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극장 ― 인디아 송(1975) / 어둠이 닿기 전에 [유운의 전개도 접기]
서울극장
― 인디아 송(1975)
이유운
글자의 단위로 해체된 영원의 풍경 앞에
우리가 있다
이 사이에서 서로의 배역을 침범할 수 있다
우리는 깨진 단어들을 주워서 서로에게 이름을 붙였지
나는 너를 위해 이교도의 신에게 고해하는 자
미움을 가지고 네게 도박을 하고 있어
우리는 결국 서로를 세 번 부정할 것이다
그런데도
손을 나누어 잡고 팝콘 통에서 가끔 손등을 부딪히고 비슷한 장면에서 자세를 고쳐 앉는 것도 가능했다
영화가 끝나면 사이도 배역도 없어지겠지
차가운 물에 뺨을 댄 채로
이방인을 예감했다
새로 켜진 얼굴이 나를 보고 있었다
네 뺨은 결말도 모르고 훌쩍 자랐지
헐어 쓰고 버린 마음처럼 매끄럽게
너는 그걸 무심하게 바라보는 게 사랑이라고 했지만 글쎄 나는 잘 모르겠어, 새로운 슬픔이나 기쁨, 사랑이나 전쟁을 마음에 더 이상 들이지 않는 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연약한 것을
우리는 사랑의 정의에 대해 토론을 하는 대신
서로의 뺨을 만지며 유일이라고 말을 하면서
무심결에 사랑을 너무나 잘 해낼 수도 있었다
저기 봐,
우리가 포개진 장면이 나온다
애써 익힌 사랑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지 않는다는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니
내가 배운 건 영화를 위해 진실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
너는 입맞춤을 받기 위해 새롭게 만든 이마를 내게 보여준다
검정색 머리카락을 커튼처럼 걷어올리고
너는 사라진 것들을 많이 닮았어
너는 대답 대신 웃고 있지
희미한 빛 속에서 네 모양을 본다
왜 사랑의 장면은 이토록 희고 푸르러야 하는 걸까
어둠이 닿기 전에
사랑에 대해 오래 생각한다는 건 나 자신에 대해 오래 생각한다는 말과도 같다. 자신에 대해 오래 생각하는 것은 큰 고통과 두려움을 동반한다. 종이접기를 하면 손톱으로 꼭꼭 모서리를 눌러 접어도 뒤집으면 언제나 하얗게 벌어진 부분이 있었다. 내가 내 안으로 들어가 나를 뒤집으면 그런 흰 부분이 너무 많았다. 이기적인 마음, 사랑에 대해 욕심을 부리는 마음, 겁이 많아 이기심과 욕심을 사랑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마음, 그 거짓말이 남긴 흰 자국을 보면서 나는 절대로 누군갈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던 마음. 그런 마음들은 항상 뒤엉키고 함께 자란다. 아무리 예리한 칼로도 그것을 도려낼 수 없다. 나를 들여다 보는 마음에서 나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자란다는 건 애석하고 슬픈 일이다. 시시한 사람이 되기 싫어서 그랬다. 나는 대단하고 비범한 사람이고 싶었는데 나를 뒤집었다가 다시 덮을 때마다 여러 자국이 생기고 나는 조금씩 비참하고 구겨질 뿐 조금도 대단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자국이 남은 종이들은 점차 부드러워지기 마련이다. 뺨에 닿을 정도로 부드러워지면 나는 종이로 태어나 광목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가능성은 멋진 것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나의 선생님께 자주 편지로 보냈다. 나는 이 편지들을 오래 읽어본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도 이 글이 위로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2018년 11월 15일 오전 2시 49분] 난들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학창 시절은 미래가 자신에게 다가와 있기 때문에 장래의 입장에서 자신이 만나는 사람이나 제도를 진부한 것이고 형편없는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또 한편 기존의 언어와 생활 관습을 익히거나 알지 않으면 그들을 넘어설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마치 어린이가 부모의 언어를 배우다가 부모에 항의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 그러니 아무 염려 말고 하고 싶은 연구를 끝까지 해야 한다. 단절은 연속이 없이는 있을 수 없다. 기존의 진부한 습관을 모르는 사람은 창조적 실천도 할 수 없다. 너는 늙은 세대가 아니니 너그러운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는 삼류 정객들의 시대, 덜 떨어진 학자들의 시대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 새로움을 바라보고 있다. 너무 심각하니 그냥 웃어 넘겨도 된다. 지나치게 신경 쓰면 건강에 해로우니 항상 명랑하여라.
항상 명랑하여라. 이 어려운 말을 위해 마음을 털어내고 키운다.
필자 이유운은 시인이자 동양철학도. 2020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서 <당신의 뼈를 생각하며>로 등단했다. ‘유운(油雲)’은 『맹자』에서 가져온 이름. 별일 없으면 2주에 한 번씩 자작시와 짧은 노트 내용을 올리려 한다. 유운의 글은 언젠가는 ‘沛然下雨’로 상쾌히 변화될 세상을 늠연히 꿈꾸는 자들을 위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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