 달리 파마머리다. 여성은 내의 차림으로 침대에 걸터앉아 있다. 내의가 붉은 색인데 상당히 에로틱하다. 아마침대로 올라가 잠들기 전일 것 같다.
그녀는 어떤 접힌 종이, 아마 브로셔를 펼쳐 읽고 있다. 여행 안내서나 기차 시간표일까, 아니면 호텔의 안내문일까? 그녀의 얼굴빛으로 보면, 그녀는 이 브로셔를 읽는 것 같지 않다. 그저 손에 들고 있을 뿐 어떤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하다.
그녀의 얼굴은 어둡게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 우리를 놀라게 한다.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누구를 만나러 왔으나, 만나지 못한 것일까? 더욱 놀라운 것은 실내등의 빛으로는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밝은 빛이 그녀를 비추고 있다. 마치 성스러운 듯한 빛이 그녀를 감싸지만, 그녀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진 것 같다. 이 밝은 빛과 참담한 그녀의 얼굴 사이의 대조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4)
여행이란 어딘가에 있을 그 무언가를 찾으려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것은 창 밖에서 무언가를 찾으려는 모습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자신을 바라보아야 할 실재를 찾는 것이다. 그녀는 그저 창 밖에서 찾는 것에 멈추지 않고 행동에 나서 여행을 떠난다. 어딘가에 그것은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낯선 도시에 이르러 그녀는 절망에 빠진다. 지금껏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대체 어디로 가야 하나, 마음 속으로 생각하지만 알 수가 없다. 그녀가 찾으려는 그것 즉 실재는 실제로는 없다는 말인가? 절망에 빠진 그녀는 자신의 기억 속의 대상으로 되돌아 가려 한다.
그녀를 에워싼 그 환한 빛은 밖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내부 기억에서 나오는 빛일 것이다. 이 그림에서 그녀의 생각에 잠긴 모습은 이제 한 걸음 더 나가면, 기억에 사로잡힌 자폐적인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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