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우리철학』(한국철학사상연구회) [철학자의 서재]
♦ 아래 글은 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 『통일인문학』 제76집(2018. 12)에 게재된 서평임을 밝힙니다. <ⓔ 시대와 철학> [철학자의 서재] 코너에 게재할 수 있게 흔쾌히 원고를 보내준 필자와 게재를 허락한 『통일인문학』 편집위원회 측에 감사드립니다.
『길 위의 우리철학』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길 위의 우리철학』, 메멘토, 2018.
김재현(전 경남대 철학과 교수)
1. 답사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길 위의 우리철학』이란 책을 읽고 무척 기뻤다. 철학연구자들이 최초로 역사학자들의 유적답사처럼 발품을 팔아서 서술했으므로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어 재미있었고 우리(철학)사상의 현실감과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현대철학분과 소속 12명의 연구자들이 한국근대지성들의 삶의 흔적이 남아있는 길과 장소를 탐방하여 쓴 것으로 ‘최시형부터 안호상까지 근대지성 13인의 발자취를 따라’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글쓴이들은 “앞서 간 사상가나 지식인들이 ‘사상’과 ‘실천’을 아로새긴 ‘길’을 먼저 찾아보고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걸어보려고”(6)했으며 이들이 “걸어간 길을 되밟아 보는 여정 속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하나로 이어지면서 고개를 드는 물음을 정리하고 그것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7쪽)고 말한다. 필자들의 이런 의도가 어느 정도 실현됐는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매우 중요한 문제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여러 인물들이 간 길을 크게 5개(5부)의 이정표로 나누는데 ‘낮은 데서 찾은 진리’라는 길에서는 최시형 방정환, 장일순을 ‘경계를 넘어선 큰 마음’에서는 여운형과 한용운을 다루고 ‘역사와 교육에서 희망을 보다’에서는 박은식, 안창호, 신채호를 ‘펜과 칼을 함께 들다’에서는 나철, 박치우 ‘타협과 저항 사이’에서 신남철, 현상윤, 안호상을소개한다. “근대 지성인들과 함께 걸어갈 열세가지 길에는 우리철학사상이 걸어온 단절과 모방, 비판과 창조, 저항과 굴종이 모두 담겼다”(10) 이처럼 여러 필자들이 우리 철학사상의 흔적을 찾아 간 인물과 장소는 매우 다양한데 우선 이들이 간 길을 책의 순서에 따라 찾아가 보자.
2. 구태환은 해월 최시형(1827-1898)의 기념비가 있는 강원도 원주시 호저면 고산리 송골을 찾아간다. 그곳에는 최시형이 도피생활을 하며 숨어 지내던 원주의 동학교도인 원진여의 생가가 복원되어 있다. 조선시대 좌포도청이 있던 단성사 자리터도 찾아가는데 최시형이 이곳에서 재판받고 처형된 곳이다. 또한 피맛골과 낙원상가 부근의 국밥집도 찾고, 한양성 내의 시신을 내보내던(따라서 최시형의 시신이 나갔던) 시구문이라는 별칭이 있는 광희문도 찾는다. 이러한 탐방을 거친 후에 묻고 나름대로 답한다 ‘최시형이 꿈꾸던 세상이 왔나?’ “모든 사람이 한울님인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 현대사에 흐르는 민중의 자각과 저항의 물결은 사람들이 자신이 한울님, 사회의 주인임을 깨달아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 모두가 최시형의 벗이고, 한울님이다”(31)
김세리는 33세로 요절한 소파 방정환(1899-1931)을 만나기 위해 그의 동상이 있는 어린이대공원을 찾는다. 그리고 어린이 날이 시작되고 선포된 천도교 광장, 생가터가 있는 세종문화회관 뒤편, 묘소가 있는 망우역사문화공원을 찾으며 소파의 삶과 사상을 소개한다. 필자는 “방정환이 어린이에게서 미래를 보았듯 우리도 어린이에게서 미래를 보고 어떤 미래를 제시할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47)라고 말한다.
구태환은 장일순(1928-1994)의 체취와 다양한 일화를 만날 수 있는 원주역에 가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의 옛집인 원주 봉산동과 밝음신협 건물을 찾아가는데 이 건물 4층에 그의 서화가 전시되어 있는 무위당 기념관이 있다. 한 인물의 삶이 드러나는 구체적인 공간과 장소, 건물을 찾아가면서 그의 삶과 사상을 스토리텔링하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인데 장일순 편에서 이런 특징이 아주 잘 드러난다.
