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제왕적 대통령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청와대와 제왕적 대통령
이종철(연세대)
새 대통령에 취임할 윤석열 당선자의 사고에서 ‘공간’이 갖는 의미는 다소 특별한 것 같다. 그는 공간에 대해 지금까지 두 번인가 새로운 말을 했다. 하나는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 …… 결단하지 않으면 제왕적 대통령 못 벗어나”이고, 다른 하나는 “일단 청와대 경내에 들어가면 제왕적 권력의 틀을 벗어나기 힘들다”이다. 이 말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기 전에 그가 이렇게 공간 문제에 집착하는지 이유를 알고 싶을 정도이다. 그는 왜 그렇게 공간의 문제를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혹시 풍수와 연관 지어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인가. 그리고 공간, 좀 더 구체적으로는 청와대 공간이 제왕적 대통령과 무슨 관계가 있다고 절대 청와대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억지를 부릴까? 이런 반응은 다소 분석이 필요할 만큼 특이하다.
첫째, 공간과 의식의 상관성을 부정하기는 어렵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과거의 풍수지리설은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가령 섬나라나 반도 기질을 이야기하거나 혹은 대륙의 기질을 이야기하는 것도 섬이나 반도 혹은 대륙이라는 공간이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성격이나 행동에 일정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전제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섬은 독립적인 공간이다 보니 외부에 대해 극도로 배타적이거나 개방적일 수 있고, 외부(대륙)로 진출하려는 경우 공격성을 띠는 경우가 있다. 일제가 조선 침략을 정당화할 때 반도론을 사용한 것은 한반도가 대륙과 해양 세력 간의 변도에 따라 타율적으로 변화해 왔으며, 중화 모화사상도 반도론의 연장 속에서 해석했었다. 대륙은 워낙 땅덩어리가 넓다 보니 인구 밀도도 낮아서 서로 간에 직접적으로 부딪힐 필요가 없고, 설령 부딪힌다 해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넓다. 그런 의미에서 대륙의 기질은 타자에 대한 관용의 여지가 넓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어쨌든 이런 것들은 공간이 인간의 의식과 행동 그리고 삶에 일정한 영향을 준다는 좋은 예이다. 하지만 양자의 상관성은 일정한 경향이나 상대적 영향이지 결코 절대적 의미를 띠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그런 공간 구속성에 절대적으로 갇히기보다는 그것을 넘어서려는 초월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둘째, 공간과 의식의 상관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청와대라는 공간이 제왕적 권력과 직접적 혹은 절대적 상관성이 있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지난 수십 년의 정치사를 돌이켜 보면 한때 청와대의 주인이었던 대통령이 제왕적 권력을 누린 사실을 인정한다 해도 그것은 대통령이라는 인간이 그렇게 한 것이지 청와대라는 공간이 그렇게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제왕적 권력의 책임을 청와대라는 공간에 묻는 것은 근거가 약할뿐더러, 이런 주장에는 합리적 근거가 뒷받침되어야만 할 것이다. 양자 간의 필연적 관계를 입증하거나 설득하지 않고 무조건 청와대는 제왕적 권력의 산실이고, 그 안에 들어가면 절대로 제왕적 권력을 벗어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에 가깝다. 만에 하나 이런 형태의 상관성을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기 위한 구실로 사용하기 위해 주장한다면, 그것은 억지이자 불통이고, 그 이면에 무슨 다른 의도가 있지 않나 의심이 갈 수밖에 없다. 이런 의도와 관련해 세간에는 수많은 썰들이 난무하고 있다는 것을 신임 대통령은 알아야만 한다. 이런 썰들이 증폭될수록 갈등과 혼란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윤 신임 대통령 스스로 소통과 협치를 강조하면서 청와대라는 공간이 제왕적 권력의 원인이라고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을 편다면 어느 누가 쉽게 동의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식의 태도는 오히려 의식이 공간을 결정한다는 주관주의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조건 공간이 의식을 결정하고, 청와대가 제왕적 권력의 원인이라고 주장하기보다는 그 근거부터 합리적으로 제시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셋째, 사실 앞서 제시한 명제처럼 청와대라는 공간과 제왕적 권력의 절대적 관계를 주장하기보다는 이런 권력이 어디서 비롯된 것이고, 왜 지금까지 그것을 제한하거나 비판하지 못했는가라는 제도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에서 풀어나가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대통령의 권력은 헌법에 규정되어 있고, 그 하위 법률과 시행령 등에 제시되어 있다. 그러므로 막연하게 공간을 죄인 취급하지 말고 지난 수십 년 동안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이 어떻게 비정상적으로 탄생했는지를 검토하면서 헌법의 무엇이 문제이고, 그것을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 지가 더 해결해야 할 선결문제라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문제를 정확히 할 필요가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도 나타났듯 민주주의 국가(헌법 제1조 ①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고 규정하고 있다)에서 단 0.7% 우위를 갖고 절대 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따라서 이러한 승자 독식의 제도부터 풀어나갈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의 국방부로 옮기는 문제 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승자 독식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오직 승자 1인만을 뽑는 소선거구제도 문제이고, 아주 소수의 표 차로 진 후보를 지원한 모든 표는 그냥 사표가 되는 시스템도 문제이다. 이런 일등주의가 승리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하고 정치 공간을 밀림의 왕국보다 더 살벌한 투쟁의 공간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제왕적 권력의 원인을 엉뚱하게 공간이나 청와대에 미루기보다는 법 제도의 개혁을 모색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고 정치적인 해법이라 할 수 있다.
아직 신임 대통령의 임기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청와대를 국방부로 옮기는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다. 청와대 이전의 책임을 신권력에 대한 구권력의 저항으로 몰고 가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이와 관련해서는 내가 몇 차례 포스팅한 적이 있으므로 더는 언급하지 않겠다. 그리고 이런 식의 주장 이면에 만에 하나라도 ‘천공’ 운운하는 도사의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풍수설이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면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다. 그러므로 윤석열 신임 대통령은 집무실 이전과 관련해서 애매하게 청와대라는 공간 때문에 제왕적 권력의 틀을 벗어날 수 없다고만 하지 말고 먼저 그것을 합리적으로 설명해 주어야 한다. 그가 극구 제왕적 대통령을 벗겠다고 주장한다면, 이런 설명과 설득의 과정이 새로운 대통령의 모델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만약 이런 설명이 없는 상태에서 계속 절대로 청와대 경내로 들어가는 일은 없다는 식으로 몽니를 부린다고 한다면, 그를 지지한 많은 국민에게 크나큰 실망을 안겨 줄 뿐만 아니라 산적한 국정과제는 완전히 뒷전으로 몰린 채 정치적 갈등과 혼란만 가중될 수 있다. 그리고 신임 대통령 주변의 참모나 인수위에 참여한 사람들도 무조건 대통령의 생각이 옳다고 하면서 이런 억지 주장에 앞장서서 나팔을 불어댄다면, 그것이 제왕적 대통령을 만드는 지름길이고, 아울러 그런 제왕적 대통령의 말로가 비참하게 끝났던 역사를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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