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시대와 철학]
우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정동훈(성공회대 대학원)
올해 하반기에 가장 많이 들은 단어가 있다면 아마 ‘책임’이 아닐까 싶다. 이태원에서 발생한 대규모 참사와 함께 수 많은 말과 말 그리고 말들이 이어졌다. 그 중 압권은 ‘책임이 없다’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수도 한복판에서 수 백명이 넘는 국민들이 죽고 다쳤다. 사건 직후부터 충분히 대비할 시간과 기회가 있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누구하나 책임을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중앙정부도 지방정부도 심지어 집권여당도 ‘책임은 없다’라고 말했다. 대형참사 앞에 무작정 책임이 없다고 우길 수는 없으니까 온갖 말들을 쏟아낸다. “지자체가 공식적으로 주최한 행사가 아니니까”, “외국의 문화를 즐기다가 죽은 것인데” 등등 사태의 본질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말들로 부자연스러운 무책임을 빚어간다. 그들의 말은 너무 가볍다 아니 저열하다.
이 가벼움은 11월을 맞아 절정에 이른다. 11월 초 대통령은 해외순방을 다녀온다. 귀국하는 대통령은 마중나온 행안부 장관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고 출근길 문답에서 한 방송사의 기자가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는 질문과 행동을 했고 그것을 막으려고 설전을 일으킨 한 비서관은 ‘불미스러운 사태’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사임을 했다. 이 모습이 보여주는 의미는 참으로 애석하다. 이태원 참사에 정치적 책임이 있는 장관의 어깨는 감싸주면서 언론통제를 하지 못한 비서관은 사임을 하는 모습은 왕조시대의 모습을 방불케한다. 그리고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정조사가 시작된 지금의 시점까지 이러한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아니 그들의 말은 더 저열해지고 있다.
또 한가지 가벼운 말은 ‘사건을 정쟁에 이용한다’는 말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 정부와 정치권의 본령이 아니던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못한 사건보다 더 정치적이며 정치권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중요한 사안이 있을까? 특히 의회는 정쟁을 하는 곳이다. 정쟁을 통해서 사회적 갈등을 조절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의회의 본질적인 존재 목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행위의 정당성을 선출이라는 대단히 요란스러운 의식을 통해 보장하는 것이다. 즉 사건을 정쟁에 이용한다는 말은 정치와 정치인의 존재 목적을 부인하는 것과 진배없다. 집권세력이 그리고 선출직이 스스로의 존재 목적과 의의를 부정하고 있는 모습이 우리 정치의 수준이 얼마나 가벼운지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가벼움이 비단 그들만의 문제일까? 정치인들이 가볍다고 저열하다고 비난하고 몇 글자 적으면 끝이 나는 것일까?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다. 우리 정치의 수준을 가볍고 무책임하게 만드는 저열한 언어들은 시작은 정치권이지만 결국 시민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재생산 된다. 이 잔혹하고 허접한 언어들은 소위 시사평론가와 정치유튜버라는 사람들을 통해 빠르게 전파되면서 시민의 머릿속을 장악하고 그것이 선거나 여론조사 등을 통해 결과적으로 우리 정치의 하향평준화에 기여한다. 이 대목에서 분명히 밝혀두는 것은 이 글의 주된 소재가 집권세력에게 큰 책임이 있는 사안이라서 그렇지만 이러한 현상은 본질적으로 제 1야당에게도 해당된다는 점이다. 결국 이 가벼움과 저열함은 우리의 것이다.
우리의 가볍고 저열한 언어가 근본적으로 문제적인 지점은 죽은 사람은 항변할 수 없음에 있다. 항변할 수 존재에게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결국 살아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흘러가고 궁극적으로는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지면의 한계상 다 담을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세월호 참사와 비교해서 우리의 수준이 더 가볍고 저열해졌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서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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