유현상은 여운형(1886-1947)이 1947년에 7월 19일 암살당한 현장인 혜화동 로타리를 찾아 서거지 표석을 확인한 후, 경기도 양평의 남한강변에 있는 그의 생가와 기념관을 찾는다. 이곳 가까이에는 다산 기념관도 있다. 기념관을 보면서 여운형의 생애와 사상을 소개하고 해방 정국에서 좌우파의 극한 대립과 독립운동 세력들의 갈등 속에서 쓰러질 수밖에 없었던 여운형과 현실에 대해 안타까와 한다. 그리고 4.19 민주묘소에서 도선사 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묘소에 찾아가 남북합작 노력이 무산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다.
송인재는 한용운(1879-1944)이 만년을 보낸 서울 성북동 북정마을의 심우장을 찾는다. 심우장은 만해가 총독부가 보기 싫어 북향으로 지었다는 한옥이다. 심우장 가는 길에 ‘님의 침묵’을 새긴 비석과 만해동상이 있다. 그리고 1918년 [유심]을 발행한 장소인 계동에 있던 유심사를 찾고 3.1운동 때 만해를 포함한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을 선언한 태화관 터도 찾는다. 이 터에 있는 태화빌딩 입구에는 ‘삼일독립선언 유적지’라는 표석 만 남아있다. 다행히 서울시가 내년인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독립선언기념 광장을 만들기로 했다. 탑골공원, 천도교중앙대교당을 포함해 이 일대에 독립운동을 기리는 공간이 생긴다. 마지막으로 만해가 투옥됐던 서대문 형무소도 찾는다. 서대문형무소는 안창호를 포함한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장일순, 리영희, 김근태 등 민주화운동가들이 옥고를 치른 곳이다.
이 지는 박은식(1859-1925)을 만나기 위해 1898년 만민공동회가 열렸던 종로구 종로 1가 사거리와 보신각 주변을 찾는다. 박은식은 만민공동회 간부로 활동했고 이 활동이 그가 개혁사상가로 전환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또한 그가 주도적으로 참여한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가 있던 자리(서울시 종로고 수송동 85)와 교육운동가로서 참여한 서북학회터도 찾는다. 이 곳에 있던 서북학회회관은 1985년 건국대학교 교내로 이전해 복원되었다. 마지막으로 한성사범학교 교관이던 박은식의 흉상이 있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구 한성사범학교) 역사관을 찾는다.
배기호는 서울 강남 도산로에 있는 도산공원을 찾아 기념관을 자세히 살피면서 도산 안창호(1878-1938)의 삶과 민족운동과 사상에 대해 소개한다. 필자는 흥사단의 사상과 활동에 대해서도 자세히 소개하는데, 서울종로구 대학로에 있는 흥사단 본부를 탐방하지 않은 것이 아쉬
움으로 남는다.
진보성은 충북 청주에 있는 신채호(1880-1936) 사당과 묘소와 기념관을 찾아 어린 시절과 성균관 입교하기 전까지 신기선과의 만남과 영향 등에 대해 소개한다. 신채호는 19살 되던 해 성균관에 입교한다. 그는 개화자강론에 관심보이고 독립협회 활동에 참여하면서 서대문에 있던 독립회관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필자는 독립관터 표석이 있는 곳을 찾아가고 신채호가 논설위원으로 활동한 <황성신문>이 있던 지금의 종각 부근과 <대한매일신보> 창간 사옥터도 찾는다. 또한 <대한매일신보> 주필로 활동하면서 1910년 칭따오로 떠나기 직전까지 살던 삼청동 옛집터도 방문한다.
김정철은 일제하 민족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대종교의 창시자인 나철(1863-1916)을 만나기 위해, 서울 종로구 사직공원의 사직단 가까이 있는 단군을 모시는 사당인 단군성전을 찾는다. 대종교는 본래 단군교라 불렸는데 나철이 단군교를 되살리고 대종교로 이름을 바꾸는데 앞장섰다. 필자는 민간 신앙 속의 단군을 찾기 위해 인왕산 중턱에 있는 국사당을 간다. 이 국사당은 본래 남산 꼭대기에 있었는데 일제가 신사인 조선신궁을 지으면서 국사당을 옮기게 했다. 또한 전남 보성군 벌교의 금곡에 있는 나철 생가를 찾아가 그가 어떤 계기로 대종교를 이끌게 되었는지 설명하고, 1909년에 대종교의 거듭남을 선언한 지금 감사원 부근에 있는 취운정터 표석을 찾는다. 마지막으로 대종교의 총본사가 있는 홍은동에 찾아가 나철의 주체성에 대한 고민을 독자에게 다시 던진다.
조배준은 경성제국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해방 후 박헌영의 측근으로서 월북하여 빨치산으로 죽은 박치우(1909-1949)를 만나기 위해 태백산국립공원을 찾는다. 박치우가 1949년 11월 20일 태백산 골짜기에서 빨치산으로 남하하다가 살해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치우가 해방 직후 중국에서 돌아와 1946년 3월에 창간한 <현대일보>의 사무실이 있던 옛터를 찾는다. 박치우는 “지금 여기에서 ‘나와 우리’의 현실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 진정한 철학의 과제”라고 밝히고 이를 실천한 철학자로서 “‘우리 철학’을 고민하는 후학들에게 작은 이정표로 남았다”(233)
이병태는 대학로 안에 있는 경성제국대학 옛터를 찾아 신남철(1907-1958?)을 생각한다. 신남철은 경성제국대학 졸업 후 조교생활도 하고 <동아일보> 학예부 기자로 일하고 중앙고등보통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가, 일제 말에 암울한 상황에서 사상적 방황을 하면서 해방을 맞는다. 해방과 함께 조선학술원 위원으로, 서울대 문리대 교수로 활동했다. 미군정의 국대안(국립서울대학교설립안) 반대운동에 적극 가담하고 정치활동도 하다가 좌절되자 1948년에 월북한다. 신남철은 김일성 대학 철학과 교수를 했지만 북한에서도 그의 뜻을 실현하지 못했다. “신남철은 장소를 찾지 못한 지식인이었고, 실제로 그 어떤 장소에도 귀속되지 못했다”(255)
윤태양은 현상윤(1893-?)을 만나기 위해 탑골공원을 찾는다. 3.1운동 때 독립선언으로 재판을 받은 사람이 민족대표 33인만이 아니라 선언을 준비한 사람까지 포함해 48명인데, 중앙학교 교사였던 현상윤이 3.1 운동을 준비한 사람으로 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중앙학교
(현 중앙고등학교)와 보성전문학교(고려대학교)를 찾아 현상윤의 행적을 소개한다. 김성수는 보성전문학교를 1932년에 인수하고 1946년에 현상윤을 교장으로 초빙하는데 그해 보성전문학교가 고려대학교로 승격되고 현상윤은 고려대 초대 총장이 된다. 그리고 1948년부터 고려대에서 한국사상사를 강의하면서 한국사람이 한글로 쓴 최초의 근대적 한국사상사인 [조선유학사]를 1949년에 간행한다. 현상윤은 일제말의 친일적인 행적과 글들 때문에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되었는데 『조선유학사』에 대한 평가를 포함해 그가 남긴 공과 죄는 분명히 평가되고 알려져야 할 것이다.
박민철은 ‘국민교육헌장’을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안호상(1902-1999)을 찾아 서울 어린이대공원에 있는 ‘국민교육헌장비’를 방문한다. 그리고 일제시대 그가 근무했던 보성전문학교를 찾고, 안호상과 이승만의 관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밝히기 위해 ‘자유총연맹’이 있는 서울 남산의 자유센터를 찾는다. 마지막으로 홍은동에 있는 대종교 총본사를 찾아간다. “안호상에게 이승만이 자신의 철학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정치적 상징이었다면, 이승만에게 안호상은 통치 이념을 세련되게 꾸미고 보완해 줄 이데올로그였다”(286-287)
3. 이 책은 한국 근대지성들의 삶의 흔적이 남아있는 구체적인 길과 장소, 건물, 유적비, 표석 등을 탐방하면서 인물들의 삶과 사상을 스토리텔링한 것이 중요한 특징이다. 서평자가 여정을 따라 같이 읽어보니 대부분의 필자들이 이런 과제를 잘 수행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책 끝부분에 있는 추천답사코스 안내도는 친절하지는 않지만 실제로 이 코스를 따라 답사하고 싶은 마음을 생기게 한다. 이 점에서 여러 필자들의 노고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한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해방 후 친일파의 집권에 따른 역사의식의 부재 때문에 잊혔던 또는 망각했던 한국근현대사의 인물들의 삶과 사상의 흔적을 복원하여 이들에게 적절한 장소를 찾아주고 한국현대사 속에 위치를 지정해주는 것이 후대 연구자들의 과제이자 역할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길 위의 인문학’(7)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철학계에서 새로운 문제의식을 갖고 이루어낸 바람직한 성과라 생각한다.
다만 좀 아쉬운 점은 이 책에서 언급된 인물들 간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필자들이 여러 명이고 개별적으로 서술하다 보니 이 인물들의 시대적 상호연관성이나 영향관계가 소홀하게 다루어진 것 같다. 사회역사적, 사상적 연관관계를 더 자세히 해명하면서 구체적
장소를 추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동학이 천도교와 대종교에 미친 영향과 함께 최시형, 나철, 신채호, 현상윤, 장일순 등의 사상적 계보에 대한 정밀한 추적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책에서 찾아가지 않았던 유길준, 서재필, 함석헌 등 여러 사상가들을 포함해 한국근현대 사상사에서 다룰만한 인물들에 대한 후속 연구와 함께, 지역적으로도 북한을 포함해 동아시아적 차원, 더 나아가 글로벌한 차원에서 탐방을 진행하여 『길 위의 우리철학』 2권, 3권 등이
계속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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